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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비전새벽예배(주후 2021년 10월 23일) 제목: “에바다의 역사를 주옵소서” 말씀: 마가복음 7:31-37 기도: 김태권 안수 집사님(목양 8팀 교구장) 말씀읽기: 김진영 형제(청년 D국), 신예현(대학 5부) 찬양인도: 강중현(찬양 사역자) 사회: 김도훈 부목사님 설교자: 조성환 부목사님(SaGa 예배아카데미학장) ------------------------------------ (마가복음 7:31-37), 31 예수께서 다시 두로 지방에서 나와 시돈을 지나고 데가볼리 지방을 통과하여 갈릴리 호수에 이르시매. 32 사람들이 귀 먹고 말 더듬는 자를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안수하여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33 예수께서 그 사람을 따로 데리고 무리를 떠나사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고 침을 뱉어 그의 혀에 손을 대시며. 34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에바다 하시니 이는 열리라는 뜻이라. 35 그의 귀가 열리고 혀가 맺힌 것이 곧 풀려 말이 분명하여졌더라. 36 예수께서 그들에게 경고하사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되 경고하실수록 그들이 더욱 널리 전파하니. 37 사람들이 심히 놀라 이르되 그가 모든 것을 잘하였도다 못 듣는 사람도 듣게 하고 말 못하는 사람도 말하게 한다 하니라. --------------------------------- ▶오늘 아침 강중현 찬양사역을 축복한다. 오늘 아침에도 하나님께서 이 찬양을 기쁘시게 받으신 줄 믿는다. 토요비전새벽기도회로 이 금 같은 시간에 얼마든지 다른 사람들처럼 집에서 더 자고 더 쉴 수도 있는데도 주님의 말씀을 사모하여 안아주심의 본당에 나와서 예배하는 성도님들, 그리고 온라인을 통해 예배로 참여한 모든 성도님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한다. 저도 여러분이 사랑스럽고 감사한데,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기쁘시겠는가! 를 생각해 본다. 저는 마가복음을 참 좋아한다. 누가 누구를 낳고, 그런 긴 부분도 없고, 곧장 예수님을 맞닥뜨린 인생들이 쉴 새 없이 쏟아진다. 그리고 그 스토리마다 주옥같은 진리의 말씀들이 마구 드러나기 때문에 제가 마가복음을 좋아한다. 예수님을 만난 세례요한으로부터 시작해서 자기들의 생계를 뒤로하고 예수님을 쫓아 나서던 제자들, 모든 병들이 치유되고 걷지 못한 자가 걷기 시작하므로 예언 된 메시아 증거들이 마구 쏟아지는 그런 귀한 말씀이다. 오늘 읽은 본문도 예수님을 맞닥뜨린 한 사람의 기록이 나온다. 갈릴리 해변에 오신 예수님께 사람들이 한 사람을 데리고 나오신다. 마가복음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마가복음 7:32, 32 사람들이 귀 먹고 말 더듬는 자를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안수하여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귀 먹고 어눌한 자라고 이야기 한다. 참 희한하다. 어눌하고 귀먹은 자도 아니고, 귀 먹고 어눌한 자, 그 다음에 33절에 보면, *마가복음 7:33, 33 예수께서 그 사람을 따로 데리고 무리를 떠나 사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고 침을 뱉어 그의 혀에 손을 대시며. -예수님께서 그 사람을 치유하시는데 32절에 예수님께 나온 그 사람의 대한 표현과 33절에 나오는 어떤 일관성이 있는 것을 우리는 볼 수 있다. 그 단어들의 순서를 통해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말씀이 있기 때문이다. 귀 먹고 어눌한 부분을 우리가 이렇게 좀 묵상을 해보면 음악과 연관된 어떤 단어하나가 떠오른다. 음~~치, 이다. 음치이다. 음치(音癡)가 혹시 무엇인지 아시는가? 저는 처음에 이 단어를 들었을 때, 음을 다스리는 사람을 음치라고 하는 줄 알았더니 그것이 아닌 영어로는 ‘Tone death’이다. 중국말로는 ‘语气(Yǔqì)이다. 오늘 읽은 본문에는 음치라는 단어가 사실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귀 먹고 어눌한 자, 음치와의 관계 속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있다. 혹시라도 오해하지 말라. 