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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흥헌신 토요비전새벽예배(주후 2023년 11월 18일)
제목: “복음 전하는 사명자의 삶”
말씀: 사도행전 16:29-34
찬양인도: 임직자 찬양대
대표기도: 김재조 장로님(임직위원장)
말씀읽기: 이홍주형제(청년2국), 이윤주 자매(대학3부)


설교자: 이민형 부목사님(주일학교팀장), 이윤기 부목사님(대학부팀장), 이기호 부목사님(청년부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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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6:29-34,
29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리고,
30 그들을 데리고 나가 이르되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
31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32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33 그 밤 그 시각에 간수가 그들을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어 주고 자기와 그 온 가족이 다 세례를 받은 후,
34 그들을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 주고 그와 온 집안이 하나님을 믿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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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이민형 부목사님(주일학교팀장).
-지난 목요일 저녁 이곳 안아주심의 본당에서는 ‘2033, 50 비전’의 주역으로 쓰임 받을 다음 세대가 함께 모여 천둥소리와 같은 찬양과 기도를 올려드렸습니다. 사랑하는 담임 목사님께서 집회에 참석한 학생들을 위해 인사 말씀도 전해주시고, 격려해 주셔서 큰 힘이 되었습니다. 또한 함께 기도해 주시고 마음을 모아주신 선생님들, 부모님들 우리 모든 성도님들께 감사 말씀드립니다. 이 시간 제2차 다음 세대의 건초더미 기도운동 ‘더 라이터’ 집회 우리 스케치 영상 잠시 보신 후에 말씀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모든 영광 하나님께 올려드립니다. 아멘. 이 강력한 은혜와 역사가 새 생명 축제에도 그대로 흘러가게 하실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께 소중한 역사 자료 하나를 소개해 드리며 말씀의 문을 열기 원합니다. 함께 보여주실까요? 굉장히 오래돼 보이는 이 문서에는 이승만 대통령의 친필 사인과 증인이 들어가 있습니다. 이것은 1950년 3월 1일 이분의 애틋한 조선 사랑에 대한 공로를 인정해 드리며 추서된 건국 공로 훈장과 증서입니다. 내려주셔도 되겠습니다. 방금 소개해 드린 이분은 바로 호머 헐버트 박사님입니다. 우리에게는 선교사님으로도 더 잘 알려져 있는 분이죠. 마포구 합정동에 위치한 양아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에 가면 누구도 찾지 않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던 동방의 작은 나라 조선에 찾아와, 자신의 생명까지 주님께 드리며 복음을 전하신 145명의 선교사님들이 안장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께서도 한 번쯤 방문해 보셨을 것입니다. 묘언을 가이드해 주시는 분의 인도를 따라 가다 보면, 가장 먼저 소개해 주시는 한 선교사님의 묘비를 발견하게 됩니다. 거기에는 이런 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는 웨스트민스터 사원보다 한국 땅에 묻히기를 원하노라. 이 묘비 글의 내용을 유언으로 남기신 분이 바로 헐버트 선교사님입니다. 헐버스 선교사님은 1886년 7월 5일, 조선 땅에 첫 발을 내딛게 됩니다. 잘 알고 계시는 것처럼 선교사님은 우리나라에서 교육가로도 활동을 하셨습니다. 최초의 한글 교과서 3인 필지를 만들고, 독립운동가인 서재필, 주시경 선생님과 함께 독립신문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1907년에는 헤이그 특사로 활약을 하기도 하셨죠. 하나님께서 처음 헐버드 선교사님을 한국에 보내신 상황은 굉장히 특별했습니다.

몇 가지 자료를 찾아보니, 1882년 당시 조선은 미국과 조,미 수호 통상조약이 체결되고, 조선은 미국 정부에 3명의 교사를 파송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선발된 3명 중에 한 사람이 바로 헐버트 선교사님이었습니다. 이 과정 역시 참 신기했습니다. 처음 헐버 선교사님은 조선에 대해 전혀 관심도 없었고 아무런 정보도 없었는데, 다만 학창 시절 세계 지리에 흥미를 가져 코리아, 조선이라는 이름과 위치 정도만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무언가에 이끌려, 정말 이해할 수 없는 누군가에게 이끌려 조선 땅을 밟게 된 것입니다. 그분은 누구실까요? 바로 생명의 영이시며 살리는 영이신 성령님이신 줄로 믿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140여 년 전, 생명 구원과 부흥의 역사를 위해 한 사람에게 찾아오신 성령님께서 동일하게 약 2천 년 전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신 바울에게 너무나 분명한 메시지를 전해주시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함께 읽지는 않았지만 오늘 본문 사도행전 16장 앞부분에 보시면 성령님께서 직접 사도 바울에게 특별한 미션을 전달하시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16장 6절, 7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사도행전 16:6-7,
6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7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사도바울은 지금 2차전도 여행 중에 있었습니다. 다메섹으로 가는 길 가운데 만난 예수님으로 인해 그의 인생은 180도 변화되었고, 주체할 수 없는 복음에 대한 열정으로 가는 곳마다 주를 향한 전심과 한 영혼을 향한 진심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전심과 진심이 만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바로 기적이 나타나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지난 10월 23일 제2회, 제2회 ‘한국교회 섬김’의 날을 통해 이 사실을 확인하신 줄로 믿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생명의 복음을 전할 때, 수많은 사람들이 주께 돌아오며 나면서부터 걷지 못했던 사람이 벌떡 일어나 걷게 되는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이런 놀라운 복음의 역사를 경험하자 바울의 마음이 더 뜨거워졌습니다. 그래서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고 비두니아 지역으로도 달려가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님께서 그 길을 막으시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내비게이션의 목적지를 입력하고 잘 가고 있는 줄 알았는데 한 여인의 음성이 들리는 것처럼 말입니다. ‘경로를 이탈하셨습니다.’ 전방 100m 앞에서 직진 아니고 좌회전입니다.

진정한 복음의 사도 바울은 아시아와 비두니아로 가려고 했지만, 그것은 잘못된 경로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께서 밤에 환상 가운데 마게도냐 사람 하나를 바울에게 보이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바울이 가고자 했던 목적지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그곳으로 재설정해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바울의 반응입니다. 사도행전 16장 10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사도행전 16:10,
10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로라. 이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지금도 여전히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 오직 순종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재설정된 목적지를 따라 순종한 바울을 통해, 또 어떤 기가 막힌 복음의 스토리를 이어가실지 기대가 됩니다. 계속해서 대학부 팀장으로 섬기는 이윤기 목사님께서 말씀 전해주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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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이윤기 부목사님(대학부팀장).
-사랑의 교회는 이번 새 생명 축제를 위해 토비새와 주일 예배 가운데에서 한마음으로 기도하며 마음을 모으고 있고, 특별히 캠퍼스와 미래를 준비하는 청년들도 새 생명을 주님께서 안아주심의 본당으로 인도해 주시기를 함께 기도해 왔습니다. 오늘 이 토비새를 통해서 이 은혜가 계속 이어져, 우리 청년 세대와 영 가족 모두가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나에게 보내주시고 보여주시는 그 영혼을 전도하는 놀라운 은혜를 더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사도 바울과 그 일행은 12절에 보면,

*사도행전 16:12,
12 거기서 빌립보에 이르니 이는 마게도냐 지방의 첫 성이요 또 로마의 식민지라 이 성에서 수일을 유하다가.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재설정된 목적지를 따라 순종하며, 마게도냐 지방의 첫 성인 빌립보에 이르렀습니다. 여기서의 첫 성은 가장 중요하며 상징적인 도시라는 의미입니다. 이제 바울의 유럽 최초의 선교가 펼쳐집니다. 13절을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사도행전 16:13,
13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할 곳이 있을까 하여 문 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는데.
-눈부시게 화려한 빌립보 거리를 초라한 행색의 바울과 그 일행이 안식일에 기도할 처소를 찾기 위해 돌아다닙니다. 빌립보는 로마의 축소한 도시였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사실 거의 없었습니다.
유대인 남자 10명이 구성되어야 유대인 회당이 생기는데, 그 회당조차 생길 여력이 없어서 안식일의 여인들을 중심으로 유대인들 몇몇이 빌립보 성문 바깥에서 강가에서 모여 함께 말씀을 읽고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 강가에 모여 있던 유대 여인들 틈에서 한 여인 루디아를 만납니다. 14절을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사도행전 16:14.
14 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
-이 여인은 오늘날 터키 부근인 두아디아라는 마을의 출신이고, 현재는 그리스 북부 쪽에 있는 마게도냐와 두아디아를 오가면서 자색 옷감을 파는 사업체를 운영하는 굉장히 글로벌한 거상입니다. 사실 당시 옷감 명색은 천이 아니라, 실을 염색했기 때문에 특히나 고급 자색 물감으로 염색하기 위해서는 굉장히 많은 비용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굉장히 재정적으로 넉넉하지 않으면 이 사업을 운영할 수 없었는데 이런 것으로 비추어 보았을 때, 이 루디아는 굉장히 옷이나 담요나 카페트 같은 이런 자색 물품인데 그냥 자색 물품이 아니라, 오늘날로 치면 압구정동이나 청담동에서 하이엔드 급 명품을 파는 대형 부티크 굉장히 친해지고 싶죠? 이런 관계를 사업을 소유하고 있다고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14절을 다시 보시면 또한 루디아는 하나님을 섬기며 경외하는 사람이다. 라고 소개를 합니다.비록 핏줄은 이방인이었지만 꽤나 유대교에게 굉장히 열린 마음을 갖고 있던 걸로 보이고, 당시 수많은 그리스 신상들에게 절하지 않고 안식일을 지키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나아왔던 그러한 연이었습니다.

이 지점에서 우리가 갖는 질문은 이것입니다. 사회에서도 크게 성공하고, 자신의 나름의 신앙과 신념도 추천하였던 이 루디아가 도대체 어떻게 복음을 받아들였는가? 그리고 어떻게 그녀에게 복음이 전해졌는가?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주시는 대답은 이렇습니다. 바울이 순종하여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갔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여인을 만나게 하셨을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그 여인의 이름을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주님께서는 보여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의 순종을 통하여서 빌립보 시민 가운데서도 특별히 한 이방 여인의 이름을 성경에 기록해서 영원히 기록되게 하셨습니다. 바울은 자기의 의지와 계획에 따라 빌립보에 온 것이 아닙니다. 자기가 가고자 했었던 곳이 있었지만,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여서 빌립보까지 나왔습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하나님께서 만나게 하실 영혼을 예배하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의 삶을 어디로 인도하고 오시고, 어떻게 인도해 오시는지는 여기 계신 모두의 삶 가운데서 각자가 다른 모양을 갖고 계실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내가 서 있는 곳이 어디 있던지, 상관없이 하나님께서는 그곳에서 반드시 만나게 하실 영혼을 예배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주여, 믿음의 눈을 열어 내게 보내주신 영혼을 보게 하여 주옵소서.” 이렇게 기도하실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영적인 눈을 열어주실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의 순종의 여정 가운데서 만나게 하신 이 루디아, 이 루디아는 바울에게 전하는 말을 귀 기울여 들었습니다. 바울이 말씀을 전할 때에, 그 복음이 그 여인에게 들려질 때에, 하나님께서 먼저 그 여인의 마음을 열어주시고, 루디아는 복음을 따르게 되었습니다. 바울이 전했던 말씀의 내용은 구약에서부터 예언되었던 메시아이시오, 구원의 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식이 분명합니다.

영원한 죄의 형벌에 빠질 우리를 위하여서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고, 내 모든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사시고, 승천하셔서, 오늘날 우리와 함께하신 성령 하나님을 보내주시고, 반드시 다시 오신 그 예수 그리스도, 그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을 전해주셨던 것은 분명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 영혼이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복음이 선포되는 자리에 나와야 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께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서 한 영혼에게 초청의 손길을 내미셨을 때에, 주님께서는 그의 영혼이 안아주심에 본당에 들어오게 하셨을 때엔, 반드시 그 영혼에게 생명의 기적이 일어날 줄로 믿습니다. 15절을 보시면,

*사도행전 16:15,
15 그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이르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머물게 하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며 회심을 경험한 이 루디아는 바울에게 세례를 받고, 자신의 집으로 바울과 그 선교팀 일행을 모두 초청합니다. 그리고 그 루디아의 집은 빌립보 선교회 최초 유럽 선교의 사역의 전초 기지가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복음을 전하라는, 전도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상상하지도 못할 경탄할 만한 기적과 역사를 예비하고 계신 줄로 믿습니다. 이번 새 생명 축제에 여러분께서 우리가 함께 초대한 그 한 영혼이 어쩌면 훗날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서 너무나 크게 쓰임 받는 그 사람 한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지금 함께 나누었던 이 본문이 우리 믿음의 청사진이 되길 원합니다. “주여, 믿음의 눈을 열어 내게 보내주신 영혼을 보게 하옵소서. 주여, 내가 내미는 손길을 사용하 주시사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베풀어지게 하여 주옵소서.” 이렇게 우리가 함께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와 우리 캐신자에게 베푸실 만한 자비와 은혜를 주실 줄로 믿습니다. 바라기는 이번 새 생명 축제를 통해서, 특별히 우리 청년 세대와 믿음의 영 가족 모두를 통해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이름이 열방 가운데 선포되고,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면서, 루디와 같은 무수히 많은 영웅들이 주님께 돌아와 크신 하나님께 크신 영광을 돌려드리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이제 바울이 겪게 되는 그다음 이야기를 우리 청년부 팀장이신 이기호 목사님께서 계속 이어나가 주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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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이기호 부목사님(청년부팀장).
-순종하여 나아가는 이 길이 순적하면 너무나 좋을 텐데요. 하지만 복음을 전도하며 나아가는 이 길에 성도 앞에는 뜻밖의 어려움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바울은 한 여종을 만나게 됩니다. 그 여인은 귀신에 들려서 점치는 것으로 주인들의 돈벌이로 살아가고, 다 바울은 그 여인을 향하여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명하여 그 여인을 비로소 자유케 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여정의 주인들은 자기의 수입원이 끊어진 것을 알고 바울을 고소했습니다. 바울은 그 옷이 찢겼고, 매를 맞았고, 그리고 발에는 차꼬를 차고 깊은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마치 복음의 행진이 멈춘 것과 같은 그러한 모습을 우리는 말씀을 통해서 보게 됩니다. 오늘날도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그 성도의 삶에는 두 가지 감옥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첫 번째로는 바로 물리적인 핍박의 감옥입니다. 지금도 많은 선교사님들이 물리적인 공격과 핍박과, 그리고 냉대와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그 삶을 바쳐서 세계 선교 일선에서 그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며, 한 영혼, 한 영혼을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제자로 세워가고 있는 것을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지 않으십니까? 또 한 가지의 감옥은 바로 마음의 감옥입니다. 16장 21절에 보면,

