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저녁기도회(주후 2021년 11월 10일)
제목: “열매를 많이 맺으려면”
말씀: 요한복음 15:1-8
찬양인도: 오준석 전도사님
 
설교자: 문진호 부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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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5:1-8,
1 나는 참포도 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2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3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8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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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 포도나무는 이스라엘 백성을 상징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뽑아다가 가나안 땅에
옮겨 심은 포도나무였다.
 
*시편 80:8,
8 주께서 한 포도나무를 애굽에서 가져다가 민족들을 쫓아내시고 그것을 심으셨나이다.
-가나안 땅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는 표현은 포도나무인 이스라엘이 심겨졌을 때, 풍성한 열매를 맺기에 얼마나 좋은 환경이었을 것을 말해주는 표현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좋은 열매를 맺는 일에 실패하고 만다.
 
*이사야 5:2
2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도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또 그 안에 술틀을 팠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 포도를 맺었도다.
-영적 이스라엘인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좋은 포도 맺기를 원하신다. 성도들이 좋은 열매 맺기를 하나님이 소망하신다. 성도들이 열매를 많이 맺을 때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하나님이 지금도 우리에게 소망하는 것이 있다면 우리의 삶 가운데 포도나무 열매를 많이 맺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열매를 많이 맺을 수 있을까? 먼저 포도나무가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은 환경 때문도 아니고 포도나무 때문도 아니라고 말한다. 가지 때문이다. 본문에서 그래서 네 가지 종류의 가지를 이야기 해주고 있다.
 
*첫 번째 종류는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이다.
2절을 보면,
2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첫 번째 가지는 열매를 못 맺는 가지이다.
*두 번째 가지는 맺는 가지이다.
*세 번째 가지는 열매를 더 맺게 하는 가지이다.
*네 번째 가지는 열매를 더 많이 맺는 가지이다.

5절에 보면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하나님의 기대는 무엇인가? 그냥 열매를 맺는 수준인가? 아님 남들보다 조금 더 봉사를 잘하고 조금 더 성경 읽고 조금 더 기도하는 더 열매는 맺는 수준인가? 아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대하는 것은 열매를 많이 맺는 가지가 되는 것이다. 그 기대가 8절에 나와 있다. 함께 읽어보자.
 
8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
-열매를 많이 맺으면 우리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신다는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께 무엇으로 영광 돌릴 수 있는가? 인간의 제일 된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라고 웨스트 민스트 신앙 고백서에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다른 내용들은 잘 몰라도 많이 들어서 익숙한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이 인간의 본부이라는 사실이다. 무엇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가?
 
우리가 살면서 맺는 많은 열매들로 인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줄로 믿는다. 기도응답의 열매, 인격 변화의 열매, 자녀를 주님의 제자로, 주님의 자녀들로 세우는 열매, 관계 안에서 화평과 화목함의 열매를 맺는 것들이다. 전도의 열매, 선교의 열매, 우리가 살아가면서 삶의 전 영역에 걸쳐서 수많은 열매들을 맺을 때에 우리는 많은 열매라고 말할 수 있다. 삶의 전체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 하나님께 온전한 제자가 되는 것, 그것이 열매를 많이 맺는 삶이다. 하나님이 기대하시고 하나님이 소망하는 삶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이 문제를 굉장히 진지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첫 번째 가지는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어떻게 하신다고 하는가?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심각한 문제이다. 주님께 붙어 있다가 제거를 당하면 어떻게 되는가? 그 심각성이 6절에 극에 달하여 표현되고 있다.
 
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물론 예수 그리스도께 붙어있지 않는 가지는 말라져 버리고 불에 던져버릴 뗄 감처럼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그런 존재가 되어져 버린 것이다. 불에 던져 사른다는 것이면 불어 던져지는 지옥의 이미지를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건 정말 열매 맺지 못하는 가지가 제거 당하여서 불에 던져지는가? 굉장히 심각한 질문인 것이다. 우리가 꼭 생각해 볼 질문이다. 삶의 열매가 맺혀지지 않는다면 제거되어 불에 던져지는가? 이 난해한 질문에 대한 대답은 잠시 후에 생각해 보자. 열매를 맺거나 더 맺는 수준이 아니라 열매를 많이 맺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 그 방법에 대해서 3가지를 7절에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다.


