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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저녁기도회(주후 2023년 10월 25일)
제목: "누구를 신뢰할 것인가?"
말씀: 이사야 22:5~14
찬양인도: 쉐키나(오준석 부목 사님)
 
설교자: 김영준 부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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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22:5~14,
5 환상의 골짜기에 주 만군의 여호와께로부터 이르는 소란과 밟힘과 혼란의 날이여 성벽의 무너뜨림과 산악에 사무쳐 부르짖는 소리로다.
6 엘람 사람은 화살통을 메었고 병거 탄 자와 마병이 함께 하였고 기르 사람은 방패를 드러냈으니.
7 병거는 네 아름다운 골짜기에 가득하였고 마병은 성문에 정렬되었도다.
8 그가 유다에게 덮였던 것을 벗기매 그 날에야 네가 수풀 곳간의 병기를 바라보았고.
9 너희가 다윗 성의 무너진 곳이 많은 것도 보며 너희가 아랫못의 물도 모으며.
10 또 예루살렘의 가옥을 계수하며 그 가옥을 헐어 성벽을 견고하게도 하며.
11 너희가 또 옛 못의 물을 위하여 두 성벽 사이에 저수지를 만들었느니라 그러나 너희가 이를 행하신 이를 앙망하지 아니하였고 이 일을 옛적부터 경영하신 이를 공경하지 아니하였느니라.
12 그 날에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명령하사 통곡하며 애곡하며 머리 털을 뜯으며 굵은 베를 띠라 하셨거늘.
13 너희가 기뻐하며 즐거워하여 소를 죽이고 양을 잡아 고기를 먹고 포도주를 마시면서 내일 죽으리니 먹고 마시자 하는도다.
14 만군의 여호와께서 친히 내 귀에 들려 이르시되 진실로 이 죄악은 너희가 죽기까지 용서하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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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렇게 수요일 저녁 기도회 함께하신 모든 성도님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이 시간 우리가 함께 마음 모아 기도할 때에 주님께서 부흥의 실제를 경험케 하실 줄 믿습니다. 오늘 이 시간 하나님의 말씀 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사야 22장 5절로 14절까지 말씀입니다. 제가 가진 성경으로 구약 성경 991페이지입니다. 이사야 22장 5절부터 14절까지 말씀을 한 절씩 교독하겠습니다.
 
-이사야서는 남 유대 시대의 선지자였던 이사야가 자신의 백성들에게 내린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책입니다. 특별히 이사야 앞부분에서는 크게 한 세 가지 주제로 말하고 있는데요. 첫 번째는 내가 바로 너희의 조상으로부터 함께하였고, 출애굽으로 인도하였고, 지금까지 인도한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다. 라는 것을 선포하시는 내용과, 또 하나는 그렇기 때문에 지금 당장 주변에 많은 강대국들이 또 그 전쟁의 위험과 또 어려움 가운데 있다고 할지라도 너희는 그 세상의 권력이나 힘이 아니라, 이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된다. 라는 말씀을 하고요 또 그렇게 하지 않으면 너희가 징계를 받을 것이다. 이 세 가지 주제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너희가 지금 어떤 상황에 있든지 간에 너희는 지금 누구를 바라볼 것이냐 누구를 신뢰할 것인가에 대해서 질문하고 계시다는 것이죠.
 
오늘 우리가 읽은 이사야 22장 말씀도 유다의 백성들이 또 예루살렘이 아까 언급했던 누가 누구를 신뢰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하였는지, 또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이 유다 예루살렘 성은 큰 위기를 직면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 주변으로 많은 군대들이 쳐들어와서 지금 아주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아마 시기적으로 아수르에 의해서 예루살렘이 공격받았던 그 시기로 추정이 됩니다. 2절에 보면,
 
*이사야 22:2-3,
2 소란하며 떠들던 성, 즐거워하던 고을이여 너의 죽임을 당한 자들은 칼에 죽은 것도 아니요 전쟁에 사망한 것도 아니라.
-소란하며 떠돌던 성, 즐거워하던 고울, 예루살렘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막 이렇게 잘 살고 있던 그 시끄럽고 소란스러웠던 성이었던 예루살렘이 지금 큰 위기를 맞이하게 되는데요. 이 3절에 보면,
 
3 너의 관원들도 다 함께 도망하였다가 활을 버리고 결박을 당하였고 너의 멀리 도망한 자들도 발견되어 다 함께 결박을 당하였도다.
-이사야 선지자가 이 상황에 대해서 어떻게 이야기를 하냐면 유다의 백성들이 그런데 분명히 적들이 쳐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칼이나 전쟁이나 그런 이유로 죽임을 당하고 또 나라의 지도자 백성들은 다 도망을 가다가 적들에게 사로잡혀서 비참하게 굴복당하고 그렇게 도망을 가던 백성들은 함께 결박되는 상황 이 아주 비참한 상황을 이사야 선지자는 보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어땠을까요? 그 마음이 4절에 보면,
 
4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돌이켜 나를 보지 말지어다 나는 슬피 통곡하겠노라 내 딸 백성이 패망하였음으로 말미암아 나를 위로하려고 힘쓰지 말지니라.
-나는 슬피 통곡하겠노라. 내 딸의 백성이 살아하였으므로 말미암아 나를 위로하려고 힘쓰지 말지니라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너무 암담하고 너무 비참한 그런 상황을 바라보면서 이사야 선지자가 너무 슬퍼서 위로조차 하지 말라고 너무 힘든 상황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하게 되는데 이렇게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5절에 보면,
 
5 환상의 골짜기에 주 만군의 여호와께로부터 이르는 소란과 밟힘과 혼란의 날이여 성벽의 무너뜨림과 산악에 사무쳐 부르짖는 소리로다.
소난과 밟힘과 혼란의 날이 예루살렘에 오는 게 그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다. 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적들이 쳐들어와서 적들에 의해서 공격을 당하고 또 빼앗기고 비참한 상황에 놓인 것이 아니라 이 모든 상황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라고 하는 것이죠. 이 모든 환란과 심판의 주관자가 하나님이심을 이사야 선지자는 이야기를 합니다. 선지자는 그것을 보고 비통함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한 가지 해결할 수 있는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십니다. 8절 말씀 앞부분에 보면,
 
8 그가 유다에게 덮였던 것을 벗기매 그 날에야 네가 수풀 곳간의 병기를 바라보았고.
-이제 위기 상황을 느꼈습니다. 소란하고 떠들고 그냥 안주하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금 이 당장 이 상황이 큰 위기구나 지금 엄청난 어려움에 처해 있구나! 라는 것을 느끼게 된 것이죠. 그런데 그들이 어떻게 합니까? 우리 8절, 9절 말씀 우리 같이 한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8 그가 유다에게 덮였던 것을 벗기매 그 날에야 네가 수풀 곳간의 병기를 바라보았고.
9 너희가 다윗 성의 무너진 곳이 많은 것도 보며 너희가 아랫 못의 물도 모으며.
-지금 유다 백성들이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전쟁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적들이 밖에 쳐들어왔기 때문에 전쟁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거, 어찌 보면 가장 똑똑하고 현명한 판단입니다. 그래서 성벽을 견고히 하는 것, 또 저수지를 만들어서 이 식수를 준비하는 것 전쟁에 가장 필요한 것들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준비하고 있습니다. 열람과 기르 인들로 구성된 병부, 마병 부대가 이제 곧 공격해 올 것이기 때문에 이 준비를 잘해야지만 방비를 잘해야지만 전쟁에서 승리할 수가 있습니다. 더 철저하게 더 완벽하게 준비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승리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유다 사람들이 실수한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가장 먼저 해야 될 것을 하나 빼먹은 것이 있었는데요. 그것이 11절에 나옵니다. 우리 11절 같이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11 너희가 또 옛 못의 물을 위하여 두 성벽 사이에 저수지를 만들었느니라 그러나 너희가 이를 행하신 이를 앙망하지 아니하였고 이 일을 옛적부터 경영하신 이를 공경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금 전쟁을 준비합니다. 그런데 가장 먼저 해야 될 한 가지를 놓쳤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면 온 세상의 창조주이시고, 지금 이 유다 나라의 주인이시며 자신들을 조상 때부터 지금까지 인도해 주시고 지금까지 함께하시고 보호하셨던 그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았다. 라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시냐면, 옛적부터 지금까지 유다 백성들이 이곳에 살 수 있도록 또 그들이 그곳에서 안전하게 거할 수 있도록 보호하시고 지키신 분이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유다 백성들의 전부를 책임지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이죠. 그 어떠한 강력한 군대가 온다 할지라도 수많은 족들이 몰려온다 할지라도, 그 전쟁의 승패는 무기나 아니면 성벽의 높이나 아니면 먹는 거, 식수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유다 사람들이 그 다른 것들은 다 준비하면서 가장 먼저 해야 될 것, 하나님을 앙망하고 바라보지 않았다. 라는 것이죠.
 
세상의 가치를 보면 당장 지금 위기의 상황이니까, 당장 지금 적들이 쳐들어오는 절제절명의 순간이니까 그 상황을 빨리 모면하기 위해 준비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 이전에 하나님을 먼저 바라보아야 한다. 라는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은 유다 백성에게 이 상황에서 또 어떻게 해야 되는지 다시 한 번 설명해 주십니다. 12절에 보면,
 
12 그 날에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명령하사 통곡하며 애곡하며 머리 털을 뜯으며 굵은 베를 띠라 하셨거늘.
-다시 말해서 지금이라도 당장 바짝 하나님 앞에 엎드려서 회개하고 애통하는 심정으로 하나님께 메어 달려야 한다. 라는 것이죠. 간절히 주님을 찾아야 하는데, 유다는 유다의 백성들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13절에 보면,
13 너희가 기뻐하며 즐거워하여 소를 죽이고 양을 잡아 고기를 먹고 포도주를 마시면서 내일 죽으리니 먹고 마시자 하는도다.
-자포자기(自暴自棄)합니다. 이제 끝났다. 하나님이고 뭐고 우리 이제 다 끝났을 거야 내일 죽으리니, 그냥 이 상황을 즐기자 현재를 즐기자. 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죽어도 좋다 그저 즐기자. 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선택받은 사람으로서의 모습이 아닙니다. 이런 모습이 하나님은 너무나 충격적인 말씀을 14절에서 합니다.
 
14 만군의 여호와께서 친히 내 귀에 들려 이르시되 진실로 이 죄악은 너희가 죽기까지 용서하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께서 아주 큰 진노를 이스라엘과 유다에 보여주십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우리가 아는 것처럼 유다는 멸망을 당하게 됩니다. 이사야 26장 10절에 보면
 
*이사야 26:10,
10 악인은 은총을 입을지라도 의를 배우지 아니하며 정직한 자의 땅에서 불의를 행하고 여호와의 이런 위험을 돌아보지 아니하는도다.
-라고 이야기합니다. 악한 사람들은요. 아무리 은혜를 배우고 은혜를 받고 의를 배워도 결국엔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않고 그곳에서 하나님의 위엄을 돌아보지 않고 하나님 불의를 행한다. 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지금 유다 백성들의 모습입니다. 아까 얘기했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그들의 조상 때부터 예전부터 그들을 인도하셨고 그들은 그 이야기를 수없이 많이 배웠을 것입니다. 많이 들었고 그들조차도 하나님의 은혜 아래서 수많은 은혜들을 경험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을 바라보지 아니하였고, 조금이라도 어려움이 오니까 그냥 자포자기하고 포기하고 그 하루하루를 즐기는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여전히 근심과 어려움 앞에 넘어져 세상의 것을 먼저 생각하고 하나님의 능력과 위엄을 바라보기보다는 자신들의 힘으로 그것을 이겨내려 하다가 그것도 되지 않자 포기하고 말아버리는 것이죠.
 
지금 우리 유다의 모습과 우리의 모습을 한번 좀 비교해 보기 원합니다. 한번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기 원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에서 여러 가지 위기와 문제들이 우리 앞에 놓였을 때 어떻게 대처하고 있습니까? 나의 힘으로, 내가 가진 것으로, 나의 지혜로 내 계획으로, 내 생각으로 아니면 지금까지 내가 살아왔던 나의 경험으로, 아니면 내가 가지고 있는 어떤 힘으로, 그것들을 이겨내고 그것 들고 한번 싸워 승리해 보자라고 생각하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의 백성은 절대로 그렇게 해서 그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습니다. 당장은 이긴 것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결국에는 넘어지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저와 여러분,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어진 모든 것이, 내가 가진 것이, 우리의 지혜와 생각과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을 먼저 바라보지 않으면 하나님이 나의 것을 거두어 가시는 그 순간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라는 것이죠.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을 신뢰하느냐 신뢰하지 못하느냐의 문제가 우리 마음속에 있는 어떤 연약함이나 또 우리의 걱정과 두려움, 우리의 감정으로 인한 그런 것들로 인해서 생기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또 하나는 우리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은데, 우리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고 싶은데 이 주변의 상황과 환경으로 인해서 그런 어려움을 당하기도 합니다. 2016년에 개봉했던 ‘신은 죽지 않았다.’ 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두 번째 시리즈인데요.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주인공이 고등학교의 역사 교사로 나옵니다. 어느 날 오빠를 먼저 읽고 실의에 빠져 있는 제자에게 하나님 예수님의 말씀으로 이 기독교인이었던 이 조사가 위로를 해줍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역사 수업 시간에, 역사의 인물들 이야기를 쭉 하는데 예수님이 거기에 이제 포함이 되어 있지 않으니까, 이 제자가 이 선생님한테 묻습니다. 왜 예수님이 포함되어 있지 않냐고, 공식적인 수업 시간이었기 때문에 기독교적인 색채를 띠는 것이 좀 곤란했지만 이 선생님이 가장 그래도 나름 객관적으로 그 제자에게 사 학생들에게 예수님에 대해서 설명을 해줍니다. 그런데 이 설명이 문제가 됩니다. 결국에는 이 기독교인이었던 이 교사가 했던 이 언행 때문에 이것이 밖으로 흘러가게 되고, 이것이 문제가 돼가지고 학교와 또 학교 이사회 또 시민단체들이 이 교사를 향해 공격해 오기 시작을 합니다. 시민단체 대표로 나왔던 사람이 조금 무서운 사람이었는데요. 나중에는 이 교사에게 어떻게 이야기를 하냐면 정말 하나님이 살아 계시는가? 그것을 부정한다면 그것을 단 한 번만 그냥 내가 잘못 말했다 내가 실수했다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한다면 당신이 지금 갖고 있는 교사로서의 직분이나 직위 모든 것을 유지시켜주겠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당신은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이다. 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결국 영화의 내용은, 기독교인으로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믿음과 신앙 그것을 걸고 세상과 타협하라. 라고 그렇게 강요하는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한 기독교인이 자신이 현재 가지고 있는 그 삶의 모든 것들을 나의 신앙과 나의 신념과 바꿀 수 있느냐?라는 문제였죠. 이 영화는 한 7년 전에 개봉된 영화인데 실제 미국에서 일어났던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습니다. 7년이 지난 지금 현재 우리나라도 이와 비슷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특별히 코로나를 지나면서 신앙을 지키는 것, 그것이 얼마나 쉬운 일이 아닌가를 우리는 다시 한 번 느끼고 있습니다.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때로는 우리의 것을 포기해야 되고, 내가 올라가고, 내가 원했던 것을 포기해야 되고, 더 늦게 가야 되고 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아마도 우리의 다음 세대들은 더 이런 공격과 위협 속에서 살아가게 될지도 모릅니다. 예전에는 예전에 우리 신앙의 선배님들은 사느냐, 죽느냐 그것을 가지고 신앙의 그 결과가 결정됐다면 지금 이제는 사느냐, 죽느냐보다 더 큰 위협으로 하나님을 우리가 1순위에 두고 하나님을 가장 우선에 두고 살아가야 되는데 하나님은 2순위로 3순위로 마치 그래도 되는 것처럼 그것은 별로 나쁜 것이 아닌 것처럼 포장하면서 그렇게 공격해 온다. 라고 하는 것이죠.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느냐? 그 문제에 있어서 우리의 개인적인 문제도 있지만 우리 주변에 있는 상황과 환경들이 특별히 이 사회의 분위기들이 우리를 그렇게 힘들게 하고 있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럴 때일수록 어떻게 해야 될까요? 세상은 잠시 하나님을 내려놓고 세상적인 방법으로 그것이 합리적이고 그것이 올바른 가치이고 현명한 선택이라고 말을 합니다. 지금 당장 교회에 가는 것보다 내가 내 일을 하는 것 그것이 더 중요한 것이다. 라고 이야기를 하고요. 내가 지금 당장 기도하고 주님의 은혜를 받는 것보다, 세상적인 것을 하나 더 하는 것, 하나 더 이루는 것 그것이 지금은 더 중요하다. 나중에 기도하고 나중에 은혜 받아도 된다. 라고 이야기한다. 라는 것이죠.
 
