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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저녁기도회(주후 2021년 8월 18일) 제목: "여호와께로 낯을 향하여" 말씀: 역대하 20:1-13 찬양인도: 이원준 부목사님 설교자: 임상규 부목사님 --------------------------------------------- *역대 하 20:1~13, 1 그 후에 모압 자손과 암몬 자손들이 마온 사람들과 함께 와서 여호사밧을 치고자 한지라. 2 어떤 사람이 와서 여호사밧에게 전하여 이르되 큰 무리가 바다 저쪽 아람에서 왕을 치러 오는데 이제 하사손다말 곧 엔게디에 있나이다 하니. 3 여호사밧이 두려워하여 여호와께로 낯을 향하여 간구하고 온 유다 백성에게 금식하라 공포하매. 4 유다 사람이 여호와께 도우심을 구하려 하여 유다 모든 성읍에서 모여와서 여호와께 간구하더라. 5 여호사밧이 여호와의 전 새 뜰 앞에서 유다와 예루살렘의 회중 가운데 서서. 6 이르되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하늘에서 하나님이 아니시니이까 이방 사람들의 모든 나라를 다스리지 아니하시나이까 주의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능히 주와 맞설 사람이 없나이다. 7 우리 하나님이시여 전에 이 땅 주민을 주의 백성 이스라엘 앞에서 쫓아내시고 그 땅을 주께서 사랑하시는 아브라함의 자손에게 영원히 주지 아니하셨나이까. 8 그들이 이 땅에 살면서 주의 이름을 위하여 한 성소를 주를 위해 건축하고 이르기를. 9 만일 재앙이나 난리나 견책이나 전염병이나 기근이 우리에게 임하면 주의 이름이 이 성전에 있으니 우리가 이 성전 앞과 주 앞에 서서 이 환난 가운데에서 주께 부르짖은즉 들으시고 구원하시리라 하였나이다. 10 옛적에 이스라엘이 애굽 땅에서 나올 때에 암몬 자손과 모압 자손과 세일 산 사람들을 침노하기를 주께서 용납하지 아니하시므로 이에 돌이켜 그들을 떠나고 멸하지 아니하였거늘. 11 이제 그들이 우리에게 갚는 것을 보옵소서 그들이 와서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주의 기업에서 우리를 쫓아내고자 하나이다. 12 우리 하나님이여 그들을 징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하고. 13 유다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아내와 자녀와 어린이와 더불어 여호와 앞에 섰더라. ----------------------------------------- ▶오늘 수요저녁기도회 예배 가운데 모두 기쁨과 은혜가 충만하길 바란다. -지난 8월 11일 헤드라인을 장식한 하나의 기사의 제목이 있었다. 그 기사 제목이 무엇이냐면 이스라엘 신규확진 반 년 만에 최다, 영국 전문가 ‘집단 면역 불가능’이란 제목의 기사였다. 델타변이를 비롯한 각종 변이 바이러스들이 점점 커지자 세계 안에서 코로나가 점점 확산되는 것을 기사로 담은 것이었다. 그런데 그 기사 내용 가운데 이런 기사 내용이 있었다. 바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개발을 주도했던 옥스퍼드대학의 엔드류 폴라드교수가 이렇게 말했다. ‘이제 더 이상 집단면역이 불가능 할 것으로 예측 된다’라고 말한 것이다. 코로나가 온 지 어느덧 1년 8개월이 지나고 있다. 조금 시간이 지나면 ‘좀 나아지겠지’ 라는 막연한 기대로 있었다. 백신이 나오면 모든 문제들이 ‘잠잠해지겠지’ 라는 커다란 기대도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저는 이 기사 내용을 보자 한 순간에 모든 기대가 물거품이 되어버린 것 같다. 기독교 변증가인 존 레독스는 그의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우리로 고통과 고난의 문제를 직면하게 한다’라고 말한다. 이 코로나로부터 직면하게 된 것은 무엇이냐면 바로 우리가 이 고통과 고난이라는 것이 우리와 동떨어지고 상관없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직면해야 되는 것이기에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고 더욱 아프게 하고 두렵게 한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이런 두려움에 찾아올 때가 있다. ‘내가 언제 생명을 잃지 않게 될까?’ 내가 살아온 패턴이고 내가 살아오던 삶의 모습이 있는데 그것이 무너지지 않을까? ‘나의 직장, 나의 사업이 이대로 존속할 수 있을까?’ 라는 그런 두려움들이 나의 마음 가운데 엄습해 온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두려움이 이 세상 사람들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우리들에게도 동일하게 찾아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시점에서 우리가 점검해 보아야 할 것이 있다. 바로 ‘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코로나시기를 어떻게 지내고 있고 이 재단의 때에 나는 믿음을 이 상활을 바라보고 그리고 믿음으로 반응하면서 살아가고 있는지와 진실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그것으로 인해 온전함을 사모하고 제자 된 삶을 지금 이 시간에도 이 순간에도 이 현장 속에서도 살아가고 있는가?’