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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2넌 5월 22일)
제목: "상처를 비전으로"
말씀: 사무엘상 1:10~18
대표기도: 안승훈 부목사님
찬양인도: 쉐키나(이원준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사회:장광천 부목사님(1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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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1:10~18,
10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11 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12 그가 여호와 앞에 오래 기도하는 동안에 엘리가 그의 입을 주목한즉.
13 한나가 속으로 말하매 입술만 움직이고 음성은 들리지 아니하므로 엘리는 그가 취한 줄로 생각한지라.
14 엘리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언제까지 취하여 있겠느냐 포도주를 끊으라 하니. 15 한나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 주여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요 여호와 앞에 내 심정을 통한 것뿐이오니. 
16 당신의 여종을 악한 여자로 여기지 마옵소서 내가 지금까지 말한 것은 나의 원통함과 격분됨이 많기 때문이니이다 하는지라. 
17 엘리가 대답하여 이르되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네가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 
18 이르되 당신의 여종이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하고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근심 빛이 없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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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온 성도들께서 내 영혼의 햇빛 비치니, 정말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으로 찬양을 함에 확신한다. 이렇게 사모하는 분들은 주님은 아무도 그냥 돌려보내지 마시고, 오늘 말씀을 통하여 치유를 경험하게 하시고, 또 변화의 능력도 경험하며 회복도 허락하시길 소망한다. 저는 여러분들을 섬기면서 사랑의 교회 목회자로서 늘 자신에게 질문하는 것이 있다. 그것이 뭐냐면 오늘 이 시대 이 순간, 오월 22일 이 순간, 내가 대한민국에서 ‘그리스도로 산다는 것’ 대한민국에서 ‘예수 믿는 자’로 산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를 오늘 근본적인 물음이다. 오늘 찬양대도 박수치면서 찬송을 잘 했는데, 우리가 오늘 이 순간, 이 대한민국에서 그리스도로 산다는 것이 과연 무슨 뜻인가?
▷세상백성<=>천국백성, 하늘의 법칙, 천국 법칙
 
우리는 본래 예수 믿고 구원 받을 때,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결심하는 그 순간, 지금까지 몸담고 있던 사탄이 지배하던 세상에서 떠난 사람들이다. 사탄의 호적에서 이름을 빼내고 하나님 나라의 자녀로 새로운 신분, 새로운 하나님의 아들들, 딸들이 된 줄로 믿는다. 그러니까 세상 백성에서 천국백성이 된 것이다. 그리고 세상 백성에서 천국 백성이 되었다는 것은 우리가 이 땅을 살지만 땅의 법칙이나, 세상의 법칙대로 살면 안 되고 하늘의 법칙, 천국의 법칙대로 살면 된다.
 
물론 저도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여러분들과 이 말씀을 나눌 때, ‘오 목사는 과연 하늘의 법칙으로 살고 있는가? 천국법칙으로 살고 있는가?’ 저에 대한 깊은 물을 가졌다. 그러나 우리 온 성도님들과 함께 오늘 이 말씀을 가지고 씨름을 해야겠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에서 살고 있지만, 하늘 백성으로 사는 줄로 믿는다. 그리고 우리는 하늘 법칙으로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저와 여러분을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의 어떤 특정 종교가 아니라, 주님을 나의 구세주로, 인격적으로 만난 것이다. 이 땅의 있는 모든 종교는 사람이 하나님을 찾는 것이지만, 우리가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순간, 주님이 먼저 ‘나를 찾아오셨구나!’ 이것을 깨닫는 것이다. 죄인인 나를 너무 사랑하셔서 창조주 하나님께서 나를 찾아오셨구나! 인격성을 깨닫고 난 다음부터 우리는 세상의 땅의 법칙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법칙, 천국의 법칙대로 사는 것이다. 남들이 보면, 이른 새벽부터 저 지방에서 올라오시고 한 두 시간씩, 타고 이렇게 이 자리에 올라오셔서 1부, 2부, 3부, 4부를 하루 종일 어떤 분들은 하루 내내 봉사하시고 애쓰시고 이런 분들은 세상 사람들이 볼 때는 우리가 정신 나갔다고 할 것이고 할 수 있다. 그렇다. 남들은 이해가 안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게 자연스러운 이유가 하늘 법칙대로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지를 깨달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도저히 이해하지 못해도 심지어 시간을 내고 우리에게 주신 귀한 물질을 주님 앞에 돌려드리고 이런 모든 것들이 보통 사람들은 이해가 안 가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기쁨으로 하는 것이다. 기쁨으로 하는지 안 하는지는 마스크 안에 있으니 구별은 못하지만,,, 마귀 꾼=마스크 사기꾼이란 이야기 있듯이..
 
