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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1년 12월 19일)
제목: ''기쁨의 만선(滿船), 그리스도의 주님 되심''
말씀: 누가복음 2:10~14
찬양인도: 쉐키나, 영광찬양대
기도: 구성찬 부목사님
사회: 장광천 부목사님
 
설교자: 오정현 담임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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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10~14
10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11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12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13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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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오늘은 평소에 비해 좀 일찍 나왔다. 기쁨의 용량을 잘 준비를 했는지 모르겠다. 목도리를 하고 나왔는데 어제 토요비전 새벽예배에 나온 분들은 이런 것을 받았다. 못 오신 분들은 못 받았을 것이다. 마음을 불태우면 된다. 마음을 빨간 색으로 불태우면 된다. 멀리서 기쁨을 찾지 말고 오늘 이 시간 기쁨을 하나님의 시간으로 붙잡기를 바란다. 기쁨의 브러치 선물을 드렸는데 성탄의 기쁨 선물이다. 이 선물의 박스를 선반 위에 놓고 먼지 쌓인 채로 두지 말고 선물 포장도 풀지 않은 채 두지 말고 기쁨의 실상을 체험하기를 바란다. 허상이 아니라 실상으로, 어제 우리 새벽예배에는 믿음의 4대가 함께 모여서 아주 성탄의 기쁨과 은혜를 같이 나누었다.
 
제가 무슨 이야기를 했냐면 오늘 이 시대는 소위 클릭으로 감당하는 시대이다. 더구나 이 상황에 먹을 것, 은행가는 것 등도 다 클릭으로 다 한다. 그러다 보니 허상과 실상 그러니까 실상과 허상이 구분이 안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클릭티즘(Clicktivism)이라고 말했다. 클릭 시대와 실제와 혼돈이 되어 버렸다. 손가락으로 온라인으로 처리하니까 실상과 허상이 혼돈이 되는 것이다. 여러분 아무리 해도 남는 게 없는 것이 있다. 하루 종일 TV를 보면 남는 것이 없다. 티브이가 실제 같지만 실제론 그게 허상인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 성도들은 성탄의 기쁨에 대해서 어려운 말로 탈 육신의 시대라고 말한다.
※ 탈 육신 시대(클릭티즘-Clicktivism)에 우리 성육신적 기쁨으로 코로나 불루를 돌파해야 한다.

기쁨에 대한 것이 허상이 아니라 기쁨이 실상이 되길 바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체이니까 다시 한 번 기쁨에 대한 허상이 아니라 기쁨의 실체를, 성육신의 기쁨을 확인하는 영광스런 예배가 되기를 소망한다. 본문의 핵심은 기쁨이다. 기쁨을 가져다주는 것이 두 가지이다. 지난주에 예수님의 성육신이 기쁨이 시작이었다면 오늘 그리스도가 주심이 기쁨의 만개, 기쁨의 꽃, 기쁨의 만선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말씀의 배경으로 우리가 전에 스가랴를 했는데 스가랴 8장, 9장에서 이 기쁨에 관한 내용들이 나온다. rejoice라는 말이다. 사라진 기쁨이 400년 만에 다시 나타난다. 그 내용들이 소위 암흑기, 중간의 400년 동안 이것을 못해서 그냥 있다가 드디어 오늘 누가복음 2장 이 부분에서 다시 한 번 회복되는 것이다. 지금은 코로나로 많은 사람이 우울증에 걸려있고 어떻게 보면 힘들어하는 분들이 너무나 많다. 더구나 백신 맞는 분들만 본당에 들어오게 되니까 백신 못 맞는 분들은 사정상 못 맞는 분들은 본당에 들어와 예배를 드리고 싶은데 못 드리게 되니 많은 항의를 받았다. 그래서 조금만 참아달라고 했다. 오늘 역학관이 나와서 조사 와서 백신 안 맞은 분이 이 안에 들어오면 엄청난 값을 치러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양해를 구하고 빠른 시일 내에 백신을 안 맞은 분들도 본당에 들어오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같이 기도해주고 오늘 이 시대는 옆 사람의 숨소리에 대해서 좀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 오늘 기쁨의 소리를 직접 체험하는 날이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400년 동안 사라진 그 기쁨이 오늘 다시 회복되는 것이다. 코로나 펜데믹 가운데서도 우리의 삶의 현장에 다시 한 번 기쁨이 회복되기를 원한다. 이 기쁨의 충만함이 얼마나 크기에 천사들이 기쁨의 소식을 전하면서 천군 천사들이 하늘의 찬양대가 되어서 지극히 높은 곳에서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시는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말씀하고 있다. 천군천사들이 하늘에서 환호성을 지른다. 그 이유는 기쁨의 축포를 터뜨리는 이유가 무엇인가?
 
