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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가 되기 전에 그는 …

소설가가 되기 전에 ‘그’는 코끼리를 총으로 쏘아 죽인 적이 있다.

예나 지금이나 소설가들이란 소설가가 되기 전에 ‘이상한 짓’을 꽤나 많이 해본 치들로 알려져 있다. (물론 되고 나서도 마찬가지, 나만 해도 실은……) 범위와 양상이 하도 다양해서 그 이상한 짓을 한마디로 규정하기란 불가능하다. (결코 이상하지 않은 짓도 훗날 결과적으로 이상한 짓이 되는 경우가 허다하니까.) 아무튼 소설가들은 괴이하고 수상쩍고 유별나고 생뚱맞은 경력을 비밀스럽게 간직하고 있기 마련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그것은 소설가의 밑천이다. 때문에 이상한 짓은 짐짓 장려되기도 한다. 자신이 경험한 이상한 짓을 곰곰이 되새기고 질서를 부여하고 의미를 찾는 과정 자체가 바로 창작이라 할 수 있다. (반추나 성찰 없이 이상한 짓의 장려를 자기합리화의 수단으로 삼아 많은 사람들이 소설가가 아닌 그냥 ‘이상한 사람’이 되고 마는 안타까운 현실!)


‘그’로 돌아가자. 그는 코끼리를 총으로 쏴 죽였다. 분명 넘치도록 이상한 짓을 한 것이다. 어디에서도 들어본 적 없는 독특하고 기묘한 경력이다. (다른 소설가들의 각종 일탈과 스캔들이 살짝 평범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는 바로 조지 오웰(1903~1950), 자신이 코끼리를 쏴 죽인 전후 사정을 글로 남겼다(‘코끼리를 쏘다’-1936). 20대 초반의 5년간, 그는 영국의 식민지였던 버마(현 미얀마)에서 경찰 간부로 근무한다. 어느 날 그는 사육장을 탈출한 코끼리가 마을에서 난동을 피우고 있다는 신고를 받는다. 코끼리는 이미 집과 기물을 파손하고 사람을 해쳤다. 사정을 살피러 현장으로 간 그는 끝내 코끼리를 사살하고 만다. 그는 이 사건을 ‘제국주의적 쇼’로 규정한다. 수많은 버마인들이 이 ‘백인 경찰’ 주위로 몰려든다. 그는 결코 코끼리를 죽일 마음이 없었다. 코끼리를 죽이지 않고도 소동은 마무리될 수 있었다. 그러나 코끼리를 제압하지 못하면 그와 ‘위대한 대영제국’은 웃음거리가 되고 지배자의 권위를 잃게 되는 상황. 그는 마지못해 방아쇠를 당긴다. 그의 바람과는 달리 코끼리는 총알을 다섯 발이나 맞고도 즉사하지 않는다.

버마에서의 5년간, 그는 숱한 이상한 짓을 경험한다. 그는 교수형 집행을 참관한 일도 글로 남겼다(‘교수형’-1931). 버마인 죄수는 교수대로 끌려가면서도 반사적으로 바닥의 물웅덩이를 피해 걷는다. 교수대에 올라 모두의 귀를 괴롭히며 큰 소리를 기도를 올리던 죄수가 순조롭게(?) 죽자, 사형을 지켜본 이들은 죄책감과 안도감을 감춘 채 시답잖은 농담을 주고받으며 위스키를 나눠 마신다. 그는 의식이 있는 한 인간의 목숨을 강제로 빼앗는다는 것에 대해, 그 모든 권력의 부당함과 잔인함과 어리석음에 대해 서늘하게 각성한다.

스물네 살의 그는 결국 제국의 경찰 노릇을 때려치운다. 그리고 바로 소설가가 되어 자신의 경험을 미친 듯이 글로 써낸다? 아니다. 그는 그런 자신을 용납하지 않는다. 유럽으로 돌아온 그는 자기 자신을 사회의 제일 밑바닥으로 끌어내린다. 그는 더 이상 명문 사립학교 졸업생도 식민지의 경찰 간부도 아니다. 그는 수년간 파리와 런던의 빈민굴, 싸구려 여인숙, 부랑자 구호소 등을 전전하며 지낸다. 추위와 굶주림, 불편과 불결, 멸시와 천대가 그를 식민지처럼 장악한다.

『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1933)은 그가 에릭 블레어란 본명을 버리고, 조지 오웰이란 필명으로 작가가 되어 세상에 내놓은 첫 번째 책이다. 그는 자신의 자발적 밑바닥 체험을, 이 일종의 ‘속죄 의식’을 비장하게 미화하지 않는다. 그는 그저 스스로가 ‘가난 그 자체’가 되어 가난을 정직하게 경험하고 관찰하고 진단한다.

