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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요저녁기도회(주후 2023년 9월 6일)
제목: "하나님을 고백하는 삶"
말씀: 에스더 2:19-23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설교자: 남수현 부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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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더 2:19-23,
19 처녀들을 다시 모을 때에는 모르드개가 대궐 문에 앉았더라.
20 에스더는 모르드개가 명령한 대로 그 종족과 민족을 말하지 아니하니 그가 모르드개의 명령을 양육 받을 때와 같이 따름이더라.
21 모르드개가 대궐 문에 앉았을 때에 문을 지키던 왕의 내시 빅단과 데레스 두 사람이 원한을 품고 아하수에로 왕을 암살하려는 음모를 꾸미는 것을 .
22 모르드개가 알고 왕후 에스더에게 알리니 에스더가 모르드개의 이름으로 왕에게 아뢴지라.
23 조사하여 실증을 얻었으므로 두 사람을 나무에 달고 그 일을 왕 앞에서 궁중 일기에 기록하니라.

▶에스더서 2장 19절에서 23절까지의 말씀입니다. 구약 성경 792면 쯤에 있는 에스더 2장 19절에서 23절까지의 말씀 화면 보시면서 저와 함께 교독하시겠습니다.

여러분은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이 에스더, 에스더서 하면은 무엇이 먼저 떠오르십니까? 많은 분들은 ‘죽으면 죽으리다.’ 라고 하는 그녀의 고백이 떠오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도 그 메시지가, 그 성경 구절이 먼저 떠오릅니다. 단호하고 결단을 해야 되는 인생에 아주 중요한 신앙적인 선택을 해야 될 때, 나도 한번 언젠가는 그와 같은 고백을 하리라 마음속으로 기도하고 결심한 적도 있으시겠죠? 그리고 또 에스더서에 대하여서 조금 더 알고 계신 분이 있으시다면 혹시 들어보셨습니까? 성경 가운데에 하나님의 이름, ‘하나님’이라고 하는 이 단어가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은 곳이 바로 이 에스더서라고 하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것뿐이 아닙니다. 에스도서에는 율법, 제사장, 정결, 정결이라고 하는 지극히 유대적인 그런 종교적인 색채를 띤 단어도 없습니다.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자 우리 잘 아는 루터는 성경에서 존재하지 않았었으면,,, 하는 어땠을까? 라는 이야기를 그의 기록 어디엔가 남겨놓았다고 합니다. 칼빈은 한 번도 그의 설교 가운데 이 에스더서를 설교의 소재로 사용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단 한 번도 언급된 적이 없는 성경, 저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작자미상의 성경, 그리고 또 한때 정경이 되지 못할 뻔 하다가 정경으로 된 귀하디, 귀한 성경 이와 같은 특징들을 생각을 해보면 저는 한 단어가 떠오릅니다. ‘감추어진’이게 뭔가 끝나는 것 같지 않죠? 감추어진 하나님 의뢰도 좋습니다. 저는 오늘 이 말씀을 이제 설교로 준비하고자 1장과 2장 그리고 4장까지 읽고 묵상하고 설교를 준비하고 난 다음에 몇 가지 떠오르는 하나님의 은혜와 말씀의 교훈을 오늘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오늘 이 에스더서의 배경은요 페르시아의 첫 번째 왕인 고레스 왕 바로 그 왕 때에 1차 포로귀환 영이라고 하는 것을 선포해요. 반포합니다. 옛날 바벨론 시대에 유다 민족을 잡아와서 보로로 삼은 그 일을 다시 고국으로 돌려보냅니다. 돌아가십시오! 라고 하는 포로 기한 영 1차가 있은 지 그다음의 일입니다. 2차포로 기한까지는 약 한 70여 년의 시간이 있는데 아주 긴 시간이죠. 그 한가운데에 그 사이에 벌어진 일입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을 해보십시오. 포로 귀한 영이 반포되었습니다. 얼마든지 고국 땅, 유대 땅,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가도 좋습니다. 그러나 누구든 자유롭게 자신의 조국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쉽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이 있습니다. 오랫동안 이방 나라에서 그곳에서도 삶의 터전을 마련하고, 삶을 이어나가는 많은 사람들에게는 갑자기 어느 날 살던 곳을 떠나 고국, 고향이라 하여도 쉽게 돌아갈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삶이지 않겠습니까?

거대한 이 페르시아 제국 넓디, 넓은 이 세상을 정복한 페르시아라고 하는 이 제국, 인류 최초의 제국이라고 하죠. 이 제국 앞에서 이스라엘 유대 민족 그 땅으로 봐도, 민족으로 봐도, 군사력으로 봐도 세력과 권력으로 봐도, 어느 것 하나 비교할 수 없는 페르시아 제국 앞에서는 정말 소수 중의 소수 민족 같은 이 한 민족이 페르시아 땅에서 여전히 삶을 이어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에스더서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함부로 하나님의 이름, 하나님을 부르기도 쉽지 않은 그 상황 가운데에서 포로에서 해방되어 조국으로 돌아갈 수 있지만, 여전히 이방 땅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그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을 향하여 어떤 질문을 던지고 있을까요? 여러분이라면 그와 같은 상황 가운데에 하나님께 어떤 질문을 오늘 본문의 배경과 환경 가운데에 하시겠습니까? 몇 가지 교훈을 나누고 싶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이 말씀에 대한 첫 번째 교훈은 이런 문장이에요.

I. 세속사의 힘과 권세는 오히려 역사의 주관자가 누구인지 묻는다.
-1장에 관한 내용입니다. 1장 1절 한번 보시지 이 일은 아하수에로 왕 때에 있었던 일이니 아소에로는 인도로부터 구스까지 127 지방을 다스리는 왕이라.

*에스더 1:1,
1 이 일은 아하수에로 왕 때에 있었던 일이니 아하수에로는 인도로부터 구스까지 백이십칠 지방을 다스리는 왕이라.
-에스도서 1장은 아하스에로 왕이, 헬라 그리스를 공격하기 위한 일종의 작전 회의를 위하여서 연회 잔치를 베풀었는데, 그 잔치의 기간이 무려 6개월이었다고 합니다. 연회가 끝나갈 무렵에 아소에로는 제국의 백성들과 지도자, 방백들이라고 하죠. 그 앞에서 자신의 아내 왕후 와스디를 그 미모를 자랑하고 뽐내고 싶었나 봐요. 그래서 불러서 많은 사람들 앞에 나와서 인사해 주기를 바랐는데, 당시에 왕후 와스디는 이를 거절하게 됩니다. 이 일에 대하여서 격분한 아하수에로 왕은 당장 이 와스디 안에 왕후를 폐위시켜버리는 일이 발생을 합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 전국에 조서를 내립니다. 모든 아내들은 남편들에게 복종하라. 자신이 일어난 상황에 대하여 반문일까요? 거절에 대한 상처를 그렇게 하지 말도록 아내들은 남편에게 복종하도록 방포하는 일을 벌이게 됩니다.

전 세계의 패권을 쥐고 있던 그 제국의 왕, 동쪽으로는 인도까지, 그리고 서쪽으로는 구스라고 하는 아프리카 땅까지, 여러분, 얼마나 넓어요? 이 길 거리가 약 한 5,800km 정도 된다고 합니다. 전 세계를 다 뒤집어 삼킬 듯 오직 그리스 헬라 지역만 1차 전쟁에서 실패를 한 아쉬움이 있지만 어마어마한 제국입니다. 외형적으로는 군사력을 총동원하여서 얼마든지 원하는 지역, 원하는 땅을 점령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제국인 것 같지만 아내 한 명도 자기가 원하는 대로 다스릴 수 없고 아내의 말 한마디에 왕의 위신이 떨어져버리는 그것이 왕의 자리, 세상 권세의 또한 자리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1차 그리스와의 원정 전쟁에서 실패를 한 후에, 2차 전쟁을 원정을 앞두고 난 다음에 잔치를 통하여 작전 회의를 하면서 얼마나 많은 방백들과 지도자들과 사람들로부터 환호와 박수를 받았겠습니까? “왕이시여! 이번에는 반드시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이번에는 저 그리스 연합군들이 아무리 힘을 모은다고 해도 이 세상의 주인은 당신 한 명밖에 없습니다.” 이와 같은 수많은 환호와 박수와 갈채를 받았지만 결과는 2차 때에도 대참패입니다.

이와 같은 상황이 벌어지면서 우리는 이 본문을 통하여서 세상 권력 앞에 이 세상 권력의 강대하고, 강성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 강대한 세속 사 세상 앞에 우리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역사의 주관자는 과연 누구일까? 인도에서부터 구수까지 엄청난 대제국을 만든 페르시아라고 하지만 그들의 역사는 고작 220년밖에 또 안 되지 않습니다. 한 천 년 정도 될 것 같죠? 한 2천 년 정도 될 것 같은 그 땅의 규모죠? 220년밖에 되지 않습니다. 고레스로부터 시작된 페르시아 제국은 어쩌면 오늘 이 1장에 등장하는 아하수에로 왕 때부터 그 세력이 기울었는지도 모릅니다. 세상 힘과 권세만 보면 영원할 것 같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될 것은 답답하고, 불안하고, 불안정하고, 두려움을 주는 이 세상 가운데에 역사의 주관자는 과연 누구이신가? 라고 하는 질문을 1장이 우리에게 하고 있다. 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세속사 세상의 역사는 그 세속을 주관하고 다스리는 것 같은 당대한 나라 당대한 나라의 왕에 의하여서 찬란한 역사 전쟁의 위험을 기록하고 있는 것 같지만 여러분, 오늘 이 에스더서 1장 말미는 무엇을 기록하고 있는지 아십니까? 아무도 기억할 것 같지 않은 물어보지 않고, 찾아보지 않고,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를 것 같은 바로 이 와스디 왕후의 폐위의 사건을 다루고 마무리하고 있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일이 왜 중요한가 하면은 2장부터 이제 등장하는 모르드개와 에스더를 통하여서 나라의 운명이 바뀝니다. 역사의 한 페이지가 전혀 다른 것으로 쓰여 지는 것 같은 일들이 벌어지기 때문이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작은 왕후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것 같은 왕후의 폐위 사건은 성경은 기억하고 그것을 기록했다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두 번째 제가 오늘 이 말씀을 통하여 메모한 내용은 교훈은 이와 같습니다.

II. 감추어진 것 같으나 연속된 우연 속에 하나님의 섭리는 더욱 빛난다.
-2장 앞부분인데 모르드개의 등장 사건입니다. 우리 5절에서 7절 같이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에스더 2:5-7,
5 도성 수산에 한 유다인이 있으니 이름은 모르드개라 그는 베냐민 자손이니 기스의 증손이요 시므이의 손자요 야일의 아들이라.
6 전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서 유다 왕 여고냐와 백성을 사로잡아 갈 때에 모르드개도 함께 사로잡혔더라.
7 그의 삼촌의 딸 하닷사 곧 에스더는 부모가 없었으나 용모가 곱고 아리따운 처녀라 그의 부모가 죽은 후에 모르드개가 자기 딸 같이 양육하더라.
-모르드개의 등장입니다. 5절에 우리가 읽은 내용에 보면, 어떤 왕이 잡혀갈 때에 그도 같이 함께 사로잡혀 왔더라라고 하는 것을 알 수가 있고 왕과 함께 잡혀온 자라면 사회적 신분상 노예나 이런 계층이 아니라 왕급 계급,, 귀족 계급, 높은 계급 그 부류에 있었던 사람쯤 되지 않나 싶지만 사실 그것이 얼마나 이방 땅에서 사는지, 사는 데에 도움이 되었는지에 대하여서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왕궁에 관직에 일을 받기는 했습니다만 자신의 사회적 신분이 도움이 되었다라고 하는 것을 알 수는 없습니다. 그가 이방 땅에서 최선을 다해서 살았고 성실히 살아서 후에 나옵니다만 대궐 문 앞을 지키는 관직을 받은 것으로 추측을 합니다. 또 2장 19절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이죠.

*에스더 2:19,
19 처녀들을 다시 모을 때에는 모르드개가 대궐 문에 앉았더라.
-조금 전 말씀드린 그것입니다. 고대 운동 시대에는 땅을 나누고 경계를 세울 때에, 성을 세웁니다. 성을 짓습니다. 그리고 성 앞에 성곽 문을 짓지요. 그리고 그 문 앞에 당시에 왕으로부터 임명받은 지도자 유력한 자가 그곳에서 성 안쪽에 백성들을 지키는 것뿐만 아니라, 이방 사람들이 그 성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경계하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성 안에 있는 백성들을 지키면서 때로는 송사의 일을 한다든지, 사람들과 함께 사람들의 백성들의 이야기를 들어준다든지, 억울한 문제를 해결해 준다든지 하는 상당히 높은 관직의 정부 요직이라고 합니다. 20절입니다.

*에스더 2:20,
20 에스더는 모르드개가 명령한 대로 그 종족과 민족을 말하지 아니하니 그가 모르드개의 명령을 양육 받을 때와 같이 따름이더라.
-18절 이후에 에스더가 아하수에로 왕의 새로운 왕비가 됩니다. 1장 전체가 그것을 표현하고 있고요. 왕비가 되었어도 그는 여전히 자신의 민족이 어디 출신인지, 자신의 나라가 어디인지를 숨겨야 하는 삶 가운데에 살고 있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모르드개가 어렸을 때부터 계속해서 그렇게 양육을 했다라고 합니다. 왕비가 되었어도 지금까지 살아오던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여전히 포로 신세인 것처럼 마치 자신의 민족과 조국이 어디이며 누구인지도 말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기대한 바로는 이제 왕후 왕비가 되었으니 떳떳하게 자신의 힘과 그 자리에서의 파워를, 그리고 또 신앙적인 위력을 발휘할 수 있지 않겠느냐? 라고 생각을 하겠지만 그것이 또 하나님의 사람으로 사는 모습이 아닐까라고 생각을 하지만 그것이 쉽지 않은 당시의 환경과 배경인 것 같습니다. 21절과 22절 그리고 23절을 한번 보겠습니다.

*에스더 2:21-23,
21 모르드개가 대궐 문에 앉았을 때에 문을 지키던 왕의 내시 빅단과 데레스 두 사람이 원한을 품고 아하수에로 왕을 암살하려는 음모를 꾸미는 것을 알고.
22 모르드개가 알고 왕후 에스더에게 알리니 에스더가 모르드개의 이름으로 왕에게 아뢴지라.
23 조사하여 실증을 얻었으므로 두 사람을 나무에 달고 그 일을 왕 앞에서 궁중 일기에 기록하니라.
-정말 우연이죠. 대궐 문 앞에서 그 자신의 자리를 일을 하고 있는데 넷이 두 사람이 와서 수근 거리는 소리를 우연히 듣게 됩니다. 그런데 그 내용이 왕을 죽이려는 음모, 암살에 관한 내용이라고 하는 사실이죠. 오늘 암살한다는 소식을 모르드개가 듣습니다. 그리고 이 일을 자신의 조카이죠. 에스더에게 알리고 에스더는 모르드개의 이름으로 왕에게 알립니다. 그리고 공중에서는 이 일을 일기에 기록을 해놓습니다. 1장 그리고 2장을 자세히 읽어보면 드는 생각이 떠오르는 단어가 우연, 우연의 연속성이라고 하는 그 단어가 떠오르게 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에스더서에는 기록하지 않았다고 했는데, 여러분, 에스도서의 하나님의 이름이 기록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드러내기 싫어서가 아니라 인간의 행위를 더욱 강조하기 위하여서입니다. 우연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이 제어할 수 있는 그 영역 밖의 일이지 않겠습니까? 계획하고 준비를 한 그 영역, 저 멀리에 있는 일들이 우연일 것입니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릅니다. 내가 관할하거나 통제할 수가 없는 것이 바로 우연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여기에 하나님의 뜻과 비밀이 있다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인간이 컨트롤 할 수 있는 그 영역이 아닌 바로 그 지점, 인간의 영역 그 밖에서 하나님께서는 우연의 모습으로, 우연의 사건으로, 우연한 사람의 등장으로 일하고 계신다. 라고 하는 사실을 여러분 보실 수 있겠습니까?

왕후 첫 번째 왕후 와스디가 폐위되지 않았다면, 새로운 왕비를 뽑는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었겠으며, 에스더가 그 곳에서 왕비를 뽑는 그 일에 어떻게 나갈 수 있었겠습니까? 우연 같아 보이지 않겠습니까? 사촌 오빠 모르드개가 성문 앞을, 대궐문 앞을 지키는 그 직책을 받은 것도 우연처럼 보입니다. 어떻게 이 자리를 얻을 수 있게 되지? 두 내시의 암살 의모를 들은 것은 이해가 되겠는데 어떻게 하필 그 자리에 있을 수가 있었을까 이거 우연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들어도 그 수많은 두 내시가 하는 이야기 중에 어떻게 왕의 암살 음모를 우연히 들을 수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만약 왕의 왕을 암살하려고 하는 그 이야기를 우연히 듣지 않았다면 자신의 민족 유대인을 암살하고 몰살하려고 한다는 하만의 계획이 말 그대로 실천되었더라면 어떤 일이 벌어졌겠습니까? 왕이 잠을 못 잘 수도 있겠죠. 밤에 잠이 안 오는 날이 있을 수도 있겠죠. 그런데 술과 함께하는 잔치를 6개월이나 하는 사람이라면 왕이라면 날마다 그 술에 취해 있었을 것입니다.

