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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2024년 2월 11일) 제목: "생명나무 되신 예수님"-두 번째 강의 말씀: 창세기 2:8-9, 요한계시록 22:1-2 찬양인도: 쉐키나(오준석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대표기도: 이동선 부목사님(1부) 사회: 임병영 부목사님(1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 * 창세기 2:8-9, 8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9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요한계시록 22:1-2, 1 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2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 ▶ 이 귀한 명절 예배에 우리를 불러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찬양대가 오늘 오직 예수 너무 귀한 찬송 잘했는데 문제는 여러분들 다 까먹으셨어요. 찬송하면 끝나면 어떻게 합니까? 아멘!!!! 하고 박수입니다. 그런데 지금 지금 10분의 1도 안 하셨어요. 우리 오직 예수 주님밖에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자, 명절을 맞이해 가지고 앞에 이런 방패 상당히 아름다운 방패연을 만들어 놓았는데요. 하나는 은상가은(恩上加恩), 보이십니까? 들어오셔서 그냥 기도만 하고 열심히 하느라고 이거 은상가은 또 보이시죠? 이거 이 우리 ‘2033-50 비전’에 관해서, 또 부흥의 르네상스 사명에 관해서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어느 게 제일 좋습니까? 다 우리가 다 필요한데 하여튼 이 세 가지 은혜와 비전과 사명의 연주를 놓치지 않는 여러분과 제가 되기를 바랍니다. 저는 오늘 명절 예배를 당해서 좀 선물 하나 드리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우리 성도들에게 가장 좋은 선물이 될까 이 생각하다가, 오 목사는 오 목사의 사역 가운데 여러 어떤 뭘까 인생 설교라 할까, 인생 메시지랄까, 그런 게 뭘까 제가 기도하면서 보니까 목자의 심정이라든지, 복음을 즐거워한다든지, 뭐 여러 가지 있지만 그중에 하나가 오늘 제가 드리는 이 말씀 생명나무, 생명나무에 대한 이 메시지가 저에게 있어서는 저를 변화시키고, 저의 사역의 방향을 잡게 하는 데 있어서 큰 축복이 되었는데, 오늘 이 예배에 오시면 특별히 지방에서 혹시 서울을 이렇게 역 귀경 하셔가지고 가족들에게 오신 분들, 자녀들이나 가족들 손에 같이 오신 분들에게 오늘 명절 최고의 선물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더블 데이 시리즈 예수님은 누구신가 시리즈 두 번째 ‘생명나무 되신 예수님’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본문을 읽었는데 창세기 2장 8절 9절에 보면, * 창세기 2:8-9, 8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9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에덴동산을 안에 두 나무를 주 하나를 뭘 주셨어요? 1. 생명나무를 주시고 또 하나는 뭘 주셨어요? 2.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두셨어요? 생명나무는 죄송합니다. -영어를 써서 *트리오 라이프(Tree of life), 생명나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Tree of knowledge of good and evil), 이렇게 됩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소위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그러는데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그다음에 생명나무를 두세요. 그럼 먼저 우리가 질문 하나입니다. 왜 하나님은 동산 중앙에 선악을 하게 한 나무를 두시고 따먹지 말라고 그랬을까? 거기에 대한 복음적 변증은 제가 오늘 할 시간이 없어요. 우선 이 질문만 하겠어요. 왜 선악을 알게 한 나무를 두셨을까 그리고 그 나무를 두고 따먹지 말라고 그랬을까요? ◇“선악과는 피조물인 인간의 한계를 의미한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피조물인 인간의 한계를 의미합니다 -본네퍼 목사님- -나중에 자막하면 좋겠는데 그러니까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인간이 넘지 말아야 하는 경계선을 말하는 거다. 그래서 오늘 첫 번째 주제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거룩한 경계선을 의미하는 것이다. I.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거룩한 경계선을 알게 한다. -이해가 됩니까? 이제 이해가 될 겁니다. 이게 무슨 뜻인가 하면, 아담과 하와가 이 선악을 알게 한 나무를 왜 따먹었을까? 