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주후 2021년 12월 12일
제목: ''기쁨의 시작, 성육신의 신비''
말씀: 누가복음 2:10~14
기도: 하상범 부목사님
사회: 장광천 부목사님
찬양인도: 쉐키나ㆍ영광찬양대

설교자: 오정현 담임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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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10~14,
10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11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12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13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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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비유-하나님 나라
하나님 나라의 실체가 분명한 증거는 주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이다. 저나 우리 생애를 돌아보면 일 년의 가장 아름다운 계절이 언제인가? 오늘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성탄이 기대감과 또 설레임, 신선함 꿈과 희망을 주신다. 그래서 항상 좋다. 기대감 따뜻함 꿈과 희망을 갖게 된다. 오늘 특별한 것도 있다. 오늘 아침에는 더욱 감사한 일이었다. 평소보다 더 특이한 것은 넥타이~~ 작년 성탄절은 텅 비었었다. 올해는 작년 것까지 갑절로 은혜받기를 원한다.
 
*스가랴 9:12,
12 갇혀 있으나 소망을 품은 자들아 너희는 요새로 돌아올지니라 내가 오늘도 이르노라 내가 네게 갑절이나 갚을 것이라.
- 소망과 영광을 갑절이나 주신다는 것이다. 갑절의 은혜를 주실 줄 믿는다. 어떻게 하면 갑절로 받는가? 지난 교회 역사에서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매년 하나님의 은혜와 성탄의 기쁨은 동일했다. 문제는 우리가 갑절의 은혜를 받을 수 있도록 은혜의 그릇, 기쁨의 그릇, 믿음의 그릇을 우리가 두 배로 늘리면 된다. 먼저 환경을 바꾸고 내가 먼저 은혜와 기쁨의 용량을 키우면 된다. 여러분의 그릇이 작거나 그릇을 엎어놓으면 못 받는다. 상황, 환경 때문에 기쁨이 감소한다. 엎어놓으면 은혜를 받을 수 가 없다. 오늘 본문의 목자들은 기쁨의 그릇을 완전히 오픈했다.
 
존경하는 디트리 본 헤프 목사님이 글을 읽다가 제가 와 닿는 내용이 있었다. 그는 히틀러 이야기 하다가 그는 감옥에 갇히고 순교한 사람이다. 사형수의 목사님이셨다. 대강절 둘째 주에 지금 이 시기이다. 그의 제자이자 친구인 에버하트에게 보낸 편지에 이 강림절 주간에 형제들과 나눈 기쁨을 이번에는 자매와 함께 나누기를 바란다고 했다. '내가 감옥에서 공습경보가 울릴 때마다 불안이 있지만 그때마다 새롭게 주시는 평강과 기쁨도 있다네.' '이 기쁨이 다른 사람들에게 전염될 수 있게 하라는 것이다.  2차 대전 속에서도 감옥에는 소망도 빛도 없는 곳이다. 그러나 공습의 불안이 가득한 그 감옥에서, 사형을 앞두고 자신이 경험한 성탄의 기쁨을 친구와 나누고자 했다.우리가 그것을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누리게 되면 그것은 평강과 기쁨이 자신뿐만 아니라 함께 있는 사람들에게도 그대로 전염되기에 이 글을 쓴 것이다. 우리는 코로나 펜데믹으로 인해서 자유를 잃어버렸다. 어쩔 수 없는 상황 속에서 행동의 자유를 잃어버리는 시대를 살고 있다. 우리도 마스크를 하고 있다가 아무도 안 보면 벗는다. 이게 얼마나 부자유한가? 어떤 사람들은 부자유한 가운데 감옥과 같은 환경이나 지금 상황이 그러할지라도 성탄의 기쁨과 평안을 누릴 수만 있다면 이것이 체화 될 수 있다면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그 기쁨을 나눌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예를 들어서 본 헤프처럼 죽음을 앞둔 죄수가 되었다든지 아니면 공습경보의 상황보다는 우리가 더 나은 환경에 있는 것이다. 그 사람보다 낫다 우리 성도들이 본 헤프처럼 그 진정한 성탄의 그 기쁨을 이 자리에서 즉시 누리길 원한다. 환경을 극복하는 믿음을 누릴 수 있기를 원한다.
 
