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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차 가을 글로벌 특별새벽부흥회(주후23년10월 19일) 넷째 날
제목: "네 눈을 열어라"
말씀: 열왕기하 6:15~17
 
설교자: 크리스찬 소니아 목사님(루마니아 호프교회-초빙)(통역-유이삭 부목사님)
마무리 기도: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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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6:15~17,
15 하나님의 사람의 사환이 일찍이 일어나서 나가보니 군사와 말과 병거가 성읍을 에워쌌는지라 그의 사환이 엘리사에게 말하되 아아, 내 주여 우리가 어찌하리이까 하니.
16 대답하되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그들과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 하고.
17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원하건대 그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청년의 눈을 여시매 그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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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찬 소니아 목사님(루마니아 호프교회-초빙)(통역-유이삭 부목사님)
 
-사랑의 교회 다시 돌아올 수 있게 되어서 참 감사합니다. 제가 신학교에서 배우기를 어떤 강사가 올 때에 그 강사에 대해서 충분히 설명을 해야 된다. 라고 배웠습니다. 오목사님 저 다시 초대해 주셔서 감사한다고 인사를 잘 하셨습니다. 저희가 함께 동역하는 구교육자 두 분과 제가 이번에 함께 오게 되었습니다. 라즈 반 그다음에 라벌트 부분인데요. 하나님께서 어떻게 사랑의 교회를 움직이시는지 참 이곳에 와서 많은 것을 봅니다. 이 사랑의 교회라는 것을 정말 기도하는 교회라는 것을 다시 깨닫게 되고요. 그런데 우리가 보통 기도를 할 때, 우리가 처한 상황에 대해서만 기도를 우리가 많이 하게 되죠. 하나님께서 이곳에 정말 성령님께서 운행하시고, 어떻게 보면 참 이 기도하기가 참 좋은 상황입니다. 이곳에서 만약에 나가신다면 그때는 우리가 계속 잘 기도를 할 수 있을까요? 정말 이 세상에 나의 이 세계가 무너진다고 생각했을 때, 그런 일이 닥쳤을 때 여러분들은 어떻게 기도하십니까? 외로우실 때 어떻게 어떤 기도가 나옵니까? 오늘 읽은 본문에 참 위대한 그런 한 스토리가 나옵니다.
 
아랍 왕왕이 이스라엘과 전쟁을 하기 위해서 태세를 갖추는 그런 모습이 나오죠? 그리고 그 당시에 이스라엘의 비밀공작 요원이라고 그래야 될까요? 굉장히 엄청난 사람이 있었습니다. 엘리사 선지자가 이스라엘 왕에게 아람 왕이 어떤 일을 계약을 계략을 계획하고 있는지 다 알려주는 거예요. 그래서 아람 왕을 굉장히 열 받게 합니다. 처음에는 아람 왕이 자기 부하들 중에서 나를 배반을 하고 이 스파이 짓을 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이것이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사가 바로 그 주인공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엘리사와 그 사환을 잡아오라고 강력한 군대를 아람 왕이 보내게 되죠. 사환이 아침에 일어나서 나가 보니까, 아람 왕이 보낸 엄청난 군대와 말과 또 병거가 있는 거예요. 그런 큰 군대가 자기네들을 휘어 싸고 있는데 하나님 어떻게 해야 됩니까? 어떻게 보면 멘붕이 온 거예요. 이 두려움에 휩싸이게 됩니다. 저녁에 잠이 들어 잤는데 아침에 일어났더니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되었어요. 공격받고 있어요.
 
코빗과 우리가 전쟁을 치렀는데 마치 우리가 4년 전에 어느 날 일어났더니 이런 전쟁이 일어났던 것과 같은 겁니다. 우리 동유럽도 수년 전에 우크라이나가 공격을 당했을 때,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났는데 새로운 현실이 우리에게 닥쳤습니다. 이스라엘에서 전쟁이 시작됐던 몇 주 전에도 우리에게 새로운 현실이 닥쳤습니다. 어떨 때는 여러분들 기도하시면서 내 삶이 완전히 무너지고 있구나! 라고 생각하실 거예요.
 
그리고 이 사원이 하나님과 같이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됩니까? 하나님 이런 기도가 나올 겁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지금 잃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내가 사랑하는 그 사람을 잃게 되었습니다. 나를 떠났습니다. 그리고 참 엄청난 안 좋은 뉴스만 매일매일 보도가 됩니다. 내가 배반을 당했습니다. 이런 상황이 닥쳐올 때 내 삶의 모든 것이 무너진다고 느끼기 쉽습니다. 와 이 공항에 왔을 때 정말 이 멘붕이 왔을 때. 두려움에 휩싸일 때 그분한테 어떻게 여러분들 격려하십니까? 보통 격려가 되는 그런 말을 해야 되죠.
 
엘리사가 자기 하인에게 물론 격려하다 는 말을 합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라고 얘기하죠. 정말 좋은 목회자와 같이 그런 격려가 되는 좋은 얘기를 합니다. 그런데 그다음에 하는 말이 굉장히 다른 부류의 말을 하게 됩니다. 이런 얘기를 합니다. 우리와 함께한 자가 그들과 함께한 자보다 많으니라. 엘리사가 좋은 목사였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 수학은 계산은 잘 못하는 사람인 것 같아요. 사환과 함께 딱 2명이거든요. 그들은? 말과 병거의 적에 지금 휩싸여 있는 그런 상황입니다. 그래서 이제 이 엘리사가 자기 하인을 위하여 사환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아마 두 명이 아마 여러분들과 같이 아마 새벽 기도를 했을 것 같아요. 두려운 사람을 위해서 여러분 어떻게 기도해 주시겠습니까? 보통 이런 기도를 하게 되죠? 주“님 제 사와가지 하인을 고쳐주시옵소서. 제 하인에게 사환에게 평강의 마음을 주옵소서. 우리를 보호하여 주옵소서.” 그런데 그런 일반적인 기도를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엘리사는 이 허를 찌르는 기도 반직관적인 기도를 그 자리에서 합니다.
 
여러분, “그의 영안을 문을 열어주옵소서! 그래서 그가 볼 수 있도록 열어주옵소서.” 이렇게 힘든 상황 속에서 위험한 상황 속에서 그런 기도가 나온다는 것은 정상이 아닙니다. “눈을 열어주옵소서.”
 
영안이 열리길 바랍니다. 당신의 눈이 열리길 바랍니다. ‘영안이 열리시기 바랍니다.’ 우리 영안이 열리는 것 기도할 때, 굉장히 중요합니다. 우리 마음의 문이 열리는 것, 어쨌든 우리는 수학적인 그런 계산기를 두드리는 기도할 필요가 없고요. 목회적인 기도를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어쩔 때는 우리가 정말 이 힘든 상황 속에서 허를 찌르는 기도를 해야 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엘리사가 강력하게 이제는 기도를 합니다. 아마 여러분들이 사환이었다면, 아마 그 기도가 끝났을 때 모든 적들이 사라졌을 거라. 라고 생각할 겁니다. 기도가 끝났을 때, 아마 주위에 포하고 있던 사람들은 한 명도 없었을 것이다. 근데 사환이 눈을 떴더니, 적군들은 그대로 있었어요. 뭐가 문제입니까? 엘리사가 이 기도를 하는 주님의 종이 아닙니까? 기도할 줄 모르는 사람입니까? 그는 기도할 줄 아는 사람이었고, 강력한 기도를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쩔 때는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의 우리를 휘어싸고 있는 모든 그런 문제들을 제거하지 않으실 때가 있어요. 하나님께서는 완전히 다른 허를 찌르는 일을 하십니다. 우리의 영안을 여시고 새로운 관점을 허락하십니다. 여러분, 이 시간에 여러분들의 영안을 여시길 바랍니다. 아멘. 하나님께서 이미 여러분에게 행하신 일들을 바라보십시오. 사랑의 교회에 눈을 여시길 바랍니다. 이미 여기 임했고, 성령이 임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용서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문제를 항상 제거해 주시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이 새로운 그런 관점을 허락하십니다. 이것은 믿음의 기도였습니다. 어쩔 때는 우리의 믿음이 우리 상황 자체를 바꿔버릴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믿음의 기도를 통하여 우리가 보는 관점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들 많이 기도하셨는데, 영혼의 눈을 열어보니, 문제가 그대로 있었던 적이 있으실 겁니다. 수많은 지역에 휩싸여 있는 때가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눈을 열었을 때 그 하늘의 작은 조각을 여러분들 볼 수 있었다면 내 눈 그 작은 조각을 이 천국의 조각이 여러분께 큰 평화, 평화를 가져다 준 적도 있었을 것입니다.
 
제가 루마니아 사람이라는 건 아마 여러분들 아실 겁니다. 수년 전에 루마니아의 한 아주 신실한 신자가 있었는데요. 그분은 굉장히 유명한 찬송가를 작곡하는 분이셨습니다. 찬송과 찬양을 많이 만드신 분이고요. 그 당시에 이제 공산주의가 이 루마니아를 지배하기 시작했을 때, 체포해서 감옥에 가둬왔습니다. ‘예수님을 찬양하는 곡을 더 이상 너는 쓸 수 없다.’ 라고 얘기했어요. 작업을 꼭 하길 원하면 ‘공산당을 찬양하는 그런 곡을 하라. 우리의 위대한 리더들을 위해서 작곡을 해라.’ 근데 그 정부를 향하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생명이 다하는 그 순간까지 나는 예수님을 찬양하는 찬송가를 작곡하리라.” 아멘. 이 죄명 하나만 가지고 수년 동안 또는 감옥살이를 해야만 했습니다. 그가 감옥에 갇혀 있을 때, 그에게 아무도 종이랑 펜을 주지 않았어요. 그런데 계속해서 작곡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영감을 하면서 작곡을 하면 그것을 계속 반복해서 부르면서 외우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까먹지 않도록 외우기 시작했습니다. 감옥에서 이제 나왔을 때, 그 기억하고 있던 모든 찬송을 종이에 적기 시작했어요. 361곡을, 361곡을 이제 찬송가집을 만들어 냅니다. 감옥에서, ‘옥중에 만든 찬송가’라는 이름을 붙였어요. 여기 나왔습니다. 루마니아 교회들, 또 저희 교회도 마찬가지고 아직도 그분이 작곡한 곡을 우리는 많이 부릅니다. 20년 전에 이분을 직접 만나 뵐 수 있는 그런 영광을 영광이 있었습니다. 사진을 보여주시면요 이분의 이름은 니콜라이 몰데뷰라는 분인데요. 제가 그분의 댁을 방문하는 그런 영광을 누렸습니다. 그 분의 거실에서 우리가 함께 찬양을 하고 기도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분도 기도할 때 정말 허를 찌르는 반직관적인 기도를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를 그때 고문했던 분들을 위해서 아직도 중보하고 있었어요. ‘하나님께서 그들도 축복하시사 구원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그리고 이 감옥에 있을 때 이 독방에 많이 갇혔다고 그래요. 여러 번, 독방은 컴컴합니다. 아무것도 볼 수 없게 다빛을 막아놓습니다. 창가를 다 가려놨는데, 그 어느 날 그 창가에 새 들어오는 이 파란색의 하늘 한 조각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나를 위한 큰 축복이었다.’ 그래서 그때 바로 그 조그만 이 하늘을 보면서 천국에 관한 찬송을 작곡을 했습니다. ‘이거는 마치 내가 이 천국을 바라보는 그런 느낌이었고, 그리고 이 천국이 나를 바라보는 느낌이었다.’ ‘작은 한 조각의 천국이 나의 독방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그런데 그 작은 이 파란 조각의 하늘을 보면서 하나님의 평안과 또 기쁨과 그런 안식이 이 감옥 안으로 들어오게 채우게 되었다.’
 
그리고 엘리사도 그런 작은 그런 조각의 천국을 바라보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들 지금 상황이 어떤지는 잘은 모르겠어요. 그런데 여러분들의 삶에서 하나님께서 새로운 관점을 허락하시길 바랍니다. 이 모든 문제 가운데 있어서 여러분들의 영안이 열리게 도와주시고, 그리고 작은 조각의 천국을 맛보시길 바랍니다. 이곳에 하나님께서 임재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곳에 와서 일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사가 이 엘리사가 기도하셨을 때 이미 하나님의 그 파워가 그곳에 임했고요. 하나님의 임재와 보호하심이 이미 그곳에 나타났습니다. 눈이 열려서 그걸 보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죠.
 
여러분, 여러분들이 오셔서 이 4시 반에 새벽에 기도하시면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하시는지 아십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의 연안을 열어주십니다. 지금 여러분께 지금 임한 이런 상황은 안 없어질지 몰라요. 그렇지만 오늘 여러분의 삶에 이 작은 조각의 천국을 내어주실 수 있습니다. 구원이 여기 있을 때, 구원이 여기 있을 때, 용서가 있을 때, 사랑이 있을 때 그리고 모든 나를 옥죄는 그로부터 우리가 자유로울 수 있고요. 하나님의 성령이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어쨌든 여러분 눈을 떴는데 아마 말과 병마가 불 말과 불 병거가 없다고 느껴질 때도 있을 거예요. 맞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그것보다 더 위대한 것을 보시는 것입니다.
 
제가 오늘 마지막 설교에 우리 사도바울의 말씀으로 마무리하기를 원합니다. 굉장히 파워풀한 그런 간증을 하는데요. 에베소서 1장 18-21절에 이렇게 얘기합니다.
 
*에베소서 1:18~21,
18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19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20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21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오늘날 우리에게 불 병거는 안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에게는 엄청난 특별한 그런 권능이 있습니다. 바로 그 엄청난 파워는 우리 예수 그리스도를 죽음에서 다시 부활하신 그러한 권능입니다. 그리고 하늘 보자 오른쪽에 예수님을 앉히신 그 엄청난 권능입니다. 그 어떤 세력도 이길 수 있는 능가할 수 있는 엄청난 권력입니다. 모든 세상을 지배하는 그런 능력과 맞대 해도 더 훨씬 큰 권능이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미래 온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셨다. 라고 말씀합니다.
 
오늘 우리가 우리 영안이 열리면 이 부활의 본능에 대해서 눈을 뜨게 됩니다. 우리가 눈을 뜰 때에 예수님께서 달리셨던 그 십자가를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우리가 오늘 영안을 열게 되면 우리 쪽에서 우리 쪽에 아군이신 우리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은 여기에서 여러분들도 구원하시길 원하고요. 함께하시길 원합니다. 문을 여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축복하시길 바랍니다.
 
요약
우리가 허를 찌르는 기도를 하면, 마귀를 이기는 선제공격을 하게 하심을 확신한다. 모든 문제들을 격파하고 기도의 주인공이 되어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기도를 해서 우리가 말하는 믿음 사실 보고를 하나님께 올려드리면 우리가 멘붕이 왔을 때. 두려움에 휩싸일 때, 우리 예수 그리스도를 죽음에서 다시 부활하신 그러한 권능이 우리를 영안을 열리게 하실 것이므로, 우리가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달리셨던 그 십자가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엘리사처럼 이 세상을 초월하는 영안의 눈을 열어서 세상에 가치를 두지 말고 온전한 제자로 살아내어야 한다.
-엘리사는 기도하는 자로서 영적인 세계를 바라본다. 반면 수종드는 자는 영의 세계를 보지 못하여 인간적인 생각으로 두려움에 빠졌다. 우리는 이 세상을 초월하는 영적인 세계를 추구해야 한다. 그것은 세상이 쓸모없다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가치를 두지 말라는 의미이다.












☆제21차 가을 글로벌 특별새벽부흥회(주후23년10월 19일) 넷째 날.
제목: "엘리야의 영성 엘리사의 영성"
말씀: 열왕기하 2:9~10
 
설교자: 백동조 목사님-초빙(목포사랑의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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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2:9~11,
9 건너매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나를 네게서 데려감을 당하기 전에 내가 네게 어떻게 할지를 구하라 엘리사가 이르되 당신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하소서 하는지라.
10 이르되 네가 어려운 일을 구하는도다 그러나 나를 네게서 데려가시는 것을 네가 보면 그 일이 네게 이루어지려니와 그렇지 아니하면 이루어지지 아니하리라 하고.
11 두 사람이 길을 가며 말하더니 불 수레와 불 말들이 두 사람을 갈라놓고 엘리야가 회오리바람으로 하늘로 올라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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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동조 목사님-초빙(목포사랑의 교회)
-제가 목포에서 왔죠? 따뜻한 곳이잖아요. 오늘 아침에 날씨 따뜻한 거 다 내 덕분입니다. 썰렁한 개그가 되지 않도록 저한테 해 주셔서 감사드리고요. 저는 성경 속에 예수, 또 2천 년 전에 유대 땅에 예수가 아니고요. 제게 있어서 예수님은 언제나 현재 시제입니다. 내 안에 계신 예수, 지금 나를 쓰시는 예수, 이번에 특새에 와가지고 왜 주님이 이 말씀을 준비토록 하셨는지를 알 수 있었어요. 항상 느끼는 점이 목회는 내가 한 것이 아니고 내 안에 계시는 예수님이 하시는구나! 그걸 느꼈어요. 여러분, 신앙생활 하면서 아주 못된 오해 한 가지를 하고 있는 것이 있다. 그게 뭐냐면, 나는 나 대(代)에 예수를 믿었기 때문에 나는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을 것이고, 산전수전(山戰水戰) 해성 전을 겪을 것이고, 굉장히 저주의 어두움 그림자에 눌려서 나는 헤매다가 이 세상을 끝낼 것이고, 내 자녀 대에 가서는 잘 되겠지, 이 생각을 오늘 이 시간에 삭제하셔야 돼요. 삭제하셔야 됩니다. 왜냐하면 이제 신앙 안에 금 수저는, 진짜 금 수저는 누구냐면요. 대부분의 신자들은 자기들 예수님을 만난 신앙의 일대 일대인 자신을 흙 수저라고 생각을 해요. 부모님의 배우에 기도도 있고 봉사와 헌신으로 쌓아놓은 것이 없으니까, 자기 자신의 신앙생활이 가시밭길일 거라고 이미 생각을 해요. 물론 부모님의 영적 유산을 기도와 헌신을 무시하는 건 결코 아닙니다. 그런데 그 유산이 미치는 영향력도 대단하지만요 그거보다 더 대단한 게 있어요. 그걸 소개하려고요.
 
부모님들의 놀라운 유산이 없는 사람도 신앙의 복된 유산을 물려받은 사람 못지않게 풍성한 법과 능력과 하나님의 임재를 누리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제가 이름은 밝히지 않겠습니다.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고 도박 중독자예요. 알코올 중독자 남편과 도박 중독자 남편에게서 시달리는 엄마는 빨리 세상을 떴습니다. 그리고 알코올 중독이고, 도박 중독이니까 자녀들을 전혀 돌보지 않은 아버지 그래서 그 사람은 형님 집에서 형수님 슬하에서 자랐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가 교회를 개척했을 때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몰렸습니다. 그가 고등학교를 설립했을 때, 처음에는 그 목사님이 그래요 돌대가리들이 앉는데 대그박 잡고 청대가리 만들어달라고 그랬더니 청계 명문 학교가 어 이때도 그리고 아버지 전도하고 형님들 다 전도하는 자가 되어요. 1대에요. 또 한 분이 있어요. 한 분이 아니라 엄청 많습니다.
 
충청도 양반 집안이고 장남예요. 이게 유교 집안에서 이분이 예수를 믿은 거예요. 그리고 신학을 해서 목사가 됐다. 그 부모를 위해 20년 기도해서 그 부분을 전도했습니다. 그분이 시무하는 인천의 모 교회는 그분이 목회할 때, 8만 성도까지 갔어요. 정말 저 같은 경우에도 어머님의 그 기도와 헌신의 유산이 저에겐 어마어마한 복이지만 그 복보다 그 영향력보다 더 센 게 있다는 걸 발견했어요. 그것이 뭔지 그것이 뭔지?
 
