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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4년 02월 18일)-예수님은 누구신가? 세 번째 시리즈.
제목: "광야에서 생수를 마셔라"(반석 되신 예수님)
-Drink your living water in the wilderness(Jesus The Rock)
말씀: 출애굽기 17:1~6, 고린도전서 10:3~4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대표기도: 홍진기 부목사님(1부)
사회: 임병영 부목사님(1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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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17:1~6,
1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신 광야에서 떠나 그 노정대로 행하여 르비딤에 장막을 쳤으나 백성이 마실 물이 없는지라.
2 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이르되 우리에게 물을 주어 마시게 하라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 다투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시험하느냐.
3 거기서 백성이 목이 말라 물을 찾으매 그들이 모세에게 대하여 원망하여 이르되 당신이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서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가축이 목말라 죽게 하느냐.
4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내가 이 백성에게 어떻게 하리이까 그들이 조금 있으면 내게 돌을 던지겠나이다.
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백성 앞을 지나서 이스라엘 장로들을 데리고 나일 강을 치던 네 지팡이를 손에 잡고 가라.
6 내가 호렙 산에 있는 그 반석 위 거기서 네 앞에 서리니 너는 그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오리니 백성이 마시리라 모세가 이스라엘 장로들의 목전에서 그대로 행하니라.

*고린도전서 10:3~4,
3 다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4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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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회중 찬송을 하는데 ‘만세 반석이 열린 곳에 내가 숨어 있으니, 원수마귀 손 못 대고 환난 풍파 없도다.’!~ 만세 반석이 열린 곳에 나의 반석 구주 예수 나를 숨겨 주십시오.!~~ 몇 분들 보니까 울면서 부르시네요. 여러분 오늘 반석 대신 주님께서 오늘 응답하시고 더 필요한 말씀 꼭 허락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개척교회 할 때는요. 설교하기 전에 이러면 그냥 찬송해요. 그냥 우리도 할까요? 말씀한 1절만 더 하겠습니다.

♬~만세반석 열린 곳에...
1 만세반석 열린 곳에 내가 숨어 있으니
원수 마귀 손 못 대고 환난 풍파 없도다.
2 죄에 매여 죽을 인생 편히 쉬기 바라니
주의 가슴 넓은 품에 내가 찾아 안기네.
3 이 땅 위에 평안 없고 기쁜 일을 몰라도
주예수의 참사랑을 내가 이제 알았네.
4 험한 풍파 지나도록 순풍으로 도우 사
평화로운 피난처에 길이 살게 하소서.
후렴)
만세반석 열린 곳에 내가 편히 쉬리니
나의 반석 구주예수 나를 숨겨 주소서.
아멘!~

-그대로 되기를 바랍니다. 제가 지금 ‘예수님은 누구신가?’ 시리즈 오늘 세 번째 “광야에서 생수를 마시라.” 부제는 ‘반석 되신 예수 그리스도’ 오늘 이 말씀을 통하여 특별히 말씀 자체를 통하여 여러분과 저의 영안이 열리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제가 계속해서 3주 동안 구약의 본문과 또 신약의 해석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구약의 본문과 신약의 해석 신약은 구약의 해설서다. 이렇게도 말할 수 있도록 그래서 제가 구약과 신약을, 신약을 같이 하고 있는데 여러분 성경은 신구약으로 나누어져 있지만 한문입니다. 맞습니까? 66권이지만 한 권입니다. 하나의 메시지 하나의 복음 하나의 계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우리 복음주의 권에서 우리 개혁주의 권에서는 늘 이렇게 얘기합니다. 구약은 시작, 신약의 시작 신약은 구약에 감추어져 있고, 구약은 아멘 그래서 구약은 신약을 미리 표하고 예언하는 것이기 때문에 구약에 더 깊이 들어갈수록 신약을 더 잘 깨닫는 은혜가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구약을 제대로 깨달으면 구약 안에서 예수님의 음성을 지금 들을 수 있는 것이에요.

출애굽기 17장에서 주님의 음성을 듣는 거예요. 부활하신 주님의 음성을 오늘 구약의 본문에서 듣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본문을 해석합니다.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에서 홍해를 건넌 이후에 시내 산을 향하여 가는 도중 일어난 사건이에요. 앞에 17장 앞에 17장 앞에는 몇 장이에요? 그것도 해석이 안 됩니까? 16장에 16장 1절에 보니까 애굽에서 나온 후 둘째 달 언제예요?

*출애굽기 16:1,
1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엘림에서 떠나 엘림과 시내 산 사이에 있는 신 광야에 이르니 애굽에서 나온 후 둘째 달 십오일이라.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온 지 한 6주쯤 됐어요. 6주, 그래서 르비딤 이라는 곳에 하나님께 ‘르비딤’으로 인도하셨어요. 그러니까 홍해의 기적을 체험한 지 얼마 안 되어서 이 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너는 엄청난 은혜를 받았는데 그 은혜가 앞에 또 마라의 선물이 있는데요. 3일을 못 갔어요. 사일을 여기서 제가 깨닫는 것이 뭐냐 하면 은혜의 유통기간이 3일밖에 안 돼요. 홍해의 기적 같은 사건을 체험했으면서도 3일 후에 불평하기 시작한 것이에요. 홍해를 지나면 그 이유는 홍해를 지나면 이제는 다 고생 끝, 이렇게 이제 편안함 시장 이렇게 될 줄 알았어요. 홍해를 지나면 더 좋은 환경이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는데 뭐가 기다리고 있는 거예요? 광야가 기다리고 있는 거 그러니 3일 만에 홍해 건너고 난 다음에 미리암과 함께 모두가 다 막 찬양하고 막 난리가 났어요. 3일 그거 얼마 안 돼가지고 불평이 찬양이 불평이 돼버린 것이에요.

제가 오늘 보면 오늘이 며칠이에요. 여러분, 세월 가는 것도 잘 모르시겠죠? 오늘이 2월 18일이에요. 그러니까, 새해 지나고 딱 6주가 된 거예요. 지금 거의 거 비슷한 거예요. 지금 이게 홍해 지나고 6주 된 거에요.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온 지 6주되는 것처럼, 새해에 우리가 마음 각오하고 강철 신부터 시작 했는데 벌써 불평한 일들, 벌써 얽히고설킨 수많은 난제들, 구원과 영생은 유통기한이 무한합니다. 이거는 익스파이어 데이트(Expiration date)가 없어요. 유통기한이 없어요. 만료 기간이 없어요. 그런데 우리 그리스도는 이 땅에서 은혜를 유지하는 데는 은혜는 유통기한이 있어요. 왜냐하면 우리의 약점은 은혜를 자꾸 잊어버리는 거예요. 자꾸 잊어버려요. 다시요. 구원과 영생에는 유통기한이 있다, 없다? 그런데 은혜를 유지하는 데는 유통기한이 있다 없다. 그러니까 매주, 매달, 매년 받아야 할 은혜가 필요하다는 것이에요.

오늘의 급속한 은혜가 필요하다는 것이에요. 이런 의미에서 저는 자주 자주 우리는 은혜에 관한 날마다 유통기한을 인식하고 영원한 채무자가 돼야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매주 그리고 우리가 앞으로 고난 주관, 부활 주일 그다음으로 특새 이런 시간들을 통하여 계속해서 우리 은혜 유통기간이 제한돼 있기 때문에 이걸 늘 유지를 해야 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은혜를 한때 많이 받은 분들 가운데 우리가 굳어져 있으면 나중에 큰일 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늘 은혜를 많이 받은 사람이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 출애굽을 하고 그다음에 홍해를 건너고, 만나를 경험하고, 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이런 불평을 할 수 있냐고 이 은혜 유통기간이 지난 거예요. 은혜는 자동차 휘발유처럼 떨어지면 채워야 합니다. 은혜의 계기판을 보고 은혜의 탱크가 풀인지, 엠프티가 된 것인지, 매주일 마다 예배를 드리면서 저와 여러분이 점검을 해야 합니다. 아멘!

오늘 본문을 좀 더 자세히 살피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을 언약의 말씀을 주려고 시내 산에서 십계명과 귀한 걸 주려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시내 산에 이 언약의 말씀을 주려고 이제 하는데 물이 없는 광야로 데리고 가시는 거예요. 제 이야기가 아니고, 오늘 1절에 보세요.

*출애굽기 17:1,
1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신 광야에서 떠나 그 노정대로 행하여 르비딤에 장막을 쳤으나 백성이 마실 물이 없는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자손은 회중이 그다음 뭐라고 줄 것이요? 여호와의 뭐예요? 명령대로 신 광야에서 떠나 그다음 뭡니까? 그 노정대로 행하여 루비듬의 장막을 쳤으나 백성이 마실 물이 없는지라 여호와의 명령대로 말씀하신 노정대로 주님이 주신 내비게이션대로 따라서 가는데 물이 없는 광야로 가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하나님 명령대로 르비딤으로 가라. 르비딤으로 갔는데 뭐가 물이 없는 거예요. 쉽게 말해서 오늘 이 자리에 나는 하나님 말씀 순종하고 나왔는데 예배 순종하고 나왔는데 우리의 현실은 앞뒤 좌우를 살펴보아도 광야밖에 없고 물이 없고 소위 죽을 것 같은 그런 환경에 있는 분도 있을지 몰라요. 광야는 목마름과 죽음의 장소이죠. 광야는 뱀과 전갈이 막 날아다니는 곳이 출구가 보이지 않는 곳이에요. 그러나 어떨 때는 출구가 보이지 않는 광야도 하나님의 인도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의 명령대로 갔는데 광야로 간 거 아닙니까? 그래서 오늘 이 말씀이 저와 여러분의 말씀 속에 복음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왜? 그의 백성을 때로는 광야로 인도하시고 광야를 지나게 하실까? 너무 잘하는 말씀이지만 다시 한 번 은혜의 유통기간이 있으니까, 회복하기 위해 신명기 8장 2절 익숙한 말씀이 또박또박 같이 보겠습니다.

*신명기 8:2,
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그 이유는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내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이해가 됩니까? 한마디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과 순종을 시험하시기 위하여 광야로 인도하신다는 겁니다. 여러분, 이 말씀을 기분 나빠도 어쩔 수 없어요. 하나님 내가 연약한데 나 연약한 나를 왜 광야로 인도하십니까? 답답해도 어쩔 수 없어. 왜냐하면 우리의 미성숙을 성숙하게 하시고, 우리의 불순종을 교정하시고, 이제 제일 좋아해 ●애굽적 체질을 앞으로 약속의 땅 체질로 바꾸시기 위해서는 이것이 꼭 필요한 것이에요. 우리는 애굽의 본능적 체질이 있어요. 인간은 태어나서 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선택하는 본능적 체질이 있는 거예요. 근데 이걸 생명나무를 선택하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 가지고 가나안 사람들을 그 체질로 바뀌고 그래서 여러분 이 광야의 길을 대부분 다 못 들어갔지만 20세 이하의 우리 젊은 자녀들은 이걸 훈련해가지고 약속의 땅에 들어갔을 때, 성경 전체에서 유일한 순종의 세대가 된 것이에요. 유일한, 유일한 하나님은 여러분과 저에게 수많은 생수를 터뜨려주시고 기적을 주시고, 하기를 원하시는데 문제는 이 광야의 길을 잘 지나가야 됩니다.

다시요. 애굽 체제를 무슨 땅 체질로요? 약속의 땅 가나안 체질로 바꾸시는 것이에요. 애굽의 육신적인 본능을 말씀으로 주님 해가지고 그리고 그냥 적당히 아니라, 구체적인 장소와 구체적인 시간과 구체적인 사건을 가지고 조율을 하시는 거예요. 그리고 마침내 광야 신명기 마침내 우리에게 복 주시려 하시니라. 마침내, 마침내, 그래서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은,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은, 광야로 인도 받았고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얻기 위하여 애굽 땅의 체제를 약속의 땅 체제로 바꾸기 위해 뭔가 달라지기 위하여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은 다 광야 대학을 나온 것이에요. 모세도 광야 대학 출신이고, 바울도 광야대학 출신이고, 요셉도 광야대학 출신이고, 다윗도 광야대학(Wilderness university) 출신이에요. 그래서 광야에 대한 우리의 시각을 바꾸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광야도 시각을 바꾸는 광야에 가보면요. 저는 광야를 익숙하게 아는 사람인데 광야의 일몰은요. 끝내줘요(It's awesome). 광야에 일몰은 더 멋있어요. 그리고 광야는 비타민d를 듬뿍 주기 때문에 낮에 밤에 정말 잠이 잘 와요. 이게 안 되어도 할 수 없고, 그러니까 잘만 하면 몸을 다시 회복할 수 있는 장소가 되는 거예요. 대신 광야는 혼자 있으면 죽어요. 혼자서는 광야의 길을 못 걷습니다. 영적 동지가 꼭 필요한 거예요(공동체). 그리고 이 이 광야는 다시 애굽 체질을 약속의 땅 체제로 바꾸면, 그다음에 제가 한 번씩 말씀드린 놀라운 이사야가 고백한 대로, 이사야 43장에 고백한 대로, 뭐라고 나오느냐,

*이사야 43:20,
20 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
-내가 광야에 뭘 내고 길을 내고 사막에 뭘 내요 강을 낸다. 그리고 그다음 20절에 보니까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하겠다. 광야에 다시 뭘 내고요 길을 내고 광야에 뭐예요? 사막의 길을 광야에 또 뭐예요? 사막에 뭐예요? 강을 내고 그리고 그 광야를 통하여 광야와 사막을 통하여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이니라. 여러분 저와 여러분들은 하나님이 택한 자인 줄로 확신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오늘 마시게 하는 생수를 마시게 됩니다. 그리고 이 광야에 대한 하나님의 깊은 뜻도 모르고 이제 두 번째 장면은 애굽 체질이 애굽 본능적 사고방식이 체질화된 그 백성들은 계속해서 화가 나서 원망과 항의를 하는 거에요. 3절 보세요.

*출애굽기 17:3,
3 거기서 백성이 목이 말라 물을 찾으매 그들이 모세에게 대하여 원망하여 이르되 당신이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서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가축이 목말라 죽게 하느냐.
-그들이 모세에게 대하여 뭐 하여 이르되 원망합니다. 광야에 이런 것 뜻도 모르고 당신이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 가지고 우리에게 우리와 우리 자녀, 우리 가축을 목말라 뭐 한다고 죽게 한다. 아 백성들은 기가 막힌 거예요. 그러니까 백성들은 불평 전문가야. 물이 없으면 물을 주면 배고프다고 원망하고 불평하고 또 배가 부르면 물이 없다고 불평하고 백성들은 불평 전문가예요. 그러니까 이런 불평 전문가들은 불평의 유통기한이 없는 사람들이에요. 앤들리스 러브가 아니라 엔들리스 컴플래인이야, 끊임없는 불평등한 거예요. 그 이유는 애굽의 노예근성이 처리가 안 됐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우리 모습과 비슷하죠. 우리도 금방 은혜 받고, 은혜 받고 또 잊어버리고 금방 불평하고 올해 몇 번 감사하자 그랬어요. 2024번 몇 번이나 하셨나요? 100번 몇 번이나 하셨나요? 그리고 불평할 때 다 비슷해요. 대체적으로 먼저 불평할 대상을, 대상을 그 리더에게 퍼붓는 거예요. 모세에게 그리고 불평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리더에게 지도자에게 퍼붓고 그다음에는 과거에 집중하는 것이 대체적으로 그래요. 비슷해요. 오늘도 뭐예요? 과거에 집중해가지고 우리가 애굽에 있었을 때는 안 그랬는데요. 그리고 리더에게 퍼붓고 과거에 집중하고 그리고 자기가 뭘 하려고 뭘 한번 해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뭘 해달라고 해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뭘 해달라고 데모하고 요구하는 것이 그리고 이 군중 심리는 집단적으로 몰리는 현상이 있어요. 진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군중 심리와 여론이 중요한 것이 막 부아뇌동하고 그냥 어느 당과 똑 같아요 아니에요 고라 당이에요. 고라, 고라당, 자기 하는게 그 많은 군중들 가운데서 어떻게 단 한 사람도 모세를 따라봅시다. 우리 함께 기도해보고 결정합시다.

어떻게 그런 사람이 없느냐고 한 사람도 없는 거야. 그 이유는 집단 심리로 다 몰려버렸기 때문에 나는 이때 아론이 뭐 했을까 아론도 찍소리도 못하고 있잖아요. 금송아지 만드는 데 참여하고, 그런 우유부단한 아론인데도 그 아론의 자손을 가지고 대제사장 만든 거 보면 우리 하나님 진짜 위대하신 거 아니죠 계속해서 모세 당신의 인도 때문에 우리가 목말라 죽게 되었다. 원망하는 거예요. 하나님의 크신 인도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걸 못 믿고 생명나무를 선택하지 않고 선악을 알게 한 나무를 백성들을 선택하는 왜 우리를 데리고 나오냐, 원망과 불평과 항의를 하는 것이에요. 왜 그러냐? 그 마음속에는 하나님이 무능하다고 생각합니다. 홍해를 건너게 하시고, 만나와 불기둥을 가지고 경험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인정하지 않고, 끝끝내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장 귀한 것을 줄 것을 믿지 못하고, 하나님의 선하심과 능력을 믿지 못하고 하나님이 물을 주지 못하는 무능하신 분으로 원망하는 것이에요.

오늘 우리에게는 이런 일이 없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하나님은 선하신 하나님이시고 능력 있는 하나님이시고 결국은 여러분들을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이시라고요. 좀 우리에게 어려움도 있죠. 광야 길을 지나니까 그렇지만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심하면 안 되는 거예요. 우리가 불평 우리에게도 불평이 많아요. 오늘 이 예배에 와 있는 것 자체가 기적이고 우리가 살아있는 것 자체가 축복인 것이에요.

지난주만 저에게 우리 교회 어떤 시각장애 집사님으로부터 젊은 집사님이신데 편지가 와서 저한테 e메일을 받았는데, 시각장애니까, 목사님 교인들에게 꼭 좀 얘기해 주세요. 자기의 평생소원은 자기 마음대로 한 번, 그렇잖아요. 평생 자기 마음대로 편하게 건널목 한번 건너보는 것이라 합니다. 자기 평생소원이래요. 여러분 여기 이 자리에 건널목 한번 편하게 못 건너보는 손 한번 들어보세요. 건널목을 건넜으니까 여기 오셨을 거 아니에요? 지금 우리가 근본적으로 있잖아요. 우리는 진짜 원망하면 안 되는 거에요. 마음에 안 드는 거 있고 불편한 거 있어도, 우리는 근본적으로 그러면 안 되는 거예요.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기 때문에 그거 다 하나님 시험하는 거라고 그랬어요. 광야의 원망은요. 그래서 2절에 모세가 뭐라고 그랬어요? 뭐라고 그랬어요?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뭐 하느냐고 시험하는 지금 하나님의 영광과 기적을 맛보고 있으면서도 하나님의 선하심과 능력을 인정하지 않는 거예요. 여러분과 저는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는 주의 권세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시험은 의심이고 불신이에요. 민수기 14장 22절 23절에,

*민수기 14:22-23,
22 내 영광과 애굽과 광야에서 행한 내 이적을 보고서도 이같이 열 번이나 나를 시험하고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한 그 사람들은.
23 내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을 결단코 보지 못할 것이요 또 나를 멸시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그것을 보지 못하리라.
-그래서 약속했다가 다 이 세상 장정들은 다 못 들어갔어요. 여호수아 갈렙 빼고는, 그렇다면 이 정도면 하나님이 그냥 쥐어박아야 되는데 그 자격 없는 백성들을 끝까지 사랑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출애굽기 17:4-5,
4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내가 이 백성에게 어떻게 하리이까 그들이 조금 있으면 내게 돌을 던지겠나이다.
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백성 앞을 지나서 이스라엘 장로들을 데리고 나일 강을 치던 네 지팡이를 손에 잡고 가라.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부르짖었어요.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5절에 나일강을 치던 그 지팡이를 손에 잡고 가라 놀랬죠. 나일 강을 치던 그 지팡이를 들고 백성들 앞에서 당당하게 장로들과 함께 걸어가라. 그 불평하는 사람들 앞에 당당하게 돌멩이 맞을 것 각오하고 지팡이 들고 지도자들과 함께 같이 걸어가라. 어제 토비새로 말하면 모세가 산에 올라갈 때 같이 올라간 지팡이였죠. 나일 강을 치던 지팡이라고 하신 것은 나일강의 기적을 알고 있지 않냐고, 상기시키는 거지. 애굽의 신인 애굽의 나일 강을 애굽의 신이었어요. 그 나일를 피로 바꾼 전능하신 하나님이신데 그 동일한 능력을 베풀어 주시겠다는 것이 오늘 이 출애굽기와 신명기에 이 동일한 능력을 가지신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의 생애에 지금 동일한 능력을 베풀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시는 것이 지팡이를 들고 주님께 기도하는 한 하나님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그래서 오늘 강력한 하나님의 은혜가 6절이 오늘 요절이에요.

