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주후 2024년 6월 30일)
제목: "성령님의 선교"
말씀: 사도행전 13:1-5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대표기도: 오우진 부목사님
사회: 임병영 부목사님(1부)
헌금특송: 김제니, 피아노-최혜진집사님

설교자: 브라이언 채플 목사님(미국 장로교회 PCA교단대표,커버넌트 신학교 총장) -초빙(통역: 김인기 부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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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3:1-5,
1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2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3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4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 타고 구브로에 가서.
5 살라미에 이르러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인의 여러 회당에서 전할새 요한을 수행원으로 두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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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우리 사랑하는 성도님들에게 제가 좋은 소식을 가져왔습니다. 오늘날 이 시간 중국에서, 중국에는 예수님을 예배하는 사람들이 미국보다 많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전체 인구 중에서 퍼센테이지로 보면 작지만 너무나 인구가 많기 때문에 총 숫자로 본다면 중국이 미국보다 더 많은 예배 자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아프리카에서도 더 많은 사람들이 미국보다도 예수님을 예배하고 있습니다. 지난 한 세기 동안 아프리카 인구의 아주 작은 소수의 민족들만 예수님을 예배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아프리카에서는 50프로에 넘는 사람들이 나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라고 얘기하고 다닙니다. 아프리카에만 5억 명이 넘는 그리스 돈들이 있습니다. 미국에 있는 모든 인구보다도 더 많은 숫자입니다.

지난 15년 동안 지난 15년 동안 그리스도로 돌아온 무슬림의 숫자는 지난 14세기 동안 돌아온 숫자보다 더 많습니다. 이란은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교회를 가지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 빠르게 성장하는 교회는 아프가니스탄에 있습니다. 그러나 이 교회들을 억압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하에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령님의 축복으로 말미암아 빠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이 시간도 역사하심을 믿습니다. 기독교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큰 종교가 되었습니다.

2050년에는 또 10억 명의 기독교인들이 추가될 것이라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여러분들을 단순히 놀래 키려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이 살아계시고 역사 하신다는 것을 증거 하기 위해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다른 분들이요. 어떤 분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아! 근데 성경 이야기 그거 오래된 이야기 아니야. 라면서 그리스도의 역사 역사성을 훼손시킵니다. 다시 말씀드려 성령님은 살아계시고 역사하시고 이 자리에 함께 계심을 믿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교회들의 목표는 성령님께서 어디로 이끌 수 있는지 우리가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 언제나 성령님께 간구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돛을 올리고 우리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성령님 새바람을 불어 주시옵소서! 우리가 가야 될 길로 주님께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그러나 어떻게 해야 될까요? 어떻게 주님께 전적으로 위탁할 수 있습니까? 오늘 13장에서 우리 발견을 방법을 확인합니다. 사도행전 1장이 시작될 때, 성령님의 바람에 큰 권능으로 교회에 불어왔습니다. 특별히 오순절 날 많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날 그 오순절 날, 3천 명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성령님은 그러나 그의 일이 끝나지 않았음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킵니다. 성령께서는 매일 예수님을 구조로 믿게 된 사람들을 더하시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나중에는 유대인 제사장들까지도 예수님을 따르게 됐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유대 권위자들은 아 이젠 충분하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교회를 무너뜨릴 때다. 라고 얘기했습니다. 그리고 젊은 청년, 아주 젊은 종교적 광신도 그중에서 사울이라는 사람을 고용하기로 합니다.

이 사울이란 사람은 교회 무너뜨리는 데는 아주 재능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크리스천 남녀를 감옥에 넣었고, 끝까지 신앙을 지킨 사람들은 사울이 죽여 버렸습니다. 성령님의 역사는 그친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계속 역사하시고 계십니다. 사월이 교회를 무너뜨리려고 할 때에도 모든 기독교인들이 예루살렘을 떠나 복음이라는 씨앗을 가지고 날아가는 발걸음들이 되었습니다.

초대 기독교인들 중 일부는 지금 우리가 소아시아라고 부르는 지역들, 아프리카 아시아 유럽을 잇는 교량지역으로 떠나갔습니다. 그 소아시아 지역에서 기독교인들이 모였을 때, 그들은 비로서야 그곳에서 크리스천이라고 처음으로 불리게 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모여 안디옥이란 곳에서 모여서 첫 번째로, 선교사를 파송하기 시작합니다. 사도행전 13장 첫 구절에서 우리는 안디옥 교회의 지도자들을 볼 수 있습니다.

특별히 이 구절을 볼 때, 아, 어떻게 해야 성령께서 일하심과 강권하심을 우리가 느낄 수 있고 체험할 수 있구나! 를 배울 수 있습니다. 바로 교회에 있는 모든 리더들이 겸손으로 무릎을 꿇고 주님 앞에 하나 됨을 간구했던 것입니다. 특별히 리더들이 하나 됨을 위해 기도할 때, 성년께서 어떻게 교회를 사용하시는지를 보게 됩니다. 특별히 13장에나 1절에 나오는 이름들에 우리가 주목하길 원합니다. 첫 번째로, 바나바라는 이름으로 시작합니다. 바나바 이름의 뜻은 격려의 아들 위로의 아들입니다.

*사도행전 13:1,
1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엄청나게 아름다운 유대식 이름입니다. 정말로 바나바가 사도바울에게 큰 위로 자였습니다. 사도바울이 첫 선교를 떠났을 때, 바나바를 데려간 것으로 기억하시죠. 바나바는 위로 자였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이 복음을 들고 나아갈 때 선교를 나아갈 때 그는 위로 자가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이어진 스토리는 더 아름답습니다. 바나바랑 사울이 처음으로 갔던 곳이 어딘지 기억하시죠? 첫 번째 선교 장소는 바로 헬라의 섬 중 하나인 구브로란 섬입니다. 사실 구브로는 바나바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바나바는 유대인이었지만 그리스 헬라문화에서 자랐습니다. 이제 바울은 헬라 문화의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나바는 위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도바울에게,,, 바나바는 사도바울에게 헬라 문화권에 대해 알려주면서 사역을 돕도록 주님께서 준비시켰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나바 가족에게 한 세대 전에 구브로 섬으로 이동시키셨습니다. 그래서 바나바가 바울을 돕도록 만든 것입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지혜로우신지요? 그리고 성령님께서는 계속해서 세대(世代)를 건너서 일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이어지는 스토리는 더욱더 아름답습니다. 사도바울과 바나바에 관한 일입니다. 바나바의 조카가 이 선교회 같이 따라갔었습니다. 5절 마지막 부분에 나와 있는데요. ‘요한을 수행원으로 두었더라.’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사실상 그의 풀 네임이 아닙니다. 다른 구절을 보면 이 요한은 ‘마가라 하는 요한’(마가 요한)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가라는 요한 또한 구부로 출신이었습니다. 그가 사실 바나바와 그리고 사도바울을 도울 수도 있었지만 그러나 굉장히 다르게 반응을 하기 시작합니다.

마가가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걸 알았을 때, 아! ‘근데 그러면 내가 돌아가면 내 친구들에게 내가 이제 예수님의 사람이 됐던 걸 얘기해야 되잖아!’. 그게 너무 싫어서 마가는 무엇을 했습니까? 도망가 버립니다. 친척들과 모든 가족 친구들을 보기 싫었습니다. 겁쟁이였습니다. 너무나 끔찍한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과 바나바가 두 번째 선교 여행을 가기로 작정했을 때, 바나바가 사도바울에게 이렇게 얘기합니다. 어, ‘우리 마가를 데려가지 않을래?’ 바울이 뭐라고 했을까요? ‘절대 안 돼!!! 데려갈 수 없어’ 아 그리고 격렬한 싸움이 일어났습니다. 끔찍한 이야기로만 끝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름다운 이야기로 마무리가 됩니다. 사실 이 마지막 부분 엔딩은 어떻게 되냐면, 우리가 신약 복음을 읽을 때마다 시작이 됩니다. 신약 성경에서 첫 번째로, 나오는 책은 무엇이죠? 마태복음입니다. 신약 성경에서 두 번째로, 나온 책은 무엇일까요? 마가복음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마가가 마가복음을 쓴 저자이기도 합니다. 존 머크, 바로 마가라는 요한입니다.

바로 구부로의 겁쟁이입니다. 주님께서는 마가라는 사람을 사용하여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하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보다도 훨씬 더 지혜로워하십니다. 그리고 자비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마가복음을 펼 때마다 주님의 자비를 느끼게 됩니다. 우리가 마가복음을 볼 때마다 무엇을 배워야 될까요? 하나님은 용서의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을 구원하는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은 회복한 하나이시며, 이것이 바로 복음의 본질인 것을 확신합니다. 그리고 바로 이 바나바라는 인물을 공부할 때 이 모든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우리가 공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습니다. 더 많은 일들이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또 누가 안디옥 교회 리더 들이었을까요? 두 번째 이름은 바로 시므온이라는 사람입니다. 시므온이라고 이름 낸 이 사람입니다. 니게르란 뜻은 ‘검다’ 라는 뜻입니다. 실질적으로 아마 피부가 검었을 것입니다. 사실 유대인 민족 가운데 피부가 검었다는 것은 그 사람은 배척당해야만 마땅합니다. 왜냐하면, 유대식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흑인 피부였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조상 가운데 어떤 시점에 비유대인과 그의 조상이 결혼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대인 기준으로 볼 때, 그는 불순하며 멀리해야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교회 안에서 그는 멀리 드는 사람이 아니라, 이론으로 받아 리더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어지는 이야기는 더 아름답습니다. 이 유대인들이 어디서 그럼 이 검은 피부를 가지게 됐을까요? 실질적으로 당시의 예수님과 사도바울 시기에 북아프리카 지역의 유대인들이 다스리던 식민지가 있었습니다. 그 북 아프리카를 유대인들이 뭐라고 불렀는지 아십니까? 바로 그들은 그 지역을 ‘구레네’라고 불렀습니다. 이 사람은 구례네 시몬입니다. 혹시 이름이 익숙하지 않으신가요? 갈보리 언덕으로 주님이 십자가를 지고 올라가셨을 때, 채찍질로 인하여 너무나 크게 피를 흘리셨을 때, 그리고 너무 힘들어서 십자가의 무게에 짓눌려 넘어지셨을 때, 그때 로마 병사 중 한 명이 사람들 중 한 명을 끌어내어, ‘네가 이 사람의 십자가를 지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졌던 사람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구레네 사람 시몬이었습니다. 그리고 여기 다시 등장합니다. 이제는 그가 안디옥 교회의 리더로서 등장합니다. 그런데 그가 교회 왔을 때 다른 크리스천들이 얼마나 괴로웠을까요?

왜냐하면, 우리 구주를 괴롭게 했던 십자가를 지었던 사람이라니,,, 어떻게 그런 사람이 우리 교회에 들어올 수 있냐고, 그러나 그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리더가 되었습니다. 이것을 통해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자비하심이 얼마나 놀라우신지, 하나님은 용서하시고, 하나님은 구원하시고, 하나님은 회복시키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는 교회 안에서 연합되고 하나 되어서 주님을 찬양하고 예배한 하게 되는 것이죠. 그리고 이야기는 계속해서 진행이 됩니다. 그리고 그 다음 사람이 누구십니까 구레네 사람 루기오입니다. 첫 번째로, 로마 이름이 등장하는 장면인데요. 루기오는 로마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로마 사람이 교회에 있습니다.

심지어 리더 입니다. 근데 그게 왜 이상한 일일까요? 왜냐하면, 로마의 압제 가운데 주님께서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로마의 압제(壓制) 가운데 교회들이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실질적으로 안디옥 교회가 생긴 이유는 예루살렘에서 쫓겨났기 때문입니다. 집을 잃었고, 직장을 잃었고, 가족을 잃었고, 그리고 로마인들이 그렇게 했습니다. 그런데 그 로마인이 교회에 있습니다. 그러면 그의 집은 어디일까요? 고향은 어딜까요? 그는 구레네의 루기오입니다.

북아프리카 출신의 로마 시민권자입니다. 아, 이제야 우리가 좀 깨달음을 얻는 것 같습니다. 초대 교회 크리스천이라고 불렀던 사람들은 초대 교회에서 다른 곳으로 선교사를 보냈던 그 사람들은, 사실 모든 나라에서 사람들이 와서 모인 교회였습니다. 유대인이었고, 로마인이었고, 아프리칸이었고, 다민족 교회였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상상을 초월하여서 인종의 벽을 묻으시며 일하고 계셨습니다. 여기에 있는 모든 크리스천은 정말로 겸손하게 주님 앞에 무릎 꿇고 나아갑니다. 하나님 아버지 그리고 그들을 기억 기도합니다.

하나님, 주님이 우리를 용서해주시면, 우리도 그들을 용서하겠습니다. 주님께서 주신 사명을 우리가 붙들고 나아가겠습니다. 하나 된다는 것은, 엄청 엄청난 겸손함을 드러냅니다. 사실 하나 된다는 것은 얼마나 겸손이 어려운지도 드러냅니다. 그 다음 이름이 무엇일까요? 그 다음에 등장한 리더의 이름은 마나임 이라는 리더 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그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헤롯왕의 궁정의 일원 헤롯의 젖동생이라고 나옵니다. 사실 헤롯왕이 많이 등장합니다. 그렇다면 이 헤롯왕이 어떤 왕인지 햇갈리기도 합니다. 성경에서 그렇기 때문에 이 헤롯왕이 어떤 헤롯왕인지 헷갈리기도 합니다.

이 헤롯왕의 아버지는 예수님을 죽이려고 베들레헴에서 아기들을 학살한 왕입니다. 그러나 이 헤롯왕도 자기 아버지와 같이 자기 손에 피를 묻혔습니다. 세례요한의 목을 베었습니다.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죽여 버렸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헤롯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히도록 빌라도에게 넘겨버린 그 헤롯입니다. 그리고 지금 교회의 마나임이란 사람이 있는데, 헤롯왕의 젖동생이라뇨? 영어로 이런 표현이 있습니다.

‘원수의 친구는 나의 원수다.’ 지금 헤롯왕보다 더 큰 적군은 원수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친구가 마나임이었습니다. 그러나 마나임은 용서를 받았습니다. 구원받았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 안에 리더로 세워졌습니다. 이게 얼마나 그 교회를 같이 다니는 사람들에게 어려웠을지 상상되십니까? 아마 이렇게 기도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 아니 유대인 중에 겁쟁이 유대인 우리 교회 오는 거 괜찮습니다. 검은 피부를 가진 유대인도 제가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다. 심지어 로마 시민권인 아프리카인도 제가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러나 마나임은 안 됩니다. 하나님, 너무 어렵습니다. 마나임은 안 됩니다. 하나님이 일하시려면 성령께서 내 마음을 만져주셔야만 합니다.” 그리고 성령님께서 일하셨습니다. 이것도 초인적인 일입니다. 그러나 성령님께서 일하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모든 크리스천은 모든 일에 성령님의 일에 정말로 무릎 꿇고 경배하기 시작했습니다. 너무나 마나임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 사람만큼 힘들지는 않았습니다.

마지막 사람 이름 무엇입니까? 바로 사울입니다. 지금 안디옥에 왜 기독교인일가요? 왜냐하면 사울이 예루살렘에서 쫓아냈기 때문입니다. 왜냐면 사울이 그들의 집을 무너뜨렸기 때문입니다. 사울이 가족들을 감옥에 넣었고, 사울이 그 가족들 중에 몇 명을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안디옥교의 리더 라구요? 그리고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선교사로 파송됐다고요? 얼마나 안디옥교회에서 하나 되기가 어려웠을까요? 한번 생각해보겠습니다.

만일 우리가 우크라이나 사람이라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러시아 군대의 우리 마을이 완전히 포격 당했습니다. 우리 가족도 죽어버렸고 그리고 이제는 우크라이나를 떠나서 이제 미국으로 망명을 가, 그곳에서 교회를 다니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교회에 들어갔는데, 근데 교회 중에 리더 분들이 앉아 계시는데, 만일 그곳의 리더가,,, 러시아 장군이고, 우리의 마을을 포격했던 장군이라면, 그 교회에 계실 수 있겠습니까? 아니면 바로 그 교회를 떠나시겠습니까? 이 기독교인들은 무엇을 했을까요? 그들은 이렇게 묻겠습니다.

만일 이것이 성령님이 하신 일이라면, 우리는 겸손히 순종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받아들인 자들을 우리도 받아들이겠습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모두 죄악 넘어서까지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쓴 뿌리를 넘어 일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모든 과거와는 상관없이 예수님을 사랑 안에서 우리가 하나 되고 연합돼야 된 줄 확신합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의 아름다움입니다. 이것을 통해서 이러한 겸손을 통해 가장 끔찍한 죄에 대한, 용서가 있음을 복음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최악의 죄인들에게도 소망이 있습니다. 복음 안에는 가장 쓰라린 분열에 대한 치유가 있습니다.

근데 어떤 분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아 그거 그냥 오래된 이야기 아닙니까? 그러나 우리는 오늘 이 시간 확신합니다. 만일 모든 교회가 전교회가 주님 앞에 무릎을 꿇는다면, 우리가 겸손함으로 무릎 꿇고 나아갈 때, 성령의 새바람이 이 교회 부를 줄 믿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 됨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우리가 또 보게 됩니다. 그들이 모였을 때, 무엇을 하였습니까? 2절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사도행전 13:2,
2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그들은 멈추지 않고 예배하였다. 왜 예배했을까요? 집을 잃어버렸고, 그리고 가족을 잃어버렸고, 심지어 미래가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데 그러나 다 같이 모여 예배하기 시작했습니다. 왜 예배했을까요?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악을 용서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계속해서 예배합니다. 멈추지 않고 예배합니다. 그리고 기도합니다. 그리고 금식(禁食)합니다. 그리고 그게 3절입니다.

*사도행전 13:3,
3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금식하고 기도한 이후에 그들이 첫 선교사를 파송합니다. 왜 그들이 기도해야 했을까요? 왜냐하면, 기도야말로, ‘하나님 나는 하나님이 필요한 합니다.’ 라고 고백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능력으로 할 수 없습니다. 나의 능력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주님께서 일 해주시옵소서. ‘주님 나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주님께서 도와주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필요하고 영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실질적으로 금식이란, 우리의 실질적으로 나타나는 표현입니다. 금식할 때, 우리는 스스로 약하게 만듭니다. 왜 그렇게 할까요? 왜냐하면, 우리가 약할 때 주님께서 강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약할 때 주님을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성령님의 권능에 의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끊임없이 예배해야만 합니다.

