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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1년 7월 18일) 제목: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기에“ 말씀: 신명기 8:1~6 사회: 윤하중 부목사님 찬양인도: 이원준 부목사님 기도: 이선복 부목사님 설교자: 김지찬 목사(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교수님-초빙) -------------------------------- *신명기 8:1~6, 1 내가 오늘 명하는 모든 명령을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고 번성하고 여호와께서 너희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차지하리라. 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3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4 이 사십 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느니라. 5 너는 사람이 그 아들을 징계함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징계하시는 줄 마음에 생각하고. 6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의 길을 따라가며 그를 경외할지니라. ---------------------------------------- ▶예나 지금이나 인간은 하루라도 밥을 먹지 않으면 살 수가 없다. 왜냐하면 인간들은 본질적으로 떡으로 사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교회를 다닌다고 하면 “야, 예수가 밥 먹여 주냐?”고 놀리기도 한다. 이런 질문 앞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할 수 없지만, 나의 체험의 언어로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산다는 진리를 설명하는 것은 정말 어렵다. 이유는 두 가지 이다. 첫째로-우리 주위를 살펴보면 실제로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남한산성’, ‘칼의 노래’를 쓴 유명한 소설가 김훈은 ‘밥벌이에 지겨움’이란 수필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밥에는 대책이 없다. 한 두 끼를 먹어서는 되는 일이 아니라 죽는 날까지 때가 되면 밥은 반드시 먹어야 된다. 이것이 진저리난다는 밥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이 ‘하늘을 나는 새를 보라 씨뿌리기도 않고 거두지도 않거늘, 하늘 아버지께서 먹이신다’고 하셨지만 나는 이 말을 믿지 못한다. 하나님이 새는 맨입에 먹여주실지 몰라도 인간은 맨입에 먹여주지 않는다. 나무들은 이파리에 엽록소가 박혀 있어서 밥을 빚어낸다. 그러나 우리는 엽록소가 없기 때문에 핸드폰이 있어야 한다. 이것을 잊지 말고 핸드폰을 사고 꾸역꾸역 거리로 나가서 밥을 벌자. 무슨 도리 있겠는가! 아무 도리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미 오래 전에 루터는 소요리 문답에서 ‘하나님은 기도하지 않아도, 그리고 심지어는 악한 사람들에게도 일용할 양식을 주신다.’고 인정하였다. 둘째로-떡으로만 사는 사람들이 더 잘 사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돈을 우리보다 더 잘 번다. 부동산, 주식, 코인, 금에 투자하면서 몇 배 씩 돈을 벌어서 벼락부자가 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가 밥 먹여 주냐’라는 질문에 답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면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처럼 보이는 세상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나님이 새는 맨입으로 먹이시는 줄 몰라도 사람은 맨입에 먹이시지 않는다.라고 믿는 사람들 가운데서 오히려 정 반대로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만 나오는 말씀으로 산다는 진리를 보여주며 살아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백성의 정체성이요, 하나님의 백성의 소명이다. 따라서 오를 거룩한 주일에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이 말씀의 의미를 다시금 깨닫고 이 말씀이 진리임을 우리의 삶으로 경험하고 이 진리를 평생 전하며 사는 우리가 되기를 소원한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다.’라는 진리는 있다는 설교나 독서나 사색을 통해 알 수 있는 진리가 아니다. 광야로 들어가야 한다. 떡이 없는 광야에 들어가 굶주려 봐야 비로소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로 들어가게 하신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을 보자. *신명기 8:2절에, 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그렇다고 광야들 걷는데 몇 끼 굶어본다고 해서 이 진리를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 40년을 광야 길을 걸어봐야 비로소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광야 길에서 이런 일이 가능한가? *신명기 8:3절에, 3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 이스라엘을 낮추시고 굶주리게 하신 후에 만나를 먹이시므로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사실을 이스라엘로 깨닫게 하셨다는 것이다. 