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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저녁기도회(2022년 9월 14일)

제목: "이것이 싸우는 방식"
말씀: 열왕기상 18:34-38
찬양인도: 쉐키나(이다니엘 부목사님)
사회: 김도훈 부목사님(기도)
 
설교자: 강건우 부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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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18:34-38,
34 또 이르되 다시 그리하라 하여 다시 그리하니 또 이르되 세 번째로 그리하라 하여 세 번째로 그리하니.
35 물이 제단으로 두루 흐르고 도랑에도 물이 가득 찼더라.
36 저녁 소제 드릴 때에 이르러 선지자 엘리야가 나아가서 말하되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신 것과 내가 주의 종인 것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 알게 하옵소서.
37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에게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
38 이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은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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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한다.
 
-벌써 3번째이다. 연거푸 세 번째 물을 지금 붓고 있는 장면을 여러분이 읽어주셨다. 이쯤 되면 대강 물을 적시는 정도가 아니라, 물이 흘러넘쳐서 찰랑찰랑 될 정도이다. 불이 붙느냐, 마느냐가 관건(關鍵)인데 여러분이 잘 알고 계시는 엘리야 갈멜산 전투(戰鬪)가 있지 않은가? 이정도로 물을 가져다 붓고 있으니까 가히 미친 짓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혹시 심리적인 압박 때문이었을까? 바알을 믿고 따르는 수백 명의 선지자들과 엘리야 혼자 싸우다 보니까 막중한 부담감 때문에 압도 되어서 정신 줄을 살짝 놓은 것은 아닐까? 그래서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물을 가져다 붓고 무려 세 번이나 그 행동을 연거푸 반복하는 것일까? 제가 이런 궁금증을 가지게 된 이유는 간단하다. 왜냐하면, 이런 식으로는 절대 불이 붙지 않기 때문이다.
 
여러분, 번개탄이라는 것을 사용해 보았는가? 캠핑의 경험은 유무가 다를 수 있지만, 실내외에서 바비큐를 한 번쯤 구워보시고 경험해 보셨을 것이다. 그때 숯에 불을 붙이기 위해서 먼저 태우는 그 제품을 번개탄이라고 한다. 한 번쯤은 다 사용해 보셨을 것이다. 실제로는 그 불을 붙인다는 그 기능 그대로 이름을 따서 착화(着火)탄(炭)으로 불렀는데, 사람들의 입에는 번개탄(炭)이라는 말, 빨리 불붙는다는 뜻의 번개탄이라는 말이 입에 달라붙어서 그게 품명이 된 경우이다. 그만큼 불을 빨리 피우는데 잘 붙이는데 유용한 제품이다. 그런데 제가 이 번개탄이 무언가? 어떻게 만드는 것을 보니 이렇게 설명이 되어 있었다. 제가 읽어드리겠다. ‘바싹 마른 톱밥과 가루를’, 일단 바싹 마른 것이란 거부감이 있는 단어인데, 바싹 마른 톱밥과 가루를 밀가루나 전분 등으로 만든 풀에 넣어 뭉쳐놓은 숯의 일종의 불쏘시개이다.
여러분, 설명이 뭐라고 되어있냐면, 바싹 마른, 물기가 전혀 없는, 또 바싹 마른, 이를 강조하고 있다. 이래야 이렇게 해야 불이 붙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우리들의 생각 속에는 불이 붙으려면 뗄 감, 곧 나무만 있으면 그냥 된다고 쉽게 생각하지만 실제로 불이 붙으려면 그 불이 붙는 과정에는 그냥 나무만 있어서는 안 되고 어떤 나무여야 하는가? 바싹 마른, 물기가 없는, 그런 나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자 그럼, 갈멜산으로 와서 한 판 붙자, 너희 바알을 섬기는 수백 명의 선지자들이여, 여기 송아지 두 마리 가져다가 한 마리는 너희, 한 마리는 내 제단에 올려놓고 불붙이기를 해보자. 그래서 누가 참 신인지, 모두 보는 앞에서 결판을 지어보자.” 그렇게 국가적이기도 하고 신앙적이기도 하고 개인의 운명과 심지어 자존심, 정체성까지 온통 결부되어 있는 이 중요한 싸움을 하는 입장에서 왜 바싹 마른 나무가 아니라 물을 갖다 붓고 있나? 그것도 세 번이나, 단순히 엘리야의 뛰어난 믿음으로만이 설명하기에는 좀 아쉬운 부분이 있어서 제가 그것을 지나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이 본문을 읽으면서 제 시선이 불이 아니라 자꾸 물로 간다. 물 이야기로, 불붙은 이야기인데 제 시선을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물에 관한 것이다. 그렇게 사로잡힌 시선이 오늘 본문에 이곳에서 실마리를 찾았는데, 그것이 38절이다.
 