그를 예배하는 중에 우리가 기도함으로 나아가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됩니다. 왜냐면, 성령님께서 요청하시는 일은 우리의 능력으로 감당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코로나19 기간 동안 우리가 예배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코로나 기간 동안, 누군가 너 왜 예배드리러 가냐? 라고 조롱한다면, 사실 예배드리기 쉽지 않았을 겁니다. 심지어 우리 믿지 않는 가족의 우리를 너 왜 교회 가냐고 라고 조롱한다면, 쉽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나 그런 기간 가운데도 우리가 하나로 모여 예배할 때, 전 세계를 향해 우리가 이렇게 공포하는 겁니다. 성령님께서 이 자리에 일하고 계신다. 그리고 성령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은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자 그럼 도대체 주님께서 주신 사명과 숙명이 무엇일까요? 계속되는 예배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용기를 가지고 담대함으로 증거 해야 됨을 믿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계속해서 증거 해야 됐습니다. 성령님의 능력 안에 그들은 증거 해야 됐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 두 명이 어디로 갔는지 아십니까? 처음으로, 바로 이 회당으로 갔고, 왜냐하면, 그곳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주님이신 것을 증거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사도바울에게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어요. 왜냐하면, 다시 그의 교회 가족들에게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나바에게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일이었지만 그 두 명 다 민족에게 복음을 제안해야 되는 부담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같은 민족 아니면 같은 가족에게 전할 때, 왜 성령님의 도움심이 필요할까요? 혹시 여러분, 누가 제일 여러분 잘 알고 계십니까? 여러분들의 약점을 누가 제일 잘 알고 계십니까? 여러분들의 결정, 여러분들의 연약함, 여러분들의 고등학교 때 한 일 누가 제일 잘 알고 계십니까? 우리 가족입니다. 우리 가족에게 증거 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성령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우리 가족들이 우리 알고 있는 모든 연약함들, 나의 연약함, 나의 결점, 나의 위선까지도 모든 것들을 우리가 가족들이 우리에게 얘기 할 때, 맞습니다. 그렇게 나쁜 사람 맞습니다. 나를 용서하셨습니다. 나를 구원하셨고, 나를 회복시키셨고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 분들 주님께서도 당신들에게 권할 수 있음을 증거 해야 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해야 될 사명입니다. 우리 가족들에게 그러나 가족과 민족뿐만 아니라 우리 적군들에게도 적들에게도 전해야 한다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사실 13장 전체를 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13장을 본다면 아시는 분이 계시다면 어떻게 진행했는지 아실 겁니다. 구브로 이후에는 이 바울과 바나바가 마술사에게 복음을 전하기 시작합니다. 심지어 이 사람은 자기를 바 예수라고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그를 꾸짖었습니다.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마술사는 로마 총독과 관계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과 바나바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그들이 그에게 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마술사는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로마 총독이 믿고,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바로 성령님이 일하심입니다. 바로 우리의 역량을 넘어서 일하시는 성령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지혜를 넘어 일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오늘 일하심을 믿고 나아간다면, 그리고 저는 이걸 확신합니다. 성령님의 능력을 저는 보았습니다. 그리고 저의 삶에서도 성령님의 능력이 증거 됐습니다. 제가 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지난달 100년 동안 매년마다 홍콩 성경 컨퍼런스에서 25만 명이 모여 성경 공부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3년 전에 홍콩 성경 컨퍼런스가 완전히 캔슬(Cancel) 됐습니다. 코로나 19가 캔슬 시켜버린 것입니다. 사실 제가 3년 전에 강사로 서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게 닫아버렸기 때문에 그쪽 리더가 저에게 편지를 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보내왔습니다. ‘브라이언 채플 박사님, 아시다시피 코로나가 중국에 널리 퍼져 있습니다. 수만 명의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모든 공공 활동들이 정지되었으며 교회 모임도 중단되었습니다. 그러나 목사님께서 이미 예정되었던 강사로서 짧은 메시지를 써주신다면 우리가 위로받고 격려 받고 영감을 얻을 것을 확신합니다.’ 근데 제가 이 편지를 받았을 때, 내가 과연 이 편지에 답장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가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홍콩에 계신 크리스천 분들은 너무나 큰 억압 가운데 있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그 억압과 탄압(彈壓) 가운데서도 신실함을 지켰던 분들입니다. 저는 인생 가운데 그러한 억압을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내가 그런데 어떻게 그들을 격려하고 독려할 자격이 있는가? 그렇게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성령의 역사에 대해 쓰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이렇게 썼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중국에서 여러분들 직면하고 있는 어려움에 대해 읽으면서 전 세계 교인들이 여러분들을 주목하고 있다는 것을 전하기 위해 이 편지를 있습니다. 천사들이 여러분들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불 꽃 같은 눈동자가 여러분들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령님께서는 지금 이 시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탄식으로 여러분들을 위해 중보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심지어 모든 걸 코로나마저도 함께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실 것입니다. 어 이 잠깐의 고난을 우리가 곧 받게 될 영광의 무게를 견딜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한 장치일 뿐입니다.’

사실 제가 이 편지를 보내고서도 어떠한 영향이 있을 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 편지를 받고 나중에 홍콩 리더 들이 이 편지를 가지고 기도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기도했습니다. 이 코로나 19가 끝난 이후에 다시 한 번 홍콩에서 성경 컨퍼런스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코로나 전과 같이 25만 명이 모일 수 있도록 하여 주십시오. 라고 그들은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작년에 다시 8월에 성경 컨퍼런스가 열리게 되어서 제가 참여하게 되었는데요. 다시 한 번 강사로 초청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사실 고백할 게 있습니다. 작년 컨퍼런스에 25만 명이 모이지 못했습니다. 110만 명이 모여 함께 예배하고 주님을 찬양했습니다. 성령님께서는 지금도 살아계시고 역사함을 믿습니다. 성령님은 전 세계 각국에서 일하고 계십니다. 성령님은 북한에서도 일하시며, 그리고 우리의 이웃 가운데서도 일하시며, 성령님은 우리의 마음 가운데 일하시는 분을 믿습니다. 우리의 고난은 성령께로 가는 문입니다.

우리의 장애물을 성도님이 사용하실 기회를 드립니다. 우리가 주님께 전적위탁하면서 손을 들고 이렇게 고백합니다. ‘성령의 새바람 이 땅에 불어오시옵소서. 주님의 권능이 우리에게 삶을 전적 부탁드립니다. 성령의 새바람 이 땅에 불어오시옵소서. 성령의 새바람 불어오시옵소서. 우리의 고백 예수 그리스도로 간구합니다. 성령의 새바람이 땅에 불어오소서. 예수 그리스도로 기도드립니다.’

♣요약
성령님께서 겁쟁이와 적대자를 초월하는 대반전의 기적으로 임하시기를 간구하며,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겸손으로 날마다 예수님을 구주로 전하며, 기도와 금식으로 주님의 능력을 구하며 전적으로 순종할 때, 가족과 이웃과 그리고 대한민국과 북한과 열방에 강력한 성령의 새 바람이 불어오기를 소망해아 하며, 우리 교회가 사랑글로벌 아카데미(SaGA)와 로잔 글로벌 파트너스와 함께 성령님의 능력으로 연합할 때, 세계 복음주의의 쇠퇴를 압도하는 2033-50 비전으로 21세기 사도행전을 집필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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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흥헌신 토요비전새벽예배(주후 2024년 6월 29일)
제목: ⓵“필승! 주의 백성”, ⓶“하나님 나라를 향한 비전”
말씀: 요한계시록 7:9-17, 마태복음 14:12-17
대표기도: 이소훈 권사님(목양 7팀)
찬양인도: 청년부 찬양팀, 목양7팀
말씀봉독: 한유리 자매(청년4국), 이동구 형제(대학2부)

사회: 주연종 부목사님

 설교자: ⓵이석영 목사님(한국군종단장)-초빙,
⓶에드워드 스테처 목사님(바이올라 대학교 교수님)-초빙(통역-정상익 부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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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7:9-17,
9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10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11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서 있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12 이르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하더라.
13 장로 중 하나가 응답하여 나에게 이르되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냐.
14 내가 말하기를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나에게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15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16 그들이 다시는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도 아니하리니.
17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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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4:12-17,
12 요한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가져다가 장사하고 가서 예수께 아뢰니라.
13 예수께서 들으시고 배를 타고 떠나사 따로 빈 들에 가시니 무리가 듣고 여러 고을로부터 걸어서 따라간지라.
14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 중에 있는 병자를 고쳐 주시니라.
15 저녁이 되매 제자들이 나아와 이르되 이 곳은 빈 들이요 때도 이미 저물었으니 무리를 보내어 마을에 들어가 먹을 것을 사 먹게 하소서.
16 예수께서 이르시되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17 제자들이 이르되 여기 우리에게 있는 것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이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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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주연종 부목사님
-이제 한국군정목사단 단장이신 이석용 목사님께서 ‘필승! 주의 백성’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해주시겠습니다. 이어서 바이올라대학교 교수이자 학장이신 에드워드 스테츠 목사님께서 ‘하나님 나를 향한 비전’이라는 제목으로 이어서 말씀을 전해주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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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영 목사님(한국군종목사단장)-초빙,
제목: 필승! 주의 백성
-하나님께 영광 돌립니다. 은혜와 평강의 주님께서 신입 때마다 일마다 이 새벽에도 여러분 모두에게 은혜와 평강 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군대에서 왔는데 저희 군대보다 더 군대 같으신, 군대보다 더 군대 같으신, 우리 목양 7팀! 필승!!! 매일 사랑의 교회를 유튜브로 볼 수는 없으나 가끔씩 들어와서 예배 상황을 보다보면 우리 담임 목사님께서 1군단, 4군단, 막 그러시더라고요. 제가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어느 교회가 군단을 정해서 군단이 뭐 모였냐? 여기가 강하다 저기가 강하다 막 말씀하시는데 저희 군인교회가 깜짝 놀랍니다. 북한의 김정은이 지금도 놀라고 있겠죠?
 
오늘 아침에 또 특별히 목양 7팀의 귀한 찬양은 설교의 주제, 또 누가 설교하는지를 보시며 군대에서 사람이 오니까 승전가를 부르자 이렇게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너무나도 귀한 찬양 하나님께 제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아 하나님의 말씀 잠시 간략하게 각론 하고자 합니다.
 
저희 군인들은 경례를 합니다. 경례(敬禮) 구호가 놀랍게도 참 제가 처음 갔던 부대는 단결, 그다음 부대는 선봉, 여러분이 아시는지 모르겠습니다만 27사단이라는 부대는 이기자, 3글자는 좀 이상하지만 이기자 합니다.
 
제 동생 선교사 저희도 오정현 담임 목사님과 함께 저희도 똑같이 3부자가 목사인데 동생 목사는 캄보디아 선교사인데 동생이 해양경찰에서 군복무를 했습니다. 그 때, 인천에 배가 정박(碇泊)해서 한번 명절 때 위문(慰問)을 갔는데 나오면서 경례 구호가 전혀 듣도 보도 못한 격리의 구호더라고요. ‘수고하심’ 아니 저는 대한민국 사람이지만 대한민국에서 수고하십시오! 도 아니고 3자 넘어가면 이상하니까 ‘수고하심’, 이라는 말을 처음엔 못 알아들었습니다. 야야 뭐라구? 그랬더니, 수고하심, 이래요. 발음도 좀 이상하고 특히도 격려를 하는구나! 그런데 육군의 많은 부대 중에서 가장 많은 ‘충성’이라는 경례 구호도 붙입니다만.
 
해군, 공군, 해병대가 붙이는 경례구호, 그리고 상당수 많은 육군의 부대가 붙이는 경례 구호가 필승, 반드시, 이기자,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과 또 크리스천에 하나님 나라인 교회의 마지막에 최종적인 단어를 하나 꼽으라고 한다면, 저는 ‘영광과 승리’라고 생각하는데 특별히 오늘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승! 주의 백성’이란 말씀을 허락하고 계십니다. 네..
 
여러분 잘 아시는 요한계시록의 본문 이마에 도장을 받은 하나님의 종들 14만 4천에 대한 기록이 오늘 본문에 나옵니다. 제가 목표하는 군인 교회에 심방(尋訪)을 이렇게 교인들을 해보니까 어떤 교인이 시댁도 친정도 지금 다 이단에 빠져있는 교인을 얼마 전에 심방을 하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그런 얘기를 하더라는 겁니다. 나는 너희, 네가 다니는 군인교회, 일반적인 우리 복음주의 건강한 개혁교회, 요한계시록 설교하지 않지 않느냐? 우리 교회는 설교한다. 그러길래 제가 그 집사님께 여 집사님께 말씀했어요. 우리 교회 나와 보라고, 왜 요한계시록을 설교하지 않냐고, 오늘 본문도 제가 요한계시록인데 건강한 복음주의 개혁교회가 왜 요한계시록을 설교하지 않느냐? 설교한다. 이단들은 자기들만 요한계시록을 마치 전유물처럼 생각하는 이상한 생각들을 하고 있더라구요.
 
오늘 본문이 요한계시록입니다. 마지막 때에, 하나님 나라에 이루어지게 될 천상의 교회, 지상에 있는 지금 우리의 교회는 전투하고 싸우는 교회이기 때문에, 군단을 정하고, 계속해서 승전가를 부르고, 싸움을 독려하는 일들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다 끝나고 나서 천상에 위치하게 될 우리의 교회 된 우리는 하나님이 영광을 받은 우리는, 승리하는 교회로 존재하게 될 줄 믿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하나님이 이 땅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 이마에 도장을 쳐서 하나님의 자녀들을 특별히 보호하시겠다고 약속하시고, 그 수를 상징적인 수로 여호와의 증인들이 말하는 실제 14만 4천이 아닌, 완전수, 완전수, 완전수로 말씀하시는 14만 4천에, 그 하나님의 자녀들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대상인 저와 여러분 하나님의 자녀들을 이마에 도장을 찍어주시고, 도장을 받은 우리들, 우리야말로 언약을 계승하는 공동체이며, 주님의 영적 군사인 줄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이 이들을 향해 그 영광스러운 장면들을 오늘 우리에게 미리 보여주고 계십니다. 그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각 족속과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나와 방언을 사용하는 흰옷을 입은 백성들, 종려나무가지를 흔들며 노래하며 찬양하는 하나님의 성도들, 그리스도의 영적 군인들이란 말씀이죠. 어떻게 찬양합니까?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시니와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께 있도다. 우리 찬양하는 그 찬양 가사 그대로입니다. 그렇게 찬양하는 흰옷 입은 자들, 그러면서 하나님의 7가지, 완전수인 하나님의 완전한 속성들을 찬양하죠. 뭐라고 말합니까?
 
아멘. 찬송과 영광, 지혜와 감사, 존귀와 권능과 힘, 일곱 가지 모든 것이 우리 하나님께 있도다. 아멘, 아멘. 아멘! 그 하나님을 찬양하는 흰옷 입은 우리들, 바로 저와 여러분들 하나님의 영적 군사요.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하심을 입은 저와 여러분들인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오늘 목양 7팀 승전가를 부르신 목양7팀도 흰옷을, 하얀 옷을 입으셨습니다. 하얀 옷, 이 하얀 옷은 어떻게 주어진 옷입니까?
 
다름 아니라, 어린 양이신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 그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빨아 씻어 깨끗하게 된 피, 그 보배로운 피로 하나님이 ‘어린 양을 통해 그 보배로운 보혈로 말미암아 씻으신 그 옷 흰옷을 입은 하나님의 백성들’이라는 말씀입니다. 어린 양이신 주님이 당신 자신의 보혈로, 친히 우리를 정결케 하시고 거룩해 하심을 허락하셔서 그것을 입은 우리들, 놀랍지 않습니까?
 
피에 빨았는데, 붉은색이 아닌 흰옷을 입히시는 어린 양이신 주님, 우리가 입게 될 승리한 교회와 영적 군사 된 우리가 입게 될, 그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천상에서 주님을 찬양하게 될 그 환상을 사도 요한을 통해 주님 보여주고 계십니다. 보혈의 본능, 보혈의 능력을 붙잡고 살아온 그들, 그들은 어떤 사람들이 일인지 구체적으로 말씀하십니다. 그 성도들은 다름 아니라, 저 지상에서 큰 환란을 통과해서 나온 자들이다.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의 그 고난과 환란을 통과하시고, 부활하셔서 승천하셔서 영광중에 천상에 계시는 것처럼, 성도된 우리들 영적 군사 된 우리들, 우리들이 ‘큰 환란에서 나왔으며, 어린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그분의 보혈로 우리의 옷을 빨아 희게 만드셔서 입히시고’, 흰 옷 입은 우리들이 종려나무가지를 흔들며 우릴 보호하시고, 지키시는 그 도장을 우리의 이마에 주시며, 14만 4천 완전수가 된 하나님의 백성, 온전한 성도들을 불러 모으셔서 천상에서 예배하게 될 이 영광, 그 영광을 오늘 이 아침 우리 사랑의 교회에서도 예배하며 목도 하시는 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혼란에서 부활해 나오신 것처럼, 성도도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동참하여 큰 혼란을 이기고, 나온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여러분 아침마다 이렇게 나오시는 게 얼마나 힘드십니까? 쉽지 않습니다. 새벽에 이렇게 특새 하는 교회들 많지 않습니다. 저도 군인교회에서 특새합니다. 오정현 담임 목사님 하시는 거, 우리 같은 교단인 제가 뭐 따라하는 건 당연하지요 새 중에 가장 아름다운 새, 무슨 새 ‘특새’입니다. 그 어떤 새 비둘기 아닙니다. 까마귀 더더군다나 아닙니다. 새 중에 가장 아름다운 새는 특새입니다. 아멘!!!!
 
저도 군인교회 작년 연말에 제가 마지막 생각하는 교회입니다만. 가서 3주 동안 특새 하니까, 교인들이 놀랍니다. 아니 3주 이거 안 해봤는데 안 해본 것도 한번 해보시죠. 그래서 교인들 독려해서 가는 데마다 세 주식 특새, 특새하고, 금요 기도회 살리고, 사실 어제는 담임 목사님의 동생이신 오정호 목사님, 대전 ‘새로남교회’ 전교우 나라 사랑 특별 새벽기도회 거기도 특별히 붙어요. 뭐 특별히 붙거나 뭐 특히 붙어야 됩니다. 어떤 분들은 아 평상시 기도하면 되지, 왜 특별 새벽 기도 하냐? 그러는데요. 그런 분들 가만 보면 잘 기도 안 하는 분들이에요. 아니 평상시에도 기도하지만,,, 좀 집중하고 작심하고, 하나님 앞에 결정할 일들을 가지고 특새하는 일들, 얼마나 중요합니까? 저희 뭐 3주씩 하니까, 군인교회 안에서 좀 이름이 이상하게 났습니다.
 