모세의 이런 말을 들으면 결말이 해피엔딩 인데다가 우리가 실제로 겪은 일이 아니기 때문에 광야길 40년이 낭만적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광야가 어떤 것인 줄 알면 광야 길을 결코 낭만적이지 않다. *출애굽기 14:3절에, 3 바로가 이스라엘 자손에 대하여 말하기를 그들이 그 땅에서 멀리 떠나 광야에 갇힌바 되었다 하리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한 다음에 바로가 마음이 바뀌어 이스라엘을 추격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원어로는 ‘걸려들어 꼼짝 못하다.’ ‘목적 없이 방황하다. 정신을 잃다’고 되어있다. 여러 의미가 있어서 영어 성경에는 3가지로 번역되어 있다. 게다가 광야가 갇힌바 된 것은 광야는 한 번 걸려들면 꼼짝 못하는 곳 방황하고 정신을 잃는 곳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사람을 가두고 꼼짝 못하게 하는 광야 가운데로 이스라엘을 이끄시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스라엘을 낮추고 시험하기 위해서다. 아니라 다를까 사람을 가두는 광야 한 복판에서 이스라엘은 애굽 군대가 쫓아오고 홍해가 앞을 가로막혀 있자 죽음의 공포를 느끼게 되었다. 애굽의 매장지가 없어서 우리를 이끌어내어 죽음의 공포를 느끼게하느냐고 비난할 만큼 죽음의 공포를 느낀 것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을 비난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위로 하신다. *출애굽기 14:13절에, 13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 이 죽음의 땅 광야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 출애굽기 14:30절에, 30 그 날에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스라엘을 애굽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시매 이스라엘이 바닷가에서 애굽 사람들이 죽어 있는 것을 보았더라. -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행하신 그 큰 능력을 보았으므로 백성이 여호와를 경외하며 여호와와 그의 종 모세를 믿었더라.’ 겉으로 보면 사람을 가두어 두는 죽음의 땅 광야 가운데서도 구원을 얻을 수 있고, 생명을 얻을 수 있음을 이스라엘이 깨닫는다. 광야는 자기 백성을 낮추고 시험하시는 곳이지만 이 시험을 통해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맛볼 수 있는 곳이다. 광야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시험하지만 이 시험을 통해 여호와 그의 종 모세를 믿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예수님고 마찬가지이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성령이 충만하게 되신 후에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들어가신 이유가 무엇인가? 마귀 시험을 40일간 굶주린 후에 받기 위해서이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어거든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는 시험에 예수님은 뭐라고 답하고 계신가? 우리가 함께 읽은 신명기 8장 3절을 인용하시면서 기록 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님은 광야에 들어가 굶주린 후에 마귀의 시험을 받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 시험을 이긴 후에 진정한 하나님의 아들임을 입증하셨다. 그렇다면 우리도 고난을 당할 때, 광야에서 시험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어떻게 보면 우리도 코로나 팬데믹 안에 갇힌 것 같다. 확진 자가 증가하자 정부가 수도권에 조치를 취하였다. 그래서 모두는 이렇게 갇힌 채 모두가 비 대면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다. 예배만 갇힌 것이 아니다. 얼마 동안 자영업자 분들은 더 사방으로 갇혀버린 느낌을 더 들것이다. 그러나 일부는 정부든 기업체든 학교든 개인이든 우리를 꼼짝 못하게 하고 끝없이 방황하게 하는 광야이다. 게다가 델타변이로 인해서 어두움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코로나로 우리를 낮추시고 우리를 굶주리게 하시는 것을 분명하게 깨달아야 한다. 우리 마음이 어떠한지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테스트 하고 계심을 깨닫고 시험을 치러야 한다. 