지난 수요일 제자반, 사역반 수료예배를 드렸다. 어떤 대기업에 다니는 형제가 굉장히 바쁜 상황에서 제자훈련을 했는데, 질문을 해보았다. 코로나로 인해서 대기업은 예배를 드리거나 교회에 가지 못하게 한다고 들었다. 그런데 어떻게 훈련을 했냐고 질문했더니 아니라고 했다. 오히려 코로나로 인해서 오히려 회식도 없고 코로나로 인해서 재택근무도 했기에 더 훈련에 훨씬 더 좋은 환경이었다고 대답했다. 그말이 와 닿았다. 극복한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회사 핑계로 예배도 안 드리는데 오히려 이 시간들을 기회로 삼아서 더 집중하고 환경을 극복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주신 선물은 개봉되어야 한다. 한국은 선물을 받으면 갖고 집에 간다. 그러나 서구는 선물 받으면 그 자리에서 풀어본다. 선물을 개봉하지 않으면 선물의 기쁨을 누릴 수가 없는 것이다. 성탄절은 예수님의 오심을 기뻐하는 날이다. 이 기쁨은 예수님의 의의 피로 즐거워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피, 의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즐거워한다. 복음 안에서의 기쁨은 예수님의 피로 그 확보된 하나님과의 화목의 선물이다. 그 기쁨을 선반위에 올려놓고 팽개쳐 놓으면 안 된다. 누구에게 귀한 선물을 받고도 귀한 선물인지도 모르고 선반위에 방치해 두었다면 어리석은 일이다. 오늘 이 시간에 이 말씀 가운데 성령 충만한 공동체, 하나님의 신실한 우리가 함께 주신 선물을 개봉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말해보면,
 
오늘 본문은 성탄의 전형적인 본문 중에 하나이다. 이 본문에 두드러진 것은 기쁨인 것이다.
*누가복음 2:10,
10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기쁨, 소식을 전한다고 말씀하고 있다.
 
*누가복음 2:14,
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이 기쁨이 반복되고 있다. 10절에 어릴 적에 미칠 정도의 기쁨을 체험했다. 이것은 다른 말이 아니고 10절에 보면 미칠 정도로 bring 이었다. 오버플로어(overflow)인 것이다. 미칠 정도로 기쁘다는 뜻이다. 그것을 주님이 그렇게 하신 것이다. 두려움 대신에 기쁨이라는 것이다.
*누가복음 2:10,
10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기뻐하는 이유가 기쁨의 선물을 개봉하고 확실하게 우리가 판단하는 이유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누가복음 2:11-12,
11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12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구유에 계시는 분, 성육신 하신 것이다.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것이다. 그것을 제대로 깨달으면 기쁨의 문이 열린다는 것이다.
-인간의 말로는 감히 설명할 수 없다. 강보에 싸인 구유에 놓인 아이를 보면 기쁘다는 것이다. 미칠 큰 기쁨의 소식이다. 사람이 언어로 어떻게 표현하겠는가? 창조주 하나님께서 육신의 몸을 입으시고 예루살렘의 지방의 베들레헴의 시골뜨기 어린 아이로 태어나신 이 신비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그 가운데서도 제 마음에 와 닿는 필립 얀시 라는 분의 말이 기억된다. 그 글이 와 닿았다.
 
