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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주후 2024년 01월 14일)
제목: "과연 빛으로 살 수 있을까?" 말씀: 요한1서 1:5~7 대표기도: 이윤기 부목사님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사회: 임병영 부목사님 설교자: 오정현 담임 목사님 ----- *요한1서 1:5~7, 5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 6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함이거니와. 7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 ▶찬양대 귀한 찬송 감사합니다. 어느덧 1월 14일이 되었습니다. 세월 가는 줄 모르시죠? 너무나 놀랍게 빨리 시간들이 지나가는데 우리는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는 하나님의 신실한 종들인 줄로 믿습니다. 살다가 여러분, 내가 뭐 삶의 의미가 있나, 이런 생각할 때마다 내 인생의 의미는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는다. 그러면 그게 답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오늘 여러분 회중찬송도 잘 하셨습니다마는 ‘주여 나를 도우사 세월 허송 않고서 어두운 세상 지날 때, 햇빛되되게 하여 주옵소서.’ 그 찬송이 여러분의 것으로 그대로 고백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겁니다. 한국에 중요한 고위직을 지낸 어떤 연세 드신 분이요. 그냥 찬송을 앞에 놓고 눈물을 흘리면서 주여, 나를 도우사... 연세도 많으시죠. 세월 허송 안고서. 어두운 세상 지날 때 햇빛 되게 하소서. 그런 찬송을 진심으로, 진정으로 부르는 걸 제가 보면서 제가 얼마나 은혜를 받는지 몰라요. 가슴이 뭉클한데요. 여러분,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이 한 해 동안 '주여, 나를 도우사 세월 허송하지 않고서 어두운 세상 지날 때 햇빛 되게 하여 주십시오!' 오늘 말씀의 제목이 "과연 빛으로 살 수 있는가?", 내가 과연 빛으로 살 수 있는가, 내 한 몸 가누기도 힘든데 내가 어떻게 빛 되는 삶을 살 수 있겠는가? 어떤 그런 면에 있어서 좀 거리감이 느껴진다든지 또 삶의 한계가 느껴지는 분들은 오늘 이 말씀 앞에 바싹 다가 앉는 축복을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말씀에 5절은 이렇게 나와 있어 5절에 뭐라고 나와 있느냐면, *요한일서 1:5, 5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 -먼저 생각할 것은 하나님이 뭐라고 했습니까? 빛이시다. 거꾸로 하면 순서를 거꾸로 하면 안 돼요. 빛이 하나님이다. 이게 아니에요. 우리가 빛이 하나님이라고 그랬을 때에는 뭐 이집트의 태양신을 섬기는 이집트 사람이나 아침에 태양을 향하여 이렇게 뭐라 그럴까요? 향을 피우는 인디안 들의 빛이 하나님이라고 그러면 하나님을 더 잘 경계할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빛이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이 뭐예요? 하나님이 빛이라 이 개념을 이 생각 이 뜻을 잘 이해를 해야 되는 것이에요. 왜냐하면 하나님의 빛이라 그랬을 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우리 지금 핍박과 이 정도의 수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빛이 있으라 하심에 빛이 있었고 기억나시죠?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 그런데 그 빛에는 여러분 우리가 일월 성신, 태양과 달과 그다음에 별과 이런 이제 일월성신이라고 그러는데 태양과 달과 별 이런 걸 언제 지었죠? 며칠째 지었죠? 오늘 이 예배에 오신 여러분 성경 실력 언제 지었어요? 나흘째 지었어요. 나흘째, 근데 첫날 빛이 있으라, 빛이 있어 그러니까 우리가 흔히들 생각하는 이런 빛의 개념하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빛은 완전히 다른 차원이에요.