제가 음악을 전공했기 때문에 음치하신 분들을 제가 비하 하려고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음치를 조금 더 전문적인 용어로 표현하면, 우리가 소리를 듣되, 소리의 크고 작음은 듣기는 듣는데, 음감, 음의 감각, 음의 낮고 높은 것에 대한 감지가 잘 안 된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게 안 되니까 그것을 흉내 내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이 음치이다. 음치는 여러 가지 요인에서 생긴다고 한다. 그리고 어렸을 때부터 음악에 노출되지 않은 삶을 오랫동안 사신 분들이 음치인 경우가 높고, 그 다음에 혹은 어렸을 때 심리적으로 상당히 내성적인 분들이 자기가 노래를 했다가 어떤 트라우마를 경험하거나 충격을 경험하면서 ‘나는 안 되는구나!’ 라고 생각하면서 그것이 그 충격으로 인해서 후천적으로 음치가 되는 경우가 되는 분들도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본인이 음치라는 것을 아는 것도 굉장한 일이다. 웃자고 한 것은 아니다. 노래방을 간다든지,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해야 할 경우가 있을 때, 그분들의 심리적인 압박이 참 클 것이다. 제 친구들 중에 음치가 한 명이 있었는데 그 친구는 자신이 음치라는 것을 몰랐다. 그래서 자유 했고, 어떤 장르의 음악도 소화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어떤 때는 그 친구가 참 부러웠다. 32절에 그 사람의 상황을 이렇게 말씀하신다. *마가복음 7:32, 32 사람들이 귀 먹고 말 더듬는 자를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안수하여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구체적으로 귀 먹고 어눌한 자로 표현된 순서를 보면 그가 말이 어눌한 이유는 귀가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어린아이가 말을 배우는 것도 귀로 먼저 듣고 그다음에 혀와 입으로 무엇을 표현하므로 말을 배우는 것이다. 그리고 여러분이 잘 생각해보면, 스스로 생각하는 과정을 잘 기억해보면 우리는 생각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나는 생각을 통해서 나의 생각을 듣고 있는 것이다. 여러분의 얼굴을 보니, 저만 그렇게 사는 것 같다. 요사이 어떤 음성을 듣고 있는가? 신명기를 보면, *신명기 11:13-15, 13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하는 내 명령을 너희가 만일 청종하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여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섬기면. 14 여호와께서 너희의 땅에 이른 비,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리니 너희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을 것이요. 15 또 가축을 위하여 들에 풀이 나게 하시리니 네가 먹고 배부를 것이라. -청종(聽從)이다. 이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소리가 있다. 때로는 뉴스의 사건의 소식을 들을 때, 제가 이제 우리나라에 들어온 지 거의 일 년이 되간다. 뉴스를 들으면 아마 미국에서도 그런 일들이 많이 있었겠지만, 제가 잘 못들을 것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뉴스를 접할 때마다 겁이 난다. 너무나 잔인한 소식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32절 초반부에 보면 이 귀 먹고 어눌한 자를 주님께 데리고 나간 사람들이 있었다. 이 부분을 묵상하니까 우리 교회 다락방이 떠오른다. 우리 교회 순장님들이 참 자랑스럽다. 순장으로 섬기기 위해 매주 화요일에 나와 반나절을 주님께 드리며 훈련받고, 또 다락방 순원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순원들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여기고, 본인이 모든 일에 본을 보이고, 기쁨과 슬픔을 같이하며 사시는 분들이라 참으로 귀한 분들이다. 이 세상에서 많은 사람들이 돈과 명예와 성공을 추구하는데, 우리 순장님들은 오히려 자신에게 주시는 모든 것(리소스) 들을 영혼 구원이라는 지상 최대의 명령을 위해서 오히려 투자하고 헌신하는 작은 예수님이시다. 