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주후 2021년 11월 28일)

제목: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말씀: 신명기 33:26-29
기도: 1부-백승준 부목사님
사회: 장광천 부목사님
찬양인도:  이원준 부목사님(쉐키나),
-영광찬양대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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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 33:26-29,
26 여수룬이여 하나님 같은 이가 없도다 그가 너를 도우시려고 하늘을 타고 궁창에서 위엄을 나타내시는도다. 
27 영원하신 하나님이 네 처소가 되시니 그의 영원하신 팔이 네 아래에 있도다 그가 네 앞에서 대적을 쫓으시며 멸하라 하시도다. 
28 이스라엘이 안전히 거하며 야곱의 샘은 곡식과 새 포도주의 땅에 홀로 있나니 곧 그의 하늘이 이슬을 내리는 곳에로다. 
29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네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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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주일 예배를 잘 드려서 은혜로운 한 주 되길 기도합니다.” 그 이유 중에 하나가 특별 새벽부흥회와 그대로 연결된 것이 아닌가 한다. 하나님께서 연결되게 하시는 것이다. 자 이번 새 생명축제에 에피소드가 많다. 좋은 일들도 많고 귀한 일들이 많은데 어떤 자매는 60대 초반의 자기 회사의 대표님이 그런 이야기를 하시더라는 것이다. ‘세상에 다 누리는 것이 다 재미가 하나도 없고 허무하다. 라고 하셨다는 것이다. 이 대표님을 새 생명 축제에 꼭 모셔야 하겠다고 마음먹고 기도로 준비하고 모셔왔다. 그 과정이 쉽지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 대표님이 오셔서 결신을 하셨다. 이 자리에 계신다면 허무가 없는 축복이 되시길 소망한다. 그 외에 태국에서 온 자매가 결신을 하고 다른 곳인 키르키스탄에서 온 형제도 복음을 받아들이고 청년부 어느 형제는 선교사로 아프리카로 파견되는데 그 어머님이 예수님을 안 믿어서 고민을 했는데 어머니가 결신하셨고, 어떤 안수 집사님은 일곱 번의 집회 가운데 한 번도 안 빠지고 나와서 열 두 명의 회사원인 직원 8명과 거래처 사람 4명이 다 참여하고 많은 분들이 결신을 하고 성령의 임재하심을 체험하고 이 새 생명축제에서 은혜를 다 묶어서 오늘 감사가 폭발적으로 넘치길 바란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선지자 위대한 선지자요, 이스라엘의 목자였던 모세가 그의 생애를 끝마무리하는 유언이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축복이요, 하나님을 향한 찬양이요, 어떻게 보면 모세의 정수를 다 담은 엑기스라고 말할 수 있다. 모세를 알고 싶으면 이 내용을 알면 되고 모세는 지금 120세이며 임종을 바로 앞둔 그 상황에서 이 유언 속에 그의 진심과 그의 전 생애가 다 녹여져 있다. 오늘 이 본문 앞부분에는 열두 지파 한 지파를 다 축복을 하고 오늘 26절부터는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대상으로 축복하는 내용이다.
 
우리가 마음을 열고 이 말씀에 눈을 열리면 오늘 우리를 위한 축복이라고 믿어도 되는 것이다.

