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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비전새벽예배(주후 2022년 4월 2일)

제목: "영원히 의지하리라"
말씀: 시편 51:1~9
말씀읽기:박성식 형제(청년4국), 최라엘 자매(청년 BSC)
찬양인도: 오준석 전도사님(쉐키나)
사회: 이원준 부복사님
 
설교자: 강은도 목사님-초빙(더푸른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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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52:1~9,
1 포악한 자여 네가 어찌하여 악한 계획을 스스로 자랑하는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항상 있도다.
2 네 혀가 심한 악을 꾀하여 날카로운 삭도 같이 간사를 행하는 도다.
3 네가 선보다 악을 사랑하며 의를 말함보다 거짓을 사랑하는 도다(셀라).
4 간사한 혀여 너는 남을 해치는 모든 말을 좋아하는 도다.
5 그런즉 하나님이 영원히 너를 멸하심이여 너를 붙잡아 네 장막에서 뽑아 내며 살아 있는 땅에서 네 뿌리를 빼시리로다(셀라).
6 의인이 보고 두려워하며 또 그를 비웃어 말하기를.
7 이 사람은 하나님을 자기 힘으로 삼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 재물의 풍부함을 의지하며 자기의 악으로 스스로 든든하게 하던 자라 하리로다.
8 그러나 나는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 같음이여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영원히 의지하리로다.
9 주께서 이를 행하셨으므로 내가 영원히 주께 감사하고 주의 이름이 선하시므로 주의 성도 앞에서 내가 주의 이름을 사모 하리이다.
 
▶고향이 부산이다 어렸을 때부터 서울 말씨 쓰는 사람들 앞에 있으면 대게 불편하다. 이곳 담임목사님과 같은 계열이라 크게 게의 치는 않지만 소개의 말씀이 좀 부담스럽긴 하다. 평생을 매진했다라고 하면 여기 어르신들도 훨씬 많은데 제가 민 증을 까면 제가 이제 오십 둘이다. 목사 된지 한 이십 년 되었다. 저보고 아직도 젊은 목사라 그러는데 도대체 나이를 얼마나 들어야 젊은이라는 이야기를, 마음은 정말 청춘이다. 그런데 아침에 약을 한 주먹씩 먹는다. 몸에 좋은 거란 것은 다 먹고 있다.
 
저는 시편을 볼 때마다 그런 마음이 든다. 살아가시다보면 어려움도 오고 좌절도 오고 기쁨도 오고 행복한 일도 많다. 그런데 사람들에게는 오늘 얼마나 어려운 일이 있나? 아니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이 있나? 이것보다 그게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느냐가 더욱 중요한 것 같다. 누군가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가? 유명한 문학 작품이나 훌륭한 작품은 깊은 사연을 남긴다는 이야기가 있다. 우리 각자 각자가 사연이 있으니까 이 토요일 날 좋은 아침, 이 아름다운 아침에 예배당에 나왔다. 대게 슬픈 이야기이다. 왜냐하면 여기 나왔다고 하면 뭐가 안타깝다는 이야기이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아니면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저는 눈 떠보니 기독교 4대 집안에 태어났다. 종교는 자발적으로 선택해 본적은 없다. 아버님이 미리 정해 놓으셨더라. 그리고 아버님이 목사님이시다. 목사님이신데 종류가 많다. 해병대 나오시고 늘 말씀을 창세기처럼 사시는 분이시다. 부엌에 한 번 들어가시는 일도 없으시고 늘 말씀을 이렇게 하신다. 집이 와 이리 더럽노? 하시면 어머님을 청소하시고 배가 고프면 밥상이 들어오는 창세기 1장에 “빛이 있으라 하시매.” 하시는 것처럼 그렇게 말씀하신다. 창세기처럼 단 하루라도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다.
 
