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부흥헌신토요비전새벽예배(주후 2023년 12월 09일)
제목: "영원한 가치“
말씀: 요한일서 2:15-17
찬양인도: 복음통인 연합찬양대
대표기도: 강희근 장로님(사랑광주리 이사)
사회: 김대규 부목사님
말씀읽기: 조여명 형제, 최주희 자매(반석학교)

설교자: 이기원 부목사님
--------

*요한일서 2:15-17,
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

▶ 지금까지 사랑광주리는 꿈을 꾸며 달려왔습니다. 꿈이 없는 그 땅에 꿈을 심는 꿈. 9년여의 시간이 흐른 지금 우리의 꿈은 이제 현실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이제 사랑광주리는 더 큰 꿈을 품고 나아갑니다.

지난 9월 중 접경 지역에서 근로하는 북한 여성들에게 생리대, 칫솔, 비누를 비롯한 생필품 500여 명분을 전달했습니다. 해외에서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북한 여성 근로자들은 사랑광주리의 생필품 지원을 통해 실질적인 필요를 채우게 되어 감사하다는 마음을 전해왔습니다. 사랑광주리가 중국 제2병원 원장과의 미팅을 통해 대북 의료 협력 사역을 재정비하였습니다. 이번 미팅으로 코로나로 인해 중단되어 있던 북한 의료인 양성을 위한 교육 지원 사역 및 북한 의료 현실 개선을 위한 사역이 언제든 재가동할 수 있는 준비를 마쳤습니다. 사랑광주리는 중국 단동 현지 법인과 MOU를 맺고 현지 농장과 기숙사 및 인근 돼지 8천 평을 인수받아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단동 농장에서는 북한을 비롯한 제3국의 최신 농업기술 전수를 위한 스마트 팜 시범 사업이 시작될 예정이며, 기숙사 건물은 통일 선교를 위한 비전센터로 활용하여 중장기적 대북 사역의 전초 기지가 될 것입니다.

사랑광주리는 6월 복음적 평화 통일 주일을 맞아 사랑 글로벌 광장에서 2023 통일장터 우리는 원래 하나였습니다. 사역을 진행했습니다. 통일 기도, 리본 달기, 통일 선교단체 박람회, 북한 음식 체험, 통일 음악 콘서트를 비롯한 다양한 통일 문화 체험의 장을 열어 많은 성도님과 시민들의 뜨거운 호응을 얻었습니다. 노량진 청년 센터 라이브리의 2024년도 사업에 직전 연도보다 50% 증액된 1억 5천만 원의 하나금융그룹 후원이 최종 확정되었습니다. 사랑광주리는 통일 시대의 주역이 될 청년들의 건강한 사회 진출을 위한 디딤판으로서의 역할을 계속해서 힘 있게 감당해 나갈 것입니다.

사랑 광주리는 글로벌 NGO 사마리아 퍼스와 함께 전쟁의 피해로 고통에 놓인 우크라이나 어린이들을 위한 성탄 선물상자 캠페인을 진행했습니다. 많은 성도님들의 참여와 후원으로 2500여 명의 어린이들에게 성탄의 기쁨과 복음을 전달할 수 있게 됨에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사랑광주리는 지구촌에 고통 받는 영혼을 섬기는 데 앞장설 것입니다. 사랑광주리는 이제 더 큰 꿈을 품으며 국제구호개발 NGO로서 새롭게 비상합니다. 유엔 경제사회이사회의 특별 협의적 지위를 통해 유엔 회의 참석과 의견 발표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는 권한을 획득하였고, 이를 통해 국제기구, 글로벌 NGO 해외 기관과의 협력 기반을 다졌습니다. 남과 북, 그리고 지구촌에 소외된 영혼들이 있는 그곳에 국제 구호개발 NGO 사랑광주리가 함께할 것입니다. 꿈이 없는 곳에 꿈을 심는 동행 사랑광주리 아멘 지난 9주년 간 함께하신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을 올려드립니다.

-오늘 사랑 광주의 9주년 감사예배 드릴 수 있도록 그동안 은혜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특별히 오늘은 통일에 대해서 또 북녘 땅을 생각하면서 북녘 땅에 있는 우리 영혼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함께 예배를 드립니다.

