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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2년 4월 3일)" 제목: 큰 믿음의 실체" 말씀: 누가복음 17:5-10 사회: 장광천 부목사님(1부) 찬양인도: 쉐키나, 영광찬양대 대표기도: 박유관 부목사님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 *누가복음 17:5-10, 5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 6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7 너희 중 누구에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오면 그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말할 자가 있느냐. 8 도리어 그더러 내 먹을 것을 준비하고 띠를 띠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 9 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감사하겠느냐. 10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 ▶하나님께서 성찬식을 하게 하시고 일 년 15개월 2주일 만에 주께서 우리를 생명싸개에 보호하시다가 이렇게 성찬식을 하게 하심에 주님을 찬양한다. 오늘 그래서 믿음의 실체에 대해서 본질과 핵심을 나누고자 한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과 예수님을 믿는 자답게 산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삶이다. 우리 모두는 이 성찬식에 참여하면서 믿는 사람일 뿐만 아니라 믿는 자답게 사는 축복을 주셔야 한다.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다. 지난 토요일에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오셔서 간증 중에 그분은 그래도 예수 믿는 자답게 본을 보인다. 성경을 읽을 때 지혜를 얻기 위해서 읽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말씀을 순종하기 위해서 읽는다고 한다. 믿은 자답게 사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우리의 인생길 가운데 한 결 같이 시종일관 예수 믿는 자답게 우리가 살 수 있겠는가? *누가복음 17:1-4, 1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실족하게 하는 것이 없을 수는 없으나 그렇게 하게 하는 자에게는 화로다. 2 그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를 실족하게 할진대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 3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고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4 만일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 -사람 형제를 실족케 하면 연자 맷돌을 목에 달고 바다에 빠져 죽는 게 낫다. 또한 반대로 형제가 죄를 지으면 하루에 일곱 번씩 70번씩 490번 용서를 하라하신다. 이게 대조가 되는데 어떻게 가능 하느냐이다. 아마 형제를 실족하게 했다고 연자 맷돌을 목에 걸고 바다에 빠져 죽으라 한다면 오늘 이 자리는 바다에 빠져죽은 시신들이 즐비할 것이다. 또한 490용서도 불가능하다. 그러니까 제자들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실력과 능력으로는 불가능하다. 이 말씀을 들은 제자들은 도저히 이해가 안 될 일을 직감을 하고 주님 앞에 5절에 그래서 "주님 도저히 안 되니까 우리에게 믿음을 좀 주십시오!"라고 한다. 우리에게 믿음을 달라한다. 자신의 실력과 의지와 능력으로는 안 되는 것이 이해가 안 될 것 같으니까 자기들에게 믿음을 달라는 것이다. 그래서 믿음을 구했는데 주님은 갑자기 이해가 안 되게 갑자기 뜬금없이 종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하신다. 그러니까 하루 종이 밖에서 일하고 그 주인에 수고했다고 밥 먹어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 오히려 너는 종이니까 식사준비를 더하라고 하신다. *누가복음 17:6~7, 6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7 너희 중 누구에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오면 그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말할 자가 있느냐. ㅡ밖에서 종일 일을 하고 돌아왔는데 우리 같으면 하루 종일 일하고 돌아왔으면 정말 고생했다 격려도 해야 하는데 종이니까~ *누가복음 17:8, 8 도리어 그더러 내 먹을 것을 준비하고 띠를 띠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 -오히려 밥 먹기는 커녕 식사준비를 하라는 것이다. 