하나님의 자리에 앉고 싶은 욕망 때문에 이 나무를 따먹고 범죄를 한 것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3장 5절에 보면, 뭐라고 나와 있냐면 너희가 이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을 봐라. *창세기 3:5, 5 너희가 이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라. -이게 사탄이 아담과 아담을 꼬시는 건데, 너희가 이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가지고 그다음 종류는 뭡니까? 하나님과 같이 되어 그다음에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라. 저는 어릴 때 이 성경을 읽으면서 이게 뭔가, 무슨 뜻인가? 선악을 아는 게 무슨 잘못인가? 우리가 일반적으로 선악을 이게 선이고 이게 악이다. 그걸 말하는 게 아니에요. 저 뜻은 뭐냐 하면 선악을 안다 하는 것은 뭐냐 하면, 하나님과 같이 대화하고 연결되어 가지고 하나님처럼 내가 판단하고 산다 그 말이에요. 그러니까 ‘선악의 기준’을 인간이 스스로 판단하겠다는 잘못이다. 그 말이에요.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약하다 이런 뜻이 아니고 선악의 기준을 인간이 스스로 판단한다. 그러니까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이 정하신 선악 기준을 따르지 않겠다. 그 하나님에 대한 도전이요 배신행위예요. 인간이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서 판단하겠다는 거다. 이거 그러니까 이 선악을 알게 한 나무의 실과를 따먹지 않고 승리한 대표적인 사람 중 하나가 요셉인데 요셉이 창세기 50장에 뭐라고 그랬어요? 내가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하겠나이까? 요셉이 만약에 복수하고 형들을 내치고 그랬으면 선악을 알게 나무를 먹게 따먹는 것이다. 그런 뜻이에요. 그러니까 성경은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먹은 이후에 그다음 3장 7절에 뭐라 하냐면, 이렇게 나와 있어요. *창세기3:7, 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그들의 눈이 밝아졌다 그러니까 자기 스타일로 눈이 밝아져가지고 눈이 밝아져가지고 하나님처럼 판단한다. 이런 뜻이에요. 오늘 이 세상에 사람들의 마음속에 더 이상 하나님의 존재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고 자기 눈이 밝아졌다고 생각해가지고 자기의 판단만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이런 세상이 된 거예요. 하나님처럼 판단하면 그러니까, 더 이상 하나님의 존재가 없고 인간 자신만이 전부가 되는 세상이 되는 그것이 바로 뭐냐 하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선택해가지고 자기가 하나님처럼 판단하겠다. 그런 뜻이에요. 이해가 됩니까? 그러니까 첫 번째 선악을 나무는 거룩한 경계선을 넘으면 안 된다. 그런 뜻인데, 예를 들어서 지금 우리 하나님을 선악의 판단 주체로 인정하지 않고, 인간의 선악을 판단하는 주체가 되겠다. 이제 이런 뜻인데 지금 우리 한번 읽어봐요. 시작 ▷하나님을 선악의 판단 주체로 인정하지 않고 인간이 선악을 판단하는 주체가 되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제가 이 메시지를 30~40년 전부터 이 메시지를 제가 참 기쁘고 감사한데, 점점 제가 이제 시대에 맞게 제가 이제 옷을 입는데요. 오늘 이 명절에 옷을 입는 거예요. 인간이 선악을 판단하는 주체가 되겠다. 예를 들어서 어떤 뜻입니까? 지금 AI 인공지능 시대 아닙니까? 사람들은 초 지능을 통하여 사람이 하나님 자리를 대신할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거예요. 챗 GPT도 마찬가지구요. 1)그러니까 엄청난 지식의 데이터와 상상을 초월하는 학습 능력을 통하여 하나님의 창조 영역을 대신하려고 하는 것이에요. 이것이야말로 하나님 없어도 잘 살 수 있다는 무신론적 감탄사라고 말할 수 있어요. 인간의 눈이 밝아진 모습이 이거는 인공지능의 관점에서,,,, 2)또 생명 생명의 관점에서 볼 때, 유전자 코드를 수정하고 조작하고 세포 복제로 생명을 만들고 유전자 변형을 통해서 원하는 생명을 만들 수 있다는 지금까지 인간이 신의 역할을 대신하겠다. 눈이 밝아진 것이고 인간이 스스로 선악을 판단하겠다 그런 뜻이죠. 수명 연장 마치 자동차에 낡은 부품을 교체해서 새 차의 성능을 가질 수 있듯이 인간의 낡은 장기도 교체하여 불로장생하면 좋겠다. 이런 것이ㅔ요. 그리고 가장 요즘 나타난 거 소수 소위 성소수자라는 걸 가지고 남자와 여자가 아닌 트랜스젠더에 제3의 성을 만들고, 그 밑바닥에는 창조 질서를 무너뜨리고 하나님의 자리에 앉으려는 소위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선택한 그런 결과가 나타난 것이에요. 피조물인 인간이 또 하나 더 중요한 거는 아주 극단적인 생태환경주의자들, 그런데 우리가 피조물인데 피조물인 인간이 지구의 생태적 보존과 보호를 넘어가지고 마치 창조자로서 지구의 자연계를 통제하려는 극단적인 환경론자들, 아주 심한 분들이 있잖아요. 막 그 모나르자 앞에다가 막 그냥 페인트칠을 해버리고, 우리나라도 그런 사람들이 있어요. 이게 전부 다 뭐냐 하면요. 