그런 차원에서 목자의 심정으로 통일을 향해 열방을 향해 라는 주제로 저희가 오늘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또 통일을 위해서 또 북한을 특별히 생각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예배이다 보니 좀 특별한 순서를 가지려고 합니다. 우리 북에서 태어나서 또 공부하고 또 하나님의 인도 가운데 우리 대한민국에 와서 또 공부를 해서 지금 귀한 사역을 하고 있는 우리 이채원 자매 함경북도 무산군에서 태어났고요. 서울 명지대학교에서 성악을 공부하고 또 북한에서도 성악을 전공했습니다. 통일 안보 강사로 일하고 있는데 사랑으로 좀 하나님께 영광 드릴 거고요. 이희경 자매 우리 아코디온을 이렇게 연주를 할 건데 함경북도 무산군에서 태어났습니다. 서울신학대학교에 지금 다니고 있습니다. 신학교에 다니고 있는데 북한에서도 음악을 악기 전공을 했습니다. 통일학부 강사로 옮기고 있는데, 우리 두 자매가 ‘고향의 봄’‘ 십자가 그 사랑’으로 하나님께 영광 올려드리겠습니다.

비록 저희가 태어날 곳을 저희가 선택하지는 못하지만 선택을 해서 대한민국 자유의 나라에 이렇게 와서 ‘십자가의 사랑’을 찬양할 수 있는 그 모습이 얼마나 아름답고 귀한지 모르겠습니다. 북녘 땅에 있는 많은 영혼들이 십자가 사랑, 크리스마스 케롤, 성탄절 찬양을 마음껏 부를 수 있는 날이 속히 오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이 영상에 담긴 우리 사랑 광주의 여러 사역들을 봤습니다. 오늘 우리 찬양도 그렇고 사랑광주리 사역 팀뿐만 아니라 북한 사랑의 선교부, 반석학교, 복음 통일 아카데미, 이웃사랑 선교부, 또 주불리온들 여기 계신 또 성도님들이 함께해 주셔서 지난 사역들이 가능했습니다. 지난 한 해 동안도 함께해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잠깐 기도하겠습니다. 말씀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뜻만 선포되는 시간이 되게 하시고 오로지 성령님께서 역사하시고 운행하여 주옵소서. 감사드리며 이 모든 말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요한일서 2서 3서는 요한계시록을 기록한 또 사도 요한복음을 기록한 우리 사도 요한이 그 당시에 에베소 교회와 소아시아 지역 교회 초대교회들에게 보낸 서신입니다. 이 서신을 적을 때쯤에 사도 요한은 장수를 누린 이때 약 대략 90세 정도였다고 보는데,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어 지나긴 긴 지난 세월들을 생각하면서 그 모든 일들을 회상을 하면서 사랑하는 성도들에게 그리고 영적인 자녀들에게 어떤 서신을 보낼지, 어떤 글을 쓸지, 양피지와 잉크를 앞에 놓고 아마도 고민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과는 어떻게 보면 너무나 짧은 그러나 너무나 치열했던 3년의 시간을 보냈는데, 그 3년으로 하여금 사도 요한의 인생은 완전히 다른 인생이 되었고, 보통 사람들은 상상할 수 없는 그런 엄청난 일들을 많이 겪으며 살았습니다. 그렇게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사랑하는 제자로 꿈과 같은 3년을 보낸 후 길고도 고단한 60여 년의 세월을 더 산 것입니다. 이 당시에 초대교회는 사도행전 2장에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 이후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 신앙이 1세대를 넘어서 2세대, 3세대 계승되었는데 안타까운 것은 1세대가 갖고 있었던 그 신앙의 열정과 열심 그리고 헌신과 섬김이 사라지는 약해지는 모습이 초대교회에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설레는 마음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너무 재미있어서 재미있게 매일매일 교회에 가서 살다시피 하면서 우리 표현으로 한다면 본당 사수를 위해 새벽 2시에 일어나서 교회로 향하고 몸이 부서져라 봉사하고 헌신하면서 한 해는 5,596명의 목사님들을, 다른 한 해는 6,843명의 목사들을 섬기고, 나아가 복음의 서진을 통해서 유럽 28개국 나라의 201개의 교회를 개척하고, 믿음 안에서 영 가족들과 함께 말씀을 나누면서 음식을 나누고 커피 교재를 나누며 행복했던 그 시간들, 그러면서도 그 행복을 우리만 누릴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열심히 전도해서 태신 자 5만2649명을 제가 다 조사했습니다. 품고 그중에 결신자 2325명을 예수님께로 인도했던 그런 모습들이 저희 사랑의 교회는 ‘이보다 큰일도 하리니,’ 더 큰 일도 하겠지만 깨도 초대교회는 에베소 교회는 그렇게 살던 세월들이 뭐나면 옛날이야기 왕년에 그때는 그랬는데 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초대교회가 이렇게 변하게 된 이유는 외부적인 요소와 또 내부적인 요소들이 있습니다. 