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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흥헌신 토요비전새벽예배(주후 2024년 02월 03일) 제목: "교회는 세상의 희망인가?" 말씀: 창세기 20:1~7 대표기도: 윤선효 안수집사님 찬양인도: 예배부 찬양대 사회: 김대규 부목사님 말씀읽기: 윤혜원 자매(청년2국), 전병근(대학1부) 설교자: 주연종 부목사님 ㅡㅡㅡㅡㅡ *창세기 20:1~7, 1 아브라함이 거기서 네게브 땅으로 옮겨가 가데스와 술 사이 그랄에 거류하며. 2 그의 아내 사라를 자기 누이라 하였으므로 그랄 왕 아비멜렉이 사람을 보내어 사라를 데려갔더니. 3 그 밤에 하나님이 아비멜렉에게 현몽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데려간 이 여인으로 말미암아 네가 죽으리니 그는 남편이 있는 여자임이라. 4 아비멜렉이 그 여인을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으므로 그가 대답하되 주여 주께서 의로운 백성도 멸하시나이까. 5 그가 나에게 이는 내 누이라고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 여인도 그는 내 오라비라 하였사오니 나는 온전한 마음과 깨끗한 손으로 이렇게 하였나이다. 6 하나님이 꿈에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온전한 마음으로 이렇게 한 줄을 나도 알았으므로 너를 막아 내게 범죄 하지 아니하게 하였나니 여인에게 가까이 하지 못하게 함이 이 때문이니라. 7 이제 그 사람의 아내를 돌려보내라 그는 선지자라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 네가 살려니와 네가 돌려보내지 아니하면 너와 네게 속한 자가 다 반드시 죽을 줄 알지니라. ----- ▷사회:이제 포에버 팀장으로 섬기시는 주연종 목사님께서 ‘교회는 세상의 희망인가?’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해주시겠습니다. ▶주연종 부목사님 - 아브라함이 그 아내 사라를 자기 아내가 아니라 동생이라고 속입니다. 속인 이유는 사라가 자신의 아내라고 하면은 그 아내를 치료하기 위해 자신을 해칠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그랬다고 11절에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11절 우리 같이 한번 읽어보시겠습니다. *창세기 20:11, 11 아브라함이 이르되 이곳에서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으니 내 아내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나를 죽일까 생각하였음이요. -자기의 목숨을 보존하고 안위를 지키기 위해서 어떤 유익을 얻기 위해서 사라를 자기가 아내라고 속였고 아내를 내어줄 결심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사라도 여기에 동의한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물론 뒤에 보시면 사라가 아브라함의 이복누이라는 표현은 있지만 족보상에는 표현돼 있지 않고요. 또 이복누이라 할지라도 분명한 것은 아내라는 것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곧 아들이 생길 거라고 약속을 주셨어요. 그래서 21장에 이삭이 태어납니다. 부부 사이에 이런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사실도 무시하고 그리고 하나님의 그 약속 백세가 되면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하는 그 약속이 목전에 와 있음에도 그것도 무시하고,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 이렇게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아브라함과 사라는 부창부수인 것 같습니다. 근데 문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거예요. 창세기 12장에 보시면 첫 번째 거짓말을 합니다. 아브라함의 기근을 피해서 이번에 애굽으로 갔을 때, 그 애굽 왕 바로가 사라를 탐낼 것 같아서 그렇게 합니다. 한번 다시 말씀 읽어보겠습니다. *창세기 12:11-13, 11 그가 애굽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그의 아내 사래에게 말하되 내가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 여인이라. 2 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여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13 원하건대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그러면 내가 그대로 말미암아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말미암아 보존되리라 하니라. -이렇게 얘기합니다. 