선악을 알게 한 나무를 선택하는 이 컬츄롤 막스즘(cultural marxism)이라고 그래서 문화 막시즘을 내서 소위 안토니오 그람시, 여러분들 공부하는 분들 좀 알 터인데 이 모든 것들이 지금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선택하는 하나의 눈이 밝아진 현상이다 이 말이에요. 이해가 됩니까? 그러니까 그 결과 무슨 일이 벌어졌느냐 수치를 느끼게 된 거예요. 그 이전까지 아담은 벌었으나 수치를 느끼지 않았지만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지니까 선악 남을 선택하니까, 마치 다윗이 범죄하고 수치를 느끼듯이, 돌아온 탕자가 돌아오기 전에 그 허랑방탕하면서 나중에 비참하게 수치를 느끼듯이, 수치를 가져오고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선택한 결과에 가장 중요한 것은 뭐냐 하면 책임 전가예요. 남 탓으로 돌리는 거예요. 하나님의 말씀의 말씀을 어긴 이유를 남의 탓으로 돌리는 거예요. 아담은 하와 탓으로 하와는 뱀 탓으로 선악을 알게 된 나무의 결과는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거예요. 인간이 얼마나 얄팍한지 아담이 조금 전에는 그 자기 아내에 대해서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죄송합니다. 알랑방구 하다가,,, 죄송합니다. 그렇게 하다가 지금은 막 손가락질을 하는 거예요. 누구는 그런 얘기해요. 선악을 알게 한 남 탓을 너무 많이 하는 선악을 알게 한 나무가 성경에서 사라진 이유가 뭐냐 하면, 아담 이후에 우리가 남 탓하는 선악을 알게 한 나무를 너무 많이 따먹어가지고 지금 없어져버렸대요. 지금도 우리는 그 열매를 따먹고 있는 거예요. 생명나무의 열매를 따먹어야 되는데 선악을 앓은 나무 남 탓하는 열매를 계속 따먹고, 그러니까 여기서 내로남불이 시작된 것이에요. 그러니까 인간의 본성을 제일 잘 갈파한 칼막스가 칼막스는 공산주의, 목사의 아들이에요. 인간이, 인간이 스스로 하나님이 되어가지고 인간이 스스로 판단하는 그리고 그 결과 남 탓으로 돌리는 이 성향을 너무너무 잘 알아가지고 모든 공산주의자들 이 극단적인 사회주의자를 어떻게 합니까? 모든 것을 남 탓으로 여기는 거예요. 이 약점을 가지고 인민재판하고, 아이들도 심지어 부모 탓을 부모를 고발하고, 이 혈류가 남 탓을 하는 거 아니에요 혈류가 내 탓이라고 그래야지. 아주 그냥 아주 간고한 이 공산주의자들은 이 내로남불 남 탓에 아주 그냥 이게 선악을 알게 나무를 선택한 결과에 아주 그냥 가장 강력한 증거 중에 하나예요.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죄 성입니다. 이걸 좀 이걸 좀 읽어보세요. 이 악이 뭐예요? 악이라는 것은 세상 사람들은 이제 악에 대한 변명을 하고 있는데, 뭐냐 하면 이 세상의 악이란 인간이 지닌 유한함의 결과일 뿐이기 때문에 예를 들어서 내가 죄를 지은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속에 약점이 죄를 지었다. 또 내가 죄를 지은 건 내 속에 부족함 때문에 그러지 내가 아니다. 나와 나의 약점을 분리시키는 거예요. 나와 나의 부족함을 분리시키는 거예요. 나와 나의 잘못을 분리시키는 거예요. 그리고 그릇된 행동은 우리 속에 있는 상처 탓으로 돌리기도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죄를 남의 탓으로 돌리는 이 책임 전가가 무엇이든 간에 그 결과는 이상하고도 괴기스러운 유체이탈(遺體離脫) 화법이 생긴 거예요. 그래 내로남불, 교회 안에서 도요. 상처받았다는 분 많이 계시는데요. 상처 줬다는 분 아무도 없어요. 뻑하면 교회에서 상처 많이 받았다고 하죠? 그럼 그거 아니죠? 제가 존경하는 김준근 목사님은 아주 통찰력 있는 말씀을 하셨는데, “예수님은 악이 이렇게 무슨 남 탓 때문에 생긴 게 아니라, 우리의 마음속에부터 악이 나온다.” 고 말씀하셨잖아요. 그런데 이 세상의 사회학자는 악은 사회 속의 구조학 때문에 사회 속에 구조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이 사회가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에요. 그래서 도둑질하지 말라고 설교하기 전에 도둑질이 필요 없는 사회를 만들라고 주장하는 거예요. 심지어 기독교 신학자들조차도 여기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래서 사회에 이 죄, 이런 문제에 책임을 전가하는 거예요. 물론 아프리카 같은 하도 후진국 남미의 어려운 나라는 구조학이 있어요. 정보나 이런 것들이 너무 잘못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 일반 사람들이 발버둥을 쳐도 해결이 안 되는 그런 약점이 있어요. 그래서 제가 지금 아프리카를 얘기하는 게 아니라 강남을 얘기하는 거예요. 여기 지금 우리나라 사회에 지금 책임을 전가하는 입장에 책임을 전가하는 걸 선동하는 인간들이 너무 많아요. 내가 누구라고 말 안 했어요. 김모모, 김모모,,, 그럼 이 책임전가의 밑바닥에는 사탄의 치밀한 전략이 자리 잡고 있어요. 1부 예배 때는 뭐 얘기합시다? 2부 때는 안 할 거예요. 전부 책임 전가예요.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할 때마다 ‘지금 내 마음속에 사탄이 부추고 있구나!’ 이렇게 생각을 해야 되는 거예요. 여러분 이해가 되십니까? 책임 회피나 책임 전가는 인류 역사만큼 오래되었고 우리 속에 이미 고착화되고 만성화되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만일 오늘 이런 말씀을 듣고 여러분들이 책임 전가를 하고 싶은 그 순간에 책임을 전가하지 아니하고, 자신이 책임지려고 그러고 모든 책임은 내게 있다고 그러고 책임 회피의 오랜 역사를 딱 정리하면 올해는 여러분 앞에서 위대한 순간에 일어나기 시작하는 것이에요. 