제가 중간에 낀 세대가 되니 집에 오면 아내 눈치를 보게 된다. 어려서 이렇게 밖에서는 그렇게 말을 잘 하는데 집에만 가면 말을 자꾸 버벅 댄다. 엄마 앞에만 가면 딸아이의 말에 의하면 그게 아니라고 하면서 그게 아니라고 한다. 주님이 빨리 오셨으면 좋겠다. 하루에 가정예배를 두 번씩 드리면서 살았다. 여섯시에 한 번 저녁 아홉시에 한 번, 요즘 애들이 이러하더라구요. 그게 가능하냐고들 했다. 어렸을 때는 뭐든 가능했다. 많이 왔다보면 많이 모든 게 가능해진다. 그리고 아버님이 데카르트 같은 분이셨다. 존재하는 모든 것을 의심하셨기 때문이다. 성경을 3장을 읽고 주일은 일곱 장을 읽고 난 다음에 문제 다섯 문제를 내 주셨다. 그래야 밥 주는 그런 희한한 집이었다. 저는 개인적으로 고난 주간을 대게 싫어했다. 어머니가 밥을 안 주셨다. 물어보니 경상도 분들의 특징이 설명하는 단어가 좀 부실하다. 그런 환경이 아니다 보니 엄마께 왜 밥을 안주냐고 했더니 대답이 “그런 게 있다.” 이렇게 말씀만 하시는 것이다. 아주 어릴 적에 말씀을 하시는데 충격이었다. 다른 말씀도 하셨을 텐데 제 머릿속에 남았던 기억은 이런 것이다. 예수님이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그 살아계신 것 아니냐고 물었더니 일 년에 한 번 씩 돌아가신다고 하셨다. 굉장히 혼란스러웠다. 교회에서는 예수님이 살아계시고 우리와 함께 하신다고 하는데, 갑자기 돌아가셨다고 하니, 도대체 어디에 장단을 맞추어야 할지 대게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며칠 굶고 나서 수고했다고 아침에 계란 두 개를 주시면서 도대체 뭔가를 생각을 가졌던 것이다. 그러다가 초등 4학년 때, 전도사님이 설교를 하시면서 우리는 천국에 갈 거라고, 천국에서 영원토록 예배를 드릴 거라는 말씀이 너무 충격이 되었다. 그래서 아, 이제 종교를 바꾸어야겠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초등, 중 고등 때도 마찬가지이다. 대게 많이 혼란스러웠다.
 
저희 집안에 목사님이 30명이 된다. 저희 집은 당회 구성이 안 된다. 장로님이 안 계시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아들이 나중에 장로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처음으로 해보았다. 절대로 목사님이 안 된다고 했기에 목사는 하지 말고 돈을 벌었으면 좋겠다고 말을 했다. 반복 적을 이야기 했다. 어떻게 하다보니까 저희 집안을 하나님께서 여기 저기서 사역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셨는데, 그런데 있다. 기독교 메인도 있고, 사이드에서 일하는 분도 계신다. 저는 어떻게 하다 보니 30년 넘게 사이드에서 정말 답 없는 청소년 사역을 했다. 하면 안 된다. 여기 이렇게 많은 분들이 새벽에 오지 않았는가? 솔직히 이러한 설교는 하루에 열 번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기독교 3D 업종이 있다면 바로 청소년 사역이다. 그 애들은 천 명, 이천 명 연합집회에 모인다. 그러면, 그 애들을 전문용어로 바벨론포로라고 이야기 한다. 절반 정도는 왜 왔냐고 물어보면 엄마가 안 가면 죽인다고 해서 온 아이들이다. 절반 정도는 교회 오면 오만 원 받기로 했다고 하는 아이들이 많다. 심지어 설교를 드러누워서 듣는 아이들도 있다. 우린 놀라지 않는다. 고객님이 많이 불편하시는구나!!, 고객 감동, 고객 만족, 어차피 누워서 설교를 듣는 사람도 있다. 성경에 보면 ‘중풍병자’라고 어차피 일어나면 되니까... 참 뭐가 그렇게 좋았는지 지방 삼류 무대에 무지하게 돌아다니면서, 집회하면서 제일 작게 모인 적은 3명 모여서 집회를 한 적이 있다. 선배 모사님이 그러셨다. 제가 얼마나 소리를 질렀는지, 밖에서 한 삼천 명이나 모인 줄 알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한테는 그 아이들이 삼천 명 같았다. 그때는 제 인생에 전부인 것이라고 고백하고 살아갔다.
 
