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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파멸당할 수는 있을지언정 패배하진 않는다

몇 달 동안 물고기를 잡지 못한 늙은 어부가 있다. 마을에서는 그를 따르는 어린 소년 하나만 그의 편이 되어 줄 뿐 아무도 ‘운이 다한’ 그를 가까이 하려 하지 않는다. 어느 날 홀로 배를 타고 망망대해로 나간 그의 낚싯바늘에 거대한 청새치가 걸려든다. 그의 배보다 더 큰 그 물고기와 이틀 밤낮에 걸쳐 드잡이를 한 끝에 그 물고기를 끌고 항구를 향해 돌아오게 된다. 하지만 해안에 도착했을 때엔 물고기는 이미 피냄새를 맡고 몰려든 상어들에 의해 다 뜯어먹히고 앙상한 뼈와 대가리만 남은 상태였다. 노인은 오두막집에 지친 몸을 누이고 아프리카 초원의 사자 꿈을 꾸며 잠든다.

누구나 다 아는 이 이야기의 작가는 어니스트 헤밍웨이다. 가없는 바다와 하늘이라는 자연의 원형극장을 무대로 펼쳐지는 이 드라마는 좌절을 모르는 불굴의 인간 정신에 대한 찬양이자 광활한 우주 속에서 고독한 단독자로 존재하는 인간의 운명에 대한 비감 어린 헌사이다. 상어와 사투를 벌이며 노인이 뱃전에서 되뇌는 “사람은 파멸당할 수는 있을지언정 패배하지는 않는다”(A man can be destroyed but not defeated)는 자신에게 주어진 고난을 정면에서 받아들이고 묵묵히 시련을 견디는 강인한 노인의 초상을 통해 고전적 휴머니즘의 정수를 보여준다. 눈부신 빛과 파도, 바람과 구름 같은 자연의 4원소가 진동하는 이 소설은, 비교하자면, 지중해의 태양과 소금기의 맛이 감도는 카뮈 같은 유럽 작가의 소설과는 다른 향일성의 감흥을 읽는 사람에게 제공한다. 거기엔 멕시코만 특유의 역사적 상흔과 생존을 위한 투쟁이 강렬한 피냄새와 뒤섞여 있다.

20세기에 행동주의 문학이란 것이 있다면 프랑스에서는 앙드레 말로를, 미국에서는 헤밍웨이를 손꼽을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자기 나라 일이 아닌데도 세계 어디선가 큰 사건이 터지면 바로 달려가서 몸으로 직접 참여하고 소설로 형상화하는 작업을 되풀이했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이탈리아 전선에서 박격포탄에 맞아 수백 바늘을 꿰매는 대수술을 받고 은성무공훈장을 받은 전쟁 영웅, 스페인 내전에 의용군으로 참가, 2차 세계대전 동안엔 자신의 낚싯배를 개조해 독일 잠수함 U보트 수색, 노르망디 상륙작전 취재, 이 밖에도 여러 차례 아프리카 탐험대에 참가했다가 두 번이나 경비행기가 추락하는 사고를 겪고도 불사조처럼 살아남…… 이런 작가 이력은 창백한 책상물림이 대다수인 문학판에서 이 작가가 차지하는 독특한 위상과 색깔을 잘 말해준다. 그가 즐겼다는 스포츠 역시 사냥, 바다낚시, 권투 등 거친 남성미가 물씬 풍기는 것들이다.

‘파파(Papa)’라는 닉네임이 말해주듯 그는 건강하고 거침없는 미국 남성상의 상징이었다. 20세기를 통틀어서 그보다 더 뛰어난 미국 작가는 여럿 꼽을 수 있겠지만 그보다 더 유명한 작가, 그보다 더 미국이라는 나라의 이미지와 부합하는 작가를 찾기란 어렵다(작가로서 그는 생전에 『타임』지에 두 번, 『라이프』지에 세 번 표지 모델로 등장함으로써 유명세를 과시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마릴린 먼로나 존 F 케네디, 엘비스 프레슬리가 그러하듯 미국을 대표하는 문화 아이콘 가운데 하나이다. 지금도 해마다 7월이 되면 미국 플로리다 반도에 위치한 키웨스트에서는 헤밍웨이를 닮은 사람을 뽑는 경연대회가 벌어진다. 전국 각지에서 허연 수염을 기른 건장한 마초들이 몰려와 그들의 영원한 우상인 헤밍웨이를 경배하는 시간을 갖는다. 노먼 메일러를 포함해서 많은 후배 작가들이 헤밍웨이의 이런 측면, 즉 문학이란 울타리를 뛰어넘어 한 시대 한 나라를 대표하는 상징성을 획득하는 과업에 도전했지만 성공하지는 못했다.