*열왕기상 18:38,
38 이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은지라.
-여러분, 여기에서 ‘물을 핥은지라’, 제가 이 본문에서 불이라는 주제 속에서 이 물에 자꾸 귀를 기울이다 보니까 이 표현이 저는 예사롭지 않았다. ‘물을 핥은지라’, 이 표현의 주어는 무엇인가? 물을 핥았는데 누가 핥았는가? 불, 여호와의 불이 핥았다고 38절에 되어있다. 그렇다면 여러분, 이 불은 화력이 대단한 것이다. 한 번에 물을 불이 태울 정도의 불이니까, 그러니까 불이 물을 일시에 태울 정도이니까, 오늘 이 표현은 엘리야로 이내내린 이 여호와의 불이 이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압도적, 그래서 번제물과 나무와 흙과 돌과 이런 것 태우고도 모자라서 그 주변의 물이 찰랑찰랑 넘치는 그 ‘물까지 다 태웠다.’ 라고 기록을 하고 있다. 그냥 ‘ 다 태웠다.’ 라고 하면 될 것을, 도랑의 물에 가서는 동사를 바꾸는 것이냐는 것이다. 그냥 다 태웠다고 하면 왜 동사가 아닌 38절을 다시 보자.
38 이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은지라.
-압도적인 물에 꽂혀서 일어난 일을 성경이 뭐라고 기록 하냐면, 뭐뭐뭐는 태우고 뭐는 핥았다. 라고 이렇게 표현한다. 물만 동사를 바꾸어 주었다. 저는 당시 성경의 기록을 전할 때, 요즘처럼 타이핑해서 프린트해서 쭈욱 나누어주는 그런 간편한 시대도 아니고, 종이도 귀했겠지만, 다 일일이 수기로 써서 전헌 그런 시대에 한 단어 틀리는 게 아주 의미 있는 일이 아니고서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저는 생각한다. 그렇다면 물에 있어서만큼은 ‘태우다’는 단어가 아니라 ‘핥다’라는 단어로 바꾸어준 분명한 이유, 나름의 이유, 분명한 어떤 의도들이 있었다고 여겨지는데, 그래서 제가 여기에 등장하는 ‘핥다’라는 단어를 성경에서 찾아보았는데, 그게 시편 72편 9절에 있다. 9절만이 아닌 8절부터 10절까지 보자.
 
*시편 72:8-10,
8 그가 바다에서부터 바다까지와 강에서부터 땅 끝까지 다스리리니.
9 광야에 사는 자는 그 앞에 굽히며 그의 원수들은 티끌을 핥을 것이며.
10 다시스와 섬의 왕들이 조공을 바치며 스바와 시바 왕들이 예물을 드리리로다.
-여러분, 이 9절에 ‘핥는다’는 표현이 등장하고 있는데, 티끌을 핥는다는 태도와 동작을 묘사하고 있다. 조금 이해를 돕자면 앞뒤로 싸고 있는 8절 10절을 전체적인 분위기, 뭐하는 분위기 인가를 살펴보면 이게 굴복하는 것을 머리를 조아리는 것을 묘사하고 있다. 즉 어떤 왕이 더 상위에 존재에게 더 높은 왕에게 조공을 바치면서 수그리는 모습을 표현해 주고 있는데, 이러한 태도중의 하나로, 그 앞에 엎드려 신발의 먼지나 핥는, 그 앞에서 핥는, 굉장히 엎드려 그냥 아주 비굴하게 구는 모습이다. 그런 완전한 굴복, 아주 완전한 패배를 그리고 있다. 따라서 오늘 갈멜산의 엘리야로 돌아와 보면 불이 붙었나, 안 붙었나, 여러분 그 유무만으로도 이미 승패를 가릴 수 있었다. 그래서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바알의 여러 선지자들을 이겨먹은 대 역전극이기도 하지만 그러나 불의 이야기만으로 읽지 말고 물의 이야기로도 한 번 보강해서 입체적으로 읽어보면, 그 불이 물을 핥음으로써 또 하나의 중요한 승부가 달려있다. 또 하나의 중요한 승부가 달려있다. 그 싸움에서 완벽하게 승리했다. 라는 것도 알려주고 있다. 어떤 싸움인가? 여호와와 바알의 싸움이다. 앞서 말씀드렸지만 ‘불붙어서 싸움은 끝난 것 아닌가?’ 그럴 것이다. 그것도 맞다. 그러나 이 불이 주변을 태우는 시각적으로도 압도적이었던 불이었던 것만큼 여호와의 이 불이, 이 승리의 이 하나님 되심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도 압도적인 이 하나님이 여기 담겨져 있다.
 
여러분, 하나님이 위로부터 불을 내리셔서 불이 붙는 것만이 아니라 무엇도 보여주었는가? 주변의 물을 핥았다는 것을 보여주신다. 왜? 이 당시가 사건이 벌어지는 이 당시가 딱 그런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어떤 상황이었냐면, 세상의 물이 누가 핥아 먹은 것처럼 바짝 마른 그런 가뭄이었다. 오늘 열왕기상 18장을 읽었다. 18장 1-2절을 보자.
 
