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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4년 6월 23일)
제목: “시험 들지 말고 예배하라”
(Worship the Lord Your God Instead of Folling into Temptation).
-(예수님은 누구신가? ⑭)

말씀: 마태복음 4:5~11,
찬양인도: 쉐키나(이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대표기도: 이기원 부목사님
사회: 임병영 부목사님(1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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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4:5~11,
5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6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7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8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9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10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11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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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6.25 발발 74주년이자, 사랑의 교회는 복음적 평화통일을 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1년에 몇 차례만 우리 강단 위에 국기, 태극기와 또 교회 깃발 2개가 나와 있습니다. 여러분과 저는 두 나라 백성입니다. 대한민국 백성입니다. 첫째는 하나님 나라 백성이고, 그 다음에는 대한민국 백성입니다. 맞습니까?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는 우리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더 기쁘시게 하고,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릴 것인가? 이것이 Key이고, 대한민국 백성으로서는 우리가 이 말씀을 받은 사명자로, 예수님의 온전한 제자로, 시대 앞에서 어떻게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이 Key인데, 오늘 ‘예수님은 누구신가?’ 열네 번째(⑭) 말씀, “시험 들지 말고 예배하라.” 이 마음 이 말씀을 가지고 여러분들이 말씀으로 여러분들에게 잘 씨앗이 떨어지게 하시고, 말씀의 씨앗이 또 발아(發芽)되고, 또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어지는 그런 축복이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지난주에 이어서 오늘 마태복음 4장에 본문을 가지고 계속 To be Continued.~ 계속 이어서 말씀하셨는데, 지난주를 2번에 걸쳐서 처음 광야에서 육신의 시험을, 배고픔으로 시험하게 하시고, 그다음에 예루살렘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라. 이생의 자랑 그렇게 시험하고, 오늘 이제 세 번째 핵심인데 오늘 이 세 번째 시험을 여러분들이 잘 확인하고, 승리하면 여러분의 가정도, 우리 민족도, 이 시대도 하나님 주신 은혜를 체험할 수가 있습니다.
 
오늘 핵심은 예배에 관한 것입니다. 10절에,
 
*마태복음 4:10,
10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아멘 신구약에 보면 경배란 말은 여배와 연결돼 있을 뿐만 아니라, 섬긴다 할 때도 여호수아가 너희는 너의 택할 자를 택하라. 나는 나와 우리 집은 여호와를 뭐 하겠노라 섬기겠노라. 예배와 그대로 직결되어 있습니다. 나와 내 집은 예배하겠느니라. 이런 뜻으로 나와 있습니다. 자 포인트는 우리가 시험 들 때마다 예수님은 먼저는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승리를 했습니다. 뭐로 승리했다고요? 기록된 하나님 말씀으로,,,, 그러니까 저와 여러분이 마귀를 대적한다. 그랬을 때에 마귀와의 영적 전쟁을 감당한다고 그랬을 때 무얼로 승리할까요? 우리가 무슨 능력이 있어요? 무슨 불을 받아 가지고 그럴 수도 있지만,
 
진짜 우리가 한 결 같이 꾸준하게 승리하는 비결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긴다는 말을 우리가 야고보서 4장 7절에 뭐라고 나와 있냐면, 이런 말씀이 나와 있습니다.
 
*야고보서 4:7,
7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자 기록된 하나님 말씀을 이겼는데, 주님이 야고보를 통하여 뭐로 말씀하시냐면, 하나님께 복종하라 마귀를 대적하라 이런 말이 나오는데, 마귀를 대적한다. 할 때 우리가 어떻게 마귀를 막 대적하겠어요? 마귀를 대적하는 길은 하나님을 복종하는 것이에요. 하나님을 복종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우리가 주기도문 하면서 우리가 시험 악에게 시험 들지 말게 해달라고, 일용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악에게 시험을 들지 말게 해달라고, 우리가 기도하잖아요?. 뭐라고 기도합니까? 우리가 범죄하지 말고,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게 해달라고, 그건 사실은 우리를 보호해달라는 간구이지만 거기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겠다는 선언이 들어있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겠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겠다는 것을 우리가 무슨 복종의 관계다 순종의 관계다. 그랬을 때 이것을 무슨 우리가 꼼짝도 못하고 노예 상태가 돼 가지고 뭐 이렇게 아주 그냥 굴복하고 이런 뜻이 아니에요. 프란시코 박사 같은 경우는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는 그냥 순종이 아니고, 이거는 능동적 수동형이다. 다시 한 번 뭐라구요. 능동적 수동성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수동적으로 순종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은 능동적인 것이다. 능동적인 것이다.
 
예를 들어 세상에 무슨 억지로 포로가 되어 가지고, 그냥 참 굴복하고 막 이거는 그런 것들은 좀 어렵지만, 진짜 제대로 된 영광스러운 위대한 대상이 우리 앞에 있을 때 그 대상을 따라 그 승리의 깃발을 우리가 같이 붙잡고, 그 대상의 길을 순종하는 것은 그것은 영광스러운 것이에요. 맞습니까? 그러니까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한다는 것은 단순히 굴복하고 이런 것이 아니라, 정말로 마귀(魔鬼)의 시험을 이겨낼 수 있는 영광스러운 선제공격(先制攻擊)이 되는 것이에요. 인제 그런데 문제는 뭐냐 하면, 하나님 말씀을 그만큼 가까이 두느냐, 그러니까 말씀을 가까이 두느냐, 시편 119편에 보면 뭐라고 나와 있냐면요, 이렇게 나와 있어요.
 