*신명기 33:26,-여수룬이여.
*신명기 33:29,-이스라엘 너는 행복한 사람이라.
-여수룬이란 말과 이스라엘이라는 말과 같은 말이다. 이스라엘의 별칭이다. 모세가 말한 핵심은 무엇이냐면, 그가 이스라엘의 지도자이기 이전에, 그가 이스라엘의 선지자이기 이전에, 그가 그 모든 것보다도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누리는 영광과 그 감격과 그 구원의 기쁨은 말로 다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가 영광송으로 그것을 헌정 시로 그것을 송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모세는 숨을 거두는 그 순간까지 구원의 감격에 관한한 비온 후에 새싹이었고, 구원에 관한한 점점 더 돋는 햇볕이었고, 구원에 감격에 관한한 마르지 않는 샘물과 같았다. 여러분 생각해보라. 3500년 전의 그 내용들이 지금 우리에게 그대로 마음을 치고 와 닿는 것이다. 맞는가? 사건이 관통한다. 3500년을 관통하는 것이다. 오늘 이 말씀을 깨달으면 여러분의 생애를 관통할 것이다. 자! 모세의 인생의 최고 사건은 그가 애굽의 왕자가 된 것도 아니고, 이스라엘 지도자가 된 것도 아니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존경 받는 사람이 된 것도 아니고, 그것도 다 이유는 되겠지만 오늘 본문을 볼 때, 모세의 인생의 최고의 사건은 그가 나같은 사람이 구원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 때문에 그의 마음은 늘 설레었고 그의 가슴에 맥박이 뛰었고, 그의 입술에는 영광의 찬양이 끊이지 않는 사람이 된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모세가 너무 좋다. 한 번 씩 말하지만 저희 할아버지가 늘 모세처럼 되라고 하셨다. 그래서 고난도 많은지 모르지만요. 하여튼 이 내용이 너무 좋다. 자 이 내용을 앞에 놓고 저 자신도 그러고 여러분도 그러고 자 보시면 코로나 이 상황 가운데 우울한 일도 많고 돌파 감염도 있다고 하는데 요즘은 누우라고 하는 코로나 돌파감염이 나타났다는데 하여튼 과장은 정말 너무 많이 한다. 이런 상황 가운데 ‘너는 행복한 사람이다.’라고 하는 말이 제대로 된 것인가? 이것이 과한 것은 아닌가? 할 것이다. 처음 예수님을 믿고 오신 분들은 이게 어떻게 된 것인가? 할 수도 있다. 이 상황에서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앞뒤 다 살펴봐도 행복할 일 별로 없는 사람들에게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라고 하면 뭐라고 여기겠는가?
 
우리는 왜 예배를 드리는가? 우리의 예배의 핵심은 세상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믿음으로 보기 위해서 이 자리에 나왔다. 상황과 환경을 보면 그것 너무 과한 것은 아닌가?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똑 같이 가나안 땅을 보고 열 두 정탐꾼이 갔는데 여호수아, 갈렙 두 사람만 믿음의 눈을 가지고 보았고 나머지 열 사람은 믿음의 문이 열리지 않아서 환경만 보고 앞에만 본 것이다. 그래서 마음에 와 닿았고 저에게 보였기에 여러분과 함께 나누는 것이다. 오늘 사랑하는 형제, 자매들, 오늘 처음 오신 분이시라면 주님께서 이 세상에 사람들이 못 보는 것을 보시게 되길 원한다. 사실 지난 주 새 생명축제와 특별 새벽부흥회는 어떻게 보면 우리 공동체로 보면 홍해를 건넌 것이다. 어떻게 그렇게 기적적으로 특새와 새 생명축제를 하게 하셨는지 그 타이밍이 절묘하게 하나님이 잠시 열어주신 것이다. 지금 이 상황에서 특새 한다면 2주일 3주일처럼 그렇게 올 수 없을 것이다. 하나님이 하신 일이시다. 사역 적으로 홍해를 건너고 사역 적으로 광야 길을 건너야 할 것이 있다면, 우리 인생들도 홍해를 건너야 할 인생이 있고, 살아 내야 할 광야 길일 때가 있다. 그래서 본문의 모세는 그 광야 길과 홍해를 건너면서도 그 구원의 감격 때문에 그의 마음에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의 이 사실이 활화산처럼 불타올랐다.
 
모세는 이 구원의 감격을 유지했는가? 예수님을 믿고 처음 오신 분이 있다면 오늘부터 좌표설정을 잘 하시고 우리 성도들과 헌신 자들도 오늘 다시 한 번 평생 붙잡아야 할 3천 5백년을 관통하는 것인 우리 생애를 관통하는 영적인 기치와 슬로건을 몇 가지 이야기 하겠다.
첫 번째는 모세가 너를 행복한 사람이로다.는 모세가 자신의 환경에 의하여 방향을 잡은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모세를 향해서 일방적으로 선포하신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 인생의 위기 가운데서, 인생의 광야길 가운데서, 하나님은 우리를 인도하신다.라고 말씀할 수 있다.
 