저희 이석영 목사님 가는 교회는 3주씩 특새하는 교회다. 저 선배님 뒤따라 다니면 피곤하다. 나 기도 안 하는 뭐 군목인데, 예를 들면 그런 군목들은 와서 앞에 목사가 해놓은 거 할려면 힘들다는 거예요. 뭐 그거 그러거나 말거나 저는 제 길을 갑니다. 이처럼 여러분 얼마나 힘드십니까? 아침마다 달려 나와서 특별 새벽기도 하는 것, 주님이 그런 어려움과 큰 환란에서 나오셨고 우리 또한 그 관란을 통과해 어린 양이 그분의 포혈에 우리 옷을 빨아 희게 하여 흰옷을 입은 자들, 그 우리가 주님 앞에 승리의 개선가를 부르게 될 모습, 이것으로 끝나면 섭섭하지 않으시겠습니까? 하나님 우리에게 보상 해주십니다. ‘하나님의 보상을 받게 되는 자들’, 우리에게 주시는 보상을 하나님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러분, 보셨던 본문 말씀 15절부터 17절의 말씀이지요. 하나님이 주시는 보상 4가지를 저는 막 묵상하며 생각해 봤습니다. 첫 번째 뭡니까? 하나님이 그곳에서 하늘에서 우리들을 위해 그분의 장막을 쳐줄 것이다. 우리와 함께하시는 임마누엘이 복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1) 장막을 쳐 주실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텐트 치시고 성소와 성막처럼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이 마지막 때에도 주님이 우리들을 위해 그분의 장막을 펼쳐서 쳐주시는 주님뿐만 아니라 더 이상 굶주림이나 목마름이나 불볕이 없을 것이다. 보호하시는 주님의 보상이 두 번째입니다.

2) 더 이상 굶주림이나 목마름이나 불볕이 없을 것이다.
3) 보호하시는 주님의 보상
-보좌에 앉아 계신 어린 양이 친히 우리의 목자가 되셔서 생명수 솟아나는 셈으로 우리들을 인도하실 그 약속이 또한 보상이라는 말씀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 여호와 로이, 목자 되신 하나님 내 목자 되신 것 또한 하나님이 주시는 보상입니다. 마지막 네 번째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눈물을 말끔히 씻어주실 것이란 말씀이다.
 
4)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눈물을 말끔히 씻어주실 것이다.
-울고 계시는 분들 계십니까? 여러분, 이 땅에서는 울 수 있으나 하나님이 우리를 더 이상 울게 하지 않으실 겁니다. 어린 양이 우리의 눈에 눈물을 닦아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처럼 보여 지는 4가지의 보상들, 이것을 통해 우리가 누구인지를 아셔야 합니다. 말씀을 우리에게 적용해 보실까요?
 
-‘우리 나 혼자 외롭게 싸우는 사람들 아니다’ 라’는 것입니다. 승리하신 주님과 함께 우리도 함께 싸우는 자들이며 나 혼자 외롭게 영적 전투를 감당하고 있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엘리야가 아합과 이세벨 선지자들과 바울 선지자들 그 850명과 싸우고 난 뒤에 했던 말들, 여러분이 지금 말씀하시는 영적 기백을 가진 칠천 기도용사, 바로 그겁니다. 혼자 하는 것 아닙니다. 우리가 함께 합니다. 나 혼자 하는 건 아니고, 옆에 있는 다락방 옆에 있는 순원들 함께하고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그것 때문에 힘들어하지 마시라는 말씀이에요. 군 안에도 이런 사람들입니다. 그 안에도 이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음 영상, 짧은 영상 지난주 동안 지난주 수, 목, 금 여러분 담임 목사님이신 오정현 목사님도 저희에게 오셔서 말씀 전해 주시고, 큰 은혜를 끼치셨던 전국의 육,해,공군 해병대 군인 교회에 장병들과 군인 가족들 예비역, 전 교인들이 모여서 연 인원 들어왔다. 나갔다 한 인원까지 해서 약 8천여 명이 모였던 집회 영상 한번 보시겠습니다. 여러분만 혼자 외롭게 싸우는 것이 아니라, 군인교회 안에서도 싸우고 있습니다.
 
군인교회 아직 살아있습니다. 군인교회 아직 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교회 전투하는 교회일 뿐만 아니라 승리하는 교회인 줄 믿습니다. 먼저 감사드릴 것은 지난주에 담임 목사님 오셔서 말씀도 전해 주셨지만 저희가 2박 3일 동안에 성회 가운데에 뮤지컬을 처음 상영하자고 계획 기획을 했습니다. 아니 ‘오산리순복음기도원’에서 무슨 뮤지컬이냐 했지만, 후배 목사님들이 아이 그 돈 한 1500만 원만 있으면 됩니다. 그러더라구요. 근데 그걸 누가 대냐 사랑의 교회에서 2천만 원인가. 그 이상 헌금해 주셨어요. 너무 감사해서 그래서 그 장병들이 파주 오사니 수목원 기도원에서 뮤지컬을 봤어요. 33년 동안 집회했던 역사 가운데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장병들이 너무 좋아했습니다. 제게 주어진 시간 5분 남았습니다. 군인교회, 함께 싸우는 교회입니다. 저희들 군인교회 홀로 싸운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랑의교회, 새로남교회와 함께 우리와 함께 싸워주시는 교회가 있는 줄 믿습니다. 그래서 군인교회가 비전 2030 실천교회운동이라는 저희들의 비전을 설정하고 달려갑니다. 아!! 네, 아 여러분, 203350하고 비슷하다구요. 아마 그것 때문에 그러시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동일합니다. 복음 전에서 예수 믿게 하고, 세례 주고, 양육하고, 그 친구가 다른 사람들 전도해서 또 복음 전화기 하고 그래서 그들을 여러분의 교회로 밖으로 한국 교회로 파송하는 일들 그 일들을 계속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2030년까지, 한 영혼을 그리스도계로 백만 장병을 한국교회로 보내는 일들을 군인교회가 부흥과 또 회복에 젖줄과 원동력이 되고자 그렇게 일들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보시는 슬라이드 맨 오른쪽에 있는 것처럼 전도와 양육에 있어서 이미 믿은 신자들, 기 신자들뿐만 아니라 기대신자라는 용어를 사용해서 그들을 한국 교회와 연결하는 집회로, 지난주 수 목 금, 3일 동안의 집회를 감당했다는 보고를 드립니다. 사랑의 교회 덕분에 장병들이 와서 축제였습니다. 은혜도 받았고, 즐거움도 있었고, 뮤지컬도 보았습니다. 그런 일들을 해주시는 군선교회 선봉에 서 주시는 우리 사랑의 교회와 우리 교단 교회가 없으면 저희들 이 일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혼자 싸우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고 계십니다.
 
말씀을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구원받은 우리는 흰옷을 입고 큰 환란을 벗어나 하나님의 보상과 하나님의 복을 받아 하나님 앞에 서서 하나님을 경배하게 될 우리의 최종 상태, 우리의 마지막에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시며, 우리 엔디 스테이트가 승리와 영광인 줄 아시고 영적 기백을 품을 수 있는 칠천 기도용사 믿음의 4대 영 가족, 다 되어지셔서 맨 마지막에 필승 주의 백성 ‘하나님의 백성은 반드시 승리하고’, 반드시 이긴다는 분명한 믿음을 가지고 오늘도 힘찬 기도에 진군을 감당하시는 사랑하는 사랑의 교회 모든 교우들 다 되어 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축원합니다.
 
♣요약
우리들을 하나님의 선택받은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하시는 언약 계승의 공동체와 주님의 영적 군사로 불러모아주신 것에 감사하며, 우리들을 어린 양의 피로 씻어주시고, 어린양의 피로 씻은 그 흰 세마포 옷을 입고 종려 가지를 흔들며, 큰 환란에서 나와 주님을 찬양하는 우리들 되게 하신 것 감사영광 돌려야 한다. 마지막에 얻게 될 하나님의 보상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상급을 기대하며, 나 혼자 외롭게 싸우는 존재가 아님을 알게 하시고, 내 백성 나의 백성은 반드시 승리한다는 ‘필승! 주의 백성’이라는 말씀을 기억하며 오늘도 영적 기백을 품은 칠천 기도용사 믿음의 4대 영 가족이 주님 앞에 2033-50 비전을 성취해 내는 자로 앞장서고 실천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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⓶에드워드 스테처 목사님(바이올라 대학교 교수님)-초빙(통역-정상익 부목사님).
기도용사 여러분께 인사를 올려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죠. 이 말씀을 보면서 여러분을 권면하고 또 여러분에게 용기를 북돋아 드리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씀을 전하기 전에 먼저 오정현 담임 목사님과 또 사모님께 감사 인사를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제가 학장으로 섬기고 있는 탈보신학교의 졸업생들이셔서 더욱더 인사를 올려드리고자 합니다. 네 저를 초대해 주셔서 감사하고, 또 학교를 대표해서 감사인사를 전해 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오늘 전하고자 하는데요.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죠.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아, 이미 군종감께서 마지막 때를 얘기를 해주셨는데요. 이 마지막 때에 어떤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이 세상 나라가 하나님 나라로 바뀔 때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기대하고 있죠. 주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기를 원합니다. 라고 보고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이 이곳에 임하기를 바란다고 주기도문을 통해서 우리가 기도하고, 있죠. 그런데 우리가 시대와 시대 사이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 사이에서 살고 있구요.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기도용사로 함께 모여서 기도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가 이 땅 가운데 임하길 원합니다. 라고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다시 듣게 되기를 원한다고 기도했습니다. 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제가 말씀을 보면서 상당히 놀라는 것 중의 하나가 예수님께서 거의 집착에 가까이하듯이, 이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말씀하셨다는 겁니다. 복음 서에서 무려 80번에 걸쳐서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말씀 하셨어요. 이 예수 그리스도께야 말로 하나님 나라는 정말 절대적으로 중요한 문제였던 것입니다. 아 예수님께서 굉장히 강력하게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말씀을 맞습니다.
 
이 현지 시대로 말씀하시면서 지금 이 땅 가운데 내려오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있다고 말씀하시는데 바로 여기 있다. 라고 말씀하시는 거죠. 그리고 바로 지금 이곳에 임한다고 말씀하시는 거죠. 하나님께서 그래서 하나님 나라를 먼저 찾으라고, 이 제자들에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씀하고 계시죠. 우리가 마치 마태복음 4장에 있는 말씀을 아까 살펴봤었는데요. 이 12절부터 시작된 말씀이 17절에 이르게 됩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약의 말씀에 나와 있던 하나님 나라에 대한 약속을 이제 신약으로 이끌어 오시면서 이야기를 하시는데요. 굉장히 이 말씀이 명확해지는 것으로 봅니다.
 
이 17절에 나오는 것처럼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라고 말씀을 하시면서 명확해지죠. 하나님께서는 이 구약의 말씀을 통해서 계속해서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실 것이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왕이 계실 것이고, 이 세상을 축복하실 것이라고, 그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죠. 이 하나님 나라에 대한 약속은 에덴동산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습니다. 이 구약성경이 계속해서 발전해 나감에 따라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미지가 계속해서 어 구체화되는 것을 보죠.
 
계속해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 내용이 강해지고, 강해질 때마다 하나님 나라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언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까? 언제 기름 부음 받으신 메시아 라는 왕이 오실까? 이 유대인들이야말로 이 하나님 나라가 명확하게 보이기를 바랬고, 또 세상 나라를 접목시키는 하나님의 나라가 되기를 바랬습니다. 어 이 로마의 압제를 받는 거를 너무나 싫어했고, 이것을 완전히 뒤엎어버리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대하고 있었죠. 그래서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이 로마 정부를 완전히 뒤엎어버리기를 원하고 있었습니다.
 
깨져있는 이 세상을 완전히 회복시키시고, 하나님과의 평화를 다시금 누릴 수 있도록 화해를 누릴 수 있도록 해주시기를 바랬죠.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들이 원했던 거와 다른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를 이 땅 가운데 주셨는데 좀 다른 놀라운 방법으로 보여주신 거죠. 마치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가 어떻게 생겼는지, 너에게 보여줄 게, 하시는 것처럼 이 땅 가운데 나라가 임하도록 하셨습니다. 어떤 사람도 아프지 않고, 어떤 사람도 상처받지 않고, 계속해서 이 회복이 완벽하게 일어나는 그 나라, 그리고 이 세상의 끝자락에서 마지막 상태에서 하나님 나라가 어떨지도 예수님께서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아까 우리 군종감님께서 명확하게 정확하게 아름답게 보여 주신 것처럼 우리의 모든 눈물을 씻어주신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죠. 지금 시간과 그리고 마지막 시간 이 사이에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이 필요합니다. 바로 이 말씀이죠.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이 말씀에 담겨있는 4가지 의미를 잠시 살펴보고자 하는데요. 음, 회개하라는 말씀 자체에 대한 내용은 마지막에 살펴보고 이 정확하게 그 나와 있는 의미들을 먼저 살펴보려고 하는데, 첫 번째는 하나님의 통치입니다.
 
I. 첫 번째는 하나님의 통치입니다
-하나님의 통치, 이 나라 하나님의 나를 통한 하나님의 통치죠. 우리 다 이해해야 합니다. 당연한 이야기이긴 한데요. 하나님께서 통치를 안 하신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시편 47편에 하나님께서 이 땅을 다스린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이 땅을 다스린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시편 47편 2절에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시편 47:2,
2 지존하신 여호와는 두려우시고 온 땅에 왕이 되심이로다.
7 하나님은 온 땅의 왕이심이라 지혜의 시로 찬송할지어다.
8 하나님이 뭇 백성을 다스리시며 하나님이 그의 거룩한 보좌에 앉으셨도다.
9 뭇 나라의 고관들이 모임이여 아브라함의 하나님의 백성이 되도다 세상의 모든 방패는 하나님의 것임이여 그는 높임을 받으시리로다.
-그리고 거룩한 보좌에 앉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9절 말씀의 모든 것이 하나님에 속해 있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시편 103편 19절 말씀에,
 
*시편 103:19,
19 여호와께서 그의 보자를 하늘에 세우시고 그의 왕권으로 만유를 다스리시도다.
-라고 이야기합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성 육신 하시기 전에 이미 하늘의 보좌에서 이 모든 세상을 다스리신다는 거죠. 그런데 하나님의 적합한 합당한 통치 안에 통치를 반대하고, 이 세상은 하나님을 배반했다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에베소서 2장 1절에서 2절 말씀을 통해서도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에베소서 2:1-2,
1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이것이 우리의 과거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기 때문에, 우리는 불순종하는 삶을 살았다는 거죠. 하나님께서 하늘의 보좌에서 우리를 통치하시는데, 그런데 선하시고 완벽하시고, 또 우리를 통치하시는 그 하나님의 통치를 배반하고 불순종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 가운데 이미 임했지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들을 구원해 내시는 이 어둠의 세력으로부터 이 예수 그리스도가 있는 이 하나님의 나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주시켜 주셨습니다. 골로새서 1장 13절에서 14절 말씀이 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요.
 
*골로새서 1:13-14,
13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 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14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제가 기도용사님들께 인사를 드립니다. 라고 시작했을 때, 여러분은 이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낸 분들이요. 그 하나님 나라로 이주한 사람들이며, 아 그리고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시는 분이라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나라가 이곳에 임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의 뜻이 우리의 가정에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나라에서 일할 것입니다. 그리고 한반도에서 임할 것입니다. 우리가 주기도문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나라가 있다. 한 가운데 임할 줄 믿습니다. 근데 여전히 하나님 나라가 임하기를 우리가 계속 기도하고 있죠. 우리가 하나님께서 이 한국에서 다시금 부흥이 일어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칠천기도용사가 기도하고 있습니다. 왜냐면, 이 시대의 끝이 아직 임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직 남아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두 번째 포인트로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아주 짧은 구절인데요. 이미 그러나 아직이라는 구절입니다.
 
II. 이미, 그러나 아직.
-‘이미 그러나 아직’ 예수님께서는 이미 하나님 나라가 이미 임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그 주인공들이세요. 여러분들이 그 나라의 국민들이십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가정과 또 이 교회가 그 나라에 대사들로 가득 찬 공간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이 목양 팀들이 그 앞에 있는 전선을 구축하고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죠. 그래서 하나님 나라가 이곳에 임했는데,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 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근데 모든 것이 다 완벽하게 세팅된 것처럼 보이지는 않아요. 왕이 완전히 이 통치하시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대적이 완벽하게 패배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습니다. 제가 이번 달 초에 우크라이나에 있었는데요. 아 굉장히 계속해서 공습경보가 울리는 걸 들었습니다. 저희가 그 주일날 기도하고 있는 가운데서도 이 젊은이들을 이 전장으로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도 그분들도 계속해서 예수님이 주신 말씀을 믿고 있었어요. 이 하나님 나라가 이미 임했고. 아직은 그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거죠. 그래서 신학자들이 이런 것들을 이렇게 정리하는 겁니다. 이미 임했지만, 그러나 아직 임할 나라, 우리가 이 이미 임한 나라와 아직 임할 나라 그 사이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승리는 우리 성취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것을 끝내셨다고 십자가에서 고백 하셨었던 그때에, 이 승리가 성취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무덤에서 나오셔서 부활의 몸으로 움직이셨을 때 우리의 죄와 또 지옥과 사망 권세로부터 승리하신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를 위한 일은 아직 이뤄져야 되는 거죠. 우리의 전투는 이미 승리했지만, 그러나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7천 기도용사들이 계속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 가운데 임하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줄 믿습니다. 라구요. 세 번째로, 제가 하나님 나라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III. 현재 임한 나라.
-라는 겁니다. 지금 이 땅에, 지금 이곳에 있는 나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가까이, 라는 단어를 쓰시는데요. 이 나라가 가까이 있는 거죠. 그런데 우리가 그 나라의 국민들입니다. 우리가 그 나라의 국민들로써 이 땅에 대사로 살아가는 겁니다. 그 나라의 대사(大使)인 거예요. 예수님의 사랑과 또 예수님의 회복의 역사를 정말 상처가 많은 이 땅에 보여주고 있는 겁니다. 우리가 하나님 통치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를 했죠. 첫 번째로, 그리고 두 번째로, 임의와 아직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세 번째로, 현재 임한 나라 가까이 있는 나라라고 말씀드렸어요. 근데 마지막으로, 네 번째로, 제가 드리고 말씀 드리고자 하는 말씀은 처음 드렸던 말씀과 동일한 말씀입니다.
 