*사도행전 16:21,
21 로마 사람인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하지도 못할 풍속을 전한다 하거늘.
-바울은 이렇게 고소를 당했습니다. 우리가 받지도, 행하지도 못할 풍속을 전하는 것으로 그렇게 고소를 당했습니다. 오늘날도 복음은 하나의 개인적인 신념 정도로 생각하는 그러한 이 세상에 오해가 분명히 있습니다. 그리고 믿지 않는 그 세상 사람들이 교회를 향해서 갖고 있는 거친 불편한 시선이 있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 그 세상 사람들의 오해와 시선이라고 하는 난 그 감옥에 우리 스스로를 가두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는 아멘이 됩니다. 그런데 정작 일터와 또 한 가정에서는 또 직장에서는 마치 종교를 드러내면 안 된다. 라고 하는 그러한 생각 때문에 조금 더 고상하고 조금 더 아름다운 방법과 다른 무엇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면서 혹시 복음에 신으시는 그 신을 그 발을 차꼬에 스스로 채워놓고 있지는 않으신지요? 하지만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합니다. 하나님의 복음이 곧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로마서 1장 16절에서,

*로마서 1:16,
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또 바울은 이어서 이렇게 말합니다.
*고린도전서 2:1,
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고린도전서 2:4-5,
4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5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복음은 풍속이나 개인의 신념이나 취향이 아닙니다.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유일한 능력이 되는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은 장소와 환경을 가리지 않습니다. 루디아를 비롯한 그 여인들이 가득히 모여 있는 그 강가에서든, 혹은 씨름과 습함과 매질이 있는 그 음침한 감옥에서건 그 어떠한 환경도 장소도 복음을 막을 수 없는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큰 지진이 나서 충분히 도망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도망가지 않은 그 바울과 신라 앞에서 단수는 묻습니다. “선생님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까?” 여기에 바울의 대답은 너무나도 명확합니다. 우리 함께 읽겠습니다.

*사도행전 16:31,
31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의 그 전도의 발걸음과 전도의 입술을 통하여 생명의 문을 지금도 열어 가시는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 마지막으로 이 모든 일이 하룻밤 사이에 일어난 일이라는 것을 우리 모두가 주목하기를 원합니다. 감옥에 갇힌 상황에서도 여전히 전하고 증언하게 하시는 그 하나님께 찬송하고 기도할 때 우리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여셨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그 밤에 옥문을 여셨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그 밤에 모든 차꼬를 푸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하나님께서는 그 밤에 그 단단히 닫혀 있던 그 로마 단수의 마음도 여신 줄 믿습니다. 바울과 실라와는 이 일면식도 없는, 전혀 생명 부지의 그 로마 감옥 간수가 하나님께 돌아오는 데 필요한 시간은 단 하룻밤이면 충분했습니다.

저희 청년부 지체가 교회를 한 번도 다녀본 적이 없는, 정말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내온 그 친구를 이번 새생명 축제 때 초대하면서 저에게 전해준 그 한마디의 말이 계속해서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이번 주일에 서초역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새 생명 축제인데 오지 않을래?” 흔쾌히 오겠다고 했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연예인의 이야기도 한몫했습니다. 그런데 그 초대받은 친구가 이렇게 덧붙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나 그동안 착하게 살지 않았는데 교회 가도 괜찮을까?” 사랑하는 여러분 그런데 그 말이 계속해서 마음에 남습니다. 지금 그 큰 구원의 십자가 앞에서, 영원한 생명의 문 앞에서 나 그동안 착하게 몇 번 살았고 몇 번 살지 못했고 그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저와 우리 성도님들은 너무나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더 크고 영원한 생명과 사랑의 그 더 큰 사랑이 앞에 있는데 여전히 다른 것을 찾아 헤매고 있는 그러한 이들이 지금 우리 가정에, 우리 일터에, 우리 동료 가운데 그렇게 존재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영혼들을 오늘 그냥 두시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먼저 이 새벽에 이 새 생명 토비새에서 우리 모두가 이 태신자를 품고 간절한 마음으로 함께 기도하며 나아갈 때에 우리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 입술을 사용하셔서 이번 새 생명 축제 가운데 구원의 문을 활짝 열어주실 것을 믿습니다. 이러한 소망을 가지고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요약
하나님께서 영혼 구원의 기쁨과 감격의 길로 초대하심과 생명의 구원의 문을 열어 가시는 하나님을 기대하며, 한 영혼, 한 영혼을 애타게 찾으시는 하나님의 목자의 심정을 물 붓듯 부어주시길 간절히 기도하고, 담대히 복음의 씨앗을 심어야 한다. 그리하여 모든 매인 것과 막힌 것을 여심과 축복 가운데 하나님의 생명의 기적을 체험해야 한다. ‘2033 50 비전’ 대한민국 2천만 구령 운동의 풍성한 열매로 새 생명 축제가 되기를 간구하고 실천하는 하나님의 기쁨의 자녀로 살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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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현 담임목사님.
주님의 이름을 찬양합니다. 오늘 아침이 제일 춥죠? 근데 어떻게 이렇게 나오셨어요? 저도 오늘 말씀을 들으면서 제 마음에 두 가지 생각이 들었는데 하나는 한국교회 희망 있다. 희망 있다. 왜 희망이 있느냐 하면, 이 30대 목사 설교하는 거 한번 들어보세요!! 우리 교회 120여 명의 교육자들이 똘똘 뭉쳐서 지난 화요일 아침에 창목회를 하는데 84년생들이 일어나 보세요. 또 89년생도 일어나 보세요. 또 81년도 일어나보세요. 71년생 그러니까 그때 태어난 사람을 얘기하는 거예요. 네 너무 괜찮아요... 그러니까 사랑의 교회 교역자들 때문이라도 한국교회에 희망이 있어야 합니다. 너무 감사한 일이고 또 우리가 목요일날 뭘 했죠? ‘더 라이트(The Light)’ 건초더미 기도 운동하는데 6,400여 명의 우리 주로 이제 수능 마치고, 아이들 술 먹으러 안 가고 청담동 어디 어딥니까? 그런 데 안 가고, 사랑의 교회 우리가 이 예배당을 지었기 때문에 그들이 온 줄로 믿습니다. 그죠? 와가지고 그렇게 아까 보니까 아마 고등학생 같은데 너무 심하게 괌을 찌르더라고 여자아이가 어떻게 영상을 그렇게 했나 싶기도 한데, 그러나 그 마음에 얼마나 간절함이 고함을 지르겠냐고? 고등학생이 그런 고함을 지른다 전 세계에 없는 거예요. 고등학생이 이거, 이게 케이 프레이어(K prayer)야, 이게 케이프레이 이런 일이 있을 수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한국교회 희망이 있다 브로 그러니까 그 마음이 제가 너무 절실했고 두 번째로는 오늘 이 새벽에 오신 여러분들의 간절함을 통해 여러분들도 개인의 삶의 짐과 모든 압박들 이런 모든 제목들이 다 해결되기를 바라는 것이 아시겠죠? 꼭 해결돼야죠.

그리고 우리의 이 기도를 통하여 또 어떤 일이 일어나야 될까? 이번에 우리가 많은 태신자 작정을 하고 이렇게 하는데 그 와야 할 그분들의 모든 얼음 맨 것들이 다 풀어지게 하여 주십시오. 그리고 이걸 방해하는 모든 세력들은 다 정리되게 하여 주십시오. 그러니까 여러분 오늘 이 새벽에 이 영화의 기운 가운데 나오신 분들도 해결이 되기를 바라고 그다음에 우리 태신자들도 다 좀 정리가 되게 하셔 와야 할 분들을 꼭 오게 하시고 그리고 주일 저녁 제가 말씀 전하고 월화수 다섯 번에 걸쳐서 이렇게 귀한 강사님들이 오시는데 한 분 한 분 다 오늘 은혜 주셔가지고 하나님께서 강사들을 통해서도 크게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그런 마음으로 전하고 기도에 한 번 더 찬양하고 기도합시다.

합심 기도를 하겠습니다. 오늘 다음 주 수요일 날, 임직 받을 피택 장로 6분, 피택 안수 62명, 권사 203명, 거의 2백 80여 명 정도의 귀한 분들이 임직을 받는데, 다른 것보다도 우리 영혼 구원에 대한 이 간절함을 가진 이 토비스에 나와 가지고 이렇게 찬양하고 기도하는 것이 정말 뜻이 있다고 믿는 것이에요. 여러분들이 이 영적 전쟁의 선봉장 아닙니까? 그래서 주를 찬양 손을 들고 찬양 세상의 유혹심이 내게 몰려올 때 그런 찬양도 한 것이에요. 오늘 그런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 큰 영광 거두어 주시리라고 믿습니다. 우리가 합심해서 기도하는 내용은 이것입니다. 지금 정치가 시끄럽습니다.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교회가 든든해 서면 이 민족은 바로 가는 것입니다. 한국교회 한국 사회의 근대 교육의 효시가 누굽니까? 한국 기독교입니다. 한국 사회의 참 자유의 가치를 심어준 곳이 어디입니까? 기독교인 것입니다. 한국 사회의 글로벌 스탠다드 세계를 품는 이 세계화를 향한 제일 선봉장이 어디입니까? 한국 기독교가 되는 것입니다. 교회가 바로 가면 이 민족 바로 갈 줄로 믿는 것이에요. 그런 마음을 가지고 교회가 바로 간다는 것은 뭡니까? 생명의 역사가 계속 이어져야 하는 것이고 복음의 능력이 확장돼야 하는 것입니다. 이거는 무슨 이벤트가 아니에요. 여러분 내가 제일 싫은 바로 이벤트예요. 뭐가? 이건 사명이에요. 이것은요 몇 년마다 돌아오는 것이 아니고 부활절에 품은 생명 대각성에 추수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완수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일에는 이벤트가 없어요. 사명밖에 없어요. 사명으로 해야 그것이 역사가 있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그런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아버지 오늘 우리 모두의 짐을 다 벗겨 주시옵시고, 또 태신자들의 모든 얼음에 있는 것들을 벗겨주셔서 이번에 구원받을 자 다 구원받게 하여 주옵소서.” 기도하시고 두 번째 주여 한국교회가 소망입니다.

한국교회가 이 민족의 소망입니다. 계속 소망의 등불을 켜게 하여 주시옵시고 또 우리 교회 젊은이들 우리 청소년들 다 이 민족의 소망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런 마음을 가지고 마음을 합심해서 태신자 이름을 불러가면서 기도하겠는데 주여 한국교회가 소망인 줄 믿습니다.
“주여 한국교회가 소망인 줄 믿습니다. 크게 두 번 외치고 기도하겠습니다. 주여 한국교회가 소망인 줄 믿습니다. 주여 한국교회가 소망인 줄 믿습니다.”!!!

아멘. 지난 주일날 우리가 366명의 학습 세례를 받았죠. 참 귀한 일인데 제가 2부 예배 세례를 주려고 들어가는데 예배 담당자 목사님 오늘 93세에 이효진 성도님이 세례를 받는데, 93세라고 그런데 이 관절이 잘못되어 갖고 무릎을 꿇을 수가 없다고 세례를 받을 때 그러니까 지팡이를 짚고 서서 세례를 받을 때겠냐고 안으로 그래 하자고 그런데 나는 이제 그렇게 서서 이제 선체로 세례를 드리려고 하는데 이번에 갑자기 문을 딱 꿇는 거예요. 기적이 일어난 거예요. 하여튼 그런 일이 일어났어요. 영상 한번 보시겠어요 이 요지 우리 이희진 아버님은 93세이세요. 그런데 사실은 무릎을 못 꿇는데 오늘 무릎을 꿇고 지금 본래 서서 세례 받으려고 그랬는데 하나님 은혜 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아들 이효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노라.” 아멘!
그리고 모든 예배의 간증 자가 좀 달라가지고 이렇게 소개를 못했습니다마는 그날 36세인데 서울대 의과대학교 내과 호흡기 교수가 그날 세례를 받았어요. 그래갖고 그 제자들이 주님 앞에 돌아올 수 있는 어떤 여건이 형성됐다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여러분 하나님이 너무 신묘막측한 거예요. 제가 그날은 뭐 이런 서울대학 이런 얘기하면 또 이렇게 할까 싶어서 안 했어요. 저는 안 했는데 하나님께서 지성인이든 그렇지 않든 상관이 없이 복음의 능력은 동일하니까 내일부터 하나님 그런 은혜를 주실 줄로 믿습니다. 감사드리고 이제 우리 죽어라 살아 암송해야 되겠죠? 암송하고 그다음에 오늘은 임직자들을 위한 우리 악수회가 있겠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다 기다리고 기다리는 즐거운 암송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오늘 암송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전파함 모든 사람의 죄를 범함, 죄의 형벌, 오늘 네 구절이죠. 다음 줄에 6 구절이고 그다음에 8 구절인데 우리 다 우리 길이 하셔서 기다리고 기다리던 암송 시간에 돌아보았습니다.

