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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예배(주후 2021년 6월2일)

제목: ''온전한 선교를 이루는 교회''
말씀: 요한3서 1:5~8
설교자: 백승준 부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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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삼서 1:5~8,
5 사랑하는 자여 네가 무엇이든지 형제 곧 나그네 된 자들에게 행하는 것은 신실한 일이니.
6 그들이 교회 앞에서 너의 사랑을 증언하였느니라 네가 하나님께 합당하게 그들을 전송하면 좋으리로다.
7 이는 그들이 주의 이름을 위하여 나가서 이방인에게 아무 것도 받지 아니함이라.
8 그러므로 우리가 이 같은 자들을 영접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우리로 진리를 위하여 함께 일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함이라.


▷성도의 온전함 블레싱 기도회를 오신 모든 분들을 주 예수님 이름으로 환영한다. 6월이 오자마자 날씨의 변화를 느끼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이 여름에도 폭포수와 같은 은혜를 채워주시길 소망한다. 오늘 주신 본문을 보자. 요한3서는 2절이 매우 중요하다. 아마도 2절을 많은 분들이 암송할 것이다. -“사랑하는 자여, 내 영혼이 잘 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이 말씀을 너무 사랑하는 어떤 교단도 떠오르기도 할 것이다. 그러다보니 요한3서의 전체의 말씀이 어떤 내용인지를 깊이 생각하지 못하고 지나갈 때가 많다. 요한삼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곳에 나오는 두 명의 인물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바로

첫 번째 인물은 가이오이다.
두 번째 인물은 디오드레베이다.
성경에서 보면 가이오라는 인물은 여러 곳에서 나온다. 마케도니아 출신인 가이오, 더베 출신 가이오, 로마 출신 가이오, 고린도교회에서 나오는 바울이 세례를 준 가이오, 그리고 오늘 본문에 나오는 가이오이다. 그래서 요한삼서에 나오는 이 가이오도 앞에서 언급되는 어느 한 명이 아닐까를 생각할 수 있다. 정확하게 기록에 남긴 것이 없기에 누구인지 잘 살펴볼 수 없는 것 같다. 그렇지만 우리가 살펴볼 수 있는 것은 흔한 로마식 이름이었고, 이방인이었던 사람이 복음을 듣고 교인으로 성장했던 초대교회의 사람이었다. 이 요한삼서를 통해 흥미롭게 살펴볼 것이 있다. 짧은 한 장의 본문에서 이 본문에서 사도 요한, 스스로를 자녀라고 칭한다. 사도 요한은 가이오에게 ‘사랑하는 자여’를 총 다섯 번이나 사용한다. 내가 참으로 사랑한다고 1절에서 말했다. 2절에서도 그 사랑하는 마음이 그대로 표현되어 있다. 그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서 축복하고 있다. 그렇다면, 사도는 왜 가이오를 진실로 사랑하고 마음속으로도 사랑하고 축복하는 것인가?


귀납법적으로 대답을 하는 것은 훈련을 통한 사역훈련을 하고 있기에 바로 이렇게 전하게 되는 것이다. 요한 사도가 가이오를 사랑하고 축복했던 이유는?

*요한삼서 1:3,4절을 보면,
3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언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가이오를 사랑하고 축복하는 것은 그가 진리 안에서 행하기 때문이다.
4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없도다.
-가이오가 진리 안에서 행하고 있어서 그 가이오를 사랑하고 축복한다고 사도는 이야기 한다.
그럼 진리 안에서 행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 좋은 말 같지만, 가이오가 어떤 일을 행하였기에 그러는가? -바로 5절과 8절에서 살펴볼 수 있다.

*요한삼서 1:5,8절을 보면,

5 사랑하는 자여 네가 무엇이든지 형제 곧 나그네 된 자들에게 행하는 것은 신실한 일이니.
-나그네 된 자들을 위해서 신실한 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8 그러므로 우리가 이 같은 자들을 영접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우리로 진리를 위하여 함께 일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함이라.
-나그네 자들을 잘 대접했다는 것임을 볼 수 있다. 나그네를 잘 대해서 바로 가이오늘 사랑과 축복을 받았다고 말한다.