I. 위가 가운데서 인도하시는 하나님.

-우리 하나님은 위기와 광야 길 가운데서도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이것을 죽을 때까지 알아야 한다. 남들은 못 보아도 여러분은 보시길 바란다. 남들은 못 보아도 이 내용은 미지의 가나안 땅을 놓고 가나안 땅 들어가기 직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치 우리가 4차 산업 혁명시대에 디지털 광야 길 앞에서 나이 드신 분들의 경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이다. 어떻게 보면 디지털 광야 길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지만 그 앞에서 모세가 마지막 마음의 점검을 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메뚜기 같다. 어떤 사람은 우리가 작은 자이어서 아무것도 아니라고 핑계 댄다. 그런데 자기들이 작은 자인 줄 알았는데 실상은 가나안에 들어가 보니까 기생 라합 같은 경우는 가나안의 원주민들의 간담을 녹이는 강한 자들이었다. 그걸 보느냐 안 보느냐의 차이였다. 그러니까 남들이 못 보는 방향을 보아야 하는데 주님은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신명기 33:26,
26 여수룬이여 하나님 같은 이가 없도다 그가 너를 도우시려고 하늘을 타고 궁창에서 위엄을 나타내시는도다.
-오늘 이 예배를 드리는 여러분을 도우시려고 하늘을 타고 궁창에서 위엄을 나타내신 하나님을 믿는다. 그 증거로 하나님은 도우시려고 하신다. 모세가 좋은 것은 자기가 지도자로 존경 받고 이것 때문에 자기가 하나님의 자녀된 것이 얼마나 놀라운지 그 증거로 하나님은 자녀를 도우시려고 하늘을 타고 궁창에서 위엄을 나타내시는 하나님이신 것이다.
 
*신명기 33:27,
27 영원하신 하나님이 네 처소가 되시니 그의 영원하신 팔이 네 아래에 있도다 그가 네 앞에서 대적을 쫓으시며 멸하라 하시도다.
-이 배경은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을 하려고 애굽 군대가 추격하여 사면초가 절체절명의 극한 위기 상황에 있을 때, 궁창 하늘에서 위엄을 나타내시고 대적을 멸하시는 것이었다. 우리 인생의 극한 위기 때에 홍해를 가르신 하나님을 꼭 기억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 홍해 건넌 후에도 모세에게는 수많은 위기가 있었다. 반역과 배신과 배고픔과 수많은 위기 가운데서도 변함없이 만나를 주시고 반석에서 샘물이 나게 해주신 것이다. 그리고 신약시대에는 바다가 갈라지지 않으면 바다 위를 걷게 하시는 것이다. 인생길을 걷다보면 누구나 벼랑 끝에 서게 될 때가 있다. 나이가 들어 노새하거나 육신이 병이 들어 고통하거나 인생의 꿈이 희박해지거나 혹은 믿었던 사람이 떠나가거나 예기치 못한 일로 사고를 당하거나 그래서 인생은 벼랑 끝에 서게 되어 있다. 성경의 위대한 인물들도 이런 경우가 많았다. 노아는 홍수의 위기를 만났고, 다니엘은 사자의 굴의 위기를 만났고, 요셉은 감옥의 위기를 만났고, 다니엘은 세 친구와 풀무 불 위기를 만났고, 초대교회 성도들은 예수님 믿는다고 화영 대 이슬과 사자의 받이 되는 위기를 만난 것이다. 이런 위기를 만날 때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본능적으로 스치는 생각과 태도가 무엇이 되는가? 이런 위기일 때, 세상 사람들은 그것이 절망의 시간이지만 그리스도인은 그것이 우리는 소망의 시간이 되는 것이다. 위기 때마다 인생의 절박한 위기가 될 때마다 세상 사람들은 절망의 시간이지만 그리스도인은 소망의 시간이 되는 것이다. 앞뒤 좌우가 꽈꽉 막혀 있을 때에 그리스도인들은 소망이 된다는 것은 오늘 순간 이 본문 말씀 26-29절 말씀을 우리가 듣는 것이다.
성도에게는 인생의 벼랑 끝은 하나님을 깊이 체험할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도에게는 인생의 벼랑 끝은 하나님이 새 길을 열어주시는 시간이 되기 때문에 예외가 없다. 그래서 우리는 늘 하는 이야기대로 동서남북, 앞뒤좌우가 꽉 막히면 위가 열리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목사님 그것을 다 알아요 그런데 가슴이 따라주지 않습니다.’라고 하는 성도도 있을 것이다. 가슴이 따라주지 않을 때를 잘 봐야 한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봐야 하는데 내 머리로는 알지만 동서남북이 막히는 것도 다 알지만 내 가슴이 안 따라가고 가슴이 열리지 않으면 어떠하겠냐고 할 때에 이 요절의 말씀을 선포해 버려라. 이 요절을 선포하라. !!~~가슴이 따라주지 않을 때, 믿음으로 이 모세의 신앙고백을 선포하라. 그럴 때,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절망의 시간이 여러분은 소망의 시간이 될 것을 믿으면 기적이 일어날 것이다. 그것 때문에 행복해 질 것이다.
 