그런데 정말 아이러니 한 것은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하나님이 내 주신 시험을 잘 치르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시험했다. 한 걸을 더 나아가 자신이 출제자가 되어서 하나님께 시험 문제를 냈다. *시편 78편 19절에 보면, 18 그들이 그들의 탐욕대로 음식을 구하여 그들의 심중에 하나님을 시험하였으며. 19 그뿐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하여 말하기를 하나님이 광야에서 식탁을 베푸실 수 있으랴.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낸 시험 문제이다. ‘하나님이 광야에서 식탁을 베푸실 수 있을까?’ 이렇게 이스라엘 문제만이 아니다. 우리 역시 광야에 길을 걸으면서 하나님께 시험 문제를 내는 것은 아닌가? 과연 내 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면 내 앞길을 열어주실까? 하면서 산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 중에 엉뚱한 학생들이 간혹 있다. 젊은 학생들이 요즘은 많지만 20여년 전만하더라고 50대 학생들이 제법 있었다. 그 가운데 시험을 치르는데 서술과 주관식이 있었다. 제가 낸 시험 문제의 답을 쓰지 않고 끝에 답안지에 이상한 것을 써 놓은 것이다. 본인은 50대 후반의 섬 전도사인데 공부한 곳에서 하나도 안 나와서 그냥 공부한 것으로 대신 기록한다는 내용의 답안지였다. 그래서 보고 한참 웃었다. 본인이 문제를 내고 답을 자기가 쓴 것이다. 그러나 나이가 든 전도사님을 애교로 봐줄 수도 있었지만 어쨌거나 시험은 공정하게 해야 해서 낙제 점수를 주었다. 학생은 학교에서 내는 대로 답을 써야 맞다. 그 학생은 자기가 시험 문제를 내고 자기가 답을 했다. 이스라엘은 자기가 시험 문제를 내고 하나님께 답을 쓰라고 요청한 것이다. 하나님이 식탁에서 식탁을 베풀 수 있을까? 또 하나님이 답을 하시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처럼 광야 길을 가면서 하나님을 시험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렇게 한다고 해서 광야 걸을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끝내 하나님의 뜻대로 광야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의 과격하게 개입하시면서 때로는 낮추시고 우리를 주리게 하시고 시험하시기 위해 광야 길로 내몰고 계신다. 우리가 광야에 걷고 있는가?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시험하고 끝내 복을 주시기 위함이다. 하나우리가 물이 없고 양식이 없고, 척박하기 그지없는 광야 길을 걷고 있는가? 사방에 불 뱀과 전갈이 도사리고 있는 광야 한 복판에서 끝없이 헤매고 있는가?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낮추시고 시험하고 끝내 복을 주시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신명기 8:16절에 보면, -16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하나님이 지금 우리를 낮추시고 우리를 주리시고 시험하고 계신다면 끝내 우리에게 만나를 먹이시고 복 주시려 한다는 것을 오히려 기대해야 한다. 놀랍게도 광야에서 이스라엘을 낮추시고 주리게 하시기 전까지는 이스라엘을 떡으로만 사는 자들이었다. 알다시피 한 달 동안은 이스라엘도 원망하지 않았다. 준비했던 떡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달 만에 떡이 떨어지자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기 시작했다. *출애굽기 16:3절에 보면, 3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해 내어 이 온 회중이 주려 죽게 하는도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애굽의 고기와 애굽의 떡 밖에 모르는 자들이었다. 노예로 있다하더라도 떡과 고기만 있어도 된다는 이들이 과연 광야에서 하나님이 준비하신 식탁을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광야 이전에 이들은 떡이 없으면 죽는다고 생각했다. 그러기에 사람이 떡으로만 산다고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인간은 아담의 원죄로 인해 저주를 받은 후에는 얼굴에 땀이 흘러야 떡을 먹을 수 있다. 그러나 그 떡 또한 하나님이 주신 창조의 선물이다. 그러나 아담의 후손들은 이런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자신의 힘으로 떡을 먹기 위해 난리를 치고 있다. 떡이 떨어지면 마치 세상이 끝나는 것 마냥 야단법석을 떤다. 따라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부자가 되려고 애를 쓰고 있는 것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혹시 떡이 없는가? 좌절하지 않기를 바란다. 