이다. 이 질문에 우리가 대답해 볼 필요가 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본문을 보자. 유다의 네 번째 왕인 여호사밧을 마주한다. 여호사밧은 남유다왕국에서 보석과 같은 인물이었다. 성경은 여호사밧을 향하여 묘사하기를 ‘하나님께서 동행하는 사람, 하나님께서 아끼는 사람, 여호와께서 함께하시는 사람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역대 하 17:3, 3 여호와께서 여호사밧과 함께 하셨으니 이는 그가 그의 조상 다윗의 처음 길로 행하여 바알들에게 구하지 아니하고 -여호와께서 여호사밧에게 함께 하셨다라고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동행하는 사람, 하나님께서 함께 하는 사람, 하나님의 임재가 있고,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고, 하나님의 능력이 있는 사람’이 바로 여호사밧이었다. 그런데 이 여호사밧은 성경이 묘사하기를 바로 다윗이 걸어갔던 ‘그 처음 길로 행하였던 사람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여호사밧은 삶의 중심에는 하나님이 계셨다. 삶의 문제가 다가오면 가장 먼저 하나님께 찾아갔다. 하나님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하죠?‘ 저는 도무지 이 문제를 풀 수 없는데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를 주님 앞에 간구했다. 자기가 다스리는 나라에 어려움이 찾아온다. 그 어려움이 찾아오면 정치, 권력, 경제로서 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먼저 하나님께 나아왔다. ’하나님 제가 도무지 풀 수 없는 이 문제가 있습니다. 어떻게 풀어야 합니까?’ 라고 주님 앞에 간구했던 사람이 바로 여호사밧이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이 여호사밧이 자기 자신만 믿음을 지켰던 것이 아니다. 그가 왕이 되고 행하였던 놀라운 개혁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유다 땅에 있었던 산당들과 아세라의 목상들을 모두다 없애버렸다. 국가적으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믿는다는 것을 선언한 것이다. 또한 방백들을 불러 모으고, 레위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방백사람들과 레위사람들이여,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알고 지혜가 있으니 유다 성읍 곳곳에 돌아다니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는 자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이 하나님의 말씀, 율법을 가르치십시오.”라고 말한다. 유다 전역이 하나님 말씀을 배우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놀라운 부흥의 손길을 마련했던 것도 바로 여호사밧이었다. 어때요? 여호사밧이 멋있나요? 멋지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여호사밧에게 놀라운 은혜를 부어주셨다. 여호사밧이 통치하는 유다를 견고하게 하셨다. 또한 유다 근처에 사는 나라들이 여호사밧을 두려워하게 했다. 하나님이 보호하시는 특별한 왕,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특별한 남유다 왕국이 되었다. 여기까지 마무리 하면 참 좋겠지만, 우리 모두가 꿈꾸는 삶, 우리 모두가 꿈꾸는 나라, 바로 이러한 나라가 아니겠는가? 그런데 예기치 못한 전쟁, 예기치 못한 재난이 앞으로 찾아온다. *역대 하 20:1-2절, 1 그 후에 모압 자손과 암몬 자손들이 마온 사람들과 함께 와서 여호사밧을 치고자 한지라. 2 어떤 사람이 와서 여호사밧에게 전하여 이르되 큰 무리가 바다 저쪽 아람에서 왕을 치러 오는데 이제 하사손다말 곧 엔게디에 있나이다 하니. -저 멀리 한 명의 전령이 급히 찾아온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왕이시여! 큰일 났습니다. 저 유다의 견고한 성읍들이 하나둘씩 모압과 암몬의 연합군에게 다 무너져버렸습니다. 지금 모압과 암몬의 연합군은 엔게디 앞까지 쳐들어 왔습니다.” 라고 보고했다. 우리가 지도에서 보고 있는 이 엔게디는 예루살렘과 근접해 있는 지역이다. 예루살렘 턱 밑까지 이방인의 적군이 진을 치고 쳐들어온 것이다. 이제 조금만 지체하면 예루살렘이 함락될 뿐 아니라, 모든 전쟁에서 패배하고 모든 백성들의 목숨이 사라질 그 위험 앞에 놓여져 있었던 것이다. *역대 하 20:3절에, 3 여호사밧이 두려워하여 여호와께로 낯을 향하여 간구하고 온 유다 백성에게 금식하라 공포하매. -하나님을 경외하고 의지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던 여호사밧도 그의 삶 속에 예기치 않는 고난과 전쟁이 찾아오자 그도 두려움을 느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어떠한가? 우리도 예상치 못한 어려움과 고난이 찾아온다. 