*신명기 33:29,
29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네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수많은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나는 행복한 사람이야, 여러분 저는 이 말씀이 없었으면 나는 죽었다. 그런데 안 보이는데 나는 보이는데 어떻 하냐고, 오늘 예배를 드리면서 특별히 성도님들, 새 신자들, 헌신 자들, 오래 되신 여러분들, 모두가 신실하신 하나님, 미쁘신 하나님을 믿습니다를 생각하고 중요하는 것이다.
 
*민수기 14:28,
28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여러분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 앞에 인생이 절망의 시간에 하나님 이 시간에도 ‘나는 행복한 사람인 줄 믿습니다.’라고 그대로 행하리다. 우리는 위기 가운데 절대로 행할 수 없는 상황에서 나는 행복자라고 선언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 귀에 들린대로 행하시는 그 하나님을 믿는 믿음 때문이다. 그래서 여러분 믿음이란 내 자신이 노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고전을 보라.
 
*고린도전서 2:5,
5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현대성경-‘이것을 현대인의 성경에는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의존하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에 의존하게 하였다.’
-믿음이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에 의존하는 것이 믿음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이 말세의 믿음을 보겠느냐? 하신다. 이 믿음은 성실한 사람들은 모범생들은 정답이 하나이다. 정답이 하나인 사람들은 그것을 뛰어 넘으려면 어떻게 되겠는가? 자아가 깨지지 않으면, 자기 부인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대체적으로 신앙이 좋은 분들은 정답이 하나의 모범생들이다. 그래서 너는 행복한 자라고 하신다. 하나님 저는 힘들어요. 하는 순간 하나님은 우리에게 믿음을 보길 원하신다. 그걸 뛰어 넘고 그것이 깨어져야 인생의 모범 답안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진정한 모범 답안을 주신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인생의 벼랑 끝에 설 때에 우리가 순수하게 하나님의 능력에 의존하게 되면 그 자체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다. 제 이야기가 아니다.
 
*시편 146:5
5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자는 그래서 행복한 것이다. 이것이 믿는 자의 행복이요. 여러분의 삶의 위기의 순간에 신명기 33장 29절은 꼭 선포하라.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그러면 절망의 시간이 소망의 시간이 될 것이다. 그래서 누가복음 6:21절을 보자.
 
*누가복음 6:21,
21 지금 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배부름을 얻을 것임이요 지금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
-우는 자는 우는 것이고 우는 자는 비극이지만 그 우는 상황 가운데서 ‘너는 행복한 자로다.’ 라고 믿음으로 선포해 버리면 웃는 것이다. 우리는 배웠다. 홍해의 위기 앞에서 가만히 서서 하나님이 말씀이 무엇인가를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이 뭐라고 하시는 지, 절대적 위기 가운데서 다 기억해야 한다.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그것을 기억하면서 홍해의 발을 디디는 것이다. 모든 사랑의교회 모든 성도님들이 우리의 위기에서 어려움과 우리의 삶이 광야 길을 걸을 때마다 가만히 서서 주님이 하시는 말씀을 붙잡고 그 다음에는 fORWORD. ~~!! 한 걸음 한 걸음 홍해 발을 딛는 것이다. ‘너는 행복자로다.’ 그 말씀을 마음에 기억하며 말도 안 돼도 하나님의 능력을 의존 하는 것이 믿음인 것이다. 발을 디디면 내 인생의 답안이 아니라 하나님의 모범 답안이다. 답안을 내 한계를 뛰어 넘고 주시는 것이다. 아무리 이야기해도 잘 못 알아듣는다. 제가 미국에서 사역할 때, 서울 왔다가 다시 미국에 가서 장로님들과 이야기를 하는데, 장로님 가운데 목사님, 우리는 믿음을 못 따라가겠다고 하신다. 저는 그 말씀에 내게는 위로가 되도 좋기는 하지만 너무 안타깝다. 믿음이란 목회자가 어떻다는 것보다 더 뛰어난 믿음이 있어야 한다. 저보다 더 믿음이 뛰어나야 한다. 저는 여러분들의 믿음 좀 따라갔으면 좋겠다. 사랑의교회 중직 자, 성도님들, 여러분들이 저의 믿음보다 더 컸으면 좋겠다. 시대를 보는 눈도, 민족을 보는 눈도, 역사를 보는 눈도 하나님은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를 선포하시고 그 절망의 시간에도 믿고 믿음이 하나님이 능려을 믿는 믿음이기에 하나님이 일하심을 믿어야 한다. 저보다 행복하고 기뻐했으면 좋겠다.
 
