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주후 2021년 11월 7일)

제목: ''응답의 단비가 필요합니다''
말씀: 스가랴 10:1~6
기도: 금동훈 부목사님

찬양인도: 이원준 부목사님
사회: 장광천 부목사님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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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가랴 10:1~6)
1 봄비가 올 때에 여호와 곧 구름을 일게 하시는 여호와께 비를 구하라 무리에게 소낙비를 내려서 밭의 채소를 각 사람에게 주시리라 2 드라빔들은 허탄한 것을 말하며 복술자는 진실하지 않은 것을 보고 거짓 꿈을 말한즉 그 위로가 헛되므로 백성들이 양 같이 유리하며 목자가 없으므로 곤고를 당하나니 
3 내가 목자들에게 노를 발하며 내가 숫염소들을 벌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그 무리 곧 유다 족속을 돌보아 그들을 전쟁의 준마와 같게 하리니 
4 모퉁잇돌이 그에게서, 말뚝이 그에게서, 싸우는 활이 그에게서, 권세 잡은 자가 다 일제히 그에게서 나와서 
5 싸울 때에 용사 같이 거리의 진흙 중에 원수를 밟을 것이라 여호와가 그들과 함께 한즉 그들이 싸워 말 탄 자들을 부끄럽게 하리라 
6 내가 유다 족속을 견고하게 하며 요셉 족속을 구원할지라 내가 그들을 긍휼히 여김으로 그들이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은 내가 내버린 일이 없었음 같이 되리라 나는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라 내가 그들에게 들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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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의 단비가 필요합니다''-담임 목사님
-1년 만에 주님 앞에 본당에서 함께 예배드림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오늘 본문 11절에 보면 너희가 고난의 시간이 지나갈 때라는 말씀이 있다. 지난 1년 반 동안 고난이 바다를 코로나로 지나왔다. 그 코로나의 바다를 지나올 때, 코로나 불루, 어떤 분들은 코로나 블랙이라고 말한다. 불루는 우울감과 절망감, 코로나 블랙은 좌절과 절망이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위드 코로나 첫 주인데 우리는 위드 코로나가 아니라 beyond 코로나라고 말한다. 뛰어넘어서 어떻게 beyond하는가? 응답을 통한 열매를 가지고 위드 코로나를 beyond, 제 2막을 새롭게 펼쳐나가기를 원한다. 특별히 응답인 기도에 대한 체험을 가지고 기도에 대해서 그냥 말하고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의 응답을 경험하고 확인하고 간증하고 고백하는 은혜를 주시는 것이다. 오늘 예배가 너무 감사가 되어서 말도 잘 안 나온다. 정말 오랜만에 주일예배에 오신 분들은 Welcome Home!!~~, 주님 앞에 환영합니다~~!! 정말 위드 코로나를 뛰어 넘어 beyond 코로나를 가지고 있는 모든 분들에게 코로나 바이러스가 역사하지 못하도록 보호하시길 기도한다. 고난의 바다를 지나갈 때에 응답의 단비로  beyond로....
 
완전하게 보혈의 피로 한국교회 전체를 지켜 주시길 소원한다. 그래서 온갖 말들이 다 엉터리였다고 예배에 관해서는 그게 맞지 않았다고 그걸 확신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기도가 우리에게 얼마나 기본적이고 우리 삶 속에서 확인되고 각인 되어야 하는지 코로나 이후에 어떻게 내 것으로 체화가 되는지 먼저 성도에게서 기도가 기본인데 성경을 읽으면서 깨닫는 것이다.
 
여러분, 사도 바울이 마상에서 꺼꾸러지고 난 다음에 제일 먼저 한 일이 무엇인가? 사도바울이 마상에서 제일 먼저
 
*사도행전 9:11,
주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사람을 찾으라 그가 기도하는 중이니라.


