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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흥헌신토요비전새벽예배(주후 2023년 9월 30일)
제목: "마음을 비우다"
말씀: 빌립보서 2:5-8
찬양인도: 창목회 찬양대
사회: 김대규 부목사님
말씀읽기:김지민 어린이(유년부 쌍둥이), 김지한 어린이
 
설교자: 하영록 목사님-초빙(SaGA명예회장,팀하스 회장)
추석 음악콘서트 사회: 조성환 부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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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빌립보서 2:5-8,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 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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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하영록 목사님-초빙(SaGA명예회장,팀하스 회장)
-감사합니다. 목사님 그리고 고마운 성도님들 참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많이 보고 싶었습니다. 정말 오래간만이네요. 그동안 다들 상상도 못했던 사람들과 고백을 넘고 주님의 보호 아래 오늘까지 계신 하나님께 먼저 감사를 드립니다. 추석 잘 보내셨습니까? 저는 아주 송편 못 먹어봤습니다. 확실히 예배 끝나고 나서 어마어마한 송편이 올 것 같아요. 느낌상 저는 일주일 전에 한국에 도착해서 제 바로 제가 태어난 경주에서 4박 5일을 지내고, 그다음에 바로 부산에 가서 3박 4일을 지내면서 내가 다른 곳에 있다가 어제 저녁에 돌아왔습니다. 서울로 서울에 올라오는데, 야! 미국에서 한국에 오는 딱 반 시간이 걸렸어요. 추석에 우리 모두들 풍성한 한가위가 되기를 서로 빌면서 서로 가족을 찾아가면서 참 했지만 이 행복하고 반가웠던 것도 보면 오래 가지 못하는 것도 우리가 체험할 수가 있습니다. 꼭 우리 가족 중에서 한 사람이 이 아름다운 즐거운 생활에 이 찬물을 끼얹는 사람들이 꼭 있어요.
 
근데 이상하게 그런 소리 이런 소리를 하면 찬물을 직접 끼얹는 사람은 무슨 소리인지 몰라요. 자기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성경의 말씀을 평생 듣고 배워도 그 속에 있는 진리와 지혜가 정말 한없이 깊고 넓고 높아서 우리가 정말 다 알 수가 없어요. 요새 ai도 있고 컴퓨터도 있고 하지만 우리 행동에 관해서는 이거 사실 다 알아야지, 우리 속의 움직임 속에 그런 것이 다 보일 텐데 그렇지 못하면 우리가 실천을 하기가 너무너무 힘듭니다. 평생 어릴 때부터 설교를 일주일에 두 번 들었다고 계산합시다. 두 번 곱하기 52주가 있으니까 곱하기 하고 또 한 한 50살 한 50년 정도 들으면 설교를 수강한 시간이 5천 200시간이 나옵니다. 이렇게 새벽 기도를 열심히 나오는 분들은 한 만 번 아니면 2만 번의 수강 시간을 했을 겁니다. 또 한 번 계산을 해봤어요. 4년 학사를 공부하면 1440의 시간을 들으면 학사 졸업장이 나와요. 다들 어렵다고, 어렵다고 하는 이 석사도 계산을 해보니까 어떤 데는 1년 2년 3년에서 끝나는데, 평균적으로 700씩만 집어넣으면 석사 졸업장이 나와요. 그러면 학사 석사를 졸업장을 가지고 좋은 직장도 구할 수 있고 실천하면서 멋지게 살 수도 있는 그런 것을 우리가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근데 평생 5천 명 아니, 만 번 2만 번의 말씀 수강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데 우리에게 무언가 있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죠? 뭐 졸업장 같은 게 있어가지고 벽에 걸어놓는 게 있으면 참 좋은데 그런 것도 아니고, 어떻게 우리 자신의 그 믿음을 배워온 5천 번, 만 번의 설교의 그 수강을 어떻게 보약할까 한번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아깝지 않으세요? 성경에 줄에서 보면 그 많은 들은 강의를 보여주고 싶으면 성경은 수없이 말씀합니다. 그것을 찬양으로 보여줘라. 온 마음과 정성과 뜻을 다하여 어떻게 해요? 뮤직 하셨습니다. 시편 57장 7절에 보면요
 
*시편 57:7,
7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
-확신이 가졌다는 것은 수강을 설교를 5천 번, 만 번 했으니까 이제는 성경의 말씀에 대해서 확신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내가 노래하며 주를 찬양하겠습니다. 보시다시피 영화에는 조금 다르게 맥 뮤직 되어 있습니다. (My heart is fixed, O God, my heart is fixed: I will sing and give praise). (God! My heart is fixed, my mind is fixed; I will sing and I will make music.)뮤직 자체가 찬양이지만은 그래 메이크 뮤직(make music), 그것은 우리 삶에서 찬양으로 보여줘라. 이 말씀으로 우리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냥 메이크 뮤직(make music)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찬양하는 것은 악기나 목청으로만 부리는 것이 아니고 온 마음과 온 정성과 온 뜻을 다하여 우리가 뮤직하면 그러한 아름다운 음악이 흘러나온다는 뜻입니다. 오늘의 추석의 명절을 맞이하여 감사의 음악회로 찬양 드리는 토비새입니다. 많은 기대를 하십시오. 저도 기대를 하고 왔습니다. 찬양을 하면서 또는 들으면서 감동을 받을 수 있지만, 찬양은 잘 못하는 나 같은 이 음치 같은 사람 도체가 어떻게 그러면 뮤직 찬양을 할 수 있을까? 그 깊고 넓고 높은 말씀의 신비를 어떻게 찬양할 수 있지? 오늘 아침 잠깐 일어나 서로 고민하고자 합니다.
 
기억하시겠죠? 전에 제가 여기 왔을 때 이 강단에 서서 한번 나누기를, 꿈은 명사로 표현하지 말고, 동사로 표현하라고 했어요. 음악가가 되고 싶으면 내가 그 유명한 음악가가 되리라고 그 명사로 표현하지 말고 동사로 표현하라. ‘나는 커서 감동을 주는 사람이 되리라.’ 음악가의 핵심이 감동이지, 음악가에서 감동을 빼앗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의사가 되고 싶으면 의사가 될 것이라고 외치지 말고 나는 ‘사람을 낫게 해주는 사람이 되리라.’ 그러면 일반 생활에서도 뮤직 할 수 있는 것이 우리가 볼 수가 있습니다. 성경을 알려면 나는 배워서, 배워서 성경을 잘 아는 믿음의 지식인이 된다. 하지 말고, ‘나는 마음을 비우는 사람이 되리라.’ 왜? 마음이 비워야 성령으로 그 많은 말씀의 지식과 지혜를 채울 수 있고 그러면 찬양할 수 있고, 뮤직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그 신비로운 말씀을 오늘 10분, 15분 사이에 다 설명을 할 수가 없습니다. 너무나 그 말씀이 깊고 높고 넓어서 그 의미를 우리가 다 습득할 수가 없습니다. 했다 하더라도 내일이면 다 잊어버리는 것이 우리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것을 다 아시고 핵심 성경을 알려면 핵심을 알아라. 핵심만 알면 그 핵심 속에서 주님께서 주는 감동으로, 그 높고 깊고 넓은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다 흡수할 수 있고 보일 수 있다는 것을 성경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주님께서 우리로 주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그러한 그 페이버릿(favorite)를 받기 원하면 받으려면 그때 필요한 핵심을 보여주었습니다. 성경에 있는 모든 율법을 핫 핵심으로 정리하면, 갈라디아서 5장 14절에,
 
*갈라디아서 5:14,
14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여기에 동사는 핵심은 이웃을 사랑하되 희생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희생을 하면 그 많은 돕고 깊고 넓은 하나님 말씀을 하나하나 실천할 수 있고, 찬양할 수 있고 뮤직 할 수 있다는 그 말씀입니다. 오늘 아침 나누고자 하는 또 하나의 핵심은 자신의 마음을 비우는 것입니다. 마음을 비우면 찬양의 마음으로 하나님께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로 복을 주시고 찬양하는 마음으로 살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바로 이 핵심에 달려 있습니다. 이 핵심 하나만 알고 행하면 그 많은 하나님의 말씀 그 지식과 지혜가 우리가 이 몸에 우리가 가지고 다니면서 우리 몸속에서 보여주고, 몸 밖으로 보여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2장 오늘 읽은 말씀을 우리가 보면,
 
* 빌립보서 2:5,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이러한 핵심을 품어라. 어떠한 핵심? 6절에 보면
 
* 빌립보서 2:6-7,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에 있으나 하나님과 동등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절에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비워야 됩니다. 비우는 것 정말 힘듭니다. 우리 사회에서 자주 쓰는 문장이 있죠? 우리 사회에 한국에서 쓰는 문장이 자주 있죠? 영어나 미국에서는 그 문화에는 별로 없습니다. 근데 여기는 자주 있는 것 같아요. 가끔씩 코리안 드라마를 보면 이 단어는 항상 나옵니다. “내가 누군데(Who am I)” 처음에 여러분은 그냥 흘러 가겠지만은 외국에 사는 저로서는 들으면 저거는 일반 생활에 우리는 안 쓰는 단어인데 내가 누군데 자기 이름을 내려고 하는 것이 우리 일반 생활에서 우리가 볼 수가 있습니다. 이런 말이 흘러나오는 사람 속에 찬양이 흘러나오겠습니까? 영어로는 He empty himself!!!! 이것이 우리 삶으로 찬양할 수 있는 핵심입니다. 비우면 아름다운 음악이 노래 음치가 안 좋아서 제대로 부르지는 못해도 우리 속에서 나올 수가 있는 것입니다. 빈 수레가 더 요란하다는 한국의 속담도 있습니다. 비우면 소리가 나는 것은 사실입니다. 먼저 배에서 꼬르륵 소리와 납니다. 그리고는 엄마 아빠 배고파하는 소리가 납니다. 애통하는 소리로 마음으로 하나님 나 이제 도와주세요! 라는 소리가 나옵니다. 그것이 바로 찬양입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 가냘픈 소리가 반전이 되어 오늘 같은 웅장하고 무한 감격스러운 찬양의 음악회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8절에는,
 
* 빌립보서 2:8,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 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자신을 낮추고, 자신을 비우면, 죽음의 십자가로 걸어가신 모습, 우리를 대신해서 피 흘린 소리,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 십자가에 쾅쾅 못 박히는 소리 그 소리로 우리에게 어마어마한 Make music 하셨습니다. 찬양을 하셨습니다. 이 구절은 예수님께서 자신을 비웠다는 말씀입니다. 또 우리로 하여금 복을 받으려면 마음을 비워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우리에게 그 유명한 팔복을 통하여 말씀해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5장에 보면,
 
*마태복음 5:3-10,
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9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10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이 성경 말씀을 듣고 배우고 그냥 우리가 가만히 있으면 우리가 복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심령이 그냥 가난만 하면 복을 받을 수 있을까요? 애통할 수 있을까요? 의의 줄일 수 있을까요? 긍휼할 수 있고 마음이 정결하고 화평할 수 있을까요? 저절로 그냥 복을 받을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은 마음을 비우는 기본 핵심입니다. 마음을 비워야만 성령이 가난하고 애통하게 또 청결하고 온유함으로 복을 받을 수 있도록 해주십니다. 근데 이 복이란 영어에는 블레스(Bless) 어라 돼 있어요. 블레스트(Blessed)로 돼 있습니다. 한국말의 복의 의미는 행운의 의미가 들어가 있습니다. 저는 또 그렇게 알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신약의 블레스(Bless) 말은 땅에서 오는 행운이 절대 아니고 기운이 아니고, 예수님과의 관계에서 이미 우리에게 주신 은혜를 의미하는 것이지 우리의 노력으로 얻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마음은 비워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시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노력하시지 아니하셨습니다. 그 은혜로 모든 것을 하시고 마음을 비웠기에 그 모든 것을 행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블레스트(Blessed)이란 주님의 은혜로부터 받은 하늘의 행복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행복 그 기쁨은 고통 속에서 일어나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빛이 되어 우리로 행복을 던져주는 의미를 말하는 것입니다. 즉 블레스(Bless)가 블레스트(Blessed )했다. 이것입니다. 했으므로 마음을 비우면 보인다. 이것입니다. 주님께서 채워주신다 이 말씀이다. 고통 속에서도, 마음이 아플 때도 주님께 찬양할 수 있다 이것입니다. 그러면 고통이 애통함이 기쁨으로 감사로 반전되는 은혜를 체험할 수 있는 동시에 아름다운 음악이 우리 말 속에서 몸속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게 이 블레싱(Blessing)한 삶을 살려면 마음을 비워야 하며 또 그것이 바로 팔복의 의미인 것입니다. 마음을 비워야 예수님처럼 낮아질 수가 있는 것이고 마음을 비워야 하나님께서 우리로 아름다운 음악을 채워주실 수 있고, 또 이 오늘 아침 다시 한 번 마음을 비워 주님께 매달리는 한 아침 새벽 되기를 바랍니다. 이제부터 계속되는 찬양의 음악회, 예배 시간을 통하여 이미 우리에게 블레스(Bless)하신 복을 주신 은혜를 찬양하는 시간이 되길 기원합니다.
 
♣요약
우리에게 주님의 그 핵심을 보여주신 것처럼, 주님의 핵심은 모든 마음을 비워서 우리가 함께했다는 그 사실, 우리 일반 생활에서는 우리의 종, 우리의 Calling을 계속 나타내는 것은 우리가 마음을 비우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가 마음을 비워서 예수님처럼 이렇게 낮아질 수 있을 때 우리 속에서, 생활 속에서 아름다운 찬양이 흘러나온 것을 이해하며, 우리가 음악을 잘하는 명사가 아니라 남에게 감동을 주고, 또 남을 낫게 여기고, 찬양을 담기 위해 그 우리의 마음을 비워서 주님의 능력, 주님의 음성, 주님의 능력, 주님의 은혜로 동사로 가득 채워야 한다. 명사가 아니라 동사의 삶이 무엇인지, 그냥 좋은 음악이 아니라 정말 감동 주는 삶이 무엇인지, 우리가 어떻게 하면 나 자신뿐만 아니라 우리 모든 주위에 메인 것을 풀게 할 수 있는지, 마음을 되돌아보고 기도하고 실천해야 한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로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어야 한다.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으로 은혜를 입었다면 우리는 그의 삶을 본받아야 한다. 그는 매우 겸손하셨는데 이러한 겸손은 특히 우리가 그에게서 배워야 할 점이다. 만일 우리의 마음이 겸손해 있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와 같은 마음을 품은 것이 될 것이다. 또한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같은 마음을 품고 있다면 우리는 겸손한 마음을 가지게 될 것이다. 우리는 우리를 위하여 고난과 죽음의 자리에까지 스스로를 낮추신 주 예수의 정신과 동일한 정신으로 행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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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기도 오정현 담임목사님
-암송, 기도제목
◆ 우리 사라의 교회 기도제목 ◆
1 사랑의 교회 믿음의 4대가 기도로 가정 제단을 회복할 때, 2023년을 한국교회 부흥의 원년이 되게 하사 다시 고동치게 하시고 그리스도의 푸른 계절이 임하게 하소서. 아멘.
-우리가 지금 2033 50 비전을 주님께 받고 잉테키하고 이제 출산의 과정은 있겠지만 어느 순간 주님이 해산하게 하실 줄로 믿습니다. 그리 되려면 1번의 이 기도 제목이 우리의 것으로 고백이 돼야 하는 것이에요. 할렐루야!! 영적 맥박이 이 기도의 제목을 통하여 그냥 막 용솟음칠 수 있도록 이 쿵쿵거릴 수 있도록 은혜 주시기를 바랍니다.
 
2 민족 고유의 명절인 추석에 함께 모인 온 가족들이 찬양을 통해 인생의 우선순위를 하나님께 드릴 때, 가정을 회복시키시며 모든 매인 것을 풀어지게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케 하옵소서. 아멘.
-이번 이 추석 기간에 우리 교회는 장년이 많이 나왔어요. 장년이 많이 나왔고, 가정예배를 가족이 집에서 모이니까 다 드렸어요. 그러니까 온 가족이 예배를 드리는데, 어제 저도 우리 가족들이 우리 교회 추석 명절 명절에 추석 명절에 드리는 예배 있잖아요. 그거 다 해 보셨어요? 어제 우리도 그걸 나도 그걸 그대로 한번 해봤어요. 그러니까 참 감사하고 우리가 빌립보서 감옥에서도 주님을 찬양하고 그럴 때에 지난주에 말씀한 대로 모든 메인 것이 풀어지더라. 나의 메인 것만 풀어질 뿐만이 아니라 내 이웃 우리 주위에 가족들도 막 메인 것이 풀어지고, 심지어 감옥의 간수, 그러니까 제가 간수가 영어로 뭔지 우리 아이에게 물어보세요? 그러니까 제일러(geôlier-프랑스어) 그러더라고요. 감옥의 간수도 다 풀어지는 것이에요. 감옥의 간수도 다 예수 믿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기쁨이 충만해지는 거예요. 아멘!
 
3 사랑의 교회의 모든 영 가족들이 ‘2033, 50’ 비전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토비새와 강단기도회와 글로벌 특별새벽부흥회를 통해 간절히 부르짖을 때, ‘10,23 한국교회 섬김의 날’ 한국교회의 부흥을 일으키시는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과 실체를 체케 하옵소서! 아멘.
-우리가 이런 기도의 제목과 이런 하나님 나라에 대한 꿈을 가지고 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축복인 줄로 확신합니다. 지금 디사이플 10월호가 나왔는데 123 한국교회 선교의 날이 특집이에요. 나 아직 못 읽었어요. 이제 볼 건데요. 우리가 이런 한국교회를 나가는 꿈은 결국은 걸어 다니는 무형 교인 여러분들을 위한 하나님의 꿈이 되는 거예요. 어제도 가족 찬양을 하는데 거기에 첫 찬송이 뭐였죠? 나의 소망 나의 기쁨 나의 소망 그거는 이제 우리 가족은 그거 잘하거든요. 그런데 그다음에 “내가 매일 기쁘게 술래의 길 행함은~~” 맞았죠? 그리고 날마다 숨 쉬는 순간마다 이게 무슨 말인지 안 해본 사람들은 이게 무슨 말인지 알아요. 똑 같이 해도 앞에 놓고도 한 사람은 은혜를 받고 한 사람은 그냥 지나가는 거예요. 여러분 오늘 안 했으면 제가 좋은 말씀 드릴 때 집에 가가지고 꼭 그 명절들이 그거 목사님 그거 없습니다. 그러면 교회 들어오면 앱으로 그게 다 나와 있어요. 앱으로, 우리는 어제 앱으로 다 받아가지고 앞에 있으면서 이 보고 이렇게 같이 했어요. 그러니까 여러분 다 그렇게 실체가 있는 그런 축복이 여러분들에게 한 분 한 번 나타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마지막 네 번째
 
4 내일 주일예배에는 참석하는 모든 성도들이 안아주심의 본당에 들어서기만 해도 감당할 수 없는 쉐키나의 영광과 고향의 따스함을 경험하며 권능의 말씀을 통해 폭포수와 같은 은혜를 누리게 하옵소서. 아멘.
-오늘 우리 교육자들 찬양 참 잘했죠? 참 잘했고, 누가 정말 더 감동적으로 하나 내가 가만히 보면서 기도했어요. 기도해서 했는데 뒤에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것이 뭐가 있습니까? 뒤에 한가위 한가위에 웰컴 홈(Welcome Home)! 아마 역 추석으로, 지방에서 서울 올라와가지고 내일 아마 우리 교회, 지방에 있는 우리 예수 믿는 분들이 많이 오실지 몰라요. 또 제가 얘기 들어보니까 미국에서 여러분들이 오시고 내일은 또 늘 감사하는 분도 오시고, 아픈 분도 오시고, 힘든 분도 오시고, 다 여러 종류의 분들이 오세요. 그러나 한 명도 예외 없이 성령의 역사는 동일하니까 내일 아무도 그냥 돌아갈 것 없기를 바라고 내일은 어떻게 하면 우리가 “상록수 신앙 시종일관하는 능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인가?” 그 말씀할 터인데 내일 주일 예배에 하늘에 불이 떨어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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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환 부목사님-음악 콘서트
추석을 맞은 우리 영 가족 모든 분들에게 쉼과 재충전 그리고 가족들 간의 관계 성숙에 은혜가 넘치시기를 소원하는 이 아침입니다. 안아주심, 예술의 전당, 한가위 명절 음악회 사회를 맡은 세팅 브람, 새벽에 칭칭 부은 눈, 남자라는 사회를 맡은 조성환 목사 인사드리겠습니다. 명절 음악회 몇 달 전에 어떤 분이 전화를 주셨습니다. 저에게 말씀하시기를 어떻게 하면 우리 성도들이 은혜를 받아 행복하겠나!!~이 말을 서울말로 제가 번역을 하면 어쩌면 우리 성도들이 은혜를 받겠나? 이런 말씀이셨습니다. 여기서 여러분들이 별로 안 우셔서 아시안게임의 금메달을 많이 획득한 우리 한국 선수단의 기쁨이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사전에 보니까 명절이라고 하는 단어를 찾아보니까요. 명절은 해마다 일정하게 지키면서 즐기거나 기념하는 축일을 일컫는 말로써 특히 1년 중 3대 명절의 하나인 추석은, 곡식이 익어서 수확이 멀지 않기에 가장 풍요로운 시기에 집집마다 햇곡식으로 음식을 만들어서 햇과일과 함께 조상을 기르며, 성묘를 하고 남자들은 씨름을 즐겼고, 지방에 따라 여인네들은 달밤에 술래를, 이렇게 하면서 물론 요새는 ‘범 내려온다’ 이런 걸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좀 잘 소통이 안 되시는 것 같아서 하나님께서 많은 복을 사랑의 교회에 주셨습니다. 그중에 한 가지가 귀한 예술가들을 정말 많이 보내주셨습니다.
 