제 아버님도 개척을 세 번을 하셨다. 개척을 세 번을 하셨다는 것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겠다. 이제 나이 80이시고 원로 목사님이시다. 이제 보통 이제 아버지가 고생하면 다음 세대는 많이 봐주실 것이라고 이야기를 많이들은 것 같은데 하나님이 꼭 그런 식으로 역사하시지는 않으신다.
 
저는 28개월 전에 개척을 했다. 저는 설교에 대한 로망이 1도 없는 목사였다. 아버님이 맨 땅에서 해딩 하시는 것을 보고 자랐기 때문에 물론 기쁨도 감격도 있었지만 인격적으로 주님을 고등학교 1학년 때, 만났었는데 그런 기쁨도 있었지만 어디나 그림자 같은 부분이 있지 않는가? 하나님께서 참 은혜를 너무 많이 주시는 것이다. 이런 말씀을 여러분들께 드리고 싶은 마음이 있다. 주님이 지나치게 은혜를 주실 때는 긴장을 해야 한다. 자꾸 이상한 곳으로 끌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저는 개인적으로 안 먹는 음식이 그 중에 하나가 꽈배기를 먹지 않는다. 안 그래도 꼬이는 인생, 더 꼬이고 싶지 않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다. 아이스크림 중에 스크류 바를 제일 싫어한다. 하나님께서 역사를 하셔서 저보고 그러신다. 무슨 팬더믹에 개척이냐고들 했다. 개척을 하니 딱 2주 뒤에 선물로 코로나를 주셨다. 그분이 그런 분이시다. 아홉 명을 시작했다. 저희 가족들, 가족예배를 드리면서 아들과 딸이 있다. 제가 결혼이 좀 늦어서 첫째 고 3이고 딸이 고 1학년이다.
 
그런데 가족 예배를 드리면서 엄마 아빠가 개척을 하기로 했다고 이야기를 자녀들에게 했다. 그러니 우리 아들이 뭐라고 이야기 하냐면, 저보고 열심히 하시라고 자기는 딴 교회를 가겠다고 했다. 사랑의 교회에는 안 어울리지만 이 썩을 놈이 육 개월 간 다른 교회를 다녔다. 개척하자마자 놀라운 진리가‘ 믿을 놈은 아무도 없다.’를 하나님께서 깨닫게 해주셨다. 지난 28년 동안 많은 은혜를 주셔서 정말 놀라운 설명할 수 없는 은혜를 주셨다. 설명할 수 없는 이런 은혜를 받을 수 있나를 생각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잘 되는 일이 별로 없었는데 개척하고 난 이후에 이렇게 도와주시고 역사하셔서 많은 분들이 함께 모이고 공동체를 시작하게 되었다. 지난주에 우리 부목사님이 놀라셨다. 전체 출석이 467명 정도가 참여했다고 했다. 너무 감사한 일이다. 저는 한 번도 그분들을 한 공간에서 만난 적이 없다. 그래서 이제 1, 2, 3, 4부 예배를 드리는데 지금도 마음에 개척교회를 4개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정신 건강이 굉장히 이롭다. 어쨌든 여러 가지 고난이 있고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여러 가지 일들이 지나가지만 과연 우리의 삶에 무엇을 남기는가? 시편은 제가 보기에는 그리스도인들은 삶의 방식이 아닌가 한다. 힘들어도 어려워도 노래로 살아가는 사람, 우리는 그런 사람들이다. 죽음이라는 비통한 일을 경험해도 찬양할 수 있는 사람, 기쁨이 없고 즐거움이 와도 찬양할 수 있는 사람, 때로는 좌절이 와도 찬양할 수 있는 사람, 우리 모두 다가 시편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시편 52편은 이러한 부제가 붙어있다.
 
에돔에게 이르러 다윗이 사울에게 이르러...
이 시편 52편은 이러한 배경을 안고 있는 말씀이다. 다윗이 왕이 되기 전에 참 고난이 많았다. 먼저 선대 왕 이었던 이 사울 왕이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을 잘 알지 않는가? 엘라 골짜기에서 골리앗이 외치는 소리, 저는 성경에 있는 장면을 보면 몇 가지 중에 이 장면은 끊임없이 반복된다는 생각이 든다. 첫 번째 구약에서 굉장히 많이 강조되는 말씀이 있다. 어떤 말씀이냐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오랜 세월동안 노예 생활을 하다가 출애굽이라고 하는 것을 경험하게 하신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려워질 때마다 하나님이 약속하시고, 말씀하시며 반복해서 하나님은 설명하신다. “나 여호와는 너희가 이집트에서 종살이 할 때에 너희들을 구출한 여호와다.”
 
