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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흥헌신 토요새벽비전예배(주후 2024년 01월 13일)
제목: "믿음 계승이 희망입니다"
말씀: 로마서 4:16~17
대표기도: 한승환 장로님(주일학교 담당)
찬양인도: 주일학교 연합 찬양대
사회: 김대규 부목사님
말씀읽기: 윤찬영 형제(대학6부), 윤선미 자매(청년N국)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ㅡㅡㅡㅡㅡ

*로마서 4:16~17,
16 그러므로 상속자가 되는 그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 그러하니 아브라함은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17 기록 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토비새에 나온 여러분들 환영합니다. 오늘 이 이 본당뿐만 아니라, 지금 우리 대학부가 안성 수양관에서 대학 8부까지 있는데, 3부가 같이 모여서 이 아침 우리 겨울 수양회를 하고 있어요. 안성수양관 나오시면 박스 한 번 칩시다. 아니 한 번 더 가까이 보여줘 봐요. 이야 “여호와 닛시”....뭐라고 돼 있어요? 저기 히브리어 읽을 수 있어요? 저기 히브리어로 여호와 닛시가 뭡니까? 우리 대한국은 이번 시간을 통하여 놀라운 하나님의 사명과 비전을 발견하고 돌아올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박수합니다. 감사합니다.

-오늘은 이 칠천 기도회 목사 다음 세대 발대식을 마치고, 오늘 우리 공동의회가 있기 때문에 제가 오늘 짧게 말씀을 좀 드리겠습니다. 오늘 하나님 앞에 우리가 나와서 지금 이렇게 전철 이제 6시 한 20분 돼야 이제 전철이 들어오거든요. 그러니까 그런데도 불구하고 일찍 모셔서 기도한 여러분들 하나님 각자의 기도를 하나님이 응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평생의 기도의 제목이 응답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저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토요 비전 새벽 예배에 나와 가지고 매주 토요일마다 나와서 평생의 기도 제목을 가지고 기도할 때에 마치 여러분들이 여리고 성을 매일 하루에 한 바퀴, 마지막 7일째, 7바퀴 도니까 총 몇 바퀴입니까? 계산해야 됩니까? 총 13바퀴, 13바퀴 돌고 난 다음에 그 금성철벽 그 강고한 여리고성이 무너진 것처럼 사랑의 교회 모든 성도들 개인의 기도 제목들도 토비새에 나와서 계속 기도할 때, 우리 앞에 있는 열고 성이 무너질 줄로 확신합니다. 마찬가지로 또 국가를 위하여 기도할 때도 국가를 위한 간절한 기도의 제목이 해결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저 지금 북한에서 김정은 해가지고 핵을 쏜다. 그리고 남한을 뭐 한다 지금 다 여리고성, 지금 11바퀴째까지 가고 있는 거예요. 지금 그러니까 우리가 여기서 결정적으로 매주 토비새 마다 앞으로 몇 달을 기도할 때 역사가 일어날 것이에요.

여러분 생각해 보시라고요. 전 세계에 어느 나라가 이런 토요일 날 다 자고 있어요. 토요일 날은요... 제가 지금 하는 겁니까? 수많은 나라 선진국, 후진국 할 것 없이 등산정은 토요일 날 쉬는 날이니까 아침에 다 자고 있어요. 근데 토요일 새벽에 우리 자녀들과 함께 나와 가지고 이렇게 기도하는 거 이것 자체가 희망 아닙니까? 이거 외에는 다른 희망이 또 있습니까? 그러니까 토비세가 희망인 거예요. 아시겠어요? 왜 토비새가 희망입니까? 나와서 기도하면 토비새를 통하여 주님이 주일 예배를 살려주시는 것이에요. 주일 예배가 살면 사랑의 교회가 사는 것이에요. 사랑의 교회가 살면, 우리 한국교회 같이 사는 것이에요. 한국교회가 살면 세계 복음주의 교회 쇠퇴를 막는 것이에요. 그래서 우리 시대에 세계 선교를 마무리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은혜의 은혜를 덧입혀 주시기를 바랍니다. 따라하겠습니다.

‘토비새가 살면 사랑의 교회가 살고, 사랑의 교회가 살면 한국교회가 살고, 한국교회가 살면 세계 복음주의 교회가 산다.’
아멘 그런 마음을 가지고 이 새벽에 나온 여러분들의 기도가 주님 앞에 응답받기를 바랍니다. 너무너무 중요한 시간이에요. 다시 얘기합니다. 여러분들이 매주 토요일마다 와서 기도하는 기도의 이 걸음걸음, 기도의 간절함, 기도의 어떤 전체적으로 이렇게 교회 같이 할 때에 우리 앞에 있는 여리고성은 무너질 줄로 확신합니다.

그다음에 우리 토비새가 살면 우리 민족이 산다. 왜냐하면 제가 늘 말씀드리지만 토비새에 나온 여러분들은 영적 제곱근이에요. 제곱근이라는 말 아시죠? 우리 만 명이 변화되기 위하여 만 명은 만 명의 제곱근은 뭐예요? 사랑하는 교회 성도 여러분, 만 명의 제곱 그는 100X100이에요. 100 그쵸? 100 곱하기 100의 제곱은 만 아닙니까? 아주머니들, ㅋㅋㅋ!!!~~ 만 명이 바뀌기 위해서는 100명의 제곱근의 하나님의 백성들이 제곱근 적 기도를 하면 만 명이 바뀌는 것이에요. 그러면 4만 명이 바뀌려면 200명이 제곱근이라면 4만 명이 되는 거예요. 그러면 7천기도 용사가 바뀌면 7천기도 용사가 죽으라 기도하면 7X7이 49, 4,900만 명이 바뀌는 것이에요. 그러니 7천 기도 용서가 제대로 하면 이 민족이 바뀌는 것이에요.

이해가 됩니까? 영적 제곱권의 원리예요. 그러니까 토비새는 영적 제곱근의 토비새의 기도는 영적 제곱근의 은혜를 주실 줄로 믿습니다. 오늘 제가 오늘 말씀의 제목은 “믿음 계승의 희망”이라고 그랬는데 그럼 영적 제곱근의 그 역할을 누가 하는가? 초대교회 12 제자, 그다음에 70인 전도대, 120명 기도의 우리 예루살렘 교회, 정말 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도하는 120명의 기도의 성도들, 3천 명이 변화된 사람들,,,. 이 사람들이 로마 제국을 변화시켰는데 이 7천기도 용사가 4,900만 5천만을 책임진다. 그랬을 때 만약에 8천이 되고 만 명이 되면 1억을 변화시키는데, 만 명이 변화되면 얼마를 변화시킨다고요? 만 명이 제대로 기도하고 제곱근적인 기도를 하면 몇 명에 영향을 끼친다고요? 1억이 그 우리 7천기도 용사에다가 우리 젊은 다음 세대 7천기도 용사가 되면, 세계를 바꾸는 것이에요. 이제 이해가 됩니까? 담임 목사가 왜 이렇게 제곱근을 얘기하고 토비새를 얘기하고, 기도 용사를 얘기하고, 주의 용서된 나에게 기도 용사는 나에게 주의 일을 맡기소서!~ 세상이 따로 바뀌는 게 아니에요. 이런 기도의 제목을 가지고 기도의 선봉장이 돼가지고 만 명이면 1억을 바꾸는 것이에요. 1억이면 남북한 다 하고 해외 디아스포라 750만, 북한은 2500만, 우리 남한에 5천만 다 해도 아주 남아요. 남아요. 만 명이 사랑의 교회 토요 비전 새벽 예배 7천기도 용사와 다음 세대의 7천기도 용사가 정신 똑바로 박히면 세계를 변화시킬 수가 있는 것이고, 1억을 변화시킬 수가 있는 것이고, 남북한 다 바꾸고 해외 디아스포라까지 다 바꿀 수가 있는 것이에요. 그런 저는 우리 교회만 그렇게 하자 이 뜻이 아니에요. 한국교회가 이런 마음을 가지고 정신 바짝 차리면 하나님 은혜 주실 줄 믿습니다.

지난 주일날, 지난 주일도 아니죠. 오늘 토요일이니까 어제 그저께 목요일 날 우리 본당에서 ‘전국 우리 교단 전국 성경고사대회’를 했어요.. ‘전국 성경고사’ 했는데 거기에 이제 학부형들하고 뭐 이렇게 다 와가지고 내가 봤을 때 올해는 한 7~8천 명 온 것 같아요. 다 우리 학부형들과 함께요. 우리 노회가 전국 1등을 했어요. 1등이 중요한 게 아니고, 사실은 우리 노회가 사실은 우리 교회가 다 했어요. 그 우리 교회 주일 학교가 있는데, 그러나 그것보다도 전국에서 다 왔는데 오늘 이 그날 시험 마치고 사랑의 교회 토요일 새벽 예배가 소중하다 그래갖고 제주도에 있는 탐라교회 민경민 목사님과 우리 7명이 왔어요. 교사들은 목사님 일어나면 되겠어요. 목사님 잠깐 좀 일어나 같이 다 일어나 주세요. 제주도에서 오신 분들 다 일어나 주세요. 박수... 앉으시고 제가 이럴 때마다 내 마음에 상당한 뭐라고 그 거룩한 부담이라 그럴까? 은혜가 되는 게 뭐냐 하면 제주 탐라교회에서 와갖고 토비새에 참석하고 있는데 서초 4동에서도 안 나오는 거에요. 이걸 내가 어떤 식으로 해결해야 할지, 어떤 식으로라도 제가 해결할 그 이거는요. 그러니까 서초4동은요. 서초 3동 4동은 여기 우리 교회가 서초 몇 동이에요? 3동이죠? 서초 3동은요. 걸어와도 돼요. 여기를 그러니까 사랑의 교회 서초 3동, 4동은 다 토비새에 걸어와라. 다 걸어와라. 이제 이게 내 목표가 생겼어요. 토비새 합니다. 서초 3동 4동 요 근처 서래마을, 여기는 우리 교회 교인들은 전부 옛날에 우리 교회 가듯이 옛날에 새벽에 교회를 산을 넘고 물 건너 1시간, 2시간씩 걸어가 가지고 가는 사람도 있어요. 그러니까 앞으로 서초 4동 삼동 방배동 요 근처에 있는 분들은 토요일 비전 새벽 예배에 안 나올 결심을 한다는 것이 인생의 가장 큰 실패작이라는 걸 깨달아야 되는 거예요.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께서 이곳에 이 귀한 곳에 하나님이 집을 주시고, 살게 하신 뜻이 있을 거 아니에요. 이렇게까지 강조하는 이유는 한국교회 다음 세대가 희망인 줄로 믿습니다. 다음 세대가 희망이라는 것은 믿음의 계승이 돼야 되는 거에요. 믿음이 계승이 된다는 것은 다른 뜻이 아니고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받은 은혜를 같이 나누는데 우리의 사명을 계승해야 되는 줄로 확신합니다. 사명도 계승하고, 신앙도 계승하고, 우리의 사역 자체도 계승하고, 이렇게 계승해야 되는데 다 같이 이사야 59장 21절을 다 같이 보겠습니다.

*이사야 59:21,
21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과 세운 나의 언약이 이러하니 곧 네 위에 있는 나의 영과 네 입에 둔 나의 말이 이제부터 영원하도록 네 입에서와 네 후손의 입에서와 네 후손의 후손의 입에서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 아멘 뭐라고 되어 있습니까? 여기 보니까 이제부터 영원토록 너의 입에서와 그다음에 뭐예요? 너의 후손의 입에서와 그다음에 뭐 너의 후손의, 후손의 입에서 뭐예요 떠나지 않니 이것은 신약의 재 해석판이 디모데후서 2장 2절에,
*디모데후서 2:2,
2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사랑의 교회는 뭐냐면 지금 디모데후서 2장은 바울이 디모데에게 얘기하고, 디모데가 충성된 사람들에게 말하고, 충성된 사람들은 또 다른 사람들 우리 이렇게 운명적인 4세대가 전하고 있어요. 우리 이제 청년 세대, 또 우리 포에버 세대, 우리가 진짜 죽을 때 살도 해야 할 것은 뭐냐면 우리의 사역 우리의 믿음, 우리의 비준, 우리의 사역을 반드시 계승시켜줘야 되는 것이에요. 그러면 사역과 우리의 오늘 제가 뭘 얘기 하냐면, 믿음도 계승해야 되고, 사역도 계승해야 되고, 우리의 비전도 계승해야 되는데 그게 도대체 무슨 뜻인가? 오늘 로마서 4장 16절을 보겠습니다.

*로마서 4:16,
16 그러므로 상속자가 되는 그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 그러하니 아브라함은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말씀이 조금 앞에 뭐 좀 복잡한 것 같은데, 쉽게 말하면 아브라함의 16절에 상속자가 되는 그것이 모두 뭐로 되나니, 믿음으로 되나니 믿음을 계승해야 될 거 아니에요 믿음 계승도 뭐로 된다고요? 믿음으로 되나니, 그다음에 보니까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 그러하니 아브라함은 우리 모든 사람의 뭐예요 조상이니라. 그러니까 저 말씀이 아브라함 때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또 저 말씀을 기록했던 로마서 바울 시대에만 끝나는 것이 아니고, 그것이 뭐냐 하면 상속자가 되는 그것이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 그러하니 아브라함은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여러분 우리 모두는 아브라함이 우리의 믿음의 조상인 줄로 믿습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섬기는 모든 세대는 천 년 전이든지, 2천 년 전이든지, 500년 전이든지, 100년 전이든지, 지금이든지 아니면 또 모든 시대, 모든 시대 모든 세대, 우리 할아버지 세대든지, 장년 세대든지, 우리 대학 청년부 세대든지 ,우리 주일학교 세대든지 다 동일하게 다 동일하게 우리 모두에게 아브라함은 우리의 믿음이 뭐라고 돼 있어요? 조상이라 그러니까 이 말씀이 구원의 계시의 말씀으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이 말씀을 그대로 믿는 사람에게는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 믿는 사람에게는 아브라함에게 속한 모든 믿음의 은혜가 우리에게 그대로 계승된다는 것이에요. 아브라함에게 속한 모든 믿음의 은혜가 우리에게 계승된다는 말은 이런 뜻이에요. 아브라함 한 사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후손들 가운데 있었던 믿음의 귀한 역사가 다 우리에게로 계승된다. 그 뜻이에요.

그러니까 겉으로 볼 때는 겉으로 볼 때는 아브라함 아브라함이라는 나와 있지만, 사실은 아브라함을 통하여 계승된 믿음의 그 수많은 콘텐츠 물이 터진 줄로 확신합니다. 그리고 아침마다 만나를 먹은 하나님의 은혜의 기록이 있다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아브라함에게 속한 믿음이 우리에게 계승된다는 말은 아브라함을 통하여 받은 은혜를 누린 모세에게 속한 그 은혜가 우리에게 온다 했듯이, 동시에 아브라함을 믿었던 여호수아가 가졌던 믿음의 콘텐트가 뭐예요? 여호수아가 가졌던 그 믿음의 강력한 영이 우리에게 그대로 주어져 있다. 이것이에요. 또 동시에 다윗이 가졌던 그 믿음의 내용이 우리에게 그대로 물어 다윗이 골리앗을 싸고 이기고 다윗을 통하여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라고, 다윗을 하나님께서 보시고 이스라엘의 목자로 세우시고 다윗을 통하여 하나님이 일하신 그 귀한 이들이 다 우리에게로 계승되는 줄로 믿습니다. 잘나고 귀할 때뿐만 아니라 다니엘 같이 포로가 되고 힘들고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도 다니엘이 하나님 앞에 뜻을 정하여 기도한 것처럼, 그 어려움 가운데서도 최선을 다했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보호하시는 그 은혜와 그 믿음의 내용, 그 확신을 오늘 우리에게 그대로 계승시켜 주신다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앞으로 나올 때마다 앞으로 7천기도 용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텐데, 아브라함에게 속한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모든 것들이 우리에게로 이어질 줄로 믿습니다. 그 모든 것들이 오늘 시간 우리에게 주어지는 거에요. 그래서 한국교회가 희망이고 이것을 들려주시고 이번에 성경 고사 때 할 때도 찬송을 했는데 ‘나의 사랑하는 책’ 그 찬송이 있죠.

♬~~

그러니까 다니엘 다윗 그다음에 엘리아의 그 믿음의 내용들이 우리에게 계승되는 줄로 확신합니다. 그래서 포비서에 나올 때마다 앞으로 믿음 결석 일어나게 하여 주시옵시고, 후손과 후손의 후손과 후손의 후손의 후손들에게 믿음 계승된다. 이 믿음 계승이 된다는 말은 비전과 사이 계승되고 기도가 계승되고 사역이 있겠습니다.

그 사역 백성을 통하여 오늘도 우리가 하나님이 공동회가 우리 하나님이 지난 1년 동안 주신 은혜가 얼마나 큰지 감사한지 그것이 작년 세대뿐만 아니라 다음 세대까지도 계속 이어질 수 있도록 은혜의 은혜를 더 해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나의 사랑하는 책, 1절 2절 하는데 여러분 부르겠습니다. .