그런데 우리가 정말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구원받은 자로서 이 순간, 하나님의 사람으로 땅에 법칙이 아니라, 하늘의 법칙으로 사는 살아야 하는지를 깨달아야 한다.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어려운 것도 있고 힘든 일들도 다 있다. 우리가 역사를 보고 시대를 관통하는 어떤 신앙의식을 가져야 하는데, 그 역사를 관통하는 신앙의식이 우리 가운데서, 환경 가운데서도 어떤 식으로 집중될 수 있을 것인가? 어떻게 통할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을 개인적으로, 공동체적으로, 민족사적으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민족사는 4월, 5월에 참 안타까운 일들이 있다. 4,19, 5.18, 6.25 등으로 민족사적으로는 뭐 현대사에 그냥 이 봄을 넘길 수 없는 상처들이 있는 것이다. 우리가 중국이나 일본이나 이런 자들로부터 침략을 받아가지고 고통 한 것도 많이 있지만, 6.25같은 내부에서 같은 민족들이 상처를 주고받았던 내부 분열이다. 민족들이 가인과 아벨처럼 서로 상처를 주고 남남 갈등으로 미디어 전쟁으로 서로 헐 뜯고 공격하고 있는 것이다. 제가 비행기 안에서 읽은 글 중에 아주 마음에 박힌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우리나라는 말로만 단일 민족이지, 사고방식의 차이를 보면 다른 인종 같다. 20 30세대, 시대는 어느 정도 선진국 환경에서 자란 세대이다. 최소한 20,30세대는 중진국 이상에서 태어난 시대에 산다.
그러나 그 윗세대 인 우리 부모의 세대는 아주 후진국이었다. 우리는 보릿고개를 경험한 사람들이고 그리고 중진국이라고는 하지만 우리의 사고방식과 지금 20,30시대의 사고방식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부모와 자녀의 언어가 다르고 가치체계가 다르기 때문에 ‘부자간에도 다른 인종 같다.’고 한다. 그리고 작년도에 우리 한국의 1인 가구가 600만 가구가 되었다. 개인의 고립화가 심해져서 외로움이 깊어졌고, 이번에 이 코로나 이후에 전국에 4명 중 한 명이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한다. 마스크 때문에 서로를 알지 못하는 소통의 부재가 있고, 이런 일로 어떻게 보면 서로가 상처라고 볼 수 있는 상황 속에서 우리는 세상의 상식을 뛰어 넘어 하늘의 상식으로 살아가야 한다. 땅의 법칙을 뛰어 넘어 천국 법칙대로 살고, 주님과의 믿음의 인격을 하나님의 사람들로서 신앙적인 초월성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개인이나, 공동체나, 민족 앞에 이 혼란스러움을 어떤 식으로 혼란의 벽을 뛰어넘고 아니 어떻게 관통해야 할 것인가?
 
오늘 본문을 보면, 사무엘상 1장에 시대에 있었던 사건이 우리에게 오늘 중요한 하나님의 음성이 되기를 바란다. 오늘 사무엘상 1장에 이 한나가 기도했던 이 말씀은 웬만한 성도님들은 알고 있다.
 
*사무엘상1:1~2,
1 에브라임 산지 라마다임소빔에 에브라임 사람 엘가나라 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여로함의 아들이요 엘리후의 손자요 도후의 증손이요 숩의 현손이더라.
2 그에게 두 아내가 있었으니 한 사람의 이름은 한나요 한 사람의 이름은 브닌나라 브닌나에게는 자식이 있고 한나에게는 자식이 없었더라.
-한나가 기도는 사사시대의 나타난 전형적인 하나의 내용이다. 엘리라는 대제사장이 사사시대를 감당했다. 그때에 한나라는 여성이 있었다. 그 사사시대는 어떤 때냐면, 한마디로 역사상 악순환의 시대였다. 그리고 선순환이 아닌 악순환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죄하고 주님을 떠나면, 하나님의 백성이니까, 돌아와야 하니까, 돌아오도록 징계를 하시고, 백성들을 징계하시는 것이다. 그러면, 백성들이 고통을 당하면서 다시 하나님을 부르짖으면, 하나님은 제대로 된 사사를 세우셔서 구원을 해주신다. 그러니까 범죄와 징계와 회개와 회복의 이것에 악순환을 주셨다. 그리고 또 평안의 시대가 길어지면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고 주님을 떠나게 되고 그러면 하나님은 다시 회초리를 드시고 백성들은 하나님을 다시 찾고, 또 다른 사사를 세우셔서 하나님은 다시 구원해 주신다. 이렇게 악순환이 356년간 어두운 시대를 지나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삶도 비슷할 때가 많다. 우리가 잘 되면, 잘 되는 것 때문에 주님을 더 섬기지 아니하고 잘 되는데 우리는 하나님을 망각하고 이제 얻어맞으면 천부여 의지 없어서, 하면서 손들고 왔다가 또 잘 되면, 또 떠났다가 그렇게 산다. 범죄와 징계와 회개와 회복의 이 순환의 고리를 계속되는 것이다. 지금은 이 말씀을 어떻게 보면 전지적 시점에서 말씀 전체를 다 알 듯이 우리가 성경 전체를 우리가 알고 있으니까, 사사시대 사람들을 우리가 이러쿵저러쿵 평가할 수 있지만 실제로 막상 그들의 삶의 현장에 들어간다면 주변국가의 반복되는 침략과 압제로 느낄 수 있는 그 참담함과 두려움과 좌절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깊은 고통의 시간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암울한 시대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역사의 새로운 길을 여시는데 그 역의 시대를 여는 열쇠는 누가 갖고 있느냐? 무슨 대단한 전투여단이나 대단한 전투를 한 것이 아니다. 그 암울한 시대를 여는 열쇠를 누가 가지고 있느냐?
 