외부적인 가장 큰 이유는 황제의 핍박이었습니다. 그 당시에 로마의 황제 도미티아누스가 열렬한 이시스신 이집트 신화에 나오는 여신인데 생명과 삼라만상을 보살피는 어머니신데 황제가 이시스신의 숭배자이면서 동시에 자신을 황제로서 신으로 칭했습니다. 그리고 이 시스신이나 황제 자신을 숭배하지 않고 다른 대상 즉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면서 시인을 하면 그들을 심하게 핍박했습니다. 그 당시 네로 황제가 기독인들에 대한 핍박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모릅니다. 이렇게 사회적으로 너무나 많은 피해와 손해 그리고 고통과 핍박이 가해지다 보니 많은 1세대들을 포함한 2세대, 3세대 그리스도인 믿음을 포기하기 시작했고, 그런 현실로 인해서 새롭게 믿는 사람들이 전처럼 생 생기지 않았던 것입니다. 한때 교회 부흥과 성도들의 열정이 왕년에 그때는 그랬었는데라고 하는 옛 추억이 되어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핍박의 여파의 하나로 오늘 본문의 저자인 사도 요한은 밤모섬에 1년이 넘는 유배 생활을 했는데 이런 외부적인 요소와 더불어 교회를 무너뜨리는 내부적인 요소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이념과 사상 이단의 공격이었습니다. 당시 교회는 헬라 철학, 헬레니즘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특히 사람들은 영과 육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이원론적 사상에 빠져 있고요. 그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인카네이션을 부인하는 것이었습니다. 말씀보다 이념이, 말씀보다 세상의 가치와 유행이 더 강력하게 성도들의 생각을 지배한 것입니다. 한마디로 구원은 육체와 상관없는 것이기 때문에 원래 악한 육체가 탈락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다. 라는 육체의 타락과 죄악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도덕률 폐기론, 엔티노미아니즘 사상으로 기독교 윤리를 파괴하는 영지주의 나르시즘의 심각한 도전과 공격 속에 교회가 흔들렸던 것입니다. 세상 이렇게 현란하고 화려한 모습으로 논리 정연하고 멋져 보이는 이론을 가지고 마치도 이런 것을 따르지 않고, 인정하지 않으면 받아들이지 않으면 나오자 패배자, 무식하고 편협한 사람으로 몰았는데, 이 모든 것에 담겨 있는 메시지는 한마디로 이 세상에는 영원한 것은 없으니까 나중이나 미래를 생각하지 말고 현재의 삶에서 편하게 고생하지 말고 편안하게 잘 먹고 잘 살아라. 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현실주의의 달콤한 유혹, 자신들의 욕망을 따르는 타락한 모습을 이시스신 숭배와 황제 숭배의 모습이라고 정당화시키면서 그렇게 살면 같이 그런 모습을 보이면 안정적으로 그 삶을 윤택하게 보장해 주는 당근 정책을 썼고요. 그렇지 않으면 엄청난 대가를 치르는 고통스러운 채찍을 내림으로써 성도들을 영적으로 병들게 하고 교회를 무너뜨렸던 것입니다. 이런 가운데 이런 상황 가운데 있던 에베소 교회와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사랑의 사도, 사도 요한이 간절한 마음을 담아 우려의 마음을 담아 또 사랑의 마음을 담아 오늘 서신을 쓴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함께 읽은 본문은 그 서신중에도 특별히 사랑하는 영적인 자녀들에게 사랑의 경고를 하는 말씀이 담겨 있습니다. 경고, 저에게는 경고와 연관되어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잊혀 지지 않는 일이 있습니다.

제가 미국에서 달라스 신학교를 다닐 때, 이스라엘 예루살렘에 있는 주루살렘 유니버시리와 연계해서 6개월 동안 이스라엘에서 살면서 공부를 했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한 학기를 마치고 중동의 여러 지역을 혼자 배낭여행을 했던 적이 있는데, 그때 그리스의 네아폴리, 지금은 카발라라는 도시에서 큰 배를 타고 거의 유람선만한 큰 배를 타고 사도 요한이 옥살이를 하면서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요한계시록을 썼던 밤모섬에 갔던 적이 있습니다. 오토바이를 빌려서 그때는 굉장히 힘든 때여서 차를 빌릴 여유가 안 돼서 오토바이를 빌려서 유적지를 다 돌아보고 다시 배를 타고 에베소로 나오려 하는데, 그때 탈 수 있었던 배가 30명이 30여 명이 탈 수 있었던 작은 배였습니다.