*출애굽기 17:6,
6 내가 호렙 산에 있는 그 반석 위 거기서 네 앞에 서리니 너는 그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오리니 백성이 마시리라 모세가 이스라엘 장로들의 목전에서 그대로 행하니라.
-아멘! 오늘 여러분들 한 분 한 분에게 호렙에 불이 떨어지기를 바랍니다. 이 말씀에 대한 영안이 열리기를 바라고 성경적 가치관에다 눈을 열어가지고, 다시 한 번 호렙에서 반석에서 터뜨려 뜨린 하나님의 생수를 경험하기를 원하는 것이에요. 너는 그 반석을 치라. 그럼 거기서 뭐가 나온다고요? 물이 나오리라! 반석의 생수 반석을 치면, 생수. 오늘 이 사건을 시편 기자는 시 15편 41절에 해석을 해가지고 다 같이 시편 15편 41절 같이 읽겠습니다. 반석을 여신즉 물이 흘러나와 마른 땅에 강같이 흘렀다.

*시편 105:41,
41 반석을 여신즉 물이 흘러나와 마른 땅에 강 같이 흘렀으니.
-오늘 이 본문의 말씀과 시편의 말씀이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 뜻이 뭡니까? 이제부터 오늘 말씀의 클라이맥스, 오늘 말씀의 가장 중요한 핵심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이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바울 사도는 이 말씀을 다시 한 번 성령의 감동을 통하여 재해석을 하는 것입니다. 구약의 사건을 통하여 바울이 재해석하는데 그 재해석한 것을 주님이 오늘 이 시간 저와 여러분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 놀라운 말씀이 고린도전서 10장 4절, 10장 4절,

*고린도전서 10:4,
4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그 반석은 곧 예수 그리스도시다. 그 반석은 이 반석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 하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누구신가? “Who is Jesus? 시리즈, 세 번째” 오늘 키가 뭐냐? 예수님은 지난주는 생명의 나무이시고 예수님은 오늘 반석이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신령한 반석이시다.

-10장 4절에,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성으로부터 마셨으니 그 반석이 곧 뭐예요? 그리스도시라, 호렙 산의 반석은 물리적인 반석에서 물이 터져 나왔고, 그다음에 바울이 말한 이 신령한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를 통하여 생수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예수 그리스도는 신령한 반석이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반석을 치라 친다는 말이 뭔가 여러 해석이 있지만 정통 신학자들의 대체적인 해석은 뭐냐? 반석을 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예표 하는 것이에요. 무슨 말이냐?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예표 한다는 것이 뭡니까? 스가랴 13장 7절에 이런 말이 나와요.

*스가랴 13:7,
1 그 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주민을 위하여 열리리라.
-목자를 치라 그랬더니 13장 1절에 뭐라고 나와 있냐면요. 그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열리리라 그랬어요. 무슨 말입니까? 반석 대신 예수 그리스도를 치면, 우리의 죄와 더러움을 씻어내는 보혈의 생수가 터지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주님이 보혈의 샘이 되는 거예요. 정리하면 반석 대신 예수님을 침으로 말미암아 물이 흘러넘쳐 나왔는데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건을 통해서 반석의 샘이 터진 것입니다. 반석을 친다는 것은 예수님 입장에서는 십자가를 통하여 예수님의 몸에 침을 받은 것이에요. 반석에서 생수가 나오는 것처럼 예수님의 깨어진 육체에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말미암아 물과 피가 쏟아진 것이에요.

만세 반석 열리니 내가 들어갑니다!!!~. 물과 피를 흘린 것. 구속 못할 죄인이 그 은혜를 우리가 받았노라. 반석을 치라. 신령한 반석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통하여 그의 허리가 창이 치워지고 찔려지고, 그런 가운데서 실제로 물과 피가 흘러나온 것이에요. 실제로 물이 쏟아진 것이에요. 우리가 반석 대신 예수님을 칠 때 이러한 사실을 잊지 않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깨주시고 깨어지십시오. 깨어지시고 치심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가 깨어진 예수님으로부터 생수를 마실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9장 34절,

*요한복음 19:34,
34 그 중 한 군인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바울이 이걸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가 신령한 반석이시다. 그 반석을 창으로 찌르니 치니 물과 피가 나오더라. 예수님의 반석 대신 예수님의 심장으로부터 생수가 흘러나오게 된 겁니다. 좀 더 신학적인 해석을 하면, 오늘 본문에서 호렙 산에서 모세가 반석을 치는 역할이 중요한 것과 같았는데, 나중에 모세가 워낙 오랜 시간이 지나가지고, 40년 후에 가제스 지역에서 물이 없을 때 반석에게 하나님께서 명령하라 반석에 명령하러 오는데, 모세가 자기 경험에 의하여 반석을 두 번 쳤다가 가나안에 들어가지를 못했습니다. 모세는 율법의 대표요. 그래서 안 되는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의 대표이지 생명이 율법의 완성이신 예수님을 통해서만 영적인 가난 새 예루살렘에 들어갈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겁니다. 이 귀한 말씀을 깨달을 자 귀 있는 자가 깨달을 수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물이 어느 정도 흘러나왔는가 시편 105편 41절에,

*시편 105:41,
41 반석을 여신즉 물이 흘러나와 마른 땅에 강 같이 흘렀으니.
-반석을 치신 즉 물이 흘러나와 그다음 뭐예요? 마른 땅에 뭐예요? 이 강같이 흘렀다. 저는 모세가 친 바위의 크기가 얼마인지는 제가 잘 몰라요. 그러나 한 가지 해석할 수 있어요. 적당한 크기의 바위였을까요? 아니면 사랑의 교회 본당 크기의 바위였을까요? 어마어마한 바위였을 거예요. 왜냐하면 지금 아이들은 다 장정만 60만이니까, 200만 정도 되잖아요? 200만 명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풍족하게 물을 마시려면 어느 정도 돼야 할까요? 지금 물 한 병에 7~800원 하는데 풍족하게 마시려면 하루에 4병 마셔야 된다면 하루에 800만 명이 필요한 거예요. 이걸 매일매일 계속 마신다면 얼마나 많은 양의 물이 필요할까? 그것도 광야와 사막에서,,, 그 바위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바위가 되었을 거예요. 제가 그래서 이름 붙였어요. 물에 관한 “오병이어 반석 바위”, 물에 관한 한, 생수에 관한 오병이어 반석바위 신약에서 말하는 예수님만이 생수의 반석이 되실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생수는 제한이 없습니다. 시간도 제한이 없습니다. 영업시간도 제한이 없습니다. 아침 점심, 저 언제 물의 양이 바닥에 나지 않습니다. 나이도 제한이 없습니다. 장소도 제한이 없어 누구든지 다 와서 마실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반석에서 생수가 철철 흘러나오게 되는 것을 계시의 발전사로 봐가지고, 요한복음 7장 37절에,

*요한복음 7:37,
37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광야의 목마름과 괴로움이 있으면 예수님께 가서 마실 때에,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고 제한 없이 생수에 관한 오병이어 반석에서 생수를 터뜨려 주시는 것입니다. 이 시대에 광야에 목마름과 갈증이 있을 때, 주님께로 와서 마시면 반석 되신 예수님을 치기만 하면, 그 배에서 생수 강이 흘러나와 그 강이 하나 리볼 정도가 아니라 미시시피, 낙동강, 한강, 영산강, 두만강, 압록강, 양자강, 저 나일 강 다 합친 것보다도 영광스러운 생수의 강이 흘러넘치리라. 반석 되신 예수님을 치면, 십자가의 은혜를 깨달으면, 생수의 강이 오늘도 흘러나오게 되고, 우리 하나님은 제한 없이 우리를 축복하시는 하나님이 되시는 것입니다. 이럴 때의 광야는 메마름의 장소가 아닙니다. 이럴 때 광야는 전갈과 뱀이 나오는 장소가 아닙니다. 이때의 광야는 목마름이 해갈되는 장소가 되는 것입니다. 제가 처음 말씀한 대로, 광야가 우리 인생이 광야일 수 있지만, 하나님을 찾는 자에게는 광야가 오히려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생수를 경험하는 소망의 장소가 됩니다. 대표적으로 요한복음 4장에,

*요한복음 4:14,
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인생의 광야에서 고통 받은 사마리아 우물과 여인에게 예수님이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목마름을 해결해 주시는 영광스러운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반석에서 나온 물, 그리고 여러분들은 이제 이런 영적인 은혜가 다 연결될 때, 우리 예수님을 통해서 생수를 주신 주님을 찬양하는데, 반석에서 나온 물, 하늘에서 내려온 만나 홍해에서의 구출, 매일의 구름 기둥과 불기둥, 이 과분한 모든 축복들은 반석 대신 예수 그리스도 때문인 것입니다. 그리고 반석을 친다는 것은 십자가의 은혜를 날마다 깨닫는 것인 줄로 믿으셔야 됩니다. 반석도 그리스도이시고, 나중에 만나도 그리스도의 그리스도이시고, 구름 기둥과 불기둥도 그리스도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런 은혜를 깨닫지 못하는 자들은 이 땅에서의 광야의 축복을 누리지를 못하는 겁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 하나님의 자녀들만이 이런 경험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이여, 택하신 하나님의 백성들인 여러분들이여!
-여러분들의 생애에서 광야에서 생수를 마시는 풍성하게 마시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아니 광야 같은 인생길에서 생수를 마십시다. 어떤 상황에서도 반석에서 생수를 터뜨려 주시는 예수님을 생각하면 가슴이 뜨거워지는 겁니다. 우리가 광야 같은 세상에 살다 보니 질병도 있고 물질적인 여유도 없고 앞길이 막혀가지고 답답해도 반석에서 강 같이 흐르는 생수를 생각하면, 가슴이 터질 듯이 기쁜 것이에요. 오죽하면 이사야 40장 3절에 이사야가 고백합니다.

*이사야 40:3,
3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광야에 꽃이 피고,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100년 전에 우리 민족에게 복음이 들어왔을 때 우리 민족은 완전히 광야였습니다. 여러분, 우리 19세기 말에 우리나라에 처음 복음이 들어왔을 때, 우리나라는 완전히 우리나라는 나라도 없고, 잃고 희망도 없고, 민족의 광야도 그런 광야가 없어 영토도 다 빼앗기고 오죽하면 남부여대에 가지고, 만주로 다 도망가고, 재미있는 일이 하나도 없었어요. 우리 보릿고개, 초근목피(草根木皮) 하고 살았어요. 그때 복음이 들어왔어요. 광야에 생수, 그래서 사람들이 그 당시에 어떤 평가를 한 줄 압니까? 유교는, 유교는 날마다 유교는 날마다 유교를 믿는 사람들은 집에서 제사 드리는 사람처럼 늘 엄격하고, 어떤 또 타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맨날 목적도 초상집에 사는 사람 같고, 근데 이상하게도 예수 믿는 사람들은 잔칫집에 사는 사람과 같다. 하나는 초상집, 하나는 제삿집 내가 뭐 이름 바뀌면 안 되고, 우리는 잔칫집!!! 예수 믿으면서도 제삿집, 초상집 안 됩니다. 하나님 은혜를 기억하면 우리는 광야에서 생수를 터뜨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의 선배들, 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방수의 생수를 터뜨렸고, 마치 요한계시록 21장 6절에 너무나 영광스럽습니다.

*요한계시록 21:6,
6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할렐루야!! 생명수 샘물을 광야 길 가운데서 목말라 하고 갈증 하는 사람에게 내가 죽겠다. 저희 교회가 키르키스탄의 ‘사랑 아카데미’라고 아주 좋은 명문학교를 만들고 운영을 하고 있어요. 우리 교회 장로님이 지금 거기 가고 교장으로 계시면서 잘 하고 있어요. 제가 10몇 년 전에 거기 한번 가가지고요. 그 학교 옆에 조금 더 가면 이시쿨 이라는 멋진 호수가 있어요. 김지환 시인 같은 사람, 그곳이 우리 한민족의 근원이 되는 호수다. 그런 얘기 이시쿨 호수 뭐 지 보셨어요? 이 식구의 호수보다 더 놀라운 생수를, 그보다 더 놀라운 생수를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해 주실 것이다. 바이칼 호에 가면 어마어마한 생수가 전 세계 담수의 20%가 있습니다. 그 생수를 다 마신 것 같은 생수를 허락해 주실 것이다. 오늘 이 말씀 하나하나가 여러분들에게 꼭 내 것으로 적용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부를 오늘 찬송은,,,찬송 384장,

◎나의 갈길 다가도록.♪~
1절: 나의 갈길 다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내 주안에 있는 긍휼 어찌 의심하리요
믿음으로 사는 자는 하늘 위로 받겠네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 하리라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 하리라.

2절: 나의 갈길 다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어려운 일 당 한때도 족한 은혜주시네
나는 심히 고단하고 영혼 매우 갈하나
나의 앞에 반석에서 샘물 나게 하시네
나의 앞에 반석에서 샘물 나게 하시네.

3절: 나의 갈길 다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그의 사랑 어찌 큰지 말고 할 수 없도다.
성령 감화 받은 영혼 하늘나라 갈 때에
영영 부를 나의 찬송 예수 인도 하셨네.
영영 부를 나의 찬송예수 인도 하셨네.
아멘 ♪~

2절에 보면요. 나의 갈 길 다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어려운 일 당할 때도 족한 은혜주시네.. 광야 길 갈 때도 족한 은혜주시네. 그다음 가사가 너무 귀한 거예요. 나는 심이 고단하고 영혼 매우 가하지만 그다음에 뭐예요? 나의 앞에 반석에서 샘물 나게 하시니라. 나의 앞에 반석에서 샘물 나게 하시네. 어떤 경우에도 원망하지 말고 반석에서 생수를 터뜨리시는 그분과 함께 모두가 다 영적으로 성공하는 신실한 남녀종들 되기를 축원합니다.

♣요약
광야에서 애굽 체질을 약속의 땅의 체질로 바꾸어 주실 때, 원망과 불평을 물리치고 마침내 복 주시고 승리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십자가에서 흘러나온 보혈의 생수로 인류의 죄와 더러움을 씻어주신 것처럼 날마다 ‘오병이어 반석’에서 흘러나온 생수의 강으로 모든 목마름을 해갈하여야 한다. 우리 교회가 사랑글로벌 아카데미(SaGA)의 상반기 사역의 개강도 하나님께서 압도적인 은혜를 부어주셔서 대한민국에 생수가 터지는 좋은 지도자의 복을 주시길 간절하게 기도해야 한다. 반석에서 나온 물, 그리고 여러분들은 이제 이런 영적인 은혜가 다 연결될 때, 우리 예수님을 통해서 생수를 주신 주님을 찬양하는데, 반석에서 나온 물, 하늘에서 내려온 만나 홍해에서의 구출, 매일의 구름 기둥과 불기둥, 이 과분한 모든 축복들은 반석 대신 예수 그리스도 때문인 것임을 확신해야 한다.
-맛사’ 또는 ‘므리바’는 다툼이나 시험을 의미한다. 그것은 이스라엘 자손이 다투면서 하나님이 자신들 가운데 계신가를 시험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들의 불신앙을 기념함으로써 다시는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모세의 기도응답,- 하나님은 모세더러 이스라엘 장로들을 데리고 지팡이를 잡고 나아가 반석을 치면 물이 나오리라고 말씀하셨다. 이스라엘의 계속적인 불신앙의 태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참고 그들의 불평을 들어주셨던 것이다.
-바울은 여기서 큰 특권을 향유했으나 결국 무서운 책벌 아래 떨어지게 된 유대인들을 예로 들고 있다. 하나님의 유대인에 대한 섭리와 그들에게 일어난 일이 우리에게 경고하는 것에 대하여 말한다. 바울은 유대인들의 특권을 열거한다. 애굽에서 구출 받은 일이다. 그들은 기적적으로 홍해를 지났다. 그리고 그 홍해 속의 길에서 애굽 인들은 수장되었으므로 유대인에게는 생명으로 가는 활로가 되었고 애굽 인들에게는 무덤이 되었다. 하나님께서 이런 기적으로 그들을 구원했을 때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찬양했다. 유대인은 우리들과 같은 성례를 가졌다.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다 같은 신령한 식물을 먹으며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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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흥헌신 토요비전새벽예배(주후 2024년 02월 17일)
제목: "여호와 닛시의 깃발, 7천기도 용사들"
말씀: 출애굽기17:8~16
찬양인도: 목양 1팀 찬양대
대표기도:
사회: 김대규 부목사님
말씀읽기: 최호진 형제(청년3국), 김혜수 자매(대학2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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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17:8~17,
8 그 때에 아말렉이 와서 이스라엘과 르비딤에서 싸우니라.
9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우리를 위하여 사람들을 택하여 나가서 아말렉과 싸우라 내일 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꼭대기에 서리라.
10 여호수아가 모세의 말대로 행하여 아말렉과 싸우고 모세와 아론과 훌은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11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
12 모세의 팔이 피곤하매 그들이 돌을 가져다가 모세의 아래에 놓아 그가 그 위에 앉게 하고 아론과 훌이 한 사람은 이쪽에서, 한 사람은 저쪽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더니 그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한지라.
13 여호수아가 칼날로 아말렉과 그 백성을 쳐서 무찌르니라.
1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고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라 내가 아말렉을 없이하여 천하에서 기억도 못 하게 하리라.
15 모세가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 하고.
16 이르되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말렉과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셨다 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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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새벽에 여러분들 나오시기까지 많은 사연이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맞습니까? 기도하고 준비하고 아침에 또 나오는데 또 이렇게 은혜로운 것도 많지만 또 여러 가지 부족한 것도 있어가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자리에 우리를 불러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오늘 공동체 PRS 우리가 했는데 시편을 했는데 시편의 기도 자체가 시편 자체가 우리의 기도인 줄로 믿습니다. 그거를 준비하고 늦게 오신 분들은 모를 거예요. 이제 다음에 일찍 와보세요. 그다음에 아이들 나와서 우리 찬양 인도하고 그랬는데 내가 볼 때는 한 두을 낮춰가지고 그냥 좀 어리버리하게 했지만 내 하나님은 크고 힘 있고 능이 있어서 약간 약해졌지만,,, 그래도 그 준비하고 나오는 데 수많은 사연이 있는 거예요. 그다음에 오늘 우리 위대한 신자 찬양도 하시고 모든 이 토비에 아침에 나오기까지 많은 일들이 있고 우리 청년부, 대학부 오늘 성경 봉독했는데 이런 모든 과정이 은혜에 축적이 되는 것이에요.
 
사랑하는 여러분,
인생은 수많은 일들이 있어요. 그러나 이런 은혜의 축적을 통하여 모든 난제들을 해결해 주시는 것이에요. 국가적으로도 그러고 개인적으로도 그러고 수많은 우리 얽히고설킨 것들이 많아요. 오늘 본문에 나오지만 ‘아말렉’ 이라는 이름이 7번이나 나와요. 한번 찾아봐요. 본문 한번 찾아보세요. 아말렉 이라는 이름이 몇 번 나온다고요?
 
7번 7번 집요하게 다시요. 몇 번 나온다고요? 이 아말렉은 우리의 삶에 얽히고설킨 난제를 의미하기도 하고 또 우리를 공격하는 아주 야비한 어떤 그런 공격을 의미하기도 하고 우리의 삶에 해결할 수 없는 수많은 문제들을 어떤 의미하기도 하는 것이에요. 그런데 7번 나오는데 제가 이제 이 원문에 전에 원문에서는 원문에도 똑같이 7번 오는데 우리 한글 성경에는 7번이 안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원문을 가지고 7번을 찾느라고 상당히 좀 고생을 했어요. 근데 한글 성경에는 ‘모세의 손’ 이라고 했는데 아니 모세의 손이라고 그랬는데 손이 몇 번 나와요? 대답을 못해 손이 몇 번 나온다고요? 아말렉이 몇 번 나온다고 그랬죠? 본문을 보시라고 본문을 보시면 본문을 좀 보시라고 다 같이 우리 초록 보세요. 보시면 그때 ‘누가 와서 8절에 아말렉이 와가지고, 그다음에 9절에 나아가서 행하는 누구와 싸우라 아말렉이라, 그다음에 죄송합니다. 그다음에 또 아말렉이 어디 나와요? 10절에 또 아말렉 나오죠. 또 손을 내리면 또 아멜렉 나오죠. 11절에 나오죠. 그다음에 또 또 아멜렉이 또 어디 나와요? 저 뒤에 13절에 아말렉 나오죠. 그다음에 또 14절에도 아말렉 나오죠. 여러분 나옵니까? 그다음에 또 16절에도 뭐가 나와요? 아말렉에 나오죠? 7번... 몇 번 나온다고요? 그러니까 수많은 삶의 난제, 이런 것들을 예표 한다니까요. 대신 아말렉과 함께 아말렉이 나올 때마다 나올 때마다, 아말렉 나올 때마다 9절에서 어떻게 나옵니까?
 
