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주후 2021년 10월 10일)

제목: ''회색지대란 없다''
기도: 김은규 부목사님
말씀: 마태복음
13:47~52
사회: 천동원 부목사님(1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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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3:47~52)
47 또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 
48 그물에 가득하매 물 가로 끌어 내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버리느니라. 
49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 내어. 50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리라. 51 이 모든 것을 깨달았느냐 하시니 대답하되 그러하오이다. 
52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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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물과 같은 보혈이 여러분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성령이 부어지길 소망한다. 저는 ‘회색지대는 없다.’ 새 판짜기 예수님의 비유 시리즈 말씀을 나누고 있는데 이 말씀 한 절 한 절이 성령님이 스승 되셔서 진리로 우리 가슴에 확인되고 나의 고백으로 나타나 그래서 이 말씀이 고귀함으로 우리의 살이 현장으로 확증되었으면 좋겠다.
 
마태복음 13장은 예수님의 비유 말씀에 씨 뿌리는 비유부터 시작해서 오늘 큰 그물의 비유로 일곱 가지 비유로 하나님의 나라 속성, 하나님 나라가 어떤 것인지 그래서 모든 비유마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다. 천국은 마치 밭에 뿌린 씨앗과 같다. 천국은 마치 겨자씨와 누룩과 같다. 천국은 마치 진주와 같다. 와 같이. 오늘 마지막 마태복음 13장에서 마지막 이 비유가 뭐냐면 그물의 비유이다. 이 그물의 비유를 놓고 중요한 정리를 하겠다.
 
예수님은 너무 신묘막측 하시고 탁월하시다. 예수님은 본래 목수이셨다. 씨 뿌리는 비유도 하시고, 농부의 말씀도 하시고, 땅에서 바다에까지 전체를 커버하시면서 말씀하신다. 그리고 이 말씀을 하시며 너무 신비하니까 51절에 이렇게 표현하신다.
 
*마태복음 13:51,
이 모든 것을 깨달으니...
-이 모든 것을 깨닫는다고 하신다. 오늘 하나님께서 이 모든 말씀을 깨닫는 은혜를 주시길 소망한다. 만세!!~~
이 말씀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은 무엇이냐면 주님은 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떤 율법으로, 어떤 교조적이고, 탁상공론으로, 책상물림으로, 아니면 이론적인 것으로 많이 가는 것이고 실제로는 내 삶의 피부에 와 닿고 내 삶으로 변화하는 새 판짜기가 별로 없었다. 그런데 예수님은 땅에서부터 바다까지 다 커버하시면서 우리의 실재의 삶의 와 닿게 말씀하신다. 그러면서 이 말씀에 51절을 깨닫느냐 하시면서 52절에 이어 말씀하신다.
 
*마태복음 13:52,
52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
-와 닿는가? 정직하다. 탁 와 닿지 않는다. 예수님은 어떤 탁상공론이나 어떤 조문이나, 어떤 율령이나 그런 것이 아니고 실체가 있어야 한다고 하신다. 서기관을 이야기 할 때, 대체적으로 신약에 서기관을 이야기 할 때 부정적으로 이야기를 다하고 있다. 예수님도 마태복음 23장에 말씀하신다.
 
*마태복음 23:29,
29 화 있을진 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며 이르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부정적으로 이야기 한다. 다면 강점이 있다. 하나님의 말씀에 익숙하다. 잘 안다. 잘 아는 것, 머리로 아는 것, 그것으로 끝나지 말고 삶에 체험으로 이 말씀을 깨달았냐고 하신다. 이 말씀을 통해 내 삶에 ‘새 판짜기가 일어났습니다.’ 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천국에 제자 된 서기관이 되었다.’라고 한다. 그러면 이 천국에 제자 된 이 서기관은 옛것과 새것을 마음대로 필요한 대로 쓰는 집 주인과 같다. 일반적으로 옛것-구약의 말씀, 신약-새것, 신구약의 말씀을 앞뒤 전체를 서로 상호 소통하고 상호 통용하고 집주인이 물건들을 맘대로 쓰는 것처럼 신구약의 말씀을 마음대로 사용하는 마음껏 활용해서 삶에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이라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바울 같은 사람이다. 아니 우리는 이 66권의 하나님의 말씀을 들고 있기 때문에 이 말씀이 내 것으로 확인만 되고 삶에서 깨닫고 삶의 현장에서 체화하는 그런 은혜가 있을 때는 21세기 판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이 되는 것이다. 원래는 서기관이 엉터리인데 서기관이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영적으로 깨달으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하면 새 판짜기가 되어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이 되는 것’이다. ‘천국 제자 서기관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이 말씀을 듣고 반응하는 모두가 다 21세기의 천국의 제자가 되길 소망한다. 두가지 적용을 하겠다. 오늘 이 그물의 비유를 우리 앞에 놓고 먼저 질문을 하겠다. 그 질문은 앞으로 향후 100년간 중요한 질문이다.
 

