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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저녁기도회(주후 2024년 01월 04일)
제목: "심령이 가난한 자는"
말씀: 마태복음 5:3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찬양대

설교자: 임상규 부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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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5:3,
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ㅡㅡㅡㅡㅡ

▷기도
우리의 인생의 주관자 되시며 믿음의 새날을 여시는 하나님 아버지 2024년 새해를 시작하는 우리에게 사는 날 동안 능력 있게 하시고 날마다 주님과 교통하는 은혜를 허락하여 주시니 감사와 찬송을 올려드립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이 수요 저녁 기도에 모인 모든 영 가족들을 기억하사 삶의 모든 눈물과 고통을 하나님께 아뢰며 나아갈 때 하나님이 주시는 응답을 경험하는 복된 주님의 백성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 시간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기를 원하오니 주의 성령으로 강건하사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과 신비를 깨닫는 거룩한 시간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생명 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나님의 새 은혜의 역사가 나타나는 수요 저녁 기도회에 오신 우리 모든 성도님들을 진심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오늘 수요 저녁 기도회를 통하여서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는 회복을 넘어 부흥의 실체를 경험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마태복음 5장 3절 말씀입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성경은 신약 성경 5페이지입니다. 마태복음 5장 3절 1절의 말씀을 저와 함께 합독하시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아멘 새해가 시작되면 우리는 이렇게 인사를 나눕니다.

어떻게 인사하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우리 한번 양옆으로 이렇게 인사했으면 좋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우리 모든 성도님들 가운데 하나님의 복이 임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라는 인사를 들으면 기분이 어떻습니까? 좋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복 받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복을 받아야 되는 존재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새로운 2024년의 문이 열렸습니다. 하나님께 어떤 복을 받기를 원하십니까? 믿음의 복이요? 네 우리가 많은 복들을 아마 원할 것인데요. 오늘 우리가 한 번 더 생각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복을 받길 원하는 것 그 이상으로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를 원하시는 분이 계시다. 라는 것입니다.

‘성 어거스틴은 ‘하나님의 도성’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언제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려 하신다.”-성 어거스틴-
-하나님께서는요. 언제나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려 하신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두 손은 언제나 가득 차 있어서 그 좋은 것들을 받지 못한다. 라고 어거스티는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선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기를 원하시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기를 원하시는데 그것도 언제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면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이 놀라운 축복 언제나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복을 주기를 원하시는데 우리는 과연 이 복을 얼마만큼 누리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오늘 우리는 산상수훈(山上垂訓)이라 일컬어지는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전하셨던 그 첫 번째 메시지, 그 가르침 속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사랑, 즉 성도의 특성과 성도의 복이 무엇인지를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래서 2024년을 시작하는 오늘 이 시간,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그 복으로 우리 모두 충만해지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팔복의 구조는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복을 받는다. 이런 이러한 복을 받는다. 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혹자들은 말하기를, 하나님의 복을 받기 위해서는 우리가 심령을 가난하게 해야 해. 하나님의 복을 받기 위해서는 우리가 애통해야 해. 하나님의 복을 받기 위해서는 의외의 줄이고 목이 말라야 해. 라고 말하는 것이죠. 마치 도덕적인 메시지처럼 이 팔복을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팔복은 이렇게 해석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복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가장 놀라운 축복이 무엇입니까? 바로 구원의 은혜입니다. 구원의 은혜는 우리의 조건을 따라서 우리의 위치를 따라서 우리의 어떠함에 따라서 우리 가운데 주신 것입니까? 아니죠. 하나님께서 주신 이 복은 우리의 공로와 우리의 상태와 우리의 어떠함과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전적으로 우리에게 부어주신 은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도의 삶은요. 은혜로 아 내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입었구나!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서 살아가는 자구나! 라는 것을 깨닫는 것, 이것이 바로 성도의 삶입니다. 이 복을 누리는 자는요. 삶속에 새로운 질서가 역사하기 시작합니다. 이전에는 저주와 심판이 왕 노릇하였는데 이제는 내 삶에 아무런 조건 없는 하나님의 사랑이 하나님의 은혜가 새로운 질서로 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팔복은요 너희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 이렇게 살아야 복을 받는다. 라는 그런 메시지가 아닙니다. 도리어 팔복은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아는 자들이 이미 이러한 하나님의 복을 받은 상태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람들은요. 이제 이 복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성도의 삶 삶속에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그 놀라운 은혜의 모습이 무엇인지를 우리 가운데 보여주는 것이죠. 성도가 어떠한 자인지를 보여주는 그 첫 번째 속성으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우리 다시 한 번 마태복음 5장 3절의 말씀을 다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마태복음 5:3,
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첫 번째 속성으로 무엇이라 말씀하십니까?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심령이 가난함으로 살아가는 자들이 바로 성도이다. 심령이 가난함으로 살아가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어떤 자들입니까? 바로 심령의 내 마음속의 가난함이 무엇인지를 아는 자들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부분을 잘못 해석하여 이 세상에 가난하게 살아야 영적으로 부요하고, 가난하게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의 영광이 된다. 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무엇이라 말씀하셨습니까? ‘심령이 가난한 자’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돈이 없는 가난, 집이 없는 가난, 명예가 없는 가난이 아닙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죠. 그렇다면 우리에게 다가오는 질문은 바로 이것입니다.

도대체 심령의 가난함이란 무엇일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심령의 가난함이란 무엇일까요?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을 바라볼 때. 하나님 제가 아무리 저의 모습을 살펴보아도 이 모든 것은 저의 실력과 저의 소유입니다. 라고 내세울 만한 것이 단 한 가지도 없는 상태, 그 상태를 심령이 가난한 상태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죠. 우리는 살아가면서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세상의 가치관과 세상의 시선이 우리에게 너무 깊숙히 뿌리 박혀져 있습니다. 그래서 마치 세상에서 말하는 것처럼 부자가 되고, 돈을 많이 벌고, 성공하고, 좋은 대학 가고, 시집 장가 잘 가고, 무병장수하는 것이 복인 것처럼 여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심령이 가난함이라는 것은요. 하나님 앞에 내세울 것이 하나도 없는 마음, 바로 이 마음이 예수님께서는 복되다. 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즘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고 계십니까? 신앙생활을 하면서 얼마나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시선으로 나의 모습, 나의 마음을 살펴보고 계십니까? 혹 신앙생활을 하면서 위축될 때가 있잖아요. 또 때때로는 자긍할 때도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위축될 때, 반대로 작용할 때 그렇게 나오는 결과가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본 결과입니까? 아니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세상의 기준으로 나를 바라보면서 아 이 정도면 나도 괜찮네. 이 정도면 나도 좀 낫지. 라고 생각하는 그 생각으로 내 마음이 요동치고 계십니까? 사람들이 칭찬한다고 해서 우쭐해지고, 사람들이 비난한다고 해서 위축되는 것, 그것은 이미 하나님의 시선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심령의 가난함은요. 오직 하나님의 눈으로, 나의 깊은 곳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하나님밖에 의지할 것이 없는 마음, 하나님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마음을 갖는 것. 그 마음이 심령이 가난한 마음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정말로 성도이십니까? 성도는요. 다른 그 무엇으로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속에 정말로 심령의 가난함이 있는가, 하나님 앞에 나아갔을 때 하나님 저는 하나님 보시기에 자랑할 것이 단 한 가지도 없습니다. 오직 주님 외에 다른 그 무엇으로 내 삶 가운데 만족할 것이 없습니다. 라고 고백하며 살아가는 것이 바로 성도의 삶인 것입니다. 하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요. 참 의지할 것이 많이 있습니다. 입술로는 이렇게 말할지 몰라요. 하나님 제가 주님을 의지해요. 저는 주님만 의지해요. 저는 주님의 평가가 제일 중요해요. 라고 우리가 말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을 곰곰히 되돌아보면 예수님보다 더 의지하는 것이 참 많습니다. 내가 이루어 놓은 성과, 나의 남편, 나의 아내, 나의 자녀들 의지할 것이 참 많습니다. 나는 이 정도면 되겠지. 라는 마음이 우리 안에 가득한 거예요. 우리 안에 나의 의와 나의 요구와 나의 피로가 가득하니까 그곳에 하나님이 거할 곳이 없게 된 것입니다.


※제가 전도사 시절에 조금 고생을 했습니다. 믿어주세요. 서울의 머물 곳이 없었기 때문에 금 토 주일을 교회 지하에 칙칙한 유치부 예배 실에서 3년을 지내야 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겨울날이 됐습니다. 가장 추운 날이었는데 마침 보일러가 고장이 나버린 겁니다. 유치부실에 있던 이불 대여섯 개를 다 꺼내어서 몸을 둘둘 싸고 잠을 자려는데 잠이 안 오는 것입니다. 너무 추워서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왜 저를 이렇게 고생시킵니까?” 편안하게 대전에 있었으면 좋았을걸. 그때 주님께서 이런 마음을 주시더라고요. 상규야 나는 ‘이 땅에 있을 때 머리 둘 곳도 없었다.’ 그 이후로는 하나님 앞에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3년의 시간이 흘러서 다른 교회로 옮기게 됐죠. 그리고 2년이 흘러 목사 한수가 목사 안수를 받은 이후에, 다시 전도사 시절에 섬겼던 그 교회에서 전임 목사로 불러주셨습니다. 전임 목사가 되니까 사택을 제공해 주십니다. 너무나도 편안하고 혼자 지내기에는 너무 넓은 집이었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저의 마음에 전도사 시절에 가졌던 가난한 마음이 사라지는 거예요. 이 집이 내 집도 아닌데, 이제 누워 올 곳이 편하고 씻을 것이 편하고, 내가 편안하게 머물 곳이 생기니까, 제 마음 가운데 가난한 마음이 사라진 것이었습니다. 이 마음이 든 이후에 하나님 앞에 이렇게 결정을 했습니다. 주님 저 에어컨 달지 않겠습니다. 선풍기도 없이 살도록 하겠습니다. 네 웃기시죠. 왜 그랬냐면요. 제 마음이 부해질까 봐 가난한 마음을 놓치게 될까 봐 그렇게 살았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요. 자기 자신이 의존할 만한 것이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 자입니다. 자기 안에 신뢰할 만한 것이 없어서 철저하게 하나님 앞에서 무능력을 경험하는 자입니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 나의 나 될 것이 없다는 것을 아는 자가 바로 심령이 가난한 자입니다. 제가 이렇게 말씀을 드릴 때, 우리 성도님들 가운데 머릿속에 스쳐지나가는 하나의 장면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처음 예수님 만났을 때, 정말로 그 예수님의 사랑을 알고 그 사랑으로 말미암아 내 마음이 깨어졌을 때, 그때 우리의 마음이 얼마나 가난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 외에는 아무것도 자랑할 것이 없다. 라는 그 마음, 그것이 바로 이 자리에 모인 우리 모두의 고백이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우리 안에 이 은혜와 이 감격이 사라진 거예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반응이 사라져 버린 거예요. 우리가 사는 사회는요. 사람들을 참 다양한 것으로 평가를 내립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학벌로 사람을 평가합니다. 어느 대학 나왔네. 무엇을 공부했네. 로 평가합니다. 신분을 가지고도 평가를 하죠. 어느 집안이고 어느 회사를 다니네. 라는 것으로 그 사람을 평가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그 사람이 성취한 것으로 평가를 내리기도 합니다. 이런 업적을 냈고 이런 성공을 거두었네. 훌륭하네. 저 사람은 복을 받았네. 학벌로 신분으로 성공으로 복을 받았는지를 규정하는 것이죠. 그런데 참 무서운 것이 이 세상의 방식이 우리 성도들의 삶속에도 깊숙이 스며들었다. 라는 것이죠.

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도는요. 이 세상의 평가로 결정되는 사람이 아닙니다. 사회의 경향과 사회의 평가와 상관없이 하나님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볼 줄 아는 그 사람, 그 사람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이고 심령이 가난한 자인 것이죠. 다시 한 번 우리는 기억해야 됩니다. 어느 순간부터 나의 마음 가운데 이 가난한 마음을 놓쳐버렸는가 언제부터인가 나는 이 가난함을 잃어버린 것일까? 우리는 진지하게 하나님 앞에 고민해 보아야 될 것입니다. 이 마태복음 5장 3절 ‘심령이 가난한 자’라는 이 표현 속에 이 가난함이라는 이 단어를 헬라어 ‘푸토코스’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푸토코스라는 단어에는 중요한 두 가지의 함의를 담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이 ‘푸토코스’는 가난함인데요. 어떤 가난함이냐면 바로 다른 누군가가 지원해 주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가난함입니다. 누군가가 이 사람을 도와주지 않으면 이 사람은 결단코 살아갈 수 없는 것이에요. 절대적 의존을 말하는 가난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하는 이 심령의 가난함이라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요. 우리의 심령이요. 하나님을 향하여 ‘주님, 저는 주님이 없이는 도대체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사람입니다’. ‘주님의 은혜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연약한 자입니다.’ 라고 고백하는 이 가난함이 그 자리 가운데 깊숙하게 자리 잡고 있는 것이죠. 이푸부트코스라는 단어의

두 번째 함이 된 의미는요. 바로 갈망함입니다.
-그냥 없는 상태 이제 끝났구나라고 자기의 삶을 단정짓고 비하하는 것이 아니라 결단코 포기하지 않는 강렬한 갈망함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 바로 이 푸토쿠스라는 단어 안에 담겨져 있는 의미인데요. 회당 장 야이로가 하나님을 향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찾으며 이렇게 말하죠. 예수님, 예수님, 주님께서 오셔야만 저의 딸을 살릴 수 있습니다. 주님이 오셔야만 주님이 오셔야만 저의 딸을 살릴 수 있습니다. 라고 고백하는 그 간절함, 바로 이 간절함이 이 심령의 가난함이라는 단어 속에 담겨 있는 의미인 것이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즘 하나님 앞에서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고 계십니까? 우리의 심령이 진실로, 우리의 심령이 진실로 하나님이 없으면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라는 이 가난함이 우리에게 있느냐라는 말이죠. 아니면 그것은 옛날 추억이야, 은혜 받았던 것, 가난했던 것, 그때 펑펑 울었던 것, 그것은 옛날 추억이야, 지금은 적용되지 않아! 라고 우리가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요. 이 심령의 가난함이라는 것은 우리가 처음 예수님을 만났을 그때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주님 앞에 서는 그날까지 우리의 신앙생활에 매일매일 그 이루어지는 순간, 순간마다 우리의 심령의 가난함이 필요하다. 라는 것입니다.