오늘 명절 음악회의 첫 무대는 소프라노 최재현, 테너 조중현, 그리고 반주의 조성원 교수가 우리가 오늘 연주를 해 주시겠는데요. 다섯 곡을 연이어서 불러주시겠습니다. 첫 번째 가사를 보니까 ‘코스모스를 노래함’ 너는 가을에 새 아씨, 이 외로운 이 밤에 너는 나의 친구로다.‘ 저는 가을에 새 아씨가 코스모스인 걸 이번에 처음 알게 됐습니다. 특별히 가을을 타는 분들은 기대를 하시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코스모스가 친구가 된다고 하네. 그래서 두 번째 곡은 첫사랑입니다. 음악을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어린 시절부터 찬양대원 그리고 찬양대 지휘자 마침내 대 이화여대 경영대학 학장으로 섬기고 계신 작곡가 김효근씨가 자신의 아내에게 결혼하기 전에 헌정에서 결혼 승낙을 얻게 된 곡이라고 하는 슬픈 사실이 있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그분을 뵌 적이 있는데요. 정말 교회 오빠 분위기셨습니다. 굉장히 겸손하시고요. 그분의 첫사랑의 노랫말에 내 영혼이여 간절히 기도해라는 단어를 통해서 시의 문맥에 기독교의 냄새가 자연스럽게 배어 있는 ‘첫사랑’입니다. 아마도 아직까지 미혼인 분들은 오늘 이 곡을 들으시면서 이런 생각을 하시면 좋겠습니다. 나도 작곡을 하나 해서 헌정할 때 잘하면 결혼으로 갈 수도 있겠다. 예배 아카데미에 오시면 이런 것들을 도와드립니다. 예비 아카데미 광고 협찬이었습니다. 그다음 곡은 방언으로 진행되는 노래입니다. 스크린은 물론 방언 통변이 가사 통역이 다 나오겠지만 콘도 멤프, 오페라 작곡가 푸치니의 라보엠, 하면은 거기에 주인공의 르돌포와 미미가 나옵니다. 그들의 아름다운 아이디어도 있지만 또 다른 켈트인의 무세다 무세다가 부르는 아름다운 아리아인데요. 극중 배경은 크리스마스 즈음이고요. 어떤 나이 많은 갑부와 관계를 가지고 있는 무스에다가 우연히 들린 카페에서 자기의 첫사랑 마르첼로를 발견하고 그의 마음을 살살살살 긁는, 그런 노래인데요. 노래는 짧지만 굉장히 넓은 음역을 넘나들면서 화려한 기교까지 보여주는 곡입니다. 가사는 이렇습니다. 나 혼자서 길을 갈 때면, 사람들이 가던 길을 멈추고 저를 쳐다봅니다. 그리고 나의 아름다움을 꼼꼼하게 살피는데 머리부터 발끝까지 어디서 많이 들은 단어죠? 그다음에는 라단사 춤입니다. 작곡가는 로스인데요. 롯시니는 젊은 시절에 큰 부를 축적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많은 이야깃거리를 남긴 사람인데요. 76세까지 살았는데 그가 음악가로서 은퇴한 나이는 37세였습니다. 그런데 그 39년의 여생 동안 작곡을 사실상 접고 편안하게 자기의 인생을 즐기게 즐겼다고 얘기를 하는데, 실제로 그 사람은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루는 사람이 아니고 오늘 일을 모레로 미뤘던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느긋하게 삶을 살던 작곡가였는데 그는 항상 작곡 작품의 마감일이 다가오면 바로 그때서야 곡을 써서 그 롯시니와 작곡 계약을 맺었던 어떤 극장장이 그 사람이 그렇게 하는 걸 알고, 그냥 극장에 한 방에 가둬 놓고 그 방을 지키던 사람에게 만약에 마감일까지 곡을 쓰지 않으면 창문으로 던져버리라고 이렇게 얘기했다는 슬픈 일화가 있습니다. 조사하면 다 나옵니다. 롯시니가 작곡한 ‘라다 춤’ 이 곡은 가사가 너무 빨라서 잘못하면 이건 조크입니다. 순전히 조크인데요. 방언을 받을 수 있다. 라고 하는 그런 슬픈 사실도 있습니다. 가사 중에 대보름의 밝은 달이 반쯤 바다 위에 떠오르고 청년들과 처녀들이 모이기 시작하면서 원을 그리며 쌍쌍이 한마음으로 춤을 추기 시작한다. 근데 가사를 가진 곡인데 갑자기 강강수월래가 여러분 그림으로 그려지지 않습니까? 추석에 너무 잘 어울리는 이태리 가곡 라드 안사인데요. 요즘 젊은 사람들이 왜 이렇게 밤새도록 춤을 추는지 이 곡의 가사를 들어보니까 벌써 후기 낭만파부터 벌써 이런 일들이 있었음을 단 라단 산을 통해서 알게 됩니다. 마지막 곡 다섯 번째 마지막 곡인데요. 시크릿 가이드 일치의 ‘봄을 위한 세레나데’ 라고 된 거기에 수록된 곡을 한경혜 씨라는 분이 가사를 붙였고, 또 성악가 김동규 씨가 편곡을 해서 만든 곡으로 가사가 참 달달하고 또 아름다워서 10월에 결혼을 하는 커플들의 축가로도 많이 애창되는 ‘10월에 어느 멋진 날에’ 9월의 마지막 날 명절 음악회 때 여러분 들려드리겠습니다. 환영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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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저녁기도회(주후 2023년 9월 27일)
제목: "존귀한 예수, 능력의 그 이름"
말씀: 마가복음 4:3-41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설교자: 김은석 부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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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가복음 4:35-41,
35 그 날 저물 때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니.
36 그들이 무리를 떠나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매 다른 배들도 함께 하더니.
37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배에 부딪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38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39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40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41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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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저녁에 하나님께서 부흥의 새 역사를 경험케 하실 줄 믿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마가복음 4장 35절에서 41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온 교회는 하반기 사역을 향해 힘찬 발걸음을 내딛습니다. 바라게는 우리 모두가 성령으로 충만하여서 우리 모두에게 사명을 주시는 모든 사명을 잘 감당하는 2023년의 하반기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마가 복음서를 포함한 모든 복음서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바로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바로 그분이 성육신하신 우리의 메시아, 우리의 구원자라는 사실입니다. 메시아이신 주님께서 왜 이 땅에 오셨는가? 그리고 주님은 무엇을 하셨는가? 주님은 많은 것을 말씀으로 가르치셨는데 그 말씀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것을 충실하게 담아내는 것이 바로 복음서입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는 복음서의 시작이요 마침입니다.

특별히 오늘 우리가 다루게 될 이 본문에는 예수님이 과연 누구이신가를 너무도 분명하게 너무도 환하게 조명하여 주고 있습니다. 이 사건은요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이 새 복음서, 공간복음이라고 하는데요. 이 공간복음서에 모두가 다 기록이 되었는데, 이 공간복음서를 기록한 이 3명의 저자들이 모두 다 그가 누구이기에 라는 질문으로 이 본문을 마무리합니다. 질문에 대한 답을 해주지 않고 남겨두는 것은 아마도 이것을 대하는 독자가 스스로 답을 찾기를 원해서일 것입니다. 스스로 이 답을 찾아가면서 그 과정을 통해 우리 주님을 더 알게 되는 거예요. 그리고 우리 주님을 더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더 주님을 신뢰하는 성도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겠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알고 있습니까? 제가 너무 어려운 질문을 드렸죠. 조금 더 예리하게 여쭙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습니까? 오늘 이 사건을 기록했던 마태, 마가, 누가가 과연 이 사건을 읽는 우리에게 가장 바라는 마음이 무엇일까요? 아니요 이 사건에 등장하셔서 이 사건을 앞에서 이끌고 나아가시는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원하시는 것, 우리에게 가장 바라시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요? 제자라는 이름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기는 하지만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앎이 부분적이거나 온전하지 않기 때문에 예수님을 따르더라도 그분에 대해 바로 알고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요. 본문이 있기 전 마가복음 4장에서 4장 전체에서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은 100배로 결실하는 씨앗과 같다는 거예요.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은 등경 위에 놓인 등불과도 같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사람 하나님 나라는 사람들이 자고 깨는 중에는 아무도 볼 수 없지만 밤에는 은밀하게 자라나 마침내 가을이 되면 그 주수대에 결실하는 이삭과 같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나라는 처음에는 작지만 다 성장한 이후에는 어느 것보다도 큰 겨자씨 하늘과 같다.

주님은요. 제자들에게 그리고 사람들에게 계속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말씀으로 가르쳐 주십니다. 그렇게 주님이 말씀으로 가르쳐 주시면 사람들은 듣지 제자들은 듣습니다. 그리고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라고 하잖아요. 이제는 듣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이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의 아들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 그리고 주님만이 하나님 나라의 왕이시라는 것을 그리고 그분의 능력을 마치 시청각 교육처럼 목도하게 됩니다. 이처럼 갈릴리 도하 사건은 신학적으로 선교학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먼저는요. 인간을 초월하시는 그 권능, 예수님의 신적인 지위와 능력이 잘 드러납니다. 뿐만 아니라 지금 예수님이 이 배를 타고 이방 땅을 향하여, 이방인들이 살고 있는 땅을 향하여 나아가시게 되는데 이렇게 이방인들을 향하여 나아가심으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유대 땅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국경을 초월하고, 인종을 초월하고, 민족을 초월하여 온 열방 가운데 하나님 나라를 전하시려는 예수 그리스도의 소명, 즉 예수님의 초월하심을 증거 하는 사건입니다. 동시에 그 초월하심 가운데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오르시죠. 예수님이 제자들이 탄 배에 함께하시지 않습니까? 제자들이 만나는 폭풍을 주님께서 잠잠케 하시고 그들을 보호하시고 그들을 인도하시는 주님의 동행하심 바로 그리스도의 내재하심을 증거 하는 사건입니다. 우리 다 함께 본문 35절을 보겠습니다. 본문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명령을 하세요.

*마가복음 4:35,
35 그 날 저물 때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니.
-저 편으로 건너가자. 지금 예수님과 제자들이 있는 곳은 갈릴리 서쪽 해변입니다. 주님께서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비유로 말씀하시던 중에 이제 해가 뉘엿뉘엿 지나고 저녁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잘 아시는 것처럼요. 갈릴리는 그 둘레가 한 50km 정도 된다고 해요. 그리고 그 갈릴리를 건너는 폭이 한 12km 정도 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꽤 큰 호수지역 그리고 갈릴리는 해수면보다 낮은 곳에 위치해 있고 갈릴리 주변에는 산이 둘러 있기 때문에 한 번 산을 타고 이 바람이 내려 불기 시작을 하면은 잠잠하던 갈릴리가 갑자기 걷잡을 수 없는 고약한 풍랑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바람이 없을 때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너무 평온하고 너무 잔잔하죠. 그런데 한 번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요 목숨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여러분 지금 이 시간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밤이라는 사실을 아셔야 돼요. 이 풍랑을 만약에 만나게 되면 꼼짝없이 봉변을 당할 것이 불 보듯 뻔한 일입니다. 제 생각에는 아마 대다수의 제자들이 어부였기 때문에 정말 따라 나서기 싫었겠다. 그런 생각을 합니다. 그래도 단호한 주님의 명령 앞에 제자들은요. 결국 무리를 떠나 갈릴리로 나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풍랑을 만나게 되죠. 마치 주님과 제자들이 탄 배가 오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바람을 이고 큰 물결이 배에 들이닥칩니다. 금새 배에 물이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그런데 우리 주님은요 잠을 주무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단잠에 들어 계시는 거예요. 너무나 고통스러운 삶의 문제들 앞에서 마치 더 이상은 버티기 힘든 사업을 하면서 집에 들어가는 것이 너무나 두려운데 너무나 우리 집에는 갈등하는 가족들이 있어서 또한 아무리 노력해도 정말 말이 통하지 않는 나의 자녀들 때문에 치료해도 아무리 치료해도 낫지 않는 나의 질병들 그리고 마음의 불안과 우울 때문에 자지 못하고. 먹지 못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는 이렇게 고통을 하고 있는데 아무런 말씀이 없으신 우리 하나님처럼, 주님은 제자들의 고통을 외면한 채 잠을 주무시고 계십니다.

여러분, 그런 생각 한번 안 해보셨습니까? 혹시 배 멀미를 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지금 상황이 다른 사람들은 어떻죠? 배가 흔들리고요 물이 지금 다 들어와서 죽을 지경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 잠을 주무실 수가 있을까? 웬만하면 여러분 깨실 법하잖아요. 어지러워서라도 깨실 법한데 거의 이 정도면 수면(睡眠)장애(障礙)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는 상황이거든요. 그런데 그 가운데 주님이 곤히 잠을 주무신다는 것은 아! 주님의 뭔가 숨겨진 의도가 있는 게 아닐까? 여러분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이렇게 곤히 잠을 주무시고 계시는 이 주님을 제자들이 깨웁니다. 불안에서 시작된 원망으로 제자들은 다급하게 주님을 깨웁니다.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왜 돌보지 않으십니까?” 여러분 곰곰이 생각을 해보십시오. 앞에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격랑 속에서 너무나 평안하게 잠을 주무시는 우리 예수님과 똑같은 장소잖아요. 똑같은 상황에서 죽을 것처럼 벌벌 떨고 있는 이 제자들의 모습이 너무나 극명하게 대조가 됩니다.

여러분, 왜일까요? 그 이유는 단순합니다. 제자들은 죽을 줄 알았던 거예요. 그런데 예수님은 알았어요. 절대로 배가 가라앉지 않는다는 것을 아셨던 것입니다. 아무리 바람이 불고요. 아무리 물이 들이닥칠지라도 예수님이 타고 계신 이 배는 절대로, 절대로 침몰하지 않을 것임을 우리 주님이 알고 계셨던 것이죠. 그러니까 평안하게 잠을 주무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강한 바람에 나무는 흔들려도요 태산은 끄덕도 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이 풍랑이 바다에 일렁인다 할 지라도요. 바다 속 깊은 곳은 어떻죠? 평온한 것입니다. 폭풍이 일면 어떻습니까? 거센 비바람이 몰아치면 어떻습니까? 너무나 거센 호우가 내리지 않습니까? 그런데 여러분 구름 위는 어떻습니까? 찬란한 태양이 떠 있지 않습니까? 그런 것처럼 여러분, 예수님이 누구이십니까? 바람과 바다의 주인이세요. 그런 주님이 이 배에 타고 계시는데 감히 바람과 바다가 어떻게 예수님이 탄 배를 침몰시키실 수 있겠습니까? 잠언 서 3장 23절에서 26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 함께 다 같이 잠언 서를 읽도록 하겠습니다.

*잠언 3:23-26,
23 네가 네 길을 평안히 행하겠고 네 발이 거치지 아니하겠으며.
24 네가 누울 때에 두려워하지 아니하겠고 네가 누운즉 네 잠이 달리로다.
25 너는 갑작스러운 두려움도 악인에게 닥치는 멸망도 두려워하지 말라.
26 대저 여호와는 네가 의지할 이시니라 네 발을 지켜 걸리지 않게 하시리라.
-뭐라고 기록하죠? 여호와는 내가 의지할 이시니라. 너의 발을 지키시리라. 내 배를 지키시리라. 너의 인생을 지키시리라 파도가 아무리 클지라도 여러분 하나님보다 크지 않습니다. 믿으십니까? 문제가 아무리 겹겹이, 겹겹이 쌓여 있다 할지라도, 결국 모든 것은 하나님의 통치 안에 있음을 주님이 알고 계시기 때문에 전혀, 전혀 두려워하지 않으시는 거 여러분 그뿐이 아닙니다. 본문 39절에 보면 주님은 바람을 향해 꾸짖으세요.

*마가복음 4:39.
39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꾸짖으면서 말씀을 하세요. 여러분 이 모습을 보면 그냥 하나님을 향한 신뢰를 넘어서 이제는 주님이 이제는 스스로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보아라. 내가 하나님이라는 거야 내가 창조주다 내가 스스로 하나님으로 이 자리에 계신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모든 것 위에 뛰어나신 분으로서 모든 것을 다스리고 계십니다. 예전에는요. 비유로 말씀으로 알려주셨다면 이제는 말씀으로가 아니라 그분의 초월하심을 눈으로 목격할 수 있도록 직접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40절에 제자들을 향해 이러한 믿음을 가질 것을 요청하세요.

*마가복음 4:40,
40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왜 너희에게 믿음이 없느냐 내가 지금 너희와 함께하는데 왜 두려워하느냐? 인생의 배 격랑이 일어나는 갈릴리를 향해 나아가는 제자들의 삶에 여러분 예수님이 지금 함께하고 계십니다. 그 안에 계시는 거예요. 그 배에 예수님께서 타고 계시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그리스도의 내재하심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 격랑을 만난 배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침몰했습니까? 배가 바다 속으로 침몰을 했나요? 아니요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무엇 때문에 가라앉지 않았습니까? 풍랑이 작았고 안에 있는 어부들은 그 풍랑을 능수(能手)능란(能爛)하게 컨트롤해서 그 배를 가라앉지 않도록 요리조리 잘 요리를 했습니까? 아니에요. 여러분. 풍랑은 너무 컸고요 제자들은 그 안에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왜 배는 가라앉지 않았습니까? 여러분 이유는 너무나 심플합니다. 배가 가라앉지 않은 건요 예수님이 그 배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 그리스도의 초월하심과 이 그리스도의 내재하심이 여러분 우리의 가정을 지킵니다. 우리의 교회를 지킵니다. 우리의 삶을 보호하시는 줄 믿습니다.