I. 향후 100년 동안 해야 하 가장 중요한 질문.
 
-가장 중요한 질문이 무엇인가? 이제는 인생을 백세 시대라고 이야기 하는데 가장 중요하게 주고받아야 질문이 무엇인가? 4차 산업혁명이후에 미래가 어떻게 될까? 한국교회와 저 출산, 인간의 과학혁명, 인공지능이 어디까지 갈 것인가? 이런 것들로 나름 중요하다고 여길지 모르지만 앞으로 우리가 감당해야할 가장 중요한 질문은 우리 생애에서 중요한 질문은 여러분과 제가 구원받느냐 못 받느냐이다. 그것은 타협할 수 없는 질문이다. 수많은 난재가 있고 많은 것들이 있지만 구원받느냐 못 받느냐의 질문 앞에서는 나머지는 다 우수마발(牛溲馬勃)이고 기타 등등이다. 오늘 엄중한 질문 앞에 회색지대도 없고 타협도 없고 어떻게 보면 무시무시 하고 명징하고 분명한 것이다. 51절에 제자들처럼 천국의 서기관이 되면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고 실체가 와 닿으면 늘
나는 주님과 구원받은 사람인가?
주님과 인격적 교제가 있는가?
둘째로 나는 구원 받은 사람으로 주님이 주신 은사를 가지고 나는 어떻게 인생을 살 것인가?
돌아본 탕자가 그렇지 않은가? 아버지를 제대로 깨닫고 어떻게 하면 아버지를 기쁘시게 할까? 그렇게 한 것처럼 향후 백 년간 우리의 삶의 가장 중요한 질문은 구원 받느냐 못 받느냐 이것이 가장 중요한 질문인 걸로 확신한다. 이걸 위해서 본문을 더 깊이 들어가 보겠다.
 
*마태복음 13:47,
47 또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
-하나님의 나라 구원에 관한 것은 당시 갈릴리 지역에서 어부들이 그물을 가지고 고기를 낚을 때 여기서 나오는 물고기를 모으는 모은다는 것은 적당히 그물을 내리는 이런 뜻이 아니고 배가 양쪽으로 쌍끌이를 하는 것이다. 그물을 밑에서부터 물고기를 모은다는 뜻이며 깡그리 잡는다는 뜻이다. 몽땅 싸그리 잡는 것이다. 저인망식으로 완전히 다 잡아버리는 것이다. 지금도 이스라엘 갈릴리 지역에 가면 그 당시 2천 년 전에 저인망식으로 물고기를 잡았던 배들이 지금도 있다. 그물로 유물 되어 있다. 고기가 잡히면 호숫가에서 그 그물을 끌어내 가지고 잡은 고기를 골라내는 것이다.
 
*마태복음 13:48,
48 그물에 가득하매 물 가로 끌어내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버리느니라.
-갈릴리 바다에는 당시 성경학자들은 18~20가지 종류의 어종들이 살았다. 그런데 18~20가지 어종들을 이야기한 것이 아니고 딱 잡았는데 하나는 좋은 것 또하나는 나쁜 것이다. 좋은 고기 나쁜 고기, 이 앞에 이 내용과 비슷한 같이 이해가 되는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와 같다. 알곡과 기라지의 비유와 오늘 그물과의 차이는 좀 비슷하긴 한데 가라지의 비유는 악한자의 아들들 또 천국의 아들들 가리지의 비유와 그물의 차이는 가라지는 추수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고 왜냐하면 좋은 곡식이 상하면 안 되니까 추수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니까 오늘 못된 고기와 좋은 고기의 차이는 이것은 즉결 심판이다. 기다리지 아니한다. 그래서 가라지와 못된 고기는 동일하다. 조금 더 설명을 할 때에,
 
