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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저녁기도회(주후 2024년 11월 7일)
제목: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말씀: 누가복음 10:17~20
찬양인도: 쉐키나찬양대(이 다니엘 부목사님)
사회: 강건우 부목사님
 
설교자: 전승현 부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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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0:17~20,
17 칠십 인이 기뻐하며 돌아와 이르되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18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19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
20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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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쌀해져가는 날씨 가운데서도 주의 전으로 향하는 우리의 마음과 발걸음은 날마다 더 뜨거워진 줄로 믿습니다. 오늘 안아주심의 본당에 함께 참여한 영 가족 모두를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이 시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 함께 봉독하시겠습니다. 누가복음 10장 17절로 20절에 주신 말씀입니다. 누가복음 10장 17절로 20절에 주신 말씀입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성경책 신약성경 110면에 있습니다. 찾으셨으면 저와 함께 한 줄씩 교독하고 마지막 20절은 합독하겠습니다. 제가 17절 말씀 읽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봉독. 아멘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제가 이전에 섬겼던 교구에서 코로나 가운데 지방에 장례가 났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함께하지는 못하였고, 순장님과 저와 단둘이 이렇게 조문을 내려가게 됐습니다. SRT를 타고 그 지방 역에 도착하고 그 역에서 이제 장례식장까지 한 15분가량 택시로 이동하게 됐습니다. 저는 택시의 앞자리에 앉았고 우리 순장님은 택시의 뒷자리에 앉으셨습니다. 출발하고 난 다음에 얼마 지나지 않아서 우리 순장님께서 기사님에게 한 말씀을 전하시는 거예요. “기사님 오늘 날씨가 너무 좋네요. 여기 저 처음 와보는데 이 도시가 너무 깨끗하고 조용하고 좋습니다.” 그러니 어때요? ‘기사님도 네 그렇습니다.’라고 응대하시겠죠. 그리고 난 다음에 순장님께서 그 기사님에게 이러한 질문을 했습니다. “기사님 혹시 예수님 믿으세요? 그랬더니 이 기사님이 아니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랬더니 우리 순장님께서 마치 옳거니 때를 기다렸던 것처럼, “그럼 제가 잠깐 하나님의 말씀을 좀 전하고 싶은데 전해도 될까요?” 고객이니까 어떻겠습니까? 당연히 전하라라고 하시겠죠. 그리고 순장님께서 그 자리에서 전폭을 하시는 겁니다.
 
앞자리에 제가 앉아 있는데 이게 제가 안절부절 못하는 거예요. 제가 이렇게 한 번 서포트라도 해야 되나? 라는 그런 걱정을 하게 됐습니다. 갈팡질팡하다가 결국에는 장례식장까지 도착을 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조문을 마치고 다시 나왔습니다. 그때부터 제가 머릿속에 너무 고민이 되는 겁니다. 올 때는 순장님이 하셨는데, 갈 때는 그래도 내가 뭔가 해야 되지 않을까, 그런 고민 고민을 하다가 결국 또 택시에 승차(乘車)하게 됐습니다. 역시 저는 앞자리 순장님은 뒷자리에 앉았습니다.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순장님이 아까와 똑같은 멘트를 하셨습니다.
 
“기사님 오늘 날씨가 너무 좋네요. 저 여기 처음 와봤는데 여기가 너무 조용하고 좋은 것 같습니다”.제 마음이 쿵쾅쿵쾅 뛰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다음 말이 무슨 말이 나올지 알고 있었으니깐요. 우리 순장님께서 다시 그 기사님에게 물어봤습니다. “기사님 혹시 예수님 믿으세요?” 근데 전혀 뜻밖의 대답이 나왔습니다. 기사님은 뭐라고 하셨냐면, ‘네 제가 일요일마다 아내와 함께 교회에 나갑니다.’
 
제가 속으로 할렐루야! 를 외쳤습니다. 이제 10분 동안 이동할 때 조용히 갈 수 있겠구나. 마음 편히 갈 수 있겠구나. 근데 아니나 다를까 전혀 뜻밖의 대답이 우리 순장님에게 또 나왔습니다. “네 기사님 그래도 제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싶은데 한번 들어보실래요?”
 