I. 구유에 놓인 아기를 보라 그리하면 기쁨의 시작이 되리라.
-성육신의 기쁨을 깨달으라, 그리하면 기쁨이 갑절하게 된다. 선반위에 풀지 않은 선물 박스가 되지 말고 열려진 기쁨이 되길 소망한다.

*누가복음 2:12,
12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 강보에 싸인 분-하나님이 성육신이 되셨다. 이것은 인간의 말로는 감히 설명할 수 없다. 창조주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으셨다. 사람의 언어로 어떻게 표현하겠는가? 창조주 하나님이 시골뜨기 어린애가 베들레헴에 태어나신 이것을 이 신비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제 마음에 와 닿았던 필립 얀시의 말이 있다.


※"창조주가 지구상의 피조물 가운데 한 부분이 되셨다는 이 사실이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어디에도 견줄 수 없고 전혀 생소하며 유일무이한 사건이다. 춥고 어두운 어느 날 밤 베들레헴의 굴곡진 언덕 위에서 영적 세계와 물질세계가 극적으로 교차된 곳이다. 처음도 없고 나중도 없으신 하나님께서 시간과 공간 안에 들어오신 것이 성육신이다." -필립얀시-
   -귀하게 표현 했다. 영적 세계와 물질세계가 극적으로 교차된 곳이 성육신이다. 구체적으로 여기서 아기는 갓난아기를 말하는 것이다.

-여기서 아기는 갓난아이를 말하는 것이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다른 아이들처럼 말하는 것도 배우셔야 되었고 걷는 법도 배우셔야 했고, 혼자 옷 입는 것도 배우셔야 했다. 황송하지만 어린 아이로 태어나셨기에 기저귀도 차셔야 했다. 
우리 하나님은 전지하신 하나님이시다. 전지하신 하나님(omnicious),
우리 하나님은 전지하신 하나님이신데 그 당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쓰던 아람어를 한 자 한 자 배우셔야 했다.
우리 하나님은 무소부재 하신 분이시다. 그 하나님이 걸음마를 배워 이동하셔야 되었다.
우리 하나님은 옴니포텐트(omnipotent), 우리 하나님은 온 우주를 한 눈으로 다 바라보시는 그분께서 나사렛의 좁은 오솔길과 유대의 광야와 바위 위와 예루살렘 복잡한 거리를 쳐다보셔야만 했다.

물질을 만드신 창조주 그 하나님이 물질의 형태를 취하신 것이다. 화가가 자신이 그린 한 점이 되듯이 극작가가 자신이 쓴 연극대본이 등장인물이 되듯이 하나님께서는 성육신으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것이다. 이 어떻게 가능한가?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시기에 우리 하나님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기 때문에 이것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말씀 한마디로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라면 아무것도 없는 From nothing to something~, 아무것도 없는 데서 죽은 자를 살리시고 없는 것을 있게 하신 하나님이시라면 성육신은 가능하다고 믿는다.

앞에 천사가 마리아에게 수태고지를 했다.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겠다고 하는 것이다. 마리아가 그게 어떻게 되겠냐고 한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믿음으로 가능한 것이다. 창조자를 믿으면 가능한 것이다.

 
*누가복음 1:37,
37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구약에 사라가 아들을 낳겠다고 하나님이 하시니 '흥'하고 웃었다. 어떻게 가능하냐고 했을 때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창세기 18:14,
14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우리가 그걸 믿고 성육신을 믿을 때, 희한하게도 우리에게 기쁨이 생긴다는 것이다. 좀 더 깊이 들어가면 여러분과 제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다. 영접하는 자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이 신비가 너무 신비하다. 이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사실 인간이 더러운 인간이 죄악 된 인간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이 신비는 사실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더는 이 엄청난 표적을 깨닫도록 창조주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것이다. 더더구나 강보에 싸여서 오셨다. 하나님은 의도하지 않은 완전하지 못한 결함 속으로 약함 속으로 오셨다. 특별히 구유에 누워있음을 생각해야 한다.
 