우리는 이럴 때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오늘 그 대답이 한 사람의 이야기 속에서 등장을 합니다. 그 사람이 바로 다윗인데요. 우리가 알고 있던 것처럼 하나님께 크게 쓰임 받았던 다윗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던 사람이었고 그런데 사울왕의 오해를 사서 결국에는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사울을 쫓겨 도망을 다니다가 이제 블레셋에까지 피신을 하게 되죠. 자신이 그렇게 싫어했던 그 원수라고 생각했던 그 나라에 피신해서 살 수밖에 없는 상황이 아마 다윗 입장에서는 참 안타까웠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더 큰 어려움이 찾아오는데요. 이 블레셋에서 살고 있던 다윗이 자기네 사람들과 함께 한 성에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그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공격하면서 이 블레셋의 왕이 다윗에게 다윗 군대와 함께 이스라엘과의 전쟁에 앞에 참정하기를 요청을 합니다. 지금 다윗이 이 블레셋에 가서 살고 있는 것도 지금 마음이 무너지는 상황인데 자신의 동족들과 전쟁하는데 그 과정 앞에서 싸워야 되는 상황에 놓여지게 된 것이죠.
 
그래서 그렇지만 다윗이 지금 할 수 없는 어찌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자신의 백성 사람들과 함께 그 선호에 나옵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블레셋 왕의 부하들이 다윗을 믿지 못해서 다윗이 다시 자신의 성으로 돌아가게 되는데 문제는 또 여기서 발생을 합니다. 다윗이 자기의 성으로 돌아가니까 다윗이 잠시 부재하였던 것을 안 아말렉 사람들이 이 섬으로 쳐들어와가지고 성을 다 불태워버리고, 다윗의 가족들과 그 사람들의 가족들을 다 포로로 끌고 가버린 그런 일이 발생을 합니다. 지금 다윗은 매우 비참했을 것입니다. 사무엘상 30장에 나오는 이야기인데요. 사무엘상 30장 3절에 보면,
 
*사무엘상 30:3,
3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성읍에 이르러 본 즉 성읍이 불탔고 자기들의 아내와 자녀들이 사로잡혔는지라. 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기가 막힌 노릇입니다. 지금 다윗은 점점 절망의 구렁텅이로 빠져갑니다. 블레셋에 온 것도 힘들었는데 자신의 백성들과 전쟁을 해야 되는 그런 절제절명의 위기를 겨우 모면하고 왔더니 자신의 가족들이 다 잡혀가고 자진해서는 다 불타버린 그런 상황입니다. 4절에 보면,
4 다윗과 그와 함께 한 백성이 울 기력이 없도록 소리를 높여 울었더라.
-라고 기록을 합니다. 얼마나 참담하고 절망스러운 상황입니까? 사무엘 상 30장 6절에 보면 그래서 사람들이 다윗에게 다윗을 순간적으로 원망해가지고 이 모든 것이 다윗 때문에 벌어졌다 라고 생각을 해서 다윗을 돌로 죽이려고 합니다. 이 절제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다윗은 어떻게 선택할까요? 다윗은 그 절체절명 위기 상황에서 유다의 백성들과는 전혀 다른 선택을 합니다. 우리 사무엘서 30장 6절 말씀인데요.
 
*사무엘상 30:6,
6 백성들이 자녀들 때문에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 하니 다윗이 크게 다급하였으나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
-다윗이 크게 다급하였으나 어떻게 하였습니까? 다급하였을 때 다윗이 그 사람들을 향해서 야, 잠시만 멈춰봐! 지금 우리 이 상황을 좀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잘 준비해서 빨리 우리 사람들을 데리고 오자. 이 얘기를 모면하려면 진정해야지, 라고 이야기한 것이 아니에요. 그 이전에 다윗이 가장 먼저 한 선택은 무엇이었냐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인하여 다시 한 번 힘을 얻었다. 라는 것입니다. 당장 눈앞에 자신의 죽음과 가족의 죽음과 더불어 함께하던 모든 사람들이 원망하고 또 절망이 겹쳐오는 상황 속에서 다윗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인하여 힘을 얻었습니다. 다윗은 그 어떤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먼저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분을 신뢰함으로 다시 힘을 얻고 용기를 얻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금 다윗에게 그 어떤 방법을 가르쳐 주시거나 이 상황을 어떻게, 어떻게 해결해야 된다. 아니면 이 문제를 해결할 길을 열어주셨거나 그런 것을 보여주신 상황이 아니었어요. 그렇게 하지 않으셨지만 내가 믿는 그 하나님, 지금까지 나를 인도하여 주신 하나님, 내가 목자 때부터 골리앗 앞에 섰을 때부터 지금까지 나를 인도해 주셨던 그 하나님이라면 내가 다 힘을 얻을 수 있다. 라고 다윗은 고백하고 있는 것이죠. 결국에는 그 하나님께서 다윗과 그 사람들의 가족들을 모두 무사하게 구해 주십니다.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하나님을 바라보고 힘을 얻고 용기를 얻었다니요. 하나님께서 그 이후의 문제 해결 방법들은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다윗에게 주신 하나님이 주신 그 방법대로 아주 순조롭게 그 모든 어려움들을 해결해 나갔어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들은요 어려울수록, 위기일수록, 정말 내 인생에 정말 최악의 상황이라고 할 수 있는 상황일수록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될 일은 당장 내가 무엇을 할까를 찾기보다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다시 한 번 힘을 얻어야 된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볼 때 우리의 주인 되신 그 하나님께서 우리의 가진 것들, 그것을 사용하셔서 하나님이 친히 일하셔서 우리의 삶의 어려움들을 극복해 해 나가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신뢰해야 할까요? 저희 집에도 지금 두 명의 자녀가 있는데요. 자녀들을 키우신 분들은 아마 공감하실 것 같습니다. 한 두세 달 3~4살 된 아이가 엄마 아빠와 함께 길을 가고 이렇게 있습니다. 근데 길을 가다가 이 아이가 이제 넘어졌어요. 넘어져가고 무릎을 좀 무릎에 상처가 났습니다. 그럼 이 아이가 어떻게 할까요? 아빠를 바라보면서 아빠 제가 지금 여기 상처가 3cm 정도 났는데, 당장 정형외과에 가서 치료를 받아야 될 것 같습니다. 연고를 바르고 또 회복을 해야 될 것 같습니다. 이렇게 이야기할까요? 전혀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넘어지는 그 순간 자식에게 고통이 찾아오면 그냥 엄마 아빠를 바라봅니다. 그리고 눈물을 흘립니다. 엄마 아빠 소리 지르면서 아무 말 하지 않지만, 엄마 아빠는 그 아이에게 달려가서 아이를 안아주고 아이를 위로해 주고, 그 상처를 치료해 주고 그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해줌으로써 그 아이가 다시 기분이 좋아지도록 해주기 마련이죠.
 
왜 그렇습니까? 엄마 아빠는 그 아이가 지금 왜 울고 있는지, 왜 엄마 아빠를 쳐다보고 있는지, 왜 거기서 슬퍼하고 있는지, 왜 고통스러워하는지를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의 눈빛만 바라봐도 그것을 느낄 수 있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기 때문이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아들, 딸인 줄 믿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해야 될 것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 어떤 거 이전에, 그 어떤 생각하기 이전에 우리가 어려운 상황이라면 힘든 상황이라면 내가 무언가 고민되고 답답한 상황이라면 가장 먼저 하나님을 떠오를 수 있는 여러분과 제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우리가 자주 고백하는 찬양의 가사처럼 모든 시선을 주님께 드리고, 전능하시며 살아계신 하나님을 바라볼 때 우리의 삶은 주님의 역사가 이루어질 것이고 이 나라는 주님의 나라가 될 줄 믿습니다. 우리는 언제 어떤 상황에서든지 주님을 바라볼 수 있는 온전한 신뢰가 필요할 뿐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이렇게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쉬울까요 어려울까요? 쉽지 않습니다. 위기가 오면 당연히 그것을 해결할 방법을 먼저 찾는 것이 우리의 모습인 것 같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또 그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아까 얘기했던 것처럼 한 번 정도는 괜찮아, 그냥 이번에는 그냥 이거 방법대로 해도 돼, 이거 이렇게 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야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의 마음 안에서도 그런 어려움이 있고요. 주변에 이 환경과 세상의 어떤 공격 가운데서도 그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사단은 이제 우리를 아예 넘어뜨려서 교회를 떠나게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 우선순위를 바꾸게 만들어 갑니다. 하나님이 우선순위가 아니라 하나님은 2순위, 3순위로 만들어가고 있다라고 하는 것이죠. 그렇지만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됩니까? 그래서 우리는 이 어려움들을 혼자 해결하기는 상당히 어렵습니다. 나 혼자 끙끙대고 알다 보면 내 마음속에는 연약함들 때문에 내 생각과 내 계획이 먼저 나오기 마련이죠.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교회라고 하는 또 신앙 공동체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혼자서는 힘들지만요. 혼자서는 내가 무너질 것 같지만 옆에 있는 분들과 함께 기도하면서 함께 하나님을 바라보고, 우리 담임 목사님들 말씀하시는 것처럼 우리 모든 영 가족들이 한 방향으로 정렬되어서 믿음의 눈으로 주님을 바라보면 우리 각자의 어려움들도 다 이겨낼 수 있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나 혼자는 힘듭니다. 나 혼자는 넘어질 수밖에 없지만 우리가 함께하면 함께 부르짖으면 우리의 개인적인 어려움들도 개인적인 아픔들도 주님께서 하나씩 해결해 주실 줄 믿습니다. 아까 우리 이야기했던 영화의 이야기처럼 세상은 점점 우리를 그렇게 옥죄어 옵니다. 마치 이제 하나님의 신앙 생활하는 것이 조금씩은 뒤로 밀어서 조금씩만 타협하면 되는 것처럼 그래도 하나님이 벌하지 않을 거야라고 유혹합니다. 여러 가지 어려움들이 우리를 찾아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그런 어려움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께 우리의 삶의 시선을 고정할 때 최후의 승리는 우리의 것이 될 줄 믿습니다. 우리 마지막으로 이사야 26장 3절, 4절 말씀 함께 고백하기 원합니다.
 