성경에 심령이 가난한 사람들이 참 많이 나옵니다. 특별히 신약 성경에 발견되어지는 한 사람이 있는데요. 그 사람은 바울입니다. 바울은 어떤 사람입니까? 신약 성경을 13편이나 직접 성경을 기록한 탁월한 학자요 목회자요 선교자요 설교자요. 주님의 강력한 종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기록한 성경의 내용을 하나씩 하나씩 살펴보면요. 그는 자신의 탁월함, 능력으로 우쭐해 할 수 없었던 사람이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의 사역 초창기에 그가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편지를 쓰며 이렇게 고백합니다. 고린도전서 15장 9절의 말씀인데요. 그가 이렇게 말합니다.

*고린도전서 15:9,
9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나는 사도들 가운데 나는 사도들 가운데 가장 작은 자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고,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할 수 없는 저는 가장 작은 자입니다. 라고 고백하는 거예요. 예전에 이 본문을 보면서 이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사울 참 겸손하다. 겸손한 사람이네. 나도 겸손한 사람이 되어야지.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이 자기의 겸손을 드러내기 위해 이 말을 했던 것이 아닙니다. 얼마의 시간이 흐릅니다. 그가 다시 에베소 교회 성도들을 향하여 편지를 써내려갑니다. 에베소서 3장 8절의 말씀을 우리 함께 읽어볼까요?

*에베소서 3:8,
8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아멘 사도가 아닙니다. 사도들 중에 작은 자가 아니라,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내가 더 작은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성도들은 누굽니까? 바로 바울이 가르쳐 키워낸 하나님의 사람들이죠. 그런데 그 모든 성도들보다 내가 더 작은 자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사도바울은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런 말을 전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의 인생의 노년에 이르렀습니다. 디모데전서 1장 15절의 말씀 보니,

*디모데전서 1:15,
1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오.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무엇이라 고백합니까? 괴수니라,
-바울이 무엇이라 말합니까?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겸손을 가장하여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머물고, 하나님 앞에 또 머물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 머물다 보니 자기의 실체를 보게 된 것이에요. ‘오호라 나는 권고한 자로구나. 내 안에 선한 것이 하나도 없구나. 나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그 은혜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죄인이구나.’ 이 마음을 이 모습을 바울은 지속적으로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하나님 앞에 계속적으로 가난한 심령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세상은 겸손을 미덕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겸손은 이런 것 아닙니까? 자기 자신을 낮추고 남은 나를 높여주는 것, 것이 이 사람 참 겸손하다. 고 말하죠. 그러나 성경은 그것이 외식이요 거짓말이다. 고 말하고 있습니다. 손을 가장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전혀 상관없는 것이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나님 앞에서 나 자신을 바라보고, 하나님 앞에서 나 자신을 아는 것 그래서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본 나의 실체를 알기 때문에 그 실체 앞에서 철저하게 참말을 하고 참 진리를 선포하는 것, 이것이 바로 바울의 고백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느덧 2024년도 새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새해에 어떤 복을 구하고 계십니까? 진실로 내 마음 깊은 곳에 정말로 내가 갈망하는 그 복이 무엇입니까? 내 신앙의 중심에 예수님이 말씀하신 그 복을 정말로 구하고 계십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기를 원하시는 것, 우리의 마음 가운데 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마음이 있는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 저는 하나님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사람입니다. 라는 이 고백이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 천국은 심령이 가난한 자의 것이다.’ 천국은요 하나님의 구원이요, 하나님의 백성들이 살아가는 삶의 현장 가운데 임하는 하나님의 역사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였습니다. 심령이 가난함으로 그에게 주어진 삶의 모습은 어떠했습니까? 사람들에게 매 맞고 버림받고, 잘 곳 없고 도망쳐 다니고 몇 번의 죽임의 고비를 넘기는 삶이었죠. 그런데 성경은 그 삶을 가리켜 복되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의 주가 되시며 우리의 생명이 되시는 예수님의 삶은 어떠하셨습니까? 예수님은 이 땅에 살아간 그 어떤 사람들과 비교할 수 없는 가난한 심령으로 전 생애를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의 삶은 늘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마음이 무엇인가를 헤아리며 살아가는 그 삶을 살아가셨습니다. 그런데 그 심령이 가난한 예수님의 삶 가운데 어떠한 일이 벌어졌습니까? 우리 이사야 53장 3절의 말씀을 함께 읽어볼까요?

*이사야 53:3,
3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아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요. 이 땅에서 멸시와 버림과 간고와 질고를 당하셨습니다. 그리고 더욱이 우리도,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고통 중에서 천국을 사셨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시는 복음의 능력이고, 복음의 역설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마음에 심령의 가난함이 있습니까?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마다 주님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라는 이 고백, 주 예수보다 귀한 것은 없네. 라는 이 찬양의 가사가 지금도 내 속에 살아 숨 쉬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다시 한 번 우리 가운데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사랑의 교회 성도들이여,. 헛된 복을 구하지 말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는 것이지, 너희들이 꿈꾸고 바라고 소원하는 부와 명예와 성공과 안락함과 잘됨이 너희의 복이 아니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도는 그러한 것으로 살아가는 자들이 아닙니다. 성도는요 하나님의 사람은요. 예수 그리스도 한 분으로 족한 자들입니다. 기억하십시오. 마음이 부요한 곳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수 없습니다. 마음이 부요한 곳에서는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주님 앞에 나아갈 때마다 주님 저 정말 별 볼 일 없지만, 주님 저 정말 가진 것 없지만, 주님 제가 그 첫 마음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길 원하오니, 다시 한 번 심령의 가난함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이런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놀라운 천국의 복이 우리에게 임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난 2023년도 한 해 동안, 우리 교회 위에 회복을 넘어 부흥의 실체를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저는 이 모든 것이 가난한 심령 위에 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다시 한 번 2024년이라는 새로운 믿음의 항해를 떠납니다. 우리의 노력과 우리의 실력이 아닌, 가난한 심령으로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나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님들 한 분, 한 분의 삶 가운데 친히 역사하여 주시고, 친히 말씀하여 주시고, 하나님의 뜻을 하나님의 나라를 우리 가운데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심령이 가난한 주님의 백성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에게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천국의 복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이 복을 받을 때, 우리는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그리고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복으로, 담대하게 당당하게 걸어가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될 것입니다. 이 믿음을 가지고 능력 있게 살아가는 날마다 하나님 부어주시는 능력을 경험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기도.
“우리의 생명 되시며 우리의 모든 것 되신 하나님 아버지 이 땅을 살아가며 우리의 삶을 유혹하는 수많은 하나님 우리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 것들이 있습니다. 하나님 이 시간 다시 한 번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오니 우리의 심령에 가난한 심령을 허락하여 주셔서 예수 그리스도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도록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 친히 역사하여 주옵소서. 우리 사랑하는 성도님들 한 분 한 분 주님을 향하여 이 가난한 마음으로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시는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경험하는 2024년 한 해가 될 수 있도록 성령께서 친히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함께하실 줄 믿사오며 우리의 소망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요약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새로운 은혜와 역사로 시작한 2024년을 우리는 가난한 심령을 회복하고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그 놀라운 능력으로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연약한 존재임을 깨달아서 나의 의와 나의 공로가 아닌 겸손함으로 인생의 모든 여정을 주님 앞에 맡기고 전적의탁 하여 신실한 주님의 제자로 살아가야 한다. 심령이 가난한 자에게 주시는 천국의 복을 허락하실 것을 믿고 가정과 직장과 공동체 가운데 하나님의 평강을 간구하며 모든 환경을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누려가야 한다. 우리가 가난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바라고 소망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가난한 마음을 채우시고 은혜의 복으로, 하늘의 복으로 올 한 해 우리를 가득 채우시며 이끌어 가실 것임을 확신하자.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겸손하고 비천해지는 것이다. 그것은 곧 우리 자신과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과 하는 일을 비천하게 생각하며 자신을 어린아이와 같이 여기는 것이다. 바울은 은사와 은혜 면에서 모든 사람보다 뛰어나 영적인 일들에 부요하였지만 심령이 가난하기 때문에 자신을 사도들 중의 가장 작은 자요, 모든 성도들 가운데 지극히 작은 자보다도 더 작고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여겼다.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선을 행하기에, 즉 모든 사람들에게 모든 것이 되기에 자신이 부끄럽고 비천하며 보잘 것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또한 그것은, 하나님은 위대하시나 우리는 비천하고 그는 거룩하시나 우리는 죄스럽고 그는 모든 것이 되시나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우리 자신의 의와 능력을 결코 신뢰하지 않으며 오직 그리스도의 공로와 은혜만을 의지하는 것이다. 세리가 불쌍한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자비를 부르짖을 때 가졌던 상하고 통회하는 심령이 바로 이 심령의 가난이다. 우리는 자신이 가난하다고 생각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의 은혜에 부족해서 언제나 하나님의 문에서 구걸하며 그의 집에 매달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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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3년 12월 31일)
제목: "사는 날 동안 능력이 있으리로다"
말씀: 신명기 33:24~25
대표기도: 남동우 부목사님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사회: 천동원 부목사님(1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ㅡㅡㅡㅡㅡ

*신명기 33:24~25,
24 아셀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아셀은 아들들 중에 더 복을 받으며 그의 형제에게 기쁨이 되며 그의 발이 기름에 잠길지로다.
25 네 문빗장은 철과 놋이 될 것이니 네가 사는 날을 따라서 능력이 있으리로다.

▶너무 애를 많이 쓰시고 헌신하셨습니다. 찬양대 하나님께 쓰임 받은 거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지난 한 해 진짜 빨리 지나갔습니다. 맞습니까? 속히 지나갔습니다. 오늘로써 우리 묵은해를 보내고 내일 이제 새로운 새해를 앞에 놓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마음속에 유대인들은 한 해를 마무리할 때 반드시 죄를 처리하고 새해를 맞이한다고 합니다. 오늘 우리 삶의 은서의 강물에다가 우리가 지었던 수많은 잘못들, 죄악들 허물들 실수들 후회들, 아픔과 힘을 다 던져버리십시다. 나는 한 해의 마지막 시간에 또 새해를 맞이하는 시간에 우리가 갖는 소명이 있습니다.

베드로는 밤새도록 그물을 던졌지만 보니까 빈 그물이었어요. 빈 배, 빈 그물이었어요. 1년 동안 수고를 했지만 지금 여러분들 생각에 ‘나는 이게 나는 빈 그물만 갖고 있네.’ ‘내 인생 내 삶은 왜 이렇게 분명인가?’ 이렇게 좀 뭐라고 그럴까요? 열매가 없다고 안타깝게 생각하는 게 있을지 모르겠고, 또 어떤 분은 믿음 부분을 통하여 놀라운 축복을 받아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나 이제 어떻게 주님 앞에 더 헌신하면 좋겠나? 이런 상황까지 올라오는 게 있을 것입니다. 두 종류입니다. 임금을 임재에 대한 안타까움이 있고, 또 한 분은 너무 감사해서 주님 앞에다 이렇게 ‘내가 주님이 내 인생을 참으로 가치 있게 했으면 좋겠다.’ 이렇게 헌신의 차원까지 올라온 게 있을 거예요.

근데 빈 그물이든지 아니면 믿음 보고의 차원이든지 헌신의 차원이든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우리는 삶의 광야 길을 걸어갑니다. 그럴 때마다 저와 여러분은 내 힘과 내 능력으로만 사는 사람이 아니고, 우리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인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과 달라요. 우리는 영적으로 구원받은 사람은 본능적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주인이시고, 우리의 삶을 이끌어 가심을 느끼고 있는 것인데,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우리 자신을 능가하는 우리 인생을 능가하는 어떤 초월적 존재감, 초월적 실체가 내 삶을 인도하고 있다는 이 사실, 이걸 제대로 깨달을 때 아무리 어려워도 내 삶에 나도 모르는 가슴에 떨리는 뭔가가 있는 것이에요. 맞습니까? 그래서 인생은 초월적 실체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한 관점을 가지고 내 인생은 내 인생을 바라볼 때 완전히 달라요. 그러니까 무슨 말인가 하면 여러분이나 저는 초월적 실체에 의하여 인도되는 존재로 보느냐, 아니면 내 인생을 내 스스로 내 힘으로만 살아가는 존재로 보느냐, 거기에 따라서 확연히 달라지는 것이다.