-바울이 회심한 후 한 일은 바로 기도하고 있다. 사람이 변화되고 새로워지면 반응이 기도이다. 기독교의 기도는 어떤 타종교의 자기 수양이라든지, 어떤 신념의 확대라든지, 자기 도 닦는 그게 아니다. 기독교의 기도는 소생된 영혼의 즉각적인 반응이 기도이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다 하면서도 기도에 대한 말미가 터지지 않고 체험된 고백이 없다면 아무리 신앙의 연륜이 오래 되었다 하더라도 신앙의 은혜의 문을 열지도 못한 체 문 앞에서 왔다 갔다 하는 초보 신앙에 머물러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사도행전의 부흥의 역사, 지금 우리는 회복에 대한 기대와 부흥의 약속을 갖고 있는데. 사도행전의 부흥의 역사, 1막, 2막, 3막을 볼 때마다 어떻게 되느냐 하면, 오늘 바울이 제일 먼저 거꾸러져서 제일 먼저 한 일이 기도한 일이라고 하는 것처럼,
 
제1막은 사도행정 1-2장에 예루살렘 교회가 시작될 때,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서 전혀 기도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새로운 신약교회가 시작되었음을 확신한다.
제2막은 사도행전의 안디옥교회가 세계선교가 시작될 때에 안디옥 교회의 지도자들이 전혀 기도와 금식에 집중할 때에 하나님이 역사하신다.
제3막은 사도행전 16장에 유럽에 복음이 전해질 때에 빌립보 강가에 기도로 나아가서 마음을 모을 때에 빌립보 교회가 태동된 것이다.
 
-내일부터 특새가 있기에 이러한 메시지를 전한다. 임을 버리고, 정말 내가 특새 앞에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내일부터 한 주간 동안 기도에 관한한 죽느냐 사느냐 하는 여기에 확보를 하느냐 안 하느냐에 대해서 그걸 위해서 오늘 이 말씀이 내 본문으로 다가오길 바라는 것이다. 여러분의 신앙세계의 제2막이 펼쳐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혹시 blue와 black으로, 우울증과 무력감으로, 혹시 우리에게 좌절과 절망이 있는 분들은 오늘 이 은혜의 단비 기도를 통하여 여러분의 다시 한 번 인생과 신앙의 2막 3막이 펼쳐지기를 바란다. 오늘 본문에 이렇게 나와 있다. 우리가 기도에 대해 제대로 체험하기 위해
 
*스가랴 10:1
1 봄비가 올 때에 여호와 곧 구름을 일게 하시는 여호와께 비를 구하라 무리에게 소낙비를 내려서 밭의 채소를 각 사람에게 주시리라.
-봄비라는 것은 히브리어로 말코시인데, 이스라엘과 우리의 기후는 반대이다. 그러니까 물론 4계는 비슷하지만 우기에 관한한 우리와 정 반대이다. 10월과 11월에 비가 오면 파종을 시작한다. 그리고 3-4월에 수확을 할 때에 그때에 추수를 하는 것이다. 그래서 파종하는 때에 오는 비가 이른 비라고 하고 추수할 때에 오는 비를 늦은 비라고 한다. 그러면 가을비는 어떤 비인가? 가을비는 이른 비이고 봄비는 늦은 비가 된다. 신약에서는 이 늦은 비를 성령의 기름부음을 상징한다. 오늘 이 봄비를 이야기 할 때 그냥 봄비가 아니고 이것은 늦은 비, 추수를 위한 비이다. 오늘 우리가 육십 넘은 분들 가운데 많은 분들이 인생의 마지막이 잘 되기를 원할 것이다. 인생의 마지막이 잘 되기를 원한다면 저와 여러분이 삶의 늦은 비가 내려야 한다. 우리의 삶의 봄비가 와야 하는 것이다. 추수하기 전에 씨를 뿌릴 때에 파종할 때에도 중요하지만, 이스라엘에는 마지막 추수시기에 적당한 늦은 비와 적당한 비가 내리지 않으면 그냥 피었던 이삭이 말라비틀어지고 그다음에 비가 내리지 않으면 그 전답들이 거북이의 등처럼 쩍쩍 갈라지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가 주님 앞에서 설 때에 아니 날이 가면 갈수록 은혜의 봄비, 성령의 늦은 비, 우리의 인생의 추수 때에 이 봄비가 내리지 않으면 우리의 삶의 추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간절히 사모하는 것이다. 내일부터 특새에 단순한 것이 아니다.