*이사야 26:3-4,
3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다.
4 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신뢰하라. 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이심이로다.
-이 고백이 이사야의 고백이지만 이 시간 우리 모두의 고백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주께서 심지가 경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켜주신다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을 신뢰합니다. 어떠한 어려움이 찾아온다 할지라도 어떠한 역경이 우리 안에 온다 할지라도 가장 먼저 해야 될 것은 주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우리의 모든 삶의 시선을 주님께로 향하고 주님께서 우리의 삶에 역사하시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주님을 의지할 때 주님께서 우리를 통하여서 더 큰 역사를 이루어 가실 것입니다. 하나님께로 향하여 우리의 심리를 굳게 하고 아까 다윗이 그랬던 것처럼, 하나님 그분으로 말미암아 힘을 얻고, 용기를 얻어 항상 우리 주님께서 주시는 축복의 은혜, 축복의 대로로 걸어가는 그리고 사랑하는 모든 주의 백성들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요약
우리가 너무 연약하여서 우리 삶의 고난과 역경 앞에 또 세상의 유혹 앞에 주님을 가장 먼저 바라보고 신뢰하기보다는 내 생각을 내 방법이 우선되었음을 고백하고 회개하여 우리의 마음을 굳게 해서 언제나 주님으로 인하여 힘을 얻고, 용기를 얻는 그런 주의 백성 되어야 한다. 그래서 이 험한 세상 가운데서 흔들림 없는 온전한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야 한다. 우리의 어떤 환경과 어떤 고난 속에서도 우리는 주님만을 의지하고 주님에게만 피해야 됨을 깨달아 전적으로 주님과 동행해야 한다.
-다윗 성의 무너진 곳을 보수하고 물을 모으며, 가옥을 계수하고 성벽을 견코케 하며 두 성벽 사이에 저수지를 만들었다. 산헤립의 위협을 느낀 히스기야는 다윗 성 서편의 기혼 샘에서 실로암 못에 이르는 지하 수도관을 만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행위 모두는 인간적인 방책에 불과하다. 성도가 진정으로 의뢰하고 앙망해야 할 분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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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3년 10월 22일)
제목: "간절한 기도, 응답 된다"
말씀: 야고보서 5:15~18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대표기도: 금동훈 부목사님(1부)
사회: 천동원 부목사님(1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 목사님
ㅡㅡㅡㅡ

*야고보서 5:15~18,
15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
16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17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18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느니라.
-----

-지난 한 주간에 우리 특사의 은혜와 영광과 기름 부음이 지금 이 시간도 그대로 이어질 줄 확신합니다. 이번 특새를 통하여 우리가 모든 묶인 것, 매인 것들이 풀어지게 하여 주십시오. 그리고 참 놀라운 거는 새벽 3시 50분만 돼도 본당이 꽉 차는 거예요. 옛날보다도 더 본당 별관들이 더 빨리 차는 것 같고, 그리고 보니까 이번 특사에는 젊은이들이 굉장히 많이 오는 거예요. 그래서 사랑의 그 특새가 이번에 20일차인데 아주 청년 특사가 되었어요. 제가 얘기 들어보니까 마지막 날에는 지방에서 고등학생들이 올라와요. 고등학생들이 올라와가지고 밤새 고속버스를 타고 가지고 여기 강남 고속터미널에서 내려갔고요. 제가 아직 그 아이들 이름을 잘 모르는데 하여튼 혹시 영상을 보면 오늘 이 얘기 들으면 차비 받으러 저한테 오세요. 그래 하고 싶어요. 하고 싶고 너무나 감사한 시간이고 많은 성도들이 전력투구해서 전심으로 기도하는데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하시면 우리가 기도하게 되면 하나님은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말해 우리가 기도를 축적하면 하나님은 응답을 축적해 주시는 것이에요. 그리고 우리 교회는 교회의 본질을 얘기할 때, 우리 교회의 본질은 예수님의 온전한 제자가 되는데 그 본질을 위하여 우리 중요한 것은 뭐냐 하면 기도하는 성도, 기도하는 교회가 돼야 하는 것이에요. 기도에 대해서 말하고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의 실체를 경험해야 되는 것이에요. 그리고 우리 하나님은 기도 응답을 아까워하시거나 하나님은 기도 응답을 이렇게 안 하시는 그런 하나님이 아니세요. 기도에 대해서 하나님은 늘 열려 계세요. 제 얘기가 아니라 구약에는 다윗이 여겨보라고 표현한 다윗의 고백을 보겠습니다. 다윗이 시편 65편 2절에 시작

*시편 65:2,
2 기도를 들으시는 주여 모든 육체가 주께 나아오리이다.
-우리가 많은 기도가 있는데 이번 특사에 우리 크리스찬 소니아 목사님이 이런 어려운 마음에 우리 소원을 했어요. 뭐라고 했냐면 대한민국은 유럽하고 6시간 7시간 차이가 있거든요. 우리가 더 빠르거든요. 그러니까 우리 새벽 3시는 유럽의 밤이에요. 그러니까 이렇게 사랑의 교회 오늘이 유럽의 내일이다 그랬어요. 이게 이해가 될는지 모르겠어요. 그러니까 그 말을 듣고 우리가 굉장히 어떤 책임과 사명을 느꼈어요. 야, 한국교회와 사랑의 교회에 오늘이 유럽 교회 유럽에 발전하고 부응하는 교회 내일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거 너무 감사한 일 아니에요 그래서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들 모두가 단 한 명도 예외 없이 기도하는 성도들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실체를 경험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또 사도 요한은 이 주님의 심정을 깨닫고 요한일서 5장에 뭐라고 말씀하고 있는가하면,

*요한일서 5:14~15,
14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15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구약은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하나님, 신약은 우리가 기도에 대한 담대함을 가지고 그의 뜻대로 구하면 하나님이 응답해 주신다. 다시 한 번 우리가 하나님의 뭐 대로요? 뜻대로 기도하면 하나님 뭐 하신다고요? 들으신다. 그럼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기도가 어떤 기도인가 오늘 대표적으로 야고보서 5장에 나와 있어요.

*야고보고 5:16,
16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그리고 야고보서 이 말씀은 그 시대의 유대 율법주의라든지 그다음에 유대의 어떤 종교인들 바리새인들 이런 사람들이 이런 사람들의 어떤 가치관을 갖고 있는 그 고대 근동 1세기에 오늘 이 말씀은요 혁명적인 말씀이었어요. 사람의 생각과 이 사고 방식을 깨뜨리는 말씀이었어요. 그러면서 그의 뜻대로 기도하면 들으신다고 그랬는데 그의 뜻이 뭔가 오늘 야고보서 5장 15절에 이렇게 나와 있어요.

*야고보서 5장 15,
15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한다.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한다. 그랬어요. 우리 하나님은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시고 우리는 기도해야 하는데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면 하나님이 응답해 주시는데 어떤 기도 하냐, 믿음의 기도를 통하여 우리를 구원해 주신다. 물론 이렇게 치유 받는 이런 것도 뜻도 있지만 전인적인 구원이에요. 샬롬의 구원이에요. 믿음의 기도는 우리를 뭐 하신다? 구원하신다. 근데 16절에 뭐라고 나와 있냐면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그랬어요. 얘가 중요한 거예요. 믿음의 기도가 구원이 되는데 좀 더 들어가면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그랬어요. 그럼 무엇이 의인의 간구인가? 무엇이 의인인가 어떻게 되면 의인인가? 그 당시에 의인을 표상한 의인의 어떤 상징은 뭐냐 하면, 바리새인들과 종교 지도자들이었어요. 그것이 마치 의인인 것 같았어요. 겉으로 보면 거룩하고 겉으로 보면 뭐 다 하는 것 같고 겉으로 보면 멋있고 다 이런 사람들이었어요. 그런데 주님은 그 속을 보셨어요. 아니야, 너희들은 의인이 아니야. 너희들은 회칠한 무덤이야. 아니야, 너희들은 가짜야, 아니야. 의인이 뭐냐?

그래서 겉으로 드러난 선행이 나는 그것은 하나의 열매이고 의인의 조건이 뭐냐 의인의 조건은 예수님과의 관계가 의인의 조건이 충족이 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예수님과의 관계가 어떤가? 예수님은 어떻게 아는가? 예수님을 아는 것이 이게 진리인데 그래서 의의 마지막 핵심과 카이로스는 뭐냐 하면 의의 자체가 예수 그리스도세요.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진리이세요. 그래서 이 내용들이 너무나 간절해. 이것이 야고보가 깨달은 진리가 예수님께서 마태복음의 마태복음 5장에 주님이 말씀하셨어요.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그러면 우리가 의회에 대해서 우리가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 마음이 가난한 것 같네. 여러분 오늘 이 자리에 우리가 나와서 예배를 드리는 것 우리가 특새 한 주간 동안 정말 주님 앞에 마음을 다해 기도한 것은 우리의 마음이 영적으로 가난하기 때문에 주님 앞에 나온 것이에요.내가 다 있다 그러고 내가 다 거룩하다 그러고 내가 모든 걸 다 가졌다고 그러면 어떻게 마음이 가난할 수가 있겠어요? 그래서 마태복음 5장 3절에 마음이 가난한 자는 뭐예요? 복이 있다고 그랬어.

*마태복음 5:3~6,
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의 것이라고 그랬어요. 그래서 오늘 하나님의 의 하나님의 의에 대해서 우리가 심령이 가난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그러니 우리의 심령이 가난한 것이 어떻게 표현되느냐 물론 그 일이 여기 다 있지만 6절에 뭐라고 나와 있냐 하면,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그랬어요. 여러분 우리가 성산을 앞에 놓고 있어. 그리스도의 떡과 피를 앞에 놓고 있습니다. 제가 오늘 긴 설교를 못합니다. 제가 오늘 평상시에는 설교를 못합니다. 그렇지만 하나 깨달아야 할 것이어요. 오늘 이 시간이 의에 주리고 목마른 시간이 돼야 하는 것이 의에 주리고 목마른 시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의에 관해서 저와 여러분이 마음이 가난해져야 되는 것이에요. 마음이 가난해지면 의에 주리고 목마를 수가 있는 것이에요.

I. 기도하는 사람, 의인의 기도가 중요하다.
-여러분 부자라도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이 있어요. 세상 적으로 다 갖췄다는 사람들인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의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능력 예수 그리스도를 더 깊이 아는 거에 대해서는 참 정말 사모하면서 최선을 다하여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있어요. 근데 물론 대체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이 더 마음이 가난해요.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가난해도 갑 질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공산당들이에요. 인민위원회 만들어 가지고 있는 자를 다 빼앗아 먹고 말이죠. 늘 마음이 늘 불평 있고 늘 대모하고 늘 갑 질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이 마음이 가난한 것이 아니에요. 우리는 사랑의 교회는, 우리 한국은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 믿고 참된 리더이신 예수님에 대해서 마음이 가난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다시 겉으로 드러나는 것 거룩하게 보이는 그건 하나의 열매예요. 그게 조건은 아니에요. 그래서 주님은 뭐로 구원받지 못한다. 선행으로 구원받지 못하는 것이에요. 이 의는 도덕적 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에요. 마음이 가난한 그래서 최고의 의인은 예수 그리스도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어떻게 배부를 것이다 그랬어요. 오늘 우리가 그리스도의 피와 살을 기념하면서 그리스도를 먹고, 그리스도를 마시고, 그리스도를 깨달으면 이것이 우리에게 참 만족이 되고 이것이 우리에게 생명의 양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저와 여러분들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인데 예수님 참된 의 대신 완벽한 의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먹고 마시는 것이에요. 이번 특새 하면서 우리가 많은 걸 깨달았잖아요. 좋은 것은 뭐예요?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죽는 거라고 그랬어요. 맞습니까? 더 좋은 것은 뭐라고 그랬어요? 예수님과 함께 부활하는 것이라고 그랬어요. 그런데 가장 좋은 것은 뭐예요? 내 안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먹고 마시는 것이에요. 오늘 이 풍성한 은혜가 이 성찬을 통해 여러분들에게 주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에게 첫 번째 의인의 기도가 필요하다. 그다음 두 번째 기도하는 사람 의회의 기도가 필요하다. 그래서 이 엠 바운즈 같은 사람은 기도에 대해서 얘기할 때,

“우리가 새로운 방법과 기발한 계획을 통해 일하려 하는 동안, 하나님은 사람들을 세우시고 그들을 통해 일하신다. 그들은 어떤 사람일까? 기도의 사람이며 기도에 능한 사람이다. 성령님은 기도의 사람들을 위해 기름 부으셔서 일하신다.” -E.M 바운스-

사람들은 더 나은 방법 기가 막힌 아이디어 무슨 계획 이걸 사람들이 많이 찾지만 아니야.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을 찾고 계셔. 어떤 사람인가? 기도하는 이 의인의 기도를 하는 하나님의 사람을 주님이 찾고 계신다고 그랬어요. 오늘 우리가 이 성찬에 참여하며 바로 그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가 의인의 기도에 대해서 눈을 떴다면 그러니까 당시에 바리새인과 서기관 겉으로 볼 때 의인 같았는데 사실은 그 속은 회칠한 무덤이고 사실은 종교인들이었어요. 여러분과 제가 예수님을 오래 믿을수록 제발 종교인이 되면 안 되는 것이 껍데기만 남을 크리스천이 되면 안 되는 것이에요. 우리 속이 의인 대신 주님을 사모하고 주님을 묻고 싶어 하고 의에 주리고 목마른 하나님의 백성들 심령이 가난한 자가 돼야만 하는 것이에요. 그럼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을 어떻게 표현하는가? 오늘 엘리야를 통해서 우리를 깨닫게 하시는 건 뭐냐 하면 엘리야는 우리와 성적이 같다고 그랬어요.

그렇죠? 엘리야도 열 받았어요. 아니 엘리야가 열 받은 거 기억하십니까? 이사벨 때문에 열받아가지고 하나님 나 죽여 달라고 했잖아요. 같이 열 받고 같이 화내는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엘리야의 의인 됨은 어디서 표현이 되는가? 그는 정말 그 백성들이 정말 황폐하고 메마르고 백성들이 고통당하는 거, 그걸 엘리아가 못 보는 거예요. 3년 6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으니까 너무 기가 막힌 거예요. 그러니까 이 백성 한번 먹여 살려보자. 그러면서 엘리아의 마음속에 백성을 위한 소위 목자의 심정을 가지고 간절한 심정을 가지고 애통하는 심정을 가지고 주님을 향한 심정을 가지고 주여 이 백성을 살려주시옵소서. 기도를 하는데도 기도를 하는데도 처음 응답이 안 되는 거예요. 그런데 오늘 18절을 다시 기도했다.

*야고보서 5:18,
18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느니라.
엘리야가 어떻게 기도합니까? 그 무릎 사이에 무릎 사이에 머리를 넣고 거의 요가 수준으로 저도 이렇게 한번 해봤는데 쉽지가 않아요. 제가 지난 수요일 날 청계산 산상기도에 올라갔고 제가 산에서 기도하는 내가 돌 큰 돌이 있어요. 그 위에 기도를 하다가 이래 하다가 밑에 굴러 떨어질 뻔했어요. 제가 쉬운 거 아니에요 정말 쉬운 거 아니에요. 간절한 그래서 엘리아의 소위 주님을 깨달은 하나님을 깨달은 의인된 엘리아의 기도는 뭐로 표출되는가? 간절함으로 나타나게 된 것이에요.

II. 의인의 간절한 기도가 필요하다.
그리고 두 번째 우리가 생각할 것은 우리에게는 의인의 간절한 기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너무너무 간절한 기도가 필요합니다. 오늘 성찬을 앞에 놓고 주님 오늘 우리 온 성도들 예외 없이 간절한 기도를 허락하여 주십시오. 엘리야가 했던 그 조각만한 그 응답을 올 때까지 정말 주님 앞에 간절한 기도 한국교회는 지나간 우리 140년 한국 교회사에 이 간절한 기도의 자본을 하나님이 허락해 주신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가장 간절한 기도를 누가 하셨어요? 예수님께서 하셨죠. 예수님께서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실 때, 얼마나 간절하게 기도하는지 모세관이 터져가지고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될 정도로 간절하게 기도하신 것이에요. 우리가 이번 특새 하면서 제가 보니까 성도들 참으로 간절하게 기도하셨어요. 그 간절한 기도가 주님 앞에 올라갈 때 주님은 응답의 축적을 허락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성경의 간절한 기도를 앞에 놓고 기도할 때에, 제일 그래도 와 닿는 건 딱 와 닿는 사람이 한나의 기도도 있고, 구약에 다 있지만 신약의 마태복음 15장에 수로보니게 족속의 여인의 기도 이방인의 기도 그 기도가 제가 생각이나 여러분들 기억하시죠? 가만 보니까, 예수님이 그 딸의 병을 치유하실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어요. 그 이방인이 뭐가 대단하였어요. 그 이방인이 무슨 의가 있겠어요?