저는 철저하게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하신 저와 여러분은 우리의 삶을 초월적 존재 주신 하나님의 인생을 끌고 간다. 맞습니까? 우리는 내 인과 내 실력만으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님을 고백하는 것이에요. 무신론자들이라든지, 또 이런 사람들은 인생을 진화된 존재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무신론자들 진화된 존재로, 진화된 존재로 인생을 보면 모든 인생은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는 존재로 볼 수밖에 없어요. 인생은 다 자기 힘으로 살아가는 거예요.
그러나 인생을 창조된 존재 피조물의 관점에서 볼 때는 인생은 초월적 실체에 의하여 인도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옳다는 것이에요. 처음부터 제가 좀 너무 거대담론(巨大談論) 같은 걸 말씀해서 죄송한 마음이 있지만 어제도 제가 아침에 말씀드렸잖아요. 사람은 환경에 의해서 영향도 받고 자기가 노력하는 거에 의해서 나름대로 인생의 방향을 잡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의 길을 기뻐하시나니.”.. 우리의 삶에 인생의 모든 육신을 능가하는 초월적 하나님의 영성을 이끌고 계신다. 어떤 사람들은 세상 적으로 볼 때, 내 힘으로 자기의 힘만으로 살면 기초적으로 사는 것 같고, 하나님이 이끄시는 그런 삶이 좀 약간 피동적인 삶 같은 세상 사람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끌어주시는 삶의 가장 가치 있는 삶이고, 하나님이 나를 지으신 목적에 걸 맞는 삶을 우리는 믿습니다. 라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신명기 33장, 이 말씀을 썼던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광야로 이끌어낸 그런 역할을 했죠? 모세는 출애굽기 오늘 본문을 썼던 신명기 썼더니 모세는 출애굽기 3장에서 호렙 산에서 하나님을 만난 장면이 나옵니다. 애굽에서 왕자로 있으면서 동족을 구하려다가 애굽 사람을 죽이고 위대한 광야로 도망을 갔습니다. 그곳에서 제사장, 미디안 제사장 딸을 만나고 양을 치는 목자로 살다가 어느 날 호렙 산이 왔습니다. 거기서 하나님을 만났고,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여 내라는 사명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거는 모세의 자기 생각이나, 이거는 모세의 마음에 본래 없던 인생의 시나리오였어요. 자기가 상상도 하지 못한 거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기록하니 모세가 왕자로서 애굽의 모든 것을 누리고 있을 그때에도, 위대한 광야에서 양치는 목자로서 손에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는 그때에도, 초월적 존재이신 하나님의 인도에 의하여 그 인생을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인지하든 인지하지 못했던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믿으셔야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여러분 다 부족합니다. 그러나 창조주 하나님, 우리의 모든 것을 초월하신 하나님, 우리 인생에 주시는 그 하나님이 나를 이끌고 있다는 그 사실을 철저히 깨닫는 순간, 여러분과 저의 가슴이 뛸 수밖에 없어요. 이 시간 우리의 심장이 그 순간 하나님과 연결되게 되는 것이고, 하나님의 손길이 우리의 심장을 터치하는 순간이고, 이게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하나님과 내가 연결 되어 있음을 느낄 때, 우리의 환희에 차고 우리의 오감은 전율하는 것이에요. 하나님과 연결되는 순간, 하나님과 연결되는 순간 우리의 영혼의 스파크가 일어나기 때문에 우리는 참 가슴이 떨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제 새벽에,,,,

*시편37:23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의 길을 기뻐하시나니
 
♬ He touch me, ‘;험한 세상 내 마음을 원하지만 그러나 사랑스러운 주님의 손길이 내 인생을 항상 터치하신 날이에요. 오! 주님 나의 주님, 그럴 때 내 마음에 기쁨이 넘치네. 내 마음에 전율이 넘치네. 내 마음에 감사가 넘치네. 그다음에 나의 기쁨, 나의 생명 주 손길을 나를 구원했네.’ 너무나 놀라워요. ♪ 나의 기쁨 나의 생명, 주 손길을 날 영어 가사는 히 터치 미, 오! He touch me, 그다음에 and oh the joys that floods my soul. 내 영혼의 홍수가 일어나요. 기쁨의 홍수가 일어나요. 그다음 가사 Something happened... 초월적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인도하고 계신다는 그 사실 앞에 내 인생은 Something happened 이에요. 무언가가 일어나는 것이에요.Something happened, 반응도 안 하시고... 그러 영어하는 사람들은 Something happened이 어마어마한 거예요. Something happened. 제가 이래도 어떤 것들은 나는 초월적 하나님과 관계없다. 나는 그걸 잘 이해가 안 된다. CS. 루이스라는 말로 이런 얘기를 합니다.

“우리는 ‘갈증을 느낀다’는 것은 우리가 물을 마시기 원하는 존재로 창조 되었다.는 증거다.”
-C.S. 루이스-
-우리 삶에 우리 육신의 갈증이 있죠? 우리는 물을 마시지 않으면 안 되는 존재로 지어진 거예요. 맞습니까? 마찬가지예요. 우리 마음 한 구석에 세상 어떤 것으로도 채우지 않는 인생은 뻥 뚫린 구멍이 있어요. 모든 걸 다 이뤄보세요. 모든 위치에 올라가고 모든 걸 다 가져보세요. 거기에도 허무하고 뻥 뚫린 구멍이 있는 거예요. 그건 뭐냐? 우리 인생 자체가 초자연적인 창조주 하나님의 존재를 갈망하도록 지어졌다는 사실이에요. 이런 것들은 무신론자들, 진화론자들은 결코 설명 못합니다. 그건 그들의 영원한 숙제인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같이 한 해의 마지막 날, 성경은 전도서 3장 11절,

*전도서 3:11,
11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모든 인생에 분명하게 초월적 존재를 찾고, 초월적 존재에 의해서만 우리의 갈망이 해결될 수 있도록 우리의 허무함과 갈망이 해결될 수 있도록, 이것을 우리가 인정해야 돼요? 말아야 돼요? 근데 우리 주위에 진화론자들 또 다른 진화론자들, 무신론자들, 또 우리 주위의 좌파적 문화 엘리트들, 기독교 하부를 조롱하는 친구들, 그러나 겉으로 그들이 자신만만해 보이지만 삶의 카튼 뒤에서는 오늘 같은 날은 자기 한 몸조차 어쩌지를 못하는 인간의 무력함에 당혹해 할 것이에요. 조금 제가 어려운 말 썼는데 세상에 잘 나가는 사람들 문화에서 엘리트들, 기독교 한 분은 서로 편안한 친구들 오늘 같은 날 아주 그냥 자기는 어쩔 수 없는 고민 때문에 술 마시고 마약하니 그 인간의 무력함에 당황해하고 당혹해하는 것이에요. 따라서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 우리는 내 인생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 내 인생을 이끌어간다는 것을 고백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인 줄로 믿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뜻, 이걸 깨닫는 은혜가 있는 사람에게 오늘 주님이 두 가지를 주시는 거예요. 오늘 이 두 가지를 여러분들의 마음속을 가지고 갈 때, 오늘 이 송구영신(送舊迎新)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이하는 은혜가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신명기 33장 오늘 본문은 모세가 죽기 전에 아셀 지파에게 예언한 내용이 아셀 지파는 이스라엘이지만 하이파 지역에 해당하는 해안가로부터 또 남부 레바론 산악 지역까지는 땅을 분배 받았어요. 본래 이 아셀은 야곱의 첫째 부인이었던 레아의 시종 시녀였던 실바의 소생입니다. 환경적으로는 어떻게 보면 흑 수저 같아 하인의 몸에서 그것도 둘째로 태어났고, 자기 아버지 이름, 자기 아버지 이름도 안 지어주고 자기 시녀로 해서 자기 어머니가 시녀인데, 시녀의 어머니 레아가 그냥 이름을 지어줬어요. 그런데 그가 오늘 뒤에 글 나지만 행복 자, 24절에 다시 한 번 시작,

*신명기 33:24,
24 아셀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아셀은 아들들 중에 더 복을 받으며 그의 형제에게 기쁨이 되며 그의 발이 기름에 잠길 지로다.
-그의 기름에 잠긴다는 것은 축복을 받았다고 물질적인 축복도 받았다고 하는 것이며 그리고 더 좋은 것은 물질적 축복이 더 중요한 것은 그의 형제에게 뭐가 돼요? 기쁨, 그 앞에 그의 형제들과 아들 중에서 뭐예요? 그 더 복을 받아야 되는 받았다는 것이에요. 평생의 기쁨이 되는 삶을 산다. 그래서 누가복음에 지난주에 구세주로 태어나신 아기 예수님을 만난, 아기 예수님을 제일 먼저 만난 그 안나 여선지자가 아셀 지파였어요. 기쁨의 역할을 했어요. 그리고 아셀 지파에게 분배된 땅은 기름진 땅도 있었지만, 산악지대, 그 험한 지역에 살아야 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오늘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리고 아셀 지파는 이방 민족과의 경계선에 있었어요. 북쪽에... 그래서 오늘 이 말씀은 단순히 아셀 지파 정도가 아니라, 약속의 땅을 앞에 둔 새로운 세대, 모세가 이제 40년을 다 그의 생애를 마무리하면서 모세의 지도력 40년을 마무리하면서, 그가 이제 주님 앞에 부름 받기 전에 여기 최후의 모세 34장 그의 제자가 뒤에 덧붙인 거예요. 34장, 33장 5절이 마무리예요. 마무리 야곱이 열 두 아들을 축복하듯이 모세는 12지파를 축복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세대를 향하여 오늘 이 말씀은 삶의 경계선상에 있는 분들 오늘 이스라엘을 넘어 지금 우리에게 지금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받으면 큰 축복이 될 것입니다. 단순히 아셀 지파 정도가 아니라 뭐라고 말씀하는가, 그 험한 지역 그 광야 그 산악 지역을 점령해야 할 아셀 지파에게 뭐라고 말씀 25절에, 너의 문빗장은 철과 놋이 될 것이다.

*신명기 33:25,
25 네 문빗장은 철과 놋이 될 것이니 네가 사는 날을 따라서 능력이 있으리로다.
-철과 놋으로 만든 문빗장으로 보호막을 쳐주신다. 이걸 다른 King James 장에서는 너무나 우리에게 더 실감 가는 구절인데 영어로, (Thy shoes shall be iron and brass). 다이 슈즈 셀 비 아이언 앤 브레스..라고 그랬어요. -너의 신발이 강철 신발이 될 것이야. 철과 놋으로 우리의 문빗장을 주시고 너의 발이 강철 신발을 신을 것이다. 하나님 우리를 보호하는 문빗장이 되고 또 하나는 여기에 이제 히브리어로 뜻으로 주어지는 것이 좀 있기 때문에 문빗장과 강철 신발 같이 생각해도 될 것 같아. 철과 놋으로 만든 문빗장 보호막을 쳐주시고, 강철과 놋으로 만든 신발을 통하여 우리를 걸어가고, 인도하도록 만들어 주신다는 것이에요. 아셀 지파가 유다 지파나 무슨 레이지파 같은 대단한 지파가 아니라 할지라도, 그들에게 부여된 산악지대나 바위를 걸어가기 위해서는 강철 신발이 필요한데, 그걸 주신다는 거에요. 하나님께서 오늘 저는 이게 송년 예배이자, 내일 1월 1일이기 때문에 오늘 이 예배는 송년예배이자 새해를 맞이하는 오늘 밤 오늘 12시에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어요. 없는 대신에 오늘 이 말씀을 한꺼번에 드리는 거니까, 내일 아침에 1월 1일날 여러분들이 가정 예배를 드릴 때도 이 말씀을 같이 사용하면 좋겠다 싶어서 제가 한꺼번에 드리는 거니까.

하나님 아버지, 사랑의 교회 모든 성도들, 올해 내년 한 해 하나님께서 모든 일마다 강철 목과 그다음에 철로 된 문빗장 보호를 허락하여 주시옵시고, 그다음에 한 해 내 일을 걸어갈 때마다 강철 신발을 신고 섬기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는 이거 이게 너무 제 마음에 와 닿는 거예요. 아마 여러분들도 평생에 이런 설교를 들어보지 못했을 거예요. 저도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제 마음이 뛰었어요. 초월적 하나님이 내 인생에게 문빗장을 주실 뿐만 아니라 강철 신발을 신고 건너가게 하시네. 우리에게는 이와 같은 무장이 필요합니다. 하늘을 앞에 놓고 우리 앞에 삶의 순례와 광야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떤지는 다 알 수 없습니다. 만약에 우리가 걸어가는 길의 모든 것이 비단길이고, 카페트 깔린 비단길이라면 모든 길이 비옥한 평야만 있다면, 철과 놋에, 눈빗상과 강철과 놋의 신발이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요즘같이 눈길을 걸을 때, 어제도 보니까 할머니 할아버지가 어그정 어그정 걷더라고요. 눈길을 걷을 때 그 튼튼한 신발이 필요한 아이젠이 필요하잖아요. 특별히 연약한 분일수록 다리에 힘이 없는 분일수록 최고의 신발이 필요한 줄로 믿습니다. 그렇다면 내년 한 해 동안 사랑의 교회 성도들이 받아야 할 보호막 문빗장과 내년 한 해 동안 우리가 걸어가야 할 우리 이 모든 과정들을 앞에 ㄴㄴㄴ놓고, 우리에게 강철 신발이 뭘까요? 그 강철 신발이 바로 오늘 25절 뒷부분에 있는 이 내용이 우리의 삶의 최고의 강철 신발과 문빗장이 될 것입니다. 다 함께 25절 시작

*신명기 33:25,
25 네 문빗장은 철과 놋이 될 것이니 네가 사는 날을 따라서 능력이 있으리로다.
-내년 한 해 동안 노력해 주신 약속의 말씀 같은 것이에요. 우리 교회 전체적으로 또 다른 게 있을 수 있지만, 여러분 개인적으로는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사는 날 동안 능력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복음은 능력입니다. 여기에 사는 나를 따라서란 말씀이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매일매일 힘을 주신다. 내일과 이에 그대로 믿으세요.

I. 사는 날 동안 능력을 주실 것이다.
-매일매일 하나님이 힘을 주신다. 살아가는 날, 매일매일 하나님이 우리에게 힘을 주실 것이다. 우리가 살다 보면 힘든 일을 겪는 날이 올 수도 있어요. 힘든 일을 겪는 날, 그날도 힘을 주실 것이다. 어떨 때는 건강을 잃을 수도 있어요. 그때도 힘을 주실 것이다. 의심스럽고 혼란스러운 날도 있을 수 있어요. 그때도 힘을 주실 것이다. 여러분 이거 진짜 어려울 때, 삶의 광야 가운데서 주님이 내 인생의 철과 옷에 문빗장이 되게 해 주실 것이다. 매일매일 삶의 걸음에 험악한 산악 지역이라 할지라도 강철 신발을 신고 건너가게 하실 것이다. 오늘 이 말씀이 20대, 30대, 40대, 20대 30대는 좀 시간 덜 갈지 몰라요. 그러나 60대 70대가 훨씬 더 진지하게 다가올 것입니다. 젊은이들 가운데 육신의 물리적인 힘이 약해지지 않을 때는 사는 날 동안이라는 게 실감이 덜할 것이에요. 그러나 40이 넘고 50을 넘고 60이 넘고 이렇게 되면 물리적인 몸의 신호가 옵니다. 몸속에 에너지가 많이 남아 있지 않고 체력이 달리고 나이가 들면 들수록 이 말이 뭔지 좀 더 실감이 갈 거예요. 나이가 들면 들수록 이 말씀을 제대로 기억하는 동안 여러분 이런 믿음의 역량을 갖고 있는 동안 그 사람은 부패하거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는 능력을 받게 되는 겁니다. 오죽하면 내가 지난주에 그랬잖아요. 우리의 삶에 우리의 삶에 죽음이 최고의 전초가 피크가 되게 해달라고요.. 저는 1982년 3월 1일 장가간 날입니다. 거의 42년이 됐는데 그때 제게 주의하신 목사님이 잠언 4장 18절 말씀을 주셨어요.

