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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1년 7월 4일)
제목: “일터의 온전함”
(Terios Workplace)
말씀: 요한복음 5:17, 창세기 2:15
기도: 정상익 부목사님
찬양인도: 이원준 부목사님
사회: 윤하중 부목사님
설교자: 오정현 담임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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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5:17, 창세기 2:15,
17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15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찬양이 굉장한 뭉클함과 울림이 있다. 뭔가 찬양으로 나 같은 인생이 하나님께 쓰임 받는 게 인생의 최고의 감격이다. 내가 주님 앞에 나가 헌신 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나에게 주신 축복인 것이다. 이 찬송은 대한민국 음악 작곡가 박사인 김두완 박사가 지은 찬송이다. 세계교회 앞에 내놓아도 될 찬양이다. 나 무엇으로서 그 은혜 보답하리까~~“나 주 위해 살리라”

 
오늘은 19번째 일터의 온전함이다. 우리의 삶의 실제로 와 다가온 것이고 우리의 삶의 제일 많이 사용하는 곳이 일터이다. 비지니즈 하고, 일터와 직장 생활하고, 학생들은 공부, 전업 주부들은 가정이 일터이다. 오늘 이 내용에 대해서는 실제로 삶의 현장에서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조금 더 현실적으로 다가가는 것이니 이 말씀을 통해 삶의 전후가 새로워지길 바란다. 일터가 전쟁터이고 무한 경쟁이 난무하고 가시처럼 나를 찌르는 상사와 동료에게 둘러싸여 있을 수도 있고, 어떨 때는 숨이 막힐 정도로 업무 성과 때문에 스트레스가 쌓이고 심지어 일 자체가 너무 치열해서 화장실 갈 시간조차도 없을 때도 있다. 지금 하는 일이 맞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사람들이 마음속에 내일이 보람이 있나? 나는 일터에서 관계가 괜찮나를 생각하면 그게 맞지 않아서 많은 사람들이 양복이나 가방 속에 사표를 넣고 다니면서 언제 제출할까를 고민하며 사는 사람도 있다. 일터에서의 사람과의 관계가 얼마나 힘든지 대기업 간판보고 애써서 들어갔다가 사람보고 다시 나온다는 것이다. 사람에게 치여서 인간관계가 힘들어서 그만 둔다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안정적인 공무원들도 정년까지 일하는 것은 좋은데, 맘에 안 드는 사람들과 일하는 것이 힘들다고 한다. 더구나 4차 산업 혁명시대에 혁명적인 변화의 두려움이 있다. 코로나 이후에 어떻게 될까? 초 지능 알고리즘으로 인해서 어떤 부분은 로봇이 인간보다 더 뛰어난 분야도 있다. Well Defined Rule(잘 정의 된 규정)들이 이제는 인공지능이 빅데이터를 가지고 차곡차곡 쌓여가지고 앞으로 AI 로봇을 가지고 일을 하니, 법조분야, 의료분야, 공학 분야에 많은 직업군들이 사라지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나이 든 분들은 이러한 상황이 너무 익숙하지 않다. 요즘 젊은이들은 스마트 폰으로 물건을 다 사는 세상에서, 나이 든 분들은 스마트 폰으로 물건을 못사니까 일일이 마트에 가야 한다. 키오스크 무인주문에 대해서 익숙하지 않다. 그런데 연세 든 분들을 생각하면 동질감이 느껴진다. 농업화 시대에 태어나 산업화 시대에 청년기를 보내고, 지금 장 노년기를 초 현실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너무나 열심히 사셨다. 존경 받아야 한다. 그렇지만 우리의 일터는 만만치 않다. 이런 상황 가운데서 일터의 온전함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시는 분명한 주님의 세밀한 음성을 주실 것을 확신한다. 오늘 일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오늘 일과 우리가 믿는 생명의 복음이 결합될 때에 어떻게 새로워지는지, 하나님 앞에 더 온전해 질 수 있는지를 이 말씀으로 인해 정리를 하고 싶다. 먼저 일은,,,
 
*일은 하나님을 온전히 닮아가는 ‘거룩한 도구’가 된다.
-단지 일이 아니라 이 일이 우리가 하나님을 온전히 닮아가는 ‘거룩한 도구’가 된다는 것이다. 그것을 깊이 생각해보자.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모델, 예수님의 일 철학이 필요하다. 흔들림 없는 예수님은 신념과 근거와 토대가 무엇인가? 예수님은 이십 년 이상 공생애 하는 동안 목수 일을 하셨다. 예수님은 목수의 일을 어떻게 하셨는가?

