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歸去來辭

歸去來兮 

田園將蕪胡不歸  旣自以心爲形役

奚惆悵而獨悲  悟已往之不諫

知來自之可追  實迷塗其未遠

覺今是而昨非  舟搖搖以輕颺

風飄飄而吹衣  問征夫以前路

恨晨光之熹微

乃瞻衡宇  載欣載奔

僮僕歡迎  稚子候門

三徑就荒  松菊猶存

携幼入室  有酒盈樽

引壺觴以自酌  眄庭柯以怡顔

倚南牕以寄傲  審容膝之易安

園日涉以成趣  門雖設而常關

策扶老以流憩  時矯首而游觀

雲無心以出岫  鳥倦飛而知還

景翳翳以將入  撫孤松而盤桓

歸去來兮

請息交以絶游  世與我而相遺

復駕言兮焉求  悅親戚之情話

樂琴書以消憂  農人告余以春及

將有事于西疇

或命巾車  或棹孤舟

旣窈窕以尋壑  亦崎嶇而經丘

木欣欣以向榮  泉涓涓而始流

善萬物之得時  感吾生之行休

已矣乎

寓形宇內復幾時  曷不委心任去留

胡爲乎遑遑欲何之

富貴非吾願  帝鄕不可期

懷良辰以孤往  或植杖而耘耔

登東皐以舒嘯  臨淸流而賦詩

聊乘化以歸盡  樂夫天命復奚疑

 

 

귀거래사

자, 돌아가련다.

고향 전원이 황폐해지려는데

어찌 돌아가지 않으리오

이제껏 자신의 존귀한 정신을 천한 육체의 노예로 삼았으나

어찌 슬퍼 탄식하여 홀로 서러워 하리

지나간 인생은 후회해도 이미 쓸데 없음을 깨달아

장래 인생을 쫓아 갈 수 있음을 알았네

실상 내가 인생길을 갈팡질팡한 것은 오래지 않았나니

지금이 바른 삶이요, 어제까지 그릇됨을 알았네

고향가는 배는 흔들흔들 움직여 가볍게 흔들리고

바람은 솔솔 옷깃에 불어 온다

길손애게 고향이 얼마나 머냐고 물어 보며

새벽빛 아직 희미하여 길 떠나지 못함을 한스러워한다.

마침내 우리 집 대문과 지붕을 보고 기뻐서 뛰어갔네

머슴들도 기뻐 마중나왔고

꼬마들은 대문께서 기디리고 있네

집 마당의 세 줄기 오솔길은 황폐했으나

소나무와 국화는 나를 반기어

꼬마 손을 끌고 방에 들어가니

술이 가득 독에 담겨

항아리와 잔을 끌어당겨 혼자 마시며

마당의 나무 보고 웃음짓는다

남쪽 창가에 기대어 내키는대로 움직이고

무릅이나 들어갈 좁은 방이라도 편안히 있음을 알았네

동산은 날마다 취향있는 경치로 바뀌고

대문은 달았으나 언제나 닫힌 채로다

지팡이 짚어 늙은 몸 부축하여 걷다가는 쉬고

때때로 머리 들어 주위를 살핀다

구름은 산 굴속에서 나와서는 흘러가고

새는 날기가 싫어져 둥지로 들어가네

저녁 햇빛 그늘져 서산에 지려하고

나는 마당의 외솔을 쓰다듬으며 거니네.


돌아가련다.

세상 사람과 교유를 끊고

세상과 나는 서로 잊고 말지니

다시 한번 관리가 되어도 거기 무슨 구할 것이 있으료

친척과 정겨운 이야기를 나누며 기뻐하고

거문고와 책을 즐기며 시름을 지우련다

농부가 찾아와 애게 봄소식 알려 주니

이제는 서쪽 밭에 갈이를 시작하자

어떤 때에는 장식한 수레를 명하고

어떤 때는 한 척의 배를 노저으리니

작은 배 저어 깊은 시내 골짜기를 찾아가고

장식한 수레 타고 험한 언덕 나아가리라

길가의 나무는 생기있게 자라고

샘물은 졸졸 흘러 가네

모든 만물 봄을 기뻐 맞이하고

내 생은 곧 사라짐을 느끼네

아 그저 그런 것인가

육체가 이 세상에 깃드는 것이 얼마 동안이리오

어찌 마음이 명하는대로 생사를 운명에 맡겨 두지 않으며

어찌 이제 와 덤벙거리며 어디로 가려 하는가

돈도 지위도 내 바라는 바 아니요

신선의 세계도 기약할 수없네

따뜻한 봄볕을 그리워하여 홀로 산과 들 거닐고

또한 지팡이 세워 두고 밭의 풀을 뽑는다

아님 동편 언덕 올라가 느긋히 시를 읊고

맑은 강물 흐르는 곳에서 시를 짓는다

하늘에 맡겨 죽으면 죽으리니

천명을 즐기며 살면 그뿐, 근심할 일 아무 것도 없지 않은가.

 

※도연명

陶 淵明 (365-427) 이름은 潛, 淵明은 그의 字다. 東晋 哀帝 建元 원년(365, 신라 내물왕 10년)

심양의 柴桑에서 났다.

어릴 때부터 榮利를 생각하지 않고 글읽기를 좋아했다. 부모는 늙고 집안은 가난하여, 주의 際酒가 되었으나

마음에 맞지 않아 벼슬을 버리고 덜아왔다. 35살 때 다시 彭澤의 수령이 되었으나, 고을의 督郵가 오게 되어, 이속들의 말이,

의관을 정제하고 뵈어야 한다 하므로, “내 어찌 5말 쌀을 위해 향리의 어린아이에게 허리를 굽히랴”하고, 그자리에서

벼슬을 내어놓고 고향으로 돌아와, 저 유명한 <歸去來辭>를

지었다. 뒤에 또 著作郞에 임명되었으나 끝내 취임하지 않고, 고향에서 술과 국화를 즐기며 지내다가,

文帝 元嘉 4년(427, 신라 눌지왕 11년) 63살로 죽었다. 세상에서 그를 靖節先生이라 일컬었다.

그의 시는 평이하고 담박하면서도 깊은 의취가 있다. 그는 낙천주의자였고,

또한 풍부한 상상력을 가지고 있었다. <陶淵明集> 8권이 있다.

 

728x90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