한 가정에서 그 암울한 시대에 그 벽을 돌파하는 것을 누가 했냐면, 한 사람의 기도를 통해서다. 기도하는 한 사람의 기도가, 기도 없는 한 민족보다 강했다. 기도하는 한 가정이 기도 없는 한 공동체보다 더 강하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시대를 변화시킬 한 사람을 준비시키신다. 신앙적 역사의식을 가진 한 사람을 통하여 시대의 문제를 해결할 줄로 믿는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자세히 살피겠다.
 
오늘 우리가 10절부터 읽었는데, 이런 내용이 나온다. 에브라임 산지에 엘가나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에게 두 아내가 있었다. 조강지처는 한나이고, 세컨 와이프가 브닌나이다. 브닌나에게는 자식이 있고 한나에게는 자식이 없다. 그리고 이 두 번째 아내가 첫 번째 아내를 너무도 힘들게 한다. 6절에 보면
 
*사무엘상1:6,
6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므로 그의 적수인 브닌나가 그를 심히 격분하게 하여 괴롭게 하더라.
-적수? 적수인 브닌나가 심히 격분하게 하여 힘들어 한다. 자식이 없다고, 자기가 자식을 낳았다고 두 번째 아내가 첩이라고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정경부인인 한나를 심히 괴롭게 하고 격분하게 하는 것이다. 오죽하면 집안의 원수이다 그리고 브닌나가 한나의 적수가 된 이후에는 남편 엘가나가 좀 얼 빵 하게 굴었다. 어떻게 하냐면, 두 여인 가운데 남편 역할을 지혜롭게 못한다. 이 남편이 첫 번째 아내를 더 사랑했다. 너무 사랑한 나머지 보니까 브닌나 앞에서 선물을 갑절이나 주었다. 아들을 낳아준 여인 앞에서 자기가 싫어하는데 그 남편이 선물을 두 배나 주면, 할렐루야! 하겠는가? 그 남편은 주려면 모르게 주어야 했다. 그러니까, 브닌나가 격분해서 한나를 괴롭히고 그 당시에는 자식이 없는 여인은 굉장히 힘들었다. 자기가 어떤 위치라든지 존재감을 가질 수 없었다. 이런 환경 가운데서 한나는 어떤 의식을 가지고 있는가? 땅의 법칙이 아니라 하늘의 법칙을 실천한다. 실체가 와 닿는다. 10절에
 
*사무엘상 1:10,
10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한나가 만약에 멋진 아들들을 태어나게 하고 기도의 제목이나 상처가 없었다면 이렇게 통곡하고 하나님의 집에 나와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런데 그를 격분하게 하고 원통하게 하는 그 상처와 상황이 한나로 하여금 통곡하는 생명을 거는 기도를 하게 한다. 이렇게 알 수 있다. 하늘법칙이 뭐냐면,