대개 이런 왕이 잠이 안 와서 잠을 취하지 못했다. 라는 것도 우연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하필 잠이 오지 않는 그날 밤, 왜 하필 그 일기 역사를, 그 수많은 역사 가운데에 최근의 일기의 내용을 봤을까요? 우연치고는 너무 우연이 아닙니까? 그 일기를 본 덕분에 그 이전에 두 내시의 암살 음모를 모르드게라고 하는 사람이 막았다라고 하는 사실과, 그 일을 통하여 하만이라고 하는 사람이 자신을 죽이려고 한다. 라고 하는 암살 계획을 알게 됩니다. 이 일을 통하여 모르드개의 운명과 하만 왕을 죽이려고 하는 암살 계획을 가지고 있던 하만의 운명이 그다음 날 하루아침에 완전히 바뀌어 지게 되는 그 일,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에스도서에는 하나님의 이름도 없고, 제사와 성전과 정결과 거룩과 이와 같은 단어가 표현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마치 하나님이 안 계신 것처럼 하나님의 부재가 느껴지는 이 성경 가운데에 하나님은 하나님, 당신의 존재를 강력하게 증거하고 있다. 라고 하는 사실을 여러분 깨달으실 수 있겠습니까? 디아스포라의 유대인들, 자신의 조국에 살고 있는 바로 그 민족이 아니라, 이방 땅에 흩어져 살아야만 하는 디아스포라의 그 민족들에게 여전히 나는 하나님의 백성인가? 하나님의 백성이 맞다면 나는 왜 이방 땅에서 태어나면서부터 갖은 고난과 고초를 겪어야만 하는가? 나는 오늘도 하나님을 믿고 오늘 아침에도 하나님께 기도를 하며,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하나님의 경륜으로 이 간절하고도 불쌍한 마음 오늘 나의 환경을 살펴주옵소서! 도와주옵소서!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간절히 기도하지만 마치 하나님은 숨어 계시는 것과 같은 나는 과연 하나님의 백성이 맞는 것인가? 오늘 우리의 그런 질문이 에스더에서뿐만 아니라 여전히 우리 가운데에도 있다. 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오늘 우리의 일상의 삶이 불완전해 보이고, 불안해 보이고, 확실성이 없는 것 같아 보이는 그때에라도 하나님께서는 다양한 모습으로, 또 오늘 에스더서에 있는 거와 같이 우연의 모습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깨닫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까지 몰아가셔서 부재하심이 아니라, 존재하심을 드러내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깨달으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나의 선택이 맞는 것인지, 지금 직장을 옮기는 것이 맞는 때인 것인지, 나의 장래는 어떻게 되는 것인지, 어떤 선택과 방향으로 해야 되는 것인지, 매우 궁금해 하며 매우 답답해하는 그 상황 가운데에서 오늘날 우연히 펼친 말씀 한 구절, 우연히 오늘 아침 나에게 온 기도 제목과 함께 날아온 톡으로 들어온 성경 말씀을 통하여 나의 마음속을 강력하게 붙잡으시는 그 하나님을 경험해 본 적 없습니까? 도저히 이 사람은 지금 나에게 올 때가 아닌데, 전혀 낯선 곳에서 나를 찾아와 나를 위로해주고 나를 도와주며 나를 격려해주는 그 우연의 경험을 많이들 웃으시네요!! 해보신 적 있으시죠? 또한 내가 깨닫지 못할 때라도 이상한 일들과 사건을 통하여서, 나의 정신을 반짝하고 차리게 만드는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은 마치 우연인 것 같으나 필연적으로 나에게 찾아오시는 그 하나님, 변함없이 일하시는 하나님을 믿으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세 번째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은 오늘 이 에스더서의 교훈과 말씀은...

III. 수동적인 끌려감으로 살아가지만 하나님을 고백하는 삶에 섭리가 있다.
-에스ej서에는 1장과 2장, 3장까지 계속된 이 우연히, 나타나고, 등장하고, 계속되고, 쓰여 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우연과 함께 또 다른 에스더의 특징 중에 하나는 수동적인 표현이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모르드개에게도 그리고 에스더에게도 이들을 지칭하는 성경 구절이 계속해서 수동형, 수동적 동작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에스더서 2장 21절과 23절을 제가 한번 읽어볼게요.

*에스더 2:21-23,
21 모르드개가 대궐 문에 앉았을 때에 문을 지키던 왕의 내시 빅단과 데레스 두 사람이 원한을 품고 아하수에로 왕을 암살하려는 음모를 꾸미는 것을 알고.
22 모르드개가 알고 왕후 에스더에게 알리니 에스더가 모르드개의 이름으로 왕에게 아뢴지라.
-들었어요. 그리고 일에 대하여 조사를 했는데, 그 결과에 대하여서 실증을 얻었다라고 하는 표현이 자세히 보니까 이런 뜻이에요. 그 일이 찾아왔다 그 일이 발견되었다라고 하는 뜻이에요.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가 다 수동적이에요. 그리고 2장 6절에 보면 모르드개의 첫 등장이 이런 표현입니다. 아까 읽었어요. “모르드개도 왕이 잡혀올 때에 모르드개도 함께 사로잡혔더라.” 이 이방 땅에 잡혀올 때도 사로잡혀서 왔고 어떻게 대궐 문 앞을 지키는 관직을 가게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우연히 두 내시의 왕의 암살 계획을 듣게 되었고, 조사는 했지만 그보다 더 엄청나고도 확실한 결과가 자기에게 찾아왔다라고 하는 표현입니다. 에스더서 2장 8절입니다. 우리 같이 한번 읽어볼까요? 시작.

*에스더 2:8,
8 왕의 조서와 명령이 반포됨에 처녀들이 도성 수산에 많이 모여 해개의 수하에 나아갈 때에 에스토로 왕궁으로 끌려가서 궁녀를 주관하는 해계의 수하에 속하니.
-이제 왕비가 되기 위한 일종의 시험, 컨테스트에 나가게 되는 그 상황을 묘사합니다. 아직 왕비가 되기 전이에요. 그런데 왕궁으로 이끌려가서 에스더를 표현하는 것은 이끌려갔어요. 수동적인 입장이에요. 선택하는 자의 호의가 아니면 다른 길은 선택할 수가 없습니다. 또한 1장의 에스더의 이름을 두 가지로 표현합니다. 원래 유대인으로 불려 진 이름 하다사 그리고 개명된 이름 에스더입니다. 소수민족 중에 소수 민족인 이 에스더가 자신의 민족과 함께 신앙적인 유대감과 간절한 하나님을 향한 그리움이 있을 때의 하다사의 모습과 그것을 철저히 감추도록 교육받고 철저히 숨기면서 이방 땅에서 이방 민족과 이방 문화와 이방의 음식을 어쩔 수 없이 같이 먹고 마시고 살아야 하는 그 이름 에스더라고 하는 이 혼동된 정체성 가운데에 수동적인 삶을 살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비슷하죠? 나도 모르지만 지극히 많은 부분이 누가 하라는 대로, 부모님이 하라고 말씀하시는 그대로 따라가는 수동적인 삶을 사는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성경은 여기에서 에스더의 표현을 에스도서를 마무리하고 있지 않습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4장이 되면서부터 수동적인 에스더가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바뀌는 모습을 알 수가 있습니다. 하만이라고 하는 총리대신이 유대인 진멸 정책, 유대인 말살 계획 조서를 이 에스더가 그 초안을 받아보게 됩니다. 우리가 사실 그 앞장에 에스더를 생각하면 두려워 떨며 손을 덜덜덜 떨며 그 초안을 보고 자기 사촌 오빠 모르드개에게 전달해 주는 것조차 두려워했을지도 몰라요. 그런데 이 위기 가운데에 서서히 전면적으로 능동적으로 등장하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수동적인 모에서 모습에서 생각과 판단뿐 아니라, 자신의 종교적인, 자신의 신분적인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에 관하여서 지극히 수동적인 이 한 여인이 어떻게 ‘죽으면 죽으리다.’ 라고 하는 적극적인 신앙의 고백을 하는 사람으로 바뀔 수가 있을까요? 여기서 잠깐 멈추고 에스더서를 비교할 때에 에스더서를 연구할 때에 많은 사람들이 요셉의 인생과 많이 비교를 한다고 합니다. 요셉의 인생도 누군가에 의하여서, 계속해서 끌려다니던 인생이었던 것 알고 계시죠? 그의 형태에 의하여서 본인이 원하지 않는 상황 가운데에 계속해서 알아주지 않는 것 가운데에 수동적으로 끌려다니게 됩니다. 시편 105편은 요셉의 일생과 일대기를 아주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시편 15편 16절 한번 같이 한번 읽어볼까요?
 
*시편 105:16,
16 그가 또 그 땅에 기근이 들게 하사 그들이 의지하고 있는 양식을 다 끊으셨도다.
-유대 땅에 엄청난 기근이 들게 됩니다. 먹고 살 만큼 먹고 살고 조금 힘든 기근이 아니라 살 수 없을 정도의 기근이 들게 되자, 아버지 할아버지가 다 됐죠. 돌아가실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야곱이 아들들에게 먹을 것을 양식을 구하라고 몰아냅니다. 애굽으로, 천리도 넘는 길을 몰아내서 양식을 구해오라 도저히 살기가 힘들다. 라고 하는 것으로 혹독하게 자식들을 내치는 일들로 요셉의 형들이 이 애굽으로 내려오고 마침내 총리가 된 요셉을 만나게 되죠. 하나님께서 양식을 다 끊게 만드시니까 그제서야 하나님의 뜻을 서서히 알아가게 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아주 놀라운 말씀과 기록이 있습니다. 105편 17절 한번 같이 한번 읽어볼까요?

*시편 105:17,
17 그가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이여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
-자신의 삶이 끌려다니는 인생, 누군가에 의해서 끌려가게 되는 인생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오늘 여기 17절에 그의 생애를 무엇이라고 표현합니까? 그가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이요. 요셉을 말합니다. 나는 끌려간다. 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하나님께서 나를 보내셨다. 라는 것이에요. 45장쯤에 가면 이보다 더욱 정확한 표현이 나옵니다. 창세기 45장 7절에 이렇게 나와 있어요.

*창세기 45:7,
7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당신들을 나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형들로부터 노예로 팔린 청소년 때로부터 시작하여서, 총리가 된 때까지의 많은 삶의 변화들이 있었지만 총리가 된 그 이유들을 되묻고 되물었지만 하나님께 제가 오늘 이 자리에 서게 된 것이 바로 이 이유였군요. 형들과 우리의 후손들을 위하여서 하나님께서 보내셨군요! 라고 하는 그 사실을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믿는 이 하나님께서 내가 속해 있는 이 세상 한가운데서도 여전히 일하고 역사하실까? 이런 끊임없는 질문을 하는 에스더와 같은 오늘 우리의 삶 가운데에 하나님께서는 오늘 이 에스더를 통하여서 에스도서를 통하여서, 우연히 우연에 우연히 계속되어도 알 수 없는 그 상황 가운데 몰고 가시는 하나님은 도대체 누구이신가? 라고 하는 질문을 하게 만드십니다. 그리고 마침내 자아 정체성, 신앙적 정체성을 깨닫고는 모든 것을 다 끊게 하고서,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라고 하는 것을 고백하게 만드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거예요. 끌려 다니는 인생인 줄 알았는데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인생, 끌려가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자리인 것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하나님께서 보내신 바로 그 자리라고 하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4장 16절 우리 같이 한번 읽어볼까요?

*에스더 4:16,
16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대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3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는 인생 되시기를 바랍니다. 결론을 맺겠습니다. 에스더서는 완전의 역사를 기록한 책입니다. 우연한 일들의 연속 가운데에 하나님의 필연이 쓰여 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부재한 상황을 통하여서 하나님의 존재하심을 역설하고 계시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수동적으로 끌려가는 한 사람의 인생 모르드개도 마찬가지고 에스더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의 삶은 알 수 없는 곳에서 알 수 없는 존재에 의하여 끌려다니는 인생이라고 생각한 그 것이 그 곳이 하나님께서 반드시 보내주신 자리임을 깨닫는 책 하나님께서는 이방 땅에서도 여전히 역사 가운데에 개입하셨습니다. 아하스에로 왕의 헬라를 향한 전쟁보다 그의 왕비, 그의 아내가 폐위된 사건을 더 소중하게 기록으로 남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대궐문 앞에서 직무를 수행한 모르드개의 그 직책도 우연이고, 내시가 그 대궐문 앞에서 왕을 살해할 음모를 꾸미는 것을 듣는 것도 우연인 것 같고, 하만이 모르드개를 처형하려고 하는 계획들이 진행되던 중에 왕이 우연히 책을 펼쳐서 최근의 일기를 듣게 된 것도 우연처럼 보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상황 가운데에 유대인을 구원하시기 위한 역사이심을 보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마치 감추어 계시는 하나님, 숨어 계시는 하나님인 것 같지만 오늘 우리의 삶에 찾아오셔서 역사하시고, 섭리하시고, 다스리시고, 일하시는 특별한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잠언 3:16,
16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내 길을 기도하시리라.
-그 말씀을 등대삼아 오늘도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발견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요약
삶의 작은 부분을 통하여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깨닫고 내가 선택한 일이 잘한 것인지 알 수 없는 불안함과 불확실한 세상 가운데 놓여 져 있다고 생각하고 하나님께 질문한 것들을, 그 모든 상황들을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며 나를 보내시는 하나님의 섭리임을 깨달아야 한다.
-왕의 목숨을 해치려는 음모를 발견함으로써 모르드개가 그 나라에 행한 업적이 여기 기록되어 있다. 후에 이에 대한 기록이 다시 한 번 나타나 모르드개를 유리하게 만들 것이다. 유대인을 멸망시키려는 하만의 계획이 아직 한 걸음도 진행되지 않았을 때이건만 그들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은 이미 여러 단계나 진행된 처였다. 이제 하나님은 모르드개가 왕에게 은혜를 베풀 수 있도록 기회를 마련해 주신다. 그렇게 함으로써 후에 그는 유대인들에게 은혜를 베풀 수 있는 더 좋은 나은 기회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왕의 신하 두 명이 왕을 해치고자 하는 음모를 꾸며서 왕을 옥에 집어넣을 뿐만 아니라 왕을 죽이고자 하였다. 모르드개는 그들의 반역 행위를 눈치 채고 에스더를 통해서 왕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그렇게 함으로써 에스더는 왕의 신임을 더욱 두텁게 받게 되었으며 모르드개도 왕의 호의를 받게 되었다. 반역자들은 자기들이 행한 죄과에 따라 나무에 달렸다. 그들의 음모가 발각된 뒤 충분히 이를 조사하여 모반 사실을 밝혀낸 후에야 비로소 그들은 나무에 달렸다. 그리고 그 사건의 전모는 궁중 일지에 기록되었고 모르드개가 그 음모를 발견한 사람이라는 것도 기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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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3년 9월 3일)
제목: "세상을 바꾸는 기도"
말씀: 다니엘 1:19
대표기도: 조충현 부목사님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영광찬양대(1부)
사회: 천동원 부목사님(1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ㅡㅡㅡㅡㅡㅡ

*다니엘 1:19,
1 메대 족속 아하수에로의 아들 다리오가 갈대아 나라 왕으로 세움을 받던 첫 해.
2 곧 그 통치 원년에 나 다니엘이 책을 통해 여호와께서 말씀으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알려 주신 그 연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칠십 년만에 그치리라 하신 것이니라.
3 내가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덮어쓰고 주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기를 결심하고.
4 내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며 자복하여 이르기를 크시고 두려워할 주 하나님,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를 위하여 언약을 지키시고 그에게 인자를 베푸시는 이시여.
5 우리는 이미 범죄하여 패역하며 행악하며 반역하여 주의 법도와 규례를 떠났사오며.
6 우리가 또 주의 종 선지자들이 주의 이름으로 우리의 왕들과 우리의 고관과 조상들과 온 국민에게 말씀한 것을 듣지 아니하였나이다.
7 주여 공의는 주께로 돌아가고 수치는 우리 얼굴로 돌아옴이 오늘과 같아서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거민들과 이스라엘이 가까운 곳에 있는 자들이나 먼 곳에 있는 자들이 다 주께서 쫓아내신 각국에서 수치를 당하였사오니 이는 그들이 주께 죄를 범하였음이니이다.
8 주여 수치가 우리에게 돌아오고 우리의 왕들과 우리의 고관과 조상들에게 돌아온 것은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음이니이다 마는.
9 주 우리 하나님께는 긍휼과 용서하심이 있사오니 이는 우리가 주께 패역하였음이오며. 10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며 여호와께서 그의 종 선지자들에게 부탁하여 우리 앞에 세우신 율법을 행하지 아니하였음이니이다.
11 온 이스라엘이 주의 율법을 범하고 치우쳐 가서 주의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저주가 우리에게 내렸으되 곧 하나님의 종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맹세대로 되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음이니이다.
12 주께서 큰 재앙을 우리에게 내리사 우리와 및 우리를 재판하던 재판관을 쳐서 하신 말씀을 이루셨사오니 온 천하에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일 같은 것이 없나이다.
13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이 모든 재앙이 이미 우리에게 내렸사오나 우리는 우리의 죄악을 떠나고 주의 진리를 깨달아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얼굴을 기쁘게 하지 아니하였나이다.
14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이 재앙을 간직하여 두셨다가 우리에게 내리게 하셨사오니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모든 일이 공의로우시나 우리가 그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음이니이다.
15 강한 손으로 주의 백성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오늘과 같이 명성을 얻으신 우리 주 하나님이여 우리는 범죄하였고 악을 행하였나이다.
16 주여 구하옵나니 주는 주의 공의를 따라 주의 분노를 주의 성 예루살렘, 주의 거룩한 산에서 떠나게 하옵소서 이는 우리의 죄와 우리 조상들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예루살렘과 주의 백성이 사면에 있는 자들에게 수치를 당함이니이다.
17 그러하온즉 우리 하나님이여 지금 주의 종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주를 위하여 주의 얼굴 빛을 주의 황폐한 성소에 비추시옵소서.
18 나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여 들으시며 눈을 떠서 우리의 황폐한 상황과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성을 보옵소서 우리가 주 앞에 간구하옵는 것은 우리의 공의를 의지하여 하는 것이 아니요 주의 큰 긍휼을 의지하여 함이니이다.
19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귀를 기울이시고 행하소서 지체하지 마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 이는 주의 성과 주의 백성이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바 됨이니이다.
------

▶세상을 바꾸는 기도에 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제가 이 말씀을 준비한 이유 중에 아주 제 마음속에 좀 너무나 안타까움이라는 그게 뭐냐면, 우리가 세상을 바꾸지 않으면 세상이 우리를 바꿉니다. 맞습니까? 우리가 세상을 바꿔가는 세상이 우리를 바꾸는 것이고 그래서 이건 좀 간절함을 가지고

오늘 성경에 보면 시대를 바꾼 기도가 많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이 갈수록 밑에서 금송아지만 그러고 난리 났을 때 그 다 이스라엘 백성의 장래가 다 끝난 겁니다. 우상 섬기고 그럴 때, 그런데 내 생명을 거두가시더라도 우리 민족, 사회, 잡고 목자의 심정을 갖고 기도할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 지형도 바뀐 것입니다. 모세가 민족과 세상을 바꾼 것입니다. 그 아압왕의 확정으로 3년 반이나 비가 오지 않고, 그 핍절한 상황 가운데서 갈멜 산에서 엘리야 선지자가 정말 목숨 걸고 하나님께 기도하니까, 사명감이나 피고 지는 그 핍절한 상황이 해결되는 영적 피폭 제라는 걸 적용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주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땀 흘려 피가 땀이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될 정도로 쓰여서 기도하십니까? 주전과 주후가-BC가 AD가 바뀌게 된 것입니다. bc와 ad가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그게 이처럼 모여서 기도하고 성령에 임하셔서 기도하고 그렇게 돼 가지고 예루살렘 교회가 탄생되고 공교회의 탄생으로 말미암아 세상 역사가 바뀌게 된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교회 역사를 보면 모라비안의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모라비안, 진젠도 백작과 함께 평신도들이 이분들이 역사가 1727년에 독일의 헤마른 후트라는 거기에서부터 시작이었고 1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여러분 1727년부터 정확히 말하면 1827년까지 120년 동안 하루도 까지 자 자기의 삶의 부족함이고 연약함이 있어도 상관이 없이 세상을 위하여 세계를 위하여, 죽으라고 기도해가지고 그 세계 선교를 향한 기도가 세계 선교 역사의 모든 시험을 받고 있어요. 그래서 그 결과로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카리브, 온 지역의 선교사 부서 심지어, 그린랜드까지, 빙하에 역시 그린랜드까지도 선교사들이 가리 정도가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전쟁의 역사, 6.25 전쟁의 역사를 바꾸는 초량교회 기도회가 있습니다. 1950년 8월 30일경 지금 비슷한 시기입니다. 낙동강 전선에서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지는 때에 부산 초량교회에서 구국기도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초량교회 담임 목사님이었던 한상동 목사님과 고려신학교 교장이었던 박윤선 목사님이 전국에서 피난 오신 목사님들이 함께 모여 모여가지고 목회자기도 집회, 피난민 목회자기도 집회를 열었습니다. 그때 목사님들은 6, 25 그 동란을 우리가 범한 죄에 대한 진노의 칼이라고 하면서 잘못을 고백하고 회개하기도 했습니다. 기도에 사흘째에는 교회 전체가 울음바다가 되었습니다. 그 생각 며칠 기간 예정을 넘겨가지고 기도가 9월 15일에 마무리가 보름 이상 마무리 했는데 9월 15일에 마무리가 됐는데 기도회가 마치게 된 그날 부산 전역에 호회가, 신문 호회가 배포가 됐는데 인천 상륙작전 기도회가 지 며칠 뒤에 더글라스 맥아더장군이 인천 상륙 작전을 감행했고 그것도 기도회가 그걸 목표로 한 성공했다. 그런데 졸지에 보급로가 차단된 공산군이 우왕좌왕 갈피를 잡지 못해서 그리고 인천 상륙작전은 7일 만에 밤낮 없는 회개의 기도가 있은 후에 3일 만에 이루어졌습니다. 낙동강 전선에서 공산군이 패배하면서 전세가 역전됐고 이달 9월 28일 겨울을 수복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오늘이 9월 3일이니까 이 기간 동안에 부산 초량교회가 에스티브를 보는 것입니다. 저는 그런 기도가 세상을 바꾸는 줄로 믿습니다. 오늘 다니엘서 9장은 세상을 바꾸는 기도에 관한 전형입니다. 성경에서 가장 강력한 기도 중에 하나입니다. 오늘 집에 가셔서 본문을 반드시 큰 소리로 읽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이 본문을 큰 소리로 여러분 한 세 번만 큰 소리로 읽으시면 기도의 능력을 깨달을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하는 법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예배를 마칠 때는 오늘 요절이 19절인데 19절을 제가 주요 1면에 세워놨습니다. 19절인데 여러분들 대한민국 교회가 있는 기도 자원 중에 하나가 주일 3창이 있어요. 주 3창의 시조가 다니엘인 줄 아십니까? 모르셨죠? 제가 그냥 하는 얘기가 아니에요.