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빛의 개념은 더 순전하고 더 영광스럽고 더 여러분 구약의 쉐키나 영광을 말하는데 인간으로 이해할 수 인간의 머리로서는 다 상상할 수 없는 너무나 놀랍고도, 너무나 순수하고, 너무나 진실하시고, 너무나 의로우신, 포괄적인 빛의 개념이 담겨 있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이렇게 얘기하면 아멘, 그러는데 좀 못 알아듣는 것 같아가지고, 그러니까 우리가 오늘 말씀하시는 이 빛의 이 뜻은 그냥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이나 물리적인 이 정도의 빛이 아니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9장에 보면 사도 바울이 예수 믿는 사람 핍박해가지고 막 죽이려고 그러면서 다마스커스로 막 달리다가 하늘의 빛을 보고 그게 거꾸로 졌어요. 거기 보면 사도행전 26장 13절 보면 뭐라고 나와 있냐면 이렇게 나와 있어. 사도행전 26장 13절에 거기 보면 이렇게 나와 있어요. *사도행전 26:13, 13 왕이여 정오가 되어 길에서 보니 하늘로부터 해보다 더 밝은 빛이 나와 내 동행들을 둘러 비추는지라. -오늘 내가 빛에 대한 얘기를 했을 때, 우리는 일반적으로 빛 하면 태양빛을 생각하는데 여기서 빛은 뭡니까? 해보다 더 밝은 빛이 4일째 만들어진 그런 창조의 태양의 빛보다도 게임이 안 되는 빛이에요. 이 빛은 더 순수하고 더 영광스럽고 더 진리이시고 더 온전하고 더 완벽한 빛이에요. 그래서 이걸 사도바울이 깨닫고 난 다음에 고린도후서 4장 6절에 뭐라고 하냐면, *고린도후서4:6, 6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그러니까 예수님을 통하여 예수님은 진리 자체이시고, 진리의 빛이신데 우리가 상상한 이 정도의 빛이 아니고 너무나 영광스럽고 너무나 온전하고 너무나 순수한 빛이 오늘 이 빛이 여러분들에게 깨달아지기를 바랍니다. 이 빛을 비추는 이 빛이 있는 자들에게는 어떤 축복이 있는가? 오늘 우리가 빛 가운데 거한다고 그랬는데 6절에 보니까, 빛 가운데 거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어떤 사람인가 하면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빛이 아니라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지를 행하지 않는 거짓말을 하고 지를 행하지 않는 그 당시에는 영지주의자라고 있었어요. 영지주의자, 노스티시즘이라고 그러는데 그 사람들은 예수님의 육체로 오심을 부인하고, 영적으로 진리만 깨달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그래갖고 육신은 자기 마음대로 사는 거예요. 옛날에 그 구원파, 여기 세모 구원파, 있잖아요. 그 마음대로, 마음대로 그것 거짓말하는 거 그건 빛 가운데 가하는 것이 아니다. 참된 교재가 없는 것이다. 주님과의 참된 사귐이 없는 것이다. 그러면 주님과의 참된 교재가 있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지난 주일날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주님과의 참된 교재가 있으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주님의 가장 귀한 것들을 우리에게 부어주시는 것이에요. 그래서 오늘 제가 요한일서를 가지고 지금 피해의 복음, 그다음에 지난주에 기쁨의 복음, 오늘은 빛의 복음, 을 말씀할 터인데 우리가 연말연시 하나님 앞에서 받은 기도의 제목이 있죠? 하나님이 여러분들의 삶에 수많은 험산준령, 산악 지역이라도 무슨 신발을 주신다고요? 강철 신발, 강철 신발 주시고, 그다음에 우리에게 지난 주일날 기쁨의 복음을 통하여 기쁨에 뭘 준다고 면류관 기쁨의 모자를 쓰고, 오늘은 빛의 갑옷을 입고, 이 한 해를 살아가야 되는 것이 빛의 갑옷을 입고 그래서 이걸 사랑의 교회 이 한 해 동안 모든 성도들, 우리 찬양대 오케스트라 또 오늘 이 예배에 참석하신 모든 분들이 빛의 갑옷을 입게 되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이 하늘을 뚜벅뚜벅 걸어갈 수가 있는 것이에요. 다시 한 번 강철 신발 신고 그다음에 뭐예요? 빛의 면류관을 쓰고 그다음에 뭡니까? 기쁨의 면류관을 쓰고 여러분도 주일날 설교를 여러 번 해보세요.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요? 다시 뭐예요? 기쁨의 모자를 쓰고, 그다음에 빛이 뭐예요? 갑옷을 입고, 그러니까 오늘 이거 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꼭 필요한 진리를 여러분들이 깨닫게 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은 진리의 빛이신데, 그 빛 대신 주님과의 교제를 하면 주님의 가장 소중한 것을 우리에게 부어주시는데 먼저 빛의 자녀 된 하나님의 빛으로 걸어가는 사람, 빛의 자녀가 된 하나님의 사람에게 주신 축복이 몇 가지, 첫째 이건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빛보다 더 높은 수준이지만 그러나 우리가 물리적으로 우리가 이해하는 면이 있기 때문에 먼저 우리가 빛은 위험을 피하게 해 주실 거예요. 