그때서야 제가 깨달았습니다. 우리 순장님은 교회 다니시고, 질문한 게 아니라 예수님 믿으시냐고 질문을 한 거였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제가 참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제 명색이 목사잖아요. 목사인데 그 순장님을 보면서 제 자신을 보니까 너무 부끄러운 겁니다. 나는 이렇게 복음을 전하지 못하고 가만히 앉아 있었는데, 저는 원래 차를 탈 때, 원래 제 기질이 그래서 조용히 가는 걸 좋아합니다. 그래서 그 핑계를 대면서 한 번도 그 택시 안에서 복음을 전했던 적이 없었던 제 자신을 한번 돌이켜봤습니다.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할 때 어려워하는 것들이 몇 가지가 있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전도가 아닌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전도를 하게 될 때, 걱정되는 게 있죠. 내가 누군가의 복음을 전할 때, 그 사람이 어떤 리 액션을 취하게 될지 어떤 반응이 나오게 될지, 혹시나 내가 복음을 전할 때 그 사람이 마음이 불편해지지는 않을지, 그러한 근심 걱정들이 내가 전도하는 데, 복음을 전하는 데, 걸림돌이 될 때가 참 많이 있다는 겁니다.
 
우리는 이제 새 생명 축제를 나흘 앞으로 맞이하고 있습니다.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매년 찾아오는 새 생명 축제이고, 매년 우리가 태신자 작정을 하고 있는데, 지금 내가 있는 그 자리 여러분들이 서 있는 그 자리에서 정말 복음을 전하고 있는지 한번 이 시간을 통해서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이제 나흘밖에 남지 않았는데 태신자 만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인데... 라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여러분 나흘이면 너무나도 긴 시간입니다.
 
더 길게 보면 다음 주 수요일까지 진행되기 때문에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우리에게 남아 있다라는 사실이에요. 오늘은 제가 이 말씀을 함께 나누며 여러분들이 도전을 받아서 또 태신자에게 여러분들에게 믿지 않는 형제자매 부모님 자녀들에게 담대히 한 번 더 복음을 전하는 여러분 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그렇다면 내가 복음을 전할 때, 어떠한 마음과 어떠한 자세를 취해야 될지 한번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첫 번째, 여러분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 그 복음 앞에 나는 어떠한 자인지 명확히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 누가복음 10장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아는 말씀이죠 예수님께서 70명의 제자들을 전도대로 파송하게 됩니다. 그들에게 너희가 어떻게 어떻게 전도를 해야 되고, 또 너희의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해야 될지, 오늘 본문의 앞절에서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오늘 17절 이하에서 이제 그 70명의 제자들이 전도를 마치고 예수님께 돌아와 전도 보고를 하게 됩니다. 근데 그때 예수님의 그 제자들, 그 70명의 제자들이 무엇이라 말하냐면, 17절에 보니까,
 
*누가복음 10:17,
17 칠십 인이 기뻐하며 돌아와 이르되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라고 말씀하고 있어요. 그때 예수님께서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그랬냐! 라고 한 것이 아니라 그래 나도 그것을 보았다.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처럼 내려오는 것을 내가 보았다. 근데 20절에 보니까, 예수님께서 좀 이해되지 않는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누가복음 10:20,
20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지금 70명의 그 제자들은 전도 보고를 하고 있습니다. 전도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예수님께서는 약간 뜬금없는 구원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 계신다는 거예요. 우리가 처음에 이걸 읽었을 때는 잘 느끼지 못하겠지만 읽다 보면 약간 맞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오히려 귀신이 그 가운데 너희 가운데 항복한 것으로 기뻐할 것이 아니라, 뭇 영혼들이 너희의 말을 듣고 주께로 돌아온 것으로 기뻐하라. 그거라면 괜찮고, 아니면 너희가 그렇게 능력이 임한 것을 기뻐하라. 라고 말씀한다면 더 자연스러울 텐데, 예수님은 그것과는 상관없는 너희가 구원받은 것으로 너희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말씀하고 계실까요? 그런데 여러분, 이 말씀을 저는 제 나름대로 조금 더 묵상해 보면 예수님께서는 지금 이 말씀을 하고 계시는 것 같아요. 너희가 구원받았기에 너희에게 능력이 임하였고 또한 너희가 천국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즉 구원받은 자가 천국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구원받은 자가 천국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여러분 이 말씀이 맞습니까? 그렇죠. 맞죠. 구원받은 자가 천국 복음을 전하는 것이죠. 구원받지 않는 자가 어찌 천국 복음을 전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은 복음이 무엇인지도 모르는데요. 여러분 잠깐 이 말을 이 문장을 내려놓고 여러분들에게 한번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성경과는 관련 없는 질문인데요. 학창시절에 혹시 수학을 배우실 때 정석에도 나오는 건데요. 명제를 배워보셨나요? 네 배워보셨을 겁니다. 여러분 어떤 명제가 참일 경우에 무엇이 또 참이라고 말합니다. 대우가 참이라고 말합니다. 생소한 단어는 아니라고 생각되어집니다. 여러분, 어떤 명제가 참일 경우에 그 명제의 대우도 참이라고 말합니다. 왜 제가 이 말씀을 드리냐면, 방금 제가 말씀드렸던 것처럼 구원받은 자가 천국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이게 이 명제가 참이라면 이 대우는 무엇이냐 이 대우는 앞뒤를 바꾸고 역이 되고, 앞뒤를 부정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앞뒤를 바꾸게 되면 무엇입니까? 구원받은 자가 천국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천국 복음을 전하는 자는 구원받은 것이다. 근데 이걸 다시 한 번 부정해야 돼요. 천국 복음을 전하지 않는 것은 무엇입니까? 구원받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제가 방금 이 말을 했는데 이게 참이라니깐요. 천국 복음을 전하지 않는 것은 구원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약간 두렵고 떨리지 않습니까? 무섭지 않습니까?
 