우리 모두가 다 두려움을 느낄 것이다. *역대 하 20:12절, 2 우리 하나님이여 그들을 징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하고. -한 가지를 더 표현하고 있다. 두려움과 자신에게 다가온 현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다. 그가 고백한다. 갑작스럽게 재난과 고난이 다가오면 그것을 대처할 능력이 사실 우리는 없다. 어려움이 찾아오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어떻게 이 문제를 풀어야 될지를 못해서 전전긍긍을 하는 모습이 우리의 실상이다. 여호사밧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사랑했던 왕이지만 갑자기 불어닥친 전쟁의 위협 앞에서 두려움을 느끼고 어떻게 할지를 몰라 마비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코로나도 우리에게 갑자기 다가왔다. 조금 있으면 지나칠 것이라고 여겼는데 이렇게 오랫동안 우리의 삶에 엄습해 있고, 우리의 삶을 꽉 가두어 두는 이 어려움 가운데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이다. 우리도 때때로 두려움을 느끼고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 놓여있다. 그런데 여호사밧은 여기에 멈추지 않는다. 두려움을 느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그는 두려움을 갖지 않고 하나님을 향해 믿음의 방향을 설정한다. 하나님을 향해 믿음의 발걸음을 내 딛는다. .1. 여호사밧은 여호와께 낯을 향한다. *역대 하 20:3절에, 3 여호사밧이 두려워하여 여호와께로 낯을 향하여 간구하고 온 유다 백성에게 금식하라 공포하매. -여호사밧은 두려웠지만 그 두려움을 잠시 내려놓고 가장 먼저 여호와께로 낯을 향한다. 낯을 향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얼굴을 구한다는 것이다. 다른 그 무엇을 바라보지 않기로 결정한 것이다. “하나님 저는 오직 주님만을 바라봅니다.”라고 고백하며 나아가는 것이다. ※1075년에 스페인의 톨레드 출신의 유대 철학자 예후다할렙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유대문학의 거장이다. 이 사람이 ‘하나님의 얼굴을 찾는다’는 의미를 유대 문학적 관점으로 이렇게 표현했다. ‘내 임금의 얼굴을 뵙는 것이 나의 유일한 갈망이다. 나는 그 분만을 두려워한다. 그 분만을 공경한다.“라고 말했다. 여호와의 얼굴을 구한다. 낯을 향한다.는 것은 ’오직 하나 주님, 유일한 갈망은 바로 하나님이 한 분 뿐입니다. 하나님 한분만을 두려워하고 하나님 한분만을 공경한다.‘고 하는 것이 담겨있다. 여호사밧은 이 마음을 가지고 바로 여호와께로 낯을 향한다. 모세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의 존전 앞에서 주님 앞에 여호와를 갈망했던 것처럼, 다윗이 광야의 한 복판에서 어디로 가야할지, 누구를 의지해야 할지 모르는 그 상황에서,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간절히 찾았던 것처럼 여호사밧은 유일한 갈망, 유일한 두려움, 공경의 대상은 바로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며 낯을 여호와께 향했던 것이다. 2. 여호사밧은 하나님께 간구한다. -간구한다는 것은 믿음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간구라는 것은 관계가 형성되지 않고는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만약에 성도님들이 걸어가는데 전혀 모르는 다가와 “저기요, 사람이 와서 얼굴이 잘 생겼네요. 저에게 십 만원 주세요.”하면 돈을 주는가? 아니면 욕이나 흘끗 쳐다보는가? 마스크로 다 대답을 했다. 전혀 모르는 사람이 찾아온다면 우리는 그 사람에게 어떤 대구도 없을 것이다. ‘간구한다’ 라는 것은 그 대상과 신뢰와 관계가 형성되어 있는 것이다. 여호사밧은 ‘하나님께서 나를 기도를 들어주시고, 나의 상황을 알고 계신다.’ ‘하나님께서 지금도 나를 돌보아 주신다’ 라는 이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 간구하였던 것이다. 3. 여호사밧은 온 유다에게 금식을 공포한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금식을 해본 적이 있는가? 저는 금식을 좋아한다. 일 년에 금식을 하려고 노력한다. 왜냐하면 금식을 하면 할수록 저의 영혼이 맑아지는 것 같다. 금식을 하면 하나님만을 더 의지하는 그런 습관이 형성되는 것 같다. 금식은 첫 번째는 자기 자신을 부인하는 것이다. ‘하나님, 나의 힘, 세상의 어떤 힘, 그것을 의지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겠습니다.’ 라는 고백이 담겨있다. 두 번째는 우리가 떡으로만 사는 존재가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사는 존재라는 것을 고백하는 신앙의 모습이다. 여호사밧은 여호와의 낯을 향하고 간구한다. 금식을 공포한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 앞에 나와 본격적으로 기도하기 시작한다. 여호와의 전의 새 뜰 앞에 모든 회중들을 불러 모은다. 