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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3년 8월 6일) 제목: "절망을 미래의 소망으로 바꾸다" 말씀: 예레미야 29:10-14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대표기도: 유형민 부목사님(1부) 사회: 천동원 부목사님(1부) 설교자: 김학진 목사님-초빙(미국뉴욕장로교회) ㅡㅡㅡㅡㅡㅡㅡ *예레미야 29:10-14, 10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1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12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13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14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는 너희들을 만날 것이며 너희를 포로된 중에서 다시 돌아오게 하되 내가 쫓아 보내었던 나라들과 모든 곳에서 모아 사로잡혀 떠났던 그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ㅡㅡㅡㅡㅡㅡ ▶할렐루야! 반갑습니다. 제게 있어서 서울 사랑의 교회는 마음의 갈릴리와 같은 곳입니다. 제 마음에 늘 돌아가고 싶은 그런 영적 고향이 바로 서울 사랑의 교회입니다. 제 인생 가운데 가장 허리가 되는 30대 후반에서부터 40대 후반까지 거의 10년을 이곳에서 사역할 수 있는 영광을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셨습니다. 저는 다른 기억이 없구요. 그냥 교회에서 너무나 저를 사랑해 주시고 축복해 주시고 격려해 주신 것밖에 기억이 남지 않습니다. 정말 그랬습니다. 받은 사랑이 너무나 충분해서 열악한 이민 디아스포라 교회 목회지에서 목회를 하면서요. 저들을 축복하고 또 사랑할 수 있는 부족하지만, 그 은혜가 남아 있음을 충분함을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만큼 여러분께서 신앙으로 지금까지 잘 버텨와 주시고 그리고 은혜의 진원지가 되고 메마르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우리 서울 ‘사랑의 교회’를 지금까지 인도해 주신 그 은혜가 있기 때문에 그런 축복을 누리는 거 아닌가 생각을 합니다. 여러분들께 다시 한 번 그런 은혜를 주신 것 감사를 드리고, 또 여러분의 그러한 신앙 때문에 해외에 있는 많은 참 교회들이 또 세워진다고 하는 것을 꼭 잊지 않고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다시 한 번 오정현 목사님과 우리 모든 영적 리더들 그리고 성도님들께 진심으로,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오늘 본문 말씀 중심으로 우리의 현실이죠. 어떻게 하면은 우리에게 지금 당하고 있는 이 절망, 어려운 이 시간들을 먼 훗날 좋아질 거야가 아니라, 지금 미래의 희망으로 우리가 살 수 있는지 그 믿음의 실체에 대해서 같이 함께 말씀을 나누기를 원합니다. ※어느 날 하루살이와 메뚜기가 친한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루 종일 같이 신나게 놀았습니다. 밤이 되었습니다. 메뚜기가 하루살이야 한테 이렇게 말을 합니다. 하루살이야 오늘 너 때문에 너무 행복했고 참 잘 놀았다. 우리 내일 다시 만나서 또 놀자. 얘기를 한 것이죠. 하루살이는 그 말을 듣고 내일이 뭔데 도대체가 내 일이 무슨 말인지 알지를 못했던 것입니다. 이해를 할 수가 없었던 것이죠. 그렇게 이제 시간들이 좀 지났어요. 늦가을이 되었습니다. 그 메뚜기가 이번에는 새로운 친구를 사귀게 되었는데 개구리입니다. 그래서 개구리와 너무나 친하게 지내면서 서로가 죽이 맞아서 여러 날들을 그렇게 친하게 놀면서 지냈습니다. 추운 겨울이 바로 앞에 왔습니다. 개구리가 이번에는 메뚜기에게 이렇게 말을 합니다. ‘메뚜기야 너 만나서 나는 이 가을 너무나 행복했고 참 좋았다.’ 우리 내년에 봄이 되면 다시 만나서 또 놀자. 이렇게 말을 한 것이고 메뚜기는 한 철이잖아요. 그래서 메뚜기는 도대체가 이 개구리가 말하는 내년이 무엇인지 봄이 무엇인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비슷한 일이 2천 년 전에 우리 역사 가운데 일어났죠. 하나님이신 그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셔서 우리 주님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우리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단어들 문화의 뒤 배경을 이용해서 여러 각도에서 말씀을 했지만 사람들이 도대체가 이 하나님 나라가 무엇인지를 이해하기가 힘들었습니다. 