-엘리아 엘리사 하면, 여러분, 무슨 생각이 떠오르세요? 엘리아 아, 능력의 선지자, 엘리사 능력의 선지자 뭡니까? 엘리아와 엘리사와 선지자 아니면 하나님의 임재와 하나님이 그들을 통해서 이루시는 역사가 상상을 초월해요. 엄청난 역사에 그들에게 특별히 그들에게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주님이 그들을 쓰시는 놀라운 역사가 있게 되는 분명한 원인이 있겠어요? 없겠어요? 설교를 듣고 계십니까? 국민 여러분이 굉장히 중요한 설교에요. 너무너무 중요한 설교에요. 이거 선물하려고 온 거예요. 무엇이 엘리아를 만들고 무엇이 엘리아를 만들었느냐? 그리고 중요한 사실은 뭐냐면 오늘 이 시대에도 엘리야가 있어요. 강남에, 오늘 이 시대에도 엘리사가 있습니다. 저는 오정현 목사님을 보면 꼭 엘리사 같아요. 여러분 항상 같이 사니까 잘 모를 거예요. 찬양 인도하는 걸 보면 아니 저 나이 들어서도 청춘이에요. 저 양반 목도 늙지도 않아요. 보통 목부터 좀 늙어져 가는데, 아니 저 양반 몸은 늙지도 않아요. 정말 너무 멋진 거죠. 아멘. 아멘. 배후의 기도와 헌신보다 더 강력한 영향력을 끼치는 게 뭔가? 뭔가? 이걸 보면 오늘 9절 말씀을 보시면요. 오늘 9절 말씀을 보시면 엘리아가 엘리사한테 그래요. 내가 데려감을 당하기 전에 내가 너한테 뭘 해주면 좋겠느냐? 구하라고 해요. 구하라고 할 때 구하는 것이 뭡니까? 한글 못 읽으세요? 구하는 게 뭡니까? ‘당신 엘리야의 성령의 역사를’ 이 구절도요 굉장히 오해가 엄청 많은 구절이에요.
 
*열왕기하 2:9,
9 건너매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나를 네게서 데려감을 당하기 전에 내가 네게 어떻게 할지를 구하라 엘리사가 이르되 당신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하소서 하는지라.
이것을 대부분 갑절, 그러니까 나에게는 더 주세요. 이러고 양으로 생각을 해요. 그래서 칠 갑절, 욕심 엄청 많죠. 그것도 농담 안 돼요. 왜냐하면 그 뜻을 모르고 하니까 그래요. 그런데 중요한 게 뭐냐 하면은 뭘 갑절로 주라는 겁니까? 이게 중요한 거예요. 성령이 하시는 역사예요. 당신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 엘리야, 당신이 당신의 성령이, 성령이 지금 당신을 통해서 하시는 역사, 그 역사를 역사에 갖게 된다. 이 갑절, 이때 이 갑절의 의미가 뭐냐 이게 굉장히 중요해요. 이 갑절의 의미 신명기 21장 16-17절을 보세요.
 
*신명기 21:16~17,
16 자기의 소유를 그의 아들들에게 기업으로 나누는 날에 그 사랑을 받는 자의 아들을 장자로 삼아 참 장자 곧 미움을 받는 자의 아들보다 앞세우지 말고.
17 반드시 그 미움을 받는 자의 아들을 장자로 인정하여 자기의 소유에서 그에게는 두 몫을 줄 것이니 그는 자기의 기력의 시작이라 장자의 권리가 그에게 있음이니라.
-자기의 소유를 그 아들들에게 기업으로 나누는 날에 17절 보세요. 장자에게는 뭘 주죠? 두 목이어요. 갑자기 뜻이 뭐냐 하면 두 목입니다. 두목. 그러니까 당신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에 갑절 두목을 주십시오. 이 말이 바꾸어 말하면 ‘선지자님의 사역의 계승자가 되고 싶습니다.’ 뜻이 엘리아 선지자의 성령이 하시는 그 역사에 제가 그 역사 장자가 되고 싶습니다. 아멘입니까? 제가 장자가 되고 싶습니다.
 
둘째도 아니고 당신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에 제가 둘째도 아니고, 첫째가 되고 싶습니다. 이것이요. 오늘 설교는 11개에서 완전 세트 메뉴잖아요? 그러니까 이게 혀를 찌르는 기도에요. 국민 여러분, 아멘입니까? 최고의 기도예요. 그런데 그 사역의 이 갑절을, 갑절을 이제 성령이 하시는 역사 성령이 하시는 역사는 뭐냐 하면, 증인 되게 하는 일이고요. 그리고 불신자의 영혼과 예수를 한 몸 되게 하는 역사예요. 성령이 아니고는 예수와 하나 될 수가 없어요. 그리스도의 몸으로 성전으로 세워질 수가 없습니다. 바로 뭡니까? 성령이 하시는 역사는요 복음 사역이에요. 구원 사역입니다. 아멘입니까? 이게 이 얘기예요. 성령이 하시는 복음 사역에 제가 둘째도 아니고 제가 첫째 장자가 되고 싶습니다. 이것이 갑절의 의미예요. 그걸 구하니까 여러분 보세요. 그걸 구하니까 열왕기하 2장 10절에 엘리야가 뭐라고 말하냐면 그렇게 얘기해요.
 
*열왕기하 2:10,
10 이르되 네가 어려운 일을 구하는도다 그러나 나를 네게서 데려가시는 것을 네가 보면 그 일이 네게 이루어지려니와 그렇지 아니하면 이루어지지 아니하리라 하고.
-네가 참 어려운 일을 벌하는 사 여러분 엘리아 아시잖아요. 그 엘리야의 그 사역의 포인트가 뭐냐 하면은 열왕기상 18장 37절에 딱 이 사역이거든요.
 
*열왕기상 18:37,
37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에게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
-복음 사역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거고 그들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일이요. 이게 엘리야의 목적 가치였습니다. 엘리야가 이 땅에 존재하는 이유, 오직 예수님이 우리의 유일한 구주가 되시고, 그 예수 그리스도에게 백성들의 마음을 돌이키는 사역이에요. 아멘입니까? 근데 이 사역이 쉬워요 어려워요 어렵습니다. 바울과 아세라 그 아합과 이세벨과 싸워야 하고 너무너무 이 싸움이 쉬운 일이 아니에요. 그래서 깊은 광야로 들어가 하나님 나 죽고 싶습니다. 그런데 엘리사는요 엘리야 선지자를 보면서 그 복음 사역이 얼마나 가치 있고, 내 인생을 걸 만한 사역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엘리야 선지자는 내 사역의 계승자 둘째도 아니고 내가 첫째가 되고 싶다. 이런 목마름이 있었어요.
 
제 얘기를 해서 정말 죄송한데요. 저는 정말 촌놈이거든요. 그런데 이런 목마름이 있었어요. 설교를 잘 하는 목사님을 보면, 저분처럼, 저분의 영성을 내가 갖고 싶다. 라고 지금까지도 몸부림을 치고 있어요. 네, 저분의 음성을, 내가 갖고 싶은 사실 지금까지도 몸부림을 치고 있어요. 우리 교회도 부교역자가 많고 여기도 많을 겁니다. 모든 부교역자들이 다 다 엘리사의 마음을 갖고 있는 건 아니에요. 아무리 목사님은 선교 적 마인드가 결여 돼 있어, 이런 아주 나쁜 생각을 하고 있죠. 그런데 그게 나쁜 생각이었다는 것을 언제 아느냐며 그 사람 은퇴할 때쯤 되면 알아요. 와 내 신세 조져버렸구나. 아멘입니까? 그래서 제가 복음 사역에 장자권이 엘리야의 영성이고 엘리야의 영성이 그것만은 포기할 수 없습니다. 복음 사역에 저는 둘째도 아니고 첫째가 되겠습니다. 아멘입니까? 그 기도였습니다. 그 기도, 하나님은 그 사람의 생각을 보세요. 그래서 엘리아도요. 엘리아가 죽을 때, 아 죽지 않고 승천했죠. 실수! 엘리사가 그러잖아요.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 막 그러잖아요. 또 엘리사가 죽을 때 낙원으로 이민 갈 때 왕이 그러잖아요.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 이스라엘에 복음 사역의 장자, 그 목마름 내가 이 땅에 존재하는 이유가 복음 사역에 영혼 살리고, 영혼 복되게 하며 생명 사역이, 이것이 내가 이 땅에 존재해야 될 이유야. 이것이 내가 공부해야 될 이유야. 이것이 내가 직장 생활해야 될 이유야. 이것이 내가 건강 관리해야 될 이유야. 그 목적 가치에 사로잡혀 살아갈 때, 남다른 하나님의 임재가 있어요. 아멘입니까?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있어요. 아멘. 그리고 목회자뿐만 아니고 정치인이든 아니면 경제계 선교사든 정말 이 시대에 아버지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이 나라의 병거와 마병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엘리사가 이 은혜를 얼마나 갈망을 하고 있었는가를 보려면 11기상 19장 19절을 보면 알 수가 있는데요. 열왕기상 19장인데요. 열한기상 18장에 갈멜 산 전투가 벌어지고, 그다음에 기도에서 하늘 문이 열리고 비가 내리기를 시작을 하죠.
 
*열왕기상 19:18~19,
18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19 엘리야가 거기서 떠나 사밧의 아들 엘리사를 만나니 그가 열두 겨릿소를 앞세우고 밭을 가는데 자기는 열두째 겨릿소와 함께 있더라 엘리야가 그리로 건너가서 겉옷을 그의 위에 던졌더니
-그러니까 어쩝니까? 3년 6개월 동안 농사짓지 못하다가 이제 3년 6개월 만에 비가 내려서 이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기회가 왔어요. 그 기회가 왔을 때, 바로 엘리사가 열두 겨리의 소 열두 겨리의 소 여기 겨리라는 말은 쌍이라는, 쌍이라는 단어거든요. 근데 둘이 한 쌍인지 셋이 한 쌍인지는 그거는 몰라요. 12겨릿 소니까 12겨릿 소정도 되면요. 쟁기질을 할 때 경우기 선을 넘어 트랙타 파워예요. 설교를 들으면 생각 좀 하시면서 들어보세요. 그러니까 엘리사는 지주예요. 부자입니다. 경제적으로 강남 사람이에요. 아멘입니까? 그럴 때 엘리아가 겉옷을 던집니다. 이게 뭐냐 하면 사역으로의 부르심이에요. 부를 때 20절 보세요.
 
* 열왕기상 19: 20~21,
20 그가 소를 버리고 엘리야에게로 달려가서 이르되 청하건대 나를 내 부모와 입맞추게 하소서 그리한 후에 내가 당신을 따르리이다 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돌아가라 내가 네게 어떻게 행하였느냐 하니라.
21 엘리사가 그를 떠나 돌아가서 한 겨릿소를 가져다가 잡고 소의 기구를 불살라 그 고기를 삶아 백성에게 주어 먹게 하고 일어나 엘리야를 따르며 수종 들었더라.
-바로 가서 엘리야에게 엎드려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예!, 따르겠습니다. 제 부모님께 입 맞추고 오겠습니다. 그리고 12겨리 소에요. 12겨리 소, 중에 한 겨리를 잡아요. 그리고 댕기를 부서뜨리고 그리고 동네 사람들과 이렇게 송별 잔치를 합니다. 이게 뭡니까? 나는 다시는 옛 직업으로 돌아가지 않겠다. 이게 결단이에요. 그러면서 많은 선지 생도들 중에 이 목마름이 엘리사에게 있었어요. 나는 우리 스승의 사역의 둘째도 아니고 난 장자가 돼야 돼. 내가 첫 번째가 돼야 돼요. 아멘입니까? 여러분은 그렇게 되고 싶지 않으니까 아멘도 잘 안 하시고 그러시죠? 나는 이 자리에 앉아 계신 여러분 모두가 엘리사의 영성이 여러분 안에 있다면 하나님의 임재를 느낄 겁니다. 주님이 여러분을 쓰시고 계시면 느낄 거예요. 그리고 여러분 자녀를 낳아서 기르실 때요. 여러분 허를 찌르는 기도가 이 기도입니다. 내 아들 복음 사역의 장자로 세워주십시오. 둘째도 아니고 복음 사역의 장자로 세워주십시오. 여러분, 이 장자권이 얼마나 중요한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모델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 누구냐 하면은 야곱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기사를 읽으면서 야곱은 욕심 많고 거짓말 잘하니까, 아주 못된 사람이야. 그래서 욕심 욕심쟁이야. 막 그러면서 오해를 하는 경향이 있거든요. 그래서 그 과 하나를 보고 야곱의 전체를 오해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런데 야곱은 그런 인물이 아니에요. 야곱이 야곱의 장자 권에 대한 목마름을 갖는 것은 엘리사의 목마름과 동일합니다. 창세기 25장 31절부터 한번 같이 읽죠.
 
*창세기 25~34,
31 야곱이 이르되 형의 장자의 명분을 오늘 내게 팔라.
32 에서가 이르되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33 야곱이 이르되 오늘 내게 맹세하라 에서가 맹세하고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판지라
34 야곱이 떡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매 에서가 먹으며 마시고 일어나 갔으니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김이었더라.
-이게 여기서 두 아들이 나오죠? 에서는 장자의 명분을 아주 가볍게 여기고, 야곱은 장자의 명분에 목숨을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우리식으로 야곱을 오해하는 거예요. 이삭으로부터 아브라함의 유산 이삭이 물려받고, 이삭의 유산 지기가 다 먹어버리려고 저렇게 수작을 부리고 자빠져 있구나! 이렇게 오해를 해요. 그런데 여러분 보십시오. 아브라함의 유산이 이삭에게 갔고요. 이삭의 유산이요. 전부 에서에게 가. 그래서 나중에 야곱이 돌아오면서 뇌물을 준비하거든요. 그래서 창세기 3장 33장 9절에 보면 에서가 그래요.
 
*창세기 33:9,
9 에서가 이르되 내 동생아 내게 있는 것이 족하니 네 소유는 네게 두라.
-야곱이 그래요. 형님 형님을 위해서 이 업무를 준비했습니다. 이렇게 하니까 애서가요. 보세요. 굉장히 넉넉했거든요. ‘내 동생아 내게 있는 거, 내게 있는 거 그거 저게 만족하다니까, 네 소유는 너 가져.’ 이게 무슨 얘기인지 아시죠? 장자의 명분을 목숨 걸은 이유가 재산이 아니었어요. 야곱이 욕심 낸 장자 권은 물질적인 유산을 받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창세기 3장 15절 여인의 후손으로 오시는 메시아의 혈맥을 잇는 복음 사역의 장자였어요.
 
*창세기 3:15,
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혈맥을 잇는 복음 사역의 장자였어요. 아멘입니까? 그것을 귀하게 보신 하나님이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이사야 58장 13절에서 14절까지 이렇게 얘기해요.
 
*이사야 58:13~14,
13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하지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하게 여기고 네 길로 행하지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하지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14 네가 여호와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기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
-야곱의 기업으로 기리라 이것이 모든 사역의 장자로 기르리라 이 뜻이에요. 아멘입니까? 엘리야의 영성이 무엇입니까? 복음 사역의 장자 이었습니다. 엘리사의 갈망이 무엇입니까? 복음 사역의 장자 권이었습니다. 엘리야 선지자님의 복음 사역의 제가 승계자가 되고 싶습니다. 엘리야가 이어받은 장자 권은 아브라함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장자 권이었습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을 모두 복음 사역에 장자로 세우리라. 여러분 그 다짐 정말 중요합니다. 여러분 보세요. 아담의 큰아들이 가인이죠. 가인이죠, 복음 사역의 장자는 누굽니까? 가인이 아니에요. 아벨이었고 아벨 대신에 셋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낳은 큰아들 이름이 이스마엘이죠? 그리고 그다음에 낳은 아들이 이삭이잖아요. 누가 복음 사역의 장자죠? 이삭이에요. 이삭이 나오는 에서와 야곱 중에 복음 사역의 장자는 누굽니까? 야곱이에요. 가만히 보세요. 복음 사역의 장자가 아니면요. 이스마엘이 아브라함과 관계가 있나요? 에서가 이삭과 관계가 있나요? 말 좀 해보세요. 여러분, 지금 많은 교회 학교 출석률을 보면요. 유년부 빵빵해요. 초등부 빵빵합니다. 중등부 빵빵 고등부 팍 쪼그라들어요. 왜 그런지 아세요? 야 대학 가서 신앙생활 열심히 해! 들어갔다. 여러분 이거요 대학 가면 신앙생활 잘합니까? 국민 여러분 자녀들에게 절대 해서는 안 될 말이에요. 너 대학 가서 아침 신앙생활하고 학원가 정말 제가 하고 싶지 않은데 내가 꼭 하고 싶은 말이 뭐냐 하면 입을 찢으시오. 진짜 내가 하고 싶지 않은데요. 여러분 유대인의 자녀 교육에 대해서 더 많이 신경 쓰고 목회에 적용하고 있는데요. 유태인들은요 학교 공부 오전에 오전 시간에는 토론하고 탈무드만 가르쳐요. 그리고 예시바라는 유태인들 도서관에는요. 항상 토론하게 돼 있고 토론 주제가 모세 5경과 탈무드에요. 그리고 바벨론에 의해서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진 다음에 그들은 말씀을 묵상하고 이렇게 공부하는 것으로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것으로 알았어요. 지금까지 그래요. 그러니까 그들은 오전에 가장 노른자위 시간에는 하나님의 말씀과 탈무드만만 배워요. 그리고 학과 공부는 오후에만 합니다. 그래도 하바드 학생들 중에요 30%가 유대인이고요. 중국 일본 한국인이 4.5%밖에 안 돼요.
 
