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할 수 없는 것을 어떻게 말해야 하는가

당신은 말로써 당신을 잘 표현하는가? 당신은 선동적인가? 당신은 궤변론자에 속하는가? 당신은 쓸데없는 말이라도 늘어놓지 않고선 배기지 못하는가? 당신의 말이 씨가 된 적이 있는가? 그러길 바란 적이 있는가? 침묵을 강요당한 적은 있는가? 당신은 말할 수 없다면 침묵하길 택하는가? 아니면 침묵을 강요당하거나 선택한 건 아니지만 당신에게도 도저히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언어 너머의 세계’가 있는가? 그렇다면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당신은 어떻게 말하는가? 혹시 글을 쓰는가? 당신이 글을 쓴다면 바로 그런 것을 쓰는가? 무슨 방법으로 쓰는가? 그런데 만약 이 세계에 말을 빼앗긴 이름 없는 자들이 널려 있다면? 여기저기에.


리카르도 피글리아의 《인공호흡》에는 사실인지 허구인지 모르겠으나 역사적으로 잘 알려진 두 사람, 우리가 아는 상식에서는 상반된 세계에 속해 있던 두 사람에 대한 일화가 소개돼 있다. 훗날 큰 목소리로 말하는 것을 특징으로 하는 독재자가 될 사람. 하지만 그때까지 가진 것은 계획과 말뿐이었던 비루하고 소심한 남자가 프라하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1909년 10월부터 1910년 8월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그는 아르코스 카페에 나타났다. 그는 거기서 자기 연민과 망상에 가까운 자기중심성, 미래에 대한 과도한 강박 관념을 예술가들에게 뜨겁게 들려주기 시작한다. 그의 말을 들었던 사람 중 하나는 프란츠 카프카였다. 요설을 늘어놓던 남자는 히틀러였다. 몇 번의 우연한 만남 동안 카프카는 히틀러의 말을 주의 깊게 들었다. 그는 히틀러에게 이렇게 말했을지도 모른다. 말은 씨가 되는 법이에요. 말은 앞으로 이 세상을 불바다로 만들 수도 있는 작은 불씨와 같은 겁니다. 당신의 꿈이 현실화된다면 잔혹한 유토피아를 보게 될 것이오. 그리고 그렇게 말할 때 카프카의 눈에는 앞으로 그가 수백만명의 사람들 하인들 노예들 버러지들의 유일한 주인 총통으로 군림하는 모습이 보였다.

1924년 6월3일 카프카는 죽었다. 죽기 전 그는 말을 못했다. 그는 병상을 지키는 친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글로 적었다. 말을 못하는 카프카가 친구들에게 글을 쓰는 같은 시각 히틀러는 검은 숲의 성에서 비서들에게 <나의 투쟁>을 구술하고 있었다. 그가 단호한 목소리로 ‘우리의 첫 번째 목표는 게르만 제국을 건설하는 것으로’라고 부를 때, 죽어가던 카프카는 말을 못했다. 그는 단지 글로 쓸 수밖에 없었다. 히틀러가 ‘비(非)아리아계 노예들은’ 이라고 할 때 카프카는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는 단지 글로 쓸 수밖에 없었다. 히틀러에 따르면 바로 그 노예 중 하나였던 카프카, 소설 속에서 스스로를 ‘버러지’로 인식한 카프카, 죽음을 앞두고 “나에겐 권리가 없다”고 말했던 카프카는 말할 수 없는 것을 글로 쓸 수밖에 없었다.

소설에 따르면 이 만남을 수십년 후 추적한 사람은 당대 최고의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의 제자였다. 비트겐슈타인은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선 침묵하라’고 했다. 이미 오래전 히틀러의 말에서 다가올 불행을 감지했던 카프카는 침묵했을까? 카프카가 자신의 글쓰기로 시종일관 부여잡고 씨름하고 극복하려 했던 것은 바로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선 침묵하라’는 정언명령이었다. 카프카의 진정한 천재성은 요란한 말 이면에 말할 수 없는 것 즉 ‘언어 너머’가 실재하리란 걸 예감했다는 데 있었다. 추방당해 세상 바깥으로 내던져질 존재에 대한 강력한 예감. 결코 다시 성으로 들어가지 못할 존재에 대한 예감. 그리고 그것들은 이를테면 아우슈비츠같이 도저히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이름으로 존재할 것이다.