빛 가운데 거하면 주님과의 교제를 또 빛 가운데 거하면 모든 뭘 피할 수 있다. -여러분 여기에 5절에 보니까, I. 빛 가운데 거하면 모든 위험을 피할 수 있다. *요한일서 1:5, 5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 더 없다 그랬어요. 어두움이라는 것은 방향이 없는 상태를 의미해요. 사람들은 빛의 복음이 없으면 방향 감각이 사라지는 것이에요. 우리 앞에 있는 웅덩이와 구덩이에 빠져가지고 어떻게 방향 감각이 없으니까. 그러나 올바른 진리의 빛이 우리 속에 있으면 우리가 방향 감각을 가지고 우리가 위험을 피할 수가 있는 것이에요. ※저는 어릴 때 지금도 기억나는 게 자전거를 중학교 다닐 때 자전거를 타고 막 자전거를 막 열심히 타고 그리고 조금 길이 좀 넓은 데는 내가 잘 아는 길이다. 해가지고 막 달리고 이랬는데 어느 날 저녁에 깜깜한 데 자전거를 타게 됐어요. 이제 시골에 있는 교회를 가게 됐는데, 거기를 제가 잘 아는 길이어서 빛이 없더라도 내가 아는 길이니까 자전거 타고 내가 가겠다고 내가 막 타고 가다가 그냥 어두운 데서 그냥 돌 뿌리에 처해가지고 어땠냐면 옆에 있는 겨울 물에다가 확 몸에 처박혔어요. 사투리를 또랑이라고 그러는데 도랑에 그냥 쳐 박혀가지고 내가 그때 내가 다시는 밤에는 자전거 안탄다. 는 생각을 했어요. 내가 여러분 빛의 가치는 위험을 피하게 해주는 겁니다. 어둠 가운데 걷다가는 나무 가지에 걸릴 수도 있고, 가시에 찔릴 수도 있고, 구덩이에 빠질 수도 있고,, 낭떠러지에 떨어질 수도 있어요. 그런데 영광의 빛을 우리가 진리의 빛을 우리가 확인하고 이 진리의 빛 가운데 우리가 거하게 될 때 인생의 거친 들이나, 독사나, 절벽이나, 수많은 방해들의 나뭇가지도 다 피할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영광스러운 빛을 통하여 우리 앞에 예기치 않게 버티고 있는 가시나 돌멩이나 절벽이나 거친 독사을 다 피할 수 있도록 은혜 주시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하기 전에 10가지 재앙이 애굽에 내렸는데, 9번째 재앙이 뭐냐 하면요. 내가 물어보지 않겠어요 물어보면 또 답을 못할 것 같아 갖고, 9번째 10번째, 10가지 재앙 가운데 10가지 마지막 재앙은 알죠? 장자 죽음 그건 다 알죠? 9번째 재앙은 강도를 막 높여가는데, 애굽의 강물이 피가 되는 것부터 시작해가지고 개구리 뭐부터 시작해가지고 쫙 하는데, 아홉 번째 제일 강도 높은 것 중에 하나가 뭐냐 하면 흑암이었어요. 9번째 재앙이 암흑의 재앙이었어요. 흑암의 재앙이었어요. 흑암을 어두움의 재앙이었는데, 며칠 동안 지속이 됐냐? 3일 동안, 3일 동안, 3일 동안 애굽 쪽의 애굽 나라의 그냥 막 깜깜하게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완벽한 어둠에 임했어요. 모든 것이 중단되었어요. 여러분 만약 3일 동안에 모든 것이 깜깜해가지고 모든 게 중단되고, 인터넷도 안 되고, SNS도 안 되고, 전기도 안 들어오고, 모든 것이 깜깜하다면 여러분 어떡하겠어요? 굉장히 위험한 거죠. 요한계시록 16장에 보면, 그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진노를 내리실 때에 심판 날에 진노를 내리실 때 일곱 대접을 통해 7가지 진노를 내리시는데, 그중에 다섯 번째 대접, 거기에 뭐가 나오는 다섯 번째 대접을 쏟았는데, 요한계시록 16장 10절에 뭐라고 하냐면,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6:10, 10 또 다섯째 천사가 그 대접을 짐승의 왕좌에 쏟으니 그 나라가 곧 어두워지며 사람들이 아파서 자기 혀를 깨물고. -다섯 번째 천사가 그 대접을 짐승의 왕자에 쏟으니 심판하는데 그다음 읽어보겠습니다. 그 나라가 곧 어두워지며 사람들이 아파서 자기 혀를 깨물었다. 완벽한 어둠이 오니까 그 고통이 얼마나 대단한지 자기 혀를 깨무는 것이에요. 오늘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 수많은 어두움과 문제 앞에서 우리 혀를 깨물만한 그런 일도 생기는 거예요. 그런데 대조적으로 출애굽기 10장 23절에 보면 뭐라고 나와 있느냐 함께 보죠. *출애굽기 10:23, 23 그 동안은 사람들이 서로 볼 수 없으며 자기 처소에서 일어나는 자가 없으되 온 이스라엘 자손들이 거주하는 곳에는 빛이 있었더라. -이집트 지역 애굽 사람들이 사는 그쪽에는 완벽한 어둠인데, 이스라엘 사람들이 거주하는 고센 땅에는 빛이 있었더라. 할렐루야!!! 하나는 아주 그냥 아주 극적인 대조죠. 하나는 너무나 암흑이고 하나는 빛이 있는 거예요. 