제가 무슨 말씀하시는지 아시겠어요? 나는 저거 먹고 살았는데요. 우리 아이들 주일 낮에도 막 저녁까지 막 그렇게 하는데요. 우리 아이들이 그래요. 그냥 토요일하고 주일은 그냥 마음껏 찬양하고 은혜 받아야 돼요. 여러분, 참 그 아이들이 믿음이 막 자라다가, 야 대학 가서 해! 그러면 완전히 주저앉을 수가 있어요. 에서 만들 수 있습니다. 믿음이 자랄 때 아름답게 이제 키워야 되는데요. 아멘입니까? 오늘 설교는요. 시간 돼서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다음 설교는 나중에 기회가 되면 또 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멘! 아멘! 저는 여러분에게 이렇게 설교는 아무리 은혜로워도요 끝날 때가 제일 은혜스럽거든요. “하나님, 내가 복음 사역의 둘째도 아니고 첫째가 되기를 원합니다. 주여 내 아들과 내 딸이 복음 사역의 장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예수의 피가 흐르기를 원합니다. 성령이 하시는 역사의 장자 권을 나에게 주시옵소서. 내 아들에게 주시옵소서. 사랑의 교회 주시옵소서. 특새에 함께 참여하는 모든 교회에 이 은혜 허락해 주옵소서. 예수니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요약
우리는 성령이 하시는 복음의 장자권이 되기를 간구하며 영혼을 살리는 생명 사역의 계승자가 되어야 한다. 이제 성령이 하시는 역사, 증인이 되어 불신자의 영혼과 예수를 한 몸 되게 하는 역사를 체험하고 실천해야 한다. 성령이 하시는 복음 사역에 제가 둘째도 아니고 제가 첫째 장자가 되기를 갈망하는 엘시사 같은 성령이 우리에게 임해서 우리의 자녀들도 주님 사역을 잘 가르치고 훈련되어서 주님의 혈맥을 잇는 장자 권을 차지하는 은혜가 되기를 소망한다.
-엘리사는 엘리야에게 갑절의 영감을 구했다. 그의 요구는 더 위대하기를 구한 것이 아니라 엘리야를 따를 만한 후계자가 되기를 원한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구하기를 원하신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가장 좋은 은사를 사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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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3년 10월 08일)
제목: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말씀: 학개 2:4~19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1부)
대표기도: 김대규 부목사님, 노영훈 장로님, 김시현 학생
사회: 천동원 부목사님(1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ㅡㅡㅡㅡㅡ

*학개 2:4~19,
4 그러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스룹바벨아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땅 모든 백성아 스스로 굳세게 하여 일할지어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5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내가 너희와 언약한 말과 나의 영이 계속하여 너희 가운데에 머물러 있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6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조금 있으면 내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킬 것이요.
7 또한 모든 나라를 진동시킬 것이며 모든 나라의 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이 성전에 영광이 충만하게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8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9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 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10 다리오 왕 제이년 아홉째 달 이십사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11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는 제사장에게 율법에 대하여 물어 이르기를.
12 사람이 옷자락에 거룩한 고기를 쌌는데 그 옷자락이 만일 떡에나 국에나 포도주에나 기름에나 다른 음식물에 닿았으면 그것이 성물이 되겠느냐 하라 학개가 물으매 제사장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아니니라. 하는지라.
13 학개가 이르되 시체를 만져서 부정하여진 자가 만일 그것들 가운데 하나를 만지면 그것이 부정하겠느냐 하니 제사장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부정하리라 하더라.
14 이에 학개가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에 내 앞에서 이 백성이 그러하고 이 나라가 그러하고 그들의 손의 모든 일도 그러하고 그들이 거기에서 드리는 것도 부정하니라.
15 이제 원하건대 너희는 오늘부터 이전 곧 여호와의 전에 돌이 돌 위에 놓이지 아니하였던 때를 기억하라.
16 그 때에는 이십 고르 곡식 더미에 이른즉 십 고르 뿐이었고 포도즙 틀에 오십 고르를 길으러 이른즉 이십 고르 뿐이었었느니라.
17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희 손으로 지은 모든 일에 곡식을 마르게 하는 재앙과 깜부기 재앙과 우박으로 쳤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이키지 아니하였느니라.
18 너희는 오늘 이전을 기억하라 아홉째 달 이십사일 곧 여호와의 성전 지대를 쌓던 날부터 기억하여 보라.
19 곡식 종자가 아직도 창고에 있느냐 포도나무, 무화과나무, 석류나무, 감람나무에 열매가 맺지 못하였느니라 그러나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
ㅡㅡㅡㅡㅡㅡ

-78년도 우리 교회가 시작할 때, 강남구 도곡동에 이는 장화가 없으면 걸을 수 없는 곳이었고 그런 비가 오면 질척거리는 그 지역에서 시작해가지고, 2023년 45년이 될 때까지 주님의 기쁨과 진리의 복음을 인도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정말 뿐만 아니라 코로나에 강을 지나면서 한국교회도 지켜주심을 찬양합니다.

우리 오늘은 기쁘고 감사드리니까 “45주년을 축하합니다. 45년을 축하드립니다.” “45주년을 축하합니다.” 서로 하세요. “Congratulations on your 45th anniversary!” 우리 교회 45주년을 축하합니다. 진리의 말씀을 깨달으면요 피곤하지가 않아요. 다시 뭘 깨달으면요. 진리의 말씀...

오늘 본문 5절에 보니까 뭐라고 나오는가 하면

*학개 2:5,
5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내가 너희와 언약한 말과 나의 영이 계속하여 너희 가운데에 머물러 있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하게 하실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출애굽기 19장에 보면,

*출애굽기 19:6,
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에게도 45주년을 맞이한 저희 성도들에게도 동일하게 주시면 음성이 되는 것이에요. 예수님 믿은 사람들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예수님 믿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근데 예수 믿고 난 다음에 우리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뭐냐 하면,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내 뜻을 하나님 뜻이라고 의뢰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들은 마태, 마가, 누가 복음이 있는데 ‘내가 복음’도 있어요. 그러니까 내 뜻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오해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내 평생의 사명과 비전으로 알고 그 뜻을 발견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당연한 것입니다. 가장 이건 예수의 삶에 있어 가장 소중한 것이다. 근데 이제 문제는 뭐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제 이걸 하나님께서 이제 깨닫게 하시고 계속 이 사명을 주시는 거예요. 그런데 이 사명을 잘 실천할 때도 있고 또 불순종할 때도 있고 다 이런 과정들을 거치는데, 다시오 너희가 내게 내 뭐가 되라고요 제사장! 뭐가 되라고요? 거룩한 백성이 되라! 고 한마디로 말하면 너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복을 받으라는 거 너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아픈 것들이 처리되고 너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치유를 받아야 한다. 라는 것이에요. 우리는 겉으로 볼 때 이 땅에서 우리 한 몸 가누기도 힘들다. 이렇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주님은 오늘 이 자리에 계시는 45주년을 맞이하는 우리 모든 성도들에게, 우리 사랑의 교회 성도들 때문에 땅의 모든 족속의 복을 받으라고 말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이제 우리에게는 사명이 있는데, 어떨 때는 순종할 때도 있고 불순종할 때도 있고 그랬어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사명을 실천하는 데 있어가지고 불순종을 했어요. 우상숭배와 불순종을 했어요. 그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이런 말씀을 했어요. 우상숭배하고, 세속화되고, 잘못되어 부렸을 때 하나님의 이름이 더러워졌다. 에스겔서에 보면 하나님의 이름이 더러워졌다.

*에스걸 36:20,
20 그들이 이른바 그 여러 나라에서 내 거룩한 이름이 그들로 말미암아 더러워졌나니 곧 사람들이 그들을 가리켜 이르기를 이들은 여호와의 백성이라도 여호와의 땅에서 떠난 자라 하였음이라.
내 거룩한 이름이 그들로 말미암아 더러워졌어요. 또 하나는 하나님께서 모든 족속에게 복의 근원이 되라 제사장나라가 되어라. 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그걸 실천 안 하니까, 요나 보고 니느웨로 가가지고 복음 전하라고 그랬는데 요나가 ‘나는 못합니다.’ 나하고 체질이 안 맞습니다. 뭐 맨날 원수 같은 그런 나를 안 봤습니다. 그래야 도망가 버리니까 니느웨로 가라고 그랬는데 다시 도망가 버리니까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하나님의 이름이 감추어진 것이에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 제사장 나라가 되고 거룩한 백성이 되라고 그러는데 우리가 그걸 실천 못하면 하나님 이름이 더러워지고 하나님 이름이 갖추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구약 전체를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 백성답게 살도록 하나님은 항상 두 가지 사역을 통하여 우리를 도전하시고 우리를 새롭게 하시고 우리를 성숙시켜주시는 것이에요. 두 가지가 뭐냐 하나는 신과 정체의 명령 하나는 ⓵선지자적 사역을 통해, 또 하나는 ⓶제사장적 사역을 통하여 제사장들 사역을 통하여 성도들을 위로하시고, 그다음에 세워주시고, 양육하시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무장시켜 주시고 그런데 우리가 언제까지 위로받고 언제까지 우리가 상담을 해야 됩니까? 중요한 것은 하나님 일을 감당을 해야 되는데 그걸 잘못할 때는 막 뭐라고 그러시고, 채찍질도 하시고, 도전도 하시고, 깨닫기도 하시고 그래서

오늘 학개서 이 본문은 잘 아시는 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스룹바벨 성전, 제2의 성전을 짓는데 이 제2의 성전이 겉으로 볼 때는 어마어마하게 초라해 보였어요. 왜 제1의 성전을 보았던 사람들이 볼 때는 너무나 오늘도 여기 보니까 몇 절입니까? “너희 뒤에 있는 산에 있는 나무를 가져다가 산에 있는 나무를 가져다가 성전을 지으라.”고 그랬어요. 그런데 백향목을 가지고 예루살렘 성전을 아름답게 지었던 사람들의 입장에서 볼 때는 뒷산에 있는 나무 가지를 짓는 이 초한 성전을 앞에 놓고 이거 뭐 되겠나? 그런 식으로 마음을 같이 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두 가지 소위 선지자적 사역과 제사자장 세력 이 두 가지를 가지고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난 아니 사랑의 교회를 주신 여러분 각자 무형 교회,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들인데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편을 들어주시는 것이에요. 다시요 진리를 깨달으면 뭐 하잖아요 피곤하잖아요. 몸은 좀 피곤할지 모르지만 진리를 깨달으면 피곤하지 않아요. 주님이 먼저 우리에게 오늘 도전을 하십니다. 선지자적 도전을 하십니다. 오늘 학개서를 통해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I. 첫 번째 선지자적 사역.
-오늘 보니까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본문 백성들이 고향으로 돌아와서 불순종에서 문제가 생겼는데 처음에 열심히 성전 건축하다가 나중에 중단돼 16년 동안 그냥 16년이 지나가 버렸어요. 하나님께서는 단순히 눈에 보이는 성전 짓는 것 정도가 아니라 이 땅을 향한 제사장 나라가 되고 축복의 근원이 되라. 거룩한 백성이 되라. 그걸 까먹어버리고 그냥 자기 이익에 빠져서, 자기 집은 잘 짓고, 자기 집은 뭐 이렇게 멋지게 하는데 하나님의 집은 황폐하기 방치를 한 거예요. 그러니까 무슨 꼴이나 선지자들이 보존하는 거야 9절은 뭘로 보존하는가? 이렇게 합니다.

*학개 1:6,
6 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확이 적으며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꾼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
-내가 불어버렸어. 농사를 지어도 얼마 거두지 못하고, 그리고 그나마 수확한 것을 집에 가져가도 그것을 하나님들한테 불어버리셨잖아요. 그리고 놀라운 말씀 1장 학교서 1장 6절에 놀라운 말씀에 도전하신다. 주님이 오늘 강력하게 도전을 하시는 거예요. 뭐라고 말씀하시니까 너희들은 사명 잃어버리고 하나님이 주신 사명 던져버리면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 많이 떨어질지라도 소화가 없다. 먹을지라도 배부름이 없다.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다. 사실을 받아도 이제 뒤에 그것을 구멍 뚫어진 선대에 넣음이 되느니라. 아무리 벌고 애써도 결국 나중에는 다 그 지갑이 다 부러져버린다. 강력한 선지자적 도전입니다. 삶의 씨앗을 뿌리고, 먹고 마시고, 옷 입고, 돈벌이하느라고 전념하더라도 나중에 다 구멍 뚫어진 선재가 될 것이다. 우리 가 오늘 그리스도의 몸이 성전인데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주시는 사명을 무시하고 일시적으로 세상이 주는 평안과 안정과 즐거움 거기에다가 물을 보다가 나중에 무슨 일이 벌어질까? 좌절과 허만 남는 거예요. 아무리 인생이 아등바등 애를 쓴다 할지라도 허술함과 좌절과 불만족이 계속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일이 교회 안에 얼마나 많습니까? 예수를 믿어도 주님이 주신 사명과 영광이 동떨어져 있다가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는 것, 딱 신앙 양심에 비춰 가지고 이거 안 된대 안 되는데 일을 자꾸 하다 보면 무슨 일이 벌어집니까? 하나님의 은혜에 감추어지고 하나님의 더러워지게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집니까? 인생에 구멍 뚫린 전대가 된다는 것이에요. 우리가 애쓰고 수고하고 고생하고 전력투구한데도 남는 것이 없는 거예요. 엉뚱한 데 에너지와 땀과 수고가 다 낭비되는 것입니다.

오늘 45주년을 맞이하여 우리의 마음에 선지자들 도전을 받는데, 하나님 우리의 남은 인생이 구멍 뚫린 존재가 되지 말게 하여 주십시오. 제가 이 말씀드리면 강남에 잘 나가는 사람 얼마나 많으냐고 우리처럼 하나님 안 섬겨도 다 잘 나가고 백도 들여가면서 폼 잡고 말이죠. 잘난 사람 많아요. 그런 얘기합니다. NO! 그거는 사생아에요. 믿지 않는 사람들이 살라 그냥 놔두는 건데 하나님이 알아서 하시는 것이고 그건 너무 슬퍼할 게 없다. 이 말이 히브리서 12장 8절에 이런 거 나와 있잖아요? 다 같이요.

*히브리서 12:8,
8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우리가 진실 된 하나님의 자녀라면 잘못된 길로 가고 있고, 그다음 우리가 하나님의 사명을 실천하지 않으면 우리의 삶은 구멍이 뚫린 전대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들은 불신자들은 자기 그 세계에 나는 것이지만 하나님의 자녀는 내가 어렵고, 손해를 보고 구멍 뚫린 전대가 되고 어려움을 겪으면 내가 왜 오늘 구멍 뚫린 전대가 되었나? 하나님이 나에게는 사명을 주셨는데 오늘 내가 뭐 하고 있는가? 나만 생각하다가, 여기에 나온 나만 좋은 집에 살다가, 좋게 말하면 내 생각만 하다가, 하나님이 하라고 하시는 거 잃어버린 게 아닌 것 아닌지요? 엉뚱한데다가 에너지 다 쏟아버리고 나중에 남는 것 없는 비틀 소리가 난다면 얼마나 안타깝겠어요? 21세기 하나님이 우리에게 사명을 주셨지만 하나님의 영광과 사명을 위해 제대로 쓰지 못하기 때문에 전대에 구멍이 뚫린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아니 어디서 새어나가는지도 모르게 빠져나온 것들이 많이 있어요. 그래서 이렇게 제가 오늘 45절을 맞이하여 제가 다시 한 번 마음속으로 다짐하면서,

사랑하는 영 가족 여러분, 사명의 구멍이 나면, 전대의 구멍이 나는 것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전대에 구멍이 나면 사명에 난 구멍부터 먼저 메꾸도록 은혜를 주시기를 바라는 것이 따라 가겠습니다.

“사명의 구멍이 나면, 전대에 구멍이 난다.”
-이 45주년을 맞이하여 저와 여러분에게 다시 한 번 하나님 주신 사명의 구멍이 난 게 있으면 회복하고, 전대의 구멍을 회복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그래서 오늘 학계서 1장 5절에 보니까

*학개 1:5,
5 그러므로 이제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니 너희는 너희의 행위를 살필지니라.
-그리고 그 학개서 1장 8절에,

*학개 1:8,
8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성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것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겉으로 나오는 21세기 우리 집으로 보면 겉으로는 성전 건축에 대한 얘기 같지만 사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여러분들의 인생과 사명의 집을 다시 재건축하라는 것이에요. 45주년을 맞이하여 하나님의 사랑의 교회, 모든 성도들, 중직 자들은 우리의 삶을 인생의 제 궤도에 올려놓기를 바랍니다. 다시 한 번 우리의 삶을 올바른 변화에 올려놓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 제 궤도에 올려놓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이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목도하게 될 것입니다.

두 번째로 주님은 우리의 도전만 하시니까 이제 구멍 뚫린 전주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선지자적 사역을 통하여 도전하셨다면 이제는 제사장적 사역을 위하여 주님이 말씀하시

II. 두 번째, 제사장적 사역.
-오늘 놀라운 말씀들이 많이 있습니다. 많이 있는데 오늘 본문에서는 주님께서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 저 19절 뒤에 오늘부터 내가 너에게 복을 주리라.

*학개 2:9b,
9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 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시대가 중요합니다. 오늘부터 45주년 이후부터 오늘 본격적인 복을 너희에게 허락하여 주시리라. 우리 하나님은 목자의 심정을 가지시고, 선지자적 도전도 아시지만 제사장적 위로도 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가 고통당하고 억눌리고 힘겨워하는 것, 하나님 기뻐하지 않습니다. 하늘의 풍성한 은혜를 받아 누리도록 도와주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줄로 믿습니다. 지금 불순종으로 인해서 고난과 재앙 중에 있는 백성들을 하나님 일깨우시길 원합니다. 그래갖고 보면 나이 많은 선지자 학개와 젊은 선지자 스가랴를 통하여 팀웍을 가지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로하고 새로운 것을 세워주시기를 원하는 것이에요.

제가 참 오늘 본문을 1장 2장을 이제 다 공부하신 것이에요. 이제 오늘 시간을 이걸 학개를 통하여 제가 이제 저는 목표가 우리 성도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제가 사역하는 동안 다 강의하는 것이 목표예요. 그런데 오늘 학개서는 오늘 이걸로 끝이에요. 아시겠습니까? 섭섭하지만 할 수 없어요.
오늘 학개서 1장 14절 너무 제가 감사하는 구절입니다.

*학개 1:14,
14 여호와께서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의 마음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마음과 남은 모든 백성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들이 와서 만군의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의 전 공사를 하였으니.
-할렐루야! 도전마토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의 전 공사를 이제 시작하는데 어떻게 해야 되느냐,모든 백성의 마음을 뭐하게 하심에?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와와 총독과 대제사장의 마음을 모으고 선지자 학개와 스가랴가 마음을 모으고 이렇게 해가지고 스룹바벨의 성전을 짓는데, 모든 백성의 마음이 감동되었다. 여기 마음이란 말은 그냥 마음이 아니라, 다 해가지고 하나님의 영이 창세기 1장에 보면 하나님의 영이 수면 위로 올라가셨다. 하나님의 영을 말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의 영이 감동되었다. 이거 우리의 영이 잠에서 깨어났다. 그런데 감동되었다는 말이 전에 우리 개역에는 흥분되었다는 말씀을 들으니까 성도들의 마음이 흥분되는 거야. 성도들의 마음이 감동되는 거예요. 성도들의 마음이 녹여지는 것이에요. 잠에서 깨어나는 것이 우리 식으로 말하면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주신 그 비전을 잉태케 하신 그 비전을 듣고, 흥분되고, 감동되고 마음이 깨어나는 것이에요. 영적으로 축복이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성전을 건축하기 시작 그리고 오늘 4절에 보니까 뭐라고 나와 있는가? 오늘 4절에 보면,

*학개 2:4,
4 그러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스룹바벨아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땅 모든 백성아 스스로 굳세게 하여 일 할지어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땅의 모든 백성은 스스로 뭐예요 다시 한 번 안 된다 안 된다. 그러지 말고 살아있길 모든 중직 자들아 어떻게 할지어다. “굳세게 할지어다.” 모든 젊은이들이 어떻게 할 지어다? 다시 한 번 사랑의 교회 모두 우리 자녀들 모든 어린아이 어른까지 다시 한 번 마음을 어떻게 해요? 굳세게 할지어다. 한국교회 성도들이요. 어떻게 해요? 굳세게 할지어다. 이게 마음의 감동이 되어서 이 영적으로 잠에서 깨어나지고, 깨닫고, 굳세게 되어야 한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잠시 넘어져도 괜찮습니다. 베드로도 그랬고, 오늘 본문에 5만여 명의 남은 자들도 그랬습니다. 넘어졌을 때 굳세게 라는 주님의 음성 듣고 다시 일어서면 되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의 능력은 저 사생아들, 예수 믿지 안 믿는 사람들, 하나님 앞에 한 번도 순종해본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평생 누릴 수 없는 하나님의 강력한 복일 것이다. 다시 사랑의 모든 영 가족들이 어떻게 할지어다. 굳세게 할지어다. 그 이유는 뭐냐? 내가 너와 함께하기 때문에, 그리고 19절 다시 한 번 뒤에

오늘부터 내가 너희 에게 뭘 주신다고요? 사람들은 이제 기복주의를 비판하는데 기복주의는 비판받는 것은 내가 앙랑거리는 것이 기복주의예요. 그런데 오늘 복을 주시는 주체가 누구세요? 하나님이세요. 그냥 굳세게 하고, 오늘부터 내가 너에게 복을 주리라. 그러면요 그냥 받는 게 좋아요. 하나님이 주신 복을 내가 받겠다고 결심을 해야 되는 것이죠. 내가 어떻게 내가 무슨, 하나님이 주시면 복이 있는 것이에요. 지난 45년 사랑의 교회를 돌아보면, 하나님이 주신 복으로 꽉 차 있어요. 수많은, 수많은 이 말로도 할 수 없는 하나님의 복을 예배 때마다, 내가 성선도 집회 때마다, 제도를 할 때마다 중요한 우리의 사역 끝날 때마다, 하나님이 예배하신 놀라운 복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에요. 가정 가정마다 모든 성도들, 토 달지 말고, 묻지도 말고, 따지지도 말고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세상 적으로 무슨 체면에 차리지 말고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그냥 받으면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굳세게 가지고 마음을 같이하여 16년 동안 이 미루어진 건축이 그냥 함께하기 때문에 그냥 하다가 만 건축이 아니라, 오늘 이 말씀 듣고 정신 바짝 차리고 4년 만에 건축한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오늘 놀라운 말씀,

*학개 2:7,
7 또한 모든 나라를 진동시킬 것이며 모든 나라의 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이 성전에 영광이 충만하게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9절에 뭐라고 돼 있습니까? 이 성전이 뭐예요

*학개 2:9,
9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 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너무 놀랍지 않습니까? 하나님 은혜는 지금보다 더 나중에 영광이 될 줄 믿습니다. 늘 말씀드리지만 5년 10년 뒤가 더 지금보다 더 좋은 교회가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얘기를 하면 목사님들은 여건이 좋지 않고, 나의 형편이 안 되고 첫 번째 성전보다 너무 초라하고 되겠냐? 하나님은 거꾸로 말씀하시는 거에요. 여건이 좋지 못하고, 농사가 안 되어서 하나님 일을 못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지 않기 때문에, 재난이 없다는 것이에요. 사람들은 불경기이다. 불경기이다. 불경기이다. 그런 것입니다. 저는요 목회하면서 제가 지난 40여 년은 불경기가 아닌 때가 거의 없었어요. 그리고 한국이 불경기이면 미국이 불경기고, 미국이 불경기면 한국이 불경이고, 하여튼 어쨌든 계속 불경기였습니다. 근데 19절에 “오늘부터 내가 너에게 복을 주리라.”