하나님이신 그분께서 이제 첫 설교라고 하는 산상수훈, 마태복음 5장에 나와 있죠. 7장까지 나와 있는데 그 산상수훈을 통해서 영혼 전부터 준비하신 메시지죠.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모셔서 당신의 입을 열어 그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첫 설교를 어떻게 해야 될까? 아마 준비 많이 하셨을 것 같아요. 그러면서 입을 열어서, 첫 말씀이 뭐였습니까?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이며” 첫 말씀 참 우리가 기대하죠. 예수님께서 무슨 말씀을 선택하셔서 첫 말씀을 인간에게 설교를 했을까? 이 첫 마디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는데 천국이 저들의 것입니다.” 라고 말씀하셨어요. 이 말씀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됐을까? 왜냐하면 가난이라고 하는 이 단어를 선택해서 첫 포문을 여셨거든요. 왜냐하면 ‘가난’이라고 하는 이 단어는 당시 갈릴리 사람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단어 중에 하나였습니다. 워낙 가난했기 때문에 정말 무엇을 먹어야 될지, 무엇을 마셔야 될지, 그리고 무엇을 입어야 될지, 내일에 대해서 염려하지 않고서는 하루를 연명할 수 없을 정도의 참 가난한 자들이 모인 것이 갈릴리 바닷가 주변에 사는 사람들이었거든요. 근데 그들에게 가난이란 단어를 택해서 말씀해 ‘푸터코스’라고 하는 이 헬라어의 가난이라고 하는 단어는 가난이라고 하는 단어 중에서 가장 로우스 가장 가난의, 가장 가난한 표현이 ‘푸토쿠스’ 라고 하는 단어예요. 가난도 여러 가지 가난이 있잖아요. 참 가난해 죄송합니다. 찢어지게 가난해요. 여러 가난의 표현이 있는데 이 ‘푸터코스’ 라고 하는 이 가난이라고 하는 단어는 다른 것이 아니라, 완전히 파산 상태예요. 그러니까는 빌로우 제로입니다. 도저히 소망이 없어 보이는 그 가난의 표현의 단어가 푸토쿠스라고 하는 단어죠. 그래서 우리가 육신적인 삶의 가난이든 여기서 말씀하시는 어떤 심령의 이 가난한 상태이든 이 푸토코스라고 하는 단어는 정말 듣기 싫은 단어였어요. 그런 상태에 있는 자들이 천국이 저일 것이다. 이해가 됩니까? 그 천국 하나님의 나라가 지금 현재 임한 하나님의 나라이든 그건 더 힘들죠. 이 아기가 죽어서 가는 하나님의 나라이든 상관없이 너무나 어려운 말입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팔복을 말씀할 때 마지막 단어는 더 케이오 펀치였습니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핍박이란 단어를 선택했어요. 천국이 그들의 것입니다. 라고 말씀해서 도대체 누가 이 말을 이해할 수 있었을까요? 핍박, 로마 제국 밑에서 가장 싫어하는 거 받기 싫어하는 것이 ‘핍박’이었었거든요. 그래서 그들을 피해서 적당한 갈릴리 바닷가에 살고 있는 저들에게 핍박을 받는 자가 복이 있대요. 그리고 ‘천국이 그들의 것이니라.’ 도저히 이해하기가 너무나 힘든 말씀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걸로 끝나지 않았죠. 특별히 죽으시고, 부활하신 다음에 바로 승천하시지 않고 여러분이 잘 아시는 대로 40일 동안 사십일 동안 이 땅에 부활의 영광의 몸으로 계시면서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사도행전 1장 3절에 보게 되면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말씀하신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가르쳤다라고 말씀하고 있어요. *사도행전 1:3, 3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얼마나 하나님의 나라가 중요한지, 신앙의 본질인지 그리고 저들이 아직 잘 이해를 하지 못하기 때문에 또 이것을 알아야 되기 때문에, 예수님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온 심려를 다해서 ‘하나님 나라’라고 하는 주제를 가지고 사십일 동안 제자들에게 말씀을 그렇다면 제자들이 좀 알아들어야 될 것 같은데 이해를 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예수님 승천하시기 전에 사도행전 1장에 보게 되면 그들의 마지막 질문이 너무나 주님 보신 한심한 질문이었어요. ‘이스라엘을 회복할 때가 바로 이때이이니까?’ 그 말의 의지는 뭐예요? 더 이상 고생하기 싫다. 라는 것이죠. 주님이 이 땅에 왕이 되어 주셔서 로마 제국을 뒤집어엎으시고 나에게 한 자리, 자기한테 한 자리 먹고 사는 것 더 이상 내일을 염려하지 않도록 해주시고, 그리고 핍박이 더 이상 없는 그러한 유토피아와 같은 그 날을 지금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고통 끝나고, 고난 끝나고, 지금 서부터 행복한 시간이 시작되는 겁니까? 