놀라운 신앙의 역사가 펼쳐지게 되는 것이에요. 여러분과 제가 책임 전가를 멈추게 된다면, 아 책임 전가의 그 오랜 역사가 지금 나한테서 끝장나는구나!!!. 그런 놀라운 생명의 역사가 다가오기 시작하는 것이에요. 여러분 잘 되는 집안과 잘 안 되는 집안을 보세요. 누가 도자기를 깨뜨렸다. 됐다 그러면 누가 깼냐 누가 그 자리에 왜 갖다 놓냐, 너는 머리가 바보냐 이런 식으로 비난하는 집안이 있고 야 내가 안 갔다. 잘못 갖다 놓아서 그렇대 내 잘못이다 그러고 말이지 서로 차이가 하나님 천국에 가는 지옥이에요. 그래서 우리 예수님은 남 탓하면서 예수님을 따르라고 말씀하신 적이 한 번도 없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신 거예요. 사랑의 교회 성도들과 한국교회 성도들은 절대로 책임전가, 내로남불의 역사가 반복되는 그런 일이 없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그러려면 책임 전가를 하지 않으려면 생명 생명의 능력이, 생명나무가 뭐냐 오늘 선악을 알기 위한 나무를 따먹지 말고, 다시 날리지 어브 굿 앤 이블(knowledge of good and evil)을 따먹지 말고, 츄리 어브 라이프(Tree of life), 생명나무를 선택하라는 거에요. 그럼 생명나무란 무엇인가? 생명나무란 무엇인가? 생명나무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와 정확하게 반대되는 나무입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하나님 없이 하나님을 떠나서 하나님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지혜와 지식으로 자기가 주인이 되어 가서 판단하고 사는 삶을 상징한다면, 생명나무는 반대로 하나님을 경위하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순종하고 하나님 말씀을 따라서 내 판단이 아니라 주님의 판단이 중심이 되는 것이에요. 한 번 더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II. 생명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생명나무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의지하고 순종하고 말씀을 따라서 살고 내 판단이 아니라 주님의 판단이 중심이 되는 것이다. 내 판단이 아니라 주님의 판단이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아멘 그래서 이 생명나무에 관해서 어거스틴이나 유케리우스 같은 교부는 뭐라고 얘기하느냐 “생명나무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그랬어요. 다시요. 생명나무는 누구를 예표 한다고요? 예수 그리스도를 피한다. 그러므로 생명나무는 하나님과 교제하고 아담 범죄하기 이전에 완벽했던 교재처럼 교제하고 하나님과 함께 기뻐하고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공급하신 인물과 같이 하고 그래서 생명나무는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고 빛 가운데 행하는 것, 영원한 구원을 상징하는 것이에요.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생명나무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빛 가운데 가하는 것, 영원한 구원, 영원한 생명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그래서 성경은 오늘 창세기 2장의 생명나무로 시작해가지고 마지막 창세기 제일 앞부분으로 시작해가지고 제일 마지막 요한계시록 몇 장까지 있어요? 22장까지 있어요. 요한계시록 제일 마지막에 생명나무로 끝이 나는 거예요. 그리고 그 사이를 연결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이세요. 그리고 생명나무 자체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기도 하지만 창세기와 계시록을 연결하는 것이 생명이신 예수님이신 줄 믿으셔야 되는 것이에요. 창세기 2장 에덴동산 중앙에 생명나무가 존재했고 요한계시록 이 12장에 생명나무로 마무리되는데 그 사이에 예수님이 생명 되는 거예요. *요한복음 14“6, 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내가 길이요 진리요 뭐예요? 생명이니 그리고 이 생명의 역할을 예수님이 나무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 가능케 되어 있는데 그 나무가 바로 십자가 나무인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친히 십자가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신 것 때문에 생명나무의 역할을 하신 것이에요. 베드로전서 2장 24절을 같이 보겠습니다. 같이요. *베드로전서 2:24, 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친히 나무에다 십자가의 나무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 죄에 대하여 죽는다는 말은 더 이상 선악을 알기 위한 나무를 따먹지 말고 생명의 참된 생명나무를 선택하고 살아라. 