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말씀: 신명기 33:26-29절 설교자:김은규 목사님. --------------------------------------- ▷은혜를 사모하며 수요예배를 참여한 모든 성도님들을 축복한다. 오늘 성령님께서 은혜의 단비를 흡족히 내려 주시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32장을 보면 모세가 슬픈이야기를 하고 있다. 모세는 출애굽을 이끈 지도자였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은 누구보다 컸을 것이다. 모세는 눈앞에 가나안 땅이 보이는데 얼마나 황망했겠는가? 가나안땅의 열광을 맛보고 싶었을 것이다. 모세는 120세가 넘도록 눈이 흐리지 않고 건강했다. 요단강을 건너는 것에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모세 혼자만 가나안 땅에 못 들어가니 얼마나 서러웠겠는가!! 개인적으로 보았을 때에는 참으로 억울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개인을 내려놓을 줄 아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제사보다 순종을 원하시고 수양에 기름보다 듣는 것을 바라시는 하나님 마음을 깨달은 모세는 그 앞에 순종을 한다. 스스로 겸비한 후 자신을 제외하고 가나안 땅으로 향하게 되는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을 향하여 오늘 읽게 된 신명기 33장에 그는 축복의 유언으로 선포하신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을 향한 모세의 마지막 유언은 무엇이었는가?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다.~~!!! “너희는 복 받은 사람이다”라고 말한다. “여러분은 행복한 사람이다”라고 하면 지금 당신은 누가 떠오릅니까? 유명한 인지도 높은 사람이나.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떠오르는가? 아니면 넘쳐나는 돈을 할 수 있고, 살 수 있는 거부가 떠오르는가?? 높은 지위에서 절대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도 있고 탁월한 학문으로 드높은 사람도 있다. 여러분은 어떠한 행복을 바라고 쫓아가고 있는가??
ex) 웰빙파인더라는 책이 있다. 수많은 조사자들이 50년이란 세월동안 150개국을 다니면서 약 1억 5천만 명을 만나 웰빙과 행복에 대해 조사하고 미국 갤럽연구소가 연구하여 출판한 책이라고 한다. 이 책에서 말한 행복한 웰빙은... 첫째 - 자신의 관심사와 능력에 맞는 직업이다. 둘째 - 친밀한 인간관계: 사랑하는 사람, 마음 맞는 사람과의 교제이다. 셋째 - 돈이 필요하지만, 재산이 많은 것보다 관리를 잘 하고 구매와 소유로 얻는 기쁨보다 경험을 구매하여 얻는 행복이다. 넷째 - 규칙적인 운동, 식습관 적절한 수면으로 얻는 건강한. 웰빙 라이프이다.. 다섯째 - 쾌적하고 안락한 주거환경이다. 이 다섯 가지에서 행복한 웰빙이 온다고 분석하고 편집한 책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행복한 요건들을 보면서 광야 40년을 지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당신들은 행복 자들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가? 관심사에 맞는 직업, 광야에서 구할 수 있었겠나? 구매와 소유의 즐거움을 어떻게 누릴 수 있었겠는가? 광야의 모래바람과 때론 40도가 넘는 일교차의 뜨거움에서 안락한 삶의 보장이 되었겠는가? 더군다나, 모세의 설교와 마지막 유언을 듣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광야라고 하는 곳은 부모님과 친척들의 무덤이었다. 출애굽기 12장 37절을 보면 출애굽을 한 인원중 보행하는 장정이 60만 정도라고 말하고 있다. 여성과 아이들 노인까지 합치면 약 2백만 명 이상이다. 이들 중에 출애굽 1세대를 광야에서 죽게 되었다. 남녀와 노인까지 1세대를 적게 잡아도 약 120만 명을 40년간 장례식을 치른다고 하면 일 년에 몇 명이 죽었는가? 그것은 3만 명이 죽은 것이다. 3만 명을 365일로 나누면 하루에 82명이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약24시간으로 나눈다면 시간마다 3명씩 죽는 것이다. 그럼 20분마다 죽는다는 것이다. 200만 명이 행진하고 있는데 20분이 지나면 이쪽저쪽에서 죽었다고 울었을 것이다. 20분이 지나면 친척이나 조부모가 계속 죽는다는 것이 광야의 시간이다. 이 모든 것을 보고 자란 출애굽 2세대들에게 과거의 광야 40년은 두 번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공간이었을 것이다. 출애굽의 노예 생활을 종지부를 찍은 것이 아니냐라고 하며 행복한 것이라고 함부로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나와 입성하게 될 가나안 땅은 어떠한 곳이었겠는가?