아 ‘그건 너희가 알바가 아니다.’ 이해를 못한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현 주소입니다. 우리가 신앙을 갖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절망이라고 하는 이 ‘고난’이라고 하는 이 단어를 환영하지가 않습니다. 제자들과 같이 때로는 현재의 고난과 미래의 영광을 우리는 따로 따로 생각하고 해석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내가 지금 현재의 고난이라면 빨리 내일부터는 이 고난의 모든 기도 제목들이 없어지고 어려움이 없는, 절망이 아닌 희망의 삶을 빨리 살기를 우리는 원하는 것이죠. 그 제자들도 현재의 고난 따로, 미래의 소원과 희망 따로, 저희들이 보았기 때문에 그렇다면은 제자들뿐만 아니라 우리도 마찬가지죠. 현재의 고난을 복으로 여길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의 메시지가 그런 것일까요? 절대로 그렇지가 않죠. 우리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이루신 그 복음의 완성이라고 하는 그것은 여러분 잘 아시는 대로 십자가의 고난 따로, 부활의 영광 따로, 그렇게 볼 수가 없습니다. 복음이라고 하는 것은 십자가의 고난,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 그리고 같이 함께 보는 것이 부활의 영광인 것입니다. 이것은 함께 함께 우리가 봐야 되는 중요한 실체인 것이죠. 그래서 바울도 우리가 루스드라에서 사도행전을 보게 되면 돌에 맞아 거의 죽어 죽을 뻔한 상황 가운데에 다시 일어나게 되죠. 둘러싼 제자들 앞에서 다시 옷을 털고, 그 피투성이 된 몸을 가지고 바울이 이렇게 말을 합니다.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 있어라. 너희들이 지금 보는 이 고난 자체가 고난이 아니야. 무슨 믿음입니까?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반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야. 너무나 자연스럽고 너무나 당연한 일이야. 고난을 피하라는 말을 절대로 사도 바울은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복음을 왜? 나와 같이 고난을 받으라. 라고 얘기를 했어요. 왜냐하면 고난과 영광은 함께 보는 것이기 때문에 그래서 사도바울은 항상 우리들에게 항상 기뻐하라. 주 안에서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옥중에 있어도 모든 상황 속에서도 그것을 절망으로 보지 않고 주님 안에서 우리가 기뻐할 수 있는 그 영광의 실체를 날마다의 삶 가운데에 그는 적용할 수 있는 믿음의 능력이 있었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1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여러분, 너무 어려운 말이죠? 저도 끊임없이 적용해야 되는 너무나 어려운 말씀이 그래서 이 말씀을 가지고 나온 거예요. 저를 위한 설교예요. 그렇지 않으면 범이 힘드니까. 바라기는 저와 여러분이 이러한 믿음의 사람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그런 차원에서 볼 때 오늘 본문 말씀은 처음에 우리가 들으면 참 좋은 말씀 같지만 너무나 이해하기가 힘든 그런 어려운 말씀이 아닐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 11절 이 말씀은 유명한 말씀이고 정말 구약에서의 요절 같은 말씀이라고 말씀할 수는 없지만 그렇지만 요절과 같은 이 말씀이라고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이 29장 11절 이 말씀 우리 한 번 다 같이 읽도록 하겠습니다. *예레미야 29:11, 1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 아 재앙이 아니라 너희에게 희망과 미래를 주는 것이다라고 말씀하고 있어요. 참 믿기가 힘든 말씀입니다. 왜냐면은 구약 전체 가운데 가장 어두웠던 시간이 바로 이 시간이거든요. 예레미야 선지자가 사역하던 이 시기는요 북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남 유다 총체적으로 가장 어둡고 절망스러운 시간이 모든 색깔이 다 다 틀렸어요. 다 어둠 흑암의 색깔이었어요. 소망이라고 하는 빛은 단 한 줄기도 존재하지 않았던 시기가 바로 이런 시기였거든요. 그래서 이 예레미야 선지자를 눈물의 선지자라고 말을 합니다. 52장에 걸친 이 긴 예언서 52장을 눈물로서 쓴 것도 모자라 ‘예레미야 애가’라고 하는 ‘돌레멘트’ 눈물이거든요. 오 하나님이여, 주여, 어찌하여, 어찌하여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그 모든 현실들을 보면서요. 