 
I. 하늘의 법칙⓵: 상처가 생명을 거는 기도로 승화되면 비전이 된다.

-흥미로운 것은 한나가 임신하지 못한 이유가 뭐냐면, 5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임신하지 못하게 하신다.
*사무엘상 1:5,
5 한나에게는 갑절을 주니 이는 그를 사랑함이라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니.
-하나님께서 한나의 태의 문을 닫게 하신 것이다. 우리 입장에서는 너무 어려운 상태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한나의 태의 문을 닫으신 이유는 한나가 하나님 앞에 생명을 거는 기도의 자리로 나오게기대하셨기 때문이다. 이것이 하늘의 법칙이다. 땅의 법칙은 우리가 너무 괴로운데 하늘의 법칙은 어떠하냐면, 고통과 상처의 상황이 생명을 거는 그 순간 하나님 앞에 기도하러 오는 순간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그게 사명이 되고 그게 비전이 되고 그것이 하나님 앞에 평생 기도의 제목이 되는 것이다. “목사님, 나는 통곡하는 기도를 안 할 랍니다.” 그렇게 사셔도 된다. 그러나 한나에게는 불임이 상처였다. 아들 못 낳는 것이 상처였다. 한나에게는 그 불임이 상처였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경제 문제가 상처가 되고 어떤 사람에게는 건강이 상처가 되고, 어떤 사람에게는 자기 신념과 가족관계와 자기 명예가 상처가 될 수 있다. 수많은 우리의 생애를 살아오는 동안 인생이 만만하지 아니하고 우여곡절이 많은데, 수많은 한나의 상처 같은 우리는 그 불임을 다 지니고 산다. 그러면 그것 때문에 우리가 상처받고 나가떨어질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께서 태의 문을 닫으셔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기도하게 하시고 생명을 거는 기도를 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그것이 비전이 되게 할 것인가가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이다. 오늘 이 예배를 통하여 우리의 영의 눈을 열어주시길 바란다. 그러니까 어떤 이유에서든지 우리의 상처 때문에 우리가 깊은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면, 은혜의 물고가 터지면서 영적으로 성숙하게 되어서 하나님이 주시는 시각을 가지고 그대로 베풀어 주신다.
 
하나님이 어떤 시각을 갖고 한나의 기다림을 주신 것이냐면, 그 상처 가운데 격분하고 원수같은 그 상황 가운데서 한나는 무슨 고백을 하는지를 11절에서 보자.
 
*사무엘상 1:11,
11 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어떻게 보면 서원 기도를 했다. 서원 기도는 함부로 하지 않지만, 오늘 한나는 중요한 모형으로 보여주신다. 누구는 아들을 주시고 누구는 아들을 안 주시는가? 누구는 인삼 먹고 누구는 무를 먹는가? 이런 식으로 하나님 앞에 처음에는 항의를 하는 입장이었는데, 자기가 하나님 앞에 통곡하는 기도를 전력 투구적으로 하게 되니까, “아, 내가 자식을 낳더라도 이 자식이 내가 낳기만 했지 하나님이 주시는 자식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하나님의 자식임을 깨닫는다. 하나님이 나를 통해 낳은 자식임을 그것을 깨닫게 된다. 상처 때문에 기도를 했더니 영적으로 성숙하도록 은혜의 문을 열어주신 것이다. 오늘 우리에게 한나 같은 불임 같은 문제가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건강, 관계, 경제, 수많은 사회 갈등의 문제가 있을 수 있다. 그럴 때마다 우리가 진실 되게 기도의 자리로 나아갈 때, 비전이 될 줄로 믿는다. 그러니까 상처가 비전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상처가 사명이 될 수가 있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상처 때문에 은사가 될 수가 있다. 이것이 바로 땅의 법칙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법칙으로 사는 사람들의 라이프 스타일이다.
 
여러분,
브닌나는 기도를 열심히 했다는 그런 말이 없다. 왜냐면 브닌나는 기도를 안 해도 떡두꺼비 같은 아들을 딱하니 낳으니까, 그런데 한나는 아이가 없는 고통, 그리고 그의 적수, 브닌나의 그 괴롭히는 환경이니 주님 앞에 납작 엎드려서 생명을 거는 기도를 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11절에 특별한 말씀이 있다.
 
*사무엘상 1:11a,
11 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그래서 기도는 하나님이 나를 생각해 주시는 것이다. 주님과 인격적으로 관계가 제대로 된 사람들은 기도가 나를 하나님이 생각해 주시는 것이다.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20절에도
 
*사무엘상 1:20,
20 한나가 임신하고 때가 이르매 아들을 낳아 사무엘이라 이름하였으니 이는 내가 여호와께 그를 구하였다 함이더라.
-기도는 하나님 앞에 생각해 달라고 하는 것이고, 응답은 하나님이 생각해 주셔서 되는 것이다. 오늘 코로나 이후에 이 모든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께 나의 환경과 나의 불임과 “나의 모든 짐들을 주님이 생각하여 주십시오.” 그리고 주님이 우리를 생각하여 주신지라. 결국 한나의 불임이라는 상처가 결국은 사무엘을 얻게 된 원인이 된 것이다. 나중에 한나는 아들 셋과 딸 둘을 더 얻었다. 그리고 그 사무엘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놀라운 사랑을 받았는지를 알 수 있다. 사무엘 상 19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그의 말이라면 다 들어주셨다.
 