♬나는 믿네~ 나는 믿네! 내 앞에 바다가 갈라지지 않으면 주가 나로 바다 위를 걷게 하리.~아멘!

이 놀라운 광경을 목격한 제자들은요 다음과 같이 이제 고백을 합니다.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였더라. 본문에 보면 제자들이요 심히 두려워한다. 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바람과 바다를 보며 두려워하던 이 제자들은 큰 풍랑을 압도하시는 더 큰 힘 앞에 심히 두려워하게 됩니다. 여러분 참 재밌는 게요. 두려워하는 그 모양은 비슷할 수 있어요. 그런데 이 두려움의 실체는 완전히 다른 두려움입니다. 들이치는 물을 보면서 제자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그야말로 물을 보고 또 누구를 본 것입니까? 나를 본 거예요. 그 물 앞에 너무나 무기력한 내 자신을 본 것이죠. 그런데 주님을 향한 두려움은 어떻습니까? 여러분, 그 문제를 압도하시는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을 향하여 경외함으로 사랑함으로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죠. 처음 두려움은 주님을 보지 않은 두려움입니다. 문제와 자기 자신만을 바라보았던 두려움, 곧 불신앙의 두려움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향한 두려움은 어떻습니까? 초월하시며 내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 나의 시선을 온전히 고정시킴으로 말미암아 오로지 주님만을 경외하고 주님만을 사랑하는 두려움인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요. 다른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믿으십니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요 오직 하나님만을 두려워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요. 모든 걸 두려워하는 거예요. 오늘 이 자리에서 예배하는 우리 모두는 오직 하나님만을 두려워하고 하나님만을 경외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하려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다시 가장 중요한 질문으로 돌아갑니다. 예수는 과연 누구인가?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에게 예수님은 어떤 분이세요? 시편 107편은요 긴 포로기를 마치고 돌아오는 이스라엘의 공동체를 향한 회복의 노래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을 보호하시고 구원하시는가를 풍랑을 통해서 표현을 합니다. 우리와 함께 시편 107편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 시편 107:23-25,28-29,
23 배들을 바다에 띄우며 큰물에서 일을 하는 자는.
24 여호와께서 행하신 일들과 그의 기이한 일들을 깊은 바다에서 보나니.
25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즉 광풍이 일어나 바다 물결을 일으키는 도다.
28 이에 그들이 그들의 고통 때문에 여호와께 부르짖음에 그가 그들의 고통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시고.
29 광풍을 고요하게 하사 물결도 잔잔하게 하시는 도다.
-여러분, 기자의 고백대로 풍랑을 일으키는 것이 누구십니까? 오직 여호와 하나님이세요. 그리고 그 풍랑을 잠잠케 하시는 이도 오직 여호와 하나님 한 분뿐이십니다. 그런데 그렇게 이스라엘을 권능으로 지켜주시는 그 구약의 하나님이 오늘 본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증거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보여주고 계세요. 내가 바로 그 구약에 여호와 하나님과 동등한 하나님이라는 것을 직접 보여주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누구이십니까? 예수님은 모든 것 위에 뛰어나신 초월의 주님이신 줄 믿습니다. 히브리서 13장 8절에 보면

*히브리서 13:8,
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와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분은요 창세전부터 계셨고 지금도 계시며 앞으로도 영원토록 계실 전능의 왕인 줄 믿습니다. 특별히 여러분 주님은요. 하나님 나라의 왕이시며 주인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 나라를 여는 열쇠가 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나라의 법이며, 하나님 나라로 가는 유일한 길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는 누구도 하나님 나라에 이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 우리는 이 초월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볼 수 있기를 간절히, 간절히 소망합니다. 또한 주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주님은 우리 가운데 내재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리스도인의 길은요 풍랑을 이렇게, 이렇게 피해가는 길이 아니라 풍랑을 헤쳐 나가야 하는 길입니다. 요한복음 16장 33절에서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가 걸어가야 될 이 길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씀을 하십니다.

*요한복음 16:33,
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우리는 여기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는 말에 주목을 해야 합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세상이 어떻죠? 지금 세상은요 죄악이 가득 차 있습니다. 이런 세상을 성도로서 살아가면서 어떻게 성도의 삶에 환란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비록 환란을 피할 수는 없을지라도 우리가 주님 안에, 주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것, 큰 풍랑을 만날지라도 그 배 안에 예수님께서 거하시는 것처럼 우리는요. 우리의 삶에 내재하시는 주님으로 인해 세상이 도저히 빼앗을 수 없는 참된 평안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저는 2015년 10월에 경기도 수원의 한 예배당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습니다. 저는요. 제 눈에 그렇게 많은 눈물이 들어있는 줄 그날 처음 알았습니다. 정말 많이 울었습니다. 너무 영광스럽잖아요. 목사의 직을 받게 되었다는 것이 너무 영광스러워서 가슴이 벅차고 너무 기뻤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평생을 개척하셔서 쉽지 않은 목회의 길을 걸으셨던 부모님의 삶을 조금은 알기 때문에 두려움이 굉장히 많이 컸던 것 같습니다. 우리 사랑의 교회도 한 번 순장님이 되시면, 순장 사역을 이임하셔도 순원이라고 부르지 않고 뭐라고 부르죠? ‘쉬는 순장님’이라고 이렇게 부르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한 번 순장님은 계속 이제 순장님이신 거죠. 그런 것처럼 한 번 이제 목사가 되면 물을 수가 없지 않습니까? 물러설 수가 없는 거예요. 이제 죽으나 사나 나는 이제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구나! 라는 어떤 짓눌림이 제 안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감정이 많이 이렇게 올라왔던 것 같아요. 그렇게 안수식이 진행되고 있는데 제가 너무 우니까 축사를 하시려던 목사님이 막 역정을 내십니다. “초상났나요? 그만 좀 울어요.” 이렇게 호통을 치시면서 분위기를 바꾸시려고 농담을 하십니다. “저는 오늘 축사를 맡았습니다. 축사에는 세 가지 뜻이 있는데 첫째 짐승을 기르는 우리를 축사라 합니다. 둘째, 귀신을 내쫓는 것을 축사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기쁜 일이 있을 때 축하하는 것을 축사라 합니다.”

이렇게 하시면서 제가 막 울다가 웃다가 그랬어요. 그런데 그 가운데 이제 목사님이 뭐라고 하셨냐면 목사님들 울지 마세요. 제가 그날 2명이 목사 안수를 받았거든요. 목회는 힘든 것이지만 주님이 함께해 주십니다. 사역을 하고 교회를 섬기면서 자신의 부족함 때문에 어려움이 많겠지만 예수님이 목사님의 목회 가운데 늘 함께해 주십니다. 저도 돌아보면 늘 어렵고 힘들었지만 주님이 항상 함께해 주셔서 오늘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목사로 임직하심을 축하드립니다. 이 말씀을 하시는데 제가 눈에 눈물이, 눈물이 제가 그날 너무 울어가지고 그날 남은 눈물을 다 쏟아가지고요. 지금 흘릴 눈물이 없습니다. 예수님을 따라 나선 제자들처럼 살겠노라고 신학교에 가 목사 안수까지 받게 됐지만 저는 제 자신을 너무 잘 알잖아요. 난 너무 부족한데 이 무거운 집을 내가 감당이나 할 수 있을까? 두려움과 염려에 짓눌려 있던 제게 예수님이 함께하신다는 그 말씀이 어찌나 큰 힘이 되던지요. 지금도 그 목사님의 말씀이 생각이 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본문 36절에 보면 뭐라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까?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네. 라고 기록합니다.

*마가복음 4:36,
36 그들이 무리를 떠나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매 다른 배들도 함께 하더니.
-여러분 우리는 우리의 인생에 내재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주님이요. 잠을 주무시는 건 제자들의 고통을 돌아보시지 않는 게 아니에요. 그들의 신음을 외면하시기 때문에 주님이 잠을 주무시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주님은 문제 앞에서조차 참된 평안을 누릴 수 있는 참 믿음의 본을 보여주고 계시는 거예요. 여러분이 누구보다 평안하길 원하세요. 여러분이 누구보다 거친 풍랑을 헤쳐 나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존귀한 예수 그 이름의 능력을 힘입어 날마다, 날마다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내가 물 가운데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라. 내가 불 가운데 지날 때 타지도 아니할 것이며.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여러분 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이 예언의 말씀, 이 약속의 말씀을 이루시려고 그 밤 그 저녁에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오르고 계심을 기억하십시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이 온전한 믿음 위에 서 있다는 것을 여러분 한번 상상해 보세요. 우리 사랑의 교회가, 여러분 우리 가정이 어떤 격랑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흔들리지 아니하고 오직 주님만 바라봄으로 승리하는 것을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아니고서는 그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그 믿음,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은요, 이 믿음의 반석 위에 선 교회와 가정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영광스러운 일을 행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의 능력을 의지함으로 하나님 나라 건설에 앞장서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간절히 소망합니다.

♣요약
우리는 어떠한 풍랑을 만난다고 할지라도 오로지 하나님만 두려워함으로 다른 모든 것들을 두려워하지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깨달아서 주님의 심정으로 우리도 하나님 나라의 능력을 드러내는 증인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
-인생 항로에는 잦은 풍랑이 있는데 그러한 풍랑 중에는 주님이 즉시 구원치 않을 때도 있다. 그러나 어떤 풍랑에도 주님은 성도와 함께하신다는 것을 알고 성도는 오직 믿음으로 풍랑을 이겨야 한다. 그런데 본문에서 보면 주님의 제자들은 믿음이 없었기 때문에 풍랑이 닥치자 크게 두려워하였고, 이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꾸짖으셨다. 주님이 항상 함께 계심을 믿지 못하는 연약한 우리 인생은 세상의 풍파만 보면 겁먹고 좌절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에게는 임마누엘 신앙이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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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에버 설교(주후 22023년 09월 20일)
제목: "인생암호 C를 알고 온 천하에 알리자"
말씀: 고린도전서 15:1-4
설교자: 이선복 부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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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15:1-4,
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2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
3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4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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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면서 우리는 여러 가지 개인 비밀번호를 갖고 있습니다. 은행 계좌나 또 카드, 집 출입문, 스마트폰 등에 각자의 개인 비밀번호가 있습니다. 그것들은 설정이 가능하고 때로 잊어버리게 될 때 변경도 가능한 것입니다. 비밀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죠. 반대로 오늘 인생 암호라고 하는 것은 개별적으로 설정과 또 변경이 불가능한 것입니다. 인생 암호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정해놓으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성령으로 그것을 계시하여 알게 해 주시고 그 인생 암호를 온 천하 만민에게 알릴 사명을 책무를 우리에게 위임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 인생 암호 C를 알게 될 때, 어떤 일이 있느냐? 인생은 B로 시작하여 D로 끝난다. 이 샤르트르의 말입니다. 프랑스 실존주의 철학자인 이 샤르트르의 이 어록에서 제가 오늘의 설교 하나의 통찰을 얻게 됐는데요. 이 B와 D는 버스(birth) 출생 또 데스(death) 죽음 이 사이에 C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 C라고 하는 인생 암호는 도대체 무엇일까? 보통 일반적으로는 초이스(choice)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라고 많이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우리 인생의 근본 문제 중에 하나인 이 사망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것이죠. 사망의 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는 근본적인 인생 암호는 무엇일까? 질문해보는 것입니다. 이 인생 암호를 알게 될 때 나는 누구이며, 내가 어디서 봐서 어디로 가는지 내 존재의 비밀을 알게 되고 삶의 이유와 목적을 깨닫게 됩니다. 또한 인생의 방황과 공허함이 사라지게 되고 풍성한 삶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죽음의 두려움이 사라지고 밝고 소망이 충만한 죽음 관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반면에 인생 암호를 모르거나 또 그것을 듣고도 거부하게 될 때는 언더 컬스(under the curse) 저주 아래에 스스로 자청하여 있게 되는 것입니다. 저주 아래 평생 살다가 죽어서도 저주 아래에 있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내가 들어와도 저주를 받고 나가도 저주를 받으리라. 신명기 28장 19절 말씀처럼 그렇습니다.
 
*신명기 28:19,
19 네가 들어와도 저주를 받고 나가도 저주를 받으리라.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라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져지더라. 요한계시록 20장 15절의 말씀입니다.
 
*요한계시록 20:15,
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져지더라.
-인생 암호를 모르거나 거부할 때, 참으로 이런 심각한 결과가 초래된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고 인생 암호C가 무엇인지 관심을 우리가 적극적으로 진지하게 가질 필요가 있겠습니다. 저는 인생 암호C는 어떤 상대적인 진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절대적인 진리,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적용되어지고 또 인생에 근본 문제들이 해결되어지는 그런 근본 진리라고 생각합니다. 그 진리를 알게 되면 자유함이 있다는 것이죠. 예수님 말씀하시기를 요한복음 8장 32절에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라고 말하였습니다.
 
*요한복음 8:32,
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진리를 체험하여 경험적으로 알게 될 때, 그 진리가 내 인생을 근본적으로 자유롭게 하는 것을 우리는 경험하게 됩니다. 요한복음 8장 36절에서
 
*요한복음 8:36,
36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 이 자유 무엇으로부터 자유를 말합니까?
-첫째는 죄로부터의 자유입니다. 그리고 죄의 결과, 죄의 삭은 사망이요, 사망으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합니다.
-또한 최후 심판, 형벌과 괴로움과 저주로부터의 자유이죠.
-또 마귀 사탄으로부터의 자유인 것입니다.
-또한 자아, 우리 안에 있는 자아와 탐욕으로부터의 자유입니다.
-또 공포, 두려움으로부터의 자유인 것이죠.
 
오늘 제가 나누는 이 말씀은 영어 알파벳 A-J까지 10가지 알파벳을 통해서 차근차근 하나씩 풀어나가게 될 것입니다.
첫 번째, 먼저 A는 바로 이 아담(Adam)의 약자인 것입니다. 아담은 일반 명사로 사람이라고도 말하고 또 인류의 시조 아담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첫 사람 하나님의 형상으로 모양대로 지음 받은 사람입니다. 흙으로 사람을 빚으시고 하나님께서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시니 생령이 되었다라고 말합니다. 그 첫 사람 아담은 하나님과의 언약의 당사자, 대표자였던 것입니다. 우리 모든 전 인류를 대표한 중요한 책임자였던 것이죠. 불행스럽게도 아담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부여해 주신 선택권, 초이스 라이트, 선택권, 자유 의지를 오용, 잘못 사용함으로써 하나님과의 그 생명의 언약을 어기고 배반의 길로 들어가게 됩니다. 하나님께 반역을 하게 된 것이죠. 그 결과는 바로 죄가 세상에 들어오게 된 것이고 사망에 들어온 것입니다. 로마서 5장 12절은 우리 인생에게 어떻게 사망이 들어오게 되었는지를 명확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5:12,
12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언약 당사자, 대표자의 책임이 얼마나 막중한지 그 한 사람의 불순종과 배반은 그 한 사람의 인생만 참 사망하고 저주에 이르게 된 것이 아니라, 전 인류가 모든 사람이 함께 죄를 짓게 되고 또한 사망이 초래되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고전 15장 22절에는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비록 살아 있지만 인생 아무를 만나지 못한 인생은 아담 안에서는 모든 사람이 사실은 죽은 상태로 태어나는 것이죠.
 
*고전 15:22,
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이 A는 또 하나의 의미가 있는데요. 단수를 가르칠 때 A라는 단어를 사용하죠. 우리 인생의 단 회성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오직 한 번뿐인 인생 그 누구도 인생을 두 번, 세 번 사는 사람이 없습니다. “오직 한 번뿐인 인생, 속히 지나가리라.” 라고 했습니다. 아담이 하나님의 그 언약을 어기고 배반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자비로운 음성으로 아담을 찾습니다. 에덴동산 수풀에 숨어 있었던 아담을 향하여 아담 가 어디 있느냐? 웨어라유(Where are you)?라고 물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이 어디 있는지 몰라서 물으신 것이 아니라 내가 왜 지금 거기 있느냐? 어떻게 그렇게 언약을 배반하게 되었는지, 하나님께서 아담의 그 말씀 말을 직접 듣고 싶었던 것이죠. 그래서 우리 인생의 영적인 현 주소는 두 가지예요. 위아웃 갓(without God) 또는 위드 갓(with God). 하나님 없이 사는 삶이냐, 아니면 하나님과 함께 사는 삶이냐, 여러분의 현재 영적인 주소는 어디입니까? 하나님과 함께 살고 계십니까? 또한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와 사귄 가운데 계십니까?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 이 B는 하는 단어는 버스(Birth) 출생의 약자인데요.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우리가 생일 때마다 축복합니다. 서로를 축복합니다. 당신의 삶속에서 그 사랑받고 있지요. 참으로 사랑받고 행복해야 될 우리 인생인데, 사람은 태어난 순간부터 한시도 멈추지 않고 죽음을 향해 달려간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유튜브의 영상을 보게 되면 어느 분만실에서 산모가 아이를 출산하는데, 그 아이가 마치 로켓 미사일처럼 발사되어져서 그 분만실 창을 뚫고 날아가는 것이죠. 날아가는 순간 그 영아기에서 유아기, 또 아동기를 지나서 청소년 청년기를 점점 변모됩니다. 그러다가 장년기에 그리고 늙은 노년기에 들어가고, 마지막에 쇠약해진 모습으로 그 미사일처럼 날아가는 로켓이 어디에 들어가느냐? 공동묘지의 무덤으로 콱! 들어가는 그런 아주 흥미로운 영상이 있는데, 여러분이 유튜브에 찾아보시면 볼 수 있겠습니다. 그처럼 사람은 태어난 순간부터 한시도 멈추지 않고 죽음을 향해 달려간다. 야고보서 4장 14절에는
 
*야고보서 4:14,
14 내일 이를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라고 했습니다. 참 우리가 주변에 죽음을 통하여서 그렇구나! 바로 지난주까지 어제까지 보았던 나의 사랑하는 가족이고 그런 친근했던 분들이 바로 한순간 사망에 이르게 되고, 또 장례 이후에 그 모습을 도무지 다시 볼 수 없는 없어진 안개와 같은 그런 우리 인생의 허망함을 보게 되죠. 전도서 3장 1절에는
 
*전도서 3:1,
1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다.
-라고 했습니다. 날 때는 순서가 있지만 죽을 때는 순서가 없이 예측이 불가한 특징이 있죠. 이 출생 birth보다 더 중요한 것은 리벌스(rebirth)인 것입니다. 이 중생, 다시 거듭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어느 청교도 전도자는 말하기를, 사람이 두 번 태어나면 한 번만 죽고, 한 번만 태어나면 두 번 죽는다. 라고 했습니다. 본 원스 다이 트와이스 본 트와이스 다이 원스(If you are born twice, you die only once; if you are born once, you die twice)라고 말했습니다. 참 기가 막힌 말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한 분 태어난 상태에 계십니까? 두 번 태어남을 여러분 경험하셨습니까? 여러분 만약에 두 번 태어나셨으면 단지 한 번만 죽게 된다는 사실이죠. 리버스 중생이라고 하는 말은 다른 말로 본 어겐(burn again)이라고 말합니다. 본 어게인, 다시 나다 본 어게인, 중생의 원래 이 성경적인 의미는 위로부터 나다 프럼 어버브(from above)라고 하는 뜻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니고데모에게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그리고 뒤에서 주님 말씀하시기를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이 니고데모가 사람이 어떻게 나이가 들어서 거듭날 수 있겠느냐고 예수님께 질문했을 때, 예수님께서 답을 주시기를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은 성령께서 우리 사람을 거듭나게 하시는 일을 하신다는 것이죠. 어떻게? 성령의 사역은 우리를 씻어주시는 사역인 것입니다. 이 물이라고 하는 것은 씻음의 의미가 있는 것이죠. 그래서 중생의 씻음, 성령의 새롭게 함을 받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도 없고, 들어갈 수도 없다 하였습니다.
 
