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비전새벽예배(주후 2021년 8월 6일)
제목: ''두 번의 코로나, 그(He) 안의 온전함''
말씀: 시편 68:1,19
찬양인도: 이 다니엘 부목사님

사회: 김도훈 부목사님
설교자: 홍재훈 목사님,선교사님(중동A국, 로드마스터 대표)

마감암송인도: 오정현 담임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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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68:1,19,
1 하나님이 일어나시니 원수들은 흩어지며 주를 미워하는 자들 주 앞에서 도망하리이다.
19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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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한국에 와서 이것저것 많이 하고 싶은 것이 많았는데 상황이 규제와 제약으로 인해 잘 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대면예배를 너무 드리고 싶었는데 아마도 다시 돌아가기 전까지 대면 예배를 드리기 어렵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어떤 가정과 교제하기 위해서 저희 남자팀, 여자팀, 저와 아들, 그 집에 남편 되는 사람과 아들, 그리고 저의 아내와 딸, 남녀가 분리되어서 약간 007작전을 하듯이 정부가 내리는 규제를 잘 지키면서 이곳에서 생활을 하고 있다. 참 많이 아쉽더라구요...이곳에 오면 자유롭게 예배하면서 하나님이 위로해 주시고 격려해 주시고 새 힘을 받고 돌아가고 싶었는데 하지 못하는 상황이 많이 아쉽다.

 
제가 지내고 있는 곳은 코로나로 인해서 규제와 강화가 많고 유사점이 있는 그런 곳인 아라비아반도 석유부국 중에 한 곳이다. 그곳은 날씨가 매우 덥다. 한국도 덥지만 햇빛이 너무 세서 머리가 벗겨질 듯한 열사의 땅이다. 또 그곳을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한다. 그래도 그늘에 가면은 시원하지 않냐고 한다. 저희가 살고 있는 곳은 해안가를 따라 도시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여름에도 습도가 아주 곳이다. 그래서 여름이 되면 24시간 동안 에어컨을 켜두고 산다. 스스로 자발적인 격리를 하는 그러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또한 한국에서 보니 경제적으로 어려운 분들이 많듯이 제가 있는 지역도 석유 부국이다 보니 생활비용이 아주 비싸다. 그래서 일반 선교사님들에 비해 평균 비용보다 더 높이 필요하다.
저도 생존하기 위해서 그곳에서 여러 가지 일들을 지금까지 해왔다. 생존하기 위해서, 그 땅에서 뭔가를 하기 위해서는, 뭔가를 할 수밖에 없는 그러한 곳이다. 또한 그곳의 갔으면 청지기의 업무를 잘해야 한다. 지금도 여러 가지 하나님께서 주신 청지기 일들을 하는데 제약이 있는 것처럼 더운 날씨로 인해서 현지인들을 만나기가 참 어려운 곳이기도 한다.
 
