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경기부양을 위해 올해 안에 미분양 주택을 사 5년 내에만 팔면 양도소득세를 100% 면제해주기로 했다. 주택 구입 때 내야 하는 취득세도 절반을 깎아준다. 자동차와 대형 가전에 붙는 개별소비세도 1.5%포인트 낮춰주기로 했다. 이달부터 월급에서 떼는 원천징수세액도 평균 10% 줄어든다. - 8월11일 한국경제신문
☞ 지난 2분기 경제성장률은 0.3%로 1분기의 3분의 1 수준에 그쳤다. 유럽 재정위기 여파 등으로 수출이 죽을 쑤고 있는 데다 내수마저 얼어붙었기 때문이다. 8월 수출은 전년 동월보다 6% 넘게 감소한 429억7000만달러에 불과했으며 주요 백화점의 매출은 6.1%, 대형 마트는 3.5% 쪼그라들었다. 자동차 판매 역시 25% 가깝게 줄어든 8만6000대에 그쳤다.
이처럼 여기저기 가파른 경기둔화 조짐이 나타나면서 하반기에는 1%대 성장에 그치고 연간 성장률은 2%대에 머무를 것이란 비관적 전망이 줄을 잇는다. 외국계 투자은행인 JP모건은 한국의 올 성장률 전망치를 2.9%에서 2.5%로, 도이체방크는 3%에서 2.6%로 내렸다. 도이체방크는 “민간소비와 수출 부진이 지속되면서 경기가 나빠질 위험이 더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지난 6월에 이어 두 달여 만에 또다시 경기부양책을 꺼내든 건 이런 이유에서다. 하반기에 8조5000억원의 재정자금을 투입하겠다던 1차 대책만으로는 가라앉는 경기를 되살리기 어렵다고 보고 추가로 올해 4조6000억원, 내년 1조3000억원 등 총 5조9000억원을 더 쓰겠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론 △올해 안에 미분양 주택을 사 5년 내에만 팔면 양도소득세를 100% 면제해주고 △부동산을 살 때 내야 하는 취득세는 절반으로 깎아주며 △자동차와 대형 가전제품 구입시 부과되는 개별소비세도 연말까지 한시적으로 낮춰준다는 것이다. 또 매달 월급에서 떼는 원천징수세액도 평균 10% 줄여주기로 했다. 가계의 소비여력을 진작시키고 부동산 거래를 활성화시켜 경기를 회복시켜보자는 뜻이 담겨 있다.
정부는 이번 대책으로 올해 0.06%포인트, 내년 0.1%포인트 등 성장률을 0.16%포인트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경제 전문가들의 견해는 비관에 더 가깝다. 부동산과 자동차 시장이 반짝 반등할 순 있겠지만 길게 보면 경기가 더 주저앉을 수도 있다는 관측이 많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은 “정부의 경기부양책은 중병 걸린 사람에게 ‘앰플 주사’를 놓은 수준”이라며 “중장기적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도 “대외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에서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사실 자동차와 가전제품에 대한 개별소비세 인하 조치는 해당 제품의 부분적인 판매 확대 효과는 있겠지만 전반적인 소비 위축을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다. 가계가 소비를 줄이는 근본 이유는 쓸 돈이 별로 없는 데다 미래 또한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세금을 조금 줄여준다고 해서 소비가 확 살아나길 기대하는 건 우물에서 숭늉 찾는 격이다.
더 중요한 건 기업들이 투자를 늘리도록 유도하는 방안은 거의 없다는 점이다. 기업 투자는 민간 소비와 함께 경제 성장을 이끄는 쌍두마차다. 민간 소비보다 더 성장을 이끄는 힘이 강력하다. 이런저런 이유로 막대한 현금을 쌓아놓고 있는 기업들이 투자에 적극 나설 수 있도록 인센티브를 마련해주는 게 성장엔 훨씬 도움이 된다. 하지만 대통령 선거를 앞둔 지금 국회에선 순환출자규제, 증권 보험 등 2금융권 소유 제한 등 기업들을 옥죄는 법안들이 무더기로 논의되고 있다. 표를 얻기 위한 정치인들의 무책임한 복지 확대와 경제민주화 논란이 춤추는 상황에서 어느 기업이 맘놓고 투자를 하고 고용을 늘릴 수 있을까? 기업들이 불확실한 미래로 인해 투자를 유보하는 건 생존전략의 하나일 수 있다.