*다니엘 9:19,
19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귀를 기울이시고 행하소서 지체하지 마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 이는 주의 성과 주의 백성이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바 됨이니이다.
-다니엘 위주의 우리 교회가 주에서 3창을 시도하고 다니엘이다. 이런 거는 사랑의 교회 강좌에서 나오는 내용이에요. 그런데 그렇게 얘기했잖아요. 성경에 롯도가 나오는 거 아니냐고. 기억나십니까? 아브라함은 여호와의 말씀을 쫓아갔고 롯도 그와 함께 말씀입니다. 이게 우리 교회 강단에서 이 전 세계에 없는 거에요. 그런데 성경에 주여, 3창이 나오는데 이 주의 3창의 시도가 다니엘이에요. 그래서 오늘 보십시오. 주여!!! 잠깐만 주여 뭐예요?

첫 번째, 주여, 들으소서. 두 번째, 주여, 용서하소서. 세 번째 주여, 귀를 기울이시고 행하소서.
(Lord, hear me. Lord, forgive me. Lord, listen, think, and act).
-주의 이름을 위하여, 그래서 다니엘서 9장을 읽어 소리를 내어가지고 한 세 번 정도 읽으시면요. 하나님께서 기도의 능력을 여러분들에게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다니엘서 1장부터 9장 1절 19절까지 내용은 여러 가지 있습니다마는 제가 딱 정리하면 1절부터 11절까지는 한번 보겠습니다.

*다니엘서 9장 1절부터 11절까지는,
1 메대 족속 아하수에로의 아들 다리오가 갈대아 나라 왕으로 세움을 받던 첫 해.
2 곧 그 통치 원년에 나 다니엘이 책을 통해 여호와께서 말씀으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알려 주신 그 연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칠십 년만에 그치리라 하신 것이니라.
3 내가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덮어쓰고 주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기를 결심하고.
4 내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며 자복하여 이르기를 크시고 두려워할 주 하나님,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를 위하여 언약을 지키시고 그에게 인자를 베푸시는 이시여.
5 우리는 이미 범죄하여 패역하며 행악하며 반역하여 주의 법도와 규례를 떠났사오며.
6 우리가 또 주의 종 선지자들이 주의 이름으로 우리의 왕들과 우리의 고관과 조상들과 온 국민에게 말씀한 것을 듣지 아니하였나이다.
7 주여 공의는 주께로 돌아가고 수치는 우리 얼굴로 돌아옴이 오늘과 같아서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거민들과 이스라엘이 가까운 곳에 있는 자들이나 먼 곳에 있는 자들이 다 주께서 쫓아내신 각국에서 수치를 당하였사오니 이는 그들이 주께 죄를 범하였음이니이다.
8 주여 수치가 우리에게 돌아오고 우리의 왕들과 우리의 고관과 조상들에게 돌아온 것은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음이니이다 마는.
9 주 우리 하나님께는 긍휼과 용서하심이 있사오니 이는 우리가 주께 패역하였음이오며. 10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며 여호와께서 그의 종 선지자들에게 부탁하여 우리 앞에 세우신 율법을 행하지 아니하였음이니이다.
11 온 이스라엘이 주의 율법을 범하고 치우쳐 가서 주의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저주가 우리에게 내렸으되 곧 하나님의 종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맹세대로 되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음이니이다.
-다니엘이 하나님 앞에 이스라엘 민족의 죄를 고백하는 내용이고,

*다니엘서 9장 12절부터 14절은,
12 주께서 큰 재앙을 우리에게 내리사 우리와 및 우리를 재판하던 재판관을 쳐서 하신 말씀을 이루셨사오니 온 천하에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일 같은 것이 없나이다.
13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이 모든 재앙이 이미 우리에게 내렸사오나 우리는 우리의 죄악을 떠나고 주의 진리를 깨달아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얼굴을 기쁘게 하지 아니하였나이다.
14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이 재앙을 간직하여 두셨다가 우리에게 내리게 하셨사오니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모든 일이 공의로우시나 우리가 그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음이니이다.
-이스라엘 민족의 죄 때문에 하나님께서 어떻게 심판하신가에 대한 내용이며

*다니엘서 9장 15절부터 19절까지는
15 강한 손으로 주의 백성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오늘과 같이 명성을 얻으신 우리 주 하나님이여 우리는 범죄하였고 악을 행하였나이다.
16 주여 구하옵나니 주는 주의 공의를 따라 주의 분노를 주의 성 예루살렘, 주의 거룩한 산에서 떠나게 하옵소서 이는 우리의 죄와 우리 조상들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예루살렘과 주의 백성이 사면에 있는 자들에게 수치를 당함이니이다.
17 그러하온즉 우리 하나님이여 지금 주의 종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주를 위하여 주의 얼굴 빛을 주의 황폐한 성소에 비추시옵소서.
18 나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여 들으시며 눈을 떠서 우리의 황폐한 상황과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성을 보옵소서 우리가 주 앞에 간구하옵는 것은 우리의 공의를 의지하여 하는 것이 아니요 주의 큰 긍휼을 의지하여 함이니이다.
19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귀를 기울이시고 행하소서 지체하지 마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 이는 주의 성과 주의 백성이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바 됨이니이다.
-민족이 심판을 받긴 했지만 자인에게 낙심하지 않고 민족을 사랑하여 애끓는 심정으로 세상을 바꾸는 기도를 함으로 하나님의 하나님의 은총을 기대하는 이런 내용을 제가 그러니까 세 가지인데 하나 민족의 죄를 고백하고 그다음에 하나님의 심판 앞에 납작 엎드렸고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은총 때문에 하나님의 은총을 가지고 은총에 대한 기대를 갖고 세상을 바꾸는 기도를 하는 내용인데요. 큰 두 가지 축을 말씀을 드리겠어요. 큰 두 가지 축을 제가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바랍니다.

*다니엘 1:2,
2 곧 그 통치 원년에 나 다니엘이 책을 통해 여호와께서 말씀으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알려 주신 그 연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칠십 년 만에 그치리라 하신 것이니라.
-2절에 보니까 이렇게 나와 2절에 다니엘이 뭘 통했어요? 책을 통하여 통치 원전의 반역의 책을 통해서 그다음에 여호와께서 뭐예요? 말씀으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알려주신 그 연수를 깨달았다. 우선다니엘의 이 책은 다니엘의 삶을 붙잡아준 성경이었어요. 구약 성경이었어요. 그래서 다니엘의 모든 기도는 그냥 된 것이 아니라 성경과 함께 가는 기도였어요.

I.첫째 말씀과 기도가 같이 가야 세상을 바꾼다.
-그러니까 첫 번째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역사를 바꾸는 기도는 말씀과 기도가 같이 가야 세상을 바꾸는 것이에요. 무슨 책들입니까? 이게 구체적으로는 말씀과 기도와 가치가 아니라 세상을 바꾸는데 말씀의 깊이와 기도의 깊이가 서로 연계가 돼 있고, 말씀의 깊이와 기도의 깊이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기도의 깊이가 말씀의 깊이와 연결돼 있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오늘은 어떤 말씀입니까? 예레미야를 통하여 주신 말씀이에요. 다니엘은 철저하게도 한 손에는 예언의 말씀과 또 하나는 역사적 현실 앞에서 딱 부딪히고 있는 것입니다. 두 세계 가운데(between two or three), 예언의 말씀과 현실 역사적 현실을 망가뜨리고 있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다니엘에게 있어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역사적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말씀을 통하여 현실의 역사를 꿰뚫는 영적 통찰력을 가지고 기도를 하는 것이에요. 특히 오늘 다니엘은 예레미야의 말씀을 통하여, 70년을 이야기를 했어요. 성령의 감동과 환상으로 예레미야에게 알아주신 것을 다니엘이 깨닫고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징계수를 심판의 연수를 깨닫게 된 것이에요. 2절 뒤에 그렇게 나와 있잖아요? 칠십 년 만에 그치리라. 여러분, 잘 아시는 대로 이 말씀은 예레미야 29장 10절 다 같이 보고 있습니다.

*예레미야 29:10,
10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딱 70년 차면 예레미야에게 행하신 이 말씀이 이 말씀을 다니엘이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여기 70년이라는 내용은 7과 10의 합성어죠? 7과 10은 성경에서 회복을 의미하는 것이죠. 그러니까 포로의 시기가 끝나고 예루살렘으로 귀환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니엘은 이때가 성경학자들이 다니엘이 이때가 아마 앞으로 한 66년쯤 지났을 때, 그래서 한 3~4년 지나면 이제 회복의 때가 올 것이다. 이렇게 다니엘이 깨달은 것이죠. 그래서 저는 이 말씀이 예언의 말씀과 우리가 지금 맞닥뜨리는 현실 역사적 현실, 시대적 현실, 이 두 가지 가운데 우리가 회복을 하고 부모를 위해 정말 기도를 하고 있는데, 이것이 오늘 우리 가운데서 어떻게 이것이 확인돼야 할 것인가? 남들이 뭘 하든 간에 저는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깨달아지고, 사모하게 되고 우리 성도들하고 같이 이것이 공유될 때에, 이것이 충만하게 될 때 하나님은 일하실 것이다. 그런 마음에 간절함이 생각 이게 뭐냐 하면 올해가 휴전 정전 협정 오늘 53년 7월 27일생 올해가 만 70년이에요. 2023년 70년이 되어져 제 마음속에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큰 울림과 떨림이 있었어요. 오늘 저와 여러분이 제대로 오늘 이런 마음의 손을 가지고 말씀을 중심으로 기도하게 된다면 진심으로 마음을 집중하게 된다면, 우리의 마음속에 이것이 충만해져가지고 간절함으로 표현이 된다면, 우리 성도들이 오늘 이 말씀을 듣는 저와 여러분들이 저 전력을 투구한다면 반드시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이에요?

다시 반드시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 것이에요. 여러분과 저에게도 다니엘이 깨닫고 경험했던 이 은혜가 있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국가적으로 하나님 어떤 역사가 시작 지금 사회적인 여러 가지 상황을 보고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하는데 저는 유진 피터슨이 얘기한 것을 말씀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기도는 정치보다도 강하고 언론보다도 강한 줄로 확신한다. -유진 피터슨-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에요. 세상을 바꾸는 기도는 오늘의 이 안타까운 현실을 극복하게 만드시는 것이에요. 다시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에요. 지금 우리는 말도 안 되는 프레임으로, 거짓으로, 진영주의로 온통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근데 저와 여러분들이 이와 같은 세상을 바꾸는 기도를 진실로 올려드릴 때에 하나님 나라의 놀라운 역사가 현재 구체적으로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말씀의 깊이와 기도의 깊이가 같이 갈 수 있습니까? 다니엘의 입장에서는 3~4년 뒤면 고난의 시기가 끝나겠구나. 그리고 마음 놓고 여유를 가질 수가 있는데 다니엘은 말씀을 깨닫고 그다음 3절, 4절에

*다니엘 9:3~4,
3 내가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덮어쓰고 주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기를 결심하고.
4 내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며 자복하여 이르기를 크시고 두려워할 주 하나님,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를 위하여 언약을 지키시고 그에게 인자를 베푸시는 이시여.
-여유가 있는 거야. 3절에 내가 금식하여 배 옷을 입고 죄를 뒤집어쓰고 하나님께 기도하여 간구하기를 결심하고 기도합니다. 또 4절에 내가 내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고 자복하며 기도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4절에 크시고 두려워할 주 하나님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를 위하여 언약을 지키시고 그에게 인자의 부르심이시다. 다니엘의 입장에서 이 본문을 볼 때 문제가 생겼을 때, 내 개인의 문제를 먼저 푸는 것으로 시작하지 아니하고, 마치 주기도문 가운데 주기도문에 이용할 양식을 주옵소서. 나중에 나오잖아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주님의 이름이 거룩한 나라가 임하게 하 뜻이 이루어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러니까 일용할 양식보다도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먼저 시작한 줄로 믿습니다.

다니엘이 이렇게 기도한 이유는 다니엘은 바벨론 대제국의 황제가 다리오가 그 당시에 최고죠. 다리오가 세상을 움직이고 다리오가 세상의 모든 권력자라고 생각할 수 있고 사람들은 그렇게 했지만 다니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세계 역사를 통치하시고 역사를 주관하시고 움직이시는 분은 하나님이신 줄로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진짜 영적인 시세를 언더스 더 타임 역대 42장에 나오는 것처럼 시대를 알아보는 시대를, 시대를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세상적인 눈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상을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알게 된 것이에요. 이런 기도를 하게 되니까 뒤에 22절에 보니까 다니엘아 이제 내가 너에게 지혜와 총명을 주려 하였느라

*다니엘 9:22,
22 내게 가르치며 내게 말하여 이르되 다니엘아 내가 이제 네게 지혜와 총명을 주려고 왔느니라 .
-하나님께서 오늘 이 아침 예배드리는 여러분들에게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지혜와 충령으로 충분히 채워주시길 원합니다. 그것을 기가 막힌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한 것이에요. 그러니까 말씀을 더 깊이 깨달을수록 이해할수록 하나님이 지혜를 주시고, 그 지혜와 충격을 가지고 우리가 더 기도하게 되고 그러니까, 이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와 충령으로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진짜 어리석은 사람이고 이런 문제를 앞에 놓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의 방향대로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정말 지혜가 없는 사람들이에요.

제가 오늘 이 말씀을 드릴 이유가 뭐냐 이 가을 사역 동 우리는 많은 말씀을 공부할 것입니다. 사랑의 교회는 우리 교회는 45년 동안 정평이 나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공부하는 게 어려워서 제자 훈련을 하고 우리는 QT를 강조하고 성경 대학을 하고 다락방 가고 또 주일 말씀도 제가 저의 기본적인 자세는 본문을 택해놓고 엉뚱한 얘기하지 아니하고 기본적으로 본문을 다 해석한다는 것이 저의 기본적인 마음이에요. 우리 교회 공단이 지금까지 그리 해왔어요. 그래 그니까 저와 여러분들에게는 나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기본적인 자세와 또 꿰뚫는 거, 또 나름대로 하나님 말씀에 대한 어떤 은혜가 있어요. 그런데 우리가 이런 말씀을 깊이 알고, 나름대로 45년 동안 우리 중직 자들 많이 얼마나 말씀을 훈련받으셨나요? 근데 결사적으로 기도가 따라가지 않으면,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 것이에요. 그게 이제 그게 이제 우리 우리의 어떤 면에서 우리의 인간성에 좀 부족함이에요. 그러니까 절박함과 간절함이 뿜어져 나와야 되는 거예요.

우리가 한국교회에 많이 성경을 많이 공부했던 분들이 정말 다니엘처럼 베옷을 뒤 집어 쓰고 그다음에 전력 투구해가지고 하나님께 자신의 문제보다도 하나님 문제 앞에 이 시대적인 문제 앞에 결사적으로 보면, 하나님이 반드시 응답하시는데 우리에게는 그런 절박함이 약한 거예요. 그래서 뭐 남들은 뭐든 뭘 하든 간에 기도의 지팡이를 들고, 토비새를 하고 청계산 기도회를 하고, 특새를 하고 그런 거 안 해도 괜찮아요. 우리 교회는 그런 거 안 해도 그냥 신앙생활해요. 이게 절박함의 발로에요. 절박함에, 만약에 초랑 교회 그 70년 전에 초랑 교회 절박한 기도가 없었다면 어떻게 됐겠습니까? 그 기도의 결과 인천 상륙 작전이 성공을 했는데, 인천 상륙작전이 성공하지 못했다면 우리나라가 어떻게 됐겠어요? 캄보디아의 킬링필드와 베트남의 보트 토크라는 이거는 게임이 안 될 거예요. 최소한 몇 백만 명은 죽었어요. 우리 목사님, 왜 또 저런 말씀을 하시나? 그런 분들이 계시다면 아직까지 기도의 절박함이 좀 약하다고 생각해요. 말씀의 깊이만 있고 강력한 절박한 기도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영적인 시체와 같고 균형이 잡히지 않는 것이에요. 말씀에 거하고 기도의 절박하고 그것이 표현된 것이 토요일 새벽 예배나 특새(특별새벽기도히)나 청계산 기도회나, 이 그래서 저는 국밥은 따로 국밥을 좋아하지만 기도와 말씀은 따로따로 하면 안 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이것이 있으니까 모세가 시내 산에서 생명을 위한 기도를 하는 것이고 엘리아가 갈멜산에서 목숨을 걸고 기도를 하는 것 역대 24장에는 아사 왕이 하나님 말씀을 깨닫고 나니까 그 말씀을 중심으로 해가지고 말씀을 새롭게 해가지고, 여호와의 영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를 도와줄 자는 주님밖에 없사오니 주님 우리를 도와서 절박한 기도를 드립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 히브리서 5장 7절 너무나 놀라운 기도 예수님의 기도 히브리서 5장 7절 다 함께 읽겠습니다.