시간이 되어서 선착장에 갔는데 분위기가 좀 심상치 않았습니다. 공지를 하는데 요지는 무엇이었는가 하면 날씨가 매우 안 좋아서 큰 풍랑이 있을 수도 있으니 각오를 해라. 또 구명조끼를 비롯해서 배의 어느 위치에서 어느 자세로 있어야 배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라는 그런 안내를 해주는 공지였습니다. 이게 1995년도였는데요. 지금으로부터 28년 전 이야기죠. 아마 지금 같으면 그런 상황이라면 안전 문제로 배를 띄우지 않았을 것 같은데 지금 생각하면 참 황당합니다. 그런데 어쨌든 그런 안내 소위 경고를 듣고 배를 탔는데 배가 뜨고 30여 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아니나 다를까 정말 풍랑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그때의 그 공포심이 이 오랜 세월이 지난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데, 배를 삼킬 것 같은 파도를 쳐다보며 두려움 속에 있는데, 배를 타기 전에 들었던 경고의 내용들이 한마디 한마디가 생각이 나기 시작하면서 그 경고의 내용을 되새기면서 그 경고의 내용대로 주의 사항들을 모두 모두 지키면서 견뎠습니다. 처음에 탈 때는 이 죽음 앞에서 처음에 탈 때는 서먹서먹하던 사람들이 이 죽음 앞에서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고 또 허물없이 돕는 이렇게 모습을 보게 되었는데, 사실 저는 그때 처음으로 인간이 다 똑 같구나! 나이가 많든 적든 피부가 짙든 흐리든 언어와 문화가 어쨌든 인간은 다 똑같은 존재구나, 특히 죽음 앞에서는 모두가 동일하구나! 라는 생각을 처음으로 통감을 했습니다.

저에게는 저의 인생관을 바꾸는 전환점이 되면서 목사의 길을 가는 데 있어 좀 더 확고한 방향성을 갖게 한 잊지 못할 경험이었습니다. 마음도 준비시켜주고 그리고 실질적인 행동 지침도 알려주었던 그 경고, 그리고 그 경고에 따라 모두가 행동했을 때, 행동했기 때문에 그때 한 사람도 다치지 지 않고 모두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차원의 경고의 말씀을 오늘 사랑의 사도, 사도 요한이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그리고 저와 여러분들에게 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어떤 사랑의 경고를 하고 있을까요? 우리 15절 말씀을 함께 보도록 하겠습니다.

*요한일서 2:15,
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사도 요한은 먼저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는 경고를 저희에게 주고 있습니다. 왜 세상에 살면서 왜 세상에 살게 했으면서 세상을 있는 것들을 사랑하면 안 되는 걸까요? 여기에 나오는 세상은 헬라어로 코스모스인데, 이 단어는 성경에서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그 아름다움과 화려함을 통해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자연계 곧 지구라는 행성을 의미하기도 하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시편 24편 1절 땅에 “거기에 충만한 것과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에 사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입니다. 여기에 세상은 창조 질서의 정점에 위치하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대리자 역할을 하는 인류 전체를 의미합니다. 바로 이것이 요한복음 3장 16절에 나오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독생자 아들을 보내어 구원하실 정도로 사랑하신 그 대상, 바로 포괄적인 의미에서의 세상입니다.