*시편119:11,
11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내 마음에 가까이 두었다고 그랬는데 기록된 하지만 가까이 두는데, 제가 한번 우리 옛날 어른들 얘기 한번 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오늘 이와 같이 예배를 드리러 나오시지만 오늘 주일날 나올 때 어떤 분들은 일주일 내내 이걸 성경은 또 성경 밑에 성경 위에는 다른 책 두지 말라 그랬으니까 위에 딱 얹어 놓아요. 그러면 일주일 내내 여기에 안 보면 먼지만 파박 쌓이는 거예요. 그래서 주일날 올 때 먼지를 그걸 옛날에 후후 불어서 가지고 옵니다. 그걸 예전에는 후탁교인이라고 했어요. 예,,, 우리 가운데는 그런 교인이 없는 줄로 믿습니다.
 
근데 문제는 요새는 전부 다 휴대폰 안에다가 성경을 갖고 다니니까, 요새는 후탁교인이 아니라, 주일 예배 와가지고 그때 말씀을 꺼내니까, 그거는 후딱교인이에요. 후탁이든, 후딱이든, 우리는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주님을 순종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과 연결이 되어 있다. 그래 생각해 가지고,,, 오늘 이 말씀이 여러분들에게 정말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능동적 수동성을 가진 대장되신 예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그런 시간이 되기를 바라는 겁니다. 그리고 다 이거 이제 승리하고 나니까 11절에 뭐라고 나와 있냐면,
 
*마태복음 4:11,
11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아멘 기진맥진(氣盡脈盡)한 예수님의 몸을 붙들어 일으켜 드리고, 천사들이 인성으로 굶주리신 예수님을 하늘과 땅의 신령한 양식으로 채워 주신 원기를 회복시켜 주신 아버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자, 이 전체적으로 제가 지금 그림을 그려드렸고,
 
본격적으로 왜? 주님께서는 주 네 하나님만을 섬기라고 왜 그렇게 했을까요? 이 모든 시험의 마귀 마귀의 시험의 마지막 결론을 이렇게 내리신 이유가 뭘까? 한 번 더 보겠습니다. 8절에 보니까,
 
*마태복음 4:8,
8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마귀가 예수님을 어떻게 해요?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주고, 근데 이걸 멀리서 보여줬어요. 멀리서 이렇게 멀리서 보여준 이유가 뭐냐 하면, 그 멀리 보니까 거기에 로마 제국의 찬란한 문화가 있고, 아테네 멋있는 신전이 있고, 예루살렘 성전의 영광스러운 모습과 헤롯의 금빛 도움들이 있었어요. 휘황(輝煌) 찬란(燦爛)한 매력 있는 것들을 보여줬어요. 근데 많은 것들이 세상 것들은 멀리서 보면 다 멋있어요. 근데 가까이 가보면 실망하는 것이에요. 아무리 아름다운 자연 경치도 조금만 숲을 헤치고 들어가면 무서운 살생이 벌어지는 거예요. 멀리 봤을 때는 아름답지만 그 안에 무서운 야생 짐승이 있고, 뱀이 있고, 자연도 겉으로 볼 때는 멀리서 아름답게 보이지만 들어가 아주 거친 가시가 있고 그런 게 있잖아요? 멀리서 보면 아름다운 것 같지만 그러고 난 다음에 이제 중요한데 9절에,
 
*마태복음 4:9,
9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이게 얼마나 간교(奸巧)하고 교묘(巧妙)한 시험(試驗)인지 모릅니다.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敬拜)하면, 이 내용은 이것입니다. 사탄의 마지막 시험은 예배(禮拜)에 대한 시험이었어요. 누구를 경배하느냐? 누구를 예배하느냐? ‘만일 내게 엎드려 내게 경배하면, 예수님께서 인간의 대표로 받으신 마지막 시험인데 이런 뜻이에요. 인간은 누구나 예외 없이 예배하는 자로 취임 받았어요.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으면 다른 무엇인가를 예배하게 되어 있어요. 하다못해 요새는요, 나 수많은 우리 여러분들 수많은 것들을 예배하는 인생이 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주님께서는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으면, 다른 무언가를 예배하는 이런 상태를 보시고 마귀의 가장 강력한 이 시험, 이 예배에 관한 시험을 가지고, 공격해 왔을 때, 예수님께선 단호하게 사탄아 물러가라!!! 그래서 여러분 인류의 역사는 예배 문제로, 예배 전쟁이다.
 