그런데 의의 핵심은 누가 의라고요? 예수님이 의 바리새인처럼 무슨 종교 행위를 잘해가지고 이가 아니고 예수님이 의에 킨 거예요. 그 예수님을 깨닫고 예수님께 나와 가지고 선생님 주님, 우리 딸을 구원해달라고 근데 주님이 겉으로 볼 때는 매몰차게 대답하신 것 같이 그렇게 보여 지는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이 떡을 이방인에게 주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다. 나는 이방인을 해 오지 않았다. 주님께서 진짜 그런 게 아니라, 그 여인을 시험하시려고 아니 그 여인에게 한번 믿음을 한번 테스트해보려고 근데 그 여인이 뭐라고 그랬어요? 개들도 그 당시에 유대인들은 이방인을 개처럼 취급했거든요.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뭐예요 부스러기를 보나이다. 주님 부스러기 은혜라도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니까 기가 막혔어요. 마태복음 15장 주님 말씀하신 한번 들어보세요.

*마태복음 15:28,
28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믿음 테스트하는데 그 믿음이 크다고 하셨어요. 일반 사람들 같으면 그 정도 주님의 처음 이거 너희 줄 수 없다. 개들에게 던지는 것이 이방인에게 던지는 마땅하지 않다. 그랬을 때 웬만하면 다 도망가요. 열받아가지고 그런데 아니에요. 주님 이방인들 우리 개들도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를 먹는다. 그러니까 주님으로 오세요. 너의 믿음이 크다. Your face make double!! 주님이 보시기에, 믿음이 남보다 더블이 된 거예요. 저는 묵상을 하는데 아니 어떻게 이 여인은 이렇게 믿음이 더블이 될 수가 있겠는가 그 딸에 대한 간절함이 너무 크니까 자기 딸에 대한 사랑이 너무 크니까 오늘 저와 여러분 우리 모두에게 정말 병든 딸을 향한 사랑이 너무 크니까, 이 간절하고 사랑하는 이 심정을 회복시켜 주시기를 원하는 것이에요. 메이크 유얼 페이스 더블, 메이크 유얼 페이스 더블, 기도가 정말 사랑이, 의인의 기도는, 이와 같이 간절함과 사랑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에요.

저는 내일부터 사랑의 교회가 7천여 명의 목사님들과 함께 사역자들과 함께, 5천여 교회, 7천여 명의 사역자들과 함께 내일 이 이 본당에 꽉 채워질 것입니다. 별관까지요. 그런데 우리가 뭘 할 수가 있겠냐고? 사랑의 교회가 물론 건물이 있고, 그다음에 우리가 여러 가지 할 수 있지만요. 이거는 그냥 껍데기예요. 여러분 중요한 것은 이 여인의 심정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에요. 중요한 것은 이 엘리아의 심정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에요. 이 3년 반 동안 비오고 자는 이 황폐함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한국교회가 황폐한 것이 있다면 이걸 어떻게 할 것인가? 저와 여러분과 우리 자녀들의 황폐함을 우리가 어떻게 할 것인가 부모의 심정을 가지고, 간절한 엄마의 심정을 가지고, 엄마의 심정을 가지고,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주님, 우리 자녀를 주님 이 병을 치유하여 주십시오.

그러니까 의인의 기도 기도인데 간절함의 기도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에요. 다시 우리가 가진 이 모든 것들은 껍데기에요. 중요한 것은 우리의 심령인 줄로 믿습니다.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일이 많도록 우리가 의 되신 주님을 오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기념하면서, 가장 중요한 예수님을 우리의 심정에 깨달으면서, 그 주님과 함께 먹고 마시면서, 이 민족과 이 시대와 여러분들과 여러분 가정과 자녀를 향한 그런 마음의 소원이 주님 앞에서 성찬을 통하여 확인되기를 소원하는 것입니다.

저는 어릴 때 가난 달동네에 있었기 때문에 그 주위에 제가 초등학교 그 근처에 고아원에 있었어요. 내가 고아원 친구들 그리고 고아원에 한 번 가면요. 그 부모가 없는 아이들의 그 애절한 눈빛을 잊을 수가 지금도 기억이 나는 거예요. 엄마가 없으니까, 아빠가 없으니까, 아마 누군가 지금 고아를 위하여 일하는 여러 어른들 그동안 고아를 한 그런 분들은 아마 그 심정을 저 어떻게 채워주나? 저 어떻게 살려주는가? 저는 어릴 때 초등학교 5학년쯤 돼가지고 제가 학교에서 이렇게 돌아오면, 돌아오면 12월달 쯤 이제 제 초겨울쯤 돼서 돌아오면요, 우리 어머니 아버지는 이제 목회자니까 신방을 가시고 아무도 없어요.

제가 장남이었고 아무도 없고 그 가난한 개척교회 옆에 조그마한 부엌이 하나 있었는데 부엌 위에 선반 위에 보리쌀 삶은 것이 좀 있었어요. 보리쌀 삶은 걸 배고프니까 좀 먹다가 제가 위가 약해가지고 막 토하고 막 이러고 있는데 우리 어머니가 신방 갔다 오셔가지고 내 그 모습을 봤어요. 우리 어머니는 뭐 돈도 없어 아무것도 없어요. 그런데 내가 장남인데 우리 어머니하고 저하고 22살 차이였어요. 내가 11살 12살 때, 우리 어머니는 34살 우리 어머니가 눈물 흘리면서 가난해 먹을 것이 없어 자식은 토하고 있어요. 우리 어머니가 막 쫓아다니는 거에요. 내가 그래서 우리 어머니 2년 전에 돌아가셨을 때, 내가 내 심정이 오는 것이 너무 많았어요. 막 쫓아다니고 뭐 좀 먹을 거 없나 뭐 좀 살릴 거 없나? 뭐 좀 찾아갖고 우리 자식 좀 먹을 것이 없나 나는 거기서 이 정말 주님을 향한 주님을 깨닫는 거에요. 어머니의 심정이 뭔가? 이게 목자의 심정이 뭔가 시대를 내가 목자의 심정이 뭔가? 가난하지만 자식을 많이 가진 엄마의 심정이, 가난해 자식이 많아요. 근데 돈이 없어. 근데 엄마야 어떡할 거야 먹을 것도 할 것도 없고, 돈도 없지만 그러나 이 자식을 위해서는 내가 뭐라도 해줄 만한 그런 마음을 갖는 거예요. 우리 어머님이 그냥 막 머리털이라도 잘라주고 손으로 빼주고 싶은 그런 마음을 내가 느끼는 거예요.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내일 7천여 명의 목사님들을 섬겨야 됩니다. 근데 우리가 뭐 대단합니까? 우리가 물론 특실하고 대단하죠. 우리는 사실 아무것도 아니 이거 다 껍데기예요. 이 건물 이런 것들은 우리의 심정이 중요한 것이에요. 우리의 심정이 어떻게 되는 거 우리가 다 부족하지만 그래도 우리가 좀 어떻게 할 거 없나? 제가 2033 50 비전을 얘기했을 때, 많은 분들이 이거 되겠나 하고 뭐 이렇게 좀 이렇게 한 분이 있을지 몰라요. 여러분 우리가 실력 있고 능력 있고 하면 그 누구나 다 아는 거예요. 근데 가난해 할 게 없어 부족해. 그렇지만 자식을 많이 가진 엄마의 심정을 가지고, 우리가 이 역할을 할 때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이에요. 여러분 생각해 보시라고 자식은 누가 낳아요? 저 간호사 똑똑한 그 산부인과 최고의 지식을 가진 그런 간호사가 자식을 낳는 것이 아니에요. 아무것도 모르는 엄마가 초산하는 엄마가 자식을 낳는 것이에요. 자식은 누가 키워야 대학 교수가 키우는 게 아니에요. 아버지가 뭘 모르는 아버지가 키우는 것이에요. 2033 50 비전은 2033년까지 주님 50%가 예수 믿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민족, 다른 건 여기에는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어요. 우리 민족뿐만 아니라 한국 교회뿐만 아니라, 세계 복음주의 교회뿐만 아니라, 우리 자식들 다음 세대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에요. 보면 힘들어요. 가난해요. 줄 거 없어요. 부족해요. 그런데 우리는 심정을 갖고 있는 것이에요. 근데 그 심정은 뭐로 표현되는 것이에요? 엘리아의 기도로, 수르본 족속의 기도로, 그래서 의인의 기도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3년 반 동안 비가 오지 않았지만 엘리야가 이 심정 가졌을 때, 하나님이 일하신 것이에요. 그래서 여러분 오늘 이 진짜 의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먹고 마실 때마다 여러분 진정 영적으로 배부른 축복이 여러분들에게 임하기를 바랍니다.

우리 하나님의 나라의 일은 무슨 실력으로 무슨 겉으로 드러나고 일하는 거 아니에요. 이런 목자의 심정과 가난하지만 자식을 많이 가진 엄마의 심정과 그리고 어떡하든지, 어떡하든지 한 번 내 자식 한번 살려봐야 되겠다. 병든 내 딸 한번 살려봐야 되겠다는 그 사랑의 마음이 간절한 마음이, 가난한 마음이 하나님께서 일하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시편 116편에 보면 이런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시편 116:1-2,
1 여호와께서 내 음성과 내 간구를 들으시므로 내가 그를 사랑하는도다.
2 그의 귀를 내게 기울이셨으므로 내가 평생에 기도하리로다.
-오늘 이 마음 가지고 성찬에 참여하고 주님께 큰 영광으로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찬송 가운데 의의 줄이고 목이 마르니 성령의 기름 부어주옵소서. 의의 줄이고 마음이 가난하고 마음이 상한 자를 고쳐주시는 주님 하늘의 아버지 날 주관하여 주옵소서. 이 찬송하시면서 성찬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요한복음 6:53-58,
5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54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55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56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57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
58 이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요약
담임 목사님의 어린 시절의 믿음의 간증과 함께, 부모라면 여러 자식을 살리려는 그 애절한 마음 같이, 무엇이 없어도 엄마의 마음처럼, 아버지가 키우시고 살리심을 믿고 사랑과 은혜로 지금 우리가 내일의 현장에서 실천되어야 함을 깨달아서 시대를 향한 애절하고 피 끓는 목자의 심정으로 오시는 목사님들을 아름답고 친절하게 그리고 마음을 담아 섬겨야 한다. 정성을 다 함을 가지고 주님께 엎드려서 준비된 것들을 살피고 헌신해야 한다. 우리교회가 5천 교회, 7천 목회자와 함께 제4의 부흥을 위해 합심하고 전력투구로 섬기기를 간절히 간구한다.
-여기서 주의깊게 살펴 보아야 할 것이 한 가지 있는데 그것은 병을 낫게 하는 것은 기름을 바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기도함에 있다는 사실이다. 병든 자를 위한 기도는 살아있는 믿음에서 시작해야 하며 또 계속해서 이 믿음을 가지고 해야 할 것이다. 또 기도를 하는 사람과 기도를 받는 사람 모두가 확실한 믿음을 견지해야 한다.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 그러므로 우리나 혹 다른 사람이 병이 들어 기도할 때 하나님께 간구해야 할 가장 큰 문제는 죄를 사하여 줄 것을 구하는 일이다. 죄는 병의 근원이며 동시에 찌르는 가시이기도 하다. 만일 죄를 사함 받으면, 그 긍휼 속에서 고통이 사라지거나 혹 그 고통이 지속된다 해도 하나님의 은총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고백은 교인 상호간에 하는 것을 말한다. 교인 상호간에 해를 입혔을 때 서로 자기 책임을 고백하고 회개하도록 서로 권고해 주는 일이 필요하다. 우리가 고백하는 일이 서로 다툰 친구와 화해하는 일에, 또 어떤 이에게 잘못한 일에 대한 배상으로 그리고 우리의 양심에 가책받은 일로부터 고요하고 평온한 상태를 취하기 위하여 필요하다면 우리는 언제든지 우리의 잘못을 고백할 줄 알아야 한다. 또한 때로 기독교인들이 서로 자신의 연약함과 결점을 고백하는 일은 유사하다. 또한 이렇게 자신의 약점과 잘못을 서로 고백하는 자들은 서로를 위하여 기도를 해 주어야만 한다. 기도하는 자는 의로운 사람이어야 한다. 또 기도 자체도 열렬하고 내용이 충실하며 정성이 깃들여진 기도이어야 한다. 이러한 기도는 역사하는 힘이 많다. 즉 우리 자신에게 유익하며 우리 이웃에게도 유익을 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받으신다는 것을 확신하게 된다.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었다. 그는 하나님께 대한 열심히 불타고 있었고 또 매우 위대한 사람이었지만 그에게도 결점은 있었다. 기도할 때 우리는 우리의 의를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 한다. 엘리야는 솔직히 기도했다. 원문에는 '간절히 기도했다'고 되어있다. 우리도 기도할 때 단순히 무어라고 말로만 외어대는 것은 기도로서 불충분하며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엘리야가 '비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셔서 삼년 육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오고, 다시 기도한즉 하늘이 비를 주셨다. 이같이 기도의 능력을 기록한 것은 평범한 그리스도인들라도 열심히 그리고 항상 기도해야 함을 권고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의 기도에 하나님께서 그렇게 많은 기적으로 응답하시지는 않을지 몰라도 풍성한 은혜로써 응답하시리라는 것은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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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차 가을 글로벌 특별새벽부흥회(주후23년 10월 21일) 여섯째 날ㅡ내 영혼의 풀 콘서트
제목: "모든 묶인 것이 풀어지리라" 
말씀: 요한복음 8:1-12. 31-32,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ㅡㅡㅡㅡㅡ

*요한복음 8:1-12. 31-32,

2 아침에 다시 성전으로 들어오시니 백성이 다 나아오는지라 앉으사 그들을 가르치시더니.
3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4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5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6 그들이 이렇게 말함은 고발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7 그들이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이르시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8 다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9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느껴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10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11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12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31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


복음은 능력이다
누가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는가?
창조주 하나님의 아들, 예수

누구를 위해 돌아가셨는가?우리를 위해.. 속죄하기위해
왜 돌아가셨는가?-나를 사랑하셔서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느껴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우리의 의 예수님의 십자가  피를  믿는 믿음으로


죄인 -노출된 죄. 군중속의 죄. 가면 쓴 죄인. 죄는 수치를 가져온다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우리가 의로우면 얼마나 의롭겠나...나도 나를 정죄하지말고 예수님도 죄를 정죄하지않으니 앞으로 죄를 짖지말라

이 여인.. 수치와 경멸의 일들이 예수님 만나고 천국을 경험.


