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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종류의 우산


몇 년 전에 큰 사고를 당했다. 길고긴 입원 생활이 끝난 후, 어느 날부턴가 나는 거짓말처럼 악몽을 꾸기 시작했다. 자동차의 헤드라이트가 슬금슬금 다가오다가 나를 덮치는 꿈이었다. 빛은 꺼질 줄을 몰랐다. 땀에 흥건히 젖은 채로 벌떡 일어나는 일이 잦아졌다. 어느 날 새벽, 여느 날처럼 악몽에서 깬 나는 한동안 미친 듯이 낄낄거렸다. 헛웃음은 그칠 줄을 몰랐다. 이 순간에 하필 시가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다니! 그야말로 기가 차다가 콱 막힐 노릇이었다. 그날 이후, 악몽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어떤 진실은 거짓말보다 더 감쪽같다는 걸 알았다. 빛은 꺼졌고 헛웃음은 그쳤다. 나는 예전처럼 밝아졌다. 아주 가끔, 내가 빛이 되는 희미한 상상을 하기도 했다.

게나치노의 《이날을 위한 우산》을 읽는 내내, 지난 몇 년간의 특정 장면들이 끊임없이 떠올랐다. 애인을 잃고 사례금을 삭감당한 주인공의 모습이 자신감과 용기를 상실했던 당시의 내 모습과 자꾸만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누군가나 무언가를 잃는다는 것은 불편하거나 마음 아프고, 종종 참을 수 없이 끔찍하다. 그러나 주인공은 결코 좌절하지 않는다. 그는 이때껏 하던 대로, 그것을 감정하고 평가하기 위해 새로 나온 구두를 신고 하염없이 걸을 뿐이다. 여기서 저기로 한 발짝 한 발짝 걸음을 뗄 뿐이다. 이것은 단순히 마음의 평정을 되찾기 위한 산책이 아니다. 그는 다분히 직업적으로 걸을 뿐이다. 그리고 최악의 상황에 마주했을 때, 하던 일을 평소와 다름없이 행하는 일은 그 무엇보다 어렵다. 울분을 삭이는 데 써야 할 힘까지, 일상에 통째로 바쳐야 하기 때문이다.

힘내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일정 정도의 체념은 필요하다. 하지만 체념하는 시간이 너무 길어지면 삶은 급기야 무너지고 만다. 그래서 주인공은 자기가 제일 잘하는 일을 한다. 별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시곗바늘만 망연히 바라보고 있을 수만은 없어서, 어떻게든 견디긴 견뎌야 하니까. 난국을 타개하는 데 있어, 언제나 거창한 비책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어쩌면 이럴 때일수록 심하게 요동하지 않고 원래의 자리에 서 있는 게 가장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이를 악물고 자신(自信)을 잃지 않으려고 애써야 가까스로 자신(自身)을 지켜낼 수 있다. 수많은 등장인물들 중 주인공만 유일하게 이름이 제시되지 않는 것도 다 이 때문이다. 그렇다. 게나치노는 주인공을 저 먼 3인칭이 아닌 우리 곁에 놔두고 싶은 것이다. 그가 바로 나이므로, 너이므로, 우리이므로. 우리는 그에게 우리 자신을 투영하고 혼잣말을 한다. 모두가 다 영웅이 될 필요는 없어. 우리는 묵묵히 우리 몫을 하면 돼.

그러므로 이 소설은 ‘그러고 나서’의 이야기이다. 그러니까 어떤 반짝이는 순간을 맞이하고 나서의 이야기. 으레 그 순간은 예고 없이 닥친다. 우리는 가만히 사색에 잠기고 기억 속에서 아득한 과거를 끄집어낸다. 이를테면, 차가운 빗방울 하나가 손등 위에 떨어졌을 때를 떠올려보라. 이물감으로 인해 살갗은 떨리기 시작하고 머릿속에서는 불현듯 떠오르는 것이다. 바로 그때가, 그때의 거기가, 그 현장에 함께 있었던 당신이라는 사람이. 그러고 나서 그리움과 슬픔, 환희와 놀라움이 뒤섞인 이상한 감정이 고개를 든다. 참, 나에게도 예전에 이런 순간이 있었지!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인다. 틀에 박힌 일상은, 이제야 비로소 조금 눈부셔진다. 이것을 담아내는 게나치노의 문장은 그 순간들만큼이나 반짝반짝 빛난다.