제가 오늘 좀 이 뒷부분이 중요하기 때문에 앞부분을 제가 요약해서 말씀을 드리는데, 인류 역사에서 예배의 문제는 항상 갈등(葛藤) 구조였어요. 자 보세요. 하나님께서 아담을 창조하시고 아담과 교제를 통하여 아담과 하오가 하나를 예배하게 돼 있어요. 근데 그 불순종을 해 가지고 예배가 파괴되기 시작했습니다. 근데 마지막 요한계시록 22장이 마지막에 온 백성과 방언과 족속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알파가 예배로 시작하고, 오메가가 예배로 마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이걸 알고 사탄은 인간이 예배하는 자로 지어졌다는 것을 이걸 자기를 예배하게 만드는 아닌 다른 걸로 대체해 가지고 예배하도록 그렇게 교묘(巧妙)하게 난리를 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인간의 역사는 예배에서 시작해서, 예배로 끝나게 되는데 예배 인류 역사에서 예배의 문제는 항상 갈등 구조가 있었어요. 아담이 그랬지만 아담이 에덴동산에 쫓겨나고 난 다음에 예배 전쟁으로 드디어 살인이 일어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가인의 예배를 받아주시지 않고, 아벨 예배를 받아주시니까 가인이 동생을 살인해버린 것입니다. 그러면 노아는 방주에서 구원받고 나서 한 첫 번째 행동이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을 예배하게 되어 있는 것이에요. 아브라함의 사명을 받고 난 다음에, 너는 축복의 근원이 되라 사명 받고 난 다음에, 제일 먼저 한 것이 하나님 앞에 제단을 쌓은 것입니다. 예배하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여러분 출애굽기 할 때에 왜? 하나님께서 출애굽을 시켰는가? 얘기했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에굽 땅에서 이방신을 섬기는 한 아주 힘든 그런 상황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뭐 육신적으로 출애굽기 17장에 보면, 이 백성을 광야론 나오게 해라. 저들이 나를 섬기게 하라. 하나님을 섬긴다는 말이 예배란 말과 동일하다는 것이에요. 말씀한 대로 여호수아가 뭐라고 말했습니까? ‘너희 백성들이 택할 자를 택하라. 나는 나와 우리 집은 여호와를 예배하고 섬기겠노라.’
 
예수님의 탄생(誕生) 스토리도 예배로 시작했습니다. 천사와 동방박사와 목자와 시몬과 반나가 예수님께 예배하고 경배한 것입니다. 예배가 인류 역사의 시작이요. 마지막이요. 알파와 오메가라고 말할 수가 있는 겁니다. 자, 우리는 이런 의미에서 이제 삶의 현장에서 오늘 지난주, 이번 주에 걸쳐서 예수님의 시험을 거치면서 예수님이 오늘은 우리의 참예배자이시고, 또 참예배자를 만드시는 예수님이신 줄 믿으셔야 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뜻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우리 교우들이 성숙했다는 걸 뭘로 표현합니까? 사랑의 교 입장에서는 성숙한다고 그랬을 때 우리가 예수님의 온전한 제자로 주님을 더 닮아 가는 것, 그 다음에 우리가 또 주님을 닮아가고 난 다음에 다른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거, 가치 있고 귀한 일이에요.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이 주님을 닮아가고,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이것은 궁극이 아니에요. 이거는 과정이고, 이건 이거는 이 일들을 통한 무장되는 것이에요. 궁극의 목적은 뭐냐 하면 우리 인생은 이런 일들을 통하여 하나님을 참으로 예배하는 자가 돼야 되는 것이에요. 선교사들이 가끔 와서 선교하잖아요? 선교지에 선교지의 제일 중요한 것이 선교의 목표가 뭐냐? 선교지의 영혼 구원하고 복음전도 다 하는 것이지만 결국은 그 선교지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땅으로 바뀌어야만 되는 것이고, 그 선교지의 백성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가 돼야 한다는 것이에요.
 
오늘 우리는 6.25 발발 74주년, 이 남북의 문제를 얘기할 때 뭐 여러 가지 해석을 합니다마는 남북의 문제에 가장 심각한 것은 뭐냐? 예배의 문제예요. 북한이 공산주의가 이제 이북을 점령하고, 난 다음에 제일 먼저 한 것이 뭐냐 하면, 교회를 파괴했습니다. 예배의 대상을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북한의 신실한 평양의 장대연 교회나 산자연교회나 신의주제일교회나 청진이나 곳곳마다 하나님의 2850교회 그 3천여 교회가 있었는데, 그 교회가 하나님을 다 다 여배가 일본 시대에도 그 의무관시대에도 예배를 다 드리고 있는 그걸 다 파괴를 하고, 김일성과 요즘은 김일성 주체사상을 예배하게 만드는 것이에요. 남북의 문제는 사실은 남남 갈등도 있지만 남북의 문제는 사실 예배의 문제예요.
 
그러니까 오늘 우리는 오늘 예배를 통하여 북한에도 예배가 회복되게 하여 주십시오. 여러분 예배가 없이 공적 예배나 이런 예배가 없이 10년을 지나고, 20년을 지나고 30년이 지나면, 그 땅들이 다 피하게 될 수밖에 없는 거예요. 북한은 겉으로는 뭐 평양의 멋있기가 보이지만 사실은 그 땅이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았기 때문에 너무너무 황폐해진 것이에요. 70년이 지났기 때문에,,, 그러니까 오늘 이 말씀을 통하여 주님, 북쪽에도 하나님을 예배하는 곳이 될 수 있도록 변화시켜주옵소서. 그리고 저와 여러분에게 주시는 영적 성숙의 장에 있어서, 진짜 우리의 성숙의 궁극은 하나님을 참되게 예배하는 것인 줄로 믿습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을 참되게 예배할 수가 있는가? 오늘 이 모든 시험을 이겨내는 마지막 궁극은 하나님을 향한 참된 여배자가 돼야 되는데 세상에 우리는 세상을 하여튼 하나님이 예배하지 않으면, 다른 걸 예배하게 될 수밖에 없는 이런 상황이 되어 있는데, 첫째,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I. 첫째, 마음이 참된 예배를 드려야 한다.