떡이 없다고 해서 사람이 죽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떡을 얻을 수 없어도 하나님은 다른 형태의 양식을 얼마든지 주실 수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에 원망하자 *출애굽기 16:4절에, 4 그 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내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 어떻게 양식을 비같이 내리신다는 것인가? *출애굽기 16:13~15,31절에, 13 저녁에는 메추라기가 와서 진에 덮이고 아침에는 이슬이 진 주위에 있더니. 14 그 이슬이 마른 후에 광야 지면에 작고 둥글며 서리 같이 가는 것이 있는지라. 15 이스라엘 자손이 보고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여 서로 이르되 이것이 무엇이냐 하니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어 먹게 하신 양식이라. 31 이스라엘 족속이 그 이름을 만나라 하였으며 깟씨 같이 희고 맛은 꿀 섞은 과자 같았더라. -만나는 이스라엘의 선조들도, 백성들도 전혀 알지 못한 것이었다. 이것이 무엇이냐고 외친 것이다. 이것이 무엇이냐는 히브리어로 ‘만’ 이다. 여기서 만나라는 단어가 나온 것이다. 후에 헬라어로 거쳐서 만나가 되었다. 이스라엘 백성과 선조들은 무엇인가를 묻는 것은 듣도 보도 못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땅도 아니고 하늘에서 양식이 비같이 내리는 것을 상상할 수 있었겠는가? 곡식은 땅에서 자라듯이 땅에 열매로 만드는 것인데 어떻게 양식이 하늘에서 내리는지 의문이었다. 그래서 하늘에서 이슬과 함께 내린다는 만나는 땅에 양식과는 종류가 다른 것이고, 어떻게 애굽의 떡과 애굽의 고기와 비교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구약에서는 거의 대부분 하늘의 양식으로 표현한다. *시편 79편 23절에, 23 그러나 그가 위의 궁창을 명령하시며 하늘 문을 여시고. -하늘 양식은 하늘 곡식이다. 그러면 곡식은 땅에서만 나오는 것을 어떻게 곡식을 하늘에서 키우겠는가? 우리 하나님은 이러한 분이시다. 하늘에서 주신다는 것이다. 우리를 먹이시는 분이시다. 우리가 너무 힘들 때에 하나님이 우리 곁에 계신다. 만나를 비같이 내리시고 하늘 궁창에서 내려주신다.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지 주실 것이다. 모세가 뒤를 돌아보며 이렇게 회고 한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 네게 알게 하심이라.”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이 말씀은 너무나 익숙하지만 실제로 이해가 쉽지 않다.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내리는 것이라고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의문이 생긴다. 만나와 여호와의 말씀과는 무슨 상관이 있는가? 이런 의문이 생긴다. 그래서 케임브리지 딕셔너리에 보면, 예문에, 일상적인 일들은 하늘에서 만나처럼 떨어지지 않는다는 예문이다. 이 떡은 인간의 생명에는 이 육체적 욕망을 이상이 있다라고 해석한다. 하나님의 영으로 먹이는 것이 더 중요하다. 라고 해석한다. 문제는 과연 이런 뜻인가?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이 만나를 주신 것이 어떻게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것인지를 어떻게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어야 한다. ▷원문은-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것이라고 되어있다.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것에 중에는 말씀이 아닌 것들이 있다. *사무엘하 22:9절에 보면, 9 그의 코에서 연기가 오르고 입에서 불이 나와 사름이여 그 불에 숯이 피었도다. -하나님의 입에서 불이 나온다. 하나님은 바람 날개를 타고 날으시면서 입에서 불을 뿜어 악한 자들을 무찌르신다. *욥기 37장2~4절에, 2 하나님의 음성 곧 그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를 똑똑히 들으라. 3 그 소리를 천하에 펼치시며 번갯불을 땅 끝까지 이르게 하시고 4 그 후에 음성을 발하시며 그의 위엄 찬 소리로 천둥을 치시며 그 음성이 들릴 때에 번개를 멈추게 아니하시느니라. -하나님은 입에서 천둥소리도 내신다. 온 세상을 다스리고 통치하신다. 그 뿐만이 아니다. *예레미야애가 3:38절에, 38 화와 복이 지존자의 입으로부터 나오지 아니하느냐. -하나님은 범죄한 자들에게는 재앙을 입으로 내리시고, 회개하고 돌아오는 자에게는 인자와 복을 주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입에서 나오시는 것이 단지 말씀만이 아니다. 자연과 세상을 다스릴 때, 물과 천둥이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고 인간역사를 주관하시는 화와 복이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가장 중요함은 말씀이다. 결국 인간이 사는 데에 필요한 모든 것은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기에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사는데 필요한 것이 모두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이다. 우리는 떡만 아니라 광야에서 물도 필요하다. 하나님은 필요하다면 광야에서 물을 주신다. 하나님은 어떻게 물을 주시는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전혀 상상하지 못하는 방법으로 주신다. 반석에서 물을 내셔서 자기 백성을 먹이신다. 