▷왜 나그네를 대접하는 것이 중요한 일인가?
-성경 전체에도 나그네를 잘 대접하라고 여러 곳에서 명령하고 있다. 구약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그네였던 것을 기억해야 한다. 너희도 이집트에서 그 때 나그네였으니 너희도 나그네를 잘 대접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하고 있다. 예수님 또한 신약에서 나그네를 영접하는 것이, 곧 나를 영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또한 부지중에 예수님을 대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이런 차원에서 나그네를 대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볼 수 있지만, 특별히 여기서 요한 사도가 언급하는 나그네는 좀 더 다른 특징이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요한삼서 1:7절을 보면,
7 이는 그들이 주의 이름을 위하여 나가서 이방인에게 아무 것도 받지 아니함이라.
-여기서 나그네를 위해서 표현하는 쓰여 졌던 용어가 주의 이름을 위하여 나갔고, 이방인을 위해서 나갔다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나그네들을 살펴보면, 주님의 말씀을 증거하며, 주님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서 또 주의 교회를 개척하기 위해서 순회전도를 하고 있는 말씀 사역자들이다. 요한복음과 요한서신을 쓴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 당시 이단들의 가르침이 너무도 성행하였기에 그 이단들의 가르침 속에서 바른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또 강력한 복음을 전파할 책임이 있었기에 사도들이 기른 여러 제자들을 여러 곳으로 파송(派送)했고, 바로 그렇게 파송된 나그네가 이 나그네들이다. 요한 서신이 쓰여 졌던 가장 강력한 이단은 헬라 철학자 플라톤의 영향을 받은 영지주의자들이다. 설명을 하자만 좀 어렵지만, 그 영지주의자들은 물질은 악하고, 영적인 것만이 선하다고 가르쳤다. 그러다보니 예수님의 성육신, 예수님이 몸을 가지고 이 땅에 태어난 사실마저도 부인하고 있었다. 요한이서에 보면 영지주의자들의 가르침이 잘 나와 있다.


*요한이서 1:7절에 보면,

7 미혹하는 자가 세상에 많이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런 자가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니.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만 강조하고 그것이 중요하다고 가르치면서 은혜로 보이는 육신의 세계는 아주 폄하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다보니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심지어 예수님이 육체를 입고 보였을 뿐, 실제로 그렇지 않았다라고 가르치기까지 했다. 그런 가르침이 영지주의자들의 사고이다. 이에 맞서 요한사도는 예수님께서 육신이 되어서 우리 가운데 오신 것을 강조했다. 그분은 친히 사람으로 오셨고, 사람과 같이 모든 것들을 경험하신 것이라고 그의 서신서와 요한복음에서 밝혀주고 있다. 예수님께서 배고프기도 하셨고, 친히 밥상을 차려서 제자들에게 먹이기도 하시면서 온전한 사람이요 온전한 하나님으로 이 땅 가운데 사셨던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2절의 축복을 보면, 이러한 배경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 영적인 것만 강조했던 영지주의자들에 반하여서 영원히 잘 됨과 같이 하나님의 축복에는 범사가 잘되고 우리가 하는 모든 일터와 우리가 강건하기를 하나님이 원하신다는 것이 이 안에 가르침이 담겨있다. “사랑하는 자여, 내 영혼이 잘 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이 가르침이 하나님께서는 영적인 것만을 다스리신 것이 아니라, 창조하신 모든 세계의 주인이시고 이 모든 세계 가운데 하나님은 기뻐하신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초대교회가 성장하였고, 사도들이 다 직접 다니면서 가르칠 수 없기에 사도들의 제자들이 많은 교회를 다니면서 제자들이 말씀을 적고 복음을 모르고 예수님을 모른 자들에게 힘 있게 복음을 전파하며 교회를 개척했던 것이다. 바로 이와 같은 나그네들이 바로 선교사와 같은 자들이다. 전도자와 같은 자들이며, 가이오가 칭찬받은 것이 무엇인가? 바로 이와 같은 나그네를 대접한 것이다. 복음을 위해서 아무것도 받지 않고 헌신적으로 일하는 그 분들을 지극한 정성으로 영접하였고, 그들의 가르침을 잘 받았다는 것이다. 그와는 반대로 디오드레베를 생각해 보자.