IV. 회개하는 것.
-하나님의 통치아래에서 우리는 우리가 보여야 할 합당한 반응. 바로 회개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회개하라 했을 때, 늘 계속해서 짓는 죄에 대한 회개만을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 우리가 짓는 죄에 대해서 계속해서 회개(悔改)해야 되는 것이 맞습니다. 그리고 회개할 때 우릴 용서해 주시죠.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 가운데 임했다. 가까이 왔다. 라고 이야기 할 때, 우리가 알았던 모든 가치들이 그리고 우리가 모두 가지고 있던 것들이, 그리고 우리에게 가장 중요했던 것들이, 예수님과 또 하나님 나라에 비하면 별로 중요한 것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생각을 바꾸고 우리의 방향을 바꾸게 되죠.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그 빛 안에 거하며 살게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또 하나님의 의를 찾게 됩니다. 우리가 그렇게 회개하고 찾을 때, 그것이 우리의 것이 될 줄로 믿습니다.
 
♣요약
하나님의 통치아래에서 우리는 이미 임했지만, 그러나 아직 임할 나라이고, 현재 임했을지라도 우리는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기에 다시 한 번 우리가 회개해야 한다. 우리가 기도용사로서 이아침에 모여서 함께 기도할 때,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찾아야 하고, 우리가 주기도문에서 고백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뜻이 이 땅 가운데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땅이 하나님의 나라가 이곳에 임하는 것을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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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랑의 교회가 의약품과 의료기계 모니터링을 위해 올레나 젤렌스카 미시안 우크라이나와 MOU를 맺었고 리비우 지역에서는 제래피의 군인만 수발야바 시립병원과 MOU를 맺었습니다. 특별히 우크라이나 남서부 자카르 파츠카주의 국회의원 24명의 연합체인 인텍션의 대표 국회의원과 지원한 의약품과 의료기기 붕대를 위한 협의를 마치고 중장기 사역을 위한 MOU를 맺었습니다. 국회의원들은 사랑 광주리 오전엔 이 사장에게 감사패와 훈장을 안절한 기도와 헌신을 통해 소통 교회가 재건데요. 한반도에 이루어질 때까지 기도의 지팡이를 높이 들고 달려 나갈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영상으로 보신 것처럼 의약품과 의료기기를 우크라이나 전달을 잘 했고요. 이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우크라이나 정부 여러 기관들로부터 받았습니다. 감사패와 감사 편지 그리고 훈장을 받았는데 이를 우크라이나 정부를 대신해서 오늘 주한우크라이나 대사 드미트로 포노마랭코께서 직접 전달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우리 대사님께서 나오셔서 간단한 감사의 말씀을 전해주시겠습니다. NAR OF HIVD 엠버스 대사님께서 나오실 때 이른 시간에 나오셨는데 따뜻한 환영의 박수 부탁드리겠습니다. 사나에게 영가족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러분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이 아침에 큰 영광으로 생각하는데요. 74년 전 대한민국 국민이 그랬던 것처럼 21세기에 전례 없는 고통에 직면한 우크라이나는 국제사회의 지원에 크게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대한민국은 전쟁 피해자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여성과 또 어린이들이 러시아의 군사적 침략으로 고통 받고 있는 이 어려운 시기에 평화를 위해 기도하고, 침략과 또 전쟁 범죄를 규탄하며 전쟁으로 피해 입은 우크라이나 국민들을 지원해주신 한국교회 모든 성도님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특별히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과 국제평화와 안보 강화에 기여해 주신 오정현 담임 목사님께 특별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김장환 목사님은 하여튼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주신 은혜를 따라서 우리 모두가 다 매주 토요일마다 원 왜 원 투비세이즈 원 히스토리 한 토비새가 우리의 삶에 한 역사가 되기를 바랍니다. 다 일어나셔 가지고 우리 구원하심이 보좌해 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께 또 찬양하고 합심 기도하고,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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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금융 상식 퀴즈 O X] 6월 10일 (849)


1. ‘건설 경기 악화’를 보여주는 지표로 가장 설득력 높은 것은?
① 주택 인허가 물량 증가
② 주택 착공 물량 증가
③ 준공 후 미분양 증가
④ 시장금리 하락

2. 지식재산권을 대거 확보한 다음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내 배상금, 합의금 등을 얻는 데 주력하는 회사를 뜻하는 말은?
① 기업사냥꾼 ② 죄수의 딜레마
③ 특허괴물 ④ 카피캣

3. 경제성장률은 ‘이것’이 얼마나 증가했거나 감소했는지를 보여준다. 이것은 무엇일까?
① 1인당 국민총소득(GNI)
② 실질 국내총생산(GDP)
③ 무역수지
④ 경상수지

4. ‘베이비스텝’ ‘빅스텝’ ‘자이언트스텝’은 무엇을 조정하는 것을 나타내는 용어일까?
① 기준금리 ② 잠재성장률
③ 외환보유액 ④ 합계출산율

5. 지배력을 강화할 목적으로 매입 가격, 수량, 기간 등을 미리 알린 뒤 불특정 다수 주주로부터 주식을 사들이는 행위는?
① 블록딜 ② 공개매수
③ 무상증자 ④ 조회공시

6. 시가총액이 크거나, 장기 수익률이 높거나, 성과가 안정적이어서 ‘좋은 평가를 받는 주식’과 가장 거리가 먼 것은?
① 대장주 ② 동전주
③ 텐배거 ④ 블루칩

7. 효율적인 통화신용정책의 수립·집행을 통해 물가안정을 도모하는 것을 목적으로 설립됐으며, 화폐 발행도 맡고 있는 기관은?
① 기획재정부 ② 금융감독원
③ 세계은행 ④ 한국은행

8. 이 회사 노조가 창립 이후 처음 파업을 선언해 논란을 일으켰다. 국내 증시 시가총액 1위인 이 기업은?
① 삼성전자 ② SK하이닉스
③ 카카오 ④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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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요동치는 대입 판도 전략은 어떻게?



교육부가 의과대학 증원과 전공자율선택(무전공) 확대를 핵심으로 하는 2025학년도 대입전형 시행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이에 따라 전국 39개 의대는 전년보다 1497명(48.1%) 늘어난 4610명(정원 외 포함)의 신입생을 뽑습니다. 수도권 의대가 1326명, 비수도권 의대는 3284명입니다. 수시로는 3118명(67.6%), 정시는 1492명(32.4%)을 선발하는데요, 수시 비중이 전년도보다 4.9%포인트 높아졌습니다. 이는 의대 증원이 비수도권 대학의 지역인재전형 중심으로 이뤄졌기 때문입니다.

일단 대학에 들어간 뒤 2학년 때 전공을 결정하는 무전공제 선발은 전년보다 4배 늘어난 3만7935명(전체의 28.6%)으로 확정됐습니다. 주요 대학 신입생 10명 중 3명이 무전공으로 대학에 진학하게 되는 겁니다.

최상위권 학생들이 지원하는 의대 증원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비수도권 의대 모집 확대로 이들 대학의 합격선이 내려갈 수 있고, 상위권 대학 이공계열에 동시 합격한 학생들이 비수도권 의대를 선택하는 등 연쇄효과가 클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또 대학 재학생들이 의대 진학을 위해 입시에 대거 합류하면 대입 과정은 더 요동칠 수 있습니다. 수시 원서 접수가 3개월밖에 남지 않아 합격선 예측도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27년 만의 의대 증원에서 알 수 있듯이 이번 대입 계획은 수능제도 도입 이후 가장 큰 폭의 변화로 평가받습니다. 그 자세한 내용을 4면에서 살펴보고, 5면에서는 입시 전문가의 전략 포인트를 들어보겠습니다.

의대 지역인재 1913명…지방 모집 정원의 60%
수도권·국립대 73곳, 10명 중 3명 '무전공' 선발

● 2025학년도 대입전형 뜯어보니이번 대학입시 판도를 뒤흔들 진앙지는 바로 비수도권 의대의 ‘지역인재전형’입니다. 지역인재는 의대가 있는 권역 내 고등학교를 입학해 졸업한 사람만 원서를 낼 수 있는 전형입니다. 이 전형의 모집 정원은 2024학년도에 26개 대학, 1025명이었는데요, 2025학년도엔 888명(86.6%)을 더 뽑아 총 1913명으로 늘어납니다. 의대 증원 1497명 가운데 약 60%가 지역인재전형으로 채워지는 겁니다. 그래서 상산고(전북), 공주사대부고(충남), 한일고(충남), 현대청운고(울산) 등 지역 내 명문 자사고와 일반고에서 의대 지역인재전형 합격자가 많이 배출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합니다.

지역 인재, 수시로 81% 뽑아

지역 거점 국립대의 의대 모집 정원이 두드러진 증가세를 보입니다. 학교별로는 전북대(171명), 전남대(165명), 부산대(163명), 충남대(158명), 경북대·원광대(157명), 순천향대(154명), 조선대(152명), 경상국립대(142명) 순으로 모집 인원이 많습니다. 권역별로는 충청권의 지역 인재 선발 규모가 가장 많이 늘어납니다. 전년도 170명에서 내년도 464명으로 2.7배 증가합니다. 충청권은 서울 및 수도권에서 가까워 더욱 관심이 모아집니다. 2028학년도부터는 해당 지역에서 고등학교는 물론, 중학교도 졸업해야 의대 지역인재전형 지원 자격이 주어집니다. 따라서 서울 및 수도권 초등학교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충청권 중학교가 진학 관심 지역으로 부상할 수 있을 것으로 입시 전략가들은 전망합니다.

의대 모집 정원 대비 지역 인재 비율로 따지면 호남권(70%)이 가장 높고, 다음으로 부산·울산·경남권(65.7%), 충청권(63.6%), 대구·경북권(62.1%) 순입니다. 학교별로는 전남대(78.8%), 경상국립대(72.5%), 부산대(69.3%), 동아대(68.6%), 건양대(66.7%), 조선대(65.8%) 등 순입니다. 지역인재전형 1913명 가운데 수시로 1549명(81%), 정시로는 364명(19%)을 뽑습니다.

무전공 선발, 4배 늘려

다음으로 전공자율선택제(무전공제) 선발이 크게 늘어 주요 대학 신입생 10명 중 3명이 무전공으로 대학생활을 시작할 예정입니다. 무전공은 전공 구분 없이 대학에 진학한 뒤, 2학년 때 학점과 상관없이 전공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게 하는 제도입니다. 학생들에게 다양한 전공·진로를 탐색할 기회를 제공하고 미래 사회에 필요한 융합적 사고력을 길러주기 위한 제도입니다.

무전공은 2024학년도에 9924명을 뽑았는데, 2025학년도엔 2만8011명을 더해 총 3만7935명을 선발합니다. 한 번에 4배 가까이 더 뽑는 겁니다. 중점 추진 대학인 수도권 대학 51개교에서 2만5648명(29.5%), 국립대 22개교에서 1만2287명(26.8%)을 각각 모집합니다. 이는 이들 대학 입학정원의 평균 28.6%에 달하는 규모입니다. 다만, 서울대(20.9%) 연세대(18.3%) 고려대(6.2%) 등 서울 상위권 대학은 무전공 선발 인원을 크게 늘리지 않았습니다.

구체적으로 보건의료나 사범 등을 제외한 모든 전공 중에서 자율선택할 수 있게 한 ‘유형1’로 1만4844명을 뽑습니다. 계열·단과대 내 전공 중에서 자율선택 가능한 ‘유형2’가 절반 이상인 2만3091명에 달합니다. 유형1은 인기 학과 쏠림이 생길 수 있어 각 대학이 선택하기에 부담을 느끼는 듯합니다. 연세대, 중앙대, 부산대의 경우 유형1로는 무전공을 선발하지 않습니다.

무전공 선발 인원이 갑자기 늘어 수험생 입장에선 전년도 합격선 자료가 무용지물이 되고 지원 전략을 짜기가 어려워졌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이런 점에서 지난 4일에 치른 교육과정평가원 주관 6월 수능 모의평가 결과를 잘 분석해 9월 수시 지원 등 입시 전략을 세우는 데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조언이 많습니다. 전체 지원자 47만4133명이 치른 6월 모의평가에 고교 졸업생과 검정고시 등 ‘N수생’은 8만8698명(18.7%)으로, 최근 15년 사이에 가장 많았습니다.

의대 지역인재전형, 수능 최저 충족이 관건
무전공 지원 때 향후 학과 선택 제한 확인해야

● 전문가 시각 / 남윤곤 메가스터디입시전략연구소장
2025학년도 대학 입학 전형 시행 계획이 발표되며 의과대학 입학 정원과 전공자율선택제(무전공제) 선발 인원이 확정됐습니다. 대입 수능이 157일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모집 인원 구조 전반에 큰 변화가 생겼기 때문에 내년도 대입의 판도가 어떻게 바뀔지 무척이나 궁금할 텐데요, 큰 변화의 포인트를 중심으로 남은 기간 동안의 전략적 대비법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의대 증원 따른 합격선 파악 중요
먼저, 의과대학 인원이 크게 증가함에 따라 합격선이 어떻게 변화할지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의대 합격선 변화와 더불어 치대·약대를 포함한 의약학계열, 서·고·연(SKY) 등 명문대의 자연계열 모집단위에서 연쇄적인 합격선 하락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합격선의 변동을 예측할 수 있어야 그에 맞는 점수 상승 목표를 설정하고, 자신의 점수에 맞는 적절한 지원을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의예과 정시 수능 전형 인원은 올해 331명 늘어날 예정인데, 이는 올해 선발할 치의예 선발 인원보다 약 50명 이상 많은 숫자입니다. 이에 따라 의대 정시 합격선은 증가 인원만큼 하락할 수 있고, 이는 상위권 대학의 자연계 정시 합격선에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칠 겁니다. 따라서 인원 변동에 따른 합격선을 예측하고, 이에 따른 영역별 목표 합격선을 구체적으로 설정해 향후 학습 전략을 세밀하게 세워나갈 필요가 있습니다.2025학년도부터 지역인재전형 모집 인원이 크게 증가해 의대를 목표로 하는 지방 수험생은 기회를 잡기 위한 전략을 잘 세워야 합니다. 눈여겨볼 대목은 학생부 위주 전형이 1527명으로 전년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늘어난 점입니다. 의대가 목표지만 자신의 학생부가 1등급 초반의 극상위권이 아닌 학생들은 고민이 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수능 최저 충족 여부에 따라 지원을 결정해야 합니다. 오른족 제일 아래 표에서 볼 수 있듯이 수도권 의대 학생부 전형의 경우 1등급 극상위권의 수험생들이 합격하는 반면, 지방 지역인재전형은 1등급 중·후반의 내신등급을 가진 학생들도 합격한 사례가 있습니다. 특히 충남대 교과 지역인재의 경우, 최종 합격선이 3.48등급이었습니다. 내신성적은 좋지 않지만, 수능 최저를 충족한 학생이 합격한 사례로 볼 수 있지요. 올해는 지역인재전형 인원이 크게 증가했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더욱 두드러질 것으로 판단됩니다. 따라서 지역인재 지원 조건을 충족한다면 극상위권의 내신이 아니더라도 높은 수능 최저를 충족하는 데 중점을 두고 준비해나가길 권합니다.

타 학과 정원 얼마나 줄었는지 봐야

현재 목표가 명확하지 않거나, 진학 이후 좀 더 진로를 탐색하고 자신의 적성에 맞는 학과를 지원하고자 하는 수험생은 무전공 학과 선발 확대가 반가운 소식일 수 있습니다. 전공이 결정되지 않은 전형이기 때문에 무전공 선발은 정시 수능을 통해 선발하는 비율이 가장 높습니다. 따라서 무전공으로 입학을 희망하는 경우 수능 공부에 좀 더 중점을 두어야 합니다. 단, 무전공의 경우 대학 입학 이후 전공 선택 시 의약학계열 외에도 사범계열, 첨단 학과, 계약학과 등의 지원이 제한될 수 있고, 입학 이후 성적대별로 전공 선택이 제한될 수 있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됩니다. 따라서 목표 대학의 전공 선택 관련 제한 사항을 반드시 확인해야 합니다.

그리고 무전공학부를 신설한 대학의 경우, 어떤 모집단위의 선발이 줄었는지도 살펴봐야 합니다. 예를 들어 한양대 데이터사이언스학부의 경우 2025학년도 전형 계획 기준(무전공 발표 전 기준)으로 정원이 80명인데, 수시 요강 확정 인원은 40명으로 축소됐습니다. 이렇게 선발 인원이 줄어든 경우 경쟁률과 합격선 등에 변화가 있을 수 있습니다. 지난해 선발 인원과 올해 선발 인원을 모집단위별로 잘 비교해 성적 변화를 예측해야 할 것입니다.

장규호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daniel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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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저녁기도회(주후 2024년 6월 26일)
제목: "부르심에 합당한 삶"
말씀: 에배소소 4:1-3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사회: 강건우 부목사님
 
설교자: 이기원 부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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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배소소 4:1-3,
1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2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3 평안의 매는 줄로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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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 저녁 기도회를 통해 하나님의 임재 자리로 나아갈 수 있는 건강과 환경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립니다. 성령의 강력한 역사 가운데 기도 응답의 은혜와 말씀을 통한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하는 시간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 모든 말씀 우리 주 예수 그리스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생명의 강수가 흘러넘치는 우리 수요 저녁 기도회에 참여하신 모든 성도님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에베소서 4장 1절에서 3절 말씀입니다. 우리 함께 교독하시겠습니다. 제가 먼저 읽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사도바울이 마음에 품고 섬긴 교회들이 많죠. 많았으나 오늘 본문이 쓰여 진 특별히 에베소 교회는 사도바울에게 좀 각별한 교회였던 것 같습니다. 서기 55년경부터 약 3년 동안 에베소에 머물면서 사도바울은 도란노 서원과 회당에서 매일 말씀을 전했는데 이때 참 많은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사도바울을 힘들게 하는 핍박(逼迫)과 공격(攻擊)도 많았지만 놀라운 기적들도 수없이 일어나면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 구원의 역사가 차고 넘쳤던 곳이 바로 이 에베소였습니다. 사도바울이 정말 좋은 믿음의 동력 자들과 행복한 사역을 했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서로 함께 한 시간들을 통해서 사도 바울과 에베소 성도들은 서로에게 각별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는데, 이러한 애틋한 마음은 나중에 그가 에베소를 떠난 후에도 3차전도(傳導)여행(旅行) 말미에 예루살렘으로 향하던 길에 에베소 교회 장로들을 에베소에서 약 50여 킬로미터나 떨어진 밀레도로 불렀을 때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때 장로들이 밀레도로 망설임 없이 사도바울의 부르심을 듣고 왔구요.
 
