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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4년 1월 28일) 제목: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첫 번째 강해(예수님은 누구신가?) 말씀: 마태복음 16:13-18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대표기도: 김건 부목사님(1부) 사회: 임병영 부목사님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 * 마태복음 16:13-18, 13 예수께서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14 이르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15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ㅡㅡㅡㅡㅡ ※강철 신발을 신고, 기쁨의 면류관을 쓰고, 빛의 갑옷을 입고... ▶오늘부터 “예수님은 누구신가?”(Who is Jesus?) 시리즈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시리즈가 진행될수록 우리 젊은이들 용으로 예수님으로 여러분들의 삶에 밑줄을 쭉 치는 인생 되기를 바랍니다. 이게 무슨 말인지 모르면 좀 내가 나이가 들었구나 생각하시면 되고 제가 이번 시리즈에 대해서 광고가 되어서 그런지 여러분들이 저에게 목사님 이번 시리즈를 설레이며, 기대합니다라는 e메일을 보내왔어요. 설레며 기대합니다. 제가 그 e 메일을 받고 기뻤겠어요? 어떻겠어요? 물론 기쁨도 있었겠지만 거룩한 부담이 많이 되었습니다. 말씀의 능력 말씀 자체가 능력이 있으니까 말씀의 능력으로 우리의 모든 기대와 기대를 채우시고 또 저희에게 더 큰 부담을 극복시켜 주시길 바랍니다. 말씀의 능력을 더 말수 능력을 얘기하니까 제가 올해 시작하면서 무슨 신발을 신고요? 강철 신발은 신고, 기쁨의 면류관, 쓰고, 빛의 갑옷을 입고, 무슨 옷을 입고요 빛의 갑옷을 입고 무슨 모자를 쓰고요. 기쁨의 면류관을 쓰고요... 그리고 특별히 이 한 해 동안 2024년이니까, 우리가 감사를 몇 번 하자 그랬죠? 2034번, 2024번을 감사하려면 하루에 몇 번 감사해야 한다고요? 하루에 6번, 6번 감사는 간단하다고 그랬죠? 식사하기 전에도 감사하고, 식사 마치고도 감사하고,,, 제가 얼마 전에 이렇게 저녁 식사를 같이 하면서 집사람한테 고기가 왜 이래 질겨요? 그러니까 우리집사람이 가만히 있더니, “여보 감사합시다!” 그러더라고요. 그래 감사를 제가 하니까 그다음 고기가 부드러운 고기가 되었어요. 부드러운 고기가 되었어요. 그러니까 고기가 질기다가 뭐라고 했다가 금방 감사하니까 그다음에 고기가 안 질겼습니다. 그걸 보고 내가 야 이게 순종의 파워가 이렇게 심하냐 순종의 파워가 있구나! 그러니까 앞으로 저나 여러분이나 이 말씀의 수준에 의하여 우리의 삶의 수준이 결정되리라고 믿습니다. 저는 이 시리즈를 왜 시작하게 되었는가? 두 가지 때문에 이 시리즈를 시작하게 되었어요. 첫 번째는 다 안다고 하지만 우리 성도들이 예수님에 대한 삶의, 예수님에 대한 성경적인 어떤 지식과 깨달음이 너무 피상적이에요. 교회를 30년, 40년 믿은 분이 어떤 분에게 이런 얘기를 해요. ‘내가 하나님을 믿는 겁니까? 예수님을 믿는 겁니까?’ 이런 얘기를 하는 거예요. 한국교회에 뭔가 문제가 있구나! 지금 답 안 할 거예요. 좀 이따 할 거예요. 그러니까 예수님에 대한 지식이 상식선을 넘어서지 못하고, 마치 눈 먼 자 이 장님이 앞을 못 보는 사람의 코끼리 만지듯이 피상적이기 때문에, 삶의 결정적인 순간에 믿음이 작동하지 않는 겁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믿음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 것이에요. 예수님을 안다고 하면서도 정말 중요한 순간에는 믿지 않는 사람하고 똑같은 결정을 하고 사는 거예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정작 능력 없는 삶을 사는 것이에요. 예수님을 따르는 수많은 군중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군중들 가운데 12회 혈루(血淚) 증(症)을 앓던 여인 진짜 기적이 필요한 그 여인이 긴급할 때 예수님의 옷자락을 딱 잡아서 그래 했을 때, 그 여인이 치유를 받았습니까? 안 받았습니까? 치유 받았죠. 그런데 대부분의 군중들은 따르기는 했지만 그런 기적을 체험하지 못했습니다. 마치 이것은 무엇 같다면 여러 스마트폰에 있잖아요. 우리 휴대폰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사람들 가운데 스마트폰에 많은 기능들이 있잖아요.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가지고 이제 모든 걸 처리하고 내가 아는 어떤 목사님은요 이제 모든 걸 다 치워버려 스마트폰 하나만 갖고 설교하러 올라갈 때도, 요즘 젊은 것 같고 다 모두 그런 처리해요. 근데 어떤 우리 어른들은 전화로만 쓰잖아요. 이것도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되시면,,, 그러니까 휴대폰 기능을 제대로 아는 사람과 알지 못하는 사람의 차이도 크잖아요. 