*히브리서 5:7,
7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하나님께서 우리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기도를 응답하시는데 예수님의 입장에서는 이 결박한 기도가 너무 심각하니까, 이 땅에 계시는 동안 심한 눈물로 간구와 소원이 되어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들입니다. 나라를 위하여 여러분 시대적인 상황에서 여러분 자신을 위하여 어떻게 사실 거예요? 그래서 저는 우리 10월 23일, 원래 우리가 해야 10.23, 우리 한국교회 선교 10.23, 있는데 10월 9일부터 또 강단기도 하려고 합니다. 생각하고, 말씀의 깊이와 기도의 깊이가 같이 가는 줄로 믿습니다.

저는 이번에 교역자 수양회를 하면서 우리가 깨달은 것이 있어요. 그게 뭐냐 하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근데 산업화 민주화 다 됐다. 이런 얘기도 많이 하고, 1945년도에 해방하여 독립을 취한 나라 치고는 다른 나라를 하고 유일한 나라로 발전했다 그러는데 이게 어떤 점가하면 60대 이상은 60대 이상의 분들은 여러분과 저는 태어나기를 후진국에서 태어났어요. 맞습니까? 진짜 후진국으로 태어났어요. 내가 한번 얘기했죠. 저는 어릴 때 버스가 한 번 지나가는 거 그거 구경하는 것이 내 인생의 낙이었다니까, 버스가 지나고 나면서 막 기발 냄새가 나고 냄새를 맡고 그랬어요. 그게 근데 40대 50대는 중진국에서 태어났어요. 개발도상으로 중진국에 태어났어요. 그리고 지금 20대 20대 30대는 선진국에서 태어났어요. 이게, 이게 완전히 달라요. 이 종자가 달라요. 종자가. 지금 우리 10대 20대 애들은요? 유리문 앞을 지나가다가 서, 이래요. 왜 이러느냐면 스마트폰 이러면 다 해 때잖아요. 그러면 문 앞에 서 하면 다 해결되는 줄 알아요. 우리 교회도 이제 앞으로 그럴 거야. 우리 교회에 실제 집회가 들어. 이러면 우리 교회 뭐야 역사 우리 교회 장래 우리 교회 비전 다 다 나오게 될 거에요. 앞으로 여기가 다 마무리 될 거에요. 걔네들은 그렇고, 이제 근데 60대 이상은 스마트폰 이거 하고 있나 이런 세대를 다 세대가 초월되고, 모두가 다 하나 되고, 이스라엘은 세대 차이가 없다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여러분 세대가 달라도 소홀할 수 있는 그래서 제가 디지털 디지털에 관한 10대 시대들은 아이들은 디지털 원주민이고, 무려 60대 이상은 디지털 이방인입니다. 우리는 이방인 민족이에요. 한 집안에 이방 민족이 같이 사는 거예요. 이거 어떻게 한데 이 일을 어떻게 해결합니까? 하나님이 주신 기도의 제목을 가지고 이런 세대를 초월하여 합심해서 기도하면 세대 차이가 없을 줄 믿습니다. 말씀 외에는 다른 길이 없어요. 그래서 성경 에베소서 6장에 보면 영적 전쟁에 대해서 우리 영적 전쟁을 앞에 놓고 있는데, 공격력 목을 따라가는 말씀의 건 나머지 훌륭한 영적 전쟁 무구들이 있어요. 디펜스 한 진리의 허리띠, 의의 호신경, 믿음의 방패, 다 멋있어요. 그런데 아무리 성령의 검과 모든 것이 에베서 6장 13절부터 17절 사이에 다 나오는데, 다 있어도 마지막 18절에 여기 없으면 해결이 안 되는 여기 없으면 해결이 안 됩니다.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에베소서 6:17-18,
17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18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그러니까 성령의 검과 진리의 허리띠와 의의 호신경과 믿음의 방패가 있어도 반드시 마지막 마무리로 18절에 17절까지 있어도 기도와 간구가 마무리가 되어야 뚜껑이 닫혀 닫힙니다. 다시요. 말씀과 뭐가 같이 간다? 기도 다른 말씀이 기도가 될 때 역사는 일어나는 거죠. 요한복음 15장 7절에

II. 함께 기도의 짐을 져야 세상을 바꾼다.

*요한복음 15:7,
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그 이루리라. 순전하고 어서 이거 그대로 믿기를 바라는 것이 그다음에 무엇인지 무엇인지, 보고 있습니다. 말씀과 기도가 같이 가서 이 시대를 바꾸는 세상을 바꾸는 기도의 증인이 되기를 원합니다.

또 하나 더 하겠습니다. 또 하나는 뭐냐 5절부터 19절에 나오는데요. 뭐가 나오냐 하면 다니엘, 다니엘이 민족과 함께 기도의 짐을 함께 졌어요. 그리고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함께 기도의 짐을 져야 세상을 바꾼다는 것입니다. 함께 기도하면 파워가 나온다. 연합과 합심 기도는 기적을 가져오는 줄로 믿습니다. 이게 왜 중요한가 다니엘은 함께 기도의 짐을 안 줘도 되는 사람이에요. 다니엘은 깨끗한 사람이고 에스겔 14장에 보니까, 하나님께서 다니엘을 보고 너는 의롭다 그랬어요. 성경 완벽한 인물들 사무엘도 완벽하고 요셉도 완벽하고 같은데 3대 인물 가운데 그러나 사무엘도 자식 농사에도 문제가 있었고 또 요셉도 좀 뭐야 좀 이렇게 형들 자매하고 이 얘기도 하고 이런 거 있었는데 다니엘이라고 한 사람 그런데 오늘 5절을 보니까, 우리는 이미 범죄 하여 패역하고 5절, 우리는 이미 패역하고 범죄 하여 행악하여 감정하여 주의 법도와 규례를 떠났다.

*다니엘 1:5,
5 우리는 이미 범죄하여 패역하며 행악하며 반역하여 주의 법도와 규례를 떠났사오며.
-이 죄를 지었다는 말을 여러 가지 표현하고 있죠? 범죄 했다, 패역 했다, 행악 했다, 반역 했다, 주의 법도와 교회를 떠났다. 그러니까 다니엘은 자기는 의인이지만 자기는 깨끗한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다니엘은 카스 한번 같이 하세요. 똑같이 5절 6절 7절 8절 9절 10절 11절 13 14 15 16 18 19, 12절과 18절 빼고는 전부 다 매주 마다 자기 자신을 범죄였다고 말하고 있어요. 저는 이게 너무 놀라웠어. 성경 어디에도 나들이 죄가 나오지 않아요. 그러니까 우리는 그런 부족함이 있지만 나와 안 맞는 사람들에 대해서 나와 안 맞는 정치 체제에 나와 안 맞는 거에 대해서 그런 게 있었지만 있지만 우리는 대부분 많은 사람은 허구한 날 못난 정치 체제가 정치가 어떻고, 기업이 어떻고, 세상이 어떻고, 말만 하고 이렇게 하는데 그 짐을 자기 죄로 알고 눈물로, 눈물로 기도하는 그런 사람 많지만요. 우리 교회도 보면 이 안에 보면요 정치적으로 자기가 안 맞아갖고요. 교리도 안 하는 사람이 있어요. 교회 식구들 가운데서도 너 일찍이지? 등,,, 우리는 같이 가서 이 민족의 죄에 대해서, 같이 저는 유튜브에 한 번씩 보면요. 막 그 전에는 어떤 행동을 취하고, 지금은 완전히 다른 행동을 취해가지고 배신한 인간들 때려 죽이고 싶어요. 죄송합니다. 근데 그게 내 문제예요. 우리는 다 그렇게 할 수 있어.
그러니까 피가 뭐냐 하면 다니엘은 민족의 죄악을 고발하는 것이 아니라, 시작

“다니엘은 민족의 죄악을 고밳나는 것이 아니라, 민족의 죄를 자신이 지었다고 생각하고 민족의 죄와 자신의 죄를 동일시하여 기도의 무릎을 꿇었다”
-이 교회 안에서도, 한국 기독교 안에서도 계속 강단에서는 남 얘기하고 어느 목사가 잘못했다 그러고 누가 뭐 어떻다고, 그러고 저는 그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같이 하시라. 아 좀 한 단계 올라가 가지고 분절하지 말고 같이, 같이 마음 아파하고 같이 있잖아요. 민족의 죄를 고발하는 사람이 아니라 민족의 죄 짐을 대신 지고 가는 사람을 통하여 세상이 바꾸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주님께서는 기도의 거룩한 짐을 지워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기도의 어떤 거룩한 짐을 지워주셨어요?

저는 우리 민족이 주님 기도의 짐을 지어주셨어요. 하나님 우리 민족이 적어도 영적 강국이 되게 해달라고, 우리 민족의 세계 선교를 마무리하게 해달라고, 세계교회 선교사님 빚진 거 갚게 해달라고, 기도의 짐을 지게 하신 거에요. 그리고 또 하나 건강할 때 성령에서 특새하게 해달라고 기도했었죠. 놀라운 것은 이런 기도의 짐을 여러분들이 지기로 결단하는 그 순간 하나님은 응답을 미리 준비하고 계시는 줄 믿으셔야 되는 것이에요. 오늘 23절에 보니까 가브리엘 천사가 다니엘에게 와서 기도하고 19절에 기도하고 나니까 23절이 시작

*다니엘 9:23,
23 곧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명령이 내렸으므로 이제 네게 알리러 왔느니라 너는 크게 은총을 입은 자라 그런즉 너는 이 일을 생각하고 그 환상을 깨달을지니라.
-시작하는데 벌써 명령의 입 민족의 힘을 거룩한 힘을 쥐고 오늘 3절에 기도할 걸 결심하고 기도했는데 그때 이미 하나님께서는 응답할 준비를 다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시간적으로는 하나님은 우수한 대의 개념에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생각하는 지금 어떤 물리적인 3차원의 세계에서 바로 응답은 안 일어나지만, 영적인 차원에서 이미 하나님은 다 기도를 응답을 준비하고 계시는 거죠. 예를 들어서 우리 교회 예배당을 이렇게 짓는 데 적어도 오랜 시간이 걸렸잖아요. 6~7년 8년 걸렸잖아요. 다 정리되면 10년이 걸렸잖아요. 우리가 생각할 때는 이거 너무 시간이 걸리고 이렇게 생각하지만 하나님 편에서 볼 때 이미 우리가 예배당을 위한 기도하고 최선을 거치고 기도하고 그때 이미 답이 나온 거예요. 이게 지금 지금 우리가 아니 10년 뒤에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이에요. 다시 우리가 거룩한 기도의 집을 지고 집중을 할 때 하나님은 이미 응답을 준비하고 계셨다. 그러니까 여러분, 여러분과 제가 기도의 짐을 질 때 먼저 내 개인의 문제 해결만을 위해서 기도하지 말고, 하나님이 주시는 거룩한 기도의 짐을 지고 기도할 때 하나님은 내 개인의 문제까지도 해결해 주시는 것이다.

그렇게 기도할 때, 그리고 놀라운 것은 이런 어떻게 보면 거대 담론으로 하나님 나라를 위해 기도할 때,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뒤에 보니까 다니엘 개인의 문제도 다 해결해 주시는 것입니다. 22절에 아까처럼 하나님 뭘 주셨어요? 지혜가 문을 주셨어요?

*다니엘 9:22-23,
22 내게 가르치며 내게 말하여 이르되 다니엘아 내가 이제 네게 지혜와 총명을 주려고 왔느니라.
23 곧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명령이 내렸으므로 이제 네게 알리러 왔느니라 너는 크게 은총을 입은 자라 그런즉 너는 이 일을 생각하고 그 환상을 깨달을지니라.
-그렇게 은총을 받고 지혜와 존경을 통하여 미래를 통찰하는 사람이 되고, 다니엘은 요한계시록과 함께 서게 될 만큼 하나님 나라의 묵시에 대해서 깨닫게 되고, 그리고 기도의 집을 지은 자에게 첫 번째 말씀의 깊이와 기도의 깊이 같이 하고 거룩한 기도의 시간을 같이 지고 기도할 때에 뭐가 어떻다 뭐가 이렇게 기도할 때 여러분 다시 어떤 우리 기도의 제목이 있습니까? 사랑의 교회와 한국교회 우리가 어떤 기도의 짐을 져야 합니까? 우리가 저 세계 선교를 마무리하기 위하여, 믿음의 계승을 위하여, 하나님 우리에게 주시는 귀한 기도의 제목들이 다 있는 거예요. 이걸 여러분 개인적으로 잘 접목할 때에 놀라운 말씀 다니엘에서 12장 13절에 보면,

*다니엘 12:13,
13 너는 가서 마지막을 기다리라 이는 네가 평안히 쉬다가 끝날에는 네 몫을 누릴 것임이라.
너는 가서 마지막을 기다려라. 이는 내가 평안히 쉬다가 끝나려면 내 몫을 노릴 것이니라.
-할렐루야 할렐루야... 평안히 주시는 축복을 주셨어요. 끝 날에는 너의 몫을 누릴 것이 기도의 짐을 진 자에게 첫째 인생의 평안한 쉼을 주실 줄로 확신한 것이 그리고 내 몫을 다는 것은 하나님의 상급이 온 것이 그런 평안과 상급을 통하여 부흥을 허락하여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이 욥이 너무 억울해가지고 욥이 너무 고난당해 억울해가지고 난리 났을 때, 나중에 하나님께서 지금 니가, 니가 하나님이 어떻게 다 아냐 나중에 욥이 눈으로 귀로만 들었던 하나, 눈으로 깨닫고, 여기 42장에 놀라운 고백을 하고 있죠? 욥기 42장 10절에 보면, 시작.

*욥기 42:10,

10 욥이 그의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전 모든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
-마지막 핀 세트처럼 이렇게 뽑아가지고, 욥의 친구들을 위하여 그 친구들 말도 안 되는 그 이상한 친구들, 이상한 소리하는 친구들 기도할 마음도 안 생길 만한 그런 친구들을 위해 다 들 기도하니까 여호와께서 욥의 공격을 돌이키시고 이전 수보다 갑절이나 허락하여 주셨더라. 이걸 우리는 그대로 믿기를 바라는 것이 핀세트처럼, 다시 처음 말씀대로 우리가 세상을 바꾸지 아니하는 세상이 우리를 바꿀 것이 오늘 말씀드린 대로 세상을 바꾸는 기도를 우리는 잘 이제는 이해하게 됐습니다. 말씀과 기도의 기표가 같이 가기를 바라고 함께 기도해 주며 함께 기도할 때에 하나님이 역사할 것입니다.

*야고보서 5:16,
16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야고보서4:2
2 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그래서 평양 대부흥 때 블레어 선교사님이 미국 교회의 보고였는데 기도의 소리가 평양 기도의 소리가 마치 ‘폭포수 소리와 같았어.’ 라고 했다. 기도의 소리가 마치 폭포수 소리와 같아서 기도의 대 파도가 하나님의 보좌를 밀어 올리는 것 같은, 절박함으로 간절한 기도를 이 시간 함께 올려드릴 때, 하나님은 반드시 여러분 응답하시리라 믿습니다. 정전 만 70년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어떤 역사를 이렇게 될 것입니다.

첫 번째, 주여, 들으소서.
-하나님의 정치보다 언론보다 강한 줄 믿사오니 깊은 말씀으로 우리를 흔드 사, 세상을 바꾸는 바쁜 기도에 무릎을 꿇게 하여 주옵소서. 아멘.
두 번째, 주여 용서하소서.
-오직 두려워할 한 분, 주님께 이 민족의 죄악을 끌어안고 자복하오니용서와 긍휼을 베풀어 주옵소서. 아멘.
세 번째 주여, 귀를 기울이시고 행하소서.
-한손에는 예언의 말씀을 들르고 한손에는 역사적 현실을 붙들고 간절히 구하오니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주의 뜻을 이 땅 가운데 이루어 주옵소서. 아멘.

첫 번째, 주여, 들으소서.
두 번째, 주여, 용서하소서.
세 번째 주여, 귀를 기울이시고 행하소서.
(Lord, hear me.
Lord, forgive me.
Lord, listen, think, and act).
주여 들으시고, 주여 용서하시고, 주여 귀를 기울이시고 행하여 주옵소서.

♣요약
세상이 우리를 바꾸는 위기 앞에서 세상을 바꾸는 강력한 기도 무릎으로 엎드릴 때, 민족과 세상의 영적 지형도가 바낌을 믿고
한 손에는 예언의 말씀을 붙잡고, 한 손에는 역사적 현실을 붙들어서 기도의 간절함과 절박함으로 기도해야 한다. 그리하여 영적 기폭제로 쓰임 받아 주님의 귀한 기도의 자녀로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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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흥헌신토요비전새벽예배(주후 2023년 9월 2일)
제목: "주의 나라 재건에 드러나지 않는 제자"
말씀: 사도행전 9:11
대표기도: 서영호 집사(남사역 2반총무)
찬양인도: 믿음의 4대 훈련생 찬양대
말씀읽기: 도지윤(초등부 제자훈련생),임주온 유년부 제자훈련생)
사회: 김대규 부목사님
 
설교자: 김대순 부목사님( Saga 아카데미 학장)
마무리기도: 오정현 담임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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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9:11,
11 주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사람을 찾으라 그가 기도하는 중이니라.
 
ㅡㅡㅡㅡㅡㅡㅡ
 
▶김대순 부목사님( Saga 아카데미 학장)
여러분 참 잘 오셨습니다. 우리 옆에 분에게 인사하겠습니다. 새벽에 참 잘 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의 나라를 재건하실 때 드러나서 위대하게 쓰인 인물도 있지만, 드러나지 않게 뒤에서 조연의 역할을 잘했던 인물들도 많이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보물 같은 제자들이 많이 있어요. 오늘 드러나지 않은 제자들을 통해서 훈련을 받는 저희들이 어떻게 삶을 살아야 되는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한국에 와서 주눅 드는 일이 딱 한 가지가 있어요. 남자들이 모이면 군대 얘기를 합니다. 우리 손현보 목사님도 그렇고 우리 박성기 목사님도 강단에 있을 때마다 군대 얘기하면은 남성들은 눈이 그냥 동그래서 저는 군대입구도 가보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제가 결심을 하고 제가 이번 여름에 군대에 입대하고 왔습니다. 사진을 한번 보여드릴까요? 사진, 사진이 안 나오는데 우리 방송에서 제가 이번에 미국 켄터키 주에 갔다가 캔드라슨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거기 가서 제가 군대에 입대한 160년 전에 남북 전쟁이 일어났을 때, 남북 전쟁 때, 군인들이 입었던 옷을 제가 입고 군대에 입대를 했었습니다. 사진 안 나와요? 사진을 보시면 참 이렇게 재밌으실 건데 파란 모자에다가 제가 북군, 북쪽 군인으로서 제가 거기 서서 한번 160년 전에 남북 전쟁이 일어났을 때, 군인들이 어떤 느낌인가 그것을 한번 제가 한번 느껴봤습니다.
 
