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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카로운 칼로 도려낸 소설가의 삶

가령 이런 칼이 있습니다.

누대를 이어온 장인이 만든 이 칼은 자르는 식재료의 본성을 거스르지 않습니다.

이 칼로 다듬은 생선은 비린내가 나지 않으며 다른 칼로 뜬 회와는 맛이 확연히 다릅니다.

세포의 변성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지요.

과일을 깎아두면 색과 맛이 변하지 않으며 양파를 다져도 눈물이 흘러나오지 않습니다.

이 칼로 살아있는 짐승을 단칼에 베면 처음엔 선명한 근육의 결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만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한동안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제야 피의 냄새를 먼저 맡을 수 있을 것이며 이윽고 천천히 방울져 맺히는 피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인간 혹은 세계를 한 개의 오렌지라고 가정해볼까요.

소설이란 어떤 형식으로든 이 오렌지를 잘라서 접시에 담아내는 요리라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가로로, 세로로, 대각선으로, 혹은 잘게 다져 즙을 낼 수도 있겠지요.

다만 칼 한 자루로.

일상과 영혼을 단 한 번의 휘두름으로 베어낼 수 있는 칼.

처음엔 선명한 단면을 보여주고 다음엔 그 독특하고 유일무이한 냄새를, 마침내 과즙 대신 방울져 나오는 피를 맛볼 수 있게 해주는 칼.

소설가라면, 영원한 젊음보다는 이런 칼과 자신의 영혼을 바꾸자는 유혹에 넘어갈지도 모릅니다.

 미시마 유키오는 어쩌면 누군가와 이런 거래를 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소설가입니다.

마침내 그 칼을 손에 쥔 그는 가장 먼저 저 자신의 삶을 요리해서 접시에 올려놓았습니다.

≪가면의 고백이지요.

≪가면의 고백은 미시마 유키오가 자신의 출생부터 이십대 중반의 예술가가 되기까지의 성장과정을 써내려간 자전 소설입니다.

하지만 가면과 고백이라니요.

참과 거짓이라는 명제처럼 그 둘은 나란히 연결될 수 없는 단어들이지요.

 생을 연기하는 그 가면에 신경과 실핏줄이 연결되고 살이 차오르기 전에는요.

사실 고백의 본질은 불가능입니다.

 누구도 자신의 진짜 얼굴을 차마 내놓지 못합니다.

 다만 살까지 파고든 가면만이 고백을 할 수 있는 것이지요.

타인의 시선에 진짜 나처럼 보이는 나, 혹은 가면을 쓴 연기를 하는 것처럼 보이는 나.

둘 중 어느 것이 나일까요? ‘오래도록 나는 내가 태어났을 때의 광경을 보았노라고 우겼다’ 는 첫 문장은 이어지는 글이 자신의 생물학적 자서전이 아니라 영혼의 자서전임을 못박아둡니다.

그는 가면 속에서 징그럽도록 낱낱이 자신의 내면을 드러냅니다. 자신의 속옷을 내려 보이고 관념의 끝을 보여줍니다.

그는 고백합니다. 다섯 살의 자신을 사로잡은 것이 추한 몰골의 분뇨 수거인이었음을.

화집 속 성 세바스티아누스의 벗은 몸을 보며 했던 수음을.

그리고 나쁜 남자 그 자체인 동급생 오미를 사랑한다고 선언합니다. 오미는 내면 따위 없는 야만 그 자체인 인간입니다.

 눈 위에 신발로 제 이름을 새기고 있는 모습에서 그의 고독과 슬픔을 온전하게 이해했다지요.

21세기에도 동성애 성향을 고백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 역시 소노코라는 예쁜 소녀를 사랑해보려고 무척 애를 씁니다.

그러나 그는 에로스적인 영감을 끝내 얻지 못합니다.

다만 자신을 ‘진짜 사랑’해주는 소노코에게 질투를 느끼지요.

양식진주가 천연진주에게 느끼는 것과 같은 견디기 어려운 질투를. 자신을 사랑하는 여자에게 그 사랑을 이유로 질투를 느끼는 남자가 이 세상에 또 있을까요.

결국 소노코가 다른 남자와 결혼한 후에야 그는 다시 그녀를 만납니다.