 
“주여, 내 인생의 늦은 비를 경험하게 하시고 내 인생의 추수가 되게 하시고 내 인생의 쩍쩍 갈라진 거북이 등껍질 같이 말라비틀어진 이삭과 같은 것이 있으면 주님이 해결하여 주시옵소서. 응답의 봄비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그래서 인생의 마무리를 잘하게 하시고 내 인생의 추수를 감당하게 하시고 내 인생의 은혜를 베풀어주시길 원한다. 내일부터 응답의 단비를 부어주시기를 원한다.
 
※ 제가 지난주에 한 자매로부터 이 메일을 받았다. 지금 영화사 대표로 있는 자매인데 “코로나로 참석이 어려워진 이유 때문에 이런 저런 핑계로 거의 예배를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당연히 말씀으로 많이 멀어져 살았던 지난 시간들이었습니다. 정신 차리고 그리스도인이라고 걸맞게 살아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우리 교회의 홈페이지에 들어와 보니 내일부터 특새를 한다고 했습니다. 10여 년 전 강남 예배당 시절에 그 추운 새벽길을 달려와서 밖에서 몇 시간씩 기다려서 줄을 서고 주일 예배든 특새이든 어느 것 하나 소홀하지 않았는데 그 와중에 본당 1층에 앞줄 중앙을 사수했는데, 그러니까 얼마나 절박하게 은혜를 사모했던지, 그때는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붙들지 않았으면 죽었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쨌든 이번 특새로 인해서 정신을 반듯하게 가다듬을까 합니다. 이제는 대표님 소리를 듣는 제작사 대표가 되긴 했는데 아직 갈 길이 멀어서 하루하루가 가시방석 같습니다. 마음 편하게 잔 날이 지난 몇 년간 거의 없는 것 같아요. 모세의 광야생활 40년을 채워야 나도 끝나는 건가 하는 이런 자조 섞인 말을 매번 매초 하는데 중략,,, 특새부터 우직하게 완주해보겠습니다. 이제 위드 코로나에 접어들었으니 오랜만에 더 뜨겁고 은혜가 되는 특새가 되기를 목사님 소망합니다.”-영화 만드는 사람처럼 글도 잘 쓴다.
 
자 그렇다면 이런 현상을 앞에 놓고 저는 말씀의 설명이나 해석만이 아니라 이는 우리의 삶을 움직여야 한다. 우리의 삶을 바꾸어야 한다.

 
I. 응답의 단비는 구해야 한다.
 
*스가랴 10:1,
1 봄비가 올 때에 여호와 곧 구름을 일게 하시는 여호와께 비를 구하라 무리에게 소낙비를 내려서 밭의 채소를 각 사람에게 주시리라. 

-구하라, -구하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구름을 일게 하시고 소낙비까지 주시는 것이다.
 
*신명기11:14,
14 여호와께서 너희의 땅에 이른 비,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리니 너희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을 것이요.
구한다는 것을 우리가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다 안다. 그러나 우리는 새로운 차원으로 보자. 오늘 위드 코로나 첫 번째 예배를 드리니까 넥타이도 평소에 하던 것이 아닌 것으로 했다. 좀 새로워져 보자는 취지이다. 감이 잡히는가? 기도에 대해서 구한다에 대해서 기도에 대해서, 새로운 차원으로 가보자는 것이다. 기도에 대해서, 바울이 꺼꾸러져서 제일 먼저 기도한 것처럼, 여러분 마태복음 6장에 보면 우리가 구하기 전에 이미 주님은 우리 필요로 하는 것을 다 아신다. 왜 그런데 우리가 구해야 되는가?