*사무엘상 3:19,
19 사무엘이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그의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니.
-마치 히브리서 5장에 있는 것처럼, “너에게 복을 주시고, 너를 번성케 하여 주시리라.” 구약의 하나의 살아있는 예화가 된 것이다. 자, 오늘 이런 내용들을 한나 개인의 기도로 그렇게 끝나는 것이 아니고 오늘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의 현장에서 이것이 체험이 되어야 한다. 하늘의 법칙으로 우리의 상처가 있어서 생명을 거는 기도를 하면 그것이 비전을 되는데 거기에서 나타나는 중요한 삶의 법칙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특별히 하늘의 법칙으로 사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법칙이 되느냐면,,,

 
II. 하늘의 법칙 ⓶:원수 같은 상처가 나를 성공시킨다.
-무슨 말이냐면 결과론적으로 그 한나의 적수였던 브닌나가 한나를 격동케 하고 한나를 못 살게 굴고, 한 나에게 깊은 상처를 주었는데 결국은 브닌나로 인해서 한나가 영적으로 성공하게 된 것이다.
 
“목사님, 아무리 그래도 브닌나가 없었으면 좋겠어요.” 라고 할 수 있다. 여러분 그렇게 하고 싶지만 인생은 그렇게 만만한 게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수많은 과정에서 우리는 자식을 낳고 사회생활을 하고 60-80년을 살아가는 과정 가운데 우리도 불임과 같은 상황도 생기고, 우리의 상황에는 브닌나 같은 사람도 반드시 있게 되는 것이다. 깊이 들어가면 적수와 원수와 음모를 속게 하는 그런 상황이 한나를 성공시킨 것이다.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면 아니 ‘원수 아니 같은 그런 악행을 저지르는 자를 정당화 시키느냐’고 할 것이다. 네버, 그런 뜻이 아니다. 저는 무얼 말씀 하느냐면, 땅의 법칙이 아니라 하늘의 법칙을 말씀한다. 그것으로 한나는 남편의 품을 더 찾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집을 찾았다. 성막을 찾았다.
 
*사무엘상 1:10,
10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그러니까 브닌나 덕분에 하나님의 집을 더 찾고 브닌나 덕분에 하나님께 더 집중적으로 생명을 걸고 기도하게 되었으니까, 어떻게 보면 한나의 신앙을 도와 준 브닌나는 도우미 역할을 한 것이다. 이런 도우미가 싫지만 하늘의 법칙은 그렇다. 제가 결론적으로 깨달은 것은 나를 어렵게 하는 자가 성공시키게 하고, 나를 어렵게 하는 환경이 나를 성공시킨다.
 
※하늘의 법칙은 나를 어렵게 하는 자가 나를 성공시킨다.

-하늘 법칙이다. 이것이 이미 알고느는 있지만 내것으로 승화하는 것과 머리로만 아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하늘법칙은 이렇게 주님 앞에 나아와서 주님께 예배드리고 주님과 인격적인 관계가 잘 되면 우리의 수많은 어려운 것들이 결국은 우리를 영적으로 성공시키고, 원수 같은 자들이 우리를 영적으로 살린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잘 알듯이...
 

다윗은 사울 왕에게 원수도 그런 원수가 없고, 특공대를 조직해서 다윗을 죽이려고 별짓을 다하고, 여러분, 시편을 보면 시편 반 이상을 다윗이 썼는데, 그 사울 왕 때문에 그 분통과 원한과 상처가 시편 곳곳에 적셔져 있다. 얼마나 괴롭고 힘들었는지, 다윗의 상처가 소금 뿌리듯이 들어가 있다. 그 악한 사울 왕을 다윗을 성공 시킨 줄 믿는다. 요셉이 총리가 되고 다 했지만, 요셉이 형들이 못되게 굴고 그 상황 자체가 요셉에게는 힘든 일이다. “나도 인간이기 때문에 당신들이 나를 팔아넘겨서 너무 고통스럽고 힘들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요셉은 악한 형들 때문에 요셉이 성공한 것이다. 어디 사람뿐이겠는가? 환경도 마찬가지이다. 고린도후서 11장에 보면 바울 사도도 그렇다. 수많은 어려움이 있다. 얻어맞고 태장으로 맞고, 파선당하고 잠 못 자고 굶주리고 사람들에게 얻어맞고 너무나 어려운 고통들이 많았다. 그런데 뭐라고 하는가? “내 은혜가 족하다.”라고 한다. 우리는 이런 내용들을 가지고 우리가 하늘법칙을 가지고 무장시켜 주시기를 원한다.
 