-오늘 사랑의 길에 속한 모든 성도들과 오늘 이 말씀을 듣는 모든 죄 권속들은 예외 없이 여러분들의 마음을 참된 마음으로 하나님을 예배해야 한다는 것이에요. 마음이 참된 예배를 드려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이사야가 고백한 대로 이 백성의 입술로는 존중한다고 하지만, 마음은 다 떠나 있다고 그랬어요. 마태복음 15장 8절, 9절에 보니까,
 
*마태복음 15:8,
8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9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하시고.
-자 주님을 참되게 예배하고 경배를 해야 되는데, 마음이 떠나 있는 거예요. 마음이 참된 예배를 드려야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참된 예배는 마음을 드리는 것이고. 입술이 아니라, 마음으로 주님을 집중하는 것인데 그러니까 오늘도 이 예배를 드리면서 오늘 우리 회중 찬송했잖아요. 우리의 예배를 받아주시옵소서. 오늘 여러분들의 마음을 실어가지고, 지금 즉시, 우리가 마음을 어떻게? 우리의 마음을 어떻게 주님께 예배드릴 것인가? 우리의 참된 마음으로 어떻게 예배를 드릴 것인가? 우리의 마음이 날마다 거룩한 기대감을 가지고 나와야 하는 것이에요.
 
지 지난주 우리 46주년 예배를 드릴 때, 그때 회중 찬송할 때 조금 우리가 다른 때와는 다르게, ‘기뻐하며 경배하세, 영광의 주 하나님, 그 찬송하고 내 주의 나라와 주계신 성전과 피 흘려 사신, 찬송을 할 때에 많은 회중들이 할 때에 많은 분들이 눈물을 훔치더라고요. 그러니까 그것이 뭐냐 하면, 마음의 주님께 올려 져 있는 거예요. 제가 다시 보겠습니다. 지지난주 예배할 때 무슨 찬송한지, 기억나십니까? 벌써 뭐 옛날에 금잔디 동산으로,,, 이런 마음이 추님 앞에 올려드려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늘 말씀드리지만, 예배는 예배드리기 전에 결정되는 거에요. 마음이 거룩한 기대감을 가지고 예배를 드려야만 하는 것이에요. 마음이 매주일 마다 새 마음으로, 새로운 기대감으로 간절히 예배를 드리라는 거예요. 이런 차원에서 토요일 저녁과 주일 아침이 정말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미리미리 마음으로 기대하고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토요일 밤 잠들기 전에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기대하면서 준비해야 되는 거예요.
 
주일 날 예배 나오셔가지고, 오늘도 창조의 아버지 찬양할 때, 또 웨이 메이커(Way Maker), 찬양할 때 우리의 마음이 거룩한 기대감으로 터질 듯해야 되는 것이에요. 이런 마음으로 예배를 잘 드릴 때마다 시편 29편 이전에 뭐라고 말씀하고 있는가,
 
*시편 29:2,
2 여호와께 그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 거룩한 옷을 입고 여호와께 예배할지어다.
“너희가 거룩한 옷을 입고 여호와께 예배할지어다.” 우리가 새로운 옷을 입을 때는 아무런 감정 없이 새로운 옷을 입는 사람이 없어요. 새로운 옷을 입을 때 뭔가 기대감을 가지고 옷을 입는 거예요. 우리가 예배 올 때마다 거룩한 옷, 거룩한 새 옷을 입고 예배를 드리기 위하여 매주 나올 때마다, 새로운 거룩한 기대감을 가지고 나온다는 것은 거룩한 옷을 입고 나오는 겁니다.
 
우리가 각양의 다른 스타일의 옷을 입고 나오지만, 내면으로는 모두가 다 신령에 새로운 거룩한 새 옷을 입고 참여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주일마다 멋있는 옷이 아니라, 마음의 새로운 옷을 입고 단장하는 그런 축복 입기를 원하는 것이에요. 저는 참 예배를 많이 드린 집안에서 태어났어요. 우리 아버님은 가정 예배를 드리는데, 세상에 아침에도 가정예배, 저녁에도 가정예배, 그리고 또 예배를 드리는데, 그것도 아침에도, 예배 형식이 처음부터 끝까지 하여튼 그냥 가정 아침, 저녁에 드리는데, 주여,!! 은혜를 받기도 하지만 어린아이들이 뭐 어떻게 다 알겠어요. 철들었어도 예배, 제가 매주일 마다 여러 번 예배를 드리고, 처음 부임해가 10년 동안은 제가 5번, 6번씩 주일예배, 그리고 제가 늘 말씀드렸지만 시작할 때는 타오르는 불이 되다가 마칠 때는 타다 나면 재가 되는 거예요. 그리고 예배를 드렸는데 어떤 분이 편지가 와요. 목사님, 나는 뭐 이런 일들이 뭐 어떤 사업하는 분 어떤 법조계에 계신 분들이 편지가 오는데 대법원에서 일하시는 어떤 판사께서 연락이 온 거에요. 저한테 편지가 옵니다. 저는 주일 예배가 너무 중요한데 주일 예배에서 은혜 못 받으면 나는 죽습니다.
 