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이룬다는 것은 열매를 맺는다는 것이다. 3가지는
첫째는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는 것, 예수님의 말씀 안에 거하는 것이다. 사랑의 교회는 말씀이 풍성한 공동체이다. 주일예배를 비롯해서 강단을 통해서 선포되어지는 귀한 말씀의 공동체이다. 삶의 계절마다 우리에게 꼭 필요한 맞춤형 말씀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다. 우리에게 예비하신 아름다운 보물 창고인 이번 가을 특새를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예배해 주신 말씀이 풍성한 은혜를 다 받아 담고도 그것을 누리고도 남을 만한 큰 말씀의 그릇에 담기를 소망한다.
둘째는 기도이다. 특별히 기도중에서도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는 기도이다. 마음의 소원이 있어도 처한 환경에 따라 매이고 제한되고 신앙생황의 경험을 따라 어떤 것을 구하여도 내가 원하는 대로
얻지 못하는 그런 응답되지 못했다고 하는 경험들이 쌓이면 쌓일수록 오랜 시간 동안에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일수록 이런 경우들이 많다 정말 마음이 원하는 소원대로 구하는 기도를 드리기보다는 제한하는 것이다. 그리고 실현 가능성만을 붙들고 기도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저희 아이들이 마트나 문방구나 어릴 적에 가서 보면 사달라고 한다. 그때는 아빠의 지갑 사이즈를 알지 못했기에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다 구한다. 어느 순간 틴에이저가 되고 고교생이 되니까 뭘 달라는 횟수가 줄어들기 시작한다. 왜인 고를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아빠의 지갑 수준을 아이들이 벌써 알아버린 것이다. 자신이 바라는 것을 얻을 수 있을까, 없을까, 지금 타임에 이것을 구하는 것이 좋을까, 다음에 더 좋은 것을 구하는 것이 좋을까를 계산하기 시작한다.
 
신앙생활을 오래 했다는 것이 때로는 우리가 기도할만하고 응답될만한 것만 구하는 기도를 얼마나 많이 하게 되는지... 주님을 이것을 기도하지 말라고 하신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모두 받을 수 있을 것처럼 기도하라는 것이다. 순순한 기도를 말하는 것이다.
 
*마태복음 6:8,
8 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주님은 우리의 마음의 소원을 아시는 줄 믿는다. 우리가 기도하기도 전에 하나님 앞에 무언가를 입술을 열어서 구하기도 전에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이미 아신다. 중요한 것은 또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의 감출 수 없는 것을 하나님 앞에 내어 드리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 숨길 것이 없다. 기도는 무엇인가? 우리의 믿음의 용량을 테스트하는 기회가 된다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 감추어둔 할 말을 주님 앞에 쏟아 놓는 것이다. 어린 아이처럼 주님께 의뢰하고 부르짖어 올려드리는 기도를 주님이 바라고 계신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만큼 큰 기도를 올려드릴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는 기도는 어린아이처럼 순전함으로 올려드리는 기도이다. 그래서 이 기도는 그냥 기도가 아니라 순수한 기도이며 하나님의 응답의 크기를 제한하지 않는 기도이다. 하나님은 어린 아이처럼 이와 같이 기도하기를 원하신다. 제지 않고 계산하지 않고 나의 생각의 잣대로 크기로 제단 하여서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도의 제목을 올려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크신 만큼, 하나님이 제한 없으신 만큼 하나님의 크기만큼 마음껏 우리가 원하는 기도를 올려드리길 우리는 간절히 소원한다.
 
셋 째는 너희가 내 안에 거하라는 것이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러니까 너희가 내 안에 거하라는 것은 그냥 일반적인 표현이 아니다. 여기에는 엄청남 축복을 내포하고 있다. 그 내포하고 있다는 것은 첫째는 예수 그리스도가 참 포도나무라고 말씀하신다. 참 포도나무, 요즘 말로 찐이다. 가짜가 판을 치는 세상이다. 가짜 즐거움, 가짜 만족, 가짜 미래, 가짜 약속들, 예수 그리스도만이 찐인줄 믿는다. 포도나무의 핵심은 포도주가 원료이다. 포도열매에서 포도주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요한복음 2장에 가나 혼인 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만드신 사건부터 19장 십자가에서 신 포도주를 받으시면서 공생애를 시작하고 마치시는 이 예수님의 사역 중심에는 포도나무 비유가 있는 것이다. 포도나무가 주는 진짜 기쁨, 진짜 즐거움, 진짜 만족은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통해 이루고자 하셨던 구원의 기쁨, 영생의 즐거움, 주님과의 새로운 관계 안에서 누리는 진정한 만족을 상징하는 것이다. 이에 반하여 가짜 포도나무의 세상이 향락과 돈과 성공과 명예, 권력, 이런 것들이 우리에게 줄 수 있을 것처럼 헛된 약속과는 완전하게 다른 차원인 것이다. 찐 기쁨, 찐 즐거움, 찐 만족을 누리게 되는 일이 어떻게 가능한가?
 