그 당시에 흑인들은 노예로 살면서 백인들과 분리된 삶을 살았지만, 흑인들이 군대에 입대하면은 백인 군인들과 함께 같은 방을 썼어요. 그리고 같은 훈련을 받고 전쟁을 위해서 전쟁을 위해서 싸웠던 그런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훈련을 받았을 때 색깔과 피부에 상관없이 하나님 나라에 남북 전쟁을 위해서 쓰임 받은 그런 귀한 영혼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오늘 군대로, 사진 한번 띄워주세요.
 
예, 됐습니다. 저도 군대 갔다 왔습니다. 군인이 된다는 것은 육체적인 훈련도 있지만 특별히 사고의 변화 생각의 변화가 있어야 되기 때문에 제가 오늘 본문을 통해서 몇 가지 먼저 소개를 드립니다. 생각에는 5가지 형태가 있습니다. 제가 자세히 설명은 못 드리고 다섯 가지 있습니다.
 
첫 번째로는 박스 안에 있는 생각입니다. 전통을 지키시는 분, 절대 움직이지 않으시는 분들이 있어요. 그래서 틀 안에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게 있고 무조건 동그라미는 박스 안에 있어야 된다 생각하는 분들이 있어요.
 
두 번째로는 여러분이 크로리크이라 그래서 박스 안의 생각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박스 안에 박스 밖에 생각하는 거예요. 그쵸? 꼭 왜 동그란 노란 것이 박스 안에 있어야 되는가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것을 할 수 있는 훈련받으면서 전통도 좋지만 시대에 맞게 생각해야 되는 부분들이 있어서 박스 안의 생각
 
세 번째로는 요새 새로 나올 겁니다. 박스를 제거하는 생각입니다. 디스트럭 핑킹이라고 그래서 2020 코로나가 터졌을 때 제가 읽은 책 가운데 미래를 창조하라 크리에이터 퓨처리라고 그래서 여기는 박스를, 박스 밖에 생각을 한 게 아니라 박스를 제거하는 겁니다. 거기 내용 가운데 특별히 창의력과 잠재력에 대한 그래프가 나와 있는데 나이가 들면 들수록 지능은 올라가는데 야성적 창의력은 떨어진다고 이렇게 얘기합니다.
 
여러분, 아마 예배 앉으실 때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위치에서 아마 예배드리실 거예요. 저는 이 책 2020년 읽고 2020년 이 책을 읽고 주일 예배에 올 때 예배를 드릴 때도 같은 장소에 앉으면 담임 목사님을 좋아해요. 권사님 거기에 앉아 계시고 장로님 거기에 앉아 계시는데 이 책을 읽고 난 다음에 사랑의 교회 예배드릴 때마다 여러 다른 곳에서 각도에서 예배를 드려봤어요. 왼쪽 오른쪽에도 앉아보고 3층에도 앉아보고 뒤쪽에도 앉아보고 앞쪽에도 앉아보고 2층에도 앉아보고 제가 앉아보지 않은 장소가 딱 한 가지가 있어요. 우리 찬양대... 그러면 지능은 올라가고 책도 많이 읽고 경험도 많은데 그러면 어떻게 우리가 개인적으로 또 교회적으로 화석화가 되지 않을까 여러분이 잘 아시는 우리 이건희 전 회장님께서 그랬잖아요.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고. 왜냐하면 시대가 너무 많이 바뀌기 때문에 이제는 틀 밖에 생각도 해야 되지만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생각을 해야 되는 그런 부분을 얘기합니다. 그래서 저는 제자 훈련이 지능도 하나님 앞에서 지혜도 올라가지만 제자 훈련을 통해서 어릴 적부터 야생 창의력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나이가 들어갈수록 시대가 변할수록 순장으로 장로님으로 교육자로 섬기면서 지속적으로 훈련을 받아서 하나님 앞에 화석화되지 않도록 저도 신학교 졸업 후에 화석화되기가 너무 쉽거든요.
 
목사님 왜? 학위는 받았으니까 다 이로운 거지만 실제로는 평생 제자 훈련을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다음이 이제 창의적 사고입니다. 왜? 꼭 박스해야 됩니까? 오각형도 있고 원형도 있고 육각형도 있어요. 시대가 바뀌기 때문에 새로운 것을 시대에 따라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다음에, 그다음에 시스템, 시스템 사고입니다. 여러분 내 모에서 동그라미로 갈 때 하나님이 극적으로 변하게 할 수도 있지만 보통은 단계를 통해서 갑니다. 시스템을 산발적으로 생각하면 안 돼요. 실제로 누가 복음과 사도행전을 보시면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911, 한국에서는 응급 때 119를 부르지만 미국에서는 저희들이 911을 부릅니다. 그리고 미국 912 테러 사건을 여러분이 아실 겁니다.
 
성경에 하나님께서 어떤 한 영혼을 움직이실 때 변화하실 때 훈련을 시키실 때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파트가 많이 깨졌는데 3년의 갈릴리 시대를 지나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훈련하시고 예루살렘 시대를 엽니다. 사도 베드로를 밑에서 12 사도들이 사역을 합니다. 유대 지역에서 사역을 했고 12사대가 하는데 12사도 시대가 있었는데 전통 박스를 깨시면서, 하나님께서 바퀴를 통해서 새로운 역사를 합니다. 이게 이제 디스트럭터 씽킹(Destructor Thinking) 하나님께서 새로운 것을 역사하십니다. 어떤 역사를 아시냐면 사도도 사용을 주님께 쓰임 받는 영혼들이지만 12 집사들 스데반들 빌립들 유다 아나니아, 6장, 7장, 8장, 9장에 보면 비 사도들 요사히 말하면 평신도도 새롭게 사역하고 이제 글로벌 시대로 주님께서 준비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여러분이 한번 질문하겠습니다. 평생 처음 첫 번째로 방문한 기독교인의 집은 누구의 집이었습니까? 그리고 어떤 인상을 받으셨습니까? 아마 여러분 모태 신앙은 부모님 가정에 태어났기 때문에 잘 모르겠지만 저처럼 1세대는, 처음 기독교 집안을 방문했을 때, 그분들이 나를 어떻게 환영하고 어떻게 대접하느냐에 따라서 인상이 기독교에 대한 인상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한번 질문하겠습니다
두 번째 질문하겠습니다. 바울이 사울이었을 때 평생 처음 첫 번째로 방문한 기독교인의 집은 누구의 집이었을까요? 오늘 본문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예루살렘에서 다메섹으로 가는 거리는 한 220km가 되는데 다메섹에 살았던 유다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여러분이 아마 가롯 유다라에서 유다라는 이름이 이렇게 좋지 않은 인상을 받을 수도 있는데 성경에 보면은 유다 이름을 가진 사람이 여러 사람이 나와요. 동명이인인데 다메섹 유다, ‘유다’라는 뜻은 칭찬받는 자예요. 훈련을 받으면서 하나님 앞에 토비새로 나와서 주님 앞에 우리의 삶을 들을 때 정말 칭찬받는 자가 돼야 되는데 거기 다메색 유다의 가정을 사울이 첫 번째로 방문한 기독교 가정이었어요. 사랑의 교회도 보니까 이름이 비슷한 분이 많아요. 제 이름이 김대순인데, 사랑의 교회도 김대순 어떤 성도님이 계시더라고요. 또 용어 이름이 다니엘 김인데 여러분 이 다니엘 목사님도 계시고 또 다니엘 이름을 가진 분들이 계세요.
 
세 번째 질문을 여러분 해보겠습니다.
이슬람 사원의 총책임자, 이마 이슬람의 사역자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회당에 젊은 청년 여러 명을 동원하여 예수님의 제자로 사는 당신의 집 문을 꽝꽝 두드린다면 여러분들은 어떻게 반응할 것입니까? 공산당 경찰서장이 경찰관 여러 명을 대동하고 예수님의 제자로 숨죽이며 조용히 신앙 생활하는 당신의 집 문을 예고 없이 두드린다면 당신은 어떻게 반응할 것입니까? 이 이야기는 오늘 사도행전 9장의 얘기입니다. 사울이 교회를 박해하고 핍박할 때 예수님을 만나고 난 다음에 찾아가야 되는데 첫 번째 집이 유다의 집이었어요. 아나니야 집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초신 자 사울에게 하나님께서 초신 자 사울에게 영향을 끼쳤던 멘토들이 여러 분이 있어요.
 
네 분 정도가 성경에 나오는데 첫 번째로는 스데반, 스데반은 순교의 삶을 사도 바울에게 보여주셨어요. 직접 두 사람이 만난 건 아니지만 그런 모델을 받았어요. 훈련생들은 저희들이 제자 훈련을 하고 주님 앞에 나가는 이유는 우리가 지금 환경은 1세기보다 낫고 우리 일본 시대나 6.25 시대보다 낫지만 적어도 순교해하는 마음으로 제자 훈련을 받아야 되겠죠 두 번째로는 아나니야, 제자였습니다. 순종의 삶 아마 가고 싶지 않은, 만나고 싶지 않은 사울을 만나서 직접 삶의 모습을 보여준 아나니야, 세 번째로는 여러분이 잘 아는 바나바, 큰형님 같은 분 가르침의 은사 또 리더십의 삶을 보여줬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네 번째 사람이 오늘 본문에 나오는 유다입니다.
 
유다는 특별히 자기의 가정을 열어서 사도 바울에게 어떤 삶을 살아야 될지 눈은 보이지 않았지만 며칠 3일 동안 그 집에 머물면서 제자의 삶을 보여주셨어요. 그래서 훈련받은 제자 다미 유다를 통해서 배울 수 있는 제자도 교훈들 제가 두 가지만 여러분에게 나누겠습니다.
 
첫 번째 가정을 여는 훈련입니다. 삶입니다.
가정을 연다는 것은 내 삶을 연다는 것이에요. 훈련받을 때 책으로 교재로 하는 것도 너무 중요하지만 나의 삶을 주님 앞에 여는 겁니다. 특별히 안 믿는 분들이 찾아올 때 초신 자들이 찾아올 때, 환영 인사를 잘해야 됩니다. 저는 한국에 와서 적응 안 되는 문화 중에 하나가 엘리베이터 문화예요. 엘리베이터를 타면 저희 사는 아파트도 그렇고 교회도 그런데 다들 다른 벽을 보고 계세요. 그래서 서먹서먹해서 아마 벽을 보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엘리베이터 타면 특별히 사랑하기 위해서는 그래요. 같이 인사를 합니다. 같은 시간에, 엘리베이를 타서 영광입니다. 이렇게 인사를 합니다. 사랑교회에서도 그렇게 했으면 좋겠어요. 옆에 분에게 한번 인사를 할까요? 같은 사랑의 교회 멤버가 되어서 영광입니다.!!!~~
 
인사하시면 한 번 더 하겠습니다. 토비의 영적 동지가 되어서 영광입니다. 유다는 방 집 대문을 여는 것도 좋지만 어떻게 환영하는가? 저도 본래 부모님 열심히 사시고 힘들게 사셔서 가정의 웃음보다는 인상을 찌그려는 가정이 되었었어요. 그래서 예수님을 만나고 완전히 변화가 되었어요.
 
두 번째로는 유다 집은 5성 호텔은 아니었지만 5성 서비스였어요.
호텔 좋음 집은 아니었지만 최선을 다해서 사울이 인생 처음 예수님을 만나고 난 다음에 3일 동안 금식할 때 자기 집을 열어서, 사울이 주님 만날 수 있도록 금식 기도원이 되도록 자기 집을 연 사람이 유다였어요. 그리고 사울 같은 초신 자들 아니면 안 믿는 영혼들이 집을 찾아올 수 있도록 뒷문을 활짝 열었어요. 그래서
 
▷사울은 유다를 통해서 신앙 첫 걸음을 배웠습니다. 제가 두 가지만 소개할게요.
 
첫 번째는 대접하는 거, 환대하는 거, 영어로 하스피탈러리(Hospitality 친구+이방인), 다른 사람들을 맞는 얘기를 사도 바울이 성경에 보면 자기 서신 서에 여러 번 얘기를 하고 있어요. 로마서 12장 13절로 나오는데 우리가 제자로 살아갈 때 말로 복음을 전하는 것도 좋지만 따뜻한 커피,
 
*로마서 12:13,
13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우리 집 대문을 열고 누구든지 찾아올 수 있도록 그리고 사도 바울도 자신도 사도행전 28장 30절 마지막에 사도행전을 보시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사도행전 28:30,
30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들을 다 영접하고.
-여러분만 셋집에 사는 것이 아니에요. 저도 평생 선교사였기 때문에 새 집에 살았어요. 사도 바울도 로마에 가서 셋집을 살았어요. 세를 들어서 살았어요. 월세든지 전세든지 상관없어요. 주인은 하나님이시니까, 집 대문을 열어서 영접하는 거 어디서 배웠을까요? 저는 인생의 첫 단추를 꼈을 때, 유다라는 이름 없는 드러나지 않은 제자를 통해서 그 모습을 보면서 로마에 가서도 2년 동안 자기 집을 열어서 자기 셋집을 열어서, 로마, 글로벌 아카데미를 열었었어요. 이게 다 로마 글로벌 아카데미예요. 그래서 월컴Wellcome) 두 단어가 합쳐진 복합어, 환영한다는 뜻은 두 단어가 합쳐져서 된 거예요.
 
1) 아포-분리하다. 이곳에서 저쪽으로 분리하다 그런 뜻이 있고,
2) 데코마이 라는 뜻은 손을 펴서 잡아주다, 환영하다. 그런 것이에요. 훈련을 받을 때마다 저희들이 지적으로, 학적으로, 논리적으로 배우 될 부분이 있지만 정말 손을 펴서, 사도바울이 종교에 휩쓸려서 살다가 따뜻한 유다의 손을 통해서 자기 기독교 가정에 들어와서 기독교 가정이 어떻게 된 것을 배웠는 것처럼 사랑의 교회 모든 훈련생들 저도 여러분도 손을 펴서 주님 앞에 다른 영혼들을 잘 섬겼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온전한 제자는 이 땅에 평생 새들어 살지만 여러분이 주인이라고 생각하세요. 다 주님이 주신 저희들이 세 들어 사는 겁니다. 가정을 항상 열어서 5성급 호스트가 되는 겁니다.
 
이거는 저희 집에서 지난 몇 주일마다 오후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외국 자매들을 모아서 저희들 거실이에요. 집을 항상 엽니다. 저희들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예수님을 만날 수 있도록 하고 내일 저녁에도 저희들이 또 6시에 또 만나요. 만나서 그러니까 다락방인데 안 믿는 사람들을 위해서 외국인들에 의해서 다락방 한다 생각하시면 됩니다.
 
두 번째로는 작년에 하나님이 저희들 미국 서울에서 아파트에 살 수 있도록 주셨으니까
-9.26일의 한국교회 섬기는 날에 제가 두 목사님들을 초청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새가 저희들이 세 부부예요. 근데 목욕실은 하나에요. 그래서 여섯이 있었기 때문에 아주 힘들었지만 저희들이 9.26 작년에 섬겼는데 얼마나 좋았는지 모릅니다. 올해도 10월 달에 23일에 있는데, 가정을 열어서 목사님들이나 이런 분들을 호스트 하시고 하나님께서 유다에게 주셨던 그런 사람들을 저희들에게 동일하게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목사님인데, 제가 한국에서 중학교를 마치고 미국 가기 전에 영주에 있는 어떠한 교회에 잠깐 지하에 탁구 치러 갔었습니다. 그래서 교회 다른 것보다는 몰라서 불교 집안에 태어났다가 탁구를 쳤을 때, 같은 중학교를 다녔던 어떤 친구가 친하지도 않은 실은 그 친구가 저를 생각하면서 미국 가니까 아마 기도를 많이 했나 봐요. 그리고 제가 상품이 이렇게 본인이 착하다고 생각을 해서 아마 미국 가면은 미국에는 교회도 많고, 복음 만날 기회가 많아서 아마 우리 김대순이가 가서 적어도 예수님을 만나고 장로 정도는 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었답니다. 그리고 42년 동안 저를 찾았어요. 근데 제가 미국 가서 이름을 바꿨어요. 법적 이름은 대니얼이었기 때문에 아무리 김대순을 찾아도 못 찾는 거예요.
 
그래서 코로나 때에 한국 왔을 때, 사람 글로벌 아카데미에 이제 부르쉐를 만들 때 이제 한국 이름을 써야 되니까 김대순이라는 이름을 썼어요. 근데 하루는 전화가 이 메일이 왔어요. 옛날 친구를 찾습니다. 혹시 누구누구 어느 그 사람이 아닙니까? 딱 봤더니 이 친구예요. 이 친구가 40년 동안 기도를 많이 했어요.
 
왔더니 그 친구는 부산의 어떤 목사님이 돼 있고 저는 선교사로 이렇게 다시 만났어요. 42년 만에. 그래서 작년에 우리 한국 한국교회 섬기는 날에 제가 초청을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만나서 그랬지. 너 나를 위해서 기도 많이 했지? 니가 기도해서 내가 선교사가 됐잖아. 조금만 하지. 너무너무 좋았어요. 그래서 지난 8월 15일 날 저희들이 영주에 갔어요. 제가 우리 광복절 들에서 지금은 영주 시민교회로 바뀌었는데 제가 앞에 가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탁구 치러 가서 그냥 밑에 가서 탁구 좀 치려고 했을 때 예수님을 몰랐는데 이 교회에서 목사도 나오고 선교사도 나왔는데 하나님 이 영주 시민교회가 주님의 제자가 많이 나올 수 있도록 주님의 일꾼이 많이 나오도록 가서 기도했어요.
 
사랑의 교회도 하나님께서 얼마나 많은 훈련생들을 주십니까? 한 분, 한 분, 한 분 기능과 역할은 다르지만 하나님께서 저희들과 여러분에게 훈련받은 제자로서 드러나지는 않지만 주님 앞에 쓰임 받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기도를 하고 왔어요. 유다가 첫 번째로는 가정을 여는 훈련을 했어요. 그걸 했고 두 번째로는 영혼을 섬기는 훈련을 했습니다. 영혼을 섬기는 훈련 두 번째 같이 읽겠습니다.
 