*열왕기상 18:1-2,
1 많은 날이 지나고 제삼 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아합에게 보이라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
2 엘리야가 아합에게 보이려고 가니 그 때에 사마리아에 기근이 심하였더라.
-여러분 장면이 시작되게 되는 여러분, 이 갈멜산의 싸움이 벌어질 때가 그때의 상황이 어떠한가? 1절에 보면 비를 내려주셔야 한다는 그런 때이다. 2절에 표현을 빌리자면 기근(饑饉)이 심한 때였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5절에 보면, 여기는 제가 읽어보겠다.
 
*열왕기상 18:5,
5 아합이 오바댜에게 이르되 이 땅의 모든 물 근원과 모든 내로 가자 혹시 꼴을 얻으리라 그리하면 말과 노새를 살리리니 짐승을 다 잃지 않게 되리라 하고.
- 여러분 아합은 일국의 왕이다. 오바댜는 중요한 공무원이다. 그런데 일국의 왕과 아주 중요한 직책을 맡은 공무원이 무얼 찾아다니는가? 물을 찾아다니고 있다. 그런데 이 물을 찾는 이유가 물 곁에 풀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야 동물이 먹고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당시 곡식이 없는 이 기근의 시대는 물이 없기 때문이었고, 더 나아가 비가 내리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이야기 해주고 있는 것이다. 대지에 비가 내리지 않으니까 온 땅에 기근이 온 것이다. 그러니까 이런 상황이 열왕기상 18장 38절에서 여호와의 임재를 상징하는 이 불에 버무려져 묘사 되어 있는 것이다.
 
여러분, 당시 가뭄이 왔다면 세상에서 물을 제거 하신 분이 누구이신가? 하나님이시다. 그렇다면 세상에 다시 물을 공급하시는 분이 누구이신가? 하나님이시다. 왜 여호와의 불이 물을 핥았다고 하는 표현하는 것이 연결이 되는가? 왜 여호와께서 압도적인 이 불, 내려주시는 이 임재의 장면 속에서 이런 문학적 장치를 숨겨두었는지 링크가 되는가? 여러분 불을 내려주시는 장면으로도 압도된다. 불을 내려주시는 장면으로도 야! 하나님, 살아계시다, 박수칠 수가 있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보고 있는 것보다 더 압도적인 임재와 표식이 이 불의 사실에 담겨있었다는 것이다. 누가 이 땅의 물을 핥았겠느냐? “나다! 나 여호와이다! 나에게 와라, 엄한 데서 찾지 말고 나에게 와라.”너희들이 믿고 있는 그 비의 신, 폭풍의 신, 이 바알이 내 적수가 되지 않는다. 거기다가 기대고 거기다 말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 오늘 불 내리는 장면에서도 하나님 보여주고 계신다. 존재하지도 않지만, 바알이 실제 있다고 해도, 그 녀석은 내 신발에 먼지나 털어야 할 아주 미천한 존재에 불과하다. 비를 내리거나 폭풍우를 내릴 수 없는 주장하거나 관장할 수 없는 그런 미천한 존재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너희가 가뭄을 해결하기 위해서도 해야 할 일이 무엇이겠느냐고 하나님이 묻고 계시는 것이다. ‘번영과 평안을 위해서 바알을 실컷 쫓다가 세차게 놓은 너희들이다. 나 여호와가 유일한 살 길이다. 너희들의 깜깜한 무지와 칠흙 같은 어둠의 이 영안에 내가 오늘 이 불을 던져서 길을 내주려고 한다. 누구를 믿고, 누구를 따라야 하는지를 오늘 보여주고자 한다. 이제 이해하겠니?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을 태워버리는 이 압도적인 불길 속에서 물을 핥을 정도로 강력한 화력을 가진 이 압도적인 불길 속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모두, 이 제단을 둘러싼 다 지켜보고 있는 이 이스라엘 모두에게 사실은 압도적인 질문 공세를 펼치고 계시는 것이다. 여러분, 오늘 우리가 본문에서 진정 주목해 보아야 할 승부가 바로 이것이다. 불을 내리시면서 물의 신을 꺾으신 것, 진정 물을 다루는 주체는 바알이 아니라, 나 여호와임을 천명하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승리의 궁극적인 의미였다.
 