저는 이걸 보고 난 다음에 약간 두렵더라고요. 결국엔 무엇이냐면 여러분 우리가 천국 복음을 전하는 것은 내가 구원받았다는 증거요. 증표를 나타내는 거예요. 근데 내가 천국 복음을 전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내가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내 생명책이 내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됐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과 같다라는 겁니다.
 
여러분,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오늘 이 말씀을 우리에게 주고 계십니다. 여러분, 복음을 전하는 거 전도하는 거 우리는 간혹 그렇게 생각합니다. 신앙생활 오래했음에도 불구하고 천국 복음을 전도를 하는 것은 어떤 특정한 사람들만 하는 것이야 어떤 은사가 있는 사람들만 하는 것이야 어떤 여건과 환경이 되는 사람이 하는 것이야, 라고 쉽게 생각해버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예수님은 우리에게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도 디모데에게 그렇게 말하잖아요. “너는 말씀을 전하라. 주의 복음을 전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그 말씀을 전하는데 힘쓰라”고 사도 바울이 그렇게 권면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복음을 전하는 거, 전도하는 거, 어떤 선택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온전한 제자로서 우리가 마땅히 감당해야 될 필수라는 것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또 하나, 여러분 우리는 이 전도를 통하여 우리 자신이 어떠한 명확한 정체성을 갖고 있는지 알 수가 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하여서 내가 전도함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자, 하나님의 그 생명책에 기록된 자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에겐 그 정체성이 있어야 됩니다.
 
예전에 한 예능 프로를 본 적이 있습니다. 어떤 프로그램이었냐면 연예인들의 일상을 관찰 TV로 이렇게 보여주는 팁이었는데요. 한 여자 연예인이 좀 오래전 프로였는데, 한 여자 연예인이 해변 가에서 휴양(休養)하는 그러한 관찰 팁이었습니다. 근데 이 여자 연예인이 소화할 수 없는 비키니 수영복을 입고 있었습니다. 근데 그때 패널로 나왔던 사람들이 불만을 토로하면서, 몸을 가리는 수영복을 입어야지 어찌 그런 수영복을 입었느냐, 이렇게 핀잔을 주는 거예요. 근데 이 여자 연예인이 했던 말이 저는 아직까지 뇌리에 남아 있습니다. 무엇이라고 말했냐면 수영복은 몸매로 입는 것이 아니라 자신감으로 입는 것이다. 복음은 아닌데 그 순간은 그 말이 되게 복음처럼 다가오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그때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전도라는 것이 바로 이거구나! 여러분 전도라는 것이 어떤 뛰어난 언변, 뛰어난 무언가가 있어서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그 자신감, 하나님의 자녀라는 그 정체성을 가지고 할 때, 그것이 진정한 복음 전도요. 그것이 온전한 제자로서 나아가는 모습이라는 사실이에요.
 