*사도행전 9:17 19절 시작.
*사도행전 9:17~18,
17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이르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셨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18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바로 12사도 시대가 있었습니다. 예루살렘 시대에 한 5년 동안 베드로를 비롯하여 12사도를 섬겼지만 박해 핍박이 오고 난 뒤에 하나님께서 새로운 패러다임, 이걸 디스트럭터 씽킹(Destructor Thinking) 새로운, 새로운 패러다임을 하시면서 사도뿐만 아니라 비 사도들도 충분히 동등하게 사역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문을 열어주셨어요. 보면 스데반 집사, 빌립, 사도행전 8장 그리고 오늘 본문에 아나니야와 유다의 삶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모든 성도들이 제자 훈련을 받아야 돼요. 제자 훈련을 받아서 제자가 되는 게 아니라, 제자이기 때문에 제자 훈련을 받아야 되는 거야. 그리고 이 제자 훈련은 1년 코스가 아니에요. 평생 하는 거예요. 특별히 사랑 교회에서 집중해서 하는 코스는 우리 수장님들이나 말씀을 나누는 사역자들을 저희들이 잘 세워서 동등하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하나님 나라에 유다처럼 섬길 수 있는 영혼들을 세우기 위해서 주님께서 축복해 주셨어요. 그래서 유다는 아나니야 라는 제 같은 제자였지만 선별을 통해서 유다가 배운 몇 가지가 있어요. 가정에 초청했으니까 가족들과 함께 봤을 거예요. 야 평신도였던 아나니아 제자가 말씀 사역을 어떻게 하는지 잘 배우세요. 사랑의 교회는 특별히 말씀 사역에는 이거는 목숨을 걸어야 되는 거예요. 지금 세계 교회의 가장 큰 문제는 성경 문맹입니다. 성경이 없어서 그런 게 아니라 성경을 몰라요. 저 자신도 성경을 보면 볼수록 더 아는 것인데, 모르는 부분이 더 많아요.
 
하나님 앞에 말씀 가운데 겸손히 말씀 두 번째로는 안수하고 치유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목사만 하는 것이 아니에요. 하나님께서 사도들에게, 베드로에게 금광은 없지만 일어나라 그런 역사가 유다라는 자기 집 안에서 치유의 사역자 사역지가 됐습니다. 그리고 세례도 아나니야가 줬어요. 그리고 성령 충만하도록 하나님께서 동일하게, 훈련을 받으면 이런 하나님께서 우리가 드러나지 않지만 주님께 사용할 수 있도록 주신다는 것을 얼마나 제가 오늘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보다 제가 더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여름 방학 동안에 저에게 하나님께 특별한 은혜를 주셨는데, 알고 있는 어떤 우리 부부로부터 전화가 왔어요. 목사님 저희 아버님 쓰러지셨어요. 지금 병원에 있는데 무의식입니다. 호흡도 못하기 때문에 지금 기계로 호흡하고 있습니다. 목사님 기도해 주세요. 그래서 기도를 했습니다. 한 이틀 정도 됐을 때 눈을 뜨셨어요. 의식이 조금 돌아와서 병원에서, 중환자실에 있는데 우리 가족 분 가운데 기독교인이 있어서, 목사님 괜찮으시면 불편하시겠지만 지방에 오셔서 중환자실에 원래는 가족만 들어가게 돼 있는데 목사님이 잠깐이라도 한 30분밖에 시간을 안 줘서 목사님 잠깐 가서 기도해 주시면 어떻겠습니까? 그래서 제가 그날 비가 엄청나게 많이 있어 올해 비가 많이 왔잖아요. 그래서 가서 운전하고 가서 2시간 반 3시간 운전하고 가서 중환자실에 들어가기 전에 코비드 테스트도 다 하고 들어갔어요. 근데 이분이 거의 모든 튜브라는 튜브, 호흡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눈만 뜨고 계셨어요. 그래서 무슨 얘기를 할까? 복음을 전해야 되는데 제가 복음을 전했어요. 저희 아버님, 암 4기로 3개월 남았는데 저희 가족이 기독교에서 9년 반을 더 살았습니다. 사랑하는 선생님 제가 하는 얘기가 무슨 얘기인지 모르실 거예요. 예수님이 살아계시고 뭐 이런 것들 잘 모르시지만 제가 저를 믿고 한번 해보세요.
 
그래서 복음을 쭉 전하고 나중에 예수님 믿겠습니까? 고개를 끄덕끄덕하게 이렇게 눈을 꿈뻑 꿈뻑 했어요. 시간이 돼서 나오기 전에 제가 격려하기 위해서 그래서 선생님 혹시 회복이 되시면 제가 선생님인데 밥 한 번 먹으러 한번 대접받으러 오겠습니다. 격려를 했어요. 오해하지 마세요. 목사님들이 여러분의 대접만 받기 위해서 그러는 건 아니니까. 근데 그분을 격려하기 위해서 그렇지 않아 미국에 갔다 왔어요. 미국에 갔을 때, 한 며칠 지났는데 연락이 왔어요. 목사님 이 목사님 중환자실에 있다가 일반식으로 일반석으로 옮겼대요. 일반 병원으로 옮겼다 얘기합니다. 이거 조금 있다가 얘기했더니 의사 선생님이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는데요. 1년에 이런 분들이 한 분 나올까, 안 나올까, 그리고 우리 아들에게 딸에게 얘기합니다. 기도 많이 하셨죠? 안 믿는 의사 선생님이 그래서 퇴원을 하셔서 집에 가 계셨는데 지난주에 제 집에 가셔서 이제 회복하고 계시는데 지난 토요일 날 제가 또 갔다 왔습니다. 가서 제가 정식 식사를 잘 대접받고 복음을 또다시 전했어요. 그리고 이렇게 보시지만 알겠지만 제가 사랑의 교회 성경을 선물로 이렇게 드렸어요. 그리고 선생님뿐만 아니라 우리 어머니 자녀들 가운데 예수 모르는데 한 번도 교회 안 가셨는데 꼭 가십시오.
 
저는 제가 놀랐어요. 본래 갔을 때, 그분이 아마 침대에 누워 있어서 제가 가면은 이렇게 잠깐 기도해 줄 줄 알았는데 얼마나 건강하게 걸어 다니시는지, 3개월 거의 한 달 만에 완전히 회복됐어요. 저는 기도하면서도 주님이 치료해 주신다고 얘기해놓고 반쪽으로는 1년 걸릴까? 내년이나 가서 점심 얻어 먹을까? 이렇게 생각하는데 한 달도 안 돼서 이런 역사가 일어났어요.
 
사도바울에게 사울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비밀이 있었을 때 아나니아가 기도에서 기도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역사하고 계세요. 하나님도 지금도 여러분과 저를 치유하고 계십니다. 제자 훈련 받으면 받을수록 예수님의 이름은 능력이 있다. 데어 이즈 파워 인 더 네임 오브 지저스(There is power in the name of Jesus)! 예수님의 이름에는 능력이 있어요. 꼭 목사님뿐 아니라 여러분도 우리 또 유치부부터 훈련받는 모든 젊은이들도 기도하고 하면 아나니야처럼 치유의 역사도 일어나고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그런 일들이 있을 겁니다.
 
제가 요새 8월 달에 100년 이상 되는 교회를 찾아가는 것이 취미입니다. 한국에 여러 100년 교회가 많지만 그래서 안동에 가면 하회의 마을이 아실 겁니다. 거기 가면은 하회의 교회가 있어요. 제가 8월 달에 잠깐 갔다 왔어요. 살던 마을에 있는데 주님의 교회가 세워지고 제가 영주에 살았는데 저희 집에서 5분도 안 걸리는 교회가 있었는데 제가 그렇게 10년을 살았는데 교회가 있는지 눈에 안 보였어요.
지금 가서 보니까 바로 옆에 있었어요. 100년이 넘는 120년이 되는 교회가 있었는데 가서 기도합니다. 하나님 우리 대한민국에 주님의 나라가 재건되게 도와주세요. 100년 이상 되면서 교회가 문을 닫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도록 주님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그 역할을 저희들이 드러나지 않는 제자지만 감당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은 마지막으로 여러분들에게 두 가지 스토리만 하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사랑의 사랑 추모공원에 가는 길에 가다 보면 여러분 지평리라고 있습니다. 코로나 때 가서 잠깐 어떤 일이 갔다가 거기에 박물관이 있어서 갔는데 거기에 처음으로 제가 몽클라드 장군에 대한 얘기를 들었어요. 이 몽클라드 장군은 프랑스인데 원래 세계 2차 대전에 영웅 같은 삶을 살고 은퇴하셨는데 본래 중장이었어요. 별이 3개였는데 한국의 전쟁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고 원래, 별, 장군들은 전투에 갈 수가 없어요. 그래서 자기의 위치를 맞춰서 중영으로 한국에 오셔서 지평리 전투라고 아마 군대에 가신 분들 특별히 군복하신 분이나 전쟁 스토리를 좋아하신 분 다 이해하실 겁니다. 중령으로 오셔서 한국전쟁 지평리에서 싸우셨어요. 그 당시에 집행리가 너무 중요했기 때문에 제가 이 얘기했지만 저는 군대 입구도 안 갔던 사람이기 때문에 잘 몰라요. 그래서 제가 조금 조사를 했는데 1951년 2월 13일부터 5월 영하 20도에서 그 지평리에서 아군 유엔을 통해서 5,600명이 중공군 5만 명과 싸운 거에요. 1대 10으로 싸운 거예요. 그래서 거기서 승리를 했어요. 그리고 왜 당신이 중장인데 다 내려놓고 위치도 내려놓고 계급 떨어놓고 중력으로 왔습니까? 거기에 대한 내용입니다. 잘 보이지 않지만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저는 중령이라도 좋습니다. 저는 곧 태어난 자식에게 제가 생애 최초의 유엔군 일원으로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 참전했다는 긍지를 물려주고 싶습니다.” -몽클라드 장군-
-여러분과 저는 영적 레거시를 다음 세대에 남겨야 될 귀한 사명을 받은 자입니다. 하나님께서 저희들에게 목사님이셨는지, 장로님인지, 순종했는지 모든 위치 계급 다 내려놓고 다음 세대를 위해서 하나님 우리 세대보다도 다음 세대가 하나님의 나라의 영광이 더, 더 영광스럽게 교회가 문을 닫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도록 그런 삶을 살면 좋지 않을까 그래서 사랑 추모공원 여러분이 가실 때 얼마 안 됩니다. 가보신 분도 계시는데 꼭 가보시면 거기 조그마한 박물관이 하나 있어요. 꼭 가셔서 제가 그때 가서 2년 전에 갔는데 이 책을 가지고 받아서 제가 공부하면 읽으면서 정말 세상에서 전쟁을 위해서 한국 나라를 아는데, 우리는 주의 나라를 위해서 주의 영광을 위해서 다음 세대들이 정말 모범이 되는 삶을 살아야겠구나! 근데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름에 겐트교회 갔다가 아브라함 링컨이 태어난 통나무집에 잠깐 갔습니다. 제 아내와 딸입니다. 우리 딸은 우리 오 목사님에게서 세례 유아 세례를 받았어요. 우리 아이들, 둘 다 받았는데 정말 초라한 집이 있어 통나무에서 백악관으로 우리 예수님은 보잘 것 없는 베들레에 그곳에 오셔서 하늘 보좌에 가셨는데 여러분과 저희가 태어난 환경과 이런 것 때문에 고민하지 마세요. 저도 초가집에서 태어나서 전기도 없고 봉화군, 봉화군 수생리에, 거기 태어났는데 가보니까 정말 보잘 것 없는 사람인데 복음을 만나서 그래도 조금이라도 진우 해서 섬길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몰랐던 것을 이번에 가서 찾았어요. 아브라함 링컨 박물관에 갔다가 아브라함 링컨에 대해서 알았는데, 아브라함 링컨의 5대 선배, 5대 할머니께서 결혼하시고 그 할머니 집 안을 통해서 후손들이 나와 있는데, 여러분이 비행기 처음 만들었던 라이트 형제, 아마 아실 거예요. 후손이에요. 그리고 로아 프로스트라고 그러니까 시인 시를 잘 쓰는 분도 후예였고, 그다음에 포드 대통령이 관계돼 있었어요. 그리고 조지 부시 대통령 아버지 어머니 다 관계가 돼 있던 거예요. 그래서 역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그 가정을 통해서 우리의 선도를 통해서 신앙이 계승되어 가는데 미국 재건의 정말 큰 역할을 보이지 않지만 그 할머니 또 아브라함 아버지는 증조부는 위클릭이나 침례 교회에 건축을 하는데 교회가 세웠는데 도움을 주셨어요. 그리고 거기서 아브라함 링컨이 할아버지를 통해서 정말 흑인들은 인간적으로 대여해줘야 된다. 인종 차별을 거기서 배운 거예요. 흑인들을 노예로 삼는 것이 아니라, 오늘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이 여러분과 저에게 주신 음성은 이름 없는 다메섹의 어떤 유다의 집이지만 사울이 바울 되도록, 그 시간에 3일 동안 집을 열어서 섬겼을 때, 하나님의 역사가 얼마나 크게 일어나는지 오늘 사도행전을 여러분 통해서 여러분이 배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제가 여러분에게 격려하는 것은 온전한 제자로 성숙하는 훈련 성숙하도록 훈제 훈련 잘 받으시기 바랍니다.
 
훈련생뿐만 아니라 저희들도 온전 제대로 성숙하는데 훈련을 잘 받아서 한 시대에 드러나지는 않지만 하나님께서 잘 사용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훈련생들 정말, 정말 축하합니다. 우리 박수로 우리 축하하겠습니다. 우리 또 오늘 토비새에 참석하신 모든 분들, 저희들이, 제자 훈련은 평생 가는 거니까 저는 토비셋 자체가 공동체의 제자 훈련을 하기 때문에 제가 빠지지 않고 참석을 합니다. 꼭 참석하고 이런 은혜가 계속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요약
우리 교인들 모두가 온전한 제자로 세워져서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도록 축복받으며, 이제 가을 사역에 훈련받는 모든 성도들에게 오늘 성경 말씀처럼 여러 가지 훈련뿐만 아니라, 삶이 변화되어서 다음 세대뿐만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정말 쓰임 받는 드러나지는 않지만 쓰임 받는 주의 제자가 되어야 한다. 이 시간을 통하여 우리가 갖고 있던 생각도 새로워지고 또 눈도 좀 다시 열리게 주시라는 간절한 간구와 우리에게 역사해 주실 줄 믿고 눈에서 비늘이 떨어지기를 간절히 간구하자.
--그리스도는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자를 찾으라'고 명령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곤란 받고 있는 그의 백성을 어디에서 찾아낼 수 있는지를 매우 잘 아신다. 그는 그들에게는 하늘의 친구가 되시며 그들이 어느 거리에 있는지 어느 집에 있는지, 심지어 어떤 상태에 있는지도 잘 알고 계시다. 아나니아가 가야만 하는 두 가지 이유.
1)사울이 기도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나니아가 사울을 찾아가는 것은 그의 기도에 대한 응답이다. 따라서 첫째, 13, 14절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아나니아는 사울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보라 그가 기도하는 중이다'라고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듯이 그는 진심으로 회개했으므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 '보라'는 그것의 확실성을 입증한다. 또한 그것은 그것이 뜻밖의 사건임을 의미한다. "보라, 놀라운 일이다." 그러나 사울이 기도한 일이 정말 이상한 일인가? 그는 바리새인이 아닌가? 그렇다. 그러나 그는 이제 전에 하던 방식과는 다르게 기도하고 있다. 그때는 기도문을 외우는 데 불과했으나 지금은 진심으로 기도하고 있다. 사람이 숨쉬지 않고 살 수가 없다. 숨쉬지 않는다면 살지 못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기도하지 않는다면 은총도 없다. 둘째, 아나니아는 지체없이 그를 찾아가야 할 이유가 있었다. 그가 기도하고 있기 때문에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사울은 죄를 자각하고 있었다. 죄에 대한 자각은 우리로 하여금 기도하게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그에게 앞으로 그가 해야 할 일을 더 말씀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러므로 사울은 자기를 지도해 줄 사람을 보내달라고 기도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위하여 우리는 기도해야만 한다.
▶마무리기도: 오정현 담임 목사님
여러분과 저 때문에 이 세상이 좀 더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로 바꾸어지기를 바랍니다. 정말 매주일 매주 이 이즈 원 히스토리에요. 내일 주일 예배 참석 안 하면 우리 교회 오래되신 분들도 이거 어떻게 되나? 이렇게 할 정도로 매 주일이 달라져야 되는 거예요. 할렐루야! 매주일 매주일이 한 역사에요. 그렇게 알고 주여 내일 예배를 살려달라고 특별히 내일 말씀 전하는 부족한 종을 살려달라고 담임 목사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이렇게 여러분도 영적 가족이니까 그렇게 해주십시오. 주여, 내일 예배를 살려달라고 할 때 메시지 찬양, 안내, 주차, 교육 봉사, 대표 기도 모든 사회자들 모든 보호자 자리에서 수고하신 분들 주님 함께해 달라 마음의 소원을 가지고 그래야 교회도 살고 여러분 살고 우리 교회 살면 또 한국교회 살고, 모든 교회는 서로 유니버설, 우주적 교회의 일원으로서 서로를 세워주는 그런 축복이 나타나게 되는 겁니다. 한국교회가 살면, 이 민족 바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말도 아닌 비 진실은 다 드러나게 되어 있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한국교회에 살려면 주일 예배가 살아야 되고, 주일 예배가 살려면 주일 말씀이 살아야 되고 찬양과 기도와 성도의 교재가 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내일 모든 성도들 거룩한 기대감을 가지고 주일 예배에 참석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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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저녁기도회(주후 2023년 8월30일)
제목: "일용의 양식을 구하는 기도"
말씀: 누가복음 11:3
찬양인도: 유재원 부목사님

설교자: 하상범 부목사님
ㅡㅡㅡㅡㅡㅡ

*누가복음 11:3,
3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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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오늘 이렇게 모여서 기도하는 수요 저녁 기도회와 같이 함께 모여서 기도할 때가 있습니다. 함께 모여서 통성으로 부르짖고 한 목소리로 같은 기도 제목을 읽으며 함께 기도합니다. 뿐만 아니라 스코틀랜드의 19세기 목사님이시지요. 맥체인 목사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홀로 하나님 앞에 무릎 꿇는 것 인간은 바로 그런 존재이다.”