나는 그 편지를 받고 내가 죽고 싶었어요. 여러분, 이게요. 내가 무슨 능력이 있어요. 저는 도구일 뿐이고, 여러분과 제가 사는 길은 매주일 마다 거룩한 새 옷을 입고 새 마음을 가지고, 기대감을 가지고 마음으로 예배를 드려야만 하는 거예요. 아멘!!!!~
 
그리고 이렇게 마음을 드리는 이런 여러분들과 저의 모습이 우리 가족들에게 사랑하는 영 가족들이나 우리 가족들에게 우리 자녀들에게 그대로 전파되고 그래서 저는 수많은 신앙의 위인들 신앙의 소중한 쓰임 받았던 분들 제가 그분들의 삶과 손길을 잃는 가운데 많은 경우 공통점이 하나 있는데, 그것이 뭐냐 하면 부모님이 참 기대감을 가지고 예배를 준비한다는 것입니다. 주일날 아침에 뭐 3키로 4키로 옛날에 부모님과 함께 걸어가면서, 너 오늘 예배를 어떻게 준비하고 걸어가니? 오늘 공동체 예배를 드릴 때 넌 어떤 기대를 갖고 가니? 예배를 마치고 난 다음에는 돌아오면서 너 오늘 말씀을 듣고 어떤 은혜를 받고 어떤 생각을 했니? 마치 우리가 지금 주일 1부 2부 3부 4부 특별히 2부 3부 예배 같은 경우는 주일날 가족들이 같이 나와 가지고, 같이 예배를 드리고, 그다음에 같이 식사를 하면서 자녀들과 함께 대화를 하는데 오늘 너는 예배를 통하여 무슨 은혜를 받았니? 이런 내용을 나누는 그것을 통하여 삶의 수많은 난관(難關)과 질곡(桎梏)과 고통(苦痛)을 이겨냈다는 것이에요. 부모님과 함께 걸어가면서 거룩한 기대감을 가지고, 교회에 오가는 길 예배를 드리면서 기대감을 가지고, 그것이 즐겁고 그것에 감사하고 그때 어른들과 깊은 신앙의 대화를 나누는 것이 신앙의 자본이 되었다는 것이에요. 이것이 자기 신앙의 형성에 뼈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나중에 이런 것들이 삶의 고난이 닥쳐와도 끝까지 감당(堪當)할 힘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영 가족 여러분,
영적 가족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이 예배를 드리기 위하여 교회를 오가는 길이 귀한 신앙의 선배들처럼 이 길이 참 기쁨의 길이요. 충만한 기대감에 거룩한 여정(旅程)이 되기를 소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경험을 가지고 자란 우리 자녀들은 어떤 인생의 곤란과 고통 속에서도 능히 돌파(突破)하면서 감사와 기쁨으로 사명(使命)을 감당할 수가 있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일주일에 168시간 가운데서, 주일 이 예배 시간이, 이 시간 2시간이면 2시간 3시간이면 3시간 왔다 갔다, 요 시간이 요 2~3시간이 여러분들의 생애에서 일주일 168시간 가운데서, 영적으로, 육신적으로, 정서적으로 피크가 돼야 되는 것이에요. 최고의 피크가 돼야 되는 것이에요.
 
주님이 안식일을 기억하여 그날을 거룩하게 지키라. 그랬잖아요? 우리가 흔히들 안식일(安息日)을 교육하여 그날을 거룩하게 지키라. 고 그랬을 때 우리는 쉼에다가 많은 방점을 두는 거예요. 쉬어야죠. 주일은 쉬어야 되고, 구약의 안식일의 시작일은 주일날로 바뀌었는데, 그러나 여러분 참된 쉼이 뭐예요? 육신이 쉰다고 쉬는 것이 아니에요. 우리의 마음이 주님 앞에 거룩한 기대감을 가지고 주일마다 참된 영적인 기름 부음과 능력을 받아가지고, 우리의 마음이 거룩한 새 옷을 입고 단장을 할 때, 그때 진짜 쉬게 되는 것이에요. 이런 쉼이 없이 이제 여러분 휴가도 있을 것이고, 앞으로 하겠습니다마는 여러분들 갈 때 육신만 쉰다고 쉬는 것이 아니에요. 우리의 마음이 주님 앞에 거룩한 예배 자가 되어 가지고, 기대감을 가지고 휴가지에서도 예배를 드리고 이렇게 할 때에, 여러분 진짜 참된 힘이 되는 겁니다.
 
그런 것 없이 2주, 3주, 1주 쉬기만 하고 오면요. 너무너무 피곤해갖고 너무너무 힘들어 가지고 다시 또 휴가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오늘 첫 번째는 우리의 마음이 거룩한 기대감을 가지고 예배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두 번째로는 오늘 더 중요한 겁니다. 혼자가 아니라, 함께 예배를 드려야만 하는 것이에요.
 