여러분, 오늘 누군가를 만나게 된다면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겁내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내 이름이 다른 책에 기록된 게 아니라, 하나님의 그 생명책에 기록됐다니깐요. 그 사실을 기억하면서 담대히 복음을 전하며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소망합니다. 또 하나, 여러분 우리가 이 복음을 전할 때 또 어떻게 해야 될까, 내가 전하는 복음이 어떠한 가치가 있는지 우리는 바로 인지하고 알아야 될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전하는 복음에 어떠한 가치가 있는지, 여러분 혹시 그림을 좋아하십니까? 유명한 작가들이 유명한 화가들이 그린 그림을 좋아하시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죄송한데 저는 지하 5층에 우리 뮤지엄이 있잖아요. 가끔 이렇게 내려가서 보게 되면 제가 고개를 갸우뚱거릴 때가 있습니다. 이게 뭐지? 라고 생각될 때가 있다. 라는 거예요. 가끔 TV나 어디에서 어떤 작품이 몇 억에, 몇십 억에 아니, 그 이상의 가격으로 팔렸다는 소식을 듣게 되면 너무 교만한 말입니다. 저 정도는 나도 그릴 수 있겠는데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왜 저 가격이 나가지? 유명한 작가인 피카소의 그런 입체주의 화가들의 작품을 오게 되면 그냥 저게 뭐지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라는 거예요. 그건 제가 그림에 대해서 문회하기 때문에 그렇겠죠. 그 그림에서 작가가 그 그림을 통해서 던지고자 하는 그 메시지가 무엇인지 제가 알지 못해서 그 그림의 가치를 모르는 것이겠죠.
 
여러분, 그런데 이와 같이 여러분들이 전하고 있는 그 복음의 가치를 알고 계십니까? 여러분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니까 19절에 이렇게 말하고 있어요.
 
*누가복음 10:19,
19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
-예수님께서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다. 라고 말합니다. 근데 여러분 이 권능이 어떻게 발휘합니까? 어떻게 나타납니까? 제자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예수님 당신의 이름으로 선포하니까, 그 능력이 나타나는 것을 우리가 보았습니다. 목도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가지고 있는 여기에서 말하고 있는 주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그 이름이 복음이에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그 복음이 그 능력이라니깐요.
 
그래서 사도바울도 그렇잖아요.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라고 여러분 그 능력을 그 놀라운 가치가 있는 복음의 능력을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는 오늘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그걸 가지고 있어요. 그걸 가지고 있기에 무엇이 두렵겠고 또 무엇을 주저할 수 있겠습니까? 특별히, 여러분 우리는 지난 10월, 담임 목사님은 이렇게 표현하셨습니다. 인생 10월이라고, 4주간의 놀라운 사역들을 감당했습니다.
 
10.27 한국교회 연합예배, 다시 한 번 믿음 없는 저의 고백을 여러분들 앞에 고백하게 되는데 10.27을 준비하면서 저도 될까? 라는 생각을 안 했다고 하면 거짓말입니다. 근데 여러분, 저는 그날 먼저 그 광장에 도착해서 11시 좀 넘은 시간부터 지역, 지역마다 목사님들이 그 지역에 섹션에서 어떻게 사람들이 모여 있는지, 사진을 찍어서 카톡 방에 올렸습니다. 그걸 보면서 정말로 걱정 걱정이 됐습니다. 2시에 시작인데, 1시 반까지도 아직 채워지지 않았어요.어떻게 할까 어떻게 할까 하나님 이거 어떻게 해야 됩니까? 이러면 안 되는데 근데 놀랍게도 하나님은 10분 전부터 시작해서 그 모든 공간을 가득 메우시더라고요.
 
여러분, 110만 명이라는 사람을 온라인까지 포함하면 300만 명이라는 사람이 함께 모였습니다. 여러분 그게 가능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어떤 누군가의 이름 때문에 모였습니까? 어떤 이벤트 때문에 모였습니까? 아니요!!!. 그들이 모인 건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그 이름으로 모였습니다. 그 이름으로 모일 때, 그 이름 가운데 능력이 나타나고 함께할 수 있었던 것을 보았습니다. 앞으로 우리가 나아갈 그 길 가운데 이것이 도화선(導火線)이 되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어오시는 그 놀라운 역사들을 앞으로 우리는 더 목도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특별히, 그 목도와는 또 다른 공간이 저는 우리 사랑의 교회
 