*누가복음 2:10~14
10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11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누가복음 2:11,
11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구원받은 정도가 아니라 우리의 신분의 변화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구주되심으로 우리가 자녀가 된 것이다. 우리가 구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더 큰 기적이다. 구주가 나셔서 다시 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구주가 나신 것은 우리가 구원 받았다.의 이 정도가 아니고 곧 처형되어야 할 사형수에게 사면복권 된 것이다. 우리 인생이 처절한 곳에서 사면되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구주가 되셨다. 의 내용과 포함된다. 사면됨은 우리의 신분의 변화이다. 왕의 자녀로서의 복을 가진 것이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성육신 하신 것도 대단하지만 그 은혜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가진 것이 더 큰 기적이다. 이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어떤 뜻이냐면 처음 인간인 아담은 하나님의 피조물에 불과했지만 아담은 이 성탄의 축복으로 우리는 영광스런 자녀가 되는 것을 열어주셨다.
 
*로마서 8:15,
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여기에 놀라운 기쁨이 있다. 왕의 자녀가 태어나면 기쁨의 잔치를 한다. 이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는 이 기쁨의 외침이 천지를 진동하고 코로나와 오미크론을 관통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나의 아버지 나의 하나님으로 구체적으로 인격적으로 개인적으로 선포할 수 있다면 클릭 허상시대에 내 것으로 기쁨이 손에 잡히는 실체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말씀한 대로 탈 육신이 시대에 실체를 경험하게 된다. 이것이 얼마나 장엄한 이야기인가! 이 얼마나 하나님이 나라의 그림인가! 옛날에는 왕의 자녀가 태어나면, 전국에 선포하고 잔치한다. 우리가 성탄의 귀한 예배로 우리가 왕의 자녀가 되는 길이 되었다. 그래서 기쁨의 축포를 터뜨리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났음을 성탄의 종을 통해 축포로 기념하는 것이다. 클릭의 허상을 압도하는 기쁨의 실체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자녀로 태어났음에 축복하는 것이다. 어릴 때 탄일종이 울린다는 찬양을 하곤 했는가? 오늘 드디어 깨닫는다. 성탄에 우리도 종을 울리게 될 것이다. 탄일종이 땡땡땡은 주님 오시는 기쁨으로 새 생명인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으로 태어나는 놀라운 은혜의 종소리가 멀리멀리 퍼진다는 것이다. 적용을 하겠다.
 