상당한데, 이건 예수님을 제대로 아는 사람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의 차이는 이거는 어마어마한 것이 신앙의 작동 기능이 다를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또 제가 비유를 생각해서 여러분들이 갖고 이 예수님을 향한 여러분들이 갖고 스마트폰의 기능이 어느 정도인지, 오늘 이번 시리즈 하시면서 여러분들 예수님 때문에 여러분들의 삶에 결정적일 때 믿음이 역사하기를 바라는 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피상적인 신앙생활 탈피, 두 번째로는 지금 전 세계적으로 고난의 전쟁이다 팔레스타인이나, 또 우리 한국에는 이 극단적인 진영, 진영 갈등, 러시아 같은 데는 지금 푸틴이 황제 같고, 중국 공산 전체주의가 반응하고 있고, 근데 우리는 이 자유민주주의를 지켜야 되잖아요. 근데 우리가 말씀을 들었습니다마는 자유민주주의의 제일 큰 피해가 뭡니까? 방임과 방종이에요. 그러니까 기독교 정신으로 자유민주주의를 제대로 품위 있게 지켜야 하는데 이걸 제대로 못하니까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제대로 모르니까, 이 방임(放任)과 방종(放縱)이 와가지고 동성애가 생기고 트랜스젠더가 타락하고, 마약으로, 마약으로 젊은 때 찌들어 버리고, 최근 미국의 마약 때문에 아이들이 이 거북이 등처럼 돼가지고 그 영상을 보면서 제가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 그런 걸 보면서 이 공산주의자들하고 이슬람 전체주의자들이 얼마나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자유민주주의라는 걸 막 조롱을 하는지 몰라요. 이런 우리가 조롱을 당해야 되겠느냐고요. 이런 조롱을 당하지 않고, 우리가 방임, 방종하지 않도록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명확하게 알아가지고 이 나라 이 국가를 지켜나가야 되는 것이에요. 이 나라를 지켜야 되는 것이에요. 이 나라를 먼저 예수님을 제대로 알게 되면,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제대로 알게 되면 주님과 동행하는 줄로 믿습니다. 어떤 꼬마가 천둥번개 벼락 소리를 듣고 놀라가지고 아빠를 찾았어요. 아빠 어디 계세요? 빨리 오세요. 아빠 무서워요. 그때 아빠가 이렇게 대답했어요. “얘야 하나님이 계신다. 하나님이 널 사랑하셔. 예수님이 계시니까 너 염려하지 마.” 그러니까 얘가 아빠 나 하나님 사랑하는 것 알아요. 그렇지만 누가 내 곁에 계시면 좋겠어요. 그러니까 어린아이가 머리로는 알지만 손에 잡히고, 기댈 수 있고, 볼 수 있는 곁에 계신 분이 실제로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먼저 제가 생각할 것은, 예수님이 누구신가 그랬을 때 예수님은 내 곁에 계시는 하나님이세요. 다시요. 예수님은 누구 곁에요? 저와 여러분 곁에 계시는 하나님이세요. 이 한마디가 여러분들에게 참된 위로와 격려가 되기를 바랍니다. 너무 중요한 거예요. 너무 신앙이 피상적이고, 예수님이 지금 여러분과 저희 곁에 계신다니까요. 그러니까 오늘 96장 예수님이 누구신가, 우는 자의~~ 할 때 거기에 수많은 예수님에 대한 설명이 나와 있는데, 거기에 내 하나로 들어보게 와 닿아야 되는 것이에요. 가슴에... 예수님이 내 곁에 계시는 하나님이시다. 이거 하나만 기억하셔도 오늘 제대로 되는 것입니다. ※저는 제 생애에 저의 삶에 저의 생애에 결정적인 사건이 몇 가지가 있었는데 그중에 하나가 18살에 부모님을 따라 제가 부산에서 상경을 했어요. 상경을 하는데 부친이 저에게 편지를 하나 주셨어요. 많은 걸 알겠지만 저는 '그 안에 돈이 얼마나 들었을까?' 이렇게 생각하는데 돈은 한 푼도 안 들고, 그 안에 성경 구절이 있었어요. 그중에 하나가, *고린도전서 3:16, 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그리고 네 몸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라. 여러분 저것이 내 곁에 계시는 하나님이 그것이 제게 좀 실감이 더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내 곁에 계신 하나님이 저에게 저를 격려도 했지만 또 저를 지키기도 했어요. 수많은 유혹과 이런 것 가운데서도 젊음의 유혹과 그런 가운데서도, 내 곁에 계신 하나님이 나를 눈 뜨고 나를 지켜 나를 보고 해주신다는 것, 그래서 우리 부처는 항상 육신의 아버지보다도 영적인 아버지가 너 곁에 있으니까, 돈도 육신의 아버지에게 구하지 말고, 영적인 아버지 구하라. 그래서 결정적인 제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마다 ‘예수님은 내 곁에 계신 하나님이시다. 예수님은 내 곁에 주시는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이것이 오늘까지 이렇게 주님을 섬기는 중요한 원인 있는 줄로 믿습니다. 이런 제가 서론 격으로 말씀을 드리고 이제 오늘 본문을 또박또박 해석을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니까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가이사라 빌립보로 가셨어요. 그러면서 주님이 13절에, * 마태복음 16:13-18, 13 예수께서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나를 누구라 하느냐? 