2024 새생명 축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여러분, 그 능력을 가지고 나아가십시오. 그 능력이 바로 세상을 이기는 힘과 능력이 될 줄로 믿습니다. 마지막 그렇다면 또 주의 복음을 전하는 자로서, 또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될까? 앞에서 서두에도 말씀드렸던 것처럼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복음을 듣는 자가 이 복음을 받아들일까, 아니면 튕겨낼까? 그게 걱정될 때가 참 많이 있습니다. 결국엔 뭐냐 하면 우리는 그 결과에 연연할 때가 참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 베드로가 복음을 전할 때, 수많은 사람들 3천 명이 한 번에 회심(回心)했습니다. 바울도 복음을 전할 때 그런 놀라운 역사가 나타났지요. 여러분, 19세기 20세기 위대한 전도자로 말하는 아레이토레이 목사님, 그는 그의 일평생 가운데 약 10만 명을 회심시켰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놀라운 은혜죠. 놀라운 열매들이 나타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역으로, 여러분 우리가 복음을 전하였는데 단 한 명도 그 복음을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회심하지 아니하였다면, 여러분들이 지금 서초역에 나가서 지나가는 100명의 사람을 붙잡고 예수님 믿으세요? 예수님 믿으세요? 그렇게 전하였는데, 한 명도 그걸 믿지 않았다면, 한 명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았다면 여러분들의 그 전도는 실패한 전도일까요? 여러분, 만약에 그 결과가 결과에 의해서 성공과 실패가 나눈다면, 이 세상에서 기독교 역사 가운데 가장 실패한 전도자가 누구일 것 같습니까?
 
성경의 인물 가운데 저는 예수님 같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3년 동안 유대인들에게, 자신들의 동족에게 자신의 동족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근데 그들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예수님은 3년 동안 12명의 제자를 이끌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 천국을 가르치고 자기가 누구인지 가르쳐 주었습니다. 근데 그 12명의 제자 가운데, 1명에게 팔림을 당하고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남아있는 11명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매달렸어 때 다 도망가 버렸습니다. 예수님은 3년 동안 공생을 하면서 천국 복음을 전했어요. 어떠한 결과도 없습니다. 오히려 비참한 죽음만이 남아 있었죠. 그렇다면 여러분 예수님은 3년의 그 공생 천국 복음을 전하셨는데 어떻습니까? 실패한 전도자였습니까? 실패한 분이었습니까? 아니요. 그 누구도 예수님을 실패한 전도자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실패한 사역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여러분 결과는 오늘 우리가 책임지는 것이 아니에요.
 
