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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저녁기도회(주후 2022년 10월 12일)
제목: "그것은 바로 지금입니다"
말씀: 요한복음 21:15
찬양인도: 쉐키나(이다니엘 부목사님)
사회: 김도훈 부목사님
 
설교자: 박단열 부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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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21:15,
15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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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우리의 삶에 큰 울림을 주는 만남이 있다. 모든 만남이 그렇지는 못하겠지만 특별한 감동, 내 삶을 송두리째 바꾸는 그런 만남이 있다. 누군가에게는 평생의 스승의 만남의 때 일수도 있고, 마음이 딱 맞는 친구 혹은 동역 자를 만날 때, 배우자를 만날 때 일수도 있다. 이러한 만남은 우리의 삶에 큰 변화를 가져다준다. 기존의 생각과 행동이 바뀌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그런데 우리 신앙인들에 있어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만남은 바로 우리의 구원자이신 예수님과의 만남이다. 아마도 이 예배의 자리에 나오신 모든 성도님들은 예수님과의 깊은 만남을 경험하고 그 만남의 기쁨과 감사로 인해 오늘까지 살아왔으리라 생각한다. 성경에는 주님과의 특별한 만남의 이야기가 여러 차례 등장한다. 그 중 누가복음 19장에는 자신의 민족을 수탈하고 살아갔던 한 세리장의 이야기가 나온다. 예수님 당시 지중해 패권을 쥐고 있던 강력한 로마제국은 자신들이 드넓은 영토를 통치하기 위해 막대한 재정을 확충해야 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이 지배한 국가에 무거운 세금을 부여하고 그것을 거두어 들였다. 이러한 세금 부여는 이웃 유대인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세속 정부와 우상숭배에 사용된다는 이유로 유대인들은 세금을 내는 것에 대해서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억지로 세금을 내었기에 그 세금을 징수하는 역할을 맡은 세리들은 그들에게 원망의 대상이었다. 게다가 세리들 자신들도 유대인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매국노로 취급될 수밖에 없었으며 로마제국이 책정한 세금 이상으로 거둬들여 남는 이익을 가져가는 세리들을 향해 유대인들은 창녀와 함께 가장 천한 죄인 취급을 하였다. 그런 세리들의 우두머리였던 삭개오는 비록 부유한 삶을 살았지만, 그 마음에 진정한 행복과 평안이 없었다. 어느 날 삭개오는 여리고에 나타나신 예수님을 만나게 된다. 삭개오는 이전부터 갈릴리 출신의 예수님이라는 분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어왔다. 그의 삶에 대한 근심, 유대인이지만 유대인들의 고혈을 빨아먹고 사는 세리들 중에 세리, 세리 장이었던 삭개오는 세상을 구원할 만한 선지자로 알려진 예수님을 통해 자신의 문제가 해결되길 원했다. 예수님께서 삭개오가 살고 있는 여리고로 오셨을 때 삭개오도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궁금하여 만나고자 했지만 사람들이 워낙 많았고 잘 알려진 것처럼 삭개오 키가 매우 작았기에 예수님의 얼굴조차 볼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뽕나무로 알려진 돌 무화과 나무에 올라갔다. 돌 무화과나무에 올라가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그가 선택했던 방법이었지만 그것으로 그이 궁금증은 온전히 해결되지 못하였다. 하지만 놀랍게도 예수님께서 삭개오를 보시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누가복음 19장 5절에 보면,
 
*누가복음 19:5,
5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 이 부르심은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알기를 원했던 삭개오에게는 너무나도 파격적인 사건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 그 어떤 유대인 지도자도 어떠한 일반백성도 삭개오의 집에 오가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부르심에 삭개오는 즉각적으로 반응을 한다.
 
*누가복음 19:6,
6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삭개오는 예수님의 부르심에 즉각적으로 순종하고 그분께 나아온다. 그렇게 삭개오는 자신의 깊은 갈증을 해결해 주실 수 있는 분,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된다. 모두가 꺼려하는 죄인 중에 죄인인 세리장, 삭개오 집에 들어가시는 예수님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수근 거렸지만 예수님께서는 누가복음 19장 10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누가복음 19:10,
10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때때로 우리는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자기 자신의 방법으로 열심히 찾아다닌다. 그것은 마치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예수님을 통해 어떠한 해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삭개오가 돌 무화과나무에 올라가는 것과 같다. 하지만 그런 노력으로는 해답을 찾을 수각 없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우리 삶에 진정한 의미를 찾는 것은 우리 각자의 돌 무화과나무에 올라감으로 해결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에 반응하고 그 앞에 나아갈 때에만 가능한 일이다.
 