흔히 헤밍웨이의 문학세계를 말할 때 언급되는 것이 냉정하고 비인간적인 초연함을 보여주는 남자 주인공의 모습이다. 때로 스토아적 극기나 용기에 비견되기도 하는 이런 강인한 남성의 모습은 현실 공간에서든 문학 공간에서든 점차 만나기 힘든 자질이 되어가고 있다. 헤밍웨이에게 어떤 자세로 죽음을 맞느냐 하는 것은 평생 따라다닌 관심사이자 문학적 주제였다. 그는 자본주의나 공산주의 같은 이념 문제를 포함해서 모든 정치 사회적 현안을 배격한 채 비극적 세계에서 고독한 영웅주의를 추구하는 인물을 소설에 구현하고자 했다. 그에게 그 외의 것들은 다 협잡물에 다름 아니었다. 그런 점에서 이 작가는 미국문학에서 아담적 전통(Adamic Tradition)을 가장 잘 계승한 작가라고 할 수 있다. 쿠바의 한적한 어촌의 오두막에 누워 아프리카 초원의 사자를 꿈꾸며 잠든 초라한 늙은 어부의 모습에서 우리가 오랜 시련에 단련된 인간만이 지닐 수 있는 위엄을 보게 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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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물고기와 사투 벌이는 늙은 어부

'노인과 바다' 줄거리

『노인과 바다』는 쿠바 연안을 배경으로 거대한 물고기에 맞서 사투를 벌이는 늙은 어부 산티아고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84일째 고기를 잡지 못하고 허탕만 치던 노인은 홀로 나간 바다에서 거대한 청새치를 잡는 데 성공한다. 이 물고기를 배에 묶어 집으로 돌아가려 하지만 피 냄새를 맡은 상어들의 공격을 받게 되고, 몇 차례의 치열한 싸움 끝에 간신히 상어들을 물리치지만 결국 머리와 뼈만 앙상하게 남은 잔해를 끌고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노인과 바다』는 불운과 역경에 맞선 한 노인의 숭고하고 인간적인 내면을 강렬한 이미지와 간결한 문체로 그려낸 작품이다. 만년에 발표한 이 작품에서 헤밍웨이는 기존의 마초 캐릭터가 아닌, 실존적 인간이라는 새로운 인물상을 등장시켜 비극적이고 환멸뿐인 삶이지만 인간이 가져야 할 용기와 믿음, 인내에 대해 이야기했다. 거기에 더하여 ‘20세기 미국문학의 혁명’이라고 불리는 그만의 서사 기법과 문체가 성공적으로 더해지며 헤밍웨이 문학 인생이 응축된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헤밍웨이 자신도 『노인과 바다』를 가리켜 “평생을 바쳐 쓴 글” “지금 내 능력으로 쓸 수 있는 가장 훌륭한 글”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1952년 이 작품이 처음 발표된 『라이프』지 9월호는 불과 이틀 만에 500만부 이상이 팔릴 정도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또한 『노인과 바다』는 헤밍웨이에게 1953년 퓰리처상, 1954년 노벨문학상 수상의 영광을 안겨주었으며, 오늘날까지 세계문학사에 남을 불후의 명작으로 독자들에게 큰 감동을 안겨주고 있다.

 

 

 

원제: The Old Man and the Sea

저자: Ernest Hemingway(1899~1961)

발표: 1952년

분야: 미국 문학

한글 번역본

제목: 노인과 바다

옮긴이: 이인규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091(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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