오직 하나님께만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이 사실을 기억하시기를 바래요. 여러분, 하나님께서 바울도 그랬어요. 나는 씨를 뿌리고 아볼로가 물을 주고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복음을 전하였을 때, 누군가가 그 복음을 듣고 영접하는 건 그건 우리의 능력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때 가능한 거예요. 그러면 우리가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담대히 복음을 전하고 그 씨를 뿌리는 것이죠. 여러분, 그 씨를 뿌릴 때 어디에 뿌리시겠습니까? 우리는 씨 뿌리는 비유를 너무 잘 알고 있죠. 마태, 마가, 누가 복음에 등장하는 그 씨 뿌리는 비유, 여러분 씨를 뿌렸는데 그 씨가 어디에 뿌려지게 됩니까? 하나는 길가에, 하나는 돌밭에, 하나는 가시떨기에, 그리고 하나는 좋은 땅에 뿌려집니다. 그 가운데 열매를 맺는 곳은 어디입니까? 좋은 땅에 뿌려진 그 씨가 자라나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맺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여러분들은 어디에 씨를 뿌리시겠습니까? 혹시 좋은 땅에 뿌리려고 하십니까? 여러분, 그렇지 않아요. 내가 복음을 전할 때 이 사람은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아. 성품도 착하고 나하고 지난날 함께했던 날들이 많으니까 받아들일 거야. 당장은 아니더라도 받아들일 거야. 그에게 전하고, 저 사람 저 사람은 아무리 복음을 전해도 결코 받아들이지 않을 거야. 오히려 그냥 전하지 않는 게 나아, 혹시나 우리가 그렇게 선을 긋고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 그렇지 않다. 라는 거예요. 우리는 그 시를 좋은 땅에만 뿌릴 것이 아니라 가시떨기에도 뿌려야 되고, 척박한 땅에도 뿌려야 되고, 사막과 광야에도 뿌릴 수 있어야 됩니다. 여러분 혹시 그러한 사진들을 본 적 있으십니까? 사막에 아무것도 없어요. 풀 한 폭이 있지 않는 그 공간에 간혹 아주 적은 양의 비가 내릴 때가 있습니다. 비가 내리고 난 이후에 그곳에 꽃이 피고, 풀이 자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아무것도 없을 것 같았는데, 바람을 타고 씨앗이 그 광야에 그 사막에 있었던 거예요. 근데 그전까지는 수분이 없어서, 싹을 트지 못했는데 비가 내리는 그 순간 발아(發芽)하여서 꽃을 피우고 풀을 내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전하는 복음(福音)이 그래요. 우리가 씨를 뿌렸을 때 당장 어떠한 열매 어떠한 결과가 나타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비를 내리시는 분이 하나님이셔요. 하나님이 그 가운데 그 사람의 척박해 보이는 그 사람의 마음 가운데 비를 내리실 때 내가 언젠가 전했던 그 씨가 복음의 씨가 자라서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이 사실을 우리가 기억하고 씨를 뿌릴 때 좋은 땅에만 뿌릴 것이 아니라, 그 척박한 광야에도 담대히 아까워하지 말고 그 복음의 씨앗을 뿌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저는 성경을 읽다 보면 아까 제가 사도 바울이 그가 전도 여행을 하며 복음을 전할 때 수많은 열매들이 있었다고 말씀을 드렸는데요. 근데 사도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 항상 그랬던 건 아닙니다. 사도바울이 2차 전도 여행 가운데 아덴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여러분 아덴이 지금이 어디입니까? 아테네입니다. 여러분 아테네 하면 무엇이 떠오릅니까? 여러 가지가 떠오를 수 있겠지만 아마 그곳은 학문의 중심지였을 겁니다. 아레오바고라고 성경에 나와 있는데요. 바로 그곳에서 수많은 철학자들이 논쟁하였던 곳입니다. 근데 사도 바울이 2차 전도여행 가운데, 아덴에 들어가서 그 아레오바고에서 철학자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 철학자들이 무엇이라고 표현됐냐면 하나는 에피크로스 학파라고 말하고 있고 하나는 스토어 학파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에 철학의 양대 산맥을 이루었던 자들입니다. 근데 그들 앞에 이 사도바울이 서서 복음을 전하게 되죠.
 
이 복음을 전할 때,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그 말씀, 예수 그리스도가 어떠한 분이 전하고, 예수 그리스도가 죽고 3일 만에 부활하셨다는 이야기를 들 때, 이 철학자들이 그 이야기를 듣고 어떠한 모습을 보이냐면 비웃습니다. 어떻게 죽은 자가 살아날 수 있느냐? 조롱하기 시작합니다. 결국 바울이 그 아덴을 떠나게 되는데 그곳에서는 열매를 거의 맺지 못합니다. 이전에는 여러 곳에서 수많은 열매들을 맺었는데, 유독 그곳에서는 열매를 맺지 못했어요.
 
여러분, 이 모습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어떤 분들은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데 있어서 여러분 바울이 학식 적으로 보면 어떤 자입니까? 가말리엘 학파에서 배웠던 대단히 유식한 자였습니다. 그러니 그가 철학자들을 만날 때, 순수하게 복음을 전한 것이 아니라 철학적으로 전했기 때문에 그들의 그들을 변화시키지 못했고, 그들 가운데 열매를 맺지 못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거기에 도저히 동의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사도바울이 그곳에서 열매를 맺지 못하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게 되는데요. 여러분 앞에서도 언급했던 것처럼 그리스 철학, 당시에는 로마 시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마가 여전히 그 그리스 철학 학문의 최고봉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헬라 철학을 받아들이고 수용했습니다.
 
여러분, 저는 성경을 읽다 보면, 몇몇 군데에서 약간 이런 표현을 써서 죄송합니다. 약간 소름 돋을 때가 있거든요.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홍해 바다를 건넸을 때, 소름 돋지 않습니까?
 
