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래그타임은 말이 없지만…

1987년부터 유행한 래그타임은 훗날 재즈의 원류가 되기도 한다. 소설을 읽기 전에 음악 포털에서 래그타임을 검색해보았다. 내용이 없다. 지금이라는 시간과 인터넷이라는 공간에서 래그타임을 찾긴 쉽지 않았다. 검색창에 보이는 표면적 정보로는 그 음악의 구체적 성질은 물론이고, 단순한 감각조차 일깨우기 어려웠다. 동영상을 찾는다. 새하얀 소매에서 뻗어 나온 시커먼 두 손이 하얗고 검은 건반 위를 뛰어다닌다. 버퍼링이 일어나고, 음악이 멈춘다. 래그타임은 분명히 음악이라고 했지만, 나는 음악 없이 책장을 펼치기로 한다. 때는 니그로의 현란한 피아노 연주가 공기중에 흩뿌려지던, 1902년. 그곳은 미국, 뉴욕 주 뉴로셸, 브로드뷰 애비뉴.

1900년, 고집 센 청교도 노인처럼 미국은 자신의 속내를 금방 드러내지 않았다. 실제 인물이라고 믿기엔 너무나 터무니없는 인간들이 터무니없는 짓을 자연스럽게 해냈다. 그것을 우리는 ‘진보 시대’라고 부른다. 그 기간 동안 인류는 두 차례 세계대전을 겪었고, 특정 인종에 대한 대대적이고도 과학적인 학살이 벌어졌으며, 핵무기가 만들어졌다. 나는 책을 되도록 천천히 읽어야 했다. 그곳에 섞여 있는 인간의 냄새가 독서를 방해했기 때문이다. 진보하는 인간에게는 살 타는 냄새가 난다. 코를 벌렁거리느라 많은 시간을 보냈다. 연기가 내 쪽으로만 왔다. 환기되지 않는 독서의 시작.

1620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아메리카 땅을 밟은 청교도 이민자들과, 그 후로 오랫동안 배에 개나 닭처럼 실려 아메리카 땅에 들어온 흑인들, 대기근을 피해서 대서양을 건넌 유럽 이민자들이 미국에서 몸을 섞고 부비고 있었다. 몸과 몸이 닿는 마찰에 살이 타는 냄새가 났다. 급기야 그들은 도시 한가운데서 총격전을 벌이거나, 탈옥을 감행하고, 폭탄 테러를 벌인다. 몸과 몸이 부딪히고 죽음과 탄생이 교차하는 순간, 뉴욕에는 지하철이 완공되었고 고층 빌딩은 제 높이를 하늘에 가깝게 했다. 진보의 시대에는 진보 시대의 방식이 있다. 그것은 누군가의 죽음과 죽음으로 인한 성공으로 완성된다.

1996년, 내 꿈은 미국인이 되는 것이었다. 미국에서 태어나기만 했다면 단어를 못 외운 죄로 영어선생에게 매를 맞거나 하진 않았을 것이다. 마이클 조던은 돌아왔고(I’m back) 마이클 잭슨은 세계 자체였다(We are the world).

시트콤 「LA아리랑」에 나오는 가족이 누구보다 부러웠다. 까까머리를 하고 팔목이 짧은 교복을 입고서 살 타는 냄새는커녕 모두 같은 표정과 피부색을 한 자그마한 반도를 저주했다. NBA 선수 카드를 그러모으고, R&B 흑인 창법을 흉내 냈다. 떠나고 싶을수록 시간과 공간은 교복 소매 끝에 바락바락 달라붙었다. 영어선생의 손은 매웠다. 그가 화를 낼 때는 내장이 타는 고소한 내가 났다.

1998년, 나는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박경리의 『토지』를 미친놈처럼 읽어댔다. 『래그타임』을 그 시기에 읽은 것만 같은 느낌은 엉뚱한 환각일 것이다. 콜하우스가 JP모건의 도서관 앞에서 장렬한 죽음을 택하는 모습에서 나는 길상이가 죽음으로 그려내는 관음탱화를 떠올렸다. 어리석은 연상이다. 이민자와 그들의 아이는 목조 셋방에 모여 살았고, 살인 직전의 노동 환경에 놓여 일을 했으며, 파업을 벌이기도 했다. 파업은 처참한 진압으로 끝이 났고 좋은 차를 끌고 다니는 흑인은 도둑으로 간주되었다. 고등학생이던 나는 무릎 사이에 책을 두고 몰래 책장을 넘기다가 걸리면 니그로가 되어 맞았다. 아일랜드 이민자가 된 듯 배고팠다. 100년이라는 시간이 책장과 매질 사이로 미친놈처럼 지나간다.

