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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4년 02월 04일)
재목: "은혜의 가랑비, 부흥의 소낙비"
말씀: 호세아 6:1-3
대표기도: 박단열 부목사님(1부)
찬양인도: 쉐키나(오준석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설교자: 권성수 목사님(대구동신교회 원로-초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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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세아 6:1-3,
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2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3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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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이제 대구 동신교회 원로이시며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특훈 교수이신 권성수 목사님께서 은혜의 가랑비, 부흥의 소낙비라는 제목으로 주일 말씀을 전해주시겠습니다.

▶사랑의 교회 예배에 참여하신 여러분들, 또 온라인으로 예배드리신 여러분 모두가 평소에 은혜의 가랑비에 영혼이 젖으시면서 하나님의 때에 부흥의 소낙비도 체험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요즘 제가 강의 혹은 설교 전후에 자주 듣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은 뭘 해도 안 됩니다. 되는 게 없습니다.’ 웬만한 교회는 제자 훈련 다 하고 좋은 프로그램이 있다 그러면 다 따라서 하는데 ‘생명의 변화가 없습니다. 개척교회도 안 되고 또 기존교회도 안 됩니다. 부목사로 기존 교회 들어가려면 100대 1입니다.’ 상대적으로 예전에 비해서 풍요로운 환경 속에서 안 된다는 좌절감과 패배 의식이 가득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호세아 시대, BC 722년, 722년이 중요한 것은 BC 722년에 북쪽 이스라엘이 아수르의 침공을 받아서 망했기 때문이죠. 북쪽 이스라엘이 망하기 직전 한 30년 동안 예언을 했던 사역자가 호세합니다. 그때도 지금처럼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운 편이었지만 ‘낮에도 넘어지고 밤에도 넘어진다.’ 하나는 고백이 터져 나왔습니다. 어떻게 회복하고 어떻게 다시 한 번 재기해야 하겠습니까?

요즘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라고 하는 캐치 프레이즈를 걸고 교회마다 한국교회가 다시 한 번 회복하고 부응해야 한다는 갈망으로 매진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부응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회복을 체험할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 중에 2절에 보시면,

*호세아 6:2,
2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말씀이 있습니다. 이틀 후에 셋째 날 이것은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죠. 오랜 세월 아니고 얼마 후에 바로 얼마 후에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리시며, 살리시며, 살린다. 라고 할 때 NIV 성경을 보면 리 바이블(Rebible)로 나와 있어요. 부흥이 영어로 뭡니까? 리바이벌입니다. 부흥을 주시며 우리에게 부흥을 주시며, 그리고 그 밑에 보면 셋째 날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 살리라 일으키신다. 이것은 리스토어(Restore)-회복시키시다. 리스토어 그러니까 부흥도 주시고 회복도 주신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살 것이다 하는 그런 말씀이죠. 이 부흥이라고 하는 거는 하나님께서 주셔야 하는 겁니다. 회복을 주셔야 되고 부흥을 주셔야 하고 그렇게 되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사는 것 답게 사명을 감당하면서 보람을 느끼고 축복을 받으며 사는 것이죠. 이게 부흥인데 다시 살리신다는 말씀에 전제되는 것이 무엇일까요? 죽었다는 것이에요. 멀쩡하게 살아있는데 뭘 죽었다고 하느냐? 이런 질문이 나올 수 있지만 여기서 말하는 암시된 죽었다는 것은 영적으로 죽었다는 것이죠. 물론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은 영적으로 죽었지만 예수를 믿은 사람도 믿고 있지만 영적으로 죽은 상태 혹은 겁 안 죽은 상태 죽어가는 상태에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여러분 성경을 보시면, 요한일서 2장 15절에서 17절까지,

*요한일서 2:15-17,
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세상에 있는 것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이렇게 말씀을 하죠. 이 세상이라고 할 때, 육신의 정욕, 탐욕, 또 눈에 보이는 대로 갖고 싶어 하는 안목의 정욕, 그렇게 되면 은근히 자랑하고 대놓고 자랑하는 이생의 자랑 이 세상에 살아가는 모습이죠. 근데 신자들도 세상에서 살다 보면 세속화하려고 세속화하는 것이 아니고 저절로 세석화가 됩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아니하고, 귀로 들리지 아니하고, 손으로 만져지지 않지만, 눈에 보이는 것은 세상이오, 귀로 들리는 것은 세상이오, 손으로 만져지는 것은 세상입니다. 당장 눈앞에 보이고 들리고 만져지는 이 세상이 있기 때문에,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고 만져지지 않는 하나님을 잊어버리기 쉬운 것이죠.