 
I. 하나님의 일 철학이 필요하다.

 
*요한복음 14:10절에,
10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유대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을 한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일하시니 예수님이 일하신다. 이것이 일 철학이다. 아버지가 일하시니 나는 어떤 경우에도 일을 한다.
주님을 모욕하고 침을 뱉고 배은망덕하고 온갖 공격을 감행하는 그 상황 가운데서도 주님은 끄떡도 하지 않으셨다. 계속해서 사람들을 섬기시고 사랑하시고 구원사역을 감당하시고 제자훈련을 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을 일을 온전하게 되도록 하셨다. 주님께서 어떻게 그렇게 포기하지 않으시고 일에 관해서 온전함을 이루어 가셨는가?

 
주님의 일 철학.
 
① 내가 하는 일이 하나님의 일이라는 ‘사명 의식’
*요한복음 6:38절,
38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내가 하는 일이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이다. 오늘 하나님 앞에 죄가 아닌 한, 지금 내가 하는 일이 하나님의 일이라는 사명을 주시길 바란다. 확신을 주시길 바란다. 자녀를 키울 때도 하나님이 내개 주신 자녀라고 생각하고 자녀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다른 차원인 것이다. 주님이 주신 것이다. 내가 하는 일이 하나님이 주신 일이라고 여겨야 한다. 심지어 노예들이 일조차도 주께 하듯 하라고 할 때도 어떻게 하나님이 주신 일이 될 수 있는가? 그들의 일이라도 하나님이 주셔서 한다고 할 때에, 하나님이 유업의 상을 주신다는 것이다.

 
② 하나님이 나와 함께 일하신다는 ‘임재의식’
*요한복음 14:10절, 후반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주님이 일할 때, 항상 혼자서 일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이 나서서 함께 일하신다. 혼자 일하는 것이 아닌 주님과 함께 일한다. 찬송도 주와 함께 하는 것~~즐거운 것 일하는 것 아닌가? 누구와 함께 일하는가? 하나님이 일을 한다는 것과 함께 하신다는 것은 사명의식과 임재의식이다.

 
③ 내가 하는 일을 통하여 사람을 세우고 살린다는 ‘섬김의식’
-남을 섬기고 배려하는 이타적 동기이다. 주님이 이 땅에 사시면서 목수의 일도 파괴가 아니라 세우시는 것이다. 베드로를 주님이 부르실 때, “내가 너희로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다른 말로 하면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게 하는 역할을 하라는 것이다. 베드로는 살아있는 고기를 잡아서 죽여서 자기의 생명을 연명하는 사람이었지만, 예수님과 만날 때, 예수님은 내가 너희로 사람 낚는 자 되게 하겠다는 것은 사람을 살리게 하겠다는 것이다. 정말 우리 주님은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신 것이다. 이 세 가지로 남들을 세워내는 일을 감당하는 것이며 이런 일 철학은 세상 사람들과 다르다. 요즘 세상은 돈 많이 벌어서 일찍 은퇴하는 것이다. 성경적인 일철학과 좀 다르다. 세상에서는 30대에 열심히 벌어서 40대에 은퇴한다고 한다. 그래서 오죽하면 파이어족이라고 하겠는가?
 
※파이어(FIRE)족-(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이다.
-빨리 벌어서 빨리 자리 잡고 은퇴를 하겠다는 자이다. 놀고 산다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의 사고방식이다. 그런데 우리는 성경적인 노동관과 일 철학은 죄악 세상에서 구원의 공간을 창출하는 것이다.

♠성경적인 노동관(일, 철학)은 죄악 된 세상에서 구원의 공간을 창출하는 것이다.
- 이 일터의 온전함이 거의 마지막 고봉인데, 이걸 위해서 말씀을 준비하면서 마음에 많이 와 닿은 것들이 있었다.