이 정도가 아니고 또 다른 얘기를 하는데요. 아브라함이 직접 한 얘기입니다. 그다음 말씀 같이 보실까요? 창세기 20장 13절에, *창세기 20:13, 13 하나님이 나를 내 아버지의 집을 떠나 두루 다니게 하실 때에 내가 아내에게 말하기를 이 후로 우리의 가는 곳마다 그대는 나를 그대의 오라비라 하라 이것이 그대가 내게 베풀 은혜라 하였었노라. -그러니까 창세기 12장부터 20장 오늘 본문까지 한 20년 정도 간격이 있는데요. 그 20년 내내 자기가 위험에 처할 것 같으면 거짓말을 했다는 것입니다. 가는 데마다 이렇게 해서 내게 은혜를 베풀러 이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이제 부창부수에서 부전자전으로 넘어갑니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이 똑같은 거짓말을 합니다. 이건 26장에 나오는데요. 이번에도 20장에 아브라함이 당도였던 그랄 땅 그랄 땅은 지금의 여러분 잘 아시는 가자지구입니다. 그때 그 사람들이 지금의 이분들은 아니지만 땅은 같습니다. 그럴 땅에 가서 이 이삭이 자기 아내 리브가를 동생이라고 속입니다. 같이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창세기 26:7, 7 그 곳 사람들이 그의 아내에 대하여 물으매 그가 말하기를 그는 내 누이라 하였으니 리브가는 보기에 아리따우므로 그 곳 백성이 리브가로 말미암아 자기를 죽일까 하여 그는 내 아내라 하기를 두려워함이었더라. -똑같죠. 이 사건들의 공통점이 있는데요. 첫째는 본인들이 좀 어려웠을 때, 주로 기근이나 흉년으로 그 땅으로 간 거죠. 두 번째는 이방 땅에서 이방인들 앞에서 이런 일을 했다는 것입니다. 왜냐면은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여기서는 달리 행동해야 된다. 라고 고민했던 것 같습니다 우리가 오늘 이 새벽에 함께 고민하고 싶은 부분이 이 부분입니다. 아브라함 사나가 어떤 사람입니까? 하나님의 현존을 체험한 사람들이에요. 그리고 엄청난 약속을 받았고 누가 하나만 예를 들면 그 앞에서 아브라함 면전에서 소돔과 고모라성이 사라지는 것을 목도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정말 위대하시고 하나님은 무서우신 분이다. 하나님은 복을 주시는 분이기도 하지만 우리를 심판하시는 분이다. 이걸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이 아브라함과 사라였습니다. 근데 이 사람들도 어떻게 했습니까?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세속 사람들 앞에서는 거짓말을 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외면하고 무시하고 이렇게 행동을 했다는 사실을 우리가 한번 우리의 삶에 적용해 보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이렇게 살고 있죠. 어려울 때에 세속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 앞에서 날마다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삶 가운데에서 우리가 우리의 믿음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어렵다는 것은 아브라함과 사다가 보여주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세속 가운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을 위해서 하나의 장치를 만들어주셨는데 그것이 뭐냐면 공동체인 것입니다. 혼자 살지 말고 모여서, 하나님의 사람들다운 삶의 문화를 형성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그 가운데 두고 지내라. 이것을 ‘교회’라고 말하죠. 교회는 ‘카할’ 또는 ‘에클레시아’라고 다들 알고 계실 텐데요. 이 원래의 뜻이 무엇입니까? 불러냄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어디에서요? 애굽에서, 또는 세속 사람들 가운데에서,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로부터 불러 받아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 공동체로 만들어주신 것이 교회입니다. 이 교회를 주신 목적 가운데 하나가 뭐냐 하면은 여기서 서로 살피고 돕고 섬기면서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 앞에 섰을 때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을 위해서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그렇게 힘을 주시기 위해서 카할과 에클레시아, 불러냄을 받았다는 사람들이 공동체 교회를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칼빈은 교회를 신자의 어머니와 같다. 라고 표현했어요. 어머니는 무엇입니까? 우리를 양육하기도 하고 때로는 훈육하기도 하시고 우리를 잘 자랄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보호해 주십시오. 