예배드릴 때는 하나님을 의식하지만 삶의 현장에 딱 떨어지면 하나님을 잃고, 잊고 살 가능성이 참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세상의 욕망에 빠진 삶을 자기도 모르게 살게 된다. 세상 사람들 좋아하는 것 같이 좋아하고, 세상 사람들이 성공이라고 하는 것, 잘 된다고 하는 것, 그걸 갈망하고 똑같이 부정한 방법을 쓰더라도 그렇게 해야 되겠다 하는 육신의 욕망이 있죠. 세상에 욕망이 있죠. 이 욕망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면서 그리도 아무리 죄를 지어도 적당하게 사람들이 다 그렇게 사는 거니까 눈 감고 죄와 함께 쾌락을 누려야 되겠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죠. 세상의 욕망에 따라 세상의 쾌락에 빠지는 것이 영적으로 죽은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5장 5절에서 6절에 보면,

*디모데전서 5:5-6,
5 참 과부로서 외로운 자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 주야로 항상 간구와 기도를 하거니와.
6 향락을 좋아하는 자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간구하고 기도하는 이 상태가 살아있는 상태예요.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세상에 소망을 두는 것이 아니죠. 세상에 아무리 잘나고 성공하고 승진하고 잘해도 물론 우리가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되겠지만 그건 다 지나가는 것이거든 다 지나가는 것인데 보이는 것은 잠깐이거든요. 잠깐 지나가는 것에 자신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에게 영원하신 하나님, 천국에 소망을 두고 기도하면서 간구하면서 사는 것 이게 영적으로 살아있는 겁니다. 그런데 세상에 살다 보면 기도와 간구가 점점 약해지면서 세상에 빨려 들어가는 것이죠. 그러면서 세상에 오염(汚染)되는 것입니다. 계시록 3장에 보면 사대교회의 모습이 나오는데 주님께서 사데교회를 놓고 살았다는 이름은 있으나 죽었다고 했습니다. 또 죽어간다고 하셨습니다. 살았다 하는 이름은 있으나 죽었다 죽어간다. 라고 하실 때 그 문맥에서 보면 옷을 더럽혔다는 표현이 있어요.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않은 사람 몇 사람이 있어 나와 함께 다닐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어요. 몇 사람을 빼고는 세상에서 옷을 더럽히고 산다. 그게 오염이에요. 세상의 욕망과 세상의 쾌락과 죄와 함께하는 세상의 오염, 여기에 빠져 있는 것이 영적으로 죽은 것입니다. 이 영적으로 죽어 있는 상태 이게 세속화의 상태인데 여기에서 일어나야 되거든요. 여기서 일어나야 되는데 예수께로 가면 사는 거예요. 예수께로 가면 그래서 세속화에서 벗어나서 예수화, 예수화, 쪽으로 나가라 되는 게 없다. 뭘 해도 안 된다. 낮에도 넘어지고 밤에도 넘어진다 할 때, 외부적인 환경과 또 외부적인 어떤 현상에서 요인을 찾지 말고 심층 요인으로 내가 하나님을 떠났는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는가 여기를 봐야 되거든요. 예수께로 돌아가면 예수의 생명이 약동하고 예수의 생명이 흘러가는 겁니다.

여러분이 포도나무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으면 그 가지로 포도나무 수액이 넘어오죠. 포도나무 수액이 넘어오면 포도나무 가지가 그 수액(水液)으로 힘을 받고 살아가는 거예요. 그리고 그 수액이 강해지면 바깥으로 뿜어내는 겁니다. 분출하는데 이게 열매입니다. 열매 우리가 가지로써 포도나무이신 예수님에게 붙어 있으면 예수님의 생명의 수액이 넘어오니까 이 생명의 수액이 우리 속에서 약동하는 거예요. 이 약동하는 수액이 바깥으로 사랑으로 뿜어져 분출(噴出)하는 것이죠. 이게 살아있는 상태입니다. 이게 개인적으로 일어났을 때 개인의 부흥이고, 교회적으로 일어났을 때 교회의 부흥이고 국가적으로 일어나면 국가의 부흥이 되는 것이죠. 그런데 이것이 나타날 때 교회 역사로 보면, 한 국가 전체가 혹은 한 지역 전체가 이 부흥에 휩쓸리는 굉장한 부흥의 바람이 부는 때가 있어요. 그야말로 부흥에 부흥이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때가 있죠. 1907년도 한국교회가 그러했습니다. 말씀에 부흥이 일어나고 기도에 부흥이 일어나고, 전도에 부흥이 일어나면서 회개가 막 터져 나오는 전국적으로 번져나가는 그 현상이 나타났죠.