사도바울은 그들과 만나서 참 오랫동안 보지 못한 회포(懷抱)를 풀면서 얼마나 반가웠을까요? 함께 먹고 자면서, 욕도 같이 먹고 같이 즐거운 시간 또 영혼들이 성장하고 구원받는 것들을 같이 함께 한 동역 자들을 오랜만에 봤으니 얼마나 행복했을까요? 그리고 사도 바울의 고별(告別) 설교를 들었습니다. 이들이 서로에게 얼마나 각별(各別)한 마음을 갖고 있었는지 보여주는 그런 모습입니다. 따뜻하고 또 특별히 각별한 마음을 가지고 있던 에베소 성도들에게 사도 바울이 그 애절한 마음 사랑하는 마음을 가득 담아 쓴 편지가 바로 오늘 함께 읽은 본문이 담겨있는 에베소서입니다. 에베소서 1장부터 3장까지는 교리, 교리 이론 또 교리를 담고 있구요.
 
그리고 오늘 함께 읽은 본문 4장부터는 그 교리를 바탕으로 한 실천에 대한 말씀을 시작하는데, 그 시작을 어떻게 하느냐 그러므로, There for(데어 포어), 그 단어로 이 전환점(轉換點)을 시작합니다. 오늘은 시대 간 관계상 저희가 1절부터 3절까지만 살펴보지만, 4장에 담겨있는 큰 맥을 우리가 좀 짚고 넘어가야 됩니다. 그 맥(脈)은 사장에 담겨있는 그 맥은 사도 바울이 이 애틋하고 각별한 마음을 갖고 있던 성도들에게 에베소 성도들에게 하고 싶었던 그 말은, 교회의 일치(一致)성, 교회의 하나 됨 , ‘유니티’를 이루어라 라는 맥입니다.
 
머리 대신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이루는 성도들이 너희들이 주체로서, 하나가 되어야 된다는 이 하나 됨, 유니티를 이루기 위한 구체적(具體的)인 방법들을 설명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1절 2절 3절이 그 구체적인 방법들을 나누고 있는데, 그리고 이 메세지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사도 바울이 어떤 상황 가운데 서신을 썼는지, 또 보냈는지를 예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주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에게 주안에서 갇힌 내가라는 말씀으로 시작을 합니다.
 
빌립보서, 골로새서 그리고 빌레몬서와 함께 에베소서가 사도 바울이 감옥에서 쓴 옥중 서신이라는 것을 말해주는데, 그런데 사도 바울이 이렇게 에베소 성도에게 주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에게 쓴다. 라고 하는 이 주안에서 갇힌 것을 언급하는 것은 절대로 그들에게 이 성도들에게 동정(同情)을 구하거나 자신을 불쌍히 여겨달라는 그런 차원의 말씀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거룩한 자랑을 하고 있는 건데요. 그런 상황에 있는 것이 이런 상황에 있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빌립소서에 보면 빌립보서에서도 보면 옥중에서 내가 기쁘고, 기쁘고, 기쁘노니, 너희도 기뻐하라. 라고 옥중(獄中)에서 그런 말을 하는 것과 같은 맥락(脈絡)입니다.
 
복음의 가치를 위하여 본인이 옥살이를 하는 것은 절대 부끄러운 일이 아니고, 동정이나 불상이 역임을 받아야 할 일이 아니고, 오히려 너무나 감사하고 너무나 영광스러운 일인데 너희도 이런 세상의 가치를 초월(超越)하는 영혼의 가치를 갖기 바란다. 라는 차원으로 ‘주안에서 갇힌’, 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너희를 권하노니’, 이 권하노니, 는 에베소에서 그 사도바울의 단순한 에베소 성도들에게 요청하는 요청(要請)이 아니라, 내가 그냥 말한다. 내가 말해줄게 차원을 넘어서 간청(懇請)한다. 애원(哀願)한다. 탄원(歎願)한다. 라는 그런 강력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어떤 간청을 하고 있는가 하면 바로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여러분 같이 한번 할까요?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라. 라는 간청, 애원, 탄원을 간곡(懇曲)히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부르심은 하나님의 주권 속에서 같이 한번 읽어볼까요?
 
◎‘부르심은 하나님의 주권 속에서 예수 그리스어를 통한 속죄의 은혜로 구원에 이르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부르심을 말합니다.
 
이런 고귀한 부르심에 저희가 반응(反應)을 해야 하는데 어떤 반응을 해야 하는가? 하면 합당(合當)하게 해야 합니다. 합당한 반응을 해야 합니다. 그럼 이 합당하게로, 이렇게 번역이 되고 있는 그 헬라오 단어는 ‘익시오스’입니다.
 
◎익시오스는 저울에 ‘균형을 맞춘다.’라는 의미로 한쪽에 얹은 것과 반대쪽에 얹은 것의 무게가 같아야 한다. 라는 말인데요. 무엇에 비길 수 있는 당연히 보답한다.
-란 말에서 유래된 말로 어울리게 그 부르심에 ‘가치 있게’, ‘어울리게’ 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부르심의 가치에 맞게, 어울리게 행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데 이런 삶을 살 때 무슨 일이 일어나나요? 4장의 메인 핵심, ‘교회가 하나 된다.’는 거예요. 유니티를 이룬다는 거예요. 한 몸을 이루는 교회의 통일성을 갖고 같은 방향 같은 비전 같은 꿈 같은 사명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2절부터, 교회의 일치 하나 됨을 가능케 하는 필수 덕목들을 사도 바울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헬라어가 참으로 정교한 언어입니다. 그래서 칼바르트의 아들 마르쿠스 바르트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헬라어 같이 한번 여러분 눈으로 보세요.
 
◎“헬라 원전에 나오는 이 헬라어 동사가 표현하는 절박함을 정확히 번역하여 전달한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만큼 이 단어가 요구하는 것은 크고 또 큰 것이다.” -마르쿠스 바르트-
 
-여러분 헬라어가 갖고 있는 정교(精巧)함, 섬세(纖細)함은 참 안타깝게도 많은 경우 다는 아니지만, 한국어는 영어로 담지 못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이 덕목(德目)들을 이렇게 나열한 것들을 볼 때,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단어들인데요. 그 덕목들 속에 들어있는 헬라의 정교함, 섬세함 헬라어만 가지고 있는 깊은 맛이 좀 있습니다.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하여 갖추어야 하는 첫 덕목인, 겸손(謙遜)의 그 정교함이 깃들여 있습니다. 우리가 문득 생각하는 겸손함은 어떤 것일까요?
 
거기에 있는 그 겸손함과 그 당시 문화 속에 담겨있던 겸손함의 차이에서 오는 의미가 좀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값어치와 진가를 나보다 높게 생각하면서, 그것을 인정하는 마음을 갖는 것, 인정하는 자세를 갖는 것이 겸손함이죠. 근데 헬라어에 담겨있는 이 겸손함 에는요. 1단계 더 나아가서 그들의 아래에 있는 자로, 그들 밑에 있는 자로, 취급받기를 원하는 마음을 갖는 것까지 포함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들 그거 아시나요? 그 당시 그리스나 로마 사회에서는 이런 겸손이 굉장히 낯설고 천시(賤視) 받고 혐오(嫌惡)스럽게 까지 여겨지는 개념(槪念)이었습니다.
 
심지어는 이런 겸손에 해당하는 단어 자체를 잘 사용하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이 겸손함에 담겨있는 의미가 그들 아래 다른 사람 밑에 있는 자로서 취급받기 원하는 마음까지 담고 있다 보니까 거기에는 굽실거리며 복종(服從)하는 노예(奴隸)의 모습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잘 사용하지도 않았구요. 그 단어를 별로 좋아하는 단어로 지금은 얼마나 좋은 단어입니까? 겸손함, 얼마나 좋은 단어입니까? 그때는 안 그랬다는 거죠. 그때 그리스, 그때 로마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그렇게 좋게 받아들여지는 단어 개념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별로 겸손은 덕으로 생각되어지지 않는 그런 단어였다는 것입니다. 이런 문화에서 겸손을 정말 혁명적(革命的)으로 선포하고, 혁신적(革新的)으로 보여주셨던 겸손(謙遜)의 최고의 표본(標本)이 있으시죠.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여러분 빌립보서 2장 5절에서 8절까지 말씀을 한번 읽어볼까요? 같이 읽겠습니다.
 
*빌립보서 2:5-8,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라는 이 하나님의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로 그들 아래에 있는 그런 취급을 받는 그 위치로 내려가서 그 겸손의 극치를 보여주는 이 모습이, 여러분 이 당시에는 얼마나 문화에 맞지 않는 생소한 저게 뭐야? 뭐 다른 짓이야! 라고 할 수 있는 생소하고 받아들여지지 않는 정말 혁명적인 선포였구요. 모습이었구요. 그랬던 것 그런 것이 여러분 좀 상상을 좀 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저런 모습으로 오신 것에 대해서 감사하죠. 그러나 그 당시에 이거 그 모습을 보는 그 당시에 사는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 받아들였는지를 우리가 살펴볼 고민해 볼 필요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충격을 한번 상상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남을 존중하고 나보다 낫게 여기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냥 거기까진 우리가 알겠죠.
 
그렇게 종처럼, 노예처럼 취급받는 것을 원하는 마음까지, 원하는 마음까지 갖는 것이 바로 겸손이라고 부르심에 합당한 성도가 가져야 하는 모습이라고, 그 사회에는 이 사회의 흐름을 역류(逆流)하는 선포(宣布), 그 선포를 저와 여러분들이 마음에 새겨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그래 남을 좀 높게 여기는 건 노력을 하죠. 그러나 조금만 남이 나를 무시하면 그렇게 취급을 해버리면 우린 어떤 반응을 보냅니까? 너무 마음의 상처가 크죠. 가만히 있지 못하죠. 물론 여러분 이런 취급을 그냥 바보처럼 아무 때나 어떤 상황에서든 상관없이 받아 받으며 살아야 된다. 절대 그런 말은 아닙니다. 언제 이런 취급을 받기를 원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는가? 하면 사명을 감당할 때, 믿음과 신앙의 순결을 지킬 때, 교회에 하나 됨을 이룰 때, 저분이 지나가면서 한 저 한 말이 가슴에 배겨서 나를 찢어내고 있는데, 그때 해야 되는 내 반응은 그것을 향하여 총알을 또 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하나 됨을 위하여 이 취급받기를 원하는 마음까지 가지며 수용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누구처럼? 예수님처럼, 자신이 존중받고 인정받기 위한, 여러분 고도의 교묘(巧妙)한 수단(手段)으로 써가 아니라, 교회에서 얼마나 겸손한 모습을 갖고 있는 성도들 중에 그런 실수를 범할 때가 있지 않은지요? 오히려 존중을 받기 위한 교묘한 수단으로 사용하고 이런 고도의 교만을 하나님께서는 아십니다.
 
복음(福音), 생명(生命), 사명(使命), 비전, 꿈 앞에서, 그 앞에서 주위 사람들을 진심으로 존중한 마음, 존중하는 마음을 갖는 것 수모(受侮)를 감수(甘受)하며 희생(犧牲)을 원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바로 오늘 사도 바울이 말하는 부르심에 합당한 삶의 첫 번째 덕목 겸손인 것입니다.
 
1). 겸손(謙遜)이다.
-그럼 생각보다 어렵죠.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근데 나중에 그 해결책도 주시는데 그래서 이 겸손은요, 어려운 겸손은 이 겸손은요, 모든 영적인 복의 재료이고, 모든 덕에 뿌리이며, 이 겸손의 깊이만큼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누리게 되는 것이라고 어거스틴이 말을 했습니다.
 
2). 온유(溫柔)이다.
-그 다음 덕목은요, 온유(溫柔)입니다. 온유는 하나님께 대해서는 기쁘게 순복(順服)하며 사람에 대해서는 남의 약점(弱點)에 대해 부드럽게 대하는 태도(態度)를 말합니다. 친절함, 너그러움 이런 말에서 유래(由來)된 말로 온화함, 정중함을 뜻하고 있는 그 뜻을 가지고 있는 단어입니다. 여러분, 여기서 딱 떠오르는 말이 있죠. 하나님께는 전심(全心)으로, 사람에게는 진심(眞心)으로가 떠오르는 덕목입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사용된 온유(溫柔)라는 단어에도요. 헬라어의 정교함이 좀 담겨있는데요. 그것은 온유라는 단어에 담겨 친절함, 너그러움, 부드러움, 온화, 정중 그 의미가 있는데요. 결코 연약(軟弱)함은 내포(內包)하고 있지 포함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프라우테스’ 라는 이 온유라는 단어 에는요. 강한 자가 오히려 강한 자가 자신을 억제(抑制)하고, 조절(操切)함으로써 남을 부드럽게 대하며 섬긴다. 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연약해서 내가 뭘 할 수가 없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그냥 참는 차원이 아니라 강함에도 불구하고요. 자신을 억제하고 조절함으로써 부드럽게 대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지만, 아니 그런 자격도 있지만 그런 힘도 있지만 그런 정당성도 있지만 내가 도대체 이 자리에서 이렇게 섬긴 게 몇 년인데, 라고 이야기 할 수 있는 모든 사람이 인정하는 정당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데도 그런 취급과 그런 말을 들었는데도 불구하고, 부르심에 합당한 사람으로서 해야 할 것은 그런 정당성을 다 갖고 있어요. 남들이 다 인정해요.
 
거기 가만히 있으면 안 되지 한소리 해줘야지 있으면 안 되지, 이렇게 행동해야지, 남들이 다 이야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잘 믿는 사람들까지 이야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심지어는 우리 목사님들까지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하나 됨을 위하여 절제하고 조절하면서 온유함을 유지하는 거, 그게 부르심에 합당한 사람이 가져야 하는 온유함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온유의 표식 중에 하나가 절제(節制)인 것이고. 이 온유를 통제(統制) 아래 있는 힘이다. 라고 표현을 합니다. 그래서 성경적 온유는요, 하나님의 통제, 다스림 통치 아래 있는 힘인 것입니다. 그게 바로 온유라는 것입니다. 교회 일체성, 하나 됨을 이루기 위해 실천해야 하는 그다음 덕목은 올해 참험입니다.
 
3) 오래 참음이다.-(마크로 디모스)
-남에 대해서 자기가 받은 피해에 대해서 분노(憤怒)나 복수(復讐)의 마음을 갖지 않고. 기다리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에도 ‘마크로 디모스’ 라는 헬라어가 담고 있는 또 정교한 의미가 있는데요. 그것은 바로 먼 거리 마크로스와 분노 디모스가 합쳐서 마크로디모스, 이 분노를 오래 참는다. 라는 그런 의미를 갖고 있는데, 그렇게 분노를 남을 향한 그 분노를 오래 참는 차원으로 그치지 않고 타인의 행동과 말에 대해 충분히 응징(膺懲)할 수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참는 것을 말합니다. 아까는 정당성이 있었어요. 지금은 그 행동이 너무나, 너무나 불공정해서 충분히, 충분히 그 응징을 내가 해도 아니 거기에 대한 대가(代價)를 거기에 대한 결과를 반응을 요구(要求)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참는 것을 말합니다. 오래 참음, 그냥 갚지 말라는 것과 충분히 갚을 수 있는 상황과 정황과 모든 것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들이 아무리 이야기를 한다. 해도 오히려 남들도 함께 또 동의를 해줌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하나 됨을 위하여 말라는 오래 참음, 정당성(正當性) 가운데 오래 참음, 단 순간 시간적인 길이를 넘어 또 다른 차원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단어는 특히 성경에서 어떤 때 사용됐냐면, 하나님의 죄인들에 대한 심판을 오래 참으시고 죄인들을 바라보신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시고, 안 참으셔도 되는데,,, 안 참으셔도 되는 그 정황과 정당성이 뚜렷한 데도 불구하고, 오래 참으시면서 기다리시는 또 거기에 그냥 가만히 있으셔도 되는데 한걸음 나아가서 더 해주시는 대속(代贖)의 은혜(恩惠)를 베풀어 주실 때, 사용된 단어가 바로 이 오래 참음, 마크로 디모스입니다. 디모데전서 1장 16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디모데전서 1:16,
16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저와 여러분들을 바라보면서 오래 참으신 것을 그치지 않고, 예수 그리스를 통해서 대속의 은혜까지 한 걸음 더, 더 나아가서 그런 자격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베풀어 주신 것이 바로 오래 참음, 그 단어가 거기에서 사용되었다는 것입니다. 부르심이 합당한 삶을 사는 그 다음 덕목이 있습니다. 바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입니다.
 
4) 사랑 가운데 서로 용납하다.
-이렇게 보면 앞에 나오는 이 단어는요. 이 이 덕목은요, 앞에 나오는 오래 참음의 다음 단계, 다음 단계 다음 경지(境地)라고도 할 수가 있는데, 용납(容納)하고는 상대의 잘못을 용서(容恕)하는 것을 말합니다. 상대의 잘못을 용서하는 거, 여러분 그냥 참았습니다. 아까는 그냥 제가 참았죠. 남들이 이렇게 모든 걸 할 수 있다. 라고 동의하는 정황 속에서 참았죠. 참았죠. 또 그런 가운데도 내가 뭘 해줬죠 또 해주는 대속의 은혜까지 베푸는 것 좀 더 해줬어요. 그렇게, 그렇게 충분한 정당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올해 참음이 있었어요. 근데 어디까지 가냐면요. 마음의 모든 것들을 응어리를 싣는 차원까지 간다는 거예요. 더 힘들어지지 않나요?
 
여러분, 베드로전서 4장 8절에 나온 말씀처럼, “사랑한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라는 말씀처럼 사랑은 타인들의 죄 담요를 덮는 것으로, 보이지 않게 가린다. 내 마음에 담요를 덮어서 여러분 상처는 있을 수 있겠죠. 잊혀 지지 않을 수도 있겠죠. 그러나 내 마음의 상처에 담요를 덮어 가지고 보이지 않게 하는 거, 죄(罪)를 정당화(正當化)하거나 그것을 변명(辨明)해 준다는 해줘라. 그런 뜻이 아니구요. 이들의 죄가 필요 이상으로 알려지지 않게 드러나지 않게 내 마음에 되씹으면서 새겨지지 않게 그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들의 허물을 사랑에 담요로 따뜻하게 덮어주라. 는 그런 의미가 바로 이 용납에 담겨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다음 덕목을 이야기합니다.
 
5)평안에 매는 줄로.
-평안에 매는 줄로, 평안에 매는 줄 여기에서 평화는 peace, 평안 히브리어로 살롬, 헬라어는 에이레네의 평화와 화평으로 이렇게 번역(飜譯)이 되는데요. 여기에도 그 정교함이 또 담겨 있습니다. 샬롬과 에이레네의 평화(平和)와 화평(和平), 이 의미와 함께 어떤 의미가 또 추가 되냐면, 일치(一致)와 조화(調和)입니다. 여러분, ‘일치와 조화 하나 됨에 일치와 조화’라는 의미가 진정한 평화와 화평은 일치와 조화를 이루어야만 가능하다는 그런 뜻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치를 이루는 줄은 평안에 매는 줄, 줄은 골로새서 3장 14절 말씀을 같이 읽겠습니다.
 