*누가복음 2:12,
12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구유는 동물들의 여물통과 같은 것이다. 하늘의 황태자가 따뜻하고 안락한 집안에서 포근한 이불에 누인 것이 아니라 동물 냄새가 나는 그 마구간에서 벌레가 기어 다니는 딱딱하고 차가운 여물통에 누워계시는 것이 이 얼마나 신비한지 모른다.
이 구유에 여물통에 누워계신 이 예수님이 12절 하반에 보면 '너희에게 표적'이라고 하신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너희들에게는 기적 같은 사인이라고 하신다. 창조주 하나님이 그 비천한 곳에 계신 이유가 무엇인가? 신학적으로 자기 비하, 자기 비움 자기 비천함을 이렇게 보여주신 이유가 무엇인가? 이 세상에는 모든 비천한 사람들 어렵고 고통당하는 사람들, 나는 끝났다고 하는 모든 사람들 모두가 다 구원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낮고 낮은 자리에 내려오신 이유는 약하고 약한 모습으로 내려오신 이유는 이 세상에서 어떤 자기 한계 때문에 구원 받지 못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말이다. 오늘도 젊은이 하나가 울면서 나온 젊은 아이가 있다. 우리 엄마가 올해를 못 넘긴다는 것이다. 내가 기도해 주는데 가슴이 찡했다. 여러분 어떤 경우에도 코로나 같은 상황에서도 어떤 어려움도 주님이 주시는 기쁨을 해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게 여물통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아무리 어려워도, 아무리 어려운 환경에서도 그래도 복음의 신비를 통한 예수님이 주신 기쁨을 해칠 것은 없다는 것이다. 구유에 놓인 의미는 장소의 의미는 장소에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거기에 누가 누여있느냐가 더 중요하다. 헤롯의 왕궁에는 주님이 계시지 않았고 구유에는 예수님이 계신 것이다. 구유에는 하나님이 함께 계신 것이다.
 
*누가복음 2:20,
20 목자들은 자기들에게 이르던 바와 같이 듣고 본 그 모든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 가니라.
-찬송하며 돌아갔다는 것은 기쁨의 선포요 기쁨의 표출이요 기쁨의 증거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목자들뿐만 아니라 이 말씀을 깨달은 사람들은 성육신의 신비를 깨달은 사람들, 예컨대 천사들, 마리아 남성 대표로 시몬 여성 대표로 안나, 동방 박사들 그분들이 가진 성탄의 계절에 체험한 증거, 모든 상황을 기쁨으로 표출된 것이다. 그래서 성육신의 신비를 제대로 깨닫게 되면 기쁨의 문을 열 수가 있다. 또 하나는 성육신의 기쁨이 왜 우리에게 기쁨을 가져다주는가?
 
II. 성육신의 신비가 왜 큰 기쁨을 가져다주는가?


-몇 가지가 있지만 우리는 예수님을 믿어도 우리가 머리로만 믿으면 안 되고 예수님의 심정을 깨달아야 한다. 예수님의 심정을 제일 잘 깨달은 자는 요한이다. 주님의 가슴에 귀를 대고 주님의 심정을 깨달았다. 그래서 요한복음이라는 성경을 썼다. 요한복음 앞에 이 예수님의 성육신의 신비를 완벽하게 표현했다.
 
*요한복음 1:14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한이 깨달은 성육신의 완벽한 해석이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고 주님이 말구유에 계시고 인간의 몸으로 오신 모습을 깨닫고 나니까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게 된다고 말한다. 왜 기쁜가 이 팬데믹 시대에 살아가는 이 어려운 가운데서도 어떤 감옥 같이 갇힌 가운데서도, 또 본 헤퍼 같은 경우는 너무나 척박한 가운데서도 왜 기쁠까? 왜 기쁜 일이냐면 이 놀라운 기쁨의 핵심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기 때문이다.