▷그들에게 가나안은 꿈의 땅이었을까요?? 열두 정탐꾼의 보고를 보면 알 수 있다. 그 땅 거주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클 뿐 아니라,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는데, 우리는 그 능히 그 백성을 치지 못한다고 하고 말하고 있다. 그들을 보기에 스스로 메뚜기 같았고, 네피림후손 그들도 우리를 메뚜기처럼 보았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현실 보고를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이 얼마나 처참한 광경인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게 되면 잘 왔다고 할 것이라고 말할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기업이라며 이제 자기들은 떠나겠다고 하면서 순순히 떠나겠다고 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여호수아서를 읽어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땅을 정복하기 위해서는 마치 30번 이상에 전쟁을 치러야 했다. 우리는 성경이 있기 때문에 다 알고 있는 과거의 사건이지만, 이 들에게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미래이다. 네피림의 후손, 아낙 자손들이 얼마나 두려웠을지 그 앞에 어떤 일이 펼쳐지게 될지를 그 상황 속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를 모르는 불안함이 공존하는 그 미래를 마주하고 있다라는 사실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코로나 2.5단계가 언제 끝나게 될 것이며, 성탄예배와 송구영신 예배는 어떻게 드릴 수 있을지 2021년에는 과연 미래가 속히 펼쳐질 수 있을 것인가에 기대하기 어려운 지금의 현실과 이 이스라엘 백성의 상황이 맞닿아 있다는 것이다. 뒤로 돌아가도 조상의 무덤이 즐비한 죽음의 광야이고 요단강을 건너 앞으로 나아가더라도 가나안 족속의 밥이 되지 않기 위하여 30번 이상의 전쟁을 치러야 하는 이 백성들을 향하여서 “당신들은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축복받은 자들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넘 아이러니 하다. 정말 그들의 과거는 잿빛에 어둠이었을까요? 상황으로 보면 그렇다고 할 수 있다. 그토록 어두운 상황일지라도 한결같이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계셨기 때문에 과히 행복했다고 고백할 수 있었을 것이다. 광야를 내리쬐는 더위 낮에는 40도가 훨씬 넘어간다. 어떻게 그들이 40년간이나 이겨낼 수 있었겠는가? 걱정은 말기를 바란다. 최초의 에어컨디셔너가 있다. 바로 구름기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밤이 되면 10도 이하의 추위와 동물들이 엄습한다. 하지만 걱정이 없다. 최초의 히팅시스템(hitting system)인 불기둥이 있었기 때문에 이들에게 문제되는 것이 없었다. 백성들에게 먹을 만나도 주시는데 허루 이틀 주는 것이 아닌 자그마치 40ㄴ년간 한결 같이 베푸시며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그들 앞에 보여주시고 경험하게 해주셨다는 사실이다. 고기가 먹고 싶은 그들에게 메추라기를 주시는데 이들이 2백만 명이 먹는 것을 상상해 보라. 한 끼 식사를 위해서도 자그마치 400마리에 새벽에 광야로 날아와서 “날 먹으세요” 하고 누워 있어야 그들이 먹을 수 있다라는 사실이다. 물이 쓰면 물을 달게 하시고, 없다고 원망하면 그들에게 반석에서 물이 나게 하셨다. 40년간 광야에 머물면서 옷이 낡아지지 아니하고 신발이 해어지지 않았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기적인가??? 그 어떤 신발도 비교가 안 되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들을 입히시고 그들로 하여금 걷게 해주셨다는 것이 사실이다. 이들이 광야에 있으면서도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그 이유는 놀라운 기적을 보아서도 아니다. 기적은 금방 사라진다. 홍해를 경험한 사람들이다. 사흘 동안 걷는데 물이 없었다. 마라에 도착하여 물이 있지만 쓰다면서 원망하며 어떻게 이렇게 쓰냐고 하나님을 원망하는 이러한 모습이 홍해의 기적을 알면서도 바로 인간의 존재의 모습이라는 사실이다. 마치 우리는 기적의 기적을 보아야지만 하나님을 깨닫는 너무나도 어리석음에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를 누구보다 잘 아시고, 신실하게 공급해 주셨다. 비록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났어도 하나님은 눈동자같이 지키시고 앞서 인도하셨기에 그들은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일시적인 기적 때문이 아닌 하나님의 일상적인 동행하심으로 행복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이 과거가 아닌 미래가 행복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자기 백성을 보호하시고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과거에 하나님으로 끝나지 않겠다는 약속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본문 26절이다. -26 여수룬이여 하나님 같은 이가 없도다 그가 너를 도우시려고 하늘을 타고 궁창에서 위엄을 나타내시는도다. 