저는 개인적으로 엘리야가 거기까지 알았는지, 몰랐는지를 확신하지는 못하겠다. 개인적인 판단은 있지만 성경이 주체적으로 다루어주지는 않지만 함부로 이렇다, 저렇다 말씀드리기는 어렵다. 그걸 알고 물을 부었나, 그것을 모르겠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우리는 저와 여러분은 오늘 이 본문을 읽었고, 여기 담긴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도 지금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그냥 불붙이는 쇼 이벤트의 신이 아니라 거기 하나님의 압도적인 존재와 면모를 담아서 이야기해 주셨다는 것을 우리 이 시간 이 말씀을 통해서 충분히 전해 받았다는 것이다. 또 다른 시대, 또 다른 언어로 이러한 하나님의 면모를 깨닫고 고백했던 욥은 이렇게 말한다. 욥기 1장 21절인데 여러분, 화면을 보면서 함께 읽어보자.
 
*욥기 1:21,
21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여러분, 믿는가? 엘리야의 시대에 땅에 물을 주시는 이도 여호와이시고, 거두시는 이도 여호와이시다. 하지만 사람들은 땅에 물을 주는 이를 누구라고 말을 하는가? 하나님도 되지만 바알도 된다고 여겼다. 세상의 풍요와 번영을 가져다주는 것은 바알도 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바알을 따랐다. 이 많은 숫자가 따랐다. 그래서 하나님은 물을 핥는 동작을 통해서 ‘이 물을 내가 다 걷어간 것이다. 나에게 와야 산다. 내가 살려줄 수 있다. 나만이 너희들이 살 길이다.’ 천명하시고 그래서 이 문맥상 이 갈멜산 전투 뒤에 비 내리는 이야기가 등장하게 된다. 그러므로 불이 붙는 이 화끈한 이벤트가 일에 전부라는 생각에 속지 말아야 한다. 그 속에 담으시려는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우리가 경험하고 추구해야 될 사실 최고의 화력이기 때문이다. 여러분, 한국교회 섬김의 날을 앞두고 있다. 무려 오천 여명이 넘게 오늘 이야기 들으셨겠지만, 일찍 오신 분들은 약 오천 명 오백여명이 모이고 있고 교회 내부에 섬김이 들이 당일에 포함하면 교회에 6-7천여 명의 하나님의 가족들이 운집하게 될 것 같다. 그런데 이 압도적인 시간에 이 많이 모이는 이 화끈함에 속지 말고 그것으로 다 됐다라고 여기지 말고, 오늘 하나님이 그 불속에 담아주신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이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이 그런 섬김이 도도록 소망하고 기도해야 한다.
 
여러분, 압도적인 하나님의 일이 되기를 소망해야 할 것이다. 단순히 불붙이고 많이 모이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 시대에 필요한 답을 알려주시고, 그게 나라고 하나님이 등장해 주시고 임재 해 주시는 그러한 일을 사모하는 그러한 경험하는 복되고 값진 시간이 되시기를 기도해 주셔야 한다.
 
제자훈련으로 교회의 본질에 대해서 한국교회에 불을 붙였던 사랑의 교회이다. 하나님의 강력하고도 압도적인 임재를 통해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비욘드 코로나시대에, 한구교회의 감히, 감히 다시 한 번 답이 되고, 불이 되고, 통로가 되기를 기도해 주시면 한다. 이번 한국의 섬김의 날이 교회를 위축시키고 교회를 해하려는 어떤 세력들로부터 하나님이 압도적인 등자, 압도적인 임재, 한국교회 강력하게 던지시는 불이되기를 기도해 주길 바란다. 그런 의미에서 이 섬김의 날을 앞두고 우리가 해야할 두 가지를 이야기를 드리고자 한다.
 
첫째- 여호와께서 답이 되신다.라고 하는 이 믿음의 확보이다.
 
*열왕기상 18:37-38,
37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에게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
38 이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은지라.
-여러분 앞서 살펴본 대로 지금 이 시대는 물이 부족한 시대이다. 시간 상 또는 자세히 살피지는 않겠지만, 어디서 물 부족함을 가져왔나를 따져보겠지만, 그 정도로 궁금함이 생길 정도로 이 시대는 물이 참 귀했다. 그런데 37절에 나오는 엘리야의 호소를 보라. 그는 뭐라고 하는가? 응답해달고 여러분 간구하고 있다. 응답하옵소서, 응답하옵소서, 한다. 그리고 하나님이 어떻게 하시는가? 응답하신다. 그런데 그 방식이 무엇인가? 불이다. 그렇다. 불을 내려달라고 지금 기도하는 것이고 하나님은 그의 맡게 응답으로 불을 던져주신다. 그런데 여러분, 이때가 가뭄의 때라는 것을 한 번 기억해 보면, 이 불붙는 게 사실은 그렇게 의미는 없어 보인다. 왜냐면 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태복음에 보면 유명한 예수님의 질문이 나오는데 위 화면에 나오듯이 유명한 질문이 나온다.
 