 
열왕기하 5장에 보면 나아만과 계집종이 이야기가 나온다. 나아만은 아람 나라의 최고의 실권자였다. 그런데 그가 나병이 걸렸다. 인간이 받을 수 있는 천형이라고 할 수 있는 그런 안타까운 일이 일어났다. 그랬을 때에, 어린 계집종이 우리나라 엘리사라는 선지자가 있는데 그 엘리사의 선지자의 말을 들으면 낫는다고 말했다. 어떤 상황인가? 이 계집종은 포로 되어 왔다. 인간 취급을 받지 못하는 노예(奴隸)이다. 거의 짐승 취급의 수준이다. 그것도 여자 계집종이니 별로 존중받지 못한 상황이다. 또 나아만과 직접 관계된 것도 아니다. 여주인의 계집종인데 얼마나 잘했으면 얼마나 신뢰를 받았으면, 자기의 형편은 지옥과 같은 형편인 노예인데 그 상황 가운데서 그 여자 계집종의 말이 아람나라 최고의 장군에게 먹힌 것이다. 그러니 그 계집종의 말을 들은 나아만이 이스라엘에 가서 엘리사의 말을 듣고 요단강에 목욕하고 나온 다음에 그의 피부가 어린 아이 피부처럼 되었다. 할렐루야!~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얼마나 신실하게 일했으면 적국의 권력자가 보잘 것 없는 계집종의 말을 듣고 그 천형이라고 할 수 있는 나병(癩病)이 회복되고 치유(治癒)받는 그런 역할을 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죄악 된 세상에서 구원의 공간을 창조하는 역할을 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창조 때에 하나님이 창조하고 일하시기 전에는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고 흑암이 깊음으로 엉망이었다. 하나님이 일하시니 수습이 되는 것이고 안정되는 것이다. 좋은 질서가 잡히는 것이다. 우리 교회 의사 분들이 계시는 곳에 아프고 혼돈되고 고통 받는 육신들이 질서를 잡고 구원받아야 한다. 우리 교회 사업가들이 가는 곳마다 그 혼돈된 수많은 사업에 어려운 영역들이 정리가 되고 질서가 잡혀야 한다. 사랑의 교회 중직 자들, 헌신 자들의 헌신을 통하여 우리 교회 수많은 사역의 혼돈 된 것들이 자리를 잡고, 질서를 잡아야 될 줄을 믿는 것이다. 미화원들이 가는 곳마다 깨끗하게 되고, 교사와 교수들이 가는 곳마다 무지에서 질서가 잡히고 잘못한 것들을 질서를 잡아줘야 한다. 일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거룩한 도구가 될 뿐 아니라, 일은 죽어가는 공간, 죄악 된 세상에서 구원을 창조하는 그런 역할을 하게 할 줄 믿는다.
 
오늘 이런 내용들을 우리가 배경을 놓고 본격적으로 생각할 것은 나의 일을 통하여 하나님의 창조 사역이 완성되는 것이다. 오늘 예수님이 말한 일 철학을 갖게 되고 사명, 임재, 이타적 동기, 그리고 주님의 거룩함을 닮아가는 도구이다. 우리의 일을 통하여 혼돈된 질서가 창조적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 정리가 되기 시작하면, 하나님의 그 은혜와 창조주 하나님의 일에 대한 DNA가 우리에게 흘러 들어온다. 따라서 우리의 일이 하나님의 사역에 일조하는 것이다. 이것이 왜 중요하는가? 이 세상의 일이라는 것은 범죄 이후에 저주로 주어진 생각이 많다. 그래서 일을 하는 것을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고 심지어 신앙생활 좋다는 사람이 기도원 가서 기도만 하고 일을 안 하고 사는 사람들도 있다. 이것은 신학적으로 균형을 놓지는 것이다. 그것은 무얼 말하냐면, 일이라는 것은 저주로 주어진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창조하실 때부터 일은 축복의 도구였다.

 
 
II. 나의 일을 통해 하나님의 창조 사역이 완성되고 있다.
 
-일은 우리가 불순종해서 가시와 엉겅퀴가 나와서 그 일을 할 때, 불순종을 통해 그 어려움이 되었지만, 본래 하나님이 창조하실 때의 일은 에덴동산에서 축복의 도구라는 것이다.
 