※오늘 제가 이제 제주도에서서 오신 민경민 목사님하고 제가 잠깐 나오셔서 한 말씀 하라고 제가 부탁을 했어요.' 제주도 탐라교회', 아주 좋은 교회이고, 앞으로 제주도 가면 탐라 교회 가보세요. 박수로 환영하겠습니다.
▶민경민 목사님(제주 탐라교회)
-말씀드렸다시피 우리 목사님 말씀해 주셔서 지난 목요일에 있었던 우리 전국대회 하기 위해서 우리 교회 백컨스로 5명 하고 우리 교사 2명과 함께 올라왔습니다. 새벽 기도회가 어색하니까 지금 비몽사몽간인데요. 이해해 주시기를 부탁을 드리겠습니다. 참 많은 아이들이 말씀을 사모하고 또 온몸과 정성을 다해 찬양하는 이 모습 보면서 그 아이들이 있기에 그리고 오늘 토비새에 함께하는 우리 여러분들 칠천 용사가 있기에 이 나라의 민족은 소망인 줄 믿습니다. 교회는 소망이 있는 줄 믿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사랑의 교회에 참 많은 빚을 졌습니다. 왜냐 하면 제자 훈련을 비롯해서 신학교에서도 가르쳐주지 않는 목회의 귀한 가치들을 배웠고, 또 한국교회 섬김의 날 하시죠? 여러분 수고 참 많으셨지 않습니까? 제주 지역에 있는 목회자들과 함께 참여하면서 어떤 교회의 본질 그리고 온전 론을 또 배울 수 있는 그런 귀한 시간을 누렸습니다. 오늘도 이렇게 참석하면서 많은 걸 느끼게 되는데 저도 우리 아이는 또 우리 교회도 한국교회를 위한 우리나라 민족을 위해서 실천의 기도 용사로 함께 뛸 것을 결단하면서 내려가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런 마음의 소망과 집중력이 일을 하게 하는 것이에요. 이렇게 하시고 이제 우리 다음 세대에 우리 7천 기도의 용사, 우리 영적 과거제도를 상을 수여하겠습니다. 시간은 영적 과거제인 전국주일학교 제60회 성경고사 및 찬양 경연대회 시상을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평범한 인생이 지적 개입을 통해 비범한 인생이 되는 현장을 말씀 수업을 통해 확인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오늘 말씀 그대로 하나님 아버지 사랑의 교회와 한국 교회가 믿음 개성이 반드시 되게 하여 주십시오. 유럽 교회가 문을 닫고 망한 것은 믿음 개성이 되지 않아서 망하게 된 것입니다. 주일 학교가 문을 닫아서 망하게 된 것입니다. 주여, 한국교회는 결단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이런 새벽 예배에 우리 자녀들과 함께 나와서 주님 앞에 마음을 다하여 기도할 때에 부모의 믿음이 계승되게 하시고, 사역이 계승되게 하시고, 비전이 개선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런 마음을 간절히 주님 앞에 올려드리기를 바라고 그다음에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단순히 믿음 개선한다 했을 때, 그 정도가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 안에 하나님께서 모세와 여호수아와 다윗과 다니엘의 그 부분의 역사를 다 넣어놓은 것처럼 오늘 그 은혜가 우리 모든 성도들에게 축적되어 계승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렇게 우리 기도하시고 그다음 사랑의 교회 토비새를 통하여 평범한 인생이 신적 개입을 통하여 비범한 인생이 될 줄 믿사오니 하나님 꼭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주여 토베새를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그런 마음과 주여 믿음 계승의 은혜를 주옵소서. 주여 믿음 계승에 은혜를 주옵소서. 크게 두 번 외치고 주여 믿음 계승의 은혜를 주옵소서. 두 번 외치고, 오늘 우리 통해서 믿음 계승을 위하여, 사역과 그다음 믿음의 계승과 그리고 모든 아브라함의 그 모든 귀한 것들이 우리에게 주어질 수 있도록 간절한 마음과 주의 믿음 계승의 은혜를 달라고 두 번의 외치고 뜨겁게 기도하겠습니다.

자비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우리를 깨닫게 하신 말씀,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세운 그 언약, 그 언약의 말씀이 후손의 입에서와 후손의, 후손의 입에서 떠나지 아니하도록 이 토비새가 사용되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실 줄로 믿습니다. 특별히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모든 귀한 것들이 계속해서 시대를 초월하여 우리 모두에게 기도의 제목이 되게 하시고, 그 모든 강점들을 가지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영적 재고권의 은혜를 누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사랑의 교회 토비새 이제 선대 어른들의 7천 기도용산뿐만 아니라 다음 세대의 7천 기도용산을 통하여 한국 교회가 바뀌게 하여 주시옵시고, 대한민국의 장래가 바뀌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가 믿음으로 기도로, 사명으로 피 흘림 없는 복음적 평화 통일을 경험하게 하여 주시옵시고, 주님 우리에게 허락하신 ‘2033-50 비전’을 앞으로 10년 내에 우리 민족의 50%가 예수 믿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앞서 인도하신 은총이 퍼짐을 경험하게 하여 주옵소서. 할렐루야, 이 새벽에 나온 우리 자녀들, 어른들 다 말로 다 할 수, 폭포수와 같은 기름부음으로 은혜로 채워주실 것을 확신하옵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받들어 간절히 기도 올리옵나이다.

♣요약
우리 믿음의 4세대가 다음 세대 7천기도 용사들이 기쁨의 면류관과 강철 신발을 신고 기도의 지팡이를 들고 르레상스 적 K-부흥의 대서사시를 써 나가며, 모든 영 가족들이 세상이 감당치 못할 영혼 구원의 열정과 꺾어진 뼈조차 즐거워하는 복음의 기쁨으로 충만하여 한계를 정할 수 없는 은혜의 무한지평으로 2033-50의 비전을 이루어가기를 합심하여 간구하고 우리 교회와 사랑글로벌 아카데미가 영적 공공재로, 글로벌 플랫폼의 사명을 감당할 때, 문화 변혁과 평화통일과 세계선교를 마무리하는 영적 라마나욧이 되기를 소망하자. 내일 예배를 위해 더욱 거룩히 준비하여 주님의 기쁜 자녀로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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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저녁기도회(주후 2024년 01월 10일)
제목: "영원한 약속을 깨닫는 사랑"
말씀: 요한1서 3:18~24
찬양인도: 쉐키나
사회: 강건우 부목사님


설교자: 안 바울 부목사님
ㅡㅡㅡㅡㅡ


*요한1서 3:18~24,
18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19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니.
20 이는 우리 마음이 혹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어도 하나님은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이라.
21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22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23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24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그의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
ㅡㅡㅡㅡ

​▶연말 연 초에 보면 어렸을 적에 이런저런 행사들이 참 많았던 것 같습니다. 특별히 이제 교회를 다니고 있으니까 저와 여러분들과 같이 연말 연 초에는 교회 행사가 되게 많았던 걸로 추억이 됩니다. 우리 며칠 전에 토비세 앞에 붙었던 이름 혹시 기억하십니까? 토비새라는 이름 앞에 우리 새벽송이라는 명칭이 한 번 붙은 적이 있었는데 새벽송이 저에게는 가장 크게 기억이 남습니다. 저는 도시 사람이에요. 도시 사람에서 쭉 자라다가 중학교 2학년 때 우리 대구로 이사를 가게 됐는데, 거기에서 처음으로 새벽송이라는 걸 해봤습니다.

정말 새벽에 돌더라고요. 밤늦은 시간에 그게 도는데, 중학교 2학년 때고 우리 고등학교 형들과 함께 돌았는데 성도님들이 잠을 주무시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맞아주시는 거예요. 작은 먹거리들을 준비하시고 또 함께 찬양하면서 집집마다 돌았습니다. 새벽송이라는 것은 집과 집을 건너가면서 찬양을 하고 함께 찬양하면서 먹을 것을 이렇게 받고 그런 것이에요. 얼마나 기억에 남는지 모릅니다. 그 순간에 은혜들이 너무나 가득해요. 또 한 가지 기억 남는 연말의 추억이 있다면 중고등부 학생들이 함께 문화제 또 연극제라는 이름하에 발표회를 한다는 것입니다. 저도 고3이 돼서 한 번은 그런 발표를 한 적이 있었는데 주제는 당연히 천지창조부터 시작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에 이르는 그런 것을 발표를 했었어요. 제가 그 가운데 무슨 역할을 맡았을까요? 루시퍼에요. 악마, 그 분장을 생전 처음으로 이제 제 얼굴에 분칠을 하고 이렇게 그리고 했는데 문제는 악마가 아니라, 이제 악동이 되어 가는 게 문제입니다. 너무나, 너무나 근데 즐거운 추억이에요. 그 자리에서 되지도 않는 인상을 써가면서 그리고 어떨 때는 교활하게 되지도 않는 교활함을 또 표현하면서 그렇게 연극을 또 재미나게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다른 기억이 있는데요. 가족 찬양 제라는 게 있었습니다. 가족끼리 함께 나와서 찬양 경연대회를 하는 그런 것인데 저의 우락부락하게 생긴 형님이 계세요. 저보다 두 살 많은 형이 피아노를 치고 제가 우리 가족 분들 가족과 함께 저희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사철의 봄바람이라는 찬송을 함께 불렀던 기억도 있습니다. 사철의 봄바람 아시죠? 네 상금은 없었어요. 상은 못 탔는데 너무 좋은 추억이었습니다. 정말로 즐겁고 재미있고 세상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그런 은혜의 순간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많은 시간이 지났고 추억 속에 있지만 생생하게 그 순간, 순간들이 떠오릅니다. 은혜의 소중한 시간들이라서 항상 그 시간들을 기억할 때마다 기쁨이 있고 내 마음에 성령 하나님께서 그 순간에도 나와 함께하셨구나! 라고 하는 것이 느껴집니다.

근데 이런 것을 생각해 보면 한편으로는 우리 자녀들, 저도 이제 살 2명의 아들이 있는데 9살, 6살의 아들이 있는데 우리 아들들에게는 이런 좋은 추억들이 참 점점 사라져 간다는 게 한편으로는 아쉬워요. 새벽송이라는 것을 볼 수도 없고, 이렇게 큰 교회에서 찬양 제, 가족 찬양 제라는 것을 할 수도 없고 생각해 보면 좀 아쉬움이 있긴 합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신앙의 값진 추억들과 은혜들이 조금씩 희석되어가고 조금씩 이렇게 바뀌어가는 것을 볼 때마다 안타까움과 또 애절함이라고나 할까요? 그런 것들이 제 마음 가운데 있어요. 다음 세대를 바라볼 때, 또는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아직 맛보지 못한 한 사람을 한 영혼을 바라볼 때, 그런 긍휼함이 제 마음 가운데 있다. 라는 것입니다.

오늘 함께 읽은 이 요한일서의 이 말씀도 그런 사랑의 사도 요한이 가지고 있는 애틋함과 또 긍휼함이 많이 묻어나는 책입니다. 이제 인생의 말년을 가고 있는 사도요한이죠. 인생의 마지막을 달려가는 사도요한이 다음 세대를 바라볼 때, 이제 막 시작한 믿음의 자녀들을 바라볼 때, 복음들이 조금씩 바뀌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안타까운 거예요. 그리고 복음들이 점점 희석되어 가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안타깝고 안타까운 겁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에서 계속해서 이 사도 바울이 이야기하고 있는 게 뭐냐면 ‘자녀들아’라는 표현입니다.

3장 전체를 보면은 ‘자녀들아’라는 표현이 한 네다섯 번 나오는 것 같아요. 계속해서 그들을 불러가면서 사랑하는 자들아, 또 형제들아, 그리고 자녀들아, 리를 칠드런, 이렇게 불러가면서 그들을 어떻게 하면 복음의 은혜의 중심지로 데리고 올 수 있을까를 사도 요한이 계속해서 권면하고 강권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얼마나 그 마음 가운데 애틋함과 안타까움이 있을까? 자기는 직접 예수님을 그 따스한 피부에 손을 대어보기도 했고, 또 그의 따스한 음성을 귀로 듣기도 했고, 또 그의 음성을 따스한 음성을 또 들으면서 또 눈으로 직접 보면서 예수님을 바라본 자신인데 그의 다음 세대는 그러지를 못하니까 얼마나 가슴이 에이지 않았겠습니까? 오늘 본문에 이전에도 그런 말씀이 있어요. 요한일서 1장 3절에서 4절까지의 말씀인데요. 우리 같이 함께 읽겠습니다. 3절입니다.

*요한일서 1:3-4,
3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4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여기 보니까 들은 바를 너희에게 전하고 우리가 사귐이 있게 한다. 왜냐하면 기쁨이 충만하기 때문이다. 이것만 알면 이 자리를 누리기만 하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더불어 사귀기만 하면, 누리기만 하면 기쁨이 충만하기 때문에 이것을 내가 알고 있는데, 너희들도 좀 알면 좋겠다. 라는 거예요. 먼저 생각해 봐야 할 거는 우리들이 과연 이런 마음이 있는가라고 하는 겁니다. 긍휼한 마음이 있는가, 목자의 심정이 있는가, 저들이 정말 그렇게 하나님과 함께, 함께 그 자리 가운데 누리기를 내가 원하고 있는가, 라는 거를 먼저 점검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 방금 읽은 3절과 4절 말씀을 뜯어서 한번 생각해 보면 첫 번째로는 보고 들은 바를 전할 마음이 있는가? 라고 하는 거예요. 내가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전할 마음이 내게도 있는가? 우리가 본 것을, 우리가 만진 것을, 우리가 영적으로 경험한 것을 아직 모르는 그들에게 아직 알지 못하고 답답해하는 그들에게 내가 과연 전할 마음이 있는가, 아니면 내버려두는가? 저들은 저대로 살다 죽겠지 저들은 저대로 지내다가 그냥 죽겠지 내버려두는가, 아니면 내가 전할 마음이 있는가, 또 다른 한편은 이런 거예요. 오늘 3절 말씀에 보니까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는 이 표현을 통해서 보면 내가 이 우리, 라는 바운더리 안에 이 공동체라는 우리라는 바운더리 안에 그들과 함께 사귈 마음이 있는가, 초청할 마음이 있는가, 우리의 다락방에 부서의 공동체에 내 모임에 그들을 초대할 마음이 있는가, 주변에 있는 사람들, 하나님을 알지 못해서 세상의 방식으로 살고 있는 그들을 포용할 마음이 내게는 있는가, 라는 것을 한번 점검해 봐야 할 것 같아요.

율법을 많이 알고 말씀을 많이 안다고 하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포용할 마음이 없죠. 사귈 마음이 없습니다. 그들은 선을 정해놓고 백성들과 나는 어떻게 해요? 다르다. 나는 저들과 같은 공간에 있을 수 없다. 죄인들과 세리들과 나는 같은 공간에 있을 수 없다. 저들과 나는 다르다. 사귈 마음이 없습니다. 포용할 마음이 없어요. 저와 여러분들 가운데에는 그런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우리의 마음과 합하여서 하나님의 목자의 심정이 우리 마음에 가득하여서 말씀을 느끼고 체험하고 볼 때마다 만질 때마다 그것을 전할 마음이,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사귈 마음이, 복음으로 사귈 마음이 우리 가운데 풍성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답하기를 주저하는 분들을 향해서 지금 거의 답이 들리지가 않아요. 답하기를 주저하는 분들을 위해서 말씀 한 구절 더 읽도록 하면 우리 16절 말씀인데요. 다시 한 번 읽겠습니다. 16절 말씀 시작.

*요한일서 1:16,
16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예수님께서 목숨을 버리셨으니 너희도 버리는 것이 뭐라고요? 마땅하다. 지금 사도 요한이 말하고 있는 것은 사랑은 멈추는 게 아니라 계속 흘러간다는 거예요. 자기희생이라는 것 그리고 사랑이 전해진다는 것 복음이 흘러간다는 것은 멈춤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흘러가고, 흘러가고, 흘러갈 뿐 아니라 더 갑절이 되고 곱절이 되어서 더해져야 되는 거예요. 자기희생의 연속입니다. 자기 인생에 도미노 현상이 일어나야 하는 것이죠. 우리 교회의 표현으로 이야기하면 제곱근 배가 증식하는 사랑의 재곱근의 역할이 일어나야 한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 2024년을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들, 하나님께서 거저 우리 가운데 주신 은혜 그대로 또 하나님 앞에 그 모습 그대로 우리가 다른 이웃에게도 거저 흘려보내줄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가 함께 묵상해야 할 세 가지 것들이 있는데 18절 말씀입니다. 우리가 적용 우리에게 적용해야 할 세 가지 사랑의 측면이 있는데요. 우리 18절 말씀인데 같이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요한1서 3:18,
18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많이 들어보셨죠?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자 우리가 사랑을 함에 있어서 말과 혀로만 하지 말고 행함도 더하고, 진실함도 더하자. 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근데 제가 이 말씀을 딱 봤을 때는 처음 딱 하고 묵상했을 때, 행함과 진실함의 단계까지도 못 갔습니다. 안타깝게도 그 단계가 아니라 말 이 말은 어떤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예수님이 죽으시고 한 세대가 지나가고 나니 행함과 진실함은 빠지고 말뿐이 남지 않은 말밖에 남지 않은 모습들을 보면서, 사도 요한이 이렇게 마음 안타까우며 고백을 했나 봅니다.

근데 2천년이 지난 지금을 따져보면 이 시대를 바라봤을 때, 그리고 한국 교회를 바라봤을 때에 말과 행함과 진실함은 모르겠고 말이라도 우리가 사랑을 담으면서 말을 하고 있는가? 내 말에는 사랑이 더해지고 있는가? 내가 그렇게 말을 다른 사람이 듣기에 불편하지 않도록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라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처음에

I. 첫째-말을 이쁘게 하자.
첫 번째로는 이런 말씀을 꼭 드리고 싶어요. 말을 이쁘게 하자. ‘말을 이쁘게 하자’ 아주 원색적으로 표현했습니다. 우리가 아기들한테 뭐라고 이야기해요? 험한 말할 때 애기들이 나쁜 말할 때 말 이쁘게 해야지, 말 이쁘게 해야지, 얘기하지 않습니까? 우리들은 과연 말을 이쁘게 하고 있나요? 이쁘게 하고 있나요? 우리의 행함과 진실함을 더하기 전에 우리의 말 가운데 이쁜 말을 해야 될 것 같아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말, 하나님이 예뻐하시는 말, 기뻐하시는 말을 우리가 우리의 입술에 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제일 편한 이웃 바로 가족이죠. 가족에게 어떠한 말을 하고 계십니까? 너무 편하기에 막말을 하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마구대하고 계시지는 않나요? 이제 곧 제자 훈련이 시작을 할 텐데 제자 훈련 시작하면 처음에는 굉장히 이제 예의와 존중이 묻어나죠. 선을 바르게 지킵니다. 그런데 어느새 3개월, 6개월 단기 선교 갔다 와서 4박 5일 같이 지내고 나면 언니 동생 하면서 점점 말이 가벼워지기 시작을 하죠.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선을 넘는 말도 심심치 않게 나올 수 있게 됩니다. 우리 제자 훈련 시작하시는 분들 끝까지 명심하십시오. 선을 지키셔야 됩니다. 예의와 존중으로 서로를 대할 줄 알아야 됩니다. 우리 주를 한번 생각해 볼까요? 주차 잘하고 계십니까? 교회에 들어올 때 너무나 힘들죠. 사거리 꺾어서 우회전해서 들어오면 늘 막히지 않습니까? 우리 봉사하시는 분들, 안내하시는 분들에게 어떠한 말을 하고 계시나요? 그들도 성도님들이신데 혹여나 너무 험한 이야기하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수요 예배에 나오시는 분들이라면 그런 분들은 한 분도 안 계실 줄 믿습니다.