그런 뜻이에요. 아담의 타락, 선악을 알게 한 나무를 선택함으로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죄의 벽이 생겨가지고 영원한 생명의 길이 막혀버렸어요. 그런데 예수님의 십자가 나무에 생명의 역사를 일으킴으로 말미암아 다시 우리에게는 풍성한 생명을 체험하는 길이 열린 줄로 믿습니다. 따라서 생명나무는 영원한 생명 영생을 의미하는 것이에요. 우리 편에서 볼 때 예수님의 십자가 나무가 생명나무 역할을 한 줄로 믿습니다. 따라서 빌리그레함 목사님 뭐라고 말했냐? *예수님께서 지신 영광의 십자가는 죄로 물든 죄인들의 마음을 씻으며 구원 받은 모든 자에게 생명나무가 된다 -빌리그래함- -아멘 이해가 되십니까? 아담과 하와는 죄 때문에 쫓겨나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고, 화형 금을 든 천사가 생명나무로 가는 길을 막아버렸어요. 이제 막혀버렸어요. 범죄 때문에. 그런데 생명나무를 생명에 이르는 유일한 길, 생명나무를 다시 가는 유일한 길이 뭐냐 예수님의 십자가 나무를 통하여 생명의 길이 회복된 줄로 믿습니다 마치 포도나무에 가지가 붙여서 소생하듯이 다시요. 첫 번째 아담 선악을 알게 나무를 먹은 첫 번째 아담은 생명나무로 가는 길을 막아버렸지만 두 번째 아담이신 예수님을 통하여 십자가를 통하여 생명나무로 가는 길이 열린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더 깊이 들어가면 예수님이 생명이 되시고,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 예수 그리스도가 생명나무를 예표 하는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이제 이것이 흘러가지고 이제 군사 쪽으로 에스겔 47장에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되어가지고, 광 좌우에 모든 것이 다 메마르고 다 죽은 나무들인데, 그 예수 그리스도 성전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흐르는 생수를 통하여 그 물이 흘러감으로 말미암아 메마른 나무들이 열매를 맺고, 식용으로 사용하고, 잎사귀를 약용으로 사용하는 그 환상이 나오는 거예요. 그리고 그 환상이 오늘 요한계시록 22장 2절 오늘 여러분들 주보에도 나와 있지 않습니까? 여기 보면 22장 2절에 이렇게 나와 있죠. 같이 보겠습니다. *요한계시록 22:2, 2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그 잎사귀가 만국을 치료하는 약이 되는 줄로 믿습니다. 이 만국을 치료한다는 것은 모든 제한을 뛰어넘는다는 말씀도 포함돼 있고, 여기는 모든 이방인들의 개정도 다 포함되어 있고, 또 만국을 소생한다는 것은 여러분 한 사람이 이 생명나무의 역사를 가질 때에 가정이 치유될 줄로 믿습니다. 사랑의 교회가 치유될 때 이 민족이 치유될 줄로 믿습니다. 이거야 대한민국 치유될 때 세계 선교가 마무리될 줄로 확신합니다. 이거예요. 그래서 생명나무 잎사귀가 생명나무 입사기의 약용과 치유의 은혜가 대한민국과 한반도를 넘실되기를 바라고 대한민국과 한반도의 생명나무 입사기의 약용 익을 통하여 세계가 치유되는 역사가 일어날 줄로 확신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우리가 ‘2033-50 비전’의 어떤 영적인 토대 중에 하나가 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우크라이나를 지난 주간 저는 어디 갔다 오면 갔다 온 얘기 바로 안 합니다. 안 하는데 오늘은 우리가 이 우크라이나는 나라를 제가 좀 살펴보았어요. 마치 우리와 쌍둥이 같은 나라예요. 날마다 그 러시아의 침공을 받고 고통당하고 2차 세계대전 이후에 500만 명 이상이 난민이 된, 그 유일하고 첫 번째 전쟁이 지금 지금 이 지금 이 우크라이나 전쟁이 되었어요. 지난 70년 가운데서 난민은 500만 명이 온갖 것이 파괴되었어요. 이번에 우크라이스 오신 목사님들 여러분들과 함께 제가 대화를 해보았는데 자기들이 그래요. 자기들의 목표는 대한민국처럼 회복되는 것이다. 대한민국처럼 이렇게 대한민국이 하나의 자기들의 어떤 표상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어떤 반도체의 부흥, 자동차 부흥, 또 조선소 부흥, 이게 목표가 아니고 대한민국 교회처럼 부흥되기를 원한다. 대한민국 교회처럼 부흥돼야 자기 나라도 새로워질 것이다. 이게 뭐예요? 그 우크라이나가 생명나무를 선택하게 되는 것이에요. 만국을 소상하는 은혜가 되는 줄로 믿습니다. 다시 한 번 에스겔이나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이 생명나무의 특징은 ‘치유와 회복’이고 이것은 모든 것을 모든 지역을 치유하고, 우리가 낙원에서도 이 생명나무의 그 축복을 먹을 수 있겠지만 이 땅에 사는 동안에도 예표로 그날이 성취될 것을 믿으며, 오 예표로 이 땅에서 이 은혜를 누리는 축복이 있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그래서 사도 요한은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완전한 생명과 치유의 관계를 회복할 것을 그리고 있어요. 요한계시록에도 나와 있죠? 아픔과 아픔이 없고 고통과 갈등과 눈물과 실망과 망가짐과 찢어짐과 모든 상처를 온전히 치유하신다는 것이에요. 그리고 이 땅에서 우리가 이 생명나무를 선택하게 되면, 그 놀라운 것을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 놀라운 것을 이 땅에서 체험하며 살아갈 수가 있다는 것이에요. 