II. 둘째, 혼자가 아니라 함께 예배를 드려야 한다.
 
-우리는 지금 예수님의 사탄과의 시험에서, 광야의 시험에서 마지막 부분, 어떻게 하면 근본적으로 확실하게 승리할 수 있을 것인가? 사탄아 물러가라. 하나님만 경비하고 예배하라. 다시요. 궁극적인 승리의 핵심은, 우리가 참된 예배자가 돼야 하는 것인데, 마음으로 예배를 드릴 뿐만 아니라, 함께 예배를 드려야 하는 것이에요. 시편 95편 1절에,
 
*시편 95:1, 2, 6,
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 노래하며 우리의 구원의 반석을 향하여 즐거이 외치자.
-내가 노래하고 내가 갈 정도가 아니에요. 95편 2절에,
2 우리가 감사함으로 그 앞에 나아가며 시를 지어 즐거이 그를 노래하자.
6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
-아멘 여기 우리라는 말은 우리 모두는 함께 예배드리는 것을 참으로 소중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공동체가 함께 예배를 제대로 드리면, 사탄의 시험에서 승리할 수가 있는 겁니다. 우리는 개인적으로 숲이나 호숫가에서 혼자서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습니다. 또 개인적인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를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큐티 하면서 홀로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개인적인 하나님과의 만남과 혼자서 인격적으로 하나님과 교제를 한 그 결과가 공동체에서 함께 예배를 더 드리고 싶은 마음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면, 그 마음은 잘못이 될 수가 있는 것이고, 그러니까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뭐라고 말씀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개인적인 하나님과의 만남과 혼자서 인격적인 교제를 하는 결과가 공동체에서 함께 예배를 드리고 싶은 소중한 마음으로 연결되지 않으면 크게 잘못된 것이다.
 
-여러분, 여기에 동의하십니까? 어떻게 보면, 신앙 세계에서 어릴 때부터 은혜를 많이 받고 또 많은 영적인 부요함이 있어 가지고 자기 스스로 자기 신앙을 유지하는 분들이 계세요. 그래서 좀 과하게 어떤 분 이런 얘기 나는 예배 참석 안 해도 나 혼자서 내 신앙생활 유지할 수 있습니다. 사실은 굉장히 위험한 생각이기도 하지만, 뭐 그렇게 아는 분들 괜찮은 분들 가운데 대단한 분들 가운데 그런 분들 많이 계세요. 자기 나름대로 영적으로 성숙하다고 하시는 분들 가운데 자기 혼자서 신앙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하는 이런 분들이 혹시나 이런 분들 가운데, 함께 모여 드리는 예배를 등한시 한다면, 그 신앙은 균형이 깨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런 분들은 자칫하면 무교의 주의자가 되어 가지고, 한국 교회 전체에 피해를 끼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일본 선교에 대한 관심성도 많고, 우리가 일본을 스케줄라고 했는데 여러분 일본은 대한민국보다도 훨씬 더 선교역사가 깁니다. 근데 왜 일본 교회가 저렇게 1프로도 채 되지 않는 약한 이 약한 그런 일본교회가 되었을까? 몇 주 전에 우리 토비새 그 일본의 오신 목사님 얘기 들으셨잖아요?
일본에는 2대 사상적인 2대 목사님이 있다고 하나는 내촌감삼(內村鑑三), 우찌무라 간조, 너무 훌륭한 분이고, 저는 그분의 로마서 주석을 읽으면 야! 어떻게 이렇게 대단하실 수 있나! 이렇게 할 수 있는데, 일본이 사상적으로 그렇게 하다 보니까, 어떤 일 벌어지는가? 무교주의자들이 많이 나온 거예요.
혼자 신앙은 너무 좋은데 내촌감삼(內村鑑三), 우찌무라 간조(일본 메이지 시대의 그리스도교 지도자), 그다음에 또 그러니까 무교유주의 또 1분은 하천풍언(賀川豊彥)으로, 가가와 도요히코, 라고 해서 사회적으로 섬기고, 구제하고 어려운 삶을 돕고 하는 소위 사회복음, 이래 하다 보니까 무슨 일이 벌어지느냐 함께 예배드리는 공동체 예배에 대한 인식이 많이 약화가 되어 가지고, 일본 교회는 힘을 잃어버려 지금 1억이 넘는 인구 가운데 구원받아야 할 수많은 영혼들이 지나간 100년, 200년 동안 함께 모여 드리는 공동체 예배를 등한시한 그 결과 일본 교회가 약해졌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훌륭합니다. 제가 내촌감삼(內村鑑三), 우찌무라 간조, 하면 우찌무라 간조, 가가와 도요히코를 제가 존중합니다. 그러나 함께 드리는 예배에 대한 인식은 약한 것이었습니다.
 
그걸 한국교회는 김교신 성서조선, 류영모, 함석헌 위대한 분들입니다. 다 훌륭한 분들입니다. 근데 그분들은 무교주의에 전통을 이어받아 있는 것입니다. 아마 이런 무교주의를 따라가다 보면 한국 교회는 엄청난 어려움에 봉착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마음을 갖고서는요. 한국 교회는 남북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남남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그래서 결국 남남 문제나, 남북문제는 예배의 문제가 해결돼야 할 만한 것이에요. 예배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에요.
 