예배 부 섬기시는 분들 또 교통봉사 섬김을 하고 계시는 분들, 모두 다 우리 교회 성도님들이에요. 영적으로 하나 된 영 가족들입니다. 귀한 또 사랑을 담아서 그분들에게 격려해 주시고 또 이렇게 감사합니다. 라는 말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제가 오늘 원고에는 쓰지는 않았지만 저도 방금 저 11층 사무실에서 내려오면서 너무 귀한 사랑의 말을 듣고 왔어요. 엘리베이터에서 타고 이제, 이제 말씀을 준비하고 내려오는데 어떤 권사님께서 저보고 저희 어머니보다 조금 더 연배가 있으신 권사님께서 요새 부목사님들은 참 이뻐, 라고 얘기해 주시는 것 같아요. 얼마나 힘이 나든지 너무 사랑이 많이 담긴 말 아닙니까? 앞에 한 단어가 더 있었어요. 밤톨같이 이뻐, 막 이러셨어요. 너무 행복해요. 여러분들 우리 부교역자 분들 목사님들 볼 때 많이 칭찬해 주시고 이뻐해 주세요. 그들이 힘을 냅니다. 힘을 냅니다. 이 말에 사랑을 담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말의 사랑을 담는 건 쉽지 않아요. 왜냐하면 말을 바꾸기 위해서는 마음을 바꿔야 하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바꾸는 것은 결코 쉬운 게 아니에요. 내가 결단하고 마음 가운데 일어나는 것들을 막아내야 그게 가능한 거예요. 때문에 말을 바꾼다는 뜻은 하나님이 내 앞에 계시는 것을 늘 항상 인정하는 삶입니다. 내 마음 가운데 일어나는 모든 음성을 하나님께서 듣고 계신다는 것을 인정하는 삶이에요. 민수기 14장 28절의 말씀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민수기 14:28,
28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저희 어머니가 제가 험한 말할 때마다 늘 이 말씀을 하셨어요. 말한 대로 된다고 말한 대로 된다고 하나님이 다 듣고 계신다고 우리가 말을 가볍게 하는 것은 듣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만약에 우리 앞에 어르신이 계신다고 생각하면 어른이 계신다고 생각하면 함부로 이야기를 못할 겁니다. 하나님이 내 마음 가운데 함께 계신다. 라는 생각을 늘 항상 품고 있어야 간직하고 있어야 말이 바뀌게 되는 거예요. 말은 생각지도 못하게 습관적으로 나오는 것인데 이 습관을 바꾸려면 마음이 바뀌어야 됩니다. 그래서 어떤 분은 그렇게 이야기를 해요. 말이라는 것은 마음의 알갱이다. 라고 얘기를 해요. 마음의 알갱이 앞에 글자만 따서 마 알 마음의 알갱이 말, 말, 말 말이 되는 거예요. 자, 그래서 우리의 입술을 다스리는 게 굉장히 중요한 겁니다. 입술을 다스리는 거 입술을 다스리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먼저 다스려 주시기 때문에, 그 다스림을 받으면서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면서 우리의 마음이 우리의 말이 바뀌게 되는 겁니다. 우리 마태복음 15장 18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마태복음 15:18,
18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입에서 나오는 것이 마음에서 나오나니.
-어디서 나온다고요? 마음에서 나온다고 얘기합니다. 마음에서 여러분들의 마음이 하나님의 통치를 받고 선한 마음으로 선한 말을 내는 우리 모두가 되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까 그런 생각도 들어요. 말을 할 때 누가 제일 먼저 들을까? 하나님 이외에 누가 먼저 제일 들을까? 누구죠? 나 자신입니다. 내 자신에게 지금 나는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생각해 봐야 될 것 같아요. 우리말에는 힘이 있습니다. 때문에 내가 뱉은 그대로 내가 자라나게 되어 있는 거예요. 선한 말을 하면 얼굴이 선하게 바뀐다. 라고도 얘기하지 않습니까? 제 얼굴은 어때요? 선한 말을 한 대로 얼굴이 바뀌는 거예요. 나쁜 말, 못된 말을 하면 그렇게 입이 삐뚤어지게 되는 거잖아요. 에베소서 4장 29절에 한번 읽어볼까요? 시작

*에베소서 4:29,
29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제일 먼저 듣는 자, 나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선한 말을 해서 네가 은혜대로 살 수 있도록 노력하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아요. 우리의 말로서 덕이 세워지고 은혜가 끼치게 되는 것은 우리의 말에 힘이 있다. 라는 뜻이죠. 말을 제일 가까이 듣는 우리 자신부터 내 말로 인해서 덕이 세워질 수도 있고, 덕이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내가 선한 말을 함으로 인해서 내가 하나님으로 받은 은혜를 쏟아내지 않고 담아낼 수도 있고, 내 말이 악함으로 인해서 그 은혜들을 모조리 이렇게 쏟아버리게 되는 일도 일어나게 되는 거예요. 말이 중요합니다. 말에는 힘이 있습니다. 말에는 힘이 있습니다. 내가 나에게 사랑의 말을 담아서 오늘 나에게 칭찬을 해주어야 해요. 잘했다고, 잘 살았다고 오늘도 애썼다고 칭찬을 해주어야 할 것 같아요. 바보 천치라고 이야기하지 말고,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로 스스로 불러주면서 오늘 하나님 앞에 귀한 백성으로 내가 잘 살았다 이야기해 줄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시편 2편 우리 7절 8절을 우리 자신에게 한번 선포하는 마음으로 한번 읽어보면 좋겠는데, 시작

*시편 3:7-8,
7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8 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너는 내 아들이라, 너는 내 딸이라, 내게 구하라 하나님께 구하라. 내가 이방 백성을 내 유혹으로 죽인 내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모든 것을 이루어주겠다는 하나님의 말씀 약속, 하나님께서 들려주시는 자녀 된 호칭, 이 안에 다 담겨 있어요. 여러분들, 여러분들 스스로에게 매일 마다 하나님 앞에 이 존귀한 자녀가 여전히 기도합니다. 하고 무릎 꿇으며 기도할 줄 아는 우리 모두가 되면 좋겠습니다. 때문에 일단 말을 의지적으로 이걸 강조하고 싶어요. 의지적으로 여러분들 스스로에게도 그렇고 가족에게도 그렇고 의지적으로 선한 말을 자주자주 하면 좋겠어요. 사랑의 고백을 자주 하면 좋겠습니다. 아내분들은 남편분에게, 남편분들은 아내분에게, 그리고 자녀들에게 사랑의 언어를 자주 해주시면 좋겠어요. 그리고 한편으로는 72구절 암송 있잖아요. 그것도 나에게 선포하는 말씀으로 행함과 진실함이 없다 할지라도 모르겠다. 하면서 그 말을 그 암송을 내게 한번 계속해서 선포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그 선한 말이 그 암송이 나의 덕을 세우고 은혜를 쌓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리라 믿습니다. 말에 대해서 좀 길게 설명을 드렸는데, 그다음에 말 다음에 무엇이 있죠?

II. 두 번째로 행함입니다.
-행함, 행함도 이렇게 한번 표현해 봤어요. 행함을 이쁘게 하자. 행함을 이쁘게 하자 하나님께서 이뻐하시는 행함을 하면 좋겠습니다. 말로만 하지 말고 행함을 더하자. 말이 그 사람의 마음을 쳐서 복종시키고 의지적으로 표현을 바꾸는 것이라고 하면 다시오. 말의 습관을 바꾸는 것이 그 사람의 마음을 복음으로 쳐서 하나님의 계심을 늘 상기하고 항상 깨닫고 인지해서 마음을 복종시키고, 의지적으로 표현을 바꾸는 것이라고 하면 이제 그 말로만이 아닌 행함을 더하라는 것은 죄 된 본성에 사로잡혀 있는 육체를 쳐서 복음에 복종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죄 된 육체를 복음에 복종시키는 것을 말해요. 육체를 복음으로 다스리게 하는 겁니다. 게으르고 자기만 알고 있는 그런 육체를 복음으로 다른 사람을 위해서 선하게 쓰일 수 있도록 움직여 보라는 거예요. 육체를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믿음이 사실 이런 모양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말로만이 아닌 행함으로라도 계속 믿음을 표현하라. 라고 이야기하는 야고보서에는 우리가 제일 잘하는 말씀이 이것이죠. 2장 15절 17절 말씀인데 같이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야고보서 2:15-17,
15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16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말이 아니라 정말 선한 행동을 더해서 그 사람이 은혜를 받을 수 있도록 덕을 쌓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라. 라고 이야기합니다. 근데 문제는 여기서 육체를 다스린다. 라고 하는 것은 육체를 다스린다고 하는 것은 자기희생을 분명히 요구합니다. 반드시 요구합니다. 한마디로 내가 하기 싫은데, 하기 싫은데 해야 한다는 거예요. 말씀을 따라 살려면 나는 하기 싫은데 움직여야 된다는 거예요. 힘들고 귀찮고 그렇지만 내 것을 나의 시간을 나의 힘을 나의 공간을 나의 소유를 다른 사람의 것으로 소유권 변경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싫은 거죠. 내 것인데 내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하는데 좋아할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사랑 그리고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은 모두 다 그런 사랑입니다.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위해서 목숨까지 다 내어주신 사랑이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가 이 예수님의 사랑을 빗대서 이제 결혼식 때에도 이렇게 예수님의 사랑으로 예수님이 교회를 사랑하듯이 교회가 예수님을 사랑하듯이 그렇게 표현을 많이 하는데요. 결혼식 때도 그렇게 생각하면 좋을 것 같아요. 결혼식 할 때 이 사람이 내 사람이 되었구나. 라고 생각하게 되면 피곤해지는 거예요. 힘들어지는 거죠. 이 사람이 내 사람이 된 게 아니라, 무엇이, 무엇이 된 겁니까? 내가 그 사람 것이 된 겁니다. 이렇게 반대로 생각하면 좋겠죠. 내 시간과 저 사람의 시간과 공간이 내게 된 게 아니라 내 시간과 공간과 소유가 저 인생의 것이 된 것이다. 라고 생각을 하는 거죠. 그래서 어떤 우리 주례하신 분은 사랑이라는 단어를 이렇게도 표현하더라고요. 죽을 사에 쇠고랑 랑이에요. 죽을 사에 쇠고랑 랑, 이제 웃으시는데 정말 그런 것 같아요. 사랑의 매어라는 표현이 오직 주의 사랑의 매어라는 표현도 있지 않습니까? 사랑으로 인해서 매어지게 되는 거예요. 언제까지 죽을 때까지 그리고 죽을 때까지 이 사람들을 이 사람을 사랑하기로 내가 그렇게 헌신하고 결단하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사랑이 그것이고 우리가 또 우리 자녀들에게 보여주고 있는 사랑이 그런 사랑입니다. 우리가 영 가족이라고 하고 또 복음에 먼저 앞선 자라고 한다면 사랑 죽을 사 쇠고랑 랑을 차서 주님의 사랑에 매어서 이 사랑도 하나님의 사랑에 매일 수 있도록 여러분들이 행동을 하셔야 될 것 같아요. 선한 행동을 여러분들의 마음에 담아내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게 자기희생과 자기 부인의 자기 부인의 자리라 할지라도, 여러분들이 감당하셔야 되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사랑으로 마땅히 거저 그 은혜를 우리 가운데 허락하시고, 우리가 우리의 죄 가운데서 구원의 백성으로 이동하였기 때문에 그렇게 우리가 우리의 이름과 우리의 신분이 바뀌었기 때문에, 우리가 그렇게 우리도 다른 이들에게 하나님의 선한 말과 행동을 보여줘야 할 것 같습니다. 말이라는 부분에서도 우리 스스로에게 먼저 적용을 해봤는데, 이 행함에 대해서도 우리에게 적용을 먼저 해봐야 할 것 같아요.

내가 나에게 해줄 수 있는 선한 행동, 나에게 해줄 수 있는 사랑의 행동이 무얼까? 좀 생각해 보면, 그러니까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자기희생을 할 수 있는, 내가 자기희생을 할 수 있는 부분들 하기 싫은데 복음에 따라 살다 보니 해야 할 것 같은 일들이 무엇일까? 무엇이 있을까요? 우리 주일날 보면 저기 2층 3층, 어떤 분들은 2층 천 3층이라고 표현도 하시는데 저기 구석에서 그냥 앉았다가 돌아가시는 등록 안 하시는 분들 계시잖아요. 그런 분들이 등록하셔서 교회에 더 깊이 들어와야 할 것 같습니다. 또 다락방에 아직 참여 못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 같아요. 내 시간이 아깝고 내 여유가 없기 때문에 내가 할 힘이 없기 때문에 여건이 안 돼서라고 여러 가지 이유들로 등록 안 하시고 또 다락방도 참여 안 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하나님의 복음의 깊은 진수와 또 기쁨을 맛보기 위하여서 올해만큼은 여러분들이 다락방에 모두 다 참여하셔서 비록 힘들지만, 내 시간이 뺏기는 것 같고 내 공간이 뺏기는 것 같지만 내 힘이 뺏기는 것 같지만 더 크게 더 깊게 더 많이 더 풍성히 채워주실 하나님을 기대하면서 다락방에 참여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여러분들이 그런 자리에서만 그런 자리에 참여해서만 느낄 수 있는 하나님의 그 희락, 하나님의 기쁨의 진수들이 있어요. 공동체 가운데서 느낄 수 있는 그런 것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섬김과 봉사의 자리에요. 이웃을 향한 교회를 향한 섬김과 봉사의 자리에 여러분들이 참여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지금 점점 낮 빛이 어두워져가고 계시는데, 봉사의 자리 가운데 섬김의 자리 가운데 여러분들이 참여해 주시면 그 자리 가운데에서도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은혜와 기쁨들이 있어요. 작년에 2년간 제가 예배부로 섬겼는데 예배부 섬김을 하면서 되게 굵직굵직한 그런 섬김의 영역들이 많았습니다.

상암 월드컵 경기장에 가서 안내하는 일들도 쉽지 않고 너무 너무나 크잖아요. 사람들도 너무 많고 그런 일들을 이제 예배부가 안내로 섬겼었는데, 저는 장담하기로는 그때 계셨던 이제 임원 분들, 저와 함께 이제 활동하시고 섬겼던 임원 분들에게 그 섬김 다시 한 번 부탁드립니다. 라고 부탁드리면 전부 다 아멘으로 순종할 것 같아요. 저만의 확신일까요? 전부 다 아멘으로 순종하실 것 같아요. 그 임원 분들과 그 봉사자분들은,,, 왜냐하면 그 자리에서만 그 섬김에서만 그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하나님의 강권적인 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봉사하시고 안내하시고 섬겨주시는 분들은 분명히 압니다. 알 사람만 압니다. 정말 현장에서 느낄 수 있는 은혜들이 있는 거예요. 찬양 팀은 찬양 팀만의 기쁨이 있습니다. 그들만 느낄 수 있는 기쁨이 있어요. 예배 봉사하시는 분들은 그들만이 느낄 수 있는 은혜들이 또한 있습니다. 중보 기도해 주시는 분들은 중보기도 팀 분들은 중보기도 팀에서 느낄 수 있는 영적인 기쁨이 있습니다. 주일 중보, 주중중보 마찬가지로 다 기쁨들이 있어요. 육체의 힘듦이 있지만 육체의 피곤함이 있지만 그것을 영적으로 채워주시는 초월적인 하나님의 강권적인 은혜들이 있다. 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기대하시면서 그것을 소망하시고 기대하시면서 더 깊이 공동체 가운데 들어와 주시고 예배의 관람자가 아니라, 예배를 드리시고 예배를 드릴 뿐만 아니라, 예배를 섬기시고 섬길 뿐만 아니라 예배를 주도해 가시고 이끌고 가시는 우리 저와 여러분들 되시면 좋겠어요.

III. 마지막으로 진실함입니다.
-말에 사랑을 담고 또 행함의 사랑을 담았으면 이제 진실함의 문제인데 진실함은 좀 어려워요. 왜냐하면 이 마음이라는 것은 그냥 쉽사리 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진실함을 담아야지 한다고 담아지는 게 아니잖아요. 이 마음이 이렇게 왔다 갔다 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겁니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세요. 코끼리 다 생각하셨죠? 하지 말라고 해서 안 되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이 진실함의 문제는 그럼 어떻게 해야 될까 어떻게 해야 될까? 근데 저는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말과 행함에 했던 것처럼 마찬가지로 의지적으로 진실함을 더하라. 라고 이야기해 주고 싶습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고린도전서 13장에 있는 말씀인데 6절 7절 같이 함께 읽겠습니다.