오늘 본문에 보실 때 싸매심을 체험하고, 나타내심을 체험하고, 임하심을 체험하는데 그 임(臨)하심이 사데 교회 같은 임하심이고 이른 비와 늦은 비 같은 이 말씀인데, 이것을 말로만 머리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체험해서 실감하면서 이 감격이, 능력이, 이 축복이 바깥으로 흘러가는 거 이것이 부흥 현상이에요. 교회 역사에서 부흥을 도표를 그려보면 여러분이 이해가 훨씬 쉬워질 겁니다. 도표를 여러분 보시면 아시겠지만 부흥이 일어날 때 세 부분을 보세요. 하나님 교회 세상, ‘세상이 왜 이래? 교회가 왜 이래> 이렇게만 생각하지 마시고 저 셋을 한꺼번에 보십시오. 사진

부흥이 일어날 때 어떤 현상이 나타나느냐 하나님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비상한 임재가 있어서 보통 때와 달라요. 비상하게 비상하게 임하시고, 비상하게 나타나시고, 비상하게 충만하신 거예요. 지금도 하나님께서 이 가운데 성령으로 임해 계시지만 비상하게 임하실 때는 여러분 모두가 감지할 정도로 느끼는 거예요. 그리고 불신자가 딱 들어오면 이 분위기 속에서 영적으로 살아있는 분위기 속에서 야 여기 뭔가 있다 하고 느끼는 거예요. 그게 비상한 임하심입니다. 성경에 보면 쏟아 부으심, 여러분의 개인과 가정과 교회, 한국교회 전체가 아무리 문제가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어느 순간에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식으로 비상하게 임하시면 문제가 해결될 줄로 믿습니다. 이렇게 비상하게 임하실 때 교회와 교인이 바뀌는 거예요. 어떻게 바뀌느냐 여러분이 말씀을 들을 때에 그냥 듣고 마는 것이 아니거든요.

여러분이 말씀을 들을 때, 다 듣는데 나가실 때 어떤 기자가 조금 전에 무슨 말씀 들었어요. 하면 머리 긁는 게 아니거든요. 이 말입니다. 저는 그런 설교를 나비 설교라 그러고, 그런 메시지를 나비 메시지라고 그러는데 설교 들을 때 잠깐 앉았다가 나가면 날아가 버리는 거에요. 여러분 그렇게 되는 거는요. 아직도 영적으로 민감하지 않다는 거거든요. 성경에 성령의 강력한 역사가 일어나면 불같은 성경의 확신이 일어나요. 말씀을 들을 때 한마디 한마디가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귓전에서 나 흘러나가는 것이 아니고 여러분 가슴으로 파고 들어오는 거예요. 이 성경에 대한 확신이 생깁니다. 이 성경에 대한 확신이 생기면 말씀이 성령께서 말씀을 통해서 일하시기 때문에 여러분이 전도를 하든, 교육을 하든, 밖에 나가서 무슨 봉사를 하든 간에, 거기 능력이 임하는 거야 능력, 능력 봉사가 돼요. 그리고 여러분이 끊지 못하던 죄를 전격적으로 어느 순간에 끊어버리는 거 이 교회의 변화에요. 하나님께서 비상하게 나타나셔서 여기 3절에 나오는

*호세아 6:3,
3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임하심이라 그러는데 임하셔서, 임하셔서 역사하실 때 교회가 교회들이 막 바뀌는 거죠. 평소에 덤덤하던 사람이 성령에 불이 붙어버리는 거예요. 이렇게 바뀌면서 이 세상의 변화가 흘러가는 겁니다. 그렇게 흘러갈 때 비상한 집단 회심, 한 마을 전체가 막 돌아오고 한 가족 전체가 막 돌아오고 전국이 영적으로 뒤흔들리는 전국의 영적인 지축이 흔들리는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거예요. 그리고 비상한 사회 정화 도무지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해결되는 사회적인 문제, 구조적인 문제들이 해결되는 사회 정화가 나타나죠. 요즘 제가 묵상하는 말씀 가운데 비열한 것이 인간 중에 높임을 받을 때에 악인들이 곳곳에서 날 뛰는 도다 하는 건데요.