이걸 보고 많은 이방 족속들 가운데 여러 성경을 잡족, 여러 부족 이라고 그러는데 멀티플 트라이브(Multiple Tribe) 여러 족속들이 우리 이스라엘 백성을 따라 가는 게 낫겠네. 이렇게 해서 출애굽 할 때, 잡족 들이 13만 8천 명이나 같이 왔어요. 여러 족속들이 나왔어요. 마음 뭘 말하는가 어둠에 살며 혀를 깨물만한 그런 고통을 갖는 사람들이, 여러분들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놀라운 빛을 보고 주님 앞에 돌아오는 축복을 허락해 주시기를 원하는 것이에요. 어둠을, 그러니까 위험을 피하게 해 주는 빛에요. 두 번째로는 오늘 5절 다시 한 번 그에게는 조금 더 뭡니까? 어둠이 없다. 어둠이 조금 더 없다는 말을 다른 말로 하면 빛 자체이신 예수님이 계시면 어둠이 물러간다. 그 뜻이에요. 빛 가운데 가면 모든 어둠이 다 그냥 어둠이 물러가고 다른 말로 어둠이 드러나는 것이에요. II. 빛 가운데 거하면 모든 어둠이 드러난다. *요한일서 1:5, 5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 -그리고 5절에 어둠이 조금도 없다는 말은 다시 빛 자체이신 예수님이 계시면 어둠이 다 뭐예요? 드러나는 어둠을 다 드러내주는 거예요. 빛은 다들 어둠은 가리우지만, 빛은 다 드러내는 거예요. 빛은 우리의 삶과 연결시키면, 빛을 우리의 삶과 연결시키면 빛은 우리의 현실을 정확하게 볼 수가 있다는 것이에요. 젊은이들이 쓰는 말은 현타,-현실 자각 타이밍이 온 거예요. 빛이 오면 내 속에 있는 내 부족한 어둠을 드러내는 거야. 젊은이들 가운데 내 인생의 목적은 무엇인가? 나는 정말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진정한 삶의 가치는 무엇인가? 죽음이란 무엇인가? 나는 왜 살아야 하나? 나는 내 인생을 어떻게 이해하고 내 삶을 꾸려나갈 것인가? 수많은 난제들이 있는데, 빛이 오면 그 난자들이 빛이 오면 다 드러나게 돼 가지고 수많은 난제에 대한 빛을 발견하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삶이 더 혼란스럽지가 않고 갈 길이 분명해지는 것이 갈 길이 분명해지는 것이에요. 아까 사도행전 26장 13절에 사도바울이 그 태양보다 더 밝은 빛이 비추어짐에, 밝은 빛이 비추어줌에 자기를 비추니까 그다음 구절이 뭐냐 하면요. 주여 뉘시니까 그다음에 주여 내가 무엇을 할까 후아유(Who are you? 주님 누구시냐고, 왓 셀 아이 두-What shell I do, What can I do?)? -내가 뭘 할 것이냐고,,,, 삶의 난제가 해결되기 시작한 거예요. 빛이 비춤으로 사울의 삶이 다, 바울의 삶이 다 드러나게 된 것이에요. 살다 보면 우리가 어두움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일을 할 때도 있습니다. 그걸 어떻게 할지 모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참된 영광의 빛, 신뢰의 빛이 발견되면 영원히 회복되고, 우리의 삶에 아주 그 비참한 그 처절함 들이 해결되는 것이에요. 내 영혼의 햇빛 빛이니 수많은 인생에 이 의문점이 바울처럼 풀리게 되는 거예요. 내 영혼이 해빛 비추니 주님의 영혼과 찬란하고 주의 영광 빛난 광채 내게 비춰주실 때, 그 밝은 얼굴 뵈올 때 내 삶의 모든 어려움들은 드러나게 되고 진리의 빛을 통해 난제가 해결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오늘 앞으로 우리 이제 4월 총선 앞에 놓고 나라가 시끄러울 겁니다. 주여, 이 나라의 수많은 난제들을 주님 진리의 빛을 비춰 가지고 다 드러나게 하여 주십시오. 다 드러나게 하여 주십시오. 다 드러나게 해 주십시오. 그리고 그럴 때, 여러분들이 하나 깨달아야 할 것은, 그 문제를 남의 탓으로 돌리지 말고, 자기 자신을 좀 더 객관화하고, 빛으로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의 문제를 직시를 해야 되는 것이 이런 뜻이에요. 예를 들어서 결혼 생활에 있어서 주님이 다 드러낸다는 게 어떤 뜻이에요? 왜 사람들이 배우자를 버리고 왜 엉뚱한 짓을 합니까? 저 남자와 결혼하면 배우자가 있어도 한 눈 팔면서 저 남자와 혹은 저 여자하고 다시 살면 내가 좀 더 행복해질 것 같은 그런 이상한 잘못된 어떤 매력을 느끼는 거예요. 매력 있다고 생각하니까 바보짓을 하지 매력도 없고 아무것도 없다는데 그런 짓을 하겠습니까? 뭔가 인간적인 뭔가 자기 나름대로 뭐가 있으니까, 그런데 이 진리의 빛은 그 상황 자체를 다 드러내는 거예요. 아까 말한 대로 영적인 현타가 오는 거예요. 현실 자각 타임이 오는 거예요. 내가 매력이 있다고 생각해가지고 배우자가 아닌 사람과 사랑에 빠져가지고 가정이 지루하고 희망이 없이 느껴져 가지고 그래서 조강지처 버리고 새로운 사람과 새 출발을 하겠다고 유혹에 빠진다면, 그게 이제 그게 이제 그런 또 뭔가 거부하기 힘들 정도로 매력이 있어가지고 그런 게 있다면 그 순간 하나님의 진리에 빛이 비춰지면요. 