*요한복음 3:16,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런데 신약 성경에 보면 세상에 또 다른 의미가 나옵니다. 여기의 세상은 앞의 세상과는 대조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그분으로부터 멀어진 인간 문명의 조직화, 조직화된 체제를 말합니다. 이 세상은 인간이 자기 창조주를 사랑하지 못하도록 그분께 순종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모든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과 상호 배타적인 관계에 있으면서 하나님의 반대 방향으로 가게 하는 것, 그래서 이런 의미를 담은 세상 코스모스는 곧 어둠이라는 용어와 거의 동일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15절에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고 사도요한은 경고하면서 그 이유에 대해서 좀 더 상세하게 설명해 주시는데, 16절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요한일서 2:16,
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세상을 사랑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이 코스모스, 세상으로부터 온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육신의 정욕, 육신으로 느껴지는 정욕이라는 뜻으로, 여기에 이 육신은 생물학적인 육체의 의미를 넘어서 영과 대립하는 총체적인 의미의 육신을 말합니다. 그리고 정역은 금지된 일에 대한 욕망을 갖는 건데, 하나님의 기대를 저버리고 인간 자신의 욕구를 선택하는 것으로 죄 성을 쫓아가는 욕망을 말합니다. 그냥 한평생 살면서 편하게 내가 하고 싶은 거, 내가 가고 싶은 거, 내가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사는 인간의 본성대로 즐기며 사는 것을 말합니다. 육신의 정욕입니다. 안목의 정욕, 안목의 정욕은 눈을 통해서 추구하게 되는 욕망인데, 눈은 여러 감각 중에서 쾌락을 감지하는 첫 번째 통로입니다. 하와가 그 나무를 본 즉 그랬고 다윗이 밧세바를 보고 그랬던 것처럼, 눈은 인간으로 하여금 죄악을 향한 강한 열망, 하나님과는 반대 방향으로 가게 하는 첫 번째 접촉점, 그리고 매개체인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사랑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하나 더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생의 자랑으로 이 세상은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 이생의 자랑은요 소유에 대한 자랑으로 번역하기도 하는데, 이 세상에 살면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소유에 대한 자랑들 한마디로 썩어질 육신의 삶을 과시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생의 자랑입니다. 창조주 하나님 안에서의 영원한 가치보다는 눈에 보이고 손에 만져지는 세상의 가치를 더 중요시 그리고 소중히 여기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라는 말이 저희에게 너무나 친숙한 말이라서 사실 이 친숙한 말들 때문에, 본문에 담겨 있는 사도 요한의 이 사랑의 경고의 핵심을 오히려 놓칠 수 있습니다. 이게 바로 성경을 공부하고 또 읽으면서 부분적인 친숙함 익숙함이 주는 함정인데요. 어떤 구절이 더 친숙하고 익숙하다 보면 그 구절 때문에 그 친숙한 구절 때문에 그 구절이 속해 있는 전체 문맥의 핵심을 놓치는 것입니다. 이런 차원에서 오늘 말씀의 핵심은 사실 방금 읽은 15절 혹은 16절이라기보다는 17절 마지막 말씀인데 17절 말씀을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요한일서 2:17,
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하나님의 뜻 셀라마 투떼오, 여러분 이 아침부터 헬라 하면 안 되는데 이렇게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 투 델레마투데오라는 이 이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뜻대로 살라는 이 말씀이 굉장히 반복해서 강조되고 있습니다. 사무엘상 2장 35절에 보면,

*사무엘상 2:35,
35 내가 나를 위하여 충실한 제사장을 일으키리 그 사람은 내 마음, 내 뜻대로 행할 것이라.
-역대상 17장 19절에도 보면,
*역대상 17:19,
19 여호와여 주께서 주의 종을 위하여 주의 뜻대로 이 모든 일을 큰일을 행하사 이 모든 큰일을 알게 하셨나이다.

*마태복음 7:21,
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자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데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을 이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실까요? 인간이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며 사는 로봇이나, 아니면 노예로 살기 원하기 때문일까요? 여러분 아닌 거 아시죠? 반대입니다. 오히려 반대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질서 안에서 살 때 가장 행복하고 기쁘고,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상의 환경, 최상의 조건 속으로 들어가는 자유로운 영혼이 될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대로 살라고 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를,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바로 그 말씀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단적인 예로 운전을 하는 모든 운전자들이 다 신호를 지킬 때 뜻대로 행해질 때, 질서가 유지될 때 모든 운전자들이 안전하게 그리고 자유롭게 운전하며 다닐 수 있는 것처럼, 비행기들이 항공법을 모두 다 지킬 때, 뜻대로 행할 때, 질서가 지켜질 때, 목적지에 안전하게 자유롭게 도착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할 수가,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은 억압이 아니라 자유입니다.