*학개 2:9,
9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 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오늘부터 시대가 놀랍습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는 시대가 오늘부터입니다. 시간들을 정확하게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어제까지 없었던 축복이 오늘부터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가장 강력한 복은 뭐냐?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그 결과 정말 놀라운 말씀 6절과 7절 놀라운 말씀 다 같이 6절 6절절 2절 함께 읽겠습니다.

*학개 2:6~7,
6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조금 있으면 내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킬 것이요.
7 또한 모든 나라를 진동시킬 것이며 모든 나라의 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이 성전에 영광이 충만하게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제가 이 45주년을 돌이켜보면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가운데, 뭐가 진짜 복인가? 내가 너에게 복을 주리라. 하는 것이 뭐가 진짜 복인가? 그 복의 강력함과 파장이 얼마나 되는 것인가? 성경에 보면요. 하늘과 땅을 진동한다는 말이 나옵니다. 나오는데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다 진동한다는 말이 여기 찬하만물이 진공한다는 말이 여러분, 이 말씀을 깨달을 때, 여러분의 삶에 피곤이 물러가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그리고 모든 만물이 진동하는 것이에요. 그리고 진동한 이유가 뭔지 압니까? 모든 나라의 보배가 되니, 이게 이제 너무 중요합니다. 모든 나라의 보배가 뭐예요? 예수 그리스도!!!~ 모든 거기 각주에 보면 사모한 것들만 나옵니다. 모든 나라의 보배가 오늘 학개에서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나라의 보배에요. 모든 나라에 보배는 예수 그리스도! 우리가 사모하는 예수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나라에 그리고 네가 이 초라한 성전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예수 그리스도는 초라한 몸을 입고 오셨다. 그런데 예수님이 요한복음 2장 19절에

*요한복음 2:19,
1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요한복음 2:21,
21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
-이 성전 된 자기 옥체가 예수 그리스도인 줄 믿습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가 오늘 학교에서 있는 모든 나라의 도배가 되신 것이 우리가 선지자들 도전도 받고 제사장들 위로도 받지만 하늘과 땅과 육지와 모든 것들이 모든 나라가 진동하리라. 오늘 이 말씀을 진동하리라. 이것이 진동되는 이유가 뭐냐 하면 모든 나라에 보배,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45년을 맞이하여 모든 나라의 보배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마음에 모두가 다 한 분, 한 분 다 이걸 내 것으로 삼고 돌아가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모든 나라의 보배, 그래서 이 모든 나라의 모의인 예수 그리스도를 내 가슴에 모시고 오늘 우리가 십자가 나눠드렸지만 이걸 십자가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내 마음에 모시게 되면, 이전에 이전 영광보다도 나아진 영광이 훨씬 크리라. 여러분들의 생애가 지금보다도 나중에 더 크리라. 이것이 오늘 오늘부터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 여러분, 남들이 볼 때 초라하게 보이지만 사명으로 한 일은 작은 일이 없어요. 주님의 이름으로 하는 일은 작은 일이 없어요.

오늘 본문에 있는 것처럼 땅과 하늘과 바다와 육지를 흔드셔서 반드시 하나님의 영광을 세우시는 것이에요. 사랑의 교회의 모든 비전을 하나님은 지금보다도 나중에 더 크리라. 오늘부터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 여러분, 교회가 얼마나 대단합니까? 45년을 돌아볼 때에 하나님의 교회가 얼마나 가치가 있습니까? 하나님의 교회와 함께 이루는 내 인생의 사명이 얼마나 소중합니까? 여러분, 교회만 제대로 역할을 하면 수많은 사람들의 심령을 고쳐줄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길거리에 방황하는 수많은 도덕적인 실패자들을 새 사람 만들 수가 있는 것입니다. 진짜 가치 있는 것에 생을 걸고 우선순위로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교회만 제대로 되면 우리 자녀들을 주님 안에서 올바로 양육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교회만 바로 되면 이 민족도 부강한 나라가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다시 얘기합니다. 대한민국 지난 75년의 역사를 아무리 얘기해봐야 다 쓸데없는 얘기입니다. 뭐 발전할 이유가 뭐냐 다른 거 없어요. 하나님이 한국 교회를 쓰시고 한국 교회를 통하여 주의가 복을 받은 것입니다. 제사장들 사명을 감당한 한국교회 때문에 오늘 이만큼 오게 된 것입니다.

지금 누가 그래요 지난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분이 그러더라고요. 이 만연한 사회주의적인 어려움들 이 모든 이 선전선동으로부터 이겨낼 수 있는 것은 교회밖에 없다고, 이전의 영광이 영광보다 나중 영광이 더 크리라. 오늘 이 말씀을 받는 여러분들의 태도가 여러분들 남은 인생을 결정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이런 말씀을 드려도 무관심하고 무감각하고 길이 없게 되면 그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오늘 45주년 45주년, 저는 오늘 여러분 6절 7절에 있던 모든 나라의 보배이신 예수님을 다시 한 번 여러분, 묵상 하십시오. 그 예수님 바라보면 수많은 고난과 문제와 어려움 가운데서도 동서남북과 하늘과 땅과 우리 영역이 다 진동할 만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그게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이 말씀하면서 여러분 십자가 당을 갖고 있는데요. 제가 여러분들 가정마다 마음으로 심방하고 싶습니다. 45주년에 심방(尋訪)하고 싶은데, 제가 심방에서 꼭 해드리고 싶은 말씀을 하나 있어요. “하나님이 오늘부터 복을 주시면 가정 가정마다 가장 좋은 것은 아직까지 오지 않았어요. 하나님이 가정마다 대한 것을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45년을 맞이하여 수만 명의 성도들 제가 개인적으로 물리적으로 심방은 다 못하지만 여러분 가정 가정마다 가장 좋은 아직 오지 않으셨어요.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는 마음을 허락해 주시기를 바라 것입니다.

제가 스데반을 묵상하다가 놀라운 일을 깨달았어요. 사도행전 1장 55, 56절을 보니까

*사도행전 7:55-56,
55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56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스데반이 돌을 맞는 중에도 눈을 들어보니까 눈물 나는 거예요. 하늘이 열리고 그다음에 하나님의 영광을 본 것이에요.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나님은 우리를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 영광과 내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았어요. 하늘이 열려 인자가 하늘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깨달은 것이에요. 지금 스데반은 뭐 하고 있어요? 돌에 맞아가지고 피투성이에요. 남들이 볼 때는 완전히 끝났어요. 그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영을 끝나 오늘부터 내가 복을 주면 무슨 말씀이에요? 고난 가운데서 스데반은 오늘부터 하나님의 영광이 되는 것이에요. 지금 현재가 돼버린 것이었어요. 그러니까 그 하나님의 영광이 스데반은 돌에 맞아서 피투성이가 되면 그 고통보다 훨씬 큰 거예요. 그래서 스데반은 고난을 이기게 된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 선지자적 도전, 제사장과 위로가 우리에게 있고, 우리에게 많은 것이 있습니다마는 결국은 마지막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 스데반처럼 고난 가운데 있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하는 것이에요. 사랑의 교회 교우들이여, 45주년을 맞이하여 우리 온 성도들, 하나님의 영광을 지금 현재 체험하는 21세기에 스데반의 능력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고난과 이 가운데서도, 그럴 때 하나님의 영광이 여러분들이 현재가 되게 하시고, 제가 말씀드렸죠? 하나님 영광은 아무에게 주지 않으세요. 고난 가운데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집중하고 고난과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는 자에게 주님은 하나님의 영광은 현재가 되도록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오늘 말씀한 대로 예수님이 모든 나라의 보배가 되어 주셔서 우리 모든 성도들의 보배가 되어 주셔가지고 이전의 영광보다 나중의 영광이 훨씬 더 큰 은혜가 우리 성도들 한 분, 한 분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요약
우리가 사명에 구멍이 나면 전대에도 구멍이 나는 것이니 우리가 사명이 회복되어서 오늘부터 네게 복을 주리라는 약속의 말씀을 믿고 최악의 불경기에도 하나님의 영광과 십자가 사명을 굳세게 하여 나중 영광이 이전의 영광보다 더 큰 인생의 놀라운 복이 되는 사명이 되어야 한다. 모든 나라의 보배가 되어 주시는 예수님을 온전히 따르는 자로 살아서, 가정과 개인과 교회와 나라에 사명을 잘 제대로 감당하여 주님의 기쁘신 자녀로 살기를 소망해야 한다.
-학개의 이 설교는 초막절 마지막 날 행해졌는데, 어려움 가운데 추수를 마치고 예루살렘에 모여 감사하는 축제 분위기 속에서 선포되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을 전하시기 위해 적절한 때를 이용하신다. 성전 건축의 영적 의미는ㅈ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정립한다. 성도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성실과 부지런함으로 풍성한 삶을 누려야 한다. 만일 근면하지 못하여 영적 나태함에 빠진다면 더 큰 역경에 빠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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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흥헌신토요비전새벽예배(주후 2023년 10월 07일)
제목: "대대로 이어지는 왕국 언약"
말씀: 창세기 17:1~8
말씀읽기: 김예나 학생(고등부 1,2), 이병우 학생(다윗중등부)
대표기도: 이민형 부목사님
찬양인도: 주일학교 연합찬양대
사회: 김대규 부목사님

설교자: 아담 라이트 총장(달라스 대학교)ㆍ통역(김인기 부목사님-대학 4부)
마무리 기도회: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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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7:1~8,
1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2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두어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 하시니.
3 아브람이 엎드렸더니 하나님이 또 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4 보라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
5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
6 내가 너로 심히 번성하게 하리니 내가 네게서 민족들이 나게 하며 왕들이 네게로부터 나오리라.
7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및 네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8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네가 거류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온 땅을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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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 라이트 총장(달라스 대학교)ㆍ통역(김인기 부목사님-대학 4부)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달라스 텍사스에서부터 여러분들에게 문안 올립니다. 오늘 제가 카우보이 모자와 카우보이 부츠를 신지 않았는데 죄송합니다. 그러나 여러 가지 것들이 지금 밖에 있는데요. 여러분들에게 그게 괜찮기를 바랍니다. 오늘 제가 이렇게 입고 온 것이,,, 정말 이곳에 하나님께서 임재하고 계심을 느낍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하나님의 ‘언약의 약속’을 우리를 불러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여러분들과 함께할 수 있어서 특별히 정말로 사랑에게 오정현 담임 목사님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줄 믿습니다. 오정현 담임 목사님은 정말 우리 크리스찬 리더들 중에서 어른이십니다. 그리고 오정현 목사님을 위해서 많이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정말 오정현 담임 목사님께 기름을 부으셔서 크고 놀라운 사역들을 이어가시기를 기도합니다. 45년은 정말로 큰 성취입니다. 저는 정말 그것보다 더욱더 놀라운 성신을 45년 동안 여러분들께서 사랑의 교회를 신실하게 섬겨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정말 이제 한국에 여러 번 방문하게 돼서 너무나 영광인데요. 제가 여기 올 때마다 정말 여기 있는 사람들에게 너무나 감동을 받습니다. 정말 그들의 따뜻함과 그들의 친절함에 정말 너무나 큰 감동을 느낍니다. 지금 보시면 알겠지만 제가 이곳의 음식을 너무나 좋아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이 교회에 신실함에 감사 정말로 기쁨을 섬겨 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정말 오늘 많은 세대에서 세대를 함께 볼 수 있어서 너무나 큰 영광인데요.

제가 달라스 대학교에서 지금 박사과정 학생들을 제가 가르치고 있습니다. 주중에는 제가 박사 과정 학생들을 가르치지만 주일에는 제가 6살 주일학교 학생들을 가르칩니다. 그래서 제가 사람들에게 정말 5살 6살 수준의 아이들과 같이 눈높이를 맞춰야 된다. 라고 얘기를 하곤 합니다. 오늘 5살 6살에 해당하는 우리 학생들 계실까요? 7살 계신가요? 제가 오늘 우리 꼬마 우리 학생 안 재우길 바랍니다. 저는 제 가족 중에 첫째입니다. 저에게는 두 명의 남동생과 한명의 여동생이 있습니다. 제가 제 남동생들과 여동생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말로 형용할 수 없습니다. 제 동생들을 위해서는 모든 걸 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제 두 번째 남동생 블레이크에 대해 얘기하고 싶습니다. 블레이크는 참 경쟁심이 강하면서도 모든 것에 열심히 합니다. 먼저 제가 시작하기에 앞서 제가 제 동생 블레이크를 너무나 사랑한다는 것을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정말로 제 동생 다른 동생 케이시와 우리 블레이크 둘 다 너무나 좋은 동생입니다. 그런데 어렸을 때 블레이크는 저를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환하게 했습니다. 지금두 그렇구요.

근데 어렸을 때만큼은 아닙니다. 여러분들 중에 여러분들을 화나게 하는 동생을 가진 분이 계실까요? 저를 화나게 해가지고 얼마나 화나게 했냐면, 결국은 큰 싸움으로까지 번지는 경우가 굉장히 많았습니다. 기억이 어린 우리 친구들 중에 오늘 교회를 오다가 싸운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서로가 지금 이렇게 서로를 가리키고 있는데요. 결국에는 싸움이 너무나 커져가지고 제가 결국에는 동생을 자꾸 몸으로 눌러버리기까지 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참 많은 것들을 배웠는데요. 제가 배웠던 것 중 하나는 동생은 진짜 바보 같을 수 있구나! 라는 것을 잘 깨달았습니다. 참고로 제 동생은 학업 적으로도 굉장히 뛰어났기 때문에 의학 전문가가 되어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았습니다. 그러니 여기 지금 하고 계신 모든 동생 분들께도, 제 동생처럼 인생을 잘 살 수 있다는 소망이 있음을 믿습니다.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겠습니다. 동생과 싸우면 제가 동생을 언제나 잡고 몸으로 눌러버리곤 했습니다. 그렇게 했을 때, 동생이 “형 나 진짜 나 풀어주면 형 더 이상 안 괴롭힐게‘ 라는 약속을 받아야만 이 싸움이 끝나곤 했습니다. 제가 여기서 동생을 찾고 있을 때 너 정말로 내가 너 놓아주면 나 안 괴롭힐 이거지? 라고 약속해!” 라고 해야만 이 싸움이 끝나버렸습니다. 진짜 약속한 거지? 그리고 제가 동생을 풀어줬을 때 무엇을 하시는지 아십니까? 다시 우리가 또 싸우기 시작하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다시 동생을 눌렀습니다. 이 이야기의 핵심은 무엇일까요? 괴롭히지 마세요! 제가 이 이야기를 진지하게 한 이유는 사실 우리 모두가 제 동생과 같다는 점입니다. 다만 우리가 형에게 약속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게 하나님과 약속한 것을 지키지 원하지 않는 것이 아니지만, 하나님께 우리가 정말 이걸 착하고 선하게 하고 싶지만 그렇게 많이 그러나 하나님과 우리가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우리는 신실하지 못함에 우리는 깨닫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약속을 지키지 못할 때에도, 우리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하시고, 그 약속을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의 타락한 본성과 반복되는 죄 성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하시고 약속을 지키시는 신실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이시고 결코 실망시키지 않는 하나님이십니다.

창세기에서 우리는 몇 가지 주제들을 보게 됩니다. 특별히 오늘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 즉 아브라함에게 주신 그 약속에 초점을 맞추려 합니다. 그래서 바로 벧엘로 이어지는 하나님 나라 언약입니다. 좀 전에 저희가 창세기 17장 1절에서 8절까지 읽었는데요.

▷지금 잠시 저와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당신의 말씀에 감사드립니다. 살아 있는 하나님 말씀에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시 영원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약속은 영원합니다. 하나님 오늘 당신의 진리를 선포해 주시길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이 시간 선포해 주시길 기도합니다. 우리에게 말씀하옵소서. 우리를 가르치옵소서. 하나님 당신을 통하여 당신의 말씀을 통하여 변화하게 하옵소서. 오늘 하나님을 위하여 살 수 있는 영광스러운 삶 살게 허용하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저는 창세기를 참 좋아합니다. 정말 창세기는 성경 전체를 담고 있는데요. 특별히 오늘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에 대해 우리가 초점을 맞추려 합니다. 창세기는 정말 선지자적인 책인데요.

첫째,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
-창세기는 하나님의 방식과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의 창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책입니다. 제가 조금 전에 저는 주일마다 주일 학교 학생들을 가르치라고 말씀드렸는데요. 제 와이프 캔디스와 함께 주말에 주일에는 우리 주일 학교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오늘 함께하는 해서 너무나 좋아합니다. 특별히 우리 어린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은 너무나 큰 특권입니다. 왜냐하면 너무나 굉장한 질문을 하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이 창세기를 아이들에게 가르치면서 놓치는 부분이 있는데 바로 창세기에 숨겨져 있는 의미의 글과 뜻들입니다. 특별히 오늘 그 숨겨진 주제들에 대해 여러분들과 나누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단어 하나도 버릴 것이 없습니다. 정말 하나님의 말씀 중에 공허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를 만나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시를 통해서는, 비유를 통해서 역사적 기록을 통해서든,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진리를 가르쳐 주십니다.