*고린도전서 13:6~7,
6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7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자, 진실함을 담는 게 무엇일까 진실함을 어떻게 의지적으로 담을 수 있을까 생각을 해보니까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시간이 필요하더라고요. 사랑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잠시 잠깐 하는 것은 사랑이 아닌 거예요. 사랑엔 시간이 필요합니다. 때문에 의지적으로 견디고, 의지적으로 참으면서 무엇을 가지고 이루어질 믿음, 이루어질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그냥 내가 나중에 이루어질 그 실상을 바라보면서 지금 현재를 견디고 믿음으로 그 자리를 지켜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진실함을 담는다. 라는 것은 이렇게 내가 견디고 인내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그 자리 가운데 점점 우리의 마음 가운데 진실함을 더해주시리라 믿습니다. 진실함을 더한다면 사랑에는 제한선이 사라지게 돼요. 내가 늘 항상 우리의 죄 된 본성만 따라가면, 받은 만큼만 사랑해야지라는 그런 생각밖에 안 듭니다. 진실함이 없다면 견뎌내지 못하면 인내함이 없다면 받은 만큼만 사랑해야지 그렇게 되면은 예수님께서 보여주셨던 원수를 사랑하라. 고 하는 사랑의 클라이막스를 이루어낼 수가 없어요. 원수가 내게 공격해 오면 이 사람 나에게 공격했네. 안 되겠다. 더 이상 섬김을 멈춰야지 이렇게 우리의 죄 된 본성이 반응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의지적으로 여러분들이 진실함을 행함에 말에 계속해서 넣어야 돼요. 나중에 하나님께서 이후에 이루실 큰일을 바라보면서 믿음으로 바라보면서 이루어 가야 합니다. 우리 CS 루이스가 했던 말이 있는데 제가 한번 읽겠습니다. CS 루이스가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법칙은 아주 간단합니다. 자신이 이웃을 사랑하나 사랑하지 않나 고민하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그냥 그를 사랑한다 치고 행동하십시오. 그러면 곧 위대한 비밀 하나를 발견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을 사랑한다 치고 행동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진짜로 그를 사랑하게 된다는 비밀 말입니다. 어떤 사람이 싫다고 해서 상처를 주면 점점 더 그가 싫어집니다. 그러나 싫은 사람이라도 잘 대해주면 점점 덜 싫어집니다. -CS 루이스가-
-여러분들이 행동함에 있어서 그 행동에 따라서 우리의 마음이 점점 바뀐다는 거예요. 마음은 하나님이 창조하셨습니다. 내가 바꿀 수 있는 게 아닌데, 그렇게 하면 할수록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움직여주시고 그 자리 가운데 사랑을 계속해서 쌓아주신다는 거예요. 이게 바로 부모의 사랑이고 이게 바로 하나님의 사랑일 것 같아요. 포기하시지 않는 사랑, 내버려두시지 않는 사랑, 끝나지 않고 끊이지 않고 날마다 우리에게 부어주신 하나님의 진실한 사랑의 방법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이렇게 오늘 말씀을 토대로 기반을 이렇게 표현해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우리가 의지적으로 연약한 모습일지라도 우리의 사랑 가운데 말과 행함을 더하면 분명 그 자리 가운데에서 하나님께서 성령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십니다. 성령 하나님이 함께하시도록 인도해 주세요. 우리 19절 말씀인데 같이 함께 읽겠습니다.

*요한일서 3:19,
19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니.
-우리가 말과 행함과 진실함을 가지고 사랑을 하면 진리에 속한 줄을 알게 된다고 합니다. 진리에 속한다는 게 무슨 뜻일까요? 내가 진리 안에 있다. 바로 이 말은 영원한 약속이에요. 하나님께서 뭐라고 이야기 하셨냐면 내가 너희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고, 이 언약은 이 언약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해주신 생명의 영원한 언약입니다.
-이걸 언제 우리가 알게 돼요? 이렇게 진실함으로 사랑을 할 때 우리가 알게 된다.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이런 과정 중에 하나님이 등장하세요. 우리 24절의 말씀 같이 함께 읽겠습니다.

*요한일서 3:24,
24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그의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
-아멘 동일하게 생명의 언약이 나타나죠.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그의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성령으로 말미암아, 이 생명의 역사를 깨닫는 그 순간에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알게 된다. 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사랑 가운데 말 행함, 진실함을 더하면 더할수록 내가 인내함을 갖고 견뎌내면서 사랑을 해가면 갈수록 성령 하나님께서 내 마음을 주장하시면서 더욱더 하나님을 닮은 사랑을 해낼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신다. 라는 거예요. 때문에 때로 넘어지는 일이 있다 할지라도 완전히 주저앉는 일은 없게 됩니다. 책망할 일이 있다 할지라도 오늘 말씀과 같이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는 그분이 우리를 돌봐주시리라 믿습니다. 사랑은 감정이지, 감정이지만 그 감정만 가지고 하게 되면 언제 무너질지 몰라요. 사랑은 감정이지만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이 기독교 사랑, 크리스천의 사랑은 죄 된 마음과 육신을 이기기로 작정하는 의지가 필요합니다. 이번 한 해를 살아 내시면서 다락방 안에서 그리고 제자 반에서 더 더욱이 아직 복음을 모르는 그 한 사람을 위해서 온전히 끝까지 사랑의 범위와 한계를 생각하지 말고 사랑하시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 자리 가운데 성령 하나님께서 함께해 주신다고 약속했어요. 그리고 그 자리 가운데 성령 하나님을 통해서 내가, 내가 진리 가운데 거하는 자다, ‘내가 내 안에 주님이 함께 계신다’. 라고 하는 것을 매일 마다 느끼며 깨달으며 체험하며 살아가는 영적 존재로 주님께서 만들어 주신다 약속하셨습니다. 그런 영원한 생명의 약속을 환히 붙들고 살아내시는 여러분들, 그리고 그렇게 하나님과 마음에 합한 한 사람으로서 하나님과 연합을 이루시는 여러분들 다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요약
우리는 영을 새롭게 하고 살리는 말을 함으로써 덕을 세우고 은혜를 끼쳐 우리 각자가 서 있는 공동체와 개인과 일터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생명의 역사를 힘 있게 살아내야 한다. 자기희생적 사랑의 행동과 섬김을 통해 하나님의 영적, 육적 복이 더 풍성히 넘쳐흐르게 하시 그 자리에 또 하나의 생명의 열매가 맺어야 한다. 나의 모든 말에 하나님의 선한 말을 더해주시고, 나의 행함에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이 묻어나게 하며 모든 것을 진실함으로 하여서 무엇보다 연약한 나의 마음을 주님이 주관하여 주심을 믿고, 모든 상황과 환경을 이겨내면서 십자가의 사랑을 이루신 주님처럼 날마다 사랑을 표현하고, 사랑으로 살아낼 수 있을 만한 용량을 내게 허락해 주실 것을 확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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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4년 01월 07일)
제목: "기쁨이 없는 복음은 복음이 아니다"
말씀: 요한1서 1:3~5
찬양인도: 쉐키나(이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대표기도: 하상범 부목사님
사회: 임병영 부목사님(1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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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1서 1:3~5,
3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4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5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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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광스러운 신년 첫 주 신년 주일 예배에 이렇게 나올 수 있도록 하나님 건강 주시고 믿음 주시고 환경 주시고 은혜 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이 한 해 동안 이 강단을 불쌍히 여겨주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심정을 깨닫고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가감 없이 선포함으로 말미암아 매주 마다 도전과 치유가 나는 그런 영광스러운 감각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 일부 찬양에 우리가 아침 8시에 이렇게 영광스러운 찬양을 들을 수 있다는 게 축복 아닙니다. 다시 한 번 주님께 감사합시다. 늘 하나님께 잘 영광 돌리지만 오늘은 베스트 오브 베스트(Best of best!), 매주 마다 이렇게 할 수 있겠어요? 이게 보통 일이 아니에요. 이 주 근데 내 마음대로 하세요. 2부도 하고 3부도 하고 4부도 다 하고 싶은데, 또 2부는 2부대로 3부는 3부대로 4부는 4부대로 은혜 주시길 주님을 찬양합니다. 저는 담임 목사로서 담임 목회자로서 제가 여러분들에게 덕담을 하나 하고 싶은데요. 뭐냐 하면 올해가 몇 년이죠? 24년 아저씨 무슨 해가 됐는지 이제 올해가 2024년, 2024년에 제가 좀 이런 생각이 좀 들었어요. 우리 교회 모든 성도들은 이 한 해 동안2024번의 감사가 있게 하여 주십시오.

목사님, 그게 진짜 가능할까요? 가정에 하루에 6번씩 가수 하루에 6번씩 어떤 분은 이제 목사님 1년에 100번이라도 ‘감사’하도록 했습니다. 그러면 1년에 100번은 일주일에 두 번씩인데 일주일에 두 번 감사하는 사람과 하루에 6번 감사하는 사람은 삶의 퀄러티가 삶의 질이 완전히 달라요. 그래도 안 믿어지시죠? 가능해요. 아침 점심 저녁 드시면서 기도하시면 감사하시면서 하루에 세 번이 진심으로 그러니까 올해 식사 기도는 옛날하고 달라야 합니다. 아시겠죠? 그러면 여러분들이 음식 자체가 달라질 것이에요. 그리고 식사 기도할 때도 시작할 때, 감사하시고 마칠 때 감사하시고, 그러면 하루에 6번 자동적으로 이 한해 완전히 달라지는 거에요. 알 사람은 알도다. 그리고 오늘 제목을 이제 그래서 어떻게 하면 감사할 수 있을 것인가? 그냥 감사는 안 되고 기쁨에 감사하면 되죠. 그렇죠? 기쁨이 있어야 감사가 되지. 그래서 사실 제가 기쁨이 없는 그분은 그 부분이 아니라 제가 이 설교자를 붙이면서도 어마어마하게 부담이 됐어요. 이래 놓고 우리 의원들은 기뻐하지 못하고 나는 원래 죽는데 참 좀 어떻게 보면 리스크가 큰 위험이 내재된 그런 설교 제목인데 하여튼 오늘 이 예배를 마치고 나갈 때는 기쁨이 충만해서 나가셔야 됩니다. 다음에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기뻐할 수 있는가? 사실은 기쁨이 없는 복음은 복음이 아니라, 어떻게 보면 능력이 없는 복음은 복음이 아니다. 또 어떻게 보면 감사가 없는 복음은 복음이 아니다. 은혜가 없는 복음은 복음이 아니다. 이해가 되시죠? 그런데 이게 과연 가능한가? 가능한 거예요. 왜 가능한가, 고린도후서 3장에 보면,

*고린도후서 3:6,
6 그가 또한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하게 하셨으니 율법 조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
-영이라는 것은 성령 성령은 우리를 다시 뭐예요? 살리는 것 살린다는 말은 우리를 능력 주시고 새롭게 하시고 이렇게 하시는 어떻게 살립니까? 성경에 보시면 먼저 사도행전 2장에 보니까 제일 먼저 오순절 성경 강의 일어났을 때, 우리 사도행전 2장 17절에 뭐라 하냐면,

*사도행전 2:17,
17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주의 영이 임하면 주의 영이 우리 몸에 임하면 우리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다른 우리 아이들이 벌써 예언을 말씀을 깨닫는다. 그 말이에요. 너희 젊은이는 환상을 본다. 젊었을 때 꿈을 꾼다는 것이 그리고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리라. 그러니까 성년이나 나이 드신 분이나 상관없이 하늘나라 비전과 꿈을 갖게 된다 이 말이에요. 주의 영이 임하면 그 꿈이 있는 곳에는 기쁨이 생길 수 있고 감사가 생길 수 있는 것이죠. 그래서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나이가 많아도 하나님 나라의 꿈을 꾸면 성령이 임하시면 모두가 다 뭐가 되는 거예요? 청년이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주님 주시는 꿈을 꾸는 이 예배이기 때문에 여기는 뭐가 없다고요? 세대 차이가 없어요..

교회가 제가 한 번 그 얘기 드렸는데, 제가 이스라엘 대사관에 사바디너라고 금요일 날 초청을 받아 왔는데 대사관에 거실에 어떤 여자 분이 앉아 있는 거예요 앉아 있는데 보니까 중동 여자 분이에요. 얼굴도 좀 그렇고, 이스라엘 대사관 안에 이스라엘 대사님은 뭐냐 하면, 어떻게 중동 분이 사모님이시냐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사모님 예멘 출신이시래요. 예멘이라는 나라 아시죠? 예멘이라는 출신이시랍니다. 어떻게 된 거냐 그러니까, 예멘 출신 그러니까 현 대사는 미국의 콜롬비아 대학 가고 뉴욕 출신 백인인데 웨베 출신하고 중동 출신도 거기하고 뉴욕 출신하고 이렇게 서로 잘 되신 거냐고 물었더니요. 그러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하십니다. 우리 어릴 때는 똑같은 토라로 교육받고 똑같은 성경 공부하고 똑같이 하니까, 컬처 계획도 없고, 신학의 교육도 같았다고 해요. 제가 어마어마한 정신을 받았어요. 그래서 제 마음에 사랑의 교회 모든 성도들은 어린아이부터 어른까지 문화 차이가 없게 하여 주십시오. 어떤 세대 차이를 갖게 하여 주십시오. 왜 동일한 말씀이니까요.

저는 꿈을 가져요. 앞으로 사랑의 교회 주일 학교 교육 정책, 사랑 글로벌 아카데미가 제대로 되면 전 세계가 다 통일될 수 있는 전 세계에 있는 코리안 디아스포라 750만과 한국에 있는 모든 주일학교 아이들 모두가 다 똑같은 커리큘럼 똑같은 신학, 사원 똑같은 문화, 똑같은 어떤 수준 똑같이 하면 어디 출신이든지 다 똑같다는 것이에요. 그리고 거기에 사는 아이들끼리 서로 결혼하면 한국 교회가 보존되는 것이 저는 좋은데 여러분이 보통이 아 그러면 한국 교회는 도전되는 것이에요. 이게 우리나라의 꿈이에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역사가 있으면 하나님의 역사가 있으면 그러니까 성령이 역사하시는 곳에는 뭐가 있든 없다고요. 세대 차이가 없고, 여러분들 모두는 다 나이가 들어도 영적인 청년들이 되는 것이에요. 우리 자리에 계신 어른들 다 영적인 청년들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어떻게 우리는 영적 청년의 기백을 끝까지 유지하지 않아요. 늙으면요. 웃지를 않아요. 늙으면 이게 웃음이 많이 사라져요. 무표정이에요. 청년들은 조그마한 웃고 까르르 웃고, 특별히 어린 아이들은 더 잘 웃고, 그러니까 오늘 이 예배 끝나고 난 다음에 우리 나이 드신 분들은 다 젊은이로 돌아가는 것이에요. 오늘 본문을 통하여 몇 가지 좀 정리를 하겠습니다. 오늘 다시 한 번 기쁨이 없는 복음은 뭐가 아니라고요? 복음이 아니다.

제가 오늘 본문을 쓴 요한에 대해서 얘기하기를 먼저 우리 베드로는, 사도 베드로는 뭐든지 선봉장이고 개척자이고, 그다음 바울은 집을 세우는 지을 집 짓는 세우는 자이고, 요한은 어떻게 된다고 그랬죠? 사도는 치유하는 자라고 그랬어요. 제가 한 3주일 전에 말씀을 드렸는데 기억이 안 나십니까? 베드로는 개척자 선봉장이고 바울은 집을 짓는 자로 우리가 비유를 한다면, 사도 요한은 그물을 고치고 짓는 거에요. 사람들을 고치고 치유하는 사람인데, 그 당시에 요한일서를 기록한 이 배경은 에베소 지역에 있습니다. 에베소에서 이 기록이 에베소 교육 자체가 철저하지만 첫 사랑과 첫 기도를 이루는 그리고 이단이 바로 하고, 그런 상황에서 오늘 이 말씀을 들으면서 이 말씀을 듣는 성도들의 가슴에 불을 지르듯이, 이건 에베소 교회뿐만 아니라, 21세기를 살아온 우리 교회도 동일하게 그리고 머리로만 하는 신앙이 아니라 지금 내 가슴에 불이 지르듯이... 그러면서 먼저 그렇게 되기 위하여 이 복음과 생명의 역사 복음에 대해서 입체적으로 구체적으로 말씀하시는데 오늘 뭐라고 돼 있습니까? 3절에,

*요한일서 1:3,
3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에게 전함은 우리와 뭐가 있게 하려니 사람들이 우리의 사임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그리스도 안에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그림이라고 그랬어요. 여기 보니까 내가 아니라, 우리가 공동체가 사랑의 교회라는 이 공동체가 누리는 기쁨인데 주님과의 교재가 공동체에서 교재가 되면 무슨 일이 있느냐 이걸 이 교재의 은혜가 있을 때, 제가 교재 주님과의 교제 권에 들어갈 때에 제일 중요한 것은 뭐냐 하면 하나님의 모든 것이 우리에게 트랜스퍼 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주님과의 교제를 누리는 사람에게는 예수님의 좋은 모든 것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에요. 그래서 제가 에베소서 1장 3절에 찬송하리로다.

*에베소서 1:3,
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셨다 했을 때, 그 신령한 복을 주신 결과가 뭐냐 자연스러운 결과가 뭐냐면 1장 4절에,

*요한일서 1:4,
4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아멘.. 저와 여러분에게 뭐가 있게 하기 위하여 기쁨이 충만하게 하신다는 것이에요. 그래서 오죽하면 오죽하면, 시편 16편 11절에 똑같이 나오는데요.

*시편 16:11,
11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정리하겠습니다. 잠깐만요. 시편 16편을, 사도행전 2장에 성령 충만한 베드로가 다시 그대로 설교를 해가지고 반복을 하는데 저게 사도행전 2장도 그대로 나와 있습니다. 저 말씀이 나와 있는데 뭐라고 말씀하는가, 주님과의 올바른 교재가 있고 우리의 복음이 입체적이 되고 우리의 복음의 능력이 있을 때 자동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은 주님의 모든 것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줄로 믿습니다. 주님의 모든 것이 우리에게 주어질 때 거기에 나타나는 중요한 현상 중에 하나가 주의 앞에는 뭐가 있고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손에는 뭐예요? 영원한 즐거움이 있다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사역에 모든 것이 주님 앞에는 즐거움과 기쁨이 충만한 줄로 확신합니다. 이거는 뭡니까? 그게 없어요. 이거는 저기 뭡니까? 에누리도 없어요. 이거는 디스카운트도 안 돼요.