라디오 피디를 직업으로 가진 내게 가장 놀라움을 안겨준 말이 있다. 남미에선 라디오가 목소리 없는 자들의 목소리란 것이었다. 목소리 없는 자들이란 누구인가? 가난한 자, 버림받은 자, 잊힌 자, 소외된 자, 고통받는 자들이다. 그들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것이 라디오란 것이다. 그전에 나에게 라디오의 말은 친숙한 것, 편안한 것, 일상적인 것, 누구나 듣고 싶어 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었기 때문에 목소리 없는 자들의 목소리란 말은 나에겐 커다란 부끄러움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나는 비트겐슈타인의 말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말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침묵하지 않는 것이 존재함을 알게 된 것이다. 큰 목소리를 침묵하게 하고 반대로 들리지 않던 목소리를 희미하게나마 들려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존재함을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피글리아가 믿었던 문학의 힘이었을 것이다. 문학은 말로는 현실을 제대로 이해할 수도, 표현할 수도 없는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침묵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말할 수 없는 것으로부터 진실을 찾아나서는 것, 말할 수 없는 것이야말로 말을 하게 하는 열정의 토대인 것, 바로 그것이 피글리아가 《인공호흡》에서 말하고 싶었던 문학이 삶에 가지는 의미였을 것이다. 피글리아가 보기에 숨 수 없는 것을 숨 게 하는 ‘인공호흡’, 그것이 문학이 삶과 맺는 관계였을 것이다.

정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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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께끼에 싸인 외삼촌의 삶을 추적하는데…

♣'인공호흡'줄거리

《인공호흡》은 보르헤스 이후 아르헨티나를 대표하는 최고의 작가 중 하나인 리카르도 피글리아의 대표작으로, 지식인과 작가들에 대한 아르헨티나 군부 독재정권의 탄압이 절정에 달한 1980년에 출간되었다. 한 청년 작가가 수수께끼에 싸인 외삼촌의 삶을 추적하는 과정을 통해 아르헨티나가 앓고 있는 고통의 기원을 모색하는 작품이다.

단편소설을 막 발표한 에밀리오 렌시에게 소설의 주인공이자 행방불명된 외삼촌으로부터 편지가 도착한다. 이후 외삼촌과 서신을 교환하면서 렌시는, 외삼촌이 정치가였던 장인의 증조부가 남긴 기록들을 재구성해 출판하려 한다는 걸 알게 되고 그 작업을 돕기로 한다. 그러나 외삼촌을 만나기 위해 찾아간 곳에, 외삼촌은 사라지고 그동안 조사했던 기록들만 남아 있다. 렌시는 폴란드에서 망명한 외삼촌의 친구 타르뎁스키와 과거, 현재, 미래를 넘나드는 다양한 시점으로 철학, 문학, 역사에 관해 논의하며 삼촌을 기다린다. 보르헤스와 아를트의 작품을 비교하는가 하면, 카프카의 《소송》과 히틀러의 나치즘, 그리고 폭력에 신음하는 아르헨티나의 상황이 다르지 않음을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그들은 잘못된 유럽주의가 아르헨티나 문학을 심각한 병폐에 빠뜨렸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피글리아는 《인공호흡》을 통해 독재정권하에서 ‘말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어떻게 말할 수 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하면서 문학을 통한 ‘인공호흡’으로 아르헨티나에 생명을 부여하려 했다. 탐정소설, 서간소설과 르포가 결합된 복잡한 구조임에도 출간 당시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으며 아르헨티나 작가 50명이 뽑은 아르헨티나 역사상 가장 훌륭한 10대 소설 중 하나로 꼽히기도 했다.

원제:Respiracin artificial

저자:Ricardo Piglia(1941~)

발표:1980년

분야:아르헨티나 문학

한글번역본

제목:인공호흡

옮긴이:엄지영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045(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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