B.그리스도를 전파함.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함-

(로마서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로마서 3:23)
ㅡㅡㅡㅡㅡ
(이사야 53: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이사야 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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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그리스도를 전파함.
○죄의 형벌

(로마서 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로마서 6:23)
ㅡㅡㅡㅡ
(히브리서 9:27)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히브리서 9:27)
----------
-서로 말씀의 능력이 평생 임하기를 바랍니다. 자리에 착석하겠습니다. 우리 여러분들 받으신 우리 순서에 잠깐 좀 보시고 그다음 우리 약속의 강의 가겠습니다. 믿음의 사대가 함께 토비새에 나오면 부흥 헌신 토요일 전 새벽 예배 여러분들이 이제 토요일 전 새벽 예배 마칠 때 우리 우리 개인기도 들어가잖아요. 어떻게 하는지 좀 지혜를 드릴까요? 이걸 소리 내서 두 번 기도하는 거예요. 언젠가는 그대로 될 겁니다. 이게 믿음이에요. 저는 이걸 제 생에 너무나 많은 경험을 했기 때문에, 아무것도 아닌 인생이 정말 하나님 앞에서, 오늘 여러분들과 같이 이런 말씀을 나누고 있다는 자체가 기적 아닙니까? 우리 모두가 다 그러니까 이런 내용들이 우리 평생 기도의 제목에도 그대로 응답하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제가 오늘 다시 한 번 다 같이 합시다. 하고 개인기도 시작할 때, 이것도 한 번 더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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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저녁기도회(주후 2023년 11월 15일)
제목: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말씀: 요나 4:6~11
찬양인도: 쉐키나(유재원 부목사님)
 
설교자: 김대규 부목사님
ㅡㅡㅡㅡㅡ
 
*요나 4:6~11,
6 하나님 여호와께서 박 넝쿨을 예비하사 요나를 가리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머리를 위하여 그늘이 지게하며 그의 괴로움을 면하게 하려 하심이었더라 요나가 박 넝쿨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였더니,
7 하나님이 벌레를 예비하사 이튿날 새벽에 그 박 넝쿨을 갉아먹게 하시매 시드니라,
8 해가 뜰 때에 하나님이 뜨거운 동풍을 예비하셨고 해는 요나의 머리에 쪼이매 요나가 혼미하여 스스로 죽기를 구하여 이르되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으니이다 하니라,
9 하나님이 요나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 박 넝쿨로 말미암아 성내는 것이 어찌 옳으냐 하시니 그가 대답하되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옳으니이다 하니라,
10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 넝쿨을 아꼈거든,
11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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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신 하나님 아버지,
이 시간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 앞에 다시금 엎드립니다. 이 시간 말씀 가운데 나아갈 때에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과 맞닿게 하시고,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그 마음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생명이 우리 가운데 넘치는 시간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여러분 이 저녁 참 잘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가운데에 많은 깨달음과 은혜를 주시는 시간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여러분 식사하셨습니까? 네 잘하셨습니다.
 
4명의 사람이 한 자리에서 아주 맛있는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 네 사람이 맛있는 식사를 먹는 도중에 갑자기 이유 없이 한 사람이 먹던 숟가락과 포크롤을 탁 내려놓더니 화를 내면서 나가버립니다. 남은 3명은 도무지 그 사람이 왜 나갔는지 영문을 알지 못합니다. 몇 초간의 정막이 흐르고 맞은편에 앉아 있던 한 사람이 갑자기 눈물을 뚝뚝 떨어뜨립니다. 앞에 있는 사람이 밥을 먹다 갑자기 나간 것은 나 때문일 거냐, 내가 뭔가를 잘못해서 나가지 않았나, 스스로를 자책하며 밥을 먹지 못하고 눈물을 뚝뚝 흘리며 식사를 중단합니다. 이에 그 옆에 있는 사람은 이 눈물을 뚝뚝 흘리는 사람을 안아주며 다독이며 위로하며 너 때문이 아니야, 그러니 우리 먹던 밥을 마저 먹자. 하고 이 사람을 위로하며 이 분위기를 식탁의 분위기를 이어가려고 합니다. 이런 와중에도 남은 한 사람은 누가 나가든 누가 눈물을 흘리던 누가 위로를 하든 관계없이 자신의 식사를 꿋꿋이 이어나갑니다. 제가 방금 말씀드린 이 이야기는 서로 다른 혈액형을 가진 4명의 사람이 식사하는 장면을 묘사한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어떤 사람이 a형이고, 어떤 사람이 b형이고, 어떤 사람이 o형이고, 어떤 사람이 ab형인지 아시겠어요? 네 식사를 하다 갑자기 화를 내며 나간 사람은 어떤 형이죠? 네 이렇게 각자 다른 대답을 하는 건 나와 가까운 그 누군가를 내가 알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네, 자리에는 a형을 가지신 분도 있고 b형을 가지신 분도 있고 o형을 가지신 분도 있고 ab형을 가지신 분도 있을 것입니다. 이게 사실은 아닌데요. 이 이야기의 결론은 식사를 하다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이유 없이 나간 사람은 ab형이라고 합니다. ab형에는 좀 괴자가 있고 다른 사람이 이유 알지 못하는 행동들을 하는 분들이 조금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책하며 눈물을 글썽이는 형은 무슨 형일까요? 이건 잘하시네요. a형 모든 게 내 탓일 거야. 약간은 작은 마음을 가지신 분들이 a형 그보다 더 작은 마음을 가지신 분들은 어떤 형이죠? 네 소문자 a형입니다. 네 그리고 그 사람을 위로하는 사람은 무슨 형이죠? 네 o형입니다. 어떤 상황을 상황이 깨어지는 것을 원하지 않고 그 분위기를 이어가고 싶은 사람은 o오형이고, 네 남은 형이 하나 있죠. 주변과는 관계없이 꿋꿋이 너는 나가라 너는 눈물을 흘려라 위로를 해라 나는 내 할 일을 할 일이라 할 것이다 하는 사람 무슨 형인가요? b형입니다. 네, 여러분 저는 무슨 형 같으세요? a형이라고 말하시는 분도 있고 o형이라고 말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의견이 분분합니다. 왜 의견이 분분할까요? 여러분들은 제가 무슨 형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저의 소심한 면을 보신 분들은 제가 a형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도 계시고, 제가 다른 사람들과 잘 지내는 모습을 보면 오영이라고 생각하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또 약간 제가 제멋대로 하는 면을 알고 계시면 a병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편뿐만 아니라 우리는 다른 많은 부분에 있어서도 사람들을 이리저리 재단하면서 그 사람의 범위를 정하고 그 외에 벗어나는 부분들을 보려고 하지 않는 부분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비단 사람을 보는 시각뿐만 아니라 우리는 여러 가지 다른 판단 결정에 있어서도 내가 가진 고정관념이 분명히 있고 나는 그 고정관념을 벗어나려고 하지 않는 습성을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오늘 요나서를 읽었는데요.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선지자 요나 또한 이런 고정관념이 굉장히 강했던 사람이고 끝까지 꺾이지 않으려 했던 자신의 고집이 굉장히 강했던 사람입니다. 오늘 우리가 4장을 읽었는데 4장의 앞부분은 너무나 유명한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요나를 부르시고 요나는 그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나에게 니느웨로 가라고 말씀하셨는데, 요나는 그 니느웨로 가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다시스로 자신의 행선지를 정하고 다시스행 배를 타버리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요나를 물고기를 동원하시면서 까지 꺾으시고 그를 리누웨로 끝내 가게 하십니다. 니느웨에 도착한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됩니다. 요나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니누웨 성에는 큰 회개의 물결이 일어나고 니느웨는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구원받는 역사가 1장부터 3장까지 기록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4장을 시작하면서 우리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요나의 심적인 상태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가 니느웨의 성의 회개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라는 것입니다. 그에게는 자신이 말씀을 전하였으나 그의 마음속에는 누가 자신이 전한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고, 혹여 받아들여서 그 성 가운데 회개 운동이 일어나더라도 그 회개 운동이 지속적으로 진행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지금 설교를 하는 제 입장에서는 요나가 굉장히 이해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설교자의 입장에서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을 때, 그 말씀을 전해들은 사람이 변화되고 회개하며 돌이키는 모습을 보았을 때에 그것만큼 기쁘고 보람된 일은 분명히 없습니다. 그것이 설교자의 일이고 설교자의 목적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러분 여기 많은 훈련생들이 와 계실 텐데요 훈련 교육자가 가장 절망할 때가 언제인지 아십니까? 1년을 열심히 훈련을 했는데도 전혀 변하지 않는 훈련생의 모습을 보면서 훈련 교역자는 절망합니다. 그러면서 마음속을 이렇게 생각합니다. 훈련으로 사람이 변하지 않는 건가?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많은 변화된 분들을 보면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아니면 내가 훈련을 잘 못한 것인가 하면서 자책하게 됩니다. 대부분의 훈련생들은 제자 훈련과 사역 훈련의 그 과정을 겪으면서 정말 말할 수 없는 많은 변화들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런데 정말 가끔 변화된 것처럼 위장해 있다가 위장하려면 끝까지 위장하고 있지, 마지막 때쯤에 그 본색을 드러내는 훈련생들이 가끔 있습니다. 마지막 수업에 갑자기 손을 들더니 평소에는 시켜도 잘 안 하던 대답을 자발적으로 손을 들고 말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요 목사님, 저는 1년 동안 훈련을 받았지만 아직 제 마음은 그대로입니다. 제 삶은 변한 게 없습니다. 저는 훈련 시간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한다면 훈련 교육자는 정말 절망하게 됩니다. 혹시 이런 분이 있다면 끝까지 숨기시기를 바랍니다. 요나 선지자는 물론 자기가 자발적으로 니느웨에 간 것은 아니지만 정말 죽을 고비를 넘겨서 니누웨의 성에 갔고 그곳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하신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듣고 회개한 미누의 성을 보면서, 회개를 통해서 재앙을 내리지 않는 하나님을 보면서 요나는 화가 치밀기 시작했습니다. 4장 1절을 보면,
 
*요나 4:1,
1 요나가 매우 싫어하고 성내며
-이렇게 시작합니다. 자신이 말씀을 전해 회개하고 하나님의 재앙을 면한 니네를 보면서 요나는 싫어하면서 성을 내었다라고 기록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여러분 요나는 처음부터 니느웨 성에 가기 싫어했습니다. 그리고 요나는 니느웨 성이 회개하는 것도 원하지 않았습니다. 왜요? 요나의 생각은 분명했습니다. 하나님의 재앙이 니느웨 성에, 아수르 민족 가운데에 내려지는 것은 정말 합당하다. 이것은 마땅하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의 마음속에는 그 아수르 민족, 니느웨 성 모든 사람들은 재앙을 당해서 모두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비참하게 죽는 것이 마땅하다 그것이 정의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때문에 그들에게 즉각적으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고 자신을 굳이 보내셔서 말씀을 전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유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고 물고기에게 삼킴을 당해서 니느웨 성에 가서 말씀을 전했지만 요나는 자신의 마음을 다해서 말씀을 전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혹여 라도 자기가 전한 말씀을 듣고 니느웨 성이 돌이키고 회개할까 봐 요나는 겁이 났습니다. 요나는 말씀을 전한다 할지라도 그들은 받아들이지 않을 거야. 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그 말씀을 받아들일 만큼 마음이 선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행한 악을 보면 물론 이스라엘 민족들도 하나님 앞에 하나님을 배교하고 악을 행하였으나 이 니느웨 성에 살고 있는 앗수르 민족이 자신의 동족에게 행한 악을 생각한다면 비교도 안 될 만큼 그들은 너무나 잔혹하고 죄악 된 민족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구속이 조금도 없다. 라고 요나는 결론 내리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이 자신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거나 혹여 라도 자신이 선포한 말씀을 받아들이더라도 듣다 마는 것처럼 그들의 회개가 곧 멈춰지기를 그것이 요나가 생각하는 최상의 시나리오요 최상의 결과였습니다. 그러나 요나의 생각과는 달리, 니느웨 성은 큰 회개 운동, 큰 영적 대 각성 운동이 일어나고 니느웨 성은 하나님의 재앙으로부터 구원받게 됩니다. 요나가 화가 났던 이유는 그의 정의감 때문입니다. 여러분, 정의가 무엇입니까? 요나가 생각했던 정의는 못된 짓을 많이 한 사람은, 악한 민족은 그들이 못된 짓을 한 만큼, 그들이 악한 만큼 심판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니느웨 성을 향한 하나님의 정의는 심판을 받는 것이 정말로 마땅하고 그게 정의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절대로 구원받을 수 없는 민족이며 그들은 구원받아서도 안 되는 민족이라는 것이 요나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었습니다. 요나는 이 자신의 생각과 자신의 고집을 절대 꺾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가 가지고 있는 기대도 절대로 버리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요나는 선지자였기 때문에 택한 이스라엘 민족의 선지자였기 때문에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니 누에는 망할 것이다 심판을 받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구원받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라고 생각을 가지고 니느웨 성이 회개하여 하나님의 재앙을 면했지만 그는 여전한 기대를 가지고 니느웨 성을 지켜보기로 합니다.
우리 5절의 말씀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5절 읽겠습니다.
 
*요나 4:5,
5 요나가 성읍에서 나가서 그 성읍 동쪽에 앉아 거기서 자기를 위하여 초막을 짓고 그 성읍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를 보려고 그 그늘 아래에 앉았더라.
-요나가 무엇을 지었죠? 초막을 지었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텐트를 지은 것입니다. 초막에도 종류가 굉장히 많습니다. 여러분 텐트에도 종류가 굉장히 많은 거 알고 계시죠? 저는 얼마 전 아들과 텐트를 친 적이 있습니다. 저는 캠핑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캠핑을 좋아하시는 분들에게는 굉장히 죄송스러운 말씀이지만 저는 캠핑은 굉장히 비생산적인 일이라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저희 아들이 캠핑 가기를 원하는 것 같아서 아들과의 추억을 한번 쌓아보려고 하루저녁 캠핑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큰마음 먹고 거금 10만 원을 들여서 텐트를 장만했습니다. 제가 아들과 함께 들고 간 텐트는 원터치 텐트였습니다. 어떤 건지 아시죠? 그냥 던지면 펴지고 접는 데 1분, 이런 아주 작고 간단한 텐트를 가지고 캠핑장에 당당히 입성했습니다. 그런데 캠핑장에 들어서자 저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제가 가지고 들고 간 원터치 텐트와는 다른 이걸 텐트라고 해야 되나? 집이라고 해야 되나? 하는 텐트들이 펼쳐져 있는 저희 집보다 더 안락하게 보이고 아늑하게 보이는 텐트를 볼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그런 텐트를 장박 텐트라고 합니다. 저희처럼 하루 그냥 임시로 자고 가는 것이 아닌, 아주 며칠 동안 오랫동안 한 달 두 달 묵을 목적으로 설치된 텐트를 장박 텐트라고 합니다. 이런 텐트들은 오랫동안 지낼 목적이기 때문에 아주 튼튼하게 또 많은 공을 들여서 설치해야 됩니다. 하지만 저희 텐트는 얼마 걸린다고 했죠? 네 10초, 던지면 펴지고 접는 데 1분, 왜 제가 그 텐트를 갖고 갔을까요? 저는 하루만 자면 되니까요. 네, 요나가 지은 장막은 여러분 장박 텐트가 아니고 지금으로 말하면 제가 가지고 간 원터치 텐트입니다. 이 텐트의 특징은 빨리 치고 빨리 거둘 수 있으나, 비가 오면 비가 뚝뚝 떨어지고 햇빛이 들면 해 빛이 그대로 쪼인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요나가 장박 텐트를 치지 않고 이렇게 원터치 텐트와 같은 간단한 초막을 지은 이유는? 요나는 이 니느웨 성읍이 망하는 것이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 기대와 소망, 예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잠깐의 시간이라도 50℃를 오르내리는 건조한 날씨와 뜨거운 태양 그리고 뜨거운 바람은 아주 짧은 시간이지만 이 요나를 괴롭게 하기에는 충분한 조건이었습니다. 그때 요나를 너무나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박 넝쿨을 예비하시고 요나를 가리게 하셨습니다. 우리 6절을 한번 읽겠습니다. 6절 다 같이 보겠습니다.
 