왜 주님께서는 가이사라 빌립보에서 이런 중요한 질문을 하셨을까요? 가이사라 필리포는 구약 시대는 다 숭배의 중심지였어요. 우상숭배 신약시대에는 이방신들도 헬라 이방신들을 섬기는 웅장한 신전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헬라어 성들이 많았어요.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아주 그냥 우상숭배가 만연한 영적으로 아주 어둡고도 암흑한 지역이었어요. 그 지역에서 베드로가 예수님이 누구신지에 대해서 확실하게 대답했고, 예수님은 그 베드로의 고백 뒤에 주님의 교회를 세우시겠다는 엄청난 비밀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어떻게 보면 우상을 숭배를 만물이 우상이 되어 있고, 수많은 신념이 우상이 되는 이런 어떤 우상이 우글거리는 이 강남의 한복판에서, 요셉이 기독교의 적대적인 환경 속에서 우리가 제대로 신앙 고백을 함으로 말미암아 주님의 몸 된 교회, 교회와 한국교회와 무역 교인 우리 자신도 세워지고 공교회의 또 유형 교회도 세워지는 그런 축복을 받게 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그리고 이 마태복음 오늘 이 고백 위에 바로 뒤에 있어 28장에 ‘너희는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는 엄청난 사명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고백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러니까 예수님이 너희는 나를 누구냐 물으니까 14절에 보니까, * 마태복음 16:14, 14 이르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더러는 엘리야다 어떤 예레미야다. 제가 이것도 다 설명을 해야 되는데 시간이 없어서 못 해요. 헤롯 같은 사람은 세례요한 아닌가, 이런 식으로 얘기하고 그래서 오늘 이 본문을 가지고 이제 한두 가지 생각을 했는데 먼저 그러면 주님께서 세례요한이다. 예레미야다, 다니엘, 다 엘리야다, 이런 식으로 주장하니까, 그럼 “너희들은 제자들을 보고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오늘 이 자리에서 주님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나 1부 예배에 참석한 성도들에게, ‘너는 나를 누구로 하느냐?’ 여러분 여러분과 저는 예수님을 누구라고 고백합니까? 여러분들과 저는 예수님을 누구라고 고백합니까? 기다리시면, 어제 보니까 특새는, 토비새는 물맷돌이다. 토요일 전일 새벽 예배는 소망이다. 토요일 새벽 예배는 내 은혜의 진원지다. 이런 식으로 고백합니다. 여러분들이 예수님을 누구라고 고백합니까? 사랑의 교회는 여러분들 많은 교회가 간증을 할 때, 내가 예수 믿기 전에 내 상태 BC가(Before Christ)있어요. 그다음에 예수 믿게 되는 과정은 온 크라이스트 그다음에 예수 믿고 난 다음에 결과가 에프터 크라이스트(After Crist), 대개 이제 이 감성이 그런 구조가 돼 있어요. 그런데 우리 교회는 되돌려 할 때 예수님 믿기 전의 상태 비폴 프라이스 예수 믿게 되는 과정에 온 크라이스트 (On Christ), 그다음에 예수님 믿고 난 다음에 에프터 크라이스트(After Crist)가 있는데, 우리 교회는 하나가 추가돼 있어요. 온 크라이스트 가운데 그러니까 BC, OC, AC가 있는데 중간에 CC가 있어요. CC가 뭔 줄 알아요? 컴퓨터 그래픽? 뭐냐면, 컨페셔널 크라이스트(Confessional(고백적) of Christ)-예수님께 대한 나의 고백이에요. 사랑의 교회 성도들은 누구보다도 한국교회 성도들은 다 그래 해야 되겠지만, 누구보다도 예수님께 대한 내 고백임을 분명히 여기는 것이에요. 이 고백이 분명하려면 먼저는 너희는 나를 누구냐, 고백이 분명 먼저는 중요한 것이 뭐냐 하면 그러니까 그 고백을 하는데 베드로가 기가 막힌 고백을 하는 것이에요. “주는 그리스도시요 그다음 뭐예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주는 그리스도이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너무나 명확한 고백을 하니까 그다음에 뭐라고 했습니다. 17절에, * 마태복음 16:17,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이를 너희에게 알게 하려는 혈육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너의 뭐 아버지, 쉽게 말하면 하나님께서 눈을 열어주셔서 깨닫게 해주셨다. 그러니까 이렇게 말할 수 있어. 여러분들과 제가 CC,- Confessional-of Christ 예수님에 대한 제대로 된 고백을 하려면, I. 첫 번째, 예수님은 계시를 통해 깨달을 수 있다. -예수님은 우리가 계시를 통해서만 깨달을 수가 있는 것이에요. 성령께서 눈을 열어주셔서 깨닫게 해 주셨다고 말씀하셨으니, 그러기에 여러분과 저는 기독교는 계시(啓示)의 종교라고 우리가 말을 하는데 종교란 말보다 하여튼 우리는 계시(啓示)예요. 계시 기독교는 계시기 때문에 인간이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을 찾아오신 것, 이걸 계시라고 그래요. 오늘 이 자리에 어떤 분들은 예수님을 제대로 알고 싶고 예수님을 제대로 믿고 싶은데도 믿어주지 않는다는 분들이 많아요. 