눈물로 다섯 장을 더 써야 되는 여러분 그 에레미야 선지자의 시대가 바로 그런 시대였었어요. 이분의 성정 자체가 갱년기기 때문에 눈물이 막 나오는 이게 그런 게 아니에요. 그런 게 아니에요. 당시 모든 이스라엘 상황 자체가 그에게도 하나님의 모든 사람들에게는 절망이다. 그런 시기였어요. 북 이스라엘은 이미 100여 년 전에 앗수르에 의해가지고 멸망했어요. 그렇게 그렇게 그렇게 예언을 해도 안 된다. 그들은 뭐 설 자리도 없어요. 사마리아 다시 예루살렘에 돌아올 수도 없고 열 지파들은 완전히 방황한 비참한 생활을 합니다. 저 봐라 예리미아는 끊임없이, 끊임없이 그것을 거울로 삼고 하나님 앞에 돌아와야 된다. 라고 이야기를 아무리 얘기를 해도, 남 유다 백성 가운데 그 말을 듣고 돌아오는 사람이 없었어요. 예레미야서를 쭉 보게 되면은 정말 예레미야 얼마나 힘들었을까 조롱당하죠. 오히려 핍박받죠. 진리를 말하는 것 때문에 때는 땅에 구덩이를 파가지고 몸에 들어가서 얼굴만 내놓고 얼마나 고통을 당하는지 모릅니다. 하나님 앞에서 끊임없이 우상을 섬기고 죄를 짓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전하고 하나님을 전하기 싫어요. 그래도 전해야 되고, 그러한, 그러한 상황 가운데에 그의 눈에서 눈물이 매말되기 전에 그의 눈으로 직접 유다가 바벨론에 의해가지고 완전히 망하게 되는 그것까지도 보게 됩니다. 무너져 내린 예루살렘 도성 완전히 파괴된 예루살렘 성벽, 모두 타버린 하나님의 영광이 마치 떠난 것과 같은 예루살렘 성전, 그다음 세대의 유일한 소망이었던 다니엘을 비롯해서 많은, 많은 젊은이들이 다 포로로 잡혀갔어요. 먹을 것도 없어요. 기근이 왔어요. 예레미야서를 보게 되면 도저히 입에 담을 수 없을 만큼 비참한 그 부녀들이 자식들을 삶아 잡아먹을 정도로, 도대체 이것이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의 삶의 모습인가 할 정도로, 그 바닥이라고 하는 것은 부터 푸터코스, 완전히 파산된 상황이에요. 아니 이런 상황 가운데 하나님께서 지금 뭐라고 말씀하세요?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라.” 어떻게 하면을 할 수 있냐고요 재앙인데 절망인데 이렇게 지금 당하고 있는데 이런 비참한 삶을 살고 있는데 재앙이 아니라고요? 미래의 희망이라고요? 너무 힘들죠. 말씀 어려운 말씀이에요. 사랑의 교회는 듣는 귀가 굉장히 높다고 제가 알고 있거든요. 그럼 어떻게 하면은 절망을 나중에 이루어지는 희망을 바라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 절망 자체에서 우리가 어떻게 지금 내가 희망을 품고 살아갈 수 있을까?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저는 크게 두 가지로, 여러분과 함께 나누면서 잘 적용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이 있는 줄로 믿습니다. 첫 번째는 내가 누구의 말 누구의 말에 절대적으로 귀를 기울여 듣느냐? 가 우리의 미래 이미 결정이 된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미래가 이미 결정이 된다. 라고 하는 것이고 오늘 본문 말씀을 한번 자세히 보십시오. 오늘 본문 말씀을 보게 되면 감춰져 있는 것 같지만 끊임없이 계속해서 반복하면서 강조하는 말씀이 이 가운데에 나타납니다. 보실까요? 우리 10절을 보게 되면 이렇게 시작하죠. *예레미야 29:10, 10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할렐루야!11절에 보게 되면 이렇게 시작합니다. 1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14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는 너희들을 만날 것이며 너희를 포로된 중에서 다시 돌아오게 하되 내가 쫓아 보내었던 나라들과 모든 곳에서 모아 사로잡혀 떠났던 그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할렐루야 14절에 보게 되니까 보니까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4절 마지막 부분에도 보니까는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구의 말씀이라고요? 누구의 말씀이라고요? 여호와의 말씀, 여호와의 말씀이다. 너희들 믿지 않지? 재앙으로 생각하지 소망이 없다. 라고 생각하지 ‘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 주권적인 하나님께서 지금 이 말씀을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극적인 절망의 시간을 만나게 되면 하루살이와 메뚜기와 같이 내 일에 대해서 희망을 걸 수가 없죠. 내년에 대해서도 미래가 보이지 않아 쉽게 좌절하고 두 손을 우리 떨어뜨립니다. 우리의 나약함이죠. 