*마태복음 7:9-11,
9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10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 그런 하나님, 바라는 것을 주시는 하나님, 이 좋으신 하나님, 한 번 기억해 보고, 마음에 담아두고 오늘 본문으로 다시 와서 이 화답을 한 번 생각해 보라. 이상하지 않는가? 지금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무언가? 이 당시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불인가? 물인가? 물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물인지 모르신가? 사람들이 필요한 것을 하나님이 모르시는가? 아니다. 물을 핥으시면서, 물이 왜 없어졌는지, 이게 궁극적인 문제이고 어떻게 답할지, 하나님은 파악하고 보여 주시고 계시기 때문에 모르시지 않는다. 제가 보여 드리는 것은 물을 응답으로 구하지 않고. 왜 그것을 하나님의 사인으로 구하지 않고 물이 얼마나 급한 문제인데 그 중요한 데는 관심이 없나? 이거다. 하나님은 아셨는데 엘리야는 모른가? 그건 아니다. 아까 아합과 오바댜가 물을 찾았다. 18장 6절에 각기 각기 찢어서 간다.
:
*열왕기상 18:5-6,
5 아합이 오바댜에게 이르되 이 땅의 모든 물 근원과 모든 내로 가자 혹시 꼴을 얻으리라 그리하면 말과 노새를 살리리니 짐승을 다 잃지 않게 되리라 하고.
6 두 사람이 두루 다닐 땅을 나누어 아합은 홀로 이 길로 가고 오바댜는 홀로 저 길로 가니라.
--여러분 앞서 살펴본 대로 지금 이 시대는 물이 부족한 시대이다. 시간 상 또는 자세히 살피지는 않겠지만, 어디서 물 부족함을 가져왔나를 따져보겠지만, 그 정도로 궁금함이 생길 정도로 이 시대는 물이 참 귀했다. 그런데 37절에 나오는 엘리야의 호소를 보라. 그는 뭐라고 하는가? 응답해달고 여러분 간구하고 있다. 응답하옵소서, 응답하옵소서, 한다. 그리고 하나님이 어떻게 하시는가? 응답하신다. 그런데 그 방식이 무엇인가? 불이다. 그렇다. 불을 내려달라고 지금 기도하는 것이고 하나님은 그의 맡게 응답으로 불을 던져주신다. 그런데 여러분, 이때가 가뭄의 때라는 것을 한 번 기억해 보면, 이 불붙는 게 사실은 그렇게 의미는 없어 보인다. 왜냐면 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태복음에 보면 유명한 예수님의 질문이 나오는데 위 화면에 나오듯이 유명한 질문이 나온다.
 
*마태복음 7:9-11,
9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10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 그런 하나님, 바라는 것을 주시는 하나님, 이 좋으신 하나님, 한 번 기억해 보고, 마음에 담아두고 오늘 본문으로 다시 와서 이 화답을 한 번 생각해 보라. 이상하지 않는가? 지금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무언가? 이 당시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불인가? 물인가? 물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물인지 모르신가? 사람들이 필요한 것을 하나님이 모르시는가? 아니다. 물을 핥으시면서, 물이 왜 없어졌는지, 이게 궁극적인 문제이고 어떻게 답할지, 하나님은 파악하고 보여 주시고 계시기 때문에 모르시지 않는다. 제가 보여 드리는 것은 물을 응답으로 구하지 않고. 왜 그것을 하나님의 사인으로 구하지 않고 물이 얼마나 급한 문제인데 그 중요한 데는 관심이 없나? 이거다. 하나님은 아셨는데 엘리야는 모른가? 그건 아니다. 아까 아합과 오바댜가 물을 찾았다. 18장 6절에 각기 각기 찢어서 간다.
:
*열왕기상 18:5-6,
5 아합이 오바댜에게 이르되 이 땅의 모든 물 근원과 모든 내로 가자 혹시 꼴을 얻으리라 그리하면 말과 노새를 살리리니 짐승을 다 잃지 않게 되리라 하고.
6 두 사람이 두루 다닐 땅을 나누어 아합은 홀로 이 길로 가고 오바댜는 홀로 저 길로 가니라.
-이길 저 길로 각자 간다. 그러고 나서 7절에 가서 이 오바댜가 엘리야를 만난다. 그래서 왜 뭐하다 왔는지 알 정도로 시대가 그 정도라면, 엘리야는 뭐가 문제이고, 무엇 때문에 사람들이 이렇게 곤란함과 무엇을 해결해 주어야 진짜 신으로써 각인되고 인식 될 수 있는가에 엘리야는 절대 모르지 않는다. 심지어 이 물 문제는 아까 아합은 이쪽 길로 가고 오바댜는 저쪽 길로 간다고 했듯이 아합은 여러분 세상 나쁜 사람이다. 사실 물을 안 찾았으면 좋겠다. 아주 바싹 마른 사람이 되어야 하고, 오바댜는 금방 가서 찾고, 또 찾았으면 좋겠다. 담임 목사님도 한 번 설명해 주셨지만 오바댜는 정말 이 종교적인 핍박 속에서도 믿는 이를 보호하면서 먹이기도 한 사람이라 이 사람이 찾았으면 좋겠다. 저는 여러분 정말 재미있다. 나쁜 사람이든 아주 죽어야 될 사람이든, 하나님이 칭찬도 받고 우리가 도와주고 싶은 사람이든 다 지금 궁극적으로 뭐가 필요한가? 물이 필요하다. 그런데 물이 이만큼, 이 사람이야 말고 보았다. 그 정도였다. 악인이고 의인이고 가릴 것 없이 다 물이 필요하고 물이 답인 시대이다. 물이 답이 시대였다. 그런데도 엘리야는 지금 불을 내려 달라고 하고 있고, 하나님은 거기에 응답을 하시더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 불의 강림이라는 것은 이런 불의 강림을 통한 하나님이 강림의 임재는 여러분, 오해 받을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불로 바알과의 싸움에서 존재적 가치를 딱 드러내시면서 싸우시며 완성하시는 것은 좋은데, 그게 답은 아니지 않는가? 왜? 사람들은 무슨 상관이야? 나는 지금 물이 필요한데?~~
 