아니 하늘에서 비로 주셔도 되는데, 물은 반석에서 나오게 하시고 만나는 곡식이니 땅에서 나오면, 좋겠지만, 물은 반석에서 만나는 하늘에서 비 같이 내려 주신다. 아무 생각 없이 성경을 읽으면,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지 잘 모르고 있다. 만나는 하늘에서 비를 내리듯이 주시더니 어떻게 물은 거꾸로 반석에서 주시는가? 우리의 생각과 기대를 초월하는 하나님의 이러한 공급을 우리가 어떻게 감히 상상할 수 있는가? 모세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것으로 산다. 라고 강조한다. 우리 인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으로만 살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사실은 지혜가 없으니 기도해 달라고 해야 한다. 정부도 못한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불평할 뿐인데 우리는 지혜가 없고 연약하기에 종교 지도자들에게 기도해 달라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에 갇혀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정부는 우리에게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백성들을 위해 고민해야 한다. 우리는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지만 떡을 위해 기도하고 기대해야 한다. 열심히 땀을 흘려야 한다. 우리는 떡을 먹기 위해 기도하고 열심히 일을 해야 한다. 일만 해서도 안 된다.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루터가 이렇게 이야기 한다. 하나님께서는 씨 뿌리지 않고 키우지도 않고도 얼마든지 여러분에게 곡식을 주실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원하지 않으신다. 동시에 하나님은 씨 뿌리고 키우는 일만으로도 곡식과 열매를 얻는 것도 원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기도하길 원하신다. 밖에서나 집에서나 전쟁에서나 정부안에서나 기도하면서 일을 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떡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떡과 관련해서는 하나님이 우리와 협력하면서 떡을 주신다고 한다. 루터는 부와 번영은 기도하고 열심히 노동할 때 주어진다고 말한다. 우리도 기도하고 열심히 일하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기도하면서 일을 하면 많은 부를 주신다. *신명기 8:12절에 보면, 12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주하게 되며. 13 또 네 소와 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 한국 교회 안에도 이렇게 기도하고 열심히 일하여 부를 일군 분들이 많이 있다. 앞으로 그런 분들도 많을 것이다. 기도하여 열심히 일하여 돈도 많이 벌기도 하여야 한다. 그래야 교회도 섬기고 선교도 하고 학교, 병원도 짓는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일을 할 수 있다. 그러나 한 가지 조심하여야 한다. 부하여 하나님의 일을 잊지 않을까이다. 조심해야 한다. 바울이 디모데전서 6장에서 권면한 대로, *디모데전서 6:18절에, 18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그러나 우리가 떡을 위해 열심히 일해야 되지만 이것을 통해 돈을 많이 벌어도 조심해야 한다.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주고 너그러운 자가 되어야 한다. 부를 얻을 수도 있지만 이것이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아침에 눈을 뜨고 저녁에 눈을 감을 때에, 뉴스에 연예인들의 관심도 없는데 왜 돈 벌고 건물 등을 신문에 글에 올리는지 모르겠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채우신다는 것을 드러내며 살아야 한다. 때로 하나님께서 광야로 이끌어 들어가 먹을 것이 떨어질 때, 우리가 떡이 전부인 것처럼 살면 안 된다. 절약하면서 하나님의 개입을 바라며, 우리가 광야같이 보여도 하늘 만나를 먹이시고 입히신 것처럼 우리를 입히실 것이다. 왜냐하면 만나는 달콤하기 그지없는 하늘의 양식이기 때문이다. -주님은 단지 하늘에 만나만 주신 것이 아니다. 주님은 십자가 위해 죽으심으로 친히 우리의 떡이 되어주셨다. 척박한 갈보리 언덕 험한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위해 자신의 살을 찢어 주셨다. 그 떡을 먹는 자 마다 죽지 아니하고 영원히 살 것이라고 약속하셨기에 우리는 어떤 고난 가운데서도 주님을 신뢰하며 광야 길을 갈 수 있다. 이것이 우리가 내려야 하는 세 번째 결론이다. 그 이유는,,, *로마서 8:32절에, 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우리가 주님을 신뢰하면 주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성령과 은사를 선물로 주실 것이다. 물론 오늘 비참할 수 있고, 내일이 더 나빠질 수 있다. 앞이 보이지 않는 광야를 매일같이 더 갈 수도 있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만나가 내릴 것이라고 약속하시고 만나를 먹이신 것처럼, 우리가 주님을 의지하면 주님은 우리의 인생길에 평생토록 주님의 영원한 생명을 우리에게 나누어 주실 것이다. ▷어떻게 영원한 생명을 나누어 주시는가? 