또한 경제적 도덕적인 우월함으로 인해서 그들에게 다가가기에 참으로 많이 어려움 있고 열매가 없는 땅으로 많이 알려진 그곳에 있다. 지금 코로나 시대를 맞이하면서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그곳도 그냥 이곳과 비슷한 곳이 아닐까를 생각을 해본다. 그런 곳에서 작년에 전 세계에 바이러스가 퍼졌다. 그곳에서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여러 가지 노력을 했다. 그러던 작년 성탄 이브 때에 하나님으로부터 새로운 선물을 받게 되었다. 성탄절 날 아부다비인 옆 도시로 제가 대면 예배를 드리러 갈 준비를 했다. 다른 도시로 이동시에 코로나 검사를 받게 된다. 그러나 24일 날 양성 판정을 받게 되었다. “하나님 너무 하시지 않나요?”라고 했다. 어떻게 예배를 드리러 가려는데 어떻게 이런 선물을 주시냐고 생각해 보았다. 그런데 그 결과를 받고나서 마음이 있기 전에 현재 일어난 일의 사건들을 수습하기에 급급했다. 바로 점심에 어떤 가정과 약속을 했는데 그 가정에게 저희 집에 오시지 말라고 알려야 했다. 코로나 양성을 받았다고 속히 알리고 싶었다. 그날 저녁에 크리스마스 이브인데, 사막에서 주님을 모르는 친구들을 초대하면서 그곳에서 사막 성탄 기념예배를 드리기로 준비하고 있었다. 사막에서 예배를 드리면 참 은혜가 되기도 한다. 우리 인생도 사막 같은 것이다. 그 사막에서 이정표가 하나 없는 방향의 감각이 전혀없는 사막 깊은 곳에서 주님을 찬양을 하다보면 우리의 인생길에서 주님만이 우리의 이정표 되심과 우리의 구원자 되심을 찬양하는 것이 너무 좋은 곳이다. 그곳에서 그 친구에게 예수님을 소개하며 나아가는 그런 부푼 마음이 있었는데 그것마저 이제 취소를 하고 격리에 들어갔다. 그 국가에서 주는 GPS시계를 차고 한 방에서 격리를 하게 되었다. 격리하는 동안에 가족들을 너무도 철저하게 격리를 시켰다. 방 밖으로 한 발자국도 못나가게 했다. 처음에는 대게 야속했다. 가족들에게 잠시만이라도 얼굴을 보겠다고 하니 절대 안 된다고 했다. 강력하게 FM대로 격리를 시켰다. 많이 아쉬웠지만 시간이 지나고 났을 때, 내 주면에 이렇게 철저하게 규칙을 잘 지키니 나도 그 정도를 잘 지켜서 그런 가족으로 인해 섭섭함도 있었지만, 참으로 감사했다. 격리하는 기간에 방안에 있어서 제가 얼마나 아픈지, 세상과 소통할 수 없는 그러한 상황에 있었다. 그래도 감사하게도 그리 많이 아프지 않고 한 3-4일 고열을 지나고 버티니까 다시 회복되는 그러한 은혜를 받게 되었다. 격리하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께 기도했다. 왜 이런 일을 허락하셨냐고,,,, 예배를 드리고 가고 싶었는데 혹시 제가 부족하여서 인지를 하나님께 질문했다. ‘성결하지 못해서 그러신지, 예배에 나아가는 그 자리를 하나님께서 막으셨는지요?’ 아니면 지난날을 돌아보고 부족한 것이 있는지를 질문했고 이 시간을 통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그런 것이 있는지와 처음에는 각성과 회개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 그러면서 좀 여유가 생기니까, 내가 어디시 감염이 되었는가가 궁금해졌다. 몇 가지 의심의 장소가 있었다. 그 때 그 친구들과 그 장소들이 생각이 났지만 그 생각을 접기로 했다. 왜냐하면 제가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괜히 알면 원망이 생길 것 같아서였다. 아량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차라리 모르는 편이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말에 가족들이 함께 격리를 하며 연말과 연 초를 망쳐버린 것 같은 그러한 죄책감이 있고, 양성 판결을 받은 이후에 그동안 만났던 사람들에게 연락하면서, 특별히 하나님을 모르는 가정과 교제하면서 정말 즐거운 교제를 했는데 그 가정 가운데 너무 죄송하다고 말을 했다. 혹시 저로 인해서 바이러스가 감염되었을지 모르니 조심을 하라고 이야기를 해주었다. 검사를 해보도록 했다.
 
주님께서 오신 그 계절 가운데 그 땅에서 예수님을 선포하며 예수님의 사랑을 나누며 잘 지내고 싶었는데 저의 계획과 다른 하나님의 또 다른 계획으로 그 시절을 보내게 하셨다. 그 시절 가운데 갖는 마음이 그렇다. 그 시간을 보내고 있는 때에 막 회개를 했다. 회복이 된다면, 이제 자유의 몸이 되어서 격리가 풀리면 이제 다시 이웃들을 만나고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그러한 시간들이 허락되어 진다면 ‘이제는 이렇게 살게요, 남은 인생을 이렇게 살게요.’ 라는 그런 청지기의 삶의 대한 그런 계획들이었다. 마치 예수님이 이 땅 가운데에 오셔서 음부에 권세 아래 있을 때, 제자들이 흩어졌다. 주님의 부재, 우리는 더 이상 어리로 가야할 될지 모르는 우리의 이정표인 지도자가 없음으로 인하여 흩어졌던 제자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을 때, ‘주님,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살아날게요. 다시 살아난다면, 다시 저에게 자유가 허락 되어 진다면 그러한 마음을 다잡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격리가 풀렸다.
 