교회가 마치 그와 같다. 교회에 와서 우리가 양육되고 훈련되고 세상에 나가 잘 살 수 있도록 힘을 주는 곳이 교회다. 라고 칼빈은 설명한 것 같습니다. 성경을 보면 교회의 사명을 세 가지 정도로 말씀하고 있는데, 첫 번째는 먼저 교회를 통해서 너희들 각자를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 세워가라. 두 번째는 교회를 통해서 온전하게 세워진 너희가 세속 사회를 섬겨라. -세속 사회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공동체가 되도록 확장시켜 나가라. 세 번째는 그러므로 이 교회를 잘 지키고 보존해라 -이런 사명을 주신 것으로 요약이 됩니다. 교회를 통해 내가 살고 남도 살리고 가정도 살리고, 지역사회도 살리고 국가도 살아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교회는 그냥 우리만의 모임이 아니고 교회의 머리는 누구십니까? 예수님이시죠? 우리는 교회의 그리스도의 몸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연결돼 있는 교회이기 때문에 우리가 세상을 살리고 가정을 살리고 교회 나오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근거가 무엇이냐 그것은 교회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님께 있기 때문에 교회가 세상의 소망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회 안에 교회가 있고 없고는 굉장한 차이가 있습니다. ※제가 독일 예를 잠깐 말씀드리면요. 1949년에 동서독이 분단되기 전에 독일의 그리스도인은 약 인구의 80%에 달했습니다. 40년 동안 분단이 이루어졌고, 독일 교회는 약 30년 동안 분리가 돼 있었어요. 참여한 10년 동안은 같은 교단이었습니다. 그런데 30년이 지나는 동안에 동독 교회의 크리스찬 수가 절반 이하로 줄어들게 됩니다. 동독 정부가 전도를 못하게 했습니다. 새로운 교회를 짓지를 못하게 했습니다. 목회자 양성을 못하게 했어요. 그래서 세대 계승이 안 된 상태로 독일 교회가 이제 주저앉게 되고, 동독교회의 모든 살림은 서독 교회가 도와줘야만 가능하도록 교회를 완전히 없애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교회와 함께 동독도 망한 것입니다. 우리가 북한의 비대칭 무기로 핵을 지금 들고 있는데요. 여러분, 핵무기는 굉장한 위협입니다. 우리가 정부가 공식적으로 발표한 발표했다기보다는 국회에서 답변은 당시 통일부 장관의 보고에 의하면 핵무기가 약 60개 정도 있다. 라고 보고했어요. 이게 한 8년 전 얘기입니다. 학자들은 한 200개 정도 가지고 있을 거라고 얘기합니다. 이건 굉장한 위협인데요. 전 세계 사람들이 놀라는 것은 대한민국 사람들은 아무 걱정을 하지 않는다. 비대칭 무기라고 하죠. 북에는 있지만 우리에게 없는 걸 비대칭 무기다. 무기끼리 다 대결을 하면은 다 상제가 되는데 하나 남는 게 핵무기죠. 제가 군목으로 있을 때 농담 삼아 이런 말을 했어요. 북한에 있는 모든 병과들, 보병, 포병, 공병 있잖아요. 모든 평가들을 다 나오라 그러고 나만의 모든 평가가 다 나가서 붙으면 담는 평가가 나만의 우리 대한민국 군대에 하나가 있다. 뭐겠어요? 군목이죠. 여기에 비대칭이죠. 거기에 인한 없지만 우리에게 있어요. 우리 핵의 비대칭이라는 현재 구도를 확인하고 있지만 영적으로 볼 때에는 북한에 없는 게 여기 하나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교회입니다. 북한은 왜 저렇게 어려운 줄 아세요? 북한 사회에 북한 사회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백성을 통해서 온전하게 할 뭐가 없는 것입니까? 교회가 없는 것입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 남북의 문제들이 다 해결되고 통일되고 북한 사회를 분석하고 통일 이후 과정을 분석할 때 이 부분을 반드시 거론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교회가 있고 없고는 중요한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교회가 희망입니다. 교회가 유일한 희망입니다. 내가 유일한 희망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교회의 머리이시기 때문이 우리 자체는 희망할 수가 없지만 예수님이 우리의 머리이시고 부족하지만 우리는 예수님의 몸이다. 우리가 주님께 붙어 있는 주님께 붙어 있는 그런 공동체로 존재하는 한은 교회는 세상에 유일한 희망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 세속 사회의 기준은 인간입니다. 그래서 고대 철학자가 인간은 만물의 척도다 이렇게 얘기를 하죠. 인간의 모든 것의 기준이에요. 제가 좀 과하게 표현하면 해가 동쪽에서 뜨는 이 자연의 법칙을 꼭 해가 동쪽에서 떠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바꾸려고 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내가 원하면 할 수 있다. 