지금 한국을 보십시오. 비열한 것이 가짜 뉴스가 꼼수가 추앙을 받고 있고 그러다 보니까 악인들이 도처에서 날뛰는 현상이 나타나지 않습니까? 이것을 봤을 때 우리 마음에 안타까움이 있는 거예요. 주여, 이 현상이 이런 부정부패, 부정직, 꼼수 이런 것들이 사라지게 하시고 대한민국의 공과 의가 공의가 강물처럼 흘러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근데 하나님이 강하게 임하시고 교회가 변하면 사회가 그렇게 변해버리는 거예요. 그리고 성령이 역사하실 때, 악령도 역사하기 때문에 박해도 있고, 또 성령의 역사로 예수 믿는 사람들을 보고 사람들이 칭송도 하는 거고 이게 비상한 겁니다. 부흥이라는 거는 평소가 아니고 비상한 때 나타난 거예요. 하나님의 타이밍에 하나님께서 비상하게 임재 하셔서 교회를 바꾸시고 세상을 바꾸시는 건데 이런 부흥이 나타날 때 말씀에 대한 열정, 기도에 대한 열정, 전도에 대한 열정 이게 다 살아나죠. 그리고 신유도 나타나고 어떤 게 막 넘어지기도 하고 예언도 막 나타나고 그런데 이런 기적적인 현상이 나타나는데 이 기적적인 현상에만 초점을 맞추면 삐뚤어지는 겁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시되 한탕주의로 한 번 딱 임하시면 모든 게 해결되겠습니다. 이렇게 되면 큰일 나요. 이렇게 되면 인격이 변하기 전에 한탕주의로 흘러버리면 그 한탕주의 한 탕인 그것이 흘러가면 그다음에 또 똑같은 사람이 돼버리거든 전혀 변화가 없어

내면적인 변화가 근본적으로 일어나야 되기 때문에 우리는 이 부흥의 소나기를 갈망하고, 갈구하면서도 은혜의 가랑비에 젖도록 해야 되는 거예요. 부흥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어요. 우리가 기도할 때 주님이 약속하신 대로 “너희가 악할지라도, 자식에게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나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누가복음 11장 13절에,

*누가복음 11:13,
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말씀하신 대로 지금도 얼마든지 이 비상한 역사가 나타난다고,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일이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장 좋게 임할 줄로 믿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마음이 열려야 돼요. 그 이상한 현상 나타나면 저거 잘못됐다. 이게 아니고 거기에 악령의 역사도 있으니까 분별해야 되고, 성령의 역사도 있으니까 받아들이고 이렇게 하면서 마음을 열어놓되 초점은 은혜에 가랑비에 두어야 된다. 은혜의 가랑비에 젖어야 된다. 초점은 하나님과의 관계, 사람과의 관계, 나의 인격, 평소의 생활, 여기에 둬야 된다는 것이죠. 여기 평소에 은혜 가랑비를 맞으면 젖는 거예요. 젖으면서 어느 순간에 부흥의 소낙비가 막 쏟아질 때에 그것을 체험하게 되는 것이죠. 은혜의 가랑비를 체험할 때 어떻게 하면 되는가 여러분이 1절을 보십시오.

*호세아 6:1,
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로 나오지 않습니까? 돌아가자는 것은 떠났다는 것이거든. 저 언제 떠났는가, 언제 내가 여호와를 떠났는가 하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그랬으니까 언제 떠났는가? 근데 또 어떤 과정을 통해서 떠나는가? 여러분, 호세아서를 전체적으로 보시면 아실 수 있고, 또 우리 오늘의 시대를 보시면 아실 수 있지만, 또 교회 역사 전체를 통해서 보시면 아실 수 있지만 호소야 13장 6절이 우리의 문제를 장악하기 시작하는 겁니다.야 13장 6절에 보면,

*호세아 13:6,
6 그들이 먹여 준 대로 배가 불렀고 배가 부르니 그들의 마음이 교만하여 이로 말미암아 나를 잊었느니라.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면 여름에는 잘 된다는 거거든요. 먹여준 대로 배가 불렀고 대한민국이 잘 되는 것, 한류가 많이 일어나서, 전 세계에 어쨌든 한국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거 이거 그냥 되는 거 아니거든요. 하나님께서 역사 핸들을 잡으시고 움직이시는 거예요. 잘 되게 하시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배가 부른 상태예요. 배가 부른 상태, 이때에 문제가 이제 다음에 등장하기 시작하죠. 배가 부르니 그들의 마음이 교만하여 여기가 문제란 말이에요. 배가 부르면 사람이 자기의 잘못된 것을 보지 아니하고 자기의 잘된 것을 보면서 왜 이렇게 내가 잘 될까? 라고 생각하면서 자신의 지혜와 자신의 역량에 초점을 맞춰요. 내 힘으로, 내 능력으로, 내 지혜로 해가 잘 된 것으로 착각하는 거예요. 이게 교만이에요. 교만 교만에 빠지려고 애쓰는 게 아니고 저절로 교만해져요. 잘 되면 저절로 교만해져요. 몸부림 쳐서 애를 쓰지 아니하면 하나님께서 바울 사도처럼 육체 가시를 주셔서 교만을 제재하지 아니하시면 교만해지는 거예요. 그러면 교만하면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거예요. 이게 하나님을 떠나는 거예요. 하나님을 떠나는 모습은 어려울 때만 있는 것이 아니고 잘될 때도 있어요. 번영할 때 번창할 때 교만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됩니다.