주님 안에 거할 때 가능한 줄로 믿는다. 나무를 보면 그 뿌리는 땅에 이어있고 그 나무 잎사귀와 위를 향해서 자라는 것은 공기와 태양이 주는 빛을 통해서 광합성과 여러 가지 삼투압 작용을 통해서 나무가 그 생명과 그 진액을 가지에게 공급하는 것이다. 나무에게서 떨어져 나간 가지는 그 공급이 끊어지기 때문에 말라지는 것이다. 가지가 나무에 연결된다고 하는 것은 그 가지는 하늘과 땅에 연결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창조주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다는 것은 천지를 얻는 일이다. ‘하늘과 땅에 권세를 네게 주셨으니 너희는 가서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라.’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시는 주님께 속한다는 것은 그 권세를 나의 것으로 소유한다는 것이다. 가지가 나무에 속한다는 것이다. 세상이 주는 참된 만족, 참된 기쁨, 참된 평안, 참된 감격을 주 안에 거하므로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 주님 안에 거한다는 것이 또 이런 의미가 있다. ‘네 아버지는 농부라’ 여러분, 포도나무이신 예수님 안에 거하는 가지는 누구를 얻게 되냐면 농부를 얻는 것이다. 농작물은 농부의 발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이 있다. 우리 주님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에덴동산의 그 때와는 달리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으며 기대와 설렘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인생, 농부의 성실함으로 돌보심을 받는 인생, 넘어져도, 쳐 박혀도 이름을 받고 들어 올림을 받아 열매 맺는 자리로 다시 설 수 있도록 세움 받는 인생, 하나님을 농부로 모신 인생이 받는 축복이다. 농부로 모신 인생, 딱 끝이다. 인생 끝이다.
 
여러분 어떤 부모님을 만나냐에 따라 인생 딱 끝이 있고, 그때부터 인생 고생길이 열리는 인생이 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가 농부가 되시면 우리를 실족 지 않게 하시고 졸지도 않으시고 우리의 출입을 영원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는 우리의 농부로 우리의 아버지로 삼게 되는 은혜가 있는 줄로 믿는다. 그렇다면 마지막 가지는 열매 맺지 못하는 그 가지의 운명을 우리는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제거 되어서 불에 던져지는가? 그것이 아니다. 제거되었다는 표현은 헬라어로 아이로라는 표현의 단어이다. 그 단어의 뜻은 들어 올려 진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제거한다는 뜻과 들어 올려 진다는 뜻, 어떤 뜻이 더 적당한가? 포도나무는 가지이기에 농부는 무엇인가? 땅바닥에 처박힌 가지를 들어 올려 주시는 가지인 것이다. 여러분 우리 인생 가운데 좌절하고 낙망하고 상처받아 땅에 쳐 박힌 가지 같은 인생이라고 한다면 열매 맺지 못하던 그 인생을 주님이 열매 맺지 못하는 원인을 제거하시고 우리를 들어 올리셔서 열매 맺도록 은혜 베푸시는 줄 믿는다. 넘어지고 낙망하고 있는 그 가지를 농부이신 주님은 실족하지 않게 지키시고 다시 일으켜 세워 열매 맺도록 하시는 좋은 성품을 가진 그 농부이심을 믿는다. 오늘 그 주님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 이재화 형제가 지은 찬송인 ‘힘들고 지쳐 낙망하고 넘어져 일어날 일 전혀 없을 때에 조용히 다가와 손잡아 주시며 나에게 말씀하시네. 나에게 실망하며 내 자신이 연약해 고통 속에 눈물 흘릴 때에 못 자국 난 그 손길 눈물 닦아주시며 나에게 말씀하시네, 너는 내 아들이라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
 
변함없이 우리를 사랑하시겠다고 하는 그 주님이 사람의 메시지를 듣고 33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지만 그러나 마지막 그 순간까지도 포기하지 않고 주님 안에 거하기로 썼던 우리 귀한 형제의 그 고백은 우리의 찬양이 되어서 우리의 마음의 감동을 주고 우리가 지키고 넘어지고 땅 바닥에 쳐 박힌 순간에도 농부 되신 그 아버지, 하나님의 성실하심이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우실 것이라고 하는 그 은혜와 그 약속을 믿고 다시 시작하심을 얻게 될 줄로 믿는다.
 
♣요약
좋은 열매를 맺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기대를 따라 풍성한 열매 맺는 삶을 소망하며 말씀에 대한 순종과 순전한 기도를 드리며 성실하신 하나님을 농부로 모시고 넘어져도 다시 일으켜 세워 주심을 믿고 진정한 회복, 많은 열매를 온전히 맺어가야 한다.
 
-먼저 참포도 나무에 붙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참포도 나무이시다. 그분만이 죄가 없으시기에 대속의 제물이 되셨으며 죽음에서 부활하셨다. 이와 반대로 세상 모든 종교는 들 포도나무로서 들 포도나무에 연결된 가지는 실과를 맺을 수가 없다. 그리고 가지치기를 잘해야 한다. 세속적인 가지를 잘 전지(剪枝)할 때에 좋은 열매를 맺는 것이다. 그래서 성도는 절제된 생활로 영육간의 경건을 유지함으로 아버지의 사랑에서 끊어지지 말아야 한다. 더 나아가서는 거름을 잘 받아야 한다. 가꾸지 않고 거름 주지 않은 과수는 결실을 기대할 수 없다. 성도에게 있어서 말씀 읽기와 기도 생활은 신령한 거름을 받는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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