모든 온 모든 머리부터 발끝까지 있어요. 그러니까 주님의 말씀이 들어가는 곳마다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걸 깨닫고 난 다음에 빌립보서 4장에 보면요.

*빌립보서 4:1,
1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바울은 그리스도 빌립보 교회를 향하여 나의 기쁨이며,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 이라는 이 표현을 함으로 말미암아 구체적으로 문법 적으로는요. 기쁨과 면류관은 카이라고 엔드로 연결되는 동격이에요. 그러니까 바울은 사랑하는 빌립보 교인들을 기쁨이라고 부르고 있는 거에요. 여러분, 빌립보 교우들은 어떻게 형성되었습니까? 빌립보 교회가? 빌립보 감옥의 간수, 루디아 또 류오디아 선두계, 류오디아 선두계, 이런 그 빌립보 교회 성도들의 이름이 다 우리 나와 있는데 사실은 다시 빌립보 4장 1절에 다시 보면,

*빌립보서 4:1,
1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면 이름이 기쁨으로 바뀌는 거예요. 기쁨 간수, 기쁨은 류디아, 기쁨 선두계, 기쁨 류오디아, 그리고 그 그 기쁨과 면류관이 동격이 되는 것이에요. 깊이 들어가면 기쁨을 면류관처럼 보고 만지고 느낄 수 있는 실체를 체험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빌립보 교인들에게 바울은 그저 기쁨이 멋진 수사나 논리적인 이론이 아니요. 기쁨 자체로 기쁨 실체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지난주는 여러분들이 이 한 해를 걸어갈 때에 지난주에는 여러분 놋과 철로 된 문빗장이 있었지만 매일매일 저녁에는 그것으로 보호받고 아침에는 강철 신발을 신고 나가라고 그랬잖아요.

오늘 제가 여러분들에게는 그렇다면 신발은 강철 신발을 신고 나간다면, 오늘부터 여러분 머리에 모자와 머리는 머리는 뭐예요? 기쁨의 면류관, 기쁨의 모자를 쓰고 나가는 것이에요. 하늘을 날을 때 다 아침마다 기쁨의 모자를 쓰고, 또 신발 강철 신발을 신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주님이 신겨주시고 주님께서 씌워주신 그 기쁨을 가지고, 이 한해가 여러분들의 삶으로 연결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이에요. 이게 저도 이걸 고민 좀 많이 했어요. 우리 교회 부모들이 어떻게 하면 매일 아침마다 머리에 기쁨에 관을 쓰고, 신발은 강철의 신발을 신고, 매일매일 이렇게 할 수 있을 것인가? 제가 말하는 이 기쁨은 성령이 주시는 기쁨인 줄로 믿습니다. 성령이 주시는 기쁨은 오직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뭐예요? 희락이라. 기쁨은 이 성령이 역사에서 끊어질 수 없는 것이고, 그다음에 성령이 역사할 때, 성령의 열매 가운데 오직 성령의 열매는 첫 번째는 사랑이고, 두 번째는 뭐예요? 희락이라, 사랑과 희락 이 희락과 사랑과 기독교의 사랑이 없다면 어떻게 우리가 존속할 수 있겠습니까? 기독교의 기쁨이 어떤 존재의 가치가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이 기쁨은 여기에 성경에 기록된 언어 정도가 아니고, 또 우리가 기대하는 정도가 아니라, 오늘 이걸 손으로 만지고 매일 매일 마다 쓰고 나갈 수 있는 실체가 될 수 있는 것이에요. 실체가 돼야 되는 것이에요.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 안에서 경험하는 기쁨은 자가 발전된 고양된 감정 정도가 아니에요. 그냥 뭔가 없던 상태 그 정도가 아니에요. 여러분과 저의 신앙의 근본을 세우는 실체가 되는 것이에요. 기쁨은 복음의 열매이고 성령의 열매이고 하나님의 본성에 뿌리를 두고 있는 실체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 주님 앞에 주님의 모두에서 우리에게 트랜스퍼 되는데, 주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동선자(同船者)구의 기쁨으로 주님을 다,,, 그리고 이 기쁨은 2024년도 한 해를 매일매일 살아가는 우리를 회복시키시고 우리를 살게 하는 능력으로서의 실체인 줄 믿으셔야 되는 것이에요. 그리고 하나님 안에서 성도가 누리는 기쁨은 어떤 느낌 정도가 아니에요? 현실에서 실제적으로 우리 자신을 회복시키고 살아가는 강력한 힘으로서의 실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거는 구약시대 때부터 우리를 너무나 잘 알지요.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은 너희의 뭐예요? 힘이라, The joy of the Lord! 하나님과 하나님을 통하여 얻는 이 기쁨이 우리의 삶에 가장 강력한 힘이 된다.

그래서 제가 좋아하는 ‘안토니 캄폴로’ 라는 크리스천 사회학자는 ‘하나님의 나라는 기쁨의 잔치다.’ 그분은 필라델피아 빈촌에 들어가고 정말 어려운 사람들 막 도우면서 고생하고 있잖아요. 빈자들을 섬기는 그런 분이에요. 그런데 만약에 그분이 인상 확 바뀌면서 왜 다른 사람들은 왜 다른 사람들은 교회가 말이지 뭐 화려하고 이러면서 왜 영원한 어려운 사람 안 섬기냐, 그런 것을 뭐라 삿대질하면서 자기가 그렇게 하는 사람이 아니고, 기쁨이 충만해 아주 자연스럽게, 그는 그게 내 역할이 있는 거고, 나는 내 역할이 있다 면서 기쁨으로 빈자들을 섬기는 거예요.

이해가 되십니까? 무슨 말인지 그러니까 하나님의 나라는 잔칫집이라는 것이 그 어려운 일을 하면서도 잔치 성을 잃어버리지 않고 있는 것이에요. 그러면 제가 목사님 이 기쁨은 예수님 처음 믿을 때 기쁨만을 얘기합니까? NO! 예수 믿고 나서도 수많은 고통과 고난의 연속에 있어도 우리가 기뻐한 것이 이게 바울이 그렇게 고백하는 거예요. 고린도후서 12장 9절 너무 잘 하는 말씀 다 함께 보겠습니다.

*고린도후서 12:9,
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지금 어떤 순간입니까? 바울이 바울에게 이런 가시가 있어가지고,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하나님께 세 번이나 간절히 기도했다. 그랬어요. 제발 다시 없애달라고요. 그런데 1장 9절은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 지기 때문에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은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한 자랑이라. 약하고 힘들고 어렵고 문제된 것들도 오히려 기쁨을 앗아갈 수가 없고, 오히려 그 가운데서도 기뻐할 수 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능력과 박해와 어려움을 기뻐하며 그 기쁨이 나를 온전하게 하고, 강하게 하고 내 삶을 풍성하다는 것을 확신 있게 선포하는 것이에요. 약해도 약한 가운데서도 하나님 사랑하고 약한 가운데서도 주님께 쓰임 받을 수 있다는 걸 생각하니까, 기쁨을 저는 확신하는 게 하나 있어요. 뭐냐면요. 하나님이 주시는 거는 나쁜 게 없어요. 다시요. 철저한 믿어요. 하나님이 주시는 건 나쁜 게 없어요.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은 비에게 가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거지만 우리가 예수 믿고 구원받은 하나님 백성들에게 살짝 믿을 거 하나님이 주신 거는 나쁜 게 없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고 주신 이가. 우리에게 모든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시니, 그러니까 제가 어려울수록 설렌다 그랬잖아요? 그러면 그것이 여러분들에게 기쁨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 중요한 하나님 삶의 원칙인 줄 믿으셔야 되기를 바랍니다. 만일 성도가 누리는 기쁨이 그저 고취된 감성이나, 수사적 표현이라면 여러분 어떻게 우리가 변화무쌍한 새해 환경에서 변치 않는 확고한 즐거움을 누릴 수가 있겠습니까? 그냥 적당한 감정, 그렇다면 그게 어떻게 환경을 초월하여 삶을 회복시키고 움직이는 힘이 될 수가 있겠습니까? 이 기쁨이 그리스도의 적당한 감정이라면 그게 어떻게 한 해 내내 시련과 고통조차도 삶의 풍성한 자원으로 만들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그것이 적당한 감정이라면 이 땅에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기초석을 우리가 기쁨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하비 콕스라는 좀 자유주의 신학자고 이렇게 이분이 사신 신학이라고 그분 강의를 한번 들어봤는데요. 제가 그 과목을 듣다가 무릎을 친 내용이 있어요.

이 하바드에 있는 하비 콕스는 유명한 책이 있어요. 지금도 살아 계시고, 신학을 하는 거는 하비 콕스의 사진 신학을 모르는 사람이었어요. 근데 그분이 리서치를 한 거예요. 학자니까, 기독교 예배에서 그다음에 기독교 신앙에서, 기쁨의 축제성이 사라진 다음부터 하나님의 죽음의 신앙이 나왔다 그랬어요. 저는 너무 어려운 얘기를 하고 싶지 않습니다. 쉽게 말하면 기독교의 기쁨의 실체가 사라지고 난 다음부터 실제로는 교회 내에서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이 능력이 사라지고 난 다음부터 죽음의 신학, 하나님이 죽었던 사신 신학이라고 해요. 사랑하는 우리 영 가족 여러분들의 기쁨의 은혜 때문에 복음의 신앙이 다시 회복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그리고 이 기쁨이 예수님이 갖고 계시는 것, 주님이 우리에게 세워주신 면류관이 우리의 삶에 2024년의 실체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이게 있어야 여러분들을 흔들 때 붙들어주고 넘어질 때 이렇게 세워주고, 고통으로 찢겨진 가슴을 떼워 줄 수 있도록 다른 길이 없어요. 남은 자 올해는 제가 실체적으로 우리 성도들과 함께 계속 제가 강조하고 싶은 건 그것이 뭐냐 하면 여러분들의 장래가 뭐냐 여러분 장래는 제가 대가는 아니지만 지금 앉아 있는 여러분들의 얼굴 표정이 여러분들의 장래이에요. 무표정이 장래가 뭐가 될 겁니다. 여러분들의 얼굴 표정은 설레이고 기쁨의 면류관을 쓰고 예수님 자체가 기쁨이기 때문에 내가 주님과 영적 교재와 주님의 은혜가 있을 때, 주님의 그 은혜가 내게도 최소 된다고 하고, 주님의 기쁨이 내게 들어와서 변소 별로 주님의 기쁨이 내게 들어왔을 때, 거기서 갖는 얼굴 표정, 그게 여러분들의 장래가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죽을 때가 우리의 삶에 피크가 될 수가 있는 것이에요. 다시 한 번 말씀드리는데 여러분과 저는 바울이 고백한 대로 주님의 기쁨이요. 면류관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그래서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들 오늘 여기 여기 1 2 3층니까, 우리 모든 중직자들 다 여러분들 이름이 저는 오 기쁨이에요. 오 기쁨, 제 이름은 기쁨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제가요. 내 마음이 너무 가슴 찌릿찌릿하고 감사한 거에요. 이래도 안 되는 분들은 오늘 여기서 안 깨지면 희망이 없어요.

*시편 51:8,
8 내게 즐겁고 기쁜 소리를 들려 주시사 주께서 꺾으신 뼈들도 즐거워하게 하소서.
-꺾어진 뼈는 극심한 고통과 절망적 상태를 보여주는 거에요. 꺾어진 뼈는 고통의 소리를 말할 뿐이지 결코 즐거움의 노래를 부를 수가 없어요. 우리가 그 스스로 오실 때는 다윗이 범죄하고 난 다음에 책망 받고 눈물로 회개하는 시대 아닙니까? 가슴 찢어지는 회개기도 가운데 오죽하면 주의 성령을 내 곁에 거두지 말아달라고 그렇게 비탄을 열심을 하고 있는데 오늘 8절에 다윗은 주님 그래도 주께서 꺾으신 자들도 즐거워하게 하여 주십시오. 라고 합니다. 이게 없으면 살 수가 없어요. 살에 난 상처도 고통스럽지만 뼈가 꺾어졌다. 뼈가 뭉개질 정도로 부러질 때, 오는 고통은 극심한 겁니다. 이 고통으로 밤이나 낮이나 편할 수가 없습니다. 뼈 하나가 부러져도 고통스럽겠는데 오늘 주께서 꺾어진 뼈들도 복수 여러 개의 뼈들이 부러져 있는 상태입니다.

다윗이 더 이상 당할 수 없는 극심한 고통을 당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그런데 지금 다윗은 고통 중에 있습니다. 다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하나님과 회복될 증거가 즐거워하게 바라고, 회개의 증거가 뭡니까? 즐거움이에요. 이 수준을 저와 여러분이 올라가야 돼요. 한국에 잘난 사람들 교회 향하여 선지자 들고 하는 사람들, 홰개 하라, 회개하라 하는데, 그러면서 그 얼굴에는 기쁨이 하나도 없어요. 여러분, 회개의 수준에서 회개에 진짜 올라가면 즐거운 일이에요. 진짜 회개하면, 즐거운 게 있는 거예요. 사랑하는 교회 모든 중직 자들과 모든 교육자들과 직원들, 오늘 나오신 모든 분들 여러분, 우리가 회개조차도 즐거움으로 승화돼야 되는 것이에요. 주께서 꺾으신 뼈들도 뭐 하게 해달라고요? 우리 가운데 죄로 인해서 세상에 걸친 돌풍으로 인해서, 뼈가 꺾어지는 고통 속 분들이 있다면, 항암 치료로 고통 가운데 계신 분들이 있다면, 그것이 즐거워하게 하여 주십시오. 인간관계에서, 재정에서, 하고 있는 일에서 얻어진 수많은 영혼들을 즐거움으로 회복시켜 주시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다윗의 기도를 다시 주목하십시오. 다윗은 꺾어진 뼈에 고통이 잦아들고 잠잠해져서 편안해지기를 구하고 있지 않습니다. 또 꺾어진 뼈들이 무감각하게 되어가지고 고통을 덜 느끼게 해달라고 기도하지도 않습니다. 더 높은 수준, 주여 주께서 꺾으신 뼈들도 즐거워하게 하여 주십시오. 기가 막힌 차원이에요. 아마 우리 생애에 회개가, 회개의 가장 강력한 표현은 즐거움이다 이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을 거예요. 저는 이 말씀을 듣고, 아, 회개와 성숙과 주님 앞에서의 자세를 제대로 한 사람은 즐거움이 넘친다. 여러분 상황을 제가 다 모릅니다만 심히 고통하고 있습니까? 그런 고통 가운데 어떤 기도를 드리고 계십니까? 고통이 없기를 기도하십니까? 고통을 못 느끼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한 단계 더 올라가야 합니다. 다윗은 자신의 연약함으로, 자신의 잘못으로 겪는 고통 중에서도 꺾으신 뼈도 즐거워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라고 합니다. 불을 지른 뼈들이 하나님을 기쁨으로 노래하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짜 기쁨이 있어야, 기쁨이 있는 복음이 되는 것이 이것이 진짜 복음이 될 수가 있는 것이에요. 찬송이라는 거는 꺾으신 뼈들이 즐거워하는 거예요. 여러분 다시오. 하나님이 주신 거 나쁜 거 있어요. 없어요. 아마 여러분 고통 가운데 있으면 하나님 주신 건 나쁜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꺾으신 뼈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기뻐하고 찬양하고 기뻐하면 여러분 그 순간 그 환경이 여러분 인생의 베스트가 될 거예요.

골든타임이 될 거에요. 최고의 기쁨이에요. 우리도 우리 교회도 지난 시간을 보면요. 우리가 어려울 때가 최고 시간이에요. 나비처럼 그게 최고의 시간이라는 것이에요. 주님과의 교제를 통하여 기쁨이 회복되며 우리가 처한 상황이 어떠하든지 심지어 다윗처럼 꺾어진 뼈들도 심히 고통 중에 있을지라도 하나님을 즐거워할 수 있는 은혜가 있을 줄로 믿습니다. 새초부터 새말까지 우리는 한 번도 걸어가 보지 못한 설렘, 미담의 길을 걸을 때 예기치 않은 일들로 인생의 뼈들이 부러질 정도로 어려움을 겪을 수 있지만, 그럴 때마다 다시 한 번 이 강력한 복음에 선포를 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주여, 부러지는 은혜도 즐거워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멘, 이때 복음의 능력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쁨이 없는 복음은 복은 아닙니다. 이 한해를 즐거워할 수 있도록 그 수준에 올라갈 수 있도록 하나님 우리에게 은혜를 입혀주시길 바라는 것입니다.

제가 주중에 우리 교회 집사님께 이 메일을 받았습니다. 목사님 2033-50 비전을 이루어 가려는데 전도도 해야 되고, 복음 선포도 해야 되고, 우리가 북한 사역, 북한 하루아침에도 그렇게 해가지고 앞으로 10년에 우리 민족의 50%가 구원받게 하여 주십시오. 그런데 진짜 끝까지 뼈들이 뭘까? 제 마음에 인적이 아들, 영적 고아들, 한국에 지금 고아들이 너무 많아요. 미혼모들 아이들도 그렇고, 꺾어진 뼈들이 많아요. 그리고 영적인 고아들, 저는 어릴 때 고아원 옆에 제가 학교가 있었기 때문에 우리교호 앞에 그 고아원이 있어요. 우리 고아들 그 얼굴을 나는 늘 눈빛이 나도 들을 수가 없어요. 걔네들은 부모의 사랑을 못 받으니까, 그 사랑하는 눈빛이 그러니까 기쁨이 안 생기는 거예요. 기쁨이 없는 빛이 꺾어진 거에요. 그리고 영적인 고아들 젊은이들 가운데 아이들 가운데 심한 것이 아동학대도 있고 이런 거 있지만 OECD 가입국 가운데서 우리 청소년 가운데 자살률 1위, 고독사도 1위에요. 코로나로 사망한 사람보다도 자살로 사망한 사람이 더 많아요. 그래서 고아를 긍휼히 여기시고 꺾으실 때도 하나님의 복음의 능력이 육적인 고아, 영적인 고아, 여기 자녀분들이 없는 분들은 혹시 은혜가 젊은 분들 가운데 입양할 수 있으면 입양하면 너무 좋겠어요. 그럴 때 그 인간적으로 생기는 입양해 가지고 생기는 많은 문제들이 있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성령 안에 주시는 이 영광스러운 복음의 기쁨이 충분하게 될 거예요.