*요나 4:6~11,
6 하나님 여호와께서 박 넝쿨을 예비하사 요나를 가리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머리를 위하여 그늘이 지게하며 그의 괴로움을 면하게 하려 하심이었더라 요나가 박 넝쿨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였더니,
-더위에 지쳐 있던 요나에게 하나님께서 무엇을 예비하셨죠? 박 넝쿨을 예비하셨습니다. 그 조그마한 박 넝쿨이 뭐가 그리 대단할까, 싶기도 하지만 여러분 뜨거운 햇빛이 비출 때 여러분 아무것도 없으면 우리 어떻게 합니까? 손바닥으로 햇빛을 가리죠. 그럼 어때요? 조금 시원합니다. 너무 더운 여름날 우리 본당에서 에어컨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으면 여러분 어떡합니까? 손바닥을 확 부치잖아요. 작은 주보를 가지고 주보는 교회의 알림 소식인데 이걸 막 부치잖아요. 알림은 보지 않고 네 그렇습니다. 아주 조금만 손바닥이라도 햇빛을 가리면 우리가 효과가 있습니다. 그런데 50℃를 웃도는 이 건조한 기후와 햇빛 속에서 이 박 넝쿨로 그늘이 내려진다는 것은 정말로 요나에게는 잠시나마 그늘로 인하여서 시원함을 맛볼 수 있고 청량감을 맛볼 수 있는 이 지친 요나에게 큰 위로와 쉼을 주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이를 통한 요나의 감정이 뭡니까? 여러분 ‘요나가 박 넝쿨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였더라.’ 크게 기뻐하였더라. 무엇 때문에 기뻐하고 있어요? 박 넝쿨 때문에 기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요나는요. 요나서 1장을 쭉 보면 알겠지만 요나는 하나님 앞에 매번 하나님 죽여주십시오. 이렇게 사느니 죽는 게 낫습니다. 죽여주십시오. 하나님 앞에 불평하고 징징거리던 선지자였습니다. 3절에서도 “하나님 내 생명을 거두어가소서.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마땅합니다. 내게 낫습니다.” 이랬던 선지자입니다. 이랬던 요나가 햇빛을 막는 그 작은 박 넝쿨 이 박 넝쿨 하나에, 기뻐하는 어떻게 기뻐해요 크게, 크게 기뻐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 참 모르겠습니다. 요나를 위해서 박 넝쿨을 준비하시고 그늘로 그를 위로하시고 시원케 하셨는데 채 하루가 지나지 않아서 하나님은 또 다른 것을 요나를 위하여 준비하셨습니다. 무엇을 준비했냐면 작은 벌레를 준비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벌레는 요나가 그렇게 기뻐하고 감사해 하던 박 넝쿨을 갉아먹습니다. 박 넝쿨은 이제 시들어 더 이상 요나에게 비추는 햇빛을 막아주지 못합니다. 거기에 더하여서 하나님께서는 뜨거운 동풍을 예비하시고 요나를 향해서 불게 하시고 요나의 머리에 뜨거운 해 빛을 쪼이십니다. 이에 요나는 정신이 혼미해지면서 그가 입버릇처럼 하던 이야기를 또 하나님께 이야기합니다.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내게 낫습니다.” 하나님 이런 뜨거운 태양 아래 뜨거운 바람 아래 하나님 사는 게 죽는 게 사는 것보다 낫습니다.
나를 죽여주십시오. 라고 또다시 하나님께 요청합니다. 요나가 지금 왜 이렇게 이야기합니까? 요나는 지금 자신에게 지금 이 순간 가장 소중한 것을 잃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나마 이 우울하고 불행한 자신의 삶 속에 위로하는 것이 박 넝쿨이었고, 앞으로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것들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니, 그 박 넝쿨이 시들어서 이제 나는 행복함을 느낄 수 있는 조건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니, “하나님 이렇게 사느니 죽는 게 낫습니다.” 라고 하나님께 죽는 것을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왜 하나님은 요나를 위해서 박 넝쿨을 준비하시고 또 시원하게 살게 놔두시지? 또 벌레를 보내셔서 그것을 갉아먹게 하시고, 왜 뜨거운 바람을 준비하셔서 요나를 그렇게 힘들게 하셨을까요? 왜요? 말로 해서 안 되니까 그렇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처음부터 요나를 바다에 빠뜨리셨나요? 처음부터 물고기 이렇게 삼키게 하셨나요? 아니에요. 처음에는 하나님께서 “요나야 내가 너를 니느웨에 보낼 거야. 너는 니느웨에 가서 내가 너에게 명령한 것을 전하기만 하면 돼.” 하나님께서 정말 젠틀하게 신사적으로 요나에게 말씀하셨어요. 요나가 들었어요? 안 들었어요? 안 들었습니다. 전하고도 요나는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았습니다. 처음에 하나님도 말씀으로 이렇게, 이렇게 해라 이런 계획이 있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고집 센 선지자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신념, 자신이 정해놓은 정의, 자신이 결정한 한 민족의 운명이 뒤바뀌는 것을 결코 용납 치 못했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계획하심이라도 이 계획에 내가 결코 참여할 수 없고, 결국에는 내 생각대로 내 예상대로 흘러갈 것이다. 라는 이 생각을 요나는 조금도 바꾸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말로 해서 안 되니까, 물고기 뱃속에 요나를 넣으시고, 니느웨에 보내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십니다. 박 넝쿨을 준비하시고 그것을 갉아먹게 하시고 더 큰 고통을 느끼게 하셨습니다. 요나 내면에 있는 불편한 마음, 동의할 수 없는 생각, 잘못된 기대감, 잘못된 신념, 결정 이 모든 것들을 깨부수시고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 요나에게 작은 기쁨을 주셨다가 그것마저 빼앗아 버리면서 하나님이 요나에게 실물 교육해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요나에게 말씀하시죠. “네가 하룻밤에 말라버린 이 박 넝쿨도 아끼는데, 이 니느웨의 성에는 좌우를 분별하지 못하는 자가 12만이고, 가축들도 많이 있는데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나님이 요나에게 물어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나 참 고집 세죠? 하나님 말씀 안 듣죠? 요나의 가장 큰 문제가 무엇입니까? 요나의 가장 큰 문제는 그가 정체성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이 요나에게 질문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니가 누구냐?” “니가 누구냐?”입니다. 네가 어떤 사람이냐 네가 뭐 하는 사람이냐? 여러분 요나는 누구예요? 어떤 사람이에요? 선지자입니다. 선지자 선지자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선지자가 해야 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선지자는 죄인의 회개를 돕는 자입니다. 죄인이 말씀 앞에 회개하고 돌아올 때 기뻐하는 자가 선지자입니다. 요나가 전혀 정체성이 없었던 선지자는 아닙니다. 요나는 분명히 자신이 뭐 하는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자기가 선지자인 것도 알았습니다. 요나는 자신의 민족에게는 자신이 정한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안타까운 마음으로 애끓는 심정으로 열과 성을 다하여서 그들이 회개할 것을 그들의 죄를 하나님께 자복할 것을 권하며 설교하며 그들이 돌아오기를 바라면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하지만 자기가 정해놓은 울타리, 그 울타리를 벗어났을 때에 자신이 바라지 않았던 사람들, 마땅히 심판을 받고 그들이 죽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앞에 더 이상 자신은 선지자로 설 수 없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에게 베푸는 하나님의 구원에 그는 결코 동의할 수 없었습니다.
 
여러분, 요나가 잊은 것, 요나가 착각하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요나는 자신에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 이스라엘을 선택하시고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는 잊고 있는 것입니다. 요나 또한 하나님 앞에 자신을 비추어 보았을 때는 자기도 죽어 마땅한 죄인임을 잊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왜 택하셨습니까? 아무 이유 없습니다. 하나님의 그냥 강권적인 선택하심에 이스라엘을 선택하셨을 뿐입니다. 무언가 이스라엘의 조건이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냥 이스라엘을 선택하셔서 이스라엘을 온 열방의 구원의 도구로 사용하시기 위해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도, 요나도 아무 조건 없이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자비로우심과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으로 선택하셨고 구원의 은총을 이스라엘 민족에게 요나에게 베푸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의 목적, 하나님께서 요나를 택하신 목적, 이스라엘을 택하신 목적은 여러분 분명했습니다. 그들을 통해서 구원의 도구, 열망의 복음의 도구로 그들을 사용하시기 위해서 요나도 택하시고, 이스라엘도 택하신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요나는 니느웨 성에 가서 기뻐하는 마음으로 열과 성을 다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여 했으며 회개의 메시지를 회개의 마음을 촉구해야 했습니다. 겉으로만이 아닌 자신의 온 마음과 온 전심을 다해서 그들이 회개하기를 바라야 하는 것이 마땅했습니다. 그리고 니느웨 성이 구원받았을 때 그는 누구보다 기뻐해야 하였으며 돌이킨 대로 그들이 진실이 그들의 마음을 잃지 않고 하나님 앞에 잘 살아갈 수 있도록 그들을 도와야 하는 것이 요나의 목적이고 요나의 소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자신 안에 있는 단단히 굳어진 마음과 고정관념과 잘못된 생각은 그가 올바른 선지자로 살아가지 못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로 인해서 유나는 어떤 사람이 되었습니까? 기뻐해야 할 것에 기뻐하지 않습니다. 요나가 기뻐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니느웨 성이 자신이 선포한 말씀, 하나님의 말씀에 회개한 것을 보고 그는 누구보다 기뻐해야 했습니다. 도리어 니느웨 성의 이 회개가 지속되지 못할까 노심초사(勞心焦思) 하는 마음으로, 아비의 마음으로 그들이 하나님 말씀 앞에 잘 성장하기를 기대해야 했던 것입니다. 자신을 위한 작은 박 넝쿨, 그늘에서 기뻐하고 그것을 갉아먹은 벌레, 그 벌레 때문에 분노하고 이러한 것들에 기뻐하고 분노하는 모습은 여러분 결코 선지자의 모습이 아닙니다.
 
여러분, 새 생명 축제를 앞두고 제 자신을 비롯해서 많은 사랑의 교회 영 가족들이 기도하는 마음으로 작정하고 여러분 준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그러고 계시죠? 아멘 소리가 너무 작아서 제가 낙심하려고 합니다. 그러고 계시죠? 아멘!! 너무나 귀한 생명의 축제이고 사역의 현장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우리가 깊이 생각해 볼 문제가 있습니다. 반드시 새 생명 축제를 해야만 하는가? 입니다. 여러분 혹시 1년에 한 번 오늘은 밥 먹는 날 정해놓고 식사하는 분계십니까? 아무도 안 계시죠? 혹시 오늘은 숨 쉬는 날 정해놓고 숨 쉬는 분계십니까? 아무도 안 계십니다. 내일이 수능인데요. 내 자녀가 수험생인데 1년 중에 3박 4일 이날만 공부하는 날 정해놓고 3박 4일만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을 보면 여러분 어떤 생각이 드시겠습니까? 그 학생은, 학생은 학생이지만 공부하는 학생은 아닙니다. 여러분, 제 마음에 노파심이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새 생명 축제 기간에만 전도하면 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의 정체성은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데 그 우선순위를 둬야 합니다. ‘온 세상을 위하여 이 복음 전하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정체성입니다. 그 우선순위를 우리가 잃은 채로 살아간다면 우리는 잠시 주신 박 넝쿨 하나에만 기뻐하는 요나 선지자처럼 살아갈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지금 여러분을 덮고 있는 잠시 시원한 바람과 햇빛을 피하면서 그 그늘 안에 있으면서 쉼을 누리고,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요나처럼 그 그늘에만 기뻐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리고 작은 벌레가 그 박 넝쿨을 갉아 먹었을 때에, 나를 시원하게 해주던 그 그늘이 없어졌을 때에 하나님에게 하나님 죽는 것이 사는 것보다 낫습니다. 라고 분노하고 항변하고 울부짖는 그 선지자의 모습이 우리 가운데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 물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마련해 놓으신 박 넝쿨에 우리는 충분히 감사할 수 있습니다. 마땅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더 크고 근본적인 감사로 나아가야만 합니다. 나를 덮고 있는 잠시 나를 시원하게 해주는 박 넝쿨이 아닌 한 영혼이 구원받고, 한 영혼이 하나님 앞에 돌아왔을 때, 한 영혼이 생명을 얻었을 때의 기쁨, 내가 전한 복음을 듣고 이 구원의 방주인 사랑의 교회, 안아주신 본당에서 함께 많은 사람들이 예배하며 생명이 살아나는 이 생명의 역사를 보면서 우리는 누구보다 기뻐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고 우리의 정체성입니다. 그것이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목적이고 그것이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목적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그런데 어떤 분들은 새 생명 축제를 앞두고 어떤 분들은요. 작정하는 것도 힘들어하는 분들이 계세요. 왜 그럴까 생각해 봤습니다. 그래서 왜 작정하는 게 힘드세요? 제가 물었습니다. 물었더니 내가 사랑의 교회 20년도 넘게 다녔는데, 작정을 매년 하다 보니 이제 작정할 사람이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왜 작정할 사람이 없을까요? 여러분 혹여나 이스라엘만 구원받으면 된다는 생각, 내 머릿속에, 내 생각 속에 있는 내 가족, 내가 정한 이웃, 내가 정한 테두리 안에 있는 사람만 복음의 대상이라고 우리가 생각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요나가 생각하지 못한 니느웨 성에 관한 구원 계획을 가지고 요나를 니느웨 성에 보내십니다. 그들이 비록 자신의 동족을 괴롭히고, 하나님 앞에 상상할 수 없는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하나님은 그들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그들에게 회개의 말씀을 선포하시고, 그들이 돌아오고 구원받기를 바라셨습니다.
 
