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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의 독서, 보상은 어디에?


우리는 우리가 잘 아는 세계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오래 격조했던 친구보다는 날마다 통화하는 친구와 할 말이 더 많은 법이다.

잘 모르는 세계의 이야기를 읽기 위해선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새로 발견한 피라미드에 들어가는 고고학자처럼 비좁은 미로를, 설계도 한 장 없이 손으로 더듬으며 따라 내려가야 한다.

그곳은 낯설고 어두우며 적대적이다.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염소의 축제》가 바로 그런 책이다.이 짧지 않은 소설에는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별명이나 애칭으로도 불린다.혼란이 가중된다.배경은 도미니카 공화국.

낯선 나라다.이 역시 장애물이다.주인공은 또 어떤가? 전설적인 독재자 트루히요다.

독재자와 그에 대한 암살 음모가 소설의 주요 동력이다.

정치는 한국 소설이 외면해온 영역이다.우리나라 작가들은 정치를 여간해서는 다루지 않으며 따라서 독자들도 익숙하지 않다.

게다가 시대적 배경이 1960년대다.

‘과거는 외국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시간의 갭은 그 자체로 장벽이다.

정리하자면, 이 소설은 지금으로부터 50년 전에 벌어진 도미니카 공화국의 독재자 트루히요의 암살을 중심으로 독재와 정치, 인간성의 문제를 천착한 소설이다.

출판사의 영업자라면 숨기고 싶을 요약이다(아마 ‘노벨문학상 수상작’ 같은 문구로 대신할 것이다).

이제 피라미드의 내부로 내려간다.우선 지도가 필요하다.은유가 아닌 진짜 지도 말이다.

무심히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된다.최소한 우리는 도미니카 공화국이 아이티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미국이라는 최강대국 근처에 자리 잡은 섬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지리는 소설 속 인물들에게 각인된 역사적 자아이며 운명의 얼굴이다.

백지 한 장도 준비하자.등장인물 정리용이다.

바르가스 요사는 대단한 이야기꾼으로 여간해서는 독자를 미궁에 빠뜨리지 않는 작가다.시점과 시간대가 교차하는 복잡한 플롯을 사용하면서도 독자들과 흥미로운 게임을 잘도 벌인다.그런데 이번 소설은 예외다.

정치와 정면 대결하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이 정치다.인간세계의 다양한 욕망과 그로 인해 빚어지는 갈등을 조정하는 일이어서 필연적으로 여러 사람이 등장하게 마련이다.

연애소설은 극단적으로 단 두 명만 있어도 이야기가 성립한다.그러나 정치에는 최소한 세 명이 필요하다.

권력자, 반대자, 그리고 중간자.둘이 연합하여 나머지 한 사람을 움직이는 것,이게 정치의 시작이다.

이 소설에는 독재자와 그에 기생하는 권력층, 이들에 맞서는 반대 세력, 그리고 독재의 희생자들이 등장한다.

이렇게 다양한 입장을 가진 인물들이 각자의 철학과 사상을 가지고 충돌한다.

소설 속의 트루히요는 단순한 악마가 아니며 암살자들도 선의로 프로그램된 로봇이 아니다.

따라서 이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등장인물들이 가진 생각들과 끈질긴 싸움을 벌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르가스 요사는 복화술을 시도하지 않는다.

등장인물의 뒤에 숨어 자기 생각을 독자에게 은근히 강요하는 2급 작가가 아니다.

뛰어난 작가들이 그렇듯이 그는 소설 속의 모든 견해를 상대화한다.독재자 트루히요, 그는 전립선 문제로 툭하면 바지에 오줌을 지린다.그러면서도 소녀를 탐한다.

도덕적으로 악하고, 미적으로 추하다.그러나 그는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다.

피할 수 없는 인간적 한계에 직면한 그를 독자들은 마음 놓고 미워할 수 없게 된다.일종의 회색지대에서 윤리와 정치, 미학의 제 문제들과 마주치게 된다.

작가는 트루히요 암살 사건의 전모를 낱낱이 밝히는 데 주력하지 않는다.