빛 가운데 거하는 것- 말씀 안에 거하는 것,- 진리 안에 거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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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차 가을 글로벌 특별새벽부흥회(주후23년10월 20일)-다섯째 날
(All Binding Chains Came Loose).
제목: "가라 지역으로, 가라 세계로"(Go Local, Go Global!-
走向本地,走向世界)
말씀: 사도행전 1:8

설교자: 크리스찬 소니아 목사님-루마니아 호프교회) -초빙)-통역-유이삭 부목사님)
ㅡㅡㅡㅡㅡ

*사도행전 1:8,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ㅡㅡㅡㅡㅡ

▶크리스찬 소니아 목사님-루마니아 호프교회) -초빙)-통역-유이삭 부목사님)
-오늘 얼마나 좋은 날입니까? 함께 이렇게 이 새벽에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이 시간이 너무나 감사합니다. 어제에 이어서 여러분과 함께 이렇게 주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돼서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제가 사랑의 교회 올 때마다 그냥 고향으로 돌아오는 느낌을 받습니다. 이제 한국말을 제대로 배워야 될 것 같습니다. 루마니아 사람이 한국말 하는 것 상상이 가세요? 너무 감사드리고 여기서 사역하는 것은 저희들에게는 큰 격려가 됩니다. 언젠가 오 목사님께서 루마니아에 오실 것을 저는 기대하고 있습니다. 루마니아에서도 같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그날이 꼭 오기를 소원합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에 보면 너희가 권능을 받는다. 라는 얘기가 나오죠.

*사도행전 1:8,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이제 천국을 올라가시기 전에 직전에 바로 하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권능을 받는다는 의미가 과연 무엇일까요? 많은 사람들에게는 우리에게 이것이 하나의 그냥 이론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고요. 그런데 여기 사도행전 1장 8절에서 말씀하는 이 권능을 받는다. 라는 의미는 굉장히 강력한 그런 막강한 주님의 능력을 말합니다. 우리의 구원을 이루는 그런 하나님의 능력을 말합니다. 우리가 거룩하게 되는 그런 길을 걷는 그런 능력이 됩니다. 생명을 불어넣는 그런 능력을 말합니다. 그리고 부활의 능력 우리에게 다가오는 그 부활의 능력을 의미합니다. 요한일서 4장 4절에 기록하기를,

*요한일서 4:4,
4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심이라.
-그리고 기독교인이 받는 이 능력은 우리가 기독교인으로서 제대로 살 수 있는 그런 능력을 의미합니다. 4시 반에 나와서 주님을 찬양할 수 있는 그런 능력도 여기에 포함되죠. 수많은 여러분들 같은 분들이 굉장히 담대한 그런 기도를 할 수 있는 그런 능력도 됩니다. 여러분들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어 응답하시는 줄 믿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어린 공산권 하에서 살았는데 여러분들이 지금 하시는 이런 기도가 제가 그때를 저를 연상케 합니다. 여러분 제가 공산권 나라에서 국가에서 사는 거 아시죠? 그때에도 그 루마니아라는 공산권 나라에서 하나님께서는 역사하고 계셨습니다. 담대한 그런 기도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고요. 그거 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교회에 가면 어른들이 정말 이 무모한 담대한 태도 하는 그런 것을 많이 듣고 자랐습니다. 제가 자랐던 그 고향에 70년대죠. 어떤 목사님이 한 분 계셨는데요. 우리 성도들에게 항상 담대한 기도를 하라. 가르치셨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80년대에 자라면서 그때 어떻게 사람들이 기도를 했냐면, ‘언젠가는 이 루마니아 땅에 이 스포츠 경기장에서 복음이 선포되게 하여 주옵소서. tv 방송국을 통하여 복음이 선포될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고 기독교 학교가 많이 생기게 하여 주옵소서.’ 그때에도 하나님께서 얼마나 크게 능력으로 행하셨는지 제가 기억을 똑똑히 합니다.

제가 기도하다가 저도 눈을 떠서 이 사람들을 쳐다보면서 과연 이 어른들이 정상인가? 그런 의미도 가졌어요. 우리가 공산권 안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이 담대한 기도들, 오늘은 제가 이제 성장을 해서 이제 성인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목사가 되어서 14년 전에 ‘오라비아’ 라는 작은 도시에서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호프처치(Hope church)이죠. 그리고 수많은 교회가 개척되기를 우리 그때도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매주 마다 우리 기독교 방송국을 통하여 우리 같은 교회를 통하여 루마니아 땅에 복음이 선포되고 있었습니다. 두 명을 가지고 시작한 이 교회 개척한 교회가 지금은 1500명이 모인 그런 호프 처치(Hope church)가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경기장 안에서 복음이 선포되는 걸 우리가 기도하고 왔었는데, 호프 처치만 하더라도 지난 14년 동안 수 여러 차례 우리가 운동장 경기장에 모여서 복음을 선포했습니다. 그리고 작년에 우리가 교회의 리더십 컨퍼런스를 진행했는데, 여기 사진에 지금 보여주는 사진과 같이 여러분 그 모습을 볼 수가 있으십니다. 그리고 4년 전에 Hope church가 이 오라디아에서 또 새로운 교회를 건축하기 시작합니다.

잠시 제가 멈춰서 설명을 드릴 텐데요.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서 우리가 이 빌딩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굉장히 힘든 때가 많았고요. 그리고 코빗이 왔을 때, 코로나가 왔을 때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우리 오정현 목사님께서 저에게 전화를 주셨어요. 그리고 ‘우리는 너의 그런 사역과 오라디아 교회와 우리가 함께한다.’ 그건 그냥 말뿐이 아니었습니다. 사랑의 교회에서도 지금 우리에게 헌금을 주셔서 우리가 가장 힘들었을 때 우리가 능히 이길 수 있도록 도움을 주셨습니다. 그 빌딩 교회 빌딩이 지금 영상에 나오고 있습니다. 당시 하나님께서 10만 불이라는 헌금을 해주셔서 우리가 이 건축을 계속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오 목사님,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이 루마니아에서 모든 교회, 일어나고 있는 모든 교회 사역들이 있는데, 이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그런 담대한 기도의 열매인 줄 저희들 믿습니다.

여러분들도 북한에 있는 형제자매를 위해서 중보하고 계신다는 것을 제가 알고 있습니다. 계속 기도하십시오. 북한에도 언젠가는 장 운동경기장에서 복음이 선포되는 날이 올 수 있도록 기도하십시오. 인터넷 전국 방송, tv 방송을 통하여 복음이 선포되는 날이 올 수 있게 여러분 기도하십시오. 북한에서도, 새벽 4시 반에 특새 할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도록 여러분 기도하십시오. 저는 이 공산권은 치아에 있는 교회들을 도우셨던 하나님께서 북한도 도우실 거라 저희들은 믿어 확신합니다. 남한 북한이 아니라 그냥 한국이라는 나라가 생길 수 있도록 통일될 수 있도록 기도하십시오. 한국은 통일될 것이며, 예수님이 말씀하신 그 권능을 여러분들 받으실 겁니다. “권능을 받으면,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내 증인이 되리라.”

하나님과 그 하나님의 권능에 여러분들 의존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렇지만 권능만과 지적을 아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 구절에 하나님의 큰 계획이 있으심도 여러분들 아셔야 됩니다. 권능만 주신 것이 아니라, 여기 명확한 하나님의 계획이 나와 있습니다. 여러분들 주위에 가장 불행한 사람,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 어떤 사람인 줄 아십니까? 아무런 계획이 없는 사람입니다. 아마 남한에는 그런 분들이 얼마나 많이 계실지 모르겠어요. 여러분들 주위에 아무런 계획 없는 사람 만나보시게 있어요. 내가 오늘 뭘 해야 될까? ‘나도 몰라 오늘 어떻게 살지?’ 예수님은 명확하게 우리에게 계획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굉장히 명확한 그런 계획을 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교회도 이 계획에 따라 움직여야 됩니다.

코로나 팬데믹이 왔을 때, 여러분 항공사들이 비행기 운행을 중단한 적이 있었죠. 그런데 몇몇 항공사들은 비행기 티켓을 팔았는데, 아무 데도 가지 않는 비행기 플라이트였습니다. 비행기 티켓을 타는데 7시간 정도 이렇게 날다가 다시 이륙한 곳으로 다시 내려 다시 오는 겁니다. 돌아오는 겁니다. 10분 안에 정말 엄청난 이런 티켓을 판매했던 호주의 한 항공사가 있습니다. 7시간 동안 날다가 다시 이룩한 곳에 와 착륙합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아무 데도 가지 않는 그런 비행기처럼 우리 교회를 그렇게 다스리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실행해야 될 그런 명확한 계획을 주셨습니다. 여러분 주차돼 있는 어떤 자동차를 바라보면서 저걸 내가 따라야겠다. 라고 고민하신 적 있으십니까? 저는 가만히 주차되어 있는 차만 보는 것이 아니라, 지난 몇 해 동안 그냥 주차되어 있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는 그런 교회를 많이 보았습니다. 교회가 비행을 하는데 아무 데도 가지 않습니다.

사랑의 교회 같이 비전이 있고 플랜이 있는 그런 교회, 하나님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이 교회가 사랑의 교회가 정말 하나님 왕국에 있는, 그런 비전이 있는 것을 저희가 알고 있습니다. 굉장히 귀한 것이고요. 그래서 이 교회는 어떤 기관이 아닙니다. 단체가 아닙니다. 우리는 운동을 일으키는 그런 집단으로서 하나님은 교회를 부르십니다.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가는 그런 역동성을 보여야 됩니다. 어둠에서 빛으로 움직이는, 수치스러움에서 은혜로 나아가는 운동력, 믿음으로 나아가는 그런 역동성 슬픔에서 기쁨으로 나아가는 그런 교회가 되어야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 교회라고 우리를 선포하시고 우리를 그렇게 취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이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바라볼 때 우리는 예수님과 사랑에 빠진 사람이에요. 예수님의 취한 사람이어야 됩니다. 그리고 사로잡힌 예수님께 집착하는 복음에 집착하는 사람이어야 됩니다.

그래서 미국이나 루마니아나, 한국이나 어디든지 전 세계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예수님을 믿고 싶어야 합니다. 굉장히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하나님께서 여기서 행하시는지 굉장히 중요합니다. 아마 예화를 제가 한번 드리면요. 설명을 하자면, 제가 지난 화요일 날 한국에 도착을 했습니다. 루마니아에 남겨두고 온 제 아내한테 전화를 했는데요. 지금은 생방송으로 저희 안 보고 있습니다. 인사 대단하죠. 전화 통화를 하면서, 대화가 끝날 무렵에 제 아내가 저한테 이러더군요. ‘내일 또 통화하자고.’ 근데 여기는 화요일이었고요. 루마니아는 월요일이었습니다. ‘내가 여기 있는 이 한국은 벌써 이미 당신이 얘기하고 있는 내일이야.’ 그래서 한국에 있는 저의 오늘이 제 아내에겐 내일이었습니다. 6시간 한국이 앞서 가니까요. 사랑의 교회는 오늘 여기서 오늘을 살고 계십니다. 근데 여러분들이 사는 이 오늘이 전 세계에 있는 수많은 교회에는 우리의 내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여기서 이루시는지, 그것이 이 세상에 있는 전 세계에 있는 교회에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2033년까지 우리가 이루어야 될 비전을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주신 걸 제가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왕국의 그런 비전입니다. 50%가 예수님을 알게 되는 날이 오게 해달라고 여러분이 기도하고 계십니다. 너무나 귀한 그런 하나님의 계획이고 비전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귀하게 사용하신 것 또한 제가 알고 있습니다. 28개국에 200개가 넘는 교회를 여러분이 개척하셨죠. 엄청난 비전입니다. 45주년을 기념하신다는 말을 제가 들었습니다. 해피 버스데이!!! 지난 45년 동안 여러 방면에서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복 주신 줄로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께서 정말 축복의 통로로 수많은 다른 곳에 복을 나눠주신 걸로 제가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 이렇게 여러분들을 축복하셨을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신 이유는 아직 우리의 베스트가 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이 하나님께서 아직도 이 교회를 위대하게 사용할 수 있는 줄 저는 믿습니다. 여러 나라 사람들이 같이 손에 손을 잡고 동역할 수 있도록 여러분들을 축복하시는 걸로 저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섬기고 또 복음을 선포하고, 우리가 나눠주고, 상처받는 사람들을 치유하고, 여러 가지 우리가 할 일들이 있습니다. 이게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여러분들 하고 실천하고 계신 줄 제가 알고 있 계속 그렇게 하십시오. 왜냐하면 우리가 따라야 할 비전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섬겨야 될 하나님이 있습니다. 선포되어야 될 복음이 있습니다. 수많은 아픈 사람들 상처받은 사람 치유돼야 될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빠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그 비전을 성취하려고 우리는 더욱더 바빠져야 됩니다.