종이니까~ 그리고 식사 준비를 다했다고 하고 하지 않는다. *누가복음 17:9, 9 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감사하겠느냐. -잘했다고 주인이 종에게 감사하지 않는다. 그리고 기가 막힌 것은 10절에 보니 그렇게 애쓴 종이 주인에게 수고한 데도 불구하고 그냥 해야 할 것을 했다고 말한다. 종이 실천을 네 번이 겹친다. 제자들은 믿음을 달라고 하니 주님은 종의 자세를 가지라고 하신다. 이런 말씀을 듣고 마음이 편하지 않는다. 사랑의 본체이신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나, 어떻게 보면 좀 섭섭할 수도 있는 것이다. *누가복음 17:10, 10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그렇게 죽도록 일해 놓고 난 다음에 나는 무익한 종 이니이다. 섬김에 관해서 -overlap four times. 실족하게 한다든지 용서를 못하면, 거기에 대한 대답을 주님은 섬김에 대한 것을 말씀하신다. 네 번이나 겹친다. 그러니까 이렇게 말씀을 들을 때, 우리 마음속이 좀 불편한 것이다. 조금 전에 이야기 했듯이 연자 맷돌을 매고 바다에 빠질 시신들이 가득 찰 것이다. 익사자, 고대 사회에서는 인권이 없다. 그리고 주인의 소유물 취급을 받았고, 그런 상황인데 어떻게 사랑의 본체이신 그 주님께서 이렇게 매정하게 말씀하시는가? 무익한 종이라 하신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 섭섭하지 않는가? 완전한 반전이다. 우리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높은 수준의 말씀이요, 어떻게 보면 새 판짜기요, 어떻게 보면 혁명적인 말씀이다. 왜 네 번이나 겹치는 것을 주님은 요구하시는지? 이게 믿음과 서번트와는 무슨 상관이 있는 것인지, 성찬을 앞에 놓고 주님이 주시는 우리에게 주시는 각자 음성을 듣기를 바란다. 뽕나무 뿌리를 뽑을 수 있는가? 오늘 제자들이 도저히 자기의 힘으로는 불가능할 줄 알고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면서 자기의 나름, 의지나 공로의식이 있었을 것이다. 나름 기도하면 병도 낫고 더 큰 믿음을 가지고 우리가 하면 좋겠다는 이런 뜻이 있었을 것이다. 6절에 보면 I. 뽕나무 뿌리가 뽑히려면(6절) *누가복음 17:6, 6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여러분 기가막힌 말씀이다. 아주 뿌리가 깊이 내리는 나무가 바로 뽕나무이다. 그래서 어떤 힘을 가지고 뽕나무를 통째로 뽑아내기가 정말 힘들다. 뽕나무 뿌리가 뽑아지는 자체가 기적이고 불가능하고 더더구나 뽕나무 뿌리가 아주 깊고 뿌리가 많다. 이것은 뽑기도 힘들다. 더더구나 뽑혀가지고 바다에 심기어져서 바다에서 살아나는 것, 그것도 더욱 불가능한 일이다. 다시 말하면 뽕나무가 뿌리째 뽑히는 것도 불가능하고 뽑힐 뽕나무가 바다에서 자라는 것도 불가능하다. 제자들 입장에서는 이것이 기적이 일어나야 하는 일이다. 주님은 갑자기 무슨 말씀을 하시냐면 “그 기적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너희들이 필요한 것은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다.”라고 하신다. 그리고 그 겨자씨 믿음이 어떻게 출발을 하게 되는가? 그러니까 믿음의 핵심은 겨자씨처럼 작은 것이지만 거기에 미음이 담겨있는데 중요한 것은 기적으로는 사람이 안 바뀐다는 것이다. 성찬을 맞이하면서 우리 자신을 둘러보게 되는데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은 큰 기적을 통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고 적은 섬김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큰 믿음과 섬김이 같이 간다. “섬김에 대해서 눈을 열지 못하면 종의 자세에서 눈을 열지 못하면 너희는 큰 믿음을 가질 수 없다.”라고 하시는 것이다. 이 말씀은 신앙의 핵심은 기적과 이적이 우리에게 초월적인 신앙의 능력이 우리에게 있기는 하지만 나중에 가면 갈수록 기적과 이적은 신앙의 핵심은 아니다. 왜? 기적과 이적은 그것을 통해서 사람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러분 기적 중에 최고의 기적은 요한복음 21장에 나사로가 다시 살아난 사건이다. 나사로가 살아났으니 사람들이 다 바뀌어야 할 것 아닌가? 그런데 나사로가 살아서, 나사로 살아난 것을 보면서도 오히려 예수님을 보고 죽이려고 모의를 한다. 38년 된 병자가 기적처럼 나았는데 그걸 보고 변화된 것이 아니라 안식일에 예수님이 잘못이라고 옭아맨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그리고 예수님이 공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십자가 사건이며 우리 구원 사건이다. 