II. 광야 길 가운데서도 인도하시는 하나님.

*신명기 33:27,
27 영원하신 하나님이 네 처소가 되시니 그의 영원하신 팔이 네 아래에 있도다 그가 네 앞에서 대적을 쫓으시며 멸하라 하시도다.
-‘우리가 늘 행복한 사람이로다.’ 29절에 너처럼 구원을 얻은 자가 어디있는가? 기가 막히다. 조금 전에 이야기 한 것이 그것이다. 저보다도 여러분들이 믿음이 좋아가지고 ‘나는 행복한 사람이로다.’를 더 선포해서 여호와의 구원이 나처럼 얻은 백성이 어디 있는가!!! 더 기뻐하고 더 선포하는 축복이 온 교회에 충만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위기 때 마다이다. 두 번째는 여호와 하나님이 너의 처소가 되시나니,,, 이 처소는 다른 번역본으로는 피난처이다. 광야는 길이 없는 곳이고, 광야는 불 뱀이 날아다니는 곳이다. 기온차가 너무 커서 인간이 살 수 없는 불모지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장정만 60만이니 남녀 어린이 앞에서 이백 만 명 이상을 데리고 광야에 들어갔을 때, 인간적 차원에서 모세는 희망이 없었다. 그래서 오죽하면 애굽 왕 바로가 출애굽기에서 말한다.
 
*출애굽기 14:3,
3 바로가 이스라엘 자손에 대하여 말하기를 그들이 그 땅에서 멀리 떠나 광야에 갇힌바 되었다 하리라.
-남들이 볼 때 광야는 갇힌 곳이다. 남들이 볼 때는 광야는 희망이 없는 곳이다. 그런데 너는 행복자로다. 너처럼 여호와의 구원을 얻는 자가 누구냐며 선포하는 순간에 그 갇힌 곳이 하나님의 처소가 되는 것이다. 그 갇힌 곳이 절망이 하나님의 피난처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처소, 피난처는 마치 하나님으 폼 속에 있는 것처럼 그의 백성들을 도우신다는 뜻이다. 광야 가운데 이스라엘 백성들을 어떻게 하나님은 도우셨는가? 하늘에서 만나를 날마다 내려주시고 바위에서 샘이 터지게 하시고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햇볕을 가려주시고 뜨거운 그 염천지하의 기온에서 보호해 주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한 밤의 냉기를 견디게 하셨다. 아무리 걸어도 신발이 헤지지 않게 하시고, 발이 부르트지 않게 하시고, 아무리 옷을 입어도 옷이 낡아지지 않게 하시고, 수많은 애굽 사람들의 질병으로부터 막아주셨다. 갇힌 곳이 하나님의 처소가 된 것이다. 갇힌 곳이 하나님의 처소이다.
 
우리는 지금 코로나 시대이다. 전 이것을 절실하게 주님 앞에 요청한다. 사랑의 교회 모든 교우들은 이 안아주심의 본당에서 예배드리는 모든 성도들의 생애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주장하여 주시 사 질병으로부터 보호하시고 샘이 터지게 하시고 만나를 주시고 입은 옷이 헤지지 말게 하시길 소원한다. 아멘!!~~
 
모세는 처소에 대해서 마음이 늘 가 있었다. 광야 길을 걸으니까 안정되고 좀 이렇게 보호가 되는 것이 중요했겠는가? 요즘 전세나 월세인 분들은 이 처소가 더욱 와 닿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4차 산업혁명시대에 디지털의 광야 길을 우리 앞에 놓고 있다. 수많은 신앙의 장애물 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이 광야를 안전하게 지날 수 있는가?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그래서 오늘 말씀의 엑기를 드린다면 위기를 만날 때마다 말씀을 선포하면서 다닌다면 광야 길도 이겨낼 수 있다. 아주 심플하다.
 
