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遊橘島(유귤도) 洪彦忠(홍언충)

 

海外還爲海外人  해외환위해외인
始知身世更無鄰  시지신세경무린
逢迎魑魅新相識  봉영리매신상식
邂逅江出舊見親  해후강출구견친

鞭石擬窮烏兎窟  편석의궁오토굴
乘槎直泛斗牛津  승사직범두우진
平生此興元非淺  평생차흥원비천
何用離騷學楚臣  하용리소학초신


바다 밖에서 다시 바다 밖의 사람이 되매
비로소 신세가 다시 이웃이 없음을 알겠구나
마중 나온 이매는 새로이 서로 알고
강산은 옛 친구를 본 듯이 친하네

돌을 채찍질해 오토의 굴을 엿보려 하고
떼배를 타면 바로 직녀의 나루에 뜨리
평생에 흥취가 원래 옅은 것이 아니거니
무엇하러 이소 지어 초나라 신하를 배울건가


홍언충(洪彦忠, 1473-1508) 자는 직경(直頃)이고, 호는 우암(寓菴)이다. 14세에 청량산 안중사에서 이우(李堣)․

황맹헌(黃孟獻)과 함께 독서하였다. 1495년(연산군 1)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또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503년 수찬으로 복직하여 교리가 되었고, 그 해 정조사(正朝使)의 서장관(書狀官)이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이듬해 갑자사화가 일어나자 글을 올려 임금을 간하다 노여움을 사서 진안으로 유배되었다.

중종반정이 일어나 풀려났다.

중종이 불러 직강(直講)을 제수하였으나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시와 술로 생을 보냈다.

그는 문장과 글씨에 뛰어났으며,

특히 예서를 잘 썼다. 문장으로 정순부(鄭淳夫)․이택지(李擇之)․박중열(朴仲說) 등과 함께

당대의 사걸(四傑)이라 불렸다.

문경의 근암서원(近岩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로 우암선생 문집(寓菴先生文集)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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