라고 믿는 것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그 사회가 가진 방향성입니다. 대표적으로 우리가 매 주일마다 기도하는 거 있죠. 동성애 문제 동성애 문제 이것을 법제화해서 이걸 비판하면은 벌금을 매기고 벌을 주겠다. 차별금지법 이것이 바로 그와 비슷한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죠? 그 외에 다른 성은 존재합니까? 존재하지 않습니까? 존재하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 국회에서 계류 중에 있는 차별금지법에는 남자와 여자, 그 외에 다양한 성을 인정하는 것으로 명문화돼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설교 시간에 남자와 여자밖에 없다. 라고 하면 딱 걸리게 돼 있습니다. 어느 국회의원이 그런 말을 했어요. 만약에 차별금지법을 어기면 이런 식으로 설계하면 목사가 처벌받습니까? 라고 물었더니 그 법안을 발의한 국회의원이 그 목사님들 앞에서 분명히 얘기했습니다. 처벌받는다고,,, 자연의 질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그 창조의 원리 그걸 뒤집는 것을 법에 명문화해서 그걸 법제화해서 처벌하겠다는 거예요. 이게 바로 뭡니까?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세속 사회의 사람들이 가진 방향성이 무엇입니까? 창조주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창조의 질서를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을 창조주의 자리에 올려놓고 인간이 원하는 대로, 인간이 만물의 척도이기 때문에 인간의 기준이기 때문에 그렇게 자기의 인생뿐만 아니라, 이 사회 자체를 인간의 손으로 가져오겠다고 하는 그런 방향성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 세상의 방향성인 것이 교회는 그렇지 않죠?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 말씀이 있고 예수님께서 항상 우리에게 또 말씀하시고 예수님이 우리의 왕이시고 통치자이시고 우리의 구원자이시고 창조주 하나님이 주신 말씀대로 사는 것이 우리에게 가장 유익하고 그것이 우리를 가장 의미 있는 삶으로 인도하고 우리는 그것을 믿는 사람들이고 그것만의 기준이라고 믿고 그걸 이 세상에 확장시키라는 사명 가운데 교회를 세상 가운데 두신 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 두 세력 간에는 갈등과 대립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 그걸 돌파해서 그 앞에서 두려워하지 말고 뚫고 나가라고 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고 믿음이 좋았던 아브라함도 그 상황 속에서 주저앉았던 그런 장면을 우리가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세상 속에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백성들이 믿음을 지키며 사는 것이 쉽다는 것입니까? 어렵다는 것입니까? 어렵습니다. 그래서 공동체 안에서 우리가 서로 하나 되고 서로를 바라보면서 힘을 얻고 그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도록 힘쓰는 그런 공동체를 우리가 유지해야 된다는 것을 교훈으로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60년 70년대에 우리 사회가 둘만 낳아 잘 기르자. 조금 있다가 뭐가 나왔죠? 둘도 많다. 제가 살펴보니까요. 초등학교 교과서에 아이가 많은 짐을 이렇게 샀대요. 삽화를 그려놓고요. 지구가 많아서 창피하다고 써놨어요. 성경의 원리는 무엇입니까? 생육하고 번성해라. 소위 말해서 출산 조절, 벌스 컨트롤(birth control), 이건 사람이 할 게 아니다. 주시는 대로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죠. 세상은요. 상황을 보니까 인구가 너무 많아 줄여야 되겠다. 계획을 세우고 조절을 하게 되죠. 이때 교회가 뭐라고 말했어야 됐습니까? 그건 잘못된 것이다. 이건 우리의 영역이 아니다. 그렇게 말했더라면 저는 그 당시에 정부나 언론이나 사회가 교회의 그런 가르침을 받아들였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그냥 그렇게 했을 거예요. 그러나 지금에 와서 역사를 돌아보면서 뭐라고 얘기하겠습니까? 그때 교회가 옳았다. 교회만이 옳았다. 교회가 그런 말을 한 근거를 보니까 성경이었다. 교회는 그냥 사람들의 모임이 아니고 진리를 지키고 진리를 체계화한 하나님의 세상을 지키는 장치였구나! 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이런 교훈을 받은 우리 한국교회는 지금 지금 우리 사회가 귀를 기울이지 않더라도 말해야 됩니다. 뭘 말해야 됩니까? 동성애는 잘못된 것입니다. 차별금지법은 잘못된 것입니다. 이런 식의 사회 분위기는 잘못된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지금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던 하나님 앞에서 그런 말을 하는 그런 가치 체계를 가진 공동체로 교회를 여기에 세워주신 것입니다. 