오늘 이 중생의 씻음, 성령의 새롭게 함이 절실히 필요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바로 우리 각자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자기 자신이 되기를 바랍니다. 성령의 새롭게 하심을 날마다 사모하는 그런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니고데모에게 예수님 일침을 가하시기를 “내가 반드시 거듭나야 하겠다.”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반드시 위로부터 나야 되겠다.(You must all be born from above).
 
세 번째는 그다음 죽음에 대해서 D. 데스(death)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에,
*히브리서 9:27,
27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오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죽음은 세 가지 죽음이 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태어나서 하나님 없이 사는 상태,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상태를 가리켜 영적인 죽음이다. 라고 말합니다. 에베소서 2장 1절에
 
*에베소서 2:1,
1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바로 허물과 죄 가운데 영적으로 하나님과의 단절된 상태를 죽었던 죽음이라고 말하는 것이죠. 우리가 과거에 그런 상태에 있었었고요. 그러다가 우리가 예수를 믿거나 믿지 않거나 모든 사람은 육체의 죽음을 경험하게 되는데 바로 육체의 죽음은 영혼이 육체를 떠나는 것입니다. 이 육체는 영원히 거주하는 장막인데, 그 육신의 장막을 영원히 떠나가게 될 때, 영과 육이 분리되는 그 순간을 죽음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참으로 피해야 될 우리가 벗어나야 될 구원받아야 될 죽음은 이 세 번째 심판이라는 것인데요. 지옥 불 못, 요한계시록에서는 그것을 둘째 사망이라고 말하는데 이 둘째 사망으로부터 건짐 받는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죽음의 확실성은 네 가지인데요. 예외 없이 간다는 것이고 순서 없이 또 혼자 빈손으로 간다는 것입니다. 죽음의 불확실성이 있습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내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것입니다. 금주가
 
내 인생의 마지막 주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항시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죽음의 역설이 있습니다. 살았다 하는 이름은 있으나 실상은 죽은 자가 있다. 라고 우리 주님께서 사데 교회를 향하여서 일침을 가하시죠. 반면에 복음을 위하여서 정말 죽을 고생을 하면서 살았던 사도 바울은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있고 이런 죽음에는 역설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가 정말 내가 살아있는지 확인해 볼 수 있는 오늘 시간되기를 바랍니다. 인생 암호를 깨달은 자는 이 죽음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지게 되는데요. 사도바울은 인생 암호를 그가 경험한 이후에 죽는 것도 유익하다. 훨씬 더 좋은 일이라고 이런 급진적인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참 놀랍지 않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고백인 것이죠. 좀 정신이 나간 것이 아닌가? 라고 생각될 만큼 아주 급진적입니다. 죽는 것이 훨씬 더 좋다는 말을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이 차원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고린도후서 5장 8절에서는
 
*고린도후서 5:8,
8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즉 죽어서 주와 함께 있는 것이 내가 정말 원하는 바라.
-고 바울은 진정성 있는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 55절에서
*고린도전서 15:55,
사망한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은 내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우리 모든 인생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그 사망 원수를 향하여서 이렇게 호통을 치고 있습니다. 이런 영적인 기백이 정말 죽음의 상황이 우리에게 불현듯 다가올지라도 “사망한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여 주는 나의 생명이시오 나의 구원의 반석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사망 앞에서도 조금도 쫄지 않고 정말 기백 있고 담대함이 있는 포에버 어르신들 되시길 바랍니다. 우리 지금도 살아계신 우리 김소엽 권사님 시인 계십니다. 그분의 죽음의 창가라는 시를 저는 매우 좋아하는데요. 좀 발췌해서 나누겠습니다.
 
※“죽음은 생의 종말이며 삶의 끝이라고 말하지 마시오. 죽음은 가장 진지한 삶의 표현, 가장 경건한 삶의 완성인 것을, 하루를 잘 사는 길이 잘 죽는 길이오 순간순간을 잘 사는 길이 인생을 잘 사는 길인 것을, 죽음은 또 하나의 신비한 미지의 세계로의 여행 어느 날 그분이 부르시면 영혼의 껍질을 벗고 나비처럼 날아서 아름답고 깨끗한 영혼으로 황홀한 첫날 밤 위에 그분 앞에 가야겠네. 설레이는 마음으로 신혼여행 떠나야겠네. -김소엽 권사님 시인-
 
-참으로 이 고백이 우리 모두의 고백이 되고 언젠가 다가올 나의 죽음을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이 되기를 바랍니다. 얼마나 참 아름답습니까? 설레이는 마음으로 신혼여행 떠나야겠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람들의 죽음이라는 것이죠. 우리 죽음은 정말 사별 그 자체는 슬픔이고, 비극이지만 영적으로 우리 인생의 전 과정을 봤을 때는 최절정에 달하는 가장 최고의 큰 희락의 순간이 바로 죽음의 순간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설레이는 마음으로 신혼여행 떠나야겠네.”
 
그러나 이 비밀을 알지 못하는 세상은 어리석게도 참으로 헛된 것들을 인생 암호라고 붙잡고 살아갑니다. 첫 번째 이 c. 컴폴드 세상 모든 사람들은 안락함을 추구하지요. 참 안락함을 추구하는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거기에 어떤 절대적인 행복이 있거나 또 우리 인생에 이 사망의 문제를 풀어줄 수 있는 능력이 없음에도 그저 좋은 집 한 채 얻기 위해서 인생의 20대, 30대, 40대 죽을 고생을 하고 또 요즘 젊은 사람들은 요즘 영끌이리라 그래가지고 영혼까지도 끌어서 모든 있는 돈 없는 돈 다 모으고 대출받아서 아파트 하나 사는 것 요즘 젊은이들의 관심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롯데캐슬, 얻는 것 롯데캐슬 대표적이죠. 화려하고 아주 고급진 주택에 살고 싶어 하는 욕망들이 누구에게나 있죠. 또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은 돈을 사랑합니다. 더 많은 재물을 모으고자 합니다. 코인 캐시 비트코인에 미친 사람들도 있고요. 캐시를 탐내는 사람들 부를 탐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경은 경고합니다. 누가복음 12장 15절에 삶과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누가복음 12:15,
15 삶과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함에 있지 아니하니라.
-넉넉한 데 있지 않다고 비록 가난하고 궁핍할지라도 생명은 거기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가 참 만족을 재물과 관계없이 누릴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세상은 돈과 더불어서 섹스에 미쳐 있습니다. 참으로 오늘날은 더구나 얼마나 이 성적으로 문란하고 음란한지요. 요즘 우리 자녀들이 얼마나 위험한 문화 속에서 살아가는지 모릅니다. 이 혼전 성관계가 만연해 있습니다. 가늠이 너무 많이 참 음풍이 온 세상에 가득한 것을 보게 됩니다. 더 나아가서 극단적 동성애를 주장하고, 또 동성애와 동성혼 합법화를 ‘차별금지법’이라고 하는 그런 법으로 제정하고자 지금 애를 쓰고 있는 의원들이 많이 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라. 반드시 그 간음과 음행과 동성에 관해서 하나님이 진노하실 것이라고 히브리서 13장 4절에 경고하고 있습니다. 또 세상에 인생 암호라고 붙잡는 권력을 얻고, 명예를 얻는데 파워와 포지션 암호를 얻는데 내년 4월에 국회의원 선거 또 장관 대통령 어떤 장 자리를 많은 사람들이 참 그렇게 갈망하고 욕구합니다. 그러나 그것도 한 때 다 지나가는 것이지 때로는 1년, 4년, 5년 만에 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지나가는 것이죠. 그밖에 종교에 종교에서 인생 암호를 찾으려고 하는 인생들이 많습니다. 이처럼 석가모니 또 알라 마호메트 공자의 컴프셔서, 이런 정말 인생 암호 C에 해당하는 것은 여기 공교롭게도 공자인데요. 참 그는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는 것이죠. 그 밖에도 자동차에 더 좋은 고급 진 차를 얻고자, 또 핸드폰, 때로는 커피 샤넬, 명품, 컴퓨터 또 시가렛 담배, 술 이런 곳에서 인생의 어떤 의미와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다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며, 헤아려 해서 무익한 것이다. 내 인생의 삶의 문제와 죽음의 문제를 결코 해결할 수 없는 헛된 거짓된 암호인 것입니다.
 
인생 암호 C는 바로 인 크라이스트(In Crist)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 씨는 크라이스트, 인 크리스토 라고 하는 이 헬라어는 신약 성경에 164회나 반복되는 매우 중요한 말씀인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22절에
 
*고린도전서 15:22,
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라.
-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
 
*고린도후서 5:17,
17 그런 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어떤 인생도 그리스도 안에 있게 되면은 새 것이 되는 것입니다.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게 되는 것이죠. 인생 암모 C는 Christ died for our since!.... 갈라디아 3장 13절에
*갈라디아 3:13,
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록된 바 나무 위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으니.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12년 전에 어느 대전의 장례식장에서 만났던 어느 아버님입니다. 부인의 죽음 을 지켜보면서 믿지 않았던 어떤 아버님이신데 식사하는 그 접객 실에서 저에게 오셔가지고 “목사님 왜 하필 예수님은 십자가의 나무에 달려 죽었습니까?” 그런 질문을 던진 것입니다. 제가 깜짝 놀랐습니다. 이분이 교회를 다니지 않는 분인데 어떻게 성경에 가장 중요한 그런 본질적이고 핵심적인 질문을 하셨는가? 제가 ‘아버님 정말 중요한 질문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갈라디아서 3장 13절 말씀을 읽어드리고 제가 설명해 드렸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특별히 나무에 달려 죽으신 것은 갈라디아서 3장 13절에 기록한 것과 같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으시기 위함입니다. 율법의 모든 저주에서 우리를 속령하시기 위하여 우리의 모든 죗값을 다 지불하시기 위하여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왜 나무에 달리셨느냐? 신명기 21장 23절에
 
*신명기 21:23,
23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다.
-라고 하는 그런 구약의 율법의 말씀 그대로 성취하시기 위하여서 주님이 나무 위에 달려 죽으신 것이죠. 고전 15장 3절 4절에는
*고전 15:3-4,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인생 암호인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4장에서 방언에 관한 여러 가지 혼란 가운데 그가 가르치기를, 사람이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1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낫다. 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청년 시절에 그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한다는 게 무슨 말일까? 묵상하는데, 바로 이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이 다섯 단어가 결합된 이 진리 예수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 이것이 바로 복음 중에 복음인 것이죠. 이것을 깨닫고 정말 고백하고 선포하게 될 때, 방언 일만 마디 하는 것보다도 훨씬 우리 성도들에게, 또 교회에게 덕을 세우고 도울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이 죽으신 후에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 라고 성경은 이 역사적인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사실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장 18절에
 
*고린도전서 1:18,
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
-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고백하기를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라고 했습니다. 우리 인생이 깊어질수록 세상의 자랑이 아니라, 이생의 자랑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고백하고 자랑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십자가의 은혜를 늘 기억하면서 우리가 감격하여 찬송 올려드릴 때,
 
♪영 죽을 나를 살리려 그 영광 떠나서 그 부끄러운 십자가 날 위해 지셨네 날 위해 지셨네. 놀랍다 주님의 큰 은혜 우리의 죄를 속하시려 갈보리 십자가 위에서 어린 양 보혈을 흘렸네. 주의 은혜 우리의 죄를 다 씻었네. 주의 은혜 우리의 죄를 다 씻었네.♩!~~
-일평생 이 십자가 은혜가 우리 심령 가운데 늘 북받쳐서 눈물로 경비하고 감격하는 그런 예배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인생암호C, 더 크로스 오브 크라이스트(The Cross of the Christ!) “율법을 따라 그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 즉 삶이 없느니라.” 왜 예수님께서 나무에 달려 못 박혀 죽으셔야했는가? 그저 나무에 달려서 목을 매달아서 죽어서는 속제 제사가 이루어질 수 없어요. 왜? 반드시 피 흘림이 있어야 되기 때문에 사람의 생명은 피에 있다. 라고 절에 말하고 있습니다.
*레위기 17:11,
11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그로 피 흘림을 통하여 모든 사람의 피가 아니라, 의로운 사람, 죄가 없는 사람의 피 흘림이 있어야 되는 것이죠. 바로 예수님은 죄가 없는 분으로서 그분의 피 흘림으로 인하여 우리가 사함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일서 1장 7절입니다.
 
*요한일서 1:7b,
7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오.
-요한일서 1장 7절에 그렇게 말합니다. 그래서 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피 흘리심과 그의 부활을 믿는 자는,
 
*요한복음 5:24,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완전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과거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 진 바 근본적으로 옮겨졌기 때문에, 더 이상 그리스도 안에서는 사망이 없는 것이오. 우리의 현재는 이 영생을, 하나님과의 그 사임을 현재적으로 누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미래에는 결코 죄로 인한 끔찍한 심판이 없다는 사실 이 기쁜 소식을 예수님이 선포하십니다. 요한복음 6장 40절에
 
*요한복음 6:40,
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이 영생은 현재적이면서도 동시에 종말론적으로 마지막 날에 우리의 흙으로 돌아간 육체까지도 다시 살리시겠다고 썩지 않고 강한 몸으로 영광스러움 신령한 몸으로, 우리 예수님이 부활하신 그 첫 열매와 똑같은 그런 몸으로 다시 살리리라. 이것이 바로 이미 우리에게 허락되어진 영생 안에 포함되어져 있는 미래의 소망인 것이죠. 요한일서 5장 11, 12절에는
 
*요한일서 5:11-12,
11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12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생명공학자들도 이 생명을 정의하지 못하고, 또 법의학자들도 사망을 근본적으로는 정의를 못합니다. 생명 공학자들은 그저 사람이 물질 대사를 하고 외부 내부적으로 움직이고 생식 기능이 가능하고 외부 자극에 반응을 하고 어떠한 생장하며 또 항상성을 유지하고 에너지와 물질을 필요로 하는 어떤 상태를 가리켜서 살아있다 생명이 있다. 라고 말하지요. 그러나 생명 그 자체를 정의 못합니다. 또 법의학자들은 이 심장 또 폐와 뇌, 생명을 유지하는 데 가장 중요한 세 가지 장기, 심장, 폐, 뇌가 모두 죽는 것을 심폐사(心肺死)라고 그렇게 말합니다. 그렇게 심폐사가 될 때 그 각자의 개체의 사망 시점으로 판단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법의학자 또 생명공학자들이 하는 말이요. 성경은 절대적으로 사람이 살았다 죽었다 하는 것을 그 기준을 아들에게다 두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그 아들의 심령 가운데 참으로 모시고 있는 자는 생명이 있는 것이고 마음 가운데 그리스도가 없는 자는 죽은 자인 것입니다. 이것을 꼭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 머리로 아는 것이 아니라, 인격적으로 친밀한 관계 가운데서 경험하여 그분을 알아가는 거 영원한 사임 그 자체가 영생의 본질인 것이죠.
 
인생 암호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우리가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수용한 자는 E,F,G,H,I,J 여기까지 이어지는데 참 놀라운 죽음 이후 사후에 놀라운 영광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에버 라스팅 파들(Ever lasting Father) 영존하시는 아버지를 모시고, 대면하여 보게 될 것이요. 이터널 패밀리(Eternal family) 우리 앞서간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과 더불어서 우리 모두는 영원한 가족을 이루어 이루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갓 홈(God home), 하나님의 집에서 글로리어스 헤븐(Glorious Heaven) 영화로운 천국에서 길이길이 살게 될 것입니다. 누가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까? 영접하는 자,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라고 말합니다. 로마서 8장 15절에
 
*로마서 8:15,
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아들의 영을 주셔서 아빠 아버지라고 하나님을 부를 수 있게 해 주셨는데 오늘 우리 안에 그 아들의 영이 부어줘서 하나님을 실시간 날마다 친근하게 아빠, 아빠 아버지! 라고 부를 수 있는 이 천국의 현재성을 여기에서 누릴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바로 이 아버지 집, 영원한 천국으로 이르는 이 그 길은 인 지저스(In Jesus!) 오직 예수님 안에 있는 것입니다. 인생의 길과 진리와 생명 유일한 길과 진리와 생명은 오직 예수, 이름 밖에 없습니다. 다른 이름은 없습니다. 이 길을 오롯이 따라가게 되면은 길이길이 살리라. 이 길을 뒤집으면 길이가 되는데 이 길이 살리라.
 
♬독생자 예수 자유케 하시네. 주의 자녀라 하시네. 아버지 지 그 할 곳이 있네 주의 자녀라 하시네.~
-인생 암호를 거부한 인생들 꺼지지 않는 불 못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이 터널 파이어(Eternal Fire)! 소름 끼치는 지옥에서 길이 고통을 당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져지리라.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질 것이다.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 이 진리 앞에서 반응해야 되겠습니까? 이 인생암호 C를 우리의 삶과 죽음에 적용해 보시겠습니다. 먼저 우리 개인적으로 정말 우리 영혼의 심령이 하나님께로 온전히 돌이켜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컴백 투더 로드(Comeback to the LORD), 그리하면 너그럽게 용서하실 것입니다. 주의 이름을 불러 구원을, 구원의 그 실체를 날마다 경험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십시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친근히 가까이 하실 것입니다. 또한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정말 내 안에 예수님이 살아계심을 실시간 매일 확인하면서 살게 될 때 죽는 것도 유익합니다. 놀라운 반전 죽음의 관점이 달라지고 죽음의 내용이 달라지는 죽음의 방향이 달라지는 그런 반전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바울은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담대하게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
 
세 번째 하나님의 양 무리를 돌봄에 목양에 헌신하라고 말합니다. 주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고 말합니다. 주님의 어린 양은 바로 교회죠. 그래서 교회를 돌보고 사랑하고 내 다락방의 순원들과 상호 간에 우리가 서로 돌보는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정성 다하여 사랑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끝으로 이 지상 명령 즉 더 그레이 커맨드먼트(The Great Commandment), 이 세계를 복음화 하는 이 복음 전도에 우리 인생을 걸게 되기를 바랍니다. 바울은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하면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암호, 그리스도의 비밀을 맡겨 주셨으니 우리가 정말 충성된 사도 적 그런 사명자로서 우리가 우리 남은 생애를 올인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나에게는 오직 한 가지 열정이 있다. 그것은 오직 그분이다. 그분 홀로이다. 진젠도르프의 그 심장을 가슴을 우리가 이어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정리하면 컴백, 하나님께 돌아오고 하나님 가까이 하며 리빙 이즈 크라이스트(Living is Crist),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이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세 번째 테이크 캐러어브 마이 십(Take care of my ship), 주님의 몸 된 교회를 목자의 심정으로 목양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지상 명령 선교 완성에 우리의 인생을 전 생애를 걸게 되기를 바랍니다. 오직 그리스도께 미친 인생으로 살게 하여 주옵소서.
 