그리고 그렇게 살려고 노력을 했다. 그동안 못 만났던 친구들에게 연락을 했다. 연락을 못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사실 내가 코로나에 걸렸다고 알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세상 가운데 코로나, 코로나, 해서 걱정들이 많은데 하나님과 동행하면 잘 넘어갈 것 같은데, 괜한 걱정을 세상 가운데 더하고 싶지 않아서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담담하게 넘어가기 위해서 그냥 지냈다. 그리고 나서 이야기 했더니 나 코로나 걸렸다고 했다. 몇 명 친구들도 이야기를 했다. 자신들도 코로나에 걸렸었다고... 너도 나도 코로나에 걸렸다고 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죄인들의 모임인 듯, 컴잉 아웃, 코로나 양성을 경험했던 집단체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그러면서 그 죄인들이 서로 서로 나눈다. 이웃들에게 미안하지 않았냐고 서로 나누었다. 그냥 잘 살았는데 ‘내가 의도하지 않게 내가 죄인이더라.’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그런 부족한 사람인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냥 죄인이더라,,,, 성경에서 말하는 그 죄인이었다고 말했다. 그 죄인이라는 것에 묵상을 하는 그러한 시간을 갖었다고 이야기 했다. 내 이웃에게 얼마만큼 범죄를 했는지, 그것조차 알지 못하는 부끄러운 사람이었지만, 예수님 안에 있는 자에게는 정죄함이 없다는 하나님을 붙들고 그 시간을 버티려고 했다고 말했다. 매일 하나님 앞에 나아가면, 주님이 주시는 그 평안, 그 평안 속에 하나님과 동행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에게 주신 여러 가지 생각들, 그리고 이 땅 가운데 우리에게 주신 선물들, 우리는 세상에 있는 것, 유형의 가치들에 따라가 살아가는데, 그것이 아닌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셨던 십자가의 비밀과 그 무한하신 은혜와 사랑이 얼마나 중요한와 주님께서 주신 무형의 가치들을 묵상하며 지낸 삶을 살았기에 그래서 나는 이제부터 이렇게 살려고 한다고 그 집단 체 안에서 복음을 마음껏 나누는 복음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그러한 시간들을 주님께서 허락해 주셨다.
 
여러분, 세계 각지의 선교사님들이 코로나로 인해서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별히 경제적인 어려움이 외부적인 어려움보다 가장 크다. 가장 큰 어려움은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하는데 그것을 잘 전해지지 못하는 그러한 제한된 제약된 환경인 것 같다. 저 또한 그것을 피해갈 수 없었던 사람이었다.
 
코로나가 막 창궐하고 나서 어떻게 살아가야 될지, 또 대면 만남이 위축된 상황들 가운데서 여러 가지로 위축된 상황이었다. 그러나 코로나 이후에 저에게 주신 선물이 있었다. 코로나 시간들이 다 지나고 났을 때, 그 이후에 마치 하나님은 그 코로나에 걸린 사람의 깊은 마음을 아주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는 그 사람이 되니까, 이 시대에 맞는 그러한 사역으로 전환을 시켜 주셨다.
 
그래서 현지인들의 만남, 그리고 그 땅 가운데 디아스포라로 와서 어렵게 살아가고 있는 저임금 노동자, 그 친구들과의 사역들, 그리고 소명을 가지고 소명을 가지고 한인 디아스포라, 그 모든 사람들과 함께 어떻게 잘 지내면 좋을지, 이 코로나 시대에 맞는 사역으로 하나님께서 다 전환을 시켜 주셨다. 너무도 감사했다. 이 시기에는 마치 부재의 기간, 공백의 기간, 아무것도 못하는 그러한 시간 같은데 신실하신 주님은 쉬지 않고 일하시고 계심을 깨닫게 되었다.
 