I. ‘내’가 ‘나의 주인’이면 기쁨은 없다.
 
-주님의 주인 되심을 통하여 이 기쁨의 종소리가 우리 가슴에 울리고 또 축포가 터지는 것이다. 내가 나의 주인이 된다는 것은 기쁨이 없다. 주님이 주인이 되시면 참된 기쁨이 계속되는데 내가 나의 주인이 되면 기쁨이 없다. 여러분, 내가 나의 주인이 되는 대신에 그리스도가 주인이 되시면 기쁨이 만선되게 하신다. 기쁨이 만개, 기쁨의 꽃을 피울 수 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 주라고 하는데 그리스도는 클리우스라고 신약에 쓰이며 그리스도란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이다. 하늘의 권세를 위임 받았다는 뜻이다. 기름 부음을 받았다는 것은 강력한 권위를 가지신 것이며 그 권위를 맡은 것이다. 우리에게 전가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순간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그 기쁨에 대한 권위가 주어지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주님 되심에 은혜와 그 능력이 우리에게 전이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도마가 나의 주님이라고 말한다. 무엇이냐면 1세기 그리스도인들은 우리처럼 성경 전체에 이 66권이 없었다. 1세기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삼위일체 교리도 확정되지 않았다. AD 4세기 니케아 종교인데 그때 삼위일체 교리가 확정되었다. 사도신경도 4세기이다. 1세기에는 우리가 갖고 있는 그런 만큼 모든 것을 갖지 못했다. 그런데도 그들은 그 수많은 고통을 겪었고 통과했다. 아주 소박하고도 단순한 교리하나로 극복했다. 초대교회가 십자가의 형틀의 순간은 하나님의 시간을 붙잡은 것이다. 우리 코로나보다 백배는 더 힘들었다.
 
Jesus is Crist. 정통 교리나 성경을 다 몰라도 그들이 가졌던 소박한 교리가 세 단어로 정리된다. Jesus my Lord! 예수님이 주님이시다. 이 소박한 신앙 때문에 하나님이 기쁨과 능력의 현장에서 상실하지 않았다. 그 기쁨으로 하나님의 시간을 붙잡고 그것을 이겨냈다. 요즘 코로나 시기에 기쁨이 증발되었는가? 그것은 내가 나의 주인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국민일보 기사에 나왔는데 제가 공부한 학교에 바이올라 대학의 테디어스 윌리암스 교수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지금 세상에 속히 퍼지는 종교가 있는데 그 종교는 기독교가 아니라 셀프 워쉽인 자기숭배 종교이다.’ 윌리암스 교수는 사람 되는 제일 목적이 무엇이냐고 하냐면 답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히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이다.’ 요즘은 바꾸었다고 한다. 나 자신을 위한 내 인생의 주인이 나라고 하고 있다고 한다. 이것이 요리문답인데 요즘 자기 숭배 종교는, ‘나 자신을 영화롭게 하고 나 자신을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다.’ 이렇게 바뀌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게 되면 기쁨이 사라지는 것이다.
 
※ 건강한 자존감은 좋은 것이지만 죄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자존감은 결국 왜곡된 자아상으로 이끈다.‘ -인본주의는 결국 인간을 우상화 하는 것이다.
 
내 인생이 나의 주인이라는 생각은 일반적인 상식이고 세상은 많은 책과 광고들, 오늘 날 이 펜데믹 가운데 수많은 것들 중에서 내가 나의 주인이라고 하며 다른 인생이 와서 뭘 좌지우지 하지 말게 하라고 하며 자기를 세우고 자기를 세울수록 인생이 기쁨이 있다고 하는데, 자존감 세우는 것이 그렇게 나쁘지는 않지만 내가 나의 주인이라고 계속 고백하고 다 그렇게 되면 70억이 넘는 가운데 인구가 다 자기가 주인이라고 하면 70억이 충돌을 하게 된다. 내가 주인이니까,,, 실상은 누가 나를 종노릇하게 만든다. 마귀가 종노릇하게 한다. 신앙생활 오래 한 것도 주님께 아 맞기고 자기가 다 결정한다. 내가 나의 주인이 되고 자기도 모르게 자기 절제를 통해 깨어지기도 하지만 자기 절제를 통해 남들을 비판하고 남들을 시기 질투하는 그런 희한한 영적 괴물이 된다.
 
*누가복음 18:11
11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자기 절제하고 철저하게 살았다는 것이다. 철저한 자기 절제가 예수님을 주인으로만 모시는 것이면 좋은 것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자기 의를 나타내고 자기 절제를 통해 남들을 비판하고 판단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 남을 판단하는 것은 기쁨이 사라지는 태도이다. 남들을 용서하지 않는다. 사도바울이 그랬다. 스데반을 돌로 죽이고 하나님을 비판한다. 율법으로는 흠이 없었던 사울이었다. 바울이 되기 전에 자기 절제로 흠이 없었다. 실제로 그랬다. 수많은 종교 전쟁도 자기의가 충만해서이다.
 