첫째-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는 신비

둘째-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로 충만하게 되는 신비.
-찬양대가 나와서 준비한 것을 봐도 그렇다. 그래서 귀하다. 묵묵하게 준비하고 찬양대처럼 그렇다. 다 외워서 악보도 없이 하고 있다.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면서 모든 일들의 목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 일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사모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목도해야 하고 하나님의 영광 자체를 우리가 체험해야 하는데 하나님의 영광과 가장 영광스럽게 밀접하게 되는 것은 성육신 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제대로 깨달으면 하나님이 영광의 눈이 열린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이 일생에 가장 중요한 주제이다. 모세는 하나님의 신실한 종으로 하나님께 쓰임 받았지만 모세의 일생의 소원은 출애굽기를 보면 나온다.
 
*출애굽기 33:18-23,
18 모세가 이르되 원하건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20 또 이르시되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모세 같이 그렇게 대단한 사람도 하나님의 찬란한 영광을 목도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23 손을 거두리니 네가 내 등을 볼 것이요 얼굴은 보지 못하리라.
-모세는 하나님의 얼굴을 직접 대면하지 못하고 그 하나의 중요한 성경해석이 있지만 모세가 그렇게 하나님을 사모했는데 찬란한 하나님의 영광을 직접 목도할 수 없었다. 그러나 우리가 21세기에 살아가는 우리에게 성육신 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직접 목도한 것이다. 요한이 이것을 깨달은 것이다. 좀 깊이 들어가면 모세 형님도 누리지 못했던 그 찬란한 영광을 누리지 못했던 영광을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이 영광 자본에 관해서 너무나도 현격한 차이의 은혜를 받아 누리게 된 것이다. 이 영광의 눈이 열리게 되면 찬양이 나온다. 성육신의 은혜를 깨닫게 된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목도하는 심정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요한복음 1:14절에 나온 것처럼 그렇다.
 
*요한복음 1:14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주님이 찬란한 영광을 모세도 누리지 못한 그 은혜를 우리가 누리게 될 것이다. 이 때부터 은혜와 진리의 봇물이 터진다. 은혜와 진리의 물꼬가 터뜨려지는 것이다. 은혜와 진리에 대해서 눈이 열리는 것이다. 이 시간 말씀 가운데 거하시는 이 진리가 오늘 창조주 하나님이 말씀으로 하시면 뭐가 안 되겠냐고 깨달아지고 내 것으로 확인 될 때에 여러분은 진리의 물꼬를 터뜨리는 것이다. 

성육신의 신비-하나님의 은혜와 진리로 충만하게 되는 신비.


은혜와 진리로 목욕한 증거가 무어냐면 바로 기쁨이다. 성탄의 계절에 세 번에 걸쳐서 이 기쁨이 시작이고 다음 시간은 만개하고 그 다음에는 딱 내 손에 잡을 수 있도록 한 분 한 분 맞춤형 기끔을 주시길 소망한다. 
  
*적용
이 기쁨에 관해서 빨리가서 하라고 하신다. 기쁨에 관해서는 속도전을 펼치라는 것이다. 오늘 이 말씀은 그대로 기뻐해야 한다. 어려움과 힘든 일이 있다할지라도 예수님으로 인해서 기뻐하는 것이다. 성육신의 진리로 눈이 열리게 되면 기쁨을 결단해 버리는 것이다. 목자들의 입장에서는 찾아가야 하나? 양들을 두고 어떻게 가지? 내 대신 대타를 구해야 할 텐데? 라고 하지 말고 뭉기적거리면 안 된다. 여러분이 없을 때 부흥이 일어나면 어쩔 것인가? 없을 때 그러면 안 된다. 즉각적으로 가고 즉각적으로 반응해야 한다.

*누가복음 2:16,

16 빨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서.