그런데 주님은 공생애가 마무리가 될 수록 가면 갈수록 기적을 행하시지 않는다. 초기에는 많이 보여 주시지만 나중에는 보여주시기 않는다. 왜냐면 기적이 사람을 변화시키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적보다 더 중요한 것은 평범한 일상사에서 승리하고 일상사에서 참된 섬김의 본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참 된 믿음과 실체는 무엇인가? 무슨 나사로가 살아난 것도 아니고 38년 병자가 낫는 것도 중요하지만 믿음으로 볼 때는 진정한 믿음이다. 그리고 이 땅에 살아가면서 예수 믿는 다는 것은 섬기는 것은 적당이가 아닌 당황스러울 정도의 혁명적 섬김을 말한다. 당황스러울 정도로 무모하고도 혁명적인 섬김이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서는 무모한 것처럼 보여도 이것이 믿음의 실체와 본질이라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쓴 뿌리, 우리에게는 수많은 뿌리들이 어떻게 제거 되어야 할 것인가? 섬김의 대한 올바른 깨달음을 가져야 한다. 저는 목회 40년을 돌아보면 난관이 있었다. 부족한 것 등과 내외적으로 많았지만 그때마다 사역의 난관 가운데, 섬김의 도의 깊이를 깨달았기에 그렇게 섬김의 요체를 깨닫고 마음을 열 때에 많은 것들이 해결되었다. 오늘날 수천 수백권들의 책들과 유튜브는 오늘도 당신이 원하는대로 당신 중심으로 살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변화되기 전에 제자들도 똑 같았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3년이나 따라다니면서 예수님의 섬김을 보면서도 자기중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심지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기 전까지도 누가 큰 자인가 서로 다투었다. 그만큼 쓴뿌리가 깊었다는 것이다. 그때 예수님께서 거룩한 극약처방을 하시는데 유사이래 스승이 제자들의 때로 찌는 발을 씻긴 스승이 그당시 예수님이 유일했다. 더 큰 믿음이나 한 방을 요구하지 말고 일상을 살면서 너희들이 깨닫는 것이 있어야 하고 그 가운데서 섬김의 도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오늘 성찬식을 앞에 두고 믿음의 한방을 생각하지 말고 내 중심의 뽕나무 뿌리를 뽑는 그런 실체가 있는 성찬식이 되기를 소망한다. 캐돌릭은 성사라고 해서 거룩한 예식을 일곱 가지를 한다. 여러 가지 고해성사, 마지막 종부성사까지가 있다. 우리 기독교는 두 가지 밖에 없다. 세례와 성찬이다. 오죽하면 자기중심의 뽕나무를 뽑으려면 예수님의 세족식을 기억해야 한다. 어떻게 뿌리를 뽑을 수 있는가? II. 겨자씨와 같은 믿음은 네 번 겹침의 섬김에서 시작한다(7-10) *누가복음 17:7-10, 7 너희 중 누구에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오면 그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말할 자가 있느냐. 8 도리어 그더러 내 먹을 것을 준비하고 띠를 띠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 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 9 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감사하겠느냐. 10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섬김에 표준을 보여 주신다. 섬김에 관한 신앙적 스탠다드를 말씀하신다. 순장님을 파송할 때도 이 말씀이 본문이 된다. 예수 믿고 구원 받았으면 종의 유전자가 트랜퍼 된다. 종이 마음을 가지고 자연스러운 것이다. 예수 믿고 하나님 은혜를 체험했으면 자연스럽게 섬김의 본이 되는 것이다. 누구를 원망할 필요도 없고 섭섭할 필요도 없다. 이 종의 자세를 네 번이나 겹쳐서 말씀하신다. 이것 때문에 리더 서임식이라고 훈련한 사람을 각 캠퍼스마다 주로 이 말씀을 사용했다. 개척하고 순장으로 파송할 때 이 말씀을 많이 사용했다. 우리는 큰 것 한 방이 아닌 예수님이 십자가 사건 이후는 기적이 행하지 않으셨다. *빌립보서2:7.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예수이 이땅에 오셔서 우리 사람으로 몸을 입으실 때 하나의 제일의 표현이 무엇이냐면 종의 형체를 가지셨다는 것이다. 우리가 예수 믿는 우리는 아주 자연스러운 것은 종의 DNA가 주님으로부터 우리에게 이전되는 것이다. 트랜스퍼 된다. 우리가 구원 받으면 예수님의 종으로서 유전자가 이식되어 섬김이 자연스럽다. 신실한 종의 은혜이다. 진정으로 믿으면 섬김이 자연스럽다. 구세주로 모시면 이것을 깨달으면 누구의 원망도 없고 상처 받을 것도 없고 시험들 것도 없다. 