*잠언 4:18,
18 의인의 길은 돋는 햇살 같아서 크게 빛나 한낮의 광명에 이르거니와.
-그 당시에 배교파는 의인의 길은 점점 번뇌할 것 같아서 원만한 광명의 이르러니와. 요즘은 의인의 길은 도면의 뜻 같아서 크게 빛나 한낮에 광명에 이른다. 그러니까 의인의 길은 가면 갈수록 돋는 햇살과 같아서, 그러니까 오늘 말씀을 보면, 결혼 이후의 여정에 하나님이 놋과 철에 문빗장을 주시고 매일의 삶의 여정 가운데 하나님께서 강철 신발을 주셨다는 그 말이에요. 목사님 결혼식 할 때 설교를 어떻게 다 기억하십니까? 성경 말씀이니까, 기억을 하는 거예요. 그냥 좋은 말 말고 적당한 말대로 다 지나가는 거예요. 그래서 오늘 여러분 제가 가만히 제가 가만히 기억하니까 사는 날 동안 능력을 주실 것이다. 이게 저에게는 우리 볼 때마다 제게는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 약속의 말씀이었어요. 네가 사는 동안 능력이 있을 것이다 이런 거룩한 담대함을 여러분에게 주시기를 바랍니다. 다른 말로 하면 사는 날 또한 능력을 주실 것이다. 라는 것이 하나님이 힘주시지 않는 날은 단 하루도 없다고, 나중에 고백하게 될 것이에요. 그리고 사는 날 동안 능력을 주실 것이다. 이 말씀에 하나 더 추가하면 사는 날 동안 능력을 주실 것이다. 매일매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잡을 것이다 되겠습니까? 두 번째로는 뭐냐? 사는 날 동안 능력을 주신다는 것은 주님은 우리보다 앞서 인도하신다는 것이다. 앞서 인도하는 새해가 되는 것, 앞서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총이 있기를 바랍니다.

제가 그렇게 기도를 많이 하잖아요. 여러분들 모두에게 이게 무슨 뜻인가 하면 우리는 지금 당장 닥친 문제 때문에 머리를 싸매고 힘들어하고 아주 당장 닥친 문제를 해결하려고 막 싸우고 있습니다. 근데 하나님은 앞서 인도 하신다는 말은 우리는 지금 당장 당면한 문제 때문에 막 이렇게 하고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내일 직면할 해결책을 갖고 계세요. 하나님은 우리보다 먼저 앞서가서 미리미리 준비하고 계세요. 그 이런 용어를 정리해 봤어. 우리가 일, 우리가 월요일을 피투성이로 살고 있을 때, 하나님은 목요일에 회복된 날을 이미 예배하고 계신 것이에요. 따가운 하늘을, 월요일을 피투성이로 살고 있을 때 하나님은 목요일에 회복된 날을 이미 예배하고 계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려움을 겪을 것을 미리 아시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먼저 일하고 계신다. 그래서 다음 주에 다가올 일을 너무 걱정하지 말고 하나님께 맡기세요. 내년도도 주님께 맡기세요. 거기 주님이 계시는 거죠. 주님은 우리와 동행도 하시지만, 우리보다 먼저 가셔서 미리 우리의 길을 예비하시고, 구체적인 걸 준비하신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이게 사는 날 동안에 너희에게 능력이 있으리로다.

하나님은 내년 2월, 내년 4월에 있을 일을 미리 준비하고 계시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저는 내년 10월 21일 내년에는 제3기 한국교회 섬김의 날이에요. 내년에도 수많은 사역이 있어요. 근데 하나님이 그때 거기 가서 미리 준비하고 계실 것처럼 확신하는 것이에요, 그리고 이런 하나님 안에서 이런 주신 사명을 가지고 이렇게 살았을 때 거의 주님께서 제 기대를 얻어가게 하신 건 없어요. 사는 날 동안 너는 너에게 능력이 있으리로다. 그래서 하루하루를 이런 기대를 갖고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미래를 향해서 너무 고민하지 말고, 나 혼자 진화론자든, 무신론자도 잘 나 혼자 고군분투하고 나 혼자 그걸 하지 말고, 하나님이 우리의 앞길을 인도하시도록 그렇게 은혜를 주시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미리미리 근심하지 말고 매일매일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대로 살고 그리고 살아가는 동안에 항상 기뻐하라, 항상 감사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자빠져도 십자가 앞에 자빠져라. 요거 하나 하나만 더 우리가 설명한다. 그 결과 자연스럽게 우리에게는 이 세상 사람들은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거룩한 성령이 있어요.

II.그 결과, 세상은 이해할 수 없는 거룩한 설렘
-그 결과 세상 사람들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뭐가 있다고요? 거룩한 설렘이 있어요. 거룩한 DNA가 우리 설렘의 DNA가 우리에에 있어요. 여러분은 모세를 한번 생각해 보십시다. 아셀을 선포한 모세를 생각해 봅시다. 모세의 상황과 우리의 상황을 연결해 보십시다. 모세는 앞에 홍해가 가로막혀 있었습니다. 왼쪽은 거친 산악과 낭 떨어진 산에 있었습니다. 오른쪽에는 황량한 군대가 있고, 뒤에는 지금 애굽 군대가 죽이겠다고 쫓아온다고 하면 여러분 어떻게 할 겁니까? 몇 분들은 이게 뭔가 다시 풍력 다 갖고 있고 왼쪽은 거친 산악과 낭 떨어진 산이 있고, 오른쪽에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광경을 펼쳐져 있고, 뒤에는 애굽 군대가 죽이겠다고 쫓아오는 것입니다. 사면초가(四面楚歌)에요. 아시는 것처럼 산악지대를 맞이하여 이방인과의 경계선상에 이럴 때, 하나님이 앞서 인도하신 나를 어떻게 믿을 수가 있겠냐? 우리는 지금 모세가 어떻게 걸쳐왔는지 우리는 전지적 시점을 갖고 있어요. 성경을 가지고 다 알고 있으니까 우리의 생명에 관해서도 결과론적으로 우리가 스스로 전지적 시점을 갖고 있어야 돼요. 전지적 시점이라는 말 알죠?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멀리 오면 어떻게 될 것인지, 알고 있는 거예요. 우리가 그래서 우리는 그런 사면초가가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모세를 어떻게 인도하시고 어떻게 붙잡으셨는지를 우리가 알기 때문에 또 그들이 홍해를 건너고 찬양을 하고, 그걸 알고 그 기적과 해답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 어려운 순간이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기에 딱 알 맞는 시간이에요. 이런 뜻이 저 같은 경우는 60년 넘게 살고, 살아오면서,

저는 어릴 때 초등학교 1학년 때요. 우리 부친하고 나하고 둘만 있었어요. 우리 부친은 그 당시에 저 29살밖에 안 됐어요. 저하고 21살 차이기 때문에 우리 모처는 시골에 있어 갖고 제가 학교를 1년 먼저 제가 부산시 경북 의성이라는 곳에 시골에 가서 시골에서 부산에 가서 1년 동안 29살 되는 남자분이 교회를 개척해갖고 교회를 시작하는데, 어떻게 나를 케어 하겠어요? 이해가 안 가십니까? 제가 초등학교 1학년 들어가고요. 한 몇 달 동안 학교를 못 갔어요. 아파고 영양실조 그다음에 한 달 그래서 제가 몇 달 동안 걷지를 못했어요. 그래서 저도 안 믿는 사람이 있겠지만,,, 누가 업고 침을 맞게 하고 하여튼 그런 일이 있어 갖고 그런 어려움이 있었어요. 그러니까 내가 이럴 때 성경을 읽으니까 나도 모르게 야 내가 왜 이렇게 인생이 고란이 많나, 이런 생각을 그 이후에 60년 이후를 살아오면서 피투성이도 되어보고, 수많은 눈물도 흘려보고, 어떨 때는 며칠 동안 이불을 뒤집어쓰고 나오기도 못했고, 피눈물도 있었지만 근데 이상하게도 그럴 때마다 제 마음 깊은 곳에는요, 희한한 설렘 같은 것이 있었어요.

오늘 말씀으로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다음 달 앞으로 미리 가셔가지고 앞서 인도 하시고, 사는 날 동안 능력을 주실 것이라는 말씀이 내 나름대로 체화가 돼서 그런지 고통도 아픔도 피눈물도 그 가운데서도 희한한 설렘이 있었어요. 어쩌면 초월적 하나님께 대한 근본 믿음을 주신 것이에요. 그 설렘은 아마 이런 걸 겁니다. 아무리 둘러봐도 험준한 산악 밖에 보이지 않는 황량한 광야 같은 상황에서, 그 순간은 사람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아, 하나님은 나를 어떻게 인도하실 것인가 그 기대감에서 오는 설렘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세상 사람들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설레임이 될 것입니다. 저만이 아니라 우리 교회 많은 성도들이 그럴 것이고, 또 지난 2천년 교회 역사의 사면초가와 같은 홍해를 경험해 본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 많이 사람이 그랬을 거예요. 그래서 오늘 송구영신 예배 오늘 마치고, 여러분 예배 마치고 나가시면서 딱 이사야 45장 2절,

*이사야 45:2,
2 내가 너보다 앞서 가서 험한 곳을 평탄하게 하며 놋 문을 쳐서 부수며 쇠 빗장을 꺾고.
-내가 너보다 앞서 가서 험한 곳을 평탄케 하겠다. 평범한 얘기지만 하나님이 한쪽 문을 닫으시면 한쪽 문을 반드시 열 것이다. 거기에 대한 설레임, 이것은 진화론자들, 무신론자들, 자기 실력만으로 사는 사람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알 수 없는 희한한 설렘이 되는 것이에요. 우리 모두에게는 고난 가운데서도 이런 설렘의 뒤내를 주신 주님을 찬양합시다. 이렇게 말하니까, 모세가 강령을 선포한 것이에요. 하나님 백성들에게 오고 온 수많은 백성들에게 오늘 29절 본문 뒤에 29절,

*신명기 33:29,
29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네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오늘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다. 오늘 1부 예배에 참석하신 여러분들 한 분 한 분 이름을 다 불러가면서 여러분들은 행복한 사람들이로다. 행복한 사람 막 가슴이 떨리는 거 떨기나무 앞에서의 초월적 떨림이 너는 행복한 자로다. 라는 최고의 선포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에요. 모세는 마지막까지 하나님이 인도하심을 설렘에 관한한 그는 비온 후의 새싹이었고, 점점 도는 햇볕이었고, 마르지 않는 샘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다 이런 동일한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모세가 나중에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평가했겠습니까? 모세 인생의 최고의 사건이 뭡니까? 애굽의 왕자 되는 것도 아니었고,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는 것도 아니었고, 이스라엘의 존경받는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일마다 때마다 나 같은 사람이 홍해의 고난과 사면초가의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나 같은 인생을 앞서서 인도해 주셨다는 그 사실 앞에 가슴이 맥박치고, 입술에는 찬양이 끊이지 않았고, 마음이 설레였다는 것이에요.

오늘 이 자리에는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 힘든 분들 있습니다. 또 세상적으로 대단한 성취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을 설레게 하는 게 뭡니까? 오늘 아셀에게 말한 그 얘기는 모세 자신을 얘기에요. 하나님께서 120년 동안 모세의 삶의 험악한 산악과 같은 광야 여정의 멋과 철의 문빗장으로 보호해 주시고, 일마다 때마다 강철 신발을 챙기셔서 걸어가게 하시고, 이게 너무너무 신기하니까, 아마 필설로 혁명할 수 없는 이 인문학적, 어떤 시적 표현이 이상 할 수 없는 오늘 26절에 뭐라고 돼 있느냐면,

*신명기 33:26,
26 여수룬이여 하나님 같은 이가 없도다 그가 너를 도우시려고 하늘을 타고 궁창에서 위엄을 나타내시는도다,
-오늘 하나님은 이 사랑의 성도들 한 분 한 분을 도우시려고 하늘을 타고 궁창에서 위험을 나타내시는도다. 기가 막힌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 예배는 하나님이 영광의 수레를 타고 오시는 은혜 아닙니까? 유일한 표현을 어떻게 하느냐면, 하늘을 타고 궁창에서 위험을 나타내시는 도다. 그리고 27절에

*신명기 33:27,
27 영원하신 하나님이 네 처소가 되시니 그의 영원하신 팔이 네 아래에 있도다 그가 네 앞에서 대적을 쫓으시며 멸하라 하시 도다.
-모세는 홍해 이후에 수많은 위기를 겪었습니다. 반역과 배신을 경험했습니다. 그래도 살려왔습니다. 그를 계속 만나주시고 반석에 샘을 터지게 합니다. 심지어 설렘의 파워가 얼마나 큰지, 모세를 반역하던 고라 자손은 하루아침에 땅위에 입을 벌려 삼켜버렸어요. 이 설렘과 기대의 파장이 얼마나 큰지, 여러분들을 어렵게 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공고하게 하고, 고통을 받게 하는 그 사람들이 언젠가 우리 이 설렘과 감격과 하늘, 하늘의 영광 오늘 말씀한 것처럼 바로 하늘이 너를 도우시려고 하늘을 타고 궁창에서 위엄을 나타내시는 그 위엄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들을 어렵게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파장을 일으켜버리시는 거에요. 놀라운 일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기쁨이 있게 하시고 설렘의 파워를 갖게 하시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대적하는 고라 자손들을 날리게 하시고, 하나님의 사람들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입을 닫아주시고, 심지어 신약시대에는 바다가 갈라지지 않으면 바다 위를 걷게 하시는 주님이심을 믿습니다.