그러니까 오늘 믿어지지 않는 분들은 오늘 이 말씀이 여러분들에게 계시의 말씀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우리 위에 다 덮여지고 어두워졌던 것이 밝게 드러나는 시간되기를 바라는 거예요. 본래 우리 피조물들은, 피조물인 인간의 능력, 우리 피조물인 우리 인간의 능력과 한계로는 하나님을 제대로 알 수가 없어요. 특별히 범죄(犯罪)하고 타락(墮落)한 인간에게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사라지고 훼손(毁損)이 돼버렸어요. 그래서 우리가 스스로 알 만한 능력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들이 하나님을 믿을 수 있도록 스스로 우리에게 계시를 하셨어요. 그 계시의 절정이 바로 뭐냐 하면,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육신의 몸을 입고 오신 것이에요. 이해가 됩니까?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통하여 예수님을 알아가는 것이 아니고 계시의 절정인 예수님을 통해서만 하나님을 알 수가 있는 것이에요. 오늘 제가 Who is Jesus! 예수님, 시리즈인데 이게 계속 지내는 동안에 아까 제가 처음에 이제 말씀을 드렸죠. 우리가 하나님 믿느냐, 예수님 믿느냐 예수님을 30년, 40년 전에도 정신이 이거 아주 명확하게 안 분들이 계시는데, 오늘 분명히 말씀하는 겁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통하여 예수님을 알아가는 것이 아니라, 계시의 절정인 예수님을 통해서만 하나님을 알아갈 수 있는 것이에요. -교회를 오래 다니는 분들조차 내가 누구를 믿고 있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이슬람과 기독교의 차이도 헷갈리는 것도 있고, 주님께서는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갈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을 통해서만 하나님께 나아갈 수가 있고, 하나님을 깊이 깨달을 수가 있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예수님을 제대로 깨닫고 예수님의 심정을 제대로 깨달으면 우리가 제대로 하나님을 알 수 있는 너무나 신비로운 은혜를 주시는 것이에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안다고 하면서도 예수님을 제대로 모르기 때문에 계시의 절정을 놓쳐버리는 것이에요. 당대 최고의 지성인이었던 C.S 루이스처럼,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깨닫게 되고 그 예수님을 나의 주, 나의 구원자, 나의 창조자로 고백하는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동일한 은혜가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예수님을 통한 계시에 대해서, 히브리서 1장 2절에, *히브리서 1:2, 2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다. 기독교는 하나님으로서의 인간의 몸을 입으신 예수님을 통한 계시,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만 구원에 이르는 계시, 인간의 노력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를 이루는 계시에 기초하고 있는 줄로 믿습니다. 이 계시의 중심에는 예수님이 있기에, 예수님을 깨닫지 못하고는 하나님의 계시를 깨달을 수가 없고, 하나님의 계시를 깨닫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통해서만이 확신하게 되는 것이에요. 여러분, 예수님은 10년, 20년, 30년, 50년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이 예수님에 대해서 누군지, 잘 모른다고 그러면 나중에 예수님도 주여, 주여, 하면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데 내가 너를 모른다. 사탄도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압니다. 그러나 사탄은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에 대한 정보가 사탄처럼 없는 어린아이도, 예수님을 성령으로 그대로 순전하게 믿는 축복을 받는 것이에요. 예수님에 대한 신앙 책을 500페이지 천 페이지 쓰는 세계적인 석학도 예수님에 대해서 모를 수가 있어요. 성경에 계시된 예수님을 제대로 모르니까 너무 불쌍한 거예요. 이게 계시의 눈. 따라서 오늘 예수님이 누구신지에 대한 계시의 불이 우리 성도님들에게 떨어지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모세가 불붙은 떨기나무 앞에서 하나님을 알고, 자신을 발견해가지고, 남은 인생을 하나님의 사명과 동행한 것처럼, 우리 모두 예수님에 대한 계시의 불이 가슴에 붙어가지고 예수님을 알고, 나를 알아 주님과 동행하는 평생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나 곁에 계시는 인격적인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이 주님과 동행하면 동행할수록 믿음, 우리 믿음이 자라기르를, 주님을 알면 알수록 세상적인 두려움은 사라지기 시작하고, ‘주와 같이 길 가는 것 어찌 즐거운 일 아닌가?’ 