사실 믿음의 여정은 출애굽과 같다. 새로운 일에 대한 하나님의 인도하심,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는 낯선 은혜라고 하는 표현을 쓸 만큼 참 우리 인생 가운데 낯설게 인도하시고, 낯설게 인도하시고, 익숙함을 떠나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놀라운 낯섦에 은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우리가 거기 있을 때가 좋았을 것이라고 연발 끊임없이 말하고 살아간다. 결혼해서도 그렇다. 여러분 에덴동산인 줄 알고 남편을 만났다. 알고 보니... 남편들도 할 말은 많다. 여러분, 서로서로 다 마찬가지이다. 아기들을 낳고 어떤 마음이었는가?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주었다고 말한다. 악마 되는데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매일 성경을 묵상을 하고 있는데, 그저께까지 레위기였다. 우리 아들이 가만히 보면서 참 은혜롭게 묵상을 했다. 아들을 볼 때마다 번제로, 화목제로 바칠까를 집에 나무도 사다놓았다. 고난주간에 십자가에 확 못 박아 버릴까하는 생각이 많이 생각이 든다. 우리 집에 불신자가 두 명 있다. 아들, 딸이다. 전도를 하고 싶다. 아이들은 집회하면서 예수님을 알게 되었다고 하는데 목사 아들이라고 딸이라고 해서 그런지 참 마음 속에 여러 가지 기도 제목들이 많다.
 
다윗도 마찬가지였다. 엘라 골짜기에서 골리앗이 외치는 소리, 요즘 작금에 사랑의 교회에서도 우크라이나를 위해서 많이 기도하고 있는 줄 안다. 참으로 말이 안 되는 일이다. 정치적으로 어떻게 전쟁이 발생되었나를 그것에 대해서 말하고 싶지는 않다. 이 땅도 엘라 골짜기라는 생각과 또한 세상의 힘 있다는 지도자가 소리를 지르면서 하나님을 비방하고 마치 자신의 힘이 세상을 다 통치할 것처럼 이 세상이라고 하는 엘라 골짜기에 본인의 목소리를 가득 채우고 있는 모습들,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가 어카운트 펀지를 날리는 것이 쉽지 않다. 여러분 자본주의 한 바닥에 살면서 돈에 힘이 얼마나 큰지, 세상에 똑똑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뼈저리게 느끼지 않는가? 살아가다보면 어떻게 생각되는가? ‘나 괜찮은 사람이야,’ 라는 사람들도 여기 몇 분은 계시겠지만 대부분 다가 정상적인 뇌를 가지고 있다면 단지 아무것도 아니다. 하는 이런 생각 밖에는 할 수 없는 것이다. 살아가다보면 겁나게 똑똑한 사람이 있다. 제 제자 중에 한 아이가 공부를 잘해서 서울대 컴공학과를 들어갔다. 한 학기 마치고 나더니 한마디를 하더군요. “목사님, 제가 돌대가리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라고 했다. 제가 그렇게 대답했다. “너 어디 가서 그런 이야기 하지 말아라. 그럼 나는 새대가리이냐?” 라고 했다. 여자분들 화장한다고 여러분, ⅔를 가려서 그래도 이렇게 살아가는 거지, 자꾸 정부에서 마스크를 내리겠다고 하는데 그 전에 주님이 오셔야 된다. 아시지 않는가? 화장품이 잘못된 것 아니라는 걸,,, 헤어디자이너가 무슨 잘못인가? 지붕고친다고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남자 분들 웃지 마시라. 우리 이야기 하는 것이다. 똑 같다. 살아가다보면 너무 잘 난 사람이 많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느낀다. 우리가 이 토요새벽을 깨우면서 우리가 기도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이다. 물론 하나님이 눈에 보이지는 않다. 혹시 토요일에 왔는데 하나님이 눈에 보인다면 빨리 병원에 가보아야 한다. 위험하다.
 