오늘 본문에 한나의 한 가정 스토리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한나의 가정을 통해서 이스라엘 민족 전체를 구원하실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이 있으셨던 것이다. 한나를 통해서 사무엘을 예비하시고, 사무엘을 통하여 영원한 다윗 왕국을 펼쳐갈 첩경을 평탄케 하는 하나님께서 그런 역사를 한나를 통해 이루어주시는 것이다. 무슨 말이냐면 하나님은 한나를 통해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펼쳐가시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저와 여러분들이 당하는 수많은 상처와 어려움과 오해와 고통과 이 수많은 것들이 여러분들의 불임과 상처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당하는 상처와 아픔과 고통의 짐들과 불임은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을 펼쳐 가시는 하나님의 역사의 주인공으로 만들어 주시는 것이다. 여러분들이 개인사와 여러분들의 개인 것으로 끝나면, 너무 안타깝다. 우리가 당하는 수많은 기도의 제목들이 하나님나라 전체 구원 역사를 펼칠만한 하나님 나라 역사의 길목에 섬광처럼 빛나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시려고 하는 하나님의 계획을 믿어야 한다.
 
우리는 겉으로 큰일 못해도 잘 사는 사람이 많다. 여러분들의 간절한 기도 때문에 피 흘림 없는 복음적 평화통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우리 민족이 정도로 바로 나갈 수 있도록 열어주시는 것이다. 전 세계를 보면 그래도 미국교회 한국교회는 영적으로 살아있다. 두 나라가 정신을 바짝 차리면 우리 주위의 일본이나 러시아나 영국을 변화시키는 은총의 통로가 되어야 한다. 내가 무얼 할 수 있는가이다. 오늘도 사랑글로벌 아카데미를 기도하였는데, 우리가 무얼 할 수 있는가는 내 한 사람의 개인역사로 끝나면 안 되는 것이다. 시골에 무학 한 할머니의 기도를 통하여 1세기 초라한 어부의 이야기가 개인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러나 그 시골의 무학 한 할머니의 기도를 들으시고, 인물들이 배출되게 하시고, 휴전선이 아직 뚫리지 않게 하시고, 초라한 어부들을 통해 1세기의 암흑이 밝혀지고 대로마 제국이 백기를 들게 하셨다. 그래서 여러분, 한나의 불임은 이스라엘 민족 전체의 불임이었다. 한나 한 사람의 불임이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적 불임이었다. 열매 맺지 못하는 이스라엘의 모습이었다. 한나의 스토리를 통해서 이스라엘 민족을 펼치시는 하나님의 큰 계획을 우리는 보아야 한다.
 
우리가 가운데도 육신적으로 불임의 상태가 있을 수 있다. 사업이나 학업이나 진행하는 프로젝트나, 자영업이나 자녀교육에 있어서 아무리 노력해도 열매가 없고 불임 같은 상태, 이제 오늘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땅의 법칙이 아니라, 하나님의 법칙을 깨닫기를 바란다. 그 어려움 때문에 하나님의 전을 찾게 해주신 것을 감사한다. 그 어려움 때문에 하나님께 통곡하고 기도하는 것에 감사한다. 이런 것 때문에 원수 같은 사람들이 나를 성공시키는 것이기에 신약에 보면 “내 원수가 이 뺨을 때리면 이쪽 뺨을 내어주라.”라고 한다. 신앙 없는 남편 때문에 핍박을 받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한나의 마음의 원통함과 격분이 있는 것처럼 괴로운 것이다. 그런데 신앙 없는 남편 때문에 하나님께 돌아와서 하나님께 통곡의 기도를 하고 나중에 하나님께 쓰임 받게 될 때에 그것은 하늘나라 법칙에 놀라운 계획이 되는 것이다.
 
제가 아는 어떤 목사님이 있는데 성도님들이 목사님을 너무 괴롭혔다. 그래서 기도했다. “주님이 좀 손봐주셔야 할 이들이 몇 명 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이 교회를 떠날 때 그 성도들을 공개해 주십시오.” 그 목사님이 떠날 때 공개를 했을까요? 안 했을까요? 그것으로 인해 더 깊이 기도했다. 그 어려운 분들이 오히려 목사님을 돕는 자로 변화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자 이런 이 목사님의 고백처럼 이 원수 같은 사람들이 어느 순간, 자기를 돕는 자로 변화되었다. 이것은 행복한 증거이고 좋은 응답이다. 그런데 문제는 원수 같은 사람이 죽을 때까지 나를 괴롭힐 수 있는 것이다. 갑자기 긴장이 될 것이다. 그러면 이렇게 괴롭히면 어떻게 할 것인가? 원수 같은 사람을 외면해야 할 것인가? 외면할 때, 더 기세등등해서 나를 더 괴롭힌다면 어떠할 것인가?
 
오늘 이 한나의 기도로 더 기억해야 할 것은 무엇이냐면, 원수와 나의 문제가 아니라, 진정한 문제는 진짜 ‘주님을 더 사랑하고 있는가?’가 문제이다. 원수와 나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있는가를 살펴봐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이 알아서 정리하실 것이다. 그리고 그 원수를 통하여 복을 주실 수 있다. 우리가 하나님을 더 사랑할 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이다.
 