그러한 저와 여러분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그러면 안 된다 그러지 말라고 왜냐하면 내가 너의 향한 나의 생각은 그것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이 동의하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음성이 지금 이 시간 저의 영혼 가운데에, 여러분의 영혼 가운데에 믿음으로 들리게 되면 여러분의 미래는 보장이 되는 것입니다. 미래의 영광은 이미 여러분들의 것이 되는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이 말씀을 지금 하시고 계시는 하나님은 여호와 하나님 어떤 분이실까요? 스스로 존재하신 하나님, 창세전부터 계시고, 영혼 끝까지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이세요. 하나님에게는 하루가 천 년 같고, 또한 천 년이 없는 거와 같은 하루와 같은, 그런 분이십니다. 저와 여러분의 검은 머리 흰 머리 다 아세요? 몇 개인지, 매년마다 늘어가는 주름살이 얼마인지, 다 수도 없이 잠 못 이루시는 밤 가운데. 수만 가지 생각 속에서 염려하시고, 근심하시는 그 모든 것 작은 신음으로 탄식하며 기도하지 않아도, 기도하기 전에 우리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은 그냥 위로의 말씀만 하시는 분이 아니세요. 절대로, 두려워 말라 걱정 말라 그렇게만 말씀하시는 분이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은 어떻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인지 아세요? 약속으로 분명하게 말씀하시는 분이시고, 그 한 번 하신 약속은 반드시 하나님께서 성취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희망의 메시지를 절망 가운데에 지금 선포하시고 계시는 것이거든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 여우가 말씀하시는 여호와께서 어떤 말씀을 약속 가운데에 성취를 위하여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오늘 10절 말씀이 이 보석과 같은 말씀인 것입니다. 10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참여하 약속이에요.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널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신 약속 성진이 이루어졌습니까? 안 이루어졌습니까? 다 이루어졌죠. 지금 이 상황 속에서는 이루어질까“ 라고 의심할 수 있지만은 우리가 시간을 지나가 보면 모든 성경의 역사들은 다 약속하셨고 성취하셨고 약속하셨고 성취하셨고 약속하셨고 성취하셨고, 요한 계시록까지 그 패턴으로 가는 것이죠. 이 말씀을 예레미야가 하나님으로부터 듣고 기록하면서 많은 눈물을 흘렸을 것 같아요. 다른 차원의 눈물인 것이죠. 하나님 하나님이 이미 칠십년이라고 하는 딱 시간을 두고 계셨었군요. 이 가운데 하나님의 깊은 뜻이, 하나님이 사랑하는 저와 우리 가운데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있으셨군요. 아 70년까지군요. 이것은 반드시 이루어질 줄 믿습니다. 하는 마음으로 그 어렵고 힘든 가운데 이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소망이 되고, 희망이 된 것이죠. 이루어질 것이 아니라 이미 이루어진 걸로 믿고 살아가는 그 믿음을 발견하게 된 것이죠. 어떻게 보면 다니엘도 어떻게 그 상황에서 이겨낼 수 있었을까 뜻을 정하고 신앙을 지켜낼 수 있었을까 그 바벨론 강가에 수도 없이 눈물을 흘렸던 그 에스겔 선지자도 어떻게, 어떻게 신앙을 지켜나갈 수 있었을까 다른 것이 아닙니다. 절망을, 절망으로 본 것이 아니라 70년이 참여한 반드시 성취하실 그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이미 성취된 것으로 믿고 저희들은 살아간 것이죠. 이렇게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통해서 그대로 일하시고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나는 소망이 없어, 아무리 기도해도 안 돼 이런 말씀 하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들이 여러분들에게 당신 희망 없어 그 말에 귀를 기울이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하나님은 절대로 우리들에게 그런 말씀을 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들에게 끊임없이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약속하시고 성취하시기를 너무나 기뻐하십니다. 제가 청소년 시절 미국에서 1.5세로 14살 때 미국으로 들어가서 이민으로 들어가 살면서 참 어렵게 살았어요. 