첫째,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기도하도록 도우시며, 자기의 생명을 나누어 주실 것이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라.”라는 약속을 믿고 오늘도 광야 길을 걸으며 매일 같이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우리가 되길 소원한다. 그러면 우리가 구한 것 이상으로 하나님은 우리를 만나로 먹이실 것이다. 둘째,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배고프다는 사실, 우리가 연약하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고백하며 서로 기도하며 도우시므로 자신의 생명을 나누어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함이 큼이니라.”의 약속을 믿고 기도하면, 우리 죄를 사하시고 우리 병을 치료하시며,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것으로 사는 것임을 우리 모두 경험하게 될 것이다. 셋째: -비록 현실은 정반대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 분의 선하심을 신뢰하는 믿음을 우리에게 주심으로 우리에게 하늘의 만나를 나누어 주실 것이다. “너희 중에 하늘의 떡을 달라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수 있겠느냐?” 약속의 말씀과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고 오늘도 광야 길을 묵묵히 걸어간다면 하나님께서 성령과 은사를 선물로 주실 것이다. 넷째, -하나님께서 환난 가운데서 우리에게 평강을 주심으로 생명의 양식을 나누어 주실 것이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나신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는 약속을 믿고 나아가면, 하나님이 세상이 알지도 못하는 하나님의 평강으로 우리에게 넘치게 하실 것이다. 다섯째, -하나님께서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우리에게 하늘의 만나를 매일 같이 내려 주실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이 세상 광야 생활이 끝나는 날, 배고픔이 영원히 종식될 그날까지 하나님께서 매일같이 우리를 일용할 양식으로 먹이실 것이며, 그리고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리라고 버가모 교회에 하신 말씀을 믿고 세상을 이기고 사탄의 유혹을 이기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것으로 산다면 마침내 하늘나라에서 감추었던 만나를 우리에게 먹이실 것이다. 이 세상 속에서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것으로 산다는 이 사실을 경험하고 이 진리를 드러내며 세상을 끝내 이기고 승리한 다음에 이긴 자들만이 먹을 수 있는 감추었던 만나를 먹으며 그리스도와 영원한 교제를 누리는 우리가 되길 소망한다. ♣요약 우리에게 주신 이 진리의 말씀을 사람이 가슴에 새기고 사람이 떡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것으로 산다는 이 놀라운 진리를 우리의 삶 가운데서 깨우쳐 주시고 때로는 광야 광야로 이끌어 들여 낮추시고 굶주리게 하시지만, 우리는 기도하고 순종해야 한다. 끝내는 만나를 먹이시고 우리를 복 주시려고 하는 하나님의 놀라운 비전을 가슴 깊이 간직하고 순종하여 평생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것으로 살아가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에게 언제나 끊이지 않았던 보급품을 기억해야 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심령에 기력을 주는 양식을 정해 주심으로써 그것이 일상적인 생명의 양식이 되었다. 그런 중에서라도 하나님께서는 원하시는 때에 그런 양식 없이도 지원하시고 공급하실 수 있으시며 불가능할 것 같은 어떤 것을 만드시사 그 의도에 답하시는 분이시다. 위와 같은 용도를 위해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공기를 성별하셨다면 위는 공기만 먹고도 살 수 있는 것이다. 우리 구주 예수께서는 '이 돌들에게 명하여 떡이 되게 하라'는 사단의 유혹에 답변하실 때 이 성경 구절을 사용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무엇이 필요한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는 떡이 없이도 나를 살 수 있게 하신다 하나님의 말씀은 마땅히 믿음으로 영접되고 환영받은 하나님의 뜻과 은혜에 대한 계시로서 영혼의 양식인 것이다. 인간의 생명은 그 영혼의 양식으로 유지되며, 반드시 빵으로만 유지되는 생명은 아니다. 만나는 생명의 떡인 그리스도를 예표 하였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말씀이시므로 우리는 그로 말미암아 사는 것이다. 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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