*마태복음 13:41,
41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 넘어지게 하는 이것을 성경전체를 해석하면 좋은 물고기보다 못 된 물고기를 더 치우쳐 말하고 있다. 그러면 못된 물고기를 도덕적으로 열등하다. 덜 배웠다. 뭐 부족하다. 이런 뜻이 아니다. 이 못됐다는 악한 사람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그러면 성경에서 어떤 사람이 악한 사람인가? 도덕적으로 악한 사람은 그 정도가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을 믿지 않는 것이 악한 사람이다. 여러분 대표적인 예로 십자가에 있는 강도를 생각해 보면 세상 적으로 엉터리였다. 그런데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을 믿으니까 그 사람은 좋은 사람이 된 것이다. 믿으니까 좋은 고기가 된 것이다.
 
서기관은 옛것과 새것을 곳간에서 내어오는 집주인 역할을 한다. 여기에서 예수님께서는 구약의 말씀들을 새롭게 재조명하여 전도와 교육에 집중시키셨다. 서기관은 원래 옛것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은 옛것을 숙지한 후에 항상 새롭게 되기 위하여 새것을 준비하는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한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피 묻은 생명과 연결되지 않으면 다 못된 고기이다. 십자가와 연결되지 않으면 다 못된 고기이다. 하나님의 천국을 조롱하고 하나님의 교회를 조롱하고 하나님의 생명의 복음을 멸시하는 자가 못된 고기이다. 그래서
 
*마태복음 13:41,
41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대표적인 못된 고기가 가롯 유다였다. 가롯 유다의 변절은 초대교회의 아주 상처를 주었다. 41절의 말씀은 이 사람들은 천국을 사모하고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을 멸시하고 조롱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또 하나님의 교회를 공격하고 자기 나름대로 도덕적 우월성을 가지고 기독교를 핍박하는 사람들, 세속적인 인본주의자들, 오만한 인본주의자들, 대단할 지 모르지만 사실은 넘어지고 하는 자들이고 이 사람들이 나쁜 고기라는 것이다. 한국교회에 그런 일이 많이 있다. 하나님의 교회를 모두 넘어지게 하는 것이다.
 
교회가 복음을 전하고 생명을 구원하고 사람들을 키우고 교회가 전력투구 하는데 교회의 무슨 사소한 일이 있으면 그것을 비난하고 그것만 하면서 소위 아름다운 말로 교회를 핍박하고 파괴하는 사람들이 넘어지게 하는 사람들이 주위에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그러니까 어떤 일은 평가할 때 간단한 것이다. 그 일을 통하여 구원 받는 사람들이 많아지는가? 그 일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가? 그 일을 예수님의 새로운 생명을 통하여 접붙임을 받는가? 아니면 그것 때문에 하나님의 교회가 더 어려워지는가? 딱 대비가 되는 것이다.
 
정리하면 좋은 물고기는 의인이고 못된 물고기는 악인을 상징하는데 성경에서 좋은 사람이라고 할 때 사람의 성품이나 도덕성이나 가치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성경에서 좋은 사람이라고 할 때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의롭게 된 사람이 좋은 사람이다. 이것이 좋은 사람에 대해서 좋은 사람은 천국을 사랑한 사람들이고 하나님 나라의 눈을 뜨고 깨닫는 사람들인데 하나님의 교회를 귀하게 여기는 사람들이며 이것에 대해서 뭐라고 말하냐면은
 
*마태복음 13:43,
43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좋은 물고기, 의인, 좋은 사람, 천국의 아들들, 이 사람들은 아버지의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다. 이와 같이 매주 이 번 주간 주님과 함께 동행 하고 살다가 다음 주일날 해와 같은 얼굴로 만나기를 바란다고 그러지 않던가? 이 자리가 천국의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인 천국의 예고편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게 천국의 예고편이다. 우리가 앞에 가라지와 알곡의 비유를 가지고 또 오늘 못된 고기와 좋은 고기의 비유를 가지고 종합적으로 말하면 좋은 씨, 좋은 물고기, 우리들, 천국의 아이들,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들, 다 한쪽이고, 가리지와 못된 물고기와, 악한자의 아들들과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복을 행하는 자들이 같은 편들이다.
 