다 드러나게 되는 것이 다 드러나게 되는 것이에요. 지금은 매력적으로 보이지만 앞으로 그것이 얼마나 그 사람을 비참하게 만들고, 그리고 관계된 사람들을 다 상처를 줄 뿐이라는 사실을 그대로 드러내게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아 이거 제대로 아이고야, 이거 내가 잘못되었구나! 내가 이런 짓 하면 안 되겠구나 견적이 나오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제가 결혼 생활을 얘기했지만, 여러분 삶에 수많은 일들이 그런 게 있을 거예요. 지금은 매력적으로 보이지만 하나님의 진리 빛에 오셔가지고 그 어리석은 매력을 어리석은 매력을 어매, 라고 그래요. 어매-어리석은 매력을, 어리석은 매력을 다 드러내게 되면, 아 이게 앞으로는 진짜 지금은 그게 내가 좋아 보이지만 나중에 진짜 나를 상처 주겠네. 오늘 이런 영적인 통찰력을 여러분들에게 주시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이에요. 진리의 빛은 복음의 핵심을 드러내고 그중에서도 생명이 있느냐, 없느냐를 더 드러내는 것이에요. 진리의 빛은 저희 미국 신학교 선배였던 존 네카드 목사님은 이런 말씀을 합니다. ※“참 슬픈 일이 있다. 슬픈 일이 뭐냐 진리의 빛을 비춰 보니까, 죄송하지만 타 종교에는 구원이 없다. 힌두교도 구원이 없고, 타 종교에 구원이 없다. 제가 지금 조심스럽게 설명 드리고 더 강하게 말씀하고 싶은데 하여튼 제가 뭉뚱거려서 타 종교는 구원이 없다. -존 네카드 목사님- -이게 진리의 빛을 비춰보면 드러나는 슬픈 현실이에요. 진리의 빛을 비춰 보니까 천하의 구원을 주실 만한 이름은 예수님밖에 없다 이 말이에요. 오늘 이것이 여러분들에게 영혼의 빛을 진리의 빛에 대한 안목이 떠져가지고 예수님이 내 삶의 참된 구원자이시구나! 이걸 여러분 깨달으셔야 되는 거예요. 그게 슬픈 일이라는 거예요. 그런데 타 종교의 구원이 없는 이 슬픈 일보다도 더 슬픈 일이 있다. 더 슬픈 일이 뭔가 교회 안에서도 진리의 빛에 대해서 눈을 뜨지 못한 교회 안에 가라지 들이 많다. 그건 또 너무 아멘!! 하면 돼. 교회, 교회 안에 오죽하면 아멘 하겠어요? 오죽하면 이게 더 슬픈 일인데 교회 안에 가라지 들이 많은데 현대판 바리새인들, 그 사람들이 영혼들을 해치고 사람을 물어뜯는 늑대 같은 사람들, 오늘 6절 뒤에 있는 것처럼 거짓말을 하고도 진리를 행치 않는 사람들, 교회의 오늘 혹시 그런 성향 그런 거 있다면 우리가 주님의 진리의 빛으로 다시 옮기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이에요. 슬픈 일들 타종교에는 구원이 없다. 교회 안에 있는 더 슬픈 일 가라지들.. 그런데 진리의 빛이 오면, 아까 처음에 위험도 피하게 해주고, 그다음에 모든 어둠움 들을 다 드러내는데, 어두움만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 적극적으로는요. 말라기 4장 2절에 보니까 놀라운 말씀이 있어요. *말라기4:2, 2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할렐루야!,, 치료하는 광선,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가지고 치료하는 광선, 태양빛 정도가 아니라 그 완벽하고도 온전하고도 영광스러운 빛이 비춰지면 이 빛에 대한 눈이 열려지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치유하는 광선을 비춰준다는 것이에요. 너무 아파가지고 몸이 너무 힘들어가지고 내가 이거 어떻게 살면 좋은가 이런 분이 게시판에 오늘 이 말씀이 내게 빛이 된 줄로 믿습니다. 주여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어 주셔서 나도 좀 이렇게 맨날 아파가지고 누워 있는데, 나도 좀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송아지가 펄떡펄떡 뛰잖아요. 오늘 마칠 때 우리가 주님 당신의 사랑의 빛 찬송할 때 여러분 송아지같이 펄쩍펄쩍 뛰는 축복이 있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진리의 빛 치료하는 광선이 비춰지면, 우리는 정말 역동적이에요. 되는 거 역동적으로 이런 말씀을 드려도 문제가 있어요. 그것이 뭐냐 하나님이 이런 은혜의 빛을 비춰주실 때, 그 빛을 등지고 있으면 등지고 있으면 빛이 주시는 축복을 못 누리는 것입니다. 흔히들 말하는 예수님의 반사체가 될 수가 없습니다. 