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어디에 잡고요? 하나님의 지팡이는 어디서 잡고요? 손에 잡고, 손에 잡고 지팡이를 잡고 그다음 11절에 보니까 모세가 뭐예요?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그다음 뭐예요? 손을 내리면, 아멜렉이 이기더니 그다음에 12절에 모세의 팔이=손, 피곤하면 이 팔이라는 거예요. 이게 팔로 돼 있지만 실제로 손이에요. 핸즈(hands)예요. 본래 손 손팔 이골 손이라고 써놓으세요. 그렇게 하고 난 다음에 한 사람은 저쪽에서 모세에 뭘 들고요 손을 들어 그랬더니 그 뭐에 손이 해가 지지 않도록 내려오지 아니하고 지금 몇 번 했어요. 지금 팔까지 하면 6번이죠. 쭉 나오고 그다음에 쭉 마지막에 가고 그 손이 없어요. 일곱 번째 손이 없어요. 근데 16절에 보니까 이르되 여호와께서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아말렉과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거기에 여러분 성경 관주해가지고 거기에 있는데 우리 사랑의 교회 성경한테 2번 보입니까? 16절에 2번 여호와께서 맹세하를 2번 보입니까?
 
2번 밑에다가 뭐라고 써놨어요? 여호와의 보좌를 향해 뭘 들었더니 히스 핸스 립트 업 투 이래가지고 그러니까 히즈 핸즈 리프트 업(His hansds lift up), 그러니까 여기는 손이 빠져 있는 원문에는 손이 들어있다. 이 말이에요. 이게 이해가 됩니까? 손이 몇 번 나왔어요? 7번 나오는 거 그러니까 아말렉들이 쳐들어올 때 7번, 7번이 대체적으로 어떻게 보면 우리가 만수라 성경에는 7번, 공격할 만큼 공격한다 이 말이야. 그렇게 우리를 모사를 굴고 공격하는 수많은 일들이 있어요. 야비한 것들이 많아요. 공격할 때마다 우리는 뭘 들고? 몇 번 들어들고요? 공격할 때마다 우리는 기도에 손을 드는 것이에요. 기도의 지팡이를 드는 것이에요. 그래서 올 한 해 동안 우리가 토비새(토요비전새벽예배) 할 때마다 우리가 기도의 지팡이도 들고 손을 들고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가 주님 앞에 상달되는 줄로 믿으시기를 바라는 것이, 그래서 먼저 오늘 우리가 이 7천 기도 용사를 모여서 우리가 말씀을 우리가 구체적으로 더 나누기 전에 오늘 기도에 손을 들고 먼저 하나님의 주님 앞에 온지 하면 기도하기를 바랍니다. 몇 번 공격해 온다고요? 7번,,, 그리고 우리가 그거 할 때마다 몇 번 우리가 뭐 한다고요? 기도에 손을 드는 거예요. 모세의 손을 드는 것이 손이 몇 번이라고요? 7번, 우리 한글 성경에는 몇 번밖에 안 나와요? 5번밖에 안 나오는데, 여호와의 팔이 본래는 손이라고 모세의 팔이 손이 된다고요.
 
우리 저기 12절에 그다음에 16절에 손을 들고 주의 보좌를 하 이르시다. 그러니까 7번의 수많은 공격이 있더라도 우리는 7번의 기도에 손을 들고 기도의 지팡이를 들고 기도할 때 하나님은 역사하시는 것이에요. 우리에 있는 수많은 난자와 아말렉을 주님이 물리쳐 주시는 것이 이것이에요. 신앙이고, 이것이 주님을 향한 믿음의 믿음의 자세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에요. 그래서 먼저 ‘주의 용서된 나에게 주의 일을 맡기소서.’
 
♬주의 기도 용서된 나에게 주의 일을 맡기소서.~~~
기도의 지팡이 갖고 왔으면 그 기도의 지팡이 딱 잡고 이 지팡이가 뭐 하냐 그렇게 하시면 안 돼요. 7번 공격하면 7번 손을 드는 것이에요. 아멘 너무 중요한 것이에요. 그러다가 일어나시겠어요? 일어나셔가지고 합심해서 우리 한번 기도하고 말씀을 나눌 텐데 주의 용서된 나에게 기도 용서된 나에게 죄를 맡겨 주십시오. ♬내가 승리하기까지~~~주의 용사된 나에게, 말씀 용사된 나에게, 주의 일 맡기소서.~~~
 
여러분, 이 새벽에 불러주신 주님을 먼저 찬양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의 기도 때문에 얽히고설킨 수많은 난제들이 기도의 우선순위를 통하여 해결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기도 제목
-첫 번째 하나님 아버지 100% 신성을 믿습니다. 100% 인성을 믿습니다. 100% 인상할 때 예수님께서 기도하러 가셨다. 기도하러 가시고 주님이 인생을 말하고 주님이 하나님이시라면 기도할 필요가 없지만 우리의 우리 대신 100%의 인성을 가지고 그리고 기도할 때 바람과 바다와 폭풍도 잔잔하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이 시대에 폭풍과 바람과 바다가 잔잔하게 되게 하여 주옵소서.
 
-두 번째 기도 중 주여 생명나무를 선택하게 하여 주옵소서. 엉터리들 아픔들, 고통, 트라우마 이런 것이 우리의 주인이 되지 말게 하여 주시고 오늘 이 생명나무를 선택하기 때문에 이 토요일 날 아침에 새벽에 다른 거 다 제쳐두고 우선순위로 나온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모두가 다 기도의 전사, 복음의 전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런 마음을 가지고 주여 기도 용서되게 하옵소서. 크게 세 번 외치고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100% 신성 100% 인 그 능력을 가지고 그다음 생명나무를 선택하고 이 시대에 헝크러진 것이 다 난자들이 다 발효되게 하여 주옵소서 주여 기도 용사대가 세 번 외치고 기도하겠습니다.
 
그 기도 제목을 가지고 간절히 기도할 때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깊고 신비한 능력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걸 우리가 전사라고 그래요. 전사(戰事), 복음의 전사, 기도의 전사, 기도의 용사라고 그러는데 여러분 생각을 해보세요. 저 몽골에 옛날에 몽골 제국은 세계 최대 제국이었어요. 아마 그 전무후무(前無後無)합니다. 몽골 제국만큼 큰 제국이 없어요. 로마 제국이 있다고 그러고 나폴레용도 제국이 있다고 그러고 뭐 이런 거 있지만 몽골만큼 크지는 않아요. 근데 그 몽골이 원래 시작할 때 사막의 거지 부족이었어요. 아무것도 없었어요. 그런데 몇 가지 똘똘 뭉쳐가지고, 지도자 제대로 하나 있고 똘똘 뭉쳐가지고 똘똘 뭉쳐가지고 기백(氣魄)을 갖고 그리고 스피디하게 나가니까 로마 대 몽골 제국이 됐어요. 그런데 그 몽골 제국도 한때, 한 한 1~200년 하고 끝이었어요. 왜? 신앙적인 바탕이 없으니까 기도의 능력이 없으니까 인간이 힘을 먹고 인간이 전사가 되고 인간이 기백을 가져도 몽골 제국을 이루고 사막의 거지 부족이 세계 최고의 제국이 된 거예요. 기백과 함께 스피드가 있으니까 그 이후로 대영 제국이 나오죠. 여러분 대형 제국이 뭐예요? 영국은 원래 고기 잡던 어부들이었어요. 그냥 해적들이었어요. 해적들인데 아무것도 아닌데 복음에 들어 가가지고 그들이 변화되고 기도하고 그렇게 하니까 한때 영국 교회가 최고였어요. 대영 제국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였어요. 생각을 해보세요. 아르젠티나 그다음에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 그다음에 사우스 아프리카, 아프리카 대국의 수많은 중요한 나라들 여기 미얀마로부터 시작해가지고 싱가포르까지, 동남아시아 인도까지, 오세아니아, 그다음에 아르젠티나, 심지어 미국까지 옛날에 미국도 영국의 식민지였잖아요? 캐나다 말할 것도 없고 그러니까 그 해적들이 기도하고 은혜 받아가지고 바뀌게 되니까, 말씀을 가지고 무장하게 되니까 해가 지지 않는 나라가 된 거예요. 그런데 그 영국 교회가 힘을 잃어버리니까 지금은 이제 흐름만 좀 남아 있는 것이에요. 우리가 만약에 오늘 이 시간 여러분 전력투구(全力(鬪狗)하고 기도하고 매달리고 복음의 전사가 되고, 기도용사가 되고, 말씀을 가지고 딱 붙잡으면, 여러분 생애가 적어도 몽골 제국 이상으로 대영 제국 이상으로 하나님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것이에요.
 
제가 무슨 크게 된다 돈 많이 번다 이 정도가 아니에요. 그거는 다 지나가는 거예요. 시대 앞에 믿음의 용사가 되는 것이에요. 담임 목사가 처절하게 이렇게 간절히 얘기하면 여러분 그거 그 말씀 가운데 같이 기도 제목 같이 나누면 여러분 보다 더 은혜를 받는 것이에요. 그래서 칠천 기도용서가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칠천 기도 용사 이거 잘하기 위하여 제가 제국이기도 하고 기도 용사이기도 하고 내가 일곱 아멜렉의 공격과 일곱 손을 가지고 얘기했습니다마는 먼저 우리가 생각 본문에서 생각할 거 있습니다. 뭘 생각하느냐 아말렉이 우리에게 첫 번째는 뭐냐 하면 야비한 공격이에요. 야비하게 우리를 공격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지켜주시는 거에요. 아말렉은 어느 정도 야비한가 하면 여기 오늘 본문과 함께 신명기 25장 17절, 18절, 19절을 한번 보겠어요.
 
*신명기 25:17~19,
17 너희는 애굽에서 나오는 길에 아말렉이 네게 행한 일을 기억하라.
18 곧 그들이 너를 길에서 만나 네가 피곤할 때에 네 뒤에 떨어진 약한 자들을 쳤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니라.
19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어 차지하게 하시는 땅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사방에 있는 모든 적군으로부터 네게 안식을 주실 때에 너는 천하에서 아말렉에 대한 기억을 지워버리라 너는 잊지 말지니라.
-얼마나 이 아말렉 총성은 뭐냐 야비한지 피곤하고 힘들 때 뒤에서 치는 거예요. 그래서 옛날에 어디 가면 밤에 어디 갈 때 제일 뒷공지에 있는 사람들은 겁나잖아요. 늑대가 잡아먹어 버린 거예요. 여러분 저는 어릴 때요. 시골에서 늑대 봤어요. 늑대 늑대는요. 늑대아가 있을 때는 언덕 밑을 지나가면 안 돼요. 왜냐하면 늑대가 위에 언덕 위에 올랐고 팍 치기 때문에 그런 것도 모르죠? 얼마나 야비한 늑대처럼 야비한지, 하이에나처럼 야비한지, 제일 뒤에 피곤한 사람들을 치는데 특별히 약한 자들을 친다고 그랬어요. 다시요. 뒤에서 약한 자들을 친다. 약한 자 오늘날 약한 자, 어린이들, 노인들, 병든 자들, 고통당한 자들, 지금 시험 든 자들, 수많은 여성들,,, 너무너무 야비한 거예요. 하이에나 시대에요. 하이라 제가요 며칠 전에 제가 유튜브를 잠깐 이제 보다가 내가 너무 깜짝 놀랐어요. 유튜브가 야비하고 거짓의 앞잡이에요. 너무 많이 보지 말아요. 아시겠어요? 볼 것만 보고 진짜만 보고 중요한 것만 보고 알고리즘으로 돼가지고 아무나 들어오는 거 다 보면 안 돼 다 믿으면 안 돼요. 예를 들면 이런 게 있더라고. 이제 아마 지금 정보를 공격하는 쪽에서 하는 것 같은데 정부의 어떤 고관이 말이지 맨날 집에서 출근하면서 저기 뭐야 그 근처를 갖다가 다 어떻게 해가지고 개인의 뭘 치부를 한다. 이런 식으로 막 공격을 했더라고요. 그러면서 그 정부의 고가는 집에서 출근을 못하게 돼 있고 공관이 있는데 공관에서 출근하는 건 내가 다 아는데 공간이 없다는 거야. 거짓말을 그것도 상당히 저기 뭐야 신뢰성 있는 것처럼 그런 유튜브라는 건데 거짓말을 갖다 내가 보면서 여러분 나는 댓글을 안 다는 사람인데, 내가 진짜 열받아가지고 내가 댓글을 써야 되나 말아야 되나, 그래가지고 제가 제 주위에 있는 사람 불러가지고 네가 써라 그거 썼어요. 이런 거짓을, 이런 야비한 짓을 이런 못된 짓을, 아마 4월 12일 총선까지 수많은 야비하고 거짓말 온갖 종류의 있잖아요. 이런 아말렉들이 우리 주위에 막 설칠 거예요. 우리가 다른 방법이 없어요. 손을 들고 기도하는 거 외에 다른 방법이 없어요. 아말렉 족속은 에서의 손자 아말렉의 후손들이에요. 누구의 손자라고요? 에 에서와 야곱은 이삭의 아들들이었지만 완전히, 완전히 다른 야곱과 에서의 장래는 완전히 달랐어요. 아말렉은 끝까지 이스라엘 족속을 괴롭혔어요. 물론 아말렉이 나중에 최후를 맞이하기는 했지만 아말렉을 완전히 멸하라고 사울보고 그랬는데 사울이 사울 왕이 그걸 듣지 않아가지고,,, 그 연명을 좀 길게 했어요. 18절에 다시 한 번 신명기 25장 18절에 피곤할 때 너희 뒤에 떨어진 약한 자들을 보고 하나님 두려워하자고 그래서 19절 19절 25장 19절, 시작
 
*신명기 25:19,
19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어 차지하게 하시는 땅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사방에 있는 모든 적군으로부터 네게 안식을 주실 때에 너는 천하에서 아말렉에 대한 기억을 지워버리라 너는 잊지 말지니라.
-아멘 너는 천하에서 뭐예요? 아말렉에 대한 기억을 지워버리라. 오늘 말씀 아멜렉이 오늘 몇 번이나 나온다고요? 7번, 세상에 수많은 야비함과 공격과 이런 것들을 상징하는 것이에요. 그럴 때 우리가 기도에 손을 들고 나아갈 때, 하나님이 역사해 주시리라고 믿습니다. 이스라엘이 준비되어 있지 않고, 피곤할 때에 아말렉이 공격하는 것이, 약해져 있을 때 공격하는 것이에요. 취약한 상태에 있을 때 공격하는 것이에요. 그게 뭘 말하는 거예요? 우리가 약해져 있으면,,, 공격 약해져 있지 아니하고, 취약해 있지 아니하고, 우리가 정신을 차리고 있으면, 깨어 있으면, 공격을 능히 감당할 수가 있는 것이에요. 깨어 있는 게 뭐예요? 기도의 지팡이를 들고 이 시간 기도할 때 그것이 깨어 있는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우리가 어떤 새로운 일, 귀한 일을 하려고 할 때 늘 이런 공격이 있는 거예요. 이런 공격들이 있는 것이 그럴 때 이제 모세가 크게 한 두세 가지를 했는데,,, 첫째 공격, 아말렉이 이렇게 공격해 올 때에, 오늘 출애굽기 17장에서 공격이 올 때에, 내일은 앞부분을 제가 설교를 할 거예요. 그러니까 오늘 내일 잘 해가지고 여러분들 나름대로 삶의 중요한 지표를 삼아야 되는데, 모세가 공격할 때 슬슬 피하거나, 도망가거나 그러지 아니하고 즉각 반응한 줄로 믿습니다.
 
I. 첫 번째 - 모세가 즉각 반응한다.
 
-그리고 어떻게 했느냐 오늘 보니까 본문에 지팡이를 들고 어디로 올라갔어요? 8절에, 아말렉과 싸우라 그러니까 아말렉과 싸우느라. 9절에,
 
​*출애굽기 17:8~17,
8 그 때에 아말렉이 와서 이스라엘과 르비딤에서 싸우니라.
9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우리를 위하여 사람들을 택하여 나가서 아말렉과 싸우라 내일 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꼭대기에 서리라.
-모세가 여호와께 이르되 우리를 위하여 사람을 택하여 나으라. 아말렉과 싸우라. 내가 내일 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꼭대기에 서리라고 그랬어요. 즉각 있잖아요. 즉각 싸움, 즉각 반응합니다. 특별히 뭘 가지고요? 기도의 지팡이를 가지고 지팡이를 가지고 이 지팡이는 여호와의 능력과 임재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두 가지 특별히 하나님의 임재, 내가 너와 함께 하는 것과 하나님의 능력, 이 지팡이는 과거에, 과거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사명 주실 때에 지팡이가 뱀으로 변한 것이 다 지팡이가 되고, 이 지팡이는 얼마 전에 홍해를 건너게 한 지팡이가 되었고, 이제 내일 얘기할 것을 말씀하기 이 지팡이는 반석에서 샘을 치는 지팡이가 되었어요. 이 놀라운 지팡이를 들라. 다시 지팡이는 뭘 상징한다고요? 하나님의 임재와 뭘 상징한다고요? 능력을 상징하는 것이에요. 그리고 그 지팡이가 모세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이 우리는 우리가 갖고 있는 자본도 우리가 갖고 있는 자본도 다 쓰지 못한다면 그걸 사람들이 바보라고 그러는 거예요.
 
어떨 때? 여러분 지금 놀랍게 여러분들과 제가 갖고 있는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이 있는 것이 이 토비의 이자이 우리의 생애를 다하는 동안 주님은 우리와 함께 임재하시는 것이에요. 그 임재와 그다음에 수많은 우리의 기도를 통하여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 그 은혜를 통하여 주님이 우리의 삶에 수많은 난제들을 해결하시고 능력을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이 지팡이는 뭘 상징한다고요? 하나님의 임재와 뭐의 능력이에요?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것이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이에요. 4월 11일 총선에 예를 들어서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이 있으면 이깁니까? 못 이깁니까? 예를 들어서 여러분의 삶에 여러분 자녀들, 수많은 기도의 제목들이 있는데,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의 지팡이가 있으면 그 자녀들의 수많은 난제들을 해결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부부 사이에 말 못할 가정 가정마다 수많은 난제들, 여러분 그거 인간의 힘으로는 해결 못합니다. 기도의 지팡이를 들어야 해결할 수 있습니다. 기도의 지팡이를 들면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이긴다고 그랬습니다. 그걸 내리면 지는 것이에요. 그 사건에 여러분 다 아실 거니까 다시, 우리에게는 지팡이가 있는데 이 지팡이는 뭘 상징한다고요?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임재와 능력의 지팡이를 들고 즉각 반응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사역에 미적미적하지 말게 하여 주시옵시고, 우리는 적어도 몽골의 전사보다도, 대영 제국의 어떤 전사들보다도 우리는 더 강력한 기도의 천사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그다음 두 번째로 모세는 뭐냐 혼자 싸우지 않았어요. 혼자 싸우지 않았죠? 어떻게 싸워 누구와 싸웠습니까? 자기 혼자서 모세가 자기 혼자서 무슨 독불장군이 돼가지고 자기 혼자 싸우지는 않았어요. 혼자 그러지 않았어요. 아론과 훌과 함께 산에 올라가서 같이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믿음의 참 제자 같은 믿음의 사람인 여호수아는 밑에서,,, 밑에서
 
II. 두 번째 - 모세는 혼자 싸우지 않았다(함께 했다).
 
-밑에서, 실질적으로 싸우는 거예요. 혼자서 모세는 산에 올라 싸우고, 아론과 우은 같이 협조하여 싸우고, 그다음에 여호수아는 실제로 젊은 여호수아는 밑에 내려가서 백성들과 함께 전쟁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에요. 놀라운 것이에요. 그러니까 우리가 이 기도의 지팡이를 들고, 모세의 역할을 하는 사람이 있어야 돼요. 여기서 우리가 우리 교회 한국교회 리더십들이 제대로 방향을 잡아야 돼요. 또 여기서 우리 한국교회 아론과 우리 교회 아론과 훌의 역할을 할 사람들이 필요한 것이 그다음에 또 여기서 우리가 여호수아의 역할이 필요한 것이에요. 실제로, 백성들과 함께 팀웍을 이루어가지고 싸워나가는 것이 그러면 여기에 모세가 누구냐? 아론 가운데 누구냐 여호수아가 누구냐? 그다음 백성들이 누구냐? 그랬을 때에 21세기에 우리가 그 역할을 하나님이 은사로 주신 사람들이 다 있어요. 역할이 우리 교회는 우리 교회 나름대로 모세의 역할, 아론과 훌의 역할, 여호수아의 역할, 그다음에 백성들의 역할이 있지만 사실은 크게 따지면 여러분들이 이 내 역할을 다해야 되는 것이에요. 저도 이 이 네 가지 역할을 다해야 되는 것이에요. 이 네 가지 역할 기도를 통하여 이 네 가지 역할을 강력하게 할 수 있도록 하나님 은혜 주시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공동체가 함께 했습니다. 여호수아를 보내서 실제 싸움을 하게 했고, 장로님들을 선택해 갖고 함께 산꼭대기 올라갔습니다. 그래서 서로 은사가 발휘되었습니다. 강력하게, 우리가 영적 전쟁 전쟁을 할 때 싸움에 직면했을 때 우리를 위해서 기도해 주고 믿음이 없어질 때 믿음을 붙들어줄 수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필요한 공동체가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무교회주의는 안 됩니다. 혼자 사는 거 아니에요 무 교회 주의 하는 분들은 우리 다 그분들이 갖는 기독교 신앙의 어떤 깊이 이런 걸 우리가 좀 배워라가 많아요. 근데 무교회주의 예를 들어서 옛날에 김교신이라든지, 나중에 함석헌 다 나오는데 다 이 사람들은요. 어마어마하게 똑똑한 사람들이었어요. 지금도 우리나라에 무교회주의 누구인지, 내가 이제 말을 안 하겠어요. 자기 혼자서 신앙생활을 자기 혼자서라도 할 만큼 그렇게 똑똑한 사람들이, 근데 그거는 신대 명명이고 우리는 다 영적으로 서로 연합하고 합쳐가지고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이거예요. 무교회주의자들 치고 안 똑똑한 사람 어디 있어요? 그래서 그러세요? 무교자면 당신이나 똑똑하시오. 똑똑한 사람이 알아서 하시라고 우리는 하나님 앞에 늘 부족하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의 공동체에서 함께 서로 협력하고 함께 서로 리더십을 나누고 함께 영적 전쟁을 하고 함께 감당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토비새의 기도 용사들, 여러분들 이 뭔가 딱 방향이 잡히면 여러분 그거 갖고 함께 힘을 모아갖고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첫 번째 모세는 전쟁 아말렉과의 전쟁이 들어왔을 때 첫 번째 어떻게 했다고 그랬죠? 즉각 뭘 들고요 지팡이를 들 지팡이는 뭘 상징한다고요? ⓵즉각 지팡이를 들고 반응했다. 하나님의 능력과 입자를 상징한다고 그다음 두 번째로 모세는 어떻게 했어요? ⓶혼자 싸우지 않았다. 우리 다 함께 같이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를 바라고 영적 전쟁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올해는 특새를 4월 1일부터 4월 21일 총선 앞에 놓고, 한 주간 앞에 놓고 4월 1일부터 한 주간 동안 한국교회 전체와 함께 같이 우리 교회에서 특새를 하려고 합니다. 이제 한 달 한 2~3주밖에 안 남았어요. 그리고 역할이 있는 것이에요. 한국교회도 나름대로 그러니까 다 나처럼 안 한다. 왜? 나처럼 안 하냐 이런 사람들이 있어요. 우리 교회도 좀, 좀 센 분들 많이 있어요. 왜 목사님 광화문에 안 나가느냐고,,, 사람마다 전선의 다양화가 필요해요. 광화문에 나올 분들 나가세요. 그러나 우리는 또 우리 나름대로 기도할 게 또 있다고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사람마다 주신 은사가 달라요. 그러니까 제가 더 자세한 여러분들이 알지 못하는 수많은 일들이 일어나는 거예요. 그런데 자기에게 주신 역할과 의사에 따라서 전선의 다양화를 가지고 열심히 할 때 하나님이 이 민족을 더 불쌍히 여겨주시리라고 믿습니다.
 