이것은 굉장히 용기 있는 행위였다. 여호와의 전뜰 앞에 불러 모은 것은 모든 적군이 쳐들어오면 모두가 한 순간에 죽을 수 있다는 것의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다. 그런데 여호사밧은 백성들을 불러 모으고 여호와 앞에 기도를 한다. 오늘 이 기도의 담겨있는 내용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분명한 메시지이다. 푯대를 붙잡고 나아가는 우리의 삶의 징표가 될 줄 믿는다. I. 여호사밧의 기도는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는 기도. *역대 하 20:6절에, 6 이르되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하늘에서 하나님이 아니시니이까 이방 사람들의 모든 나라를 다스리지 아니하시나이까 주의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능히 주와 맞설 사람이 없나이다. -여호사밧의 간절한 부르짖음은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기억하는 것이었다. 여호사밧은 당장의 시급한 문제를 놓고 기도하지 않는다. 자신의 상황을 하나님께 아뢰지도 않는다. 가장 먼저 “하나님,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알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분명하기를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다. 제일 먼저 그는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여, 라고 하나님의 성호를 부른다. 제가 부르짖는 하나님은 우리가 믿는 그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시다. 바로 우리의 근원이 되시고, 우리의 인도자가 되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영원한 통치자가 되심을 선언하고 있다. 그런데 하나님을 그렇게 부른 이후에 하나님 앞에 나가 질문을 한다. 두 가지를 질문한다. -첫 번째 질문은 “하나님, 하나님은 하늘을 창조하시고 온 만물의 지은 창조주가 아니신지요? 하나님은 모든 나라를 다스리지 아니하십니까?”라고 질문한다. 이 질문 속에 담겨있는 놀라운 의미가 있다. 강력한 대답이 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만이 창조주이시고, 온 만물을 조성하셨을 뿐 아니라 지금도 다스리시고 그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다.’는 그 고백이 담겨있는 것이다. -두 번째 질문은 “하나님은 모든 나라를 다스리지 아니하십니까?” 하나님께서는 모든 권세와 능력이 누구에게 있다는 것인가? 바로 하나님께 있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호사밧은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분명히 알았다. 우리의 삶의 하나님의 역사와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은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알 때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결단코 나의 지식과 나의 경험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소원한다. ※제임스 패커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결여된 지식은 하나님의 엄위하심에 대한 지식이다. 이것은 가벼운 기독교, 가벼운 그리스도인들을 양산해 낸다.” -J.I.패커- 이 땅에 수많은 지식들이 놓여져 있다. 그런데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이 얼마나 엄위하신 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지, 하나님이 얼마나 경외받기 합당하신지를 놓치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여호사밧은 전쟁의 한 바탕 속에서도 하나님의 존재를 기억하고 인정한다. 이 자리에 모인 우리 모두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더욱 깊어져가길 소원한다. 그리하여 우리의 삶의 현장 가운데 하나님의 위엄,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영광 앞에 진실로 우리의 무릎을 꿇고 그분을 높이고 그분을 찬양하는 이 온전한 고백이 우리 안에 회복되어야 한다. II. 여호사밧의 기도는 하나님의 역사를 기억하는 기도. *역대 하 20:7절에, 7 우리 하나님이시여 전에 이 땅 주민을 주의 백성 이스라엘 앞에서 쫓아내시고 그 땅을 주께서 사랑하시는 아브라함의 자손에게 영원히 주지 아니하셨나이까. -여호사밧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이스라엘의 구원의 역사를 온전히 인식하고 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그 놀라운 구원의 역사가 분명하게 역사적으로 성취되고 이루어졌음을 기억하고 하나님께 기도한다. 