여러분 보이지 않는 하나님, 그러나 살아계시고 역사하시는 그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것,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골리앗을 어떻게 이길 것인가? 골리앗을 어떻게 우리가 대항할 것인가? 거기에 포커스(focus)가 있지 않았다. 하나님의 질문은 똑같다. “너는 이 문제 앞에서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엘라 골짜기에서 외치고 있는 그 골리앗의 목소리에 40일 동안, 그 잘 난 수많은 사람들 중에 잘 난 사람들이 꽤나 있지 않았겠는가?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 단 한 명도 그 하나님의 질문 앞에 대답을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때, 그 답을 우리로 나이로 치면 중학교 3학년 컵라면 먹는 정도의 이 다윗이 뭐라고 이야기 했는가?
“저 이방인이 어찌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비방하고 하나님의 군대인 이스라엘을 비방하는가?”라고 하면서 이 어카운트 펀치로 그냥 끝난 것이다.
 
여러분, 믿음의 눈을 가지면 참 놀랍게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시선과 시각과 우리의 시야를 열어주신다. 왜 골리앗 앞에서 두려웠는가? 어마무시하게 컸다. 저희교회 부목사님들이 몇 분 계시는데 누가 그러셨다. 우리 교회의 부목사님들은 피지컬(physical) 보고 뽑은 것이 아니냐고 했다. 한 분은 키가 186센티에 몸무게가 110킬로 나가는 목사님이다. 그 다음에 또 한 분은 191센티에 119킬로가 된다. 우리는 신천지 교회를 물리치지 않는다. 죽여버린다. 거기다가 운동선수 출신이다. 한 분은 농구에 한 분은 축구하셨다. 한 번은 식사를 하러 가는데 저희가 양복을 잘 안 입고 가는데, 자꾸 제 귀에 비지엠이 들리는 것이다. 우 우!!~~ 풍문으로 들었소, 이게 느낌이 조폭 같다는 생각이 좀 들더라. 제가 키가 176정도가 된다. 아주 난장이는 아닌데 191센티 옆에 있으면 너무 작다. 2미터 8센티면 어떠하겠는가? 사람들이 다 녹아버린다. 진짜 잘 난 사람들 앞에 있으면 여러분, 내가 뭐를 좀 안다고 하면 정말 진짜 잘생기고 잘난 사람 옆에 사진 찍는 것 아니듯이,,, 졸지에 갑각류 된다. 그냥 그렇게 마스크를 눈까지 써야 된다. 그렇게 큰 사람 앞에서 다윗이 그런다. 믿음의 눈으로 보면 저 사람이 너무 크다고 생각하지만 다윗이 믿음의 눈으로 봤더니 겁나 크지만 생각하지만 여러분 물맷돌로 던지려고 생각해 보니 두려웠을 것 같다. 물론 천국 가서 확인해 보아야겠지만 진짜 썩을 놈 진짜 크네... 대충 던져도 맞겠다. 이게 믿음이다. 제가 볼 때, 다윗이 물맷돌을 던질 때 가장 손쉬웠던 존재가 골리앗이 아니었겠나를 생각된다. 일단 움직이지 않는다. 키는 겁나 크다. 면적이 엄청 넓다. 생각해 봐라. 이게 믿음의 생각의 전환이다. 자꾸 힘들어하지 말고 기도하면 실체가 보인다. 기도하면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더 뚜렷하게 우리의 마음속에 와 닿는다.
 