*요한삼서 1:9절을 보면,

9 내가 두어 자를 교회에 썼으나 그들 중에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가 우리를 맞아들이지 아니하니.
10 그러므로 내가 가면 그 행한 일을 잊지 아니하리라 그가 악한 말로 우리를 비방하고도 오히려 부족하여 형제들을 맞아들이지도 아니하고 맞아들이고자 하는 자를 금하여 교회에서 내쫓는 도다.
-디오드레베 또한 초대교회 지도자였던 것 같다. 그러나 그는 가이오와는 달리 순회전도자들을 맞아들이지 않고 그들을 후원하는 일을 금하고 있다. 오히려 주의 복음을 위해서 살아가는 바로 그 선교사와 같은 분들을 비방하였고, 그들이 가르치는 말씀을 받아들이지도 않았고, 그 순회전도자들을 잘 영접하는 자들을 교회에서 쫓아내려 하는 그런 일을 서슴치 않고 행했던 자가 디오드레베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와 같은 악행을 저지르는 이유가 무엇인가? 9절에 그가 으뜸 되기를 좋아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말씀에 비추어 이 디오드레베는 어떤 인물로 분석되는가? 바로 하나님의 바른 말씀이 선포되고 복음이 전파되어 교회가 개척되고 이방의 많은 사람들, 주님을 한 번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주님께로 돌아와 주님을 예배하고 찬양하는 그런 일에는 관심이 없었던 사람이다. 그에게는 관심은 그저 자기 자신이었다. 그러다가 으뜸이 되고 높아지고 교회에서 많은 권력을 갖고 자기의 생각과 자기의 명령대로 움직이는 바로 그것 하나에만 관심이 있었음을 보게 된다.

우리도 교회 안에서 이런 사람이 있는 것 같다. 많은 다양한 사람이 모이기에 가이오와 같이 하나님의 복음 사역과 선교사들, 주의 말씀이 전파되는 바로 그곳에 마음을 두고 잘 섬기는 분이 있는 반면, 디오드레베와 같이 자기 자신이 교회 안에서 으뜸이 되고 더 많은 영향을 미치고, 더 많은 권력을 위해서 혈안이 된 사람도 있음을 보게 된다. 평소 사랑의 사도로 알려진 요한은 10절에서,

*요한삼서 1:10절에 보면, 10 그러므로 내가 가면 그 행한 일을 잊지 아니하리라 그가 악한 말로 우리를 비방하고도 오히려 부족하여 형제들을 맞아들이지도 아니하고 맞아들이고자 하는 자를 금하여 교회에서 내쫓는 도다.
- 요한 사도는 내가 가면 그 행한 일을 잊지 않겠다고 말하고 있다. 바로 사도가 그 교회를 방문하게 되었을 때 사도의 권위를 가지고 그 죄악을 밝히고 엄중히 징계와 치리를 하겠다고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이 사도 요한은 사랑의 사도로 불렸지만, 과거 예수님께서는 불의 아들이라고 부르셨다. 한 성깔을 하였는데 디오드레베를 생각하면 가만 두지 않겠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어느 정도 이 본문을 다 살펴보았는데, 이 요한삼서를 더 깊이 있게 살펴보자. 8절에 보면, 이 요한삼서 중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의 말씀이다. 바로 가이오가 진리 안에 바로 서서 칭찬을 받은 것처럼, 우리 또한 진리 안에서 행하고 진리 안에서 같이 행하는 복음의 동역자로 세워져야 하기 때문이다. 바로 진리 안에서 함께 한다는 것이 무엇인가?
-주의 복음을 땅 끝까지 증거 하는 선교를 위해서 함께 동참하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키고 하나님 나라가 이 땅 가운데 임하게 하는 그 위대한 일에 동참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이 땅에 살아갈 이유가 여기 있음을 발견해야 한다. 혹시나 디오드레베의 모습이 내 모습이 아닌가를 살펴봐야 한다. 왜냐하면 그이 관심은 ‘자기’가 있었다. 우리 또한 모든 관심이 우리 자신에게 있는지를 스스로를 돌아봐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하는 기도와 내가 갖는 관심사가 무엇을 위해 기도하고 무엇을 위해서 간구하고 있는가? 기도하고 바라는 것이 무엇이며, 많은 것을 기도하는 것 같지만, 결국 핵심이 내가 잘되고 내가 좀 더 편하기 위해서라면, 나또한 디오드레베와는 별다른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해야 할 것이다.

칭찬을 받은 가이오는 어땠는가? 진리 안에서 행했다. 하나님을 전파하기 위해서 기꺼이 자기의 많은 것을 드려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섬겼음을 볼 수 있다. 오늘 가이오를 통해서 우리가 진리를 위해 함께 일 하는 것,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기 위해서 어떤 것을 힘써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자.