은혜의 길이 열린다. ※저의 영적인 멘토인 토마스 아 캠피스는 뭐라고 이야기 하는가?를 보자. -토마스 아 캠피스- “주님의 헤아릴 수 없는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까? 내 소원은 단 하루라도 주님의 크신 은혜에 합당한 섬김(봉사)을 하는 것이다. -토마스 아 캠피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된 특권이 있다. 또 하나는 종으로서의 포지션이 있다. 종으로서의 자세이다. 섬김은 하나님께 해드린다는 것보다는 그간 구원 받은 자로서 자연스럽게 감사하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신실한 은혜가 있다. 예수를 믿는 자답게 사는 것이다. ※제가 미국 신학교때에 들었던 유명한 일화가 하나 있다. 지금부터 약 110년 전의 8년간 통치한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의 이야기이다. 그당시는 비행기가 없었기에 이분은 사냥을 좋아 하는데 아프리카에 가서 사냥을 하게 되었다. 배를 타고 간 것이다. 돌아올 때 함께 탄 사람이 있었다. 대통령과 그 배에 아프리카 선교사 노부부가 배에 탄 것이다. 함께 도착한 항구에 도착을 했다. 대통령은 환영하는 인파들이 대단했다. 대통령 찬가가 나오고, 고위 공직자들이 다 나왔다. 그러나 평생을 아프리카 선교사로 산 노부부 환영 인파는 아무도 고 관심도 없었다. 그런 그 부부가 허름한 아파트에 들어갔다. 남편 선교사의 마음에 섭섭함이 몰려왔다. 아프리카에서 일생을 바치고 돌아왔는데 우리는 돈도 없고 돌봐 주는 사람도 없고 관심 기울인 사람도 없다고 하면서 아프리카 선교사로 이렇게 돌아왔는데 관심을 가진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평생을 하나님께 헌신 했는데 얻은 것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루즈벨트 대통령은 저렇게 환영받고 그러는데 공평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마음이 힘들었다. 그런데 아내 선교사가 물론 불공평하지만 그 속상한 남편의 마음을 주님께 올려드리면 어떠냐고 말한다. 나이가 늙으면 아내 말을 듣는 것이 좋다. 그러니까 그말을 듣고 남편이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를 했다. 시간이 꽤 흐르고 나서 남편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져서 그 방을 나왔다. 여보, 기도하니 어때요? 하니 남편이 대답했다.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내가 불평하는 마음을 다 올려 드렸다고 말한다. 주님, 대통령은 저렇게 환영을 받는데 나는 신경 쓰는 사람이 없는 자체가 섭섭합니다. 주님을 우리를 잘못 대우하시는 것은 아니냐고 섭섭하다고 하닌 주님이 대답하셨다고 하면서 "예야, 너는 아직 집에 온 것이 아니다." 여기는 너의 진짜 집이 아니야, 라고 말씀하신다. 우리도 억울한 일도 많고 힘든 일도 많은데 그래서 억울함을 하소연하기도 하고 섬김을 이야기 하면 열 받을 때도 많다. 그래도 우리가 섬겨야 할 이유는 여기가 진짜 집이 아니고 진짜 집을 주님이 예비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주님은 진짜 집이 있으니 "나와 함께 영광의 보좌에 앉자." 라고 이야기 하시면서 주님이 우리를 섬겨 주실 것이다. 참 치유가 되는 말씀이 있다. *누가복음12:37b, 주인이 띠를 띠고 그 종들을 자리에 앉히고 나아와 수종들리라. -그날이오면 예수님이 그 종들을 띠를 띠고 자리에 앉히고 수종들어 주실 것이다. 만왕의 주 이신 하나님께 종으로서 우리를 수종 들으실 때 우리의 모든 것이 보사잉 될 것이다. 그래서 좀 억울하더라도 안타까운 일이 있더라도 주님의 믿음의 본체를 확인 하면서 우리는 믿음의 떡을 우리의 믿음을 더불로, 트리플,로 포 포드로, 받기를 바란다. 결국은 뽕나무가 뽑히는 것은 작은 겨자씨 같은 믿음에서 오는데 그 작은 섬김에서부터 시작된다. 잘 섬기면 모두를 섬기면 그럴 때 수고를 들으시고 여러분을 섬겨주실 것이다. 이 땅이 진짜가 아니다. 성찬식을 하겠다. 우리 주님은 아무 흠도 없고 거룩하신 분이 죽임을 당하시고 섬기셨다. 오늘 모두가 다 함께 섬김의 자세로 하면 주님은 기뻐하실 것이다. ♣요약 무모하고도 혁명적인 섬김으로 겨자씨 믿음의 문을 열어주심을 믿고 자기중심의 쓴 뿌리를 뽑아내는 치유의 성찬식이 되어야 하며, 우리가 사명의 수고를 다한 후에 ‘나는 무익한 종’이라고 고백할 때에 이 땅에서 생명싸개로 보호해 주시며 천국에서 영광을 받으실 것임을 확신해야 한다. -예수님께서 믿음의 표본으로 제시하신 것은 겨자씨 한 알이다. 겨자씨 한 알은 극히 작아서 보잘 것 없어 보이지만 그것이 심겨져 자라면 커다란 나무가 된다. 작고 보잘 것 없다 할지라도 그 안에 생명이 있는 믿음이라면 이와 같이 자라서 놀라운 능력을 발휘할 것이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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