1917년 독일은 무제한 잠수함 작전으로 적들의 상선을 까부신다. 탈출의 명수 후디니가 만났던 동유럽의 왕세자가 젊은 사내의 총탄에 죽었다. 전쟁은 걷잡을 수 없이 덩치를 불렸다. 이민자는 우연한 기회에 부자가 되고, 독실한 공산주의자는 냉담한 신자처럼 신념을 버린다. 형편없이 처박힌 포드자동차의 직전 모습처럼 세계는 가속 페달을 밟았다. 발목의 주인은 미국이었을지도 모른다. 발목을 이루고 있는 세포는 삶과 죽음으로 분열하고 사랑과 증오로 번식을 거듭했다. 후에 미국의 역사는 세계의 역사가 되었다. 2001년 대학생이던 나는 반미를 외치는 선배를 따라 뙤약볕 아래를 잘도 뛰어다녔다. 훗날 내가 들었던 깃발이 역사가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지만, 깃발은 선배가 좋아하던 여자 후배의 방석으로 쓰이고 며칠 뒤 사라졌다.

2012년 여름은 화가 난 사람의 입김이 되어 우리의 몸을 빙 둘렀다. 아버지는 마지막 탐험을 떠났다. U보트의 어뢰 공격을 받아 숨진 미국인처럼, 같은 시간 TV쇼와 래그타임과 뮤지컬을 보고 있던 사람처럼, 전철을 타고 지각을 하고 살이 찌는 당신처럼 아버지 또한 어디선가 역사가 되고 있을 것이다. 우리 살아온 시간은 생과 사라는 씨실과 날실로 엮인 털옷이며 믿을 수 없이 촘촘하고 놀랍도록 두텁다. 갑자기 거대한 손이 소매 바깥으로 뻗어 나온다. 피아노를 두드린다. 래그타임의 시대가 끝났다. 책장을 덮는다. 아이돌이 부르는 현란한 노래가 들린다. 지금은 무슨 시대인가. 세계와 음악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는다. 그저 박자에 맞춰 영원히….

서효인 시인

-----------------------------------------------------------------

약자를 제물로 성장했던  '걸레'같은 시대

♣‘래그타임’줄거리

E. L. 닥터로는 오늘날 미국 문단에서 비평가들의 찬사와 대중적인 인기를 동시에 누리고 있는 작가다. 사회와 정치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전통적인 소설의 한계를 인식하여 다양한 스타일 실험을 추구해 노벨문학상 후보로 주목받고 있다. 『래그타임』은 ‘미국 역사의 냉철한 기록자’로 평가되는 닥터로의 대표작으로 1975년 출간 첫해 20만부 이상 판매되는 큰 성공을 거두고 이후 영화와 뮤지컬로 제작되어 지금까지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작품이다. 20세기의 여명부터 1차세계대전 직전까지를 다룬 새로운 형식의 역사소설로 해리 후디니, 옘마 골드만, 에벌린 네즈빗, 스탠퍼드 화이트, J. P. 모건과 헨리 포드, 프로이트와 융 등 실존인물을 허구적 인물과 사건에 엮어 20세기 초 미국 사회 전 분야에서 이루어진 변혁의 순간을 조명했다.

이 작품의 제목으로 쓰인 ‘래그타임’은 재즈의 전신이자 스콧 조플린이 완성한 피아노 음악을 뜻한다. 왼손으로는 규칙적인 리듬을, 오른손으로는 빠르고 힘찬 당김음을 연주하는 방식으로, 닥터로는 래그타임의 선율을 통해 누군가는 여전히 19세기적 가치관으로 관성적 삶을 살고 또 누군가는 20세기의 새로운 변혁의 흐름을 수용하거나 변혁을 이루는, 다양한 삶의 모습을 은유했다. 더불어 여성, 이민자, 흑인, 노동자 등의 약자를 성장의 동력으로 취했던 ‘걸레(rag)’ 같은 ‘시대(time)’의 어두운 이면을 고발하기도 한다. 이 작품은 ‘미국 소설 최고의 마지막 문장 100선’은 물론 타임 및 모던라이브러리가 선정한 ‘20세기 100대 영문학’에 꼽힌다.

원제:Ragtime

저자:E. L. Doctorow(1931~ )

발표:1975년

분야:영미문학 한글번역본

제목:래그타임

옮긴이:최용준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095(2012년)


 

 

728x90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