여러분, 제가 작은 간증 하나 하겠습니다. 올해 초에 저희 사촌 형수께서 소천 하셨습니다. 저보다 몇 살 이셨는데 수년간 암 투병을 하다가 하나님 나라로 가셨습니다. 그런데 소천하시기 몇 달 전까지 저를 비롯한 친지들이 그 형수가 암 투병으로 여러 해 동안 고생하고 힘들어했던 사실조차 몰랐습니다.
말씀을 안 하셔서 심지어는 그것을 숨기면서 가족 행사에 참석하기도 하셨습니다. 지나보니 너무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많이 힘드셨을 텐데, 제가 목사인데 그런 말 들어주고 위로해주고 기도해 주는 사람인데, 사촌인 저에게도 말하지 못한 것이 안타깝고 그렇게 소천하신 것에 대한 미안함이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그 자리에 저희 친지들이 모였습니다. 그 식탁에 장례식장 식탁에 친지들이 모였고, 그곳에 고모님 두 분이 계셨습니다. 요즘은 집안에 아주 큰 대소사가 아니면 여러분 고모님을 제가 뵐 일은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아주 오랜만에 고모님을 뵙습니다. 고모님들은 교회에 다니지 않으시고 더군다나 한 분은 독실한 불자로서 절에서는 보살님으로 불리십니다. 여러분 보살님이란 호칭 아세요? 보살님은 우리 교회의 권사님 정도로 이해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아주 열심 하십니다. 절이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모르세요. 하지만 부모님들은 가끔 저를 만날 때마다 제 이름은 부르지 아니하시고 저를 존중해 주시면서 목사님이라고 부르십니다. 절을 다니면서, 그런데 그 자리에서 고모님이 제게 뜻밖의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김 목사님, 다니는 교회가 사랑의 교회인가? 네 고모님 서초동에 있는 그 크고 좋은 교회 맞지?” 그래서 “네 맞아요.” 어떻게 아세요? 그때 고모님이 제게 물으셨습니다. 그런데 “김 목사는 왜 고모들을 한 번도 교회에 부르지 않는가? 교회가 그렇게 크고 좋다면서?” 제가 머리를 한 데 딱 맞은 듯 했습니다. 그 순간 제가 목사고, 새 생명 축제를 지금 3년째 담당하는데, 한 번도 작정 자 이름에 고모를 써야겠다. 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미안한 마음에 제가 보살님도 저를 한 번도 안 초대하셨잖아요? 라고 대답하고 싶었으나, 그렇게 하지 않고 고모님 죄송합니다. 저희 교회에 11월 달에 새 생명 축제가 있는데, 고모님 꼭 오세요. 연예인도 오고 선물도 드리고 좋은 말씀도 들을 수 있고, 제가 강남에서 제일 맛있는 곳에서 식사 대접받을 테니, 꼭 오세요라고 고모님께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고모님들은 다음 주 수요일 새 생명축제에 참석하기로 하셨습니다. 박수... 제가 박수 받을 일은 아니고요. 이제 정말 부끄러운 고백입니다. 저는요. 저희 고모가 구원받을 거라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고모를 몇 년에 한 번 뵙는 게 전부고, 고모는 또 저래 너무 열심히 다니시고 하니까, 고모가 구원받을 거라는 생각 그러니까 태신 자 명단에 저는 한 번도 쓴 적이 없죠. 그러니까 요나 같은 마음이 제 안에도 분명히 있었던 것입니다. 근데 누군가 고모를 위해서 기도했을 것입니다. 아마도 고모의 오빠이신 저희 부친께서 열심히 기도하셨을 것 같은데 그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으신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영 가족 여러분, 우리 주위에도 분명히 이런 분들이 분명히 계실 것입니다. 제 주위에도 여전히 이런 분들은 많이 계실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그 딱딱한 껍질을 깰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가 전도할 수 있는 사람, 내가 작정할 수 있는 사람의 고정관념을 우리가 모두 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몇 년간 연락이 두절되었어도 내게 조금 멀리 있는 사람들도, 심지어 나를 괴롭게 하는 자들도 하나님은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전하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 우리가 작정한 4만 5천 명의 놀라운 이름들이 있습니다. 우리 어떠한 마음으로 작정했습니까? 혹여나 니느웨 성에서 확신 없이 설교한 요나처럼 적긴 적지만 안 될 거야, 이러한 마음으로 작정하진 않았습니까? 혹은 그 사람은 구원받을 수 없어 내가 정한 교만한 마음으로 복음조차 전하지 않지 않았습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나님의 마음으로 작정하고 전할 때에 구원의 역사가 니느웨 성을 회개시키고 구원하였던 것처럼 여러분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이들까지 변하게 하시고 구원케 하시는 이 놀라운 생명의 역사가 주일부터 시작되는 새 생명 축제 기간에, 다섯 번의 집회 기간에 우리의 생각의 틀을 뛰어넘고, 우리의 마음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마음이 이 본당 가운데 가득 부어지는 역사의 현장에 우리가 함께 동참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아멘.
 
♣요약
나의 결정과 나의 판단, 나의 선입견 모두 하나님 말씀 앞에 내려놓아서, 그 하나님의 계획에 날마다 순종하는 삶을 살아나야 한다. 하나님 박 넝쿨의 그늘과 같은 작은 것에 내가 기뻐하는 인생이 아닌, 한, 영혼이 돌아올 때, 가장 기뻐하시는 아버지의 기쁨을 나의 기쁨으로 삼는 인생이 되는 자가 되며, 한 영혼의 영적 필요에 귀 기울일 수 있도록 준비하여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닿는 곳에 기쁨으로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로 일익을 감당해야 한다. 새 생명 축제를 앞두고 온 교회가 부흥의 물결을 소망하며 실천하는 자가 되고, 교회 사역과 담임 목사님과 새 생명 축제 강사님들을 위한 기도 제목을 하나님 앞에 함께 올려드리며, 2023 새 생명 축제를 통해 주님의 귀한 행적이 나타나는 기적을 체험하며, 2천만이 주님께 돌아오는 2033 50 비전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새 생명의 결정적 역사가 일어도록 간절한 기도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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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3년 11월 12일)-세례식
제목: “은혜의 대관식”
말씀: 고린도후서 5:14~15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대표기도: 김은석 부목사님(1부)
사회; 천동원 부목사님(1부)
세례식 간증: 이현우, 이정혜 성도(1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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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5:14~15,
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15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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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3일 날 7천여 명의 목회자들과 천년 교회 사역자들이 참석하시는 제2회 한국교회 섬김 나에 대한 은혜의 진리를 한 번씩 맹맹하고 있습니다. 많은 곳 사람들이 힘들게 못 했는데 힘을 얻고 다시 잡을 수 있는 어떤 그런 방향을 잡았다. 얘기를 하시고 그다음에 이제 그 목사님들이 목회하시는 교회 성도들에 대한 반응을 들어 이게 뭐냐 하면 우리 목사님이 한교섬에 갔다 오시더니 너무너무 새로워지고 달라지셨어요. 그렇게 하고 “목사님 한국교회 섬기는 말을 한 번만 말고 계속하시죠.” 우리 성도들 정말 수고 많이 하시고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오늘 366분의 학습, 세례, 입교, 여러분들이 가지시는 게 신앙인 교회가 계속해서 이 복음의 능력 생수의 강의 한 달에 한 번씩 하면 더 영광 올려 드립니다. 그리고 세례 받게 되기까지의 과정이 단계는 보통이 아닙니다. 수많은 어려움들을 극복하고 오늘 세례 받게 되는 거 진심으로 축하하고 격려를 드립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은혜의 대관식" 세례식을 통한 은혜의 대관식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본문은 우선 세례에 대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마태복음 16장 17절에 나와 있는데,

*마태복음 3:16~17,
16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 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17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16장 17절에 나오는데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셨어요. 첫째 뭐가 됐어요?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예수님께 이 말씀을 보느니 그다음에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 아들이여 내 기뻐하는 자라 하더라. 그랬습니다. 이 말씀이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나가보도록 그렇게 합니다. 누가 보든 상관이냐 공관복음에 다 이 내용이 다 나와 있습니다. 특별히 예수님의 세례를 받으신 분이에요. 세례를 통해서 이런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정체성 회복이 돼 정체성을 갖게 되죠. 그러니까 예수님의 사역에 예수님의 사역의 정체성 섬김의 정체성 예수님은 이 땅에서 사역하시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왜 기뻐하는 사랑이 그 내용으로 그게 이제 공포가 되고 그게 확인이 되고 이렇게 되었을 때, 그 다음에 이제 마태복음 37절 끝나고, 바로 4장 1절에

*마태복음 4:1,
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예수께서 성령이 그 마귀에게 시험을 그러니까 과정들을 다 이겨낼 수 있는 힘과 원동력을 세례를 통한 예수님의 정체성을 통하여 확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되시고 공개적인 선포와 실체를 체험할 수 있게 하시고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인 치심, 즉위식 은혜의 대관식을 하고 난 다음에 그 ‘은혜의 대관식’을 통하여 왕의 면류관을 씌어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그것 때문에 예수님께서 앞으로 수많은 사역의 고난과 모든 질고와 아픔을 이겨내실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하나님이 맡길 수 있는 정체성에 대한 확신이 그 이후에 수많은 사탄의 시험도 이길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실 것이에요. 따라서 오늘 세례 받는 모든 성도들 이 자리가 내 사랑하는 아들이여, 내 기뻐하는 자라고 하는 '은혜의 대관식'의 자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이미 세례 받은 모든 성도들은 내가 받은 대관식이 얼마나 될 대단한지 다시 한 번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웬만한 시험은 좀 이겨낼 수 있도록 그 능력을 받고 오늘 돌아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 은혜의 대관식을 경험한 사람들에게 나타난 공통적인 현상은 다 안에 있는데, 오늘 우리가 본문 뒤에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고나 뭐예요 다 너무나 익숙하게 하는 말씀 암송하는 말씀이에요.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도다.’ 근데 지금 개혁 우리 지금 새로운 번역 우리 새 번역에서는 ‘새로운 창조물이 되었도다.’ 새롭게 되었다. 세례 받고 난 다음에 나타난 가장 중요한 핵심은 뭐냐 ‘새로운 창조물이 되었도다.’ 새로운 정체성을 갖게 되었도다. 근본적인 변화를 갖게 되었도다. 특별히 사도행전에 보면 이방인들 대표적인 이방인들이 세례를 받은 것이 나와요.

하나는 뭐냐 하면 고넬료 백부장 고넬료가 세례를 받고 난 다음에 성령이 충만해지고, 그다음 빌립보 간수가 바울을 죽이려고 하던 그 빌립보 간수가 세례를 받고 난 다음에 온 지하에 구원받고 완전히 새 사람이 된 것이에요. 세례를 통하여 새 사람이 된 케이스에요. 이것은 신약뿐만 아니라 구약에는 세례를 구약의 할례가 세례가 되었다고 그러는데 창세기 17장에서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고 난 다음에 한 집안의 아비, 아브라함 또 집안에 조그만 집안의 아비 정도의 있다가 열곡의 아브라함 열곡의 아브라함, 복수가 되어가지고 완전히 자기만을 위해 살던 인생이 완전히 천하 왕국의 축복의 근원이 되는 것이에요. 애굽에서 노예 생활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너 사건을 말하는데,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그 홍해를 건넌 사건이 바로 세례 사건이다. 세례 사건이다. 그러니까 홍해를 건넌 후에 시내 산에서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이 된 거예요. 노예의 종살이 하는 사람들이, 노예 살이 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이 된 줄로 믿습니다.

오늘 우리 세례 받는 분들 가운데서도 중고등학교 시절에 아버지가 학교 가지 못하게 하려고 아버지가 저기 예수 믿지 못하게 하려고 교회 가지 못하게 하려고 너 막 그냥 종아리 때리고 성경을 찢고, 심지어 호적에서 이런 제거한다. 그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례 받고 꿋꿋하게 신앙을 지켜가지고 나중에는 그렇게 때리고 협박하던 아버지가 이 아들의 전도를 통하여 구원받는 사건이 일어난 거에요. 할렐루야. 그래서 이런 분들이 한국교회가 많이 그래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오늘 이 말씀을 기록한 살인 주동자였던 사울이 예수님의 사도가 된 것은 완전히 새로운 신분이 된 거예요. 새로운 대관식을 하게 된 거예요. 사울이 나중에 눈 먼 상태에 있다가 세례 받고, 이렇게 되고 난 다음에 눈에서 비들 같은 것이 없어지고 나서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됐어요. 그리고 나중에 복음 전도자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세례받은 모든 분들 또 이미 세례 받은 모든 분들 그동안 우리를 좀 이렇게 다 우리가 여기 가고 있던 모든 비닐이 여러분들에게 떨어져 나가기를 바랍니다. 새로운 세계관이 형성되기를 원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세례에 대해서 새로운 정체성을 가지고 새로운 대관식을 하는 것을 잘 보여주는 구절이 있는데 갈라디아서 3장27절에 보면,

*갈라디아서 3:27,
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오늘 여러분들에게 우리가 옷을 입었습니다. 저는요. 이 주일날이 가을 겨울에 설교를 하면 너무 이상한 거 있어요. 여름에는 다 흰옷이야. 이제 겨울이 되면 팥 색감이 한국 사람들은 너무 이렇게 정체성이 확실히 낮은 거예요. 캘리포니아 같은 경우는 1년 12달 다 똑같은 옷이에요. 비슷해. 우리는 그냥
성격도 화끈하고, 여름은 하얗고 겨울에 다 새까맣고, 근데 주님께서 우리는 그리스도로 오게 됩니다.