*에스겔 36:36~37
37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내가 그들의 수효를 양 떼 같이 많아지게 하되.
36 너희 사방에 남은 이방 사람이 나 여호와가 무너진 곳을 건축하며 황폐한 자리에 심은 줄을 알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으니 이루리라. 

-그래도 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 구해야 한다는 것인가? 제가 볼 때는 구하는 기도가 하나님의 응답의 통로이기 때문에 구해야 한다.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응답을 주셔야 하는데 통로가 있어야 하는데 그 통로로 응답이 해결되어야 하듯이 응답의 통로는 구하는 것이다. 그냥 가만히 있고 알아서 하시겠지 라고 하는 가운데 일이 되는 게 없다. 하나님께 간절하게 구해야 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구하는 기도를 통하여 응답을 하는 것이다. 통로가 없는데 어떻게 응답 받을 수 있겠는가? 구할 때에 응답을 주신다.

*마태복음7:11,
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

-우리가 구하지 않아도 있어야 할 것 다 하나님은 다 알아서 하시지만 간절하게 순수하게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신다고 하신다. 누구복음에 주신다고 하셨다. 그리고 베스트 가운데 성령을 주신다고 약속하셨다. 구하는 자에게 성령의 역사를 허락해 주신다. 특별히 우리가 일반적으로 안 구해도 주신 응답은 보편적 은혜이고, 오늘 위드 코로나 이후에 beyond 코로나를 통해 여러분과 제가 생업과 사업과 일터에 장래에 여러분들이 우리에게 꼭 맞는 맞춤형 은혜를 얻으려면 구해야 한다.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이런 내용으로 비슷하게 했지만 오늘 다시 새로운 것이다. 지금 새롭게 구해야 한다. 그래서 구하는 기도를 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떤 축복을 하시는가를 보라.

*에베소서 1:17~18
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18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간절한 마음으로 특새에 나와 가지고 매어 달리고 할 때에 하나님이 우리들의 마음속에 하나님을 더 깊이 알게 하시고 하나님을 마음의 눈이 밝아져서 우리의 시각이 달라져서 통찰력을 갖는 것이다. 간절히 구하면 순수하고 간절하게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간절하게 구하면, 우리의 시각이 달라지는 것이며 영적인 말미가 터지면 주님의 심정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주님의 목자의 심정을 깨닫게 되면 그 순간 믿음의 용량이 커진다. 그래서 구하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알아서 마음의 눈이 밝아져서 시각이 커지고 용량이 커지면 믿음의 용량이 커지면 하나님은 반드시 응답하실 것이다. 구하는 기도를 통해 믿음의 용량이 커지면 하나님은 반드시 응답하신다. 저는 요즘 구하는 기도는 코로나 안 걸리게 하옵소서. 이런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이 알아서 하시고 우리가 손 잘 씻고 비타민C만 잘 먹으면 코로나 바이러스는 안 걸린다. 걸려도 치유제가 나올 것이며 걸려도 이삼일 앓고 그냥 감기처럼 넘어간다. 저는 지금 목숨 걸고 우리 교회와 한국교회가 다시 예배가 회복되,느냐 안 되느냐가 달려있다. 목숨 걸고 구하는 간절하게 구하는 제목이다. 우리 이렇게 간절히 구할 때 오늘 특별히 위드 코로나에서 첫 주일 예배에 우리 성도들과 함께 제가 간절히 사모하고 확신하고 그리고 주님 앞에 매어달리고 구할 때 하나님은 어떤 은혜를 주시는가?



II. 구할 때 하늘에 보고를 열어주신다.
 
*신명기 28:12
12 여호와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여시사 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니 네가 많은 민족에게 꾸어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할 것이요.
-구할 때에 하나님은 하늘에 아름다운 보고를 열어주신다. 영어로 아름다움 보고(Excellent Traction), 최고의 보물, 하늘의 보물창고를 비처럼 부어주신다. 우리가 기본적으로 변화하게 되면 구하게 된다. 구하게 되면 우리의 마음의 눈이 밝아져서 영적 시각이 커져서 믿음의 용량이 커지면 하늘은 응답하신다. 어떻게 응답하시는가? 하늘의 보물창고를 열어주신다. 그러면 2021년 11월 지금 이 순간 하늘의 보물 창고를 열었다는 것은 어떤 뜻인가? 오늘 본문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포로되어서 우리보다 훨씬 더 척박한 환경에 있었다. 그 사람들에게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을 때, 어떻게 보물 창고를 주셨는가?