조용히 독립적으로 나아가서 기도할 때도 있습니다. 홀로 부르짖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여! 그런데 때로 이 구름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여! 하늘에 계신 아빠와 나라는 친밀감을 느끼게 하기 보다는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나는 땅에 있구나!라는 거리감과 격차 감으로 느껴질 때가 참 있습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또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다 보면 성도님들과 기도 제목을 나누어야 할 때가 있더라고요. 그러할 때에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가 생각이 납니다. 그러다 보니 그리스도인들은 저 하늘을 바라보며 살아가야 되는데 내가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기도 제목을 내놓아도 될까라는 실제적인 고민이 들 때가 있더라고요. 그럴 때 제가 붙드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 붙드는 말씀이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어떤 사람들이 이렇게 물어보시더라고요. 어떻게 물어보시는가 하면 하나님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 세계에 계시는 분이 아니시냐? 아니면 우리에 대해서 사랑의 반대편에 계셔서 우리에 대해서 무관심하여 계시며 때로는 우리 삶에 대해서 관찰자나 방관자로 우리를 바라보시는 분이 하나님이 아니시냐? 라고 물어보는 분들이 계십니다. 제가 그런 분들에 대해서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함께 말씀을 보실까요? 이사야 66장 1절 말씀입니다. 다 같이 봉독하겠습니다.

* 이사야 66:1,
1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판이니.

*시편 103:19,
19 여호와께서 그의 보좌를 하늘에 세우시고 왕권으로 만유를 다스리시도다.
-성경 말씀에 보니까 하나님은 하늘을 보자 삼고, 땅을 발판 삼아 창조의 모든 세계를 그의 왕권으로 다스리는 분이십니다. 라고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제가 아버지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홀로 조용히 하나님, 저의 삶 가운데에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십시오! 라고 부르짖을 때, 저의 현실적이고 비천한 생활의 작고 사소한 일들마저도 보좌에 계시는 하나님에게 알려지게 됨을 경험합니다. 그것을 어떻게 느끼는가 하면, 저의 일용한 양식의 문제에서부터 세밀하고 세밀한 문제에게까지 하나님의 세밀한 도우심과 개입하심을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아버지, 하나님의 모든 세계를 다스리시고 왕이 되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부유함을 끌어서 사용하는 일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오늘 이 시간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말씀을 통해 하늘 아버지와 땅에 있는 우리의 거리감은 좁혀지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뿐만 아니라 현실적이고 내 삶에 필요한 실질적인 기도 제목 가운데에 하나님의 개입하여 주심과 아버지 하나님의 부유하여 주심이, 하나님께서 끌어서 사용하여 주심에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복된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귀한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서 우리에게 무엇이라 말씀하셨는가 하면,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서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말씀을 한 절 보겠습니다. 마가복음 6장 34절에서 37절 말씀입니다. 마가복음 6장 34절에서 37절 말씀을 저희 다 같이 봉독하겠습니다.

*마가복음 6장 34-37,
34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
35 때가 저물어감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 여쭈오되.
36빈들이요 날도 저물어가니 무리를 보내어 두루 총과 마을로 가서 무엇을 사 먹게 하옵소서.
37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 여자 오되 우리가 가서 이백 데나리온의 떡을 사다 먹이리까.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말씀입니다. 오병이어의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목자 없는 양과 같은 무리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그들에게 다가가셔서 하루 종일 가르치셨습니다. 그런데 저녁이 다가오자 문제가 생겼습니다. 어떤 문제인가 하면 그것은 그 많은 군중들의 어디에서 식사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그 문제 앞에 명백하게 반대하는 두 가지의 대답이 방금 읽은 말씀 가운데에 있습니다. 하나는 제자들로부터 나온 대답이었고, 하나는 예수님으로부터 나온 대답이었습니다. 양식을 구하는 문제에 있어서 제자들은 군중들을 흩어 보내어 군중들로 하여금 사 먹게 하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었죠? 제자들로 하여금 너희들이 군중들에게 먹을 것을 직접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양식을 주는 문제에 있어서 구해서 그들에게 먹이는 방법에 대해서 제자들과 예수님 사이에 충돌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오늘 아까 방금 읽었던 말씀을 보면 너무나 재미가 있습니다. 왜 재미가 있는가 하면 제자들이 말하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방법이 서로 이야기하는 논리적인, 변증법적으로 이야기가 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충돌이 일어나고 있다. 라는 겁니다. 왜 재미가 있냐 하면 저는 이러한 충돌이 저의 삶 가운데에서 낯설지가 않다. 라는 겁니다. 저 역시 이러한 충돌을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제 삶 가운데에서도 날마다 양식을 구해줘야 되는데, 제자들과 같이 논리적이고 현실 가능한 방법과 하나님께서 필요함을 강구함으로 구해야 되는 이 두 가지의 상황이 충돌되는 경험을 너무나도 자주 할 때가 있습니다.

제가 2010년 1월에 결혼을 했습니다. 그때 신대원 2학년이었었고, 파트 전도사로 사역을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결혼을 했었는데요 결혼을 하고 신혼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제가 아내에게 이렇게 말을 했었습니다. 지금 다시 돌아간다면 그 말을 안 할 것 같은데요 아내에게 그렇게 말을 했었습니다. 어떻게 말을 했었냐면 목회자의 아내는 하나님께 먹고 입히는 것을 맡길 줄 알아야 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먹고 마시는 것을 입혀주신다는 것을 경험할 줄 알아야 된다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다음 날 아내가 돌아와서 저와 상의를 하지 않고 회사에 가서 사직서를 제출하고 왔더라고요. 아내의 대담함과 결심에 너무 적지 않지 않게 당황을 했습니다. 그걸 원했던 건 아니었는데요 당신의 사명과 소명을 가지고 상의를 했었으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는데요.

그런데 그렇게 어느 날 제가 라면을 끓였습니다. 라면에 햄을 넣고 끓였습니다. 햄을 넣고 끓였는데 아내가 나와서 라면에 햄을 넣은 것을 보고 먹지 않고 들어가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물 따라 들어가서 물어봤습니다. 라면에 햄을 넣은 라면을 좋아하지 않느냐 웃긴 거예요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저한테 말을 하더라고요. 어떻게 한 끼에 두 끼 반찬을 먹을 수가 있냐고. 이해가 안 되시죠? 한 번의 라면을 먹고 그다음에 햄을 먹어야 되는데. 그래서 제가 그때 알았습니다. 지금 우리 집 상황이 이렇게까지 형편이 어렵구나 파트 전도사의 사역의 사례비로 남편의 학업도 뒷바라지해야지 되고 가게도 꾸려나가야 되는 아내의 사정을 제가 생각하지 못했던 철없던 저의 행동이라는 것을 그때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때 제가 생각했던 방법은 아르바이트를 검색하면서 생계를 해야지 되나 아니면 일용할 양식을 하나님께 맡기고 도 그래도 큰소리 쳤던 게 있잖아요 기도해야 되나라는 그 충돌 앞에 서 있는 저 자신을 봤었습니다. 그때에 어거스틴이 했던 한마디가 제 마음속에 떠오르더라고요. 어떤 말이 떠올랐는가 하면 한사코 눈을 뜨지 않으려는 사람에게는 사방이 암흑 천지인 것처럼 지금도 변함없이 하나님께서 세상을 통치하고 계시지만 그분의 법을 받아들이지 않으려에게는 결코 적용이 될 수 없다. 하나님, 제가 눈을 뜨게 해 주십시오라는 그런 생각들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성경 말씀에 보니까 우리 삶 가운데에 저희들에게 왜 이렇게 두 가지의 충돌을 경험할 수밖에 없게 된 이유가 있더라고요. 그 이유에 대해서 성경은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3장 19절 상반절 말씀입니다. 함께 봉독하도록 하겠습니다.

*창세기 3:19,
내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성경은 아담의 탈락 이후에 사람이 자신의 양식을 스스로 확보하게 되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자기의 힘으로 자기의 안녕과 행복을 유지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일로서 생명을 얻어야만 했습니다. 내가 땀을 흘려야만 양식을 얻을 수가 있게 된 겁니다. 그러니 어떻게 살아가야 되겠습니까? 스스로 모든 것을 관리하는 자가 돼야 됩니다. 내가 모든 것을 권한을 쥔 자가 돼야지 됩니다. 뿐만 아니라 내가 모든 것을 해결하며 살아가야 됩니다. 그것이 아담의 타락 이후 사람이 이 땅 가운데 살아가게 된 방식입니다. 그런데 성경이 또 일깨운 사실이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이것으로 그치지 않고 히브리서 13장 14절에 보니 이 땅을 살아갈 때에 연구한 도성이 없다라고 말합니다. 영구한 도성이 없다라는 것은 그렇게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힘이 드는데 이 세상은 불확실성과 우연으로 가득 채워져 있더랍니다. 불확실성과 우연으로 가득 채워져 있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내가 내 일, 나에게 무슨 일이 닥칠지 예측할 수가 없는 것이 이 세상 가운데에 놓여져 있는 현실이랍니다. 그러니 나에게 보장되어져 있는 것은 단 하나도 없고, 내가 세상에 메어서 세상에 속한 것을 의지하는 순간 내가 실망을 경험하지 않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는 것이 세상에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경험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그러니 성경이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하면 오늘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 연장선상에 있는 말씀이 무엇인가 하면 누가복음 12장 22절에서 34절 말씀입니다.

누가복음 12장 22절과 34절의 병행 구절이 무엇인가 하면은요 마태복음 6장 19절에서 34절 말씀인데요. 저희가 읽지 않아도 너무나 잘 하는 말씀입니다. 어떤 말씀인가 하면 들어도 예상이 되시죠? 계속해서 반복되는 말씀 염려하지 마라, 염려하지 마라, 염려하지 마라.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너희들에게서 그런 세상을 살아가고 있으니, 우리를 향하여서 너희가 그런 세상 가운데에 있으니 염려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합니다. 왜 염려할 수밖에 없을까요? 성경에서 말하는 염려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염려는 나뉘는 마음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사람을 하나님만 바라보게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 안에서만 안식과 평안을 얻게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자신의 힘과 노력으로 내가 평안을 얻고 내가 생명을 얻으려고 하니 하나님으로부터 마음이 나뉘게 되니 내가 염려 가운데 거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라는 겁니다. 그것이 염려입니다. 이렇게 염려 가운데에 거하게 된 사람에게 다가오셔서 예수님께서 너희들 염려하지 말고 너희들에게 필요한 일용할 양식을 아버지 하나님께 구하라라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이 바로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은 한 가지가 더 등장합니다. 앞에 무엇이 등장하고 있는가 하면 바로 우리에게라는 말씀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 우리에게라는 말씀을 보면 저희가 딱 생각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무엇이 생각 딱나는가 하면 아 바로 옆에 계시는 분을 바라보면서 옆에 계시는 분과 나를 생각하면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일용할 양식을 부어주시는구나! 라고 생각합니다. 근데 이 우리에게가 바로 옆에 계시는 분과 나를 바라보며 우리에게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우리에게를 바라볼 때는 옆에 계시는 분과 나에게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 나를 향하여서 우리에게라고 말씀하고 있는 겁니다. 왜 예수님께서 나와 예수님을 향하여서 우리가 말씀하고 있는지 그 비밀이 있습니다. 그 비밀이 무엇인가 하면 누가복음 저희가 읽지 않았는데요. 바로 앞절에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실 때에 너희들은 이렇게 기도하라라고 말합니다. 무엇이라고 기도하라고 하냐면 너희들은 이제 하나님을 향하여 아버지라라고 부르라고 말합니다. 이제 너희들도 하나님을 향하여 아버지라 부르기 때문에 너와 예수님인 내가 이제는 우리가 되었다라는 뜻입니다. 왜? 그렇다면 예수님과 하나님은 아들과 아버지라는 관계가 우리는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어떻게 피조물인 우리와 신인 하나님이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가 될 수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예수님에게 던지게 됩니다. 그 질문 앞에서 예수님께서는 성경에서 그 질문에 대답을 하는데요. 요한복음 1장 12절 말씀을 너무나 잘 아는 말씀이시죠.

*요한복음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바울이 이것이 성육신의 목적이라는 말씀을 말씀해 주시는데요.
그 말씀이 갈라디아서 4장 4절에서 6절 말씀입니다.

*갈라디아서 4:4~6,
4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5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6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이 말씀을 제가 함께 봉독하도록 하겠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아멘. 아들과 아빠의 관계는 예수님과 하나님의 관계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예수님을 통하여서 이제는 우리를 그 관객 가운데 끌어들였습니다. 예수님을 통하여서 이제는 우리가 아버지 하나님을 아빠라 부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너희들이 하나님을 아빠라 부를 수 있는 나를 통하여서 근데 어떻게 불렀다고요? 갈라디아서 말씀해 보니까, 예수님이 우리 안에 거해서 나의 내조하시는 영을 통하여 내가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자연스러움 가운데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는데 성경에 또 다른 영적인 비밀이 한 가지 있습니다. 무엇이냐면 성경에서 그림으로 우리가 이해하지 못할까 봐 그림으로 그려지는 언어가 하나가 있는데요. 그 모습이 무엇이냐 하면 아빠와 아들을 그려줄 때에요. 아빠와 아들이라고 말하냐면 아들은 아빠의 모든 것들을 받을 수 있는 자가 되었다라는 겁니다. 그러니 아들이 되었다라는 것은 아빠의 모든 것들을 상속인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너희가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라고 말할 때에는 너희는 이제 하나님의 모든 부유함을 요청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모든 부유함을 끌어쓸 수 있는 아들이 되었으니 아버지 하나님한테 그 부유함을 요청하시라라는 그 고난을 받았으니 이 땅에서 그 고난을 누려라라는 그 영적인 비밀이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랑하는 성도님들 하나님께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아들들 딸들이라는 권한을 주셨으니 오늘부터는 마음껏 누리시기를 소망합니다. 그런데 제가 한 가지 더 부탁드리는 게 있습니다. 무엇을 부탁드리는가 하면 아빠라는 이미지가 무엇인지를 기억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왜냐하면 저는요. 딸딸이 아빠입니다. 딸딸이 아빠다 보니까, 꼬맹이들이 이렇게 디즈니를 이렇게 만화를 보더라고요. 디즈니 만화를 보니까 세상을 저는 꼬맹이들을 통해서 세상을 알게 됩니다. 꼬맹이들을 통해서 세상을 알다 보니까 세상이 아빠를 왜곡해서 가르쳐주더라고요. 제가 아빠다 보니까요. 세상에 엄마들을 나쁘게 가르치더라고요. 저희 꼬맹이들이 디즈니의 라푼젤이라는 만화를 봅니다. 아시나요? 머리가 이렇게 긴고 예쁜 공주가 있는데요. 거기에서 보니까 엄마가 마녀더라고요. 엄마는 나에게 상처를 주는 분이더라고요. 하늘 아버지라고 생각할 때에 마치 내가 육적인 아버지인 것처럼 나에게 상처를 주는 분은 아닐까? 나에게 어쩌면 나를 괴롭히는 분은 아닐까? 라고 내가 자녀와 아들의 관계를 왜곡되게 이미지를 그릴 수 있는 메시지 가운데에 이제는 살아갈 수 있는 시대가 되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그려지고 있는 하나님의 모습이 있습니다. 어떤 모습이 그려지고 있는가 하면 시편 84편 11절 말씀입니다.

*시편 84:11,
11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이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하게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이사야 49:15,
15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한 절만 더 보겠습니다. 마태복음 10장 30절입니다.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수가 되었습 아멘.

*마태복음 10:30,
30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성경이 말씀하시는 하나님 아버지를 기억해 주십시오.성경은 세상이 왜곡해 버린 이미지가 아니라 인내하고 자유로우시며 좋은 것을 아끼지 않는 분이라고 말합니다.세상의 부모를 혹 우리를 잇는다 할지라도 손바닥에 우리의 이름을 써가며 잊지 않는 분이라고 말씀합니다. 뿐만 아니라 하늘에 있다 할지라도 우리와 거리감이 느려지는 아이 아니라 머리탈까지 새시는 세심한 분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제 이쯤에서 그런데요 그런 하나님이신데 질문이 듭니다. 어떤 질문이 드는가 하면 왜 날마다 그 하나님 앞에서 구해야 됩니까라는 질문이 듭니다. 왜냐하면 오늘 본문의 병행 구절이 마태복음 6장 11절입니다. 마태복음 6장 11절의 바로 위에 마태복음 6장 8절 말씀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6:8,
8 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아 하나님께서 세심하고 머리털까지 아시고 전지하시고 전능하신데 모든 것을 다 아시는 분이신데 왜 그러한 하나님께 날마다 가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구해야 합니까? 그분이 정녕 좋은 분이 맞으십니까라는 갑작스러운 당혹스러움이 생깁니다. 마치 성경은 아까 처음으로 저에게 처음으로 돌아가게 만듭니다. 두 개의 충돌 앞에서니다. 모순덩어리 아닙니까라는 질문을 다시 가지게 만듭니다. 성도님들은 그러지 않으십니까? 그 질문 앞에 서기 위해서는 오늘 본문 말씀의 배경이 되는 출애굽기 16장 다시 만나의 이야기로 조금 돌아가야지 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만나의 이야기를 살짝만 볼까요? 출애굽기 16장 4절 말씀입니다.

*출애굽기 16:4,
4 그 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내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 여정 가운데에 날마다 오늘날 이해하기 위해서는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었던 약간의 시점을 이해하시면 조금 편하신데요. 만나는 아침에 주시고 외출하기에는 저녁에 주셨습니다. 그리고 여섯째 날에는 일곱째 날까지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때로는 저녁에 그다음 날 하루치를 주셨고, 때로는 아침에 그 저녁이 될 때까지 양식을 주셨고, 때로는 여섯째 날 이틀치 양식을 주시기도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아버지 하나님의 방식은 그들이 필요한 것을 아시지만 날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가와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셨던 것은 날마다 하나님께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스라엘 백성들도 날마다 나에게 나아와서 하나님과 날마다 만나는 것들을 원하셨습니다. 그러니 아버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이라고요? 날마다 내가 너희들에게 나오듯이 너희들도 나에게 날마다 나오기를 나에게 만나는 것을 나에게 나아와 나를 만나주지 않을래?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날마다 나아온다는 것은 내 삶에 주시는 것들은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왔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삶에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라는 입술에 신앙 고백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의존하고 살지 않아서는 내 삶이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라는 나의 존재적 인정과 고백이 담겨져 있어야지 된다라는 겁니다. 왜 이것이 필요한가 하면은요 마치 이것이 없으면 누가복음 12장 13절에서 21절 부자의 비유가 해석이 되지 않습니다.