여러분들과 제가 세례를 받고 난 다음에 예수님의 옷 입은 줄로 믿는 것이 그러니까 새로운 옷을 입었다는 건, 새로운 시험되었다는 뜻이에요. 죄의 더러운 옷을 입고 떠돌던 영적인 거지가 하루아침에 그리스도로 애굽을 입고 하나님 나라의 왕자의 정체성을 갖게 되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로마에는 왕의 대관식을 할 때마다 로마 제국에서 왕으로서 특별히 제작되는 그 황제의 예복에서 대례복이 있어요. 이 옷은 왕을 상징하는 무늬도 있고, 그 국가의 상징 문양도 있고, 문장이 장식돼 있죠. 특별히 로마의 로마 황제는 보라색 보라색을 입고 있었어요 보라색의 광석이나 고위 귀족의 의복이 된 이유가 뭐냐 하면 보라색 염료를 얻는 과정이 매우 어려웠고 비용이 많이 들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11장 자조장사 누구예요? 루디아가 어마어마한 그 당시에 제력 가였어요. 유럽 교회 초대, 빌립보교회, 그 여인이 바울에게 세례를 받고 초대교회에 막강하게 섬기기를 받는 오늘 우리 가운데도 그런 인물들이 많이 나오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우리가 스가랴 3장을 하면서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마귀의 참수를 바라 온갖 뭡니까? 오염물이 가득한 더러운 옷을 입고 있다고 했잖아요. 사탄이 참수하는 거 그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했죠? 아름다운 예복을 입히시고, 정결에 관을 씌우시고~ 우리가 세상 적으로 오염되고 그럴 수 있던 우리들을 세례를 통하여 아름다운 옷을 입히시고 정결의 관을 씌우시는 주님을 찬양하는 것이에요. 제가 오늘 세례에 대한 말씀을 드렸습니다. 세례 받는다는 것이 어떤 뜻인지 말씀드렸습니다. 그럼 세례 받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세례 받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오늘 한 가지만 더 얘기하시 14절에 보니까,

*고린도후서 5:14~15,
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신 즉 모든 사람이 뭐예요? 장례식에 은혜의 대관식 세례식을 받은 사람이 해야 할 첫 번째 가장 중요한 일은 뭐냐

◆ 여러분과 제가 장례식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로마서 6장 3절, 4절에,
*로마서 6:3~4,
3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세례 받은 사람이 장례식 한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 ‘은혜의 대관식’에는 반드시 옛 사람에 대한 장례 선포가 필요하다는 것이에요. 자아가 죽고 옛 사람은 죽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세례 받은 모든 분들, 우리 온 성도들 다시 한 번 자아가 무너지고, 옛 자아에 대한 장례식을 하는 은혜가 있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뭘 장례식을 합니까? 펄펄 살아 있는 자아, 혈기, 이런 걸 장례식을 좀 하고 그다음에 자기를 부인하고, 그 다음에 공로 의식에 찌들어 있는 우리가 남이 안 알아주는 거 섭섭하고 이런 거 좀 장례식하고 은혜 의식으로 사로잡히고, 또 염소 같은 태도 지난주에 장례식을 다 하고, 염소 대신에 착한 양으로 다시 회복하고 그러니까 나의 옛 자아, 그다음에 공로 의식, 그다음에 염소 같은 태도를 다 장례하는 은혜가 있기를 바라는 거예요. 구체적으로 말하면 우리가 중독되어 있는 모든 것에서부터 장례 의식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게임이나, 쇼핑이나, 음식이나, 유튜브나, 미움이나, 질투나, 배신감 등 나를 얽매여서 컨트롤 하려고 하는 것으로부터 장례를 해야 하는 것이에요. 우리가 어떤 것을 좋아하고 페이보릿(favorite) 하고 우리 나름대로 취미 생활 이런 거 잇츠 오케이 괜찮아요. 그런데 그것이 나를 지배하면 문제가 나의 시간은 어딕션(Addiction)으로부터 중독으로부터 중독을 파괴시켜야 되는 것이에요. 장례식을 해도 적당히 죽으면 안 되고, 완전히 장례식을 해야 됩니다. 죽은 척해도 안 되고 우리 알잖아요! 여러분, 닭 잡는데요. 시골에서 닭 잡다가 닭을 적당히 잡아 몸을 다 적당히, 반만 잡아주면 닭이 어떻게 하죠? 온 동네를 쏟아내면서 피를 뿌리는 거예요. (닭 잡는 거 잘 보시기도 하셨네용!) 제대로 죽자. 제대로 좀 제대로, 제대로 좀 제대로 죽자.

지난주에 유명한 이를 때 유명한 배우가 '내 인생이 왜 이렇게 우울한 거야?' 많은 사람이 이렇게 우울한 거야. 내 탁월함은 어디에 있지? 세계적으로 유명한 배우가 60을 넘어가지고 내 인생은 이거 명대사에요. ‘내 인생은 왜 욕을 한 거야 만사가 다 우울해?’ 라고 해요. 내 삶의 탁월함은 어디 있지? 우리 식으로 얘기하면 내 삶의 보람은 어디 있지? 아직 젊은 분들은 잘 모르는데 60이 넘어 봐요. 다 그런 고백 안 하면 인생 아니에요. 내 인생이 왜 이래 우울해 하는 사람 왜 이래 우울해? 핵심은, 핵심은 왜 그럴까? 자기만을 자신을 바라보니까 우울해지는 거예요. 자기만을 바라보니까 슬퍼지는 거예요.

여러분, 이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독특한 창조 질서예요. 그러니까 자아를 계속 바라보고, 자아를 집중하는 한 저와 여러분이 계속 우울하게 돼 있는 것이에요. 대답 안 하는 거 봐요,.. 여러분과 제가 사업을 계속 바라고 자기를 집중하라는 인생을 계속 우울하게 돼 있다니까요. 이게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요. 하나님은 모두 우주만물을 창조하셨어요.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창조 질서를 만들어놨기 때문에 여러분과 제가 자아에 대한 장례식을 하지 않으면요. 인생을 다 우울하게 돼 있어요. 그러니까 내 탁월함은 어디 간 거야? 여러분 자기만 바라보고 내 자아가 장례식을 치르지 않으면요. 인생은 다 환상이에요. 오늘 세례 받은 모든 분들, 또 이미 우리 성도들, 이었지만 기가 막히게 많은 분들, 저나 여러분은 예외가 없어요. 내 중심 나만 바라보고, 내 우주가 내가 중심이고 나만 이렇게 생각하고, 나만 생각하면요. 여러분 앞으로 반드시 결론하는 일이 뭐냐? 우울증이 올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 중심으로 하고, 하나님께 집중하고 내 자아는 장례하고, 은혜의 의식에 충만하고 이렇게 될 때는요. 내 삶이 풍성한 은혜의 열매를 날마다 있도록 만들어 주실 것이에요. 정말 이 은혜가 새를 받은 모든 분들에게 충만하길 바랍니다.

♣요약
오늘 학습, 세례, 입교식이 생수의 강이 넘쳐흐르는 은혜의 대관식이 되고 모든 어려움의 홍해를 넉넉히 이겨내는 평생이 되며, 우울함에 이르는 옛 자아의 공로의식과 중독은 제대로 장례식을 하나님 앞에 온전히 치러서 날마다 그리스도의 옷을 입는 청청한 은혜의식으로 살아가야 한다. 우리 교회 새 생명 축제에도 주님의 은혜로 휘몰아치게 하시는 2033-50 비전을 이루어가는 부흥의 진원지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쓰임 받는 자가 되기를 소원해야 한다.














                                                                                          -세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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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흥헌신 토요비전새벽예배(주후 2023년 11월 11일)
제목: "믿음은 재해석이다"
말씀: 사도행전 26:24-29
대표기도: 유수연집사님(목양6팀 여자대교구장)
찬양인도: 목양6팀 영 가족찬양대
말씀읽기: 이주원학생(고등1,2부), 이진정학생(다니엘 중등부)
사회: 김대규 부목사님

설교자: 박주성 부목사님
ㅡㅡㅡ


*사도행전 26:24-29,
24 바울이 이같이 변명하매 베스도가 크게 소리 내어 이르되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하니. 
25 바울이 이르되 베스도 각하여 내가 미친 것이 아니요 참되고 온전한 말을 하나이다. 
26 왕께서는 이 일을 아시기로 내가 왕께 담대히 말하노니 이 일에 하나라도 아시지 못함이 없는 줄 믿나이다 이 일은 한쪽 구석에서 행한 것이 아니니이다. 
27 아그립바 왕이여 선지자를 믿으시나이까 믿으시는 줄 아나이다. 
28 아그립바가 바울에게 이르되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 

29 바울이 이르되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뿐만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 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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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국제제자훈련을 섬기시는 박주성 목사님께서 “믿음은 재해석이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해 주시겠습니다. 이후에 오정현 담임 목사님께서 태 신자 기도회와 마무리기도로 인도해 주시겠습니다..


담임 목사님께 감사드립니다. 제가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은 사실은 저보다도 훨씬 더 능력 있는 많은 강사님들이 서실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하고 저희 교회에 120여 명의 교육자들이 있는데 그중에서 이 강단에서 매년 말씀을 전할 수 있는 것은 한 번, 두 번 정도의 기회이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몇 번이나 더 설교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도 들기도 하고 이번에 말씀 준비하면서는 이렇게 소중한 기회를 가지고 어떤 말씀을 우리 영가족들에게 전해야 될까 더 하나님께 간절하게 강구를 하게 됐던 것 같습니다. 제가 그렇게 더 간절히 강구했으니깐 여러분도 더 간절한 마음으로 오늘 은혜를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하나님의 나라에 완전히 미친 사람 한 사람이 등장을 합니다. 오늘 본문 29절 말씀을 다시 한번 보실까요? 본문 29절 말씀에 보면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뿐만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내가 쇠사슬에 결박되어 있는 이 모습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합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해요. 지금 바울은 로마의 총독 베스도 앞에서 그리고 분봉 왕 아그리바 왕 앞에서 자신의 신앙을 변론하고 있습니다. 인간적인 조건으로 보면 절대로 나처럼 되었으면 좋겠습니다라는 말을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져 있었어요. 완전히 미친 사람이 아니면 이런 말을 못하는 거죠. 여러분 제가 어릴 적 자랐던 동네에는 미쳤다는 말이 두 종류가 있었는데 하나는 완전히 해가닥 해서 돌아오지 않는 사람을 가리켜서 미쳤다 그렇게 얘기를 했고요. 해까닥 했다가 맨정신으로 돌아왔다가 해까닥 했다가 맨 정신으로 돌아왔다. 이런 분을 걸쳤다 그랬어요. 쟤는 미쳤다 그럼 완전히 간 거예요 안 돌아오는 겁니다. 쟤는 걸쳤다. 그러면 갔다가 왔다가 갔다가 왔다가 이러는 겁니다. 바울 사도는 걸쳤습니까? 완전히 미쳤습니까? 완전히 미친 거예요.


여러분 오늘 이 새벽에 오신 우리 사랑의 교회 모든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하나님의 나라에 완전히 미친 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근데 이게 또 미치려면 맨 정신으로 미칠 수는 없잖아요. 오늘 바울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완전히 미친 사람이 되었는지 먼저 좀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그 비결은 바로 그 비밀은 재해석에 있습니다. 바울은 정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또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핍박하고 죽이는 일에 앞장섰던 인물이었어요. 그러다가 그가 다메색으로 가는 가운데 우리 주님을 만나게 되죠. 사도행전 22장 8절 말씀에 보면 주님을 만났을 때 말씀을 좀 보여주세요.


*사도행전 22:8,
8 내가 대답하되 주님 누구시니이까 하니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나사렛 예수라 하시더라.
주님을 만났을 때에 주님 누구십니까? 라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주님 누구십니까?” 그렇게 질문을 했을 때 예수님께서 “나는 니가 박해하는 나사렛 예수다”. 그렇게 대답을 하셨어요. 그리고 10절 말씀에 보면 주님 무엇을 하리이까? 주님 제가 무엇을 하고 살아가야 하는 존재입니까? 라는 질문을 했어요.
*사도행전 22:10,
10 내가 이르되 주님 무엇을 하리이까 주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다메섹으로 들어가라 네가 해야 할 모든 것을 거기서 누가 이르리라 하시거늘.
-그때 일어나서 다메색으로 들어가라. 니가 해야 할 모든 것을 거기서 누가 너에게 알려줄 거다. 라고 말씀하셨어요. 몇 마디 하지 않았습니다. 긴 시간이 아니라 아주 짧은 시간이었어요. 근데 이 짧은 시간에 주님과 몇 마디 나누지 않았는데 바울은 자신의 인생이 재해석이 됐어요. 자기가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가 재해석이 됐어요. 주님 누구십니까? 이 말은 나의 구원자이신 당신을 믿어야 하는 나는 누구입니까? 라는 말로도 질문을 바꿀 수 있어요. 이건 동전의 양면이에요. 주님 당신이 누구십니까? 라는 이 질문은 주님을 믿어야 하는 나는 누구입니까? 라는 질문으로 바뀌는 질문이라는 거예요. 예수님께서 구원자이시다. 메시아이시다. 라는 사실이 변개할 수 없는 진리가 되고 나면,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아 누리게 된 하나님의 아들이구나! 하나님의 딸이구나! 라고 하는 것이 재해석이 되어 내가 율법을 지켜 행함으로 구원 얻어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을 갖게 되었구나! 하나님의 자녀이니깐 맏형님 되신 예수님과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공동 상속하게 될 공동 상속자구나!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물려받아서 영원토록 왕 노릇할 존재가 되었구나! 내가 그렇게 값어치 없는 하찮은 존재가 아니구나! 내가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어서 영원토록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쁨으로 하나님을 찬송할 존재가 되었구나! 라는 것이 재해석이 되는 거예요.


이게 재해석이 되고 나면 주님, 제가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하겠습니까? 제 인생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제가 달려갈 길은 어떤 길입니까? 하나님은 저에게 어떤 사명을 들려주셨습니까? 라는 질문을 다시 던지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에 복음을 증언하는 것을 내 삶의 사명으로 붙들게 되는 것입니다. 본업과 부업이 바뀌는 거예요. 바울 사도는 다메섹에게서 인생이 재해석이 되고 내 신분이 재해석이 되고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명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정리되고 난 다음에 자신의 사명은 자신의 인생은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위하여 온전하게 내어드려야 할 삶이다. 라는 것이 정리가 된 거예요. 그래서 자비량 전문인 선교사가 됩니다. 텐트 메이커로서 텐트 만드는 일을 하면서 장막 만드는 일을 하면서 부업으로 장막을 만들면서 본업으로는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감당하는 삶을 살아갔다는 거예요.


여러분 믿음은 이런 재해석의 과정을 지나야 가능한 것입니다. 그전에는 종교 생활이에요. 열심히 내가 비나이다. 비나이다. 해서 하나님께로부터 무엇인가 절대자로부터 무엇인가 받아내기를 원하는 종교 생활이에요. 종교 생활을 하는 사람도 열심히 종교 생활을 하는 사람을 보면 거룩해 보여요. 근데 우리 주님을 만나고, 진짜 하나님 안에서 내가 누구인지, 우리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재해석이 된 사람은요 달라요. 말하는 것도, 선택하는 것도, 인생의 사역의 방향을 정하는 것도 다 달라집니다. 이렇게 만나보면 이분은 재해석이 된 분이구나! 이분은 그냥 종교적인 열심으로, 비나이다 비나이. 종교 생활을 하고 있는 분이구나 딱 만나보면 느껴져요 압니다.