아브라함은 환경에 등장하는 참 매력적인 인물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친구 벗이라고 표현한 연 아들의 인물 중 한 명입니다. 창세기 17장 1절과 2절에서 몇 가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창세기 17:1~2,
1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2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두어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 하시니.
-첫째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달아주셨을 때 아브라함은 99세였습니다. 혹시 오늘 참여하신 분들 중에 99세이신 분, 계신가요? 99세에 아이를 가지는 걸 상상하실 수 있겠습니까? 저는 지금 43세인데요. 만약 하나님이 지금 저에게 오셔서 너 한 명도 아이를 가지고 한다면 너무나 두렵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하나님이 오셨을 때, 아브라함이 얼마나 놀랐을지 정말 상상할 수조차 없습니다. 한 명이 아니라 정말 많은 민족의 아버지가 되겠다고 한 그 말씀입니다. 약속은 굉장히 단순해요. 나이가 많든 적든 상관없이 하나님은 시간을 초월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누구에게도 어느 시점에나 어느 시간에나 여러분에게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둘째, 하나님을 스스로 명하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
-라고 하십니다. 이게 히브리어 로드 엘샤가입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엘샤가는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다’ 라는 표현이 자주 사용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오늘 이 시간 하나님께서는 스스로를 표현하기 위해 사용하시는데요. 하나님은 모태의 전능하심을 아브라함에게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브라함에게 이 명령을 주십니다.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 하라.” 여러분들이 잘 알고 있듯이 아브라함과 그 안에는 오랜 기간 자녀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99세에 찾아오셔서 아이를 낳을 것이라고 한 것은 임신을 하기에 불가능한 나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 언약에 대해 나타내실 때 먼저 고리의 전능하심을 나타내셨습니다. 이건 참 우리에게 있어서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아브라함에게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고 하신 말씀과 함께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사랑의 교회, 정말로 많은 비전으로 우리를 바라시고 굉장히 고귀한 기적입니다. 정말 오늘 이 시간 우리가 다시 한 번 기억하길 원하는데요.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이 우리의 육과 그리고 정신을 그리고 영을 하나님께서 만들어 가실 때, 정말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과 그들에게 많은 것을 행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리고 우리가 우리에게 주실 비전을 이루실 수 있는 임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 삶에서 많은 진리를 보여주셨습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마주하는 문제들 중에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 전능하신 하나님이 해결하지 못한 문제는 결단코 없음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만났을 때, 아브라함은 완전하지 않았고 흠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만난 후에도 완전한 삶을 살거나 흥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바로 이 부분에 우리에게 소망이 있음을 믿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이 얼마나 우리에게 소망을 주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하나님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때때로 포기하게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절대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그렇게 아브라함을 어릴 상황은 똑같습니다. 오늘 우리는 창세기 17장 1절에 2절에 단순하면서도 깊은 관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믿음을 잃지 말고 전능하신 하나님께 전적 부탁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창세기 17:1~2,
1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2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두어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 하시니.
-3절에서 우리는 아브라함이 하나님 앞에 엎드린 것을 보았습니다.

*창세기 17:3,
3 아브람이 엎드렸더니 하나님이 또 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것은 아브라함의 겸손과 순종의 행동입니다. 지난주에 존 스토트의 책, ‘그리스도인 십자가’를 읽으면서 우리가 하나님께 허리를 굽히거나 절은 하지만 하나님 앞에 진정한 겸손의 자세로 엎드리지 않을 때가 많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정말 여러분들에게 오늘 약속하기로는 많은 전 세계 사람들의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6시에 모인다는 것은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 모인다는 것은, 사랑의 교회만 있는 문화이자, 여러분들의 겸손과 그리고 여러분들의 신실함에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미워하시지만 겸손한 자에게는 은혜를 주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겸손이란 중요한 가르침이 있습니다. 여러분들 중에 빌리그레함 목사님도 아시는 분들 많으실 텐데요. 저희 대학교에서 명예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빌리그레함 목사님 가족 분들과 제가 알게 될 기회가 있었는데, 빌리그레함 목사님들의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한 학자분이 빌리그램 목사님을 만나러 왔었는데, 빌리그레함 목사님의 삶과 사형에 대해 인터뷰를 하기 위해서 왔습니다. 그리고 인터뷰어가 빌리그램 목사님께 첫 번째 질문을 했는에 바로 이 질문을 했습니다. “우리 목사님 정말로 사역 가운데 놀랍고도 귀한 일을 많이 하셨습니다.” 그때 바로 빌리그레함은 이약를 좀 끊으시고 이렇게 이해 습니다. “아니요, 제가 한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라고 하십니다. 주님을 따라서는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주님을 섬길 때 우리가 겸손함으로 섬기길 원하십니다. 오늘 본문에는 아브라함을 통하여 겸손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특별히 아브라함의 겸손을 통해 우리가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4절에서 8절 내용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에 대한 요약입니다.

*창세기 17:4-8,
4 보라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
5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
6 내가 너로 심히 번성하게 하리니 내가 네게서 민족들이 나게 하며 왕들이 네게로부터 나오리라.
7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및 네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8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네가 거류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온 땅을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에 대한 요약입니다. 창세기 17장에 나누는 부분은 이 언약에 대한 말씀을 확장할 것입니다. 7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7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및 네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내 대의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내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라는 말씀에 모든 것이 담겨 있습니다. 이 언약을 하나님께서 영원토록 채워주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6절에서 하나님은 신이 번성하게 해 주시겠다 약속하십니다. 창조 때 주신 그 축복을 아브라함에게 주신 후에는 노아에게도 동일한 축복을 주십니다. 이 축복에 관해 몇 가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을 주실 때 이스라의 속 그 약속을 지키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신실하지 않을 때에도 이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실패할 것을 알고 계시지만

셋째,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실패할 것을 알고 계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끝까지 약속을 지키기로 작정하셨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지키실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도 사랑의 언약을 아낌없이 베풀어주는 분이십니다.

저에게는 사랑스러운 두 딸이 있습니다. 아비가일과 케이트인데요. 케이트의 생일인데요. 저는 지금 한국에 나와 있습니다. 정말 생일을 맞추지 못해서 너무나 마음이 아픕니다. 생일을 한국에서 중요한 문화으로 나오는데요. 첫 번째로 첫 번째 생일입니다. 저와 함께 여행하고 있는 다니엘 조는 지금 딸이 있는데 그 딸이 이번에 첫 번째 생일을 맞이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 시간 정말 이번 주 하나님께서 다니엘 초에게 굉장히 순종적인 일을 요구하시고 그 일에 감당했습니다. 이제 곧 딸을 만나게 될 것이지만. 그런데 아버지가 딸의 첫 번째 생일을 맞추지 못한 것은 좀 다른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하나님께서 가끔 우리에게 불편한 일로 우리를 부르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순종함으로 나아갑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놀랍고도 큰 축복을 주실 줄 믿습니다. 저는 제 딸들에게 선물을 주는 걸 참 좋아합니다. 나에게 최고의 것들을 선물해 주는 것을 좋아합니다. 딸들이 때때로 속을 썩이지만 제 사랑은 변치 않습니다. 누가복음 11장 13절에 이 예시를 완벽하게 설명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누가복음 11:13,
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바로 이 예시를 완벽하게 설명해 주는데요. 우리의 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우리 자녀를 사랑하는 것보다 하나님이 우리를 더 사랑하십니다. 오늘 여러분들과 함께할 이 시간을 생각하면서 제가 주님께 간구한 것은 오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가 삶에 적용할 수 있는 가르침을 달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첫 번째 레슨 제가 배운 것은 하나님의 언약을 우리를 놀라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께 나타셨을 때 얼마나 놀랐을 지를 상상해 보시길 바랍니다.

아브라함과 나이가 많을 때 대를 잊게 해주겠다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성적 전체를 살펴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정말로 놀랍게 할 일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정말로 놀라운 것은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과 같이 평범한 사람들을 사용하여 놀라운 일들을 하신다는 일입니다. 15살 때 제가 공사장에서 일하기 시작했는데요. 밖에서 일을 했었고요. 현장에서 텍사스는 정말 뜨겁습니다. 그 당시 15살인 저에게 30년 후에 당신은 총장이 될 것입니다. 라고 했으면 저는 당신이 정말로 미쳤다. 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이 저를 총장으로 부르실지 상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미국에서 대학교 총장으로 부임하는 평균 나이는 61살입니다. 제가 달라스 대학의 총장으로 부름을 받았을 때는 36살이었습니다. 지금은 43세입니다. 여러분들의 연수한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없인 여기지 못하도록 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정말 우리를 놀라게 하신다는 것을 많이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부르신 그 일에 거기다 순종함으로 나아야 될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통해 불가능한 일을 하시길 원하시는 것은 무엇일까요? 여러분들이 할 수 없는 그 불가능한 일을 생각할 때 기억하세요. 하나님이 여러분을 놀라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전능을 향하는 곳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언약은 능력이 있습니다. 이 언약은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를 놀라게 한다. 태초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놀라운 일들을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권력을 남용하는 이 세상 가운데, 하나님은 그의 권능과 능력을 완벽하게 사용하십니다. 여기 있는 우리 모두는 어느 정도의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저의 타락한 본성을 더욱더 깨닫게 되었고, 하나님의 목적에 따라 살기 위해선 제 능력보다 더 큰 하나님의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일을 하실 것을 믿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주어진 능력을 어떻게 사용하고 계십니까? 그리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에 언제 감사를 들으셨습니까?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언약은 결코 실패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심을 그의 약속은 영원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영원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던 내가 나의 교회를 세우리라. 어느 누구도 넘보지 못하리라. 하나님의 약속은 영원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영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이 말씀은 그렇다. 오늘 이 시간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줄 믿습니다. 성경에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한 언약이 많습니다. 우리가 기억하기로는 우리는 실패할 수 있지만 하나님은 실패하지 않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언약 영원한 것임을 믿습니다. 제가 친구가 한 명 있는데요. 친구 몇 명 있습니다. 친구들 그러나 오늘 친구 한 명에 대해서 언급하고 싶습니다. 마크 리니어라는 친구인데요. 미국에서 굉장히 유명한 변호사 중 한 명이 온라인에서는 확인할 수 있었고요. 정말 미국이 최고의 변호사 중 한 명입니다. 그러나 마크 리니어는 또한 저명한 성경학자이기도 합니다. 마크 는 정말로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일하고 있습니다. 정말 놀라운 것은 전 세계 어디에 있던 주일에는 꼭 집으로 돌아와서, 주일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역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주일 학교에 400명 정도의 아이들이 있는데요. 지난주에 마크의 설교를 보게 되었습니다. 제가 달라스에서 미국으로 오는 길이었는데요. 마크의 비디오를 보고 있는데요. 그리고 K드라마를 보고 있었고요. 마크 리니어의 주일학교 영상을 보고 있었는데요. 정말 여러분 믿기지 않으실 겁니다. 마크도 창세기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오늘 이 토비새에서 창세기로 설교를 하는 것과 마크가 창세기를 설교한 것과 우연의 일치가 몇 분의 1이나 될까요? 하나님의 일하심을 정말 놀랐습니다. 오늘 이 시간 여러분들에게 꼭 다시 하나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움직이시고 지금까지도 일하고 계심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정말로 우리 모든 사람들 가운데 운행하시고 일하심을 믿습니다. 큰일과 작은 일 모든 일 가운데, 정말 마크와 저에게 같이 성령 하나님께 감동하셔서 이 말씀을 주신 줄 믿습니다. 우리 중 몇 명을 정말 우리의 영안이 되어야 될 줄 믿 그리고 하나님께서 일하심을 보시길 바랍니다. 정말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놀라게 하시고, 하나님의 언약은 능력이 있으며 하나님의 언약은 영원한 줄 믿습니다.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하나님의 나라와의 언약과 축복을 찬양합니다. 오늘 함께 통역할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감사합니다. 사랑의 교회 성도님들 제가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사랑하는 줄 믿습니다.

♣요약
우리는 언약의 반석위에 견고히 세워져 위로부터 임재하시는 성령의 능력 안에서 평생이 되어서 상록수의 신앙으로 거룩한 제사장 나라의 주역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언약의 놀라움, 능력, 신실하심을 믿고 이번 특별새벽부흥회를 통해 10.23 한국교회 섬김의 날이 한국교회의 대 부흥의 진원지가 되기를 간구해야 한다.
-아브람은 ‘고귀한 아버지’라는 뜻인 반면에 새로 얻은 이름인 아브라함은 ‘열국의 아비’라는 뜻이다. 즉 그의 이름에 하나님과의 언약이 비로소 반영된 것이다. 그리고 그에 따른 요구 사항은 하나님 앞에서 완전하게 행하는 것이다. 우리도 성도로서의 이름에 걸맞게 살려면 아버지의 온전하심 같이 온전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은 후손에 대한 것 외에도 가나안 땅을 영원한 기업으로 주고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더 놀라운 것은 이 땅의 기업을 넘어서 하늘의 영원한 기업을 약속하시고 우리의 하나님이 되어 주기로 약속하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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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저녁기도회(주후 2023년 10월 4일)
제목:"하나님이 주어되는 인생"
말씀: 창세기 4:1-8
찬양인도: 쉐키나(오준석 부목사님)
사회: 김대규 부목사님(마무리 기도)
(강대인 부목사님)-사랑의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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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45:1-8,
1 요셉이 시종하는 자들 앞에서 그 정을 억제하지 못하여 소리 질러 모든 사람을 자기에게서 물러가라 하고 그 형제들에게 자기를 알리니 그 때에 그와 함께 한 다른 사람이 없었더라.
2 요셉이 큰 소리로 우니 애굽 사람에게 들리며 바로의 궁중에 들리더라.
3 요셉이 그 형들에게 이르되 나는 요셉이라 내 아버지께서 아직 살아 계시니이까 형들이 그 앞에서 놀라서 대답하지 못하더라.
4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그들이 가까이 가니 이르되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5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6 이 땅에 이 년 동안 흉년이 들었으나 아직 오 년은 밭갈이도 못하고 추수도 못할지라.
7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8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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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를 사모하며 회복의 새 길로 또 이 길을 열어주신 우리 모든 분들, 이 수요 예배에 참여하셔서 진심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오늘 수요 저녁 기도회를 통해서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나아가는 시간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오늘 주신 하나님의 말씀 함께 보면,
-“모두 나가시오! 제가 동생 요셉입니다. 내 아버지께서 아직 살아계십니까?” 요셉은 주변의 모든 이집트 사람들을 다 쫓아 보내고 자신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셉의 이 말은 좀 이상하게 들립니다. 어색하죠? 이전에는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했어요. 그래서 형제들의 아버지, 당신들의 아버지라고 부르다가 오늘 이 본문에 보면 나의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렇게 모두가 바뀌면서 “아버지 잘 계십니까? 살아 계십니까? 별일 없으십니까?” 라고 묻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생사를 이미 알고 있지만 다시금 묻고 있는 것이죠. 뭔가 조금 다른 차원으로 이렇게 대하는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습니다. 이 말을 들은 형들은 어땠을까요? 너무나 당황했습니다.

아연(俄然)질색(窒塞)했어요. 어찌 할 줄 몰랐습니다. 두려움과 충격에 빠졌습니다. 그저 위축된 모습으로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왜 그럴까 봤더니 이 요셉은 형제들에 대한 애절함이 있었고요 또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했습니다. 특별히 동생 베냐민을 향한 그 애달픈 사랑이, 그간절한 그 마음 그것을 유다의 헌신되고 진실한 사랑을 통해서 요셉은 바라보게 된 겁니다. 그러면서 요셉의 마음이 활짝 열렸습니다. 그동안 요셉의 인생에서 너무 길었던 시험의 과정은 너무나 힘들게 보이죠? 견디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이것을 하나하나 겪어가는 것 자신이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만져주셨어요. 하나님이 함께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험난한 세월이 결코 헛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참 의아하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그 모친 시간들을 다 견딜 수 있냔 말입니다. 자신은 너무나 분명 힘들 것인데 어떻게 기꺼이 형제들을 용서할 수 있었을까요? 어디에서 그런 힘이 나올 수 있었을까요? 사실 이렇게 용서할 수 있는 마음, 정말 진심을 다해서 내 모든 것을 다 내어놓고 받아줄 수 있는 그 마음은 쉽지 않습니다. 요셉의 인생을 아는 사람이라면 더 그럴 것이다. 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원한과 상처가 깊은 그 마음, 결국 쓴 뿌리로 빠져들어 자신의 인생을 한 걸음도 걸을 수 없을 것 같아 보이는 모습이 바로 요셉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은 원수를 원수로 갚지 않습니다. 도리어 어떻게 하고 있죠? 그들을 용서합니다. 부당하게 해를 입힌 자를받아 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부당하게 해를 입힌 그 원수를 용서할 수 있을까요? 받아줄 수 있을까요? 정말 진심으로 그 사람을 내가 받아들이면서 함께 그와 함께 먹고 마시면서 살 수 있을까요? 억울한 일을 겹겹이 겪게 되면 더 원망하고 더 불편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이 말씀에 나타나는 용서라는 것은 우리에게 너무나 불편하게 다가옵니다. 본문은 용서할 능력이 어디로부터 나오고 있는지 아주 선명하게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을 우리가 바라보면서 하나님께서 오늘 이 시간을 통하여서 여기 계신 모든 분들에게 용서의 은총을 내려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누군가를 용서하는 건 너무나 어렵다고 했죠?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용서할 지라도요. 아마 완전히 만족하는 용서는 할 수 없을 거예요. 상대의 불의함은 끈질기게 남아 있고 또 상처는 우리를 계속적으로 괴롭힙니다. 오래전에 이미 하나님께 다 맡겼다라고 생각한 문제들까지도 다시금 내 안에서 되살아나면 나를 힘들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상처의 황무지를 걸어가며 고통 하는 가운데 용서라는 이 말은 너무나 서글프고 또 거북스럽기까지도 하죠. 용서는 너무나 버거운 행위이고요 평생 가장 힘든 일일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소름 돋는 복수극을 보면서 왜 저런 드라마를 볼까? 라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동안 상처와 트라우마로 빠졌던 우리의 그 마음을 대신 처절히 응징해 주는 것을 보면서 가슴 시린 이 마음에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복수를 주제로 하고 있는 이 막장 드라마는 대부분 시청률이 높은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용서는 무엇일까요?