 
*창세기 2:15절에,
15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범죄 하기 이전에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서 일하는 자체가 축복이라고 하신다. 그때부터 일이 있었다는 뜻이다. 이것이 일의 기원이다. 그러므로 여러분, 낙원을 의미하는 에덴동산에 미리 일을 주셨다는 사실은 오늘날 노동을 필요악이나 징계처럼 여기는 이들에게는 기겁할만한 일이다. 그리스 철학자들은 일은 별로 좋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신들이 사람을 창조해서 사람에게 일을 시키기 위하여, 그리고 영지주의자들이 예수님 시대 때에도 영지주의 자들이 있었다. 영은 좋은 것이고 육은 악해서 육신으로 일하는 것이 좋지 않다고 했다. 또한 한국의 유교주의의 문화가 우리 양반, 상놈, 구분하여 양반은 일을 안 하고 에헴, 하면서 상놈은 일만해야 하는 것이라며 한량(閑良) 문화가 충만한 대한민국이었다. 일 안 하는 것이 축복이라 여겼다. 그게 아니고 오늘 성경은 창조할 때부터 일이 저주가 아니라 에덴동산에서 축복의 도구였다는 사실이다. 아담과 하와는 에덴에서 일을 했다. 그것을 정리해야 한다.

 
♠일은 아담의 타락 이후 인류 역사에 끼어든 저주의 결과물‘이 아니라, 창조하실 때부터 하나님의 정원, 에덴에 존재했던 ’축복의 일부‘였다.

아담이 일을 하는 것, 동물들의 이름을 짓고 여러 가지 일들을 아담이 감당하게 된 것이며 축복의 일부이다. 일은 범죄 이전 창조 때부터 있었던 축복이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빨리 은퇴하고 쉬고 싶다고 말한다. 그게 올바른 생각인가? 우리가 세상의 제도들 때문에 리타이어 당하지만, 우리는 나이 들어 죽을 때까지 일하다가 돌아가셔야 한다. 그 일은 젊을 때, 어릴 때, 우리가 했던 일과는 다른 차원이다. 육신 노동도 있지만, 나이 들면 다 그렇게 못한다. 20대처럼 살라면 못 살 것이다. 그리 열심히 하라면 그렇게 못하지만 주님 앞에 서는 그날까지 일 열심히 하다가 9988234로 살아야 한다. 아차 하면 백세까지 살아야 하니 일하다가 더 섬기고, 남을 위해 기도하고, 찬양하고, 영혼 섬기고, 이웃을 위한 쓸모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질문을 하겠다. 평생 의식주 걱정이 안 되는 돈이 많다면 여러분은 일을 하겠는가? 우리는 30대 40대 돈 다 벌고 그 다음에 리타이어 되가지고 함 살아봐라. 미국에서 잘 산다는 돈 많은 사람들도 많이 보았는데, 은퇴하고 어떤 사람들은 멋있는 차로 캐나다 몬트리올 등으로 놀다가 코피 나는 사람도 보았다. 그렇게 일이년만 놀면 그냥 징그러운 것이다. 내게 필요한 일, 사명으로 주신 그 일을 주님 앞에서 서는 그날까지 일하다가 서면, 그것이 소중하고 온전함의 방향이다. 이것을 정리하면, 하나님은 지금도 여전히 일하시는 줄 믿어야 된다. 창조하시고 팽개쳐 두신 것이 아니고, 이원론적으로 주님은 지금도 여전히 일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일은,,,

 
♠일은 ‘불순종의 징벌’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축복의 일부’이고 하나님이 일하시기 때문에 우리도 일을 해야 한다.

연령 제한으로 사람들이 리타이어도 하지만, 남은 인생을 이전보다 더 보람 있는 일, 더 가치 있는 일, 그런 일을 해야 하는 것이다. 연세 드신 분들은 교호에 와서 남들을 위해 기도하고, 가족적인 부양의 책임을 뛰어넘어서 더 보람과 가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그래서 평양 가서 특새하자는 것이 다른 뜻이 아니고, 죽을 때까지 함께 일하자의 다른 표현이다. 우리가 참으로 가치 있는 일이 무엇인가? 지금도 주님의 온전함을 닮아가려고 우리가 주님의 온전함을 위하여 적용하고 헌신하는 일 자체가 가치이고 주님을 더 깊이 알아가고 주님의 뜻을 더 알아가는 것이 인생 최고의 일이고 주님의 뜻을 분별하려고 하는 그 일 때문에 최고가 되면 쓸데없는 곳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런 차원에서 세상 사람들과 완전히 다르다. 예수 믿는 것이 인생 최대의 사건이다. 그 뜻은 우리가 그리스도 피로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는 그 순간 우리의 영도 거듭날 뿐 아니라, 저주 받은 그 일이 거듭난다. 일도 거듭난다. 노동은 저주가 아니라, 이것은 하나님의 일이 되는 것이다. 주님은 지금도 일하심을 믿는다. 창조 사역에 동참시키신다. 일터에서 열심히 일하는 모든 분들과 공부하는 학생과 가정의 주부들도 일터가 된다. 여러분, 성경에서 최초로 성령 충만하다고 직접 언급된 분이 있다. 노아 모세 아브라함이 아니다. 물론 요셉에 대해서는 있지만, 직접 성령 충만하다고 한 사람이 있다.