어떤 분은 수술대에 누워서 그 밝은 수술 등 아래에 누워서 마취되어서 의식이 사라지기 잠깐 전 그 순간 인생이 재해석이 되기도 해요. 그 짧은 순간에 지나온 인생이 다 재정리되면서 한 장 한 장 인생의 슬라이드가 넘어가면서 그 짧은 그 순간에 의식이 사라지기 전 그 1초, 2초 그 짧은 순간에 인생이 재해석되기도 해요. 내가 헛된 삶을 살아왔구나! 내가 뭘, 뭘 하고 살아야 하지 재해석이 되는 거예요. 어떤 분은 제자 훈련의 과정을 통해서, 어떤 분은 사업의 실패를 경험하고, 어떤 분은 내일 우리가 갖게 될 거룩한 세례식을 통해서 공회 앞에 신앙을 고백하는 세례의 순간 그 짧은 순간에 인생이 재해석되기도 하고, 어떤 분은 내일 친구의 손을 붙들고 교회에 처음 와서 세례 간증을 듣는 그 순간 짧은 순간에 인생이 재해석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모두 바울 사도와 같이 여러분의 인생에 대해서 재해석된 은혜가 임한 줄 믿습니다. 아직 그 제 해석의 순간에 부딪히지 못하셨다면 이아침에 하나님 앞에 간절히 예배하고 찬송하고 기도하는 이 예배를 통하여서 여러분의 인생이 재해석되는 역사가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런데 이 재해석은 단회적인 사건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반복이 돼야 돼요. 왜냐하면 내가 누구냐 내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느냐라는 사명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지만 우리가 그걸 자꾸 잊어버리기 때문에 그래요. 바울 사도가 로마서 6장 11절에 이런 말씀을 합니다.


*로마서 6:11,
11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여러분 바울 사도가 너희도 로마서를 받아드는 로마에 있는 성도들 너희들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있는 자로 여겨라 그랬어요. 살아있는 자다라고 이렇게 선언적으로 얘기하지 않고 여겨라 그랬어요. 여기는데 너는 사실 죄에 대하여 죽은 자가 아니라 죄의 매어 종노릇하고 있어. 그런데 여전히 죄에 매어 종노릇하고 있는 존재지만 너는 죄에 대하여 죽은 자로 여기면서 살라. 너 자신을 속여. 너는 진짜 죄에 매어 종노릇하는 존재인데 너 자신을 속이고 죄에 대하여 죽은 사람으로 여기면서 살아.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니에요.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에 대하여 죽은 자가 되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다시 살아난 존재가 되었어요. 사실이에요? 팩트예요. 네 이제 성경을 지워주셔도 돼요. 여러분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어요. 사실입니까 거짓입니까? 사실이에요. 여러분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을 갖고 있어요. 여러분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맏아들 되신 예수님과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유산으로 물려받아 영원토록 통치하고 다스리고 왕 노릇할 존재들이세요. 사실입니까? 거짓입니까? 근데 이걸 까먹어요. 자꾸 까먹는 겁니다. 잊어버리는 거예요. 그래서 바울 사도가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로 여겨라. 너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을 그 신분을 분명히 여기며 살아라. 누리며 살아라. 그렇게 권면을 하는 거예요. 요즘 세간을 떠들썩하게 하는 누구처럼 나는 재벌 2세다. 라고 사기 치라. 는 말이 아니에요. 고한 이식해서 진짜 임신된 거야라고 사기 치라는 게 아니에요.

우리는 진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아 누렸고 우리는 천지만물의 소유주가 되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아 누렸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를 유산으로 물려받게 될 재벌 2세 저리 가라 같은 신분이 된 존재들이에요. 신분의식을 분명히 놓치지 말라는 거예요. 바울은 이 신분의식을 놓치지 않았어요. 한 번 다메섹에서 인생이 재해석되는 것으로 완전히 몸에 그 신분의식이 정체성이 자리 잡은 것이 아니라, 바울도 끊임없이 자기가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여기며 사는 삶을 산거예요. 왜? 따먹기 때문에, 그래서 성도들에게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있는 자로 여기며 살아라. 그렇게 권면을 하는 거예요. 여기며 살아라.

여러분, 제가 군대에서 장교로 복무를 하고 제대를 했습니다. 아직도 군인 정신이 충만한 것 같죠? 군기가 바짝 들어 있잖아요. 그렇죠? 제가 민간인으로 있다가 갑자기 장교 훈련을 받고 ROTC 장교 훈련을 받고 임관을 해서 이제 소위가 돼서 군대에 부임을 했어요. 자대 배치를 받았는데 소대원들을 보니깐 아주 구리 빛으로 그을린 얼굴에 근육질 몸매에 딱 보니까 저보다, 저보다 한 2~3살은 많아 보여요. 그래서 저렇게 나보다 두세 살이나 많은 소대원들을 어떻게 통솔을 할까, 걱정을 하고 생활기록부를 봤더니 전부 저희 또래거나 한두 살 어리거나 그런 친구들이더라고요. 근데 저는 장교가 되어서 임관을 해서 부대에 배속을 받아서 갔지만, 여전히 군인 정신으로 충만한 게 아니라, 민간인 정신으로 충만한 거예요. 군복은 입었고 계급장은 달았지만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하고 진행하는 모든 것이 민간인스럽습니까? 소대장스럽습니까? 민간인스러워요.

제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한 것이 거울을 보면서 야 박주성 니가 소대장이야? 니가 소대장이야, 니가 책임져야 돼 니가 결정하고, 니가 소대원들을 이끌고 끌고 가야. 돼 니가 소대장이야 잊어버리지 마 니가 영광도 쥐하고 니가 책임도 져야 되는 거야. 라고 저한테 계속 니가 소대장이야, 소대장이야, 소대장으로 여기며 살아라. 고 얘기를 했어요. 여러분 저한테 지금 제가 니가 소대장이야. 라고 말하는 것은 사기치는 겁니까 진실을 말하는 겁니까? 진실을 말하는 거죠 왜? 제가 소대장 계급장을 달고 소대장의 신분이 되었으니깐요. 그러나 제가 소대장의 의식으로 정체성으로 충만하지 않으니까 너 소대장이야 니가 책임져야 돼 계속 자기 자신에게 되 뇌였어요. 그러다가 어느 순간 제가 소대장의 군인 정신으로 충만해요. 제대한 지 30년이 됐는데 아직도 군인 정신이 충만해요.


여러분 믿음은 내가 누구인지 그리고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재해석되는 게 믿음이에요. 또 하나 믿음은 재해석된 나의 신분 의식에 붙들려서 살아가도록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 죄에 대하여는 죽었다는 것을 여기며 살아가는 삶이에요. 이게 좀 어려운 말로 하자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나 여전히 내가 아직도 죄를 짓고 있어요. 이미 구원을 얻었지만 아직 우리 구원이 완성이 되지 않았어요. 이미 내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물려받았지만 아직 내 손에 현찰로 들려져 있지 않아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음을 주셨는데, 마치 내가 현찰을 받은 것처럼 여기며 살아가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믿음 생활이에요. 여러분 우리는 지금 새 생명축제, 대각 성 전도 집회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바울 사도처럼, 쇠사슬에 매인 것 말고는 여러분도 저처럼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라는 말을 할 수 있겠어요. 어떻게 나보다 더 좋은 넓은 아파트 평수에 더 좋은 브랜드 아파트에 살고 있는 친구에게 나보다 더 연봉이 많은 친구에게, 너도 연봉 작은 것 말고는 나처럼 되었으면 좋겠어. 라고 말을 할 수가 있겠어요? 그건 내가 하나님 안에서 어떤 존재인지 재해석이 되어야 가능한 거예요. 그리고 그 재해석된 나의 신분과 사명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계속 여기며 살아가야 하는 삶을 살 때에 가능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영 가족 여러분 오늘 토비새에 나오신 여러분 모두 한 분도 예외 없이 내가 누군지, 내가 무엇을 해야 되는 사명자인지 재해석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한 분도 예외 없이 예수님 안에서 새롭게 얻게 된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 공동 상속자라는 신분 의식이 여러분의 삶을 움직여서 흙하며 사는 영혼들을 다 구원해낼 수 있는 온전한 하나님의 손에 들려진 사명자들 되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요약
우리를 하나님의 귀한 자녀 삼아주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유산으로 물려받을 수 있는 공동 상속자 삼아 주신 줄 믿어야 하며, 이 정체성을 잊어버리지 않고, 내가 쇠사슬에 매여 있다 할지라도 이 쇠사슬에 매여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당신들도 나처럼 되었으면 좋겠다는 놀라운 복음을 전파하는 사명자가 될 수 있어야 한다.

▶담임목사님 마무리기도.
목사님들 설교 마치고 난 다음에 박수를 치는 거는 글로벌화된 겁니다. 이거는 보통 교회에서 할 수 있는 거 아니에요. 근데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들었으면 우리가 개인에게 박수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하나님께 감사하다 그렇게 하는 거예요. 앞으로 사랑의 교회는 외부 초청자들이 왔을 때는 항상 우리가 자연스럽게 하나님께 감사하다는 박수를 드리고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입니다. 우리 한국교회의 장로교 전통 중에 하나는 사람을 높이지 않는다는 것이 있습니다. 그 뜻이 아주 좋은 거예요. 좋은데 우리는 사람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자연스럽게 더 큰 은혜의 어떤 샘이 터뜨려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고맙습니다.

이번 주부터 두 주간은 2023년 새 생명 축제를 준비하여 하나님께 큰 영광 올려드리는 주간이 되는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 부활절에 품은 생명, 대각성에 추수하자. 그리고 한 사람이 한 사람을 구원합시다. 영적인 119, 영적인 우리가 비상을 선포하고, 이제 오늘이 11일이죠 오늘이 빼빼로 데이네. 빼빼로 데이, 저기 뭡니까? 과자는 못 먹더라도 은혜는 받으세요. 빼빼로 데이가 뭐하는 날이에요? 빼빼로 데이가 뭐 하는 날인가? 그러니까 남자가 여자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거 아닙니까? 아닌가? 모두 다 모두 다 양쪽으로 그러면 우리가 다른 어떤 것보다도 진실 되게 영혼 구원에 대한 마음을 가질 때 최고의 사랑을 표현하는 줄로 믿습니다.

오늘부터 제가 19일 날, 이제 다음 주 이번 주 12일이니까. 19일 저녁에 우리 첫 시간부터 이제 제가 말씀을 전하고 월요일 저녁, 주일 저녁, 월요일 저녁, 그다음 화요일 오전, 수요일 날 오전, 수요일 저녁, 이렇게 해서 우리가 이제 한 다섯 번 정도 우리가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갖게 되는데 이거 뭐 한국교회 꾸준하게 40년 이상을 이런 식으로 한 결 같이 있잖아요. 정말, 정말 한국교회뿐만 아니라 사랑의 교회 주신 그건 축복이라고 믿는 겁니다. 많은 교회가 소위 폴리티컬 커렉션 pc라는 말이 있는데요. 말은 그럴 듯하게 말은 뭐 먹지 말라고 뭐 이렇게 다 하는데 실제로 그 교회를 통하여 영혼 구원받고 세례 받고 학습 받고 하는 이런 사람들이 많지가 않아요. 많지가 않아요. 근데 실제로 우리 교회는 그런데도 불구하고 40년 이상을 한 결 같이 이 사역을 하게 한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그렇지 않습니까? 내일도 보니까 367명이 학습 세례를 받아요. 감사한 일 아니에요. 우리는 뭐든지 했다면 끝까지 있잖아요. 한 결 같이 오늘 이런 마음을 가지고 우리가 주님을 섬기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강단위에, 지금 성인들이 한3만 6천 명, 그다음에 우리 청년 대학생들하고 또 우리 주일학교 아이들이 태신자 카드 쓰는 사람들이 한 9천 명 이래가지고 총 몇 명이죠? 그렇죠? 그러니까 그냥 가만히 앉아서 듣는 분하고 생각을 하고 듣는 분하고 차이예요. 4만 5천 명의 우리 태신 자, 카드가 올라와 있어요. 명단에 나와 있습니다. 우리가 이 놓고 오늘 바울의 해석을 들었는데 정말 우리가 복음을 위하여 우리가 전력투구를 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생활을 가장 복되게 해 주시리라고 믿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그런 마음을 가지고 마음을 다하여 우리 물 건너 ‘생명줄 던져’라 한 번 더 생명줄 던져 후렴 한번 하고 같이 기도하겠습니다.

생명 다시 한 번 4만 5천 명 그리고 만 5천 명의 성도들이 눈물과 기도로 품어온 태신 자들이 작전 카드 써놓은 것이 있습니다. 작정 카드의 이름과 관계뿐만 아니라 절절한 기도의 제목들도 같이 들어 있습니다. 작정 자 사진 한번 띄워주시겠어요? 한번 보시겠어요? 저 명단으로 한번 보세요. 그리고 제가 관계를 살펴보니까 부모님들, 남동생, 친오빠, 직장 동료, 올케, 그다음에 강아지 미용실 원장, 그다음에 재부, 시어머니 친구, 아들딸까지, 우리 영 가족들이 살아가는 삶의 현장에서 영혼 구원을 위한 안타까움이 깊이 느껴지는 그런 분들이 다 나와 있어요. 그래서 우리 기도 제목도 간절해요. 뇌출혈로 쓰러진 남편 대신 일터로 나온 직장 동료가 있는데 생활이 힘듦에도 교회는 거부하고 있다는 거예요. 새 생명 축제에 나올 수 있는 믿음과 상황 여건을 주옵소서.