데이비드 리빙스톤이라고 여러분 잘 아시죠? 아프리카로 파송되었던 유명한 선교사입니다. 인생의 거의 대부분은 아프리카에서 지냈죠. 인생 말년에 수많은 사람들이 그가 치렀던 희생 헌신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죠. 그런데 데이비드 리빙스톤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이 인생의 긴 여정을 앞에까지 보냈다는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내가 헌신했다고 귀한 희생을 했다고 말을 하는데, 내가 드렸던 그런 희생이 진짜 헌신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내가 받은 그 은혜의 일부를 드린 것뿐인데, 하나님께서 주신 그 은혜를 나는 이것을 갚을 수도 없는데, 그것뿐만이 아니라 이 천국이라는 영원한 축복의 운명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데, 내가 온 것이 과연 희생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게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희생이 아닙니다. 내가 그동안 했던 것은 나의 특권이었습니다.” -데이비드 리빙스톤-

우리 이 세대에 하나님을 섬길 수 있다는 것은 우리의 특권입니다. 이 세상 땅 끝까지 가라고 명령하시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 그 자체가 특권입니다.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이 수많은 이런 자유 자유 이런 거 없었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그런 자원들 예전에는 없었습니다. 여러분들이 가지고 계신 그런 달란트들 여러 가지 그런 기술들 우리가 세계 선교에 힘을 써야겠습니다. 기도하면서 앞으로 전진 합시다. 계속하여 복음을 선포하는 모두들 되시길 바랍니다. 수백 명, 수천 명, 수만 명이 여러분들 때문에 주님을 알게 되고 돌아오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언젠가는 모두가 우리 모두가 하나님 그 자리 앞에 하나님 앞에 서야 될 날이 옵니다. 사랑의 교회 분들만 오시는 게 아니고요. 분들만 오시는 게 아니고요. 전 세계 모든 형제자매들이 하나님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북한에서 온 형제자매들도 있을 것입니다. 일본에서, 중국에서, 모든 나라에서 올 것입니다. 오늘 마지막 요한계시록 7장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7:9,
9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하나님이 보좌 앞에 우리 모두가 심판의 자리에 서게 될 것입니다. 심판의 자리입니다. 거기에서 하나님을 찬양할 것이고요. 그들이 하얀 옷을 흰옷을 입었다. 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종려 나뭇가지를 손에 들었다. 그리고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 어린 양에게 있도다.

*요한계시록 7:10,
10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그래서 우리의 구원은 예수님께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권능을 갖기를 원합니다. 더욱더 큰 계획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미래에 우리가 함께 정말 더 큰 일을 이루고 하나님을 위해서 더 큰 역사를 이루시는 모든 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 모든 영광 올려드립니다.


▶담임목사님 마무리 말씀.
-크리스찬 소니아 목사님이 남북 통일한 다음에 평양에서 집회할 날이 올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통일에 대한 모델을 통일이 된 모델, 모델을 여러 군데 찾고 있는데 그중에 하나를 독일 통해서 많이 찾고 있거든요. 베트남 이런 거 있지만 우리는 통일의 모델을 루마니아에서 찾아야 해요. 왜냐하면 루마니아는 김일성하고 가장 가까웠고 그다음 그 차우세스코가 아주 강력한 독재자였어요. 근데 하나님이 저렇게 역사하시는 것이에요. 우리는 그런 마음의 소원을 가지고 영광 돌리기 바라고 제가 평양을 여러 번 갔는데, 오 목사 또 좌파 아닌가? 그게 아니고요. 평양 과기대를 세우고 평양의 어려움들을 돕고, 식량 지원하고, 이런 관계에서 갔는데요. 제가 한 번은 아리랑 축제를 갔어요. 기가 차요. 경기장 능나 경기장에 하여튼 이제 복음 집회로 꽉 차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다시 한 번 주님께 감사합니다.

우리는 여기 북한 문제 전문가들도 많이 계시고, 우리 통일부에 우리 아마 차관도 계시고, 다들 계시는데 또 우리가 북사선도 있고 다 있는데, 우리가 이제 한 단계 더 올라가가지고 우리에게도 루마니아도 우리의 좋은 역할 모델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렇게 독일만 가지 말고, 우리가 새로운 어떤 길을 열어주셔야 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받으신 우리 순서 잠깐 보겠습니다. 소식지 참고.

▷보고 싶던 주의역사, 보았으니 담아두자!

















☆제21차 가을 글로벌 특별새벽부흥회(주후23년 10월 20일) 다섯째 날
제목: "한 달란트 받은 종이 쫓겨난 이유"
말씀: 마태복음 25:14~30

설교자: 박지웅 목사님(내수동교회)
ㅡㅡㅡㅡㅡ

*마태복음 25:14~30,
14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15 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16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17 두 달란트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18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19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그들과 결산할새.
20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22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23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24 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25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
26 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27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맡겼다가 내가 돌아와서 내 원금과 이자를 받게 하였을 것이니라 하고.
28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
29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30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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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지웅 목사님(내수동교회)
-우리에게 유명한 달란트 비유의 말씀입니다. 여러분 이 말씀의 핵심을 붙잡기 위해서는 우리가 질문을 해야 합니다. 오늘 설교 제목이죠. “한 달란트 받은 종이 쫓겨난 이유가 무엇인가?” 여러분 이 사람은 주인에게 책망을 받는 정도로 끝난 것이 아니고 극단적인 처벌 멸망 선언을 듣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가 이제 답을 찾아보려고 하니까 26절에 ‘악하고 게으른 종아!’ 이렇게 돼 있습니다. 우리가 이 말 때문에 이 사람이 도덕적인 문제가 있는 것 아닐까? 행동이 느리고 굼 뜨는 사람이 아닌가? 그렇지 않습니다. 나중에 다시 우리가 살펴보겠지만 여러분 여기 악한이라고 할 때에는, 단지 도덕적인 문제가 아니고 이건 관계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성경에서 악하다고 할 때는 주인과의 관계가 비틀어져 있는, 이 게으르다고 하는 것도 행동이 느리고 굼 뜨는 이런 차원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마음에 게으름이 있습니다. 마음에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거죠. 주인을 향해서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거죠.
여러분 이 쫓겨난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우리가 알려면 우리가 읽은 말씀 중에 24절, 25절을 다시 한 번 읽어야 되는데 한번 보십시오.

*마태복음 25:24~25,
24 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25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이 하는 말이 주인이요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무서운 사람이다. 심지 않는 데서 거기를 해치지 않는 것을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기 때문이에요.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는 거죠. 그래서 나는 당신을 두려워했고 그래서 나가서 달란트를 땅에 감춰두었습니다. 부족하지만 당신의 것을 받아주십시오. 여러분 이 말씀을 우리가 보면서 이 사람에게 뭔가 일말의 자신감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그렇죠?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간단합니다. 이 사람이 주인에게 하는 말이, 전혀 말이 안 되는 그런 말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주인도 자기 말을 어느 정도 납득하고 수긍할 수 있는 말이라고 스스로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여러분, 멸망의 선언이 이 책망 정도가 아니라, 극단적 처벌입니다. 멸망 선언이 떨어질지 알면서 주인 앞에서 이렇게 자신 있는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둘 중에 하나겠죠. 미친 사람이든지, 아니면 죽을 각오를 했던지 이러면 이 사람 미친 사람 아니거든요. 결국 이 사람은 자기가 이 말을 하면, 주인이 적어도 칭찬까지는 아니지만 적어도 자기 말을 어느 정도는 참작하고 인정하고 받아줄 줄로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실제로 이 사람이 이렇게 말을 하는 데는 근거가 있습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경 문맥을 우리가 좀 봐야 되는데 마태복음 25장은 마태복음 24장과 한 덩어리로 보아야 합니다. 붙어 있는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24장은 별명이 붙어 있는 유명한 성경입니다. 우리가 고린도전서 13장에 사랑 장,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 마태복음 24장 1장 전체가 종말에 대한 메시지로 꽉 차 있습니다. 종말에 대한 말씀 예수님께서 종말에 대한 말씀을 하신 후에 그다음에 이 종말에, 예수의 제자들이 붙들어야 될 ‘제자 도’에 대한 말씀이 바로 이어서 25장의 세 가지 비유를 말씀한 우리가 읽은 비유는 두 번째 비유란 말씀이죠. 그러니까 여러분 당연히 우리가 24장에 이 종말이 과연 어떤 시간인가 하는 것을 우리가 확인을 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종말은 어떤 시간입니다. 마태복음 24장 한 장을 전체를 우리가 이 시간 다 읽을 수는 없지만, 중요한 몇 구절을 한번 우리 한번 확인을 해보시면 마태복음 24장 6절, 7절 앞에 자막을 한번 보십시오.

*마태복음 24:6~7,
6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7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렇게 돼 있습니다. 난리와 난리의 소문을 듣겠고 민족의 민족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대단히 부정적이죠. 그다음에 9절, 10절에 한번 자막을 보십시오.

*마태복음 24:9~10,
9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 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10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실족하게 되어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이렇게 돼 있습니다. 너희들이 제자들이 환란에 넘겨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너희들을 죽일 것이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게 될 것이다. 더 나아가서 믿는 사람들도 사는 것이 힘드니까 어떻게? 많은 사람들이 제자들을 말하는데요. 그때 사람들이 제자들이 서로 실족하게 될 것이고, 서로 미워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마태복음 24장에 말씀하는 이 종말의 시간은 대단히 부정적인 부정적이라는 것은 대단히 힘든 시간, 믿음의 장사를 할 수 없는 시간, 기본적으로 이 종말의 시간은 대단히 심각한 영적인 불경기와 같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멀리 볼 필요 없이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이 얼마나 힘이 듭니까?

한 달란트 받은 종이 하는 말도 바로 그 말인 것입니다. 여러분 대단한 불경기에 장사할 수 있습니까? imf 시대가 왔을 때 내가 돈 빌려서 투자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 그때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가만히 있어야 돼요. 그러니까 투자를 해야 될 때는 투자를 해야 되고 장사를 해야 되고 지금 이 불경기일 때는 시세를 봐야 되는 거죠. 그러니까 이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머리가 돌아가는 사람입니다. 투자할 때, 그리고 하지 말아야 될 때, 이걸 분별할 수 있는 사람 그러니까 이 사람도 나름대로 자기가 붕괴를 했던 것입니다. 원금이라도 지켜야 되겠다. 그러니까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 그대로 25절에 ‘주인이여! 보소서 부끄럽지만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 받아주십시오.’ 이 사람이 하는 말이 여러분 아주 틀린 말이 아니라는 것은, 주인도 어느 정도는 수긍을 해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읽은 말씀이 26 27절에 이렇게 돼 있습니다.
*마태복음 25:26~27,
26 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27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맡겼다가 내가 돌아와서 내 원금과 이자를 받게 하였을 것이니라 하고.
-그러면, 그래 네가 하는 말이 맞다고 치자, 그러면,,, 이렇게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주인도 이 사람이 하는 말이, 아주 얼토당토 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주인도 알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오늘 본문을 읽지는 못했지만 19절에 보면 이런 말이 있는데요.

*마태복음 25:19,
19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그들과 결산할 새.
-19절에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여기 오랜 후예라는 말이 아주 의미가 심장합니다. 주인이 종들을 남겨놓고 떠났는데 다 올 생각을 안 하는 거에요. 그러니까 종들의 느낌에는 ‘정말 왜 이렇게 안 올까?’ 여러분 우리가 믿음 생활을 할 때, 우리가 그런 생각을 합니다. 주님이 다시 오실 줄 내가 믿지만 왜 이렇게 안 올까?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서 말이죠. 이 주인은 설상가상으로 이 재산을 아니 이런 상황에서 주인은 오지도 않고 불경기인데, 도저히 장사할 수 없는 시간인데, 이런 상황에서 주인은 정말 무서운 사람이다. 이런 주인 밑에서 원금이라도 잃어버리면 내가 뼈도 못 추리겠다. 이런 생각을 하는 거죠. 여러분 이 한 달란트 받은 종은, 바보가 아닙니다. 여러분 이 사람은 머리가 기차게 돌아가는 사람입니다. 냉정한 사람이고요. 능력 있는 사람이고요. 적어도 시대를 분별할 줄 시세를 분별할 줄 아는 이 사람이 하는 말이 아주 틀린 말이 아니에요. 근데 왜 주인은 그러면 이 사람에게 멸망 선언을 하는 것일까요? 아니 원금이라도 잃어버리지 않았습니다. 부족했지만 그래도 원금을 잃어버리지 않고 그대로 가지고 오고 있습니다. 왜 쫓겨나느냐 이거죠. 여러분 문제는 이 사람이 하는 말이 문제가 아닙니다.

여러분 여기에 우리가 집중을 좀 해야 되겠는데요. 말이 문제가 아니고 여러분 통찰이라는 말을 쓰죠.
꿰뚫어서 아닌 것 마음 중심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26절과 27절 특별히 27절 오늘 말씀이 가장 중요한 힌트를 주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5:26-27,
26 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27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맡겼다가 내가 돌아와서 내 원금과 이자를 받게 하였을 것이니라 하고
-주인이 대답하니 악하고 게으른 적 나는 신지 않은 사고를 해치지 않을 위해서 몸을 좀 네가 알았느냐? 그러면, 그러면, 그다음에 여러분 잘 보십시오.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치리하는 자에게 맡겨서 이자를 가져왔어야 될 거 아니야. 이자를 가져와야 될 거 아니야. 이자라도 가져와야 될 거 아니야. 여러분이 이자라도 가지고 오라는 이 말은 이 주인이 내가 한 푼이라도 더 챙겨야 되겠다. 욕심을 부리고 있는 말이 아니고요. 이 종이 주인 앞에서 하는 말이, 이게 마음을 숨기고 있는 거짓말 같은 말이라는 것을 폭로하는, 예 드러내는 증거를 제시하는 것입니다. 무슨 말씀인지 접수가 되시나요? 증거를 제시하는, 이런 이야기죠. 그래 좋았어. 네가 하는 말이 맞다고 치자. 그러나 나는 너를 인정할 수가 없어. 네가 하는 말처럼 이 세상에 도저히 장사를 할 수 없고, 너무너무 영적인 불경이라 가지고 도무지, 도무지 장사할 수 없는 시간이라고 치자. 근데 네가 정말 나를 사랑하고 나를 향한 믿음과 사랑이 있어서, 정말 이 사랑을 돌려드리고 싶은 마음이 네 속에 진짜 있었다면 너는 이 자리를 가져왔어야 돼. 네가 장사를 하지 않은 것은 환경의 문제가 아니야. 네가 장사를 하지 않은 것은 상황이 어려웠기 때문이 아니다. 너는 나를 향하여 사랑과 믿음이 없는 주인은 통찰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입니다. 네가 하는 말은 어쩌면 맞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네 중심은 가짜다. 너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네 속에는 나를 향한 사랑의 불이 하나도 없는 것이다. 이자를 가져와라. 이 자를,

※여러분, 오래전에 다이빙 사고를 당했던 미국의 다이빙 선수, 조니 에릭슨 타다. 이 사람이 사지가 마비되고 난 뒤에 연필을 입에 물어서 그림을 그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조니 에릭슨 타다는 장사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왜? 몸을 전혀 가눌 수가 없으니까요. 근데 이게 연필을 물고 그림을 그릴 때, “주 예수 사랑 기쁨이 내 마음속에 넘치네.” 이 고백을 그림을 그리고 입으로 이 연필을 물어서 표현을 했을 때 여러분 그는 장사를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자’를 가지고 온 것입니다. 이자를, 왜냐하면 그 중심에 있는 사랑 때문입니다. 사랑, 주인을 향한 사랑과 믿음 때문입니다. 믿음 때문입니다.