한국 경제는 전환점에 와 있다. 지금 순간을 슬기롭게 극복하지 못한다면 일본처럼 구조적으로 장기 저성장 국가가 될 가능성이 크다. 단순히 일시적 감세와 재정지출 확대와 같은 대증적인 경기대책만으로는 성장률을 끌어올리고 양질의 일자리를 늘릴 수 없다는 얘기다. 규제를 완화해 기업가정신을 북돋고 기업들의 국내 투자를 늘리며 경제체질을 개선하는 보다 근본적 대책이 시급하다. “한국 경제는 정치권의 무분별한 표 얻기 경쟁으로 인해 또다시 위기에 처했다. 정부와 정치권의 역할은 개인과 기업이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경제 생태계’를 만드는 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는 진념 전 경제부총리의 말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과도한 주택대출로 시달리는 ‘하우스 푸어(house poor)’ 계층을 돕는 방안으로 급부상한 ‘세일 앤드 리스 백’ 도입을 둘러싸고 여당과 정부가 의견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세일 앤드 리스 백은 정부나 은행이 하우스 푸어의 집을 사주되 집을 판 사람에게 월세로 그 집에서 살 수 있게 하고, 나중에 집을 되살 수 있는 권리도 보장하는 것이다. - 9월10일 연합뉴스
☞ ‘세일 앤드 리스 백(매각 후 임대·sale and lease back)’은 기계, 설비, 기구 등의 물건을 사용료를 받고 타인에게 빌려 주는 리스(lease)의 특수 형태 중 하나다. 기업이 소유하고 있는 토지, 기계, 건물 등을 은행이나 보험사, 리스회사 등 금융사나 다른 기업에 매각하고 이를 다시 빌려 이용하는 방법이다. 보유자산을 활용해 현금을 확보하는, 다시 말하면 자산을 유동화하는 기법이다. 기업은 이렇게 조달한 자금을 회사 운영이나 투자에 쓸 수 있다. 보통 기업들이 구조조정을 실시하면서 많이 이용한다. 일정 기간이 지나 경영 형편이 좋아지면 팔았던 자산을 되사는 경우도 적지 않다.
CJ제일제당, CJ GLS, CJ시스템즈 등 CJ그룹의 3개 계열사가 지난 6월 말 부동산펀드에 밀가루 공장과 택배 물류센터 등을 ‘세일 앤드 리스 백’ 방식으로 매각, 1500억원에 가까운 현금을 확보한 게 한 사례다. 이들 계열사는 5년 동안 매각한 시설을 임대료를 내면서 빌려 쓰다 2017년 6월 말 이들 자산을 1500억원에 다시 사들이기로 계약했다.
이처럼 주로 기업들의 구조조정 수단이던 세일 앤드 리스 백의 대상이 기업 보유자산에서 일반 서민들의 집으로 확대되는 방안이 최근 논의되고 있다. 대출을 받아 집을 샀지만 이자 부담에 허덕이고 있는 하우스 푸어들이 가진 집을 정부나 은행에서 사주되 집을 판 사람에게 월세로 그 집에서 살 수 있게 하고, 나중에 집을 되살 수 있는 권리도 보장해주자는 것이다. 집을 가진 서민 입장에서 볼때 대출금을 갚지 못하면 집이 경매로 넘어가는 것보다 유리하다.
여당인 새누리당은 정부와 은행·보험사 등 전 금융회사가 분담해 기금을 설립하고 이 기금을 통해 하우스 푸어가 가진 집을 사주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에 대해 정부는 “재정 부담이 크다”며 반대하고 있다. 집값이 더 떨어지고 팔리지도 않을 경우 정부와 금융사가 고스란히 손해를 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 정부나 금융권이 지원할 경우 빚을 안 갚아도 된다는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를 자극해 주택대출의 기본 틀을 손상시킬 수 있다는 점도 우려한다.
하우스 푸어들의 과도한 이자 부담을 줄여주고 꽁꽁 얼어붙은 부동산 시장을 녹일 수 있는 대책이 시급하다. 하지만 국민 세금이나 금융사들의 팔을 비틀어 문제를 해결하려 해선 안 된다. 가계나 개별 기업이 스스로 결정해서 투자한 결과 입게 된 손해를 모두 세금으로 메워준다면 누가 성실하게 일하고 신중하게 선택하려 할 것인가. 정부와 정치권이 세금으로 모든 경제 문제를 해결해준다면 국민 모두는 ‘베짱이’가 되고 결국은 얼마 안가 그리스처럼 국가부도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