슬프게도, 그 반짝이는 순간이 언제나 우리에게 희망만 물어다주는 것은 아니다. 제비가 물어온 씨앗이 어떻게 자라날지 우리는 전혀 알지 못한다. 거기에는 인생을 송두리째 변화시킬 시한폭탄이 들어 있을 수도 있고 생각지도 못한 무시무시한 절망이 도사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저 그 씨앗을 땅에 묻은 뒤 물을 주고 거름을 뿌려 그것이 잘 자라나게 하는 수밖에 없다. 무식하게 보일지라도, 그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주인공 역시 어떻게든 삶은 계속된다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소소한 것에 더욱더 신경을 기울인다. 그는 옆 테이블에 자리한 소년의 행동에 눈길을 주기도 하고, 길바닥 위를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사탕 포장지를 관찰하기도 한다. 이처럼 우리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작은 것에 마음을 주고 거기서 비록 보잘것없을지언정 빛 한 점을 발견할 수 있는 여유다. 그 빛 한 점을 덩어리로 키우는 데, 약간의 유머와 익살이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이다. 그러는 사이, 나도 모르게 인생의 다음 장이 펼쳐지고 있을 것이다.

이 소설을 끝까지 다 읽고 나면 아마 마지막 마침표 다음에 새로운 문장을 적고 싶어질 것이다. 남아 있는 게 거의 없는 공간에 홀로 남겨질지라도, 우리는 마지막까지 남은 것을 어떻게든 그러쥐고 싶어 하니 말이다. 필사적으로 살아남는 데 성공한 자기 자신을 말이다. 그리하여 이제 충분히 단단해진 우리는 온몸을 활짝 펼친다. 스스로 “이날을 위한 우산”이 되어 세차게 쏟아지는 이 세계의 비를 맞는다. 끄떡없지는 않지만, 그렁저렁 견딜 만하다. 내일은 오늘과 같거나 아주 조금 다를 것이다. 그걸 불행이라고 여기거나 다행이라고 긍정하는 것은 순전히 당신 몫이다. 그냥 우산이 되거나, 어떤 빗줄기도 막아낼 수 있는 튼튼한 우산이 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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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빌헬름 게나치노는 1943년에 태어나 요한 볼프강 괴테대에서 독문학, 철학과 사회학을 전공했다. 1965년 작가로 등단했고, 1977년부터 2년간 소시민의 삶을 그린 삼부작 소설 《압샤펠》 《불안의 근절》 《거짓된 세월》을 발표해 명성을 얻었다. 1989년 소설 《얼룩, 재킷, 방, 고통》으로 브레멘 시 문학상을 수상했고, 이후 소외된 존재들에 시선을 돌려 작품 속에서 다양하게 형상화해 ‘하찮을 정도로 작은 사물들의 변호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2001년에 발표한 《이날을 위한 우산》으로 독일 최고의 문학상인 게오르크 뷔히너상을 수상했다.

“경이롭고 철학적인 책” “매혹적인 소설, 가볍고 명료하다”는 극찬을 받은 ‘이날을 위한 우산’에는 흔히 말하는 ‘성공한 인생’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 등장한다. 소설의 주인공은 스스로를 “교육만 많이 받은 아웃사이더” “현대판 거지”라고 칭하며, 수제화의 편안함 정도를 시험하는 일로 먹고산다. 그의 친구들 역시 ‘루저’의 전형이다. 게나치노는 이처럼 특별할 것 없는 인물들의 평범하고 틀에 박힌 일상을 통해 ‘그래도 산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라고 긍정할 수 있는 힘을 전한다. 그렇기에 ‘이날을 위한 우산’은 고통으로 가득 찬 먼지투성이의 삶을 묵묵히 몸으로 견뎌내는 사람들, “자신의 삶이 하염없이 비만 내리는 날일 뿐이고, 자신의 육체는 이런 날을 위한 우산일 뿐이라고 느끼는 그런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원제: Ein Regenschirm fur diesen Tag

저자: Wilhelm Genazino(1943~ )

발표: 2001년

분야: 독일문학

한글번역본

제목: 이날을 위한 우산

옮긴이: 박교진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055(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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