누구나 삶의 어려움을 겪습니다. 노아 같은 놈도 홍수위기를 만났고, 요셉 같은 사람도 감옥의 위기를 만났고, 다니엘 세 친구 같이 신실한 사람도 풀무불의 위기를 만났고, 초대교회 교인들은 예수 믿는다고 화영대의 이슬과 사자의 밥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거룩한 인내와 설렘이 있는 동안에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은요. 세상 사람들은 위기가 절망의 시간이지만 그리스도인에게는 소망과 설렘의 시간이 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오늘 이런 가족 여러분 여러분들은 행복한 사람으로 다 너는 행복한 자로다. 2024년도 매 해 내일부터 하나님 사랑하는 교회 모든 성도들과 우리 믿음의 4세들에게 은혜의 은혜를 주시옵소서. 문빗장을 허락하여 주시옵시고, 하나님이 예배하시는 강철 신발을 신고 건너가게 하여 주옵소서. 여러분이 비록 한 해 동안 빈 대와 빈 그물을 가져왔다고 한탄하고 있다 할지라도, 오늘 이 말씀 믿고 가면 하나님이 일하실 것입니다. 내일 미리 하고 다음 주에 미리 일하실 것입니다. 이런 차원에서 오늘 마지막 한 번 제가 묻겠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초월적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강철 선발과 문빗장 때문에 여러분 어떻습니까? 좋습니다.!!! 다시 한 번 오늘 이 마지막 시간 여러분 어떻습니까? 좋습니다. 모든 짐들을 벗겨주시기를 바랍니다. 매일 매일 삶의 현장에 거룩한 설렘의 비밀을 가지고 살아가는 축복을 허락해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매일매일 사는 날 동안 너에게 뭐가 있으리로다. 사는 날 동안 문빗장을 주신 것, 사는 날 동안 강철 신발신고 살아가게 하실 것입니다. 삶의 경계선상에 있는 분들, 산악지대를 맞이하는 분들에게도 동일한 은혜를 주시리라 믿습니다. 주님, 인생이 내 힘만으로 살아가는 것처럼 무시된 것들을 다 용서하여 주시옵시고, 초월적 하나님의 은혜로 인도 받는 인생으로 완전히 우리의 삶이 무장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셀 지파처럼 하나님의 은혜에 문빗장을 경험하게 하시고, 매일매일 삶의 현장을 강철 신발로 걸어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가 월요일을 피투성이로 살고 있을지라도 회복된 나의 목요일을 앞서 가시는 창조신 예수님을 믿게 하여 주시옵소서.

♣요약
초월적인 하나님께서 문빗장으로 보호하시니, 주님이 신겨주시는 강철 신발을 신도 삶의 광야와 산악지대도 넉넉히 건너가야 한다. 월요일에 겪는 고난 중에도 앞서 인도하시는 하나님께서 회복된 목요일을 앞서 예비하시니 사는 날 동안 매일 매일 주님의 능력을 맥박처럼 경험하여 우리 교회가 2033-50 비전 앞에 거룩한 설레임으로 가슴이 쿵쿵 뛸 때, 이 민족 위에 부흥의 르네상스와 피 흘림 없는 복음적 평화통일의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을 믿고 간절히 기도하며 새해에도 '사는 날 동안 능력을 주실 것이다' 확신하며 주님 앞에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리자.
-하나님께서 늘 지켜 주시고 보호해 주시리라는 것이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될 임마누엘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의 복을 예표한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기준에 맞추어 하나님의 복을 평가하거나 축소시키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다. 그들의 기력과 원기가 계속 넘칠 것이다. 네 사는 날을 따라서 능력이 있으리로다. 많은 사람들이 이를 "너의 노년의 기력이 네 젊은 날의 기력과 같아서 너는 쇠함을 느끼지 아니하며 지칠줄도 모르고 네 젊음이 더욱 새로워지리로다. 네 발 뿐만 아니라 네 뼈도 철과 놋 같으리로다" 라고 의역한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맡겨진 일이 있는가, 그들은 일할 기력을 얻게 될 것이다. 짊어질 짐이 있는가, 견딜힘을 얻게 될 것이다. 그리고 결코 `감당할 시험 밖에는 당할 것이 없을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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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금융 상식 퀴즈 O X] 12월 25일 (827)

1. 소비자들이 넷플릭스 같은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를 선택하면서 케이블TV, IPTV 등 기존 유료 방송을 해지하는 현상은?
① 체리피킹 ② 빈지워칭
③ 코드커팅 ④ 쇼트커버링

2. 다음 중 기업이 자금 조달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닌 것은?
① CP ② CB ③ ABS ④ IFRS

3. 과도한 고금리 대출로 폭리를 취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정한 대출금리 상한선을 뜻하는 말은?
① 기준금리 ② 법정최고금리
③ 콜금리 ④ 가산금리

4. 한국의 ‘1인당 GNI’는 3만 달러대를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 1인당 GNI란 국민들의 무엇의 수준을 보여주는 지표일까?
① 소득 ② 지출 ③ 부채 ④ 자산

5. 상장사가 주가에 영향을 줄 만한 사안을 정기적으로 또는 수시로 투자자에게 알리도록 한 제도는?
① 공모 ② 공시
③ 증자 ④ 감자

6. 주식, 채권 등 전통적 투자상품을 벗어나 부동산, 원자재 등에 투자하는 방식을 가리키는 말은?
① 대체투자 ② 분산투자
③ 역외투자 ④ 엔젤투자

7. 소비자물가지수(CPI)와 생산자물가지수(PPI) 증감율이 장기간 마이너스를 기록할 때 우려되는 상황은?
① 흑자도산 ② 디플레이션
③ 인플레이션 ④ 셧다운

8. 신용등급이 낮은 기업이나 국가가 발행하는 채권으로 고위험 고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은?
① 양키본드 ② 제로쿠폰본드
③ 딤섬본드 ④ 정크본드



[커버스토리] 선거·전쟁·AI…내년 세계 경제는?


이맘때면 학생들은 수능 성적을 들고 진학할 대학과 전공을 선택하느라, 새 학년을 준비하느라 제각기 긴장되고 설렘 가득한 연말을 보냅니다. 물론 공부도 중요하지만, 올해와는 다른 새해가 어떻게 펼쳐질지 관심을 기울여야겠죠?

우리 삶에 직접적 영향을 주는 요소는 뭐니 뭐니 해도 경제 변화입니다. 세계 각국 중앙은행의 기준금리가 어떻게 움직이고, 한국의 수출 기업이 세계시장에서 제품을 얼마나 잘 팔고, 원유 같은 국제 원자재 가격이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가정 경제도 큰 영향을 받습니다. 전쟁 같은 극한적 충돌이 멀리 중동과 우크라이나가 아닌, 우리 코앞에서 벌어질 수도 있지요. 그런 갈등의 물밑에는 경제적 이해 충돌이 잠복해 있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새해에 변화할 세계를 전망할 때 가장 먼저 경제에 초점을 맞추게 됩니다. 물론 온라인으로 연결돼 광속으로 변하는 디지털 시대에 한 해를 내다보는 일은 무척이나 어렵습니다. 예측이 잘 맞지 않으니 ‘경제 예측 무용론(無用論)’까지 나옵니다. 그러나 경제 예측은 나라살림은 물론, 기업과 가계의 수입과 지출을 가늠하고 의사결정을 내리는 기초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4·5면에서 경제 예측이 왜 그리 어렵고, 내년 세계경제는 어떤 모습을 띨지 살펴보겠습니다.

"경제 전망은 점성술" 혹평 적지않아
수치보다 리스크 변수에 주목해야죠

경제 예측 또는 전망은 나라 살림살이와 기업 경영, 가계 살림의 기준점을 제공합니다. 이를 기초로 정부와 중앙은행은 정책을 만들고 가계는 소비, 기업은 투자 계획을 세웁니다. 경제의 바로미터는 가격입니다. 이 가격 변수가 어떻게 움직일지 안다면 가정 살림도, 개인 소비생활도 확 달라지겠죠.


“강하게 예측할수록 거짓말쟁이”
경제 예측에는 계량모형, 설문조사, 경제지표 등을 활용합니다. 계량모형은 경제성장률 등 한 해 경제를 내다보는 용도로 많이 씁니다. 일종의 고차원 함수입니다. 어떤 경제 변수의 값을 투입하면 알고자 하는 경제지표가 산출되도록 만들었죠. 예컨대 환율·금리·국제유가 등의 연간 예상치를 넣어 성장률을 계산해내는 식입니다.

모든 예측이 그렇듯, 경제 예측도 꼭 맞아떨어지는 경우가 드뭅니다. 국제 경제기구들은 올해 미국 성장률이 1% 안팎으로 둔화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결과는 2%대의 경기회복 양상이 나타났지요. 국내 연구기관들도 중국 리오프닝(코로나19 사태 이후 경제활동 재개) 효과가 크고 하반기로 갈수록 경기가 살아날 것이라고 전망했지만, 실제는 달랐습니다. 이러다 보니 경제 예측이 계속 도마에 오르고 ‘무용론’까지 제기됩니다. 책 <불확실성의 시대>를 쓴 유명한 미국 경제학자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는 “경제 전망의 유일한 기능은 점성술을 그럴듯하게 보이게 하는 것”이라고 혹평하기도 했죠.

‘닥터 둠(Doctor Doom, 대표적 비관론자)’이라고도 불리는 누리엘 루비니 미 뉴욕대 교수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예상했다지만, 그는 2004년 이후 매년 경제위기와 침체를 경고해온 사람입니다. 일부에서 현자(賢者)라는 평가를 내놓기도 하지만 낯 뜨거운 면이 있습니다. 미국 월가를 대표하는 펀드매니저 중 한 사람인 피터 말루크는 “미래를 자신 있게 예측하는 경제학자일수록 바보(idiot)이거나 거짓말쟁이(liar)에 가깝다”고 했습니다.


AI도 맞히기 어려운 불확실성 시대
그러면 경제 예측의 정확성이 떨어지는 이유가 뭘까요?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먼저 경제 예측은 가정에 가정을 더한 결과라는 점입니다. 세계 성장률, 교역 신장률, 국제유가 등의 흐름이 예상과 다르게 전개되면 나비효과까지는 아니어도 전망의 오차가 커지게 됩니다. 다음으로 예측 모형 자체의 한계입니다. 즉, 과거 경제의 규칙과 패턴이 앞으로 계속될 것이란 가정하에 모형을 만들다 보니 미래 일에는 잘 맞지 않는 겁니다. 현실에선 그런 규칙성이 언제든 변할 수 있죠. 미국 중앙은행은 기준금리 인상을 통해 물가상승에 제동을 걸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가계의 초과저축과 높은 고정금리대출로 인해 금리의 민감도가 약해졌다는 분석이 많았고, 결과적으로 기준금리 인상 효과가 생각만큼 크지 않다는 평가입니다. 이런 상황에선 아무리 많은 데이터를 수집하고 모형을 정교하게 만들어도 정확성을 보강하기 어렵죠.

마지막으로 예측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의 발생을 뜻하는 ‘블랙스완’, 위험을 간과해 벌어지는 ‘회색코뿔소’ 등 불확실성이 일상화되는 상황입니다. 코로나19 확산, 우크라이나 전쟁 같은 사건들은 경제 변수 자체의 추세를 바꾸고, 경제 변수 간 규칙성을 흐트러트립니다. 인공지능(AI)이 고도로 발달한다고 해도 신(神)이 아닌 이상 오차는 불가피합니다.


빠른 수정 전망이 최선책
경제 예측은 불완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경제 주체들의 판단에 중요 근거가 되기 때문에 계속 내놓는 거죠. 따라서 수치 자체를 맹종하거나 신뢰하기보다는 ‘가장 발생 가능성 높은 시나리오’ 정도로 간주해야 합니다. 즉, 경제 변수의 변화에 따른 확률적 결과 정도로 이해하면 됩니다. 또 그런 전망치가 나오게 된 여러 가정과 논리적 근거를 먼저 봐야 합니다. 전망에서 주목하는 리스크와 변수에 신경 써야 한다는 겁니다. 예측 기관들도 새로운 정보가 나올 때마다 빠르게 수정안을 내놓아야 합니다. 경제 주체들은 그때마다 왜, 어떻게 전망이 바뀌었는지 살펴봐야겠죠.


NIE 포인트
1. 경제 예측을 하는 방법론 3가지를 알아보자.

2. 미국에서 금리정책의 유효성이 떨어진 이유를 좀 더 파악해보자.

3. 사람들의 기대가 경제 예측을 틀리게 만드는 사례를 찾아보자.


저성장 먹구름, 슈퍼 선거, 현실이 된 AI
우리 삶을 크게 바꿔놓을 한해가 될 거예요
내년 세계경제의 구체적인 전망을 살펴볼까요? 국가경제와 국제경제를 좌우하는 ‘거시경제 변수’,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정치 변수’, 경제를 실제 움직이는 ‘신산업 변수’를 중심으로 가닥을 잡아봤습니다.


‘피벗’ 한다는데, 이번엔 경기둔화 우려
미국 경기를 둘러싼 세계경제의 향방은 올 한 해 내내 뜨거운 감자였습니다. 미국의 기준금리가 2022년 제로(0)금리 수준에서 연 4.50%까지 치솟았기 때문에 이젠 어느 정도 물가상승이 진정되고, 미 중앙은행(Fed)도 고금리 긴축정책을 완화할 것이란 낙관론이 연초에 생겨났었죠. 그런데 미국 내 소비와 고용시장의 강세가 꺾일 기세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미국 경기가 계속 활황을 이어갈 것이라는 ‘노랜딩(No-Landing, 무착륙)’ 전망까지 나왔죠. 이런 상황이 지난 13일 미 Fed의 3회 연속 금리 동결과 내년 금리 인하 시사로 급반전하고 있습니다. 지난 6월부터 미국 물가상승률이 3%대로 내려온 것이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경제계는 금리정책 전환을 농구에서 한쪽 발을 중심으로 방향 전환을 하는 ‘피벗(pivot)’에 비유하며 환호하기 시작했죠.