바리새인이나 바울의 변화되기 전의 바울은 겉으로는 신앙적이고 종교적이었지만 실상은 자기가 주인으로 살았다. 거기에 무슨 기쁨이 있겠는가? 남을 비판하는데 거기에 무슨 기쁨이 있겠는가? 다른 종교에 비해 기독교만이 거기에 즐거움이 있다. 타종교는 자기 공로를 쌓기 위해서 사니까 기뻐할 시간이 없다. 우리는 성육신을 통해 기쁨이 있다. 우리가 주님이 자녀로서 특권이 있는 것이다. 기쁨을 누리는 것이다. 자기 절제는 좋지만 변질된 자기 절제는 형제와 이웃을 비판하는 것이다. 우리는 주님이 이미 이루어주신 것에 감사하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기쁜 것이다.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이 못 갖고 있는 것은 은혜의식이다. 내 삶의 주인이 자기인 사람은 공로의식만 있기 때문이다. 욕심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가 자리 잡을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면서 늘 하는 이야기가 있다. 사역을 잘 하는 것도 좋지만 사역이전에 은혜 받는 선수가 되어야 한다고 말해준다.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은혜에 관한 영원한 채무자이다. 주님을 주인으로 모셔야 평생 기쁨이 넘치게 살게 된다. 주님을 진심으로 찬양할 때, 은혜가 하늘로 끌어올려 지는 기쁨이 된다.
 
*고전 4:5
5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하지 말라 그가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우리는 다 주님께 다 맡기고 사랑하고 격려하고 다 주님을 찬양하면 되는 것이다. 내가 나의 삶의 주인이라고 하는 차이는 거기에는 공로의식이 충만한 자는 자기가 주인인 것이다. 주님의 나의 삶의 주인이라고 생각하면 은혜가 충만한 것이다. Sense of praise!(센스 어브 프레이즈)이다. 은혜의식이다. 그런데 내가 나의 삶의 주인이라는 사람은 공로의식과 같다.
 
 
 
II. 예수님의 주인 되심은 모든 것을 초월한다.
 
-결혼의 한계, 부부의 어려움을 초월한다. 결혼을 왜 하는가? 남편의 삶을, 아내 삶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주인으로 모시고 더 잘 섬기려고 결혼을 하는 것이다. 주님이 주인임을 더 잘 체험하기 위함이다. 늘 자기가 주인이면 황혼 이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주님이 주인이 되시면 모든 문제를 주님께 맡기면 된다. 하나님의 간섭이 계시게 될 것이다. 진짜 어려울 때 주님께 맡겨보라. Jesus my Lord.!!~~
 
*요한복음 15:14,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친구 이전에
 
*골로새서 2:6,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예수님이 주인이시면 제대로 고백하면 삶이 달라진다. 예수님이 주인 되심이 깊이가 있는 것이다. 예수님이 주인 되심을 통해 우리의 삶이 깊이가 있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이시다.

*요한복음 20:28
28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이전에 도마가 예수님을 못 믿고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에 문제가 있을 때 제대로 깨달은 후에는 너무나 놀라워서 헤아릴 수 없는 기쁨을 알게 된 것이다. 마치 두 손으로서 예수님을 꼭 붙잡고 있는 것 같다. 그 순간 나의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순간 기쁨으로 심쿵하고 초월적 기쁨으로 그의 심장이 요동친 것이다. 신앙생활에 기쁨이 없는가? 그러면 도마가 기쁨의 이 은혜를 가지고 큰 기쁨을 체험한 것처럼 여러분도 이 기쁨을 허락하시길 소망한다. 그래서 한 번 시험해 보라. 주님이 나의 주인이심을 고백하여야 한다. 그 순간 하나님께서 길을 놀랍게 열어주신다. 우리의 자녀들이 주님이 나의 주인이심을 깨닫도록 가르쳐야 한다.
 