사전적으로 보면 부당하게 해를 입힌 사람에게 붕괴하거나 부정적 판단을 하지 않고 무관심한 행동을 할 권리를 자진해서 포기하면서 연민 또 관대함 심지어 사랑으로 품어주는 것이라고 정의 내리고 있습니다. 듣기만 해도 너무 불편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성도는 용서해야 됩니다. 성도는 우리에게 용서에 대한 말씀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자주 줄 읽는 주기도문 말씀에도 나오잖아요.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그렇게 간구합니다. 그런데 용서는 읊조린다고 되지 않습니다. 그저 관념적인 것이 아니죠. 실제적인 것입니다. 파격적인 것입니다. 그만큼 어려워요. 너무나 힘듭니다. 용서보다 어려운 것이 있다. 라고 한다면 그것은 아마 끝까지 용서하지 않는 것일 것입니다. 그만큼 용서하는 것도 어렵고 용서하지 않는 것도 어렵습니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서 참 죄송한데 부끄러운 이야기입니다. 제가 군대 입대한 후에 처음으로 사람을 미워해봤어요. 군에서 만난 두 달 위, 선임이었습니다. 얼마 이렇게 높지도 않다 보니 저도 참 제 마음에 이렇게 해도 되나? 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군대에서 이렇게 혼나는 게 있는데 언제 혼나냐면 웃으면 혼납니다. 제가 웃상이잖아요? 얼마나 혼났겠습니까? 너무 힘들었어요. 웃지 않는 게 제일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정오 시간만 되면 이제 이 세밀한 입 꼬리까지 그리고 이 눈매까지 아주 세밀하게 보던 그 사람이 그 손님이었습니다. 그냥 이렇게 피식만 해도 절 데리고 왔어요. 따라와 그러면 그냥 혼란한 겁니다. 그런데 그냥 후임들 웃기려고 장난치는 말년 병장들도 있었습니다. 오죽했겠습니까? 그런데 그 선임은 제가 병장을 달 때까지 계속적으로 저를 괴롭혔습니다. 모태 신앙으로 자라면서 미워하면 안 된다. 라고 배웠기 때문에 누군가를 미워한다는 거 제 스스로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한 번은 주일에 교회를 못 가게 하면서 괴롭혀가지고 화장실에서 눈물을 흘렸어요. 때로는 억울하고 불이 나서 잠 못 이룰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 선인과 매일 살아가는 것이 어찌나 힘든 일인지 몰랐습니다. 억울함도 컸지만 그보다 내 자신이 그를 용서할 수 없었다. 라는 그것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마음으로는 용서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지만 쉽지 않았어요. 그만큼 받은 피해가 크면 클수록 상처는 더 깊었습니다. 용서는 개념이 아니에요. 현실입니다. 피해자의 고통스러운 감정을 수반합니다. 매일 마주하는 서림 앞에서 용서하지 못하는 자신을 바라보면서 하나님 앞에 용서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며 매달렸습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이 요셉은 아버지 야곱이 특별한 옷을 입히는 편애로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형들의 시계에 의해서 이집트의 노예로 팔리게 되었고요. 또 노예로 팔리고 나서 보디발의 아내로부터 어떻게 됩니까? 모함을 받아서 누명을 쓰고 이제 감옥에 들어가게 됩니다. 억울한 인생 중에도 가장 억울한 인생일 것입니다. 그리고 감옥에서 술 맡은 관원장의 꿈을 해석해주고, 이제 그 사람이 나를 좀 어떻게 좀 도와주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어떻게 합니까? 모른 척했습니다. 배신했습니다. 요셉은 이처럼 가장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배신과 모함을 받았기 때문에 그 상처가 더 깊었을 것입니다. 트라우마가 남을 만도 하죠. 그런데 요셉의 인생에서 간섭하시고 이끌어주시는 그분, 늘 끝까지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는 그분 하나님이십니다. 요셉은 일평생 하나님을 느꼈고 그분을 바라보았으며 그분의 인도를 확신했습니다. 그의 인생의 주어는 늘 하나님이었습니다. 주어는 문장을 이끄는 주체가 되는 단어입니다. 문장의 가장 핵심이 되는 말이 있다면 그것은 주어이죠. 요셉의 주체 자는 곧 하나님입니다. 본문 5절, 7절, 8절에는 이것을 기록하고 있는데요.

*창세기 45:5,7,8,
5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6 이 땅에 이 년 동안 흉년이 들었으나 아직 오 년은 밭갈이도 못하고 추수도 못할지라.
7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8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오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습니다.
-이처럼 형제들에게 그는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인입니다. 하나님이 주어되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즉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의 역사가 나를 이끌어 주셨습니다. 라고 형들에게 고백합니다. 그래서 도리어 자신을 이집트에 팔아넘긴 형들을 위로할 수 있었죠. “형님들 형님들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옵소서 한탄하지 마옵소서. 나를 보낸 이가 여호와시오 나를 인도하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이 형제들의 악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요셉은 끝까지 새일 행하실 하나님을 주어로 여겼습니다. 그렇게 하니 그 모든 시간들이 하나님께 쓰임 받는 시간이라고 해석된 거죠.

여러분, 하나님이 개입하시면, 사람들의 이 악함까지도 사용하셔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역사를 써 가십니다. 그 섭리 가운데 요셉을 사용하셨습니다. 요셉이 이걸 알았어요. 이것을 믿은 겁니다. 하나님은 아신다. 이것이 바로 용서할 수 있는 비결입니다. 그랬기 때문에 그는 원한을 품지 않았고요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이 놀라운 신비에 얼마나 하나님께서 끝까지 인도하시는지를 그는 확신하며 나아갔습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또 섭리를 인정하면요 원수까지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원수의 악행도 하나님은 선으로 바꾸시고 당신의 뜻대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믿으십니까? 그래서 주님은 원수를 사랑하며 핍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고 말씀합니다. 그저 내게 나타난 현상, 내게 주어진 환경만 바라보지 말라고 합니다. 원수까지도 사랑하라. 그를 위하여서 기도하라.

여러분, 용서하고 싶은데 용서가 안 되고 계속적으로 그 사람에게 마음이 사로잡혀 있습니까? 누가 좋아할까요?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인정하십시오. 주님은 원수를 사랑하며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라고 합니다. 베드로에게 심지어 70번씩 7번까지 용서하라고 말씀합니다. 사도바울도 말하죠.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또 목마르거든 마시오라고요. 목마르네요.

※미국 하버드 의대의 정신과 교수인 조지 베일런트는 “용서를 위해서는 감정 이입과 미래를 그릴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라고 한다. -조지 베일런트-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바탕으로 과거 일에 얽매이지 말고 오히려 보다 나은 미래를 바라보면서 나아가는 이 마음이 용서할 수 있다. 복수심을 내려놓고 용서하려면 그 일은 그저 과거에 머물러 있는 일이라고 인식해야 합니다. 그래야 더 나은 미래를 향해서 나아갈 수 있는 겁니다.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펼쳐주실 새로운 미래를 향하여서 나아갈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신을 더욱더 아끼고 사랑해야 합니다. 나를 먼저 용서해야 합니다. 다가올 보다 나은 미래에 대한 분명한 확신은 여러분 어디에서 올 수 있습니까? 내가 가지고 있는 그 시선, 내가 바라보고 있는 이 시선을 하나님께로 돌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어떻게 바라보고 계실까? 하나님은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고 계실까? 하나님이 우리를 바라보면서 어떤 표정을 짓고 계실까? 하나님을 주어으로 삼게 되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게 된다면 우리는 더 이상 과거에 매이지 않습니다. 지금 과거를 청산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더 좋은 미래가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그 미래를 현재로 끌어서, 지금 이 하루하루를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요셉은 그가 꾼 꿈을 통해 보이신 그 계시를 믿었습니다. 바로의 꿈을 해석하면서도요 이것이 하나님의 계시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여러분, 계시를 믿으면 어떻게 됩니까? 오히려 자신 앞에 두려워하는 형들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면 우리가 할 수 없는 일들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고난에도 절망하지 않습니다. 낙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고난을 인내로 극복하게 됩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이 주인이시기 때문이죠. 하나님이 이 우리 가족을, 이 우리 가족의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하나님이 나를 먼저 보내셨다. 이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의 손길을 요셉은 깨달은 것입니다. 요셉은 어떤 고난에도 원망하거나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고난 중에 하나님을 더 의지했어요. 그 고난을 인내로 극복하며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갔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으면서 모든 시련과 역경을 극복할 수 있는 이 원동력을 그 투나미스 능력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아 누리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고난이 왜 괴롭습니까? 고난 자체가 주는 그 어려움도 분명 있겠지만 이 고난의 원인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요. 여인이 해산할 때 자신의 고통의 원인을 알기 때문에 이것을 견딜 수 있습니다. 그리고 출산 이후에 기쁨을 바라보기 때문에 견뎌낼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게 되면요 모든 고난의 원인과 결과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지금 해석되지 않는 그 고난이 바로 이 시간 해결될 줄 믿습니다. 그러면 고난 중에 절망하지 않고 오히려 고난을 극복하면서 더 큰 축복과 영광 가운데 우리를 인도하실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욕도 마찬가지였죠. 얼마나 고통스럽겠습니까? 그 고통 가운데 그는 이렇게 욥기 23장 10절에서 고백합니다.

*욥기 23:10,
10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주가 보이신 생명에게 찬양이 나오는 가사인데요. ♪나의 길 오직 그가 아시나니 나를 달려하신 후 내가 정금 같이 나아오리라.♩!!~ 그 시련의 시간 그 고난의 시간이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 가운데 정금같이 인도하시는 시간이라는 것을 확신하였습니다.

여러분, 요셉이 이집트로 보냄 받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정금같이 구원의 도구로 쓰임 받기 위해서 7절에 그 답변이 나오죠? 큰 구원으로 야곱의 가족을 구원할 뿐만 아니라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먼저 보내셨다. 하나님이 성도들을 택해서 왜 세상에 보내셨을까? 왜 나를 부르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이곳저곳에 나를 보내고 계실까? 그것은 바로 죽어가는 영혼들이 우리 주변에 너무나도 많이 있기 때문에 우리를 보내고 계신 것입니다. 그들을 구원하라고, 그들을 영혼 구원의 도구로 우리를 삼고자 지금도 우리를 보내고 계십니다. 요셉은 가족의 생명을 구원하는 사명을 기쁨으로 감당했습니다. 이들을 구원하는 것은 나의 사명이다. 그렇기 때문에 죽어가는 영혼들을 향하여서 영혼의 양식인 말씀을 끝까지 공급하며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성도는 어떠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까? 마태복음 28장 19절, 20절의 말씀에도 나오고 있죠 제사를 삼아라

*마태복음 28:19-20,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모든 말씀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내가 분부한 모든 것에 지 너희를 인도할 것이다. 라는 이 주님의 말씀 사도바울도 뭐라고 고백합니까? 나의 달려갈 길과 또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 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였다. 그는 사명을 목숨보다 귀하게 여겼습니다. 요셉은 바로의 꿈을 통해 보이신 계시를 의심치 않았죠. 끝까지 믿음으로 나아갔습니다. 사명의 사람입니다. 계시를 받은 사람입니다.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역동적으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말씀에 확신이 있으면 역동성이 나타납니다. 말씀을 부여잡고 나가면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렇습니다. 불확실은 인생을 실패로 치닫게 하지만 계시의 말씀을 신실하게 믿고 따르면 그 가운데 역사가 일어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했는데 아직도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까? 매일 마다 말씀을 보고 있는데 왜 내 삶속에서 역사가 일어나지 않을까요? 잘 들여다보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정말 그 말씀이 내 가운데 역사하시는 말씀이라는 확신이 없기 때문에 그 가운데 역동이 일어나지 않은 것입니다. 여러분, 확신하면요 정말 주님의 말씀을 믿으면 내가 알 수 없는 용서가 가능해집니다.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이 용서되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면 화해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요셉은 무수한 그 어려움 속에서도 자기만을 바라보지 않고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게 됩니다. 자기 연민에 더 이상 빠질 이유가 없고, 오히려 자기 용납하면서 난 그런 인생이야 너 안 될 인생이야! 라고 살 수도 있는데 이것을 뛰어넘게 하시는 그 하나님의 역사를 날마다 목격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 보통 관계 속에서 막 꼬인 것들을 있을 때마다 뭘 생각하죠? 저 사람 만나고 싶지 않다 그런 생각하잖아요. 그러면서 내가 저 사람을 위해서 얼마나 열심히 했는데, 왜 나에게 그만큼 보상이 오지 않을까 내 이 내 생각 내 입장을 먼저 생각합니다. 그리고 내 감정이 앞서게 됩니다. 그러나 내 기준으로는 어떤 용서나 어떤 화해도 이루어질 수 없겠죠? 어떻게 해야 화해가 일어납니까? 다 받아내면 그저 모든 것들을 다 그냥 그래 맞춰야 합니다. 그러면 용서가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이거 맞지만 틀린 이야기입니다. 왜 그럽니까? 이 용서라는 거, 이미 얘기했지만 내가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아무리 내 열심을 다하여서 하려고 해도, 용서는 내 속에서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이것이 가능하다. 라고 생각하는 것 그 자체가 교만인 것이죠. 그럼 어떻게 해야 됩니까? 신실하신 하나님 믿어야죠. 나보다 정의를 실현하는 데 뛰어나신 그 하나님을 믿고 따라야 합니다. 용서를 통해서 복수하려는 마음을 거두고 하나님께서 처리하시도록 넘겨드려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다 갚아주십니다. 그래서 필립 얀씨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정의와 자비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어야 할 저울을 하나님의 손에 놓아드려야 한다. -필립 얀씨-

-요셉을 계속적으로 묵상하다 보니 떠오르는 한 분이 있었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완전한 화해와 용서를 허락해 주셨죠. 그는 누구일까요? 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끊어진 관계를 이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위해서 자신을 완전히 내어드렸습니다. 모든 모욕과 온갖 고통을 다 참아내시면서 그 인간의 악한 꾸밈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끝까지 믿고 순종하였습니다. 예수님이야말로 ‘하나님이 주어 되는 인생’을 산 것이죠. 하나님의 선하시는 뜻을 믿었기 때문에 자신을 십자가에 들릴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섭리 가운데 반드시 화해하시고 회복시키고 살리신다. 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끊어진 관계를 이어주시려고 본인이 스스로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감당한 것입니다. 그 길은 좁은 길입니다. 죽는 길입니다. 하지만 생명의 길이에요. 영원히 살아나는 길입니다. ‘이를 믿는 자마다 영생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길이 부활의 길이자 소망의 길이기에 우리는 이 길을 바라봐야 합니다. 신학자 톰 라이트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예수님의 화해 사역을 통해서 용서가 가능해졌기에 하나님은 세상을 죄의 짐에서 해방시킬 뿐 아니라 어떤 의미에서는 자신도 탈락한 세상에서 늘 진노하셔야 하는 짐에서 해방되신다.” 라고요.
-신학자 톰 라이트-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하나님의 짐도 덜어지고 우리에게도 하나님과 화해하는 이 놀라운 은혜를 은총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용서하시라고, 용서하라고 스스로 자신을 드러내고 계시는데, 우리가 용서하지 않을 이유가 있습니까? 전혀 없잖아요? 성경 어디에 찾아도 용서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받아들이면 돼요. 용서를 가로막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침묵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침묵하는 겁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향해서 두 팔을 벌리고 “내게 와라 내가 너를 사랑한다. 내가 너를 받아들이고 있다 어서 좀 와라” 라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마치 탕자의 아버지처럼 저 멀리서 어제 나오려나, 이제 나오려나, 라면서 끝까지 우리를 기다리고 계신 그분이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근이역에 달려가 그를 안고 입을 맞추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범위 좁지 않습니다. 원대합니다. 이 기근의 때에 돌아온 요셉의 형제들뿐만 아니라 무엇이라고 고백하고 있냐면요. 7절에 보면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나를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다. 라고 고백합니다. 여기에 보면 가족들뿐만 아니라 후손을 두시려고 했다. 라는 것을 원어로 보니까요. 남은 자더라고요. 렘넌트 무슨 말입니까? 여전히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그 자들, 우리가 123에 바에게 무릎 꿇지 않는 그 7천 명을 남겨주신 것을 가지고 함께 많은 목회자들이 기도하는 것처럼 여전히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기도하는 남은 모든 자들을 구원하시겠다. 라는 이 놀랍고 원대한 계획을 요셉을 통해서 보여주고 계신 것입니다.

요셉은 어려서부터 아버지 야곱으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자랐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듣고 너희 아버지, 너희 할아버지, 또 조부모에 이르기까지의 아브라함, 또 이삭 야곱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언약을 진실 되게 믿고 따랐다. 라는 것을 이 아들 요셉에게 사랑으로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그 어렸을 때 이야기했던 그 이야기가 요셉의 귀에 쟁쟁했어요. 그는 그 청소년의 나이에 이집트로 팔려갔지만 그 하나님의 언약을 끝까지 마음에 새겼습니다. 하나님이 분명히 이르실 것이다. 지난 날 동안의 날 동안의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의 섭리와 하나님의 뜻은 변개치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이루실 것이라는 이 믿음이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자녀 삼아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생명 주시려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습니다. 이 복음의 놀라운 사실은 우리에게 크고 놀라운 감동과 감격을 주며 우리가 살아갈 이유를 제공합니다. 아무리 어려움 가운데 있다 할지라도 이 모든 어려움들을 해치고 이겨나갈 수 있는 힘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부활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이 능히 이루실 것입니다. ‘능하신 이가 큰일 행하시니 그 이름 거룩해 내 영혼 주 찬양하며’~ 요셉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아요. 심지어 하나님께서 자신을 바로의 아버지로 삼았다 그 온 집의 주인으로 삼으셨다. 라고 고백합니다. 이 말을 해석해보면요. 내가 바라보다 높게 되었다. 라는 의미 아닙니까? 이거 반역자가 하는 이야기예요. 그런데 잘 살펴보면 요셉이 스스로 이인자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바로 요셉을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역사하셨기 때문에 바로의 아버지로 삼으셨다는 것이고 온 지배의 통치자로, 요셉을 삼고 계신다. 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의 직위는 더 낫지만 실제로 그는 더 위에 있었습니다. 이집트에 있는 모든 정책을 요셉을 통하여서 계획하였고 실행하였습니다. 이집트의 온 땅의 통치자는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이 나라의 주인은 누구십니까? 이 대한민국을 살리시는 그분은 누구십니까?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을 주인삼고 그 뜻대로 살아가면요. 낮은 지위에 있다 할지라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 하나님이 높여주실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위대하시기 때문에 우리도 위대합니다. 하나님이 빛으로 오셨기 때문에 우리가 빛의 사람으로 쓰임 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왕 같은 제사장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바로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요셉은 누구보다 견딜 수 없는 고난을 겪었지만 하나님이 주인이기 때문에 견뎌냈습니다. 그 모든 사건의 배후에 하나님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우리의 주어가 하나님임을 인정하십시오. 모든 상황을 뛰어넘어서 하나님이 역사하실 것입니다. 여러분, 여전히 용서되지 않습니까? 그 사람 때문에 오늘 하루 망쳤다고 생각합니까?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마십시오. 넘어지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섭리 속에 나를 끝까지 이끄실 것을 믿으십시오. 용서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화해하는 능력을 주실 것입니다. 견딜 수 없는 어려움이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이끌어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제가 그 군대 선임 용서했을까요? 용서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원한에 대한 그 안 갚음은 끝없는 악순환을 불러일으킵니다. 용서하지 못하는 내 모습을 바라보면서 이렇게 은혜를 깨닫지 못하는 자구나 너무나 부끄러웠습니다. 내 안에 괴물이 있다는 것을 그제서야 깨달았습니다. 정말 많이 울면서 회개했습니다. 그렇게 울고 있는 저에게 예수님이 찾아왔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으니 다른 사람에게 은혜로 응답할 힘이 생겼어요. 받아들일 힘이 생긴 것입니다. 이것은 내 지식과 나의 어떤 경험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한이 없는 은혜를 주시니 그저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더 이상 이 상처의 올가미들은 다 떠나가라. 라고 외칠 수 있었습니다. 마틴 루터킹 주니어 목사님은 “용서란 단지 가끔 하는 행동이 아니라 영구적인 태도다.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 줄 선물인 은혜와 용서를 지지하는 이 문화를 형성하는 것보다 더 위대한 것이 어디 있냐?”고 반문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용서라는 것은 우리 본성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하시기에 계속적으로 배우고 훈련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신다는 것을 믿고 따르면서 지속적인 은혜를 받아 누리셔야 합니다. 우리가 ‘2033, 50’ 비전을 가지고 나아가잖아요. 이 비전 받으면서 한 번쯤 이런 생각하죠? 그게 과연 우리의 이성적인 판단으로는 불가능해 보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십니다. 작년 ‘9.26일’에 보여주셨습니다. 많은 자리에서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을 우리 가운데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 이 나라 사랑하십니다. 대한민국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행하실 것입니다. 더 나은 미래를 향하여 나아가게 하실 것이기에 더 이상 과거에 매이지 마십시오. 미래를 이끌어와 현재를 그렇게 하나님의 뜻으로 살아가실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요약
이유 없이 모욕과 멸시를 받으시고, 피 흘리신 십자가에서 이 모든 것을 용서하신 예수님을 통해 용서받아서 용서하였다고 하면서도 왜? 이렇게 용서가 쉽지 않은지, 상처와 쓴 뿌리로 자신을 괴롭히는 이 꼬인 얼개들을 화해의 다리로 풀어주심을 확신하여서 옹졸한 편견으로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지 않아야 한다. 십자가 부여잡고 은혜에 빚진 자 되어, 먼저 용서하고 관계를 회복하기를 간구해야 한다. 하나님이 그의 섭리 가운데 열어주실 미래를 현재로 끌어와서 더 이상 맨 곳에 살지 않고, 빛과 제사장의 사명을 감당하는 인생 되어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어되는 인생길’을 걸어가는 삶이 되어야 한다.