바로 그분들이 히브리서 10장에 나오는 대로 *히브리서 10:24-25, 24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주님께서 귀 먹고 어눌한 자를 고쳐 주시되 어떻게 고쳐 주시는 것인지를 우리가 좀 집중할 필요가 있다. 33절에 보면, *마가복음 7:33, 33 예수께서 그 사람을 따로 데리고 무리를 떠나사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고 침을 뱉어 그의 혀에 손을 대시며. -따로 데리고, 참 주님은 인격적이시다. 우리를 고치실 때, 따로 데리고,,, 사람들로부터 떨어져서 따로, 이 세상의 그 어떤 신이 이렇게 인격적이신가? 아마도 본인이 귀 먹고 어눌하기에 사람들의 눈들을 보느라고 굉장히 긴장했던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일 수 있다. 그런데 주님이 그 사람을 고칠 때, 무엇부터 고치시냐면, 귀부터 고치신다. 33-34절을 보면, *마가복음 7:33-34, 33 예수께서 그 사람을 따로 데리고 무리를 떠나사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고 침을 뱉어 그의 혀에 손을 대시며. -귀부터 고치시길 원하신다. 왜냐하면 우리의 귀는 너무나도 진리가 아닌 것들을 듣고 산다. 우리가 때때로 우리에 대해서 부정적인 말을 하는 것을 좋아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열 받는다. 무척 받는다. 34절에 보면, 귀 먹고 어눌한 자를 향하여 주님이 가지고 계신 마음이 또 보인다. 34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에바다 하시니 이는 열리라는 뜻이라. -야고보서 3장에 이런 말씀이 있다. ‘말에 실수가 없는 자가 온전한 자’, 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여러분, 실제로 우리의 인생은 어떠한가? 인생을 살다보면 우리가 다시 담을 수 없는 우리의 후회스런 말들과 망언들이 우리의 삶에 있었다. 감사하게도 우리는 주님 앞에서 내가 귀 먹고 어눌한 자라고 고백하며 주님 앞에 나아갈 때, 주님의 탄식이 우리를 만져주신다. -참 이 연약한 저의 인생에도 그런 시간들이 있었다. 그래서 기도한다. 이미 상황은 벌어졌다. ‘오 주님, 저의 연약함과 실수로 벌어진 이 상황이 제발 꿈이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기도했던 적이 여러 번 있었다. 그 정도로 후회한 적이 우리 인생에 왜 없겠는가? 오늘 이 아침에 다시금 주님 앞에 예배자로 서기 위해 몸부림치는 여러분과 저의 삶 위에 주님의 탄식이 우리의 귀를 먼저 만져 주시길 간절하게 소원한다. *마가복음 7:35, 35 그의 귀가 열리고 혀가 맺힌 것이 곧 풀려 말이 분명하여졌더라. -귀가 열리고 희한한 일들이 생기는데, 우리가 알게 된다. 영적인 귀가 열릴 때, 즉 하나님의 진리가 우리의 귀가 열리면 말이 분명해진다고 말씀하신다. 귀가 열리면, 혀가 풀리게 되어 있다. 우리의 영적인 귀가 열리면, 혀가 풀리게 되어 있다. 그래서 잠언 4;20-24절을 보자. *잠언 4:20-24, 20 내 아들아 내 말에 주의하며 내가 말하는 것에 네 귀를 기울이라. 21 그것을 네 눈에서 떠나게 하지 말며 네 마음속에 지키라. 22 그것은 얻는 자에게 생명이 되며 그의 온 육체의 건강이 됨이니라. 23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24 구부러진 말을 네 입에서 버리며 비뚤어진 말을 네 입술에서 멀리 하라. -귀가 열리면 영적인 혀가 풀어지는 역사가 일어난다. 이 말씀을 이제 준비하게 되었냐면, 저는 미국에 있을 때도 35년 동안 찬양대를 지휘했다. 유명한 곡들도 했고, 그렇지 않는 곡들도 했다. 많은 곡들을 연주했는데, 하나님께서 찬양대원들의 하나님의 궁극적인 하나님의 목표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본다. 헨델의 메시아, 하이든의 천지창조, 구사프 말러의 부활, 다 해보았다. 그런데 그것이 목표가 아니다. 특별히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들의 하나님의 목표는 무엇이냐면, 우리의 혀가 성령님께 온전히 붙들리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찬양대만이 아니라 예배자로 불러주신 우리 모두를 향하신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은 예수 믿고 세례를 받은 모든 자들을 다 불러주셨다. 그리고 우리가 어디를 가든지 성령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순종하기를 원하신다. 그런데 현실은 무엇인가? 