그런데 이번엔 세계경제 둔화 우려가 싹트고 있습니다. 강경한 긴축 기조를 유지하던 미 Fed가 피벗을 선언하자, ‘그 정도로 경기가 나빠진다는 거야’라며 반응하는 겁니다. 올해 미국 경제성장률을 2.1%로 추정한 국제통화기금(IMF)은 내년에는 1.5%까지 떨어질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세계경제를 견인하는 중국 경제가 정부 재정난 등으로 하강 속도가 빨라지는 것도 문제입니다. IMF는 중국의 성장률이 올해 5.0%에서 내년엔 4.2%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취약성의 창’ 열리는 세계정치
이번엔 갈수록 높아지는 지정학적 위기의 파고입니다. 근래 40~50년 만에 가장 심각한 수준에 이를 것이란 전망이 많습니다. 유일한 패권국인 미국에 러시아·중국·북한·이란 등이 도발 수위를 높이면서 세계 곳곳에서 동시에 전쟁이 벌어질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 때문이죠. 이로 인해 국제 원자재 공급난과 공급망 붕괴가 심화할 것이란 걱정이 많습니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미·중 패권 갈등으로 인도·태평양 지역이 위험하다며 이른바 ‘취약성의 창(window of vulnerability)’이 열리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각국의 정치적 불안정성도 커질 조짐입니다. 내년은 미국 등 세계 70여 개국, 42억 명의 유권자가 투표하는 ‘슈퍼 선거의 해’입니다. 선거 결과가 주요국 통상정책에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죠. 이코노미스트는 “2024년 세계가 직면한 가장 큰 위험은 트럼프”라고 지적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내년 11월 미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로 나와 승리할 경우 미국중심주의, 보호무역정책 등이 더 노골화되고 세계경제가 큰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겁니다.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인 한국이 가장 큰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큽니다. 산업연구원은 내년 우리나라의 수출이 올해보다 5.6% 증가할 것으로 봤습니다. 인공지능(AI) 산업 등에서 반도체 수요가 회복되고 자동차가 견조한 수출을 유지할 것이란 전망에서입니다. 그러나 트럼프 변수와 교역 침체, 세계적 저성장이 본격화한다면 수출이 기대만큼 늘어나지 못할 겁니다. IMF는 한국의 성장률을 종전 2.4%에서 2.2%로 낮췄습니다.


기업·개인 운명 가를 AI 활용 경쟁
생성형 AI가 등장한 지 1년이 지나면서 기업은 물론, 정부와 개인도 AI의 활용도를 높이려고 안간힘입니다. 기업이 경영활동 전반에 걸쳐 AI를 쓰고, 개인도 사무용 소프트웨어에서 AI를 만날 날이 머지않았습니다. 인터넷 비즈니스를 선점한 GAFA(구글·아마존·페이스북·애플)를 비롯해 어떤 기업이 ‘일상이 된 AI 시대’를 이끌고 새로운 산업계의 리더가 될지 관심이 모아집니다. 물론 AI가 일자리를 과연 얼마나 줄일지, 선거에도 개입하는 부작용은 나타나지 않을지 벌써부터 걱정입니다.

NIE 포인트
1. 미국 기준금리 정책 전환이 왜 세계경제에 중요한지 알아보자.

2. 자유주의자 도널드 트럼프가 왜 보호무역을 주장하는지 생각해보자.

3. ‘현실이 된 AI’가 우리의 일상을 어떻게 바꿀지 토론해보자.


장규호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daniel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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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흥헌신 토요비전새벽예배(주후 2023년 12월 30일)
제목: "그의 자손이 복을 받는 도다"
말씀: 시편 37:23~26
대표기도: 임부오 장로님, 오은주 집사님, 서원철 형제, 강주영 학생
찬양인도: 목양8팀 찬양팀
사회: 김대규 부목사님
말씀읽기: 서유진 어린이(소년부),민경욱 어린이(초등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ㅡㅡㅡㅡㅡ


*시편 37:23~26,
23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의 길을 기뻐하시나니.
24 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25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의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26 그는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고 꾸어 주니 그의 자손이 복을 받는 도다.
-----

▶정말 잘하셔서 목용 8팀 하나를 축복해 주시길 바랍니다. 우리 목양 8팀이 어디인가 하면요. 목양 8팀이 동대문, 성동, 성북 강북 노원, 도봉, 동두천, 양주, 연천, 의정부 포천입니다. 아마 오늘 아침 여기 동두천에서도 의정부에서도 오신 분들, 포천에서 오신 분도 계실 거예요. 근데 서초동에서도 안 나와? 여러분 이건요. 복을 발로 차는 거예요. 그러니까 자식들 잘 되기 위하여 과외하고 뭐 돈 들이고, 그다음에 결혼할 때 혼수해주고, 그 다 오늘 여기는 예배드리고 여러분 아이들하고 같이 기도하고 같은 꿈과 비전과 사명을 가지고 같이 주님과 눈물 흘리고 기도하고 그걸로 끝이에요. 여러분 왜 그런 귀한 걸 모르는지, 내가 속이 터져 죽을 지경이야. 진짜 내 속 터질 때까지 여러분, 어떻 하실 거에요? 아니면 어떻게 할 거예요? 진짜 오늘 요절은 25절이에요. 25절 지금부터 한 15분 정도 집중할 테니까 25절 25절 다시 한 번 읽겠습니다.

*시편 37:25,
25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의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아멘 오늘 이 찬송과 함께 그다음에 이 험한 세상 이거, (He touched me) 히 터치 미, 찬송과 함께 그다음 이 구절을 암송을 하고 가세요. 아시겠어요? 이 오늘 이 히타치 미는 ‘빌 게이더’라고 빌 게이더 라고 미국에 유명한 ‘살아계신 주 나의 참된 소망 걱정 근심이 전혀 없네.’ 그 찬송 알죠? 살아계신 주 나의 참된 소망, 그거 몰라요. 그거 모르면 간첩이에요. 그거 물으면 다 아는데 그 작곡 한분이 이걸 썼어요. 이거 그러니까 뭔가, 뭔가 썸씽 해펀, 뭔가 있는 거예요. 자, 오늘 이 찬송과 함께 이것이 여러분들의 요절이 되어가지고 여러분들 다시 한 번 25절 같이 우리 또박또박 같이 읽어요. 시작,

*시편 37:25,
25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의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아멘 이게 어릴 때부터 선한 목자 되신 하나님께서 내 인생을 인도해 가지고 이렇게 하나님이 인도하는 그 백성들, 그 자녀들, 그 가족들, 그 부모들을 하나님은 결코 버리지 아니하신다. 어떤 삶의 비바람과 폭우가 몰아온다 할지라도 결코 버림받지 아니한다. 이걸 죽을 동 살 동, 예외도 있던데요. 꼭 그런 사람들이 있어요. 예외도 있던데요. 그건 내가 나중에 얘기할게요.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25절은 그대로 응답되는 것이에요. 이거는 오늘 다윗이 썼잖아요. 이 다윗의 신앙 고백이잖아요. 지난 3천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확증되었잖아요. 제가 한번 이 이 예는 이 영화는 저만 알고 있는 것이에요. 한 번 이거 너무 귀해서 천에 한번 우리 중직 자를 한번 나눈 것 같은데, 우리 옥 목사님은 내 사역의 스승이시고, 박희천 목사님은 내 목회 스승이신데, 박희천 목사님이, 박희천 목사님의 목회 스승이세요. 최대의 원초 목사님이신데, 이번에 박기철 목사님 19살 20살 때, 희천아, 너는 앞으로 다른 거 하지 마라. 너 복잡한 거 하지 마라. 너 성경만 열심히 읽어라. 성경을 파라. 성경이 너 양식이야. 너 성경 죽도록 성경만 읽어라. 그때 박희천목사님이 평상을 넘으셨어요. 평상이 평양 사업학교, 평양 상업고등학교, 한국의 3대 유명한 상업학교, 유명한 학교 박희천 목사님은 일본 육사를 가려고 그러다가 1927년생이시니까 한 45년 해방 당할 그때쯤 돼가 그래갖고 1951년 공산화되고, 1951년 하여튼 평양에 사셨는데, 그 최원철 목사님이 그렇게 박 목사님께 성경, 그래서 성경을 자유롭게 읽고 할 수 있는 대로 가라. 그래서 14 후퇴 때, 그때 우리 흔히 38 따라지라고 그러는데 14 후퇴 때 평양에서 서울로 내려왔어요. 내려오고 목사님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나는 교회 지키마. 그래서 평양에서 최원철 목사님의 교회를 지키시다가 공산당에게 총살로 순교당하셨어요. 근데 그 최원철 목사님의 딸이 아들 딸 셋 아들 하나가 있는 거예요. 딸이 몇이라고 셋 아들 하나 그래서 최 목사님이 너희들도 같이 내려가라. 박 목사는 사무대로 따로 내려오고 이 이 최원철 목사님 자녀분들도 또 따로 이제 내려왔어요. 그러니까 완전히 서울 내려 와가지고 고아죠. 아무도 없어요. 부모도 없고 그냥 자녀, 자녀 딸 셋, 아들 하나, 부모도 없고 아무것도 없고, 고하고 먹을 것도 없고 아무 다 이게 헤어져갖고 나중에 만났어요.

나중에 오랜 시간 지나갖고 박 목사님하고 3년 일남 최원철 목사님 자녀들하고 나중에 만난 거예요. 기가 막힌 거야. 어찌 됐느냐고? 먼저 제일 먼저 딸이 내려오고, 그다음에 자녀 아들이 형제들이 내려왔는데 그 딸이 그 당시에 17세 33년생이니까, 지금 보니까 90이네. 박기철 목사님은 96세니까 그 맏 따님은 세브란스 병원 원장님 사모님이 됐어요. 옛날 얘기죠. 아드님은 내려와서 서울대학교 교수가 됐어요. 또 따님 두 분은, 한 명은 세브란스 병원의 간호학과 과장이고, 또 한 분은 여기 서울에 있는 유명한 교회 신실한 장로님의 부인이 되어 권사님이셔요. 한마디로 말해서 3녀 1남이 부모가 키워도 그렇게 자라기가 힘든 거예요. 다시 얘기할까요? 제마 딸 세브란스 병원 원장님 사모님, 아들은 서울대학 교수, 따님 덕분에 한 명은 세브란스 병원 과장 또 한 명은 서울에 유명한 교회 장로님 권사님이셨어요. 요즘 우리 젊은 시 말로 하면 흑 수저다 이런 흙 수저가 없는 거예요. 부모도 없고, 아무것도 없고, 마누라가 17살, 그녀가 동생들 뭐 어떻게 하겠어요? 저는 우리 자녀들의 생애는 오늘 25절로 결정된다고 확신합니다. 이곳이 여러분들의 영적인 버팀목이라고 생각하시고 제가 토요일 날 이 예배를 하나의 심볼이에요. 상징이에요. 하나의 예, 하나의 역할 모델이에요.

이것이 흘러넘쳐가지고 여기 나와 있잖아요. 흘러넘쳐가지고 그 기쁨이 내 영혼을 홍수처럼 흘러넘쳐가지고, 그래서 오늘 부모님들이 토비새에 대한 여러분들 토비새로 기도하고 부모님들을 주님 앞에 나올 그때에 이렇게 우리가 어떻게 매달리느냐에 따라서 우리 자녀들의 미래가 결정되는 줄로 확신합니다. 그 자손의 땅을 상속하는 거에요. 그다음에 26절에 보니까 뭐라고 돼 있냐면 땅을 상속한다는 말은 구약시대에 축복의 대명사예요. 자녀들의 복을 받는다 그 말이에요. 땅 정도가 아니라, 구약의 땅은 하나님의 기업이기 때문에 그 기업을 상속한다는 말은 영적으로 우리가 이렇게 은혜가 계승된다. 그 말이고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 있단 말이에요. 근데 어느 축복인가 26절 어떤 축복인가 26절 보겠습니다.

*시편 37:26,
26 그는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고 꾸어 주니 그의 자손이 복을 받는 도다.
-아멘 여기 중요한 겁니다. 그는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어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어 꾸어주니 그의 자손이 복을 받는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놀라운 기도의 응답을 받았다. 그 말이에요. 기도에 응답이 있는 집안이 된다 그 말이에요. 기도에 응답이 있는 평생이 된다 그 말이에요. 오늘 저와 여러분 이 새벽에 나온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또 방송으로 들어온 모든 성도들의 마음속에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 아버지, 우리 집안이 종일토록 은혜를 베푸는 집안이 되게 하여 주십시오. 남들에게 두 손 비비면서 아쉬운 손, 아쉬운 뭐 꾸어 달라, 꾸어 달라, 이런 삶 살지 말고, 꾸어주는 가정 되게 해 주십시오. 꾸는 가정 되지 말고, 꾸어 주는 가정 되게 해 주십시오.

저는 가끔 한 번씩 결혼식 주례를 하면, 제가 꼭 출연할 때 하는 기도가 이 신랑 신부가 평생 동안 물질에 있어서 하나님 꾸어줄지언정 꾸는 인생 되지 말게 해달라고. 여러분 인생은요. 크게 세 가지에서 결정돼요. 실제로 환경에 의해서 결정돼요. 많은 경우 부모가 강남 부모가 잘 되면 자식들은 지금 한국에 지금 이게 이게 지금 문제 아닙니까? 왜 사법고시를 없애는지 나는 이해를 못하겠어요. 시골에 가난한 애들도 공부 열심히 하면 고등학교만 나와도 사법고시 합격하는 우리 그런 사람들 있잖아요. 고등학교나 사법고시 패스하는 사람들도 있었잖아요.... 그런데 오늘 이 환경은 그리 쉽지가 않도록 돼 있어요. 환경에 의해서 많이 결정해요. 좋은 부모 만나면 좋은 환경 가지고 어릴 때부터 귀하게 자라면 나름대로 되는 그런 환경이 있어요.

그거 오늘 상당히 일리가 있어요. 환경에 의하여 두 번째로는 노력에 의하여, 사람이 열심히 정말 여러분 공부를 진짜 열심히 해보면요. 밥 먹는 시간이 아까워요. 시간이 아까워요. 길 걷는 시간이 진짜 공부에 미치면요. 그럴 때가 한 번씩은 일생에 한 번쯤 있잖아요. 나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다. 그럼 내가 할 말이 없어요. 일생에 한 번쯤은 밥 먹는 시간이 아깝고, 잠자는 시간이 아깝고, 차타는 시간이 아깝고, 걷는 시간이 아까울 정도로 공부에 미칠 때가 한 번 있어야 되는 거에요. 저는 지금도 대학 다닐 때, 제일 마지막에 도서관에서 나오는데 갑자기 베토벤의 ‘운명’이 나오는 거예요. 바바밤!!! 에토 운명이 나오는데, 공부 끝까지 하고 다 나오는데 기가 막히게 내 마음에 위로가 되고, 은혜가 되더라고요. 난 아무것도 없어도, 운명을 헤쳐라 한다. 자기가 열심히 노력하는 거에 의해서 달려는 거예요.