저는 우리 교회 건축할 때, 남들은 다 안 된다고 할 때, 하나님이 땅을 주셨으니까 준비했다. 하나님이 주셨으니 건축하게 하신 것이다. 하나님이 기공하게 하셨고 엄청 은혜롭게 기공식을 했다. 하나님이 기공하게 하셨으니 완공하게 하실 것이다. 아주 심플했다. 모두 하나님이 다 하셨다. 그리고 헌당하게 하셨다. 깨끗하게 마무리하게 하셨다. 아주 심플했다. 제가 건축을 예를 들었다.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다. 마치 하나님은 나를 로 보시지 않고 나를 전부로 주님이 나를 대우하신다. 나를 100%로 대우하시는 것이다. 그렇다면 광야 길을 인도하실 것이다. 이것을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그 차원을 뛰어 넘는 그런 은혜를 하나님이 주시길 원한다. 다음 고린도전서에 보면, 광야 길과 홍해기를 건너는 것을 해석하면서 홍해를 건너는 것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는지를 보라.
 
*고린도전서 10:3~4,
3 다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4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10장 앞에 1-2절에 홍해를 건너는 것을 세례를 받는 사건으로 해석하고 있고, 인생의 광야 길에서는 모두가 다 신령한 음식과 신령한 음료를 마실 것이다. 라고 한다. 그 신령한 음식과 신령한 음료를 마셔야 하는데 신령의 음료의 핵심은 생수 되신 예수 그리스도시다. 그 예수 그리스도가 생명의 떡이신데 그 예수 그리스도가 생명의 떡이요, 생수라는 것을 무엇으로 표현하는가? 인생에 위기가 되었을 때 광야 길이 되었을 때마다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라고 하신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처럼 얻은 백성이 어디 있는가? 를 고백할 때, 주님은 우리의 생수가 되시고 신령한 떡이 되시는 것이다. 이럴 때, 세상 사람들과 다르다. 한 차원 올라가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모범 인생들, 정답이 하나 밖에 없다는 분들이 너무 많다. 이게 인생 적으로 세상 적으로 맞을 수도 있지만 믿음으로 사는 데는 그게 정답이 아닐 수 있다. 믿음으로 사는 길에는 광야 길에서도 위기 길에서도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면서 우리에게 축복을 주신다.
 
 
※어떤 옥탑 방에 사는 부인의 삶이다. 기자가 물었다. 당신은 언제 가장 행복하냐고 질문했다. 그녀는 저는 밤에 빨래를 널 때 하늘을 바라보며 나는 행복한 여자라고 답한다. 기자가 다시 묻자, 밤중에 왜 빨래는 하냐고 물었더니 낮네는 주인집에서 빨래를 널기에 밤에야 제 차례가 와서 그리 한다고 대답한다. 그녀의 눈 깊은 곳에서 하늘의 별이 총총 빛나고 있다고 기자는 썼다. 사실 그 부인에게는 5년 전부터 식물인간으로 누워있는 남편이 있었다. 그런 생활 가운데서도 그 부인이 행복하다고 하는 것은 바로 예수님 때문이라고 고백했다. 부인이 그 고달픈 생활 속에서 기쁨을 잃지 않는 것은 구원의 감격 때문이라고 적고 있다. 구원의 감격을 갖은 사람은 힘든 상황에서도 주님을 모시니 기쁨의 별 빛이 반짝이는 것이다.

 
III. 평생 구원의 감격을 유지하는 방법.

◆적용-우리는 평생 우리는 모세처럼 이 구원의 감격을 유지할 수 있는가?
-말씀과 기도와 성령이다. 고전적으로 말하면 그렇다. 이 21세기 디지털 광야 길에서 우리들에게는 말씀과 기도와 성령이 어떤 식으로 적용되어야 하는가? 말씀과 기도가 뒷받침된 찬양이다. 특별히 말씀으로 부르는 찬양이 우리를 끝까지 구원의 감격을 유지하게 하는 것이다. 저도 어릴 때 많이 했다. 그런데 구원의 감격으로 충만할 때 부른 찬양은 ‘놀랍다, 주님의 큰 은혜~~우리의 죄를 속하시고, Amazing Love How can~~,,그런데 성경 말씀이 기초가 되어 찬송이 되면 더 놀랍다. 성경 말씀으로 찬양하면 계속하여 말씀이 기도가 된 그대로 부를 때 기도의 곡조가 된다. 능하신 이가 행하시니 그 이름!! 성경구절 그대로 된 찬송을 불러야 한다. 그것을 그대로 말씀이 기도가 된 것이 찬양이니 곡조 있는 찬양이 될 때, 이 수준을 유지하게 하신다. 주님을 찬양하는 것이다. 이 구원의 감격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것으로도 찬양하면 구원이 이루어진다. 말씀이 찬양이 되는 것을 기도하면 감격을 더 유지할 수 있다. 내 영혼 주 찬양하며 하나님 기뻐함은~~~,이것은 마리아가 수태고지를 받았을 때, 하나님 내 구주를 신약에 누가복음에 나오지만 구약에 있는 이사야와 하박국에 있는 것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능하신 이가 그대로 응하셨다는 것은 시편 71편과 이사야 51장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성경구절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을 찬양으로 부를 때에 말씀이 기초가 되어 기도가 활활 타오르게 하고 구원의 감격을 유지하게 하신다. 그래서 모세는 앞에 신명기 31장19절에 보면,
 