그런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축복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영원의 가치’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메네이에이스톤 아이오나, 직역하면 오는 세대까지 머무른다. 라는 뜻인데요. 이 세상과 이 세상의 것들은 이 세대에서 끝이 나지만, 하나님의 뜻과 뜻을 행하는 자는 오는 세대에 계속 다가오는 세대, 끝없이 다가오는 그 세대, 영원한 그리스도의 왕국에 머물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영원한 빛의 자녀들의 삶의 가치입니다. 이것이 바로 세상을 사랑하지 말아야 하는 단정적이고 제한적인 기간이 정해져 있는 세상을 사랑하지 말아야 하는 최고의 이유인 것이고, 오늘 사도 요한이 저에게 주시는 핵심 내용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메네이에이스톤 아이오나 진정한 가치, 영혼의 가치 가운데 살라는 사랑의 경고를 사도 요한이 저와 여러분들에게 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오스트리아 출생의 영국 철학자로서 1939년경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의 교수였고, 또 집안이 철강 재벌 100만 장자 집안이었습니다. 유대인 혈통이었는데 이 사람이 나중에 하나님을 믿게 된 우리 루드 비트겐슈타인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 자막을 한번 띄워주시죠. 예
“죽음은 삶의 사건이 아니다.죽음은 체험되지 않는다. 영원히 무한한 시간 지속이 아니라 무시간성으로 이해된다면 현재 사는 사람은 영원히 사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영혼의 가치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현재란 사실 존재하지 않는 시간이다. 우리가 지금이라고 말하는 순간 이미 0.01초가 지나버렸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가 삶에서 범하는 가장 흔한 실수는 시간을 일직선으로 타임 스펜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a를 지나서 b, b를 지나서 c를 보는데, 시간의 본질은 시간의 이동이 아니라 무시간성이다. 그리고 그 무시간성이란 곧 영원을 의미한다. 이렇게 영혼 안에 존재하는 사람은 다가올 시간을 크게 걱정하지도 불안해하지도 않는다. 그 이유는 이미 그는 영혼 위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무시간성 영혼 위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무슨 말인지 무슨 뜻인지 묵상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영혼의 무시간성, 그리고 영혼 위에 존재하는 그래서 진정한 영혼의 가치를 가지고 사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런 영혼의 가치 가운데 살기 위해서 투 텔라마토 테오 하나님의 뜻을 행해야 하는데,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하나님의 뜻을 행한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 중에, 여러분 혹시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 하나님,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근심을 우리가 해야 한 대요. 근데 근심하는 게 하나님의 뜻이에요. 어떤 근심인가? 우리 고린도후서 7장 10절에서 11절 말씀을 한번 보겠습니다.

*고린도후서 7:10,
10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계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된 이 근심이 너희를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증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히 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너희가 그 일에 대하여 일체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
-아멘 사도바울은 우리에게 두 가지 종류의 근심이 있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는 세상 근심이고요. 또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입니다.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게 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먼저 구원에 이르게 한 회개를 이루게 합니다. 그리고 이 근심이란 말은 슬픔, 그 말에 또 그 근심이란 말에는 아픔을 담고 있는데, 그래서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란 하나님의 뜻에 맞춰서 함께 슬퍼하는 것, 하나님의 뜻대로 겪게 되는 그 아픔, 고통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이 슬퍼하시는 것을 함께 슬퍼하고 하나님이 아파하는 것을 함께 아파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눈물이 머물러 있는 곳에, 그곳을 향해 같이 눈물을 흘리는 것이고요. 하나님의 시선이 머물러 있는 곳에 그곳을 향해 나의 시선을 맞추는 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 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근심이 머물러 있는 것을 한 곳 보여드리겠습니다.