너무나 연약하고 실수가 많은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러나 마지막 호흡까지 예배자로 설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계속해서 우리의 삶에 우리의 영적인 귀를 계속해서 열어주시고 그 결과로 우리의 혀가 하나님 앞에 풀려지는 그러한 역사가 이루어지게 된다. *시편 51:15, 15 주여 내 입술을 열어 주소서 내 입이 주를 찬송하여 전파 하리이다. *사도행전 1:16, 16 형제들아 성령이 다윗의 입을 통하여 예수 잡는 자들의 길잡이가 된 유다를 가리켜 미리 말씀하신 성경이 응하였으니 마땅하도다. -통하여, 어떤 번역에는 ‘다윗의 입을 의지하여’, ‘다윗의 입을 빙자하여’, 급기야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입을 빌려 사용하시는 기막힌 역사(役事)가 이루어진다. 하나님의 말씀에 합한 자, 다윗의 입술을 빌리시는 그런 놀라운 역사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귀 먹고 어눌한 자가 주님 앞에 나아올 때, 예배할 때, 주님 앞에 나온다는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 앞에 예배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럴 때에 우리의 영적인 청력이 회복되어지고 다시금 일어서게 되고, 이런 은혜가 우리가 주님 앞에 예배를 드릴 때마다 계속해서 우리 가운데 우리를 새롭게 하신다. *로마서 12:1, 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는 것, 이것은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우리의 삶 가운데 일어나게 된다. 오늘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제 마음속에 떠오르는 찬양이 있었다. 아마 오래된 찬양이어서 여러분들이 들어보실 수 있을 것이다. ♬열어주소셔!!~~~내 귀를 열어주소서....~~~ -------------------------------- ♬-This Is The Time- -This is the time When true worshipers will worship These are the days When my Father's ways will be known to men -This is the hour When the spirit's power will move again As we worship You in spirit and in truth Lord we worship You in spirit and in truth Lord we worship You in spirit and in truth Chorus: Holy, Holy, Holy is Your name Worthy, worthy, let all the earth proclaim Mighty, mighty, there is no God like You And we worship You in spirit and in truth~♪ --------------------------------------- ♣요약 주님의 음성을 분별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음을 고백하고 회개하며, 우리 자신의 음성과 주님의 음성이 아닌 다른 것을 우리가 듣고 그것을 따라가지 말고, 우리는 교회만이 아니라 가정에서, 일터에서, 하나님께서 불러주신 그곳에서, 참된 예배자로 서야한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셨던 다윗의 장막, 주님을 찬양하는 그 다윗의 예배가 우리 가운데 회복되어 우리가 다락방 안에서 진리를 선포하고 그 진리위에 거룩하신 성령님이 능력과 힘을 주셔서 서로를 참된 영 가족으로 변화되어서 주님의 기쁜 자녀로 살아야 하며 주님 앞에 삶을 드리며 모두가 무릎 꿇고 기도의 입을 열었을 때, 우리의 입을 통해 주의 일을 신실하게 행할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 주 예수께서는 한 장소에 오랫동안 머무셨던 적이 거의 없었다. 그가 가나안 여인의 딸을 치료해 주셨을 때 그는 그곳에서 해야 할 일을 다 했으므로 갈릴리 호수로 다시 돌아가셨다. 그러나 그는 갈릴리 호수로 곧장 가지 않고 데가볼리 지경을 통과하여 돌아가셨는데 이곳은 대부분 요단강과 접해 있었다. 이제 우리는 이 본문에서 그리스도가 병을 고쳐 주시는 이야기를 대하게 되는데 이 내용은 다른 복음서 기자들이 기록하지 않은 내용이다. 그것은 곧 귀먹고 어눌한 자에 관한 이야기다. 사람들이 그리스도에게 귀먹은 자를 데리고 왔는데 그는 말까지 더듬었다. 그는 전혀 대화를 나눌 수 없었기 때문에 대화를 통해 얻는 기쁨과 유익을 상실한 채 살아왔다. 