미국에 이에나 버거가 있습니다. 1948년도에 캘리포니아 첫 번째 헴버거 가게를 열었습니다. 제가 미국 가면 꼭 그 가게를 들립니다. 드라이브 쓰루(Drive Thru)로, 몇 사람이 따라올 것을 거의 드라이브 쓰루로 이렇게 받는데 그 주인이 신실한 크리스천입니다. 이네라 버거의 기업 정신이 뭐냐면요. 이네라 버거를 사서 가게 문을 열고 나갈 때는 행복하고 기뻐해야 한다. 이에나 버거 이걸 통해서 사람들이 행복하고 기뻐한다. 엄청나게 줄을 섭니다. 그는 식사를 점심시간 때면요. 줄을 서거 자동차가 십 대가 줄 서 있어요. 거기서 감자튀김을 주문하는 싱싱한 감자를 그 자리에서 잘라갖고 튀겨주고 엄청나게 맛있습니다. 근데요 내가 기가 차요. 사이 모르는 사람 모르는 거예요. 그 프렌차이점, 감자튀김 박스 밑에다가 뭘 써놨는지 압니까? 잠언 24장 16절입니다. 시작

*잠언24:16,
16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지느니라.
-햄버거 프로파일 밑에다가 그리고 햄버거 봉지 안에는 요한복음 3장 16절을 써놨어요.
*요한복음 3:16,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한국에서 안 써놓고 팔면 그거 사기예요. 이 햄버거 하나를 팔아도 이거 하나 갖고 기쁨이 있기를 바란다고 해요. 그러면 우리는 복음을 바꿔야 돼요. 우리 사랑의 교회 많은 제자들을 가지고 수많은 영적인 훈련들이 이런 말씀을 가지고 다른 영혼을 섬길 수 있도록 준비가 돼 있는데 여러분 때문에 다른 영혼의 기쁨이 없다면 이건 사기예요.

여러분들 은혜 오늘 우리 한국교회 우리 교회 성도들 주위에 수많은 기쁨의 능력이 충만해지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7번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게 하는 것이 복음입니다. 다시 기쁨이 없는 복음은 복음이 아닌 것입니다. 꺾어진 뼈들도 즐거워하는 이 복음을 가지고 신발은 뭘 신고요? 모자는 뭘 쓰고요? 기쁨의 면류관, 뚜벅뚜벅 걸어가면 2천 24번의 감사가 되는 것이에요. 그 어떤 해보다도 영광스럽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은혜의 은혜를 주시를 믿습니다. 할렐루야!

♬매일 내 마음에 기쁨이 넘치네. 더욱 섬길수록 더 구한 주님!!!!!~~~~
다음에 제가 오늘 오전은 찬양을 안 했어요. 다음 주에 하겠습니다.

♣요약
주님의 영이 임하여서 하루 여섯 번이상 기뻐하고 감사하는 자로 예배드리고, 불붙는 가슴으로 영적 청년의 기백을 유지하는 인생으로 살아가야 한다. 날마다 머리에는 성령님께서 주시는 충만한 기쁨과 영원한 즐거움의 면류관을 쓰고, 발에는 강철신발을 신고 걸어갈 때, 나의 꺾어진 뼈들도 즐겁도록 기쁨과 감사로 만들어가야 한다. 우리는 육신의 고아, 영적인 고아들을 기쁨으로 섬길 때, 하나님의 모든 좋은 것을 내려받는 은혜의 한 해가 되기를 간구하자.
-우리는 주님과의 교재를 더한 기쁨이 우리에게 전수되고, 기쁨이 우리에게 와 닿으면 꺾어진 뼈 같은 상황에서도 기뻐할 수 있어야 한다. 꺾어진 뼈들도 기뻐하게 하시는 복음의 능력을 통하여 날마다 승리하는 2024년 되어, 이 땅에 육신의 고아도, 영적인 고아도, 경제적인 아픔이나 질병의 고통을 끌고 있는 인생들도 주님께서 주신 기쁨으로, 복음으로 다시 살아나야 한다. 하나님이 주신 것은 나쁜 것이 하나도 없다고 믿고, 세상이 알지 못하는 기쁨이 우리에게 충만히 주실 줄로 확신하며, 기쁨의 원천이신 주님과 진심으로 우리는 교제하면서 주님의 가장 귀한 모든 것을 풍성히 받아들이는 자로 기쁨의 복음을 가지고 헌신하는 올해를 만들어가야 한다.













※  위 영상은 2부예배입니다. 1부 예배와 약간의 내용이 다를 수 있습니다.  설교 내용 맥락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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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흥헌신 토요비전새벽예배(주후 2024년 01월 06일
제목: "유일한 소망, 주님의 몸 된 교회"
말씀: 이사야 40:3~5
대표기도: 임병영 부목사님
찬양인도: 창목회. 창조회 연합
말씀읽기: 류재언어린이(유년부), 양이든어린이(유년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 목사님
ㅡㅡㅡㅡㅡ
*이사야 40:3~5,
3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4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언덕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아니한 곳이 평탄하게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5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이는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
ㅡㅡㅡㅡㅡ

▶할렐루야, 오늘 이 말씀이 이 시무비에 나온 여러분들 모두에게 그대로 한 생애 동안 접목될 줄로 믿습니다. 그렇게 하고 그다음 우리 오늘 이 SNS로 온라인으로 들어오는 모든 분들에게도 동일하기를 바라고 사랑의 교회뿐만 아니라 한국의 6만 여개 교회, 정확하게 말하면, 지금 5만원 8천 교회, 된다고 그러는데 6만여 교회가 코로나 이후에 다시 세니까, 좀 줄어가지고 하여튼 6만여 교회가 모두가 다 이사야 40장의 이 말씀이 그대로 접목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먼저 목회자로서 사랑의 교회에 속한 모든 성도들, 우리 교회 목양 1, 2, 3, 4, 5, 6, 7, 8, 9 모든 목양 팀들마다 오늘 이 말씀이 그대로 접목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사랑의 말씀이 그대로 접목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사랑의 교회의 모든 우리 영아 유아부터 시작해서 포에버에 이르기까지 모든 각 자치 부서 하나님 은혜 베풀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는 크게 사랑 글로벌 아카데미, 그다음에 국제제자훈련원,,그리고 사랑의 복지재단이 우리 교회에 또 같이 있습니다. 어제 제가 국제 저자 올려놓은 시무예배, 또 사랑의 복지재단 시무예배를 드렸는데 참 마음의 감사가 있었어요. 2004년도에 국제제자훈련원이 여기 우리 교회서 한 10분쯤 옆에 가면 국제제자훈련원 건물이 있습니다. 거기서 어제 이제 2004년에 20년 전에 그 건물이 지어졌습니다. 지어지고 지금까지, 250억 거의 우리 교회 예산의 반 정도가 복지재단에서 하는 건데, 사랑의 복지재단은 복지재단 전체 산하에 열한 서너 개 단체가 있는데, 예를 들어 반포복지관 아시죠? 여기 그거 저희가 운영을 하고 있거든요. 그다음에 이제 올해 이제 우리가 따뜻한 봄이 되면 우리가 오프닝 감사 예배를 다시 드리려고 하는데 서초 요양센터, 아시죠? 우리 경부고속도로 가시면 거기 오른쪽은 큰 ‘서초 복지재단’이 있는데 그걸 저희가 이제 재작년에 저희들이 이렇게 이제 우리가 책임을 맡아가지고 저희가 운영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감사한지요. 그런데 어제 복지재단에서 저한테 이걸 달아줬어요. 왜 제가 저게 오늘 뭔가 이렇게 생각이 되죠. 영국의 총리들이 이런 꽃을 달고 있는데, 이거는 뭐냐 하면 내가 총리는 아니지만 우리 다 달아줬는데 그게 뭐냐 하면 저는 우리 교회 성도들에게 하나씩 다 달아주고 싶어가지고 지금, 이게 어려운 사람, 힘든 사람, 연약한 사람 또 지금 고통당하는 자들이 사랑의 교회 사역과 섬김을 통하여 그 고통이 치유되고, 어려움이 극복되고 또 모두가 다 이렇게 새롭게 세워질 수 있도록 그런 마음으로 이걸 단 거예요. 오늘 마음으로 제가 여러분들 다 달아드리고 싶으니까 아름답죠? 이게 아름답지 않습니까? 이게 세상을 새롭게 하는 환하게 하는 꽃이라고 생각하시고 들어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고 같이 있고 그다음에 ‘토비새에 나오면 행복’이라고 그거 그런 거 아시죠? 그러니까 오늘 두 가지를 다시 한 번 더 부르고 우리가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어제 시무예배를 드렸는데 이 복지재단에서 저한테 ‘목사님 주님과 동행하는 한 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래가지고 사랑의 복지는 처음으로 저한테 줬어요. 내가 얼마나 고마운지, 오늘 아침에 새벽에 그대로 빼가지고 와가지고 그거 우리 부모들에게 드리는 거 잘 안 보이시죠? 여러분 주님과 동행하는 진짜 복된 이 카이로스의 한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제곱근(√)의 원리를 늘 여러분께 말씀을 드렸습니다. 만 명이 변하려면 만 명이 다 변화되는 게 아니고, 100명이 핵심 역할을 담당할 때, 100제곱이 되니까 100제곱이 뭐죠? 만 명이 되는 거죠. 그러니까 만 명이 변하려면 100명이 바뀌면 만 명이 바뀔 수가 있다.

저희 교회 공적으로 등록되고 보면 저희가 10만 명 정도 돼 있는데, 조금 늦게 돼 있는데 10만 명이 바뀌려면 얼마가 변화되면 되죠? 100명이면 1만 명 300명이면 얼마예요? 9만 명 400명이면 얼마나 이거는 16만 명, 이제 좀 놔두고 7천만이이 바뀌려면 어떻게 하면 되는 거예요? 만 명이 변화되면 일억으로 바뀌죠? 맞습니까? 이게 감이 안 잡힙니까? 사랑의 교회 7천기도 용사가 제대로 간다면 우리 민족은 희망이 있는 것이 7천 곱하기 7천은 얼마입니까? 7000X7000=4,900만 명, 맞죠? 저는 여러분들이 이렇게 반응을 이렇게 하시면 감사한 일이에요. 7천이 제곱톤이 되면 4,900만이 바뀌는 거에요. 그러니까 사랑의 교회 이 토비새의 오늘, 여러분이 예배 토비새가 여러분들 때문에 우리 민족이 소망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오늘 제가 유일한 소망 주님의 몸된 교회라고 그랬는데 오늘 이사야 40장이 말씀 가지고 우리가 기도의 제목을 갖고 주님 기도할 텐데 나라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아요. 뭐, 연평도 200발 오니까 400발 쏘고, 우리나라는 이제는 하도 이렇게 뭡니까? 그런 일들이 많았고 덤덤해요. 쏘든 말든 그리고 정치적으로 요동도 있고 여러 가지 다 있는데 여러분이 어떻게 들으실 것 같습니까? 아니면 우리가 어떻게 중심을 잡아야만 합니까? 여기 우리 아이들도 있는데 우리 아이들이 앞으로 장래가 소망하는 나라를 우리가 물려줘야 한다. 어떻게 하면 알 수 있습니까? 저는 영적 제고권의 원리와 함께 한국교회가 오늘 이 토비새에 나온 여러분과 저가 정신 정신만 바짝 차리면 하나님이 인도로 불쌍히 여겨 주시리라 믿습니다.

1980년도, 우리나라 대혼란의 사태였어요. 그 이유는 제가 설명 안 해. 여러분들 조금 아시면 다 아실 거고, 박 대통령 서거하고 난 다음에, 79년도 아닙니까? 그다음 80년도 나라가 저도 그때 대학생일 때인데, 저도 그때 저기 뭡니까? 서울역까지 우리 다 그랬어요. 난리가 없는 난리가 없었어요. 그러는데 그때, 저 하늘산 기도원에서 3만 명이 모여가지고 금식하면서 구급 비상회개 금식 기도를 한 적이 있어요. 왜 그렇게 금식 기도를 했냐면 그때 임경석 장모님이라고 그러셨는데, 이분이 해병대 대스타였어요. 방송 부사장도 하시고, 나중에 이들 분이셨는데 이분이 북한 정보 전문가였어요. 김일성 정보 1인자였어요. 그래서 80년도에 북한이 남한에 쳐들어오려고 모든 군대가 휴전선으로 집결하게 그 휴전선을 지키라는데, 그걸 대통령에게 먼저 보고를 안 하고 그때 대통령 최규하 대통령은 그때 막 시작이고 힘이 없었어요. 대통령에게 먼저 보고하기 전에 한경직 목사님과 김준곤 목사님을 찾아가서 나라가 혼란의 위기에 있으니까 먼저 기도해 달라고,,, 그래서 그때 대학생 선교하생 중심으로 해가지고 구국비상 회개 금식기도회를 선포하고, 그때 그런 말해서 3만 명의 기도하는 사람들이 하늘 산에 모여가지고 같이 금식하면서 기도하고, 그때 그 유 장관이 감사하다고 했어요. 그래서 나중에 우리가 나라를 위하여 3일 동안, 금식 기도하는 동안 북한이 마음을 바꾸어서 군대가 철수했다.

그래서 제가 자주 말씀드리지만 휴전선이 뚫리지 않는 것은 우리나라가 정치를 잘하고 경제가 발전해서가 아니라, 나라를 위하여 기도하는 한국교회의 기도가 이 민족을 지킨 줄로 믿습니다. 그러니까 이 민족의 유일한 희망이 교회가 되는 것이에요. 교회 회는 이 세상에 어느 단체가 새벽에 이렇게 모여가지고, 지금 여기 수서가 아닙니까? 이렇게 간절히 기도할 때 이 우리의 기도가 저 휴전선에서 북한이 잘못된 걸 막아주는 것이에요.. 꿈자리라도 우리는 물론 이것 때문에, 그래서 저는 계속 외치고 있습니다.

한국 민족이 한국 민족이 한국 기독교가 없으면, 이 민족은 망한다는 말입니다. 1948년도에 민의 나라 대한민국 백성의 나라로 기도를 시작한 나라 이승만 대통령 제헌 국회 할 때, 처음 할 때 기도를 시작하고, 제가 저번에 말씀드린 대로 2대 대통령 191,952년도에 전쟁 중에 2대 대통령 취임할 때도 취임식 하는데 대통령 선서하기 전에 갑자기 배 목사님 나오시라고 그래갖고 기도하고, 2대 대통령 선서하고 이제 그런 것들을 기초로 해가지고 다시오... 이 민족의 근대 교육의 효시가 누굽니까? ‘한국기독교회’ 한국 교회인 줄로 믿습니다. 근대 교회의 효시가 이 민족의 참 자유의 가치를 계속 고수하는 데가 어디입니까? 참 자유의 가치를 계속 키운 곳이 어디예요? 한국 교회인 줄로 믿습니다.

성경이 말하고 한국 기독교가 말하는 것이에요. 우리나라는 봉건주의 사회, 조선시대의 관계와 연결돼 있기 때문에 아시아의 그 당시에 동아시아, 동아시아의 이 문화권에는요. 자유라는 개념이 없어요. 일본도 막부 시대의 자유라는 개념이었고, 중국도 저 청나라 황제 시대의 자유라는 개념이었고 우리나라는 말할 것도 없고 우리는 양반 상놈 해가지고 양반이 돼가지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상놈이었잖아요. 참 자유의 개념이 없어요. 그러니까 성경이 들어오고 난 다음에 참 자유의 개념을 만들어주신 것이에요. 다시요. 근대 교회의 효시가 어디예요? 크게 ‘한국 교회’,. 한국 교회 근대 교육의 효시 아니에요 한국 교회 또 ‘한국 기독교’가 된 거예요. 그다음에 참자유의 가치를 고수하는 데가 어디예요? 한국 한국, 기독교가 또 하나 글로벌 스탠다드로 이 민족은 이 반도에서 가지 맨날 서로 싸우고, 나머지 숟가락 몇 개가 있는 거 아니까, 그 간섭하면서, 내가 얘기했잖아요. 제가 20일에 뉴욕에 있다가 서울로 와가지고 우면 산을 잡고 올라가는데, 내가 올라가는데 올라가다가 피곤해 내려오려고 그러니까 옆에 와가지고 왜 내려오느냐고? 왜 그러시냐고 그러니까 왜 올라오면 끝까지 가야지, 왜 내려오시냐는 것이에요. 근데 그때 내가 깜짝 놀란 게,, 한국사람 진짜 남 간섭하는데 은사구나 했어요...미국 사람들은 나는 이 비즈니스, 이거는 이거 그런 거 이게 그 사람이 사회에 맡기는 건데 지금 우리나라 모두 그렇잖아요. 나라가 기독교가 글로벌 스탠다드를 제시해가지고 나라의 어떤 비즈니스나 우리 기업이나 그다음에 어떤 게 사회 발전이나 우리 문화나 이건 글로벌 스탠더드가 올라갔는데, 이 국민들의 의식은 옛날에 조선시대, 유교 성리학 수준으로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에요. 아주 감정적이고 아주 그냥 공격 잘하고, 그 성리학은요. 그 논리와 ‘조의제문(弔義帝文)’이라고 들어보셨죠? 어느 나라가 장례식 절차를 가지고 삼족오 여는 나라가 어디 있어요? 이 말도 안 되는 영국은 지금 우리 정치적 명분, 밑으로 속은 엉망진창인데 겉으로만 버리면 그러니까 이 글로벌 스탠다드의 사회에, 지금 성리학으로 나를 움직이고 있으니까 정치는 사회화 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이해가 되십니까? 무슨 말인지, 이걸 해결할 방법은 누구밖에 없는 거예요? 한국 교회밖에 없는 거예요.