여러분 개인 예배의 불씨는 늘 사그라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장작이 하나만 있으면 금방 타버리고 식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공동체 예배에 나오면, 개인 예배의 불씨가 더 활활 타오를 줄 믿는 것입니다. 소멸된 불씨가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개인 예배의 불씨를 가지고 모여 공동체 예배의 불기둥이 되어야 생활예배에서 승리할 수가 있는 거죠.
 
저는 오늘 이 얘기를 코로나 끝나고 난 다음에 2년 동안 제가 이렇게 뭐라 그럴까요? 말씀하면서 언젠간 해야지,,, 하면서 제가 준비해 놓은 것이에요. 한국은 지금 코로나 이후에, 온라인 예배 이런 것들을 통하여 예외 불씨는 살아있지만 불씨가 활활 타오르지 못해 가지고, 가나안 교회, 가나안 교회가 뭔지 알죠??? 거꾸로 안나가교회, 가나안 교회 안나가교회,,, 교구들이 많이 생성이 되었습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제가 2년을 참고 있다가 오늘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우리가 함께 드리는 예배를 통하여 다시 한 번 예배 불씨가 회복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코로나에 강을 건너면서 수많은 가나안 교회 성도들이, 안나가교회 성도들이, 꺼져가는 불씨들이 다시 한 번 현장에서 활활 타오를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제가 피 흘림 없는 복음적 평화통일을 얘기할 때에 단순히 피 흘림 없는 복음적 평화통일이 아니라, 무너진 북한의 예배가 회복되게 하여 주십시오. 황페함과 예배드리지 못한 74년에 아니, 1945년도부터 지금까지 거의 80년을 제대로 80년 맞죠? 그 79년 80년을 제대로 예배드리지 못한 저 황폐한 곳에 예배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함께 예배할 때, 공적예배를 드릴 때, 우리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은혜를 축복하십니다.
 
우리가 함께 찬양할 때 함께 기도하고, 죄를 고백할 때, 함께 나누고 묵상할 때, 함께 헌신할 때에 함께 교제할 때, 함께 우리 믿음을 재확인 할 때, 그럴 때에 우리의 믿음이 더 강화되고 우리의 소망이 힘을 얻게 되고, 우리 사랑이 새롭게 되는 것입니다. 함께 예배할 때의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재확인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공동체 안에서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함께 예배할 때 무엇보다도 사탄과의 시험에서 승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자주 말씀드리지만 성령 충만은 함께 전심으로 기도하고, 공동체가 예배할 때 나타나는 중요한 현상 중에 하나입니다. 개인적으로도 성령충만은 받을 수 있습니다. 기도하고, 함께 나아갈 때 성령 충만의 기름 부심이 더 강하게 나타나게 되는 겁니다. 큐티를 통하여, 개인적으로 예배할 수 있지만 공동체에 함께 드리는 예배와 반드시 연결돼야만 합니다.
 
오늘은 다시요. 복음적 평화통일 주일입니다. 피 흘림 없는 복음적 평화통일을 제가 영적 슬로건으로 삼고 지금까지 기도해 왔습니다. 40년 전부터 복음적 평화 통일을 기도해왔고, 10여 년 전부터 아 복음적 평화 통일을 하되 피 흘림이 없어야 되겠구나! 피 흘림이 없는 복음적 평화통일을 가지고 기도를 해왔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여기서 하나 좀 더 깊이 예민하게 살펴봐야 할 것, 다시 한 번 제가 정리해 드리는 것은 6.25 동족 전쟁은 이념 전쟁이었지만, 공산주의와 민주주의 자본주의 전쟁이었지만, 사실 그것을 구름 위에, 저 영적인 구름 위에 역사적 상선에서 보게 되면 저 위에서 내려다보게 되면 특히 6.25 동족 전쟁은 이념 전쟁 정도가 아니라, 이것은 영적 전쟁이었어요. 특별히 어떤 영적 전쟁이었는가? 예배전쟁이었어요. 우선 사탄이 북한 지역의 공산주의를 통하여 교회들을 말살하면서 평양에 산정형교회 장대현 교회, 신의주제일교회 이런 교회들 아까 말씀한 대로 전부 다 다 파괴시키고 예배를 못 드리겠습니다.
 
제가 이북에 몇 번 가봤지만 저 제가 신의주 쪽 지나갔는데 보니까 옛날 교회야, 그 교회가 뭐로 쓰여서 왔느냐 농업 창고로, 교회 예배를 드리지 못합니다. 대신 인간 김일성에게 예배를 하도록 그리고 남한까지 침공해서 예배를 드리는 모든 교회를 핍박하고 목사님들을 죽이고, 동족 전쟁을 일으켜서라도 동족을 죽여서라도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하는 것이니까, 이것은 동족전쟁 정도가 아니라 영적 전쟁이요. 예배 전쟁이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나타나는 수많은 예배 과정 가운데, 지금도 주체사상을 예배하고 지금도 지하에서 사탄이 공산당에 탈을 쓰고 한반도에서 온전한 예배가 사라지도록 하는 작전했어요. 그런데 목숨 걸고 예배를 지키겠다는 우리 신앙의 선배들 때문에, 오늘 한국이 이만한 은혜를 받은 것이에요. 북한에서 내려오신 피난민들 가운데 많은 분들이 크리스천이에요. 그분들이 예배를 드리는 것을 맡게 하니까, 예배를 드려야 되겠다고 생각하면 내가 많이 내려와 가지고 영락교회를 세우고, 충현교회를 세우고, 성동교회를 세우고, 내성교회를 세우고 이런 한국에 내려와 가지고, 남한에 내려와 가지고 예배들을 예배를 드려야 되겠다고,,, 그래서 오늘 우리는 6.25 전쟁의 본질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가?
 