그의 기도는 허상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놀라운 구원의 실상을, 역사를 가지고 와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이다. 마치 자식이 아빠 앞에 이렇게 기도하는 것 같다. “아빠 이것이 사실이죠?” “그래, 이건 사실이야!” 변함없는 사실이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것처럼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천성케 하셨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애굽의 노예에서 건져내셨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광야에서 먹이시고 입히시고 살리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게 하셨다. 하나님은 단 한 번도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적도 없으시고, 미루신 적도 없으시다. 여호사밧은 이 하나님의 역사를 굳게 붙잡고 기도한다. 성도여러분, 기도는 나의 염원, 나의 소원, 나의 뜻을 하나님께 관철시키는 것이 아니다. 기도는 하나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행하셨던 그 역사, 하나님 부족한 나이지만, 너무나 연약한 나이지만 나의 삶 가운데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행하신 그 은혜의 역사를 저는 기억하고 붙잡고 신뢰하는 주를 바라보아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역사를 기억하는 기도의 내용인 것이다. III. 여호사밧은 하나님의 언약을 굳게 잡는 기도. *역대 하 20:8-9절에, 8 그들이 이 땅에 살면서 주의 이름을 위하여 한 성소를 주를 위해 건축하고 이르기를. 9 만일 재앙이나 난리나 견책이나 전염병이나 기근이 우리에게 임하면 주의 이름이 이 성전에 있으니 우리가 이 성전 앞과 주 앞에 서서 이 환난 가운데에서 주께 부르짖은즉 들으시고 구원하시리라 하였나이다. -여호사밧은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솔로몬에게 허락하신 그 언약을 붙잡고 나아간다. 역대하 7장에 보면 성전 낙성식이 거행된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의 그 겸손한 마음,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하시는 것을 보시고 너무 기뻐했다. 그리고 그에게 이렇게 언약의 말씀을 전하신다. *역대 하 7:13-14절에, 13 혹 내가 하늘을 닫고 비를 내리지 아니하거나 혹 메뚜기들에게 토산을 먹게 하거나 혹 전염병이 내 백성 가운데에 유행하게 할 때에. 14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언약의 핵심은 재앙이 아니다. 메뚜기가 아니다. 전염병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고자 하는 중심의 내용이 무엇이냐면 하나님의 백성이 겸비하여 하나님의 백성이 여호와를 찾으면 내가 죄를 사하고 내가 그 땅을 고치시겠다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호사밧은 이 언약을 붙잡고 하나님께 기도한다. 나의 의로, 나의 형편, 나의 상황을 붙잡는 것이 아니라 영원토록 불변하시는 하나님의 언약을 붙잡고 나아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다. “하나님, 나의 백성이 내 이름을 일컫는 백성이 하나님 겸비하오니, 저의 죄악을 하나님 앞에 있는 모습 그대로 고백합니. 그리고 저는 하나님의 얼굴을 구합니다.” 라고 구한다. 여호사밧은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알았다. 하나님께서 과거에 행하셨던 역사를 분명하게 알았다. 하나님의 신실한 언약, 약속이 무엇인지도 분명히 알았다. 위대한 성인인 ※존 번연 자신의 책[경외함의 진수]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태도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영혼에 역사한다는 것을 올바르게 깨달을 때 비로소 생기게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태도는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여호사밧은 하나님을 경외한다. 그가 왜 낯을 구하였는가? 말씀이 그의 영혼에 역사하였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호와께 낯을 향하는 것은 주님만을 의지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더 이상 두려움에 휩싸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그의 마음과 생각을 주장하기 때문이다. 여호사밧이 하나님 앞에 기도를 드리는 그 시간, 이미 판가름이 난 것이다. 코로나로 인하여 신음하는 소리가 이곳저곳에서 들린다. 사업하는 성도님들도 정말 힘드실 것이다. 정말 힘들고 어렵다는 이야기를 너무도 많이 듣게 된다.