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대 대선후보 2차 TV 토론에서 새누리당 박근혜,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는 경제민주화 방안과 관련해 시각 차이를 드러냈다. 박 후보는 누구나 열심히 노력하면 자기의 꿈과 목표를 이룰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자는 것이라며 ‘공정하고 투명한 시장경제 질서 확립’을 제시했다. 반면 문재인 후보는 우리 경제의 성장률이 뚝 떨어진 것은 우리의 시장경제가 공정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며 재벌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 12월 12일 연합뉴스
☞ 대통령 선거전이 막바지로 접어들면서 경제민주화를 둘러싼 논란도 그야말로 ‘백화쟁명’이다. 경제민주화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뚜렷한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막연히 경제민주화만 되면 모든 경제 문제가 풀릴 것이라고 보는 사람도 적지 않다. 과연 경제민주화는 국민 모두가 잘사는 나라로 만드는 ‘전가의 보도’일까?
경제민주화는 헌법 제119조 2항의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달성하기 위해 실시되는 정부의 규제와 조정” 정도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우리 헌법은 119조 1항에서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고 자유 시장경제를 기본으로 하고 있음을 천명하고 그 보완(보충) 조항으로 2항을 넣었다. 2항을 삽입한 이유는 자유로운 경제활동과 열심히 일해 재산을 모을 수 있는 사유재산권을 보장하면서도 시장경제의 단점인 소득불균형 문제에 대해선 정부가 개입해 조정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는 게 헌법학자들의 견해다.
사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로 촉발된 세계적인 경제위기 이전만 해도 헌법 119조 2항을 아는 사람은 드물었다. 하지만 금융위기와 뒤를 이은 유럽의 재정위기 등으로 세계경제가 침체에 빠지고 한국도 그 영향을 받으면서 이 조항은 주목받기 시작했다. 먹고 살기 힘들어지자 정부가 나서서 강력한 소득 재분배 정책을 취해야 한다는 요구가 거세진 것이다. 이게 이번 대선에서 경제민주화가 이슈로 부상한 배경이다.
그렇다면 문제의 핵심은 △과연 경제를 민주화하는 게 모두가 잘사는 나라를 만들 수 있을 것인가라는 점과 △만약 경제민주화가 국민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면 그 구체적 방법은 무엇인가로 요약된다. 이를 둘러싼 견해는 너무도 다양하다.
먼저 경제를 민주화하는 게 모두가 잘사는 나라를 만들 수 있을 것인가는 서민 삶이 힘들어진 원인이 과연 무엇인지와 관련이 깊다. 경제민주화를 외치는 사람들은 기업들, 특히 재벌로 대표되는 대기업들의 횡포가 경제위기의 근본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대기업들이 중소기업 납품가를 후려치고, 골목상권을 짓밟으며, 빵집까지 진출하는 등 중소기업을 말살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삼성전자나 현대차 같은 기업들이 많은 이익을 내는 것도 다 중소기업의 희생 덕분이라고 말한다.
이에 비해 경제민주화는 정치적 슬로건일 뿐으로 기업들을 위기의 주범으로 모는 것은 온당치 않다는 시각도 많다. 경기침체는 시장경제에 내재한 경기순환 때문으로 대기업이 일자리를 줄이고 서민 삶을 팍팍하게 만들었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시각이 다르니 해법도 많이 다르다. 경제민주화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정부가 인위적으로 대기업의 지배구조를 바꿔서라도 대기업의 횡포를 막아야 한다고 외친다. 좌파에선 아예 대기업을 해체해 중소기업에 나눠주자고까지 한다. 그렇게 하면 모두가 잘사는 나라가 될 것이라고 유토피아도 제시한다. 시장경제의 근본 원칙인 사유재산권마저 부정하는 것이다. 보다 온건한 경제민주화 옹호론자들은 공정거래법 등 현행 법에 마련돼있는 공정경쟁과 기회의 보장, 대기업 경영진의 불법 행위 엄단 등으로 충분히 경제민주화가 이룩될 수 있다고 본다.
이에 비해 경제민주화는 정치적 수사(修辭)일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국민들이 잘살기 위해 시급한 건 성장을 통한 일자리 창출이라며 대기업 옥죄기는 기업가정신을 쇠퇴시키고 국민 삶의 질을 후퇴시킬 뿐이라고 말한다. 기업들이 커야 일자리와 국민소득도 늘어나고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얘기다. 소득재분배는 대기업 때리기가 아니라 사회적 안전망의 강화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민주주의는 ‘1인 1표의 원칙’이 적용된다. 잘살든 못살든 누구나 한 표의 권리를 행사해 다수결 원칙으로 운영되는 정치체제다.
그러나 시장경제를 작동시키는 기본원리는 1인 1표가 아니라 ‘1원 1표’다. 각자가 가진 돈만큼 상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차별화된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다. 경제적 의사결정에 1인 1표의 원칙이 적용된다면 누가 땀흘려 열심히 일할 것인가. 하물며 대기업을 해체하자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공산사회처럼 모두가 못사는 나라가 되자는 얘기와 다름없다. 그런 사회에서는 부지런히 일하기 보다는 정부와 권력자의 끈을 잡는 게 잘사는 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