그래 내가 서장훈이라고 여러분 뭔가 이렇게 텔레비 가끔 나오는 애 있죠? 그 친구 내가 마음에 드는 거 하나 있어요. 뭐냐 하면 모든 걸 인생을 즐기며 살아라. 걔가 뭐라고 그러냐면, ‘즐기며 살아가면 되는 일이 어디 있냐? 노력을 하고 열심히 해야지.’ 그거 하나 내가 마음에 들어요. 물론 즐겁게 해요. 즐겁게 그거는 다 높은 수준에 올라가고 그랬을 때, 그러니까 인생은 환경에 의 노력에 의해 결정되지만 그러나 그것도 최고로, 최고로 인생의 최고의 결정력 팩트가 뭐냐? 23절에, 23절 시작

*시편 37:23,
23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의 길을 기뻐하시나니.
-할렐루야, 인생의 환경도 중요하지만 노력도 중요하지만 최고로 중요한 건 뭐냐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 얘기를 기뻐하신다는 것이에요. 그것 때문에 오늘 미칠 정도로 이 새벽에 나와서 기도하는 거예요. 아멘 오늘 제가 복잡한 설교 안 합니다. 여러분 이거 다 이해할 수 있겠죠 목양 8팀 이해가 돼요? 이해가 됩니까? 동두천 포천에서도 와 갖고 이거 이해가 되죠? 여러분 동두천 포천에서 1시간 반씩 올 때요. 그 오는 길이 어려워요. 쉽잖아요. 근데 토비새에 1시간 반 동안 새벽에 나와 가지고 준비하고 아이들하고 같이 준비해가지고, 동두천이나 포천이나 의정부에서 애들 데리고 새벽에 나와 가지고 나오는 그 길 자체가 기적이고 또 마치고 난 다음에 맥도널드 하나 먹고 또 가는 그 기적이에요. 여러분 과외, 과외, 과외 과외를 못해갖고 좋은 대학을 못 갔다 그러면 그게 좋게 괜찮아요. 그냥 또 길이 있어요. 아주 하다 못하면, 사랑 글로벌 아카데미 들어오면 되는 거에요.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에요. 우리에게는 아직까지 남은 이순신이 12척이 있다. 그게 사랑 그 아카데미 이야기예요. 앞으로 우리 케이트 2, 그러니까 유치원부터 시작하고 시영 유치원부터 시작해 고3까지 사랑의 교회는 애들을 키우려고 합니다. 23절 다시 한 번,

*시편 37:23,
23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의 길을 기뻐하시나니.
-내가 이 얘기하면, 목사님, 하나님이 한다 해도 안 되는 사람이 있는데요... 예배로 예루살렘이든 어려운 사람이 있는데요. 내가 복을 위하여 다윗이 미리 알고 24절을 예배하러 왔어요.

*시편 37:24,
24 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아멘 오늘 23절부터 29절까지 다 외워요. 이걸 믿고 살았는데도 불구하고 답이 안 나오는 그런 때도 있을 수 있어요. 그러나 절대로 엎어지지 않아요. 넘어지지만 넘어지지 않아요. 우리는 잘 넘어져요. 25절 시작,

*시편 37:23-26,
23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의 길을 기뻐하시나니.
24 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25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의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26 그는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고 꾸어 주니 그의 자손이 복을 받는 도다.

오늘 내일도 1월 1일 아침에 1월 1일 아침에 여러분 그거 할 거 아니에요? 1월 1일 아침에 뭡니까? 가정 예배 드릴 거 아니에요 근데 오늘 이 말씀을 여러분들이 여러분의 것으로 가장들 여러분께 소화시켜갖고 그렇게 말씀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사랑의 교회는 1 2, 3, 4대가 복을 받는 교회가 되어야 할 것이고, 또 실제로 그런 은혜를 받은 교회입니다. 그대로 되고 주님 나이 찬양하고 밤에 기도 오늘 마무리 하겠습니다.

우리 다시 한 번 말씀의 강력한 능력이 평생 여러분들을 사로잡아 주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의 강력한 능력이 평생 내시기 바라시기 바랍니다. 이 자리에 참석하십시오. 오늘 송년 토비새의 은혜 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다음에 여러분들 진짜 하나님께 감사해야 돼요. 오늘 험한 세상, 다 그에게 이 찬송 신앙 고백으로 오늘 10번을 불렀잖아요. 그렇죠? 10번 불렀잖아요. 그대로 되는 거예요. 이상하게 그대로 되는 거예요. 혹시 제가 내일 이 찬송을 마지막에 부르면 여러분들이 더 크게 해 주셔야 돼요. 여러분 하면 찬성 500번 이게 제가 대학교 1학년인가 2학년 때 2 찬성으로 나왔기 때문에 이타치 그리고 이렇게 같이 부르니까 뭔가 힘이 좀 안 나니까, 아무것도 못 느끼겠어요. 가끔 집에 가서 가슴을 치면서 동의하고 느껴요. 최고의 기도의 제목이고 이 자체가 기도인 것이 아시겠죠? 이대로 될 것입니다. 시편 3편 23절부터 26절까지,,,말씀에 강력한 능력이 여러분들의 평생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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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저녁기도회(주후 2023년 12월 27일)
제목: "말씀의 능력, 피어나는 소망"
말씀: 디모데후서 3:14~17
찬양인도: 쉐키나(이동선 부목사님)
사회: 김대규 부목사님
 
설교자: 장단희 부목사님
ㅡㅡㅡㅡㅡ
 
*디모데후서 3:14~17,
14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15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ㅡㅡㅡㅡㅡ
 
장단희 부목사님.
태초 진행형 역사와 우리를 살리시는 피의 복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이 주간 가운데 태초 진행형 생명이 역사하게 하심을 믿습니다. 2023년에 마지막 주가 이 시간 흘러가고 있습니다. 더불어 이번 주는 새롭게 시작할 2024년을 소망으로 기대하며 나아가는 주이기도 합니다. 2023년 하나님께서는 사랑의 교회를 통해 한국교회와 이 나라 이민족, 온 세계 열방 위에 위대한 일들을 행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새롭게 시작되는 2024년을 통하여 비교할 수 없는 충천하는 은혜로 날마다 함께하시고 새로운 역사로 이루실 것을 간절히 믿으시길 소망합니다.
 
제가 사랑의 교회에서 사역을 하게 된 지 어느덧 이제 딱 1년이 되었습니다. 저는 계속적으로 현재 진행형으로, 아주 큰 감격으로서 사역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를 잠시 나누자면 사랑의 교회에서 제가 지난 1년 동안 경험했던 모든 사역들, 모든 예배들, 그리고 모든 영 가족들과의 나눔과 교재들이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을 기초로 하고 말씀을 중심으로 하여서 그 안에 능력이 나타나고 기적이 실체가 되는 것을 제가 생생히 경험하였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의 말씀입니다. 소망이 없다고 하는 이 시대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말씀의 능력을 통하여서 이 나라가 소망이 있다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말씀의 능력을 통하여서 우리의 삶이 소망이 있다고 하십니다.
 
오늘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이러한 말씀의 능력, 능력의 말씀에 대하여 적극적이면서도 강력한 가르침으로 권면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그의 영적 아들 디모데에게 오늘 말씀을 통해서 올바른 신앙생활이 무엇인지 올바른 신앙의 자세를 명확하게 가르쳐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동일한 신앙의 자세를 겸비해야 합니다. 우리에게도 동일한 신앙의 자세와 사명이 있습니다. 부르심의 소명 따라 사명자의 자리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이 삶을 살아가게 하십니다. 죄로 말미암아 눈이 어두워 앞을 보지 못하는 지금 이 시대 가운데에서 얻은 죄악 세상 가운데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빛을 환히 밝혀야 하는 그리스도의 온전한 제자로 살아가야 하는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바울 서신의 특징을 이 시간 잠깐 살펴보고 나아가자면, 바울 서신은 구원론과 종말론이 함께 갑니다. 곧 이 마지막 때에 구원받은 언약 백성이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며 우리의 구원의 완성을 기다리며 어떻게 살아가야 되는지 계속해서 구원론과 종말론이 함께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의 삶의 실제가 그러하였습니다. 바울은 날마다 이 삶을 겸비하였고 견제하며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그의 삶의 중심에는 항상 하나님의 말씀 성경이 있었습니다. 그는 영적 아들 디모데에게 요한과도 같은 이 편지에서 이 마지막 편지에서 온 마음을 다하여 간절한 목자의 심정을 가지고 오직 말씀만을 붙들고 살아갈 것을 강권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말씀만이 소망 없는 죄악 된 어둔 세상 속에 생명의 빛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말씀의 능력입니다. 지금의 시대는 말세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마지막 때라고도 합니다.
 
오늘 사도바울은 디모데후서 3장 1절을 통하여서 말세 고통 하는 때가 이른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성경 역사를 돌아보자면 창세기에서 아담의 탈락 이후에 이 세상이 오염되지 않았던 적은 없습니다. 이 세상은 완전히 탈락하였고, 전적으로 오염되고, 부패하여서 탈락 이후의 모든 것은 정상적인 삶이 없었습니다. 한마디로 비정상적인 세상이고 비정상적인 인생들이었습니다. 모든 것은 죄악으로 가득 찼고, 구원이 없으면 오직 죽음뿐인 그러한 세상이 지금의 세상이고 또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인 것입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4장 18절 말씀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에베소서 4:18,
18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아멘 죄악 된 세상 속에서, 죄인 된 인간에게 참된 지혜와 참선은 절대로 찾아볼 수 없습니다. 마음의 완고함과 무지함으로 가득 찬 인간은 결국 자신이 삶의 주인이 되어서,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망각한 존재가 되어버렸습니다. 곧 빛보다는 어둠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영광보다는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서 살아가는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죠. 한마디로 허물과 죽음뿐인 인생인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끝일까요? 절대로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 사랑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고린도후서 4장 6절 말씀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고린도후서 4:6,
6 어두운 데 빛이 빛이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아멘 우리 민족이 그랬습니다. 이 대한민국 땅이 그랬습니다. 변방의 나라 미개한 족속 언더우드 선교사님의 처음 기도의 말을 빌리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땅이 바로 이 나라의 민족 대한민국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대한민국을 사랑하셨습니다. 택함 받은 주의 백성 삼으셨습니다. 합정동에 있는 양화진 선교사 묘원에 있는 그 기념물 입구에는 이런 글이 쓰여 있습니다. 하나님이 조선을 이처럼 사랑하사 하나님께서 이 나라 이 민족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외국인 선교사님들을 보내주셨습니다. 외국인 선교사님들 사이에서는 우리나라는 소위 선교하기 전부터 기가 막힌 나라였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영어 성경을 보면 ‘택함 받은 백성’이라는 소위 구원받은 백성이 영어로 추슨 피플(chosen people)입니다. 추슨 피플인데 이 나라의 이름이 이미 초선이었습니다. 번역하면 택함 받은 이였죠. 세계 어느 나라가 이럴까요? 예를 들면 선교사님들이 선교를 하는데 조선이니 ‘나 조선 사람이요.’ 이것이 선교사님들에게는 어떤 말로 들리냐면 ‘나 택함 받은 백성이요’, ‘나 구원받은 백성이요’ 라는 말로 들렸다는 사실입니다. 선교사님들에게 우리나라의 별명은 이미 하나님의 택함 받은 나라, 하나님의 구원받은 백성이었습니다. 이 자신감, 이 믿음으로 선교사님들이 그렇게 많은 순교의 피를 흘리시고 그 사랑으로 복음을 전도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둠뿐이었던 이 나라 가운데 복음의 빛을 비춰주셨습니다.
 
1892년 레이놀즈 선교사님은 이 땅 가운데 선교를 하러 오셨습니다. 그는 한국 성경 번역의 아버지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듬해인 1893년 그의 맏아들이 태어난 그 해에 하나님의 품에 안겼습니다. 이러한 아픔과 슬픔 가운데에도 선교사님은 하나님께서 주신 이 비전을 결코 놓지 않았습니다. 이 사명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결국 1910년 4월 2일 오후 5시에 아주 유명한 말을 남기게 됩니다. 번역 ‘다 됐소.’ 구약 성경이 드디어 완역된 것입니다. 이 나라의 민족 가운데 드디어 성경이, 신약, 구약이 완전히 번역되었던 것입니다. 어둠뿐이었던 이 나라 위에 능력의 말씀을 통하여서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의 빛이 비추어졌습니다. 이 나라가 복음화가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이 영광 가운데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주신 비전 ‘2033-50 비전’ 또한 기적의 실체가 되게 하실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어둠을 물리치는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느 때이든지 말씀 안에 거해야 합니다. 이 마음으로 오늘 함께 읽으셨던 본문 말씀 디모데후서 3장 14절을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디모데후서 3:14,
14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아멘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면 능력을 경험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은 외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바꿔 말하면 이 시대가 아무리 소망이 없다고 하고, 이 시대가 아무리 어둠뿐이라 할지라도, 내 삶을 뒤흔드는 폭풍과도 같은 이 현실을 마주하는 나의 이 삶 속에서 나의 상황, 환경, 어쩌면 육신의 어려움이 될 수 있습니다. 한국 교회를 흔드는 모든 것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능력의 말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의 복음 그 안에 거하라. 부활, 소망 안에 거하라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외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안에 참된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디모데가 이 편지를 받는 때는 AD 약 66년경이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초대교의 역사는 부흥과 함께 고난이 따랐습니다. 현실이 어떠하였습니까? 영적 아비였던 디모데의 선생님은 지금 죽음의 위기 가운데 아무것도 안 보이는 그 감옥 가운데 소위 거적 대기 하나 걸치고, 그렇게 아무런 소망이 없는 것 같은 그 현실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의 믿음의 가정들은 어떠하였습니까? 사도바울은 디모데후서 4장에서 자신의 친애하는 제자들이 자신을 떠났고, 모두가 나를 버렸다고 고백하였습니다. 많은 이들이 배교를 하였습니다. 더욱이 피해 황제 네로의 핍박과 박해로 인하여서 로마 통치 하에 있는 온 저녁에 그 곳에 거하는 그리스인들에게 피바람이 불고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세상 속에서 디모데의 영적 아비인 바울은 피하라 도망쳐라 말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외쳤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외침인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어떻습니까? 우리의 신앙의 자세는 어떠합니까? 언제든 어느 때이든 우리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해야 합니다. 날마다 오늘 말씀처럼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는 삶을 살아가십시오. 그 안에서 능력의 말씀이 승리하는 것을 경험케 하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모든 영가족 여러분,
냉소주의와 비관주의와 패배주의로 물든 세상의 소리들이 넘쳐나는 격변하는 이 세상 속에서 우리는 불변하는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 위에 거해야 합니다. 우리는 영원토록 변함없으시고 신실하신 하나님의 이 말씀을 붙들며 살아가야 됩니다. 지금의 때가 어떠하십니까? 지금의 상황이 어떠하십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신실하신 살아계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배우고 확신한 일, 하나님의 능력의 말씀 안에 거하시며 날마다 능력의 삶을 실제로 경험하는 삶을 살아가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어서 오늘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너가 누구에게서 이것을 배웠는지 알지 않느냐?” 묻습니다. 디모데는 그의 영적 아비 사도 바울에게서 배웠습니다. 이미 바울의 모든 삶을 보았고, 그는 삶으로써 배웠습니다. 더 나아가서 그의 어머니 유니게, 그의 할머니 루이스를 통하여서 신앙이 무엇인지 신앙의 또한 믿음의 말씀의 세대 계승을 이루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의 교회에 이 세대 계승의 축복을 허락하셨습니다. 믿음의 사대로 이어지는 신앙의 세대 계승에 이 축복을 주신 줄로 믿습니다.
 