영상을 하나 보겠습니다. 여러분 이 영상에 보면 한 달 전에 단둥 지역 압록강 배에서 보는 북한 전경입니다. 우리 보초서는 그분들의 이미지도 있고요. 북한의 모습이 지금 이렇게 그대로 이렇게 찍혀진 건데요. 국경 지역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분들은 사실 평양 시민들 정도는 아니지만 북한식으로 토대가 좋은 분들입니다. 목숨을 걸고 소위 말하면 국경을 넘지 않아도 되는 삶을 사는 분들, 먹을 것이 없어 죽는 정도는 아닌 사람들입니다. 그분들의 이 삶의 모습이 그대로 압록강에서 이렇게 찍혀지는데 참 이렇게 보면 참 일상적이고 한가롭고 평화롭기까지 합니다. 나쁘지 않습니다. 자전거에 짐을 싣고 오고 가는 사람들도 많고요. 등에 짐을 지고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도 많고요. 어떻게 보면요. 이 자전거를 타고 짐을 싣고 가는 그 사람의 모습을 보면 아버지가 쌀을 팔아서 집에 가져가는 것 같구나. 라는 그런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저렇게 짐을 지고 가는 사람에게 이 배에서 손을 흔들면 같이 손을 흔들어주기도 합니다. 물론 그 사람들은 그분들은 저희가 중국 관광객인 줄 알고 손을 흔들어주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런데 이 추운 겨울에 한 달 전인데 얼마 전에도 더 추워졌는데도 여전히 더 많은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자전거에 짐을 싣고 혹은 등에 짐을 싣고 이렇게 왔다 갔다 하는데 알고 보니까 왜 그렇게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는가 보니까 자전거에 짐을 실은 거 등에 짐을 실은 것은 큰 마을에서 작은 마을로 작은 마을에서 큰 마을로 짐을 옮기는 쿠팡 배달하는 그런, 그런 모습이라고 합니다. 조금 아주 조금 떨어지는 차액, 그 차액을 챙기기 위해서 하루 종일 짐을 짓고 하루 종일 자전거를 타고 왕래하는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참 이렇게 평범해 보이고 이렇게 한가로워 보이는 저 모습 속에서 또 그 내 이야기를 알면 좀 다른 느낌을 갖게 되는데, 저기 아까 본 분들의 95%, 아니 거의 99%는요. 그곳에서 태어났어요. 그리고 그곳에서 왔다 갔다 하는 거예요. 똑같은 곳을 평생 왔다 갔다 하다가 저러다가 죽게 되는 거예요. 왜 여행의 자유도 없고요. 이주의 자유도 없는 곳에서 살기 때문에 그곳을 떠나서 어디 간다는 것이 쉽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배를 타고 1시간 정도 이렇게 올라간 후에 저희는 중국 쪽에서 조선족이 하는 식당에서 음식을 먹게 점심을 먹게 됐는데, 음식이 그날따라 왜 그렇게 푸짐하게 보이던지 안타까운 마음으로 북한 땅을 한참 쳐다보다가 음식을 이렇게 대하니까 그 푸짐한 음식이 너무나 슬퍼 보였습니다. 그래서 식 기도를 하면서 저희가 울먹이며 울면서 기도를 했는데, 저 사람들은 바로 저 땅에 사는 사람들 그리고 국경이기 때문에 그래도 제일 좋은 모습을 보이는 건데, 그 사람들은 이것을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하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가득 찬 저 땅 우리는 비행기를 타고 배를 타고 여행을 하면서 저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는데, 저 사람들은 저기에서 태어나서 평생 죽을 때까지 저기서 살다가 죽어가는 그 모습을 생각을 할 때 그 모습을 생각할 때 얼마나 그 마음이 아팠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 이거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요. 하나님의 눈물이 머물러 있고 하나님의 시선이 향하는 그곳을 향해 바라보게 되는 그런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담임 목사님을 통해 우리 사랑의 교회에 귀한 2033 50 비전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통일이 되면 북한에 2천만 명의 주민들이 그들의 주체사상을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바꾸면 가능합니다. 예 가능할 것입니다. 그런데요, 그런데요 그렇게 되기 위해서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저희가 해야 할 일들이 있습니다. 2천만 명의 복음화는 어느 날 갑자기 통일이 되면 자연스럽게 일어날 일이 아니기 때문에 저희가 해야 할 일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입니다. 먼저, 먼저 온 통일 탈북 민들을 외롭지 않게 서럽지 않게 이 대한민국 잘 정착하게 해서 나중에 통일이 되었을 때 그래도 우리를 가장 따뜻하게 안아주고 도와주고 살게 해주고 반석학교라는 학교를 통해 공부시켜주고, 반석학교라는 학교를 통해 좋은 대학에 들어가서 사회에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코로나 기간에도 결혼식장을 차고 넘치게 목숨을 걸고 채우면서 시집 장가 보내준 것이 하나님을 믿는 영 가족이었다. 라는 것을 고백하게 하는 그런 증언을 하게 하는 모습이 우리에게 지금부터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 무연고 혼자라고 무시하지 못하게 그들의 막강한 친정이 되어주고 장례가 나면 가장 먼저 쫓아가서 함께 슬퍼하고 위로해주면서 그 어느 때보다도 처절하게 고향이 그립고 외로운 시기 명절이 되면 불러서 함께 떡도 먹고 송편 만들면서 가족이 되어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통일이 되었을 때 그 가족들에게 그 친지들에게 고양이 같은 그 사람들에게 그들의 강한 막강한 믿음의 고백이 이루어지는 것이고 신앙이 최고다 영 가족이 최고다 교회가 최고다 사랑의 교회가 이렇게 우리에게 해주었다 할 때 비로소 그들이 이들의 말을 듣고 2천만 명이 주체사상 대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선택하는 2033-50 비전이 이루어질 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지금 여기 찬양대에 그리고 이 자리에 함께하고 있는 우리 북이 고향인 분들은 받은 이 모든 사랑을 사명감을 갖고 그대로 전달해야 합니다. 영혼을 구원하는 마음으로 전도하는 마음으로 애절한 마음을 담아서 그들에게 말해야 됩니다. 어떤 사랑을 받았는지 어떤 관심을 받았는지 무엇 때문에 내가 그 낯선 곳에서 살게 되었는지 여러분들은 전달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을 하는 또 하나의 방법은 우리가 그래도 우리가 힘들고 그리고 우리가 죽을 수밖에 없었을 때 그래도 우리 아이들에게 영양 죽 한 그릇, 콩기름 한 병, 생리대를 비롯한 생필품, 의료기계와 의약품 그리고 각종 필요한 교육을 해준 것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고, 우리 동포 한 민족 사랑의 교회이고 하나님이 하나님의 은혜였다 하나님이었다는 것을 고백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여러분 그래야 그들이 통일되었을 때 세상에 모든 눈물이 쏟아져 들어갈 때 이단 종교나 다른 이념 혹은 무교를 선택하지 않고 하나님을 선택하며 하나님을 믿어서 2033-50 비전을 이루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통일을 생각하면 많은 분들이 오해를 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 오해가 뭐냐면 어떤 형태든 통일이 되면 무조건 대한민국이 북한 땅에 탁 들어가서 인프라를 구축하고 지하자원을 개발하고 막 그럴 거라는 생각을 합니다. 예 맞습니다. 여러분 그렇게 되어야죠. 근데 현실은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통일이 되는가에 따라 변수가 생길 수가 있는데요. 합의 하에 남북통일이 이루어져서 남북 연방제 혹은 국가연합과 같은 형태가 될지 아니면 체제 붕괴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통일 흡수 통지나 급변 통일을 통해서 신탁통치 과도기적 자치 정부제가 도입될지 아니면 그도 저도 아닌 말도 안 되는 북한 분할 안이 실시되어서 중국, 러시아, 미국, 일본, 유엔 그리고 대한민국이 북한 땅을 찢어서 나눠서 통치하게 될지, 여러분 이게 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시는 분들은 삽지에 들어가 있는 복음 통일 아카데미에 등록을 하시면 이게 다 무슨 말인지 알게 됩니다. 여기서 배우게 됩니다. 어떤 형태가 이루어질지 여러분 모르는 거예요. 어쨌든 유엔이나 국제 법에 의해서 북한은 국민 영토 정부 그리고 다른 나라와 교섭할 수 있는 자주권이 있는 나라입니다. 인정을 받는 나라이기 때문에 유엔 정식 가입국으로서 혜택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여기에 자결권, 서프 디터미네이션 개입권 실시 요구권 여러분 마틴 라이 이런, 이런 것들이 있어요. 누가 와서 우리를 도와줄 건지 저 지하 자원을 개발하고 저 인프라를 구축하게 할 건지 그 사람들이 그 국민들이 선택할 수 있는 선택권이 쥐어질 수 있다는 겁니다.