그 일을 하라고 또 그 일을 하는 근거는 우리가 아니라 예수님이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교회를 가까이 하는 것은 마치 건강검진을 받는 것과 같다. 라고 생각해 봤습니다. 생활 습관 병이라고 하는 게 있다는데요. 유전이나 사고로 이렇게 어려움을 당하는 게 아니고 생활 습관을 통해서 자기도 모르게 질병이 오는 거죠. 잘못하면 평생 그 질병을 가져가는 것인데 당뇨나 고혈압 이런 것들이 거기에 해당된다고 합니다. ※제자 지금 이제 건강검진을 받고 대사증후군에 문제가 있다고 해서 다시 보건소에 가서 추가 검진을 받았습니다. 제가 그 의사 선생님하고 간호사님들하고 이런 분들하고 대화하면서 그랬어요. 나는 아무런 이 몸에 이상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나는 배도 안 나오고 운동도 정기적으로 하고 그랬더니 선생님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여기 수치가 있어요. 이러는 거, 느낌이 중요한 게 아니에요. 그리고 지금은 못 느끼는 게 맞는데요. 수치로 보면 지금 관리 안 하면 나중에 느낄 때가 되면 늦습니다. 평생 고생합니다. 그러더라고요. 제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제가 음식 조절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아마 더 건강해지지 않더라도 뭐 더 나빠지진 않겠죠. 여러분, 교회에 나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 내 느낌에는 괜찮은 것 같아 아니 그게 아니에요 뭐를 통해서 검증받아야 됩니까? 텍스트, 하나님의 말씀, 이걸 통해서 날마다 검증받고 그 말씀 앞에 우리가 서야 되고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의 존전 앞에서 내 삶을 보여드리고, 하나님이 이렇게 저렇게 하시는 말씀을 통해서 다시 한 번 우리의 삶이 점검되고, 조정되고, 교정되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세상 속에 나가서도 보다 온전한 모습으로 세상을 이기는 그리스도의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정기적으로 6개월 뒤에 또 뭐라고 그러더라고요?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듯이, 교회에 정기적으로 나오셔서 예배드리고 말씀을 듣고 훈련받고, 교육받고 그리고 또 무엇을요? 텍스트를 놓고 느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놓고 그 말씀 앞에 서는 경험들을 정기적으로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교회를 한두 주 빠져도 별 문제가 없을 것 같지만 그게 그렇지가 않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은 나도 모르게 느낌이 올 때가 있어요. 그럴 때는 이미 늦은 것입니다. 예배만 잘 참석해도 수명이 8년 길어진다고 하는 보고가 있습니다. 8년 오래 사는 게 문제가 아니고요. 8년 오래 살면서 더 오랫동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세속 사회에 영향을 주는 그런 보람 있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 우리에게는 중요한 것이죠. 그래서 교회는 은혜(恩惠)의 저수지(貯水池)라고 생각합니다. 담임 목사님 늘 말씀하시죠. 교회는 은혜의 저수지이다. 교회에 와서 이 생명의 말씀을 듣고 목을 축이셔야 됩니다. 은혜는 교회는 또 사역의 병참기지(兵站基地)이죠. 이곳에 와서 무기를 가지고 나가셔야 됩니다. 세상에 있는 무기로는 세상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제가 최근에 서점에 가서 어떤 책을 봤는데 이렇게 책의 가판대에 수십 권이 디스플레이가 돼 있더라고요. 지나가다가 안 볼 수가 없어서 보게 됐어요. 잠깐 봤다가 다시 돌아가서 그 책을 자세히 봤습니다. 책 제목이 뭐였냐면요. ‘하는 일마다 잘 되리라’ 였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이 성경 말고 또 한 책을 쓰셨나 했어요.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말씀 아닌가요? 하는 일마다 잘 되리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의 그 근거가 어디 있습니까? 가서 봤더니 저자가 사람이더라고요. 여러분, 세상은 이렇게 우리를 잘못된 길로 인도합니다. 그 책 내용을 보면 그냥 수필 쓴 겁니다. 그 책 내용에 문제가 있다는 게 아니라 오늘 말씀을 놓고 봤을 때에 정말 우리에게 너희들의 삶을 책임지고 인도할 것이다. 라고 말씀하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밖에 없으십니다. 여러분 아브라함과 사나가 약속도 무시하고 범죄 했죠. 그리고 잘못하면 이삭이 태어나는 일에 문제가 있을 뻔했어요. 