이미 코끼리를 총으로 쏴 죽인 그의 이상한 짓은 가난 속에서 계속된다. 그는 푼돈으로 몇날 며칠을 버티고, 가진 모든 것을 전당포에 잡히고, 끝도 없이 허탕을 치고 낭패를 겪고, 이루 말할 수 없이 더러운 숙소에서 새우잠을 자고, 노예 취급을 받으며 식당 주방에서 하루 17시간씩 허드렛일을 하고, 사람들이 말조차 섞지 않으려는 부랑자들과 어울려 길에서 주운 꽁초를 나눠 피운다.

소설가가 되기 전의 그는 이 모두를 자처했다.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되는 이상한 짓을 했다. 그의 글은 구제불능의 따라지 인생들을 묘사했음에도 비참하거나 처절하지 않다. 오히려 생생한 활기와 따스한 연대와 유머러스한 에너지가 넘친다. 세상의 어두운 진실을 외면하지 않고 직시하겠다는 ‘이상한 다짐’과 그것을 자신만의 언어로 창조해내겠다는 ‘이상한 열정’이 그 모두를 가능하게 했다. 에릭 블레어는 그렇게 조지 오웰이 되었다.
“언젠가는 이 세계를 좀 더 철저하게 들여다볼 생각이다. 나는 마리오나 패디나 좀도둑 빌 같은 친구를, 우연한 만남이 아니라 가까운 친구로서 사귀고 싶다. 접시닦이라든가 떠돌이, 강둑 노숙자들의 영혼이 진정 어떤 것인지를 이해하고 싶다. 현재로는 빈곤의 외곽 이상을 본 것 같지는 않다. (……) 이것이 시작이다.” (p.409)

이것이 시작이다. 조지 오웰은 『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으로부터 시작되었다. 20세기 가장 중요한 소설들로 꼽히는 『동물농장』과 『1984』는 식민지의 코끼리와 교수형으로부터, 근대 문명의 온갖 모순이 들끓고 있던 1920년대 후반 파리의 빈민가와 런던의 부랑자들로부터 시작되었다.

이신조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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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의 지독한 고통을 온 몸으로 느끼며…

♣'파리와 런던의 따라지…'줄거리

『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은 정치적 저술가로서 20세기 문학사에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한 작가 조지 오웰의 처녀작이다. 젊은 날 접시닦이와 노숙 경험을 바탕으로 한 반자전적인 작품으로, 실제 자신이 파리와 런던에서 체험한 5년간의 빈민 생활을 통해 도시 빈민의 문제를 특유의 유머와 함께 예리한 통찰력으로 살펴내고 있다.

주인공 ‘나’는 파리에서 영어를 가르치며 생계를 유지했으나 일자리를 잃은 후 남은 돈마저 여관에서 도난당하고 무일푼 신세로 전락한다. 중산층이었던 그가 처음으로 겪은 가난은 예상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가난이란 지극히 단순한 것이리라 생각했지만 실은 굉장히 ‘복잡’했고, 무시무시하리라 생각했지만 ‘그저 궁상맞고 진절머리가 날 따름’이었다. 그는 호텔 식당에서 하루 15시간씩 접시닦이를 하며 배고픔을 겨우 면하지만 수면부족에 시달리며 하루하루를 아무 생각 없이 노예처럼 살아나간다.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한 어떠한 시도도 할 수 없다. 런던으로 돌아온 후의 생활도 그리 녹록지 않다. 값싼 간이숙소와 구빈원을 전전하는 동안 그는 부랑자를 양산할 수밖에 없는 사회제도의 모순을 온몸으로 느끼며, 가난한 이들에 대한 그동안의 편견을 버리고 그들의 영혼을 이해하는 여정을 새로이 시작한다.

이 작품은 훗날 조지 오웰의 대표작 『동물농장』과 『1984』에서 정치권력과 개인의 문제를 고찰할 수 있는 사회 비판적 통찰력과 감수성의 자양분이 되었다. 영국의 시인 겸 비평가 세실 데이루이스는 이 책을 가리켜 “오만한 20세기 문명의 폐부를 찌르는 작품”이라 평하기도 했다.

원제: Down and Out in Paris and London

저자: George Orwell(1903~1950)

발표: 1933년

분야: 영국 문학 한글번역본

제목: 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

옮긴이: 김기혁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037(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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