▶사회 김대규 부목사님
나조차도 내 인생의 연약함을 바라볼 때 나조차도 내가 용납이 안 되는데 어느 누구인들 나 이 좁은 마음에 품고 그를 사랑하고 용납하며 용서하겠습니까? 하나님 은혜 주셔서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과 은혜 가운데 메이고 잠기는 이 시간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 믿음 가지고 주님 앞에 나아가는 은혜의 시간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의 제목 우리 보시면서 오늘 주신 말씀 기억하고 함께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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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2023년 10월 1일)
제목: "끝까지 잘 감당하십시다"
말씀: 디모데후서 4:9~11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대표기도: 유이삭 부목사님
사회: 천동원 부목사님
헌금송: 포에버 혼성찬양대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ㅡㅡㅡㅡㅡㅡ
 
*디모데후서 4:9~11,
9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10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11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ㅡㅡㅡㅡㅡㅡ

-오늘 아침 할렐루야입니다. 왜 할렐루야인지는 설명을 더 안 하겠습니다. 우선 우리 찬양대가 ‘아름다운 동산 주님의 동산’이 있는데 저 찬송은 우리 부친이 결혼식 할 때 불렀던 찬양이에요. 그러니까 70년 이상 한국교회의 영광스러운 찬양이었는데 참 명절에 부를 수 있는 그런 찬양인데, 여러분 가정 가정마다 주님의 아름다운 동산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오늘 이 주일 예배에 정말 사모에 나오셨잖아요. 많은 분들이 지금 지방에 내려가셔서 예배를 드리시는데 한국교회 5만여 교회 전체가 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아름다운 동산이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이 자리에 또 역으로 이때 가족들하고 같이 오셔서 지방에서 오신 분들 가운데요. 같이 예배드리는 분들은 주님의 치유와 위로와 능력이 함께하기를 바랍니다. 제가 이번 명절 기간에 저희 교회는 많은 상을 당했어요. 많은 어려움 토로하신 많이 계시는데 어쨌든 우리가 주님의 부름 받는 그날까지 모든 성도들은 오늘 우리가 96장의 귀한 찬송을 고백했잖아요. ‘예수님은 누구신가?’ 우는 자의 뭐에요? 위로, 없는 자의 뭐에 풍성, 눈 먼 자의 뭐에 빛이 되시고, 벌써 잊어버리셨습니까? 눈은 자의 빛이 되시고, 근데 고마운 거는 여러분들 오늘 찬양대 찬양하고 나니까 아멘 소리가 지난번보다 더 퍼센티지가 올라갔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까먹은 분들도 계세요. 그러니까 이 진리가 있어도 우리가 순종을 해야 내 것이 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여러분 이 내 것이 돼야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눈 먼 자의 빛이 되시고 없는 자의 풍성이 되시고 우는 자의 위로가 되시고 특별히 병든 자에 뭐가 됩니까? 고침이 되시고 수술이 있는 분들 치유가 필요한 분들 오늘 진정한 치유를 지금부터 경험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저는 잠깐 회복을 위한 부흥 시리즈를 잠깐 멈추고 오늘은 명절이기 때문에 평소에 제가 담고 있는 좀 우리 교우들이 평소에 우리가 다시 한 번 확인해야 될 그런 내용들을 좀 같이 오늘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명절에 가시면 같이 우리 가족들끼리 대화를 하다 보면 이분은 지금 신앙이 요즘 참 프레쉬 하구나. 또 계속 이렇게 좀 신앙이 좀 뜨거워져 있구나! 이제 그런 신앙을 뭐라고 하면 새싹 신앙이다. 싹이 잘 났다. 이렇게 근데 어떤 신앙은 또 예수 믿다가 시험 들어가지고 인간관계나 또 여러 가지, 본인이 생각하기에 자기 신념도 안 맞는 것 같고 자기 생각에도 안 맞는 것 같고 이래가지고 시험 들어가지고 신앙이 시들시들한 신앙도 있어요. 근데 또 어떤 신앙은 처음이나 지금이나 한 결 같이 푸르름을 간직하는 상록수 신앙이 있어요. 오늘 저와 여러분은 처음과 끝이 동일한 시종일관하는 한결같은 양은 냄비 있잖아요. 금방 뜨거워졌다. 금방 이게 아니고 어벤다운도 아니고 한결같은 신앙 유지할 수 있도록 오늘 말씀을 통하여 주님께서 여러분들에게 확고한 믿음의 토대를 형성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잘 아시는 대로 오늘 본문에 보니까 바울 사도가 바울 사도가 거의 생애 마지막 때까지 마지막 중에 마지막 디모데후서 4장은 마지막 중에 마지막 유언이고, 또 오늘 본문은 그 마지막 가운데 또 마지막 유언이에요.

바울 사도는 수많은 인생의 간난신고(艱難辛苦)를 거치고 수많은, 수많은 질곡(桎梏)을 거치고 인생을 살아왔지만 오늘 제가 이 4장 본문 18절을 보면서 가슴이 뭉클한 거예요. 가슴이 뜨거워진 거 오늘 본문 18절 18절을 다 같이 보겠습니다.

*디모데후서 4:18,
18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주께서 나를 뭐예요?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바울은 그를 죽이겠다고 특공대를 조직해 가지고 40여 명이 죽이겠다고 난리를 치고, 그다음 그 한 생애가 그렇게 많이 있었지만 결국은 바울의 마지막 고백은 주께서 나를 뭐요?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나를 구원하신다. 결국 이것이 피니싱 웰 이에요. 인생 마지막 성공이다 이 말이에요. 바울처럼 이렇게 될 수 있도록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한 두세 가지 교훈을 받아야 되는데, 첫째 데마를 통하여 받는 교훈이 있어요.

I. 첫째 데마를 통하여 받는 교훈이다.
-오늘 데마는 뭐라고 하냐면, 데마 본문을 보겠어요.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10절에 뭐라고 돼 있어요?

*디모데후서 4:10,
10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우리는 데마를 통하여 받는 교훈이 뭐냐? 데마는 시작은 좋았어요. 근데 끝이 안 좋은 거예요. 데마가 어느 정도 시장이 좋았냐 하면 골로새서 4장 또 빌립보서 1장 같은 데 보면요 바울의 골로새서 4장 보니까, 나의 동력자 마가와 데마가 너에게 무난하느라. 그렇게 바울의 동역자의 반열에 들어섰어요. 바울과 함께 감옥에 갈 정도로 그렇게 용맹했어요. 그럼 그가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여러분 시작이 화려하면 화려할수록 끝이 안 좋으면 더 비참하죠? 한때 우리 신앙생활 처음 잘한다고 그러고 막 또 그러다가 근데 나중에 급전직하 대마를 보면서 그런 걸 느끼는 거예요. 마치 저 롤러코스터 저 꼭대기에 올라갔다 그대로 내려박는 그런 느낌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이런 분이 아무도 없기를 바라는 거예요. 데마는 처음에 바울을 보니까 바울이 굉장했어요. 바울이 가는 곳마다 역사가 일어나고, 심지어 바울의 수금만 던져도 막 죽는 사람은 살아나고 난리가 나니까 야 세상에 이런 희한한 게 어디 있냐? 이 사람 따라가면 내가 이제 내 인생 성공이 될 것이다. 이렇게 바울을 따라가는데, 나중에 가만히 보니까 바울이 오늘 이 시점에 보니까 바울이 순교당할 것 같거든, 로마 감옥에 갇혀가지고 이제는 선교당할 것 같으니까 아이고 이 바울 따라갔다는 내 인생 종치겠구나. 이런 생각해가지고 시험이 드는 거예요. 미혹의 영이 사탄이 그를 충동질해 가지고 시험했던 것 그 세상을 사랑하여 데살로니가로 갔다. 그래서 우리 초대교회 전성 사에 보면 데마가 대산을 끌어와서 뭐 했나 그 이방 신전에 창부가 되었다. 생각보다 훨씬 비참한 그런 결과가 일어났다. 이런 초대교회 전성사가 있어요. 우리가 뭐 이런 교회의 전상을 보면서 데마를 보면서 깨닫는 것이 뭐냐? 처음에 화려하게 시작할수록 끝이 안 좋으면 안 되고 처음에나 끝이 동일한 축복을 주시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그럼 데마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 왜 이렇게 데마가 급전직하 한때는 바울의 동역자요. 한때는 바울과 함께 감옥에 갈 정도의 동지였는데 어떻게 이리 될 수 있었을까? 가만히 따져보면 미혹의 영에 쏟고, 참 진리에 대한 눈이 어둡고 그런 거 있지만 한두 가지를 생각을 첫째는 뭐냐 하면 데마의 속사람의 능력이 없는 거예요. 우리 식으로 하면 복음을 통한 진정한 속사람의 능력이 한결같지가 않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의 속사람 우리가 왜 약합니까? 우리가 못 먹어서 허약합니까? 못 입어서 해약합니까? 아닙니다. 선진제국은 선진국에 가면 대통령도 햄버거 먹고 거지도 햄버거 먹습니다. 먹는 거 비슷한 거 많아요 입는 거 비싸죠. 캘리포니아 같은 데 가면 사시사철이 비슷하기 때문에 특별히 옷도 잘 입을 것도 없어요. 다 비슷비슷해요. 근데 사람의 능력과 사람의 차이는 어디서 오느냐 여러분과 제가 예수를 믿었다 복음을 믿었다 했을 때에는 늘 제가 강조하지만 어마어마한 거라는 거예요. 왜냐하면 우리의 속사람이 새롭게 된 것이에요. 우리가 우리 휴먼 빙, 우리 인생 자체가 이노 빙 우리의 속사람 자체가 완전히 트랜스 폼(transform) 된 거예요. 이전 것이 아니라 새 사람이 된 것이에요. 새 사람의 능력이에요. 데마는 한때 자기 의지와 어떤 자기 신념 가지고 이렇게 할 수는 있었지만 그의 속사람이 진정 능력 받은 사람이 아니었어요.

속사람의 능력은 어떻게 결정됩니까? 주님과의 관계에서 어떻게 결정되는 거예요. 주님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어떻게 결정됩니까? 주님을 향한 전적 위탁의 경험이 있느냐, 없느냐 그리고 그 전적 위탁의 능력을 끝까지 지속하느냐, 아니냐 거기에 달려 있는 것이에요. 따라서 저와 여러분의 삶의 형편 가운데서 너무 모든 것이 너무 잘 돼가지고, 내 자신만 의뢰하고, 환경만 의뢰하고, 내 상황만 의뢰해도 내가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속사람의 능력을 개발할 기회가 별로 없어요. 근데 몸이 아프다든지, 아니면 뭐 환경적으로 어렵다든, 자식이 골 때린다든지 죄송합니다. 하여튼 아니면 정말 어렵다든지 이런 것 때문에 어떻게 마음 둘 데가 없어가지고 내 인생에 내 삶에는 주님 밖에 내 삶의 유일한 위로와 능력이 없습니다. 주님만이 나의 전부입니다. 하고 주님께 전적 위탁한 경험이 있느냐, 없느냐 이것이 바로 속사람의 능력을 결정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세상 일이 너무너무 잘 돼가지고 주님만 저처럼 위탁할 수 없다면 그것은 속사람은 약한 것이고, 내가 좀 힘들고 어려운 환경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아니 이거 주님 없으면 어떻게 할 수가 없다고 주님께 전적 위탁할 수밖에 없는 그 상황 자체가 여러분들의 속사람의 능력을 강화시켜주시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오늘 예수님은 누구신가? 이 찬송을 해도 속사람의 은혜가 있는 사람은 눈물이 펑펑 나는 거예요. 속사람이 강건하지 못한 사람은 늘 자기중심이에요. 자기중심 자아가 살아있는 것이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자아를 깨뜨리시고 그 속에서 하나님이 일하시고 속사람의 능력을 강건하게 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우리 상황 속에서 모든 상황 가운데서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의뢰할 수밖에 없는 그 상황이 우리의 속사람의 능력이 강화되는 기회인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 없으면 못 사는 것이에요. ♬나는 주님만으로 참 만족을 누리네. 세상 영광 다 준데도 주님과 못 바꾸네. ~♬.

II. 둘째 데마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그 비전이 없었다.
-데마에게 뭔가 내 생애를 바쳐도 될 만큼, 내 생애 전체를 불태워도 될 만큼 더 큰 하나님이 주시는 그 비전이 없었어요.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 없었어요. 그의 생애를 붙잡고 그의 인생의 수레를 끌고 나갈 만한 한 결 같이 흔들림 없는 큰 사명과 목표가 없었어요. 데마가 도중에 하차한 이유는 웬만한 어려움을 이겨낼 만한 더 큰 삶의 목표가 약했다는 것이에요. 하나님이 주신 더 큰 비전이 없었다는 것이에요. 세상 살다 보면 이런저런 우여곡절 우수(憂愁)사례(事例) 많이 있지만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이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는 사명과 비전을 주신 줄로 믿습니다.

난 지금도 기억 하는데, 어릴 때 우리 부친은 저한테 현아, 현이는 ‘포부의 수레’를 그리스도에게 매라. 초등학교 다닐 때, 포부의 수레가 뭔가?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지만 포부의 수레를 그리스도에게 바라라.

여러분의 사명과 비전과 여러분의 꿈들을 주님에게 메고 가는 평생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여러분 제가 요즘 이 아시안게임 하는 걸 제가 이 소식을 들으면서 왜 왜 저렇게 큰 감동이 있을 것인가? 아시안게임 우승했다고 해서 큰돈이 들어옵니까? 그것도 아니잖아요? 그런데 국가대표를 하고 올림픽 대표를 하면 사람들이 왜 가슴이 뛰는가? 그분들의 기사를 읽어보니까 그들이 개인의 이익보다도 더 큰 조국을 위해서 뭔가 할 수 있다는 발음을 잘 해야 되겠습니다. 조국을 위해서 뭔가 할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소중하고 가치 있게 느껴진다는 것이 그래서 개인의 한계를 뛰어넘는 영광스러운 경험치를 얻는 것이에요. 더 큰 자신보다도 더 큰 무엇에 사로잡힌다는 것 고귀하고 특별한 것인 거예요. 그러니까 더 큰 삶의 목표, 하나님이 주신 더 큰 비전에 사로잡혀 있으면 웬만한 어려움이 와도 흔들림이 없다 이 말이야. 6절 보세요. 오늘 본문 16절에 보니 내가 16절에 보니까 내가 처음 변명할 때 나와 함께한 자가 뭐예요? 하나도 없어.

*디모데후서 4:16,
16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 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그들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
-기가 막힐 삶, 바울이 법정에서 고통을 당할 때 다 그를 버리고 떠나버렸어요. 그래도 바울은 흔들리지 않았어요. 바울의 속사람의 능력이 더 큰 비전에 사로잡혀 있다 보니까, 다들 도망가도 오케이! 대신 다 버리고 도망갔지만 17절에 완전히 반대 17절에,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에게 힘을 주시면

*디모데후서 4:17,
17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에게 힘을 주시면 나로 말미암아 선포된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모든 이방인이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짐을 받았느니라.
-우는 사자같이 마귀는, 우는 사자같이 이럴 때, 저럴 때 온갖 환경을 통하여 우리를 시험하고 물어 뜯고 다 하는 거야. 그래도 시험 안 드는 이유는 바울은 더 큰 하나님의 비전에 ‘복음을 위하여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그렇게 하고 나니까 주께서 자기와 당신과 함께 다 하는 그것을 느끼게 되니까, 웬만한 일에도 흔들림이 없는 것이 이방인에게 복음 선포의 사명을 갖고 더 큰 비전을 갖고 있으니까, 오늘 사랑의 교회 모든 제가 ‘2033, 50’ 비전을 저게 뭔가 그러지 말고 이런 내용들이 나왔을 때 여러분 기억을 하시고 여러분 가정을 이루어 가시든지 여러분들 개인의 삶을 살아가는 가운데서 하나님이 나에게 더 큰 비전에 사로잡히라고 하시는 거구나. 내 배만 두드리다가 인생 살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더 큰 비전에 사로잡히게 하시는가 보다. 이렇게 생각하시고 웬만한 비전은 웬만한 어려운 환경은 그냥 툭 튀어 넘어가시길 바랍니다. 다시 한 번 16절 16절 뭐라고 되어 있어요? 내가 처음 변명할 때 나와 함께한 자가 뭐예요? 하나도 없어 변명할 때라는 것은 뭡니까? 법정에 서서 자기변호하고 말할 때에 다 버리고 도망갔어요. 그리고 그들에게 허물 돌리기를 원치 않았어요. 그 이유는 뭐냐 17절에 주께서 더 강하게 나와 함께 하여 주셨기 때문에, 그럼 내 비전이 이방인의 사도가 되는 그 비전을 위하여 생애를 드렸기 때문에, 내가 사자의 입에서 우리가 지금 이방인의 사도가 다 될 수는 없지만 오늘도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사랑의 교회와 한국교회에 주신 비전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2033년이 될 때까지 이 민족의 주의 50%가 예수 믿게 하여 주십시오.

다시 말하면 북한은 무슨 일이 어떻게 벌어질지 모르는 것이에요. 한때 강남의 유행어가 있어요. 80년대, 90년도에 그때 막 우리 한국교회가 불타는 날 때, 그때 강남의 유행어가 뭔지 압니까? 아직까지 교회 안 가고 있냐? 이게 강남의 유행어였어요. 그때 그걸 누가 정말 한국교회 모든 성도들이 비전을 가지고 다 잡았으면 우리 민족 50% 복음화 되었을 텐데,,, 속사람의 능력과 더 큰 비전에 사로잡혀가지고 여러분 우리의 삶의 모든 과정들을 이겨내기를 바랍니다.

III. 셋째 중간에 넘어졌으나 다시 일어나 끝이 좋은 인생이다.
-마가를 통하여 배운 것은 뭐냐? 중간에는 넘어졌지만 다시 일어나 끝이 좋은 인생이 됐어요. 마가 요한이라고 볼 때 마가는 라틴식 이름이고 요한은 히브리식 이름이에요. 마가는 여러분 부잣집 도련님이었어요. 오순절 성령 강임 때 어디에 성령께서 역사하셨죠? 마가의 다락방이죠. 여러분 다락방에 120명이 들어가면 그 집이 큰 집입니까 작은 집입니까? 해석이 되시죠? 베드로가 옥에 갇혔을 때, 어디서 기도했어요? 사람들이 사도행전 12장에 보면 마가의 집에서 기도했어요. 그러니까 집이 컸기 때문에 부잣집이었기 때문에 예배와 기도 처소를 제공하는 그런 신실한 집안이었어요. 그리고 마가의 그 집안에 삼촌이 지금 생질이 마가니까 삼촌이 바나바인데 바나바 그 집안에 바나바도 부유했기 때문에 사도행전 4장에 보니까 자기 집에 집을 팔아가지고 헌금을 하는 얘기가 나와요. 그 정도로 부잣집 도련님이었어요. 그래갖고 은혜를 받아갔고 내가 바울과 함께 또 전도 여행을 해야 되겠다. 1차 전도여행을 하는데 너무 힘든 거예요.

