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달려간 토끼는 어디에 있나
지금 나이의 절반쯤 되었을 때 내게는 ‘미국 3부작’처럼 여겨졌던 세 편의 소설이 있었다.
『위대한 개츠비』『호밀밭의 파수꾼』『달려라, 토끼』였다. 어째서 내가 이런 3부작을 구성하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 그때까지 이름이라도 들어본 미국 작가들이 많지 않아서였으리라 짐작된다. 어쨌거나 『위대한 개츠비』와 『호밀밭의 파수꾼』은 쉽게 구해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달려라, 토끼』는 좀처럼 손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 책은 오랫동안 절판 상태였다. 나는 대전의 헌책방들을 뒤졌고, PC통신의 중고책 장터를 눈여겨보았다. 아마 몇 군데의 도서관도 돌아다녔을 것이다. 그러나 『달려라, 토끼』는 어디에도 없었다. 토끼는 이미 항상 어디론가 달려가고 없었던 것이리라.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났을 때, 카투사로 복무하던 대학선배의 미군 주소지로 이 책의 원서를 배달받았다. 총 4부작인 토끼 시리즈가 한 권으로 묶여 있는 책이었다. 한데 그 책은 단 두 쪽만을 읽었을 뿐이다(그 책은 아직도 책장 한 구석에 꽂혀 있다. 혹시 필요하신 분이 있다면 드릴 의향이 있으니 알려 달라. 목침으로 사용될 수 있을 정도로 두꺼우니 이 점 염두에 두시고).
『달려라, 토끼』를 읽게 된 것은 지금 나이의 절반이었을 때보다 꼭 그만큼 더 나이를 먹고 난 뒤였다. 한마디로 최근이라는 말이다. 그사이 나는 많은 미국 소설들을 알게 되었고, 『위대한 개츠비』에서 데이지 부캐넌이 저택의 소파에 나른하게 앉아 있는 모습이나, 『호밀밭의 파수꾼』에서 홀든 콜필드가 레코드를 들고 거리를 배회하는 모습만이 내가 생각했던 전형적인 미국의 장면들을 구성하지 않는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다. 사실 미국은 어디에나 있었다. 미국의 이미지는 내가 자라난 대전에서도, 성년이 된 뒤 살게 된 서울에서도 넘쳐났다. 나의 ‘미국 3부작’은 다른 것들로 끊임없이 대체될 수 있었고, 3부작이라는 낱말은 더 이상 아무런 의미를 지니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뒤늦게 읽게 된 『달려라, 토끼』는 각별했다. 예상대로였다. 내게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와 베트남전쟁이 발발하기 전의 미국을 관통했던 시대에 대한 관심이 있는데, 대공황도 지나갔고 전쟁도 끝났으며 현대적인 산업사회가 제시하는 끝없는 풍요의 비전을 목도했던 이 시기의 미국인들이 여전히 어떤 공포가, 어떤 비참이 다가올 것이라는 예감을 막연하게나마 느끼고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일이 즐겁기 때문이다(그리고 물론 이런 예감은 오늘의 한국을 사는 우리들에게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한때는 누구나 감탄하는 농구선수였던 래빗 앵스트롬은 어느 날 임신 중인 아내를 떠난다. 그는 장인이 억지로 사게 한 자동차로 몇 시간을 달려간다. 그리고 돌아간다. 그러나 아내에게가 아니다. 그는 다른 여성의 아파트에서 삶을 이어간다. 임신 중이었던 아내가 아이를 낳는다. 딸이다. 래빗은 드디어 아내에게로 돌아간다. 언젠가 그가 골대를 향해 공을 던졌을 때, 그물을 조금도 흔들지 않고 공이 바닥으로 떨어져,
공이 들어간 것인지 아닌 것인지를 알 수 없었던 때가 있었다. 그가 서 있는 위치에서는 공의 궤적을 분명히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아내는 그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는 다시 집을 나간다. 알코올 중독이던 아내는 갓난아이를 익사시킨다. 실수였지만 늘 그렇듯
실수는 돌이킬 수 없는 법이다. 한때 래빗을 받아들였던 여성은 래빗의 아이를 임신 중이다. 그러나 희망은 없다. 래빗은 달리기 시작한다.