첫 번째는 즉각 반응 뭐로요? 기도의 지팡이를 가지고...
두 번째는 뭐예요? 공동체가 함께하는 것이며,
세 번째는 싸움에서 이겨야 되는 것입니다. 이 싸움에서 이겨야 되는 거예요. 싸움에서 이기려면 전적 위탁이 필요한 거예요. 전적 위탁, 그러니까 다시오. 7번의 공격 앞에서 아말렉이 7번이 나오는데, 7번 손을 드는 거예요.
 
III. 셋째.-전적위탁.
 
-7번 손을 든다는 것은, 최선을 다한다는 최선을 다 한다는 것이에요. 힘들어서 이 지팡이를 내리고 이제 두세 번 하고, 끝내고 싶은데 아니에요. 영적 싸움을 혼자 하려고 하지 아니하고, 최선을 다하여 같이, 같이 있잖아요. 7번 손을 드는 거예요. 같이. 그러니까 모두가 다 여호수아는 밑에서 아말렉과의 실제 전쟁에서 싸우려고 여호수아는 아말렉을 위하여 전력투구(全力(鬪狗)하고 아론과 으른 아론과 홀은 모세의 손이 내려오지 않도록 전력투구하고 모세는 모세 나름대로 손을 계속 들고 있도록 그리고 손을 들고 기도하는데 기도만 했겠어요.
 
그 당시의 기도가 찬양 기도가 아니었겠어요. 그래서 전력도 모두가 다 자기 맡은 소명을 가지고 전력 투구를 하고, 저는 요새 우리 교역자들 보고 그래요. 목표가 분명해야 한다. 모든 것들이 아주 클리어 해야 한다. 사랑의 교회, 예를 들어 2033-50 비전, 거기에 대해 클리어 해야 한다. 그런데 그게 클리어만 하면 안 된다. 그걸 신속하게 확실하게 진행해야 한다. 집행해야 한다. 오늘 여러분들이 하나님 여러분들에게 주신 사명과 목표가 있어요. 영적 전쟁의 목표가 있어요. 그 목표만 있으면 안 되는 거에요. 그걸 신속하게 디사이시브(Decisive)가 결단하고 신속하게 분명하게 집행을 해야 되는 것이에요. 그것이 전력투구하는 것이 제가 토비새는 제가 이렇게 제 마음을 조금 뜨겁게 표현해도 되죠. 점잖하게 할까요? 속에 있는 거 그대로 다시요. 우리의 사역 이 한 해 동안 우리의 사역의 목표가 뭐예요? 그 클리어 한 것만큼, 우리가 그것을 확실하게 신속하게 전력 투구해가지고 집행을 해야 되는 것이에요.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결과 너무나 귀한 축복을 허락해 주셨어요. 어떻게 축복하셨어요? 모세가 15절에 15절부터 다시 14절부터 14절부터 또박또박 같이 읽겠습니다.
 
*출애굽기 17:14-16,
1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고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라 내가 아말렉을 없이하여 천하에서 기억도 못 하게 하리라.
15 모세가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 하고.
16 이르되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말렉과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셨다 하였더라.
-그리고 이걸 기록하고 기념하고 귀에 외워 들리고 전승하라. 다시오. 어떤 분들은 지팡이에 왜 드느냐 그럼 왜 그러냐? 그게 뭐 그런 분도 있지만 그것도 내가 이해해요. 그렇지만 이것이 뭐냐 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승리하게 하신 기념비에요. 이것이 기념이에요. 이것이 이걸 외워 들리게 하라고, 이걸 다시 어떻게 하라고요? 외워 들리게 하라. 다음 세대에 전수를 하라고, 그래서 모세가 재단을 잡고 15절에 모세가 재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뭐예요? 여호와 닛시, 라는 말은 뭐예요?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뭘 주신다고요? 승리를 주셨다고 여호와이심. 그리고 16절 “이르되 여호와께 맹세하여 이르기를 모세가 손을 들고 여호와께 이르시되, 손을 들고 나니 그가 이르되 빠져서 여호와께서 모세가 손을 들고 이르되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말렉과 더불어 제대로 싸우리라 하셨다 하였더라.” 그러니까 승리의 깃발을 든 거예요. 승리의 깃발의 기념을 한 것이에요. 여호와 닛시의 깃발을 기념한 것이에요.
 
오늘 이 새벽에 오신 여러분들,
우리의 생애 동안 수없는 수많은 전쟁이 있지만 모두가 다 여호와 닛시의 깃발을 드는 그야말로 그것이 다음 세대에 전승될 수 있을 정도의 축복이 여러분과 저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기념하는 깃발이었어요. 하나님의 다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기념하는 뭐라고요? 깃발에서 그러니까 출애굽기 오늘 17장 14절 16절에서 모세는 하나님을 여호와이시다. 영원이시다. 여호와는 나의 승리시다. 정도가 아니라 정확히 뭐라 여호와는 나의 깃발이시다. 그 말이에요 여호와 닛시가 뭐라고요? 여호와는 나의 뭐라고요? 깃발이시다. 정확한 의미는 여호와는 나의 다시 뭐라고요? 깃발이시다. 아말렉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게 해 주시는 여호와가 나의 깃발이 되게 해주신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아말렉의 위협을 없애 주시겠다. 약속하셨고, 여호와 닛시, 여호와는 나의 승리요. 나의 깃발이 되신 하나님은 우리의 영적인 원수를, 결국은 영원히 물리쳐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모세는 여호와께서 어떻게 승리하셨는지를 기념하는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여호와 깃발, 여호와는 나의 깃발이라는 니시의 기념비를 세웠어요.
 
여러분,
깃발이 뭡니까? 모세는 전쟁에서 이기기 위하여 지팡이를 높이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여호와 닛시의 상징을 보여준 것이에요. 그러니까 이 기도의 지팡이는 여호와 닛시의 기념비인 줄로 믿습니다. 이거예요. 고대 근동사회에서 깃발은 높은 원형대 위에 조각이나 금속으로 된 상징이 달려 그 깃발에는 조각도 달려 있고 금속도 달려 있고 이 상징은 전사들이 싸우는 국가나 어떤 전쟁하는 지도력을 상징하고 있었어요. 그리고 이 깃발은 전투에 앞서 들고 나가거나 주변에 가장 높은 언덕에 설치해가지고 그 깃발을 보고 거기에 집결할 수 있도록 그래서 옛날에 우리 큰 전쟁을 나고 이렇게 할 때에 깃발 부대가 앞에 나가잖아요. 그 깃발을 보고, 그 깃발을 가지고, 그 전쟁의 상황을 구별할 수 있잖아요. 이순신 장군이 깃발을 갖고 이렇게 서로 뭡니까? 배들끼리, 서로 연결하고 서로 이렇게 신호를 보내고 그랬잖아요? 무슨 말이냐, 여호수아와 그의 백성들이 여호수아와 그의 부하들과 백성들이 그 계곡에서 바닥에서 싸울 때, 고개를 들어 지팡이를 높이 들고 서 있는 모세를 볼 수 있었어요. 그 모세가 지팡이를 높이 들은 그것이 여호와의 깃발이었어요. 높이 들고 모세가 손을 높이 들고, 모세의 지팡이를 높이 들고 딱 들고 서 있는 걸 밑에 전쟁하면서 계곡에서 볼 때에 승리하는 것이에요. 그게 내려와 있으면 치고 있는 것이 이 한 해 동안 시간 시간마다 여호와 닛시, 여호와는 나의 깃발이라는 이 상징적으로 선포되는 이 기도의 지팡이를 높이 들고 우리가 서 있을 때 우리 주위에 있는 우리 가족들과 자녀들과 이 시대가 이 깃발을 볼 때 승리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신속하게...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위해 싸우시는데 어떻게 이스라엘이 질 수가 있겠습니까? 여호와이시의 깃발을 들고 서서 기도하는데 어떻게 우리가 기도를 실패할 수가 있겠습니까? 다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싸우시는데 어떻게 이스라엘이 실패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여러분들과 저는 이 시대의 믿음의 행진을 하는 수많은 한국교회 앞에 여호와 닛시의 깃발을 들고 앞장서서 나가는 하나님의 신실한 팀웍과, 팀들과 종들이 되기를 바라는 겁니다.
 
어제 숭실대학 졸업을 하는데, 제가 어제 졸업식을 가는데, 작년에는 행진을 하는데 이제 졸업식 시작하기 전에 쭉~ 총장 단 교수단들 그다음에 쭉~ 이제 쭉 행진하고 이제 한경직 기념관으로 들어가는데, 그냥 걸어 들어가는데, 내가 너 깃발 들어라 그래서 학군단 다 깃발 들고 그래라. 그것부터 너 홀을 하나 들어라. 홀 있잖아요? 유다의 홀처럼 하나 들어라. 올해 졸업식에 뭐가 제일 감동 있는 날 홀 들고 깃발 들고 나와 그거 본 게 제일 감동됐다고 하나하나 졸업식 하기 전에 하나 행진하는 것도 그런 의미가 있을 터인데,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너무 중요한 것은 이걸 들고 여호와의 산에 서는 것이에요. 그래서 오늘 이 토비새의 이 자리가 여호와의 산이 되는 줄로 믿어야 되는 것이에요.
 
여러분들이 들고 있으면 전쟁에서 승리할 수가 있습니다. 다시 한 번 하나님이 한국교회를 위하여 싸우신다는 증거가 되는 것이에요. 하나님이 한국 교회를 싸우시는데 우리가 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요즘, 요즘 제가 무슨 시리즈 설교하죠? “예수님은 누구신가” 시리즈,,. 사실 제가 지금부터 드리는 이 말씀을 가지고도 한 설교를 할 수 있는데, 제가 이거 뭐 다 할 수는 없으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래도 원망하고, 또 실패하고, 또 실패하고, 계속 그냥, 그냥 원망과 불평이 그냥 완전히 뭡니까? 일상화가 돼가지고 그러니까 그 원망과 불평하는 사람들을 하나님이 그 약속의 땅 가나안에 데리고 들어갈 수가 없는 것이에요. 그래서 원망과 불평의 극치에 있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민수기 21장에 나오는데 이런 사람들이 이런 사람들에게 나중에 이것들은 안 되겠다 처리를 해야 되겠다 그래갖고 어떻게 했습니까? 불 뱀을 내려가지고 사람들이 죽는 거예요. 수많은 사람은 죽었어요. 불 뱀에 시달리고 그러니까 여러분 그 원망과 불평을 가지고 가난에 들어갈 수 없으니까, 하나님께서는 순자하게 만들어 가지고 들어가야 되는데 보니까 안 되는 거야 그 불 뱀으로 처리를 하는데 나중에 가나안 땅에 들어간 그 세대야말로 이스라엘의 유일한 순종의 세대인 줄 믿습니다. 이거 다 지나가고 나니까 민수기 21장에 21장 7절에 보니까,
 
* 민수기 21:7,
7 백성이 모세에게 이르러 말하되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함으로 범죄 하였사오니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매.
-아멘 원망함으로 말미암아 뭐가 내렸다고요? 불 뱀이 와가지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 수많은 사람이 죽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제 드디어 정신을 차리고 어떻게 좀 어떻게 좀 해결해 달라고 그러니까 모세가 간절히 기도하니까, 하나님이 모세에게 뭐라고 했습니까? 청동으로 만든 장대를 만들어가지고 거기에다 청동 뱀을 꼭대기에 깃발처럼 올리고, 그 청동 뱀을 바라보면 살고, 상처가 났고, 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 청동 뱀이 뭐냐, 그럼 똑같은 뱀인데 창세기에서 아담은 그 뱀 때문에 유혹당해가지고 실패하고, 불순종하고, 이 땅에 죄가 관정하게 되고,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마는 또 광야 길 가운데 불평하고 원망하여 불평 때문에 다 죽게 되었습니다마는 그 뱀을 청동 뱀을 만들어가지고, 그래서 구약의 이 뱀이 누구를 예표 한다고요? 청동 뱀(예수님 예표)은, 예수님을 예표 한다. 제 얘기가 아니고 헷갈리는 니고데모 구원의 관한 것이 헷갈리는 니고데모에게 요한복음 3장 14절에,
 
* 요한복음 3:14,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예수님이 이 비유를 말씀 안 하셨으면 이 말씀 안 하셨으면, 우리가 이해가 안 되겠습니다마는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뭡니까? 들려야 돼요. 이 기묘한 이 참 독특한 상징은 뭘 의미하겠습니까? 물론 뱀은 창세기에서 하와가 뱀을 유혹받고 아담과 함께 그 유혹에 굴복하고 에덴동산 그런 상황을 우리가 떠올리잖아요. 그리고 구약에서 원시 복음을 통하여 하와에게 뭐라고 말씀합니까? 언젠가 자신의 후손 중 한 명, 여자의 후손 중 한 명이 베인 사탄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약속을 받아요. 그런데 민수기에 나오는 이스라엘을 무는 뱀은 하와의 죄로 인해서 시시각각 죽어가는 존재가 되었고, 드디어 고린도후서 5장 21절 뭐라고 나와 있느냐면,
 
*고린도후서 5:21,
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아멘 하나님의 의가 되더라고요. 그러니까 말씀처럼 깃발의 뱀은 예수님이 된 거예요. 그리고 모든 죄는 예수님 안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게 된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이 뱀에 물린 우리 모두의 구원을 주시기 위하여 우리가 그 주님을 청동에 있는 그 뱀을 바라볼 때, 그 뱀을 취하셔가지고 바라볼 때 구원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인 줄로 믿습니다. 이거 얼마나 놀라운 예 표현인지 몰라요. 그래서 이런 깊이를 가지고 우리가 이 기도의 지팡이를 들 때마다, 하나님 원망과 불평으로 다죽어가는 이 세상을 주님이, 여호와 닛시의 깃발이 은혜를 주셔가지고 우리가 승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이제 마지막 성경 구절 하나 하겠습니다. 잘 아시는 말씀 요한복음 16장 33절 시작
 
*요한복음 16:33,
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할렐루야! 아말렉 때문에 수많은 공격을 당하고 고통을 당하더라도 너희는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 예수님이 세상을 이기는 한 우리는 걱정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기지 못할, 예수님이 이기지 못할 이 시대에 아말렉은 없는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과 저의 수많은 기도의 제목이 있어도 하나님께서 이런 여호와 닛시의 깃발을 들고, 우리가 주님 앞에 나아갈 때 우리가 승리하지 못할 것은 없는 줄로 믿어야만 하는 것이에요. 이것이 신앙이고 이것 때문에 우리는 7천 기도의 용사가 돼가지고 기도의 지팡이를 들게 되는 겁니다.
 
제가 본 책 중에 에릭폴리라는 [믿음의 세대들] 이라는 책을 쓴 그 내용 안에 이런 게 있어요. 목숨 걸고 신앙을 지키는 북한 지하교회 성도들, 북한 지하교회 성도들은 지금 주님 핍박에서 나를 건져 달라. 그 정도 기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 핍박이 오더라도 핍박 속에서 우리의 믿음을 지키게 해 주옵소서. 그래요. 오히려 그들은 한국교회 성도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한국교회 성도들의 거룩한 부흥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는 그런 북한 지하교회 성도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볼 때 북한 지하교회 성도들은 그 어려움 가운데 여호와 닛시의 깃발을 들게 된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언젠가는 북한 지하교회 성도들을 만났을 때, 아마 우리 그들 때문에 한국교회가 또 한 번 영적으로 순전해지는 일이 일어난 줄로 믿습니다. 이렇게 지금 요즘 ‘건국 전쟁’이라 그래가지고 영화도 나오고, 막 그런 거 있었는데,, 제가 그 건국정신을 보고 하나를 내가 깨우친 것 중에 하나가 뭐냐 하면요. 팩트를 진실을 그러니까 진실에 입각한 팩트는 거짓이 이기지 못한다. 하나님이 우리나라에 기독교 입국과 신앙으로 우리나라를 세웠던 이승만 박사를 통하여 이승만 대통령을 통하여 하나님 일하시는데 이승만 대통령에게 그동안 막 회초리처럼 가해진 거짓과 그다음에 막 마타도 이 수많은 것들이, 그것이 거짓임을 우리가 알게 되고, 제가 워싱턴에 가서 이승만 대통령 얘기를 듣고 내가 깜짝 놀란 것이 있어요. 이승만 대통령은 그 당시에 우리 1945년부터 48년까지 3년 동안 우리나라가 군정에 있었어요. 미군 군정에 있어요. 북쪽은 소련 치아에, 소련의 신탁 통지였고, 남쪽은 미군 군정 아래에 있었어요. 하지 중장이라고 별 3개가 그 당시에 한국을 통치를 했어요. 근데 이승만 대통령이 파리로 건국하면서 이게 인수인계하고 그럴 때요. 하지 중장이 이승만 대통령에게 할아버지 아니 근데 꼼짝을 못했어요. 이 식민지 나라의 비참한 나라의 지도자라고 해봐야 아무것도 아닌데,,, 미국 중장과 믿음의 계엄군 사령관이 여기 군정 장관이 식민지 우습게 알죠. 그런데 이승만 대통령이 꼼짝도 못했어요. 왜 그런지 알아요? 내가 이번에 보니까 이승만 대통령의 관계가 어마어마했는데, 이승만 대통령은 학사학위를 조지 워싱턴에서 했고, 석사학위를 하버드대학교에서 했고, 그다음에 박사학위를 프린스턴에서 했어요. 그리고 프린스에서 박사학위를 할 때 자기 논문 지도 교수가 누구였느냐? 윌슨이라는 교수였어요. 근데 윌슨 논문지도 여러 논문 지도 교수가 친합니까? 안 친합니까? 논문 지도 교수가 안 친하면 박사학위 안 줍니다. 지도교수 잘못 만나면 공부하다가 다 떨어져 나가고 시간만 허비하고 그렇게 하는 거예요. 그런데 이승만 대통령이 프린스턴에서 박사를 받았습니까? 안 받았습니까? 받았어요. 그리고 그 가까운 논문 지도 교수 윌슨이 나중에 미국의 대통령이 됐어요. 그러니까 이승만이 갖고 있는 좋은 에서의 인맥은 어마어마한 네트워킹은 어마어마한 것이었어요. 그러니까 하지 중장 정도는 이거야. 전 세계에 그런 사람이 없어요. 그니까 어떻게 보면 처칠이나 스탈린 이런 것보다도 이승만 대통령이 훨씬 훌륭한 거에요. 이런 것도 모르고 뭘 모르고 엄한 소리 다 하고 있잖아요. 런승만이라고!?? 그러고 있잖아요. 우리는 이런 진리의 진실 된 팩트 위에서 기도의 깃발을 들고 승리하는 주의 종들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닛시는 승리이지만 여호와는 나의 뭐라고요? 깃발이다!! 깃발이다. 기도의 깃발을 들고 승리할 수 있도록 오늘 찬송가 주의 진리 위에 십자가 공기 하늘 높이 쳐들고 찬송가 358장 찬송가 다 펼치세요. 가사 하나하나가 너무너무 중요합니다. 우리가 몽골 제국의 용사들도 세계 최고의 제국을 하나님 없이, 해적들도 대형 제국을 이루는데, 토비새에 나와 가지고 기도의 깃발을 드는데,, 하나님 나라의 일을 위하여 영광스럽게 쓰임 받아야죠. 아멘
 