여러분 골리앗을 물맷돌로 치고 난 다음에 다윗에게 고난이었다. 사울이 그때부터 자기를 죽이려고 한다. 참 어려움 속에서 결국은 도망하게 된다. 이 이야기도 사실은 재미나게 할 수 있지만 시간이 40분이다 보니 이렇게 줄이겠다. 결국은 다윗이 도망을 가는데 어디로 가느냐면 노읍이라는 광야로 도망을 간다. 그 당시에 예루살렘이라고 하는 중앙집권체제의 개념이라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이 두 군데 곳이 있었는데 그 중에 한 곳이 노읍이었다. 이곳에 누가 있었냐면 아히멜렉이라는 제사장이 있었다. 여기가 엘라 골짜기와는 그렇게 멀지 않는 약 3.5킬로 떨어진 곳이었다. 다윗이 골리앗을 죽일 때, 어떻게 죽이는지 아시는가? 돌을 던져서 죽인 줄 알지만 마지막 생명을 끊은 것은 골리앗이 자랑했던 골리앗을 칼이었다. 상징성이 있다. 이 칼이라고 하는 것이 어마무시한 칼을 가지고 다윗이 칼을 가지고 소리를 질렀을 때, 어땠는가? 그 칼을 누가 가지고 있었냐면, 노읍의 아히멜렉 제사장이 그 칼을 보관하고 있었다. 물론 디테일하게 못하고 있지만 시간이 없는 관계로 다윗은 아히멜렉에게 간다. 다윗은 3일간 아무것도 못 먹고 마시지도 못한 체로 노읍 광야까지 간 것이다. 배고파한 적이 있는가? 금식 기도를 하면 놀랍게도 기도는 안 나오고 앞으로 많이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회개는 안 나오고 이런 생각이 든다. 지난번에 라면 국물, 자장면 소스 등등, 지옥 갈 죄를 지었다고 하면서, 자꾸 먹는 것만 생각이 난다. 잠을 자도 밥 먹는 것만 생각나고 잠도 많이 온다. 여러분, 사람이 그것만도 힘든데 죽어라고 도망가면서도 잠도 못 자고 못 먹고 그 궁지에 이르렀을 때 얼마나 배고프고 힘들었겠는가? 먹을 것을 주십시오! 라고 하면 아히멜렉이 하필이면 이때 왔냐고 하면서 아무것도 없다며 있는 것이라고는 진설병 밖에는 없다고 한다. 그 진설병이라고 좀 달라는 것이다. 이것은 레위기에 보면 제사장만 먹는 것이다. 다윗은 잘 알다시피 유다지파 사람이다. 말이 안 된다. 아히멜렉이 보니 너무 곤경에 처해 있어서 그 말라비틀어진 이 진설병을 준다. 진설병 맛이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엄청 배고파서 식탁위에 백설기 하나가 놓여 져 있는 것이다.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이게 상온에서 있었던 것이다. 말라비틀어지 백설기이다. 부스러진 것이다. 그게 바스러지는데 배가 고프면 그거라도 먹어야 되는 것이다. 너무나 답답하면 그거라도 먹어야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살다보면 뜨거운 눈물이 흐를 때가 있다. 살아야 되니 먹어야 되고, 오늘 메신저를 보니 기가 막히고, 가슴이 답답하기도 하고, 다윗이 이런 마음이 들지 않았겠는가? ‘하나님, 내 인생이 어떻게 되는가? 하나님, 내가 무얼 잘못했습니까? 하나님, 왜 이런 시대를 살아가야 되고 왜 이런 어려움을 주시는지요?’ 라는 생각이 들었을 것 같다. 그때 내가 엘라 골짜기에 가지만 않았더라면,,,
 