*골로새서 3:14,
14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줄이니라.
-이것을 조화(調和)와 일치(一致)를 이루는 이 줄, 이것이 바로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평화의 근간이 사랑이고, 그 사랑의 줄로 평화 살롬, 에이레네의 조화와 일치, 하나를 이루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이루시는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여기에서 그동안까지 느꼈던 이 우리의 암담(暗澹)함이 해결이 됩니다. 여러분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은 모든 것 일치와 조화, 사랑, 여러분 평안의 메인 줄, 모든 것들이 성령께서 가능케 이루어 줄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믿고 구해야 합니다. 내 마음을 다짐하고, 내가 그렇게 해야겠지. 라는 차원(次元)을 넘어서 성령께서 해주실 것을 믿는 그 믿음, 그것을 갖는 것을 성령이 하나 되게 해주시는 은혜를 체험하는 단계라는 것입니다. 힘써 지키라 우리의 역할이 있습니다.
 
6) 힘써 지켜라.
-열심히 애써 지키라는 의미와 함께 서둘러, 그리고 지속적으로. 라는 또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여러분 즉 성도들이 교회의 하나 됨을 향해 부지런히 그리고 지속적으로 빨리 위에 명시된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과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는 평안에 매는 줄로 서로를 배워 교회의 하나 됨, 사명의 방향성 한 방향 한 꿈을 이루는 모습으로 가야하는데 그것에 그것을 이루기 위하여 힘써서 지켜라. 뒤로 미루지 말고 다음으로, 미루지 말고 내가 좀 준비되면 내가 상황이 좀 나아지면으로 미루지 말고, 당장 빨리 그리고 지속적으로 계속해서 이루라 라는 말씀을 담고 있는 겁니다.
 
그러면 이렇게 교회의 일치성과 또 하나 됨에 대한 부르심에 합당한 모습은 우리가 이 교회 안에서 에베소교회 안에서 성도들끼리 그런 모습을 이루어야 하는 것이고요. 그리고 이 교회가 지상교회의 전체 교회, 또 하나님의 유니버설 처치, 시상교회 모든 교회를 교회와 하나가 되는 차원으로도 이 부르심이 합당한 모습을 갖는 교회로서의 역할을 또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평안에 메는 줄로, 그 평안에 메는 줄 가운데 희생과 섬김을 동행하는 사랑의 줄이 있죠. 글로 이렇게 동여 메어 주어야 합니다. 안에서 있는 한 성도들 그 성도들만 하나 되는 게 아니라 교회와 교회가 또 하나 되고요. 또 이 나라에 있는 교회와 저 나라에 있는 교회들이 또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루어지기를 힘써야 한다는 거죠.
 
그런 차원에서 우리 사랑의 교회는 여러분들의 그 헌신과 섬김으로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고 있는 여러분들의 헌신으로 이런 사회 국내외적으로 많이 감당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한교섬이고요. 여러분, 한교 섬을 통해서 국내 교회를 섬기고 또 복음의 서진을 통해 유럽 교회를 섬기는데요. 이번에는 감사하게도 사랑 광주리를 통해서 우크라이나에 있는 교회를 통해서 평안에 메는 줄로, 우리가 한국에 있는 대한민국에 있는 사랑의 교회로서, 또 다른 나라에 있는 교회와의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가 되신 것을 힘써 지키는 마음으로 숨길 수 있는 기회가 좀 있었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 여러분들에게 간단히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29억 원어치의 의료기기와 의료품을 많은 분들이 헌신해 주셔서 우크라이나에 전달을 했습니다. 우크라이에 가서 한 4천여 키로의 그 육로 여정을 소화하면서 계속해서 제 마음에 드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우크라이나를 보면 볼수록, 알면 알수록 이 어린 목동과 같은 우크라이나가 가난했죠. 여러 가지 면에서 너무나 뒤처져 있죠. 사람들은 뭐 다른 윗사람들은 모르겠으나, 그냥 길거리에서 만나는 사람 너무 그냥 착해 빠졌죠. 아니 이런 나라가 어떻게 거인이고 노련한 장수와도 같은 러시아를 상대로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전쟁을 하고 있을까? 그 생각이 계속 나는 거예요.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여러분 러시아는 세계 2위 군사 강국입니다. 정규군만 90만 명을 갖추고 있구요. 그런 이런 군사, 군사 강대국으로서 가지고 있는 모든 무기와 이런 것들이 뭐 어 뭐 세계 4위다, 이런 통계들이 많이 나옵니다. 거기에 그 반면에 우크라이나는요 총 병력이 20만 명밖에 안 되구요. 그리고 그 병력이 갖고 있는 무기는 구형(舊型)무기(武器)가 대부분입니다.
 
그리고 이 돈바스 지역을 통해서 밀고 내려올 때 러시아의 정규군이 최신 무기를 가지고 20만 명이 국경에서 이미 준비하고 대기하고 있다가 밀고 내려온 거구요. 이 우크라이나군은 키예프를 중심으로 별 준비 없이 밀려 내려오는 러시아 군대를 상대로 전쟁을 한 것입니다. 여러분, 또 한 가지는 이 푸틴 대통령만큼 전쟁을 잘하는 사람이 지도자가 아마 이 시대에 거의 없을 것이다. 생각을 할 정도로 전문가들은 전쟁의 전문가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조지아와의 전쟁, 그것을 통해서도 사흘 만에 항복을 얻어냈어요. 푸틴 대통령이 그때 푸틴 대통령의 지지율이 88%로 올라갔고요.
 
3연임 금지 조항 대통령 3연임 금지 조항을 그 지지율을 가지고 개헌을 해 가지고, 대통령이 돼가지고 아직도 대통령을 하고 있는 사람이 전쟁으로서 리더십을 구축(構築)한 사람이 바로 푸틴 대통령입니다. 최고의 정보기관들이 얘기했어요. 3일 만에 3~4일 만에 그 전쟁은 끝날 것이다. 전쟁이 일어난다면 일어나지도 않을 거지만 일어난다면 3~4일 만에 끝날 것이라고 발표했구요. 푸틴 자신도 그렇게 확고한 자신을 가지고 전쟁을 시작했는데, 3년째 전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 정황에 변화가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도 이 전쟁을 치르면서 참 놀란 사람은요, 갑자기 밀고 내려와서 피해를 입은 우크라이나 사람들도 아니구요. 또 민간인 동족 살생을 하고 있는 그 모습을 보는 세계인들이 아니라 이 전쟁을 통해서 가장 놀랄 사람은 푸틴 자신이겠구나! 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왜 본인이 그렇게 이렇게 길게 전쟁을 할 줄 몰랐거든요. 그런 반항 가운데 그런 대접 가운데 키에프를 치지 못하고 이렇게까지 물러날 줄 몰랐을 거거든요. 이렇게 미숙한 어린 목동이 전쟁에 노련한 거인 장수를 상대로 3년 동안 전쟁을 하고 있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그 답을 찾았습니다. 우연히 기사를 보고 또 우연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정황이 어떤가를 보고, 주위 사람들을 과의 대화를 나눈 가운데 무엇을 발견하게 되었냐면, 러시아 침공을 한 2주가 흐른, 얼마 안 된 거죠. 그 2주 흐른 전쟁 초기에 우크라이나의 이상한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그 이상한 현상은 뭐였냐면 성경(聖經), 품귀(品貴)현상이었어요. 기사를 한번 띄워주실까요?
 
※영국 크리스찬 투데이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성서공회는 러시아 침공 이후 전례 없는 숫자의 성경 요청을 받았다며 사람들에게 나눠줄 성경이 없어 거절하고 있다는 발표를 했습니다. 우크라이나 성서공회의 올렉산드로 총무는 성경을 구하기 위해 찾아온 한 목회자에게 이런 이야기를 전했다. 그는 우리에게 성경이 하나도 남지 않았다는 소식을 듣고 손상되거나 심지어 폐지가 누락된 찢어진 사본이라도 달라고 간청했다. 여러분 전쟁이 났습니다. 어느 민족이, 어느 나라가 전쟁 난 상태에서 지금 거인 러시아가 밀고 내려와서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그 전쟁을 치르는 상태에서 먹을 식량을 주세요. 무기를 달라고, 국제사회에 호소를 해야 되는데,,, 그것보다도 먼저 무엇을 하고 있냐면 성경을 달라고 호소(呼訴)를 하고 있는 거예요. 몸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는 안식처(安息處)를 달라고 하지 않고 성경을 달라고 하는 거예요.
 
하나님께서는요, 하나님께서는요. 이렇게 성경을 찾는 하나님의 말씀을 찾는 하나님을 갈망(渴望)하고 하나님을 애타게 찾는 이 백성들을 긍휼(矜恤)히 여기시고 보호(保護)하고 있구나! 라는 것을 제가 보고 깨달으면서 소름이 끼쳤습니다. 여러분, 전쟁이라는 비극적인 현실을, 여러분 현실 속에 너무나 큰 고통을 치르고 있지만 구소련의 잔재(殘在)라고 할 수 있는 우크라이나는 2개 전쟁을 치르고 있다. 하나는 부패다 하나는 전쟁이다. 라고 할 정도로 그 부패와 싸우고 있는 그 모습이 이 전쟁을 통하여 지금 나라가 지금 뒤집어지고 있구요. 그리고 타 종교와는 기독교, 개신교가 세 번째 종교였습니다. 단순히 세 번째 종교가 아니라, 무시 받는 종교였습니다. 러시아 정교가 먼저였구요. 패턴이었고요. 그다음에 종교 개신교였는데, 거기는 인테리나 멋진 사람은 가는 곳이 아니었구요. 그 좀 떨어지는 수준의 사람들이 가는 그 종교가 개신교였는데, 지금 이 판세가 바뀌고 있습니다. 여러분, 전쟁이 터지고 나니까 어떤 일이 벌어졌냐면 다른 종교들은요, 교회가 더럽혀진다. 라는 이유로 문을 닫기 시작했어요. 여기 들어오지 말라 피난민들이 떼거지로 밀려 들어오니까, 오지 말라고 문을 닫았어요. 그런데 개신교는요 문을 활짝 열고 피난민들을 받아들였구요. 목사님들이 그들과 함께 먹고 자면서 생활했구요. 목사님들이 전 세계에서 들어오는 구호 물품을 가지고 그분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어떤 목사님은 어떤 플랫폼에서 기차역에서 천 명씩, 3개월씩 매일 그들을 먹이면서 함께 그들과 샤워도 못하면서 지내는 그런 모습들이 바로 개신교 목사님이었고요.
 
그리고 땅이 다 폭탄(爆彈)의 미사일에 의해서 뒤집어진 땅은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기도를 하고 예배를 드리고 크게 개신교가 그러다 보니, 러시아 사람들이 이제는 이런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이제는 개신교가 기독교가 우리가 믿어야 되는 신앙이고 종교다. 라고 하면서 젊은이들이 교회로 지금 밀려오고 있는 그런 모습이 보여지는 거, 그런 모습이 우크라이나입니다. 그러면 지난번에 칼 세미나 때 우리 46명 우크라이나 목사님들 오셨죠? 그분들이 그분들이에요. 가서 보니까, 우크라이나 사람들이요. 이 작은 목동들이 하나님을 갈망(渴望)해요.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요. 전쟁이 터지자마자 밥 주세요. 빵 주세요. 떡 주세요. 안식처를 주세요. 라고 하지 않고, 성경을 주세요. 라고 하는 그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긍휼히 여기고 계시는 거예요.
 
거기에서 저희가 배워야 하는 중요한 영적인 교훈이 있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 피 흘림 없는 복음적 평화통일, 여러분 우리 땅에는 전쟁이 없어야 하죠. 꼭 없기를 바라고 그것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통일이 이루어져야죠. 여러분, 이런 언제 전쟁이 일어나도 정말 이상하지 않은 이 현실 속에 사는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군사력을 키우고, 경제력을 키우고 외교나 정치를 아니에요. 그걸로 해결이 안 돼요. 우크라이나를 보니까 여러분들이 저와 여러분들이 한국 교회가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나와서 무릎 꿇고, 하나님을 갈망할 때, 말도 안 되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를 상대로 3년을 저렇게 전쟁을 하며 나름대로 승리를 거두고 있는 것처럼, 물론 많은 손해가 있지만 저렇게 견디는 것처럼 전쟁은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입니다.
 
통일은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경제력을 키우고 군사력을 키우고 외교의 외교나 정치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이 자리에 나와서 하나님의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갈망하며 기도하는 백성들이 늘어날 때 하나님께서 이 땅에 피해 흘림이 없는 복음적 평화 통일을 허락해 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 차원에서 우리 지난주 토요일과 주일 우리 그것을 바라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온몸을 다 바쳐서 하나님 하나님을 갈망합니다. 하나님을 간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강구하오니 이 땅에 피 흘림 없는 복음적 평화 통일을 허락하여 주소서. 통일로 가는 길을 저희가 섬겼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선은 우크라이나 이 위험 상황을 도와야 되겠죠. 그 회복을 하는 그 과정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바를 해야 되겠죠.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우리도 경험을 쌓아야 되겠죠.
 
그리고 그 우크라이나가 갖고 있는 곡창지대의 그 곡창, 곡식들을 나중에 하나님이 허락하실 그 통일의 시대 북한의 식량 문제 해결하는 데 사용해야 되겠죠. 그런 은혜를 달라고 우리가 또 섬겨야 되겠죠. 그리고 북한이 혹여나 UN을 통해 어떤 상태의 붕괴(崩壞)가 이루어졌을 때, 자국민의 자결권을 행사하게 될 때, 그 모든 권한을 다른 국가에 주지 않고, 그래도 내 민족 뇌동법 대한민국에 맡기고 그리고 사랑의 교회가 세운 사랑 광주리 또 사랑의 교회가 세운 모든 사역들이 국제적인 NGO로서, 우크라이나를 통해 쌓은 경험과 실적을 가지고 UN에게 인정을 받아서, 북한을 하나님께서 통치하는 나라로 만드는데 쓰임을 받고 나가야 된다. 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담임 목사님께서 외치시는 ‘2033-50 비전’을 현실적으로 읽는 방법임을 믿습니다.
 
♣요약
예수 그리스도를 대속 제물 삼아, 날 자녀로 불러주신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의 합당한 삶을 살아가고, 겸손과 온유, 오래 참음과 사랑 가운데 서로 용납하며 평안에 매는 줄로 하나 되게 하신 성령님의 인도를 힘써 따라가야 한다. 모든 피조세계의 영광을 홀로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주님께서 지상의 교회가 하나 됨에 영광에 걸 맞는 희생하고 헌신하는 우리 사랑의 교회가 되기를 간구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한 교회를 세우는 차원을 넘어 교회가 교회를, 교회가 전 우주에 있는 전 세계에 있는 교회를, 또 평안에 매는 줄로 감당하는 사명을 감당하는 사랑의 교회의 성도들, 사랑의 교회와 대한민국 교회되기를 원하며, 예배에서 승리하고 말씀의 검으로 무장하여 우리에게 주신 싸움을 능히 이기는 귀하고 축복된 주님의 군사가 되어야 한다. 부르심의 합당하게 살아가는 것은 거기에 무게를 맞추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기억하여 그 무게감을 올려드리는 자로 살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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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4년 6월 23일)
제목: “시험 들지 말고 예배하라”
(Worship the Lord Your God Instead of Folling into Temptation).
-(예수님은 누구신가? ⑭)

말씀: 마태복음 4:5~11,
찬양인도: 쉐키나(이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대표기도: 이기원 부목사님
사회: 임병영 부목사님(1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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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4:5~11,
5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6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7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8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9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10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11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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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6.25 발발 74주년이자, 사랑의 교회는 복음적 평화통일을 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1년에 몇 차례만 우리 강단 위에 국기, 태극기와 또 교회 깃발 2개가 나와 있습니다. 여러분과 저는 두 나라 백성입니다. 대한민국 백성입니다. 첫째는 하나님 나라 백성이고, 그 다음에는 대한민국 백성입니다. 맞습니까?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는 우리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더 기쁘시게 하고,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릴 것인가? 이것이 Key이고, 대한민국 백성으로서는 우리가 이 말씀을 받은 사명자로, 예수님의 온전한 제자로, 시대 앞에서 어떻게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이 Key인데, 오늘 ‘예수님은 누구신가?’ 열네 번째(⑭) 말씀, “시험 들지 말고 예배하라.” 이 마음 이 말씀을 가지고 여러분들이 말씀으로 여러분들에게 잘 씨앗이 떨어지게 하시고, 말씀의 씨앗이 또 발아(發芽)되고, 또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어지는 그런 축복이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지난주에 이어서 오늘 마태복음 4장에 본문을 가지고 계속 To be Continued.~ 계속 이어서 말씀하셨는데, 지난주를 2번에 걸쳐서 처음 광야에서 육신의 시험을, 배고픔으로 시험하게 하시고, 그다음에 예루살렘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라. 이생의 자랑 그렇게 시험하고, 오늘 이제 세 번째 핵심인데 오늘 이 세 번째 시험을 여러분들이 잘 확인하고, 승리하면 여러분의 가정도, 우리 민족도, 이 시대도 하나님 주신 은혜를 체험할 수가 있습니다.
 
오늘 핵심은 예배에 관한 것입니다. 10절에,
 
*마태복음 4:10,
10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아멘 신구약에 보면 경배란 말은 여배와 연결돼 있을 뿐만 아니라, 섬긴다 할 때도 여호수아가 너희는 너의 택할 자를 택하라. 나는 나와 우리 집은 여호와를 뭐 하겠노라 섬기겠노라. 예배와 그대로 직결되어 있습니다. 나와 내 집은 예배하겠느니라. 이런 뜻으로 나와 있습니다. 자 포인트는 우리가 시험 들 때마다 예수님은 먼저는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승리를 했습니다. 뭐로 승리했다고요? 기록된 하나님 말씀으로,,,, 그러니까 저와 여러분이 마귀를 대적한다. 그랬을 때에 마귀와의 영적 전쟁을 감당한다고 그랬을 때 무얼로 승리할까요? 우리가 무슨 능력이 있어요? 무슨 불을 받아 가지고 그럴 수도 있지만,
 
진짜 우리가 한 결 같이 꾸준하게 승리하는 비결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긴다는 말을 우리가 야고보서 4장 7절에 뭐라고 나와 있냐면, 이런 말씀이 나와 있습니다.
 