1절, 주의 진리 위에 십자가 공기 하늘로 비춰들 주의 군사 되어 옛날에는 쳐들고 라고 그러는데, 이번에 들고, 라고 하죠. 약하게 돼 있어요. 주의 군사 되어 영광스럽게 찬송하며 나아가세요.
2절, 원수들이 비록 강할지라도, 아말렉이 강할지라도 주의 군기 붙잡고 아마 오늘 제가 볼 때 출애굽기 17장 8절로 16절 이거 은혜 받고,이 작사자가 작곡자 한 것 같아요. 의 진리 위에 용기 다하여 분발하여 싸우세. 여호수아로 모세로 아론과 홀로 백성들로
3절, 산과 들과 바다 가는 곳마다 주의 군기를 날리며 여호와의 시의 군기를 날리며 반갑고도 기쁜 승리의 소식 온 세상에 전하세.
4절, 원수들은 이미 예수의 손에 한없이 패하고 할렐루야 주님이 승리하신 요한복음시장에서 주님이 이미 승리하신 거예요. 주의 군기만이 영광스럽게 온 누리에 날리네. 이거 바라볼 때 계곡에 있는 사람들이 전쟁 속에 다 승리한 줄로 믿습니다. 나가세, 나가세 주 예수만을 위하여 목숨까지도 바치고 싸움터로 나가세요. 아멘 오늘 제가 오늘 찬송이자 기도요, 말씀이자 기도요, 우리 고백이자 기도요, 깃발이자 승리요, 지팡이자 승리요 깃발이요. 아멘 그런 마음을 가지고 358장을 찬송하며 주님 앞에 깃발을 들고 찬양하겠습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자녀들이 여러분들이 토비스에 나와가지고 여호와 하씨의 깃발을 들고 서 있는 그 모습을 우리 아이들이 삶의 골짜기에서 보고 승리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 사랑의 교회가 여호와이시의 깃발을 들고 우뚝 서 있는 걸 보고 한국교회가 다 같이 승리할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 앞에 가고 주상복합, 주상복합 건물에 세 들어 살면서 주일 예배드리고 토비에 참석하고 이게 마지막 소원이야. 근데 우리는 맨날 하면서도 있잖아요. 기도 번호 받으면서도 아직까지 안 나오는 분들은 정신 바짝 차리고 이제 명단 호명하겠습니다. 저는 한다면 주님 앞에 한 다음에 하는 거예요. 이거 오늘 상품 준비했죠? 뭐 준비했어요? ‘온전론’ 줄 것입니다. 이제 호명할 때 나오세요. 492번 청년 이국의 이찬 형제 어디 계세요? 나오세요 나와 보세요. 내가 부른 이유가 뭐냐 빨리 나와보세요. 기도 지팡이 갖고 이 형제가 왜 불렀냐면, 여러분 이거 오늘 뉴스레터 1면을 좀 보세요. 시간 좀 같지만 잠깐 이거 그거 맞아요. 이게 ‘융프라우’야 거기다 이 형제가 기도의 지팡이를 갖고 꼽았어요.이걸 492번 축하합니다. 이제 내려가도 돼요. 그다음 651번 목양9팀의 이진숙 집사님, 어디 계세요? 부르면 한꺼번에 나오세요. 이분은 강원도 원주에서 계속 토비새에 참석하는 거예요. 근데 방패도 목사 안 나와 내가 끝까지 얘기할 거예요. 그다음에 3341번 대학 2부에 김민종 형제 매주 토요일마다 어머니와 함께 토비에 참석하고 대학부 리더이고 소년부 찬양팀 봉사하고 있습니다. 1647번 청년의 박효성 형제 두 달 전에 아버지가 지게차 짐에 깔리는 큰 사고를 당하셨어요. 그런데 기적과 같은 은혜로 수술이 잘 되고 빠르게 회복 가운데 있어요. 23년도 새생명 축제 때 장인어른이 처음 교회에 나오셨고, 2024년 2월 11일 지난 주일날 장로님까지 주일 교회에 모시고 왔어요. 그다음 4,454번 목양구팀에 김윤진 집사님, 조아현, 조유현, 조승현, 12살, 10살, 7살 삼남매와 함께 수원에서 토비새를 계속 참석하고 있어요. 몇 분들도 못 알아들었어요. 다시 얘기할까요? 수원에서 3남매를 들어 토비새에 참석합니다. 그리고 3남매는 우리 성경고사 전국대회에 출전하여 모두 우수상을 수상했어요. 다 나오세요. 7천 기도 용사로 임명받은 걸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다음 주일날 우리 7천, 7천기도 용사 다 잘해가지고 오늘 이 영적 영적인 기백과 능력을 가지고 시대를 섬기는 주의 종들 되기를 바랍니다. 4월 10일 총선도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이 기백 갖고 기도하면, 사막의 거지도 몽골 제국이 되고, 해적도 대영 제국으로 이루는데 우리가 뭘 못하겠어요? 진짜 장로님들 아멘 우리 모두가 다 아멘!!!. 예 감사합니다.
 
※공고.
첫 번째 다음 주일은 계속해서 우리 칠천기도 용사 개강하면서 진행하고, 3학기 평신도 훈련이 내일부터 개강됩니다. 그리고 이번 주 수요일은 2024년도 평신도 훈련 개강 및 사랑 그룹을 아카데미 입학 감사예배를 동시에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수요일은 참 의회가 많을 겁니다. 그다음에 이번 주 화요일날 오후 7시에 언약 체플에서 KCP, 코리안 크리스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창단 연주회가 있겠습니다. 그다음 오늘 오전 9시 반에 사랑의 교회 창립 45주년 기념 ‘기독 미술 청년작가 공모전’ 수상 수상 작품 정비 있고 수상식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기독교 예술가 또 미술에 관심 있는 분들은 같이 오셔서 축하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예수 믿는 거는 정말 복되고 행복한 것입니다. 아멘! 그런 마음으로 주님 앞에 영광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요약
7번의 아말렉을 7번의 기도의 능력을 가지고 이기게 하신 것처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이 일을 위하여 우리가 필요할 때마다 즉각 반응해서, 하나님 앞에 우리 모두가 다 모세의 역할, 여호수아의 역할, 아론과 훌의 역할, 백성들의 역할을 실질적으로 잘 감당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뚜렷한 목표와 함께 결정적으로 신속하게 이 일들을 진행하는 자로 실천하여 주님의 승리를 굳게 믿고 그 승리를 통하여 하나님 앞에 큰 영광 올려드리는 자로 살아가야 한다. 사랑의 교회 7천기도 용사의 기도의 지팡이가 여호와 닛시의 승리의 깃발이 됨을 믿고 우리가 승리를 소원하자. 모세가 즉각 반응하고 모세는 혼자 싸우지 않고 공동체와 함께 했듯이 모두가 다 전적위탁하여 승리를 했음을 확신하여 우리도 승리할 것을 믿고 기도의 현장에 나아가야 한다.
- 아말렉은 이스라엘이 싸웠던 족속들 가운데 최초의 족속이었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군을 인솔하였고, 모세는 지팡이를 들고 산꼭대기로 올라갔다. 모세가 손을 올리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이스라엘이 패했다. 그러다가 모세가 피곤하여 손을 내리자 아론과 훌이 양쪽 손을 받쳐 주어 그 손이 내려오지 않았다. 이리하여 이스라엘은 큰 승리를 거두었다. 인간이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결국 모든 것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우리가 범사에 하나님을 의뢰할 때 그 크신 능력을 덧입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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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금융 상식 퀴즈 O X] 2월 19일 (833)


1. 다음 중 미국 증시의 ‘매그니피센트 세븐(M7)’에 해당하지 않는 종목은?
① 애플 ② 테슬라
③ 엔비디아 ④ 넷플릭스

2. 정부가 수출입 쿼터제, 기술 표준 강화, 위생 검역 등을 활용해 자국에 유리한 무역 환경을 만드는 조치는?
① 관세장벽 ② 비관세장벽
③ 외부경제 ④ 지하경제

3. 불법 거래가 이뤄지는 시장을 OO마켓, 미국 증시가 대폭락한 1987년 10월 19일을 OO먼데이라고 한다. OO에 공통으로 들어갈 색상은?
① 레드 ② 블루 ③ 화이트 ④ 블랙

4. 경제학에서 실업률과 임금상승률 사이에 역의 상관관계가 있음을 나타내는 곡선은?
① 필립스곡선 ② 로렌츠곡선
③ 등생산량곡선 ④ 무차별곡선

5. 대량 생산하는 업체가 소량 생산하는 업체에 비해 이익을 내기 쉬운 이유를 설명하는 이론은?
① 승자의 저주 ② 부의 효과
③ 유동성의 함정 ④ 규모의 경제

6. 다음 중 경제 상황과 전망에 대한 기업 관계자들의 인식을 파악할 수 있는 지표는?
① DSR ② DTI
③ BSI ④ CSI

7. 회사 주인이 바뀌어 임원이 교체될 경우 거액의 퇴직금을 주게 하는 제도로, 적대적 인수합병(M&A)의 방어 장치 중 하나인 이것은?
① 황금낙하산 ② 그린메일
③ 포이즌필 ④ 백기사

8. 발행기관이 파산할 경우 다른 채권자 부채를 모두 청산한 다음 마지막으로 상환받을 수 있는 채권은?
① 특수채 ② 회사채
③ 국채 ④ 후순위채


[커버스토리]

국회의원 특권·특혜 얼마나 문제길래…

오는 4월 10일 실시하는 제22대 국회의원 선거가 51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총선은 민주주의의 축제이자, 대의민주제의 현주소를 점검하고 개선할 좋은 기회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당리당략을 앞세운 비례대표 선출 방식의 논의에 그치고 있는데요, 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최근 의원 정수를 현 300명에서 50명 줄이고 세비(일종의 연봉)도 국민 중위소득 수준으로 낮출 필요가 있다고는 했습니다.

국회의원이 누리는 특권과 특혜가 과도하다는 비판이 총선을 앞두고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국회의원들은 3년 전 ‘일하는 국회법’을 만들어놓고도 입법을 위한 의정활동보다 정치 싸움에 골몰해왔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청문회를 준비하기 위해 당의 원내대표가 전문가 100명을 직접 만나 공부했다는 미국 의회의 모습은 한국에선 상상하기 힘듭니다. 숙의가 아닌 힘(의원 수)으로 법안을 통과시키려는 행태, 그 과정의 각종 편법 동원과 몸싸움, 포퓰리즘적 성격의 졸속·과잉 입법 등이 한국 국회의 자화상으로 거의 굳어졌기 때문이죠. 이런 점에서 국회의원에 대한 현재의 지원은 과하기도 하고 정당성이 약합니다.

한국 국회의원이 어떤 특권과 특혜를 누리고 있는지, 왜 정당한 지원이 아닌지, 이런 문제가 쉽사리 해결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등을 4·5면에서 살펴봤습니다.

의원 신변 방패막이 된 불체포·면책특권
1인당 7억원 혈세 투입, 과연 정당할까요

국회의원은 입법권을 갖는 국회의 중추입니다. 그러면 국회의원이 원활하게 일할 수 있도록 여러 분야에서 지원하는 게 맞긴 합니다. 문제는 국회의원들이 ‘국민에 대한 봉사자’란 사실을 잊고 자신의 품위 유지만 신경 쓰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특권과 특혜가 과도하다는 점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너그러운 면책특권

국회사무처 조사에 따르면 국회의원의 법적 권한과 특혜는 60개가량 됩니다. 이 가운데 가장 논란이 큰 게 헌법이 보장한 ‘불체포특권’(제44조)과 ‘면책특권’(45조)입니다. 국회의원이 행정부를 견제하고 국정을 제대로 감시할 수 있도록 헌법은 “현행범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회기 중 국회의 동의 없이 체포 또는 구금되지 아니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원래 취지와 달리 정당한 사법 절차의 진행을 막고 국회의원 일신의 안위를 지키는 수단으로 변질되는 게 문제입니다. 같은 당 국회의원의 체포 등을 막기 위해 국회를 열어 ‘회기 중’ 상태로 만든 사례도 비일비재했습니다. 이른바 ‘방탄 국회’죠. 하지만 영국에선 형사 문제의 경우 불체포특권을 인정하지 않고, 미국도 형사 문제로 체포되거나 기소될 경우 이런 특권에서 제외합니다.

국회에서 직무상 행한 발언과 표결에 관해 국회 밖에서 책임을 지지 않는 면책특권은 정치적 목적의 가짜 뉴스 생산과 유포의 보호막으로 작용한 경우도 많아요. 윤석열 대통령 등이 심야에 서울 강남에서 술자리를 했다는 가짜 뉴스를 퍼트리고도 면책특권을 적용받은 게 대표적입니다. 하지만 미국은 심의나 표결과 직접 연계된 의회 내 행위에만 면책특권을 인정해주고, 독일에선 근거 없는 모욕으로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할 경우 면책특권을 적용하지 않습니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헌법 제11조가 무색할 지경이죠.

다음으로 지목받는 특혜는 국민소득보다 월등히 많은 보수 등 경제적 혜택입니다. 올해 국회의원의 연봉(세비)는 1억5700만 원으로, 1인당 국민총소득(2022년 4249만 원)보다 3.7배 많아요. 여기에 연봉의 30% 정도가 비과세 적용을 받아 세금은 훨씬 적게 냅니다. 미국이나 영국, 독일 등 주요 선진국 의원 연봉은 자국 국민 1인당 소득의 1~2배에 그칩니다. 절대액으로도 영국(1억4645만 원)보다 많지요. 국민소득 대비 가히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보좌관·비서관 등 의원 한 사람이 둘 수 있는 보좌 인력은 9명이나 됩니다. 이들의 인건비까지 합하면 의원실 한 곳에 지원되는 국민 혈세가 연간 무려 7억 원에 이릅니다. 스웨덴의 경우 의원 2명이 비서 1명을 공유하는 것과 비교가 안 되지요. 또 국회 본회의가 열리는 시기에 해외 출장 등으로 자리를 비울 때도, 구속 등의 사유로 국회에 출석하지 않은 경우에도 세비는 꼬박꼬박 지급합니다. 왜 국회의원들은 ‘무노동 무임금’에서 제외하느냐는 지적이 나올 만합니다. 연봉 외에 의정 활동 지원비 명목으로 입법 및 정책 개발비, 차량 유류비와 유지비, 문자 발송비 등도 모두 합쳐 1억1200만 원가량 지급됩니다. 방문외교 등 명목의 해외 시찰도 연 2회 나갈 수 있지요.

국민에 군림하려 해선 곤란

민주주의 국가에서 어떻게 이런 특혜 덩어리가 유지될 수 있을까요? 일단 의회제도의 출발은 ‘대표제’입니다. 대표제 또는 대의제에 국민주권 원칙, 권력분립 원칙이 결합돼 의회민주주의가 발전했습니다. 그런데 대표제는 민주주의와는 좀 간극이 있어요. 국민주권을 대변하는 사람들이 의원이지만, 이들은 엘리트 의식을 가질 수 있고 자칫 국민 위에 군림하려 할 수 있습니다. 막강한 행정부를 감시하고 시민의 권리를 보호하라고 역할을 맡겼더니 입법권을 갖고 자기네 성곽을 높이 쌓은 셈입니다. 관료조직의 비대화를 갈파한 파킨슨 법칙이 국회에서도 작용한 걸까요? 일각에선 유능한 인재들이 국회에 들어와 독립적인 의정활동을 할 수 있도록, 결국엔 대의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 경제적 보상과 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폅니다. 그러나 한국 국회가 얼마나 고비용·저효율 문제를 안고 있는지 들여다본다면 그런 얘기는 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NIE 포인트
1. 헌법 제3장의 국회 관련 조항을 읽어보자.
2. 불체포특권과 면책특권이 만들어진 역사적 배경을 알아보자.
3. 대의민주주의의 형성 과정을 알아보고 문제점이 무엇인지 토론해보자.

행정·사법부 이상으로 활약하는 선진국 의회
한국 국회는 언제쯤 구태 벗어날 수 있을까

한국 국회의원들은 세계 최고 수준의 업무 지원을 받고도 양질의 결과물은 산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2017년 세계경제포럼(WEF) 보고서에 실린 설문조사가 하나의 예입니다. 세계 각국 경영인 1만4000명 대상 설문에서 한국의 ‘입법과정 효율성’은 전체 139개국 가운데 99위에 그쳤죠. ‘한국 기업은 일류, 정부는 이류, 정치는 삼류’라는 인식이 아직도 여전합니다.

의원 자신을 위한 입법 횡행

한국 국회의 자화상을 한번 볼까요? 국회 회기가 열리면 상임위원회가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을 불러 호통을 치고 군기 잡기 일쑤입니다. 국정감사 기간이 아님에도 치열한 글로벌 경쟁에 여념이 없는 CEO들을 소환하는 일명 ‘갑질 국회’의 모습입니다. 그러면서도 기업의 창의적 발전을 가로막는 ‘타다 금지법’ 같은 규제법을 양산하는 게 한국 국회입니다.

객관적 지표에서도 한국 국회와 국회의원들의 경쟁력은 많이 떨어집니다. 미국 의회는 2021년

한 해 본회의를 100회 연 데 반해, 한국 국회는 2022년 37회만 개회했어요. 상임위원회 회의 개최 건수도 같은 기간 336건으로, 미국 하원(1873건)의 6분의 1에 불과했습니다. 본회의 때 해외 출장 등으로 자리를 비운 국회의원들이 거의 5분의 1은 됩니다. 법은 만들었는데, 위헌 등 판정을 받은 경우도 지난 10년간 미국 17건, 독일 57건이었는데 반해 한국은 280건에 이르렀습니다.

하나 두드러진 부분은 의원 입법인데요, 현 21대 국회의 의원 입법은 작년 12월 초까지 2만2000건을 넘겼습니다. 반면 정부 입법은 953건으로, 의원 입법이 전체의 96%에 달했죠. 그러면 국회의원들이 열심히 입법 활동을 한 결과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1996년부터 법안 발의 건수가 의정활동 평가의 중요 요소가 된 때문일 뿐입니다. 법안 발의만 많이 하고 숙의는 깊이 하지 않으니 위헌 법률이 쏟아지는 겁니다. “사회가 필요로 하는 법이 아니라, 의원들을 위한 법 만들기가 국회를 지배한다”는 한탄이 나올 만합니다. 이러니 한국 국회를 두고 ‘고비용·저효율’의 표본이라 부르고, 막대한 경제적 지원과 신변 보장이 정당하지 않다는 겁니다.

‘미국 청문회의 힘’ 그 원천은?

선진 정치제도를 가진 나라들에서는 의회의 권위가 어디에서 나오고 의회가 무얼 해야 하는지 목격할 기회가 많아요. 지난달 31일 미국 연방 상원의 법제사법위원회는 소셜 네트워크상의 불법 성 착취, 집단 따돌림 등으로 자녀를 잃은 부모들을 방청객으로 참석시킨 가운데 ‘온라인 아동안전’을 주제로 청문회를 열었습니다.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를 비롯해 X, 틱톡 등 빅테크 기업 5곳의 CEO를 증인으로 불러 4시간 동안 묻고 또 물었습니다. 통상적으로는 기업 실무자를 소환하는데, 이번엔 기업이 제대로 된 안전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고 판단해 단단히 벼른 결과입니다. 4년 전 미국 하원의 반독점법 위반 청문회에선 민주당 의원들이 청문회 준비를 위해 1년 넘는 시간 동안 세계적 빅테크 회사들의 불공정 관행 자료 130만건을 수집해 화제를 모았죠. 더 거슬러 올라가면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을 하야하게 만든 1972년 워터게이트 사건의 진상 규명도 의회 청문회에서 8시간 동안 진행된 닉슨 최측근의 증언이 결정적이었습니다.

나라의 발전에 정치문화의 개선도 중요한 하나의 축이라면 한국 국회의 구태는 이제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현실은 큰 변화가 없어요. 더불어민주당은 2020년 총선 때 국회에 10% 이상 불출석한 의원의 세비 삭감을 공약했고 관련 법안까지 냈지만 흐지부지되고 말았습니다. 작년엔 불체포 특권 포기를 결의하고도 ‘검찰의 정당한 영장 청구에 대해서’란 조건을 붙여 사실상 약속을 저버렸죠. 이러니 의원 수와 세비를 축소해야 한다는 국민 여론이 각종 설문에서 60%가 넘게 나오는 겁니다.

“모든 국가는 자신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갖는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 한 나라는 그 나라 국민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갖게 된다는 거죠. 국민이 감시자 역할에 더욱 충실해야 합니다.