우리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 아니라, 매주 천국의 아들들로 살다가 매주 천국의 예고편이 되기를 바라고 매주 이곳이 해와 같이 빛난 자들이 함께 모이는 안아주심의 본당이 되기를 소망한다. 그렇다면 또 하나의 질문, 내가 좋은 물고기 의로운 물고기가 되었다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나? 정말 겁나는 질문인가? 마지막 때에, 종국에 주님이 나를 부르실 때 나는 무엇이라고 대답을 해야 하는가? 백년과 가장 중요한 질문과 연계해서 우리는 그 다음 질문에 나아가야 한다. 하나님의 나팔소리 천지진동할 때에 우리의 이름을 부르실 때에, 내가 어떻게 주님이 내 이름을 부르시면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내 의로움이 아니라 예수님이 의로움으로 천국을 가는 것이다. 내 공로가 아니라 예수님의 피의 공로로 가는 줄로 믿는다. 그런데 이것을 좀 더 이해하기 위하여 본문을 더 살펴보자.
 
*마태복음 13:49,
49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내어.
50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리라.
-천사들 역할이 나온다. 수많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죽을 때에 그 영혼을 주님의 품으로 옮겨가는 줄로 믿는다. 그런데 이제 중요한 것은 악인들, 못된 고기들, 불법을 행한 자들, 모든 넘어지게 하는 자들, 가라지들, 그 가라지들은 천사들이 풀무 불에 던져 넣는다는 것이다. 타 종교에는 누가 지옥 간다고 했을 때 사탄 마귀가 지옥에 데리고 간다고 생각한다. 아니다. 우리가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데, 천사들이 의인은 하나님의 품으로, 악인은 지옥의 풀무 불에 던져 넣는 것이다. 다들 긴장이 되나요? 우리가 죽으면 천사들이 천국과 지옥으로 보낸다. 그런데 오늘날 이것을 잘 가르치지 않는다. 악인들이 지옥 불에 던져지니까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간다. 천사들은 완전히 분리시킨다. 선과 악,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와 죄로 오염된 것을 구별한다.
 
마태는 좋은 물고기와 못된 물고기를 구별하고, 악인과 의인을 분리시키고, 구원과 멸망을 분리시키고 ,천국과 지옥이 분리되고,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멸망과 영생과 영멸이 분리가 되는 것이다. 영생복락과 영원한 저주(咀呪)가 분리되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도덕과 선행과 성품에 달린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피를 믿는 믿음의 달려있다는 것이다. 다 분리시킨다. 그래서 우리가 두려운 질문은 이것이다. 천국과 예수님의 보혈이 나의 보혈로 소유하고 있는가?
 
♪나의 죄를 씻기는 예수님의 피 밖에 없네!!~~
예수의 흘린 피 날 정케 하오니 귀하고 고귀하다 예수의 피 밖에 없네~♬
 
그러니까 하나님의 나팔 소리가 임해가지고 내 이름을 부를 때 나는 과연 제대로 반응 하냐고 물었을 때, 답은 뭐냐면, 우리가 마음의 문설주에 예수님의 피를 발라 놓았느냐 안 놓았느냐이다. 모든 성도들의 마음속에 백 년 동안 최고의 질문은 내가 구원 받았느냐 못 받았느냐? 가 가장 중요한 질문이다. 나머지는 다 그냥 가는 것이고 이것이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이라면 그 구원 받았냐? 안 받았냐?의 증거가 우리가 마음의 문설주에 어린 양의 보혈의 피를 발랐느냐? 안 발라 놓았느냐이다.
 
이것이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너희들이 구원 받았느냐 안 받았느냐를 어떻게 설명하는지를 보라. 너희들은 홍해를 건넜다. 너희들은 열 재앙을 건넜다. 너희들은 홍해를 건넌 것이 바로 세례 받은 것이다. 죽음의 천사가 왔을 때 그 재앙을 피해가야 되는 것이다. 죽음의 천사가 어떻게 피해 가냐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집 문설주 거기에 어린 양의 피를 발라 놓았을 때, 죽음의 천사가 지나가는 것이다.
- Passover-유월(踰越)절이 되는 것이다. 이게 구약의 예표(typography)이다.

 
오늘 우리의 마음속에 ‘하나님 아버지, 우리 실력과 능력이 아닌 내가 좋은 고기, 좋은 씨, 천구의 아들들이 되는 비결은 다른 것이 아님을 믿습니다.’ 오늘도 주님께서 어린 양의 보혈의 피를 샘물과 같은 보혈은 주님의 피로다. 이 샘에 죄를 씻으면 정하게 되도다.~~ 이것을 받은 은혜가 너무 크기 때문에 찬송하게 찬송하세 주님 나를 구하셨네!~~
성경은 딱 두 종류밖에 없다. 좋은 물고기와 못된 물고기, 예수님의 피로 의롭게 되는 자와 악안 자로 되는 두 종류이다. 주님이 인정하는 사람과 인정하지 않는 자, 두 종류이다.
 