*로마서 8:28,
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우리가 원수 같은 상황이 있을 때, 그 문제로 놓고 여러분들은 막 부딪히고 내가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가를 봐야 한다. 오늘 이 자리에 주님을 더 사랑하는 자이기 때문에 나온 줄 믿는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이다. 우리가 잘 아는 말씀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조건이 있다. 우리가 하나님을 더 사랑할 때,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해주신다. 그렇지 않으면 드디어 깨닫는다. 우리 같은 사람이 어떻게 원수를 사랑할 수 있는가? 우리가 원수를 사랑하지 못한다. 그런데 하나님을 사랑하는 동기가 되면, 나를 어렵게 하고 나를 원수 같은 환경이 나를 성공시킴을 믿을 때, 원수도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정말 알 사람이 없도다. 다시 한 번 정리하면 브닌나는 한나를 성공시켰다. 사울 왕이 다윗을 성공시켰다. 못된 형들이 요셉을 성공시켰다. 원수 같은 상황이 나를 성공시킬 것이다. 오늘 이것을 우리가 하늘법칙을 깨닫고 역사에는 하선이 있고 역사에는 상선이 있듯이 역사에 하선은 땅의 법칙대로 움직이고, 역사의 윗선은 오늘 이러한 상황으로 움직이게 하는 것이 역사의 윗선, 상선, 영적인 역사의 방향인 것이다. 그 결과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지금 당장 문제가 해결되지 않지만, 미래의 은혜가 오늘 현장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성숙한 현재는 미래를 현재로 당겨오는 것이다. 오늘 본문에 보면,
 
한나는 소리도 못 내고 입술만 움직여서 오랫동안 기도했다. 엘리 대제사장이 도와주는데 술 취한 줄 알았다 그래서 포도주를 끊으라고 했다. 엘리는 좀 지혜롭지 못해서 한나에게 실의 위에 식초를 뿌렸다. 그 순간 한나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니까 한나가 일어나서 대제사장이 돼가지고 사람을 이해 못하고 한다.

*사무엘상 1:12~14,
12 그가 여호와 앞에 오래 기도하는 동안에 엘리가 그의 입을 주목한즉.
13 한나가 속으로 말하매 입술만 움직이고 음성은 들리지 아니하므로 엘리는 그가 취한 줄로 생각한지라.
14 엘리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언제까지 취하여 있겠느냐 포도주를 끊으라 하니.
-답답한 법칙이다. “당신이 내 실의에 식초를 뿌리느냐? 당신이 내 상처에 소금을 뿌리느냐?”고 하지 않고 담하게 자기 슬픔 마음을 가눌 길이 없어서 주님 앞에 쏟아놓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오랜만에 대제사장이 오랜만에 한나에게 축복을 하게 된다. 여자가 대장부에 반응을 보였다.
 
*사무엘상 1:17-18,
17 엘리가 대답하여 이르되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네가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
18 이르되 당신의 여종이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하고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근심 빛이 없더라.
- 말씀이 심플하다. 그리고 자신의 무거운 문제를 100% 자기가 안고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맡기고 자신은 평강 속에 들어가 버렸다. 그래서 그 순간 한나의 문제가 하나님의 문제로 바뀌어버린 것이다. 아직 자녀라는 실체를 아직 잡지 못했어도 미래에 주실 자녀의 복을 믿음으로 당겨 와서 지금 기뻐하고 평안을 확증하게 된다. 그래서 고난의 시기를 미래를 현재로 살아내는 것이다. 이것이 하늘법칙으로 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태도이다. 땅의 법칙으로 사는 사람들은 무모한 믿음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다시 한나는 우울함, 원통함, 격분이 있었는데 그것을 다 정리를 하고 하늘법칙으로 미래를 현재로 믿음으로 당겨오는 것이다. 먼저 기대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오늘 머리를 굴리지 아니하고 심플하게 말씀을 받아들이고,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근심 빛이 없어졌다. 첫째는 말씀을 받고, 둘째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셋째는 가서 먹었다. 속이 답답하고 힘들면 아무리 진수성찬도 먹을 수가 없다. 그러나 소박한 음식이라도 마음이 편하면 맛있다. 이해가 되는가? 먹어야 모든 병도 이기고 먹어야 승리한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는 사실, 밥맛이 없다, 그런 말을 많이 한다. 저는 아파도 된장찌개는 맛있다. 그러니까 아픈게 오래 가지 않는다. 그 순간 미래에 치료를 지금 당겨서 쓰는 것이다. 밥맛이 없으면 이 말씀을 밥맛으로 삼기를 바란다. 그리고 미래의 소망을 지금 드시길 바란다. 오늘 이 순간 한나에게 있어서 밥 먹을 때, 밤 맛이 좋았는가? 나빴는가? 아주 좋았을 것이다. 먹는 즐거움이 회복되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다 끝났다. 나는 이제 희망이 없다. 완전히 상처 받아가지고 더 누워 있는 사람 가운데 방식 중에 하나가 먹으라니까, 엘리야가 완전히 나는 희망이 없다고 나는 죽기를 원하나이다 하니 그 천하의 엘리야가 죽으려고 하니까, 하나님은 어떻게 하셨는가? 열왕기상 19장을 보니까, 까마귀를 먹여주시고 회복을 주신다.
 