소설의 줄거리를 요약하는 일은 부질없다. 줄거리가 함축할 수 있는 것은 줄거리뿐이다. 위의 줄거리를 자세히 읽어보라.
어디서 한 번쯤 들어봤음직한 이야기다. 그러나 이 이야기가 ‘한 번쯤 들어봤음직한 이야기’를 벗어날 수 있는 까닭은
래빗의 무책임한 불안이, 무책임한 탈주가 우리의 연민과 짜증, 그리고 불안과 공포를 자아내기 때문이다.
나는 한때 이런 불안을 ‘미국적인 불안’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미국이 어디에나 존재하는 것처럼,
이런 불안 또한 어디에나 존재한다. 모든 평온은 잠정적이며, 대개 사소한 것들이, 찰나의 순간들이
우리의 보잘 것 없는 평화와 안락함을 불시에 제거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래빗의 무책임한 도피를 쉽게 비난할 수 없다.
이는 무수히 많은 소설들이 내게 가르쳐준 것들 중 하나다.
달리기 시작한 래빗이 어디로 향했는지는 아직까지는 알 수 없다. 그의 행방은 아직 내가 읽지 않은 (혹은 읽지 못한)
책 속에서 확인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돌아온 토끼』나 『토끼는 부자다』의
안에서나 밖에서나 언제고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때로는 나와 닮은 모습으로. 혹은 당신과 닮은 모습으로.
한 번쯤 들어봤음직한 상황에서, 그러나 미세한 혈관처럼 뒤엉킨 이야기의 세부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존 업다이크는 아름다운 문장들로 래빗 앵스트롬의 불안을
그려냈다(자꾸만 내가 불안을 들먹이는 까닭은 Angst가 독일어로 불안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어설픈 독일어가 나의 영혼을 잠식한다).
그러나 우리의 불안은 아마 아름다운 문장들을 갖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는 비참하겠지만,
그러나 우리는 그 비참을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소설 속의 인물들이 아니니까.
다행스럽게도.
한유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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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 적응 못하고 도주하는 래빗
♣'달려라, 토끼'줄거리
『달려라, 토끼』는 ‘20세기 미국문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존 업다이크가 1960년 발표한 작품으로, 그의 출세작이자 대표작이다.
전미도서상과 퓰리처상을 여러 차례 수상한 업다이크는 영미권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그는 ‘미국의 소도시에 사는 신교도 중간 계급’을 다룬 소설로 독서 대중과 평단으로부터 강렬한 공감을 이끌어냈다.
『달려라, 토끼』는 그런 그의 주제가 가장 잘 드러난 작품으로, 고교 시절 유명한 농구선수였지만 졸업 후
평범한 세일즈맨이 된 해리 앵스트롬(래빗)이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일탈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일견 평온하고 안정적인 삶을 살지만 지난날의 화려한 명성을 잊지 못하는 래빗은 결국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아내와 자식을 버려둔 채 도주한다. 정신적 공허감을 견디지 못하고 가정을 버리는 래빗은
소시민들의 정신적 고독과 방황을 대변한다.
업다이크는 『달려라, 토끼』 이후 『돌아온 토끼』『토끼는 부자다』『토끼 잠들다』로 이어지는
‘토끼 4부작’을 10년 단위로 발표하며 주인공 래빗의 20대부터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그려냈으며,
그럼으로써 스스로 ‘형제이자 친한 친구’로 칭한 래빗과 평생을 함께했다.
원제:Rabbit, Run
저자:John Updike(1932~2009)
발표:1960년
분야:미국 문학
한글번역본
제목:달려라, 토끼
옮긴이:정영목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077(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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