여러분, 이 지점에서 앞서 말씀드린 우리가 하나님이 답이시라는 이 믿음을 확보하는데 있어서 균열(龜裂)할 지점, 흔들릴 지점이 발생한다. 불은 압도적이다. 불은 화려하고 강력하다. 그런데 지켜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따지고 보면 별거 없다. 불이 붙으면 뭐하는가? 지금 필요한 것은 물인데,,, 그거해서 뭐하냐? 지금 중요한 것은 이것인데, 난 지금 이것 때문에 힘든데, 이 생각이 뿐이다. 지금 믿음을 확보하자고 여러분에게 요청 드리고 있다. ‘한국교회 섬기는 날’에, 우리가 여기 모이는 일로 뭐 대단한 일이 일어나겠냐는 그런 불신을 우리가 제거해야 되고 우리가 믿음이 이것이 우리에게 답이 될 것이라는 믿음을 확보해야 한다. 하나님이 이 날을 통해서 이것을 불 삼아서 한국교회와 목회자들에게 기가 막힌 답을 주시리라 믿는 것, 이것을 필두로 해서 한국교회 회복과 부흥을 위한 그 무엇, 교회의 생명력을 주시고 그 어떤 문제들로부터 해갈을 하나님이 선언해 주실 것이다. 그걸 간절히 원하는 것, 이 한국 섬김을 날을 통해서 이런 선한 영향력이 일어나기를, 이야기가 시작되기를 기대하는 것, 이를 위해 기도하는 것, 일어날 일을 정말 믿음으로 확보하는 것, 내 믿음으로 확보하는 것, 그것이 남겨진 시간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여러분, 매일 강단 기도회가 계속되고 있다. 담임 목사님께서 ‘9.26 섬김의 날’의 기도제목도 내놓으시지만, 꼭 끝에 가면 여러분 개인의 기도를 간절히 하라고 당부하신다. 여러분, 여기 기도제목 없으신 분 있는가? 다 있을 것이다. 저도 있다. 그래서 그 말 떨어지기가 무섭게 제 기도를 했다. 내용은 비밀이다. 알고 싶으시면 개인적으로 연락 주길 바란다. 왜? 개인적인 기도를 이 시간에 하라고 하시는가? 궁금했다. 제가 이 설교를 준비하다가 그 깊은 뜻을 깨달았다. 불이 붙어야 된다. 응답하옵소서!!! 응답하옵소서! 그렇게 간구해야 되지 않는가? 그런데 이것이 그냥 멀뚱히 저 산위에 불붙는 나랑 동떨어진 따로국밥이 되면 안 되는 것이다. 한국교회의 부흥이 필요하다고 하면, 그래서 이렇게 섬기고 우리가 모이고 애쓰고 한다면, 무형교회인 저와 여러분의 심령에도, 환경에도, 여건에도 회복과 부흥이 와야 된다는 것이다. 엘리야가 ‘불로 응답하여 주소서!!’라고 했지만 그래서 그 불이 떨어지는 것으로 끝나는 것 같겠지만 그 불 위에 무엇이 왔는가? 그토록 필요한 물이 쏟아졌다는 것이다. 모두에게 쏟아졌다. 이번 ‘9.26’ 이후에 ‘9.26’을 계기로 우리 자신의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우리 모두가 은혜와 소망의 응답이 이른 비와 늦은 비를 흠뻑 맞았다고 하는 그런 고백이 터져 나오기를 원한다. 여호와께서 여러 모양으로 각양각색으로 우리 모두에게 오늘 이 시간 답이 되실 거라는 그 믿음을 여러분, 확보하길 바란다. 이 믿음으로 기도의 행렬에도 뜨겁게 좀 동참해 주고 교회 역사뿐만이 아니라, 개인적인 신앙과 인생의 역사적인 변곡점(變曲點)을 경험하는 모두가 되기를 소망한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의 두 번째가 있다.
 