사랑하는 자녀들을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시지 않으시고 급하게 임재 하셔서 그 자녀들을 돕겠다고 분이시니 이러한 사실이 기쁘지 아니한가? 미래에도 우리를 안전하게 거할 처소가 되어주신다고 27절에 약속하시고 계신다. 또한 2백만 명을 먹이시고 지키셨으니 미래에도 지속될 것이다라고 약속하신다. 이 하나님으로 우리는 든든하다. 강수량이 적은 팔레스타인지역에 풍성하게 농작물을 위해 이슬을 비처럼 내려서라도 하나님은 28절에도 약속하시고 계신다. 이쯤 되면 우리는 든든하다.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로 인해 행복하다. 우리가 이기지 못할 싸움에 놓일 때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의 지혜와 능력을 무기삼지 않고 내려놓고 하나님 품에 안길 때에 약할 때 강함 되시는 주님께서 우리의 방패시오 영원한 칼이 되어 주시는 줄 믿는다. 모세는 이 설교와 축복을 마치고 나면 죽음을 맞이한다. 떠나는 길에 나는 비록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지만, 너희들에게 좋은 메시지를 주고 가겠다라고 해서 너희는 행복한 자다라고 격려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의 행복은 무엇을 가져야 하고 어떤 것을 누려야 하며 내가 생각하는 것을 이루어야 행복을 얻을 수 있다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모세는 진짜 행복은 하나님께서 나아온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나는 너희들과 같이 있지 아니하여도 너희들은 행복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하라고 모세는 유언을 하고 있다. 행복은 상황이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다. 기적 또한 그때만 기쁘고 만족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찢어진 인생 같고 웅덩이에 버려진 청참한 자아 같은 그런 괴로움 속에서도 나와 함께하시는 하나님께서 나의 반석이 되어 주신다면, 지옥 같은 상황 속에서도 혼인 잔칫집 같은 감사를 누릴 수 있는 줄 믿는다. 우리가 처한 코로나 상황과 이 말씀의 상황이 너무나도 비슷함을 생각을 했다. 한해를 돌아보면 전 세계적으로 백 오십만 명이상 죽었다. 과거에 40년간 백오십만명이 죽은 것이 아니다. 그냥 1년에 삶과 죽음이 그렇게 된 것이다. 그렇게 비참한 과거를 뒤로 하고 우리의 미래는 어떠한가?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죽음을 맞 해야 할 것인지, 두려움 앞에 먼저 직면한다. 무너져 내린 경제는 언제 회복할 수 있을지, 답답하다. 이 상황에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의 그림이 그려지지 않으면 나또한 코로나 불루로 괴로워할까 염려한다. 코로나가 종식되면 모든 것이 괜찮아지리라 하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안심하게 될 것임을 믿고 안도의 숨을 쉬고 있는지 모르지만 코로나 이후 더 큰 질병이 온다고 한다. 하나니믜 산을 넘고 평지가 찾아올 것이라 기대하지만, 더 높은 봉우리가 있다는 것을 많이 경험한다. 하나의 일이 해결되면 기쁨도 잠시 또다른 일이 생겨서 우리로 하여금 좌절하고 낙망하게 만드는 것을 경험한다. 성경이 우리에게 말하는 행복은 상황의 행복이 아니다. 하나님과 그 자리에서 함께 하느냐 안하느냐가 중요하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을 사는 것처럼 우리 또한 상상하지 못하는 해를 살고 있고, 내일의 미래를 누구에게 맡기며 도움을 구할 수 있겠는가? 영원한 팔이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를 승리케 하심을 믿으면, 놀라운 하나님의 은총을 날마다 경험하는 진정한 행복을 맛보게 될 것이다. 이기게 하시고 구원을 베푸시는 여호와께서 언제나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깨닫기를 바란다.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고 늘 함께 하심에 감사 영광 돌려야 한다. ♣요약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이 시대에 우리에게 허락하심을 믿어야 한다. 우리는 정말 하나님과 함께 하시기에 우리는 행복하다. 모든 상황을 가정 선한 것으로 주시며, 상황을 반전하게 하시고 나를 사랑하시고 자녀 삼아 주심에 감사하며, 항상 공급자 되시며, 보호자 되시며, 인도자 되셔서 평생토록 행복을 누리게 해주심에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늘 지켜 주시고 보호해 주시리라는 것이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될 임마누엘(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의 복을 예표하시며, 오늘날 우리는 자신의 기준에 맞추어 하나님의 복을 평가하거나 축소시키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도우시는 방패요, 영광의 칼이 되어 대적을 이스라엘에게 복종시키고 그들의 높은 곳을 정복케 하셨기에, 이와 같이 우리는 하나님과 동행함으로써 참된 행복과 참된 기쁨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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