너무너무 가난하게 힘들게 살았어요. 믿지 않으시겠지만 정말 그랬어요. 밤 8시부터 형 따라 2시까지 방청소 항상 다녔고 저는 이제 중학교 2학년 되면서 3월에 학교 가지 마 왜냐하면 6월에도 미국 가니까 그래서 안 갔어요. 안 갔다가 이렇게 애들이랑 놀다가 미국에서 9월 달이면 2학년으로 들어갔는데 부모님이 교육에 관심이 없으셔가지고 제가 3학년으로 들어가 버렸어요. 그러니까는 영어가 전혀 안 된 상태에서 중학교 3학년 책을 받았더니 이거 완전 외계인 글씨예요. 도저히 이해를 못하게 제가 그때 한국에서 배운 영어는 몇 마디밖에 없었는데 ‘아임 어 보이’ 라 근데 이거는 미친 소년도 그렇게 영어를 안 하거든요. 어떤 미친 소년의 아임 어 보이’로 그런 영어가 없어요. 그런 영어 배우고 왔거든요. 써 먹을 수도 없고, 아무튼 그런 어렵고 힘든 상황 가운데에서 저희 아버님이 참 훌륭하신 목사님이셨어요. 50세에 일찍 돌아가셨어요. 너무나 훌륭하신 목사님이시기 때문에 몸을 안 돌보시고, 저희 아버님은 실은 이북 분 출신이신데, 평양 산정현교회에서 교역자님이 있었어요. 당시는 항상 주기철 목사님과 같이 순교하기를 굉장히 로망 하셨어요. 주기철 목사님 같이 있고, 주기철 목사님 같이 성령을 항상 가슴에 다 다니시고 그래서 이게 잡혀 들어가면 너무나 행복하셨대요. 나도 순교하나 보다. 그래서 온갖 고문을 참으려고 노력하는데, 고문을 하긴 하는데, 급이 다르니까 금세 내보내더래요. 금세 내보내고, 그래가지고 저희 아버님이 상처를 받았어요. 다른 것이 아니라, 순교의, 순교의 그릇은 따로 있구나. 그래가지고 그것을 인정하셨고, 대신에 하나님, 저는 설교하다가 그러면 강단에서 데리고 가서 그래서 그대로 하나님께서 들어주셨어요.,저는 설교 강단을 그래서 나름 순교로 생각한 아버님이 어저께 우리 고 오상진 목사님의 그 영정을 보면서, 참 우리 옛날 어르신 목사님들은 이렇게 참 훌륭하다. 그런 마음 저희 아버지는 너무나 훌륭하셔서 청빈하셔서 돌아가시면서 남겨놓은 거 숟가락 하나 젓가락 두 개, 어머님 그다음부터 공장 나가시고 살 집이 없어져가지고요. 저 형들이 알아서 살았어야 되고 그다음에 저와 누님들과 어머님은 어디서 살았냐면 3년 동안 청소년 시기에 잘 사는 친구 집 뒤에 그라지 자동차 주차하는 그라지에서 3년 동안 살았어요. 안 믿어지시죠? 그라쥐은 자동차가 사는 곳이 사람 사는 곳이 아니에요. 3년 동안 거기서 살았다니까요. 저만큼 고생한 사람 없어요. 정말로 예 생긴 게 고생 안 한 것처럼 생겨서 그렇지 고생 많이 했어요. 여러분 정말로 고생 안 한 것도 생긴 것은 다른 이 우리 어머님 쪽을 닮아서 그래요. 어머님 쪽이 다 귀티 나게 생겼어요. 좀 이렇게 외삼촌들 보면 다 의사들이에요. 황해도 다 의사들이고 보면 홍콩 무비스다 같다. 뭔가 있어 보이고 그쪽을 제가 조금 닮았어요. 그러다가 하나님이 저를 만나주셨어요. 인격적으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어요. 못된 모태 신앙에서 거듭나게 된 것이죠. 그러면서 2년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보는 은혜를 주셨어요. 저는 성경에 나오는 모태 신앙이라서 지식도 많이 나름대로 성경 기준에 1등 놓지 않기 위해서 알았지만 성경에 나오는 모든 기적들 다 믿었어요. 홍해 가르는 것 정말 믿었고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거 다 믿었고 부활하신 것 다 믿었어요. 한 가지만 안 믿었어요. 말씀이 꿀 송이보다 달다는 거 그건 제가 안 믿었어요. 말이 안 돼요. 그래서 그거는 안 믿었거든요. 근데 정말로 거듭나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꿀 속에 같이 단 거예요.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는데 2년 동안 그 말씀을 아침, 저녁 보면서 하나님과 대화하면서 내가 이런 죄를 졌군요. 빨간 줄을 긋고 회개를 했어요. 그다음에 이 말은 너무나 좋습니다. 이렇게 살게 해주세요. 약속의 말씀 파란 줄을 긋고, 그렇게 제가 기도하면서 내 삶을 축복하면서 이렇게 변화가 일어난 거예요. 그러다가 어느 아침에 어느 날 아침에 하나님 말씀을 또 묵상하는데 갑자기 어느 한 구절이 이렇게 올라오는 것과 같아요. 뚜리디, 알아들으시죠? 오정현 목사님 3d라고 말씀하시는데 뚜리디, 뚜리디, 올라오는 말씀인데 이게 저는 장로교 목사 아들이기 때문에 저 신비한 거 많이 안 믿었는데, 정말 그래요. 아무리 눈을 뒤져도 똑같이 올라 그래서 하나님의 마음의 감동이 주신 말씀이 이 말 먹어라. 내가 니 삶을 향한 내 약속의 말이다. 가진 것 아무것도 없는 일 1,5세, 가난뱅이 몸도 없는 저에게 하나님께서 이 말씀 먹으라는 거예요. 근데 그 말씀이 무슨 말씀이었냐면 창세기 12장 3절 말씀이었어요. *창세기 12:3,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저한테 잘하세요. 