다시요. 아픔과 고통과 갈등과 눈물과 실망과 망가짐과 찢어짐, 모든 상처를 치유하는 예고편을 이 땅에서 맛보고 사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그러려면 이제 오늘 이 명절날 제가 이제 여러분들이 드리고 싶은 선물이 그거예요. 그럼 우리 와 아 우리 어떻게 살아야 되나(How should we live?)? 사랑을 알게 한 나무를 선택한다는 것은 경계선을 넘어선 것이다. 생명나무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 하는 것이다. 아담을 통하여 생명으로 가는 길이 다쳤지만, 십자가라는 나무를 통하여 생명의 길이 우리에게 회복된 것이다. 이걸 다 아는 사람들은 그 에스겔 47장에 나타나는 성전 대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생수를 통해서 치유와 변화가 있는데, 메마른 곳이 생수가 되고 생명나무가 되고, 온갖 것을 치워 이 땅에서도 이것을 예고편으로 맛볼 수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걸 어떻게 해야 되나 여러분과 저의 모든 앞으로 남은 인생을 쓰는 최고의 우선순위 프라이어티 넘버1이 뭐냐 하면요. 여러분과 저의 생명을 확장하는 일에 우리가 쓰임 받아야 되는 것이에요. III. 순간순간 생명의 확장을 선택해야 한다. -생명을 확장하지 않는 일에는 무덤덤해져야 돼요.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에 애를 쓰지 말고 내 인생의 생명을 확장하는 일에 목숨을 걸어야 되는 것이에요. 생명을 확장하며 확장을 선택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예를 들어서 남이 나에게 상처 주고 모욕하고 어떨 때는 뺨을 때릴지라도 생명나무를 선택한 사람은 그 상처와 모욕에 집중하지 않고 생명나무 대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그냥 견디고 참는 것이 용서하는 것이에요. 반면에 선악을 알게 한 나무를 선택한다는 것은 불순종하고 자기 판단과 자기 생각과 자기중심과 내로나무를 결정하기 때문에 모두가 억울하다고 생각하고 상대방에 대해서 불붙는 분노 때문에 어쩔 줄 몰라 이 사회가 지금 그렇잖아요. 책임 전가하고 무책임하고 권리만 주장하고, 한 술 더 떠서 복수하고 보복하고, 여러분들은 똑똑해가지고 늘 옳고 그른 걸 따지는 거예요. 그래서 텔레비 tv에 패널들 분들 보세요. 다 자기가 옳고 그른 걸 옳은 걸 주장하죠. 그러나 생명나무를 선택한 사람은 옳은 걸 선택한 사람인 게 아니라 생명을 선택하고 은총의 원리에 따라서 선택하는 것이에요. 옳고 그른 걸 선택한다면,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를 옳고 옳고 그르게 우리를 대우하셨던 우리는 벌써 다 죽었어요. 우리는 아무도 은혜받을 수 없는 존재예요.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우리를 은총의 원리로 우리를 대우한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내가 생명을 선택하게 됐다. 은총을 은혜로 선택하게 됐다. 생명나무를 선택하는 사람 오래 참고 기도하고, 우리를 대적하고 의롭게 하는 사람들을 그냥 주님께 맡겨버리면 원수가 없는 것을 주님께 맡겨버리는 것이에요. 상대방이 잘못했을 때도 맡길 때 우리 속에 억울하고 상처가 있죠. 그러나 하나님이 처리하실 것을 믿고, 세상의 가치관을 뛰어넘어야 되는 것이 아마 우리 이런 거 없었으면 우리도 다 힘들게 살았을 거예요. 아마 정말 겉으로 볼 때 이게 손해 같지만 사실은 영적으로 깊이 들어가면 손해가 아니에요. 왜냐하면 선악을 알기 위한 나무를 선택해가지고 책임을 전가하게 될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압니까? 그 순간 우리가 비난하고 비판하는 대상이 우리의 주인이 돼버리는 거예요. 생명나무를 선택하지 않으므로 책임을 전가하게 되면 뇌로 넘버 하게 되면 내가 싫어하는 그 대상이 계속 나를 얽어매고 내에게 생각나게 하고 내 사상을 다스리고 내 삶의 주인으로서 등장하기 시작하는 거예요. 이건 중요한 통찰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미워하고 비판할 때 우리는 착각합니다. 내가 그 사람에게 복수하고 내가 지금 잘하고 있다, 내가 응징하고 있다. 내 마음이 시원하다고 생각하지만, 여러분 삼족을 멸한 사람, 그 못된 인간을 삼족을 멸해보세요. 잠깐 시원할지 모르지만 여러분 그렇지 않아요. 내가 미워하고 복수하고 응징하는 게 아니라, 실상은 그 사람들이 오히려 그때부터 내가 미워하는 그 사람, 내가 비판하는 그 사람이 내 영혼의 주인 노릇을 하고 앉아 있는 거예요. 왜 내가 선악을 알게 한 나무를 선택해가지고 옳고 그 내가 판단해 내가 응징을 했기 때문에 거기에 대한 거기에 대한 결과 책임전가, 내로남불 수치의 어떤 그것이 내게 들어와 가지고 주인이 바뀌어져 버리는 거에요. 우리의 삶의 진정한 주인이 주님이 주인이 되셔야 되는데, 그 내가 비판하고 내가 진짜 복수하고 싶으면 그 사람들이 내 영혼의 주인 노릇을 하게 되는 겁니다. 우리는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거예요. 아멘입니까? 나에게 악하게 구는 사람, 그 상황이 나를 통제하도록 우리가 어리석게 해대면 안 되는 거예요. 