여러분, 결국 이 한 달란트 받은 종은 도대체 어떤 사람이냐? 여러분, 이 사람은 말씀하신 대로 머리가 기차게 돌아가는 사람입니다. 시대를 종결할 줄 아는 사람, 냉정한 사람과 계산할 줄 아는 사람, 어쩌면 모든 것을 다 갖춘 사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한 가지가 없는 것입니다. 그 한 가지가 무엇인가요? 사랑의 불이었습니다. 사랑의 불, 주인은 와서 책망을 하는 것이 아니고요. 쫓아 내버려요. 너는 내 백성이 아니다. 너는 중심이 틀렸어. 여러분,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종말을 사는 제자가 누군지에 대해서 아주 분명한 그림을 그려주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소멸하는 불이신 하나님 사랑의 불이신 하나님 그 하나님을 우리의 가슴속에 모시고 사는 사람들, 여러분 그 사람에게 사랑의 불이 없는 것이 이게 가능한 것일까요? 예수님 말씀은 불가능하다. 불가능하다. 그건 내 백성이 아니다. 우리 집 아이들이 지금은 다 컸는데 어릴 때였습니다. 제가 아주 어릴 때 아주 기억나는 장면이 자기 전에 동화책을 읽어주는데 그때 무슨 애들 있는 무슨 도깨비 나오는 동화책인데 은혜로운 시간에 도깨비라는 말이 나와서 죄송합니다. 도깨비 나오는 이야기인데, 도깨비들이 자기들끼리 애들 새끼 도깨비들이 모여가지고 자기들끼리 노는데 어떤 도깨비가 할아버지 도깨비 방망이를 빌려와가지고 뚝딱 했더니 불이 나오는 거예요. 옆에 있는 친구들이 와 하고 박수를 칩니다. 근데 불이 나왔는데 걔 보니까 뜨겁지가 않아요. 그래서 애들이 막 옆에 있는 도깨비들이 막 놀리고 막 이렇게 하는 그런 것이 그러니까 불은 불인데 뜨겁지가 않아요. 제가 그걸 옆에서 이렇게 동화책을 읽어주다가 계시를 받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 생각이 떠나지가 않아요. 분명히 불같이 생겼는데 뜨겁지가 않은 거에요. 여러분 이것이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경고와 같은 메시지입니다.

※미국의 복음주의자 프란시스 체인이라고 하는 중국계 미국인인데 이분이 하는 말이 이분이 쓴 책의 제목이 ‘크레이지 러브(crazy love)’라는 책이 있습니다. 기자들이 와서 물었습니다. 당신 책 제목이 좀 이상하지? 왜 하필 크레이지가 도대체 미친 사람이 도대체 이게 뭐냐? 그러자 프란시스 체인이 하는 말이 그럼 크레이지라는 말 말고 어떤 말이 적당하다고 생각하냐?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크레이지라는 말보다 더 적당한 말이 없는데? 이 프란시스 체인은 그런 이야기를 해요. 자기가 한평생 아버지의 사랑을 가깝게 느낀 게 30초였다. 그래요 30초. 자기가 태어날 때 자기의 생모가 돌아가시고 그리고 새 엄마가 자기 9살 때 돌아가셨는데, 그때 가족들이 너무 슬퍼가지고 병원에 앉아 있는 그때 아버지가 자기에게 어깨에 손을 얹고, 위로를 해주는 그게 30초인데, 그게 아버지 사랑을 받은 전부였던 거예요. 그러니까 아버지가 얼마나 무섭고 얼마나 참 가까이 하기 힘든 게 이런 그러니까 자기는 하나님을 믿어도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잘 믿느냐? 하나님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것 이게 제일 잘 믿는 것이다. 이런 분이 하나님의 사랑을 제대로 만났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셔서 우리를 찾아오셨다고 하는 이 복음의 메시지에 부딪히고 난 다음에 이 사람이 크레이지, crazy가 돼버린 거예요.

그리스도인들이 크레이지가 되지 않는 것이 이게 불가능하다. 프란시스 체인의 말이 맞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이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을 향해서 하시는 말씀이 그 말씀입니다. 여러분 그렇다면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여기 나와 있는 다섯 달란트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긴 사람 두 달란트 또 두 달란트를 남긴 사람 이 사람은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요? 이 사람은 한 달란트 받은 사람과 정반대에 있는 사람입니다. 이게 지금 단지 성실성의 문제나 단지 이게 능력의 문제가 아니다 이거죠. 이 사람들은 능력이 많은지, 적은지 그게 문제가 아니라, 이 사람들은 주인에 대한 사랑이 충만했던 사람이에요. 아무리 봐도 이 사람들도 바보가 아니니까요. 아무리 봐도 지금 이게 장사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이 사람들도 알아요. 그런데 장사를 한 거죠. 왜? 주인이 장사를 하라고 했으니까,,, 그거 말고는 없습니다. 미친 척하고 장사를 한 거죠. 나타난 결과는 다섯 달란트가 남고 두 달란트가 남습니다. 이거는 자기의 실력이 아니고 이거는 기적이었던 것입니다. 마치 누구하고 비슷한 거 아니까 여러분 구약 성경에 나오는 다윗 다윗이 이스라엘 왕이 되고 나서 제일 먼저 했던 일이 뭔가? 하니까 예루살렘 성을 정복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럼 다윗이 예루살렘 성을 정복하는 순간까지 예루살렘은 이스라엘 땅이 아니었다는 뜻이냐? 그렇습니다. 400년 전에 이미 정복을 했었어야 되는데 잠시 정복을 했다가 다시 여부스 족속이 예루살렘 성을 차지하고, 서브 문화를 그냥 흘려보내는 그러니까 무려 400년 동안 여러분 알 박기 아세요? 알박기 마치 이스라엘 땅 안에 알 박기를 하듯이 이 예루살렘 성이 여부스 족속의 땅이었던 것입니다. 다윗은 그것을 보면서 분통이 터지는 것입니다. 아니 400년 전에 정복을 했었어야 돼. 근데 400년이 지나도 정복은 왜 정복을 못 했을까요? 예루살렘 성은 난공불락(難攻不落)의 성입니다. 3면이 절벽으로 깎아지는 거죠. 한쪽만 이렇게 딱 막아버리면 이걸 정복을 할 수가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저것은 영원히 우리가 정복할 수 없는 것이다. 다윗은 그렇게 생각을 안 한 거죠. 왜? 이유는 간단합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 우리의 주인이 정복을 하라고 했다 뿐 믿음이었고요. 다윗의 어떤 실력이 아니라, 그래서 다윗은 그때부터 고민을 했던 것이고 사무엘하 5장 8절에 보면 이런 말이 있습니다.

*사무엘하 5:8,
8 그 날에 다윗이 이르기를 누구든지 여부스 사람을 치거든 물 긷는 데로 올라가서 다윗의 마음에 미워하는 다리 저는 사람과 맹인을 치라 하였으므로 속담이 되어 이르기를 맹인과 다리 저는 사람은 집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더라.
-물 숫자와 입구자, 수구(水口), 옛날 성경에는 물의 통로로 들어가라. 이런 말이 있는데 다윗이 이 물 통로를 찾아내가지고, 특공대를 보내가지고 단 하루 만에 정복을 해버립니다. 여러분 400년 동안 하지 못했던 이 일을 다윗이 하루 만에 정독을 해버립니다. 이건 뭔가 하니깐요. 다윗이 하나님의 사랑에 붙들렸기 때문에, 우리가 여러분 속된 말로 또라이라는 말이 다윗은 또라이였어요. 사랑에 붙들린 또라이. 그러고 났더니 기적이 일어난 것이죠. 예루살렘 성을 정복한 것은 이건 기적이었습니다. 기적.

한 달란트 받은 사람하고 참 비슷한 사람 한 사람 있습니다. 가롯 유다입니다. 가롯 유다. 여러분 요한복음 12장에 보면 마리아가 향유 옥합을 깨뜨릴 때, 그때 가롯 유다가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저 비싼 향유 옥합을 300 데나리온에 팔아가지고 가난한 사람들을 나누어주면 참 좋겠다. 여러분 이게 얼마나 좋은 말입니까? 근데 문제는 성경에 뭐라고 돼 있는가 하니까 이렇게 말하는 것은 저는 도적이라 이렇게 돼 있어요. 저는 도둑이라 왜 그럴까요? 가리유다는 머리가 기차게 들어가요. 딱 이거 보니까 벌써 이게 지금 또 이게 견적이 나오는 거죠. 이거 300데나리온에 팔아 가는 얼마나 좋은 이야기입니까 한마디로 옳은 이야기입니다. 옳은 이야기. 근데 하나님께서는 아니다 이거죠. 너는 가짜다. 왜? 그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요. 그의 중심에 사랑의 불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아무리 옳은 이야기를 해도 인정이 안 되는 거죠. 이게 하나님께서 인정이 안 됩니다. 교회는 여러분 옳은 말을 하는 사람들이 교회를 세우는 것이 아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사랑의 불이 뜨거운 사람이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예수님께서 이 종말의 제자 부를 말씀하시는데 복잡하지 않습니다. 딱 한 가지입니다. 종말을 사랑하는 내 제자들은 한 달란트 받은 사람, 이런 사람이 아닐 것이다. 머리는 기차게 돌아가고 계산이 되고 말도 어쩌면 맞을지도 몰라. 그러나 나는 그를 내 제자로 인정할 수가 없어. 그러나 능력이 좀 부족할지 몰라도 그 속에 사랑의 불이 있는 사람, 그래서 주인이 말했기 때문에 그냥 미친 척하고 바보처럼 믿으면서 걸음걸음으로 걸어갔던 사람, 그 사람을 통해서 나타나는 기적입니다.

우리 한국교회 설교 잘하기로 유명하신 한 원로 목사님 제가 이름을 굳이 밝힐 필요가 없을 것 같아서 한 목사님 제가 이렇게 가까이 한번 식사를 하는데 이분이 어떤 말씀을 하는가 하니까요. 손자가 태어나기 전까지는 손자가 태어나기 전까지는 인생을 논하지 말래요. 세상은 완전히 달라진다는 겁니다. 너무 사랑스럽다 이거죠. 근데 한 번은 이 원로 목사님과 사모님 그러니까 이제 할머니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손자 셋이 이렇게 있는데, 그 원로 목사님 말이 여자들은 꼭 이렇게 뭔가를 확인해야 되는지 자기는 이해를 못하겠대요.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그 할머니께서 그 할머니가 이 손자를 앞에 앉혀놓고, 질문을 하십니다. 질문을, “야 너 이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사 일본이 누구야?” 여러분 얘가 0.1초 만에 “할아버지!!” 이렇게 나온 거에요. 여러분, 이 할아버지가 가만히 행복했겠습니까? 정말 나는 죽어도 좋아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너무 행복하셨대요. 이 할머니가 의기소침해져가지고 한 번 더 물었습니다. 내가 1번 아니면 2번이라도 해야 되겠다. 그러면 “2번은 누구야? 2번” 이 아이가 대답했습니다. “없어.” 이 원로 목사님이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정말 지금 혀 깨물고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해요.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아니 할아버지가 1번인데 2번이 없다는 거야 2번이? 이 할머니가 여기서 포기를 했어야 되는데 마지막 질문 한 번 더 있습니다. “야 이 할머니가 2번하면 안 돼?” 이 손자가 대답했습니다. “내 마음은 나눌 수가 없어.” 저는 여러분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바로 저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 이보다 더 좋은 환경이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 자리에 굉장히 많은 분들이 오셨는데, 여러분 우리 사람 한 사람을 향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시는 거 개인적으로 하시는 말씀은 이것입니다. ‘네가 내 1번이다’. 근데 문제는 2번이 없어요. 2번이 없어요. 그리고 ‘하나님의 마음은 나눌 수가 없어요.’ 100년 전에 웨일스에서 큰 부흥이 왔을 때 그때 이 부흥을 경험했던 사람들이 불렀던 노래 지금도 여러분 우리가 부르는 노래 있습니다. ‘바다 같은 주의 사랑’!~~노래 있죠 그 1절 2절은 이제 우리가 보통 부르는데 번역이 잘 안 된 것 같아요. 3절에 보면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영어 가사에 보면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You Alone Shall we my glory-당신만이 나의 영광입니다.’ 그다음에 뭐라고 돼 있는가 하면요. Nothing in the world that I see. 다시 무슨 이야기입니까? 이 세상에 내 눈에 보이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우리가 흔히 하는 말대로 눈에 아무것도 보이는 게 없는 거 하나님의 사랑에 부딪히고, 하나님의 영광이 내 눈에 한 번 들어왔더니 그다음부터는 눈에 뵈는 게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종말을 살아가는 제자들의 고백입니다. 왜? 네가 나의 1번이고 2번은 없으며, 내 마음과 나눌 수 없다고 우리 주님께서 이걸 확정을 해버리셨어요. 확정을 로마서 5장 8절 우리가 아는 말씀처럼,

*로마서 5:8,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 아버지의 사랑을 확정하셨다. 그랬습니다. 데몬스트레이션(Demonstration-입증,실증) 확정을 해버리셨을 때, 그러고 났더니 우리의 눈에 뵈는 게 없는 거죠. 눈이 뒤집어지는 것이죠.

며칠 전에 한 집사님 만났습니다. 우리 교회에 두 달 전에 남편이 소천을 하셨습니다. 저를 보고 우시면서 “목사님 나는 어떻게 살면 좋아요?” 여러분, 오늘 이 시간에 우리가 주님 앞에 이 질문을 한다면 주님께서 내게 뭐라고 말씀하실까요? 어떻게 살면 좋겠습니까? 이 영적인 불경기 시대에, 도저히 장사할 수 없는 시기에, 아무리 봐도 믿음으로 사는 것이 불가능해 보이는 이 시기에 이때에, 하나님 내가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되나요? 질문을 한다면 오늘 주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대답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사로잡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고요. 여기에 완전히 붙잡히고 사로잡히는 거 사로잡히는 것, 사로잡힌 그 사랑 때문에 적군을 달리고, 시편 18편에 있는 대로 담을 뛰어넘고, 사로잡힌 사랑 때문에 정말 넘을 수 없는 담을 뛰어넘고, 이룰 수 없는 정말 이 기적을 만들고 갈 수 없는 곳을 가고, 일어나고 걸어가고 달려가고, 날아올라가고ㅡ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십니다. 아멘. 종말을 사는 제자들에게 주님께서 여기 하시는 ‘제자도’ 제자도 이 제자도는 이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이 자리에 있는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에 사로잡히기를 바랍니다. 도저히 장사할 수 없는 이 시기에, 우리가 사랑에 사로잡힌 가운데, 그 사랑 때문에 우리의 한계를 뛰어넘고, 여러분 그런 말이 있죠. 가시란 뽑는 것이 아니고 녹이는 것이다. 그 사랑이 우리의 가시를 그냥 녹여버리고 우리 가슴에 박혀 있는 수많은 상처의 가시를 그냥 녹여버리고 그리고 또 전진하게 하고 시간을 초월하고, 공간을 초월하고 땅 끝까지 나가, 사랑의 교회 이름 그대로 말이죠. 하나님의 사랑에 사로잡힌 하나님의 백성들, 종말의 제자도, 종말의 제자도입니다.