*요한삼서 1:6,8절을 보면,
6 그들이 교회 앞에서 너의 사랑을 증언하였느니라 네가 하나님께 합당하게 그들을 전송하면 좋으리로다.
8 그러므로 우리가 이 같은 자들을 영접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우리로 진리를 위하여 함께 일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함이라.
-특히 이 사도는 가이오에게 두 가지를 당부하고 있다.

첫째는 전송(6절), 둘째는 영접(8절).
-길을 떠나는 사람을 잘가라고 하는 인사이기도 하지만, 신약에서의 전송은 다르다. 헬라어로 프로펨프라고 쓰이는 이 단어는 특별히, 초대교회에서 선교를 위해서 사용하는 전문용어로 쓰였다.
※씨지 다드라는 학자가 이 본문을 주석하는데, 초대 교회시절 일종의 선교 전문 용어로서 순회전도자들을 후원하는 것을 전문적으로 조직하고 돕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
이어서 로마서


*로마서 15:24절을 보면,

24 이는 지나가는 길에 너희를 보고 먼저 너희와 사귐으로 얼마간 기쁨을 가진 후에 너희가 그리로 보내주기를 바람이라.
-여기서 너희는 로마교회이다. 바울이 그토록 가기를 원했던 땅 끝 서모나, 스페인 땅을 말한다. 로마 교회 성도들과 어느 정도 머문 후에 로마교회 성도들이 서머나, 여기서 말하는 전송이라는 것을 말한다. 그냥 보내는 것이 아니다. 전도자들이 다음 선교지로 떠날 때에 여비를 포함하여 여러 가지 일들을 다 준비했다. 교통편, 숙소, 경비까지 준비하는 것을 의미한다. 복음을 위해서 선교사들을 위해 초대 교회는 이러한 계획과 이러한 헌신을 한 것을 보게 된다. 이렇게 많은 헌신을 하고 재정적인 것을 채우고 이렇게 된 사람들을 위해서 전송하며 특별히 선교를 위해서 힘썼던 이유가 있다. 바로

*요한삼서 1:7절에 보면,
7 이는 그들이 주의 이름을 위하여 나가서 이방인에게 아무 것도 받지 아니함이라.
-복음 사역을 위해 헌신 하였지만, 그들이 이방인들에게 아무것도 받지 아니하고 기대하지 아니했다. 그들을 향한 헌신이 마땅하다고 가르치고 있다. 복음을 위해 아무 대가도 바라지 않는 선교사들, 또 순회 전도자들을 위해서 그 교회는 돌아봐야 된다고 사도는 강조한다. 어떤 사람들은 주의 종들이 풍족하게 되면 게을러져서 기도도 안한다고 해서 이를 막기 위해서라도 풍족하게 후원하지 않겠다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것은 우리가 알바가 아닌 하나님이 맡기신 일이기에 선교사를 파송하고 돌보는 것이 교회의 가장 본질이 된 일이라는 것이다. 교회의 사도성, 이것은 아포로톨리스=사도, 보냄을 받은 자이다. 이 사도는 보낸 분이 일을 맡겼다. 보낸 분이 맡긴 일이 중요하니 이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계획을 성취하시는 것을 보게 된다.