하나님을 참되게 예배하는 것, 참된 마음으로 예배하는 것, 함께 예배를 드림으로 말미암아 사탄의 계교(計巧)를 이겨낼 때 진정한 동족 평화 통일이 오리라고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적 평화통일이라는 말은, 오늘 국기를 다 해놨습니다마는 남북이 참되게 예배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고 이 예배야말로 사탄의 모든 궁극적인 세력을 무너뜨리는 것인 줄로 믿습니다. 이 예배야말로 남남 갈등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입니다. 뭘 가지고 해결하겠어요? 여러분, 남남의 지극한 이 진영갈등을 어떻게 해결하겠냐, 하나님을 참되게 마음으로 함께 모여 예배할 때 회복될 수가 있는 것이에요.
 
7년 내로 평양에서 특새하게 달라는 것도, 다른 게 아니에요. 공적 예배가 사라진 그 땅에 황폐한 그 땅에, 주여 다시 예배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사랑의 교회 성도들은 영아부터 포에버에 이르기까지, 한 생년 동안 마음으로 거룩한 기대감으로 함께 예배되려는 승리자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좀 조심스럽지만 자, 90년대 중반에 평양을 방문했습니다. 여러 과정들은 다 제가 정리하고, 어떤 분이 저에게 북한의 지하교회 성도 여 성도님을 모시고 왔습니다.
 
숙소의 커피숍에서 그분과 대화를 하는데, 우리는 손을 잡고 감시원에 있었기 때문에 예배할 수는 없었습니다. 근데 그분이 평양 산정현교회 주기철 목사님 교회 성도였습니다. 그때 그 당시에, 90년대 중반에, 80정도 되시고, 조그만 하시고 정말 둥그스름한 얼굴을 갖고 계셨습니다
내가 목사라니까 너무 반갑다. 그러고,,, 자기는 평생소원이 뭐냐? 했더니, 산정현 교회에서 주기철 목사님과 예배한 만 분의 일이라도 맛보고 싶다. 한 번이라도 맛보고 싶다. 그때가 뭐가 좋았습니까? 그러니까, 성도들의 구름떼처럼 모여 가지고, 이처럼 모여서 빛나고 높은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주 예수 얼굴 영광 해같이,,, 주님의 보좌 있는데, 천한 몸 이르러 그 영광 몸소 배울 때, 찬양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께 옛날 가사는 영세무궁하기까지 영광을 돌리세. 영세무궁하기까지 예배를 드리세... 우리가 그 찬성을 마음으로 했어요. 소리를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기도를 못하고 눈을 못 감았어요. 서로 그 마음을 가지고 우리가 기도를 하고 차마, 기도와 찬양을 하는데, 눈물을 줄줄줄 흘렸어요. 아마 그 할머니는 돌아가셨을 거예요.
 
오늘 우리는 대한민국에서 자유롭게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수많은 우리의 삶에 시험이 있습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인 수많은 시험이 있습니다. 이 시험을 이겨내는 유일한 비결 마지막 방점은 뭐냐? 주 너의 하나님을 예배하라,!!! 예배하라. 마음으로 거룩한 기대감을 가지고,, 함께 공동체로 예배를 드려야 하는 것이에요. 오늘 이 찬송을 하면서 여러분들이 갖고 있는 수많은 실험과 아픔의 기도들을 이 예배를 통해 치료받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 자리가 놀라운 은혜의 응답의 자리가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요약
우리가 터질듯한 마음으로 참된 예배를 드리며 시험을 이길 때, 모두가 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령의 검으로 말씀을 순종하며, 마귀의 심장을 공경하며 승리하는 평생이 되어야 한다. 우리 모두가 들풀처럼 가녀린 예배 자에서, 참나무처럼 굳건한 예배자로 성숙하게 성장해야 한다. 온라인 예배로 꺼져버린 불씨들이 있다면, 현장예배의 공동체 예배에 함께 나와 예배의 전쟁을 극복하고 다시 불이 붙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사랑의 교회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교회가 예배 전쟁에서 승리하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흘림이 없는 복음적 평화통일의 그날을 속히 오는 날을 경험하게 하여 주시길 간절히 간구하자. 7년 내에 평양에서 예배드리는 날이 오는 기대감을 가지고, 사랑의 교회 7천 기도용사가 피흘림 없는 복음적 평화통일의 그날이 속히 오기를 기도할 때, 그 고난의 강을 돌파한 수많은 북한에 귀한 선교사님들 앞으로 북한이 수많은 10만 명의 선교사들 파송하여 세계 선교를 마무리하는 이민족 되기를 소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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