여러분. 다윗과 그 친구들 여러분 풀무 불에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머리털 하나 상하지 않았던 그 모습을 보면 약간 소름 돋잖아요. 근데 저는 오늘 이 본문은 아니지만 사도바울이 아덴에서 복음을 전했을 때 그 부분도 너무나도 소름 돋습니다. 왜냐하면요. 여러분 그리스 철학이 당시에 근 천년 가까이 이어왔던 학문이었습니다. 근데 그 철학자들과 바울이 주의 복음을 들고 나갔던 바울이 첫 대면했던 것입니다. 근데 보기에는 바울이 처절하게 패배했던 것처럼 보여 질지 모릅니다.
 
여러분 근데 오랫동안 이어왔던 그 철학이 그 이후에 어떻게 됩니까? 쉽게 말하면 지금 유럽의 철학이 그 당시에 헬라 철학이었는데 어떻게 바뀌게 됩니까? 기독교 철학으로 바뀌게 됩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요. 기독교를 수용하게 되고 그들의 학문이 학문의 최고봉이 기독교 철학으로 바뀌게 된다니깐요. 소름 돋지 않으세요? 저는 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말 소름이 돋는데,,, 여러분, 그 가운데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아는 교부처라 아우구스티누스 어거스틴으로 시작해서 여러분 중세 철학을 지나서 지금까지 이어지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믿고 있는 우리가 알고 있는 이 교리들이 그 당시에 세워진 것을 볼 수가 있거든요.
 
다시 한 번 질문을 드려볼게요. 여러분 바울이 그 철학자들과 싸웠습니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었겠죠? 그 아레오바고에서 싸웠던 사람은 바울 혼자였습니다. 여러분 바울이 이겼습니까? 졌습니까? 여러분 너무나도 통쾌한 역전승을 거두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바울이 거두는 것이 아니라 바울을 통하여서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을 역전시키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 담대히 복음을 전하십시오. 오늘 이 자리에서 전하십시오. 때로는 여러분들이 복음을 전할 때 듣는 자가 콧방울 끼고 나아갈 수 있습니다. 조롱할 수 있습니다. 너 광신도 같애. 너 미친 사람 같애. 라고 나를 조롱(嘲弄)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마지막 저 천국에 가서 행여나 그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그가 여러분들의 손을 붙잡고 내 생명의 은인(恩人)라고 감사할 것입니다.
 
여러분, 이 사실을 기억하며 우리가 새 생명 축제를 준비하기를 원합니다. 여러분들의 태신자들이 이번에 오지 않는다 할지라도, 이번에 새 생명 축제에 참여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여러분, 그 영혼을 위해서 기도하며 끝까지 복음을 전할 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때에 비를 내리심으로 말미암아 놀라운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허락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오늘 말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 이제 새 생명 축제가 나흘 앞으로 다가왔는데요. 솔직한 개인적인 심정은 저는 일주일 뒤에 지금 이 시간이었으면 너무 좋겠습니다. 그 마음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근데 일주일 뒤에 섰을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놀라운 은혜가 우리 사랑의 교회 가운데, 우리 영 가족 모두 가운데, 여러분들의 가정 가운데, 구원의 역사로 놀라운 역사로 그렇게 나타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늘 말씀을 기억하면서 늘 끊임없이 전하고, 내가 어떠한 자인지 그 자존심과 그 정체성을 가지고 나아가실 때,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을 통하여 약한 나를 통하여 강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고 놀라운 은혜를 놀라운 열매를 허락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요약
우리는 죄인 된 내 인생도 찾아내어 은혜로 값없이 구원을 안겨주셨던 지난날을 되짚으며, 우리의 심장이 다시 복음 앞에 가슴 뛰는 구원의 감격으로 충만하여, 당장 결과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30배, 60배, 100배로 결실하실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에 전적으로 의지하여,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담대히 예수님을 전해야 한다. 11월 11일 주일부터 13일 수요일까지 이어지는 새 생명 축제의 강단마다 피 묻은 복음이 선포될 때, 태신 자들이 반드시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큰 구원의 역사를 주님께서 인도하실 줄 확신하며, 생명과 사랑 앞에 다시 한 번 엎드려 우리 영혼이 바로 서는 기도가 되어야 한다. 내가 먼저 구원 받은 은혜를 감사하며, 우리의 지상 명령인 주님을 담대히 전하여 하늘의 생명책에 기록되는 자가 되길 소망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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