*요한복음 20:21절을 보면,
21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사도성을 가장 중요시 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예수님께서 처음 하시는 말씀이다. 이 말씀을 통해서 분명하게 하시는 말씀은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보내셨다. 예수님도 아버지의 보냄을 받은 사도이셨다. 이 땅 가운데 하나님의 그 위대한 구원 계획을 몸소 일으키기 위해서 친히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아버지께로 가기 위한 새로운 길, 산길을 열어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의 사도로 오셨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듯이 이제는 이 보냄의 권세를 받는가? 바로 예수님께서 나도 너희를 보낸다고 말씀하신다. 우리가 잘 아는 지상 명령인
*마태복음 28장 19-20절을 보면,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보내신 것처럼, 예수께서 제자들을 이 땅 가운데 사도로 보내시면서 하나님의 위대한 복음 계획을 성취하시는 것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 사도가 이제는 교회를 세우게 된다. 그곳 교회가 이 사도의 귀한 사역을 계승하여서 하나님의 일꾼을 보내는 장면을 우리는 사도행전을 볼 수 있다. 사도행전 13장에 안디옥 교회가 개척된 이후에 금식하는 장면이 나온다. 금식하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을 물었을 때, 하나님께서 명령하신다. 바나바와 바울을 따로 세우고, 그를 선교사로 보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된다. 그래서 그들을 선교사로 보내고 열심히 기도하고 후원하는 그 교회의 모습을 보여준다. 교회란 어떤 존재인가? 아버지께서 이 땅 가운데 하나님의 사람을 보내 쓰신 그 사도의 직분을 이어받아서 하나님의 말씀 사역자들, 하나님의 사람을 파송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교회 사도성에 대해서 교회가 많은 가르침을 주신 분이 한스킨인데,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한스킨 - 교회가 된다는 것은 선교를 한다는 것과 별개의 일이 아니다. 세상에 보냄을 받았다는 것을 교회가 복종을 통해 계속적으로 인정하고 나타내는 것에서 사도성은 계승된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즉 사도성을 계승하는 것을 가장 영광스럽고 그 분명한 일은 선교사, 그 복음 전파자들을 이 땅 가운데 보내는 것이라고 우리는 이해할 수 있다. 교회란 하나님께서 이 땅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이제는 하나님의 사역자들을 이 땅에 복음을 전파하는 책임이 있는 것이라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알 수 있다. 바로 파송 받은 그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돌보고 계시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내버려 두시는 분이 아니시다.

*요한복음 8:29절에 보면,
29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파송하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와 한 순간도 떨어지지 아니하고 동행하시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기도하고 아버지가 요청하실 때마다.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그 위대한 사명을 이루시게 도우신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파송하고 어떻게 하셨는가?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사도들이, 주의 복음전파자들이 고난과 역경 속에 있을 때, 예수님께서 안 보시는 것 같지만, 스데반은 보았다. 순교의 그 순간에도 서서 기다리고 계시며, 손을 벌이면서 그의 사역을 마무리 하셨다. 교회가 사도이 이 계승으로 선교사를 파송하였다면, 바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서 돌보듯이 복음의 사역자들을 위해서 영접하고 돌보는 것이 마땅해야 한다고 이 가르침에서 말씀하고 있다. 가이오가 칭찬을 받은 이유가 이것이다. 복음을 위하여 주의 진리 안에서 최선을 다해서 전송하고 영접하는 일을 감당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고 동참했기에 사도는 그를 칭찬하고 기뻐하고 축복했다. 이와 같은 선교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7절에 있는 삶이 필요하다. 아무것도 받지 아니하고 주의 복음을 위해서 나아가는 일을 계속해서 나아가야 한다. 이 상황을 살펴보면서 간절히 기도해야 할 일은 예수님께서 두 가지 기도를 가르쳐 주셨다.

첫 번째 주님의 기도,
두 번째 기도는 추수할 일꾼을 보내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청해야 할 두 번째의 기도가 지속적으로 보내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주님의 선교사를 보내달라고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 우리는 비포와 에프터가 중요하다. 선교에서 이것이 분명해야 한다. 과거에는 디오드레베로 살았지만 이제는 이 온전함의 말씀을 듣고 다른 어떤 것보다 선교에서 만큼은 비포와 에프터가 이것이 분명해져야 한다.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듣고 가이오와 같은 사람되길 원한다. 내 자신만을 위해서 나하나 잘되기 위해서 이 세상에서 떵떵거리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가이오와 같이 주의 진리에 동참하고 함께 일하는 헌신 자가 되어야 한다.

♣요약
-우리는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서 복음을 위한 기도와 헌신을 해야 하며, 선교를 위해 돕는 일에 함께 동참하고 후원하는 일에 적극적인 실천을 해야 한다. 주의 복음을 위해 디오드레베와 같이 하지 말고 가이오 같이 나그네들을 정성껏 섬기어 하나님께 귀히 사용되어 하나님의 온전한 선교를 이루는 교회로 만들어가야 한다.

-그들은 복음을 전파하기 위하여 보냄을 받은 자들이며 아마 요한 사도에 의하여 파송을 받은 자들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하나님을 위하여, 오직 하나님의 이름만을 위하여 나간 것이다. 그들은 이방인들에게 아무 것도 받지 않고 값없이 나누어 줄 복음을 들고 나갔다. 그런데 직접 복음을 전파하도록 부름 받지 않았어도 그 전파를 위하여 공헌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복음은 그것을 처음 받는 사람들에게는 값없이 주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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