어떤 경우에도 내가 잘해서 잘 된 것이 아니고,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인데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다른 사도들보다 더 많이 수고했지만 내가 아니요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하나님의 은혜 의식이 강해야 돼. 하나님의 은혜가 지배하는 평생 하나님의 은혜의 지배를 받는 삶, 이럴 때 하나님을 떠나지 않는 거거든 번영할 때 떠날 가능성이 있으니까 주의하셔야 되고, 그다음에 고통을 당할 때 떠날 가능성도 있습니다. 고통당할 때, 왜 떠나냐? 고통당할 때 갈등이 오죠. 왜 변화가 없는가 왜 해결이 안 되는가 하나님은 전능하신데 한마디만 하시면 되시는데, 내 이 고질적인 질병도 하나님이 한마디만 오케이하시면 되시는데, 하나님이 오케이 안 하시려고 입을 꼬매셨는가? 이렇게 생각할 수가 있단 말이죠. 이게 전능하신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그러면서 왜 나의 문제를 지금 해결해 주지 않고 나는 이 문제를 지금 가지고 앓고 있어야 되느냐? 왜 내가 고통을 당해야 되냐, 왜 지금 당해야 되냐, 하나님은 어디에 계신가? 저 이게 갈등이에요.

아까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는 현상 서론에서 아무것도 안 된다. 그럴 때 청년들이 교회에 와보는데 기대를 가지고 와보는데 능력도 체험 못하고 변화도 체험 못하고 기도 응답도 체험 못하고 뭐 와 봐도 별거 없더라 하면 떠난다. 그러니까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 들어가면서 4명 중에 3명이 떠난다는 거거든요. 이게 아주 심각한 문제입니다. 심각한 문제, 뭔가 기대하고 있는데 기대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떠나버리는 현상, 특별히 고통 중에 갈등하면서 떠나버리면서 고통 중에 제일 큰 문제가 하나님은 어디 계신가 하는 거거든요. 하나님이 어디 계신가 고통의 현존 앞에서 무신론자들이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는 거예요. 하나님의 백성들도 유신론자들이지만 실천적 무신론자들이 되어서 고통의 눈앞에서 갈등하다가 하나님을 떠날 수 있어요.

여러분 한번 답변해 보세요. 하나님 어디 계신가 고통당할 때 하나님 어디 계신가 위에서 구경만 하시고 방관하시면서 너희들 왜 잘못했어, 이러시는가? 아니에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 하나님으로 이 땅 위에 내려오셨어요. 고통의 현장에 내려오셔서 죄인들은 인간들과 동일시되시고, 같이 고통당하시고 아픔을 당하시고 죄는 안 지으셨지만 모든 시련도 다 당하시면서 고통당하는 모든 사람들의 심정도 이해하시고 붙잡아주시고 그러면서 근본적으로 고통을 해결하시기 위해서 고통의 근본 문제인 죄의 문제를 자신의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심으로 해결하셨다. 고통을 당해도 고통 중에 하나님께서 인격을 변화시키시고, 툴을 만드시고, 낮추시고 시험하사 마침내 복을 주는 방식으로 주시는 방식으로 이렇게 작업을 해나가시는 귀한 역사는 예수님 때문에 가능한 줄로 믿습니다. 과정 중에 이런 은혜를 주시고 마침내 모든 고통이 지나가게 하시고 때로는 이 땅 위에서도 기도하는 대로 또 우리가 노력한 대로 고통이 지나가게 하시고, 새 하늘과 새 땅이 나타나면 눈물이 없고, 한숨이 없고, 고통이 없는 그 완성된 낙원 천국에서 영원히 지복을 누리게 될 텐데, 이런 근본적인 궁극적인 고통 해결을 주님이 하셨단 말이죠.