그래서 오늘 첫 번째는 예수님은 뭘 통해서 깨달을 수 있다고요? 계시 그러면 계시의 핵심이 뭐냐? 예수님의 계시의 핵심은 참 권력이 뭐냐 계시의 핵심은 참 하나님과 참 사람이세 이게 예수님의 계시의 핵심이죠. II. 계시의 핵심은 참 하나님과 참 사람이시다. -오늘 본문은 베드로가 육신의 몸을 입고 계신 예수님을 보고, 예수님은 육신의 몸을 입고 계시는 거예요. 육신의 몸을 입고 계신 예수님을 보고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지금 몸은 초라한 인간의 몸을 입고 있는데, 고백은 뭐냐 하면 주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몸은 100% 인간의 몸을 입고 계시는데, 하나님은 주님 하나님의 몸을 입고 계시는 그 하나님은 참 하나님이요. 참 사람이시다. 너무나 놀라운 거. 그리고 이걸 깨닫게 한 분이 계시를 통해 깨닫게 했다고 이게 말씀드릴 때 여러분 예수님이 100% 인간이시고 100% 하나님이신 것 아는 여러분들이 하지만 이게, 이게 여러분들 이게, 이게, 이게, 이게 믿어진다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에요. 지금은요. 신학적으로 정리가 돼 있으니까 이걸 우리가 이해를 하지만 AD 4세기 5세기 될 때까지, AD 4세기 5세기 특별히 5세기 451년에, 라틴으로 칼 키돈 공회라고 그러는데 영어로 ‘칼 세돈’이라고 그러고 칼 세돈 공회가 공의회에서 결정되기 전까지, 한 400년 동안 피 피기는 전쟁을 하고, 노략(擄掠)을 당하고 이단과의 싸움으로 수많은 전쟁이 일어나고, 이것 때문에 공예가 수차례 결정이 되고, 얼마나, 얼마나 고생을 많이 했는지, 예수님이 참 하나님이시고, 참 사람이시라는 이 사실을 깨닫기까지, 이 사실이 결정되기까지, 이 사실이 진리로 확정될 때까지, 이 계시가 우리에게 깨달아질 때까지 어마어마한 수고를 했어요. 어떻게 한 인격 안에 완전한 생성과 완전한 인성이 존재할 수 있겠는가? 무지무지한 논쟁에, 소위 ‘신인 합체’라는 수많은 영적 전쟁과 피 흘린 너무나 많은 선배들의 고난과 소위 크리스토라지(Christology)라. 기독론의 고난, 계시의 절정이 예수 그리스도인데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핵심 골간이 뭘까? 참 하나님과 참 사람 되셨다. 이게 오늘날 내가 밥 먹고 살고 저녁을 준비해야 되고 매일매일 직장 나가는 우리하고 무슨 관계입니까? 우선 AD 450년의 칼케돈 공회에서 완벽하게 정리가 된 걸 여러분들에게 먼저 말씀을 드렸고요.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 완전하게 구별된 거, 하나님으로 연합된 걸 확정한 거예요. 제가 그걸 여러분들에게 어렵지만 한번 보시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한 인격이 두 본성으로 되어 있으며, 그 두 본성은 변하지 않고, 혼합되지도 않으며, 분리되지도 않고, 나누어지지도 않으며, 그 두 본성은 서로 병행하여 존재하며, 한 인격 속에 하나를 이루고 있다.”-(칼케돈 공의회(451년)- -이거 나올 때까지 죽을 고생을 했습니다.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시고 참 사람이신 줄로 믿습니다. 참 하나님이라는 참 하나님은 참 사람이라는 말이 이 이 헬라어로 허모우시우스라고 그래요. 그러니까 이 허무시우스라는 말은 동일 본질이다 같은 본질이다 그 말이에요. *호모시오스(homoouios)-우리는 이것을 믿는 것이다. *호모이우시오스(homoiousios)-X -그런데 호모시오스라는 이 헬라어 안에 요트라고 아이, 글자를 넣어가지고, 호머이우시오스, 이거는 뭐냐 하면 유사 본질이에요. 요거 자가 하나 더 들어가면 유사 이타가 들어가 유사 본질인데 이거 하나 더 들어가고요. 피 티기는 전쟁을 한 거예요. 이거는 여러분 우리는 호모시오스를 믿는 거지 호모시우시우스를 믿는 게 아니에요. 목사님, 나 어려우니까 나 안 할랍니다. ㅋㅋㅋ~~, 그러지 말고 요요 이오타 이라고 아이들하고 보이시죠? 저거 하나 때문에 죽을 전쟁을 하고, 이단이 되고 쫓겨나고, 피 튀기고 근데 우리는 지금 편안하게 앉아가지고 칼케돈의 공의회에서 결정된 최고의 계시 결정을 저와 여러분이 이렇게 나눌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나 영광스러운 것이에요. 지난 2천년 교회 예루살렘은 그렇게 슈퍼 피셔가 피상적이 아니에요. 하나님의 교회를 함부로 조롱하고, 껍데기 어디 함부로 또 OOO 같은 인간이 함부로 얘기를 합니까? 제대로 별로 알지도, 잘 모르면서요... ㅋㅋㅋㅋㅋㅋ 그래서 골로새서 2장 9절에 다 같이,, 시작 *골로새서 2:9, 9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주님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보이다. 참 하나님과 뭐가 되셨다고요? 참 하나님이, 보이는 예수님 안에 하나님의 신성이 같이 있다. 하나님의 충만함이 육체로 구하시는 예수님 안에 거하신다. 이걸 성경 여러분들에게 증명할 수 있지만, 제가 여러분들과 함께 이 예수님을 허머이오시오서가 아니라 바로 호모시오스(homoouios)가 됩니다. 어떻게 이렇게 되었을까? 