주님은 일하시고 계신다. 작은 등 가운데 그 빛이 비추어져서 그 빛을 통하여 우리들 가운데 계속해서 부르시고 일하시고 나아가시는 주님, 그 주님을 경험하게 되었다. 사실 지난 상반기 동안 개인적으로 너무 감사했다. 주님이 이끌어주시는 그대로 그냥 따라가면서 그 선상에서 만나는 친구들과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며 너무도 감사했다. 사실 오늘 말씀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을 허락받으면서 그것을 나누고 싶었다. ‘여러분, 이 어려운 시기에도 하나님이 이렇게 일했다’고 나누고 싶었다. 이런 방법으로 그 땅에서 일하고 계심을 나누고 싶었다. 오늘은 그렇게 하지 못할 것 같다. 오늘은 저의 좀 부끄러운 모습들을 많이 나누게 될 것 같다. 그런 상반기 시간이 지나고 나서 제가 이 여름에 한국에 올 일정이 있었다. 그것은 중동에 떠나기 이전에 중동 학을 공부를 했었다. 하나님께 중동에 대해서 제가 더 알고 싶다고 기도했다. 가기 전에 그 땅을 위해서 계속 공부를 했다. 그리고 박사 과정을 다 마쳤다. 수료를 마치고 그 땅으로 갔다. 작년에 메일 한 통을 받았다. 당신이 수료한 지 10년이 되었는데, 어떻게 하기를 원하냐고 했다. 논문을 안 쓰면 끝나는데 어떻게 하겠냐고 메일이 왔다. 코로나 시기이니 시간이 많겠거니 하고 한다고 했다. 혹시 온라인으로 가능하냐고 했다. 논문지도를 받기로 하고 시작을 했다. 너무도 감사한 것은 그곳에서 있었던 그 사역들을 잘 정리할 수 있었던 그러한 시간이 되었다. 그동안 사역을 하면서 개인적으로 감으로 익혔던 것이 있다. 이 친구들과 동거동락 하면서 지낸 것 등과 그렇게 규정했던 것들이 있는데, 다시 한 번 사회과학적인 접근을 통해서 주님이 이것이 맞는지에 점검을 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 친구들에게 어떻게 다가가는 것이 좋은지를 연구하는 그러한 사간을 갖게 되었다. 1차, 2차, 논문 디펜스를 온라인으로 마쳤다. 마지막에는 최종 심사에는 꼭 오프라인으로 하게 되니 오라고 했다. 그래서 그 일정에 마쳐서 한국에 오게 되었다. 제가 살고 있는 지역도 한국보다 조금 더 신규 확진 자가 매일 일어나고 있다. 그래서 여러 가지 규제가 일어나고 학교도 온라인 오프라인을 계속 번갈아 가면서 지내고 있었다. 그래서 이왕 온라인 수업을 하는데, 한국에 올 때, 저희 아이들도 같이 오면 어떨지를 계획을 세웠다. 이번 여름에 하나님게 이렇게 지내고 싶다고 기도하고 간구했다. 그런 기회가 되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이곳에 오는 여정에 출발 선상에 서 있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오기 바로 오기 직전에 저희 아들이 갑자기 고열이 되었다. 아들이 고열이 심했다. 그때 코로나인가를 의심을 하게 되었다. 저희 아들이 고열이 일어나기 전에 친구네 집에 이틀 연속 방문했던 적이 있다. 그래서 만약에 그곳이 가장 유력한 곳이라고 생각을 하고 그 친구 집에 이야기를 했다. 아들이 고열이어서 코로나일지를 모르는데 내일 검사를 하게 되었다고 그 친구들에게 조심하면 좋겠다고 알려주었다. 그런데, 황당한 답변이 왔다. 그 아들 친구 어머니가 그러냐고 하면서 그런데 코로나 이미 걸려서 격리 중이라고 했다. 코로나 걸린 지 일주일 정도가 되었다고 했다. 아들이 그 집을 방문을 했을 때, 방에서 격리 중이었다. 아들이 거기에 가는 것, 오늘 것, 몇 시에 올것인가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 때 아무런 이야기를 해주시지 않았다. 그리고 이틀이나 방문을 했는데,,, ‘나 사실 코로나 이미 걸려서 격리 중이었다’고 하는 것이 너무도 황당했다. 자신의 아들을 아직 검사를 못했다고 했다. 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우리 아들은 양성으로 나왔다. 그런 마음 가운데 분노가 차올라왔다. 사춘기 딸도 어마하게 분노를 하면서 마음에 안 든다고 했다. 막 화가 났다. 그러면 안 되어서 누르면서 괜찮아~!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하루아침에 마음 가운데 증오 범죄자가 혐오 범죄자가 된 것을 느꼈다.
그 땅 가운데서 아랍 사람들을 특성들을 잘 알았다. 아랍의 문화를 잘 알았다. 이웃들이 그렇게 대했을 때, ‘이렇게 대할 수밖에 없어’라는 생각도 있지만, 또 다른 한 편으로는 아랍 사람들에 대한 증오가 막 일어났다. 주님께 ‘저도 한 순간이군요!’ 하는 것을 깨달았다. 중동을 가기 십년 전부터 중동을 위해서 열심히 공부를 했다. 그리고 중동 사람들을 만나고, 지적인 것과 실질적인 것을 열심히 준비하면서 그 땅을 가기 위해서 준비했다.
 