*고후 10:18,
18 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는 자기를 칭찬하는 자가 아니요 오직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니라.
-세상 적으로 도덕적으로 대단히 자 살아가지고 내가 대단하다, 이게 중요한 게 아니고 주님이 칭찬하시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주님은 우리를 잘하게 하신다. 십계명을 지키며 살 수 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어쩌다가 하얀 거짓말을 해도 가슴이 덜덜 떨린다. 보혈의 피로 구원 받은 사람들...우리는 오늘도 예수님의 보혈의 피로 내 삶의 문설주에 발라놓아야 한다. 이것이 귀하다. 그래서 바울은 이것을 깨닫고 우리는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로마서 5장1절에 설명하고 로마서 5장 9절에도 이렇게 말한다.
 
*로마서 5:9,
9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말은 좀 추상적이다. 이것을 더 구체적으로 그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가 의롭게 된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삶의 마음이 문설주에 예수님의 보혈의 피를 발랐기에 우리가 의롭게 된 것이다.
 
20년 전, 수십 년 전의 제가 40대 초반이었다. 목회할 때 교회가 폭발적으로 부흥할 때 설교를 하려고 강단에 올라가는데 갑자기 고등부 전도사님이 달려와서 “목사님, 큰일 났습니다.” 한다. 무슨 일이냐고 하니까 고등부 ‘고3 학생인데 부모님이 갑자기 어렵게 되고 이혼하고 이렇게 되는 바람에 타격을 받아가지고 정신적으로 문제가 되어서 친구기 넘 불쌍해서 오늘 처음 우리 교회 고등부에 데려와서 예배를 드리는데 예배시간에 갑자기 막 고함을 지르고 난리를 때리고 막 발악을 하여서 보니까 귀신이 들었습니다’라고 했다. 그“러면 기도를 해주고 그래야 하지” 라고 했더니 ‘목사님 다 해주었습니다. 기도를 해주었는데도 목사님 문제가 생겼습니다. -뭡니까? 하니 기도를 하는데 그 아이 얼굴을 보니 귀신이 들어서 너는 안 돼!~~. 하는 모습이었기에 힘들어서 목사님께 왔습니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3부 예배 설교를 마치고 기도할게 했다. ’나도 안 되면 어찌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고 담임 목사님 체면이 말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제가 설교 마치고 돌아올 때까지 기도를 나를 위해서 하고 있으라고 하면서 그때도 너는 안돼!! 하면 그때는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보혈의 능력에 의존하면서 ’그래 나는 안 되지만 그래서 내가 예수님의 피가 필요하다 어쩔래?‘ 하라고 했다. 그래서 예수님의 피가 필요하다. 어쩔래?? 하라고 했더니 3부 예배 설교하는데 내 마음이 콩닥콩닥했다. 어떡하면 좋겠냐는 걱정을 했다. 마치고 내려오니 전도사님이 뛰어오면서 “목사님, 목사님! 했다 왜 하니까. 나갔어요!!!~ 나갔어요! 했다. 정말 기쁜 소식이다.
 
그 당시 주님께 감사드리고, 그 고등부가 50명 모이는 고등부였었는데, 1년 안에 200명이나 되었다. 하나님의 나라는 능력에 있다. 그 능력은 피의 복음과 연계되는 것이다. 백 년 내에 우리가 감당해야 할 최고의 질문은 구원 받았느냐? 구원받지 않았느냐? 이다. 한 가지만 더 말하자면, 복음의 급진성에 관한 것이다.

 
II. 복음의 급진성.
 
-왜 주님은 사랑의 주님이시고 지금도 선한 목자이시고, 지금도 상처입은 진주처럼 모든 것을 품으시고, 지금도 돌아온 탕자를 기다리시는 그 온유하신 주님이시고, 우리가 고난당하고 어려울 때 함께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나와 함께 하시는 주님, 그 주님께서 그 사랑의 주님께서 어떻게 이렇게 단호하게 못된 고기와 좋은 고기를 딱 두 가지로 구별하시고 심판하실 수가 있는가?
 
▶왜 사랑의 예수님이 심판을 단호하게 말씀하셨는가?