새해에는 하나님의 은혜의 빛을 비춰주실 때, 등을 지고 반대 방향에 서 있지 말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제발 은혜의 빛에 주류, 주류의 메인 스타디움에 서시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삐딱선 타지 말고, 아무리 은혜의 비가 내려도 그릇이 엎어져 있으면 한 방울에 단비도 그릇에 담기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빛을 비춰주셔도 여러분 창문을 꼭꼭 닫아두고 의심의 커튼으로 다 가리고 있으면 빛이 들어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창문이 기쁨과 감사의 창문이 되기를 바라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새로워진 창문이 되기를 바라고, 이렇게 됐을 때, 은혜,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의 빛이 완벽하게 여러분들에게 비춰 들어올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빛은 태양빛 정도가 아니라, 이 예수님의 빛은 너무나 놀랍지만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면에서 빛은 우리에게 위험을 제거해 주고, 빛은 우리의 모든 어둠을 드러내주고, 빛은 우리에게 치료하는 광선을 비춰주는 것인데, 또 하나 있다면 빛은 우리가 빛 가운데까지 빛은 우리에게 영적인 에너지와 생명의 능력을 공급하는 것이에요. 여러분, 빛은 위험을 피하게 해주고, 빛은 어두움을 드러낼 뿐만 아니라 에너지를 주는 영적 에너지를 주는 것이에요. 빛의 가장 큰 특징은 빛은 생명을 주고 벌떡 일어나게 하고 생동감 있게 하고 활발하게 하고 에너지를 주는 것입니다. 빛이 들어올 때에 우리의 삶이 어떻게 생동감을 줍니까? 시편 27편 1절에 보니까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III. 빛에 거하면 모든 참된 힘을 공급 받는다. *시편 27:1, 1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이 빛이 들어오면 두려움이 사라지는 것이에요. 삶에 은근히 배어 있는 나도 모르는 뭔가 2%로 뭔가 복잡하고 뭔가 아픈 거, 뭔가 두통 나는 거, 그 모든 것들을 진리의 빛 가운데서 다 제거하는 영적인 에너지와 능력이 여러분들이 있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어두운 밤에는 어려운 일들이 많지만 아침에 밝은 태양이 떠오를 때 잠든 세상을 비추는 빛을 비춰주는 것이에요. 다시 시작할 힘을 주시는 것이 예를 들어 설명하는 것이 빛이신 하나님과 동행할 때 파괴된 것들을 고치시고 생명력 있는 삶을 살도록 만들어 주십니다. 그럴 때 엎어져 있지 아니하고, 절망 속에 그냥 헤매지 아니하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의 에너지가 고갈될 때마다 빛이신 주님 앞에 나와 찬양하고 기도하기를 바랍니다. 빛은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이 빛이시기 때문에 빛 되신 주, 어둠 가운데 비춰 주사 내 눈을 열어주십시오. 비추소서 우리의 삶에 주님 당신의 사랑의 빛을 비춰주십시오. 오늘 저 빛은 위험을 피하게 해주고 빛은 어둠을 드러내고 빛은 우리에게 영적 에너지를 준다고 그랬어요. 그러니까 에너자이저가 되고 남들에게 에너지를 주고, 에너지 뺏는 사람 되지 마시고, 그걸 위해서 우리가 크게 두 가지 적용을 하겠어요. 첫 째 적용이 뭘까요? 국가적으로, 우리 한국교회 앞에서 한국교회 앞에 뭘 적용할 것인가? 아파하는 사람들과 그러면 한국 교회 우리가 빛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아파하는 자와 함께 아파하고, 그다음에 슬퍼하는 자와 함께 슬퍼하고, 기뻐하는 자와 함께 기뻐하고 같은 마음 같은 가족 의식, 같은 동료 의식, 같은 형제자매의 어떤 브라더시스터 의식, 이걸 가질 때 하나님께서 이 민족을 향한 빛의 역할을 감당해 주시리라고 믿습니다. 이거예요. 무슨 뜻인가 하면, 어느 날 예수님께 요한복음 8장 가면 간음하다가 잡힌 여인을 데리고 왔어요. 바리새인들 소위 잘 나간다는 종교 지도자들이 여인이 현장 잡힌 여자를 데리고 와가지고 막 내팽개치면서, 선생님 이 여자 어떡하면 좋습니까? 모세의 율법에 의하면 이 여자 돌로 처 죽여야 돼. 그런데 선생님 맨날 사랑을 강조했으니, 그럼 처 죽이지 말라 그러면 율법을 범하게 되고, 그러면 또 저기 뭐야 처 죽이라. 그러면 사랑 강조는 어긋난다고 그래가지고, 딱 추레베 걸어가지고 막 그랬어요. 그럴 때 예수님께서 무슨 말을 하느냐?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 그 여인과 그 여인에 대해 주님께서는 너 어쩌다 이렇게 됐네 같은 식구 같은 마음, 같은 누이 같은 마음으로 같은, 같은 가족 같은 마음으로, 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그리고 요한복음 8장 11절에 그렇게 말씀하시고 12절이 너무나 중요한 요한 8장 12절에 시작 *요한복음 8:12, 12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아멘, 그러니까 아파하는 자와 함께 아파하라는 거예요. 