♣요약
인생 암호 C는 바로 인 크라이스트(In Crist)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인생 암호를 거부하지 말고 인생 암호C가 무엇인지 적극적으로 진지하게 생각해서 인생 암호C를 절대적으로 믿고, 인생에 근본 문제들의 해결점을 그 안에서 찾아야 하며 그 인생의 암호 C로 온 천하에 알리고 우리는 그 안에서 늘 자유함을 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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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비전새벽예배(주후 2023년 9월 23일)
제목: "부흥의 강"
말씀: 사도행전 3:1-10
말씀읽기: 이재영자매( 청년4국), 백세현 형제(대학7부)
찬양인도: 청년부서 연합찬양대
대표기도: 이윤기 부목사님(대학부팀장)
사회: 백요셉 부목사님

설교자: 류응렬 목사님-초빙(와싱톤중앙장로교회)
마무리 기도: 오정현 담임목사님.
----------------

*사도행전 3:1-10,
1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2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3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4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 이르되 우리를 보라 하니. 
5 그가 그들에게서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6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7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8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9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하나님을 찬송함을 보고. 
10 그가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에게 일어난 일로 인하여 심히 놀랍게 여기며 놀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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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응렬 목사님-초빙(와싱톤중앙장로교회)
-정말 우리 청년들 거룩한 의 옷을 입고 오늘 찬양하는 모습이 정말 천국에서 우리가 볼 만한 그런 모습입니다. 우리 새벽을 깨우는 천사들 영적 천사들 우리 사랑의 미래뿐만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미래 축국의 미래인데 우리 박수를 한번 격려했으면 좋겠습니다. 정말, 정말 감동스러웠습니다. 평생 그렇게 살아내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 청년들을 위해서 특별하게 말씀 좀 준비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는데 제가 일단 청년들이 누구인지 한번 확인을 한번 해보고 싶습니다. 우리 청년들은 해당되는 사람들은 조금 이따가 손드시면 됩니다. 10대, 20대, 30대, 40대, 50대 저는 청년입니다. 소원 들어보시겠습니까? 네 좋습니다. 60대가 되어도 70대가 되어도 마음은 청년입니다. 80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손 들어보시겠습니까? 할렐루야!!! 여러분들 모두 청년처럼 살아내시길 바랍니다. 우리 모두 청년과 같은 열정으로 살아내기를 정말 바랍니다.

※-케에르 케코르가 청년 대학교에 들어가면서 했던 한마디가 있습니다. “인생은 20대부터도 아니고 60대 40대부터도 아니다. 인생은 십자가부터다. -케에르 케코르-
-십자가를 만나는 순간 정말 생명을 바쳐도 좋을 만한 사명이 무엇인지를 발견하고 십자가가 내 가슴속에 생동할 때 그 사람이 정말 청년인 줄 믿습니다.

우리 오정현 목사님이 이번에 백석 교단에 45주년 총회 말씀을 전하는 것을 제가 영상을 보면서 정말 심장이 뛰었습니다. 2033, 50 여러분 잘 아시죠? 우리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신 지 2033년 되는 해, 우리 조국 복음화가 50%가 되기를 간절히 열망하는 그 모습 제가 그걸 보면서 희열이 쏟다가 약간 의심이 들어왔어요. 2033,50%이 아니라 2033 30을 하면 조금 그래도 부담이 적을 텐데 50%라고 하시니까, 50% 이게 과연 가능할까? 30%면 좀 그래도 될 만한데, 제가 믿음 없어서 회개합니다.!!!!

우리 사는 성도님들 로마가 어떻게 바뀌었죠? 12명밖에 되지 않는 제자들이었어요. 그러나 그 30대 청년 제자들이 하나님 앞에 자신의 삶을 던졌을 때, 그들의 심장이 십자가의 복음으로 불타올랐을 때 12명이 120명 문도로 말미암아 수많은 제자들이 생겨나게 되고 마침내 392년에 로마가 변화되어서 국교로 세워진 줄 믿습니다. 우리가 청년 같은 열정을 가지고 뛰어다니게 되면 우리 눈에는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고 시대도 어리게 보이지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손을 붙들고 계시면 하나님이 하시는 그 역사에 기대하면서 나아가는 이런 우리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모두가 위기라는 게 이런 시기에 교회 내일을 생존을 걱정하는 이런 시대에 과연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있을까요? 역사를 연구하는 많은 사람들이 많은 책을 써내었죠. 그 가운데 특별한 책이 하나 있습니다.

아놀드 토인비의 책입니다. 역사의 연구 ‘스타드 어브 히스토리’라는 책입니다.
이 책에 보면 중요한 두 단어가 나옵니다. 챌린지 리스펀스(Challenge Response) 그리고 크리에이트 마이너리티(Create Minority)라는 두 단어가 나와요. 도전과 응전 그리고 창조적 소수(Challenge Response and Create Minority, 사람들은 이제까지 역사 발전은 좋은 환경 인류의 좋은 여건 때문에 발전이 되어 왔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4대 문명 발상지를 보면 그러하죠. 나일 강이라는 풍광물이 있었기 때문에 이집트 문명이 발전이 되었고 에스포트 문명이 어떻게 발전이 되었죠? 티그리스강, 유프라테스강 좋은 강을 끼고 있었습니다. 중국에는 황하강의 황하 문명이 있었고 인도에는 겐지스 강의 인도 문명이 있었습니다. 좋은 환경 속에 발전해왔다고 생각을 했는데 아놀드 토이는 조금 다르게 해석을 합니다. 이런 것들이 좋은 여건이 한편 있기는 있지만 그러나 여러분 나일 강이 때에 따라서 언제나 범람하잖아요. 농경시대에 농사짓기는 좋지만 물난리 이번에도 한국에 참 얼마나 아팠습니까? 물이 범람하는 곳에 사람이 살 수 있습니까? 위험하고 살기 어렵습니다. 그러니 언제 나일 강이 범람하는지를 사람은 연구하기 시작을 합니다.

그 챌린지가 역경에 왔을 때 리스펀서 하기 위해서 물이 불어나는 걸 연구하면서 수리학 기하학 그리고 하늘을 연구하는 천문학이 발전하게 된 겁니다. 이 어려움이 있을 때 인간은 극복하기 위해서 더 도전적으로 나아갔다. 라는 거죠. 응전을 했다. 라는 겁니다. 황하도 마찬가지입니다. 중국의 황하가 황허잖아요 그죠? 이 황하 강이라는 게 누를 황(黃)자, 물 하(河)자예요. 산을 깎고 물이 흘러내려오기 때문에 계속 누런 물입니다. 제가 중국에 오랫동안 사역을 했기 때문에 남주에 가면 거대한 황하가 흐르고 있습니다. 사시(四時)사(四)철(-) 누른 흙탕물이 내려갑니다. 사람이 먹을 수도 공업용수로 사용할 수도 없지만 이런 어려운 환경 챌린지가 있을 때 인간은 거기에 리스펀스 하기 위해서 계속 발전을 해왔다는 거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어려움 속에서 그냥 지나갑니다. 그러나 그 어려운 역경을 딛고 일어나는 사람들, 그들을 두고 창조적 소수 크레이디 마이노리티(Create Minority)라는 표현을 합니다.

우리 기독교 역사도 마찬가지죠. 언제나 위기에 있어 왔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위기가 교회를 무너뜨린 역사는 없는 줄 믿습니다. 초대교회가 어땠죠? 예수 믿는 것 때문에 잡혀가 죽임을 당하고 고문당하고 모든 것들이 사라졌던 시대 그 위기를 뚫고 일어난 것이 사도행전의 역사였습니다. 중세 마찬가지였죠. 예수님을 바르게 믿고 성경이 하나님의 진리라고 말하는 것 때문에 요한쿠스는 불타 죽었고 위클리퍼 사지가 찢겨 죽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음의 위협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중세 허감을 뚫고 창조적 소수가 하나님 앞에 그들의 젊음을 던졌을 때 26살 칼빈, 기독교 강요를 낳았고 33살의 루터, 1517년에 종교개혁의 역사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모든 어려움을 뚫고 일어난 부흥의 역사 우리 한국교야말로 정말 위기를 뚫고 일어난 역사 아니겠습니까? 140년 전에 선교사들이 한국에 들어왔을 때, 그들의 자녀들을 한국에 묻어야 했고, 그 수많은 젊은이들이 한국 땅에 그들의 생명을 바쳤습니다.

루비 캔즈로 이름 들어보셨나요? If I had a thousand hearts inside me, I would give them all to Korea. “내 속에 천개 심장이 있다면 한국에 다 바치리라.” 한국에 온 지 1년 만에 열악한 상황에 이 땅에 묻혔습니다.
존 헤론 선교사(의사, 선교사) 이름 기억나십니까? 제중원이라는 드라마에 나오는 주인공이죠. 세브란스의 2대 원장이었습니다. 28살 때 한국에 들어와서 한국에 이질이 번졌을 때 한 사람 한 사람 돌보다가 자신도 이질에 걸려서 한국에 온 지 5년 만에 이 땅을 떠난 사람 그의 나이 33살 2명의 아이, 한 아내의 남편이었습니다.
존 윌리엄스 선교사라는 이름 들어보셨나요? 존 윌리엄스 선교사 한국 땅에 1892년도에 들어와서 새 아들 다 땅에 묻었어요. 자신도 한국 땅에 들어온 지 10년 만에 이 땅을 떠난 43살의 젊은이였습니다. 그 수많은 젊은이들 그들의 피가 묻혀 있는 곳이 한국이고, 그 위기 상황 일제에 처하여 수많은 사람이 잡혀가 죽고 고문을 당하고, 6.25의 전쟁의 화염 속에 일어난 곳이 그 챌린지, 그 위험과 역경을 딛고 일어난 것이 오늘의 한국 교회인 줄 믿습니다.

모두가 다 위기라고 말하고 있지만 우리는 절대로 위기에 무릎 꿇지 아니하고 우리 전능하신 하나님의 오른손의 능력으로 반드시 일어나서 위기를 뚫고 부흥, 위기를 딛고 회복을 넘어서 부흥의 새로운 역사를 써갈 줄 믿습니다. 여전히 미국에 쓰는 우리 그리스도 간의 가장 화두가 이 부흥이라는 단어에. 리바이블 여러분들도 한번 에즈베리 대학교의 부흥을 잘 들어보셨죠? 에즈베리 대학교 그 켄터키 시골에 6천 명밖에 되지 않는 윌모의 조그마한 도시입니다. 그곳에 일어난 거대한 부흥 운동 제가 그곳에 두 번이나 부흥운동 때, 방문하게 되었어요. 한 곳은 대학교에 채플 휴즈라는 채플이 있고 길 하나 너머 이스테스라는 신학대학원의 채플입니다. 이번에 이 부흥운동이 일어난 것은 신학 대학원생이 아니고 일반 대학생들, 그중에는 다양한 과가 있는 일반 대학교회, 일반 채플 시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지금 모두가 위기라고 말하는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가고 있는 미래를 어둡게 보고 있는 이런 시대에 우리 하나님께서 젊은이들에게 주시는 놀라운 선물 이 시대 그 하나님께서 젊은이들에게 꿈을 가지고 있다. 라는 하나님의 그 선물 경리 아니겠습니까? 그 놀라운 부흥의 현장 우리 잠시 한번 보시도록 하실까요?

스톱 워킹 우리 전능하신 하나님 지금도 쉬지 않고 일하시네. 저 줄지은 사람들 보셨나요? 수천 명의 사람들이 예배당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전국 각지에서 그리고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 몇 시간을 주를 기다리면서 그 부흥의 현장 예배당 안으로 들어가려고 기다린 사람들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는 잔디밭에 수천 명의 사람들이 함께 기도하고 무릎을 꿇고 수백 명이 기도하고 간절하게 미국 땅 가운데 부흥 운동이 일기를 열망하고 있는 사람들, 제가 이 봉 현장에 참석을 했다가 다시 한 번 두 번째도 참석을 하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 참석했던 이유는 과연 이 사람들이 부흥이 끝나고 난 다음에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부흥의 역사가 흔적이 지나가고 난 다음에 그냥 과거로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이 부흥을 가지고 부흥의 불씨를 가지고 살아내고 있는가? 그때 틴테넌트 신학대학원의 총장님을 만나고 박태림 교수님, 많은 교수님을 만나서 인터뷰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똑같이 했던 말이에요. 우리 학생들 가운데 300명이 넘는 학생들이 미국 전역에 다니면서 자신의 고향 교회, 본 교회 각국 어느 곳을 하나님께서 마음을 주시면 다니면서 이 부흥의 말씀을 간증하고 다닌다. 라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들뿐만 아니라 그들 속에 임하신 하나님의 그 거룩한 성령을 전파하고 있는 사람들, 제가 처음에 방문했던 날이 2023년도 올해 2월 20일이었습니다. 2월 8일에 시작된 부흥운동이 매일 1500명이 24시간 가득하게 채우면서 기도하고 찬양하고 말씀 읽고 놀라운 영적 부흥이 일어나게 된 거예요. 마지막 20일에 그때는 공적으로 마지막 예배했던 날이었습니다. 1500명이 가득하게 앉아 있는 자리에서 목사님께서 마지막으로 설교하시면서 초청을 하셨어요.

여러분 지난 2주 동안 우리가 이 거룩한 부흥의 바람을 우리 심장에 새겼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계속해서 이 자리에 앉아 있을 것이 아니라 이 부흥을 누군가에게 이 불씨를 전달해야 됩니다. 리바이벌 여러분들의 삶이 이 부흥의 캐리어 전달자가 되기를 원합니다(Revival, I want your life to be a carrier of this revival). 그리고 진정한 전달자로 살아가기 원하는 사람들은 일어나십시오. 거기에 있는 1500명의 모든 사람들이 다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그리고 각국에 다니면서 부흥의 전달자가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한국 교회야말로 지금 어느 때보다도 부흥의 불길을 기다리는 이 시기입니다. 모두가 다 위기라고 말하고 있는 시기죠. 지금 한국의 올해 초의 데이터를 보니까 서울 안에 중고등부가 없는 교회가 50% 가까이 됩니다. 제가 이제 미국도 마찬가지입니다. 한인 교회가 2019년도에는 약 3500개 정도가 되었어요. 팬데믹이 지나가고 2021년도에는 2800개 700개가 문을 닫은 겁니다. 제가 있는 수도 브르지니아에는 한국 교회가 154개 정도 있었습니다. 2년 후에 2021년도에는 110개 약 3분의 1 정도가 문을 닫게 된 겁니다. 모두가 아파하고 있는 이런 현실입니다. 정말 간절한 구원이 필요한 이런 시대 무엇이 이런 부흥의 불길을 가져오게 할까요? 오늘 우리는 말씀에서 가상 위기라고 말하고 있는 가상 챌린지를 만났던 이런 시대에 정말 이 챌린지를 뚫고 영적 비상을 이루었던 영적 창조적 소수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스피리추얼 크리에이티브 마이너리티(Spritual Creative Minority)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오늘 주님의 제자들을 통해서 일어난 사도행전 그 비결이 무엇인지를 여러분들 함께 두 가지를 한번 살펴보려고 합니다. 첫 번째 사도행전의 부흥의 그 놀라운 비결은 기도의 능력을 갈망할 때입니다.

첫 번째, 기도의 능력을 갈망하라.
-우리 가슴 한번 해볼까요? 기도의 능력을 갈망하라 기도의 능력을 갈망하라. 제 구시 기도 시간이었어요. 오늘로 보면 오후 3시였습니다. 요한과 베드로가 시간을 정해서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갑니다. 기도하는 일이 일상처럼 보이지만 당시 상황을 보면 쉬운 일이 아니었죠. 베드로가 한번 복음을 전했을 때 3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서 변화를 받았어요. 제자가 되었어요. 목사들이 이렇게 3천 명이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면 바빠지기 시작합니다. 성도들 케어하고 새신 자 케어하고, 행정하고, 그러나 제자들은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았습니다. 가장 분주한 상황이었지만 아무것도 아니었던 그들을 통해서 역사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고, 그 역사의 비결이 기도라는 것을 알았어요. 그리고 당시가 어떤 상황입니까? 예수 믿는 것 때문에 문 걸어 잠그고 벌벌 떨었던 제자였습니다. 그러나 거룩한 성령이 그들을 위해 임하시고 기도함으로 말미암아 성령이 임하시니까 새로운 사람이 된 겁니다. 기도하러 올라갔던 하나님의 사람들, 사도행전의 제자들의 삶이 어떠했습니까? 문제가 생겼을 때 그 수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고 변화가 되고 교회가 일어났을 때 교회 안에서 문제가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사도들이 했던 말을 여러분 기억합니까? 우리는 기도와 말씀에 전무하겠습니다. 기도할 때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성령께서 기도로 말미암아 일어난 사건이 사도행전의 역사적 사건인 줄 믿습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가 한국교회가 모든 걸 다 갖추고 있지만, 기도가 부족하다면 우리는 영적 빈혈에 걸린 교회라고 말할 수 있어요. 모든 걸 다 갖추고 있지만 심장에서 뛰는 이 피가, 기도의 피가 사라지는 교회, 영적 빈열에 걸린 교회 기독교를 다른 말로 말하면 기도교입니다. 우리 성도 한번 해볼까요? “기독교는 기도교다” 우리가 최선을 다하면 최선의 열매는 맺을 겁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도하면 놀라운 생명의 역사를 주님이 이루실 줄 믿습니다.

로이트 존스가의 부흥에 대해서 한 말이 있습니다. “부흥은 우리의 힘으로 일으킬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전적으로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 기도하고 간청하고 탄원하고 간구하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교회가 이런 교회 아닙니까? 빌레그램이 세상천지를 다니면서 복음을 다 전했죠. 빌리그램이 쓴 글 중에 “새벽을 깨운 새 나라” 라는 글이 있어요. 캐나다 일본 한국이었습니다. 캐나다 아름다운 자연이 새 소리가 한국 새벽을 깨웠어요. 자연이 아름다운 나라 일본 돌아가는 기계 소리가 새벽을 깨웠습니다. 경지의 대국 한국 무엇이 새벽을 깨웠을까요? 새벽에 기도 소리 새벽의 종소리가 한국을 깨웠어요. 그가 마지막에 한 글입니다. 미래는 새벽을 깨우는 영적 천사들 한국에 열릴 것이다. 할렐루야!! 하나님의 그 놀라운 은혜로 우리 한국에 오늘까지 이렇게 오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에즈베리의 부흥 역사를 보면 부흥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주권적인 은혜입니다. 그러나 그 주권적인 은혜를 만들어내는 통로가 있어야 돼요. 여러분 그 통로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통로 사도행전도 마찬가지고 기독교인 역사도 마찬가지고 이번에 에즈베리 부흥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 부흥을 간절히 사모하는 젊은이들이 있었어요. 박칼림이라는 사람 매주 금요일마다 그 이스테스체플이라는 곳에서 기도했느라고 저를 안내하면서 목사님, 우리가 이곳에서 처음에 6명이 기도했습니다. 나중에는 60명이 와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한국 한 학생은 새벽 매일 5시에 나아가서 부흥을 위해서 기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번에 부흥의 역사를 듣고 가장 많이 사람들이 관심이 있었던 사람은 홍수 리오라는 중국계 말레이시아 교수님이셨어요. 제가 이 교수님을 만나면서 정말 이 시대에 이런 사람이 있다. 라는 것에 심장이 뛰었습니다. 이분이 저분이세요. 이분이 본래 미국에서 박사를 마치고 말레이시아의 신학교 신학 교수로 들어갔습니다. 2015년도에 이 에즈베리 대학교의 방문교수로 오셨어요. 그때 하나님께서 이분에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네가 이 학교에 풀타임으로 기도의 부흥을 위해서 기도하지 않겠는가? 하나님 제가 생활을 해야 될 사람인데 제가 경건한 컨스버티브의 보수적인 교수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말씀하는 걸 제가 어떻게 이해해야 됩니까? 강력하게 하나님이 말씀하셨을 때 도저히 그 마음을 뿌리칠 수가 없었어요. 그곳에 와서 저 힘으로 기도하기를 시작을 했습니다. 2020년도가 되었어요. 이제는 그렇게 기도하지 말고, 앞뒤에 사인 판을 메고 다니면서 기도하라. 여러분 다시 한 번 사판 한번 보시겠습니까? 앞뒤 사인판 저게 뭘까요? 윌 모어 저 도시 이름입니다. (WILMORE AWAKENING REVIVAL)어웨이크닝 리바이블, 대각성이 일어나기를 리바이블, 거룩한 부흥이 일어나기를 리펜트!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빌리지 천국에 가까이 왔습니다. 오른쪽 저 그림을 보면 리스 성령님 우리 가운데 오십시오! 저 멀쩡한 박사 교수님이 저렇게 앞뒤로 사인 판을 메고 다녔으니 사람들이 뭐라고 말하겠어요. 제가 교수님께 모르는 사람이 없겠습니다라. 고 했더니 사람들이 나를 보고 샌드위치 매느라 부른다고 앞뒤를 샌드위치처럼 이렇게 들고 다니니 어떤 사람들은 맨 위드 사인, 사인을 가진 사람, 그렇게 기도하다가 2년 정도 지났어요. 지난해 하나님께서 이제는 기도를 그만하고 뉴욕에 가서 홈리스 사역을 하라고 하나님 제가 부흥을 보기 위해서 교수직을 내려놓고 이곳에 왔는데 아직 부흥의 역사를 보지 못했는데, 어떻게 제가 뉴욕을 가야 됩니까? 홈리스 사역이라니요 이 부흥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넌 이곳을 떠나라. 너 흔적을 지워!!라고 하셔서 뉴욕으로 갔습니다. 그렇게 사역을 하던 중에 올래? 2월 7일이었어요. 아버님 돌아가시고 홍콩에서 5주 동안 있다가, 2월 7일 미국으로 뉴욕으로 돌아왔습니다. 다음 달 6월 8일 아침에 눈을 뜨는데, 하늘이 청량하게 뭔가 하나님께서 오늘 이루실 것 같아요. 기대가 많아가지고 버스를 타고 홈리스 사역자들을 만나러 갑니다. 그들 만나는 순간 마음이 확 무너졌어요.