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우리 대학 청년들도 힘들다. 어디로 가야할지, 도대체 알지 못한다. 이제 수능도 얼마 남지 않은 입시생들도 입시 때문에 불안하고 백신을 맞았는데 몸은 더 힘들어지고, 우리는 또 어떠한가? 언제 코로나에 걸릴지 모른다는 이 두려운 마음이 우리에게 엄습해 있지 않는가? 이 어려운 가운데 이러한 재난 가운데 우리들에게 다시 한 번 지금은 여호와께로 낯을 향하여 주님께 무릎을 꿇어야 할 때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질문하고 계신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진실로 나 여호와를 알고 있니? 사랑하는 아들아, 내가 행한 그 역사를 너는 기억하고 믿고 있니? 사랑하는 자매들이여, 너에게 허락한 나의 언약을 믿고 있니? 만약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역사를 기억한다면,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언약을 붙잡고 있노라면 우리들이 취해야 할 길은 바로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여호와의 낯을 구하는 길일 것이다. 성경은 반복적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살아갈 길을 우리 가운데 보여주신다. 우리가 살아갈 길은 세상의 권력, 세상의 힘, 세상의 방식, 세상의 방법, 그것을 의지하는 삶이 아니다. 우리는 지금도 철저히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길로 살아가는 자들인 것이다. 코로나의 상황, 이것보다 더한 상황이 놓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상황이 올지라도 오직 여호와께로 낯을 향하여 기도하는 자들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한다. 믿는가? 우리가 하나님의 역사를 기억한다. 믿는가? 우리는 하나님의 언약을 붙잡고 있다. 아멘,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이 코로나를 잠잠케 하여 주실 것이다. 우리가 여호와의 언약을 구할 때, 이 나라와 열방과 온 세계를 회복하여 주실 것이다. 이 믿음을 붙잡고 여호와께 낯을 향하여 가까이 나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망한다. ♣요약 우리의 삶에 예기치 못하게 찾아오는 고통과 고난의 문제 앞에서 하나님만 바라보고 담대하게 믿음과 온전한 성도로 굳게 서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날마다 더해지고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언약을 붙잡고 살아가서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여호와께 낯을 향하여 납작 엎드려 이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고 오직 주님만을 사랑하여 나의 삶이 복음의 원천이 되어야 한다. 오직 주님께 낯을 향하여 거룩한 삶을 살아내야 한다. 지금 우리 삶에 갑작스럽게 몰아닥친 재난으로 인해 우리의 마음이 눌리고 두려움이 엄습해 있는 가운데 있다하더라도 이 상황 속에서도 우리에게 허락하신 믿음을 온전하게 하여 여호와께로 낯을 향하여 간절히 기도하고,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은 이 땅을 고치시고 회복해 주시고 새롭게 해주심을 경험할 수 있게 응답해 주실 줄 믿는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거룩한 길을 걸어가야 한다. -여호사밧은 외국 연합군의 침공 소식을 듣고 여호와께 간구하고 백성들에게 금식하라고 명하였다. 그리고는 여호와의 전 뜰에서 백성 가운데 서서 기도했다. 여호사밧은 한편으로는 하나님께 개인적으로 간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백성을 대표해서 기도함으로써, 두려움에 떨고 있는 백성들에게 용기를 심어주었다. 교회의 지도자는 위기를 만날 때 무엇보다 먼저 기도해야 한다. 또한 백성들을 위해 기도해 주며 그들도 기도에 동참케 하여 위기를 극복하도록 해야 한다. 여호사밧은 하나님을 하늘에 계신 분으로서 모든 나라를 다스리시며 이 땅의 거민을 쫓아내시고 환난 가운데에서 부르짖으면 들으시고 구원하시는 분으로 고백했다. 우리도 이렇게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응답받을 수 있다. 과거에 이스라엘은 모압과 암몬을 멸할 기회가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용납 치 아니하심으로 그들을 살려 주었는데, 그들은 배은망덕하게도 과거의 은혜를 잊고 이스라엘을 침공했다. 본성이 악한 인간들은 이런 배은망덕한 짓을 곧잘 저지르곤 한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며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 낯을 향하여 주님께 온전히 맡겨야 한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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