그리고 그는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을 듣는 일이나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일에 전혀 만족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므로 우리의 청각을 보호해 주셔서 특히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해주신 것과 우리에게 말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셔서 특히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도록 해주신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하는 기회를 갖도록 하자. 이 가련한 사람을 그리스도에게 데리고 온 그들은 그가 안수하여 주시기를 간구했다. 그들은 그리스도에게 그를 치료해 주도록 간구한 것이 아니고 안수하여 주시기를 간구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그의 처지를 살피셔서 기뻐하시는 대로 그에게 능력을 나타내시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보통 그리스도는 기적을 행하실 때 공개적으로 나타내셨는데 이 경우에는 은밀히 행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를 본받아 그리스도 외에는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선을 행하도록 하자. 첫째로 주님은 자신의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으셨다. 둘째로 주님은 그의 손가락에 침을 뱉아 그의 혀에 손을 대셨으며 이렇게 해서 그의 혀 맺힌 것을 풀어 주셨다. 그러나 이런 일련의 행위들은 그를 고칠 수 있는 근거가 전혀 될 수 없고 단지 그의 신앙과 그를 데려온 사람들의 신앙을 격려해 주려는 표적에 불과했다. 이런 동작을 통해 그가 뜻했던 것은 그의 병 고침이 하나님의 권능에 의한 것임을 나타내려는 것이다. 그는 또한 이 결과로 들을 수는 없어도 볼 수 있는 그 병자에게 구원을 위해 하늘을 바라보도록 지시했다. 그것은 그가 기적을 행하는 데 어떤 어려움을 발견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다. 그는 이렇게 해서 인생들의 비참한 모습에 대한 연민의 정을 나타냈으며 몸소 그들의 허약함에 감동되어 고통으로 번민하는 사람에 대한 동정심을 표현했다. 이는 열리라는 뜻이다. 열리라고 한 말씀은 귀와 입에 모두 적용이 된다. "귀가 열리고 입술이 열려서 그가 자유로이 듣고 말하게 하라"는 뜻이며 그 결과는 응답되었다. 그리하여 그의 귀가 열리고 혀의 맺힌 것이 곧 풀려 말이 분명해졌다. 처음으로 듣고 말할 수 있는 순간부터 자기와 아주 가까이 계시는 거룩하신 그리스도와 대화를 나눈 그 사람은 가장 행복한 사람이 아닐 수 없다. 이제 이 병 고침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나타낸다. 첫째로 그것은 그리스도가 메시야이심을 증거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권세에 대해 '귀머거리의 귀가 열릴 것이며 벙어리의 혀는 노래하리니'라고 예언되었기 때문이다. 둘째로 그것은 사람들의 마음에 미치는 복음의 효력에 대한 실례가 된다. 불쌍한 죄인들에 대한 복음의 위대한 명령과 그리스도의 은혜는 에바다 곧 열리라는 것이다. 그는 마음을 열어주시고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영접하도록 귀를 열어주시며 기도와 찬양을 드리도록 입을 열어주신다. 그가 '저에게 경계하사 아무에게라도 이르지 말라'(36절)고 하신 것은 그의 겸손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미덕을 밝히거나 적어도 남들이 그 미덕을 밝혀주기를 바랄 것이다. 우리는 선을 행하는 일에 기뻐해야 하지만 그 선을 알리는 일을 기뻐해선 안 된다. 그리스도께서 이 일이 알려지도록 하기 전에 그들은 열심을 내어 이 일을 알렸다. 그러나 그들은 솔직하고 진지한 마음으로 알렸기 때문에 그들의 행동은 불순종의 행동이라기보다는 경솔한 행동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 일을 알린 사람들이나 들은 사람들은 모두 심히 놀라게 되었다. 이 일이 모든 사람의 입에 오르내려 사람들은 그가 잘 하였도다. 라는 판단을 내리게 되었다. 그들은 그리스도가 아무런 악도 행치 않았을 뿐 아니라 많은 선을 행했으며 아무 대가없이 무료로 선한 일을 잘 하였다고 증거 하려 했을 것이다. 그는 귀머거리가 듣고 벙어리가 말하게 해주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그 일을 잘 하셨기 때문에 그를 헐뜯으려는 사람들은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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