 
*출애굽기 31:2~5절에,
2 내가 유다 지파 훌의 손자요 우리의 아들인 브살렐을 지명하여 부르고.
3 하나님의 영을 그에게 충만하게 하여 지혜와 총명과 지식과 여러 가지 재주로.
4 정교한 일을 연구하여 금과 은과 놋으로 만들게 하며.
5 보석을 깎아 물리며 여러 가지 기술로 나무를 새겨 만들게 하리라.
 - 일 잘하고 여기에 브살렐은 최고 수준의 디자이너였다. 건축과 공예와 이런 실질적 일에 최고의 기능공이었다. 그는 선지자도 사도도 왕도 아니었다. 일꾼이었다. 그런데 성경에 직접적으로 명화하게 하나님의 영을 그에게 충만하게 했다는 표현이 모세도 노아도 아브라함도 아닌 브살렐에게 임했다는 사실이 시사 하는바가 많다. 우리가 일을 통해 구원의 공간이 창출되고, 일을 통하여 주님을 더 거룩하게 닮아가는 것을 믿고, 주님이 나와 함께 일하시고 일이 사명이고, 거룩한 동기가 되어 그 일을 하게 되면,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서 지혜와 총명과 지식과 여러 가지 정교하고 이렇게 되어서 모두가 창조적인 능력이 확산되는 것이다. 브살렐은 당시에 레오나르드 다빈치였다. 오늘 소원하는 것은 일터의 온전함의 소원을 가지고 오늘부터 새로워져서 눈을 뜨면, 하나님이 우리를 21세기의 브살렐로 하실 것을 확신한다. 하나님은 그렇게 삼아 주시길 기도한다. 그 축복이 예외 없이 된다. 일에 대한 올바른 방향만 갖고 있으면 여러분이 갖고 있는 내면의 숨겨진 창조력이 확장되는 것이다. 우리 성도들에게 예수님의 일 철학과 우리 모두는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이니 구원받고 새로워진 우리는 거듭나게 하셔서 우리의 일이 하나님의 창조사역에 동참되기를 바란다.
 
 
 
 
III. 일을 즐거움의 경지로, 일을 예술의 경지로.
 - 브살렐이 되면 예술의 경지가 되고 일이 즐거워지는 것이다.
 
*전도서 3:22절에
22 그러므로 나는 사람이 자기 일에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음을 보았나니 이는 그것이 그의 몫이기 때문이라 아, 그의 뒤에 일어날 일이 무엇인지를 보게 하려고 그를 도로 데리고 올 자가 누구이랴.
-여러분들이 지금 하는 일이 즐거운가? 일이 즐거워야 한다. 자기 일을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없다고 한다. 믿음이 좋다는 평가는 예배드리고 헌신하고 찬송하는 것도 귀하다. 거기에 하나 더하면,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예수님 때문에 하나님이 내게 맡기신 일을 기쁘게 하는 사람이 믿음 좋은 사람이다.

 
♠하나님이 내게 맡기신 그 일을 기쁘게 하는 사람이 믿음이 좋은 사람이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일, 남들이 알아주는 직업으로 기쁘게 일하는 것이 믿음이 좋은 것이다. 형편이 어려운 사람이라도 그 일을 기쁘게 하면, 이제 얼굴이 달라진다. 얼굴에 그늘이 없어진다. 교우들을 보면 기쁜 사람은 그늘이 없다. 일터에 온전함을 가지고 일을 기쁘게 하여 믿은 좋은 사람이 되길 바란다. 우리 주위를 살펴보면 끊임없이 엔들리스 컴플레인(Endless Complain)의 사람이 있다. 일을 진짜 잘하면 불평할 시간이 없다. 정말 눈빛이 달라져야 한다.
 