신명기 31:19,
19 그러므로 이제 너희는 이 노래를 써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가르쳐 그들의 입으로 부르게 하여 이 노래로 나를 위하여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라.
-이 노래를 써서 그들의 입으로 노래를 부르게 하라고 한다. 정교하게 말씀하는 것은 그 이유는 모세의 영광이 노래를 써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입으로 부르게 할 때, 구원의 감격을 누리고 유지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여러분, 프로테스탄테의 요한 켈빈과 마르틴 루터는 수많은 공격과 어려움도 말로 다할 수 없었다. 대학자이자 대 신학자이지만 음악가 작곡가이고 특히 코랄이라는 찬양을 만들어서 작곡하고 작사해서 회중들과 찬양해서 말씀의 기도와 회중이 찬양하는 일이 되었다. 개혁교회가 캐톨릭을 압도했다. 그래서 우리는 강력한 말씀을 통한 구원의 감격으로 찬양이 더 중요하다. 여려분이 그래서 찬양이 뛰어나야 한다.
 
또 하나는 성령이 충만해야 한다. 성령이 오시면 우리에게 기쁨을 주신다. 기쁨은 오직 성령으로부터 온다. 성령은 희락이다.
 
*사도행전 13:52,
52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
-기쁨과 성령이 같이 가는 것이다. 그래서 성도들은 성령을 주시면 기쁨이 있을 때 행복하다. 그리고
 
*데살로니가전서 1:6,
6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성령과 기쁨은 같이 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공동체로 모여서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이 어떤 은혜를 주시냐면 반드시 하나님은 성령 충만한 자에게 그 예배에 메마르고 힘들고 아픈 사람에게 그 충만한 기쁨의 풍성함을 메마른 사람에게 전달하게 되는 것이다. 위로부터 부어주신다. 나는 행복자로다. 하나님의 신실한 종들이 반드시 있다. 있으니까 풍성하면 메마른 자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교회 공동체에서 거룩하게 위에서부터 아래로 흘러가게 하는 것이다. 새 생명 축제를 통해서 영혼을 살려 주셨다. 주님을 통해서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오늘 모세처럼 평생 구원의 감격을 유지하는 백성으로 그렇게 고백하는 축복이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결론
죽을 때 나는 행복한 사람인가? 라고 자녀들에게 말할 수 있는가? 자기 틀 안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 성령으로 자기 틀 안에서 자유로워야 한다. 정답 소녀는 답이 없으면 못 견딘다. 그러나 하나님이 성령으로 인도하시면 다 깨달아서 자유로워진다. 우리는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죽을 때,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는 말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요약
우리 인생의 위기와 광야 길에서도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라고 말씀하시는 주님을 온전하게 믿고 생애를 관통하는 구원의 감격을 평생 유지해야 한다. 인생의 벼랑 끝에서도 말씀과 기도와 찬양으로 하나님의 능력에 의존하여 성령이 충만하여서 한계를 뛰어 넘어 기쁨으로 공동체 생활을 하고, 새 영혼을 위해 그리고 아래로 흘려보내는 역할을 하며 하나님의 처소에서 기적을 경험하는 자 되길 소망한다.
 
-하나님께서 늘 지켜 주시고 보호해 주시리라는 것이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될 임마누엘(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의 복을 예표 한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기준에 맞추어 하나님의 복을 평가하거나 축소시키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도우시는 방패요, 영광의 칼이 되어 대적을 이스라엘에게 복종시키고 그들의 높은 곳을 정복케 하실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는 하나님과 동행함으로써 참된 행복과 참된 기쁨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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