 
두 번째- 물 붓기를 아까워하지 말라.
 
*열왕기상 18:38,
38 이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은지라.
-물이 가문 시대였다. 그럴 때 물을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이나 부었고, 그 물은 지금 어떻게 되었는가? 지금 한 방울도 남겨지지 않고 다 타서 없어졌다. 여러분, 등짝 스매싱(smashing)‘이라고 아는가? 잘못해서 등짝을 엄마에게 짝 맞는, 오늘도 때리고 나오신 분들도 있을 것이다. 회개하라. 시원하게 맞는 것, 저 같은 경우는 때를 곳도 많고, 의외로 타격감도 좋아서 때리고 싶어볼만한 최고의 상대이지만, 때리기 좋다고 막 때리는 것은 아니다. 뭐해야 등짝 스매싱을 맞는가? 잘못한 일일 있고, 맞을 만한 일을 저질러야 맞는 것이다. 여러분, 여기를 잘 보라. 물이 가문 시대에 물 붓고 이러고 있으면 등짝 스매싱이 아닌가? 저만 그렇게 생각하는가? 게다가 그 물은 어떻게 되는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여러분 이 물을 그 당시 오늘 우리 소중한 그 무엇이라고 생각해 보라. 물질이든, 건강이든, 뭐 소중한 것, 다 생각해 보라. 뭐든지 생각해 보라. 여러분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그 재화, 그 무엇이라고 생각해보라. 제가 말씀드렸듯이 아합이든 오바댜든 이것 찾느라고 난리이다. 남들 시키면 될 것을 자기들이 찾고 있다. 없어서 구하려고 찾아 헤 매이는 그런 시대이다. 이것이 없어서, 그런데 그 재화가 지금 낭비되고 있는 것 같다. 그냥 불 붙여도 되지 않은가? 그냥 붙여도 된다. 그런데 가뜩이나 부족한 물을 갖다가 붓고 있으니 그걸 다 태워먹고 있으니 얼마나, 얼마나 낭비 같은가?
 