 
스가랴 10:3,
3 내가 목자들에게 노를 발하며 내가 숫염소들을 벌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그 무리 곧 유다 족속을 돌보아 그들을 전쟁의 준마와 같게 하리니. 
보물창고 1. 너의 인생의 보물창고를 전쟁의 준마와 같이 하겠다고 하신다. 준마는 전쟁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강하고 담대하게 전쟁에 임하는 말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이 삶의 영적 전쟁에서 탁월한 적토마와 같이 빼어난 천리마와 같이 어떤 상황에서도 피곤해하지 않는 한얼마와 같이 강하고 담대하게 하신다는 것이다.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의존과 순종의 관계를 통하여 하나님의 무한하신 자원에 참여하는 것이다. 의존이란 기도를 통해 의존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의존할 때 하나님의 무한하신 자원에 참여하는 것은 준마와 같이 은혜의 평원을 달릴 수 있게 하신다는 것이다. 어제 우리나라 건국에 대한 설교들 들었듯이 대한민국의 가장 사상적, 의식적, 기초가 기독교라고 했다. 고려는 불교이고 조선은 유교이지만 대한민국은 고려, 조선시대를 이어 받는 것이 아니라 지금은 민국 이 나라의 기초가 기독교이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가 일본을 부를 때 하늘의 씨앗이 되어 역사의 생명을 이어가리. 준마가 되는 것이다. 우리의 삶의 전쟁터에서 준마와 같이, 적토마와 같이, 천리마와 같이 은혜의 평원을 달릴 수 있기를 바란다. 준마의 은혜가 하늘의 보물 창고이다.

보물창고 2. 모퉁이 돌이 그에게 말뚝이 그에게서, 싸우는 활이 그에게서, 권세 잡은 자가 그에게서 나와서 모퉁이 돌의 창고의 은혜, 말뚝의 보물의 은혜, 활의 은혜, 모퉁이 돌은 안정감을 말한다.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의 그 시대에 집을 지을 때는 지하를 판다든지 콘크리트로 하지 아니하고 그 때는 모퉁이 돌을 놓고 집을 지었다. 그러니까 제대로 된 모퉁이 돌은 그 집과 인생의 안정감을 의미하는 것이다. 여러분 지금 흔들리고 있는가? 삶이 흔들리는가? 하나님이 하늘의 창고를 주시면 우리에게 모퉁이 돌의 축복을 주신다는 것이다. 말뚝의 은혜란 몽고 같은 나라의 천막(게르)의 중간 기둥을 말한다. 그 말뚝이 서면 흔들림이 없이 천막이 쳐지는 것이다. 안정되고 오래 인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왠만한 비바람과 천둥에도 견딜 수 있게 만들어 준다. 폭우에 있는가? 하나님께서 말뚝의 은혜를 주실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활은 용기를 상징한다. 살다보면 기가 죽을 때가 있고 눈물이 날 때가 있다. 고개를 처박고 싶을 때가 있다. 이럴 때 용기를 주신다. 하늘을 향하여 기도하는 자세로 용기를 가져야 한다. 활의 은혜를 주신다는 것이다. 안정과 인내와 용기의 축복이다. 그것이야말로 하늘의 보물창고의 축복이다. 그럴 때, 5절을 보면,
 