디모데가 말씀의 신앙을 물려받고 이 말씀을 가르쳐 전파하는 사명을 준행하였듯이, 하나님께서 동일하게 마찬가지로 오늘 우리에게 이 사명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말씀 위에 거하고 또 이 말씀을 가르치며 지키며, 후대에게 전파하며, 행하게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말세의 모든 상황 속에서도 주의 말씀은 멈추지 않습니다. 말씀의 능력으로 말미암는 이 신앙이 전파되고 흘러가며 하나님의 복음은 소망으로 꽃을 피울 것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이 사명을 감당케 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오늘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이 사명을 감당하는 힘을 주시기 위하여서 하나님의 말씀 특별 계시, 성경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통하여서 일하십니다. 말씀의 능력을 힘입을 때 모든 상황 속에서 소망이 변하는 줄로 믿습니다. 함께 디모데후서 3장 15절의 말씀을 읽도록 하겠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디모데후서 3:15,
15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이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아멘, 그렇다면 왜 말씀이 능력입니까? 왜 말씀이 내 삶 가운데 실제적인 능력이라고 우리는 외칠 수 있는 것입니까? 디모데가 어려서부터 알았던 오직 성경만이, 오직 말씀만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안에 있는 그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우리에게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오직 말씀만이 이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주는 믿음을 주는 유일한 방법이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그 어떤 잘나 보이는 지도 우리를 구원할 수는 없습니다. 세상에 수많은 종교도, 그 어떠한 지식도, 지금 서점에 가보면 수많은 베스트셀러들이 있습니다. 여러 책들이 있고 또한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한다는 여러 가지 방법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우리에게 구원을 줄 수는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만이, 우리에게 구원을 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지혜, 내 지혜가 아닌 오직 유일한 참 지혜인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힘입어 살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결국은 삶입니다. 믿음은 삶으로 나아가는 것이고, 삶이 믿음이고, 우리가 경건의 삶으로 살아가는 것이며, 삶의 경건이 우리의 삶의 모든 것이 돼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성경은 구원받은 성도가 이 경건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올바른 방향과 삶의 명확한 목표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함께 디모데후서 3장 16절 아주 잘 아시는 구절입니다.
 
*디모데후서 3:16,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아멘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감동을 하나님의 영감 또는 하나님의 호흡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습니다. 완전한 하나님의 영감으로 되었습니다. 비록 사람이 썼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완전히 신적으로 개입하셔서 완전한 영감으로서 완전 축자영감(逐字靈感-성서의 한 자 한 자가 모두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기록되었음)으로, 모든 성경을 우리에게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주셨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말씀은 정확하고도 무오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오류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조금 전에 말씀드렸듯이 이 성경은 하나님의 호흡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을 다시 한 번 말씀드리면 하나님의 말씀이 호흡으로 되었다. 하는 것은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이 내 삶을 역동케 하는 내 심장을 쿵쾅쿵쾅 뛰게 하는 살아 역사하시며 운행하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처럼 하나님의 호흡이 담겨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가족 여러분,
이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로 나아가고 계십니까? 이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거닐고 계십니까? 말씀을 읽으시며 우리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그 사랑의 벅찬 숨결을 느끼며 나아가야 됩니다. 성경은 창세기로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이 66건 말씀을 통하여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그 거룩하시고 그 인자하시며 날마다 목자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그 하나님의 신실하신 숨결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처럼 말씀에는 하나님의 신적 호흡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의 인생의 방향을 돌이키는 참된 교사의 역할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가르치시며, 인도하시는 목자가 되시며 교사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을 통하여서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주셨다면 회개(悔改)도 동시에 나오는 것입니다. 말씀을 통하여서 이 가르침을 통하여서 우리에게 당연으로 나오는 것이 참된 회개인 것입니다.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잘못된 삶의 방향을 깨닫게 합니다.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계십니까? 어떠한 방법이 필요하십니까? 삶의 갈피를 못 잡으시겠습니까? 그렇다면 가장 먼저 말씀으로 돌아오십시오. 말씀이 우리의 삶의 방향을 깨닫게 합니다. 어두운 세상 가운데에서, 참된 삶의 목적을 참된 하나님의 뜻을 바라보게 하고 살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돌이키게 하며 참된 회개를 하고, 하나님 안에 거하도록 인도해 주는 것입니다. 올바른 방향을 가르쳐줍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신적 호흡으로 된 하나님의 말씀이 오늘 나를 사랑으로 가르쳐 주시며 인도하심을 믿으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 구원을 살아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이 유익하다. 지금 내 삶에 가장 큰 유익을 주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 영 가족 여러분은 무엇을 통하여서 가장 큰 유익을 누리고 계시고 얻고 계십니까? 우리는 삶에 진정한 유익을 주는 것은 오직 단 하나, 하나님의 말씀밖에 없음을 믿으며 나아가야 됩니다. 그러므로 무익한 세상 지혜에 매달리는 미련함을 이제는 모두 벗어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유익함을 깨달아, 날마다 우리의 진정한 믿음의 삶의 방향, 참된 생명을 누리며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의 삶의 중심이 되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 삶을 살아갈 때 어둔 세상 속에서 말씀의 능력으로 말미암은 소망의 백합화가 찬란하게 피어나게 될 것입니다. 함께 디모데후서 3장 17절 말씀을 읽도록 하겠습니다.
 
*디모데후서 3:17,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아멘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참된 지혜를 주시고 참된 가르침을 주시는 가운데 이제 우리로 하여금 삶을 살아가게 해줍니다. 오늘 디모데후서 3장 14절에서부터 17절 말씀은 이처럼 구원과 믿음과 삶에 대해서 명확하게 가르쳐주고, 신앙의 올바른 자세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함께 읽으셨던 디모데후서 3장 17절에는 사실 말씀 자체에 모순이 있고 또 더 나아가서 반전이 있습니다. 어떠한 것이냐면 본래 사람은 온전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본래 사람은 절대로 선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이 세상 가운데 아무리 선하게 보인다 하는 사람일지라도, 아무리 어떠한 봉사로서 어떠한 도덕적이나 예의적인 측면이 가장 최상으로 올바로 서 있다고 하는 존재일지라도, 예수 그리스도가 없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없다면 그 인생은 절대로 선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비록 온전할 수 없는 존재이고, 선할 수 없는 존재이나 말씀의 능력으로 가능하다는 사실입니다.
 
이 말씀을 날마다 믿으며 나아가시기를 소망합니다. 말씀의 능력을 통해 십자가 대속의 고열로 말미암아 우리는 성령 안에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와 연합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와 연합했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의 능력이 나의 능력이 되고,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이 나의 죽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나의 부활,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 생명이 나의 영원 생명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나는 부족하나 내가 연약하면 연약할수록 그리스도께서 강하시기에 날마다 우리를 강하게 하시고 힘 있게 하시며 다시 살리시는 그 생명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완전하십니다. 우리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이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절대 선이시고, 그분은 완전한 선이시기에 우리는 연약하나 이 선을 행할 능력을 우리가 갖추게 된 것입니다.
 
2023년을 마무리하고 2024년을 기다리시면서, 스스로를 돌아보시며 또한 앞으로 나아가야 될 방향을 바라보시며 어떠한 마음으로 나아가고 계십니까? 내 아내 연약함에 매몰되지 마십시오. 나의 부족함과 나의 온전하지 못함과 나의 선하지 못함 때문에 그저 무너지고 낙망하는 것이 아니라, 그와 비교할 수 없을 하나님의 완전하심과 하나님의 선하심을 붙들며 날마다 말씀의 능력 안에서 온전함으로 나아가시며, 선한 능력으로 나아가시는 모든 영가족분들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로 하여금 이 삶을 살아가게 하실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오늘 디모데에게 편지를 하면서 마지막에 이러한 고백을 합니다. 잘 아시는 고백입니다. 너무나도 멋진 고백입니다. “나는 이제 나의 달려갈 길과 모든 사명을 마쳤다.”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의의 면류관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삶도 동일합니다. 비록 지금 이 시대가 너무나도 흔들리는 시대이고 너무나도 어둠뿐인 죄악 된 세상이지만, 어쩌면 우리의 삶이 무너지는 삶의 현실이고 어려운 삶의 현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능력이 되시길 우리의 삶에 소망이 피어나는 것입니다.
 
한국 초기 여성 의료 선교사님이셨던 로제타 홀 선교사님은 선교지인 조선 땅에서 남편인 윌리엄 제임스 홀 선교사님과 조선 최초의 서양 결혼을 하신 그러한 선교사님이십니다. 미국에서 조선에 대한 그 소명을 품고 준비하실 때 사실 윌리엄 제임스 홀, 남편 선교사님은 다른 나라를 지망하고 계셨는데, 이 아내 분에게 한눈에 반해서 이 사역 지까지 변경하여서 조선 땅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이 두 분이 조선 땅에서 결혼하셔서 이제 아들 샤오도 홀을 갖게 되었고, 또 뱃속에는 에디스 홀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에 결혼한 지 3년쯤 되었을 때, 우리나라의 청일전쟁이 일어나게 되었고, 제임스 홀 선교사님께서는 이 사명을 마다하지 않고 그 자리로 나아가 의료 선교로 봉사하시다가 결국 이질에 걸려서 하나님 품으로 가셨습니다. 로제타 홀 선교사님의 일기에 보면, 하나님 제발 우리 남편을 살려주세요. 라는 눈물의 고백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이 있으셨기에 남편을 데려가셨습니다. 그리고 미국 땅으로 잠시 건너가서 이제 그 마음을 추스리고 다시 조선 땅으로 와서 의료 사역에 조선 여성 의료 사역에 힘쓰시는 가운데, 7개월 만에 또 딸 이디스가 풍토병에 걸려서 이질에 걸려서 하나님께서 데려가셨습니다. 양화진 선교사 기념공원 로제타 홀 선교사님 그 기념관에 가면 이 일기가 실제로 있습니다. 그 딸에 머리카락이 있고 하루하루 체온을 쟀던 그 기록이 있습니다. 맥박이 하루하루 느려지고 또 그 체온이 걷잡을 수 없이 올라가던 그런 것이 있습니다. 결국 하나님이 그 딸마저 데려가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교사님은 이 사명을 놓지 않으셨습니다. 양화진에 가보면 로제타 홀 선교사님 이 제임스 선교사님 홀 가족 묘비에 이런 글이 쓰여 있습니다. 로마서 14장 8절 “살아도 주를 위해 죽어도 주를 위해 그러므로 우리가 사나 죽으나 주님의 것이로다.”
-아멘, 말씀의 능력 위에 하나님 주신 사명을 포기하지 않고 조선 선교를 위하여서 선교사님은 모든 사명과 그 삶을 바치며 살아 가셨습ㄴ다. 그때 어떻게 되었습니까? 우리나라 이 민족, 이 땅 가운데 복음이 꽃피고 이 한국 땅이 복음화가 되었습니다. 말씀의 능력을 힘입을 때, 상황이 믿음을 지배하는 것이 아닌 능력의 말씀으로 말미암는 믿음이 상황과 환경을 지배하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연가족 여러분,
이 마지막 때에 오직 말씀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소망이 피어나게 하심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이 소명자의 삶을 살아가야 됩니다. 이 사명을 감당하는 자들입니다. 그리스도의 온전한 제자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우셨습니다. 사랑의 교회가 이런 교회이기에 한국 교회의 소망이 있습니다. 이 믿음 안에서 능력의 말씀 위에서, 이 확신 가운데 날마다 말씀 위에 거하시며, 가르치고 전파하시며, 다음 세대에게 이 신앙을 물려주시고, 주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실 때 풍성한 은혜를 누리시며,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기쁨을 누리시는 연말연시의 모든 시간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소망합니다.
 
♣요약
하나님 말씀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소망이 피어나서 날마다 말씀을 통하여 믿음의 반석 위에 굳건히 서야 하며, 격변하는 세상 속에서 변함없는 사랑과 은혜로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께 소망함을 두어야 한다. 오직 성경만이 구원에 이르는 참된 진리이자 지혜임을 믿으며 그리스도의 온전한 제자로서 삶의 명확한 방향인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참된 선을 누리며, 말씀을 의지하고 배우고 확신하는 신앙의 축복된 자로 세상 사람들 앞에 본이 되어 주님을 전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성경은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지표가 되며 가르치고 배워야 할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경은 단순히 배우고 암기하는 교과서가 아니며 시대적 상황에 제약되는 역사서도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구체적인 우리의 삶에 적용되어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도록 인도하는 살아있는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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