오늘 이 자리에 나오신 성도님들의 삶에도 여러분의 삶을 변화시키신 예수 그리스도의 반문이 있었는가? 여러분 각자에게 어떠한 뚜렷한 사건이 있었는지 저는 알지 못한다. 그렇지만 제가 확신하는 것은 우리 주님께서 저와 여러분의 삶에서 우리가 각자의 마음 문을 두드리시며 우리를 부르신 그 사건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예수님과의 특별한 만남을 통해 우리 생각이 바뀌고, 우리 행동이 변화되었을 것이다. 세상의 그 어느 것으로도 채울 수 없는 감사와 기쁨, 그리고 어떤 존재보다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과의 만남은 너무나 중요하다. 또한 내가 힘들 때 나를 위로하시고 나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하나님, 그분은 얼마나 좋으신 분이신가?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딱 거기까지만 한정짓는 경우가 많이 있다. 하나님은 나를 지키시는 분, 나의 필요를 채우시는 분, 나를 사랑하시는 분,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나에게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주시는 분, 딱 여기까지만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과의 관계는 여기에서 멈춰서는 안 된다. 하나님이 인격적이신 분이시기 때문에 그분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으로 그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인격적인 관계를 맺고 싶어 하시는 분이다. 하나님과 같이 너무도 크고 위대하시고 아무것도 필요가 없으실 것 같은 그 하나님께서 세상에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그 하나님께서 바로 우리와 인격적인 관계를 맺고 싶어하신다는 것이다. 구약성경 신명기 6장 4절과 5절은 이렇게 이야기 한다.
 
*신명기 6:4-5,
4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5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출 애굽한 이스라엘 민족이 40년간의 광야 생활을 마무리할 즈음, 하나님은 지도자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민족이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지를 말씀해 주신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 출애굽의 사건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강력하게 자기 자신을 보여주시며, 자기 백성들을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이끄시는 놀라운 역사였다. 그런 하나님께서 어찌나 강한 능력으로 이스라엘을 이끄시는지 홍해사건 직후에 모세는 다음과 같이 찬양한다.
 
*출애굽기 15:11,
11 여호와여 신 중에 주와 같은 자가 누구니이까 주와 같이 거룩함으로 영광스러우며 찬송할 만한 위엄이 있으며 기이한 일을 행하는 자가 누구니이까.
-이렇게 강한 능력을 가진 하나님께서 언약 백성인 이스라엘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바로 ‘마음과 뜻과 힘들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라고 하는 것이었다. 세상이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능력을 가지신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므로 우리를 지키시고, 필요를 채우시는 것으로 멈추시지 않으시고, 우리와 더 깊고 우리와 더 특별한 관계를 맺기 우해 원하시는데 바로 우리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요청하시는 것이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사랑하시는가? 많은 경우에 내가 하나님께 사랑을 받은 너무 당연한데,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색하게 느낄 때가 많이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나를 너무도 사랑하시기 때문에 독생자 예수님의 생명으로 나를 건지시고 나의 삶에 자리에 찾아오셔서 나를 자녀 삼아주시고, 날마다 은혜로 나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것도 너무나 감사하지만 우리 믿음 생활에 있어서 정말 감사할 수 있고 우리가 기뻐할 수 있는 것은 한 낮 피조물에 불과한 우리가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그 큰 의미가 있다.
 
