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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보내고(用前韻奉呈水使沈公) - 초의선사(艸衣禪師)

 

수사 심공에게 전운으로 시를 지어 드리다


離來回首夕陽天  (리래회수석양천)

思入濛濛烟雨邊  (사입몽몽연우변)

煙雨今朝春倂去  (연우금조춘병거)

悄然空對落花眠  (초연공대낙화면)

그대 보내고 고개 돌린 석양의 하늘                 
마음은 안개비에 아득히 젖네                     
오늘 아침 안개비 따라 봄마저 가버리고            
빈 가지 쓸쓸히 혼자 떨어지는 꽃잎 보며 잠이 들다

 

   
출전; 초의시고(艸衣詩藁)

 

초의선사(艸衣禪師 1786-1866) 성은 장(張)씨이고 이름은 의순(意恂)이며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법호는 초의(艸衣)이며, 당호는 일지암(一枝庵)인 초의선사는 조선 후기의 대선사로서 우리나라 다도를 정립하신 분이다.

그래서 다성(茶聖)이라 부른다.
5세 때에 강변에서 놀다가 급류에 떨어져 죽을 고비에 다다랐을 때

부근을 지나는 운흥사(雲興寺)승려가 건져주어 살게 되었다.

그 승려가 출가할 것을 권하여 15세에 남평 운흥사(雲興寺)에서

민성(敏聖)을 은사로 삼아 출가하고,
이 후 대흥사(大興寺)에서 완호대사(玩湖大師)를 만나 구족계(具足戒, 비구와 비구니가 지켜야 할 계율)를 받고 초의(艸衣)라는 법호(法號)를 얻게 되었으며 불교(佛敎)의 삼장(三藏, 經藏, 律藏, 論藏)을 수학(修學)하고 대교(大敎) 과정(科程)을 마친 후 운수행각(雲水行脚)으로 여러 선지식(禪知識)을 찾아다니며 정진(精進)한 결과 경,율,론(經,律,論)에 모두 통달하게 되었다. 다산 정약용, 소치 허련, 그리고 평생의 친구되는 추사 김정희 등과 폭넓은 교유를 가졌는데, 특히 추사와 함께 다산초당을 찾아 유배생활 하시는 24년 배의 정약용을 스승처럼 섬기면서 유학의 경서를 읽고 실학정신을 계승하였으며 시부(詩賦)를 익히기도 하였다. 물론 초의스님은 다산 선생님께 다선(茶禪)의 진미를 더하였을 것이다. 다산은 《동다기(東茶記)》를 쓰고 초의는 《동다송(東茶頌)》을 지어 예찬하였다. 초의선사의 사상은 선(禪)사상과 다선일미(茶禪一味)사상으로 즉, 차(茶) 안에 부처님의 진리[法]와 명상[禪]의 기쁨이 다 녹아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塵穢除盡精氣入, 大道得成何遠哉
진예제진정기입, 대도득성하원재

차의 진예(塵穢, 더러운 티끌 먼지)없는 정기(精氣)를 마시거늘
어찌 큰 도를 이룰 날이 멀다고만 하겠는가.

라고 하였다. 명성이 널리 알려지자 대흥사의 동쪽 계곡으로 들어가 일지암을 짓고 40여년 동안 홀로 지관(止觀)에 전념하면서 불이선(不二禪)의 오묘한 진리를 찾아 정진하였으며, 다선삼매(茶禪三昧)에 들기도 하였다. 한국의 다경이라 불리는 《동다송(東茶頌)》을 지어 우리의 차를 예찬하고 다도의 멋을 전하였다.
1866년 나이 80세. 법랍 65세로 대흥사에서 서쪽을 향해 가부좌하고 입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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