NIE 포인트
1. ‘고비용·저효율’ 한국 국회의 민낯을 기사를 통해 좀 더 확인해보자.
2. 의원입법이 왜 많은 문제를 낳는지 알아보자.
3. 정치문화 선진화를 위해 무엇을 고쳐나가야 할지 토론해보자.

장규호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daniel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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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저녁기도회(주후 2024년 02월 14일)
제목: "동행의 발견"
말씀: 출애굽기 33:6~11
찬양인도: 쉐키나

설교자: 백요셉 부목사님
ㅡㅡㅡㅡㅡ

*출애굽기 33:6~11,
6 이스라엘 자손이 호렙 산에서부터 그들의 장신구를 떼어 내니라.
7 모세가 항상 장막을 취하여 진 밖에 쳐서 진과 멀리 떠나게 하고 회막이라 이름하니 여호와를 앙모하는 자는 다 진 바깥 회막으로 나아가며.
8 모세가 회막으로 나아갈 때에는 백성이 다 일어나 자기 장막 문에 서서 모세가 회막에 들어가기까지 바라보며.
9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때에 구름 기둥이 내려 회막 문에 서며 여호와께서 모세와 말씀하시니.
10 모든 백성이 회막 문에 구름 기둥이 서 있는 것을 보고 다 일어나 각기 장막 문에 서서 예배하며.
11 사람이 자기의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 모세는 진으로 돌아오나 눈의 아들 젊은 수종자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아니하니라.
-----

▶할렐루야!!
오늘 수요 저녁 기도회에 오신 영 가족들을 주의 이름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오늘 주님만이 허락해 주실 수 있는 풍성한 은혜가 오늘 저희들에게 임하시길 간절히 소원합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저희들에게 주신 말씀은 출애굽기 33장 6절에서 11절의 말씀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저희들에게 주신 말씀은 출애굽기 33장 6절에서 11절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한 줄씩 교독하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신 말씀만이 저희들의 힘과 능력이 되심을 믿습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평생 기억에 남는 장면들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제게도 그런 장면들이 있는데요. 그 장면은 몇 가지를 소개하자면 먼저는 아버지의 눈물입니다. 저희 아버지는 저희 친할머니가 돌아가실 때에도 제게 눈물을 보이신 적이 없습니다. 근데 제가 홀로 미국의 유학길을 떠날 때 공항에서 아버지께서 안아주시면서 따뜻한 뜨거운 눈물을 흘리신 장면이 제 인생의 기억에 남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장면을 이야기하자면 저도 제 자녀가 있기 때문에 제 자녀가 태어난 날을 기억합니다. 2012년 6월 16일인데요. 그 자녀가 태어났을 때, 그 얼굴을 처음 보고 감격했던 순간이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근데 그 자녀가 딸인데 처음 대면했을 때 그 모습을 보면서 저희 아버지 얼굴이 이렇게 겹치는 경험을 해서 참 묘하다. 아니 딸인데 어떻게 아버지 얼굴이 있을까라는 묘한 감정을 느낀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딸은 자라나서 지금 머리만 긴 백요셉으로 자라는 그래서 제가 항상 주님 앞에 기도하는 기도의 제목은 주님 끝까지 지켜주시옵소서. 하나님 책임져 주시옵소서! 라고 기도하곤 합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에게도 평생 기억에 남는 장면들 그리고 추억들이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오늘의 본문 출애굽기 33장의 배경이 되는 32장에서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런 평생 기억에 남는 시간이 그런 사건을 갖게 됩니다. 그런 사건은 뭐냐면 노아의 홍수 이후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 땅에서 진멸하시겠다. 라고 말씀하신 사건입니다. 이 장면을 출애굽기 32장 10절에서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출애굽기 32:10,
10 그런즉 내가 하는 대로 두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를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
-하나님께서 이렇게 진노하시면서 진멸하시겠다. 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든 최초의 우상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을 한 이후에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난한 땅에 이르기까지 40년 동안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만나와 메추라기를 통해서 그들을 인도해 내어주십니다. 그런데 오늘의 본문 오늘의 본문 33장이지만 32장에 보면, 모세가 시내 산에 올라가 하나님 앞에 대면하여 십계명을 받는 이 장면이 나오고, 그 장면에서 모세가 더디 내려옴을 보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론 앞에 나아가 자신들의 신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을 합니다. 이에 아론이 이렇게 고백합니다. 금을 녹여 송아지를 만든 이후에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들의 신이라라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이 우상을 이 금송아지를 본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기 32장 6절에 이렇게 표현을 합니다.

*출애굽기 32:6,
6 이튿날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 번제를 드리며 화목제를 드리고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놀더라.
-이렇게 고백합니다. 이 말이 무슨 말이냐면 금송아지를 자신의 신이라고 생각하고 그 앞에서 예배하고 경배하고 뛰놀고 기뻐 춤췄다. 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든 최초의 우상이며 그것을 하나님이라고 불렀다. 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세상에는 딱 두 가지 종류의 신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내가 만든 신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나를 만든 신입니다. 이 세상에는 이 두 가지 신 밖에 없다. 라는 겁니다. 다시 말해 내가 만들어서 신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밖에 없다. 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버리고 내가 만든 신을 하나님이라고 모시고 경배하고 그 앞에서 뛰어놀았다. 라는 겁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 모습을 보시고 진노하시고 이들을 진멸하겠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상을 만든 이 날에도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신실하셨습니다. 그 날에도 구름 기둥으로 불기둥으로 만나와 외출하기로 하나님의 백성을 인도하시고 보호하시고 하나님과 동행하셨다. 라는 겁니다. 하지만 이 백성들은 그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그 은혜를 깨닫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여러분,
한번 그렇게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음 구름기둥, 불기둥 만나와 메추라기를 경험했을 때 어땠을까요? 아마 굉장히 감격스러웠을 겁니다. 굉장히 은혜로웠고 너무나도 행복했고 그 하나님의 은혜에 찬양과 경배를 돌렸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열흘이 지나고, 1년이 지나고 그 은혜가 익숙했을 때, 익숙해졌을 때에 이제는 슬슬 그 은혜가, 은혜가 아니라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이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보다는 익숙해졌기 때문에 내가 바라고 원하는 삶을 소망했을 것이라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욕망을 통해서 모세가 더딘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아론에게 나아가 나의 신, 내가 원하는 신, 내가 원하고 바라는 삶을 인도할 신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 라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도 한번 잘 생각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믿지 않았을까요? 저는 믿었다라고 생각합니다. 근데 잘못 믿은 겁니다.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믿어야 되지만, 내가 만든 그 우상을 신으로 생각하고 믿었다. 라는 겁니다. 근데 우리들의 삶 속에서도 내가 하나님을 믿고, 따르고, 바라고, 주님과 동행하지만, 그리고 열심을 내서 훈련도 받고 오늘 이 자리에도 수요 저녁 기도회로 나오지만 우리들의 열심과 우리들의 믿음이 누구를 향하고 있는지, 내가 만든 신을, 즉 내가 원하고 바라는 것을 인도해낼 신을 믿고 있는지, 아니면 나를 창조하신 그 하나님 아버지를 믿고 있는지 우리가 한번 돌아보기를 소원합니다. 간절히 바라고 소원하기는 내가 만든 신이 아니라 나를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를 믿고 따르는 저희 모두가 되길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진노와 진멸의 위기 속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유일한 이유는 모세의 중보기도 때문이었습니다. 출애굽기 32장 11절과 11절에서 14절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제가 대신 읽겠습니다.

*출애굽기 32:11-14,
11 모세가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구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어찌하여 그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에게 진노하시나이까.
12 어찌하여 애굽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가 자기의 백성을 산에서 죽이고 지면에서 진멸하려는 악한 의도로 인도해 내었다고 말하게 하시려 하나이까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이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
13 주의 종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그들을 위하여 주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의 자손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고 내가 허락한 이 온 땅을 너희의 자손에게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14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말씀하신 화를 그 백성에게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모세의 기도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하나님께 그런 기도를 한 겁니다. ‘하나님 큰 권능과 하나님의 큰 능력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해내셨는데, 하나님 여기서 이스라엘을 진멸하시면 애국 사람들이 말하기를, 하나님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 산에서 이 사람들을 억지로 끌어내서 악한 의도로 죽이시려고 하나님께서 출애굽을 시키셨다라고 하실 터인데, 하나님 그 진노를 그치셔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하나님 야곱에게 하셨던 그 약속을 지켜주시옵소서.’라고 기도했다. 라는 겁니다. 이 모세의 기도가 세상을 바꿨던 사람을 살린 역사적인 기도임을 여러분 기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
우리 주변에도 하나님의 진노로 죽어야 마땅한 죽을 수밖에 없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모세가 했던 기도처럼 자신의 유익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하나님의 그 은혜를 구하고 하나님 나라와 영광을 위해 그 주변 사람들을 위해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오늘의 기도를 들으실 줄 믿습니다. 그렇게 주변을 살리고 주변을 소생시킬 수 있는 기도의 용사들이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이렇게 하나님께서 모세의 기도로 하나님의 진노를 그치셨지만 조금은 이상한 표현을 33장 본문에서 말씀하시는데 저와 여러분을 같이 한번 읽겠습니다. 33절 1절에서 3절 말씀입니다.

*출애굽기 33:1-3,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백성과 함께 여기를 떠나서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네 자손에게 주기로 한 그 땅으로 올라가라
2 내가 사자를 너보다 앞서 보내어 가나안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을 쫓아내고
3 너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이르게 하려니와 나는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아니하리니 너희는 목이 곧은 백성인즉 내가 길에서 너희를 진멸할까 염려함이니라 하시니

사랑하는 여러분,
이 말이 무슨 말이냐면 하나님께서 진노를 그치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살려주시는데, 하나님께서 그들이 약속의 땅, 젖과 꿀이 흐르는 그 땅으로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시겠다. 라는 겁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사자를 보내셔서 그들을 방해하는 모든 대적들을 물리쳐 주시겠다. 라고 이야기하시는 겁니다. 내가 약속한 걸 지키겠다. 라고 말씀하시되 나는 너희와 함께 가지 않겠다. 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사랑 여러분,
이 말씀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읽으시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 말을 우리들의 삶 속에 한번 적용해 보자면 이런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약속하신 것들을 내가 이루어주겠다. 라는 겁니다. 네가 원하는 거, 바라는 거, 그동안 내가 약속하고 함께했던 그런 것들, 내가 이루어주겠다. 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사자를 통해서 방해하고 적대하는 것들 다 깨끗하게 물리쳐 주시겠다. 라는 겁니다. 하지만 나는 너와 함께 가지는 않겠다. 라는 겁니다. 여러분, 언뜻 보면 굉장히 멋진 표현일 수도 있습니다. 단 내가 만든 신을 섬길 때의 멋진 표현입니다. 무슨 말이냐면 내가 만든 신으로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는 목적의 수단으로 하나님을 믿는 삶을 산다면 이 말씀은 정말로 훌륭한 말씀입니다. 왜냐, 내가 그동안 이루고자 했던 거, 바라고자 했던 거, 소원했던 것을 하나님이 사자를 통해서 단번에 그 길을 평탄하게 해주시겠다는 약속을 해주시는데 어찌 좋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여기서 저희가 아까 서두에서도 계속 나눴던 부분처럼, 우리들의 믿음의 주체가 누구냐, 라는 질문을 하고 계시는 겁니다. 만약에 우리들의 믿음의 대상이 나를 창조하신 그 하나님이라면 하나님이 동행하지 않는 삶, 하나님이 없는 삶 아무리 성공하더라도 아무리 잘 되더라도 하나님이 없는 삶은 복된 삶이 아님을 우리가 기억하고 하나님께 나아가야 된다. 라는 겁니다. 소원하기는 하나님께서 이 질문에 우리들도 지혜롭고 복된 선택을 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소원합니다. 내 삶의 운전대를 단순히 내가 운전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계시고 지금도 나를 사랑하시며 나를 통해서 반드시 역사하실 그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는 선택을 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간절히 소원합니다. 그래서 오늘의 본문에서는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는 두 가지 방법을 알려주시고 계십니다. 첫 번째는 장신구를 떼어라.라는 겁니다. 출애굽기 33장 5절과 6절을 다시 한 번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I. 첫 번째는 장신구를 떼어라.

*출애굽기 33:5-6,
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라 너희는 목이 곧은 백성인즉 내가 한 순간이라도 너희 가운데에 이르면 너희를 진멸하리니 너희는 장신구를 떼어 내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 어떻게 할 것인지 정하겠노라 하셨음이라.
6 이스라엘 자손이 호렙 산에서부터 그들의 장신구를 떼어 내니라.
-아멘! 여러분, 장신구는 어떤 역할을 합니까? 여러분 장신구는 먼저 다른 사람들에게 나를 돋보이게 하고 나를 높아지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여러분, 내가 장신구를 착용했는데 여러분 다른 사람이 높아지거나 다른 사람이 돋보이는 경우를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여러분, 장신구는 내가 높아지고, 내가 돋보이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내의 연약함이 있거나 나의 부족함을 이 장신구로 커버하고 또 내가 어느 부분에서는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그래도 멀끔하고 높아지는 역할을 하게 되죠? 그리고 또 이 장신구는 어떤 역할을 합니까? 내 마음에 만족감을 주게 합니다. 무슨 말이냐면 그동안은 내가 다른 어떠한 것들에 두려움이 있거나, 내 자존감이 낮아진 상태에서 이 장신구를 통해서 내 자신에게 만족감을 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라는 겁니다.

여러분,
이러한 기능들을 볼 때에는 장신구는 굉장히 좋은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근데 하나님께서는 오늘 하나님과 동행하기 위해서 첫 번째 비결을 장신구를 떼어내라. 라고 말씀하셨다. 라는 겁니다. 근데 여러분 그거 아십니까? 하나님께서는 그런 도전을 하고 계시는 겁니다. 이제는 내가 갖고 있는 이 도구를 통해서 나를 높이고 나를 돋보이게 하고 나에게 만족을 주는 삶을 살았다. 라면 이제는 하나님 앞에 나의 장신구를 내려놓고 이제는 하나님께서 나를 높여주시는 삶, 이제는 하나님께서 나를 돋보게 해 주시는 삶, 이제는 하나님께서 나의 만족이 되어주시는 삶을 살기를 원하고 계신다. 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또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속에서 우리의 장신구가 무엇입니까? 여러분, 비본질적인 것들은 무엇입니까? 여러분 그게 성공입니까? 돈입니까? 가족입니까? 건강입니까? 우리들의 지식입니까? 아름다움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오늘 이 시간에 동일한 도전을 하고 계십니다. 너희들의 장신구는 무엇이니? 이제는 그 장신구를 내려놓고 ‘내가 너희들을 높이는 주체가 되어줄게. 내가 너희들을 돋보이게 하고 내 손에 붙들려 귀하게 사용해 줄게, 이제는 내가 너의 만족이 되어줄게, 내가 너의 힘이 되어줄게’ 라고 도전하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이 시간에 이 도전 앞에 우리들의 장신구를 떼어내어 주님과 동행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여러분 두 번째는 회막으로 나아가라입니다. 여러분 출애굽기 33장 7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II. 두 번째는 회막으로 나아가라.

*출애굽기 33:7,
7 모세가 항상 장막을 취하여 진 밖에 쳐서 진과 멀리 떠나게 하고 회막이라 이름하니 여호와를 앙모하는 자는 다 진 바깥 회막으로 나아가며.
-아멘! 여러분, 하나님과 동행하는 두 번째 비결은 회 막으로 나아가는 겁니다. 여러분, 이 회막의 위치가 굉장히 중요한데 오늘의 본문 33장 7절에는 이 회막을 치는 장소가 진 바깥에 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이냐면 세상과 분리하여 그리고 죄와 분리하여 회막을 치라고 명령하고 계시는 겁니다. 이 회막은 하나님과 만나는 곳입니다. 그래서 이 회막에서 세상과 분리하는 곳, 죄와 분리된 곳, 이곳에서 하나님과 만나자고 도전하고 계시는 겁니다. 여러분, 이 회막을 요즘 말로 하면 골방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저는 물론 이 골방이라고 내포된 의미는 비좁고 막혀 있는 그런 공간적인 의미도 있지만 저는 이 골방을 아까 얘기한 것처럼 세상과 단절되어 하나님과 독대하는 장소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제 훈련생들과 제자들에게 꼭 골방을 만들라고 골방을 사수하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나서 제가 이 골방에 대해서 물어봅니다. 혹시 고방을 정하셨어요? 라고 물어보면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이동하는 버스가 제 골방입니다. 이동하는 택시가 골방입니다. 지하철이 골방입니다. 운전하는 이 차 안이 제 골방이라’고 말을 합니다. 근데 제가 그런 생각을 합니다. 만약에 버스가 급정거해서 다른 사람의 가방으로 내 머리를 친다면 그게 골방이 될 수 있을까? 이동하는 지하철에서 사람들이 꽉꽉 차 있는데 내가 불편함을 느끼면서도 그곳이 정말 골방이 될 수 있을까? 내가 운전하고 있는데 갑자기 다른 차가 새치기를 해오거나 갑자기 급정거를 해서 차가 박을 것 같은 상황에 처해 있다면 그곳이 정말 골방이 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물론 여러분,
이동하면서 하나님 생각을 안 하시는 것보다는 하시는 게 낫지만 여러분, 골방은 하나님과 독대하는 곳 아까 전에 읽었던 본문처럼 회막은 짐과 바깥에 짐 바깥에 구분되어서 만든 장소, 이루는 장소, 하나님과 독대하는 장소라고 이야기한 것처럼 우리들의 삶에도 그런 장소가 있는지를 질문하고 또 도전 드리고 있습니다.

여러분, 혹시 연애를 해보셨습니까? 저만 해본 것 같은 것처럼 이런 반응은 저는 연애를 하고 결혼을 했겠죠. 여러분 연애를 하면은 그런 장소들이 생기지 않으십니까? 추억의 장소 그리고 그 장소에서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까? 그 장소에서 이런저런 대화도 나누고 사랑이 싹트고 사랑이 싹 트다가 결혼도 결심하고 프로 포즈도 하고 뭐 하여튼 그렇습니다. 여러분, 근데 꼭 저만 연애한 것처럼 이런 마음은 참 저는 연애하고 결혼했습니다. 여러분, 아주 까마득하신 분들은 회개하시고 연애의 감성을 다시