*야고보서 4:7,
7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자 기록된 하나님 말씀을 이겼는데, 주님이 야고보를 통하여 뭐로 말씀하시냐면, 하나님께 복종하라 마귀를 대적하라 이런 말이 나오는데, 마귀를 대적한다. 할 때 우리가 어떻게 마귀를 막 대적하겠어요? 마귀를 대적하는 길은 하나님을 복종하는 것이에요. 하나님을 복종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우리가 주기도문 하면서 우리가 시험 악에게 시험 들지 말게 해달라고, 일용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악에게 시험을 들지 말게 해달라고, 우리가 기도하잖아요?. 뭐라고 기도합니까? 우리가 범죄하지 말고,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게 해달라고, 그건 사실은 우리를 보호해달라는 간구이지만 거기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겠다는 선언이 들어있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겠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겠다는 것을 우리가 무슨 복종의 관계다 순종의 관계다. 그랬을 때 이것을 무슨 우리가 꼼짝도 못하고 노예 상태가 돼 가지고 뭐 이렇게 아주 그냥 굴복하고 이런 뜻이 아니에요. 프란시코 박사 같은 경우는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는 그냥 순종이 아니고, 이거는 능동적 수동형이다. 다시 한 번 뭐라구요. 능동적 수동성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수동적으로 순종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은 능동적인 것이다. 능동적인 것이다.
 
예를 들어 세상에 무슨 억지로 포로가 되어 가지고, 그냥 참 굴복하고 막 이거는 그런 것들은 좀 어렵지만, 진짜 제대로 된 영광스러운 위대한 대상이 우리 앞에 있을 때 그 대상을 따라 그 승리의 깃발을 우리가 같이 붙잡고, 그 대상의 길을 순종하는 것은 그것은 영광스러운 것이에요. 맞습니까? 그러니까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한다는 것은 단순히 굴복하고 이런 것이 아니라, 정말로 마귀(魔鬼)의 시험을 이겨낼 수 있는 영광스러운 선제공격(先制攻擊)이 되는 것이에요. 인제 그런데 문제는 뭐냐 하면, 하나님 말씀을 그만큼 가까이 두느냐, 그러니까 말씀을 가까이 두느냐, 시편 119편에 보면 뭐라고 나와 있냐면요, 이렇게 나와 있어요.
 
*시편119:11,
11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내 마음에 가까이 두었다고 그랬는데 기록된 하지만 가까이 두는데, 제가 한번 우리 옛날 어른들 얘기 한번 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오늘 이와 같이 예배를 드리러 나오시지만 오늘 주일날 나올 때 어떤 분들은 일주일 내내 이걸 성경은 또 성경 밑에 성경 위에는 다른 책 두지 말라 그랬으니까 위에 딱 얹어 놓아요. 그러면 일주일 내내 여기에 안 보면 먼지만 파박 쌓이는 거예요. 그래서 주일날 올 때 먼지를 그걸 옛날에 후후 불어서 가지고 옵니다. 그걸 예전에는 후탁교인이라고 했어요. 예,,, 우리 가운데는 그런 교인이 없는 줄로 믿습니다.
 
근데 문제는 요새는 전부 다 휴대폰 안에다가 성경을 갖고 다니니까, 요새는 후탁교인이 아니라, 주일 예배 와가지고 그때 말씀을 꺼내니까, 그거는 후딱교인이에요. 후탁이든, 후딱이든, 우리는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주님을 순종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과 연결이 되어 있다. 그래 생각해 가지고,,, 오늘 이 말씀이 여러분들에게 정말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능동적 수동성을 가진 대장되신 예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그런 시간이 되기를 바라는 겁니다. 그리고 다 이거 이제 승리하고 나니까 11절에 뭐라고 나와 있냐면,
 
*마태복음 4:11,
11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아멘 기진맥진(氣盡脈盡)한 예수님의 몸을 붙들어 일으켜 드리고, 천사들이 인성으로 굶주리신 예수님을 하늘과 땅의 신령한 양식으로 채워 주신 원기를 회복시켜 주신 아버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자, 이 전체적으로 제가 지금 그림을 그려드렸고,
 
본격적으로 왜? 주님께서는 주 네 하나님만을 섬기라고 왜 그렇게 했을까요? 이 모든 시험의 마귀 마귀의 시험의 마지막 결론을 이렇게 내리신 이유가 뭘까? 한 번 더 보겠습니다. 8절에 보니까,
 
*마태복음 4:8,
8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마귀가 예수님을 어떻게 해요?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주고, 근데 이걸 멀리서 보여줬어요. 멀리서 이렇게 멀리서 보여준 이유가 뭐냐 하면, 그 멀리 보니까 거기에 로마 제국의 찬란한 문화가 있고, 아테네 멋있는 신전이 있고, 예루살렘 성전의 영광스러운 모습과 헤롯의 금빛 도움들이 있었어요. 휘황(輝煌) 찬란(燦爛)한 매력 있는 것들을 보여줬어요. 근데 많은 것들이 세상 것들은 멀리서 보면 다 멋있어요. 근데 가까이 가보면 실망하는 것이에요. 아무리 아름다운 자연 경치도 조금만 숲을 헤치고 들어가면 무서운 살생이 벌어지는 거예요. 멀리 봤을 때는 아름답지만 그 안에 무서운 야생 짐승이 있고, 뱀이 있고, 자연도 겉으로 볼 때는 멀리서 아름답게 보이지만 들어가 아주 거친 가시가 있고 그런 게 있잖아요? 멀리서 보면 아름다운 것 같지만 그러고 난 다음에 이제 중요한데 9절에,
 
*마태복음 4:9,
9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이게 얼마나 간교(奸巧)하고 교묘(巧妙)한 시험(試驗)인지 모릅니다.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敬拜)하면, 이 내용은 이것입니다. 사탄의 마지막 시험은 예배(禮拜)에 대한 시험이었어요. 누구를 경배하느냐? 누구를 예배하느냐? ‘만일 내게 엎드려 내게 경배하면, 예수님께서 인간의 대표로 받으신 마지막 시험인데 이런 뜻이에요. 인간은 누구나 예외 없이 예배하는 자로 취임 받았어요.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으면 다른 무엇인가를 예배하게 되어 있어요. 하다못해 요새는요, 나 수많은 우리 여러분들 수많은 것들을 예배하는 인생이 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주님께서는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으면, 다른 무언가를 예배하는 이런 상태를 보시고 마귀의 가장 강력한 이 시험, 이 예배에 관한 시험을 가지고, 공격해 왔을 때, 예수님께선 단호하게 사탄아 물러가라!!! 그래서 여러분 인류의 역사는 예배 문제로, 예배 전쟁이다.
 
제가 오늘 좀 이 뒷부분이 중요하기 때문에 앞부분을 제가 요약해서 말씀을 드리는데, 인류 역사에서 예배의 문제는 항상 갈등(葛藤) 구조였어요. 자 보세요. 하나님께서 아담을 창조하시고 아담과 교제를 통하여 아담과 하오가 하나를 예배하게 돼 있어요. 근데 그 불순종을 해 가지고 예배가 파괴되기 시작했습니다. 근데 마지막 요한계시록 22장이 마지막에 온 백성과 방언과 족속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알파가 예배로 시작하고, 오메가가 예배로 마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이걸 알고 사탄은 인간이 예배하는 자로 지어졌다는 것을 이걸 자기를 예배하게 만드는 아닌 다른 걸로 대체해 가지고 예배하도록 그렇게 교묘(巧妙)하게 난리를 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인간의 역사는 예배에서 시작해서, 예배로 끝나게 되는데 예배 인류 역사에서 예배의 문제는 항상 갈등 구조가 있었어요. 아담이 그랬지만 아담이 에덴동산에 쫓겨나고 난 다음에 예배 전쟁으로 드디어 살인이 일어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가인의 예배를 받아주시지 않고, 아벨 예배를 받아주시니까 가인이 동생을 살인해버린 것입니다. 그러면 노아는 방주에서 구원받고 나서 한 첫 번째 행동이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을 예배하게 되어 있는 것이에요. 아브라함의 사명을 받고 난 다음에, 너는 축복의 근원이 되라 사명 받고 난 다음에, 제일 먼저 한 것이 하나님 앞에 제단을 쌓은 것입니다. 예배하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여러분 출애굽기 할 때에 왜? 하나님께서 출애굽을 시켰는가? 얘기했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에굽 땅에서 이방신을 섬기는 한 아주 힘든 그런 상황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뭐 육신적으로 출애굽기 17장에 보면, 이 백성을 광야론 나오게 해라. 저들이 나를 섬기게 하라. 하나님을 섬긴다는 말이 예배란 말과 동일하다는 것이에요. 말씀한 대로 여호수아가 뭐라고 말했습니까? ‘너희 백성들이 택할 자를 택하라. 나는 나와 우리 집은 여호와를 예배하고 섬기겠노라.’
 
예수님의 탄생(誕生) 스토리도 예배로 시작했습니다. 천사와 동방박사와 목자와 시몬과 반나가 예수님께 예배하고 경배한 것입니다. 예배가 인류 역사의 시작이요. 마지막이요. 알파와 오메가라고 말할 수가 있는 겁니다. 자, 우리는 이런 의미에서 이제 삶의 현장에서 오늘 지난주, 이번 주에 걸쳐서 예수님의 시험을 거치면서 예수님이 오늘은 우리의 참예배자이시고, 또 참예배자를 만드시는 예수님이신 줄 믿으셔야 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뜻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우리 교우들이 성숙했다는 걸 뭘로 표현합니까? 사랑의 교 입장에서는 성숙한다고 그랬을 때 우리가 예수님의 온전한 제자로 주님을 더 닮아 가는 것, 그 다음에 우리가 또 주님을 닮아가고 난 다음에 다른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거, 가치 있고 귀한 일이에요.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이 주님을 닮아가고,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이것은 궁극이 아니에요. 이거는 과정이고, 이건 이거는 이 일들을 통한 무장되는 것이에요. 궁극의 목적은 뭐냐 하면 우리 인생은 이런 일들을 통하여 하나님을 참으로 예배하는 자가 돼야 되는 것이에요. 선교사들이 가끔 와서 선교하잖아요? 선교지에 선교지의 제일 중요한 것이 선교의 목표가 뭐냐? 선교지의 영혼 구원하고 복음전도 다 하는 것이지만 결국은 그 선교지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땅으로 바뀌어야만 되는 것이고, 그 선교지의 백성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가 돼야 한다는 것이에요.
 
오늘 우리는 6.25 발발 74주년, 이 남북의 문제를 얘기할 때 뭐 여러 가지 해석을 합니다마는 남북의 문제에 가장 심각한 것은 뭐냐? 예배의 문제예요. 북한이 공산주의가 이제 이북을 점령하고, 난 다음에 제일 먼저 한 것이 뭐냐 하면, 교회를 파괴했습니다. 예배의 대상을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북한의 신실한 평양의 장대연 교회나 산자연교회나 신의주제일교회나 청진이나 곳곳마다 하나님의 2850교회 그 3천여 교회가 있었는데, 그 교회가 하나님을 다 다 여배가 일본 시대에도 그 의무관시대에도 예배를 다 드리고 있는 그걸 다 파괴를 하고, 김일성과 요즘은 김일성 주체사상을 예배하게 만드는 것이에요. 남북의 문제는 사실은 남남 갈등도 있지만 남북의 문제는 사실 예배의 문제예요.
 
그러니까 오늘 우리는 오늘 예배를 통하여 북한에도 예배가 회복되게 하여 주십시오. 여러분 예배가 없이 공적 예배나 이런 예배가 없이 10년을 지나고, 20년을 지나고 30년이 지나면, 그 땅들이 다 피하게 될 수밖에 없는 거예요. 북한은 겉으로는 뭐 평양의 멋있기가 보이지만 사실은 그 땅이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았기 때문에 너무너무 황폐해진 것이에요. 70년이 지났기 때문에,,, 그러니까 오늘 이 말씀을 통하여 주님, 북쪽에도 하나님을 예배하는 곳이 될 수 있도록 변화시켜주옵소서. 그리고 저와 여러분에게 주시는 영적 성숙의 장에 있어서, 진짜 우리의 성숙의 궁극은 하나님을 참되게 예배하는 것인 줄로 믿습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을 참되게 예배할 수가 있는가? 오늘 이 모든 시험을 이겨내는 마지막 궁극은 하나님을 향한 참된 여배자가 돼야 되는데 세상에 우리는 세상을 하여튼 하나님이 예배하지 않으면, 다른 걸 예배하게 될 수밖에 없는 이런 상황이 되어 있는데, 첫째,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I. 첫째, 마음이 참된 예배를 드려야 한다.

-오늘 사랑의 길에 속한 모든 성도들과 오늘 이 말씀을 듣는 모든 죄 권속들은 예외 없이 여러분들의 마음을 참된 마음으로 하나님을 예배해야 한다는 것이에요. 마음이 참된 예배를 드려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이사야가 고백한 대로 이 백성의 입술로는 존중한다고 하지만, 마음은 다 떠나 있다고 그랬어요. 마태복음 15장 8절, 9절에 보니까,
 
*마태복음 15:8,
8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9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하시고.
-자 주님을 참되게 예배하고 경배를 해야 되는데, 마음이 떠나 있는 거예요. 마음이 참된 예배를 드려야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참된 예배는 마음을 드리는 것이고. 입술이 아니라, 마음으로 주님을 집중하는 것인데 그러니까 오늘도 이 예배를 드리면서 오늘 우리 회중 찬송했잖아요. 우리의 예배를 받아주시옵소서. 오늘 여러분들의 마음을 실어가지고, 지금 즉시, 우리가 마음을 어떻게? 우리의 마음을 어떻게 주님께 예배드릴 것인가? 우리의 참된 마음으로 어떻게 예배를 드릴 것인가? 우리의 마음이 날마다 거룩한 기대감을 가지고 나와야 하는 것이에요.
 
지 지난주 우리 46주년 예배를 드릴 때, 그때 회중 찬송할 때 조금 우리가 다른 때와는 다르게, ‘기뻐하며 경배하세, 영광의 주 하나님, 그 찬송하고 내 주의 나라와 주계신 성전과 피 흘려 사신, 찬송을 할 때에 많은 회중들이 할 때에 많은 분들이 눈물을 훔치더라고요. 그러니까 그것이 뭐냐 하면, 마음의 주님께 올려 져 있는 거예요. 제가 다시 보겠습니다. 지지난주 예배할 때 무슨 찬송한지, 기억나십니까? 벌써 뭐 옛날에 금잔디 동산으로,,, 이런 마음이 추님 앞에 올려드려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늘 말씀드리지만, 예배는 예배드리기 전에 결정되는 거에요. 마음이 거룩한 기대감을 가지고 예배를 드려야만 하는 것이에요. 마음이 매주일 마다 새 마음으로, 새로운 기대감으로 간절히 예배를 드리라는 거예요. 이런 차원에서 토요일 저녁과 주일 아침이 정말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미리미리 마음으로 기대하고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토요일 밤 잠들기 전에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기대하면서 준비해야 되는 거예요.
 
주일 날 예배 나오셔가지고, 오늘도 창조의 아버지 찬양할 때, 또 웨이 메이커(Way Maker), 찬양할 때 우리의 마음이 거룩한 기대감으로 터질 듯해야 되는 것이에요. 이런 마음으로 예배를 잘 드릴 때마다 시편 29편 이전에 뭐라고 말씀하고 있는가,
 
*시편 29:2,
2 여호와께 그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 거룩한 옷을 입고 여호와께 예배할지어다.
“너희가 거룩한 옷을 입고 여호와께 예배할지어다.” 우리가 새로운 옷을 입을 때는 아무런 감정 없이 새로운 옷을 입는 사람이 없어요. 새로운 옷을 입을 때 뭔가 기대감을 가지고 옷을 입는 거예요. 우리가 예배 올 때마다 거룩한 옷, 거룩한 새 옷을 입고 예배를 드리기 위하여 매주 나올 때마다, 새로운 거룩한 기대감을 가지고 나온다는 것은 거룩한 옷을 입고 나오는 겁니다.
 
우리가 각양의 다른 스타일의 옷을 입고 나오지만, 내면으로는 모두가 다 신령에 새로운 거룩한 새 옷을 입고 참여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주일마다 멋있는 옷이 아니라, 마음의 새로운 옷을 입고 단장하는 그런 축복 입기를 원하는 것이에요. 저는 참 예배를 많이 드린 집안에서 태어났어요. 우리 아버님은 가정 예배를 드리는데, 세상에 아침에도 가정예배, 저녁에도 가정예배, 그리고 또 예배를 드리는데, 그것도 아침에도, 예배 형식이 처음부터 끝까지 하여튼 그냥 가정 아침, 저녁에 드리는데, 주여,!! 은혜를 받기도 하지만 어린아이들이 뭐 어떻게 다 알겠어요. 철들었어도 예배, 제가 매주일 마다 여러 번 예배를 드리고, 처음 부임해가 10년 동안은 제가 5번, 6번씩 주일예배, 그리고 제가 늘 말씀드렸지만 시작할 때는 타오르는 불이 되다가 마칠 때는 타다 나면 재가 되는 거예요. 그리고 예배를 드렸는데 어떤 분이 편지가 와요. 목사님, 나는 뭐 이런 일들이 뭐 어떤 사업하는 분 어떤 법조계에 계신 분들이 편지가 오는데 대법원에서 일하시는 어떤 판사께서 연락이 온 거에요. 저한테 편지가 옵니다. 저는 주일 예배가 너무 중요한데 주일 예배에서 은혜 못 받으면 나는 죽습니다.
 