하루는 마태복음 14장 22절, 23절에, *마태복음 14:22-23, 22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23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니라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 -예수님 뭐 하러 따로 계셨다고, 기도하러,, 따로 사는 예수님이 기도하러 올라가셨다. 예수님이 기도하신다는 것은 예수님의 사람 되신 예수님의 인성을 말하는 거예요. 성경 어디에도 하나님이 기도했다는 말이 없어요. 연약하니까 도움이 필요하니까 기도하시는 것이 하나님은 기도할 필요가 없고 기도할 이유가 없어요. 기도는 인간이 할 일이 인간이 기도한다. 기도는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고, 예배를 올려드리는 표현이고, 연약함을, 연약함에 대한 도움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자 능하시고 모든 것들이, 모든 것이 되시고, 할 필요가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예수님이 기도했다는 것은 예수님이 뭐예요? 인성의 즉 인성을 가르친 거예요. 마태복음 17장 22절, 23절 그다음에 25절, 이어서 바로 보면,, *마태복음 14:25, 25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기도하는 예수님은 100% 참 사람이시고, 바다 위로 걸어오시는 분은 100% 참 하나님이시다. 여기에 신성과 인성이 있는 것이에요. 참 사랑과 참 하나님 믿게 되는 기가 막힌 내용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너무나 놀라가지고 바다로 걸어오신 예수님을 보고 마태복음 14장 뒤에 33절에, *마태복음 14:33, 33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더라. -배어 있는 사람들이 예수님께 서라 이르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인간만이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만이 그럴 수 있습니다.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누가복음 8장을 보면, 폭풍이 있는데 예수님이 주무셨어요. 누가복음 8:23, 23 행선할 때에 예수께서 잠이 드셨더니 마침 광풍이 호수로 내리치매 배에 물이 가득하게 되어 위태한지라. -여러분 광풍이 몰아쳐가지고 배가 요동을 치는데 어떻게 잠을 잘 수 있습니까? 예수님은 너무 피곤하신데 너무 피곤하셔요. 그게 우리 인간이 예수님 인생을 보여주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 인간이 인간 완전한 인간이잖아요. 육신의 몸에 고 완전한 인간, 너무나 인성을 가르치고 찰스 스폴전 목사는 여기에 대해서 이렇게 고백하는 거예요. 너무나 참 표현을 잘했어요. 시작 “무한하고 무한하신 분, 영원하고 영원하신 분께서 여자의 몸에서 태어나셨다. 전능하신 분께서 여인의 젖을 먹고 자라셨다. 우주를 붙들고 주장하신 분이 엄마의 품에 안기셔서 보호받으셨다. 천군 천사를 다스리는 하늘의 왕께서 요셉의 아들이라고 불리셨으며, 모든 만물의 주인이신 주님께서 목수의 아들이 되셨다.” -찰스 스펄전 목사님_ -이해가 되십니까? 모든 만물의 주인이신 주님께서 목수의 아들이 되신 거, 이렇게 말씀드릴 때 예수님이 참 하나님이시고, 참 인간, 그런데 주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는데 참 사람이시다. 누가복음 8장 24절 바로 이어서 뭐라고 그러냐면, *누가복음 8:24, 24 제자들이 나아와 깨워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 한대 예수께서 잠을 깨사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시니 이에 그쳐 잔잔하여지더라. -이에 그쳐 잔잔하여 옵니다. 여기서 우리가 빛을 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소망을 갖는 것입니다. 풍랑 이는 바다 가운데서 고하게 주무시는 예수님이 인성을 우리가 깨닫고 있다 하더라도, 예수님이 참 하나님이심을 우리가 믿을 때에, 바람과 물결이 잔잔하게 된다는 축복을 주시는 것이에요. 여기 잔잔하다는 말이 슬릭(slick)이에요. 이 말은 거울처럼 깨끗한 상태, 완전한 고요한 상태, 마치 동전 하나를 던지면 그 파장이 나갈 정도로 달이 고요하게 비치며 완전한 고요함을 느끼는 상태를 슬릭이라고 합니다. 광풍 이는 갈릴리, 바다와 바다가 이와 같은 신성을 지닌 주님의 꾸짖음 때문에 절대 고요, 절대 슬릭(slick)의 상태가 된 것입니다. 너무나 놀라가지고, 누가복음 8장 25절에, *누가복음 8:25, 25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하시니 그들이 두려워하고 놀랍게 여겨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물을 명하매 순종하는가 하더라. -오늘 여러분들과 저의 인생에 수많은 풍랑과 광풍이 몰아친다 할지라도,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을 제대로 깨달으면, 우리 인생의 풍랑과 어려움 가운데 신하고 고민한 것들을 주님이 처리해 주시는 것이에요. 