여러분,
골방, 하나님과의 골방, 여러분 제가 부탁드리는 이유는 그 장소에서 하나님과 울고, 불고, 정말 가슴을 찢으며 하나님 힘들어요! 하나님 아파요! 라고 눈물을 흘리셨던 그 장소가 있으시냐고 질문하는 겁니다. 여러분 너무 기쁘고 즐겁고 행복해서 그 장소에서 하나님께 찬양과 경배 드렸던 그 장소가 있으시냐는 겁니다. 그 장소에서 하나님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알고 싶어요.’ 라고 정말 부르짖으면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하나님 알려달라고 외쳤던 장소가 있으시냐는 겁니다. 그 장소에만 가면 그 사람이 생각나는 것처럼 그 장소에 가기만 하면 하나님과 함께했던 추억이 깃든 그런 골방이 있으시냐고 저는 질문 드리고 있는 겁니다. 여러분 그거 아십니까? 하나님의 역사와 하나님의 능력은 다른 곳이 아니라 여러분 골방에서 시작됨을 여러분 믿으시길 소원합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 하나님의 그 능력은 골방에서 무릎 꿇는 우리들의 무릎과 눈물로 하나님은 역사하신 줄을 여러분 믿으시길 소원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골방, 여러분 두 번째 하나님과 동행하는 비결은 골방, 회막으로 나아가라는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저는 오늘의 말씀을 마무리하며 여러분에게 도전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들의 인생을 살아가면서 신은 딱 두 종류 밖에 없는데 내가 믿고 있는 그 신은 내가 만든 신인지, 나를 창조하시고 만드신 신인지를 여러분 돌아보시길 소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동행하며 내 삶의 주체가 주님이셔야 되는데 과연 나와 하나님과의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나의 장신구가 무엇인지,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오늘 이 시간에 그 장신구를 떼어내라고 도전하고 계시는데, 내 마음 가운데 불편함이 있는 혹시 정말 하나님과 나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이것들을 하나님 내려놓습니다. 하나님 이 장신구를 내려놓고 하나님이 나의 힘과 능력이 되어 주시옵소서라고 고백하는 시간 또 우리들의 골방을 통해서 하나님 그런 추억의 장소를 통해 하나님과 동행하는 평생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라고 결단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소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들이 사는 이 땅의 삶을 보통 그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심을 받은 삶, 하나님께 보내심을 받은 삶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여러분들 이 보내심을 받은 삶의 목적은 단 한 개입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 하는 삶을 사는 겁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부르심에 언제 부르실지 다 알지 못하지만, 그냥 보편적으로 80년에서 100년을 살다가 보내신 분한테 다시 가는 겁니다. 여러분 다른 거 없습니다. 보내셨으니까 보내신 곳으로 다시 가는 게 저희들의 인생입니다. 근데 오늘 이 시간에 저는 권면하고 도전하기는 여러분, 세상의 그 풍요와 여러분 세상의 성공보다, 전능하신 하나님과 동행함을 선택하셔서 그 하나님과 함께 걸어가셔서 이곳에서 보내심을 받은 이 80년에서 100년의 시간을 충성 되이 하나님과 정말 하나님의 기쁨으로 살다가 주님의 나라와 영광을 위해서 쓰임 받다가 하나님께 다시 보내신 분에게 다시 돌아갔었을 때, 하나님께 착하고 충성된 종아, 그동안 수고 많이 했다! 라고 칭찬 들을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요약
하나님과 동행하며 수많은 산과 골짜기를 지날 때, 내가 만든 신의 형상을 믿고 따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 시간 회개의 영을 부어주심을 따라 나를 만드신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며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한다. 내가 맡는 신보다 나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따를 수 있는 평생 되어야 한다. 나의 장신구 떼어내고, 나의 골방에서 주의 은혜를 사모하며, 하나님을 부르짖고 주님을 찾는 자에게 베풀 만한 은혜를 더하여 주심을 확신해야 한다. 그리하여서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많은 이들에게 간증하는 평생 되어, 그렇게 인도하시고 그렇게 역사하실 주님을 기대하며 살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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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2024년 2월 11일)
제목: "생명나무 되신 예수님"-두 번째 강의
말씀: 창세기 2:8-9, 요한계시록 22:1-2
찬양인도: 쉐키나(오준석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대표기도: 이동선 부목사님(1부)
사회: 임병영 부목사님(1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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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세기 2:8-9,
8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9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요한계시록 22:1-2,
1 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2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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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귀한 명절 예배에 우리를 불러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찬양대가 오늘 오직 예수 너무 귀한 찬송 잘했는데 문제는 여러분들 다 까먹으셨어요. 찬송하면 끝나면 어떻게 합니까? 아멘!!!! 하고 박수입니다. 그런데 지금 지금 10분의 1도 안 하셨어요. 우리 오직 예수 주님밖에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자, 명절을 맞이해 가지고 앞에 이런 방패 상당히 아름다운 방패연을 만들어 놓았는데요. 하나는 은상가은(恩上加恩), 보이십니까? 들어오셔서 그냥 기도만 하고 열심히 하느라고 이거 은상가은 또 보이시죠? 이거 이 우리 ‘2033-50 비전’에 관해서, 또 부흥의 르네상스 사명에 관해서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어느 게 제일 좋습니까? 다 우리가 다 필요한데 하여튼 이 세 가지 은혜와 비전과 사명의 연주를 놓치지 않는 여러분과 제가 되기를 바랍니다. 저는 오늘 명절 예배를 당해서 좀 선물 하나 드리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우리 성도들에게 가장 좋은 선물이 될까 이 생각하다가, 오 목사는 오 목사의 사역 가운데 여러 어떤 뭘까 인생 설교라 할까, 인생 메시지랄까, 그런 게 뭘까 제가 기도하면서 보니까 목자의 심정이라든지, 복음을 즐거워한다든지, 뭐 여러 가지 있지만 그중에 하나가 오늘 제가 드리는 이 말씀 생명나무, 생명나무에 대한 이 메시지가 저에게 있어서는 저를 변화시키고, 저의 사역의 방향을 잡게 하는 데 있어서 큰 축복이 되었는데, 오늘 이 예배에 오시면 특별히 지방에서 혹시 서울을 이렇게 역 귀경 하셔가지고 가족들에게 오신 분들, 자녀들이나 가족들 손에 같이 오신 분들에게 오늘 명절 최고의 선물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더블 데이 시리즈 예수님은 누구신가 시리즈 두 번째 ‘생명나무 되신 예수님’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본문을 읽었는데 창세기 2장 8절 9절에 보면,

* 창세기 2:8-9,
8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9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에덴동산을 안에 두 나무를 주 하나를 뭘 주셨어요?
1. 생명나무를 주시고 또 하나는 뭘 주셨어요?
2.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두셨어요? 생명나무는 죄송합니다.
-영어를 써서
*트리오 라이프(Tree of life), 생명나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Tree of knowledge of good and evil), 이렇게 됩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소위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그러는데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그다음에 생명나무를 두세요.

그럼 먼저 우리가 질문 하나입니다. 왜 하나님은 동산 중앙에 선악을 하게 한 나무를 두시고 따먹지 말라고 그랬을까? 거기에 대한 복음적 변증은 제가 오늘 할 시간이 없어요. 우선 이 질문만 하겠어요. 왜 선악을 알게 한 나무를 두셨을까 그리고 그 나무를 두고 따먹지 말라고 그랬을까요?

◇“선악과는 피조물인 인간의 한계를 의미한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피조물인 인간의 한계를 의미합니다 -본네퍼 목사님-
-나중에 자막하면 좋겠는데 그러니까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인간이 넘지 말아야 하는 경계선을 말하는 거다. 그래서 오늘 첫 번째 주제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거룩한 경계선을 의미하는 것이다.

I.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거룩한 경계선을 알게 한다.

-이해가 됩니까? 이제 이해가 될 겁니다. 이게 무슨 뜻인가 하면, 아담과 하와가 이 선악을 알게 한 나무를 왜 따먹었을까? 하나님의 자리에 앉고 싶은 욕망 때문에 이 나무를 따먹고 범죄를 한 것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3장 5절에 보면, 뭐라고 나와 있냐면 너희가 이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을 봐라.

*창세기 3:5,
5 너희가 이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라.
-이게 사탄이 아담과 아담을 꼬시는 건데, 너희가 이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가지고 그다음 종류는 뭡니까? 하나님과 같이 되어 그다음에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라. 저는 어릴 때 이 성경을 읽으면서 이게 뭔가, 무슨 뜻인가? 선악을 아는 게 무슨 잘못인가? 우리가 일반적으로 선악을 이게 선이고 이게 악이다. 그걸 말하는 게 아니에요. 저 뜻은 뭐냐 하면 선악을 안다 하는 것은 뭐냐 하면, 하나님과 같이 대화하고 연결되어 가지고 하나님처럼 내가 판단하고 산다 그 말이에요. 그러니까 ‘선악의 기준’을 인간이 스스로 판단하겠다는 잘못이다. 그 말이에요.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약하다 이런 뜻이 아니고 선악의 기준을 인간이 스스로 판단한다. 그러니까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이 정하신 선악 기준을 따르지 않겠다. 그 하나님에 대한 도전이요 배신행위예요. 인간이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서 판단하겠다는 거다. 이거 그러니까 이 선악을 알게 한 나무의 실과를 따먹지 않고 승리한 대표적인 사람 중 하나가 요셉인데 요셉이 창세기 50장에 뭐라고 그랬어요? 내가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하겠나이까? 요셉이 만약에 복수하고 형들을 내치고 그랬으면 선악을 알게 나무를 먹게 따먹는 것이다. 그런 뜻이에요. 그러니까 성경은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먹은 이후에 그다음 3장 7절에 뭐라 하냐면, 이렇게 나와 있어요.

*창세기3:7,
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그들의 눈이 밝아졌다 그러니까 자기 스타일로 눈이 밝아져가지고 눈이 밝아져가지고 하나님처럼 판단한다. 이런 뜻이에요. 오늘 이 세상에 사람들의 마음속에 더 이상 하나님의 존재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고 자기 눈이 밝아졌다고 생각해가지고 자기의 판단만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이런 세상이 된 거예요. 하나님처럼 판단하면 그러니까, 더 이상 하나님의 존재가 없고 인간 자신만이 전부가 되는 세상이 되는 그것이 바로 뭐냐 하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선택해가지고 자기가 하나님처럼 판단하겠다. 그런 뜻이에요. 이해가 됩니까? 그러니까 첫 번째 선악을 나무는 거룩한 경계선을 넘으면 안 된다. 그런 뜻인데, 예를 들어서 지금 우리 하나님을 선악의 판단 주체로 인정하지 않고, 인간의 선악을 판단하는 주체가 되겠다. 이제 이런 뜻인데 지금 우리 한번 읽어봐요. 시작

▷하나님을 선악의 판단 주체로 인정하지 않고 인간이 선악을 판단하는 주체가 되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제가 이 메시지를 30~40년 전부터 이 메시지를 제가 참 기쁘고 감사한데, 점점 제가 이제 시대에 맞게 제가 이제 옷을 입는데요. 오늘 이 명절에 옷을 입는 거예요. 인간이 선악을 판단하는 주체가 되겠다. 예를 들어서 어떤 뜻입니까? 지금 AI 인공지능 시대 아닙니까? 사람들은 초 지능을 통하여 사람이 하나님 자리를 대신할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거예요. 챗 GPT도 마찬가지구요.

1)그러니까 엄청난 지식의 데이터와 상상을 초월하는 학습 능력을 통하여 하나님의 창조 영역을 대신하려고 하는 것이에요. 이것이야말로 하나님 없어도 잘 살 수 있다는 무신론적 감탄사라고 말할 수 있어요. 인간의 눈이 밝아진 모습이 이거는 인공지능의 관점에서,,,,
2)또 생명 생명의 관점에서 볼 때, 유전자 코드를 수정하고 조작하고 세포 복제로 생명을 만들고 유전자 변형을 통해서 원하는 생명을 만들 수 있다는 지금까지 인간이 신의 역할을 대신하겠다. 눈이 밝아진 것이고 인간이 스스로 선악을 판단하겠다 그런 뜻이죠. 수명 연장 마치 자동차에 낡은 부품을 교체해서 새 차의 성능을 가질 수 있듯이 인간의 낡은 장기도 교체하여 불로장생하면 좋겠다. 이런 것이ㅔ요. 그리고 가장 요즘 나타난 거 소수 소위 성소수자라는 걸 가지고 남자와 여자가 아닌 트랜스젠더에 제3의 성을 만들고, 그 밑바닥에는 창조 질서를 무너뜨리고 하나님의 자리에 앉으려는 소위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선택한 그런 결과가 나타난 것이에요. 피조물인 인간이 또 하나 더 중요한 거는 아주 극단적인 생태환경주의자들, 그런데 우리가 피조물인데 피조물인 인간이 지구의 생태적 보존과 보호를 넘어가지고 마치 창조자로서 지구의 자연계를 통제하려는 극단적인 환경론자들, 아주 심한 분들이 있잖아요. 막 그 모나르자 앞에다가 막 그냥 페인트칠을 해버리고, 우리나라도 그런 사람들이 있어요.
이게 전부 다 뭐냐 하면요. 선악을 알게 한 나무를 선택하는 이 컬츄롤 막스즘(cultural marxism)이라고 그래서 문화 막시즘을 내서 소위 안토니오 그람시, 여러분들 공부하는 분들 좀 알 터인데 이 모든 것들이 지금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선택하는 하나의 눈이 밝아진 현상이다 이 말이에요. 이해가 됩니까? 그러니까

그 결과 무슨 일이 벌어졌느냐 수치를 느끼게 된 거예요. 그 이전까지 아담은 벌었으나 수치를 느끼지 않았지만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지니까 선악 남을 선택하니까, 마치 다윗이 범죄하고 수치를 느끼듯이, 돌아온 탕자가 돌아오기 전에 그 허랑방탕하면서 나중에 비참하게 수치를 느끼듯이, 수치를 가져오고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선택한 결과에 가장 중요한 것은 뭐냐 하면 책임 전가예요. 남 탓으로 돌리는 거예요. 하나님의 말씀의 말씀을 어긴 이유를 남의 탓으로 돌리는 거예요. 아담은 하와 탓으로 하와는 뱀 탓으로 선악을 알게 된 나무의 결과는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거예요. 인간이 얼마나 얄팍한지 아담이 조금 전에는 그 자기 아내에 대해서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죄송합니다. 알랑방구 하다가,,, 죄송합니다. 그렇게 하다가 지금은 막 손가락질을 하는 거예요.

누구는 그런 얘기해요. 선악을 알게 한 남 탓을 너무 많이 하는 선악을 알게 한 나무가 성경에서 사라진 이유가 뭐냐 하면, 아담 이후에 우리가 남 탓하는 선악을 알게 한 나무를 너무 많이 따먹어가지고 지금 없어져버렸대요. 지금도 우리는 그 열매를 따먹고 있는 거예요. 생명나무의 열매를 따먹어야 되는데 선악을 앓은 나무 남 탓하는 열매를 계속 따먹고, 그러니까 여기서 내로남불이 시작된 것이에요. 그러니까 인간의 본성을 제일 잘 갈파한 칼막스가 칼막스는 공산주의, 목사의 아들이에요. 인간이, 인간이 스스로 하나님이 되어가지고 인간이 스스로 판단하는 그리고 그 결과 남 탓으로 돌리는 이 성향을 너무너무 잘 알아가지고 모든 공산주의자들 이 극단적인 사회주의자를 어떻게 합니까? 모든 것을 남 탓으로 여기는 거예요. 이 약점을 가지고 인민재판하고, 아이들도 심지어 부모 탓을 부모를 고발하고, 이 혈류가 남 탓을 하는 거 아니에요 혈류가 내 탓이라고 그래야지. 아주 그냥 아주 간고한 이 공산주의자들은 이 내로남불 남 탓에 아주 그냥 이게 선악을 알게 나무를 선택한 결과에 아주 그냥 가장 강력한 증거 중에 하나예요.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죄 성입니다. 이걸 좀 이걸 좀 읽어보세요. 이 악이 뭐예요? 악이라는 것은 세상 사람들은 이제 악에 대한 변명을 하고 있는데, 뭐냐 하면 이 세상의 악이란 인간이 지닌 유한함의 결과일 뿐이기 때문에 예를 들어서 내가 죄를 지은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속에 약점이 죄를 지었다. 또 내가 죄를 지은 건 내 속에 부족함 때문에 그러지 내가 아니다. 나와 나의 약점을 분리시키는 거예요. 나와 나의 부족함을 분리시키는 거예요. 나와 나의 잘못을 분리시키는 거예요. 그리고 그릇된 행동은 우리 속에 있는 상처 탓으로 돌리기도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죄를 남의 탓으로 돌리는 이 책임 전가가 무엇이든 간에 그 결과는 이상하고도 괴기스러운 유체이탈(遺體離脫) 화법이 생긴 거예요. 그래 내로남불, 교회 안에서 도요. 상처받았다는 분 많이 계시는데요. 상처 줬다는 분 아무도 없어요. 뻑하면 교회에서 상처 많이 받았다고 하죠? 그럼 그거 아니죠?

제가 존경하는 김준근 목사님은 아주 통찰력 있는 말씀을 하셨는데, “예수님은 악이 이렇게 무슨 남 탓 때문에 생긴 게 아니라, 우리의 마음속에부터 악이 나온다.” 고 말씀하셨잖아요. 그런데 이 세상의 사회학자는 악은 사회 속의 구조학 때문에 사회 속에 구조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이 사회가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에요. 그래서 도둑질하지 말라고 설교하기 전에 도둑질이 필요 없는 사회를 만들라고 주장하는 거예요. 심지어 기독교 신학자들조차도 여기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래서 사회에 이 죄, 이런 문제에 책임을 전가하는 거예요. 물론 아프리카 같은 하도 후진국 남미의 어려운 나라는 구조학이 있어요. 정보나 이런 것들이 너무 잘못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 일반 사람들이 발버둥을 쳐도 해결이 안 되는 그런 약점이 있어요. 그래서 제가 지금 아프리카를 얘기하는 게 아니라 강남을 얘기하는 거예요. 여기 지금 우리나라 사회에 지금 책임을 전가하는 입장에 책임을 전가하는 걸 선동하는 인간들이 너무 많아요. 내가 누구라고 말 안 했어요. 김모모, 김모모,,, 그럼 이 책임전가의 밑바닥에는 사탄의 치밀한 전략이 자리 잡고 있어요. 1부 예배 때는 뭐 얘기합시다? 2부 때는 안 할 거예요. 전부 책임 전가예요.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할 때마다 ‘지금 내 마음속에 사탄이 부추고 있구나!’ 이렇게 생각을 해야 되는 거예요. 여러분 이해가 되십니까? 책임 회피나 책임 전가는 인류 역사만큼 오래되었고 우리 속에 이미 고착화되고 만성화되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만일 오늘 이런 말씀을 듣고 여러분들이 책임 전가를 하고 싶은 그 순간에 책임을 전가하지 아니하고, 자신이 책임지려고 그러고 모든 책임은 내게 있다고 그러고 책임 회피의 오랜 역사를 딱 정리하면 올해는 여러분 앞에서 위대한 순간에 일어나기 시작하는 것이에요. 놀라운 신앙의 역사가 펼쳐지게 되는 것이에요. 여러분과 제가 책임 전가를 멈추게 된다면, 아 책임 전가의 그 오랜 역사가 지금 나한테서 끝장나는구나!!!. 그런 놀라운 생명의 역사가 다가오기 시작하는 것이에요.

여러분 잘 되는 집안과 잘 안 되는 집안을 보세요. 누가 도자기를 깨뜨렸다. 됐다 그러면 누가 깼냐 누가 그 자리에 왜 갖다 놓냐, 너는 머리가 바보냐 이런 식으로 비난하는 집안이 있고 야 내가 안 갔다. 잘못 갖다 놓아서 그렇대 내 잘못이다 그러고 말이지 서로 차이가 하나님 천국에 가는 지옥이에요. 그래서 우리 예수님은 남 탓하면서 예수님을 따르라고 말씀하신 적이 한 번도 없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신 거예요.

사랑의 교회 성도들과 한국교회 성도들은 절대로 책임전가, 내로남불의 역사가 반복되는 그런 일이 없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그러려면 책임 전가를 하지 않으려면 생명 생명의 능력이, 생명나무가 뭐냐 오늘 선악을 알기 위한 나무를 따먹지 말고, 다시 날리지 어브 굿 앤 이블(knowledge of good and evil)을 따먹지 말고, 츄리 어브 라이프(Tree of life), 생명나무를 선택하라는 거에요. 그럼 생명나무란 무엇인가?

생명나무란 무엇인가? 생명나무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와 정확하게 반대되는 나무입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하나님 없이 하나님을 떠나서 하나님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지혜와 지식으로 자기가 주인이 되어 가서 판단하고 사는 삶을 상징한다면, 생명나무는 반대로 하나님을 경위하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순종하고 하나님 말씀을 따라서 내 판단이 아니라 주님의 판단이 중심이 되는 것이에요. 한 번 더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II. 생명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생명나무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의지하고 순종하고 말씀을 따라서 살고 내 판단이 아니라 주님의 판단이 중심이 되는 것이다.
내 판단이 아니라 주님의 판단이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아멘 그래서 이 생명나무에 관해서 어거스틴이나 유케리우스 같은 교부는 뭐라고 얘기하느냐 “생명나무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그랬어요.
다시요. 생명나무는 누구를 예표 한다고요? 예수 그리스도를 피한다. 그러므로 생명나무는 하나님과 교제하고 아담 범죄하기 이전에 완벽했던 교재처럼 교제하고 하나님과 함께 기뻐하고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공급하신 인물과 같이 하고 그래서 생명나무는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고 빛 가운데 행하는 것, 영원한 구원을 상징하는 것이에요.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생명나무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빛 가운데 가하는 것, 영원한 구원, 영원한 생명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그래서 성경은 오늘 창세기 2장의 생명나무로 시작해가지고 마지막 창세기 제일 앞부분으로 시작해가지고 제일 마지막 요한계시록 몇 장까지 있어요? 22장까지 있어요. 요한계시록 제일 마지막에 생명나무로 끝이 나는 거예요. 그리고 그 사이를 연결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이세요. 그리고 생명나무 자체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기도 하지만 창세기와 계시록을 연결하는 것이 생명이신 예수님이신 줄 믿으셔야 되는 것이에요. 창세기 2장 에덴동산 중앙에 생명나무가 존재했고 요한계시록 이 12장에 생명나무로 마무리되는데 그 사이에 예수님이 생명 되는 거예요.

*요한복음 14“6,
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내가 길이요 진리요 뭐예요? 생명이니 그리고 이 생명의 역할을 예수님이 나무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 가능케 되어 있는데 그 나무가 바로 십자가 나무인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친히 십자가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신 것 때문에 생명나무의 역할을 하신 것이에요. 베드로전서 2장 24절을 같이 보겠습니다. 같이요.

*베드로전서 2:24,
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친히 나무에다 십자가의 나무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 죄에 대하여 죽는다는 말은 더 이상 선악을 알기 위한 나무를 따먹지 말고 생명의 참된 생명나무를 선택하고 살아라. 그런 뜻이에요. 아담의 타락, 선악을 알게 한 나무를 선택함으로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죄의 벽이 생겨가지고 영원한 생명의 길이 막혀버렸어요. 그런데 예수님의 십자가 나무에 생명의 역사를 일으킴으로 말미암아 다시 우리에게는 풍성한 생명을 체험하는 길이 열린 줄로 믿습니다. 따라서 생명나무는 영원한 생명 영생을 의미하는 것이에요. 우리 편에서 볼 때 예수님의 십자가 나무가 생명나무 역할을 한 줄로 믿습니다. 따라서 빌리그레함 목사님 뭐라고 말했냐?