그때 어떻게 하십니까? 하나님은 주신 약속을 이행하시기 위해서 개입하십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하나님이 지켜내십니다. 하나님 우리의 삶 가운데 개입하셔서 마침내 우리의 삶을 온전한 하나님의 자녀의 삶으로 인도하시는 책임과 권위를 가지고 계시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그분의 이름으로 모인 공동체가 세상에 유일한 희망인 것입니다. 저는 우리 어르신들에게 잘 있게 전도할 때 가끔 탑골공원에 가서 노인 분들에게 전도할 때 이렇게 얘기합니다. 제가 한두 번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요. 교회에 오면 삽니다. 교회에 오면 더 잘 삽니다. 교회에 오면 영원히 삽니다. 그러니까 교회에 오세요. 교회가 세상의 희망입니다. 제가 군에 있을 때, 병사들 전도하고 세례 다 한 다음에 꼭 따라하라고 하는 게 있어요. “나는 예수님을 끝까지 따르겠습니다. 나는 평생 교회를 떠나지 않겠습니다. 나는 예배의 자리를 끝까지 지키겠습니다.“ -이걸 따라하라고 얘기를 합니다. 오늘 이 말씀을 여러분들에게 같이 나누고 싶습니다. 여러분 오늘 잘 오셨습니다. 사랑의 교회 다른 교회에도 아주 훌륭하고 좋고, 또 사랑의 교회에도 정말 좋은 공동체 이곳에 오셔서 영의 말씀을 듣고 목을 죽이시고 또 세상에 나가 싸울 무기를 장착하시고 8년을 더 살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그 은혜를 수단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그 일에 아름답게 쓰임받기를 소망합니다. ♣요약 1대-우리 믿음의 1대가, -영적 전쟁의 상황과 두려움을 믿음으로 인내하며 승리하는 삶을 살아내야 한다. 우리의 이때의 눈물의 기도를 기억하여 주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가 숨겨지는 곳마다 의의 열매 은혜가 맺어지게 하실 것임을 확신하고, 하나님의 일하심이 역사가 되는 것을 목도하므로 광야길 중에 받은 언약의 말씀들이 이루어지는 것을 눈으로 바라보는 체험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세속 사회 속에서 예수님의 머리이신 교회를 통해 날마다 온전해질 뿐 아니라 세상을 변화시키는 견실한 일꾼으로서 쓰임 받아야 한다. 믿음의 1대로서 본이 되는 삶으로 살아내는 삶 가운데 말씀과 기도로, 섬김으로 개인과 공동체에 헌신해야 한다. 2대- 믿음의 2대가, -격동의 시대 속에서도 참 하나님과 참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진리를 수호하며 한국교회의 폭발적인 부흥의 때를 희생과 헌신으로 섬긴 믿음의 이해를 더욱 앞서 예비할 수 있는 은혜로 풍성히 채워주심을 믿고 사는 날 동안 복음의 능력으로 충만하고 능력을 체험하는 영적 르네상스를 누리는 자가 되어야 한다. 믿음의 2대들이 사랑의 교회와 한국교회의 굳건한 기둥으로 쇠퇴해 가는 십자가 복음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생명의 진리를 수호하는 데 앞장서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지켜나가며 선대의 신앙을 후대에 전하는 수선 대후의 마중물로 쓰임 받아야 한다. 3대-믿음의 3대가, -진리와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변함없는 진리와 은혜가 믿음의 3대 모든 청년들의 마음과 생각을 붙들어 주심을 확신하고 모든 악한 영과 사단의 어두운 공격으로부터 빛의 자녀들을 눈동자와 같이 지키심의 사랑 속에 다니엘, 에스더와 같이 대체 불가능한 믿음의 용사, 기도로 승리하는 기도의 용사들이 되어야 한다. 우리 3대인 7천의 청년 기도용사들이 캠퍼스로 일터로 보냄 받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임을 기억하고 주님께서 찾으시는 영혼들을 향해 진심으로 나아가 생명으로 복음을 전하는 일에 전력투구하는 소금과 빛 된 사명자로 살아야 한다. 세상 가운데서 혼탁한 세속주의에 물들지 아니하고, 하나님 진리를 붙잡고 영적 군사가 되어서 주님의 날개 아래 주님의 온전한 기쁜 자녀로 살아가야 한다. 4대-믿음의 4대가, -우리 믿음의 4대가 하나님의 이름이 사라져가는 이 땅에 세상이 줄 수 없는 복음의 기쁨으로 말미암아 믿음의 4대가 살아계신 하나님과 그분의 일하심을 증거 하는 제자의 삶을 살아내야 한다. 강철 신발과 기쁨의 면류관을 쓰고 기도에 지팡이를 들 때마다 모든 꺾어진 뼈들로도 즐거워하는 체험을 맛보며, 하나님의 신 대 기적 역사가 집필되는 현장이 되고, 사기충천한 7천기도 용사의 천둥소리 같은 기도를 통해 한국교회에 주신 ‘2033-50 비전’에 더 강력한 불이 떨어져서 성령 충만함 속에서 우리 주위에 만연해 있는 모든 영적 패배주의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묻은 복음으로 극복하고 사랑의 교회, 다음 세대가 이 땅의 그루터기가 되어 세상을 뒤집어 놓는 하나님의 주역들로 쓰임 받아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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