그렇다면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 여러분은 누군가를 깊이 사랑해본 적이 있는가? 누군가를 사랑할 때, 우리의 시선은 그 대상을 향하게 된다. 아주 옛날로 돌아가서 여러분의 학창시절이나 대학시절을 생각해 보라. 누군가 맘에 든 이성이 있다면 나도 모르게 계속 그 친구를 바라보게 된다. 계속 눈길이 가게 되고 관심이 가게 된다. 내가 내 마음을 잘 몰라도 옆에 친구가 자꾸 이야기한다. “너는 왜 자꾸 그 애를 보냐?” 무슨 의미인가? 그 대상을 좋아하는 마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거기서 그치지 않고 조금 더 자세히 알고 싶어 한다. ‘저 사람은 무엇을 좋아할까? 무슨 취미를 가졌을까? 과연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아갈까?’ 그 대상에 대한 생각으로 여러분의 머릿속에 가득 찼던 그 순간이 기억나는가? 그렇다면 하나님에 대해서도 그런 경험을 해본 적이 있는가? 내 시선이 계속해서 하나님을 향하게 되고 잠자리에 들 때나, 아침에 새로운 날을 맞이할 때, 하나님 생각으로 두근두근 하고 그 경험을 해 본 적이 있는가? 하나님의 대한 깊은 생각으로 하나님을 더 알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하나님을 더 묵상하고 연구하고 암송했던 적이 있는가? 하나님과 더 깊이 있게 대화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기도의 깊은 자리에 더 나아가 그 때 느꼈던 감격과 기쁨을 경험했던 적이 있는가? 찬송가315장(512장), 내 주 되신 주, 참 사랑하고 나는 찬송가가 있다.
 
*찬송가315장(512장)
1.내 주되신 주를 참 사랑하고
곧 그에게 죄를 다 고하리라
큰 은혜를 주신 내 예수시니
이전 보다 더욱 사랑합니다.
 
2.주 날 사랑하사 구하시려고
저 십자가 고난 당하셨도다
그 가시관 쓰신 내 주 뵈오니
이전 보다 더욱 사랑합니다.
 
3.내 평생에 힘쓸 그 큰 의무는
주 예수의 덕을 늘 기리다가
숨질 때에라도 내 할 말씀이
이전 보다 더욱 사랑합니다.
 
4.큰 영광의 구주 날 사랑하사
그 풍성한 은혜 더 하시리니
금 면류관 쓰고 늘 찬송할 말
이전 보다 더욱 사랑합니다.
-여러분에게 이 찬송가의 가사와 같은 주님을 향한 사랑의 믿음의 고백이 있기를 소망한다. 그런데 1-4절까지를 보면, 공통된 가사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이전보다 더욱 사랑합니다.’를 그런 아름다운 찬양의 고백이다. 저는 여러분이 살아가는 날 동안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는데 날마다, 때마다 하나님을 더욱 더 사랑하기를 소망한다. 그리하여서 우리가 기도할 떼 작년보다 올해가 더 사랑하며 지난달보다 이번 달이 더욱 하나님을 사랑하며, 지난주보다, 이번 주, 어제보다 오늘, 오늘 아침 일어날 때보다 오늘밤 잠자리에 들 때는 하나님을 더욱 사랑한다고 고백하기 원합니다. 라는 기도의 제목이 우리 모두의 기도의 제목이 되기를 소망한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분명한 믿음의 고백이 있을 때, 큰 변화가 따라오게 된다. 누군가를 정말로 사랑하게 되면 처음에는 단순한 관심에서 시작하지만 점차 우리의 마음은 그 사랑하는 대상을 위해서 내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바뀌어 지게 된다. 만약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입으로 고백하고 마음도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정작 그 대상에게 아무것도 해주고 싶은 것이 없다면 정말로 그 대상을 사랑하는 것이 아닐 것 같다. 마찬가지로 정말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우리는 너무나 당연하게 어떻게 하면 ‘내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라는 삶을 가질 수 있게 된다. ‘나는 과연 무엇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을까? 나는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이런 고민을 할 수밖에 없다. 입술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찬양 가운데 하나님을 찬양한다고 고백할지라도 때론 그 가운데 눈물과 감격이 있다할지라도 사랑하는 하나님을 향해서 ‘과연 나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의 전환이 없다는 것은 말로만 사랑하는 것이지,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데는 부족할 것 같다. 우리 각자가 하나님을 정말 사랑하는지 우리 각자가 확인해 보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 나는 정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고자 하는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관심사가 무엇인지를 알고 하나님의 관심이 있는 데에 나 또한 관심을 갖고 거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더욱 고민하고 실행하는 것이다. 여러분, 그런 마음으로 마음이 설레 본적이 없는가?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가 너무나 감사하고, 그 가운데 주시는 감사함이 너무나 가득해서, “하나님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원하고, 하나님의 관심 있는 곳에 내 관심이 있기를 원합니다.” 그렇게 기도하지 않은가? 우리가 정말 사랑하는지를 원하는 방법은 이것이다.
 