*열왕기상 17:4,
4 그 시냇물을 마시라 내가 까마귀들에게 명령하여 거기서 너를 먹이게 하리라
-요한복음에도 실의에 빠진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오셔서 오늘 지금 당장은 해결이 안 된다고 하더라도 이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믿음으로 받아서 맛있는 점심이 되라. 믿음으로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결론은 하나님은 한나를 통하여 어두운 시대의 새 판짜기를 하셨고 암흑의 시대를 완전히 역전시킨 사람이 한나였고, 역전시킨 도구가 한나의 기도였다.
 
※암흑의 시대를 완전히 역전시킨 자는 한나 였고, 역전 시킨 도구가 한나의 기도였다.
이것이 하늘의 법칙의 새 판짜기이다. 그 한나를 통하여 태어난 사무엘이 어둠의 시대를 밝히고 새로운 시대를 새 판을 짜는 일을 감당했다. 하나님은 보잘 것 없는 한나를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새 판 짜기를 했으며 바울도 미련한 자, 약한 자들을 통하여 강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셨다. 이것이 새 판짜기이다. 한나는 에브라임 산지, 엘가나, 그 가정에 변방이고 아주 그리고 역기능을 그 가정을 통해 새 판짜기를 하신다. 원수 같은 브닌나를 통해 새 판짜기를 하게 하신 것이다. 이제 다음 주는 룻기를 다룰 것이다. 그 룻과 같은 이방여인을 통해서 보아스와 새 판짜기를 한다. 세계 교회 역사상 유래가 없는 선교사 파송으로 부흥을 했다. 지금 1인당 선교사 파송 세계 1위인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그 이유가 이 나라는 상처와 고난을 이긴 나라이기 때문이다. 저는 기도한다. 한국의 K팝, K컬쳐, K푸드 등이 일어났지만, 우리는 K부흥이 일어나길 소원한다.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가게 해 주시라고 기도해야 한다. 한국의 상처 같은 나라가 어디 있느냐고? 상처가 사명이 되고 비전이 되게 하셔서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K부흥의 진원지가 되기를 소원한다.
 
저는 이번에는 읽고 있는 책이 위그노에 대해서 읽고 있다. 프랑스 위그노는 프랑스의 개신교 신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너무나 핍박을 많이 받았다 광야에서 예배를 드리려고 애썼다. 그렇게 고통당했다. 하나님께서는 위그노를 건져주셨다. 스위스에서 산업을 일으키게 하시고 독일에 가서 과학을 만들어 냈고, 영국에서는 산업혁명을 일으켰으며 무엇보다도 그 위그노 중심이 되어 청교도들이 되어서 미국에 가서 나를 세운 것이다. 너무나도 고통을 당했지만 우리가 당하는 수많은 짐들이 있지만 한국교회가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우리의 모든 짐들과 우리의 모든 기도의 제목들이 생명을 걸고 주님 앞에 나아감으로 말미암아 K부흥이 미래를 당겨 와서 하나님 앞에 영광 돌리는 놀라운 주의 백성이 되길 소망한다.
 
♣요약
우리는 개인과 공동체와 민족의 상처 앞에 '생명을 거는 기도로 통곡하며 납작 엎드려 기도할 때, 우리의 깊은 모든 상처와 역사의 상처가 비전과 사명으로 승화됨을 믿고 원수 같은 상처를 주님 앞에 올려드려서 원수가 나를 영적으로 성공시키는 하늘의 법칙으로 살기를 사모하고 소원해야 한다. 
-한나의 기도에서 볼 수 있듯이 온 몸과 온 심령을 다 바쳐 하나님을 갈망하는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한다. 인간은 삶 속에서 매순간 닥치는 고통을 기도로써 극복해야 한다. 중보자란 하나님의 말씀, 즉 하나님의 요구와 죄의 심판과 약속을 전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은 인류의 역사 가운데 항상 중보자를 통해서 자신의 뜻을 알리시어 인간들로 하여금 당신의 뜻을 따르게 하셨다. 오늘날도 예수님을 새로운 계약의 중보자로 세우시어 우리를 구원하길 원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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