이게 이제 너무 중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베드로가 고백하는 “주는 그리스도이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 모든 것들을 최종적으로 경험하고 난 다음에 베드로가 한 고백이 ‘주는 그리스도이시다.’ 그리스도라는 말은 메시아이시다. 메시아라는 말은 뭐예요? 왕 직을 갖고 계시고, 제사장 직을 갖고 계시고, 선지자 직을 갖고 계시는 통치자이시다. 그 말이에요. 그러니까 우리가 이 예수님의 참 참 힘되시고 참 인성을 듣고 인성과 신성을 갈구하심을 완벽하게 우리가 깨닫고 고백을 하면,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통치가 우리에게 임함으로 말미암아 여러분과 저의 삶의 주님이 그리스도가 되게 해 주셔서 메시아가 그에게 주셔서 어떤 삶의 곤경(困境)과 난관(難關)도 주님이 해결해 주시는 것이에요. 기적 같은 수많은 일들을 이어주시는 것이에요. 100% 인성, 100% 신성을 갖고 계시다면 우리가 생각하는 어떤 한 면이 스스로 완벽하게 해결되는 거 또 그다음에 이쪽에도 한 면이 완벽하게 해결되는 것 남들은 다 안 된다고 그러지만 주님이 해결해 주시는 것이에요. 이거는 비교한 자가 될지 모르지만 제가 미국에 사역할 때 영어를 해야 되나 한국말을 해야 되나 100% 아메리칸이 되어야 되나 100% 코리안이 돼야 되나, 대개 이제 교회에서 휴일 학교를 50% 영어 가르치고 50% 한국말 가르치고, 다 이렇게 뭔가 방향이 잡히지 않는 거예요. 그런데 제가 30몇 년 전 어느 날 이걸 깨달으면서 그렇지,,, 예수는 100% 신성을 가지시고 100% 인간의 인성을 가지셨기 때문에 100% 코리안이야!!! 그러다 100% 아메리칸이야!!! 미국에서 그 동안에 그때부터 수많은 인재들이 매출이 됐고, 수많은 여기서는 별로 실감이 안 나는데, 제가 외국에서 이거 어마어마하 100% 캐나디아, 100% 코리아, 100%, 100% 네덜란드 사람, 100% 한국 사람... 양쪽. 오늘 이 땅에 우리가 강남에 살면서 우리가 100%의 예수님이 신성과 인성을 가지고 우리는 이 땅에 살아가면서 세상사에 수 많은 수많은 100%의 삶을 살아가야 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영광 되신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이 100% 하나님의 그리스도 대신을 믿을 때 태어난 신성과 영광과 능력을 우리가 100% 체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가 예수님이 참 사람이시고, 참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축복이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거친 파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참 사람이시고 참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면 삶의 광풍이 잠잠해지는 축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주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주님이 우리의 삶을 주관하는 것입니다. 수많은 것을 깨닫고 수많은 난제들이 해결될 것입니다. 100% 신성과 100% 인성을 깨닫는 순간, 예수님의 행적과 사적을 우리가 깨닫는 순간, 주는 그리스도이시오, 사랑이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는 그 순간, 날마다 베드로처럼 우리에게도 계시의 주님의 계시 문이 열릴 것이고, 주님 우리의 삶에 그리스도가 되어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놀라운 것입니다. 18절, *마태복음 16:18, 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문법적으로 베드로 위에 교회를 세우지 못해 여러 가지 해석이 있지만, 구원의 계시사적, 전체를 방어하는 100% 인성과 100%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눈에 보이는 육신의 몸을 입고 계신 예수님을 향하여 주는 그리스도이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는 그 고백 위에 주님의 교회를 세우셨다는 것이에요. 영광스런 그 고백의 주님의 교회를 그리고 그 교회를 세울 때에 그다음에 18절 뒤에 뭐가 이기지 못하리라? *마태복음 16:18b, 18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사탄과 지옥의 영생을 이기지 못하리라. 지옥의 문들, 각종 사탄의 공격으로부터 끊임없는 공격을 우리가 받을 수 있겠지만, 참 신과 참 사랑을 제대로 깨달을 그걸 고백할 때, 어떤 사탄의 공격이 와도 우리는 넘어지지 않는다는 것이에요. 그리고 그 모든 사탄을 공격할 때 가장 안전한 장소가 하나님의 교회라는 것을 말씀해 주고 계신 것이에요. 사탄의 공격뿐만 아니라, 여러분 주님이 심판하실 때도 제일 안전하게 거할 장소가 교회밖에 없는 것이에요. 