여러분도 잘 아시는 것처럼 911 테러가 일어난 이후 그리고 나서 우리나라, 전 세계적으로 이슬람, 중동 땅에 갑자기 관심을 많이 갖기 시작을 했다가. 우리가 중동에 땅에 그냥 관심을 가졌던 것이 아니라 어떠한 계기로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모두 부정적이었다. 마치 우리를 위협하는 것 같은 그러한 그곳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그곳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얻는 모든 정보들은 혹시 그 라가 우리를 해하지 않을까라는 그러한 관점으로 그들을 바라보게 되었다. 저도 공부하면 할수록 그들 가운데 무서운 일들이 참 많았다. 그러면서 제 안에 그들을 잘 알려고 공부했는데 그들이 더 무서워졌다. 그들 가운데 가까이 가지 못하게 하는 제 마음에 장벽들이 세워지는 것을 너무 느꼈다. 그 이후로 이슬람, 중동 관련 강의를 할 때마다 열심히 토로했다. ‘여러분, 이런 계기로 중동의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이런 높은 장벽을 우리 스스로 세우기 시작했으니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선교적인 마음으로 나아갈 때, 이 장벽이 얼마나 그들 가운데 다가가지 못하는 것을 스스로 깨닫는다‘고 하면서 그곳의 장벽을 허물어야 한다고 열변하고 다녔다.
 
그렇게 다녔는데 어떠한 사건, 작은 사건으로 인해서 제 마음에 그 장벽을 세우고 있었던 제 자신을 보게 되었다. 하나님 앞에 ‘제가 그런 사람이었군요!’ 하면서,,, 그런데 그것으로 인해서 온전하지 못한 것이 확 드러나게 되었다. 그런데 아들은 대게 담담했다. 코로나를 걸린 이후에 저희 가족이 다 코로나를 번갈아 걸렸다. 코로나를 걸려보니 회복되는 시기를 감 잡게 되었는데, 버티면 회복됨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아내는 계속 낫지를 않았다. 그런 상황이 벌어졌다. 그래서 힘들고 어려움 가운데 그 집을 향한 미워하는 마음이 계속해서 툭툭 나왔다. 그런데 저희 아들은 아주 담담했다. 그 친구랑 놀기를 원했다. 어린 아이 같은 마음을 주님을 생각했다. 그래서 한국에 나오지 못했다. 그리고 그 친구랑 놀기를 원했다. 온전함의 고봉에 오른 저희 아들을 보았다. 주님께서 어린 아이 같은 마음을 품으라는 것이 이런 것인가를 깨닫게 되었다. 이웃을 사랑하지 않았던 마음을 갖지 못했음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가족들이 양성으로 판정을 받으면서 한국에 오지 못하게 되었다. 후에 가족들이 감사하게도 계속 검사 가운데 음성 판정으로 나왔다. 코로나 느낌이 있는데도 음성 판결이 나왔다. 다행히도 마지막 검사에서 음성이 나오자 감사하게 한국에 오게 되었다.
 
그런데 도착을 하고나서 다시 양성 판결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나서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났다. 제가 세워두었던 모든 계획들, 어떻게 보면 한 가정으로 인해서 뒤죽박죽 된 느낌이 들었다. 항공권도 바꾸어야 하고 특히 저렴한 비행키 티켓을 바꾸기가 너무 힘들었다. 마음속에 어려움이 왔다. 또 계속해서 격리 장소를 찾아야 하는데 머무를 곳을 찾았다. 정하기가 힘들었다. 아쉬운 부탁을 하는 것 같아서 너무 힘들었다. 이전에 하나님께서 다 마련해 주셔서 오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 아닌 이제는 누구 때문에 그것이 무너진 것 같으니까 새로운 계획이 일어날 때마다 그 집, 그들이 원망스러웠다.
 