*누가복음 24:28~31,
28 그들이 가는 마을에 가까이 가매 예수는 더 가려 하는 것 같이 하시니.
29 그들이 강권하여 이르되 우리와 함께 유하사이다 때가 저물어가고 날이 이미 기울었나이다 하니. 이에 그들과 함께 유하러 들어가시니라.
30 그들과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31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 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내 곡식에, 내 창고에 일용할 양식이 풍성한 부자의 비유도 이것과 똑같은 것입니다. 내 곡식에, 내 창고에 양식이 풍부하다 할지라도 왜 하나님 앞에 나아와서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라고 고백해야지 되냐면 하나님 내 창고의 양식이 풍성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축복이 보존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은근한 축복이 촉촉히 적셔지지 않는다면 하나님 이것들은 갑자기 사라질 수가 있습니다. 이것들은 갑자기 가치를 잃어버릴 수가 있습니다. 이것들은 갑자기 사용되지 못할 수가 있습니다라는 하나님을 향한 신앙 고백과 하나님을 향한 나에 의존하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내가 그 고백들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께 일용할 양식을 간구하는 이 기도는 곧 나의 신앙 고백이 담겨져 있는 기도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날마다 우리에게 그 고백이 올려지는 기도를 바라보고 있다라는 거죠. 그러니 아버지 하나님 앞에 날마다 나아간다는 것은 나의 생존을 위한 기도 그 이상의 신앙고백이 담겨져 있는 고백임을 성도님들께서 기억하셔야지만 됩니다. 마지막으로 딱 하나만 더 보겠습니다. 그 무엇이냐면요 일용할 양식을 기도할 때에 우리에게 날마다 우리의 일용할 양식을 주시길 기도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 외에는 없는 게 있습니다. 무엇이 없는가 하면 나 아이 니가 없습니다. 우리의 공동체의 기도 제목입니다. 우리의 공동체의 기도 제목을 딱 떠올리시면은 성도님들 딱 생각하시는 게 있습니다. 무엇을 생각하시는가 하면 책임감 그런데요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에 담긴 기도는 책임감 그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왜 그 이상의 의미가 있는가 하면 제가 마지막 이야기를 하는데요.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요. 의기소침한 두 제자가 엠마오로 이렇게 걸어갑니다. 작은 마을을 향해서 길을 걸어가고 있는데요. 그때 갑작스럽게 한 낯선 이가 두 제자 가운데에 동행합니다. 그리고 그 두 제자에게 너희들 왜 낙담에 빠졌니? 라고 물어보시거든요. 그 물어보신 다음의 이야기를 같이 본문 잠깐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누가복음 24장 28절에서 31절 말씀입니다.

*누가복음 24:28~31,
28 그들이 가는 마을에 가까이 가매 예수는 더 가려 하는 것 같이 하시니.
29 그들이 강권하여 이르되 우리와 함께 유하사이다 때가 저물어가고 날이 이미 기울었나이다 하니. 이에 그들과 함께 유하러 들어가시니라.
30 그들과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31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 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아멘. 교회에 이상한 문화가 있어요. 특별한 문화가 있어요 뭐죠? 저희들 우리 하나님 만나자 할 때 어떻게 하죠?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여서 함께 식사를 그렇게 해요. 제자 훈련할 때도 끝나고 그렇게 같이 밥을 먹어요. 저도 사 상원사회를 섬기고 있는데요. 저희 권사님들께서도 수요 기도회 같이 기도를 하거든요. 기도회를 해도 저희 귀하게 섬기게 된 우리 회장님, 총무님, 권사님께서 저에게 꼭 일용할 양식을 꼭 주셔요. 왜냐하면 저희는 일용할 양식을 나누는 그 자리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나는 장소이며 그곳에서 우리의 눈이 열려 하나님을 알아보는 곳이기 때문에 단순하게 밥을 먹고 인생의 자랑을 나누고 교제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소서’ 그 자리 가운데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곳이라는 믿음의 고백이 있기 때문이에요. 그러니 인용한 양식을 주옵소서가 단순히 생존 방편이 아니라 단순히 책임이 아니라 그곳에서 우리가 교재를 나누고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자리라는 것까지 기억해 주시기를 부탁을 드리겠습니다.

그러면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하나님께서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길 명하셨습니다. 그런데 이것 가운데에 일용할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이 일용할이라는 단어는 성경에서 딱 두 군데만 등장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하고 병행 구절인 마태복음 6장 11절입니다. 그래서 신학자들은 신학자들은 이 말이 무엇인지 에서 그리스 문서에서 해도 그리스 문서에 고대 문서에 다른 곳에서는 사용이 되지 않았다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주석자들이 이 단어의 뜻을 해석하려고 보니까 크게 세 가지로 해석한다고 말합니다. 일용할 단어에 대해서 첫 번째는 우리의 생활에 필요한 두 번째는 오늘의 두 번째는 내일의 그래서 제가 이 주석자들이 해석한 세 가지 뜻을 종합해 보니까 이렇더라고요.

우리 생에 필요한 오늘의 그리고 내일의 양식 아마도 아버지 하나님께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고 말씀하셨던 것은 염려 가운데에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 필요한 양식을 오늘도 내일도 영원토록 부어주실 것이니, 너희들이 염려 가운데에서 벗어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안식을 누리라라는 하나님의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 있지 않으셨을까? 라는 생각을 누렸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어떤 분이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시절이 너무나 하수상하다고 마음에도 현실에도 눈물이 내려서 마음이 평안할 때가 없고 안식을 누릴 때가 없다라고 말씀들 하시더라고요.

그러할 때 하나님 앞에 나아가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 라고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내 삶 가운데에 오늘도 내일도, 앞으로도 영원토록 모든 피로를 채워주시는 그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오늘 밤 돌아가셔서 평안한 단잠을 주시는 은혜를 누리는 복된 이 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요약
하나님, 하늘에 계신 아버지라 부를 때 여호와의 친밀하심이 경외하는 우리들에게 있음을 알고, 하늘의 보화가 이 땅의 주의 백성들에게 상속됨의 실체를 누리는 자가 되어야 한다. 밤잠 못 이루는 불안한 영혼들은 하늘에 속한 이 땅의 참된 벗들과 샬롬의 평안을 맛보며 부흥의 새날을 여심을 믿고 이 새 땅에서의 삶에서 경탄할 만한 역사의 새 지평이 열리는 은혜를 맛보며 살아가야 한다.
-우리는 오늘 필요한 양식은 오늘, 내일 필요한 양식은 내일 있기를 위해서 간구해야 하겠다. 왜냐하면, 그렇게 함으로써 어린아이들이 부모에게 의지하듯이 우리는 하나님을 끊임없이 의지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날의 필요에 따라서 날마다 하나님께서 채워 주시므로 그날, 그날 해야 할 의무에 새롭게 복종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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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금융 상식 퀴즈 O X] 8월 28일 (811)

1. 중국 국내총생산(GDP)의 4분의 1을 이것이 차지한다. 헝다, 비구이위안, 위안양 등의 기업이 속한 이 업종은?
① 부동산 ② 전자상거래
③ 반도체 ④ 식료품

2. 최근 한·미·일 정상회담이 이곳에서 열렸다. 미국 대통령 전용 별장인 이곳의 이름은?
① 러스트 벨트 ② 그린 벨트
③ 캠프 데이비드 ④ 캠프 험프리

3. 생산 가능 인구 중 취업자가 차지하는 비율이다. 실질적인 고용 창출 능력을 나타내는 이 지표는?
① 실업률 ② 고용률
③ 합계출산율 ④ 취업유발계수

4.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이 동시에 마이너스로 떨어지는 경기 침체 상황을 뜻하는 말은?
① 하이퍼인플레이션
② 디플레이션
③ 스태그플레이션
④ 리디노미네이션

5. 기업이나 국가의 파산 위험을 사고팔 수 있도록 만든 파생 금융 상품은?
① 자산유동화증권(ABS)
② 신용부도스와프(CDS)
③ 전환사채(CB)
④ 타깃데이트펀드(TDF)

6. 무리하게 빚을 내서 주식에 투자했다가 주가가 급락할 때 투자자가 맞닥뜨릴 수 있는 리스크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반대매매 ② 내부거래
③ 불완전판매 ④ 환차익

7. 다음 중 증시에서 ‘황소’가 상징하는 것은?
① 상승장 ② 하락장
③ 박스권 장세 ④ 실적 장세

8. 유료 방송 가입자들이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등으로 이동하면서 서비스를 해지하는 현상은?
① 서머 랠리 ② 빈지 워칭
③ 블랙 스완 ④ 코드 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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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카르텔, 왜 문제일까요?
요즘 ‘카르텔’이란 단어를 많이 듣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우리 사회 여러 분야의 부패한 기득권 세력을 카르텔이라고 지칭하면서 더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윤 대통령은 부패한 기득권 세력이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려고 온갖 불법과 부정을 일삼는 행태를 ‘이권 카르텔’ ‘부패 카르텔’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카르텔은 문서를 뜻하는 라틴어 ‘carta’에서 유래했습니다. 과거엔 전쟁을 치르는 국가 간 문서로 맺은 휴전협정을 가리키다가, 오늘날엔 기업들이 서로 경쟁을 멈추기로 합의하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기업들이 서로 경쟁하지 않기로 합의한다는 것이 언뜻 생각하면 좋은 일로 보일 수 있습니다. 불필요한 경쟁을 피하는 것은 합리적이니까요. 다만 그런 합의가 다른 기업이나 소비자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아야 합니다. 합의한 기업들로선 합리적이더라도 그로 인해 다른 경제주체가 피해를 봐서는 곤란합니다.

그런데 기업들은 카르텔 담합을 통해 경쟁을 피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다른 경제주체들에 피해를 주는 행위를 벌이곤 합니다. 이런 행위는 최근 윤 대통령이 지적한 사교육 시장이나 건설업계뿐 아니라 유통과 군수 제조 등 다양한 분야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정부가 공정거래법을 통해 가격 담합 같은 ‘부당한 공동행위’를 카르텔로 단속하고 있지만, 쉽게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공정 경쟁을 가로막는 카르텔을 어떻게 규제하고 있는지 알아봅시다. 게임이론을 통해 카르텔의 형성과 유지에 대해 이해해 봅시다.

공정한 경쟁을 가로막는 카르텔
과징금 등 여러 방법으로 규제됩니다

게티이미지뱅크
1995년 6월 콜롬비아 ‘칼리 카르텔’의 보스인 힐베르토 로드리게스가 콜롬비아 경찰에 체포됩니다. 그해 8월까지 칼리 조직의 주요 인물들이 체포되거나 자수함으로써 30년간 지속된 세계 최대 마약 범죄 조직은 붕괴됩니다.

칼리 조직은 1993년 12월 경쟁 조직인 ‘메데진 카르텔’의 두목 파블로 에스코바르가 경찰에 의해 사살된 후 사실상 중남미 코카인을 장악한 거대 마약 조직이었습니다. 콜롬비아 사법 당국은 지방 갱 집단이던 칼리 조직이 전국 규모의 범죄 조직으로 커지자 ‘칼리 카르텔’이라는 명칭을 붙였습니다. 메데진 조직도 ‘메데진 카르텔’이라고 불렀습니다. 콜롬비아 코카인 조직들에 카르텔 명칭이 붙은 것은 이들이 코카인의 독점가격을 만들려고 해서가 아닙니다. 그보다는 특정 지역(칼리나 메데진) 소규모 코카인 밀매업자들이 느슨한 형태로 연합해 공동(조직)의 이익을 위해 불법을 자행했기 때문입니다.

공정거래법, 카르텔 금지 규정
카르텔은 문서를 의미하는 라틴어 ‘carta’에서 유래했습니다. 중세 시대엔 교전국 간 문서에 의한 휴전협정을 의미했는데, 오늘날엔 기업 간 경쟁을 멈춘다는 의미로 변화했습니다. 여러 기업이 계약이나 협정 등을 통해 경쟁을 제한하기로 합의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이런 합의가 자본주의 시장경제 질서의 중요한 원칙인 공정한 경쟁을 저해한다는 점에서 긍정적(또는 중립적) 의미보다는 부정적 의미가 강합니다. 미국에서는 카르텔보다 담합(collusion)이나 공모(conspiracy)라는 표현을 많이 씁니다. 우리나라 공정거래법에서는 카르텔을 ‘부당한 공동행위’라고 부릅니다.

공정거래법 제40조 제1항은 부당한 공동행위를 ‘가격을 결정·유지 또는 변경하는 행위’ ‘상품의 생산·출고·수송 또는 거래의 제한이나 용역의 거래를 제한하는 행위’ 등으로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시정 명령, 과징금 부과
칼리카르텔처럼 마약 범죄 등 명백한 불법을 저지른 경우엔 관련 법에 따라 처벌을 받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적한 이권 카르텔도 탈세 등 관련 법을 어긴 경우 해당 법으로 단죄합니다.

그렇다면 공정거래법은 부당한 공동행위(카르텔)를 어떻게 처리할까요? 부당한 공동행위는 사기나 절도 같은 그 자체로 죄악시될 수 있는 범죄행위가 아닙니다. 경제 상황과 정책 목표에 따라 금지되기도 하고 때로는 권장되기도 합니다. 시대에 따라 경제 상황과 정책 목표가 바뀌면 처벌 여부가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실제로 과거 많은 국가가 카르텔에 대해 관대하거나 권장하는 태도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1930년대 네덜란드는 부족한 자원의 배분과 경제 재건을 위해 친(親)카르텔 정책을 적극적으로 시행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대부분의 국가가 공정한 경쟁에 기초한 시장경제 체제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공정거래법도 부당한 공동행위, 즉 카르텔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공정거래법은 부당한 공동행위가 발생하면 공정거래위원회가 해당 기업에 해당 행위의 중지와 시정을 명하고,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고 규정합니다.

형사처벌을 적용하기도
부당 공동행위에 대해 단순 과징금 부과가 아니라, 징역 같은 형사처벌로 해결하려는 시도도 있습니다. 미국을 비롯해 수십 개 국가가 카르텔에 대해 자유형을 도입했습니다. 카르텔을 형사 범죄화한 것이죠. 우리나라는 공정거래위원회가 부당한 공동행위가 경쟁 질서를 현저히 해친다고 인정하는 경우 검찰에 고발할 수 있습니다. 이를 ‘전속 고발권’이라고 합니다. 검찰은 공정거래위원회의 고발이 있어야 부당한 공동행위에 대해 공소를 제기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공정한 경쟁을 가로막는 카르텔은 시정 명령, 과징금, 전속 고발권 등 다양한 방법으로 규제하고 있습니다. 다만 시정 명령이나 과징금 같은 행정 제재와 달리 형사처벌은 신중하게 이뤄져야 합니다. 형사처벌이 자칫 무분별하게 이뤄질 경우 기업 활동을 위축시킬 우려가 크기 때문입니다.

NIE 포인트
1. 공정거래법의 부당한 공동행위를 정리해 보자.
2. 부당한 공동행위를 금지하는 이유를 설명해 보자.
3. 전속 고발권에 대해 조사해 보자.

정당한 기업 간 협력까지
카르텔 처벌로 막히면 안돼

게티이미지뱅크
“동일 직종의 사업주들이 모이게 되면, 그 모임이 설령 파티나 기분 전환을 위한 모임이라 해도 결국 그들의 대화는 대부분 공익에 반하는 공모나 가격 인상을 위한 계략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에는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카르텔이 손쉽게 이뤄질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과연 그럴까요? 카르텔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유지되는지에 대한 경제학적 설명은 게임이론(죄수의 딜레마)으로 가능합니다.

카르텔 형성의 조건
게임이론으로 카르텔을 살펴보기 전에 먼저 카르텔이 형성되고, 유지되기 위한 조건이 무엇인지부터 알아봅시다. 카르텔이 효과적으로 형성되려면 우선 카르텔에 참여하는 기업 간 차이가 작아야 합니다. 기업 간 제품의 질적 차이, 생산 비용 차이 등이 작아야 일치된 의견(합의, 담합)을 끌어내기가 수월합니다. 다음으로, 카르텔에 참여하는 기업들이 해당 시장에서 차지하는 점유율이 높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 카르텔에 참여하지 않는 기업들의 시장점유율이 낮아서 카르텔 참여 기업의 생산량 감소분을 상쇄시키기 어려워야 합니다. 카르텔이 안정적으로 유지되려면 카르텔에 진입하는 것이 자유롭지 않아야 합니다. 진입이 자유로우면 담합이 어렵습니다. 그래서 인위적으로 진입 장벽을 만들기도 합니다.

게임이론

이제 게임이론으로 카르텔을 살펴봅시다. 어떤 시장에서 점유율이 매우 높은 두 기업, A와 B가 있습니다. 이들은 비슷한 수준의 생산 비용을 들여서 역시 비슷한 품질의 제품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A와 B는 제품 판매 가격을 결정하는 ‘게임’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게임 조건은 이렇습니다. 두 기업 모두 높은 가격을 선택하면 각각 5단위씩 수익을 올릴 수 있습니다(조건 1). 그런데 한 기업은 높은 가격, 다른 기업은 낮은 가격을 선택하면 높은 가격 기업은 5단위 손해를 보고, 낮은 가격 기업은 10단위 수익을 거두게 됩니다(조건 2). 두 기업 모두 낮은 가격을 선택하면 각각 3단위씩 수익이 가능합니다(조건 3). 전통적인 게임이론에서는 A와 B가 같이 범죄를 저지른 죄수들이고, 범죄 사실을 인정할지 부정할지에 따라 형량이 달라지는 상황을 다룹니다. 서로가 상대방을 믿지 못해 두 사람 모두에게 유리한 조건 1(둘 다 범죄 사실을 부정해 석방됨)을 선택하지 못하는 딜레마를 보여 줍니다. 그래서 죄수의 딜레마라고 부릅니다.

반복 게임 상황에서의 선택

게임이론에서는 게임 상황이 일회성인지, 계속해서 반복되는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집니다. 일회성 게임은 죄수의 딜레마 같은 경우입니다. 일회성 게임에서 만난 두 기업(A와 B)은 죄수들처럼 서로를 믿을 수 없어 조건 3을 선택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때 만약 두 기업이 담합을 할 수 있다면, 그러니까 카르텔을 형성할 수 있다면 이들은 조건 1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기업 현실에서는 일회성 게임이 거의 없습니다. 사업을 오랫동안 지속하므로 반복 게임이 대부분입니다. 반복 게임 상황에서 기업은 두 가지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첫째, 카르텔에 참여하지 않고 카르텔이 결정한 가격보다 싸게 팔아서 큰 수익을 올린 뒤, 이후부터는 카르텔과 경쟁하면서 수익을 추구하는 방법입니다. 한 번은 큰 수익이 가능하지만 그 이후엔 카르텔도 가격을 낮추면서 견제할 것이므로 수익을 올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둘째, 처음부터 카르텔에 참여해 담합을 유지하면서 수익을 올리는 방법입니다. 경제학적으로만 따지면, 기업은 두 번째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여러 나라는 카르텔에 참여한 기업에 새로운 게임 상황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담합 사실을 먼저 신고하면 그 기업에는 과징금이나 벌금을 감면 또는 면제해 주는 것입니다. 바로 자진 신고자 감면(리니언시, leniency) 제도입니다. 리니언시 제도에 대해서는 정당한 기업 간 협력이나 분업을 파괴하는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어떤 제도든지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운용의 묘(妙)’가 매우 중요합니다.

NIE 포인트
1. 죄수의 딜레마를 설명해 보자.
2. 반복 게임 상황에서 기업의 선택을 정리해 보자.
3. 리니언시 제도의 부작용에 대해 생각해 보자.

장경영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longr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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