하나님이 어디 계신가, 십자가에 계셨어요. 지금도 하나님이 어디 계신가, 고통당하는 여러분 모두와 어느 순간도 여러분을 버리지 않으시고 떠나지 않으시고 늘 함께 계시는 줄 믿습니다. 붙잡아주시고 위로해 주시고 끝까지 가게 만드시면서 큰 틀로 만드시고 마침내 복을 주시는 이 작업을 하시고 계시기 때문에 고통 중에 갈등하면서 넘어지더라도 하나님으로부터 등지고, 하나님을 등지고 넘어지지 마시고 넘어지더라도 하나님을 향해서 넘어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엎드려져도 하나님을 향해서 우십시오. 우리도 하나님을 향해서 우시라고 이렇게 하나님을 떠나면 번영 중에도 떠나고 고통 중에도 떠날 수 있는데 떠나면 때리신다고 할 것이다. 이 때리시는 것이 1절에도 보시면 ‘찢으셨다’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 찢으시는 아픔이 크죠. 찢으신다. 호세야 보면 5장 14절에 보면,

*호세아 5:14,
14 내가 에브라임에게는 사자 같고 유다 족속에게는 젊은 사자 같으니 바로 내가 움켜갈지라 내가 탈취하여 갈지라도 건져낼 자가 없으리라.
-사자처럼 젊은 사자처럼, 사자 같고 젊은 사자 같고 움켜 갈지라. 같은 움킨다는 말이 영어로 보세요. 테어 투 피시즈, 조각, 조각 사자가 막 뜯어버리는 것처럼 이게 너무 표현이 심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하나님께서 때리신다는 거예요. 찢으신다는 거예요. 아프게 하신다는 거예요. 왜 우리의 아픔을 통해서 우리의 죄를 깨닫도록, 우리가 돌아서도록, 우리가 지옥행에서 천국행으로 돌아서도록, 세속화에서 예수로 돌아서도록 우리의 영혼을 바꾸시고 우리의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 되고 강간할 수 있도록 만드시기 위해서 이렇게 돌이키시기 위해서 작업을 하시는 거예요. 이 작업을 하실 때 우리는 돌아서야 합니다. 잘못됐다고 느껴지는 순간에 바로 돌아서야 합니다. 우물쭈물할 필요 없어요. 단호하게 돌아서야 돼요. 내가 잘못됐다 생각될 때 우물우물 하지 말고 교회를 나무라 하지 말고 세상을 나무라지 말고 내 자신이 성령을 통해서 말씀에 찔림을 받으면 바로 돌아서면 돼요. 바로 돌아서면 하나님께서 싸매시고 치료하시고 낫게 하시고 나타나 보이실 줄 믿습니다. 돌아서기가 쉽지 않거든 어려움을 당할 때에 마치 하나님께서 날 어렵게 해놓고 즐기시는 것처럼 가학성이 있는 것처럼 착각할 수 있거든요.

하나님께 돌아서면 세상에 좋은 것을 못 누릴 것처럼 착각할 수 있거든요. 하나님께 돌아서서 하나님 섬기면서 세상에 좋은 것을 말씀의 한도 내에서 누릴 수 있는데 그걸 생각 못하고 그리고 세상 쪽을 등지고 이쪽으로 등진다는 말은 고행주의로 가라. 탈속에서 서돈으로 들어가라. 그거 아니에요? 세상 속에 있으면 세상에 속하지 않는 건데요. 세상에 속하지 않으면 어려움이 생길 줄로 생각하니까 잘 돌아서질 못해요. 우물우물해요. 제가 예전에 20대 청년이 있을 때 기도할 때 하나님 기도원에 가서 기도할 때 하나님 저를 누르는 이 손 좀 치워주세요.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데 저를 막 누르시고 계시는 거 막 누르시고 계시는데 이거 몸도 아프고 재정적으로 힘들고 또 인간관계에서도 힘들고 그런데 막 누르시고 계시는데 하나님 이것 좀 치워주세요. 치워주세요. 제발 좀 치워주세요. 저는요. 하나님이 누르시는 것이 저를 위대한 인물로 만드시려고 하시는 것 같은데 저는 위대한 인물 필요 없고요. 누르시는 것만 치워주세요. 누르세요. 고통만 치워주세요. 고통만 당장 고통만 치워주세요. 불 속에 들어가서 연탄 돼서 불순물이 제거되면 난 불순물 있어도 괜찮으니까 적당하게 살게 해주세요. 적당하게 살 못하는 거야. 못하는 거 누르지 마세요. 누르지 마세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누르셔서 마침내 변화시키는 작업을 하시거든요. 이 과정이 아픈 과정이에요. 이 아픈 과정에서 제가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고요한 중에 기다리니 진흙 같은 날 빚으사 주님의 형상을 이루시옵소서.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어차피 저를 다루시려면 마음대로 주무르시고 다루셔서 온전히 나를 주관하셔서 내가 제가 주님과 함께 같이 살고 있는 걸 만민이 알게 해 주시옵소서. 이렇게 항복을 했어요. 돌아서는 겁니다. 돌아서면 즐거움을 다 뺏기고 돌아서면 괴로움뿐일 줄 알지만 돌아서면 주 안에서 누리는 행복이 있습니다.