*스가랴 10:5,
5 싸울 때에 용사 같이 거리의 진흙 중에 원수를 밟을 것이라 여호와가 그들과 함께 한즉 그들이 싸워 말 탄 자들을 부끄럽게 하리라.
-사탄을 향하여 선제공격을 하고 원수를 밟는 축복을 주실 것이다. 내일부터 시작되는 특새에 은혜의 준마, 모퉁이 돌, 그리고 말뚝, 또한 활의 용기를 주셔서 모든 사탄의 세력을 선제공격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시길 소망한다. 한 마디로 필요할 때마다 하나님의 신적개입이 중요하다. 이번에 3주전에 브라질을 갔다 왔듯이 마무리 할 즈음에 브라질 그 장로교가 운영하는 브라질에서 제일 큰 대학 중에 하나이다. 우리나라로 말하면 연세대 정도 될 것이다. 사만 오천 명의 학교이다. 거기에서 우리가 칼 세미나를 마치고 난 다음에 축하하는 일이 있었다. 거기에 브라질 장관 3명이 왔다. 교육부 장관이 목사님이시다. 오셔서 거기 귀한 자리를 축하해 주었고 그다음에 보건복지부 장관이 오시고 나중에는 외무부 장관이 오셨다. 특별히 전 농림부 장관인데, 안토니에 카브리에라는 분이다. 우리 교회에도 오셨고, 특새에도 참여하셨다. 이분은 대한민국을 사랑하셔서 우리 교회에도 오셨고 이북 평양에도 세 번이나 가셨다. 왜냐하면 미국대사관도 평양에 없고, 일본 대사관도 평양에 없다. 우리도 없지만 There is no embassy in Pyongyang.
그러나 브라질 대사관이 평양에 있다(The Brazilian embassy is in Pyongyang). 그래서 북한에 상황을 보고 틴에이저 아이들을 4명을 데리고 북한에 갔다. 거기서 스마트 폰 뺏기고 8일간 있었으니 이들에게는 지옥이었을 것이다. 그런 식으로 한국을 사랑하고 이러한 분이신데 그분이 좀 부자였다. 사탕수수 농장도 있다. 안토니오는 부자라고 해서 얼마나 부자인지를 물어보게 되었다. 당신이 부자인데 어느 정도 부자입니까? 라고 물었다. 사탕수수 밭과 콩 농장이 제주도보다 더 크다고 했다. 그렇게 부자이면 북한에 코로나 때문에 엉망진창인 그곳에 그렇다고 하니 브라질은 대사관이 있으니, 그곳에 식량 좀 도와주라고 했다. 그러니까 한 번 해보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 다음 주에 미국을 갔다. 니고레란 목사님이 친한 친구인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그 목사님은 자기의 속을 다 공개하는 친구이다. 우리 교회를 위해 늘 기도하는 분이시다. 그런데 그 아들이 자살을 했다. 얼마나 고통스러웠겠는가? 그래서 동지적 마음으로 잘 지내는데, 제가 이번에 브라질 다녀온 이야기를 했더니 북한의 어려운 식량을 좀 도와야 한다고 했더니 그러냐며 자기와 아주 친한 친구가 롤스케롤라이나 주지사를 지냈던 하나가 유엔 산하에 세계식량기구 사무총장이다. 세계 세계 최고의 부자가 누군지 아는가? 그전에는 아마존이었다. 지금은 일론 머스크이다(테슬라). 그래서 푸드프로그램, 세계 식량기구 사무총장이라는 비즐리라는 사람이 작년에 그 기구가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두 사람에게 돈을 좀 내놓으라고 했다.