둘째,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서 하는가?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는가?.
*갈라디아서 1:10,
10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말로는 하나님을 위한다 하면서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더 초점을 맞출 때가 있다.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사람들의 시선이 아닌, 하나님께서 나를 바라보고 계시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 가운데 나아가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 주님 예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일을 과연 무엇일까? 오늘 본문에서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디베랴 바닷가에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시고 자신에게 가장 따랐던 제자 베드로와 말씀하시는 장면이 나온다.

오늘 본문을 보면,

*요한복음 21:15,
15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주님께서 하나님을 사랑하므로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바로 ‘내 어린양을 먹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자녀 삼으시고, 또한 택한 백성들, 아직까지 하나님을 잘 잊지 못하는 연약한 자들에게 하나님을 알게 하고 또한 그들을 온전한 예수님의 제자로 성장시키는데 우리가 함께 하는데 원하고 계신다. 그리고 우리의 삶을 통해 우리에게 맡겨진 영혼들, 때로는 순장님이면 순원 들일 수도 있고, 우리가 또 주일학교 교사라면 우리들에게 맡겨준 학생들일 수도 있고, 나에게 맡겨진 조원들일 수도 있고, 그 영혼들이 있다. 그들뿐만이 아니라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 나의 동역 자들일 수도 있고 직장에서 나보다 더 하급 자일수도 있고 그런 여러 사람들 가운데 그 하나님이 자녀들이 실족하고 시험 들지 않도록 우리의 삶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 또한 하나님을 사랑할 때, 마땅히 이루어져야 할 일이다. 우리가 입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우리의 말과 행동을 통해 누군가를 상처주고 그들을 낙심하게 만든다면, 그것이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이것은 여전히 우리에게 남아있는 참으로 어려운 숙제인 것 같다.
 
어떤 때는 너무나도 큰 은혜를 받기 때문에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충만하여 모든 일에 너그러워지고 모든 일들에 대해서 이해하고 용납할 수 있지만 조금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무뎌지거나 멀어져도 우리의 마음이 금새 날카로워져서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고자 하고, 다른 사람의 허물을 드러내고자 하는 그런 연약함이 우리에게 계속해서 남아있지 않는가? 그것은 또한 저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저 스스로도 분명히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생각하기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고자 하지만 여전히 제 마음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서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려하고, 또 잘 되는 사람들을 시기(猜忌) 질투(嫉妬)하고 또한 더욱더 사랑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말과 행동으로 상처주고 그들을 낙심케 하는 제 자신을 볼 때마다 작은 괴로움이 저에게 있다.
 