마음에 싸매심이 있고, 치료가 있고, 나타나심이 있고 이 말씀이 있어요. 이것이 평소에 이슬비를 맞으면서 젖어가는 방식이죠. 그 밑에 3절에 보시면,

*호세아 6:3,
3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여기 보시면 새벽빛이 있죠. 새벽빛 해가 뜰 때에 어김없이 뜨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뜨게 하실 때 어김없이 뜨는 거예요.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서 여호와를 알게 되면 반드시 임하신단 말이야 뜻인데 뜻 그리고 비와 같이, 라고 할 때 이 비는 겨울비입니다. 이스라엘에서 파종할 때 뿌리는 겨울비입니다. 그리고 늦은 비는 봄에 추수할 때 내리는 늦은 비에요. 이스라엘은 물이 생명이기 때문에 생명과 같은 물, 물과 물을 생명같이 그렇게 주시는데 생명과 생명의 능력 이걸 주신다는 거예요. 이걸 주시는데 때를 따라서 때를 따라서 주신다. 이것이 임할 때에 그 부흥이 나타나는데 이 부흥이 나타날 때 싸매심이 있고, 나타나심이 있고, 임하심이 있고 이런 것이 있는데 이것을 체험할 때에 여러분 이사야 58장 11절을 감격스럽게 고백할 수 있는 거예요.

*이사야 58:11,
11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내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내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물 된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여러분이 이렇게 하나님께로 돌아가서 하나님을 힘써 아시게 되면 하나님께서 임하셔서 여러분의 영혼이 메마른 곳에서도 만족하게 하시고, 여러분의 삶이 메마른 곳에서도 육체도 건강하면서 삶이 형통하게 하셔서 물댄 동산같이 물이 끊어지지 않는 샘같이 하신다는 거 이런 역사가 일어나기 때문에 여호와를 힘써 알자는 거거든요. 여호와를 힘써 알자 그러는데 여러분 세속화는 저절로 되는 거예요. 근데 하나님을 아는 거는 힘써야 돼. 힘써야 애써야 돼요. 여러분이 성령의 감동을 받으시고 순종하시면서 애써야 돼요. 애써서 훈련받으시고 애써서 예배당에 참여하시고 애써서 실천하시고 애쓰지 않으면 이룰 수 없습니다. 애써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여호와를 아는데 여러분 또 말씀하시기를 이고 나 다 아는데, 나 성경 수십 통 했어. 성경 달달 외워 암송하는 구절이 얼마인지 몰라, 다 아는데 뭘 알라는 거야? 이렇게 생각하기 쉬워요. 근데 여호와를 알라고 할 때의 아는 것은 참 지식을 말하는 거거든. 참 지식은 마음이 변하면서 생활 속에서 체험하는 거에요..

여러분, 이 참 지식을 얻기 위해서 여호와를 알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세상에 집착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세상에 집착 나는 없어 애착도 없어라고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여러분 있습니다. 저도 며칠 전에 요르단하고 한국이 축구 하는데 제 속에 집착이 세더라고요. 요르단은 피파랭킹 70위요. 한국은 23위요. 요르단에는 대단한 선수가 없어요. 한국에는 손흥민, 이강인, 민재 흥분할 정도로 대단한 선수들이 있어요. 그런데 막 밀리는 거예요. 밀리니까 제가 막 감당을 못해요. 그걸 보면서 막 감당을 못해서 속에서 막 올라와요. 올라와요. 아이고 이거 올라오면 안 되는데 이거 주요 내가 죄 지으면 안 되는데 저 감독에 대한 불평이 막 올라오고 막 조금 가면 욕이 나올 것 같아. 주여, 주여, 주여, 주여 주한테 막 올라오는 거예요. 그 순간에 아이코 이거 봐라. 내가 지금 집착하고 있구나. 집착하고 있구나. 요르단 전에서 승리에 집착하고 있고 질 수도 있는 건데 내가 왜 이렇게 집착하고 있지?