-주님이 우리를 너무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거짓 진리가 아니라 참된 진리에 거하길 원하셔서이다. 의사가 암환자를 사랑한다면 아는 것을 치료해야 되는 것이다. 한 번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 신약에서 심판과 진노와 불과 형벌에 대해서 누가 가장 말씀을 많이 했는가? 사랑하는 예수님이시다. 그 사랑과 목자의 심정을 가지신 주님께서 심판과 진노와 불과 형벌에 대해서 가장 많이 말씀하셨다. 이것이 겸손이다. 지금도 모래 같은 우리를 품고 그 진주 같은 은혜로 만들어 주시는 그 긍휼하신 그 주님께서 지금도 양팔을 벌려서 상처받은 자들을 치유하시고 싶으신 그 주님께서 하나님을 거부한 악한 물고기에 대해서 이렇게 단호한 말씀을 하시고 심판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를 믿지 않는 자들의 종말에 대해서 엄중하게 말씀하신 이유는 무엇인가? 왜 그러시는가?
 
성경에 보면 요한복음 요한 사도는 사랑의 사도이다.

*요한복음 13:34,

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그런데 그 요한사도는 요한 일서에서도 말하고 있다.
 
*요한일서 4:17,
17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루어진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께서 그러하심과 같이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러하니라.
-사랑의 주님이 이 심판을 단호하게 말씀하신 이유는 우리로 하여금 심판 날에 담대하게 설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시기 위해서이다. 그 심판과 사랑은 단어는 다르지만 같은 말씀이다. 유명한 어거스틴은 말한다.
 
※심판에 대한 두려움이 하나님의 사랑을 더욱 깊이 깨닫게 하는 문을 여는 열쇠이다.-어거스틴-
-심판에 단호함에 대해서 엄중하고 타협이 없고 회색지대가 없는 이 분명한 복음을 깨닫고 그리스도의 마음을 우리 마음의 문설주에 바르는 일이야말로 주님의 사랑을 깨닫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천국 백성들의 서기관의 삶의 형태이다. 예수님께서 심판을 그렇게 강조하신 이유는 우리를 윽박지르거나 겁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심판이라는 렌즈를 통하여 우리가 죄의 종에서 벗어나도록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주시는 것이다. 여러분이 잘 아는 대로 죽음 이후에 자신의 죄에 대한 심판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심판이 확실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자기 앞에 있는 죄에 대한 태도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을 할 것인가? 완전히 다르다. 죽음 이후에 심판이 없다는 사람과 죽음 이후에 단호한 심판이 있다는 사람들이 죄에 대한 반응들이 결코 같을 수가 없는 것이다. 여러분, 동의하는가?
 
우리는 우리의 죄에 대한 심판이 있다고 생각할 때에 우리의 죄를 돌아볼 때, 우리는 너무 무능한 존재이고 우리는 작심 3일이고,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을 유지하지 않으면 조금도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임을 실감한다. 그러니까 주님 앞에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를 의탁한다. 그런데 심판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기 맘대로 사는 것이다. 심판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기의 의대로 사는 것이고 함부로 말하고 함부로 판단하고 그렇게 하는 것 아닌가? 여러분 사실 진짜 도적적일 필요가 뭐있는가? 온갖 자기키로 사는 사람이고 인본주의이고 자기 맘대로 사는 것이다. 만약에 하나님의 심판이 없다면 이 세상에서 소외당하고 억울한 사람은 어떻게 살겠는가? 하나님의 심판이 없다면 이 세상에서 오만한 인본주의자들의 조롱과 멸시와 하나님의 교회를 함부로 하는 자로서 이것이 우리는 억울해서 어떻게 살겠는가? 하나님의 심판이 없다면 우리는 살아갈 수가 없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심판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사실은 두렵고 어렵지만 거룩한 두려움이요, 사랑의 두려움이요, 사랑의 심판이니, 사랑의 다른 표현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정리하자.
 
