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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백질과 신약후보 물질간의 결합 보여줘... 패혈증 치료 가능성 열어

분자의 구조를 직접 보는 것은 과거 과학자들의 오랜 꿈이었다.

분자의 구조로부터 분자의 화학적인 성질을 이해할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좀 더 향상된 성질을 지닌 분자를 디자인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분자의 구조를 보기 위해서는 고해상도의 현미경이 필요하다.

그런데 현미경의 해상도는 구조상 사용하는 빛의 파장의 2분의 1보다 좋을 수는 없기 때문에 분자와 같이 작은 입자의 구조를 보기 위해서는 가시광선을 이용할 수 없고,이보다 훨씬 작은 파장을 지닌 X-레이를 이용해야만 한다.

한편 현미경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상을 만들어주는 정교한 렌즈가 필수적이다.

그런데 X-레이는 투과력이 높아 물체의 상을 만드는 데 필요한 렌즈를 제작하기가 매우 어렵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과학자들은 크리스탈(결정) 상태의 샘플에서 나오는 회절패턴으로부터 계산에 의해 분자영상을 만들어내는 방법을 개발했다.

즉 단단한 결정 상태로 만들면 X-레이가 이를 투과하지 않고 비껴가거나 반사되기 때문에 이에 대한 X-레이의 움직임 패턴을 정교하게 물리적으로 분석해 그 결과를 토대로 분자의 모양을 재구성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X-레이 결정학(x-ray crystallography)'이라고 부른다. KAIST 면역화학구조연구실의 설명을 통해 선천성 면역 등에 대해 알아보자.

⊙ 선천성 면역과 톨유사수용체

X-레이의 발견은 20세기 과학사에서 가장 큰 발견 중 하나로 꼽힌다.

뢴트겐 이후 약 20개의 노벨상이 X-레이를 이용한 분자구조 규명에 수여됐을 정도다.

왓슨과 크릭은 X-레이 회절을 이용해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처음으로 발견했다.

페르츠와 켄드류는 X-레이를 활용해 최초의 단백질 구조를 규명했다.

이들 발견은 분자생물학 탄생의 기폭제가 됐다.

단백질과 같이 복잡한 생체분자의 경우 전자현미경과 같은 다른 기술을 이용해 보기 어렵기 때문에 대부분의 단백질 입체구조는 X-레이 결정학 방법으로 규명되고 있다.

단백질의 구조를 알게 되면 그로부터 단백질의 생체 내 기능을 이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단백질의 기능을 조절할 수 있는 분자를 디자인할 수도 있다.

대부분의 약은 단백질에 결합해 그 단백질의 기능을 억제하거나 향상시켜 약효를 나타낸다.

X-레이 결정학은 단백질과 신약후보 물질 간의 결합을 직접 보여줄 수도 있어 보다 빠른 신약개발도 가능케 하고 있다.

KAIST 면역구조화학 연구실은 X-레이 결정학 기술을 이용해 '선천성 면역 단백질'의 분자구조를 연구하고 있다.

선천성 면역연구는 지난 10년간 면역학에서 가장 활발하게 발전했던 분야다.

적응성 면역이 반응을 나타내려면 백신접종을 통해 수주일에서 몇개월의 기간이 걸리는 반면 선천성 면역은 우리 몸이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는 면역체계로 새로운 병원균에 대해 즉각적 반응을 보이며 동시에 적응성 면역계의 활성화를 유도한다.

적응성 면역계가 수십억개의 수용체로 구성돼 있는 데 반해 선천성 면역계는 수십개 남짓의 소수 수용체의 의해 작용한다.

선천성 면역수용체들은 병원성 미생물에 존재하는 다양한 분자들의 구조적 패턴을 인식하기 때문에 '패턴수용체'라고도 불린다.

패턴수용체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단백질군은 '톨유사수용체( TLR · Toll-like Receptors)'다.

인간은 11개의 TLR 수용체를 갖고 있으며 각각의 TLR들은 다양한 미생물 분자와 결합해 선천성 면역을 매개한다.

단 TLR4만은 다른 TLR과는 다르게 미생물 분자와 결합하기 위해 MD-2라고 불리는 또 다른 단백질과 결합해 복합체를 형성해 작용한다.

⊙ 패혈증 치료 가능성 열어

이처럼 바이러스 및 미생물(세균 등)에 대한 선천성 면역은 필수 방어체계이다.

그러나 수술환자나 노약자 등 면역조절력이 약화된 경우에는 지나친 면역반응으로 인해 패혈증이 일어나기도 한다.

패혈증은 폐 신장 등 여러 장기가 다발성으로 손상되고 혈압강하 등 증상을 보이며,패혈성 쇼크로 발전하게 되면 40% 이상의 치사율을 보이는 위험한 증상이다.

패혈증 발생과정은 최근 10년 동안 연구를 거쳐 이제 밝혀지기 시작했지만 효과적인 치료제는 아직 개발되지 않았다.

TLR과 각종 리간드(화합물 등의 중심원자에 결합돼 있는 이온 또는 분자의 총칭) 간 결합구조는 TLR 기능을 억제하는 패혈증 신약개발에 매우 중요하게 여겨진다.

그러나 TLR 단백질의 생화학적 특성 때문에 X-레이 결정학 연구에 필요한 크리스탈 상태의 TLR 샘플을 얻는 것이 그동안 쉽지 않았다.

이지오 KAIST 화학과 교수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융합 LRR 기법' 이라는 새로운 연구기법을 개발했다.

융합 LRR 기법은 크리스탈을 구하기 어려운 TLR과 같은 단백질을 비교적 크리스탈을 구하기 쉬운 다른 단백질과 융합시키는 기술이다.

이 기술을 활용하면 수많은 TLR 융합단백질을 생성할 수 있다. 이 교수는 "일부는 크리스탈 상태로 만들 수 있었으며 X-레이 회절을 이용해 입체구조를 규명할 수 있었다"며 "또 이 기법을 이용해 TLR4 - MD-2 - Eritoran 결합체와 TLR1 - TLR2 - 지질단백질 결합체 구조를 규명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연구진은 최초로 TLR과 리간드 결합복합체 구조규명을 통해 TLR 단백질의 복잡한 분자기능을 생화학적으로 이해하기 시작했다고 평가했다.

이 교수는 "특히 TLR4 - MD-2 - Eritoran 구조는 패혈증 치료후보물질의 결합구조를 보여줌으로써 유사한 구조의 보다 개선된 신약 출현을 앞당길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이어 "항바이러스 기능을 보이는 TLR7,8 리간드 결합구조 역시 신약개발의 촉진제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진은 앞으로 TLR1 - TLR2 - 지질복합체 구조에서 나타나는 TLR 응집현상이 다른 TLR에서도 나타나는지 규명할 계획이다.

이해성 한국경제신문 기자 i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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