※우리 아파트에 19년 정도 살고 있다. 우리 아파트의 고참이다. 보니까 자주 사람들이 옮긴다. 우리 아파트 경비아저씨들을 보면 인사도 잘하는데, 간혹 그렇지 않는 사람도 있다. 경비아저씨들도 무표정한 분도 있다. 경비란 일이 좁은 공간에서 힘들다. 그 가운데에서도 밝은 사람은 오래 일을 하고 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일을 즐겁게 해서 창조사역에 동참하여야 한다. 내 일이 예수님과 함께 하는 일이기에 얼굴을 항상 기쁘게 표현하라. 비록 환경이 좋지 않아도 기쁘게 일할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한다. 남보다 항상 일찍 출근하라. 남보다 일찍 해라. 소풍가는데 지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소풍가는데 지각하는 사람은 소풍갈 자격이 없다. 직장에서 요구하는 것보다 하나 더하고, 서양 속담에 Go extra one more mile.- 일 마일을 엑스트라만큼 더 가주라.’이다. 그리고 일을 기쁘게 하면 예술의 경지로 올라가는 것이다. 21세기의 브살렐이 되어가지고 예술의 경지로 올라간다. 남들이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산을 올라가는데도 그냥 직진하는 것보다 기쁨으로 올라가면 전에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기 시작한다. Faith report이다. 그냥 사실만 보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눈이 열리는 것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의미가 다 있고 보는 것 마다 행복해지는 것이다.

 
오늘 우리 성도들이 일터의 온전함을 통하여 예술의 경지로 올라가길 바란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3년 5년 일하다보면 지루하게 되어있다ㆍ어떻게 극복하는가? 그것은 일을 즐겁게 할 수 있는 비결은 매 주일마다 드리는 예배로 통하여 새롭게 된다. 신선해진다. 우리의 방향과 안목이 새로워진다. 내 평생 사는 동안 주 위해 살리라... 오늘 예배에 왔기에 가능한 것이다. 매주일 예배를 통하여 우리 인생의 새싹 같고, 점점 돋는 햇빛 같고 늘 신선한 새 영과 새 힘을 가지길 바란다. 일터의 온전함을 위해 달려가야 한다. 즐겁고 예술의 경지로 창조사역에 동참하도록 하나님께서 붙잡아 주시길 소망한다.
 
♣요약
일은 주님을 닮아가는 거룩한 도구로써 하나님의 사역에 일조하는 것임을 깨달아 사명 의식, 임재의식, 섬김의식을 가지고, 우리의 일이 신비하고 놀라운 예술적인 차원으로 올라가야 한다. 또한 내 일이 예수님과 함께 하는 일이기에 항상 얼굴을 기쁘게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 표현하며, 하나님이 내게 맡기신 그 일을 기쁘게 하여야 믿음이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창조사역에 동참하고. 일터의 온전함으로 항상 새 힘을 얻어서 성령 충만한 21세기의 브살렐이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자신이 아버지로 칭하심으로써 이를 명백히 하신다. 또한 예수께서는 자신이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일꾼이심을 주장하신다.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그러므로 나 역시 그 분과 더불어 일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에 의해 만물을 창조하셨고 그리스도에 의해 만물을 유지케 하시며 다스리고 계시다. 그 모든 일을 하시는 이는 그 모두의 주인이신 것이요, 이에 의당 안식일의 주인도 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로 하여금 이 동산을 다스리고 지키도록 임명하셨다. 낙원이라고 해서 일할 필요가 없는 곳은 아니었다. 여기서 다음 네 가지를 생각해 보자.
첫째, 우리 중 어느 누구도 빈둥거리며 지내도록 이 세상에 보냄을 받지는 않았다. 우리에게 영혼과 몸을 주신 이가 또한 그것을 가지고서 일할 거리를 우리에게 주셨다. 우리를 존재하게 하신 이가 또한 우리에게 그와 우리의 세대를 섬기고 우리의 구원을 이루도록 할 일을 주셨다.
둘째, 이 세상에서 직업을 지닌다고 해서 순결의 상태와 하나님과의 교제의 생활과 배치되는 것은 아니다.
셋째, 농부로서의 소명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 있어 온 명예로운 소명이다. 그것은 낙원에서조차 필요한 소명이었다. 그것은 사람에게 창조주를 찬미하는 기회를 주는 소명이었다. 그의 손이 나무를 매만지고 있는 동안 그의 마음은 하나님과 함께 있었을 것이다.
넷째,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 시키시는 일에는 참된 즐거움이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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