비판과 분노가 우리의 주인이 되고 책임 전가가 주인 노릇하지 않도록 하나님 여러분들에게 지혜 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의 제가 이 땅에 살아가면서 우리가 인간의 몸을 믿고 이 땅에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다 고난과 고통을 당하게 됐어요. 예기치 않은 어려움을 다 당하게 됐어요. 그 그거 붙잡고 잘 잘 감당하는 것도 힘든 일인데, 이 땅에 살아가면서 고난 받고 고통 받는 것만도 안타까운 일인데, 나를 가해하고 나를 괴롭히고, 나를 상처 준 그 사람을 내 마음의 주인으로 모시고 날마다 묵상하면 되겠어요. 다시요. 몇 번 못 알아들어서 다 천천히 설명할게요. 내가 이 땅에 살아가면서 고난 받고 고통 받는 것도 안타까운 일인데, 나를 가해하고 나를 핍박한 그 사람을 주인으로 맞아들여가지고, 그 사람을 주님으로 맞아들여가지고 그 사람의 말대로 좌지우지되는 삶을 살면 그게 지혜로우냐 이 말이에요. 내가 희생당했다, 내가 섭섭하다 내가 상처받았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 가해자에 대한 미움과 원한 때문에 그 원한의 종이 되는 것이에요. 그 순간 우리는 선악을 알게 한 나무를 선택하고 마는 것입니다. 좀 더 깊이 들어가면 상대방의 비난이나 그들의 말에 따라 반응을 하다 보면 상대방에 의해서 조정되는 인생이 되는 거예요.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 나를 핍박하고 고통을 주고 한 그 사람들이 주인이 되는 것이 여러분과 저의 인생의 주인은 주님밖에 없지 사탄 마귀가 아닌 것이에요. 이것이 영적인 거룩한 비대칭 전략이에요. 여러분 일을 안 하면 아무런 문제가 안 생깁니다. 수많은 일을 하면 수많은 문제가 생겨요. 사랑의 교회도 이 교회를 건축하면서 수많은 우리가 난자를 맞이했어요. 일 안 하면 아무런 문제없어요. 그러나 일하다 보면 수많은 난제가 있어요. 그럴 때마다 생명나무를 선택하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그래서 이 시간 이 귀한 시간에 평생 나는 선악을 알게 한 나무를 선택하지 아니하고 생명나무를 선택하겠다. 결심을 하는 거에요. 그리고 생명나무를 선택한다는 말은 좀 추상적인 용어이기 때문에 좀 더 쉽게 말하면 생명이 확장되고 생명의 능력이 강화되고 생명의 역사가 풍성해지는 그것을 위하여 나는 선택하겠다. 예를 들어서 오늘 이 명절날 여러분들이 예배드리러 나오셨잖아요. 세상에 세상의 똑똑이들, 세상의 옳고 그름, 선악을 알기 위한 나무를 선택해 가지고 자기가 인생을 판단하고 사는 사람들은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은 이거 얼마나 어리석게 보입니까? 명절날 나오죠. 아침에 단장에 나오죠. 그다음에 수고하죠. 기도하죠. 정성을 다하죠. 심지어 여러분 땀과 눈물과 노력과 정성의 결정체 물질도 다 드리죠. 남들이 볼 때는 미친 거예요. 미쳤다면 이상하고 우리가 왜 이렇게 합니까? 영적으로 보이지 않는 세계인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은혜를 확장시키기 때문에,,, 여러분, 이 시간 와서 주님 앞에 기도하고 예배하고 주님 앞에 정성을 다하는 그 순간 내 영적 세계의 영광스러운 어마어마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아니라, 생명나무의 능력이 확장되기 시작하는 것이에요. 놀라운 일이 벌어지기 시작하는 것이 믿지 않는 사람들이 볼 때 우리가 헌신하고 봉사하고 땀과 눈물을 들이고 그들의 기준을 이해할 수 없어요. 겉으로 볼 때는 손해 같아요. 우리가 선악을 알게 나무를 선택하지 아니하고, 미움과 원망을 선택하지 아니하고, 복수하지 아니하고, 자기 죽음을 선언하고, 남 탓으로 돌며 주님을 따르지 아니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고 자기를 부인하고, 온전한 제자의 삶을 사는 이유가 뭡니까? 왜 남이 나를 어렵게 할 때 남들처럼 악착같이 따지지 않습니까? 왜 옳고 그른 시시비비(是是非非)를 명확하게 따지지 않습니까? 그것은 우리 생각에 우리가 영적으로 볼 때는요. 그거 따지고 그러는 순간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에 생명의 능력을 약화시키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에 영적 생명을 죽이기 때문에, 오늘날 도덕적 상대주의가 있고, 1부 때는 또 얘기할게요. 2 3부 때는 나으니까 제가 바쁜 와중에 건국 전쟁을 봤어요. 내가 그래서 기가 찬 거야 그거는 그러니까 온통 우리나라가 진실 중심이 아니라 프레임과 어떤 저기 뭡니까? 내로남불의 역사를 가지고 이 땅을 살아왔구나!! 한탄이 저기에 있는 거예요. ‘건국 전쟁’ 다 보러 가세요? 아시겠어요? 2 3부터는 얘기할까요? 안 할 거예요. 진실로 생명을 선택해야 돼요. 저는 지난 몇 년간 영화를 한 번도 안 갔어요. 근데 처음으로 몇 년 만에 처음으로 이 ‘건국 전쟁’을 갔어요. 근데 잠깐만요. 여러분 이게 이게요. 이게 생명의 역사이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생명의 역사를 진실에 관한 문제 왜 그런지는 가서 보면 알아요. 열 받을 일이 수두룩하고, 부도덕한 일이 수두룩하고, 사회적 이슈에 대해서 우리가 보아요. 이제 4월 12일 선거될 때까지 온갖 종류의, 온갖 종류의 정말 악한 마귀와 사탄의 충동전이 있을 거예요. 절대로 부화뇌동(附和雷同) 하면 안 돼요. 아시겠어요? 