♣요약
우리는 주님의 사랑에 완전히 사로잡혀 역사가 있기를 이번 기회가 되어, 이 사랑이 우리로 숨 쉬게 하고, 이 사랑이 우리를 걸어가게 하고, 이 사랑이 우리로 오늘 하루를 견디게 하고, 이 사랑에 걷고 뛰고, 달리게 만드는 주님의 사랑에 완전히 사로잡힌 종들에 되어, 믿음의 장사를 할 수 없는 영적인 이 불경기의 시기에, 우리에게서 상상할 수 없는 영적인 괴력이 우리에게서 나타나는 것을 경험하는 기적이 우리에게 있기를 소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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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금융 상식 퀴즈 O X] 10월 16일 (817)
1. 기업이 시장의 기대를 뛰어넘는 경영 실적을 발표한 상황을 뜻하는 말은?
① 베어 스티프닝
어닝 서프라이즈
③ 프로젝트 파이낸싱
④ 스태그플레이션
2. 물가가 계속 상승하고 있지만 상승폭은 점차 둔화되는 현상을 가리키는 말은?
① 하이퍼인플레이션 ② 인플레이션 디스인플레이션 ④ 디플레이션
3. 이달 초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하면서 중동 지역 정세의 불확실성을 높인 팔레스타인의 무장 정파는?
하마스 ② 유로존
③ 어나니머스 ④ 데카콘
4. 주가가 크게 올라 투자자에게 놀라운 수익률을 안겨다준 종목을 뜻하는 말은?
① 자산효과 ② 황금주
산타랠리 ④ 텐배거
5. 효율적인 통화신용정책 수립 및 집행을 통해 물가안정을 도모하는 것을 목적으로 설립됐으며, 화폐 발행도 맡고 있는 기관은?
① 기획재정부
② 금융위원회
한국은행
④ 세계은행
6. ‘매파’라 불리는 통화정책의 방향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은?
① 물가안정 중시
② 인플레이션 파이터
③ 긴축 선호
완화 선호
7. ‘D1’ ‘D2’ ‘D3’는 무엇과 관련된 경제지표일까?
① 가계빚 나랏빚
③ 노동유연성 ④ 양성평등
8. ‘M1’ ‘M2’ ‘Lf’는 무엇과 관련된 경제지표일까?
통화량 ② 주택보급률
③ 출산율 ④ 외국인직접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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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고금리·고물가·고환율 '3고(苦)' 또 불어닥친 경제 한파.
날씨가 부쩍 쌀쌀해졌습니다. 이제 곧 단풍 드는 가을을 지나 겨울이 오겠지요. 경제에도 계절 변화와 비슷한 주기가 있습니다. 따뜻한 봄과 뜨거운 여름처럼 경제활동이 활발할 때도 있지만, 요즘 날씨처럼 차갑게 식을 때도 있습니다.
경제의 전반적 상황, 즉 ‘경제 날씨’를 경기(景氣)라고 합니다. 안타깝게도 요즘 경제 날씨는 맑지 않습니다. 먹구름이 가득합니다. 고금리·고물가·고환율의 ‘3고(高)’가 가계와 기업을 짓누르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해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이 더 커졌습니다.
물론 경기는 변합니다. 좋았다 나빴다를 반복합니다. 날씨가 달라지고 계절이 바뀌듯 말이죠. 이것을 경기변동 혹은 경기순환이라고 합니다. 경기가 항상 좋으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호황 끝에서 불황이 찾아오고, 불황의 정도가 지나쳐 심각한 위기로 치닫기도 합니다.
경기변동은 계절의 변화처럼 피할 수 없는 것일까요. 경기변동이 생겨나는 이유는 무엇인지, 과거에 경험한 경제위기로부터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인지 좀 더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확장 → 후퇴 → 수축 → 회복 사계절처럼 경제도 순환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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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경제는 일부 예외를 제외하고는 거의 매년 성장하고 있습니다. 국민소득과 생활수준이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간혹 경제 상황이 유난히 좋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기업이 만든 물건이 잘 팔리지 않고, 일자리를 잃는 근로자가 늘어나기도 합니다. 가계의 소비와 기업의 생산, 투자, 고용 등이 경기에 좌우됩니다. 자연에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이 있듯, 경기는 확장→후퇴→수축→회복을 반복합니다. 이런 경기변동은 어떤 이유로 발생하는 것일까요.
★수요 충격과 공급 충격
경제학자들은 경기변동의 원인을 크게 수요와 공급 두 가지 측면에서 찾습니다. 먼저 수요 쪽을 살펴볼까요. 지구촌 어디선가 전쟁이 일어나거나 주가, 집값 등이 큰 폭으로 하락했다고 가정해봅시다. 미래가 불안해진 사람들은 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늘릴 것입니다. 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미래가 불투명하다면 투자를 늘리기 어렵습니다. 가계도, 기업도 돈을 쓰지 않으니 경제의 총수요가 줄어듭니다. 결국 경제활동 전반이 얼어붙고 일자리가 감소하는 불황이 찾아옵니다.
이 같은 수요 충격으로 인한 불황의 대표적 사례가 1930년을 전후해 미국에서 시작돼 전 세계를 휩쓴 대공황입니다. 물건을 만들어도 팔리지 않으니 기업들은 줄줄이 망했고, 대량 실업이 발생했습니다. 비슷한 일이 공급 쪽에서도 벌어질 수 있습니다. 이상기후로 농산물 가격이 급등하거나 중동에서 전쟁이 일어나 석유 가격이 올랐다고 합시다. 농산물, 석유 등은 상품의 원재료입니다. 즉 기업의 생산 원가가 높아진 것입니다.
원가 부담이 커진 기업은 생산을 줄입니다. 공급이 감소하는 것이죠. 공급이 감소하면 물가가 오릅니다. 소비자는 비싼 물가가 부담스러워 지갑을 닫습니다. 1970년대에 발생한 ‘오일 쇼크’가 공급 충격으로 인한 불황이었습니다. 중동 국가들이 석유 생산을 줄이자 석유 가격이 크게 올랐고, 원가 부담으로 인해 기업의 생산과 투자가 위축됐습니다.
★경기침체 해결책 논쟁
경기침체가 깊어지면 망하는 기업이 늘어나고, 대량 실업이 발생해 국민 고통이 커집니다. 그래서 정부는 경기 부양책을 내놓습니다.
그러나 정부가 경기변동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에 대해선 경제학자 사이에 의견이 갈립니다. 어떤 경제학자는 경기가 침체될 땐 정부가 적극적으로 부양책을 내놔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경기 침체기엔 가계와 기업이 돈을 쓰지 않으니 정부라도 나서서 돈을 써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케인스학파’라고 불리는 경제학자들이 주로 이런 주장을 펼칩니다. 대공황 시기에 정부의 적극적 개입을 주장한 존 메이너드 케인스에서 시작된 학파입니다.
정부의 개입이 경기변동 폭을 더 키울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경제학자도 있습니다. 이들은 가격의 자동 조절 기능에 의해 경기변동도 자연스럽게 조절된다고 말합니다. 루트비히 폰 미제스, 프리드리히 폰 하이에크 등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자들이 대표적입니다.
★인간 탐욕과 경제 위기
인간의 탐욕이 경기변동 폭을 키우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경기가 좋을 때 사람들은 호황이 마치 영원히 지속될 것 같은 착각에 빠집니다. 무리하게 돈을 빌려 공장을 짓고 주식과 부동산에도 투자합니다. 그 과정에서 시장에 거품이 낍니다. 하이먼 민스키는 호황이 끝나면 돈을 빌려 투자한 사람들이 빚을 못 갚게 되고, 자산 가격이 급락하면서 금융위기가 온다고 했습니다.
조지프 슘페터는 기업가의 혁신과 기업 간 경쟁의 결과로 경기변동을 설명했습니다. 어느 한 기업이 혁신적인 제품과 서비스로 높은 이윤을 올리면 다른 기업들이 그 기업을 모방해 비슷한 제품과 서비스를 내놓으면서 경기는 호황으로 접어듭니다. 그러나 여러 기업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과정에서 기업의 이윤은 줄어들고, 그 결과 불황이 시작됩니다.
그 원인을 무엇으로 보든, 어떤 해결책을 제시하든 경기변동은 시장경제에서 피할 수 없는 일로 받아들여집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경기를 잘 파악해야 소비·저축·투자 등을 보다 현명하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날씨와 계절에 따라 새로운 옷을 준비하듯 말이죠.
NIE 포인트
1. 경기변동이란 무엇인지 설명해보자.
2. 경기변동의 원인을 수요 측면과 공급 측면으로 나눠 얘기해보자.
3. 케인스학파와 오스트리아학파의 차이점을 알아보자.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금융위기…예고 없이 반복되는 경제위기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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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가 좋지 않은 것을 불경기 혹은 경기 침체라고 합니다. 침체의 정도가 심하면 불황이라고 하죠. 때로는 상황이 더욱 심각해져 ‘경제위기’가 일어나기도 합니다. 고등학교 경제 교과서에도 실린 ‘금 모으기 운동’ 사진을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부모님 세대에선 외환위기를 한겨울 추위보다도 혹독했던 시절로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국가부도 사태’ 외환위기
외환위기는 한국 경제에 가장 큰 충격과 상처를 남긴 경제위기였습니다. 당시 언론은 ‘국가부도 사태’ ‘단군 이래 최대 위기’라고 했습니다. 외환위기의 발생 과정과 원인은 설명하기가 매우 복잡합니다. 가장 직접적으로는 은행을 비롯한 우리나라 금융회사들이 외국 은행으로부터 빌려온 돈을 갚지 못한 것이 문제였습니다. 이런 경우 정부가 은행을 대신해 빚을 갚을 수도 있지만, 당시 정부가 갖고 있던 외환보유액은 외채를 갚기엔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결국 우리나라는 1997년 말 국제통화기금(IMF)에서 ‘구제금융’이라는 명목으로 외화를 빌려와야 했습니다. 그 와중에 벌어진 것이 금 모으기 운동이었습니다. 국가 부도를 맞아 국민이 아기 돌반지, 결혼반지까지 내놓으며 외채를 갚는 데 보탠 것이죠.
빚을 갚지 못한 은행들은 줄줄이 파산했고, 은행이 망하자 더 이상 돈을 빌릴 수 없게 된 기업들도 쓰러졌습니다. 1998년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은 -5.1%로 곤두박질쳤고, 실업자는 149만 명으로 1년 만에 거의 100만 명이 늘었습니다. 실업이 늘고 취업난이 심해지면서 사오정(45세 정년), 이태백(20대 태반이 백수)이라는 씁쓸한 신조어도 생겨났습니다.
★미국에서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
외환위기로부터 10년 후 또 한 번의 경제위기가 찾아왔습니다. 이번 위기는 미국에서 시작됐습니다. 문제의 발단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라고 하는 미국의 저소득층 대상 대출이었습니다. 저소득층이 집을 살 때 돈을 빌려주는 대출 상품이었죠. 2007년 무렵 미국의 집값이 하락하고 빚을 못 갚는 사람이 늘어났습니다. 그러자 돈을 빌려준 은행들이 도산하기 시작했죠.
망하는 은행이 점점 늘어나는 가운데 2008년 9월엔 당시 미국 내 4위 투자은행이던 리먼브러더스가 파산을 신청합니다. 이후 세계적으로 주가와 부동산 가격이 급락하고, 은행 대출이 막히면서 경제가 얼어붙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큰 여파가 미쳤습니다. 2009년 경제성장률은 0.8%로 외환위기 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고, 2008년 상반기 900원대였던 원·달러 환율은 그해 말 달러당 1500원대까지 올랐습니다.
우리나라는 기업들의 국제 경쟁력을 바탕으로 수출을 늘리면서 위기의 터널을 빠져나왔습니다. 미국 중앙은행(Fed)을 비롯한 주요국 중앙은행의 기준금리 인하와 한·미 통화 스와프 등이 시장을 안정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인플레 부작용 낳은 코로나19 팬데믹
여러분이 기억하는 범위에서 경제위기에 가장 가까웠던 사건은 2020년 초 시작된 코로나19 팬데믹일 것입니다. 전염병에 대한 공포로 경제활동이 위축되고 국가 간 교역이 급감했습니다.
그래도 코로나19 팬데믹은 외환위기나 글로벌 금융위기에 비하면 경제가 큰 충격을 받지 않고 넘어간 편입니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 비슷하게 주요 국가가 금리를 대폭 내려 시장에 돈을 풀면서 또 다른 위기가 오는 것을 막았습니다.
그러나 돈 풀기 정책은 인플레이션이라는 부작용을 낳았습니다. 코로나19 위기가 끝나자 전 세계적으로 물가가 급등하기 시작한 것이죠. 그러자 각국 중앙은행은 방향을 바꿔 금리를 급격하게 올렸습니다. 물가를 잡으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그로 인해 가계와 기업의 이자 부담이 커졌습니다.
현재 경제 상황은 어떨까요. 고금리·고물가·고환율의 이른바 ‘3고(高)’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경제성장은 둔해지는데 물가상승률은 높습니다. 정부는 일부에서 거론되는 위기설에 대해 “근거가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과거를 돌아보면 위기는 예고 없이 찾아왔습니다. 제2의 외환위기 같은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NIE 포인트
1. 외환위기의 발생 과정을 알아보자.
2. 우리나라가 경제위기를 어떻게 극복했는지 알아보자.
3. 코로나19 엔데믹 후 인플레이션이 발생한 이유를 설명해보자.
유승호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ush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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