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겠다. 이번에 팬더믹에서 돈을 제일 많이 번 곳이 음식 배달 업체들이다. 음식 배달의 역사가 사실은 누구로부터 시작이 되었냐면 우리 다윗 왕으로부터 시작 되었다. 아버지가 형님들에게 도시락을 가져다주라고 했다. 다윗이 배달의 역사의 첫 번째였다. 그것을 우리는 그 브랜드를 하나를 만들고 싶다. ‘다윗의 후손들 전쟁터까지 아버지 가슴을 전달해드립니다.’ 하필이면 그때에 골리앗이 40일 공연을 했다. 아침에 한 번 저녁에 한 번, 골리앗의 공연이 하루에 두 번이었다. 이분이 하필이면 도착했을 때, 골리앗 숏 타임이었다. 그때만 안 맞았어도, 아버지가 그 도시락을 가져다 주라고만 안 하셨고 끝까지 개겼으면 그런 일이 없었을 것이고 영웅인 것은 둘째치고 이런 고난을 안 당했을 것인데 여러 가지 생각들이 들지 않았겠는가? 그런데 다윗이 그러면서 이 아히멜렉에게 무기를 달라고 이야기 한다. 이 무기가 남아있던 것이 무엇인가? 말씀드린 것처럼 엘라 골짜기에서 골리앗을 죽이고 난 다음에 골리앗에게 탈취한 골리앗의 칼이 거기에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당시에 서론에 부제게 붙어 있는 것처럼 에돔 사람 도엑이라고 하는 놈이 사울이 다윗에게 아히멜렉이 칼을 주는 장면을 보고 이걸 고해바친 것이다. 여러분 에돔 사람은 에서의 후손이다. 에서는 늘 성경적 입장에서 보면 나쁜 놈이라고 생각해서 그렇지. 쉽게 생각해보면 손아래 동서 있는 분은 항상 열 받을 준비가 항상 되어있다. 늘 열 받을 준비가 되어있다. 갑자기 손아래 동서가 평소 때는 와가지고 명절 때도 제일 늦게 와가지고 형님, 어머 형님이 하시는 음식이 제일 맛있어요. 하면서 열받게 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자꾸 막 시아버지께 자주 자주 찾아가더니 어느 날 이렇게 이야기 한다. ‘이번에 산 아래 땅이 있는 것을 정리를 한다고 하시는데 동생 주기로 했다.’고 하면 열 받기로 준비된 형수 분들은 어떠시겠는가? 화가 나시겠다. 공감이 안 된다. 얼마나 열 받겠는가? ‘할렐루야 하고 자매님, 축복합니다.’ 이런 말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에서 입장에서는 야곱이 모든 축복을 받았다. 에서 입장에서 보면 동생이 똑똑하고 잘나가지고 하면 천 번 만 번 이해가 된다. 그런데 내가 볼 때 아무리 봐도 쓰레기야. 나쁜 놈이다. 내 속이고 아버지 속인 그놈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다. 이해가 되겠는가? 에돔 사람의 기본적 정서가 어떠냐면, 적개심이 많은 것이다. 분노가 많고, 기회주의자이다. 판세를 보니까 사울이 권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지금 아히멜렉이 다윗을 돕고 있다. 이 정보가 돈이 될만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사울에게 꽂아 발린 것이다. 사울이 화가 나서 다윗을 죽이려고 하는데 아히멜렉이 돕고 있다고 하자말자 85명의 제사장들을 다 소환을 한 것이다. 주리를 틀고 고문을 하다가 아히멜렉이 입에서 내뱉는다. 내가 다윗을 도와주었다고 한다. “전하 정신을 차리십시오. 당신을 하나님의 마음이 떠난 겄입니다. 지금 하나님이 역사하는 것을 보셔야지요.”라고 듣자 말자 너무 노발대발 하는 사울이 저놈의 목을 치라고 했다. 누구도 아히멜렉의 목을 치는 것을 두려워했다고 나온다. “그가 하나님을 사랑했던 고로,,, 두려워하여” 그런데 누가 나오느냐면, 백정 같았던 도엑이라는 사람이 나와서 85명의 무고한 제사장들을 다 칼로 죽인다. 이게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히멜렉의 아들이었던 아비아달이 겨우 살아서 다윗을 찾아와서 선지자 85명이 죽었다라고 이야기하고 그 이야기를 듣고 지은 시편이 바로 52편이다. 지금 5분 남았다. 서론이 끝나는데,,, 그러면 이 본문을 읽어보면 이게 무슨 뜻인지를 금방 이해할 수 있다.
 