그 말을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그만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에요 예 그러면 저는 저주받은 목사죠. 그 다음에 나오는 이 약속의 말씀이 너무나 기가 막혔고 도저 제가 이해를 할 수가 없었어요. 땅의 모든 족속이 땅의 모든 족속의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저는 그 당시 때 이 말씀이 내가 아니다 이렇게 생각했어요. 근데 먹으라고 하시니까 마음에 담고 안 먹어도 혼자 볼 거 없잖아요. 먹었어요. 정말로 누가 보면 미친 사람인 줄 알았을까 그리고 그 약속을 믿고 선포했어요. 그다음부터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가시는데, 계단과 같이 여러 가시는데 ‘케이스 m’이라고 하는 학원 단체를 만들게 하시고 그 단체를 통해가지고 12개국의 나라들을 단기 선교로 갈 수 있는 은혜를 80년도 중반부터 허락해 주셔서 사람에게 와서 사역하면서 얼마나 열방을 나중에 축복하기 위해서 복을 받고 복 받고 복을 받고 복을 받고 복을 받고 복을 받았어요. 너무나 귀한 글로벌 리더들 다 만나게 해주시고 통역도 하게 하고 어머니 큰 은혜를 주셨어요. 그래가지고 인도네시아까지 저를 보냈잖아요. 아시나요? 인도네시아 제가 한 6년 7년 사역하면서 거의 선교적 교회에서 선교 많이 하도록 하나님이 은혜를 주셨어요. 이용규 선교사님 그 기적과 같은 제 아이유 작가는 인터넷 유니버스는 저랑 같이 함께 시작하도록 은혜를 주셨고, 삼진 교회 세우는 일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아름다운 일들을 너무나 많이 행하셨어요. 이 무슬림 중에서 가장 강성 부족 중에 하나, 국제 선교에서 얘기하는 미전도 종족 중에 하나가 ‘순다족’이에요. 인도의 순다족 정말 자존심 강한 분들인데 가사를 돕는 식모 자매가 순다족 무슬림이었어요. 그러니까 저는 불쌍하죠. 교회도 가서 잘해야 되고 집에 와서 더 잘해야 되고 기독교를 믿는 목사는 어떻게 사나 정말 힘들었어요. 근데 하나님이 참 피곤하게 역사하시잖아요. 그래도 난 끝까지 모든 족속에 노래는 복을 받을 것이다. 그러니까 아 이래서 이런 거구나 그래가지고 그냥 잘해야 되잖아요. 나중에 너무나 좋은 열매를 주셨고 지금은 뉴욕에 가서 저 고생 엄청 합니다. 아무튼 뉴욕 가서 거기 수많은 여러 다민족들이 다 모여 있는 세계에서 ‘뉴욕’이라는 곳이 1년에 거의 5,700만에 1년 동안에 지난 23년 동안 왔다고 그러더라고요. 150개국 이상의 나라 제가 있는 지 쿠윈스라고 하는 지역은 그래서 다민족들이 가장 많이 사는 곳이에요. 우리 교회도 그래서 다민족을 위해서 열어놓고 많은 사역들을 합니다. 모든 난민 분들을 위해서도 사역하고 몽골, 그다음에 뭐 여러 여러 나라들 얼마 전에는 땅 끝이라고 하는 이 북한 탈 북민 목회자들, 처음으로 뉴욕에 오셔가지고 우리가 열심히 섬기고 간증 또 집회하면서 큰 은혜 받고 또 그것이 좋다고 그래가지고 또 뉴욕장로교회로 또 오세요. 그래가지고 이번에 탈 북민 신학생들, 와서 간증하고 은혜를 같이 함께 나누고 섬길 수 있고 이 모든 것이 무엇이냐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성취되는 과정 가운데에 제가 있는 것이죠. 근데 너무 힘들어요. 중요한 것은 하나님 나라의 시각은 이미와 아직 사이에서 따로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하나거든요. 복음이 죽음과 부활의 하나이듯이 무슨 말일까요? 저는 이 말씀 약속대로 하나님께서 움직여주세요. 죽을 때까지 움직일 거예요. 무엇을 이루었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섰을 때 하나님은 고맙다. 모든 족속이 너로 인하여 축복을 받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래에 바다의 모래와 같이 하늘의 별들과 같이 살 수 있나 봐라. 저는 그 영광의 자리에 이미 간사람 같이 살아요. 현실은 너무 힘들어요. 저 미치지 않았거든요. 여러분 하나님은 그런 분이세요. 작은 일서부터 큰일까지 저는 말씀을 이제 마치겠습니다. 하나님은 왜 고난의 칠십년이라는 시간을 허락했을까? 잘 들어보세요. 하나님이 저들을 만나고 싶어서 허락하신 거예요. 저들의 인생 가운데에 다른 것이 있는 것이 아니잖아요. 그 인생을 창세전부터 아신 하나님, 손바닥에 새긴 하나님의 선택된 자녀들, 저와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나를 네가 만나야, 네 인생이 내가 원하는 길로 갈 수가 있어.’ 이스라엘 백성들이 70년이라고 하는 세월을 겪게 된 아픔의 모든 것은 하나님을 계속해서 피하고 만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것이죠. 저희들이 예배 가운데도 하나님이 없어요. 만날 수가 없어 기도에도 하나님을 만날 수가 없었어요. 하나님 이것이 너무나 가슴이 아팠던 거예요. 어떻게 하면 이 백성들이 다시 나를 깊이 만날 수 있을까? 