그랬더니 6조를 준비할 생각이었다. 저와 닉고레 하고 이야기해서 된 것이다. 이게 상상할 수 없는 이야기이다. 제가 뭐가 있는가? 하나님이 하늘에 보물 창고를 열어주시고 일을 하신다. 북한이 식량이 뭐냐면 옥수수 밀가루이다. 쌀이 없다. 우리나라는 쌀이 썩어 남는다. 북한에 굶어 죽어가는 아이들은 먹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보물 창고를 여시면 준마가 되게 하시고 모퉁이 돌이 되게 하시며 말뚝 되게 하시며 활의 용기를 주신다. 그리고 원수를 밟게 하신다. 우리가 기도하지 않고 구하지 않고 우리가 꿈꾸지 않고 소원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가만히 있는데 되는 일이 어디 있는가? 결사적으로 주님께 매달리고 대신 말씀을 가지고 어제 내일부터 특새에서 주님 보물창고를 열어주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신명기 28장을 붙잡고 중언부언은 잘못이지만 말씀을 가지고 반복하는 것은 강력하다. 말뚝의 은혜를 주시고 나 지금 흔들리니 말뚝의 은혜를 주시길 기도해야 하고 내 삶이 안정되지 못했다면 모퉁이 돌이 되게 하시고 고개를 들지 못할 힘든 인생이라면 주님 활의 용기를 주십시오. 라고 기도해야 한다. 은혜의 평원을 한없이 달리게 하여 주옵소서. 라고 매달려야 한다. 에베소서를 읽다가 바로 그것이야 라고 생각했다. 스가랴의 이 은혜가 에베소서는 어떻게 재해석 되었는지를 보았다. 에베소서의 바울이 무릎을 꿇고 빈다고 했다.
 
*에베소서 3:16~17
16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17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이것은 성령으로 질주하고 달리는 삶이다. 모퉁이 돌, 말뚝, 활처럼 4절의 용기의 은혜 의미가 있다. 반복되고 재현된다. 그래서 힘들어도 기도하고 에베소서 3장으로 반복을 하면 성령으로 질주하게 하시고 풍성함을 허락하시며 안정과 능력을 주시고, 뿌리가 되며 터가 굳어지게 하시고, 우리의 속사람이 능력으로 강건하게 될 줄로 믿는다. 우리가 이렇게 간절히 간구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그게 말뚝, 보물창고의 은혜, 결론은

 
*스가랴 10:6,
6 내가 유다 족속을 견고하게 하며 요셉 족속을 구원할지라 내가 그들을 긍휼히 여김으로 그들이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은 내가 내버린 일이 없었음 같이 되리라 나는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라 내가 그들에게 들으리라. 
-우리는 모두가 과거가 있다. 아픔도 있다. 트라우마, 상처도 있다. 어떨 때 생각하면 열 받고 가슴앓이 하고 어떨 때는 부끄러운 생각도 있다. 다 부족함이 있는데, 그 모든 것들을 없었음 같이 되리라고 하신다. 나의 아픔과 연약함과 모든 실수가 없었음 같이 되게 하신다. 트라우마가 치유되되 없었음 같이 내어버린 일이 없었던 것 같이 온전한 회복을 주시는 것이다. 컴퓨터나 스마트 폰을 버릴 때, 내용의 잔재 물과 쓰레기들을 완전히 삭제하고 공장 초기화 하는 것처럼 나의 아픔과 모든 것들이 없었던 것처럼 해주시리라 확신한다. 더 감사한 것은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가는 길, 8절을 보면,
 
*스가랴 10:8,
8 내가 그들을 향하여 휘파람을 불어 그들을 모을 것은 내가 그들을 구속하였음이라 그들이 전에 번성하던 것 같이 번성하리라.
-‘주여, 회복을 넘어 이전에 번성함을 허락하여 주십시오.’ 마치 야곱의 가족들이 애굽 땅에 칠십 명이 들어갔지만 번성해서 강한 민족이 된 것처럼 번성하게 하게 하시겠다는 것이다. 또한 신약에서는 성령 충만으로 회복된 열 두 제자로 통해 복음이 강력하게 선포될 때, 30명씩 5천 명씩 주님께 돌아오듯이, 한때는 교회를 핍박했던 사도 바울이 회복되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거침없이 번성으로 선포할 때 그 복음 앞에 로마가 백기를 들었던 것처럼, 인생과 하나님의 백성과 공동체에 번성을 확인해 주시는 것이다. 우리교회로 말하면 주님 KBS 저녁 뉴스에 나올 만큼 사랑의 교회와 특새의 은혜와 능력이 있어서 그 번성을 회복시켜 주실 것을 믿는다. 회복되리라 믿는다. 기도 제목을 많이 가져야 한다 하나님께 어떻게 하면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가는지를 기도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온 교우들과 중직자들이 모두가 우리 교회와 공동체를 위해 어떻게 하면 매달릴 수가 있는지, 하나님 저에게 기도의 제목을 더 주셨다.
 