또 친구 남편이 폐암 사기로 고통 중에 있는데 부부가 함께 생명 세상에 나오가 하나님 만나게 해달라고 오빠가 건강과 경제적 문제로 힘들어하며 부모님과 사이가 좋지 않다고 그러길 제가 이런 거 다 읽어드리지 못하지만 오늘 날씨도 추운데 새벽에 달려온 여러분들 이런 기도 제목 다 있을 겁니다. 우리가 이런 기도할 때 하나님이 정말 기뻐하시리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제가 다음 주 19일 날 저녁에 제가 죽음의 문제, 삶과 죽음의 문제를 가지고 설교할 겁니다. 이 목회자가 이렇게 복음 설교하는 게 지금 제가 21년째 한 결 같이 쉬운 거 아닙니다. 그러니까 저도 오체투지해가지고 나자 엎드려가지고 주님 앞에 퍽퍽 기는 거예요. 하나님 한 영혼들이라도 주님 앞에 돌아오게 해달라고 저도 전력투구할 테니까 여러분도 전력 투구하셔가지고 다음 주 우리 새 생명 축제에 수많은 영혼들이 주님 앞에 돌아오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오늘 날씨도 추운데 새벽에 올라온 여러분들의 기도가 응답되기를 바라고 또 우리 sns 들어오시는 모든 분들도 마음을 같이 손을 다 이렇게 펼쳐가지고 우리 태신 자, 우리 작전 카드의 손을 다 펼쳐가지고 주여 오늘 말씀대로 구원의 은혜를 주옵소서. “구원의 은혜를 주옵소서. 새 생명의 정말 복음의 역사에 참여하여 수많은 영혼들이 주님 앞에 들어올 수 있도록 주여 구원의 달라.”고 기도합시다. 이번 새 생명 축제에 함께하시고 우리 강사님들을 축복하시고 또 우리 모든 성도들 모든 환경과 처지를 평탄하게 해달라고 여러분 이게 정말 주님이 기뻐하시는 거예요 뭘 가지고 주님이 기뻐하실까요? 마음을 다해가지고 주여 구원의 은혜를 다 두 번 크게 외치고 간절한 마음으로 오늘 새벽 새벽에 추운 날씨에도 나와 가지고 할 때 주님이 가장 기뻐할 거예요. 주의 구원은 두 번 크게 외치고 기도하겠습니다. 주여 구원의 은혜를 주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자비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45주년을 맞이하는 특별한 새 생명 축제 다음 주일부터 나흘간 지속되는 기간 가운데 성령의 강력한 역사를 허락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예비 된 자, 구원받을 자 한 명도 빠짐없이 복음의 역사 앞에 무릎 꿇고 새 생명을 얻는 영광스러운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모든 우리 성도, 기존 성도들은 삶의 첫 단추가 바로 깨어지게 하여 주시옵시고, 첫 단추가 바로 끼워질 때 나머지도 다 해결될 줄로 믿사옵고 특별히 우리 온 교회 1만 5천 명의 성도들이 태신 자를 작정하고 눈물 콧물로 주님 앞에 무릎 꿇고 기도할 때, 모든 전도 대상자들 올 수 있는 환경을 주시고 복음을 들을 귀를 주시옵시고, 주일 저녁부터 수요일까지 매일 매일 마다 말로 할 수 없는 기름부음의 역사, 새 생명의 역사, 변화의 역사 있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야말로 온 세상을 위하여 이 복음 전하라는 주제대로 그대로 순종하는 다음 주 한 주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특별히 강사님들 한 분 한 분 다 기억하여 주시옵시고, 생애 최고의 복음 선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를 위하여 우리 새 생명축제 준비팀들 다 한 분 한 분 평생을 복되게 해 주시길 원하고 아니 온 교우들을 그야말로 강력한 복음의 능력으로 무장시켜 주시옵소서. 할렐루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 받들어 간절히 기도 올리옵나이다.

▷기도제목
1. 첫 번째, 사랑의 교회 믿음의 사내가 기도의 지팡이를 높이들고 간절히 기도할 때 부활절에 품은 생명, 새 생명 축제에 추수하자. 119 한 사람이 한 사람을 구원합시다. 두 번 하겠습니다. 한 사람이 한 사람을 구원합시다. 한 번 더 한 사람이 한 사람을 구원합시다.

2. 두 번째, 2024학년도 대학 수학능력 시험을 앞둔 사랑의 교회 다음 세대가 하나님 나라의 꿈과 비전을 위해 영성과 야성, 실력과 겸손을 두루 갖춘 온전한 사명 자가 되어 이 시대에 글로벌 인재로 쓰임 받게 하옵소서.

3. 세 번째, 사랑의 교회와 사랑 글로벌 아카데미가 온전 론을 통해 한국교회와 세계 교회를 섬길 때 목자의 심정이 파도 치게 하사 한 영혼을 그리스도의 온전한 제자로 세우는 사명이 마침내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4. 네 번째, 내일 주일 예배에 선포되는 말씀과 세례식을 통해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격으로 가득하게 하사 우리의 남은 인생을 하나님께 감사로 올려드려 삶의 수많은 난제들이 해결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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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저녁기도회(주후 2023년 11월 8일)
제목: "내가 불 성곽이다"
말씀: 스가랴 2:5
찬양인도: 쉐키나(오준석 부목사님)

설교자: 유종성 부목사님
ㅡㅡㅡㅡㅡ

*스가랴 2:5,
5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불로 둘러싼 성곽이 되며 그 가운데에서 영광이 되리라.
-----

하나님 아버지 주님이 우리를 살리시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 인생을 은혜의 구름기둥과 진리의 불기둥으로 인도해 오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다가오는 수능의 불안도 있습니다. 갑작스러운 병마의 고통도 있습니다. 꺾인 마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꼭 끌어안아 주시고, 힘주시고 일으켜 주실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불성곽이 되어 주셔서 지키시고 보호해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오늘 이 시간은 “SaGA(사가) 일터 선교 아카데미”를 위해 1년 동안 축복하며 기도해 주신 성도님들께 감사 보고하는 시간으로 올려드립니다. 말씀과 일터 토크와 기도회 가운데 주님이 친히 말씀하여 주옵소서. 가정에서나 일터에서나 꼭 끌어안아주시고 가장 안전한 불성곽이 되어 주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스가랴 2:5,
5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불로 둘러싼 성곽이 되며 그 가운데에서 영광이 되리라.
-아멘. 감사의 계절인데요. 우리 자부에 한번 인사할까요? “옆에 앉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인사해보면 어떨까요? “옆에 앉아서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의 계절입니다. 오늘 성곽에 대해서 좀 나눠보려고 합니다. 성 성곽이란 왜적의 침입으로부터 인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서 쌓은 성벽과 그 부속 구조물을 말합니다. 성곽은 성이 있고 이제 성곽이 있습니다. 성곽은 성을 지키기 위해 둘러싼 벽을 말합니다. 안전을 위해서 성곽을 쌓는 것이죠. 자료를 보니까 재미있는 표현이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성곽의 나라래요. 이런 말 들어보셨나요? 남한에만 1,900여 개의 성곽이 있다고 합니다. 아마도 삼국 시대에 삼국 간의 치열한 전쟁의 영향이었던 것 같습니다. 수원 화성이라고 들어보셨나요? 네 5.7km의 성곽을 가지고 있는데요. 수원 화성은 300년의 역사를 가졌고 1997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답니다. 수원 화성의 성곽을 자세히 보면 돌의 크기를 규격화해서 안정감 있게 쌓았다고 합니다. 위쪽은 벽돌을 아래쪽은 즉 육면체로 다듬은 화강암을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화포의 강한 공격에도 쉽게 무너지지 않게 설계되었다고 합니다. 중국에는 뭐가 있죠? 만리장성, 장성이라고 부른대요. 이유는 만 리 만해도 성곽의 길이가 4천km인데요. 십리를 4km라고 하면 만 리, 하면 4천 킬로인가 봐요. 그런데 실제로는 6천 킬로라고도 하고 2만 킬로라고도 한 대요. 그래서 아마 말리 장성, 만 리라는 말을 뺀 것 같아요. 그래서 장성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이처럼 인간의 역사는 불안 속에서 성을 쌓고 그리고 성을 둘러싼 성곽을 쌓는 역사입니다. 그런데 성곽으로 둘러싸여 있는 성이 안전할까요? -이사야 38장 6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안전하지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사야 38장 6절 함께 읽습니다.

*이사야38:6,
6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져내겠고 내가 또 이 성을 보호하리라.
-인간은 안전을 위해 성을 쌓고 또 그 성을 둘러싼 성곽을 쌓습니다. 그러나 더 강한 적이 쳐들어오면 성곽도 무너지고 성도 파괴됩니다. 인간이 성도 쌓고 성곽도 쌓지만 성과 성곽을 보호하시는 분은 누구시라고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아멘. 그래서 하나님께서 ‘내가 이 성을 보호하리라’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불 성곽으로 우리를 지켜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제가 좋아하는 그림이 하나 있는데요. 그 그림은 제목이 ‘베스트 허버’라는 제목이에요. 그래서 이렇게 단선으로 그려져 있는데 두 사람이 깊이 따뜻한 포옹을 하는 그런 그림이거든요. 불로 둘러싼 성곽 그러면 그림이 그려지기도 하고 안 그려지기도 하는데 그냥 불러 둘러싼 성곽이 주님의 뜨거운 그냥 포옹이라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완전한 보호를 의미하는 거죠. 주님은 보호하시는 주님이신데요. 출애굽기 23장 20절을 보면 함께 읽어볼까요?

*출애굽기 23:20,
20 내가 사자를 네 앞서 보내어 길에서 너를 보호하여 너를 내가 예비한 곳에 이르게 하리니.

*신명기 32:10,
10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이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의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
-뭔가 꼭 끌어안아주시고 보호해 주시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습니까? 저만 그런 걸로 할게요. 우리 하나님은 우리는 잘 느끼지 못하지만 위험한 길이 나올 것 같으면 앞서 행하시며 보호하시고 예비한 곳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짐승의 위험이 있는 광야에서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의 눈동자같이 지켜주시는 분이십니다. 구약에서는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지키시고 인도해 주신다. 전에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구름기둥, 불기둥 그러면 저 위에 있는 거, 근데 꼭 끌어안는다 생각하니까 좀 가까이 느껴져요. 그리고 오늘의 표현은 불 성곽이 되어서 우리를 지키시고 인도해 주신다. 꼭 안아서 지키시고 인도해 주신다. 그런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불 성곽으로 지키시고 보호해 주시는 하나님 앞에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우리는 가정에서나 일터, 직장 사업장에서나 사람이 문제입니다. 사람으로 인한 염려 또 환경으로 인한 불안과 두려움에 둘러싸여 삽니다. 어떤 사람은 수원 화성처럼 5.7km의 걱정과 근심으로 자기 방어에 성곽을 쌓고 또 어떤 사람은 밤새도록 잠 못 들고 만 리에 이르는 염려와 불안의 성곽을 쌓으며 살아간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런 어려움들은 누구나에게 있는데요. 하나님 앞에서라는 의미의 라틴어 많이 들어보셨죠? 코람데오, 코람데오, 코람은 앞에서 면전에서라는 뜻이고, 데오는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오늘 말씀 스가랴 2장 5절과 연결하면 불 성곽이신 하나님의 보호 안에서 살자. 그렇게 연결을 할 수 있는데요. 그런데 여전히 사람으로 인해서 우리는 힘이 듭니다. 우리는 우리 주변 사람의 변화에 지나치게 예민하게 영향을 받고 살아갑니다. 사람 때문에 소화가 안 되고, 사람 때문에 머리가 아프고, 사람 때문에 가슴이 쓰리고 사람 때문에 죽고 살고, 사람 때문에 잠 못 들고, 사람 때문에 너무나 괴로워합니다.

코람데오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할 인간이 코람 호미니부스, 인간 앞에서 인간의 성곽을 의지하며 살려고 합니다. 코람데오 코람 호미니부스 이제 우리 사바 일터 선교 아카데미 이야기를 잠깐 해드리려고 합니다.


올해 3기 SaGA(사가) 일터 선교 아카데미 졸업을 앞둔 한 분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사가에 들어오기 전에는 일터가 서바이벌 하기 위해 마지못해 일하는 일터였다고 합니다. 일을 그만둘까 하는 생각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가 일터 교육을 통해서 우선순위가 바뀌었대요. 우선순위가 전에는 일, 가정, 교회, 일, 가정, 교회였는데 이제 바뀌었답니다. 교회, 가정, 일 그렇게 모든 일을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하니까 출근의 목적도 달라졌답니다. 출근하면서 오늘도 빛과 소금으로 살아야지 기회가 되면 복음을 전해야지 출근에 목적이 분명해졌다. 또 다른 분은 일상에서 분노가 늘 잠재해 있었는데 사가 강의를 들으면서 분노가 조절이 됐대요. 그래서 미웠던 사람들이 덜 미워지고 긍휼히 여기며 섬기고자 하는 마음이 생겼다고 합니다.

영역별 선교 전략 소그룹이라는 게 있습니다. 그 모임에서 직장에서 실천할 사항들을 정했나 봐요. 근데 세상에 회사에 일찍 가서 새벽 통성 기도하기로 정했나 봐요. 이런 분도 있어요. 그런데 그 이후로 변화가 생겼답니다. 부담이 가득했던 일들이 스르르 눈 녹듯이 해결되는 것을 경험했다. 못 믿는 분위기 하나님 앞에서 살 때 우선순위가 하나님으로 바뀔 때 삶과 환경이 바뀐다. 라고 하는 고백인데요. 또 한 분은 사과 교육 전에는 인생의 목표가 세상에서 잘 나가는 전문 경영인이 되겠다. 이런 포부를 가지고 있었대요. 근데 교육 후에는 성경적인 기업 경영을 하는 기업가가 되고 싶다. 이렇게 비전이 바뀌었다고 합니다. 코람 네 좀 늦게 나왔네요. ‘코람 호미니부스’, 그랬죠 사람 앞에서 우리는 사람 앞에서 사람의 성곽을 쌓으며 살아갑니다.

수원 화성처럼 5.7km의 성곽 또 만리장성처럼 긴 성곽, 즉 그 성곽이 하나님보다 더 안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겠죠. 그러나 오늘 하나님께서 스가랴서 2장 5절 말씀을 통해서,
*스가랴 2:5,
5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불로 둘러싼 성곽이 되며 그 가운데에서 영광이 되리라.
-내가 너의 불 성곽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 ‘너는 코람 호미니부스’ 가 아니라 코람데오, 불로 둘러싼 나의 성곽 안에서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불 성곽이 되어 주시기만 하면 천만인이 에워싼다 해도 결코 두렵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꽉 끌어안아 주신다는 것을 확신하기만 하면 결코 두렵지 않을 것입니다. 시편 3장 6절 말씀 함께 읽습니다.
*시편 3:6,
6 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짐 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무리합니다. 가정에서 일터에서 광야 길에서 천만인이 나를 에워싸고 천만 가지 걱정과 염려가 나를 두렵게 한다 해도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을 불 성곽으로 다 녹여주시고 틀어주실 줄 믿습니다.

♣요약
하나님께서 살리실 것을 믿고 꺾여 진 마음도 주님이 다시 펴주시고 다시 소망 주시고 일으켜 주심을 확신하며 가정에서 일터에서 코람데오가 아니라 5.7km의 염려 성각과 밤새 잠 못 드는 만리장성 같은 불안함으로 코람 호미니브스의 삶을 산 것을 회개해야 한다. 가정에서 일터에서 은혜의 구름기둥 진리의 불기둥 그리고 불 성곽으로 지키시고 보호해 주시는 주님만 의지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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