그 附和雷同이라고 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를 죽이기 때문에, 우리가 왜 중독을 피하고, 우리가 왜 도박을 하지 아니하고, 왜 우리가 아내 이외의 다른 여자에게 관심을 갖지 아니하고, 왜 우리가 교회 일도 어떨 때 내 마음에 안 들어도 세상 방법으로 하지 아니하고, 기도하고 참고 기다리는 이유가 뭡니까? 그것은 우리는 영적 세계를 사는 사람들이고, 영적 세계에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에 생명의 능력이 왔다 갔다 하기 때문에 그것이에요. 여러분 아무리 똑똑하고 아무리 옳고 그름을 잘 따져도 아무리 잘나도,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선택하는 사람의 결과는 죽음입니다. 실제로 따지고 싸우고 하는 그 순간 우리 안에 생명력이 죽는 것입니다. 그러나 생명나무를 선택하는 그 순간 그 결과는 성령 안에서의 자유 함이며, 내 영혼의 깊은 곳의 평안이요, 영원한 생명의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이제 정리를 하면 여러분 이제 오늘 이 명절날 이제 평생 결정을 해야 돼요. 내 남은 인생의 삶의 판단 기준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이게 옳으냐, 그르냐 그것도 필요 하지만 그건 우리가 알고는 있어야 되지만 옳으냐, 그르냐, 내 호불르냐, 아니냐, 내 스타일이냐, 아니냐, 내가 좋으냐, 아니냐, 내 이미지를 좋게 하느냐, 아니냐, 내가 높아지느냐, 낮아지느냐, 내게 유익이 있느냐, 없느냐, 여기에 기준을 두지 말고 모든 판단 기준을 생명의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 생명이 확장되느냐, 안 확장되느냐, 여기에서 결정해야 되는 것이에요. 우리 앞에는 선택이 펼쳐 우리 앞에 길이 있어요. 신명기 30장 19절을 다 같이 보겠습니다. *신명기 30:19, 19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할렐루야! 우리 앞에는 뭐가 있습니까? 생명과 사망, 또 하나는 복과 저주! 그 두 길이 있는 거예요. 그럼 우리가 뭘 선택할까요? 우리는 생명을 선택해야 되는 것이에요. 우리가 살기 위하여 생명나무를 선택해야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여러분 앞으로 생명나무를 선택하는 사람은 생명과 관계된 것에 집중하느라고 생명과 관계없는 일에는 인생을 낭비하잖아요. 생명나무를 선택하면 생명이 아닌 것에 대해서는 좀 무덤덤해지는 거예요. 좀 무덤덤해지세요. 예민하지 마세요. 누가 나에게 어떻게 할지는 좀 무반응하고, 남들이 나에게 어떻게 생각하느냐, 너무 신경 쓰지 말고 내가 얘기하잖아요. 성형도 저기 뭡니까? 쌍꺼풀까지는 봐주지만 나머지는 그냥 신경 쓰지 마세요. 남들에게 상처받았다는 것 자체가 생명나무를 앞으로 선택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말하는 것이에요. 용서가 안 되어도 주님 때문에 용서하고, 기가 막힌 일이 있어도 주님 앞에 억울함을 올려드리고, 생명나무를 선택하면 문제보다 더 큰 혜를 주님이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아멘!!!! 그리고 남은 인생 이 생명나무 선택하시고 생명나무 열매를 배불리 먹고, 치유 받고 영적 건강을 유지하시고 이 생명의 확장을 선택하시고 결론 내리겠습니다. *잠언 3:18, 18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나무라 지혜를 가진 자는 복되도다. -할렐루야 솔로몬이요. 잠언 적었을 때는요. IQ가 천도 넘었어요. 영적인 지혜가 너무너무 똑똑했어요. 그의 최고의 절정에서 뭐라고 얘기하느냐 진짜 지혜가 뭐냐 생명나무가 지혜를 가진 자의 생명나무, 생명나무 지혜를 가진 자 무슨 말이냐 해석을 하면 지혜로운 사람은 오늘도 생명나무를 선택한다는 뜻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어떨 결에 가족들하고 오신 분들 가운데 여러분 생명나무 선택해 가지고 전에 한 번 제가 이런 비슷한 말씀을 한 번 드린 적 있는데 그분이 충격을 받고 아내 따라 왔다가 교회 우리 교회 오셔갖고, 예수님 믿고 제자 훈련하고 사역 훈련하고 지금 순장하고 있습니다. 그분의 이름을 대라 몇 명의 이름을 댈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생명나무 선택이 이 시대 여러분들의 삶에 영적인 마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마패는요 마패의 능력이 있어요. 겉모습이 초라해도 끄떡 안 해요. 나 무시해도 월매가 이몽룡이를 막 우습게 알고 막 그래도 이몽룡이는 끄덕도 안 했어요. 왜냐하면 허리에 뭐가 있으니까 마패가 있으니까 여러분 생명나무가 여러분 생애에 거룩한 마패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나의 이 되신 여호와여!!♪ ~~ ♣요약 남 탓과 책임전가와 내로남불의 죄 된 성향을 끊어내고 자기 십자가를 질 때 위대한 생명의 역사가 시작되는 인생이 되는 것을 확신하여 생명나무로 가는 길을 주셨으니 복수는 주님께 맡기고 강력한 영적 마태의 능력을 주시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살아가야 한다. 주님의 은혜와 용서로 생명을 확장하며 만국을 치료하시는 예수님의 생명나무를 선택하면 평안이요, 영원한 생명의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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