이게 뭘 말하는가 하면 한국교회 안에 무슨 어떤 사람, 유체이탈-遺體離脫, 화법의 사람들이 있어요. 자기는 잘났고 자기는 괜찮고 자기는 어려운데 다 잘못됐다는 거야. 한국교회가 세속화돼 있다. 한국교회가 너무 우민화되어 있다. 한국교회가 너무 부족하다. 뭐가 어떻다 뭐가 어떻다 막 뭐라고 공격하는 거예요. 물론 우리가 조심조심하고 우리가 고쳐야 할 거 많이 있지만 여러분 가족은요. 그래 하면 안 되는 거에요. 가족은 같이 마음 아파해야 되는 거예요. 내 자식은 아무리 잘못해도 내 자식 잘 되기를 원하는 것이 우리 마음이에요. 자식이 잘못했다고, 부모 진짜 부모는 자식이 잘못하면 가슴이 같이 가슴 아파하고, 너 어쩌다가 이렇게 됐냐고, 진짜 집안의 가장은 집 밖에 나가서 자식 욕 안 합니다. 흉악한 자식이라도 돌아오길 원해야지 어떻게 비난만 하는 겁니까? 주님은 우리에게 위대한 비판자들이라고 말하지 않고 참된 같은 목자의 심정을 지닌 같은 마음을 가지라고,,, 한국교회와 여러분 자신을 일치시켜야 되는 것이고, 가족이 돼야 되는 거에요.. 오늘 우리 사랑의 교회 교인들, 아니 한국 교회 교인들이 서로가 한 가족처럼 일치가 돼가지고, 우리에게도 부족한 점들은 우리가 회개하지만, 우리가 서로를 아끼고 보호하고 유체이탈 화법을 가지고 누가 어떻다 뭐라 그렇다. 여러분, 그러면 안 되는 거예요. 심판자를 키우면 안 되는 거예요. 그래야 우리가 한국교회가 시대 앞에 빛으로 소금으로 살 수 있는 것이에요. 그동안 우리 신학교가 너무 비판적 선지자들을 많이 키웠어요. 이제는 참된 목자들을 키워야 할 줄로 믿는 것이에요. 비판적 선지자 키우지 말고, 참된 목자 키우고, 그래서 이 안에 또한 저희 교회 제자 훈련 사역 훈련하면서 참된 목자들 키우고, 순장 반에서 참된 목자들 키우고, 제사장적 책임으로 이 시대를 섬기겠다. 그게 바로 빛으로 사는 것이에요. 그게 바로 이렇게 될 때, 우리가 진짜 복음을 깨닫고, 어두움의 열매인 공로 의식을 내려놓고 빛의 열매인 은혜 의식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이고, 이렇게 될 때 어두움의 열매인 자아실현을 내려놓고 빛의 열매인 자기 부인으로 사는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유체이탈 화법을 쓰지 말고 같이 마음 아파하고 심판자가 되지 말고 같이 목자가 되고 그렇게 해서 한국교회가 시대 앞에 빛이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 적용, 또 하나, 우리 개인적으로 적용할 걸 어떻게 빛으로 살 수 있을 것인가 저는 참 좋은 멘토들을 귀한 멘토들을 통하여 많은 제가 은혜를 받았고, 또 그런데 멘토들 가운데 다이렉트 멘토가 있고 직접 멘토가 있고, 인다렉트 멘토가 있어요. 간접 멘토가 있어요. 간접 멘토는 어릴 때부터 책을 읽으면서 찰하던 스폴존이라든지, 시티스터들, 저에게는 또 데이빗 브레인어드라든지 이런 사람도 있지만 그중에 한 명이 저에게 참 제가 제게 좋은 멘토 중에 하나가 어릴 때 책 읽은 가운데서 땅콩 박사라 그래가지고 닥터 조지 워싱턴 카버라고 있어요. 이분은 흑인으로 태어났어요. 너무나 비참하게 태어났어요. 얼마나 비참하게 태어났냐면요. 조지 워싱턴 카버는요. 생일을 몰라요. 너무나 비참하게 태어나고 그냥 상처와 혀를 깨물고 죽을 수밖에 없는 그런 환경이었어요. 근데 이분이 복음의 빛을 통해 하나님을 만났어요. 미국 노예로 태어나가지고 한탄할 수 있는 인생이었지만, 복음의 빛을 받아가지고 영적 역동성을 가지고 미국이 배출한 가장 위대한 과학자 중에 하나가 되었어요. 그의 연구로 전 세계가 축복을 받았어요. 그가 어느 날 하나님 앞에 이런 질문을 했어요.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 왜 세상을 만드셨습니까? 그랬어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그의 마음에 이런 깨달음을 주셨어요. 야 그거 너무 너에게는 무리한 질문이다. 우주만물을 너의 지성으로 아는 거 쉽지 않다. 그러니까 이 카버가 하나님 그러면 왜 사람을 만드셨습니까? 그러니까 그것도 어려운 질문이다. 너의 지성이 알아서 쉽지 않다. 네가 깨달을 수 있는 질문 좀 하라. 그리고 갑자기 그의 마음에 어떤 섬광처럼 빛이 비추었는데, 주님, 그렇다면 땅콩은 왜 만드셨습니까? 자기가 고민하다. 땅콩 생각이 나가지고 주님이 땅콩을 왜 만드셨냐고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뭐라고 대답해 야 너 진짜 제대로 질문했구나. 네가 알아들을 수 있는 질문을 했구나. 그 순간 그 순간 워싱턴 카버가 자기 뭐야 방에서 밭으로 쫓아 나가지고 땅콩을 한 움큼 들고 자기 실험실로 들어갔어요. 