여러분, 집착하는 거예요. 집착 여러분이 원하는 것에 집착하는 게 뭐냐 고 집착하는 것이 하나님께로 가는 걸 방해하는 거예요. 하나님께 집착을 내려놓으셔야 돼요. 기도하시지만 기도하시는 것이 제목이 그대로 당장 나타나지 않아도 맡겨 놓으시면 돼요. 하나님께 맡겨놓으시면 하나님이 작업을 하시면서 여러분을 빚어가시면서 틀을 크게 하시면서 때를 따라서 때가 되면 감당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으시고 때가 되면 쏟아 부으신 줄 믿습니다. 맡겨놓으셔야 돼. 맡겨놓으시면 집착이 사라져요. 집착을 사라지면 감사하면서 기도할 수 있습니다. 이 집착을 내려놓으시라. 그리고 하나님을 알 때에 애써서 하나님을 알 때, 머리 지식으로 만족하시면 안 돼요. 머리와 그러니까 지식과 테크닉으로 제자 훈련 받으시면 교만해져요. 지식과 테크닉으로 제자 훈련받은 사람들이 다른 교회 가서 목사님들을 어렵게 해요. 목사님 목회 그렇게 하는 거 아니에요? 목회를 왜 그렇게 하세요? 목사님 머리 위에 타고 앉아요. 안 됩니다. 교만하면 안 됩니다. 제자 훈련 받으면 교만하면 안 됩니다. 냉담하고 정지하면 안 됩니다. 제자 훈련받을 때 예수님을 닮아야 되거든요. 예수님은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신 분이에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해야 돼요. 마음이 변해야 돼. 마음이 여러분의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신 예수님을 닮아 가시는 의미에서 하나님을 알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게 닮아 가실 때 머리로만 알지 마시고 가슴으로 묵상하시라.

제가 아까 요즘 묵상하고 있는 구절을 말했죠. 비유라는 것이 인간들 가운데 높임을 받을 때 악인들이 도처에서 날 뛰는 도다. 이거를 자꾸 암송하니까 막 속에서 안타까움이 생기면서 기도가 터져 나오는 거거든. 여러분이 말씀을 묵상하시면 묵상하는 동안에 그 말씀이 여러분 속에 성령의 불이 되는 거예요. 성령의 불이 되면서 막 뜨거워지는 겁니다. 뜨거워 가슴에 불이 붙기 시작해요. 불이 붙기 이것이 바깥으로 터져나가면서 순종하게 되는 겁니다. 이 생활의 체험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내 계명을 지키는 자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여러분이 주의 말씀 붙잡고 한마디라도 붙잡고 삶의 현장에 가서 순종하시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속에 보이지 아니하시고 들리지 않고 만져지지 않지만 나타나 보여주실 줄 믿습니다. 그때 체험하는 거예요. 그때 실감하는 거예요. 그때 부흥의 역사를 겪게 되는 겁니다. 아이고 목사님 다 어두웠는데 저 같은 사람이 뭘 어떻게 합니까? 어두운 세상이 변하겠어요. 그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주신 촛불을 여러분의 자리에서 들고 계시면 돼요. 촛불 들고 제자리 지키면 돼요. 그 사명 감당하시면 돼요. 그러는 동안에 세상을 밝히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 부흥의 소낙비를 갈망하시면서 은혜의 가랑비에 젖도록 하십시오. 여호와께로 돌아가서 세속화를 회개하시고 힘써 여화를 알면서 예수화로 개혁, 개혁, 개혁, 나 자신을 개혁하면서 세상을 개혁하는 쪽으로 가십시오. 그때 하나님의 나타나심, 싸매심, 나타나심을 체험하면서 부흥을 참하게 되고, 예수 생명이 약동하면서 흘러가는 세상에 영향을 미치는 인물들이 될 텐데, 여러분에게 이런 은혜가 넘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요약
오늘 말씀이 우리들의 마음에 깊이 새겨져서 성령을 통해서 변화가 일어날 수 있도록 우리들이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교회적으로 또 국가적으로 부흥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싸매심과 나타나심과 임하심을 체험하도록 역사가 되기를 간구해야 한다. 회복과 부흥의 실체로 가득한 안아주심의 본당에서 이른 비와 늦은 비의 은혜로 충만하게 채우시는 주님께 온 마음과 뜻을 다해 예배하고 감사와 찬양을 온전히 드려야 한다. 영 가족 모두가 우리를 다시 회복시키시며 살리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능력으로 무장되게 되어 힘써 여호와 하나님을 아는 일에 전력투구하는 평생 되어야 한다.
-하나님을 온전히 알지 못하는 데서 시작되었다. 여기서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를 바로 알고 그대로 행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닥치는 불행과 행복의 주권자는 하나님이시다. 때문에, 재난에 빠졌을 때는 그 재난에서 자신을 구원하실 하나님의 처분, 곧 불쌍히 여기시고 건져 주실 것을 바라고 기다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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