*예수님께서 지신 영광의 십자가는 죄로 물든 죄인들의 마음을 씻으며 구원 받은 모든 자에게 생명나무가 된다 -빌리그래함-
-아멘 이해가 되십니까? 아담과 하와는 죄 때문에 쫓겨나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고, 화형 금을 든 천사가 생명나무로 가는 길을 막아버렸어요. 이제 막혀버렸어요. 범죄 때문에. 그런데 생명나무를 생명에 이르는 유일한 길, 생명나무를 다시 가는 유일한 길이 뭐냐 예수님의 십자가 나무를 통하여 생명의 길이 회복된 줄로 믿습니다 마치 포도나무에 가지가 붙여서 소생하듯이 다시요. 첫 번째 아담 선악을 알게 나무를 먹은 첫 번째 아담은 생명나무로 가는 길을 막아버렸지만 두 번째 아담이신 예수님을 통하여 십자가를 통하여 생명나무로 가는 길이 열린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더 깊이 들어가면 예수님이 생명이 되시고,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 예수 그리스도가 생명나무를 예표 하는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이제 이것이 흘러가지고 이제 군사 쪽으로 에스겔 47장에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되어가지고, 광 좌우에 모든 것이 다 메마르고 다 죽은 나무들인데, 그 예수 그리스도 성전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흐르는 생수를 통하여 그 물이 흘러감으로 말미암아 메마른 나무들이 열매를 맺고, 식용으로 사용하고, 잎사귀를 약용으로 사용하는 그 환상이 나오는 거예요. 그리고 그 환상이 오늘 요한계시록 22장 2절 오늘 여러분들 주보에도 나와 있지 않습니까? 여기 보면 22장 2절에 이렇게 나와 있죠. 같이 보겠습니다.

*요한계시록 22:2,
2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그 잎사귀가 만국을 치료하는 약이 되는 줄로 믿습니다. 이 만국을 치료한다는 것은 모든 제한을 뛰어넘는다는 말씀도 포함돼 있고, 여기는 모든 이방인들의 개정도 다 포함되어 있고, 또 만국을 소생한다는 것은 여러분 한 사람이 이 생명나무의 역사를 가질 때에 가정이 치유될 줄로 믿습니다. 사랑의 교회가 치유될 때 이 민족이 치유될 줄로 믿습니다. 이거야 대한민국 치유될 때 세계 선교가 마무리될 줄로 확신합니다. 이거예요. 그래서 생명나무 잎사귀가 생명나무 입사기의 약용과 치유의 은혜가 대한민국과 한반도를 넘실되기를 바라고 대한민국과 한반도의 생명나무 입사기의 약용 익을 통하여 세계가 치유되는 역사가 일어날 줄로 확신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우리가 ‘2033-50 비전’의 어떤 영적인 토대 중에 하나가 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우크라이나를 지난 주간 저는 어디 갔다 오면 갔다 온 얘기 바로 안 합니다. 안 하는데 오늘은 우리가 이 우크라이나는 나라를 제가 좀 살펴보았어요. 마치 우리와 쌍둥이 같은 나라예요. 날마다 그 러시아의 침공을 받고 고통당하고 2차 세계대전 이후에 500만 명 이상이 난민이 된, 그 유일하고 첫 번째 전쟁이 지금 지금 이 지금 이 우크라이나 전쟁이 되었어요. 지난 70년 가운데서 난민은 500만 명이 온갖 것이 파괴되었어요.

이번에 우크라이스 오신 목사님들 여러분들과 함께 제가 대화를 해보았는데 자기들이 그래요. 자기들의 목표는 대한민국처럼 회복되는 것이다. 대한민국처럼 이렇게 대한민국이 하나의 자기들의 어떤 표상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어떤 반도체의 부흥, 자동차 부흥, 또 조선소 부흥, 이게 목표가 아니고 대한민국 교회처럼 부흥되기를 원한다. 대한민국 교회처럼 부흥돼야 자기 나라도 새로워질 것이다. 이게 뭐예요? 그 우크라이나가 생명나무를 선택하게 되는 것이에요. 만국을 소상하는 은혜가 되는 줄로 믿습니다. 다시 한 번 에스겔이나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이 생명나무의 특징은 ‘치유와 회복’이고 이것은 모든 것을 모든 지역을 치유하고, 우리가 낙원에서도 이 생명나무의 그 축복을 먹을 수 있겠지만 이 땅에 사는 동안에도 예표로 그날이 성취될 것을 믿으며, 오 예표로 이 땅에서 이 은혜를 누리는 축복이 있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그래서 사도 요한은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완전한 생명과 치유의 관계를 회복할 것을 그리고 있어요. 요한계시록에도 나와 있죠? 아픔과 아픔이 없고 고통과 갈등과 눈물과 실망과 망가짐과 찢어짐과 모든 상처를 온전히 치유하신다는 것이에요. 그리고 이 땅에서 우리가 이 생명나무를 선택하게 되면, 그 놀라운 것을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 놀라운 것을 이 땅에서 체험하며 살아갈 수가 있다는 것이에요. 다시요. 아픔과 고통과 갈등과 눈물과 실망과 망가짐과 찢어짐, 모든 상처를 치유하는 예고편을 이 땅에서 맛보고 사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그러려면 이제 오늘 이 명절날 제가 이제 여러분들이 드리고 싶은 선물이 그거예요.

그럼 우리 와 아 우리 어떻게 살아야 되나(How should we live?)? 사랑을 알게 한 나무를 선택한다는 것은 경계선을 넘어선 것이다. 생명나무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 하는 것이다. 아담을 통하여 생명으로 가는 길이 다쳤지만, 십자가라는 나무를 통하여 생명의 길이 우리에게 회복된 것이다. 이걸 다 아는 사람들은 그 에스겔 47장에 나타나는 성전 대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생수를 통해서 치유와 변화가 있는데, 메마른 곳이 생수가 되고 생명나무가 되고, 온갖 것을 치워 이 땅에서도 이것을 예고편으로 맛볼 수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걸 어떻게 해야 되나 여러분과 저의 모든 앞으로 남은 인생을 쓰는 최고의 우선순위 프라이어티 넘버1이 뭐냐 하면요. 여러분과 저의 생명을 확장하는 일에 우리가 쓰임 받아야 되는 것이에요.

III. 순간순간 생명의 확장을 선택해야 한다.

-생명을 확장하지 않는 일에는 무덤덤해져야 돼요.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에 애를 쓰지 말고 내 인생의 생명을 확장하는 일에 목숨을 걸어야 되는 것이에요. 생명을 확장하며 확장을 선택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예를 들어서 남이 나에게 상처 주고 모욕하고 어떨 때는 뺨을 때릴지라도 생명나무를 선택한 사람은 그 상처와 모욕에 집중하지 않고 생명나무 대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그냥 견디고 참는 것이 용서하는 것이에요. 반면에 선악을 알게 한 나무를 선택한다는 것은 불순종하고 자기 판단과 자기 생각과 자기중심과 내로나무를 결정하기 때문에 모두가 억울하다고 생각하고 상대방에 대해서 불붙는 분노 때문에 어쩔 줄 몰라 이 사회가 지금 그렇잖아요. 책임 전가하고 무책임하고 권리만 주장하고, 한 술 더 떠서 복수하고 보복하고, 여러분들은 똑똑해가지고 늘 옳고 그른 걸 따지는 거예요. 그래서 텔레비 tv에 패널들 분들 보세요. 다 자기가 옳고 그른 걸 옳은 걸 주장하죠. 그러나 생명나무를 선택한 사람은 옳은 걸 선택한 사람인 게 아니라 생명을 선택하고 은총의 원리에 따라서 선택하는 것이에요.

옳고 그른 걸 선택한다면,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를 옳고 옳고 그르게 우리를 대우하셨던 우리는 벌써 다 죽었어요. 우리는 아무도 은혜받을 수 없는 존재예요.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우리를 은총의 원리로 우리를 대우한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내가 생명을 선택하게 됐다. 은총을 은혜로 선택하게 됐다. 생명나무를 선택하는 사람 오래 참고 기도하고, 우리를 대적하고 의롭게 하는 사람들을 그냥 주님께 맡겨버리면 원수가 없는 것을 주님께 맡겨버리는 것이에요. 상대방이 잘못했을 때도 맡길 때 우리 속에 억울하고 상처가 있죠. 그러나 하나님이 처리하실 것을 믿고, 세상의 가치관을 뛰어넘어야 되는 것이 아마 우리 이런 거 없었으면 우리도 다 힘들게 살았을 거예요. 아마 정말 겉으로 볼 때 이게 손해 같지만 사실은 영적으로 깊이 들어가면 손해가 아니에요. 왜냐하면 선악을 알기 위한 나무를 선택해가지고 책임을 전가하게 될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압니까? 그 순간 우리가 비난하고 비판하는 대상이 우리의 주인이 돼버리는 거예요. 생명나무를 선택하지 않으므로 책임을 전가하게 되면 뇌로 넘버 하게 되면 내가 싫어하는 그 대상이 계속 나를 얽어매고 내에게 생각나게 하고 내 사상을 다스리고 내 삶의 주인으로서 등장하기 시작하는 거예요. 이건 중요한 통찰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미워하고 비판할 때 우리는 착각합니다. 내가 그 사람에게 복수하고 내가 지금 잘하고 있다, 내가 응징하고 있다. 내 마음이 시원하다고 생각하지만, 여러분 삼족을 멸한 사람, 그 못된 인간을 삼족을 멸해보세요. 잠깐 시원할지 모르지만 여러분 그렇지 않아요.

내가 미워하고 복수하고 응징하는 게 아니라, 실상은 그 사람들이 오히려 그때부터 내가 미워하는 그 사람, 내가 비판하는 그 사람이 내 영혼의 주인 노릇을 하고 앉아 있는 거예요. 왜 내가 선악을 알게 한 나무를 선택해가지고 옳고 그 내가 판단해 내가 응징을 했기 때문에 거기에 대한 거기에 대한 결과 책임전가, 내로남불 수치의 어떤 그것이 내게 들어와 가지고 주인이 바뀌어져 버리는 거에요. 우리의 삶의 진정한 주인이 주님이 주인이 되셔야 되는데, 그 내가 비판하고 내가 진짜 복수하고 싶으면 그 사람들이 내 영혼의 주인 노릇을 하게 되는 겁니다. 우리는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거예요. 아멘입니까? 나에게 악하게 구는 사람, 그 상황이 나를 통제하도록 우리가 어리석게 해대면 안 되는 거예요. 비판과 분노가 우리의 주인이 되고 책임 전가가 주인 노릇하지 않도록 하나님 여러분들에게 지혜 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의 제가 이 땅에 살아가면서 우리가 인간의 몸을 믿고 이 땅에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다 고난과 고통을 당하게 됐어요. 예기치 않은 어려움을 다 당하게 됐어요. 그 그거 붙잡고 잘 잘 감당하는 것도 힘든 일인데, 이 땅에 살아가면서 고난 받고 고통 받는 것만도 안타까운 일인데, 나를 가해하고 나를 괴롭히고, 나를 상처 준 그 사람을 내 마음의 주인으로 모시고 날마다 묵상하면 되겠어요. 다시요. 몇 번 못 알아들어서 다 천천히 설명할게요. 내가 이 땅에 살아가면서 고난 받고 고통 받는 것도 안타까운 일인데, 나를 가해하고 나를 핍박한 그 사람을 주인으로 맞아들여가지고, 그 사람을 주님으로 맞아들여가지고 그 사람의 말대로 좌지우지되는 삶을 살면 그게 지혜로우냐 이 말이에요. 내가 희생당했다, 내가 섭섭하다 내가 상처받았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 가해자에 대한 미움과 원한 때문에 그 원한의 종이 되는 것이에요. 그 순간 우리는 선악을 알게 한 나무를 선택하고 마는 것입니다.

좀 더 깊이 들어가면 상대방의 비난이나 그들의 말에 따라 반응을 하다 보면 상대방에 의해서 조정되는 인생이 되는 거예요.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 나를 핍박하고 고통을 주고 한 그 사람들이 주인이 되는 것이 여러분과 저의 인생의 주인은 주님밖에 없지 사탄 마귀가 아닌 것이에요. 이것이 영적인 거룩한 비대칭 전략이에요. 여러분 일을 안 하면 아무런 문제가 안 생깁니다. 수많은 일을 하면 수많은 문제가 생겨요. 사랑의 교회도 이 교회를 건축하면서 수많은 우리가 난자를 맞이했어요. 일 안 하면 아무런 문제없어요. 그러나 일하다 보면 수많은 난제가 있어요. 그럴 때마다 생명나무를 선택하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그래서 이 시간 이 귀한 시간에 평생 나는 선악을 알게 한 나무를 선택하지 아니하고 생명나무를 선택하겠다. 결심을 하는 거에요. 그리고 생명나무를 선택한다는 말은 좀 추상적인 용어이기 때문에 좀 더 쉽게 말하면 생명이 확장되고 생명의 능력이 강화되고 생명의 역사가 풍성해지는 그것을 위하여 나는 선택하겠다. 예를 들어서 오늘 이 명절날 여러분들이 예배드리러 나오셨잖아요. 세상에 세상의 똑똑이들, 세상의 옳고 그름, 선악을 알기 위한 나무를 선택해 가지고 자기가 인생을 판단하고 사는 사람들은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은 이거 얼마나 어리석게 보입니까?

명절날 나오죠. 아침에 단장에 나오죠. 그다음에 수고하죠. 기도하죠. 정성을 다하죠. 심지어 여러분 땀과 눈물과 노력과 정성의 결정체 물질도 다 드리죠. 남들이 볼 때는 미친 거예요. 미쳤다면 이상하고 우리가 왜 이렇게 합니까? 영적으로 보이지 않는 세계인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은혜를 확장시키기 때문에,,, 여러분, 이 시간 와서 주님 앞에 기도하고 예배하고 주님 앞에 정성을 다하는 그 순간 내 영적 세계의 영광스러운 어마어마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아니라, 생명나무의 능력이 확장되기 시작하는 것이에요. 놀라운 일이 벌어지기 시작하는 것이 믿지 않는 사람들이 볼 때 우리가 헌신하고 봉사하고 땀과 눈물을 들이고 그들의 기준을 이해할 수 없어요. 겉으로 볼 때는 손해 같아요. 우리가 선악을 알게 나무를 선택하지 아니하고, 미움과 원망을 선택하지 아니하고, 복수하지 아니하고, 자기 죽음을 선언하고, 남 탓으로 돌며 주님을 따르지 아니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고 자기를 부인하고, 온전한 제자의 삶을 사는 이유가 뭡니까? 왜 남이 나를 어렵게 할 때 남들처럼 악착같이 따지지 않습니까?
왜 옳고 그른 시시비비(是是非非)를 명확하게 따지지 않습니까? 그것은 우리 생각에 우리가 영적으로 볼 때는요. 그거 따지고 그러는 순간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에 생명의 능력을 약화시키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에 영적 생명을 죽이기 때문에, 오늘날 도덕적 상대주의가 있고, 1부 때는 또 얘기할게요. 2 3부 때는 나으니까 제가 바쁜 와중에 건국 전쟁을 봤어요. 내가 그래서 기가 찬 거야 그거는 그러니까 온통 우리나라가 진실 중심이 아니라 프레임과 어떤 저기 뭡니까? 내로남불의 역사를 가지고 이 땅을 살아왔구나!! 한탄이 저기에 있는 거예요. ‘건국 전쟁’ 다 보러 가세요? 아시겠어요? 2 3부터는 얘기할까요? 안 할 거예요. 진실로 생명을 선택해야 돼요. 저는 지난 몇 년간 영화를 한 번도 안 갔어요. 근데 처음으로 몇 년 만에 처음으로 이 ‘건국 전쟁’을 갔어요. 근데 잠깐만요. 여러분 이게 이게요. 이게 생명의 역사이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생명의 역사를 진실에 관한 문제 왜 그런지는 가서 보면 알아요.

열 받을 일이 수두룩하고, 부도덕한 일이 수두룩하고, 사회적 이슈에 대해서 우리가 보아요. 이제 4월 12일 선거될 때까지 온갖 종류의, 온갖 종류의 정말 악한 마귀와 사탄의 충동전이 있을 거예요. 절대로 부화뇌동(附和雷同) 하면 안 돼요. 아시겠어요? 그 附和雷同이라고 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를 죽이기 때문에, 우리가 왜 중독을 피하고, 우리가 왜 도박을 하지 아니하고, 왜 우리가 아내 이외의 다른 여자에게 관심을 갖지 아니하고, 왜 우리가 교회 일도 어떨 때 내 마음에 안 들어도 세상 방법으로 하지 아니하고, 기도하고 참고 기다리는 이유가 뭡니까? 그것은 우리는 영적 세계를 사는 사람들이고, 영적 세계에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에 생명의 능력이 왔다 갔다 하기 때문에 그것이에요. 여러분 아무리 똑똑하고 아무리 옳고 그름을 잘 따져도 아무리 잘나도,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선택하는 사람의 결과는 죽음입니다.

실제로 따지고 싸우고 하는 그 순간 우리 안에 생명력이 죽는 것입니다. 그러나 생명나무를 선택하는 그 순간 그 결과는 성령 안에서의 자유 함이며, 내 영혼의 깊은 곳의 평안이요, 영원한 생명의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이제 정리를 하면 여러분 이제 오늘 이 명절날 이제 평생 결정을 해야 돼요. 내 남은 인생의 삶의 판단 기준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이게 옳으냐, 그르냐 그것도 필요 하지만 그건 우리가 알고는 있어야 되지만 옳으냐, 그르냐, 내 호불르냐, 아니냐, 내 스타일이냐, 아니냐, 내가 좋으냐, 아니냐, 내 이미지를 좋게 하느냐, 아니냐, 내가 높아지느냐, 낮아지느냐, 내게 유익이 있느냐, 없느냐, 여기에 기준을 두지 말고 모든 판단 기준을 생명의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 생명이 확장되느냐, 안 확장되느냐, 여기에서 결정해야 되는 것이에요. 우리 앞에는 선택이 펼쳐 우리 앞에 길이 있어요. 신명기 30장 19절을 다 같이 보겠습니다.

*신명기 30:19,
19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할렐루야! 우리 앞에는 뭐가 있습니까? 생명과 사망, 또 하나는 복과 저주! 그 두 길이 있는 거예요. 그럼 우리가 뭘 선택할까요? 우리는 생명을 선택해야 되는 것이에요. 우리가 살기 위하여 생명나무를 선택해야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여러분 앞으로 생명나무를 선택하는 사람은 생명과 관계된 것에 집중하느라고 생명과 관계없는 일에는 인생을 낭비하잖아요. 생명나무를 선택하면 생명이 아닌 것에 대해서는 좀 무덤덤해지는 거예요. 좀 무덤덤해지세요. 예민하지 마세요. 누가 나에게 어떻게 할지는 좀 무반응하고, 남들이 나에게 어떻게 생각하느냐, 너무 신경 쓰지 말고 내가 얘기하잖아요. 성형도 저기 뭡니까? 쌍꺼풀까지는 봐주지만 나머지는 그냥 신경 쓰지 마세요. 남들에게 상처받았다는 것 자체가 생명나무를 앞으로 선택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말하는 것이에요. 용서가 안 되어도 주님 때문에 용서하고, 기가 막힌 일이 있어도 주님 앞에 억울함을 올려드리고, 생명나무를 선택하면 문제보다 더 큰 혜를 주님이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아멘!!!! 그리고 남은 인생 이 생명나무 선택하시고 생명나무 열매를 배불리 먹고, 치유 받고 영적 건강을 유지하시고 이 생명의 확장을 선택하시고 결론 내리겠습니다.

*잠언 3:18,
18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나무라 지혜를 가진 자는 복되도다.
-할렐루야 솔로몬이요. 잠언 적었을 때는요. IQ가 천도 넘었어요. 영적인 지혜가 너무너무 똑똑했어요.
그의 최고의 절정에서 뭐라고 얘기하느냐 진짜 지혜가 뭐냐 생명나무가 지혜를 가진 자의 생명나무, 생명나무 지혜를 가진 자 무슨 말이냐 해석을 하면 지혜로운 사람은 오늘도 생명나무를 선택한다는 뜻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어떨 결에 가족들하고 오신 분들 가운데 여러분 생명나무 선택해 가지고 전에 한 번 제가 이런 비슷한 말씀을 한 번 드린 적 있는데 그분이 충격을 받고 아내 따라 왔다가 교회 우리 교회 오셔갖고, 예수님 믿고 제자 훈련하고 사역 훈련하고 지금 순장하고 있습니다. 그분의 이름을 대라 몇 명의 이름을 댈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생명나무 선택이 이 시대 여러분들의 삶에 영적인 마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마패는요 마패의 능력이 있어요. 겉모습이 초라해도 끄떡 안 해요. 나 무시해도 월매가 이몽룡이를 막 우습게 알고 막 그래도 이몽룡이는 끄덕도 안 했어요. 왜냐하면 허리에 뭐가 있으니까 마패가 있으니까 여러분 생명나무가 여러분 생애에 거룩한 마패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나의 이 되신 여호와여!!♪ ~~

♣요약
남 탓과 책임전가와 내로남불의 죄 된 성향을 끊어내고 자기 십자가를 질 때 위대한 생명의 역사가 시작되는 인생이 되는 것을 확신하여 생명나무로 가는 길을 주셨으니 복수는 주님께 맡기고 강력한 영적 마태의 능력을 주시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살아가야 한다. 주님의 은혜와 용서로 생명을 확장하며 만국을 치료하시는 예수님의 생명나무를 선택하면 평안이요, 영원한 생명의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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