매춘부들, 매스부들, 거리의 마약자들, 널브러져 있는 사람들, 하나님, 정말 이들의 삶이 어떠합니까? 이들도 하나님이 만드신 사람들인데 부흥이 아니고는 이들이 일어날 수가 없겠습니다. 그때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하늘을 바라보는데 너무나 하늘이 청하게 비치면서 그 하늘에 뭔가 일어나는 걸 본 거예요. 그때가 2023년도 올해 2월 8일 11시였습니다. 바로 에즈베리의 부흥이 시작된 바로 그 시간이었어요. 그리고는 그 소식을 듣고 바로 아내와 함께 캔티키로 날아왔습니다. 긴 세월 모든 걸 두고 부흥을 위해서 기도했던 한 사람 그 앞에 펼쳐졌던 그 놀라운 역사 얼마나 감격스러웠겠어요. 그리고 다시 예전에 맸던 거 사진판을 앞뒤로 메고 나가는데 하나님이 이제는 그러지 말라고, 너의 이름을 여기에서는 다 지우라고 폭스뉴스, cnn 뉴스, 모든 주요 뉴스가 다 와서 그 인터뷰를 청했지만 한 사람과도 인터뷰를 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이번에 만나게 된 계기는 이분과 함께 기도했던 한국 목사님을 잘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도 기도하는 사람, 하나님 앞에 간절하게 우리의 삶을 드리는 그런 기도에 열망하는 사람을 통해서 우리 하나님 역사하실 줄 믿습니다. 제가 중국에서 사역을 하는 가운데 참 많은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한 번은 중국의 서안, 이전에는 장안라 불렀죠. 중국의 수도입니다. 그곳에 가면 유명한 두 개의 무덤이 있어요. 하나는 진시왕릉이 있고 하나는 영국의 유일한 여 황제 측천무후 여황제가 있는 무덤이 있습니다. 그곳에 가면 우리 한국에 이전에 여러분들이 제주도에 가면 탐나식품이라는 회사가 있었어요. 그 회장님이 김헌태 회장님이신데 이분이 이전에 아주 오래전에 30년도 전에 중국에 들어갔어요. 보니까 교회가 하나도 없는 것을 보고, 어떻게 하면 교회를 세울 수 있냐고 이미 그분은 많은 물질을 가지고 교회 큰 제주도의 교회를 세우고, 교회 하나 없는 곳을 바라보고는 어떻게 하면 교회를 세웁니까? 우리 중국에서는 공산주의이기 때문에 교회를 못 세웁니다. 아니 세울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달라고 그 옛날에 20억을 투자하면 세울 수 있다. 라고 이야기를 했어요.
당장에 20억을 들고 들어가서 교회를 세웠습니다. 중국에 있는 공식 허가를 받았던 서안, 장안에 1호 교회입니다. 문제는 이 교회에서 사역을 하는 가운데 저 측천무후의 무덤 그는 측천무후의 여 황제를 산을 깎아서 산이 이렇게 비스듬하게 깎아서 여성이 누워 있는 모습으로 무덤을 만들어 놓았어요. 그 안에 어느 곳에 무덤을 만든 거죠 그런데 그 밑에 있는 마을은 그 여 황제를 숭배를 하고 제사를 드려요. 그래서 그분이 그렇게 말해요. 목사님 저게 귀신이 언제나 장난을 치니까, 사람들이 죽어가고 병이 들고 이번에도 한 여대생이 멀쩡한 여대생이 집에 와서 몸 매달아 죽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초창기부터 참 신선하게 다녔던 21살 홍혜 라는 청년이 귀신이 들려 지금 죽음 앞에 있습니다. 목사님 기도 한번 하러 갑시다. 해요. 가서 봤더니 그 추운 2월에 목돌이를 제가 얼마나 했는지, 방 안에 갔더니 홍해가 없어요. 어머니가 데리고 흑관으로 데려가요. 흙간에 옷 하나 입지 않고 옷 하나 입지 않고 누워 있는 홍해 제가 얼어 죽을 것 같아요. 보니 밑에는 우물이 흐르고 온몸이 욕창이고 제가 빨리 풀을 벗어서 홍해를 덮어주는데 그러지 말래요. 몸을 만져버려요. 몸이 불덩이 같아요. 이 귀신이 지금 역사하고 있으니까 엄마는 지금 홍혜가 죽는다고 눈은 흰자가 드러나고 2~3일을 못 견딜 것 같아요. 장로님이 기도 한번 해주세요. 무슨 기도를 하겠어요? 제가 그를 끌어안고 하나님 이 젊은이를 이렇게 갈 수는 없지 않습니까? 간절히 기도하고는 돌아오는데 이래서는 안 되겠어요.

오늘 내일 가서 목욕 한번 시키고 따스한 밥 한 번 먹이고 그리고 우리 주님께로 보내드립시다. 그렇게 하자고. 집에 와서 눕는데, 잠이 안 와요. 12시 시교 소리가 들려요. 장로님 우리가 지금 귀신에 사로잡혀서 홍예가 지금 죽어가고 있는데 귀신 잡으러 가자고, 그랬더니 장로님도 그거 하자고 일어나서 귀신 잡으러 올라가는 겁니다. 그 산으로 올라가는데 제가 혹시라도 무슨 문제가 있을까 봐 제 아내에게 문자를 보냈어요. 귀신 잡으러 가니까 기도해 달라고.,,,미국에 있었던 그때 아내가 그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축복 기도를 했겠습니까? 저는 그때 그 상황을 다 녹음을 하나하나 다 했습니다. 혹시라도 어떻게 되면 나중에 이것이라도 남겨야 되겠다고. 그러고는 한참 산을 비타를 타고 올라가는데 캄캄한 그 겨울밤에 프레시 들고 올라갔어요. 그리고 장로님 제가 이 녹음을 들어보니까 그렇게 다 나와 있어요. 이 귀신이 분명히 급소가 있을 텐데 급소가 어딜까요? 아마 목 줄기가 아니겠냐고 목이 어딥니까? 저 산에 올라가면 한참 올라가면 거대한 바위를 다 목으로 만들어 놓았어요. 땀 뻘뻘 흘리고 올라가서 그 바위 위에 막 바위를 뛰면서 바위를 누르면서 목을 조르면서 하나님, 이 귀신의 목을 졸라주시고 우리 홍예를 살려달라고 귀신의 목을 비틀어주시고, 우리 홍해를 살려달라고, 그리고 여기가 실크웨이 비단길이 시작되는 곳이 정안입니다. 하나님, 저 서구 문물이 지나갔던 이곳인데 하나님 이곳에 비단길로 말미암아 복음의 불길이 복음의 길이 열려달라고 이곳이 정안입니다. 몇 시간 기도하는데 막 희열이 막 솟아요. 그리고는 너무나 감격스럽게 내려오는데 갑자기 어느 순간에 오니까 막 빨간 불이 막 돌아가요. 이게 뭔가 싶었더니 우리가 감시 카메라에 걸린 거예요. 도굴 봉처럼 걸린 거예요. 그리고는 갑자기 트럭이 막 올라오고 군인들이 막 올라오는데, 여기서 걸리면 큰일 나겠다 싶어서 장로님하고 막, 막 뛰어내려오는데 한참 뛰어내려오니까 이제 더 이상 이제 힘이 없어요. 그리고는 선교사님 안 되겠다고 여기 우리 좀 쉬자고 그리고는 조용한 데 어디 오목한 데 들어가서, 가만히 눈을 감고 하나님 잡히면 안 됩니다. 이 시간이 지나가게 주의 날개 아래 피합니다. 간절히 기도하는데 여러분 여기저기 죽은 소리 왔다 갔다 하죠. 트럭 소리 왔다 갔다 하죠. 그런데 하늘에 평강이 오더니 찬송이 흘러나와요.

♬내 영혼의 그윽히 기 깊은 데서 맑은 가락이 울려나네. 하늘 곡조가 언제나 흘러나와 내 영혼을 고이싸네.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 ♪

-찻소리가 지나갔어요. 새벽이 되었습니다. 장로님하고 내려왔어요. 그리고 한국에 들어왔는데 한 주가 지났어요. 장로님이 중국에서 전화를 했어요. 너무 너무나 상기된 목사님 목사님 하나님 이런 일도 하십니까? 하더니 깐씨, 깐씨에(感谢-깐씨에 깐쉬에) 짜내지 홍혜이가 전화를 하는 거예요. 하나님을 찬양하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나를 살려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귀신의 목을 비틀고 귀신의 사로잡힌 영혼을 살려내신 줄 믿습니다.

할렐루야!! 우리 전능하신 하나님, 모두가 위기라고 말하고 있는 시기 가운데 우리 전능하신 하나님 역전이 역사의 주인공인 줄 믿습니다. 성경에 사도행전의 제자들 기도하는 무릎이 꿇어졌을 때 그로 말미암아 일어난 게 사도행전의 역사인 줄 믿습니다. 한국교회 모든 게 부족했지만 새벽을 깨웠던 성도들, 차가운 마룻바닥을 눈물로 적셨던 장로님들, 권사님들 밤이 새도록 주님 앞에 기도원을 다니고 수련해하고 열정을 내어서 달렸던 청년들 이들로 말미암아 오늘 이 기도로 말미암아 한국교회가 온 줄 믿습니다.

우리가 기도로 말미암아 위기를 타파하고 다시 한 번 회복을 넘어서 부흥을 꿈꾸는 이런 하나님의 교회 되시기를 제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사도행전의 부흥에 두 번째 비결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복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능력을 갈망하는 겁니다.

두 번째, 복음의 능력을 갈망하라.
-복음의 능력을 갈망하라 복음의 능력을 갈망하라. 거지는 한 푼의 물질을 위해서 오늘 베드로 요한을 바라봅니다. 베드로가 뭐라고 말합니까? 우리를 보라. 이 시대 우리 기독교가 세상을 향해서 이런 말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우리를 보라고 세상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보라고, 은과 금은 나에게 없지만 나에게 있는 이것을 너희에게 주노니 일어나 걸어라. 지금은 수많은 은과 금을 가지고 있는 시대가 되었지만 정말 있어야 될 그 이름 예수가 사라져버리는 이 시대 예수 하나 있으면 죽음 앞에서도 당당하게 일어날 줄 믿습니다. 주의 제자들은 제자들이 아니어서 예수님을 따라다니지만 예수님을 몰랐어요. 누가 크냐? 라고 싸웠죠. 주님 십자가 제 아들이다 할 때 베드로가 뭐라고 말합니까? 주님 십자가는 안 됩니다. 십자가 지실 때 부인하고 저주하고 도망갔던 베드로 그러나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정말 만나고 체험하고 기도의 능력을 임했을 때 눈빛이 달라졌어요. 어제도 보았던 거지입니다. 성전 문 앞에서 40년을 구원했던 거지였어요. 그러나 오늘 그 거지를 바라보는 베드로의 눈빛이 달라졌습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하루 이틀을 살아가게 만드는 물질이 아니었어요. 그의 영혼을 새롭게 만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가슴속에 품고 있는 그 십자가의 복음 은과 금은 없지만 예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이 복음만이 세상을 바꿀 줄 믿습니다. 여러분 주님의 제자 바울을 기억합니까? 세상 모든 것을 다 누렸던 사람이었어요. 종교적으로도 완벽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체험했을 때 하늘의 복음을 체험했을 때 그가 하는 말이 있습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 위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작정을 해놓으라. 사나 죽어라 내가 그리스도의 것” 이라고 예수님의 복음을 만났을 때 그가 했던 일이 뭐죠? 복음의 천사가 되어서 중동 한 나라 한 나라 다니면서 한 사람 한 사람 복음을 전했던 바울, 40에 하나 감한 매, 39대를 5번이나 맞아가면서 죽은 줄 알고 버렸을 때 정신 차리고 다시 가서 했던 것이 복음 전하는 일이었습니다. 배고픔 추위 강도의 위험 그럴 필요 없잖아요? 세상의 모든 걸 다 누린 사람인데 세상 걸 다 누리면서 예수도 잘 믿으면 안 됩니까? 여러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복음을 만나면 변화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비포, 에프터가 명확하게 차이가 나는 거예요. 내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만났는데 우리 청년들, 예수님의 십자가를 만났는데도 내 이전과 이후의 삶에 변화가 없다면 우리 물어보셔야 돼요. 정말 내 심장이 되는 이 피가 예수의 피가 정말 맞는지, 올해 2023년도 6월에 교단 쇠퇴, 미국에 중요한 데이터가 하나, 발견 발표를 한 것이 있어요. 지금 미국에 많은 교단이 딕트라인 떨어지고 있는데, 그 디카인 되는 가운데 성장하고 있는 교회가 보이는 게 있어요. 여러분 좀 하게 보이는데 잘 보이십니까? 왼쪽부터 디클라인 멤버십 올해 6월에 발표한 것입니다. 브라이언 블스라는 사람이 발표한 건데 ABCUSA의 에메리크 베티처입니다. 미국의 침례교는 강력하지만 이 침례교는 조금 남심리하고는 좀 다른 곳이에요. 23% 30년 동안 다 감소 되었죠. ucc 유나이티드 셜 크라이스트 52% 떨어졌습니다. elca 이벤젤리컬 루트라 42% 떨어지고, umc 미국의 감리교죠.- 31% 떨어지고, PCUSA가 우리 한국으로 보면 통합과 연계 있는 교단입니다. 58% 떨어지고 있어요. 당연히 동생에 받아들인 곳이죠. 여러 PCA가 어떤 곳입니까? 우리나라의 최초의 우리나라 마포 3열 우리 한국교회 목판이라고 할 수 있는 평양신학교를 세운 분이 그 파송한 교회가 이PCA회사예요. spc 미국의 그래도 가장 큰 강력한 복음적인 교단입니다. 3% 그래도 조금 떨어졌죠. tec eps 커플 출시입니다. 성공률 36% 떨어지고 그런데 놀랍게 성장하는 데가 있어요. 어셈블리 오브 갓 펜티코스들 같은 조금 순복음 교통의 교회입니다. 51% 성장하고, pca 영광스러운 pca 우리 교회도 브라인 셰프 목사님 오신 적이 있죠? 또 다피를 일백 총장도 오셨죠. 이분들 다 pca 교단입니다. 우리 총신과 맥을 같이 하는 우리 교회가 소속돼 있는 PCA에는 지금 101% 성장을 하고 있어요.

여러분, 이 공통점이 뭘까요? 한 가지 딱 말하라면 떨어지는 교회는 모두가 성경의 모호를 믿지 않는 곳입니다. 성장하는 교회는 성경을 하나님의 절대 진리 복음 진리로 그대로 믿고 있는 교단입니다. 그리고 난 이나미네이션 교단이 없는 많은 곳은 성경을 그대로 믿는 곳만이 성장을 하고 있어요. 사랑하는 여러분 역사가 증언하고 있고 데이터가 증언하고 있습니다. 복음이 있는 교회가 내일 있는 줄 믿습니다. 예수의 십자가를 품어야 십자가를 건다고 교회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십자가 내 심장에 약동해야 그게 진짜 교회고 그 심장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이 성도인 줄 믿습니다. 이번에 에즈베리 부흥 운동이 일어났을 때, 이 놀라운 복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그때 참 강력한 복음이 선포가 되었어요. 잭 미어크리스라는 젊은 목사님이 설교를 했을 때였습니다. 시니어스, 우리 4학년 여러분 두나 크레이트 졸업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기까지는 조롱하지 마세요. 그리고 하나님 앞에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 오늘 우리에게 뭔가를 말씀하시려거든 우즈 프리디스 인디스룸 이 예배당에 하나님 역사를 일으켜 주십시오. 앤디 이 영혼들 위에 앤디 마인 이들 위해 그리고 앤디스 헐츠 이 사람들의 가슴 위에, 마지막으로 그에게 간절히 기도합니다. 지서스 예수님 이미 우리 가운데 새 일을 행해 주십시오. 리바이블, 아스바이올라 당신의 거룩한 사랑으로 우리에게 불길을 일으켜 주십시오. 우리에게 부흥을 일으켜 주십시오.