*다니엘 9:17,
17 그러 하온즉 우리 하나님이여 지금 주의 종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주를 위하여 주의 얼굴빛을 주의 황폐한 성소에 비추시옵소서.
-황페한 성소는 불타버린 예루살렘 성전을 말한다. 성정이 완전히 파괴되고 못쓰게 되어버린 곳이 되었다. 와서 청소하고 깨끗하게 단정한다고 회복되는 것이 아니다. 성전이 완전히 새롭게 되고 회복되기 위해서 뭘 바꾼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주의 얼굴빛을 성전에 비추어주셔야 한다. 신약시대는 우리 모두가 성전이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아들이며 천자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하나님의 전이 파괴되었다. 코로나를 통해 파괴되었다. 일 년을 교회를 못나오는 것이 파괴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세상의 세파와 유혹으로 때론 우리의 연약함과 부족함으로 인해서 성전이 깨어지고 상처받고 신음하고 황폐되었다. 이 성전이 회복되고 부흥하는 길은 세상의 처세나 위로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간절한 기도를 통하여 주님의 얼굴빛이 비추어져야 한다. 주님의 얼굴빛이 비추기를 필사적으로 기도해야 한다. 우리의 삶의 상처의 자국에 주님이 빛이 비추어지게 하시고 공동체와 한국교회에 비추어지게 하시고 저 북한의 어려운 가운데도 주님의 얼굴빛을 비추어지시길 기도한다.
 
정리하면,, 지금 우리 성도들 가운데 코로나의 터널을 지나면서 준마처럼 평원을 달려야 할 자도 있을 것이다. 모퉁이 돌처럼 안정감을 소원하는 자도 있을 것이며 말뚝 같이 버티고 인내해야 할 환경 가운데에 있는 자도 있을 것이다. 활처럼 용기를 가지고 담대해야 할 자도 있을 것이다. 어떤 분들은 과거의 상처로 트라우마로 전에 없었던 것처럼 사라져 완전히 회복되길 바라는 분도 있을 것이다. 오늘 주의 얼굴 빛이 일마다 때마다 공동체마다 함께 허락하셔서 주의 얼굴빛을 받기를 소망한다. 그대로 응답 받아서 하나님의 신적개입을 순종하는 것처럼 브라질과 미국에서 만난 리고레 목사님과 만난 사람들을 기대하지 못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잠언 17장에 보면,
 
*잠언 17:20,
20 마음이 굽은 자는 복을 얻지 못하고 혀가 패역한 자는 재앙에 빠지느니라.
이런 이야기를 해도 내 것으로 받아들이고 마음이 뜨겁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마음이 굽어지지 않는 사람이다. 그런데 항상 마음에 이런 이야기로 마음이 부정적, 의심이 많고 비판이 많으면 마음이 굽어진다. 그럴 때 구하는 기도를 통하여 말끔히 처단을 해야 한다. 우리 주님 앞에 순수한 어린 아이처럼 마음이 굽어지지 아니하고 하늘의 보물 창고에 응답의 대상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한다.
 
요약
-내게 무너진 절망감을 맞춤형 응답의 단비를 내려 주실 것을 확신하며 번성하는 인생의 제 2막이 열리게 하시며 두려움이 없이 기도의 준마를 타고 특별새벽 기도회에서 평원을 달릴 수 있을 때에 모퉁이 돌과 말뚝과 활처럼 흔들림이 없이 선제적 공격으로 사탄을 막아서 은혜의 무한자원을 공급받고 우리교회와 우리 가정에 그리고 일터에 주님의 얼굴빛을 비추어주셔서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주실 것을 확신하여 간절하게 기도하여 풍성하고 번성하는 삶 가운데 성령 충만하기를 기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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