그래서 70년이라고 하는 이 시간을 하나님이 특별하게 디자인하신 것이죠. 70, 완벽한 하나님, 온전하신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그 시간을 통해서 만나도록 하기 위한 것이죠. 저는 말씀을 이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서 12절, 13절, 14절에 그것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29:12-14, 12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13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14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는 너희들을 만날 것이며 너희를 포로된 중에서 다시 돌아오게 하되 내가 쫓아 보내었던 나라들과 모든 곳에서 모아 사로잡혀 떠났던 그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할렐루야 기도하도록 하기 위해서, 부르짖어 나의 얼굴을 구하도록 하기 위해서, 절망의 시간을 주는 것이에요. 그래서 내가 너를 만날 것이다. 내가 너를 만날 것이고 나를 만나게 되면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게 뭐냐면 평안의 축복이, 평안, 재앙이 아니다. 평안이다. 나의 평안 나의 평안이다. 제자들이 여러분 십자가에 죽으신 다음에 예수님 다 절망으로 생각했어요. 문을 꼭꼭 닫고 우리도 예루살렘에 가면 잡혀주고 맞아주고 다 숨어 있었어요. 예수님이 부활하신 다음에 영광의 몸으로 제자들 가운데 나타나서 처음 하신 말씀이 뭔지 아세요? 샬롬, 평안하뇨? 내 평안을 내게 주노라 성령을 받으라. 평강해졌어요. 평안은 땅 끝까지 내가 너희와 함께할 것이다. 세상 끝 날까지 내가 너희와 함께할 것이다. 하나님은 한 번도 이스라엘 백성을 떠난 적이 없어요. 그렇지만 저희들은 떠났죠. 그러니까 마음에 평안이 없는 곳이죠. 하나님은 ‘너희들은 나를 만나야 돼. 나를 만나야 내가 너와 함께할 것이고,’ 내가 너와 함께해야 너희들은 세상에 줄 수 없는 평안으로, 절망을 고난을, 고통을, 고통을 생각하지 않고 나와 함께 그 평안을 가지고 말씀을 성취하시는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므로 이 땅에서 우리의 날마다의 삶이 죽어서 천국 가는 그 신앙을 뛰어넘어서, 이미 내 안에 임한 하나님의 나라의 신앙으로 십자가의 죽음의 고난과 부활의 그 영광이 내 삶 가운데 복음의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그러한 평안이 절대적으로 다스리고 하나님의 주권적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전적으로 나를 통치하고 다스리시는 지금의 절망이 미래의 희망이 되는 삶으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날마다 이 은혜를 경험하시는 저와 여러분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요약 절망의 상황 속에서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는 주님의 음성으로 듣고 절대 소망을 가진 믿음의 길로 걸어가며 인생의 모든 길을 주님께 전적으로 위탁하여서 간절한 기도와 간구로 하나님의 응답을 체험하여야 한다. 우리의 삶 가운데에 기가 막힌 절망, 모든 삶,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지금의 미래의 희망과 믿음과 평안을 다스리는 인생이 될 수 있기를 간구해야 한다. 사랑하는 아버님을 먼저 천국에 보내고 슬픔에 잠겨 있는 우리 오정현 담임 목사님과 모든 유가족 가운데, 모든 장례 절차 가운데 절대적인 하늘의 평안으로 하나님 붙들어 주시길 기도하자. --유다의 바벨론 포로 기간은 70년으로, 이는 바벨론의 지배력이 3대 동안 계속되리라는 말씀의 성취였다.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의 멸망(주전 612년)에서 바벨론 멸망까지는 73년이며 느부갓네살이 즉위하던 해(주전 605년)부터 바벨론 멸망까지는 66년이다.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구원이 다가오고 있을 때, 우리는 기도함으로써 그 구원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한다.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으므로 우리는 그 말씀을 의뢰할 수 있다. '찾으라, 그리하면 얻을 것이다.' 우리가 좌우명으로 삼을 말씀이 여기에 있다.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라고 하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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