이곳에서 양성 판정을 받고 계속해서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났다. 그런데 사랑의교회 예배를 드리면서 온전함 시리즈, 매주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은 말씀으로 위로를 하셨다. 저의 부족함이 드러났지만 매주 위로의 시간이었다. 9년 전 마지막 설교했던 것과 함께 교제 했던 지체들과 마지막 설교를 하면서 이야기 한 찬양했던 것처럼, 여러분,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냥 작은 제자로 살아가고 싶은데 중동에서 한 번 살아가려고 한다고 하고 지금보다 예수님 닮은 모습으로 여러분과 만났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 땅 가운데서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께서 허락하신 그 십자가를 지고 살아갔을 때, 제가 조금 더 예수님을 닮은 모습으로 있을 거라고 그런 설교를 하고 제가 떠났다. 갑자기 그게 생각이 났다. 그게 너무 부끄러웠다. 그렇지 못한 나, 제자들을 만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 백신을 두 번 맞았다. 그리고 나서 한 달이 충분이 지났다. 그런데 또 걸렸다. 그 사실을 제가 아는 현지에 있는 지인분이며 사랑의교회 집사님께 이야기 했다. 그분이 모 병원에 연락을 해 주셨다. 그랬더니 그런 케이스가 좋다면서 그 병원 의사가 바로 오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병원으로 갈 수 있는 권유를 받게 되었다. 목사님은 어차피 격리 치료를 받아야 하니 그렇다면 그 병원가면 잘 진려해 줄 것이라고 했다. 몇 번 피를 뽑으면 된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기뻤다. 어차피 격리할 것인데 연구 샘플이 되기로 했다. 그 병원으로 이송이 되었다. 이틀에 한 번씩 열심히 피를 뽑았다. 그 채혈하면서 처음에 이런 말을 했다. 간호사가 피를 뽑으면서 손이 무디다고 하면서 이해를 원했다. 그리고 나서 연구 동의서 같은 것을 작성하게 되었다. 피를 뽑고 이것을 얼마만큼 보관할지, 이러한 것들의 동의서였다. 작성하고 나서 설명할 때에 연구에 동참을 해서 소정의 30만원을 드린다고 했다.
 
힘든데 돈을 준다는 생각에 마음이 녹아지는 제 마음이 보였다. 여러 가지 일을 생각하게 되었다. 마음껏 피를 뽑으라고 했다. 피를 뽑자마자 실수하기도 했다고 더 피를 더 뽑아야 한다고 하면서 여러 번 뽑았다. 그 시간을 잘 지냈다. 여러 가지 일들이 많았는데 하나님께서 그곳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을 시켜 주셨다. 오기 전에 격리 중에 어려운 시간들이 있었다. 그러면서 그 어려움 가운데 마음 속에 불평이 있었어도 불만을 보지 않자고 하면서 그것을 보지 않고 무언가를 덮고 있고 누르고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은혜를 부어주셨다. 사실 그곳 병원에서 일들이 있었는데, 일정 시간보다 회복되어서 속히 나올 수 있었다. 의사 선생님이 기쁘게 ‘오늘 퇴원할 것’이라고 했다. 너무 기뻤다. 그런데 하나님, 어디로 나가야 할지를 생각했다. 그런데 속히 나오다 보니 갈 곳이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너무도 감사하게도 오정현 담임 목사님께서 제가 갈 장소를 마련해 주셨다. 어떤 한 권사님이 병원에 입원했던 소식을 듣고 그것 때문인지, 쉴 수 있는 곳을 제공해 주셨다. 대게 큰 사랑을 받은 것 같은데 좀 부담스럽기도 했다. 너무 감사했다. 마치 자격 없는 자에게 부어주시는 그 하나님의 은혜, 그 넉넉함이 계속해서 부어졌다. 그때서야 조금 제가 은혜 속에 충만하게 거하니까 이전에 미워했던 그 친구들에게 그들을 용서하고 이해하게 되었다. 은혜의 폭포가 충만하게 내려갔을 때, 그 시간을 겪으면서 하나님이 주신 마음이 있었다. 한국에 와서 금요일에 설교를 하러 가는데 차를 몰고 가는데, 차가 막혀서 좀 늦었다. 마음이 좀 분주했다. 운전을 하다가 꺼어 들어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빨리 가려고 하는 제 자신을 보게 되었다. 그런데 도착해서 깨달았다. 말씀을 전하러 갔다. 성령 충만하여 기쁜 마음을 창밖에 한국의 땅을 보면서 수많은 인파들을 보면서 주님 저들은 일을 마치고 ‘하나님의 청지기의 삶을 살았겠지요’ 하는 위로를 하면서 넉넉한 마음으로 운전하며 가야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지난 상반기 사역을 돌아보면서 너무 감사하게 잘 갔다. 그런데 잘만 갔지, 전심으로 그들을 사랑하지 못했던 것을 저에게 보게 되었다. 하나님은 이 코로나를 통해서 저에게 말씀하셨다. 경험한 코로나를 다시 한 번 경험하면 잘 할 줄 알았는데, 두 번째 코로나 때에 다시 깨닫게 하셨다. 그들은 전심으로 사랑하고 있냐고 하나님은 나를 더욱 깨닫게 하셨다. 하나님께서 저를 온전케 하시려는 그 메시지를 계속해서 부어주셨다. 그러나 그들을 사랑하지 못한 것에 회개했다. 사용만 잘하면 뭐하니,?? 전심으로 사랑해야 하는데 온전케 하시려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주셨다.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들은 분들이 참 많이 걱정을 해주셨다. 자주 소식을 주시고 위로를 해주셨다. 두 번째 코로나였을 때는 육신은 너무도 건강했다. 피만 뽑을 뿐 건강했다. 크게 아픈 줄 알고 사랑해 주셨던 분들게 너무 죄송함이 있었다. 거짓말이 아닌가하는 죄송함이 있었다. 그러면서 저에게 주시는 몇 가지 하나님이 주신 마음이 있었다. 너를 불쌍히 여겨서 그 땅에 관심을 일으킨 하나님, 그것을 경험하게 하게 되었다. 특별히 하반기에 뭔가를 준비해 가시는데 그 하반기를 위해서 힘을 실어주기 위한 그 땅을 온전케 만드시기 위한 하나님의 놀라우신 계획들을 보게 되었다. 한 가지 놀라운 것이 있다. 지난 라마단 기간 동안에 서구 선교사님들에게 강의하는 일이 있게 되었다. 서구 선배 선교사들에게 강의하게 되었음에 너무 감사했다. 동양의 작은 사람에게 한 달 동안 강의하게 해주었기에 너무도 감사했다. 마치 그곳에서 지내온 나날들을 위로하시는 것 같았다. 위로와 격려를 듣는 시간이었다.
 