*시편 52:7,
7 이 사람은 하나님을 자기 힘으로 삼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 재물의 풍부함을 의지하며 자기의 악으로 스스로 든든하게 하던 자라 하리로다.
-여러분 세상 힘, 세상의 돈, 세상의 권력, 자기의 지혜, 다 자기 것인 줄 알고 착각하고 산다. 그런데 8절에서 이렇게 말한다.
8 그러나 나는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 같음이여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영원히 의지하리로다.
-성경에서 가장 위대한 단어를 말하자만 ‘그러나’이다. 세상에 수많은 일이 일어났지만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는 나라는 존재이지만 우리의 시선에서 하나님의 위대한 하나님의 반전, 그러나,,, 세상은 그 사람들에게 온통 엥글을 가져다 댈지 모르고 카메라를 들이 댈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시선은 어디 있을지 모르지만 오늘 이 아침에 하나님이 전부이고 하나님이 소망인 사람, 인생의 절벽 같고 절망이라고 하는 한 분을 두고서 절대 신앙으로 오늘 이 아침을 깨울 수 있는 사람들, 다시 한 번 어려움과 위기 속에서도 믿음으로 돌파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통해서 반드시 역사하시고 지금도 운행하신다고 믿고 주님을 찬양한다. 우리의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은 놀랍고 우리의 생각들을 온전히 붙들어 주시고 경영하시는 복이 우리에게 있기를 축원한다. ‘영원히 의지 하리로다.’를 믿고 분명이 믿는 것이 있다. 저는 할아버지를 많이 닮았다. 1902년생이시다. 살아계시면 공포영화이다. 저희 집안에 말 잘하는 사람이 없다. 유일하게 말 잘하는 사람이 저밖에 없다. 할아버지를 닮았다. 90년대 초에 조그만 선풍기를 안고 계셨다. 할머니가 먼저 돌아가셨다. 저보고 그러셨다. “할망도 없고 끌어안고 있을 것이 이것밖에 없다.”라고 하셨다. 이게 손자하고 할아버지와 할 대화는 아니지 않는가? 둘이 앉아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할배 돌아가시면 천국을 안 가시곘습니까? 하니 대답이 그럼 지옥가라고 새끼야? 하셨다. 할배 나도 예수 믿었으니까 죽으면 천국에 가지 않겠습니까? 했다. 천국가서 만나겠지요? 그런데 할아버지도 하나님보고 아버지라고 하시고 나도 아버지라고 하시면 우리는 어떻게 됩니까? 했더니 가만히 쳐다보시더니 천국가면 형님이라고 불러라 하셨다. 저 가끔씩 힘들 때 그런 생각을 한다. 천국거서 형님이라고 불러야지... 여러분 이 땅에 가끔씩 어려울 때, 우리의 영원한 주소가 여기가 아니라는 것을 잊는다. 하나님 앞에 있다. 주님 곧 오신다. 그러면 하나님은 물으실 것이다. “네가 너에게 부탁한 것은 했냐?” 라고 우리가 지금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고 있다. 믿음으로 승리해야 한다. 믿음으로 사랑으로 승리해야 한다. 그러니 엎드리는 것이다. 인생의 그 고난 길에서 내가 영원히 의지해야 할 그분, 주님 의지하는 이아침이 되기를 축원한다.
 
♣요약
특새를 앞두고 예령으로 함께 모인 이 가운데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하셔서 하나님이 전부라고 하게 하시며 하나님 아버지를 위해 소망을 삼는 우리에게 주의 뜻이 여기에 계시길 간구하며 우리가 어떤 역경과 절망과 상실감에 살아간다 할지라도 주님을 영원히 의지하겠다는 이 다윗의 고백이 우리의 노래가 되게 하시고 우리의 기도가 되게 하시고 우리의 삶의 고백이 되어야 한다.
 
-다윗이 놉 땅의 제사장 아히멜렉에게로 피신했을 때, 도엑이 사울에게 밀고하여 아히멜렉 일가 85명이 학살되는 사건이다. 아히멜렉은 다윗을 사울 왕의 심부름꾼으로 알고 환대하였으나 도엑은 이런 사실을 숨기고 아히멜렉을 모함하였다. 악한 음모는 무고한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날카로운 비수와도 같다. 다윗은 그에 대해 그의 혀의 악함과 그의 마음의 간사함을 죄로 고발한다. 다윗은 이 당시에 큰 곤경에 처해 있었다. 도엑이 그에게 끼친 해악은 그의 고통의 시작에 불과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우리는 고난 가운데서도 담대히 행하는 그의 모습을 보게 된다. 다윗은 자신의 안정성을 생각하고서 의기양양해 한다. "이 강포한 자는 뿌리 채 뽑힐 것이라. 하지만 '나는' 심기 워 뿌리를 내리고 든든히 서서 번성하는 '푸른 감람나무 같도다.' 그는 하나님의 거처에서 쫓겨나지만 나는 그 안에서 굳게 설 것이라." 그러면 우리가 푸른 감람나무와 같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믿음과 거룩한 확신의 생활을 해야 한다. 나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영영히 의지하리로다.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감사와 거룩한 기쁨의 생활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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