여러분, 그때요 그럴 때요. 그래도 우리가 굶어죽지 않고 병들어 죽지 않도록 그렇게 욕을 먹으면서 공격을 받으면서도 우리 담임 목사님께서 그러셨고 그러시는 것처럼 지속적으로 도와준 것이 같은 민족 대한민국 한 동포 한국교회 사랑의 교회 성도였다라고 할 때라고 할 때, 그들이 다른 나라가 아닌 대한민국을 선택하는 것이고요. 다른 이념이 아닌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선택할 것을 저희가 절대 간과하여서는 안 됩니다. 근데 오히려 반대로요. 같은 민족이 같은 동포가 다른 나라보다 피도 섞이지 않은 얼굴 색깔도 다른 그 나라보다 더 냉정했고 차가웠고 매몰찼다. 라는 이야기를 하게 되면 저희가 북한 땅에 대한 개발권은 인프라 구축은 다 저리 가는 거고요. 더 심각한 건 자유롭게 복음을 전하는 것조차 어려워질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중국처럼요. 지금 러시아처럼요. 2033-50 비전을 온전히 이루기 위해서는 저와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는 마음으로 이 사역에 동참해 주셔야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무식한 성에서 영혼 위에 존재하는 영혼의 가치 영원히 거하느니라. 메네이에이스톤 아이오나의 삶을 살기 위한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투 텔라마토데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 속에 사는 성도의 모습 하나님의 자녀들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약
영혼 속에서 영혼의 가치를 가지고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는 삶을 살 때 하나님께서 2033-50 비전을 이 한반도 땅에 이루어 주실 것을 믿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의 차원으로 사랑광주리가 피 흘림 없는 복음적 평화통일의 사명을 온전히 붙잡고 나아가 남북이 하나 되는 그날이 오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열방의 소외된 더 많은 영혼을 섬기는 통로로 사용되어야 한다.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