싸구려 무도장에서 감상적인 유행가를 들으며 탁자 위에 흘러내린 음료수가 내리쬐는 햇빛에 번쩍이는 걸 쳐다보면서 말입니다.

전쟁의 막바지, 방공호 구덩이 속에서 올려다보는 하늘이 벌겋게 불타오르고 폭격기 B29가 도쿄 하늘을 시도 때도 없이 가로지릅니다.

바로 옆에서 폭격을 당하는 사람들을 지켜보아야 한다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요.

 죽음이 너무 가까이 있는 그 지독한 순간엔 차라리 먼저 죽는 게 낫다는 생각을 하게 되지는 않을까요.

 그런 한편으로 극한의 공포 속에서 오히려 사소한 삶의 결을 탐미적으로 어루만지며 명랑한 얼굴로 거리를 활보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일종의 자포자기 속에서 화사한 색깔의 옷을 차려입고 꽃구경을 나서는 것이지요.

그것이 인간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두려움에 찬 비명소리보다는 생뚱맞게 환한 옷차림에서 불안의 정점에 이른 인간의 심정을 읽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전쟁의 불안을 그는 조각난 일상과 자신의 영혼에 투영시켜 보여줍니다.

이 소설을 읽고 나면 앙금처럼 남는 것이 있습니다.

기이하고 예민한 고백을 관통하고 있는 독특한 자기애입니다. 이 자기애는 이후의 삶 속에서 지독한 국수주의자의 모습으로 변형되지요.

미시마 유키오는 이십년 후 우파의 각성을 촉구하며 잘 벼린 칼을 들어 자신의 배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그어 생을 마감합니다. 가면의 고백은 이 장면에서 비로소 끝나는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어쩌면 세상의 모든 소설은 가면의 고백이 아닐까요?

그나저나 이 남자가 쓴 칼은 어떤 칼일까요? 60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잘린 부위의 결은 선명합니다. 달큰하고 비린 피냄새조차 납니다.

그렇지만 고통이 아니라 음악과도 같은 나른한 쾌락의 술렁거림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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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본질이 무엇인지 깨닫는 '나'

▶ '가면의 고백' 줄거리

‘가면의 고백’은 미시마 유키오가 1949년 발표한 첫번째 장편소설이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추천을 받아 문단에 등단한 그는, 24세 나이에 발표한 이 장편 데뷔작으로 평론가들로부터 ‘여우에게 홀린 듯한 기분’, ‘이 작품을 통해 비로소 20세기가 시작되었다’와 같은 극찬을 들으며 재능을 인정받았다.

‘가면의 고백’은 화자인 ‘나’가 태어난 순간부터 성인이 되기까지의 성장 과정을 그린 자전소설로서, 삶 그 자체를 최고의 예술로 생각한 미시마 유키오의 심미주의적 세계관이 잘 드러난 고백문학의 백미라 할 수 있다.

식민지 장관으로 재직하던 중 부하 직원의 잘못으로 관직에서 은퇴한 할아버지, 뇌신경질환으로 발작증을 앓으면서도 명문가 출신의 긍지를 잃지 않는 할머니, 급속도로 쇠락해가는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난 나는 몇 차례나 죽음의 위기를 겪는 병약한 아이였기에 할머니의 과잉보호를 받으며 성장하게 된다.

 기묘한 공상을 즐기는 나는 다섯 살 무렵부터는 그 공상에 어떤 명확한 경향이 나타났고, 주로 육체적 활력이 넘치는 젊은이들이나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는 동화 속 왕자에 대한 동경심을 품게 된다.

그리고 열세 살 때 이탈리아 화가 구이도 레니의 그림 ‘성 세바스티아누스 순교도’를 보고 자신이 갈구하던 욕망의 본질이 무엇이었는지 깨닫게 된다.

 중학교에 진학한 나는 생명력 넘치는 연상의 동급생 오미를 만나고 그에게 은밀한 열정을 느낀다.

그러던 중 친구의 여동생 소노코와 연인 사이가 되지만 육체적 불안감은 차츰 그 본성을 드러내고 결국 자신의 정체성을 확신하기에 이른다……

원제: 面の告白

저자: 미시마 유키오(1925~1970)

발표: 1949

분야: 일본문학

한글번역본

제목: 가면의 고백

옮긴이: 양윤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011(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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