그것을 위해서라면 소설 대신 르포를 써야 할 것이다.소설은 이미 벌어진 사건(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지상의 사막)에서 출발해 어둠의 미로(피라미드의 내부)로 독자를 데려간다.

그곳에서 새롭게 생명을 얻은 캐릭터(미라)들이 벌떡 일어나 횡설수설 떠들어대는 장면과 마주치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토록 낯설고 이상한 세계로 내려가야 하는 것일까?

잘 아는 세계의 익숙한 얘기도 아직 다 읽지 못했는데 말이다.뭔가를 배우기 위해서는 아닐 것이다.

좋은 소설은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는다.게다가 도미니카 공화국의 독재자의 내면을 알아서 어디다 쓴단 말인가? 대학입시나 입사면접에 나오지도 않을 텐데 말이다.

공항에서의 지루한 대기 시간을 견디게 해줄까? 아닐 것 같다.탑승자를 찾는 안내방송을 귓등으로 들으며 한가롭게 뒤적거려도 될 소설이 아니다.집중하지 않으면 바로 길을 잃는다.

이 모든 난관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과 분투해야 할 이유가 과연 있을까? 있다.다른 어떤 것으로도 이 책을 읽는 경험을 대체할 수 없다는 것, 이 경험의 대체 불가능성이야말로 고투에 대한 궁극의 보상이다.

《염소의 축제》와 같은 소설은 작가가 마지막 문장에 마침표를 찍는 바로 그 순간부터 피라미드 속의 미라처럼 영속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한다.

과거에 쓰인 어떤 작품과도 다르고, 개개의 인물들이 작품 속에 생생하게 살아 있으며, 주제는 잘 감춰져 있는데다가, 문체가 고유하다.이 세계에는 대체가 불가능한 경험을 향유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대가를 치르고라도 그것을 ‘겪으려는’ 이들이, 비록 소수라 할지라도 분명히 존재한다.

만약 어떤 소설이 그런 유일무이한 경험을 줄 수만 있다면, 그 작품은 사라지지 않는다.그런 경험을 찾는 독자들께 이 책을 권한다.

김영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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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니카의 권력자 ‘트루히요’ 는 어떻게 암살됐나

◆ ‘염소의 축제’ 줄거리


1961년 5월 30일 도미니카 공화국의 한 고속도로에서 총성이 울려 퍼진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이래 ‘조국의 아버지’ ‘수령’이라 불리며 무소불위의 권력자로 군림한 트루히요는 이렇게 죽음을 맞이한다.

실제 역사에 작가적 상상력을 더해 독재자의 마지막을 그려낸 <<염소의 축제>>는 32년간 도미니카 공화국을 지배했던 트루히요의 암살 과정을 재구성한 것으로 트루히요, 트루히요의 총애를 잃은 장관의 딸 우라니아, 트루히요를 죽이려는 암살자들 의 세 시점에서 이야기를 풀어간다.

<<염소의 축제>>는 2010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페루 작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대표작으로 <<백년의 고독>>을 뛰어넘어 20세기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위대한 상징이 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폭넓은 주제와 다양하고 실험적인 글쓰기 방식, 높은 예술성으로 ‘우리 시대 최고의 스토리텔러’라는 찬사를 받으며 라틴아메리카 문학에서 특별한 위상을 차지해온 바르가스 요사는 <<염소의 축제>>를 통해 다시 한 번 정교함과 세세한 장치, 불쾌함을 제거하는 훌륭한 언어 구사를 인정받았고,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재능’을 가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출간 당시 트루히요를 추종하는 자들로부터 적지 않은 비판에 직면했지만 이에 맞서 바르가스 요사는 ‘그들을 분노하게 만든 것이 매우 만족스럽다’고 밝히기도 했다.

거장의 손끝에서 태어난 독재자의 마지막 나날을 통해 ‘권력 구조의 지도를 그려내고 개인의 저항, 반역, 좌절을 통렬한 이미지로 포착했다’는 노벨문학상 선정 이유 또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원제; La Fiesta del Chivo

저자; Mario Vargas Llosa(1936~)

발표; 2000년

분야; 라틴아메리카문학

한글번역본

제목; 염소의 축제 1, 2

옮긴이; 송병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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