그래서 그곳에서 하나님이 일하셨던 그것을 나누고 하나님이 주신 노하우를 열심히 나누었다. 마지막 날 삼십 년 되신 미국 선교사님이 저에게 이런 질문을 하셨다. ‘너는 코로나 이전, 이후의 어떻게 현지인들과 정기모임을 할 수 있냐’고 하는 질문을 하셨다. 본인은 삼십년간 선교사로 있으면서 한 번도 그렇게 한 적이 없는데, 너는 어떻게 라는 질문이었다. 제가 사실은 노하우가 좀 있었다. 나름 동양인으로, 한국인으로 어떻게 접근하는지와 편하게 나누는 방법 등을 알게 되었다. 거절 받더라도 여러 가지 행함을 해야 하는 것에 대해서와 가장 중요한 것으로 선배님들의 기도라고 이야기 했다. 그 기도를 통해서 이런 선상에 있다고 고백을 했다. 이렇게 이야기 하면 어떠하겠는가? 마치 예의상 한 것 같았다. 그분도 그러셨는지, 다시 되물으셨다. ‘너는 그것이 이전 선배들의 기도인 것을 어떻게 아느냐’고 했다.
 
초창기 때에 그곳에 가서 선물과 같은 영혼이 있다. 그 친구는 현지인이다. 그곳 친구는 한국 사람을 만나서 한국 이름을 받았다는 것이며, 그 이름은 ‘은혜’라고 했다. 그 한국인이 기독교인지 아닌지는 저도 모른다. 그리고 제가 만난 그 친구는 여전히 무슬림이다. 그 친구와 저는 특별한 인연을 갖게 되고 계속해서 섬기면서 저의 딸로 삼고 싶다고 했다. 저의 성을 주면서 ‘홍은혜’가 되었다. 그 때 많이 느꼈다. 선교의 역사, 아라비아 땅 가운데 지금 열매가 없음에 너무 많이 들었다. 그런데 그곳에 가서 사역을 하는데,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곳은 마치 코로나로 인해서 격리한 것 같은 부지한 것 같은 공백된 것 같은 그러한 곳인 줄 알았는데, 하나님께서 놀라운 일들을 행하고 계셨다. 현지인들을 물이 일 듯 보내주시고 그들과 계속해서 모임을 하면서 날마다 복음을 쪼개서 전하게 되었다. 복음을 마음껏 전할 수 있었다. 너무도 감사했다. 그 때 느꼈던 것이 있었다. 이 친구에게 은혜라는 이름을 주었는데, 내 역랑을 아는데, 그것보다 더 어마한 은혜 가운데 사역을 하고 있었다.
 