정치는 조사에 비합리적인 성 의식에 머물고 있는 것이에요. 성리학적이란 말은 껍데기 체면문화, 자기는 실천하지 못하면서 도덕적 수준을 높이 요구하고 기가 막힌 것이에요. 다시 근대 교육의 효시가 어디에요? 두 번째, 두 번째 참자유의 가치를 고수하는 데가 어디예요? 누가 우리 민족이, 그리고 우리나라에 글로벌 스탠다드를 제시한 선두 주자가 누구예요? 그래서 하나님 아버지, 우리 민족이 한국교회가 한국 기독교의 은혜를 계속 받아가지고 대한민국이 하나님 기뻐하시는 나라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대한민국이 좋은 나라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대한민국이 하나님 기뻐하시는 나라, 하나님 좋은 나라가 되려면 대한민국에 좋은 정보가 있어야 되는 것이에요. 좋은 정보가 있으려면 좋은 정치 지도자가 와야 되는 것이. 그래서 늘 기도하는 대로 주여 지도자의 복을 허락하여 주십시오. 그래서 4월 11일 총선될 때까지, 사랑의 교회 보이지 않은 이 토요일 비전 새벽 예배는 보이지 않는 영적 버팀목이 돼가지고 이민족을 살려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민족을 살리면 우리 교회도 살 것입니다. 한국교회도 살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 전체를 보는 역사만이 분명해야 되는 것이에요. 우리가 늘 얘기하지만 러시아보다 땅 덩어리가 적고 중국보다 인구도 적고, 일본보다 경제가 약하지만 한국 교회가 강한 줄로 믿습니다. 한국에 새벽에 기도하는 주의 백성들이 있는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이걸 우리가 이렇게 기도하고 믿었다는 이유가 뭡니까? 제가 정말 좋아하는 시편 구절 중 하나 시편 48편 14절을 다 같이 또 한번 읽어보자. 시작.

*시편 48:14
14 이 하나님은 영원히 우리 하나님이시니 그가 우리를 죽을 때까지 인도하시리로다.
-할렐루야 다시 한 번 크게 이 하나님은 영원히 우리 하나님이시니, 그가 우리나라를 죽을 때까지 인도하시리로다. 이 하나님은 영원히 우리 하나님이시니 그가 우리를 죽을 때까지 인도하시리로다. 아멘

그렇게 되면 여러분 7천기도 용사가 기도의 주판을 들고 모였는데, 하나님께서 다시 이 민족에게 근대 교육의 효시 참조의 가치, 글로벌 스탠다드의 선두 주자의 역할을 한국 교회에 감당하게 하시고, 한국 교회 때문에 오늘 이만큼 온 것인 줄 우리가 믿고, 우리가 어떻게 한반도 내에서 수천 년 전에 민족 종교를 우리가 100년 만에 바꿀 수가 있었겠느냐? 그 이유는 뭐냐 하면 세계적인 정말 갖춰가지고 여기서, 여기서 그냥 헤매는 그런 사람들이 아니라 이 안에서만 서로 치료받고 싸우는 나라가 아니라, 해안으로 나가가지고 전 세계를 가슴에 품고 지금 전 세계에 178개국, 거의 180개국에 700백 50만 이상의 디아스포라가 흩어져가지고, 그것도 세계 최고 강국의 미국이 300만, 중국에 250만, 러시아에 100만 이상, 일본에 200만 이상, 세계 4대 강국에 이와 같이 100만 명, 200만 명 이상 이렇게 흩어져 있는 나라는 유대인들만 흩어져 있지만, 이와 질적으로 실질적으로 제일 많이 흩어진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합니다.

이건 한국 교회 가을 전부 이민교회를 만들어 가지고 이민교회를 통하여 영적으로 다 무장하고 그 은혜가 다시 우리나라에 들어오기 시작하고 하여튼 이런 은혜를 가지고 우리가 세계 선교를 마무리하는데 쓰임받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이에요. 다시 한 번 10편 48편 14절 이 하나님은 영원히 우리 하나님이시니 그가 우리를 언제까지요
*시편 48:14
14 이 하나님은 영원히 우리 하나님이시니 그가 우리를 죽을 때까지 인도하시리로다.
-죽을 때까지,,,죽을 때까지(He will be our guide to death). 그걸 위하여 오늘 이사야 40장 본문의 말씀을 가지고 기도 제목 세 가지를 받겠습니다. 오늘 이 본문은 이 이사야가 그때 당면한 시대는 밝은 마음의 소원을 가지고 꿈과 비전을 가지고 집중할 만한 그런 상황이 전혀 아니었어요. 보라 어둠이 덮을 것이며 고통당하는 그런 시대였어요. 좋지 않은 환경이 그 주님은 뭐라고 말씀하시는 4절은

*이사야 40:4,
4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언덕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아니한 곳이 평탄하게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하나님은요. 하나님은 어떤 일을 이루실 때, 오늘 이런 고백을 하게 할 때에 이사야가 거의 거의 죽을 때까지 기도하고 했는데, 응답이 없어요. 이사야가 그 임계점까지 가는 거예요. 물은 100도시에서 끓는다고 그랬죠? 그런데 99도까지는 못 끓어요. 겉으로 멀리서 보면 99도하고 100도 1도밖에 차이가 났는데도 불구하고 99도도 뜨겁죠. 그런데 1도가 모자라 가지고 끓지를 않는 거예요. ‘기도의 임계점’이라고 있는 것이 사랑의 교회, 토요일은 새벽 예배가 기도의 임계점을 돌파는 시간이 되어야 해요..

오늘 이 시무예배는요. 기도의 임계점을 돌파하는 시간이 앞으로 매주 토요일마다 모여서 기도할 때마다 우리 오늘 이 이사야 40장 말씀을 기억하면서 기도를 할 터인데, 이사야가 닥친 환경과 상황은 우리보다 훨씬 열악해요. 이스라엘은 이런 예배당도 없고 이런 수없이 모여가지고 토요일마다 기도하는 이런 것도 없어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오늘 이 이 놀라운 말씀을 선포함으로 말미암아 억울한 세대의 기도 제목을 삼게 하시고 이 기도 제목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기도의 지팡이를 펼 때 마다 응답해 주시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토요일 아침마다 토요일 아침마다 우리가 기도할 때 기도에 뭘 돌파한다고요? 임계점,,, 제가 2033 50 비전을 선포하고 말씀을 드렸을 때 그것은 그냥 단순한 것이 아니에요.

한국교회와 우리 교회와 여러분 생애의 모든 임계점을 돌파하게 하여 주십시오. 모든 한계를 돌파하게 주십시오. 그리고 목사님 3,5,7 비전은 어떻게 됩니까? 3년 내로 우리 교회가 글로벌 되게 하여 주옵소서 그거 이루어졌습니까? 안 이루어졌습니까? 그게 이루어졌어요. 이제 5,7 비전이 남았어요. 5년대로 우리 중국과 함께 중국 교회와 함께 제대로 하게 해달라고 그랬는데, 아예 중국 시진핑이가 절대 못되게 굴어가지고,,, 근데 우리가 복원시킬 거예요. 중국은 5 비전이 제대로 이루어져야,,, 세계 선교를 마무리하는데 지금 전 세계 이슬람 선교사는 20만 명이 넘는데 우리 기독교 선교사는 8만 명밖에 안 돼요. 그 8만 명 가운데서도 행정요원 땅거를 실제로 뛸 수 있는 사람이 2만 명밖에 없어요. 전 세계 2만 명의 선교사들이 지금 17조로 뛰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스라엘 20만 명한테 게임이 안 되는 거예요. 근데 이슬람이 20만 명을 뛰어넘으려면 어떻게 하냐, 중국에서 10만 명의 선교사가 나오면 되는 것이에요. 중국 교회에서 10만 명의 선교사가 나온데, 근데 일반적으로 이 문학 권을 뛰어넘는 선교사 파송하려면 최소한 3천 불에서 5천 불, 6천불, 7천불이 들어야 돼. 중국은 샤워를 일주일 안 해도 괜찮으니까 한 3천불만 해도 중국은 그냥 사는 거예요. 중국 선교 사람들은 이 전투력이 있어요. 제 꿈은 우리 한국교회가 잘 해가지고 미국 교회하고 손을 잡아, 중국 교회를 잘 섬김으로 말미암아 중국에서 10만 명의 선교사가 나오게 하여 주십시오. 그 5비전은 어느 날은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7 비전도 어느 날도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우리가 기도하는데 그런 기도의 제목과 그다음에 ‘2033-50기번’ 이런 모든 기도의 우리의 기도의 인계점을 돌파하는 기도가 되는 것이에요. 그 기도의 임계점을 돌파한 것이 뭔가, 오늘 이사야 40장, 이 말씀 뒤에 제가 늘 기도할 때마다 여러분들에게 자주 말씀드리는 것 중에 이사야 43장 18절 19절입니다.

*이사야 43:18~19,
18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19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광야에는 뭐가 없어요? 길이 없어요. 사막에는 강이 없어요. 근데 오늘 너무 마음이 아팠다. 내가 반드시 광야의 길을 사막에 강을 낸다고 그랬어요. 어떻게 기도의 인계점을 돌파하는 사람들을 통하여 반드시 광야의 길이 열리고 사막의 강이 열리게 되는 것이에요. 오늘 이걸 믿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제 토빈세 시작할 때부터 미어터지게 와가지고 기도함으로 말미암아 광야의 길이 나오고, 사막의 강이 나오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이에요. 그것이 기도의 인계점을 돌파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아침에 지금 다음 주에 우리 성경고사대회 나갈 우리 아이들 출진하는 기도회 정예병 용사들이 오늘 2200명이 와 있어요. 우리 아이들, 우리 아이들이 오늘 이 새벽에 와가지고 이 참석함으로 말미암아 우리 아이들이 광야에 길을 여는 아이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그래서 또 우리 성도들은 사막에 강을 내는 사람입니다. 성도들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그래서 우리가 서로 축복을 하겠어요. 오늘 아침에 “성도님은 광야에 길을 내는 사람입니다.” 그다음에 우리 아이들 보고는 “너는 사막에 강을 내는 사람이야.” 그렇게 말합니다. 토비새에 나오면 그게 자연스럽게 되는 것이 아시겠어요? ‘2033 50 비전’이라는 것도 광야에 길을 내는 것이고 사막에 강을 내는 것이에요. 이걸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그대로 할 때 우리 앞에 놓여 진 수많은 기도의 제목들이 응답되게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우리 성도님은 광야에 길을 내는 분입니다. 인사하고 앉으세요. “순장님은 광야에 길을 내시는 분입니다. 아멘 순장님은 사막에 강을 내시는 분입니다.” 그러면 우리 아이들 200여명의 아이들 일어나기 바랍니다. 우리 아이들 200여 명이 우리 이번 성령고사 때에도 아이들이 다음 주에 미국에서 사는데 전부 만 명이 모여요. 우리 앞에 놓고 ‘너는 광야에 길을 내는 사람이야.’ 우리 어른들 시작 ‘너는 광야에 길을 내는 사람이야.’ ‘너는 평생에 사막에 강을 내는 사람이야’. 시작 ‘너는 평생의 사막에 길을 내는 사람이야.’ 우리 다 같이 우리 아이들은 아멘 합시다. 우리 자녀들 아멘... 다시 한 번 우리 마음을 다하여 “우리는 광야에 길을 내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사막에 강을 내는 사람입니다.” 아멘 이렇게 하기 위하여 우리가 세 가지 기도 제목을 가지고 지금부터 기도의 지팡이를 들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한국교회 비상사태가 있을 때, 하나님이 어떻게 한국교회 기도를 응답하셨는지 80년도에 그 위급한 상황에서, 그리고 교회가 한국교회가 민족 앞에 어떤 역할을 하면서 그걸 위하여 기도의 임계점을 우리가 어떻게 돌파를 해야 되는 건지, 사막에는 강이 없고 광야에는 길이 없지만 기도를 통하여 강과 사막을 강을 내고 광야에 길을 내는 것을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 이제 세 가지 기도의 제목이 달려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가지고 기도 제목,

*이사야40:3~5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첫째 4절에 골짜기마다 돋우어집니다.

*이사야 40:4,
4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I. (과거)골짜기마다 돋우어주옵소서.
-어떻게 보면 제가 그냥 우리 쉽게 설명하면 이건 과거의 주요 우리의 과거 모든 골짜기를 메워주신다고 하셨사오니, 우리 과거의 모든 상처와 구덩이와 골짜기와 불신과 모든 계곡을 주님 메꾸어 주시옵소서. 우리 성도님들 또 우리 자녀들 인생 살아가면서 험한 구덩이 속에 빠져가지고 신음하며 고통 할 때가 있었어요.

※우리 교회 어떤 박모 순장님 지금은 약사셨는데 46세이세요. 작년 초에 대장암 3기 판정을 받았어요. 수술도 받고, 근데 11회 표준 치료 항암 치료를 받으라는 처방을 받고 첫 번째 항암 치료를 받고 그리고 CT 촬영 결과 암이 다발성으로 간으로 전이된 것으로 보인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2023년 8월 11일 토요 성령 집회, 그때 우리 배우고 난 다음에 우리 기도하면서 우리 저기 뭐야 치유기도 받았잖아요. 안수도 받고, 2023년 8월 13일 그다음 날 청계산 산상 기도 해가지고 우리 마지막 신년기도 했잖아요. 두 번의 기도를 받은 후에 이 병은 죽을병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그리고 8월 16일 2차 CT 촬영 결과 MRI 촬영에서 6월 말 보였던 것보다 상당히 줄어있다는 걸 확인했습니다. 근데 작년 12월 4일 한 달 전 3차 CT 촬영 결과 암 세포가 보이지 않는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남아 있을 수도 있고 치료받을 수도 있지만 그래서 암 진단을 받은 후에 2021년 4월 이후에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있었고, 가장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죽자하는 마음으로 후배에게 복음을 전했고, 그 후배가 2024년 여름부터 2~3주에 한 번 4부 예배를 지금 드리고 있어요. 그리고 그 후배의 약국에서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 배려를 받으면서 12월 중순부터 약국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게 되었어요. 할렐루야!!

여러분이 과거 모든 골짜기가 돋우지고, 상처의 계곡이 메꿔지게 해 주십시오. 고통 속에 빠져 심한 분들이 고통의 때가 정리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주의 인생의 골짜기와 사이의 골짜기를 메워주십시오.

두 번째 산마다 언덕마다~
II.(현재) 높아진 산과 언덕은 낮아지게 하옵소서.
-산과 언덕을 깎아지게 하십시오. 우리도 모르게 세워진 우리의 어떤 프라이드, 쉽게 말해 교만, 우리의 자아, 여러분들은 평신도 지도자들은 말씀으로, 이 안에 영혼을 섬겼는데 나도 모르게 곧아지고 높아지고 프라이드가 생기고 자아가 강해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산은 아예 드러나게 높아진 것이고, 은덕은 은근하게 높아진 것이고, 산은 겉으로 완전히 드러나게 교만한 것이고, 언덕은 마음속에 은근히 남을 낮춰보고 은근히 높아진 것이에요. 그리고 주여 나도 모르게 높아진 부분이 있으면 다듬어 주시옵소서. 사랑의 45년 역사 가운데 우리도 모르게 높아진 마음이 있으면 하나님, 낮춰 주시옵소서. 낮아지게 해 주시옵소서. 한 번 더 말씀드렸죠. 강남 예배당에 있을 때 사랑의 교회, 굉장한 프라이드였습니다.

물론 지금도 거룩한 프라이드는 필요하지만, 난 그때 우리 교회 교인들 가운데 전에 어떤 것들을 내가 잊을 수 없어요. 굉장한 프라이드였어요. 근데 건축하고 입당하고 난 다음에 우리 교회는 훨씬 더 이 교회들의 뭡니까? 폭이 더 넓어졌어요. 옛날에는 어떤 특정 부류의 사람들이 많이 나와요. 교회는 권속이고 가족이고 교회는 있는 사람 없는 사람 가진 자 못 가진 자, 이 이 스펙트럼 넓은 게 교회가 되는 것이에요. 우리 교회 어떤 과거의 잘못된 화들을 정리하여 주시옵시고, 이제 시대 안에 훨씬 더 커지니까 훨씬 더 많은 걸 믿음의 용량이 커지니까 주님 앞에 주시는 것이에요. 개인적으로도 여러분들 우리가 우리도 모르게 이렇게 높아진 거 있으면, 산마다 원덕마다 이게 다 이렇게 주님을 정리하여 주시옵소서. 사랑의 교회는 모든 개성을 다 품는 교회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과거는 상처받은 계곡들은 다시 메꾸시고,. 높아진 것들은 낮아지게 하시고, 이제 중요한 미래입니다. 우리가 걸어가야 할 미래, 고르지 않은 것은 평탄하게 하여 주시옵시고, 험한 곳을 평지로 만들게 하여 주옵소서.

III.(미래)고르지 아니한 곳은 평탄하게 하시고, 험한 곳은 평지가 되게 하소서.
-고르지 않은 것은 뭐가 되게 해주시고, 평탄하게 하시고, 험한 곳은 뭐가 되게 해달라고요? 평지가 되게 해달라고요.. 오늘 이 마음을 가지고 이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해결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단순히 우리 개인뿐만 아니라, 우리 교회뿐만 아니라, 이 민족의 골짜기가 돋우어지게 하여 주시옵시오. 이 민족의 산마다 어둠마다 잘못된 것들이 낮아지게 하여 주시옵시고, 우리 민족 우리 민족 다른 나라 10살이면 말도 못하죠. 답답해서요. 지금 그다음 고르지 않는 곳을 평탄하게 하시고 험한 곳은 평지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2024년에 고르지 아니한 곳, 험한 곳 다 평준화되게 하여 주시옵시오.