여러분, 예수님의 가나안 혼인잔치에 물 떠온 하인이 있다면, 여기는 물 붓는 사람이다. 신약에 물 떠온 하인의 기쁨이 있다면 오늘 여기 물 붓는 사람이 알게 될 기쁨이 있다는 것이다. 그게 뭐냐면 마중물이 되는 것이다. 여러분, 물을 부을 때는 잘 모른다. 붓고 나서 불이 붙어서 물이 타서 없어질 때도 잘 모른다. 그러나 이후에 비가 올 때는 안다. 이게 마중물이 되었다는 것이다. 저도 알고 있다. 여러 모양으로 극심한 가뭄의 때가 우리의 생활을 조여오고 있고, 환경을 조여오고 있다는 것을 잘 안다. 저도 피부로 느낀다. 돈 안 쓰는 게 유행인 시대이다. 젊은이들은 하나도 돈을 안 쓰는 첼린지에 재미 삼아 오히려 즐겁게 받아들이면서 도전하고 있는 요즘이다. 재화와 물질의 사용이 되어서 두 번 세 번 곱씹고, 합리적인 소비를 하고 지출하는 그런 시대이다. 돈만 그러하겠는가? 나의 돈과 시간에 대해서는 더 칼 같이 고민할 시기이다. 그런 와중에 남모르는 오천 명을 초대한다고 한다. 거기에 나의 물질을 드리고 나의 시간을 드리고 섬김을 드린다? 이 가뭄이 시대에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오늘 붓고 나면 증발해 버리는 것처럼 여겨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여러분 그러나 과연 그럴까? 하나님이 물을 핥으시면서 자기 배만 채우는 탐욕의 신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이미 확인했다. 길을 줄 테니까, 내가 보여 줄 테니까, 이리로 오라고 살려주시려고 지금 이야기 하시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문맥 아래 이 불붙이시는 장면에서 물은 증발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 손에 붙들려서 온 나라를 적시는 비가 되어 내릴 것이라는 이 사실도 여러분은 믿는가? 그래서 저는 소망한다. 간절히 저는 기도한다. “주님, 성도들의 이 나눔과 헌신, 각양의 섬김, 이 사랑의 교회의 수고 가운데 반드시 역사하여 주옵소서!” 한 번 타버리고 마는 소비가 아니라, 하나님 붙들고 사용하시는 거룩한 낭비되게 하여주옵소서! 드린 자들이 상상치 못했던 그런 생명의 강수로 되돌려 받고 되 맞게 하여 주옵소서!“ 마치 초대교회처럼 물건을 통용하고 아낌없이 나누고자 하는 성도들의 그 손길에 하나님의 마음 부어주시고 폭발적인 부흥을 일으켜 주신 것처럼, 우리의 이 나눔과 섬김과 헌신을 통해서 정말 하나님이 회복과 부흥을 이루어 가시길, 참석한 목회자뿐만이 아니라, 우리나라를, 이 땅을, 내 가정을, 내 자녀를, 하나님 살려주옵소서. 할수있거든이 무슨 말이라고 하셨으니까,
“하나님, 할 수 있거든, 이 일을 통해서 이 땅에 가람을 해결하여 주시옵소서!” 사랑하는 영 가족 여러분, 물 붓는 자의 기쁨을 소망하고 있는가? 하나님이 나의 작은 것을 생명의 조각구름 삼으셔서 이 땅을 위한 생명비로 바꾸어 주시기를 기대하면서 기다리고 있는가? 나의 작은 것을 내려놓고 잠잠히 기도하는 내게 하나님의 뜨거운 임재, 불같은 임재를 보여주실 뿐 아니라, 그 불 뒤에 있을, 그 불 뒤에 오게 될 은혜의 비를 이름으로 소망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소망한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세상은 허탄한 신화에 잠식되어 오래되었다. 세상을 주관하는 것이 하나님이 아니다. 우리 인생의 길이고 답이 예수님이 아니다. 예수에게 있지 않다. 오히려 이 시대의 변모된 바알에게 가장 된 여러 각양각색의 바알에게 있다. 그렇게 심취하라. 그렇게 심취한지 오래이다. 심지어 교회조차 코로나를 겪으면서 바알인지, 하나님인지 여러 혼란 중에 지금 노출되어 있다. 이 때 누가 당당히 나서서 “하나님, 여기 임재 하여 주옵소서!” 요청할 것이다. “여기 불을 내려 주사 무너진 제단을 일으켜 주사 가람을 해결을 하여 주옵소서!” 누가 외치며 손을 들 것인가? 저는 사랑의 교회에 맡기신 일이고 무형의 교회인 여러분들, 저와 여러분들의 이 사랑의 교회에 내어주신 일이라고 믿는다. 부흥에 불붙이시는 이 하나님 앞에 물 타고 있고, 물 아까워하고 있는 내 안에 바알이 있다면, 이 시간 기도함으로 다 날려버리고 혹여나, 각자의 인생에 메말라 가기 시작한 어떤 샘물이 있다면, 그것 때문에 고민하는 일이라면 오늘 이 자리에서 기도로 쏟고, 반드시 여호와의 손에 목을 축이시고 돌아가길 바란다. 아울러 한국교회 9.26 섬김의 날이 화려한 불 쇼로 그치지 않도록 여러분이 기도해 주어야 한다. 화려한 쇼라고 여겨지지 않도록 그런 쇼라고 여기는 불신으로 여기는 오해의 세력들을 제거해 달라고 여러분 기도하라. 하나님이 달라고 하시면 내 소유와 시간을 부어서 이 땅을 향한 주님의 몸 된 너무나 영광스런 교회와 목회자들을 향한 부흥의 마중물로 하나님께서 사용하시길 기도해야 한다. 우리를 사용하시고, 너무 열악한 곳에서 예배드리고 있을 교회들을 살려주시며 눈물로 강대상 앞에서 씨름하고 앉아 있을 그 목회자를 살려 주시길 기도하자. 큰 싸움을 앞두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이 싸움을 싸울 방식을 알려주시길 기도하며, 기꺼이 내놓을 믿음도 주시며, 환경과 여건도 주장하여 주시며, 이 싸움의 방식을 가르쳐 주시며 사모하며 매어 달리는 자가 되어 하나님이 필요한 불을 내려주실 줄 믿는다. 우리 모두를 사로잡아 주실 줄 원한다.
 
♣요약
우리의 믿음과 불을 붙여주시고 메말라 가는 이 시대에 누가 앞서나가 이 싸움을 싸울 것인가에 나를 부르시고 이 교회를 부르신 것처럼, 이 때, 우리를 불러주셨으니 그 부르심에 반응하고, 응답하여 주심을 믿고 하나님의 그 불을 체험하고 초청하는 바로 기도 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의 것을 원하시면 기꺼이 드리고, 나의 생명을 원하시면, 기꺼이 드리겠다는 마음으로 아버지 하나님이 가시는 길에 작은 헌신과 섬김을 보태고 나와 성정이 같았던 여호와의 엘리야의 기도도 이루어졌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와 개인과 한국교회를 역사하시길 소원하오니 간절한 기도를 응답하여 주시고, 각양각색의 기도의 제목을 응답하여 주시며, 여호와의 불로 응답하시고 이른 비와 늦은 비로 생명의 강수에 벅차 오르는 가슴으로 살아가는 삶이 되어야 한다. 한국교회를 섬기는 9.26일을 기억하여서 우리가 믿음의 보고, 감사의 보고가 되며, 물 붓는 사람만이 아는 기쁨을 누리고, 부흥의 마중물로 사용되기를 소망해야 한다. 어떠한 여건에서도 임재 하셔서 모든 과정을 도우시길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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