홍수의 날의 날에도 물 위를 유유히 뜯어내는 광주가 유일한 장소가 교회가 돼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21세기에 베드로가 되어가지고, 예수님에 대한 참된 신앙 고백에 위에 세워진 하느님의 교회 안에서 세상의 모든 외로움과 거룩감이 다 회복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한 생일 동안 이 음보의 권세를 이기지 못하는 교회에서 호흡하고, 한 교회를 통하여 여러분의 인생의 사명과 목적을 이루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 공동체 안에서 수많은 광풍과 풍랑과 상처 가운데 이런 분들이 사랑으로 녹아지고 새로워지는 은혜가 있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서로서로 이 음부의 권세에 이기려면, 수많은 세상의 공격으로부터 교회를, 교회가 이제 완전히 거할 장소가 될 것이다. 오늘 가장 심각한 가장 심각한 문제가 뭡니까? 외로움이 상처 입고, 외로울 것이, 그 외로움을 교회만의 해결도 할 수 있는 것이, 작년도 미국 공중위생국장 비맥 머피가 ‘외로움이 흡연이나 비만보다 더 심각한 공중보건의 위기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제는 반려동물이 아니라, 반려로봇의 삶의 현실이 되고 있다는 거, 앞으로 7년 뒤가 되면 반려로봇 로봇의 시장 가치, 반려 로봇의 시장이 70조 이상이 될 것을 예측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반려 로봇이 여러분 외로움을 해결할 수 있습니까? 반려 견들, 반려 견들이 여러분들이 인생 문제 해결할 수 있습니까? 아이고야, 요즘 뭐 그냥 난리네. 다들 털들도 날리고,, 여러분 해결됩니까? 일시적인 이로운 결심으로 진짜 해결됩니까? 진짜 해결되는가? 진짜 기로 날마다 예수님은 참 인사를 하시고 묵상하고 예수님이 참 신선하게 묵상하고 인생을 가지고 주님이 우리를 어떻게 위로할지 묵상하고 그분이 주님만 여기에 계신다는 걸 묵상하고 그런 하나님의 교회가 공동체를 이루어가지고 우리가 여러분 다락방 식구들 함께 서로 위로하고 그때가 진짜 위로가 되는 것이고 참된 오아시스가 되는 것이고 참된 어려움을 해결해 주는 것이고, 물질주의와 세속주의에 중독된 우리 사회를 해독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처음 말씀드렸던 두 가지 날짜를 오늘 참 신성과 참 인성을 가지신 그 주님에 대한 제대로 한 고백을 가지고 그 구세주 되시고 메시아 되신 그분을 당신 앞에 우리가 나아갈 때, 여러분의 삶에 많이 문제적 기도의 제목들이 응답될 줄로 확신하는 것입니다. 찬송 가운데 우리가 엎드려 절하세. 엎드려 절하세. 이 세상에 주께서 탄생할 때에 참 신과 참 사랑이시라는 .저 동정녀 몸에서 나셨으니 여호와의 말씀이 육신을 입어 날 구원할 구주가 되시고 참신과 참 사람이 되시는 찬송을 부르겠습니다. ♣요약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으시면, 지체없이 “주는 그리스도이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라고 고백하고 100% 참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믿는 계시의 불이 우리 가슴에 임하길 간절히 소원하며 모든 지옥의 권세를 이기게 하시는 예수님과 함께 곤경과 난관도 돌파해 주시는 주님을 체험하여 주일 시리즈 예수님은 누구이신가?를 통해 예수님의 위로와 치유를 받고 그 사랑을 풍성히 누리기를 소망해야 한다. --우리는 여기서 그리스도께서 자신에 관하여 제자들이 지니고 있는 생각을 개별적으로 질문하는 내용을 대하게 된다. 가이사라 빌립보 지방과 같은 그런 벽지에 있었기 때문에 아마도 그리스도를 따랐던 무리들은 다른 곳보다 더 적었을 것이다. 그것은 그리스도로 하여금 제자들과 개별적인 대화를 나누실 수 있도록 여유를 갖게 했다. 베드로는 나머지 다른 제자들을 대표해서 대답한다. 나머지 제자들은 모두 베드로의 답변에 동의했으며 또 의견을 같이 했다. 베드로의 기질은 그로 하여금 이런 기회가 생길 때마다 앞에 나서서 말하게 했다. 때때로 말을 잘 하기도 했고 잘못 하기도 했다. 어느 단체에서나 말은 잘 못해도 어느 정도 열성 적이고 대담한 사람들이 발견된다. 그런데 베드로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베드로의 답변은 간단하지만 완전하고 진실하며 적절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이것은 바로 모든 문제의 결론이자 해결이었다. 백성들은 예수를 한 선지자 즉 그 선지자`로 불렀지만 제자들은 그를 그리스도 곧 기름부음을 받은 자로 인정하고 있다. 예수의 외적인 모습은 유대인들이 메시야에 대해 가졌던 일반적인 생각과는 매우 대조적이었기 때문에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예수님은 스스로 자기를 인자라고 불렀지만 제자들은 그를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했던 것이다. 그들은 예수께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실 뿐 아니라 세상의 생명이 되신다는 사실을 알았고 그것을 믿었다. 우리도 그리스도에게 나아가서 "주 예수여,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고백해야 한다. 이제 그리스도께서 베드로의 답변을 어떻게 시인하시는지 주목해보자. 대표 대표 대표 대표 대표 대표 대표 대표 대표 대표 대표 대표 대표 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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