특별히 이 민족의 정치적으로 수많은 험한 곳, 수많은 고르지 않은 것들을 주님이 정리하여 주옵소서! 뾰족하고 모난 것들은 주님이 정리하여 주옵소서. 오늘 그런 마음을 가지고 기도의 지팡이를 높이 들고 하나님께 우리가 마음을 올려드리기를 바랍니다. 가지고 우리 제가 마음의 소원을 했습니다. 앞으로 사랑의 교회와 한국교회 때문에 이 민족의 장례가 보장된 줄로 믿습니다. 그 마음을 가지고 우리가 앞으로 매달마다 4월 달 총선될 때까지 매달마다, 한 번씩 우리가 애국가를 하겠습니다. 그래서 오늘 마치기 전에 제가 애국가를 4절까지 부를 것이고 오늘 이 시간에 1절만 먼저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보호해서 우리나라 이런 기도의 마음을 가지고 애국가를 가지고 할 때에 나는 오늘 일요일 시무예배 우리 교회 성도들이 애국가를 1절부터 4절까지 부를 때, 하나님이 애국가를 부를 때에 그대로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우리가 애국가 1절을 같이 부르고 하나님 이사야 40장 말씀 43장 말씀이 이 안에 또한 그대로 이루어지게 하여 주시옵시고, 이 일을 위하여 주님 이 민족을 강철 문빗장으로 보호하시고 강철 신발을 신고 우리가 이 모든 골짜기와 삶과 모든 사악 지들을 정리하게 하여 주십시오. 하나님이 보호받으심으로 우리나라 만세가 된 줄로 확신합니다. 기도의 지팡이를 들고 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이 하늘을 주님의 손에 의탁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이 기도 때문에 우리 민족의 장례가 보장될 줄로 믿습니다. 먼저 주님 앞에 고백합니다. 이 하나님은 영원히 우리 하나님이시니 그가 우리 교회와 우리 가정과 민족을 죽을 때까지 인도하여 주실 줄로 믿습니다. 이 말씀 그대로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사야가 당면한 그 시대는 지금 우리보다도 훨씬 더 어려운 시대였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주님 앞에 기도한 것처럼, 주여 우리 교회 3,5,7비전을 사모하게 하고, 주의 2033-50 비전이 복이루어지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고 오늘 말씀 그대로 광야의 길이 나오게 하여 주시옵시고, 사막의 강이 우리의 기도를 통해 이루어지게 하여 주옵소서. 주여 기도의 임계점을 돌파하게 하옵소서. 주여 기도의 임계점을 돌파하게 하여 주옵소서 크기도 가르치고 이사야 40장 세 가지, 기도, 골짜기로 메워지게 하시고, 높아진 산도 낮아지게 하시고, 고르지 아니한 곳은 평탄하게 하시고, 더 많은 곳은 평지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 말씀 그대로 기도할 때 하나님이 크게 영광 받으시고 기도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기도의 지팡이를 들고, 간절히 마음의 소원을 가지고,, 주여 기도의 임계점을 돌파하게 하옵소서. 크게 두 번에 주고 기도하겠습니다. 오늘 주께서 주신 말씀 그대로 기도가 응답될 줄로 확신합니다. 이 하나님은 영원히 우리 하나님이시오니 그가 우리나라를 죽을 때까지 인도하여 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가 우리 가정을 죽을 때까지 인도하여 주실 줄로 확신합니다. 그가 우리에게 저희를 죽을 때까지 인도하여 주실 줄로 확신합니다.

♣요약
우리는 하나님 앞에 과거의 모든 상처와 구덩이와 골짜기와 불신과 모든 계곡을 메꾸어 주시라고 간구하며, 은근하게 높아진 것과, 산은 겉으로 완전히 드러나게 교만한 것이니, 나도 모르게 높아진 부분이 있으면 다듬어 달라고 매순간 주님 앞에 나아가 회개하고, 험한 곳은 평지가 되어서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순종하여 온전한 평준화로 복음의 산 실천자가 되어야 한다. 특별히 이 민족의 정치적으로 수많은 험한 곳, 수많은 고르지 않은 것들도 다 정리해 주실 것을 믿고 간구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주인 되시는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 삶을 우리가 죽을 때까지 인도하심을 믿고, 광야의 길을 여시고 사막의 강을 내리시는 성령 하나님의 기적을 확신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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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금융 상식 퀴즈 O X] 1월 8일 (828)

1. 2024년 최저임금은 시간당 얼마일까?
① 9160원 ② 9620원
③ 9860원 ④ 1만 원
 
2. 다음 중 나라 살림의 건전성과 지속 가능성을 파악할 수 있는 지표는?
① 경상수지 ② 상품수지
③ 본원소득수지 ④ 관리재정수지

3. 다음 중 경제범죄에 해당하며 법적으로 처벌 대상이 되는 행위를 고르면?
① 감가상각 ② 무상감자
③ 유상증자 ④ 분식회계

4. 이 나라가 지난달 석유수출국기구(OPEC) 탈퇴를 선언했다. 아프리카 남서부에 있고 수도는 루안다인 이 나라는?
① 가봉
② 앙골라
③ 리비아
④ 알제리

5. 보험사가 거둬들인 보험료 대비 지급한 보험금의 비율이다. 수치가 높아지면 보험료 인상 요인이 되는 이 수치는?
① 기준금리 ② 지급준비율
③ 손해율 ④ 자기자본이익률

6. 주가가 일정 범위 안에서 등락을 거듭할 때 ‘이것’에 갇혔다고 표현한다. 이것에 가장 적합한 말은?
① 데드크로스 ② 박스권
③ 1월 효과 ④ 베어마켓

7.다음 펀드 중 수익률이 코스피지수, 나스닥지수 등 주가지수와 거의 똑같이 움직이도록 설계된 투자상품은?
① 인덱스펀드 ② 헤지펀드
③ 사모펀드 ④ 매칭펀드

8. 다음 중 ‘물가’와 관련된 통계 지표와 가장 거리가 먼 것은?
① PCE
② NIM
③ CPI
④ PPI


[커버스토리] '개발이냐, 규제냐'…갈라지는 AI 진영


그래픽=추덕영 한국경제신문 기자


올해는 인공지능(AI)이 진정한 시작을 알리는 해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2024 세계대전망>에서 ‘현실로 다가온 AI’를 중요한 흐름으로 꼽았죠. 9일부터 12일까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최첨단 기술의 경연장 소비자가전쇼(CES)도 온통 AI로 도배되고 있습니다. 삼성전자는 CES 기자회견의 표어를 ‘모두를 위한 AI(AI for All)’로 정했고, 인텔은 ‘모든 곳에 AI(AI Everywhere)’를 내세웠습니다.

AI로 사람들의 생활과 산업현장에서 도움을 받겠지만 꼭 장밋빛 미래가 보장되는 것은 아닙니다. 벌써부터 AI의 ‘일자리 습격’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큽니다. 작년 IBM, T모바일, 드롭박스 등 테크기업들이 회계·인사 등 지원 부서 인력의 30%까지 AI로 대체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인류에게 새로운 미래를 가져다줄 것으로 기대를 받고 있는 AI가 오히려 재앙이 될지 모를 일입니다.

이러다 보니 빅테크의 본고장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선 AI 개발을 자유롭게 허용할 것이냐, 인류에게 해가 되지 않도록 규제할 것이냐를 놓고 일대 논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작년 말 샘 올트먼 오픈AI CEO의 축출과 복귀도 이런 갈등에서 시작된 것이어서 더욱 관심을 끕니다. ‘AI 개발 감속이냐, 가속이냐’를 둘러싼 논쟁의 철학적 배경과 견지해야 할 관점을 4, 5면에서 살펴봤습니다.

"빨리 개발 안하면 죽는다" vs "속도 조절해야"
AI 낙관론과 파멸론, 종교전쟁 방불케 해요

게티이미지뱅크

인공지능(AI) 개발 속도를 둘러싼 미국 내 개발자 간 논쟁은 먼저 소셜미디어를 달군 뒤, 신문 등에서 경쟁적으로 보도되고 있습니다. 지난달에도 AI 개발 예찬론자인 베프 제이조스(소셜미디어 X의 활동명)가 X에 “한국에서 돌아오는 길”이라며 인공위성에서 찍은 한반도의 밤 모습을 올려 화제가 됐죠. 불빛 찬란한 한국에는 ‘e/acc(Effective Accelerationism, 효과적 가속주의)’란 글자를, 캄캄한 북녘 땅엔 ‘Decel(Decelerationism, 감속주의)’이란 약어를 붙였습니다. AI 개발을 통제(감속)하면 북한처럼 미개한 사회로 전락하고, 자유롭게 허용하면 한국처럼 문명이 꽃필 거라는 주장입니다. AI의 자유로운 개발이 중요하다고 강조한 거죠.

오픈AI CEO 갈등으로 비화

현재 AI 개발자들은 두 진영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앞서 얘기한 효과적 가속주의와 효과적 이타주의(EA·Effective Altruism)입니다. 효과적 가속주의란 용어는 효과적 이타주의를 패러디해 만든 것 같습니다.

효과적 가속주의의 요지는 기술 발전은 무엇이든 세상에 이롭기 때문에 모든 규제와 안전장치를 없애야 한다는 겁니다. AI의 해로움보다 이점이 훨씬 많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가속주의자들은 모임에서도 “개발하지 않으면 죽는다(Accelerate or Die)” “AI를 자유롭게(Keep AI Open)”라고 외칩니다. 생성AI 챗GPT 개발 회사로 유명한 오픈AI의 샘 올트먼이 이 진영에 속해 있고,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도 베프 제이조스를 X에서 팔로(follow)하는 중입니다.

반면 효과적 이타주의자들은 AI 규제가 먼저라고 주장합니다. 인류에게 이익이 되도록 AI를 개발하는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야 하고, 그게 바로 21세기 이타주의라는 거죠. 이들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안전하게 AI를 개발해야 하고, 이를 위한 기술 규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그래서 ‘AI 감속주의’라고도 부릅니다. 작년 전 세계 과학자 1000여 명이 세계의 모든 AI 연구소에 “GPT4(최신 챗GPT)보다 더 강력한 AI 개발을 최소 6개월간 중단하라”고 촉구한 게 그런 목소리입니다. 작년 6월 유럽연합(EU)이 위험성이 높은 AI의 개발을 규제하는 법안을 마련하기도 했죠.

양 진영의 주장은 결국 ‘파멸론-이타주의(감속주의)-기술 통제주의’와 ‘낙관론-가속주의-기술 유토피아주의’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이들의 논쟁은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가 “종교 분립 전쟁과 같다”고 표현할 정도로 뜨겁습니다. 작년 말 오픈AI 이사회가 샘 올트먼 CEO를 축출하려 한 사건도 이런 대립에서 비롯됐습니다. 오픈AI 공동 창업자이자 수석 과학자인 일리야 수츠케베르를 비롯해 오픈AI 이사회 멤버들은 ‘착한 AI’를 만들려는 감속주의자가 많았는데, 샘 올트먼은 AI 칩 개발과 투자 유치 등으로 회사의 빠른 성장을 원했다는 겁니다. 결국 직원들의 지지를 받은 샘 올트먼이 CEO로 복귀하고 일부 이사들이 물갈이되면서 오픈AI 사태는 일단락됐는데요. 이를 두고 파이낸셜타임스는 “두머(Doomer, 파멸론자)의 패배”라고까지 표현했습니다.

기술개발, 과연 통제할 수 있나

과학기술의 발전이 과연 인류가 원하는 방향으로 진행될 수 있을까 의심해볼 수 있습니다. AI가 어떤 문제 해결을 위해 인간에게 대안과 선택지를 주고, 인간이 그것 가운데 하나를 승인하고 AI가 실행하면 문제가 없을 겁니다. 그런데 만약 AI가 고도로 발전해 자신의 판단으로 먼저 실행을 하고 인간에게 통보만 하거나, 아예 인간을 배제해버린다면 어떤 끔찍한 결과가 초래될지 알 수 없습니다. 생성AI 스타트업인 미국 앤트로픽이란 회사는 이런 AI의 부작용을 피하려고 챗봇 출시를 미뤘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입니다. AI에 대한 두려움이 개발자들 사이에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습니다.

인간 이성이 바라는 대로 AI를 통제할 수 있을까요? 인류에게 이익이 된다고 생각한 결정이 혹여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지는 않을까요? 의문은 여전히 남게 됩니다.

NIE 포인트

1. 생성AI를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 서로 얘기를 나눠보자.
2. 오픈AI CEO 갈등 사태의 전말에 대해 알아보자.
3. 기술 파멸론과 낙관론이 논쟁을 벌인 과거 사례를 찾아보자.


'효과적 이타주의' 인간 이성 강조하지만
독선과 이율배반에 빠질 위험성도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지난달 31일 게시한 한반도 위성 사진. /머스크 엑스(X) 

AI 개발 속도 조절론의 철학적 배경인 ‘효과적 이타주의(EAEffective Altruism)’에 대해 좀 더 알아볼까요? 요즘 이 말을 모르면 미국 실리콘밸리의 돌아가는 사정을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EA의 뿌리는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는데요. 호주 윤리학자 피터 싱어가 당시 사회운동의 하나로 주창한 EA의 핵심 내용이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가장 합리적 방법 찾는 EA
‘이타주의’ 하면 먼저 기부행위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좋은 뜻으로 시작한 기부가 꼭 좋은 결과를 낳는 건 아닙니다. 아프리카의 물 부족 문제를 해결한다며 세계 각지에서 모금한 돈으로 ‘플레이 펌프’란 기구를 제공한 사례가 있습니다. 이 기구는 아이들이 놀이를 하면서 물도 길어 올릴 수 있도록 만든 건데요, 처음엔 신선하고 그럴듯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금방 싫증을 내면서 동력원을 얻지 못했고, 수동 펌프보다도 못한 성능 때문에 프로젝트는 실패하고 맙니다. 남을 돕고자 하는 이타적인 행동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게 하려면 ‘이성적 판단’이 필요하다는 깨달음을 줍니다.

저개발국의 빈곤, 여성 인권 침해, 해양쓰레기 등 인류 공동의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문제 해결을 위해 한정된 자원을 어떻게 활용할지를 고민하기 시작한 게 EA의 출발입니다. EA를 이론적으로 정립한 윌리엄 맥어스킬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는 EA를 ‘타당한 근거와 추론에 기반해 다른 사람을 돕는 최고의 방법을 찾고, 이에 기초해 행동을 취할 것을 강조하는 철학이자 사회운동’이라고 정의했습니다.

돈 버는 수단 삼았다는 비판도
그런데 이렇게 목표가 고상한 EA를 이기적 탐욕을 가리기 위한 용도로 쓰는 사람들이 생겨나 문제입니다. ‘효과성’을 강조하는 EA는 눈앞의 소액 기부에 신경 쓰기보다는 큰돈을 기부할 수 있도록 돈을 많이 벌 궁리를 하라는 얘기로 들릴 수 있어요. 또 능력이 있다면 비영리단체에서 일하기보다 급여가 많은 직업을 선택하고, 그렇게 번 돈으로 기부를 많이 하는 게 ‘효과적’이라고 가르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실제로 맥어스킬 교수는 어떤 직종이 가장 선(善)한 일에 기여할 수 있는지 연구하고, 사람들에게 무료로 직업 상담을 해주는 8만시간(80000hours)이란 기관을 설립하기도 합니다.

이런 맹점을 파고든 대표적인 사람이 지금은 파산한 암호화폐거래소 FTX의 창업자 샘 뱅크먼프리드입니다. 그는 돈을 많이 벌어 더 많이 기부하겠다고 공언하면서 FTX 투자를 유치하고 다녔죠. 암호화폐거래소 창업자라면 자유로운 기술 개발을 주창할 것 같은데, 자신의 선한 이미지를 부각하기 위해 기술을 적절히 통제하려는 EA를 지지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부자들이나 지적 능력이 뛰어난 개발자들이 돈을 벌기 위해 EA를 수단으로 삼는다는 비판이 그래서 나오는 겁니다.

자신의 판단만이 인류를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독선도 문제입니다. 샘 올트먼 CEO를 축출하려 한 오픈AI의 이사회 멤버들이 그런 경우입니다. 마치 영화 ‘어벤져스’에서 혹성의 자원이 모자란다며 생명의 절반을 말살하려는 악당 타노스를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인간 초월할 AI 초지능 나올 것
‘기술 통제냐, 개발 가속이냐’의 논쟁은 AI 출현 이전에도 종종 있었습니다. 원자력·핵무기 개발, 유전자가위 기술 등 생명공학 기술 개발, 인간과 독립해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자율주행 기술 개발 등에서도 비슷한 논쟁이 일었지요. 결국 인간이 자신의 미래를 통제할 수 있는 수준으로 과학기술을 발전시킬 것인가, 아니면 인간의 존엄한 가치를 좀 더 높일 수 있도록 과학기술 개발에 속도를 내야 하느냐 하는 선택의 문제인 겁니다. 그런데 이런 두 가지 관점과 주장은 모두 일리가 있습니다.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접근 자세가 중요하겠지요. AI가 수십 년 내에 인간의 일반 지능을 넘어 초지능(super intelligence)을 지니게 될 것이란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는 게 중요해 보입니다.

NIE 포인트

1. 효과적 이타주의와 관련한 피터 싱어의 주장을 알아보자.
2. 효과적 이타주의의 장단점에 대해 토론해보자.
3. AI 개발 가속과 감속 중 무엇이 옳은지 토론해보자.

장규호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daniel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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