오늘 우리에게 뭔가를 말씀하시려거든 이 예배당에 하나님 역사를 일으켜 주십시오. 이 영혼들 위에, 그리고 이 사람들의 가슴 위에, 마지막으로 그에게 간절히 기도합니다. 예수님 이미 우리 가운데 새 일을 행해 주십시오. 당신의 거룩한 사랑으로 우리에게 불길을 일으켜 주십시오. 우리에게 부흥을 일으켜 주십시오(God, if you want to tell us something today, please bring about your work in this chapel. Over these souls, over the hearts of these people, and finally to him, I pray earnestly. Jesus, please do something new among us. Revive! Ignite us with your Holy Love. Please bring revival to us).
-사실 미크리스 목사님이 이 설교를 하기 전에 거닥터님이라는 중국 교수님을 만나서 제가 그분께 직접 대화를 통해서 들었어요. 설교 준비가 안 됐다고 나와서 기도를 해달라고 설교를 마치고 난 다음에 아내에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내가 오늘 설교를 즉서한다고...그렇게 제대로 한 설교가 아니라고. 하지만 사랑 여러분 복음에 능력이 있을 줄 믿습니다. 이 복음에 학생들이 다 돌아가고 19명이 남았어요. 그리고 그들이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하기를 시작했습니다. 기도하기를 시작하니까 뭔가 하나님이 역동하기를 시작을 하셨어요. 그리고는 하나님께서 뭔가 찾아오자 그들 마음속에 뜨기 시작했어요. 친구들에게 문자를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카터 휴즈 예배당으로 오라, 선택 헤버닝 히에 뭔가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그리고 학생들이 오고 학생들이 가니까 교수들이 왜 가냐고 함께 오고 지옥에 오고 그렇게 순식간에 1500명이 그 자리에 메워서 이 1500명으로 말미암아 놀랍게 일어난 것이 부흥의 역사였습니다. 성령이 역사하시면 진리의 말씀이 역사하시면 놀라운 생명의 부 역사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우리 한국교회는 중국과 일본보다 훨씬 더 복음 들어오는 게 늦었어요. 수백 년 늦었습니다. 그러나 왜 한국교회가 지금 이렇게 놀라운 역사의 한복판에 서 있게 될까요? 초창기 선교사님 그 젊은이들 모든 게 다 부족했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복음 십자가의 복음이 확실했어요.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사랑하는 특별히 청년 여러분 이 십자가의 복음을 여러분들의 심장에 새기기를 바랍니다. 이 십자가의 복음이 그냥 우리의 느릿 속을 치시는 것이 아니라 심장을 뚫고 내 손과 발을 움직이는 살아있는 복음이 되게 만드는 이런 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오늘도 하나님이 이 복음이 스며들면 역사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제가 몇 년 전에 페루에 있는 한 선교사님으로부터 너무 감동적인 사진을 하나 받았어요. 페루에 제가 몇 차례 선교를 가게 되었습니다. 한 어르신을 복음을 전해서 그분이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어요. 복음을 전하는 저 모습입니다. 더덩거리는 스페니시를 가지고 복음을 전하고 이분이 예수님을 믿고 그날부터 1년 6개월을 매일 페루 아마오다 그 지역에 선교사님께 찾아와서 김종원 선교사님 사역을 도와주셨어요. 1년 6개월이 지났습니다. 2, 3일 이분이 나오지 않자 선교사님이 대구로 찾아갔더니 이분이 돌아가셨어요. 그리고 가족이 없다 보니 거기서 물품을 정리하는데 이 사진이 하나 나온 거예요. 더듬거리는 스페인이지만 복음이 역사하며 역사할 줄 믿습니다. 올해 여름에는 우리 교회에서 이제 팬데믹을 뚫고 예전처럼은 아니지만 여러 나라에 우리 단기 선교를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225명이 각국에 다녀오게 되는데 그중에 아마존의 아마존 마노스라는 곳에 가게 되었어요. 저 배를 타고 한 곳 한 곳의 마을을 선교를 하러 다니는데, 의사 11명 그리고 전도하는 사람 기도하는 사람이 함께 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한 말 한 말 치료를 해주고 그 사람들 복음을 전하는데 한 말에 갔더니 한 청년이 앞에 그냥 왔다 갔다만 하고 있어요. 저 청년 데리고 오라고 이 청년이에요. 저 애는 안 된대요. 귀도 들을 줄 모르고 말도 할 줄 모르는 장애인이래요. 우리 권사님이 너무 마음이 동해서 빨리 데려오라고 그리고는 저 이벤즈 큐입니다. 저걸 가지고 더듬거리는 스페니시를 가지고 그의 눈을 보면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했어요. 데어스크르 엘론브레 인간은 하나님을 대항해서 범죄였습니다. 엘롬브르 백코콘드라디오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데워 비오 헤소스 그리스도 그리고 해소스 그리스도 미르 엘라 그로스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셨습니다. 보르스카스르스페카도스 당신의 죄와 나의 죄를 위해서 돌아가셨다 하면서 십자가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 창녀의 눈에서 눈물이 확 쏟아졌습니다. 말 못하는 청년 듣지 못하는 청년 그러나 복음에 임하면 능력이 나갈 줄 믿습니다.

이것이 위대한 복음의 능력입니다. 모두가 위기라고 말하고 있는 이런 시기에 여러분 무엇으로 우리가 조국 교회를 새롭게 만들고 무엇으로 2033, 50%을 만들어 내겠습니까? 주님 앞에 꿇는 무릎으로 나가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십자가의 복음으로 조국 교회를 조국을 그리스도의 푸른빛으로 만들어내는 이런 여러분들 되시길 바랍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주님 앞에 부름을 받았던 스피리츄얼 크레이디 마이너리티(Spritual Creaty Minority) 영적인 창조적 소수자들, 내 생명을 주님의 복음을 위해서 내 삶을 드리겠다고 달래가는 이 사람들을 위해서 하나님이 친히 이룰 역사예요. 여러분들, 청년들, 오늘 다 청년들이신데 청년 열혈 정신으로 그렇게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지난주에 우리 교회에서 중국에서 스테판통이라는 목사님 우리 교회도 잘 알려져 있죠. 이 중국계 말레이시아 분이십니다. 인도네시아 최강 이스라엘 나라 이슬람 국가의 리폼드 이벤젤리클 초스 인도네시아 그 만 명되는 큰 예배당에 있는 참 멋진 목사님이에요. 연세가 83세입니다. 우리에게 오셔서 캠페인 전도 집회를 했어요. 그 수천 명의 전 우리 중국인들이 모였습니다. 그분이 올라오는데 부축을 양쪽 부축을 받고 올라오세요. 그리고 이번이 마지막 집회를 이제 앞으로 못한다고 더 이상 할 수가 없는 거예요. 부축을 받고 올라오시더니 강단을 딱 잡고는 그때부터 1시간 반을 하나님의 말씀을 쏟아놓는데 한번 보시겠습니까? 여러분 정말 심장이 뛰게 만드는 저 복음 그다음 글 한번 보시겠어요? 저 하는 분 저 휠체어 오른쪽에 있는 분은 지금 일어서지 못하고 앉아 있는 분입니다.

저렇게 1시간 반을 쏟아내고 보물을 쏟아내고 그리고 다 마쳤어요. 저녁 식사를 밤늦게 11시에 같이 하자고 식사하러 가는데 이분이 나오지 않으세요. 차에 계시는데 누워 계시면서 내가 일어나질 못하겠다고,, 정말 사력을 다해서 던지는 분, 제가 14년 전에 그 교회 초청을 받아서 갔습니다. 69세였어요. 1년에 300편 이상 비행기를 타고 복음을 전한다고 했습니다. 제가 그렇게 물었어요. 목사님 한국에는 70세가 은퇴인데, 목사님은 어떠세요? 그분이 저에게 이렇게 표현했어요. 크리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노 타이어 은퇴란 없습니다. 오직 리파이어(There is no fire, Only refire). 다시 불태우는 것밖에 없습니다. 그에게는 구호가 아니라 삶이었습니다.

오늘 놀라운 생명의 역사 많은 사람이 누구를 쳐다보았겠어요? 베드로 요한을 마치 신처럼 보지 않았겠습니까? 베드로 요한이 뭐라고 말합니까? 어찌하여 사람들은 우리를 바라보는가? 이 인생의 역사를 이루신 분이 우리 그리스도라고,,, 사랑하는 여러분 이 모든 영광, 모든 공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하나님의 사람들 되시길 바랍니다. 위기라고 말하고 있는 이런 시대 영적 창조 소수가 되어서 우리 특별히 젊은이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가슴에 품고 하나님 나라를 향해서 멋지게 인생 불태우는 이런 하나님의 사람들 우리 사랑의 교회가 일어남으로 말미암아 이 지역에 잠들어 있는 교회를 깨워내고, 한국 교회를 깨워내고, 세계 열방을 그리스도의 핏빛으로 물들어내는 이런 하나님의 사람들, 하나님의 천사들 되시기를 제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요약
오늘 사도행전의 그 생명의 역사, 부흥의 역사를 보았듯이, 한 번 사는 생에 적당하게 살기를 거부하고 주님 앞에 무릎을 꿇으므로 주님 앞에 십자가의 복음으로 나아감으로 우리로 말미암아 성령이 역사하심을 믿고, 다시 한 번 이 시대에 부흥의 불길을 체험하고 비상하는 하나님의 나라가 되기를 간절히 간구해야 한다. 청년들과 청년처럼 살아가는 모든 백성들이 그렇게 고결하게 살다가 한 인생 불꽃처럼 살아내며 주님 앞에 온전하게 서기를 기도와 복음으로 갈망해야 한다. 사랑의 교회로 말미암아 서울에 잠들어 있는 교회를 깨우고, 민족을 깨우고, 세계 열방을 깨우는 그리스도의 삶으로 물들이는 걸어 다니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베드로가 앉은뱅이를 치유한 것은 구약에 예언된바 메시아 시대에 임할 축복의 성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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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토비새 대표기도(이윤기 부목사님 기도)
-이 시간 대학부 팀장으로 섬기고 있는 이윤기 목사님, 기도해 주시겠습니다. 영광과 전기와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하나님 아버지 악한 세대 속에서 우리를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로 불러주시고, 예수님의 온전한 제자와 참된 예배자로 세워주시니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립니다. 믿음의 세대 계승이 이루어지는 부흥, 헌신, 토요, 비전, 새벽 예배에 나아온 사랑의 교회 믿음의 4대 0가족과 모든 청년에게 새로운 한 주를 힘있게 시작할 수 있는 새 힘과 새 은혜를 부어주시옵소서. 특별히 오늘 사랑의 교회, 미래인 청년 세대의 부흥을 사모하며, 믿음의 사대가 함께 기도의 짐을 지고 나아가는 부흥, 헌신, 청년, 토비새(토요비전새벽예배)를 통하여 사랑의 교회 청년 세대가 영성과 야성, 실력과 겸손을 두루 갖춘 온전한 사명자로 세워지게 하옵소서. 다음 세대에게 꿈과 비전을 품게 하시는 하나님 세상이 우리를 바꾸려는 위기 앞에서도 세상과 구별되는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거룩한 크리스천 문화를 선도하게 하옵시고, 2033년까지 이 민족의 50%가 예수님을 믿게 되는 2033, 50% 비전을 이끌어가는 주역들로 우뚝 서게 하옵소서. 특별히 한결같은 목자의 심정으로 사랑의 교회를 이끄시는 오정현 담임 목사님께 성령의 지혜와 능력을 덧입혀 주옵시고, 매 주일마다 선포하시는 말씀을 통해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이끄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한국교회와 세계교회에 충만히 임하게 하여 주옵소서. 오늘 단 위에 세우신 류홍열 목사님의 말씀을 통하여 믿음의 4대 0가족과 모든 청년 세대가 영적으로 깨어나며 시대를 변혁시키는 글로벌 인재로 준비되는 시간이 되게 하옵소서. 사랑의 교회를 은혜의 저수지와 사역의 병참 기지로 사용하시는 하나님, 사랑의 교회가 진심으로 준비하고 있는 제2회 10,23. 한국교회 섬김의 날을 통해 코로나 이후 영적 기간에 허덕이는 한국교회의 새로운 미래를 위한 새로운 토대를 쌓게 하사 2033 50% 비전의 첫 발걸음을 내딛는 역사의 현장이 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창조 질서를 무너뜨리는 모든 악법의 제정이 철폐되게 하옵시고, 기독교 세계관으로 온전히 무장한 청년 세대를 세워 피 흘림 없는 복음적 평화통일과 세계 선교의 마무리를 책임지게 하옵소서. 이 시간 청년세대 연합찬양대의 영적 기백으로 올려드리는 찬양을 기쁘게 받아주시길 원하오며, 우리의 생명 되시며 소원 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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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저녁기도회(주후 2023년 9월 20일)
제목: "주 여호와는 나의 힘"
말씀: 하박국 3:16-19
찬양인도: 쉐키나(유재원 부목사님)

설교자: 문진호 부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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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박국 3:16-19,
16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말미암아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썩이는 것이 내 뼈에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 
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18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19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 노래는 지휘하는 사람을 위하여 내 수금에 맞춘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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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중고 서점을 갔습니다. 시선을 끄는 제목의 책을 보았습니다. 책 제목이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입니다. 내용이 좋아서 한 대목을 소개하겠습니다.

-청춘의 시기가 아프다고는 하지만 어쩌면 어른이 된 지금보다는 행복했는지 모릅니다. 말하자면 수족관 속의 행복입니다. 한결같은 조명, 따뜻한 온도, 함께 생활하는 친구와 가족, 때맞춰 주어지는 먹이 그렇지만 그 평안의 대가는 두꺼운 유리벽입니다. 적지 않은 젊은이들에게 어쩌면 그것은 가족과 학교라는 보호막 안쪽에서 바라본 세상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이제 어른이 됩니다. 유리벽이 깨졌습니다. 수족관 밖으로 던져진 헐떡이는 물고기가 된 것입니다. 읽다가 문득 예수님 제자의 삶이 어떠한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도 예수님 처음 믿고 수족관 속에 행복을 경험하다가 어느 순간 유리벽이 깨져버립니다. 내 계획이 실패하고, 내 바람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힘이 빠지는 경험들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신앙이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보니까 여기 계신 성도님들 대부분은 이미 인생의 유리벽이 깨져서 수족관 바퀴에 던져진 헐떡이는 물고기들이신 것 같습니다. 하박국 선지자도 인생의 유리벽이 와장창 깨어져 버리는 상황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의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여러분, 이런 상황이 된다면 어떻게 살겠습니까? 우리 식으로 말하면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자녀가 모의고사 성적이 안 나오고, 예상치 않은 세금 고지서가 날아오고, 집을 내놓았는데 빠지지가 않고, 몸에 암이 발견되고, 부부 간의 오랜 갈등이 폭발하여 우리 결혼 생활은 여기까지라고 말하고 힘 빠지게 만드는 이런 사례들은 얼마든지 나열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요. 답도 제대로 나오지 않은 이런 상황에서 하바국이 보인 믿음의 반응이 놀랍기만 합니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할렐루야! 언제라도 나를 지켜줄 것 같은 인생의 유리벽이 와장창 다 깨어져버리고 내 인생의 개혁 계획표가 망가져버릴 때, 우리도 하박국 선지자처럼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이렇게 고백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어떻게 하면 이런 극한의 불리한 상황 속에서도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는 찬송과 믿음 고백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지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먼저 하박국 선지자가 놓인 상황을 보겠습니다. 선지자는 그가 받은 부르심 때문에, 꿈 때문에 대가를 단단히 치릅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하나님의 부르심의 길에 들어서지 않았다면 보지도 듣지도, 경험하지도 않았을 일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하박국이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자료가 많지 않아서 정확하게 잘 모릅니다. 확실한 것은 그가 하나님의 선지자로 부름을 받고 그에게 묵시, 즉 미래에 관한 일이 주어집니다. 선지자는 그 부르심 때문에 매우 고통스럽고 힘 빠지는 일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람들을 세우기 위해서 먼저 하시는 하나님의 힘 빼기입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이 갈대야 사람들이라 불리 우는 바벨론을 일으켜서 유대 민족을 심판하시겠다는 계획을 듣게 됩니다. 선지자는 이렇게 반문하죠. “어찌하여 거짓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는 데도 잠잠하시나이까?” 선지자는 하나님이 불의한 자들을 일으켜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들을 심판하시는 이 일이 못내 못마땅했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도 비슷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의 결론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생각과 우리의 길이 하나님의 생각과 하나님의 길과는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부르심은 이해할 수 없는 부르심일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 중요한 것이 있는데요. 그것은 믿음으로 반응하는 것입니다. 이해할 수 없는 부르심의 믿음에 반응을 보이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하면, 믿음이 아닌 반응을 보여준 인물들을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성경에 구약에는 요나가 있고 신약에는 바울 되기 이전에 사울이 있습니다. 요나는 적극 앗수르에 가서 회개의 복음을 선포하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요나의 반응은 도피입니다. 앗수르족은 죽은 사람의 머릿 가죽을 벗겨서 가져가고 노예를 끌고 갈 때에 꼬챙이에 꽂아서 줄줄줄줄 꿰어서 데리고 갑니다. 야만의 극치를 보여준 아슬로 사람들에게 회개를 선포한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요나의 반응은 스스로 온 힘을 다해 세상 끝, 지금의 스페인을 향해 도피해 버리는 일이었습니다. 사울에게는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다. 하나님의 나라, 즉 하나님의 다스림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임했다. 예수는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죄인이 구원을 얻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한다는 이 복음 선포였습니다. 어떻게 인간 예수가 하나님이 될 수 있는가? 어떻게 예수가 메시아라며 십자가 형틀에서 마침내 죽임을 당해버리는가?

만약에 하나님이었다면 피했어야 마땅한데 사울은 예수를 통해 주신 복음의 방식을 철저히 배척하고 저항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지키기 위해 예수의 제자들을 잡아 죽이고자 했습니다. 자신의 온 힘을 다해 칼을 사용합니다. 요나와 사울은 하나님의 부르심이 다 이해되지 않을 때 믿음이 아닌 반응을 보였습니다. 둘의 공통점은 자신의 힘을 다해, 전심을 다해 도피하거나 저항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이런 부르심 앞에 여러분은 어떻게 반응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의 생각과 하나님의 일을 다 이해할 수 없을 때라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반응은 무엇일까요? 여러분 저를 따라합니다. “전율하며 찬송합니다.” 한 번 더요. “전율하며 찬송합니다!” 여러분, 우리의 이성으로 다 이해할 수 없을 때, 우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반응이 바로 전율하며 찬송합니다. 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하박국 선지자의 첫 번째 반응은 전율하는 것이었습니다. 첫 번째 반응은 전율하는 것이었다.

*하박국 3:16,
16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말미암아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썩이는 것이 내 뼈에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
-하박국이 하나님께 들은 소리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백성이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될 것이라는 예언의 말씀을 들었던 것입니다. 창자가 흔들리고 입술이 파르르 떨리도록 두렵고, 공포스러운 말씀입니다. 선지자는 이 말씀을 듣고 뼈가 썩고 온몸이 떨리도록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그리고 만문합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성도의 삶이 바벨론에 의해서 왜 무너져야만 하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이해할 수 없을 때라도 다만 하박국은 전율합니다. 전 존재가 흔들흔들하면서도 요나처럼 도망가지 않습니다. 사울처럼 칼을 들어 저항하지 않습니다. 16절 우리 다시 한 번 함께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내가 들었으므로 내 장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말미암아 내 입술이 떨렸도다. 우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란 날을 내가 기다림으로 썩이는 것이 내 뼈에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 도다.“
-하박국은 그 두려움과 공포를 오롯이 온몸으로 받아들이면서도 자신의 처소에 머뭅니다. 뼈가 썩는 고통 속에서도 그 환란 날을 스스로 기다린다. 라고 말합니다. 도피하거나 저항하거나 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두려움에 전율하며 이처럼 기다림으로 반응할 수 있을까? 여러분 우리가 실패할 때 전율합니다. 하나님의 힘 빼기 작업대에 올라가게 되는 순간이 되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성공적으로 김치를 담그게 할 때 첫 번째 단계 다 아시죠? 배추의 숨죽이기입니다. 이건 남자들도 다 아는 것입니다. 배추 이파리를 소금에 절여서 물도 빼고 숨도 죽여 놓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배추 숨죽이기의 달인이십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사람들을 부르셔서 일을 시키실 때, 숨죽이기를 먼저 하십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쓰기 위해 40년 동안이나 미디안 광야에서 그를 숨죽여 놓습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실 때 그가 얼마나 숨이 죽었는지 바보처럼 서 있는 모습을 여러분 다 보셨을 것입니다. 저 아무것도 못하는데요. 아마 웃지는 않았을 거예요. 그런데 기가 막히고 너무 황당하니까 아마 이런 실수가 나오지 않았을까 생각을 합니다. 말 잘하는 제 형 아론을 보내십시오. 제가 뭘 할 수 있어요?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그는 실수를 금할 수 없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더라는 것입니다. 자기는 하나님이 불러 세우는 일을 못한다. 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어렵게 설득해서 이제 모세의 가족이 애굽으로 돌아가는 장면입니다. 출애굽기 4장 20절, 21절입니다.