그 당시에 무슨 뭐 ktx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비행기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제대로 된 교통수단이 없으니까 늘 걸어 다니니까, 부잣집 도른놈이 뭐야 발톱이 다 빠지고 그다음에 뭡니까? 그다음에 진물이 나고 난리가 나니까, 이 견뎌내겠어요? 풍찬노숙하고 걸어야 되고 그래서 사도행전 13장에 보니까 너무 고생이니까 도중하차를 해버렸어요. 이 사건 때문에 잘 아시는 대로 사도행전 15장 39절에 보니까 마가를 2차 선교에 데리고 가려고 데리고 갈 것인가 말 것인가 할 때 영적 거장인 바나바와 바울이 대판 싸웠어요. 제 얘기가 아니고 사도행전 15장 39절에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졌다.

*사도행전 15:39,
39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제 얘기가 아니고 사도행전 15장 39절에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졌다. 이 말이 됩니까? 이게 그 영적 거장들이, 마가 때문에 그 정도로 골칫거리였어요. 근데 오늘 11절에 본문 11절에 이 본문은 바울의 유언 중의 유언 최후의 유언이라고 그랬어요.
*디모데후서 4:11,
11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다. 전에는 마가 때문에 바나바와 바울이 대판 싸우고 있는 원인을 제공했는데 지금은 복음 사역에 너무너무 유익하다. 마가는 중간에 넘어지긴 했지만, 나중에 베드로의 믿음의 아들이 되어가지고 베드로를 따라다니면서 통역관 역할을 또 하고 그리고 그 놀라운 마가복음을 기록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복음주의에 의해서 마가복음이 없으면요. 자유주의 신학으로 넘어갈 만큼 마가복음은 강력한 역할을 하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 마가복음에 가장 많이 나오는 부사가 뭐냐 곧 즉시예요. 영어로 이미디어틀리 곧 즉시(Immediately). 날에는 자기가 비리비리하고 또 그냥 시험 들고, 중하차하고 이런 잘못된 인생을 살았는데 마가복음을 기록하면서 아니야 복음은 즉시야. 음은 바로 순종해야 돼. 그래서 마가복음 군더더기가 별로 없어요. 16장까지 있으면서 아주 확실하고 분명한 선포를 하고 있는 것이에요. 리고 더 중요한 거 이제, 중요한 거는 누가 닥터 누가 11절에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누가 함께 있다고요 누가 만나고요? 그 니까 이 누가는 시작부터 끝이 한결같은 인생이었어요. 오늘 이 일부 예배 나오신 여러분들과 저는 주님 앞에 서는 그날까지 시종일관(始終一貫) 한결같은 시들시들하지 아니하고, 새싹 신앙부터 시작해가지고 늘 푸른 상록수 신앙의 은혜를 주시기를 바랍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잘 하는, 근데 누가가 어떻게 이렇게 처음 누가 잘 감당할 수 있었는가? 누가의 직업이 뭐라고요? 다시 누가의 직업이 뭐라고요? 의사, 의사 의사는 정치한 사람들입니다.

정치(精緻)하다는 말은 정교(精巧)하고 치밀(緻密)합니다. 정교하고 치밀하지 못하면 어떻게 수술을 하겠습니까? 어떻게 그 환자들을 고칠 수 있겠습니까? 근데 이 정치하는 사람들이 갖는 약점이 하나 있어요. 그건 뭐냐 하면 전체를 못 보는 거예요. 마이크로 한 사람은 메크로가 안 되는 거예요. 또 메크로 한 사람들은 마이크로가 부족할 수 있는데 놀라운 거는 누가는요 역사학자였어요. 그래서 여러분 누가가 뭘 썼어요? 누가 복음 쓰고 누가가 또 뭘 썼어요? 사도행전을 바울이 썼어요. 제가 우리 제자 훈련할 때 그런 얘기를 합니다. 사도행전을 바울이 썼다. 그러면 나는 돌아가시고 싶다고,,, 사랑의 교회 성도들 수준에서는 사도행전을 다시 누가 썼다고요? 누가가 썼어요. 사도행전은 성경에 나타나는 역사 행전이에요. 역사적 통찰력이 막강합니다. 그리고 사도행전은 성령행전이었어요. 그 정치하고 치밀하고 똑똑하고 섬세하고 디테일한 그 누가가 전체 역사를 메크로 하게 보고 하나님 나라 전체에 대한 눈이 열린 거예요. 그렇게 하나님 나라 역사의 전체의 눈이 열린 이유가 뭘까? 제가 한번 묵묵하게 생각해 봤어요. 아마 누가는 요한에게 영향을 많이 받았을 거예요. 요한은 누 누가에게 아마 많은 말을 했을 거예요. 그게 요한복음을 통하여 확정된 것이니까. 그러니까 복음의 진리 누가 닥터 누가 의사는 의사이지만 정치자지만 전체를 보는 눈을 가졌는데, 그 요한이 말한 신비한 복음의 능력이 돼서 이 누가가 눈이 열려가지고 그 눈이 열려서 성령의 역사에 충만해가지고 하나님께서 누가를 쓰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성령의 역사가 충만하다고 했을 때, 누군지 그리스도의 사람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그러고 그리스도의 영이 있다는 것은 우리가 암송할 때 하는 것인데, 육신의 사람은 육신의 생각을 하지만 성령의 사람은 성령이 뭘 한다고요? 생각을 하는 거예요. 누가는 성령의 생각을 하니까 사도행전 1장부터 28장까지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전체를 바라보는 안목이 생긴 것이에요. 요한을 통하여 깨달은 성령이 주시는 깨달음이 뭐냐 요한복음 1장 1절에 ‘태초의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신 이 말씀이 곧 뭐예요? 하나님이시더라. 그러니까 이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가 말씀이 그리고 14절에 보니까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 누구십니까? 예수 그리스도, 말씀이 육신이 되 우리 가운데 거하셨는데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까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예수 그리스도 말씀이 육신이되 우리 가운데 거하시고 복음적 진리와 성령의 역사에 눈을 떠가지고 성령으로 깨닫는 은혜와 진실 그래서 그 예수님이 뭐 은혜와 뭐예요? 진리가 충만하더라. 그러니까 그 누가가 깨달은 역사적 시각과 통찰력과 누가 깨달은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뭘 깨달았는가? 요한이 깨달은 그 진리가 그대로 누구에게 연결이 되고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연결되는 줄로 믿습니다.

이거예요. ‘태초의 말씀이 계시느라.’ 이 말씀이 이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시고 예수님이 천지창조에 동참하시고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심에 독생자의 영광이고 그 독생자의 영광의 핵심이 뭐냐?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예수 그리스도가 은혜와 진리라는 것이에요. 누가는 여기에 대해서 저의 눈을 떴기 때문에, 누가복음도 마찬가지고 사도행전도 마찬가지고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능력을 그 사도들의 그 어떤 그 본질을 계승을 한 것이에요. 너무 중요한 얘기인데 이 은혜는 뭡니까? 은혜는, 은혜는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를 통한 선물이 은혜예요. 진리는 뭐예요? 이건 하나님의 뜻이에요.은혜가 선물이라면 진리는 하나님의 뜻을 우리가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에서 우리가 눈을 열고 그 진리를 우리가 순종해야 진리가 진리 되는 것이에요. 이게 너무 중요한 거예요. 누가는 이 사실을 가지고 사도행전 전체를 쭉 써 내려가는데, 그럼 오늘날 여러분과 저는 누가를 통하여 한결같은 신앙의 진실을 가지고 시종일관의 능력을 받아야 되는데, 우리가 냄비 끓듯 왔다 갔다 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어벤다운 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너덜너덜하지 아니하고, 신앙에 시들시들하지 아니하고 한결 같은 걸 쭉 유지를 하려면 적어도 누가가 보았다. 누가 누가는 나와 함께 있느니라. 바울은 사도 끝까지 갈 수 있는 그 안복이 뭘까 오늘 누가 깨달은 성령의 능력을 통하여 사도행전을 서 기록해야 우리도 같이 내 기록해 가야 된데 그게 진실이에요. 그리고 진실은 우리가 순종해야 우리 것이 되는 것이에요.

제가 이 말씀을 왜 드리느냐 하면 제가 요즘 우리나라를 가만히 보면요 진영 논리가 복음적 진실을 뛰어넘어버렸어요. 적어도 사랑의 교회에 속한 성도들이라면 명절이니까, 우리가 우리 자신을 속히 보면서 우리 민족의 역사 뜻으로 본 한국 역사, 그런 말이 있지만 우리는 복음과 진실로 본 한국 역사에 대해서 눈을 열어야 되는 것이 다시 진영 논리가 복음적 진실을 뛰어넘지 아니하고 복음적 진리가 진영 논리를 뛰어넘어야 되는 것이에요. 그러면 우리 한국교회를 향한 우리 이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복음적 진실이 뭐예요? 건국 누가 하게 하신 거예요. 독립투사들이 애를 쓰긴 했지만 그거는, 그거는 메인이 아니에요. 건국은 누가 하신 거예요? 하나님이 하신 거예요. 6 25 전쟁 누가 막아주셨어요? 저 공산당 비 진리 저것들이 내려와 남침을 했는데, 다시 누가 막아주셨어요? 인천 상륙 작전 누가 하신 거예요? 하나님이 하신 거예요. 이게 복음적 진실이에요. 그 외에 나머지들은 다 우수마발(牛溲馬勃)이에요.

여러분, 제가 말씀드렸잖아. 고려는 귀족의 나라 불교가 핵심, 이조는 사대부의 나라 양반의 나라 뭐가 핵심이에요? 유교의 핵심, 그러나 대한민국은 처음으로 백성의 나라 기독교가 정신이 된 나라인 줄 믿습니다. 이게 복음적 진실인 거예요. 그런데 내가 유튜브라든지, 한 번씩 보면요 황모모란 이상한 역사학자들이 나와는 순 거짓말들이에요. 전부 다.. 완전히 진영 논리야. 여러분들 속아 넣으면 안 돼요. 여러분 다른 거 아무리 얘기하더라도 우리나라가 건국이 안 됐으면 다 꽝이에요. 하나님이 이 민족을 건국시켜주신 줄로 믿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복음적 누가는 이런 역사적 통찰력이 있었던 거예요. 그러니까 지금도 복음적 진실을 얘기하고 그렇게 얘기하면 어떤 사람들은 자기 진영에 안 맞다고 나가는 사람이 있어요. 우리 교회는 그런 거 많이 없는데요. 어떤 다른 데 가보면요 이 좌파 진영 논리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 얘기하면요. 얘기하면 그냥 나가버리는 거예요. 이게요. 진실이 복음적 진리가 자기 신념을 이기지 못한 거예요. 오늘 사랑의 교회 모든 성도들은 복음적 진리가 여러분들의 삶의 이 진영 논리를 뛰어넘는 은혜를 주시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여러분 우리나라는 뭐라 뭐라 뭐라 해도 공산주의에 안 된 것이 진짜에요. 역사가들은 늘 얘기합니다. 우리 남 잘 되는 거, 우리 막 우리 왜냐하면 왜 우리는 남 잘 되는 거, 우리 속에 좋아하잖아요.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나라에 우리나라는 미국 같은 큰 나라들은 남 잘 되면 같이 박수 치고 같이 잘 되는데 우리는 한반도 내에서 수천 년 내려오면서 옆집에 숟가락이 뭐가 있는지 다 알기 때문에, 저거 나와 비슷한 인간인데 잘 돼 그러면 그냥 무고하고 이런 게 이런 게 역사적 명맥이 흐르는 게 많이 있어요. 그래서 유명한 얘기가 있어요. 대한민국 어떻게 공산화 안 됐나? 그게 기적이고, 우리는 다 공산주의, 공산주의 될 만한 그런 사회주의적 성향이 우리에게는 충만한 나라에 우리나라는 일본보다 고소가 고소, 고발이 얼마나 많아요? 공산당은 선전 선동의 규제예요. 자식도 부모를 고소하는 게 그게 공산주의 흐름이에요. 문화혁명을 보세요. 과거에 북한에 침략해가지고 남한 와가지고 다 점령해가지고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한번 보세요. 가족을 죽이고, 부모를 고발하고, 근데 중국은 진짜 돈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얼굴이 동글동글 하잖아요 중국은 그런데 그 중국이 공산화됐다. 이걸 또 기적이야 이게. 그러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그러니까 하나님이 보호하사 우리나라 만세야 정말, 왜냐면 제가 이 말씀 들은 한국교회 교회 내에도 어연 논문이 너무 많고 한결같지도 못하고 우리 안나가 가난한 교회 성도들을 만든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가 교회 내의 좌파 세력들이, 교회 내에 이런 논리를 가지고 교회를 찌르고, 목회자가 부자가 많죠. 그래도 그 목회자를 찌르고 난리 치고 이렇게 해가지고 교회가 어려워져 가지고 교회가 어려움당한 게 너무 많다 이 말이에요. 우리는 복음적 진실에 눈이 열려가지고 여러분 진리는요 순종해야 진리가 되는 거예요. 은혜는 하나님이 주권적 역사를 주시는 것인데, 진리는 우리가 순종을 해야 되는 거예요. 그 복음적 진실에 눈을 떠가지고, 여러분 공산주의 사회는 3%만 5%만 난리 쳐도 그 사회는 공산주의가 되는 거야. 왜냐하면 일반 사람들은 힘이 없어요. 3% 5%가 똘똘 뭉치고 선전 선도에 능하고 그다음에 이 전투력 강화하고 이러면요 감당할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유일하게 감당할 사람이 한국 교회예요. 만약 한국교회 없었으면 우리 진짜 어려워질 뻔했어요. 진짜. 그러니까 여러분 정신 바짝 차리고 나는 일부 예배에 이런 설교를 해도 아무도 안 나가는 거에 대해서 할렐루야. 감사. 아마 아마 아마 아닙니다. 주는 경우 아마 3~4부 때는 한두 번 나갈 수 있을 거야. 아마 내가 볼 때 난 지금도 선연이 기억해요. 명절이니까 이런 얘기 맙시다. 선영이 국가보안법 폐지, 그때 막 심각해졌을 때, 내가 부임한 지 얼마 안 됐어요. 한 2~3년밖에 안 돼가지고 막 힘들었을 때 교회는 불처럼 부흥하고 그랬을 때, 옥목사님이, “야 옥목사 이럴 때 교회가 바로 가야 안 되겠나?” 맞습니다.

그래서 임시당회를 소집해 가지고 우리 교회는 지금 남북이 대치된 상태에서는 국가보안법 폐지가 바로 가는 거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국가보안법 폐지는 우리 교회 당회가 정식으로 우리는 폐지하는 거 반대합니다. 그게 그때 우리의 결론이었어요. 그래갖고 제가 일부 예배 마치고 광고 시간에 우리 국가보안법 폐지는 지금 남북 대치된 상황에서 만약에 폐지돼가지고 공산당이 이 사람들이 막

다 작당을 해가지고 난리 치면 아무도 못 막으니까 국가보안법 폐지는 지금은 시기상조 안 된다고 하니까요. 일부는 박수를 하더라고 특별 광고 2부부터 응응 소리가 나기 시작하더라고요. 사람이 나오기 3부부터 많이 나오기 시작하더라고 사업을 그날 제가 그 광고하고 우리 교회 한 한 20~300명 교인들을 놓쳤어요. 내가 지금도 가슴이 너무너무 아파. 한 주에, 여러분, 다시 얘기합니다. 복음적 진실이 진리가 진영 논리를 뛰어넘어야 합니다. 다른 거 다 필요 다른 거 복잡한 얘기 많아요. 다 있겠지만 우리나라 건국 안 됐으면 우리나라 이미 공산화 벌써 됐어요. 아시겠어요? 사실 건국 누가 있습니까? 6.25 누가 이기게 했습니까? 지금 휴전선 저거 안 무너지는 건 누가 하시는 겁니까? 물론 국가가 애써 수고하지만 우리가 기도하고 하나님이 불쌍히 여겨주셔서 서 안 뚫린 거예요. 사랑의 교인들은 적어도 여기에 있어서는 확고하게 신념을 갖고 있어야 되는 거예요. 아멘. 여러분들이 기도하셔가지고 우리 마가처럼 회복되거나 아니면 누가처럼 끝까지, 끝까지 데마처럼 처음에는 화려하지만 중간에 나가떨어지는 그런 분들이 아무도 없기를 바랍니다.

오늘 이 본문에서 마지막 부분 보니까 데마, 마가, 누가 얘기하고 난 다음에, 쭉 이제 끝인사에 19절부터 브리스가와 아굴라 및 오네시보로 집안의 문을 쭉 해가지고 사람의 눈이 쭉 나오죠? 브리스길라, 아굴라 오네시보로 모든 사람들 바울의 동력 자 이름이 나오는 것입니다. 바울도 그 영적 거상도 동지들이 없으면 영 가족이 없으면 끝까지 갈 수가 없습니다. 디모데, 누가, 마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그리고 바울은 좋은 믿음의 후배를 남겨가지고 교회를 돌볼 일꾼들을 세워서 남겼습니다. 누가를 남겼고 남겼습니다. 우리 다 함께 끝까지, 지금 아시아 올림픽 하고 있는데, 올림픽 보고 잘하네. 이러지 말고 예수 믿는 사람들은 ‘나도 신앙생활의 챔피언이 돼 봐야지’.

여러분 신앙생활의 챔피언이 될 수 있도록 은혜 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랜만에 복음적 진실이, 진리가 세상 진영 논리를 뛰어넘기를 이렇게 마음이 결심하고, 우리 누가처럼 역사적 통찰력과 성령의 능력을 의존해 가지고 승리할 수 있도록, 오래간만에 아주 옛날에 불렀던 찬양, 우리 30~40년 열심히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I have decided to follow Jesus, I have decided to follow Jesus! no turning back, no turning back.~~~
주님 뜻대로 살기로 우리가 주님의 온전하시고 완벽한 뜻이 있는 거예요. 살기로 그다음 뭐예요? 노 터닝 백, 노터닝 백, 뒤돌아서지 않겠네 끝까지 가겠네. 이 찬송 흐름은 어떻습니까? 제가 1부는 엄청 좋아할 걸 제가 압니다. 근데 4부는 이 찬송 잘 모를 거예요. 이게 우리 옛날 주님 뜻대로,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주님 뜻대로 살기도 했네. 뒤돌아서지 않겠네. 주님 뜻대로 할 뒤돌아서지라. 뒤돌아서지 않겠네... 할렐루야. 누가 뭐라던 간에 이 역사적 사명을 끝까지 잘 감당하는 주의 종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요약
우리가 마음 둘 곳 없는 세상에서 포부의 수레를 그리스도께 맡기고 전적 위탁하여 속사람이 강해지는 평생이 되고, 데마처럼 속사람의 능력이 허약해가지고, 마가처럼 자기만 생각하다가 세상을 사랑하여 중도에 넘어질지라도 회개하여 일어나 끝이 좋은 누가처럼 시종일관 한결 같은 역사적 통찰력과 성령의 역사와 복음적 진실에 눈을 뜬 상록수 신앙인이 되어야 한다. 포부의 수레를 그리스께 전적으로 매게 맡기고 날마다 주님께 전적 위탁하며 속 사람이 강해지는 자로 평생을 살아가야 한다.
-바울은 디모데가 함께 있어서 도움을 주기를 원했다. 그 이유로는 여러 사람이 그를 떠났기 때문이었다. 바울은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렸다'고 말한다. 이 현세를 사랑하는 것은 종종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와 도에서 떠나는 이유가 된다.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떠나갔고 또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다. 누가는 계속해서 바울과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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