첫째는 기쁨에 관해서 속도전을 펼치라. 즉시로
-즉각적으로 반응해야 한다.
둘째는 기쁨을 기대해야 한다.
셋째는 기쁨의 얼굴을 회복해야 한다.
-오늘 목자들은 기대를 가슴에 품고 한 밤에 모험의 길을 떠났다. 마리아와 요셉은 기대를 품고 길을 떠났다. 무엇인지 모르고 동방 박사들은 먼길에 기대를 품고 떠났다. 오늘 말씀으로 인해 무엇인지 모르지만 이 코로나 시대에 오늘 이 말씀을 통한 이 기대를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목도하게 해달라고 해야 하고 기대를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하게 기도해야 한다. 목자들은 자기의 삶의 터전으로 돌아와서 기쁨을 체험하게 되었고 동방 박사들은 아기 예수를 만남을 가지고 고국으로 돌아가고 시몬과 안나도 기쁨으로 예수님을 보고 자기의 일에 충실하게 되고 요셉과 마리아는 말로 다할 수 없었다.
 
셋째는 기쁨의 얼굴을 회복해야 한다.

모세는 하나님이 등만 보았어도 얼굴이 너무 찬란해서 얼굴을 가렸다. 모세의 찬란한 얼굴을 상상해보라. 지금은 눈들이 슬픔이 너무 많다. 마스크 속에 감추어진 우리의 얼굴을 기쁨으로 다시 한 번 표정을 바꾸어보라. 진정으로 복음의 은혜를 깨닫게 되면 그것이 기쁨으로 회복된다. 스데반은 돌로 쳐 죽임을 당하고 말로 다할 수 없는 위기에도 갑자기 하늘을 우러러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게 되니까 돌에 맞는 그 상황 가운데서도 스데반의 얼굴이 천사와 같았다.
 
*사도행전 6:15,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
-오늘 참여한 여러분의 얼굴도 천사의 얼굴이 되길 바란다. 은혜와 진리의 봇물이 터지는 삶이 되길 바란다. 한나는 자식, 가정문제로 집안에 또 다른 여자가 있고 했지만 그런 고통스런 환경에서도 대성 통곡하면서 하나님을 붙잡고 기도하고 은혜와 진리를 깨닫게 된 것이다.
 
사무엘상 1:18,
18 이르되 당신의 여종이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하고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근심 빛이 없더라.
-여러분들의 얼굴에도 그렇게 되길 소원한다. 세상 사람들과 뭐가 달라야 하는가?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얼굴의 수색을 멈추고 은혜의 봇물이 터짐을 경험해야 한다. 그러면 세상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다르다는 것을 알 것이다. 여러분이 성탄을 표현한다면 무엇이라고 표현하겠는가?
 
▷성탄은 기쁨이다
 
♣요약
나의 굴곡진 환경과 처지를 초월하여 소망을 갑절로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평생이 되고 가장 낮은 곳으로 오신 성육신하신 우리의 최고의 선물인 예수 그리스도가 내 안에서 속히 개봉되어 기쁨이 더 넘쳐흘러서 전이되고 전하여서 인생의 밑바닥에서도 찬란한 기쁨이 흘러나와 믿음의 표적이 되기를 소원해야 한다. 주님이 주신 귀한 성탄의 선물을 인생의 선반에 올려놓지 말고 그것을 공개하고 체험하고 성육신의 신비를 깨달아서 하나님의 찬란한 영광을 목도하여 우리가 다 평생 은혜의 봇물이 넘쳐서 세상 사람들의 본이 되고 이 성탄의 기쁨을 모두에게 공개하고 기뻐하는 복음의 삶이 되어야 한다.
 
-메시아 탄생 소식을 처음 들은 사람은 양치는 목자들이었다. 목자라는 직업은 당시 가장 천한 직업에 속하였는데, 본문을 통해 본서는 복음이 사회적으로 천대받는 사람들에게 맨 처음으로 전해졌음을 보여준다. 이렇게 하나님의 역사는 강하고 능력 있는 자보다 약하고 부족한 자들을 통해 이루어진다. 따라서 때로 외양을 추구하는 자에게 있어 그리스도는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이는 양인 우리들을 영적으로 돌보시는 목자로서의 예수님의 탄생과도 관련이 있다.
 
※1부 예배와 영상이 좀 다를 수 있습니다. -----영상은 2부예배 영상임.
















작성자:이향애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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