그때부터 하나님께서 땅콩에 감춰진 비밀을 알려주기 시작했어요. 남들이 보기에 땅콩인 거 아무것도 아니죠. 그런데 거기에 놀라운 것이 담겨 있었어요. 여러분 제가 야고보서 1장 17절 앞에 말씀을 안 드리고 넘어갔는데요. *야고보서 1:17, 17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우리가 진리의 빛이 비춰지고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하면 뭐라고 나와 있냐면요. 같이 읽겠습니다. 할렐루야!!! 빛들의 아버지, 빛이신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 아버지가 빛이신, 그 빛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면 온갖 좋은 은사와, 그다음에 너무 멋있고 귀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부어주시는 것이에요. 그 땅콩이 어떻게 됩니까? 물어보니 하니까 하나님께서 막 이 땅콩에 원해서 온갖 좋은 선물과 온갖 좋은 은사를 다 부어주시니까 이 닥터 조지 워싱턴 카버가 흑인 흑인으로 처음으로 박사가 된 땅콩을 통해서 박사가 되는데 뭐 나오느냐 땅콩을 통하여 기쁨과 에너지를 체험하고 위험을 피하고 다 드러나게 하시니까 땅콩에서 땅콩버터, 땅콩밍크, 땅콩 잉크 왜 땅콩에서 어떻게 잉크가 나오는지 모르겠어요. 잉크 땅콩물감, 구두약, 연고, 크림 등 무려 땅콩에서 105가지 음식, 105가지 음식과 200여 가지의 실용품을 발명해가지고 땅콩 박사라는 별명을 갖게 됐습니다. 제가 오늘 말씀 여러분들에게 주신 땅콩이 뭐예요? 주님의 진리의 빛으로 여러분들의 땅콩을 어떻게 비출 거예요? 그 땅콩이 나에게는 가정 예배가 될 수도 있고, 여러분들이 갖고 있는 뭐가 될 수도 있고 여러분의 직업이 될 수도 있고, 여러분 삶의 현장에서 제가 다 모르는 어떤 것이 될 수가 있어요. 그 땅콩에 하나님의 진리의 빛을 비춰주시기 바랍니다. 태양빛 정도가 아니고, 온전하고도 완벽한 빛을 비춰주시면 빛으로 빛의 갑옷으로 무장되면 많은 것들, 많은 지혜들, 많은 열매들, 다시 한 번 하나님의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기 때문에 이 한 해 동안 우리 모든 성도들 빛 안에서 걷는 능력을 주시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빛 대신 주님이 주신 에너지와 지혜를 가지고 영적인 힘을 가지고, 닥터 조지 워싱턴 카버 같은 이 빛의 능력으로 우리 교회와 여러분들에게 주신 소명을 이루어가는 귀한 한 해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요약 주님의 참된 생명의 교제 가운데 거짓은 버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의 갑옷을 입는 인생으로 살아가며, 흑암 중에 고통 하는 영혼들이 해보다 더 밝은 찬란한 진리의 빛을 보아야 한다. 인생의 수수께끼 같은 난제들이 다 해결되고, 개인과 공동체와 우리 민족 위에 치료의 광선으로 은혜로 비추어 주심을 믿고 빛의 주류에 서서, 목자의 심정을 가진 지도자의 복을 허락하심을 믿고 진리의 능력을 받아 거듭난 인생, 순종의 삶을 살아서 이 세상의 빛으로 살아가야 한다. -빛의 근원이신 주님과의 깊은 교재를 깨닫게 하심을 감사하며, 위로부터 부어주시는 온갖 귀한 것들을 깨닫고 경험하는 이 한 해가 되어야 한다. 위험으로부터 피하게 하시는 빛의 능력을 받게 하시니 어두움을 드러내고 수수께끼와 같은 난제들을 다 풀리게 하는 진리의 능력을 확보하는 자로 거듭나야 한다.. 바울 사도 같이 참 빛 앞에 자신을 깨닫고, What can I do?, 내가 뭘 할 수 있는지 깨닫고, 어둠의 열매인 공로 의식은 내려놓고, 빛의 열매인 은혜의 의식으로 완전히 무장한 순종의 삶, 빛과 소금의 살아가야 한다. 우리 가운데 치유하는 광선을 필요한 분들에게는 지금 주님의 빛의 갑옷을 입혀주어야 한다..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빛 가운데 행하는 자들은 그들이 하나님을 알고 있음을 보여 준다.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즉, 그들은 우리와 함께, 우리는 그들과 함께, 또한 우리와 그들 모두는 하나님과 함께 사귐이 있게 된다.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적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그의 피는 우리를 위하여 거룩한 능력을 행하셨으며, 이로써 죄는 더욱 더 뿌리 뽑혀지고 종국에는 온전히 소멸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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