내가 잘 해서가 아니라, 누군가 기도하고 이 맨 땅에 해딩을 하였기에 지금 하나님이 계속해서 일하시다가 성령의 바람을 불고 계신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 선배 선교사님에게 말씀을 드린 것이다. 그것을 제가 잘 알고 있다. 지금 코로나 이전 이후도 계속해서 복음을 쪼개서 나누어주고 있다. 그들이 회심하는 그런 열매를 보고 싶다. 그러나 회심을 안 봐도 좋다. 그 복음을 열심히 쪼개어 나누어 주는 것만으로도 너무너무 만족한다. 그런데 혹시 이후에 오는 또 다른 믿음의 사람이 ‘이곳에서 예수님을 마치 믿어요’라는 말도 하기 전에 ‘저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라는 그 선포, 그 고백 하나만으로 현지인들에게 그들에게 가서 ‘저를 양육해 주시오’ ‘저를 세례를 부어 주세요’ 라는 그런 일들이 일어날 것 같은 그런 소망을 저에게 하나님이 주셨다.
 
내가 이 땅 가운데서 하는 것은 보내주신 영혼들 가운데 외치는 자의 소리로 전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마치 격리의 시간 같지만, 규제와 강화가 많은 이 땅 같지만, 하나님은 쉬지 않고 일하시는 하나님을 느끼게 되었다.
 
여러분, 이 땅 가운데서 어렵지 않는가? 힘들지 않는가? 현실의 장벽이 너무도 높아 보이지 않는가? 교회가 답이 아닌 것 같은 그런 청년들을 보게 된다. “목사님, 목사님, 교회가 답이 됩니까?” 라고 절말 떠나가고 싶다고 이야기들을 해주어도 마음으로 그게 안 된다고 말한다. 힘들다고 말하고 있다. 저도 그랬다. 정답 같은 것은 아는데 그렇게 되지 않았다. 그런데 하나님이 정말 매주 한 마디, 한 발짝씩만 하나님은 주셨다. 그래서 그 친구에게 이야기 해주었다. 그 거대한 장벽을 우리가 무너뜨릴 수는 없지만 그 한 발짝 한 발짝 갈 수 있는 그 은혜만 구하지고 했다.
 
오늘 말씀처럼 하나님이 일어나시매,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가지고 일어나실 때, 하나님이 원수들을 흩으시고 주를 미워하는 자들을 주 앞에서 도망하게 만드신다고 말씀하신다.
 
*시편 68:19절에,
19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셀라).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이 장벽을 완전 무너뜨리시는 것이 아니라 오늘 힘듦을 이길 수 있는 그 은혜를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하고 나아가야 한다고 나눔을 가졌다.
 
성도 여러분,
매일 하나님께서 우리의 짐을 지시는 경험을 하길 원한다. 그 하나님으로 인하여 온전함의 고봉을 한 발짝씩을 걸을 수 있는 은혜의 폭포수 가운데 충만하게 젖는 여러분이 되길 원한다.
 
기도제목이 있다. 하반기 중동 아라비아반도 GCC 5개국에 책을 발행하게 되엇다. 그 책에는 예수님이라는 말이 없다. 그러나 에스더 성경처럼 그 책을 통하여 이 사막에서 참 삶의 인도자가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예수님의 향내가 나는 그러한 서적이 되길 원하는 마음으로 그런 출판 준비를 앞두고 있다. 그 책이 그 땅에서 잘 쓰여 질 수 있도록 그리고 그 책을 통해 보내 주신 영혼들과 잘 연결되었을 때, 저희가 그 영혼들에게 날마다 복음을 쪼개서 힘든 짐을 잘 짊어지고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그러한 삶을 살 수 있도록, 가정이 온전해 질 수 있도록 그리고 그 땅이 온전해 질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길 간절히 원한다.
 
 
♣요약
주님 안에서 온전함이 되길 더욱 소원하고 간구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음부의 권세 아래 우리를 온전케 하기 위해 우리의 죄를 사하시는 그 놀라운 일을 하셨는데, 우리는 하나님의 부재를 여기며, 실망하고 낙담하여 떠나갔던 우리가 되었음을 고백하고 회개해야 한다. 우리들을 사랑하여 주시길 기도하고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우리가 짊어질 십자가를 져서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그런 온전함의 여정 길 가운데 매일 주님과 동행하여 살아가야 한다. 우리가 서 있는 삶의 현장 가운데 주님의 나라를 선포하며 그 땅을 온전케 하는 기도와 돕는 선교가 되어서 작은 예수로 살아야 한다.
 
-다윗은 하나님을, 세상에서 환난과 고통을 당하는 당신의 백성을 간과하지 않으시고 세심하게 돌보아 주시는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으로 찬양했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일순간도 잊지 않으시고 필요에 따라 채우시며 영원한 사랑과 구원을 공급해 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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