아주 예전에 저는 스스로 연약함으로 인해 마음에 큰 눌림이 있던 어느 날 우리가 방금 나누었던 이 찬송가의 ‘내 주 되신 주’의 가사를 깊이 묵상했던 적이 있다. 가사를 하나하나 되새기며, ‘이전보다 더욱 사랑합니다.’라는 구절을 보자 나는 참 부족하지만 언젠가 더욱 하나님을 더 사랑할 수 있게 되면 그때는 내 삶이 좀더 거룩하게 되지 않을까? 그런 기대를 가지고 이 구절을 가지고 이 찬송가를 묵상했는데 그러던 중에 갑자기 궁금증이 생겨서 이 가사의 원곡에 대해서 어떤 내용인가를 찾아보게 되었다. 찬송가로 되어 있고 여러 가지 해석될 수 있겠지만, 제가 ‘이전보다 더욱 사랑합니다.’.의 원 가사를 한 번 의역해 보았다. 그것을 해석해 보며 이렇다. ‘만약 나의 예수님을 가장 했던 사랑했던 순간이 언제인가?’ 라면 ‘그것은 바로 지금입니다.’.라고 해석할 수 있었다. 사실 그전까지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이전보다 더욱 사랑합니다.’ 라는 구절이 막연한 어떤 미래를 이야기 한다.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내가 부족하지만 계속 하나님을 사랑하고자 하는 그 마음이 나에게 있다면 거기를 걸어간다면 어느 순간에는 그래도 내가 믿음의 고백으로 “주님, 내가 이전보다 더욱 주님을 사랑합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이 찬송 시는 막연한 미래가 아니라, 바로 지금 이 순간 내가 내 삶의 어떤 순간보다도 ‘내 현재의 삶에 지금 하나님을 가장 사랑해야 한다.’ 라고 이야기 하고 있었다. 미래의 어느 순간을 기대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이 순간 나 연약한 그 모든 상황들 속에서도 내가 하나님을 적극적으로 사랑하며 그 연약함 들을 이겨내고자 애써야 된다는 것이 이 말씀의 가사, 이 찬송가의 가사 속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는 살아가며 많은 어려움과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그런데 대부분의 문제가 문제 그 자체에 집중할 때는 해결하기가 어렵다. 오히려 더 복잡해지는 것을 경험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날마다 정답으로 돌아와야 되는데, 그 정답은 바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시 회복하는 것으로부터 우리 삶에 여러 가지 문제들이 해결되는 것을 우리는 경험할 수 있다. 지난 ‘9.26 한국교회 섬김의 날’을 위한 강단 기도회, 한 달 동안 진행되는 그 기도회 가운데 큰 은혜가 있었다. 한 달 동안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주님의 몸 된 한국교회들을 섬기기 위해 우리가 기도회의 자리로 나아갈 때에 우리의 삶의 문제들을 잠시 뒤로 하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그 기도제목을 우리의 삶에 우선순위에 놓고 기도의 자리로 나아왔을 때에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셨는지를 우리는 경험하였다. 그리고 그 일이 그렇게 기도한 이후에 우리가 정말 섬김을 마친 이후에 자연스럽게 우리의 삶의 문제 또한 순리대로 하나님의 방법으로 들려지고 해결되는 것을 경험했다. 제 개인적으로도 몇 달간 고민하고 준비하던 일들이 잘 해결되지 않아 고민하고 있던 중에 강단 기도회가 지나고 ‘9.26 한국교회 섬김의 날’이 지난 며칠 뒤에 그 일들이 차례차례 해결되는 것을 경험하였다. 우리의 삶에 많은 순간 가운데 하나님을 날마다 우리의 삶에 가장 중요한 자리에 놓고,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기 위해서 하루하루를 살아갈 때, 우리의 삶에 큰 변화가 일어날 줄 믿는다. 이중에는 과거의 어느 시점에 하나님과 깊은 교제의 시간을 가졌던 분들이 있을 것이다. 주님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설레고 기쁨이 충만했던 그 때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현재의 여러분은 어떠한가? 현재는 그 설레었던 그 하나님의 대한 그 사랑을 사랑이 약간은 퇴색된 채, 과거의 하나님과의 좋았던 때만을 기억하며 언젠가는 다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기다리고만 있지는 않은가? 여러분의 삶에 여러 가지 문제들이 있는가? 어떠한 어려움이 있는가? 다른 사람들과의 갈등으로 고통 받고 있는가? 바로 지금 하나님을 향한 그 사랑을 회복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므로 하나님께서 정말 기뻐하시는 일을 위해 살아가기를 바란다.
 
이 자리에 나오신 귀한 주님의 자녀들인 여러분, 하나님을 사랑하시는가? 지금까지 여러분의 신앙의 그 모든 여정 가운데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찾아오신 하나님, 나의 모든 상황을 아시고 나에게 필요하시는 그 하나님, 그 분을 가장 사랑해야 하는 그 순간이 언제인가? 그것은 바로 지금이다.
 
♣요약
은혜의 자리로 나오게 하심에 감사하며 연약한 피조물이자 죄인 된 우리의 삶에 찾아오셔서 우리를 주님의 자녀로 삼으시고 우리에게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특권을 허락하심에 감사와 영광 돌리며, 우리가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지극히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에 우리의 삶을 올려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여서 다른 사람을 판단하지 말고, 시기 질투하는 마음, 사랑하는 마음으로 용납하기보다는 힘으로 억누르려는 우리가 매 순간을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는 순간으로 살아가기 위해 삶의 자리에서 치열한 삶을 살아갈 때에 성령 충만을 허락하기를 간구해야 한다. 그래서 거룩한 덕을 세우고 우리 모두가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함으로 각자의 삶의 자리를 지켜서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나아가는 믿음 보고를 올려드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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