바울은 이것을 깨닫고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다. 지금 우리 주님은 다 멸망치 않고 다 구원받기를 원하시지만 가라지가 추수 때까지 기다리시지만 못된 물고기와 좋은 물고기의 이 상황은 끝까지 기다리지 않고 즉결 심판을 하신다. 그 천사가 와서 다 풀무 불지옥으로 데려가서 풀무 불에 던질 때는 그때는 아무리 애원을 해봐야 소용이 없다. 왜냐면 시간이 지나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생애에서 예수 안 믿으면 끝이다. 지금 회색지대가 없다. 지금 이때가 아니면 끝이다. 마지막 그물을 통해 악인과 의인의 시간이 오면 사랑하는 사람과 부모님과 소중한 사람들과 피의 복음이 없으면 영원히 이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이 지옥은 너무나 외로운 곳이다. 혼자, 그러니까 부자가 지옥의 고통을 자기 혼자 느끼니까 자기 형제들은 그러면 안 된다고 나사로 시켜서 복음을 전해달라고 한다. 대답은 Too rait!~~라고 말한다.
 
사랑하는 교우들이여, 자유주의 신학(liberal theology)는 이 지옥은 비유적인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성경은 지옥과 풀무불은 비유적인 것이 아니라 실존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걸 우리 자녀들에게 가르쳐주고 이 ‘천국과 지옥’의 관한 것과 복음을 오늘날 우리 한국교회가 말을 못하지 말고 이것을 잘 가르쳐야 한다. 우리 아이들이 천국이 있다고 믿고 심판대가 있다고 믿을 때, 자기 맘대로 살겠는가? 명확하게 아는 것을 자식에게 가르치면 우리 자녀들은 스스로 잘 알아서 할 것이다. 어리석은 부자의 후회를 하지 말아야 한다.
 
*마태복음 13:48-49,
48 그물에 가득하매 물 가로 끌어내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버리느니라.
49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내어.
-우리가 물가로 끌어내어야 할 책임이 있다. 제자들이 같이, 천국의 제자들과 서기관들이 함께 끌어내야 한다. 같이 온전한 뜻인 텔레이오스와 같다. 우리는 지금 한국교회가 심각한 코로나 이후에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갈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이 기로에 서 있다.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들이 하나님의 피 묻은 복음의 눈이 열리면, 우리는 매주일 모여서 예배드리는 것이 너무 큰 축복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가르칠 때,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어느 지역만이 아니라 전 세계가 하나님의 나라는 주일만이 아니라 매주일이 다 가르쳐야 한다. 맞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이냐면, 이것을 너무 가르치다가 대면예배 안 드려도 되고 현장예배 안 드려도 되고, 알아서 주님과 동행하면 된다는 사고는 잘못된 것이다. 지금 현장예배 6개월 나오지 않으면 평가가 안 나오면 거의 전도 대상자이다. 지금 구원 받고 지금 은혜 받고 그리스도의 보혈이 우리의 마음의 문설주에 피를 발라서 주님을 찬양해야 한다. 우리가 주님의 백성들로서 함께 모여 예배해야 한다. 지금 회복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란다. 우리 교회 40분이내의 거리에 태신 자가 천 만 명이나 있다. 이들에게 분명한 회색지대가 없는 복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나팔소리 천지진동할 때, “주님 내게 믿음이 있습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 은혜의 통로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한다.
 
♣요약
우리는 이 시간 세상의 서기관이 아니라 회심한 서기관 천국의 서기관, 새 판을 짠 서기관이 되어야 한다. 강력한 천국 복음의 은혜가 임하길 기도하며 은혜의 서초 상륙작전이 일어나서 천국 맥박 소리가 커져서 크고 놀라운 은혜가 넘쳐서 우리의 심령이 백년 후에도 회색지대가 없는 피의 복음이 분명하게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를 우리의 마음의 문설주에 발라서 우리 모두가 다 천국 제자 된 서기관이 되어야 한다.
 
-진주 장사는 값진 진주를 얻기 위해 자기의 소유를 다 팔게 된다. 그러므로 성도는 다른 것들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께만 의지하는 태도를 취해야 한다. 이처럼 하나님이 성도에게 주신 구원은 오직 은혜로만 얻을 수 있는 값진 것이다. 그물 비유에서는 그물로 물고기를 가득 잡아 좋은 것과 못된 것을 구별한다. 이는 천국 잔치에는 모두가 초청받을 수 있으나 참가할 수 있는 사람은 준비가 된 사람만이 가능함을 보여준다. 서기관은 옛것과 새것을 곳간에서 내어오는 집주인 역할을 한다. 여기에서 예수님께서는 구약의 말씀들을 새롭게 재조명하여 전도와 교육에 집중시키셨다. 서기관은 원래 옛것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은 옛것을 숙지한 후에 항상 새롭게 되기 위하여 새것을 준비하는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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