*출애굽기 4:20-21,
20 모세가 그의 아내와 아들들을 나귀에 태우고 애굽으로 돌아가는데 모세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았더라.
2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애굽으로 돌아가거든 내가 내 손에 쥔 이적을 바로 앞에서 다 행하라.
-여기까지는 굉장히 좋은 그림 아닙니까?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하나님의 소명을 따라서 이제 애굽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것입니다. 근데 문제의 구절입니다. 출애굽기 4장 24절에 보니까

*출애굽기 4장 24
24 모세가 길을 가다가 숙소에 이르되 여호와께서 그를 만나사 그를 죽이려 하신지라.
-여러분 이해가 안 되지 않습니까?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서는 모세 외에 대안이 없었습니다. 40년 동안은 하나님은 그를 숨죽여놓기까지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하나님의 지팡이로서 쓰임 받도록 하나님은 그를 숨죽여 놓으시고 그를 마침내 하나님의 비밀 편지로 쓰시기 위해 그를 이제 세상 앞에 드러내놓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를 습격하여 죽이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해되십니까? 이스라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유일한 대안 모세를 하나님이 죽이려 하셨다는 것. 여러분, 저는 이해가 안 됩니다. 하나님의 숨죽이기입니다. 다 죽었다라고 생각하는 그 순간 하나님은 여전히 모세가 죽을 것이 있다. 죽어야만 한다.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숨죽이기가 잘 되어야 훌륭한 김치 재료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들의 특징은 숨죽이기 과정이 반드시 있었다. 라는 것입니다. 요셉도 있었습니다. 다윗도 베드로도 바울도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이와 같은 숨죽이기 작업대 위에 다뤄진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숨죽이기가 시작되면 반응은 예외가 없습니다. 전율을 하게 됩니다. 떨리게 됩니다. 두려워합니다. 저도 하나님의 숨죽이기에 작업대에 자주 올라보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익숙해질 만도 한데 늘 새롭습니다. 늘 새삼스럽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목회자 부르심이 있었습니다. 총신대 신학과에 들어가니 그곳에 또 다른 부르심이 있었습니다. 지성사회의 복음화 아이에프 선교 단체로 인도하셨습니다. 전공은 아이에프, 부전공은 신학과 그렇게 말할 정도로 이 선교단체 활동을 지나치게 열심을 내었습니다.

일주일에 4번을 모이는데 월요일에는 학년 모임, 화요일은 소그룹 모임, 목요일은 전체 모임, 토요일은 전도 모임 그리고 매일 아침마다 8시에 dpm 데일리 프레이어 미팅이라고 해서 기도모임이 있습니다.방학 때면 더 바빴습니다. 신앙강좌 챕터 캠프 mt 전체 수련회 리더 수련회 국내 아웃리치. 제가 살던 집이 부천이었는데 사당동까지 1시간 반을 오고 가며 하루에 3시간 새벽차 타고 나가서 막차 타고 집에 들어갈 때가 많아져 남들은 대학 생활이 다 낭만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저는 지금 생각해도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대학생활이 너무 고된 생활이었어요. 진짜 문제는 뭐냐면 남들 다 하는 아르바이트 할 시간이 없다는 거예요. 좀 용돈도 벌고 학비도 마련해가면서 좀 대학생활을 좀 여유 있게 보낼 만도 한데 저에게는 그런 기회조차 없었습니다. 수년 전 아버지를 천국 보내드린 상황에서 향토장학금은 기대할 수도 없었습니다.등록금을 제 힘으로 마련해야 되는데 이렇게 전공이 imf고 부전공이 신학이다 보니까 등록금을 마련할 시간조차 없었던 것입니다. 매 학기 등록금 마련할 때가 되면 다른 방법을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금식하며 하나님 앞에 엎어지는 거예요. 여러분 아시죠? 하나님 주실 때 언제 주신다고요. 미리 주시면 좋은데 미리 안 주세요. 등록 마감일이 돼도 소식이 없습니다. 이 등록금 하나님이 주신다는 소식이 와야 되는데 그러면 어떨 때는 등록 연장을 학생과에다가 부탁을 하고 또 계속 기도하는 거예요. 엎어져 있는 마지막 마지막 3차쯤 가가지고 하나님이 그때 주시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하나님이 보내주신 까마귀의 공급이 있은 뒤 2년 동안을 저는 학교생활을 나름 열심히 잘 지내었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드디어 스스로의 힘으로 등록금을 마련할 기회가 온 겁니다. 군대였습니다. 군대 다녀오면 나이와 경력을 인정받아서 교육 전도사로 교회를 섬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니까 그렇게 교회가 등록금을 지원받아서 학교를 마치면 되겠다. 당시에 신학과 선배들이 대부분 그렇게 하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그런데 imf 관사님이 막아서는 것입니다. 왜 군대를 가려고 해? 왜라니요? 남들 다 가는데 저도 가야지요. 2학년 마치고 다 군대 가버리니까, 선교단체에 남자 리더십들이 한 명도 안 남아 있어요. 캠퍼스에 남아 줄 수 없겠니? 제가 이 부르심에 응답하게 되면 미래의 내 시간표가 어그러지게 되었습니다.

2년간 더 수업 등록을 위해 금식하며 엎드리는 시간을 더 해야 된다는 그 생각도,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캠퍼스에 남아달라는 말은 당시 믿음이 작은 책에 전율케 하는 저를 두려워 떨게 만드는 도전이었습니다. 제가 어떤 선택을 했는지는 뒤에 다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잉태하게 하시며 반드시 해산하게 하실 것이다. 여러분 저는 100% 신뢰합니다. 그런데 해산의 고통은 생각보다 강했습니다. 전율하게 됩니다. 네가 나의 유일한 대안이야. 그렇게 말하시고 불러 놓으셔놓고 동시에 죽을 것처럼 달려드는 하나님을 보면서 우리는 전율합니다. 하나님은 부르시고 부르신 사람을 왜 전율케 하시는가? 왜 두려움에 떠는 그 밤을 지새우게 하시는가? 여러분 이것입니다. 숨을 조여 오는 상황에서 우리는 전율할 때에만 깨달을 수 있는 그 무언가가 있기 때문입니다. 전율하지 않으면 결코 얻을 수 없는 그 무엇이 있기 때문입니다. 두려움 앞에 철저하게 전열함으로 하나님이 주신 그 무엇을 얻은 인물 한 명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야곱입니다 야곱, 여러분 아셨는지 모르겠는데요. 야곱이 라반 삼촌의 집에서 20년간을 지내고 이제 귀향을 선택하게 됩니다. 그 귀향의 결정은 하나님의 부르심이었습니다. 잘 모르시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창세기 31장 3절입니다.

*창세기 31:3,
3 여호와께서 야곱에게 이르시되 내 조상의 땅 내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분명히 야곱의 귀한 길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겠다. 라고 하는 약속의 말씀이 주어졌어요. 고향으로 돌아가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며 나아가는 귀한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야곱이 강력한 복병을 만납니다. 400명의 칼 찬 군대와 함께 오는 형, 에서를 마주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이 부르시는 길은 항상 안전하고 언제나 괜찮은 길일 것이야 이런 착각을 거두실 때가 됐습니다. 성경은 야곱이 심히 두렵고 답답하였다라고 기록합니다. 하나님이 가라고 해서 갔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겠다. 라고 해서 그 약속 믿고 가는데 두려움에 심히 답답하고 전율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야곱은 진실로 형 예수의 손에 죽게 되었구나. 죽을 것 같은 상황 앞에서 야곱은 전율합니다. 전율할 때, 두려워 떨 때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뿐인 줄로 믿습니다. 야곱의 이 전율하도록 그를 두렵게 만드는 이 상황 앞에서 반응은 요나처럼 도망치거나 사울처럼 칼을 들어서 싸우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머물러서 밤새도록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창세기 32:11,
11 내가 주께 간구하오니 내 형의 손에서 에서의 손에서 나를 건져내시옵소서 내가 그를 두려워함은 그가 와서 나와 내 처자들을 칠까 겁이 나기 때문이니이다.

-형의 칼에 반드시 죽음을 당하겠구나. 두려움에 덜덜 떨며 전념하던 그 밤 여러분 놀라지 마십시오. 에서보다도 하나님이 먼저 야곱을 기습해 오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하겠다. 라고 내가 너를 지켜주겠다. 라고 내가 너를 붙들어주겠다. 라고 약속받은 그 귀한 길 아닙니까? 근데 에서보다도 지금 하나님께 붙들려서 먼저 죽을 상황에 처해버린 것입니다. 그냥 싸움이 아닙니다. 치열하게 싸움이 벌어집니다. 칠 흙 같은 어둠이기 때문에 누군가 자기에게 자기를 죽일 수 있다. 라고 하는 그 두려움이 엄습해서 전심으로 싸움 걸어온 자와 함께 싸움하기 시작한 거예요. 목숨을 건 혈투였습니다. 그리고 싸움의 결과는 야곱의 힘의 근원이 끊어져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몸을 지탱하는 골반뼈 이 고관절 부위를 끊어버리십니다. 야곱은 이제 지팡이 없이는 움직일 수 없는 처지가 되어 버렸습니다. 야곱이 누굽니까? 싸움의 규제입니다. 그래서 그의 이름마저 발목 잡은 자, 이 말은 기억하면 사바 잡는 자예요. 씨름에 능한 자예요. 하나님의 사자가 내 이름이 무엇이냐 축복하기에 앞서 물었을 때 그가 이렇게 대답하지 않습니까? 내 이름은 야곱입니다. 이 말의 뜻은 제가 그동안 싸움 좀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실제로 그는 그의 삶 가운데 아버지 이삭, 형 에서 삼촌 라반과 겨루어서 언제나 승리했던 사람입니다. 싸움의 귀재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하나님이 그를 기습하여 싸움을 걸어오실 때, 그는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 싸움의 결과 싸움하는 자로서 힘의 근원이 사라져 버렸다라고 하는 것은 사형 선고와 다름이 없습니다. 내 평생 싸우는 자로 삿바 잡는 자로 남의 발목 잡아 넘어뜨리는 자로 살아왔는데, 늘 승리했는데, 하나님과의 싸움 앞에 그는 힘의 근원을 상실해버리고 말아버리는 것입니다. 내가 가장 잘하는 특기,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거, 그것을 하나님과의 싸움에서 잃어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 힘의 근원을 끊어버리시는 것입니다. 그는 전율합니다. 에서를 만나면 도망치기라도 해야 되는데, 도망칠 능력도 상실해버린 것입니다. 기습으로 싸움을 걸어오신 하나님을 야곱이 만나 이 사건에서 깨닫게 되어 주는 놀라운 진리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야곱의 힘의 근원이 사라지던 그 밤, 새로운 진실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전까지는 내 생명을 보존하느님이 내 허리에서 나오고, 내가 가진 재주와 경력을 통해서 이길 수 있고, 내가 가진 기회 포착의 능력에서 나는 생명을 보존하며 이길 수 있으며, 남과 잘 싸워 이기는 데에서 나는 내 생명이 유지된다. 라고 생각했다. 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힘을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알고 복 받았다. 라고 생각했다는 것이에요. 야곱은 분명히 그렇게 생각합니다. 32장 10절입니다.

*창세기 32:10,
10 나는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모든 은총과 모든 진실하심을 조금도 감당할 수 없사오나 내가 내 지팡이만 가지고 이 요단을 건넜더니 지금은 두 때나 이루었나이다.
-누가 누구의 지팡이로 힘쓴 결과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내가 내 지팡이로 이룬 결과가 이 많은 업적들입니다. 그런데 전율의 밤을 통과하면서 하나님이 힘 빼게 하신 후에 야곱의 고백이 달라집니다. 우리 같이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창세기 32장 30절입니다.

*창세기 32:30,
30 그러므로 야곱이 그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존되었다.
-그동안은 내 힘으로, 내 겨루기 잘하는 실력으로 내 생명이 보존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구나! 하나님이 내 생명을 보존하고 계셨구나.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의 삶을 영혼부터 영혼까지 보존해 주시는 분이신 줄로 믿습니다. 전율의 밤을 지나며 자기 힘의 근원이 사라지니 내 생명을 보존하시는 하나님이 보이기 시작하더라는 것입니다.

레리 크랩은 우리를 실망시키는 것처럼 보이는 하나님 앞에서 전율하는 것은 그분을 경외하고 의지하는 신뢰 속에서 선하신 하나님을 받아들이도록 우리 영혼을 열어주는 문이다. 전율하는 그 밤이야말로 하나님이 내 삶 가운데, 새로운 빛 가운데로 찾아오심을 깨닫게 되어진다. 는 그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생의 고난길에서 하나님의 숨죽이기, 하나님의 힘 빼기 작업대에 오르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은 반드시 브니엘의 하나님으로 여러분 모두를 만나주실 줄로 믿습니다. 내 생명을 보존하시는 분은 내 지팡이의 힘도 내 힘의 근원에서도 나오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기도로 엎드리고 하나님만을 전심으로 붙드는 전율의 밤을 지나면서 그것이 우리에게 새로운 힘이 되는 것입니다.

어느 집사님이 신방 중에 간증하신 일을 소개합니다. 그 집사님이 알고 지내던 교수님이 계셨는데 그 교수님의 가정은 그분의 표현이 이래요. 돈으로 자녀 키운 집안이라는 겁니다. 실제로 아들과 딸이 있는데 둘 다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명문대를 나왔고, 딸은 일찍 결혼을 했고, 지금은 이혼을 했고, 아들은 좋은 대학 여러분 말은 굉장히 좋은 대학입니다. 좋은 대학, 좋은 과를 나왔는데 지금은 무직 상태라는 겁니다. 그 아들은 부모와 완전히 관계마저 단절된 상태라는 거예요. 그 집안이 왜 이렇게 풍파가 많나? 그 집사님이 그 가정을 위해서 불쌍한 마음에 그 가정을 위해서 계속 기도를 했다는 거예요. 그런데 어느 날 주님의 음성이 들리더랍니다. 내가 버렸니 내가 버렸니? 마치 돈으로 그 과정을 일으키기 위해서 열심으로 자기 힘을 다해서 살았지만 결과가 풍파가 많고, 남이 볼 때 망한 것처럼 보이는 그 상황 앞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더랍니다. 내가 버렸니? 이 집사님이 긍휼의 마음을 거두고 정말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마음으로 그 가정을 위해서 기도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최근에 그 가정의 소식을 들었답니다. 딸이 먼저 신앙이 회복이 돼서 방언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을 정말 정말 사랑하는 딸의 자리로 다시 돌아왔다는 그러면서 부모님이 함께 하나님 앞에 가까이 나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남은 그 아들도 하나님이 회복시켜 주실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전율하게 하실 때가 있습니다. 망한 것과 같은 그 상황 속에서 하나님은 결코 포기하지 않으신 하나님이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아십니까? 예수님도 겟세마네의 그 밤에서 전율의 밤을 통과하셨다는 것을 할 수 있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한 스스로의 바램과 계획, 자기 힘을 완전히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구할 때, 고난의 잔, 전율의 잔을 마실 수 있도록 하나님의 힘이 들어오는 순간인 것입니다. 너무나도 아이러니하게 십자가에 버림받음으로 인해 세상에 빛을 잃고 어둠이 임할 때 온 땅도 전율합니다. 진동했습니다. 하나님의 성도들이 고난 앞에 힘 빼기를 할 때 세상도 그것을 주목하고 전율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고난 받을 때 하나님은 우리를 홀로 두지 않으십니다.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우리의 힘 빼기를 통하여 하나님의 새로운 힘이 우리 안에 들어오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만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도구가 되어
하나님의 사람들을 살리고 세우는 일에 쓰임 받을 수 있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제 이야기의 결론입니다. 캠퍼스에 남기로 했습니다.

캠퍼스에 남아 하나님께만 바라보고 엎드리는 그 시간, 내 힘을 빼는 시간 속으로 다시 이끄셨습니다. 간사님은 포기하지 않고 도전합니다. 네가 하나님이 부르셔서 신학과에 들어왔는데 하나님이 공급하심이 없다면 하나님이 힘 주시지 않는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길을 가야 되겠니? 한 방 먹었습니다. 내가 성공하려고 내가 잘 살아보려고 신학과에 들어온 것이 아닌데 하나님 나  서주십시오.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받기를 원합니다. 뜨거운 마음 가지고 왔는데, 내 살 길을 내 힘으로 찾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방식에 부합하지 않았다. 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 뒤에는 제가 설명하지 않아도 되겠죠? 제가 지금 이렇게 서 있고 무사히 학교를 졸업했습니다. 군대 문제도 하나님이 더 좋은 방법으로 해결해 주셨어요. 예 너는 병사로 가서 고생하니까 너는 고문관이 될 자질이 충분하니까 장교로 가라. 그래서 장교로 가서 조금의 자본을 마련해서 그걸로 결혼까지 허락해 주셨습니다. 여러분, 그 대학교 2학년 그 학생이 그 믿음이 부족해서 군대를 지금 가야 되나요 나중에 가야 되나요? 별거 아닌 것 같지만 하나님은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전율하며 다시 한 번 하나님의 엎어지는 그 순간을 맞이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앞에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엎어지는 자를 하나님은 붙으시는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자를 쓰시는 줄로 믿습니다. 결론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이 하나님만 바라보도록 전율케 하는 시간을 우리 앞에 두십니다. 그 시간에 우리는 결코 죽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대신 십자가에 죽으시고 우리로 하여금 부활의 능력에 참여하도록 하시기 위하여 우리를 전율케 하시는 것입니다. 야곱의 삶, 예수님의 삶에 우리에게 주신 교훈은 이것입니다. 전율의 밤은 우리에게 있는 내 힘을 빼고 하나님의 힘이 임하게 하는 은혜의 시간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박국은 이것을 깨달았습니다. 바벨론의 하나님의 백성들이 멸망되어질 그 상황 앞에서도 그는 전율하며 찬송합니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내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며 하나님을 끝까지 찬송하리로다. 이 믿음의 고백이 저와 여러분의 고백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마지막에 여러분 기업을 좀 돕기 위해서 제가 사랑하는 선배 목사님이 라이센스를 저에게 주셨습니다. 써도 된다고,“주 여호와는 나의 힘” 이시라고 고백할 때 그 힘은 능력도 되지만 찬송도 되는 줄로 믿습니다. 영어로 힘이 찬송입니다. 그래서 “저는 내 힘이 빠지면 하나님이 나의 힘이 되시며 나의 찬송이 되십니다.” 아멘. 여러분 같이 한번 읽어볼까요? 내 힘이 빠지면 하나님이 나의 힘이 되시며 나의 찬송이 되십니다.

♣요약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가 나의 믿음의 고백이 되어서 하바국이 고백했던 것처럼 그 어떤 상황을 만나도, 전율케 하는 고난의 상황 앞에서도 주님 앞에 엎어지고 기도하는 자가 되면, 반드시 승리하고, 반드시 다시 일어설 회복의 능력과 은혜를 입을 것이니, 인생의 유리벽이 무너져서 세상에 던져지는 그 순간, 고난의 시간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주의 권능의 힘으로 붙드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심을 믿어야 한다. 야곱처럼 고통과 두려움에 전율하는 밤이 찾아와도 하나님께 엎어져서 오직 주님만 구하는 담대함을 가져야 한다. 내 힘이 빠져나가고 그 자리에 주 여호와가 나의 힘이 되시고 주 여호와가 나의 찬송이 되시는 믿음의 고백을 올려드리고, 내 삶에 비록 무화과나무, 감람나무의 열매와 외양간 송아지가 없어도 전율하면서 강력한 주님의 손에 붙잡히는 은혜의 인생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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