나는 그 편지를 받고 내가 죽고 싶었어요. 여러분, 이게요. 내가 무슨 능력이 있어요. 저는 도구일 뿐이고, 여러분과 제가 사는 길은 매주일 마다 거룩한 새 옷을 입고 새 마음을 가지고, 기대감을 가지고 마음으로 예배를 드려야만 하는 거예요. 아멘!!!!~
 
그리고 이렇게 마음을 드리는 이런 여러분들과 저의 모습이 우리 가족들에게 사랑하는 영 가족들이나 우리 가족들에게 우리 자녀들에게 그대로 전파되고 그래서 저는 수많은 신앙의 위인들 신앙의 소중한 쓰임 받았던 분들 제가 그분들의 삶과 손길을 잃는 가운데 많은 경우 공통점이 하나 있는데, 그것이 뭐냐 하면 부모님이 참 기대감을 가지고 예배를 준비한다는 것입니다. 주일날 아침에 뭐 3키로 4키로 옛날에 부모님과 함께 걸어가면서, 너 오늘 예배를 어떻게 준비하고 걸어가니? 오늘 공동체 예배를 드릴 때 넌 어떤 기대를 갖고 가니? 예배를 마치고 난 다음에는 돌아오면서 너 오늘 말씀을 듣고 어떤 은혜를 받고 어떤 생각을 했니? 마치 우리가 지금 주일 1부 2부 3부 4부 특별히 2부 3부 예배 같은 경우는 주일날 가족들이 같이 나와 가지고, 같이 예배를 드리고, 그다음에 같이 식사를 하면서 자녀들과 함께 대화를 하는데 오늘 너는 예배를 통하여 무슨 은혜를 받았니? 이런 내용을 나누는 그것을 통하여 삶의 수많은 난관(難關)과 질곡(桎梏)과 고통(苦痛)을 이겨냈다는 것이에요. 부모님과 함께 걸어가면서 거룩한 기대감을 가지고, 교회에 오가는 길 예배를 드리면서 기대감을 가지고, 그것이 즐겁고 그것에 감사하고 그때 어른들과 깊은 신앙의 대화를 나누는 것이 신앙의 자본이 되었다는 것이에요. 이것이 자기 신앙의 형성에 뼈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나중에 이런 것들이 삶의 고난이 닥쳐와도 끝까지 감당(堪當)할 힘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영 가족 여러분,
영적 가족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이 예배를 드리기 위하여 교회를 오가는 길이 귀한 신앙의 선배들처럼 이 길이 참 기쁨의 길이요. 충만한 기대감에 거룩한 여정(旅程)이 되기를 소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경험을 가지고 자란 우리 자녀들은 어떤 인생의 곤란과 고통 속에서도 능히 돌파(突破)하면서 감사와 기쁨으로 사명(使命)을 감당할 수가 있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일주일에 168시간 가운데서, 주일 이 예배 시간이, 이 시간 2시간이면 2시간 3시간이면 3시간 왔다 갔다, 요 시간이 요 2~3시간이 여러분들의 생애에서 일주일 168시간 가운데서, 영적으로, 육신적으로, 정서적으로 피크가 돼야 되는 것이에요. 최고의 피크가 돼야 되는 것이에요.
 
주님이 안식일을 기억하여 그날을 거룩하게 지키라. 그랬잖아요? 우리가 흔히들 안식일(安息日)을 교육하여 그날을 거룩하게 지키라. 고 그랬을 때 우리는 쉼에다가 많은 방점을 두는 거예요. 쉬어야죠. 주일은 쉬어야 되고, 구약의 안식일의 시작일은 주일날로 바뀌었는데, 그러나 여러분 참된 쉼이 뭐예요? 육신이 쉰다고 쉬는 것이 아니에요. 우리의 마음이 주님 앞에 거룩한 기대감을 가지고 주일마다 참된 영적인 기름 부음과 능력을 받아가지고, 우리의 마음이 거룩한 새 옷을 입고 단장을 할 때, 그때 진짜 쉬게 되는 것이에요. 이런 쉼이 없이 이제 여러분 휴가도 있을 것이고, 앞으로 하겠습니다마는 여러분들 갈 때 육신만 쉰다고 쉬는 것이 아니에요. 우리의 마음이 주님 앞에 거룩한 예배 자가 되어 가지고, 기대감을 가지고 휴가지에서도 예배를 드리고 이렇게 할 때에, 여러분 진짜 참된 힘이 되는 겁니다.
 
그런 것 없이 2주, 3주, 1주 쉬기만 하고 오면요. 너무너무 피곤해갖고 너무너무 힘들어 가지고 다시 또 휴가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오늘 첫 번째는 우리의 마음이 거룩한 기대감을 가지고 예배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두 번째로는 오늘 더 중요한 겁니다. 혼자가 아니라, 함께 예배를 드려야만 하는 것이에요.
 
II. 둘째, 혼자가 아니라 함께 예배를 드려야 한다.
 
-우리는 지금 예수님의 사탄과의 시험에서, 광야의 시험에서 마지막 부분, 어떻게 하면 근본적으로 확실하게 승리할 수 있을 것인가? 사탄아 물러가라. 하나님만 경비하고 예배하라. 다시요. 궁극적인 승리의 핵심은, 우리가 참된 예배자가 돼야 하는 것인데, 마음으로 예배를 드릴 뿐만 아니라, 함께 예배를 드려야 하는 것이에요. 시편 95편 1절에,
 
*시편 95:1, 2, 6,
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 노래하며 우리의 구원의 반석을 향하여 즐거이 외치자.
-내가 노래하고 내가 갈 정도가 아니에요. 95편 2절에,
2 우리가 감사함으로 그 앞에 나아가며 시를 지어 즐거이 그를 노래하자.
6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
-아멘 여기 우리라는 말은 우리 모두는 함께 예배드리는 것을 참으로 소중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공동체가 함께 예배를 제대로 드리면, 사탄의 시험에서 승리할 수가 있는 겁니다. 우리는 개인적으로 숲이나 호숫가에서 혼자서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습니다. 또 개인적인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를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큐티 하면서 홀로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개인적인 하나님과의 만남과 혼자서 인격적으로 하나님과 교제를 한 그 결과가 공동체에서 함께 예배를 더 드리고 싶은 마음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면, 그 마음은 잘못이 될 수가 있는 것이고, 그러니까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뭐라고 말씀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개인적인 하나님과의 만남과 혼자서 인격적인 교제를 하는 결과가 공동체에서 함께 예배를 드리고 싶은 소중한 마음으로 연결되지 않으면 크게 잘못된 것이다.
 
-여러분, 여기에 동의하십니까? 어떻게 보면, 신앙 세계에서 어릴 때부터 은혜를 많이 받고 또 많은 영적인 부요함이 있어 가지고 자기 스스로 자기 신앙을 유지하는 분들이 계세요. 그래서 좀 과하게 어떤 분 이런 얘기 나는 예배 참석 안 해도 나 혼자서 내 신앙생활 유지할 수 있습니다. 사실은 굉장히 위험한 생각이기도 하지만, 뭐 그렇게 아는 분들 괜찮은 분들 가운데 대단한 분들 가운데 그런 분들 많이 계세요. 자기 나름대로 영적으로 성숙하다고 하시는 분들 가운데 자기 혼자서 신앙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하는 이런 분들이 혹시나 이런 분들 가운데, 함께 모여 드리는 예배를 등한시 한다면, 그 신앙은 균형이 깨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런 분들은 자칫하면 무교의 주의자가 되어 가지고, 한국 교회 전체에 피해를 끼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일본 선교에 대한 관심성도 많고, 우리가 일본을 스케줄라고 했는데 여러분 일본은 대한민국보다도 훨씬 더 선교역사가 깁니다. 근데 왜 일본 교회가 저렇게 1프로도 채 되지 않는 약한 이 약한 그런 일본교회가 되었을까? 몇 주 전에 우리 토비새 그 일본의 오신 목사님 얘기 들으셨잖아요?
일본에는 2대 사상적인 2대 목사님이 있다고 하나는 내촌감삼(內村鑑三), 우찌무라 간조, 너무 훌륭한 분이고, 저는 그분의 로마서 주석을 읽으면 야! 어떻게 이렇게 대단하실 수 있나! 이렇게 할 수 있는데, 일본이 사상적으로 그렇게 하다 보니까, 어떤 일 벌어지는가? 무교주의자들이 많이 나온 거예요.
혼자 신앙은 너무 좋은데 내촌감삼(內村鑑三), 우찌무라 간조(일본 메이지 시대의 그리스도교 지도자), 그다음에 또 그러니까 무교유주의 또 1분은 하천풍언(賀川豊彥)으로, 가가와 도요히코, 라고 해서 사회적으로 섬기고, 구제하고 어려운 삶을 돕고 하는 소위 사회복음, 이래 하다 보니까 무슨 일이 벌어지느냐 함께 예배드리는 공동체 예배에 대한 인식이 많이 약화가 되어 가지고, 일본 교회는 힘을 잃어버려 지금 1억이 넘는 인구 가운데 구원받아야 할 수많은 영혼들이 지나간 100년, 200년 동안 함께 모여 드리는 공동체 예배를 등한시한 그 결과 일본 교회가 약해졌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훌륭합니다. 제가 내촌감삼(內村鑑三), 우찌무라 간조, 하면 우찌무라 간조, 가가와 도요히코를 제가 존중합니다. 그러나 함께 드리는 예배에 대한 인식은 약한 것이었습니다.
 
그걸 한국교회는 김교신 성서조선, 류영모, 함석헌 위대한 분들입니다. 다 훌륭한 분들입니다. 근데 그분들은 무교주의에 전통을 이어받아 있는 것입니다. 아마 이런 무교주의를 따라가다 보면 한국 교회는 엄청난 어려움에 봉착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마음을 갖고서는요. 한국 교회는 남북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남남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그래서 결국 남남 문제나, 남북문제는 예배의 문제가 해결돼야 할 만한 것이에요. 예배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에요.
 
여러분 개인 예배의 불씨는 늘 사그라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장작이 하나만 있으면 금방 타버리고 식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공동체 예배에 나오면, 개인 예배의 불씨가 더 활활 타오를 줄 믿는 것입니다. 소멸된 불씨가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개인 예배의 불씨를 가지고 모여 공동체 예배의 불기둥이 되어야 생활예배에서 승리할 수가 있는 거죠.
 
저는 오늘 이 얘기를 코로나 끝나고 난 다음에 2년 동안 제가 이렇게 뭐라 그럴까요? 말씀하면서 언젠간 해야지,,, 하면서 제가 준비해 놓은 것이에요. 한국은 지금 코로나 이후에, 온라인 예배 이런 것들을 통하여 예외 불씨는 살아있지만 불씨가 활활 타오르지 못해 가지고, 가나안 교회, 가나안 교회가 뭔지 알죠??? 거꾸로 안나가교회, 가나안 교회 안나가교회,,, 교구들이 많이 생성이 되었습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제가 2년을 참고 있다가 오늘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우리가 함께 드리는 예배를 통하여 다시 한 번 예배 불씨가 회복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코로나에 강을 건너면서 수많은 가나안 교회 성도들이, 안나가교회 성도들이, 꺼져가는 불씨들이 다시 한 번 현장에서 활활 타오를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제가 피 흘림 없는 복음적 평화통일을 얘기할 때에 단순히 피 흘림 없는 복음적 평화통일이 아니라, 무너진 북한의 예배가 회복되게 하여 주십시오. 황페함과 예배드리지 못한 74년에 아니, 1945년도부터 지금까지 거의 80년을 제대로 80년 맞죠? 그 79년 80년을 제대로 예배드리지 못한 저 황폐한 곳에 예배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함께 예배할 때, 공적예배를 드릴 때, 우리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은혜를 축복하십니다.
 
우리가 함께 찬양할 때 함께 기도하고, 죄를 고백할 때, 함께 나누고 묵상할 때, 함께 헌신할 때에 함께 교제할 때, 함께 우리 믿음을 재확인 할 때, 그럴 때에 우리의 믿음이 더 강화되고 우리의 소망이 힘을 얻게 되고, 우리 사랑이 새롭게 되는 것입니다. 함께 예배할 때의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재확인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공동체 안에서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함께 예배할 때 무엇보다도 사탄과의 시험에서 승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자주 말씀드리지만 성령 충만은 함께 전심으로 기도하고, 공동체가 예배할 때 나타나는 중요한 현상 중에 하나입니다. 개인적으로도 성령충만은 받을 수 있습니다. 기도하고, 함께 나아갈 때 성령 충만의 기름 부심이 더 강하게 나타나게 되는 겁니다. 큐티를 통하여, 개인적으로 예배할 수 있지만 공동체에 함께 드리는 예배와 반드시 연결돼야만 합니다.
 
오늘은 다시요. 복음적 평화통일 주일입니다. 피 흘림 없는 복음적 평화통일을 제가 영적 슬로건으로 삼고 지금까지 기도해 왔습니다. 40년 전부터 복음적 평화 통일을 기도해왔고, 10여 년 전부터 아 복음적 평화 통일을 하되 피 흘림이 없어야 되겠구나! 피 흘림이 없는 복음적 평화통일을 가지고 기도를 해왔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여기서 하나 좀 더 깊이 예민하게 살펴봐야 할 것, 다시 한 번 제가 정리해 드리는 것은 6.25 동족 전쟁은 이념 전쟁이었지만, 공산주의와 민주주의 자본주의 전쟁이었지만, 사실 그것을 구름 위에, 저 영적인 구름 위에 역사적 상선에서 보게 되면 저 위에서 내려다보게 되면 특히 6.25 동족 전쟁은 이념 전쟁 정도가 아니라, 이것은 영적 전쟁이었어요. 특별히 어떤 영적 전쟁이었는가? 예배전쟁이었어요. 우선 사탄이 북한 지역의 공산주의를 통하여 교회들을 말살하면서 평양에 산정형교회 장대현 교회, 신의주제일교회 이런 교회들 아까 말씀한 대로 전부 다 다 파괴시키고 예배를 못 드리겠습니다.
 
제가 이북에 몇 번 가봤지만 저 제가 신의주 쪽 지나갔는데 보니까 옛날 교회야, 그 교회가 뭐로 쓰여서 왔느냐 농업 창고로, 교회 예배를 드리지 못합니다. 대신 인간 김일성에게 예배를 하도록 그리고 남한까지 침공해서 예배를 드리는 모든 교회를 핍박하고 목사님들을 죽이고, 동족 전쟁을 일으켜서라도 동족을 죽여서라도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하는 것이니까, 이것은 동족전쟁 정도가 아니라 영적 전쟁이요. 예배 전쟁이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나타나는 수많은 예배 과정 가운데, 지금도 주체사상을 예배하고 지금도 지하에서 사탄이 공산당에 탈을 쓰고 한반도에서 온전한 예배가 사라지도록 하는 작전했어요. 그런데 목숨 걸고 예배를 지키겠다는 우리 신앙의 선배들 때문에, 오늘 한국이 이만한 은혜를 받은 것이에요. 북한에서 내려오신 피난민들 가운데 많은 분들이 크리스천이에요. 그분들이 예배를 드리는 것을 맡게 하니까, 예배를 드려야 되겠다고 생각하면 내가 많이 내려와 가지고 영락교회를 세우고, 충현교회를 세우고, 성동교회를 세우고, 내성교회를 세우고 이런 한국에 내려와 가지고, 남한에 내려와 가지고 예배들을 예배를 드려야 되겠다고,,, 그래서 오늘 우리는 6.25 전쟁의 본질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가?
 
하나님을 참되게 예배하는 것, 참된 마음으로 예배하는 것, 함께 예배를 드림으로 말미암아 사탄의 계교(計巧)를 이겨낼 때 진정한 동족 평화 통일이 오리라고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적 평화통일이라는 말은, 오늘 국기를 다 해놨습니다마는 남북이 참되게 예배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고 이 예배야말로 사탄의 모든 궁극적인 세력을 무너뜨리는 것인 줄로 믿습니다. 이 예배야말로 남남 갈등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입니다. 뭘 가지고 해결하겠어요? 여러분, 남남의 지극한 이 진영갈등을 어떻게 해결하겠냐, 하나님을 참되게 마음으로 함께 모여 예배할 때 회복될 수가 있는 것이에요.
 
7년 내로 평양에서 특새하게 달라는 것도, 다른 게 아니에요. 공적 예배가 사라진 그 땅에 황폐한 그 땅에, 주여 다시 예배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사랑의 교회 성도들은 영아부터 포에버에 이르기까지, 한 생년 동안 마음으로 거룩한 기대감으로 함께 예배되려는 승리자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좀 조심스럽지만 자, 90년대 중반에 평양을 방문했습니다. 여러 과정들은 다 제가 정리하고, 어떤 분이 저에게 북한의 지하교회 성도 여 성도님을 모시고 왔습니다.
 
숙소의 커피숍에서 그분과 대화를 하는데, 우리는 손을 잡고 감시원에 있었기 때문에 예배할 수는 없었습니다. 근데 그분이 평양 산정현교회 주기철 목사님 교회 성도였습니다. 그때 그 당시에, 90년대 중반에, 80정도 되시고, 조그만 하시고 정말 둥그스름한 얼굴을 갖고 계셨습니다
내가 목사라니까 너무 반갑다. 그러고,,, 자기는 평생소원이 뭐냐? 했더니, 산정현 교회에서 주기철 목사님과 예배한 만 분의 일이라도 맛보고 싶다. 한 번이라도 맛보고 싶다. 그때가 뭐가 좋았습니까? 그러니까, 성도들의 구름떼처럼 모여 가지고, 이처럼 모여서 빛나고 높은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주 예수 얼굴 영광 해같이,,, 주님의 보좌 있는데, 천한 몸 이르러 그 영광 몸소 배울 때, 찬양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께 옛날 가사는 영세무궁하기까지 영광을 돌리세. 영세무궁하기까지 예배를 드리세... 우리가 그 찬성을 마음으로 했어요. 소리를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기도를 못하고 눈을 못 감았어요. 서로 그 마음을 가지고 우리가 기도를 하고 차마, 기도와 찬양을 하는데, 눈물을 줄줄줄 흘렸어요. 아마 그 할머니는 돌아가셨을 거예요.
 
오늘 우리는 대한민국에서 자유롭게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수많은 우리의 삶에 시험이 있습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인 수많은 시험이 있습니다. 이 시험을 이겨내는 유일한 비결 마지막 방점은 뭐냐? 주 너의 하나님을 예배하라,!!! 예배하라. 마음으로 거룩한 기대감을 가지고,, 함께 공동체로 예배를 드려야 하는 것이에요. 오늘 이 찬송을 하면서 여러분들이 갖고 있는 수많은 실험과 아픔의 기도들을 이 예배를 통해 치료받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 자리가 놀라운 은혜의 응답의 자리가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요약
우리가 터질듯한 마음으로 참된 예배를 드리며 시험을 이길 때, 모두가 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령의 검으로 말씀을 순종하며, 마귀의 심장을 공경하며 승리하는 평생이 되어야 한다. 우리 모두가 들풀처럼 가녀린 예배 자에서, 참나무처럼 굳건한 예배자로 성숙하게 성장해야 한다. 온라인 예배로 꺼져버린 불씨들이 있다면, 현장예배의 공동체 예배에 함께 나와 예배의 전쟁을 극복하고 다시 불이 붙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사랑의 교회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교회가 예배 전쟁에서 승리하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흘림이 없는 복음적 평화통일의 그날을 속히 오는 날을 경험하게 하여 주시길 간절히 간구하자. 7년 내에 평양에서 예배드리는 날이 오는 기대감을 가지고, 사랑의 교회 7천 기도용사가 피흘림 없는 복음적 평화통일의 그날이 속히 오기를 기도할 때, 그 고난의 강을 돌파한 수많은 북한에 귀한 선교사님들 앞으로 북한이 수많은 10만 명의 선교사들 파송하여 세계 선교를 마무리하는 이민족 되기를 소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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