III. 주님이 주인 되시면 참된 위로 온다.

-세상으로부터 오는 위로는 진짜가 못 된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위로만이 진정한 위로이다. 오늘 25절에 보면
 
누가복음 2:25
25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 이스라엘의 큰 위로는 그리스도이시다. 이스라엘의 제일 큰 위로는 주님이시다. 아는 순간 기뻐서 시므온은 찬양했다. 하나님으로부터의 위로만이 기대해야 한다. 현실이 고통일지라도 주님은 우리를 기쁨으로 데리고 가실 것이다.
 
※로이드 존슨 목사님
복음의 매력은 모든 해결을 나에게 떠넘기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에 연결시킨다. -로이드존슨-
-내가 나의 주인이 되면 내가 책임 되지만, 복음의 진정한 매력은 하나님의 능력과 연결되어서 기쁨의 내 영역과 게임이 되지 않는다. 세상의 위로는 가짜 유리 구슬이고 장미꽃인줄 알지만 어느덧 꽃은 떨어졌다. 세상이 너무 좋을 듯하지만 주님 주시는 기쁨을 받아야 한다. 주님이 주시는 것만이 위로이며 치료자이시다. 순장님에게는 비밀을 알릴 수 있다. 영 가족은 나의 연약함을 털어놓을 수 있고 하나님의 공동체이다. 영 가족은 영광과 고난과 기쁨을 함께 나누는 가족이다. 살다보면 너무 어려울 때가 있다. 진짜 나를 사랑해주는 두 사람만 있으면 이길 수 있는 것이다. 진짜 나를 위로해 주는 사람은 누구이냐면 구약에 보면 두 증인이다. 여러분 생애에 어려워도 주님이 주시는 기쁨을 누려야 한다. 아이들 위해 기도할 때마다 주님이 우리 자녀를 돌봐주시길 늘 기도한다.
 
▷우리 자녀가 만나지 말아야 할 사람은 다섯 가지 부류이다.
첫째 악한 사람 만나지 말게 하시며, -착한 사람 만나게 해주시길 기도하자.
둘째 욕심이 많고 탐욕이 많은 사람을 만나지 말게 하시며, -항상 감사하는 사람을 만나길 기도하자.
셋째 거짓말하는 자 만나지 말게 하시며, -정직하고 진실한 사람을 만나길 기도하자.
넷째 꼬인 사람 만나지 말게 하시며 –온전한 사람을 만나길 기도하자.
다섯째 어리석은 자 만나지 말게 하시며 – 지혜로운 사람을 만나길 기도하자.
-우리 힘으로 되지 않는다. 예수님이 주인이 되시면 이런 사람을 비켜가게 하시며 목자의 심정으로 우리를 그렇게 승화되게 하셔서 우리를 기쁨으로 지켜 주실 것이다. 저런 사람을 만나면 해결 대책이 없지만 살다보면 어리석은 사람을 만나겠지만 만나지 않도록 분별함과 주님이 지켜주시도록 기도하자.
Jesus my Lord!
 
♣요약
주님이 주시는 기쁨을 가지면 우울증이 치유되고, 주님을 나의 주인으로 모시면 공로의식과 자기숭배가 사라지게 된다. 오직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심을 고백하면 가슴이 뛰는 삶 속에 기쁨의 만선을 체험하게 될 것이니 늘 하나님의 은혜 받는 일에 선봉장이 되고 그 기쁨으로 우리가 복음이 되고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
- 메시아 탄생 소식을 처음 들은 사람은 양치는 목자들이었다. 목자라는 직업은 당시 가장 천한 직업에 속하였는데, 본문을 통해 본서는 복음이 사회적으로 천대받는 사람들에게 맨 처음으로 전해졌음을 보여준다. 이렇게 하나님의 역사는 강하고 능력 있는 자보다 약하고 부족한 자들을 통해 이루진다. 따라서 때로 외양을 추구하는 자에게 있어 그리스도는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이는 양인 우리들을 영적으로 돌보시는 목자로서의 예수님의 탄생과도 관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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